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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구의 법정동 행당동 杏堂洞 | Haengdang-dong | |
<colbgcolor=#009742><colcolor=#fff> 광역자치단체 | 서울특별시 |
기초자치단체 | 성동구 |
법정동코드 | 1120010700 |
소속 행정동 | 행당1동·행당2동·사근동(일부) |
면적 | 1.49㎢ |
인구 | 41,848명[1] |
인구밀도 | 28,085.91명/㎢ |
법정동 경계와 행정동 경계 |
1. 개요
서울특별시 성동구 법정동으로, 행당1동·행당2동·사근동의 3개 행정동이 관할한다. 면적은 총 1.49㎢에 달하며, 동쪽은 사근동(법정동), 서쪽은 금호동1가, 남쪽은 응봉동·성수동1가, 북쪽은 하왕십리동·도선동·홍익동·마장동에 접한다.성동구의 교통 중심지인 왕십리역과 왕십리오거리는 행당동에 있다. 행당동에서 왕십리역 생활권에 들어가는 행당1동의 일부 지역은 넓은 의미에서 왕십리라 일컫는 지역에 포함되며, 오늘날에는 이 지역을 주로 왕십리라고 부르고 있다.
행당동에서 경원선 동쪽 지역은 행정동 사근동 관할 구역에 속하는 곳이며,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가 이곳에 있어 한양대 혹은 한대앞[2]이라고도 부른다.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부지는 법정동 기준으로는 행당동과 사근동 양쪽에 걸쳐 있으나[3], 행정동 기준으로는 모든 부지가 사근동에 속한다. 이 지역은 주소를 쓸 때는 행당동 주소를 쓰되, 행정 업무를 볼 때는 사근동주민센터를 이용해야 한다.
이밖에도 성동구청·성동구의회·서울성동경찰서·성동소방서·성동우체국·서울특별시성동광진교육지원청 등 성동구의 주요 기관들이 행당동에 있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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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1,2계 (箭串一二契) | 신촌리계 (新村里契) | |||||
1894 | 한성부 남서 두모방(漢城府 南署 豆毛坊) | |||||
전관1,2계 전관동 (箭串一二契 箭串洞) | 신촌리계 행당리동 (新村里契 杏堂里洞)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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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 10. 1. | 경기도 경성부 남서 두모방 (京畿道 京城府 南署 豆毛坊) | |||||
전관1,2계 전관동 (箭串一二契 箭串洞) | 신촌리계 행당리동 (新村里契 杏堂里洞) | |||||
1911. 4. 11. | 경기도 경성부 두모면 행당리 전관동 (京畿道 京城府 豆毛面 杏堂里 箭串洞) | |||||
1914. 4. 11. |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 행당리 (京畿道 高陽郡 漢芝面 杏堂里) | |||||
1936. 4. 1. | 경기도 경성부 행당정 (京畿道 京城府 杏堂町) | |||||
1943. 6. 10. | 경기도 경성부 성동구 행당정 (京畿道 京城府 城東區 杏堂町) | |||||
1946. 10. 9. | 서울특별자유시 성동구 행당동 (서울特別自由市 城東區 杏堂洞) | |||||
1949. 8. 15. | 서울특별시 성동구 행당동 (서울特別市 城東區 杏堂洞) | |||||
1955. 4. 18. | 행당동 (杏堂洞) | 행응동 (杏鷹洞) | ||||
1970. 5. 18. | 행당1동 (杏堂一洞) | 행당2동 (杏堂二洞) | 행당3동 (杏堂三洞) | |||
1980. 7. 1. | 사근동 (沙斤洞) | 행당1동 | 행당2동 | |||
}}}}}}}}} |
1395년(태조 4년)에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할 때에 한양도성 내부만 한성부가 되고 그 외 지역은 모두 양주군에 속하게 했는데, 지금의 행당동 지역도 양주군에 속하게 되었다. 1424년(세종 6년), 한양에서 떨어져 나온 지 29년이 지나서 다시 한성부 성저오리(城底五里)에 편입되어 남부에 예속되었다. 이때 지금의 행당동 지역은 남부에서 가장 동쪽 끝에 있는 지역이었다. 인접한 하왕십리나 사근동은 동부 인창방(仁昌坊)에 속하였다. 영조 27년인 1751년에 이루어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한성부 남부 두모방(豆毛坊) 신촌리계(新村里契)에 속했다. 이 당시에는 질펀한 들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진펄리 또는 진팔리로 불리다가 1894년 갑오개혁 때부터 지금의 행당초등학교 동쪽 아기씨당 쪽에 은행나무가 많다고 하여 처음으로 행당리라는 지명이 붙었다.
지금의 행당중학교 일대는 전관리라는 지역이었는데, 익힐 관(串) 자가 곶 곶 자로도 읽히기 때문에 전곶리라고도 불렀다. 도성에서 가장 가까운 4개 역원[4] 중 하나인 전관원(箭串院)이 행당중학교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지명이 붙었다. 갑오개혁 당시에는 전관1,2계 전관동에 속하게 되었고, 관할 구역은 중랑천 너머 성수동까지였다.
예로부터 그 일대는 살곶이벌이라고 부르는 지역이었는데, 조선 세종 2년인 1420년에 지은 살곶이다리에서 따온 것이다. 살곶이란, 무인정사(왕자의 난이라고도 하는 그 사건) 이후 함흥으로 낙향한 태조가 한양으로 돌아올 때 태종이 지금의 덕수고등학교 땅에 마중을 나왔는데, 이를 본 태조가 태종에게 화살을 쏘았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다른 야사로는 지금의 응봉동 일대에서 매사냥을 하던 태종이 화살을 쏘니 성수동의 어느 나무에 꽂혀 이 일대를 살곶이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고, 화살이 나무에 꽂혔는데 그 나무에서 피가 흘러 살곶이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하여 이곳은 조선시대부터 전관평(箭串坪)이라 불렸고, 이는 뚝섬경마장 앞에서 동서울터미널까지 이어지는 도로에 관평로(串坪路)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훗날 이 도로는 뚝섬로로 개명하였다.
살곶이다리 훗날 보물 제1738호로 지정되었으며, 무려 성동교가 지어지던 1938년까지 500년을 넘도록 왕십리에서 광나루를 잇는 유일한 간선도로 역할을 하고 있었다.
1911년 4월 11일에는 전관1,2계의 전관동이 신촌리계 행당리동으로 병합되어 행당리 전관동이 되어 비로소 한 동네가 되었다. 전관동이 관할하던 성수동 일대는 각각 뚝도1계, 뚝도2계로 따로 분리되었다. 1914년 4월 11일에는 부군면 통폐합으로 인해 한성부의 후신인 경성부가 축소됨에 따라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漢芝面)에 속했다.
1936년 4월 1일에 다시 경성부로 편입되어 행당정(杏堂町)이 되었다. 1943년 6월 10일 구제가 시행되며 경성부 성동구에 속하게 되었다. 1955년 4월 18일, 행정동 제도를 만들며 행당동과 행응동으로 갈리게 되는데, 대략 행당로를 기준으로 북쪽(지금의 행당1동과 행당2동 북부)이 행당동 관할 구역이 되었고 남쪽(지금의 행당2동 남쪽과 응봉동 지역)이 행응동 관할 구역이 되었다.
1970년 5월 18일 부로 행응동에서 대현산 남쪽은 응봉동으로 분리되었고, 대현산 북쪽은 다시 행당동의 관할로 편입되었다. 이때 고산자로 동쪽 지역은 행당1동, 행당로 북쪽 지역은 행당2동, 행당로 남쪽 지역은 행당3동이 되었다가 1980년 7월 1일, 행당3동이 행당2동으로 통폐합되었다. 동시에 행당1동 관할 구역 중 경원선 이동 지역을 사근동 관할로 이관했고, 행당2동 중 1~4통이 행당1동으로 이관되었다. 이 영향으로 현재까지도 법정동 행당동과 법정동 사근동은 행정구역이 행정동의 경계와는 다르다.
3. 행정동
3.1. 행당1동
성동구의 행정동 행당제1동 杏堂第一洞 | Haengdang 1(il)-dong | |||
<colbgcolor=#009742><colcolor=#fff> 광역자치단체 | 서울특별시 | ||
기초자치단체 | 성동구 | ||
행정표준코드 | 3030045 | ||
관할 법정동 | 행당동(일부) | ||
하위 행정구역 | 26통 182반 | ||
면적 | 0.59㎢ | ||
인구 | 13,738명[A] | ||
인구밀도 | 23,284.75명/㎢ | ||
정치 | {{{#!wiki style="margin: -0px -11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top: -5px; margin-bottom: -11px" | 국회의원 | 중구·성동구 갑 | |
| 전현희 (3선) | ||
서울특별시의원 | 제2선거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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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구의원 | 나 선거구 | |||
| 남연희 (3선) | ||
| 전종균 (초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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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센터 | 고산자로10길 18 (행당동 139) | ||
행당제1동 주민센터 |
행당1동 지역은 서울의 부도심이자, 성동구의 행정·교통 중심지로서, 업무·상업지구, 공공기관, 주택가, 아파트 단지가 혼재되어 있다는 특성을 보인다. 다만 서울 시내의 다른 부도심들과 비교했을 때, 업무·상업지구는 크게 발전하지 못 한 편이며, 아직까지는 주택가와 아파트 단지가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왕십리오거리를 중심으로 왕십리역 민자역사를 비롯해서 성동구청·성동구의회·성동경찰서·성동우체국·서울특별시성동광진교육지원청 등 성동구의 주요 기관들이 모여 있다. 왕십리오거리에서 성동교 방향으로 250m 정도 가다 오른쪽으로 꺾으면, 행당로로 이어지는 고산자로10길을 두고 양옆으로 소월아트홀·성동구립도서관 등의 구립 문화 시설과 행당1동 주민센터가 있으며, 레몬프라자를 중심으로 소규모 상권이 형성되어 있다. 왕십리역에는 외지인들이 많이 온다면, 이 일대는 외지인보다는 행당동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상권이다.
고산자로 서쪽은 행당시장이 있는 곳으로, 그 주변 지역은 대부분 단독주택·다세대주택·빌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은 본디 행당2동에 속하였다가 1980년에 행당1동으로 편입된 곳으로, 행당시장을 따라 쭉 들어간 곳은 왕십리역보다는 행당역에 가까우므로, 행당2동과 함께 행당역 생활권에 포함되기도 한다.
1947년 6월에 동회(洞會) 제도가 시행되며 법정동 행당동 전역을 관할하는 행당동회가 설치되었고, 1955년 4월 18일 부로 동회 제도가 폐지되고 행정동 제도를 시행되면서 지금의 행당1동 전체와 행당2동 일부 지역이 행정동 행당동 관할 구역으로, 행당2동 일부와 응봉동이 행정동 행응동 관할 구역으로 편제되었다.
1970년 5월 18일에 행정동 행응동이 폐지되면서 기존 행당동사무소 관할 구역 중 고산자로 이동 지역이 행당1동으로, 고산자로 이서 지역이 행당2동으로, 기존 행응동사무소 관할 구역 중 법정동 행당동에 속하는 지역이 행당3동으로 개편되었다. 1980년 7월 1일에는 행당3동이 폐지되고 행당2동으로 편입되었고, 기존 행당2동의 동쪽 일부 지역이 행당1동으로 편입되었으며, 행당1동에서 경원선 이동 지역이 행정동 사근동으로 편입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성저십리의 한적한 농촌 지역이었으나, 1911년에 경원선이 지나가게 되면서 이곳에 왕십리역(개통 당시 독도역(纛島驛))이 개업하였고, 1930년대에는 이촌향도 현상으로 나날이 폭증하는 경성부의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시행하면서 경성 교외의 택지 지구로 개발되었다. 이때 지어진 조선집이라 하는 일제강점기 당시의 개량한옥들이 남아 있기도 하다.
6.25 전쟁 이후에는 상경민들이 옛 성저십리 지역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였는데, 왕십리오거리 일대는 중산층이 모여 살면서 양옥집들이 세워졌고, 행당1동 남부 구릉지에는 서민들이 모여 살면서 판자촌이 세워지기도 하였다. 판자촌은 1990년대에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이 되면서 사라졌으나, 나머지 지역은 오히려 개발이 뒤쳐지면서 낙후된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이 일대는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2004년에 성동종합행정타운이 조성되어 성동구청을 비롯한 성동구의 각종 주요 기관들이 입주하였고, 왕십리역에 민자역사가 지어져 상권이 확충되었으며, 분당선이 개통되면서 강남과의 접근성이 개선되면서 명실상부 서울 동부의 중심지로 거듭나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부터 재개발이 이루어져 행당1동 남부 지역은 대단지 아파트들이 들어섰으나, 왕십리오거리와 행당시장 주변 지역은 아직까지 노후 주택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이 지역은 '왕십리 광역중심 지구단위계획' 구역에 포함되어 업무·상업지구로 재개발될 예정이다.
또한 왕십리역 앞의 알짜배기 땅을 공공기관들이 점유하고 있어 왕십리역 앞 상권의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이에 성동구는 2030년대까지 성동구청·성동구의회·성동경찰서 등의 공공기관을 지금의 소월아트홀 부지로 옮기고, 지금의 성동종합행정타운 부지는 업무지구로 개발하는 마스터플랜을 세웠다.
3.2. 행당2동
성동구의 행정동 행당제2동 杏堂第二洞 | Haengdang 2(i)-dong | |||
<colbgcolor=#009742><colcolor=#fff> 광역자치단체 | 서울특별시 | ||
기초자치단체 | 성동구 | ||
행정표준코드 | 3030046 | ||
관할 법정동 | 행당동(일부) | ||
하위 행정구역 | 27통 160반 | ||
면적 | 0.42㎢ | ||
인구 | 22,754명[A] | ||
인구밀도 | 54,176.19명/㎢ | ||
정치 | {{{#!wiki style="margin: -0px -11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top: -5px; margin-bottom: -11px" | 국회의원 | 중구·성동구 갑 | |
| 전현희 (3선) | ||
서울특별시의원 | 제2선거구 | |||
| 구미경 (초선) | ||
성동구의원 | 나 선거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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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센터 | 행당로9길 9 (행당동 347-1) | ||
행당제2동 주민센터 |
행당동의 서부를 관할하는 행정동으로, 행당동이라고 하면 보통 행당1동보다는 수도권 전철 5호선 행당역이 위치한 행당2동을 행당동으로 부른다. 1970년 5월 18일, 서울특별시조례 제613호에 의해 신설되었고, 1980년 7월 1일 서울특별시조례 제1413호에 의해 행당3동을 통합하여 현재에 이른다.
상업지구와 단독주택지구, 아파트 단지가 혼재한 행당1동과 달리 행당2동은 대부분 15~25층 정도 높이의 대단위 아파트 단지로 이루어져 있다. 아파트촌 특성상 밀도가 높기 때문에 행당2동은 행당1동보다 인구밀도가 높게 나오며, 행당2동은 서울특별시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행정동이다.
동의 서쪽에 있는 논골사거리를 넘어가면 금호동으로부터 왕십리역으로 가는 차량들이 고산자로로 합류하게 된다. 북쪽으로는 하왕십리동과도 접하고 남쪽으로는 응봉사거리에 접하는데, 대개 무학여자고등학교 남쪽에 있는 서울숲행당푸르지오나 신동아아파트는 행당2동 생활권이라기 보다는 응봉동 생활권에 더 가깝다.
옛날에는 도장골이라고 부르던 지역이었다. 도장골이란 옛날에 소를 도축하는 도축장이 있다고 해서 도장골이라고 붙었다는 설과, 유실수를 심는 공사가 대규모로 진행돼 많은 사람들이 이 공사를 위해 고용됐는데 이로 인해 품삯을 받으려고 도장을 찍는 행렬이 줄을 이어 도장골이라는 별칭도 붙게 됐다는 설이 있다. 도장골이라는 지명은 2000년대까지만 해도 남아서, 행당로가 도로명주소 개편 전에는 도장골길이기도 했고, 행당동 한진타운의 경우는 2000년대까지 아파트 입구에 도장골 한진타운이라고 적어 놨었다.
일제시대 때 이곳에는 아편중독자 수용소가 있었고, 재개발 직전까지는 지금의 행당대림아파트 일대에 큰 절이 있었다고 한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달동네가 들어차 있는 동네였지만, 80년대 말부터 주민들이 조합을 설립하며 빠른 속도로 재개발이 이루어졌고, 93년부터는 아예 동네 전체를 갈아엎는 규모로 금호 1-6구역[7]과 하왕 2-1구역[8]공사가 시작되었다. 이들은 2000년에 가서야 입주를 시작했는데, 산을 아예 깎고 거기에 아파트를 세우느라 난공사가 되었던 탓에 공기가 상당히 지연된 것이다.
2011년까지 진행된 재개발 사업으로 단독주택은 행당시장 인근과 무학여고 뒷골목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라지고 옛 모습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바뀌게 되었다.
이 지역 아파트의 특징은 계단식 논처럼 아파트가 세워졌다는 것이다. 본래 이 지역이 남쪽과 북쪽에 산을 두고 있는 골짜기와 같은 지형인지라 이렇게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일반분양분, 재개발분양분, 재개발임대분(SH공사 소유)이 개별 단지 내에 전부 섞여 있는 희한한 단지 구성을 보이고 있으나, 현재는 임대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중산층이 거주를 하고 있으며 이 곳에서 압구정동으로 고등학교를 많이 간다. 일반계 고등학교 중 남자고등학교가 행당동 내에 전무하기 때문에 남자 아이들은 고등학생이 되기 전에 다른 동네로 이사를 많이 가는 편이다.
[clearfix]
3.3. 사근동
자세한 내용은 사근동 문서 참고하십시오.행당동의 가장 동쪽을 이루는 지역이다. 원래는 행당1동 관할 지역으로, 1980년 7월 1일에 사근동 관할 구역으로 이관되어 법정동과 행정동의 영역이 불일치하게 되었다. 사근고개 서쪽, 경원선 동쪽을 관할하는 지역으로, 왕십리역 앞으로 원룸촌이 밀집되어 대학생 인구가 많다.
사근고개 서쪽 지역도 사근동주민센터에서 관련 업무를 처리하고 있지만, 주민센터에 갈 일이 없다면 사근고개 서쪽의 주민들은 주소를 쓸 때 행당동으로 쓰기 때문에 자신이 사근동 주민인 것도 모르고 산다. 사실상 행당동 주민이면서, 사근동 주민이라 어느 쪽으로 알고 있어도 틀린 건 아니다.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부지의 절반 가량이 이 지역에 걸쳐 있다. 행정동으로는 모든 부지가 행정동 사근동에 속하지만,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의 정문인 애지문이 법정동 행당동 영역에 있으므로 주소를 쓸 때는 행당동으로 쓴다. 예전에는 한양대학교 축제 이름이 '행당축전'이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덕수고등학교 행당분교와 행당중학교도 이곳에 있다. 경의중앙선이 지나는 선로 동쪽으로 현재 성동소방서가 있는 행당도시개발구역도 이 지역에 속한다.
번화가가 있어 변화가 빠르고 유동인구도 많은 편이다. 주점이나 펍이 밀집되어 있어 심야시간대에도 시끌벅적한 편이라 정주환경으로는 그다지 좋지는 않은 곳이다. 대부분 조용한 주택가인 본 사근동과 이렇게 분위기가 달라서 보통은 이 지역을 사근동이라고 보지 않는 편이고, 행정적으로만 사근동에 소속되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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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리
멀리 남산에서 동쪽으로 길게 뻗은 끝에 행당동이 있다. 행당2동은 말굽 형태로 산지가 감싸는 골짜기 형태이다. 하왕십리동과 접하는 북쪽 경사지는 옛날에 차현(車峴)이라고 부르던 곳인데, 두모포(지금의 옥수동) 방향으로 가는 수레가 많이 다녀 수레재라고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행당대림아파트가 그 자리에 있는데, 아예 산 하나를 통째로 깎아 만들어서 북쪽으로 경사가 져 있다.남쪽에는 대현산이 가로막아 응봉동과의 자연 경계가 된다. 행당한진타운 같은 경우는 대현산 북쪽의 급한 경사면에 지어졌기 때문에 단지 내에서 한 바퀴 빙 돌아서 가는 형태로 동을 배치했다. 또, 서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지고 동쪽으로 가면서 고도가 조금씩 낮아진다. 이 고갯길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곳이 금호동(성동구)과의 경계가 되는 논골사거리이다. 이 지역은 겨울철에 눈이 많이 오면 경사가 급한 행당로에서 자동차들이 움직일 수가 없어 금호동(성동구) 방면으로 가지 못 하는 것을 왕왕 볼 수 있다. 행당대림아파트와 행당한진타운 두 단지 사이에 있는 행당역 또한 경사로의 초입에 있는데, 심도가 꽤 깊다.
응봉동과 접하는 남쪽 경계는 응봉사거리인데, 왕십리오거리에서 성수대교 방면으로 바라보면 있는 완만한 고개다. 대현산에서 동쪽으로 뻗어 응봉사거리를 지나 서울숲한신더휴 방면으로 경사지가 있다. 행당1동은 대체로 완만한 평지이나 아기씨당 일대가 우뚝 솟아 있는 지형이다.
동쪽에 있는 행당산은 법정동 사근동과의 경계가 되는 곳으로,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가 산을 뒤덮고 있다. 덕분에 성동구 어디서나 한양대학교 건물들이 잘 보인다는 특징이 있다. 그 북쪽으로는 사근동으로 통하는 사근고개가 있다.
대현산 동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행당동을 ∩자 모양으로 흐르던 행당천이라는 하천도 있었다. 현재로서는 유로를 알기 어렵지만 소월아트홀 앞 공원과 삼부아파트 앞 아래로 복개천이 흐르고 있으며, 경원선 선로 옆으로 흐르다가 성동소방서 앞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든다. 1978년~1979년 경에 완전히 복개되었다고 한다.
5. 교통
5.1. 도로
<rowcolor=#fff> 도로명 | 주요 경유지 |
<colbgcolor=#004a8b> 고산자로 | <colbgcolor=#fff,#1f2023>성수대교 ↔ 무학여고 ↔ 왕십리역 ↔ 동대문구청 ↔ 고려대역 |
난계로 | 금호동 ↔ 논골사거리 ↔ 성동고교 ↔ 신설동역 |
마조로 | 한양대병원 ↔ 마장삼거리 |
살곶이길 | 서울시설공단 ↔ 마장축산물시장 ↔ 사근삼거리 ↔ 성동교 ↔ 한양대병원 |
왕십리로 | 성동고교 ↔ 왕십리역 ↔ 한양대역 ↔ 뚝섬역 ↔ 서울숲역 |
왕십리광장로 | 왕십리역 ↔ 행당동굴다리 |
행당로 | 신금호역 ↔ 논골사거리 ↔ 행당역 ↔ 무학여고 |
왕십리오거리에서 고산자로와 교차하는 왕십리로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을지로, 퇴계로 두 도로와 합류하고, 남으로는 성동교를 지나 성수동으로 이어진다. 성동교 남단에서는 광나루로와, 뚝섬역교차로에서는 아차산로와 교차하고, 이 두 도로는 광진구로 이어진다. 왕십리로는 종점에서 강변북로에 접속한다. 고산자로와 왕십리로 두 간선도로가 교차하는 왕십리오거리 일대는 늘 정체가 빚어지는 곳으로, 특히 동북부로부터 오는 차량들은 거의 동대문구청 앞에서부터 정체를 빚기 시작하는데, 동북부에서 강남으로 가는 통행량이 많기도 하거니와, 내부순환로 마장램프에서 고산자로로 빠지는 차량도 많기 때문이다.
행당로는 신금호역에서 무학여고앞 교차로에서 고산자로와 교차하는 지선도로인데, 행당2동의 중심도로이다. 행당역에서 왕십리역을 거치지 않고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방면으로 곧장 통하려면 직진해서 고산자로10길을 통하면 왕십리로가 나온다. 행당로와 논골사거리에서 교차하는 난계로는 금호동의 경계를 이룬다. 북으로는 신설동역, 남으로는 금호사거리에 이른다.
이외에 한양대병원 교차로에서는 마장역 방면의 마조로와 청계천을 끼고 한 바퀴 도는 살곶이길이 왕십리로와 교차한다. 주의할 점은, 한양대병원 교차로는 이름만 그렇지, 실제로는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정문 앞이다. 한양대학교병원으로 가려면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방향을 바라보고 좌회전을 해야 한다. 여기서 한대부고를 바라보고 우회전을 하면 사근동길로 들어서며, 사근고개를 넘어 사근동으로 들어갈 수 있다.
왕십리광장로는 왕십리오거리에서 왕십리역 민자역사의 진입로로, 왕십리역 민자역사를 보고 좌회전을 하면 경원선을 건너 동마중학교 앞으로 나가게 된다. 거기서 북쪽으로 쭉 올라가는 길이 마장역으로 나가는 지름길이다. 우회전을 하면 행당동굴다리 앞으로 나와서 다시 왕십리로에 접속하게 된다. 거기서 직진을 하면 고산자로2가길을 통해 응봉역 방향으로 곧장 이어진다.
청량리역과는 지하철 한 정거장 정도의 아주 멀지 않은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도로 연계가 상당히 부실하다. 왕십리와 청량리가 하나의 생활권으로 합쳐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5.2. 철도
왕십리역 | 한양대역 | 행당역 |
2호선 역은 관내에 왕십리역 외에도 한양대역이 있다. 다만 한양대역의 위치가 주거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한양대학교 학생 및 한양대학교 상권 방문객이나 덕수고등학교 학생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다.
5호선은 행당동을 동서로 관통하여 관내에 왕십리역 외에도 행당역이 있다. 당시 교통 음영지역 해소의 목적으로 천호대로에서 종로 방향으로 바로 직진할 예정이었던 당초의 계획을 틀어 행당2동과 금호동1가를 경유하도록 수정하였다. 지금도 5호선의 선형을 두고 설왕설래를 하고 있지만 행당2동 주민들로서는 멀리 왕십리역까지 나가지 않고도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일 뿐이다. 다만 1990년대의 신문 기사를 보면 5호선이 아니라 6호선이 이 지역을 지나갈 예정이었다고 한다.
행당동 남부의 응봉동 생활권인 아파트 단지들의 경우 응봉역이 거리상으로는 가장 가깝지만 경의중앙선의 악명 높은 배차간격 때문에 대부분은 버스를 타고 왕십리역에서 지하철로 환승하는 편이다.
5.3. 버스
2권역 버스들의 상당수가 왕십리역을 지나가고, 성동구 각지에서 오는 마을버스들이 대부분 왕십리역에서 회차한다. 성동구에 지하철이라곤 국철과 2호선 밖에 없던 시절에는 금호동이나 사근동, 마장동에서 버스를 타고 왕십리역에 와서 전철을 타곤 했는데, 오늘날에도 금호동이나 사근동 주민들은 버스 타고 왕십리역에서 전철로 갈아타는 경우가 많다.
2000년대까지 행당2동 쪽에는 5호선과 마을버스만 들어갔기 때문에 마을 밖으로 나가려면 5호선을 이용하거나 마을버스를 타고 왕십리역으로 나와야 했다. 그러나 241번이 신설되면서 버스를 타고 강남이나 신설동 등지로 갈 수 있게 되었다.
관내를 지나는 마을버스 중에서는 선형이 특히 굴곡진 것이 있는데, 바로 성동02번 버스다. 행당동과 응봉동 일대를 구석구석 다니기 위해서 노선을 만들다 보니 이렇게 만들어졌는데, 특히나 경사가 급한 코스로 구불구불 올라가기 때문에 서울에서도 부산의 산복도로 버스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명한 노선이기도 하다. 부산 출신 서울 거주자들은 고향이 그립거든 한 번씩 타보자.
6. 주거
6.1. 공동주택
주택명 | 건설사 | 입주 | 동수 | 세대수 |
서울숲신동아아파트 | 1995. 5. 22. | 8 | 636 | |
서울숲삼부아파트 | 삼부토건 | 1998. 7. 15. | 7 | 498 |
행당한진타운 (금호 1-6구역) | 2000. 11. 7. | 21 | 2,123 | |
행당대림아파트 (하왕 2-1구역) | 2000. 12. 30. | 35 | 3,404 | |
서울숲 한신더휴 | 2003. 12. 23. | 19 | 1,410 | |
행당브라운스톤 (행당 3구역) | 2005. 9. 1. | 3 | 208 | |
행당두산위브 (행당 4구역) | 2009. 12. 3. | 7 | 465 | |
서울숲행당푸르지오 (행당 5구역) | 2011. 5. 2. | 10 | 457 | |
서울숲 더샵 | 2014. 9. 16. | 3 | 495 | |
서울숲리버뷰자이 (행당 6구역) | 2018. 6. 22. | 7 | 1,034 | |
라체르보 푸르지오 써밋 (행당 7구역) | 입주미정 | 7 | 958 |
7. 상권
상권이 하나로 이어져 있지 않고 파편화된 경향을 보인다. 왕십리역 민자역사와 왕십리역 민자역사 뒷편으로 한양대 앞 상권, 한양대 정문 건너편, 레몬프라자 일대와 행당로를 따라 늘어선 상가들이 있다.왕십리역 민자역사에는 1층과 지하에 엔터식스, 2~3층에 이마트 왕십리점, 3층에 영풍문고, 4~5층에 CGV 왕십리, 5층에 푸드코트, 6~7층에 웨딩홀인 디노체컨벤션과 스크린골프장이 있다. 엔터식스 왕십리점은 엔터식스가 코엑스점[9] 이후 두 번째로 개점한 곳이기도 한데, 유럽풍의 고급진 스타일의 쇼핑 거리를 주력 컨셉으로 잡고 있으며, 그만큼 내부 인테리어가 깔끔하고 이국적이며 스타일리쉬한 편으로, 도쿄 오다이바에 위치했던 쇼핑몰 비너스포트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인다. 2층은 왕십리역 대합실 맞은편에 이마트가 입점했는데, 본래 성동구에는 이렇다 할 대형마트가 이마트 성수점 밖에 없어서 구민들이 주말마다 차를 끌고 성수동에 가면서 일대 도로가 다 정체될 정도였는데, 2008년에 왕십리에도 이마트가 개점하게 되어 행당동, 금호동(성동구), 옥수동, 마장동, 사근동 일대의 수요가 고스란히 왕십리역으로 옮겨 왔다. 4층에 있는 왕십리 CGV는 영화 시사회도 자주 할 정도로 규모가 꽤 큰 영화관으로, IMAX 상영관을 갖추어 서울 동북부에서 여기를 찾는 사람이 꽤 많다. 이외에도 포시즌 워터파크라는 실내 워터파크가 입점했는데, 영등포구 씨랄라에 이은 서울 내 2번째 실내 워터파크였으나, 2013년에 영업을 종료하였으며 그 자리에는 웨딩홀과 헬스장이 영업중이다. 워터파크 부속으로 딸려 있던 찜질방과 목욕탕은 한동안 유지되다가 2017년에 폐점했다.
왕십리민자역사 뒤로 넘어가면 한양대학교 재학생들을 수요층으로 하는 상권이 있다. 본래 원룸촌이었던 곳인데, 그 사이로 주점이나 펍이 많이 들어오며서 일대가 상권으로 변모했다. 바로 옆으로 한양시장이라는 재래시장이 있고 마조로 연선으로 오래된 상가 건물들이 있는데, 일대에서는 꽤 오랫동안 자리잡은 맛집들이 이곳에 모여 있다. 길 건너 한양대학교병원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약국이 많이 있다.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도 한양대 상권이 있는데, 이쪽은 조금 더 한산한 편이다. 바로 옆에 서울숲 더샵에 엔터식스 파크에비뉴가 입점해 있다.
고산자로10길 일대에는 레몬프라자와 카페들이 자리잡고 있다. 레몬프라자에는 이마트 에브리데이가 입점했고, 지하에 사우나가 있었는데, 규모가 꽤 큰 편이었다. 본래는 사우나 지하 3층에 노래방이나 PC방 같은 위락시설도 갖추고 있었으나, 언젠가부터 점점 규모를 축소하다가 현재는 최종적으로 폐업한 상태이다.
행당2동 일대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밀집한 곳인 만큼 단지 내 상가가 꽤 큰 규모로 지어졌다. 행당대림아파트의 대림리빙프라자와 한진아파트 상가가 행당로를 사이로 마주보고 서 있다. 양쪽 모두 지하에 마트가 있는데, 행당역과는 지하통로로 연결된다. 한진아파트 상가에 롯데마트 행당역점(구 GS마트)가 입점하면서 대부분의 주민들은 그리로 가는 편이다.상가 상층부에는 단지 내 학생들을 위한 학원들이 입주해 있다.
왕십리오거리에서 상왕십리역 방면으로 조금 올라가다 보면 행당시장 입구가 나온다. 행당시장은 그로부터 행당2동 깊숙한 곳까지 골목을 따라 이어진다. 현재는 음식점들이 주로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8. 교육
관내에 초등학교는 서울행당초등학교와 서울행현초등학교가 있다. 행당1동과 행당2동의 신동아아파트, 서울숲행당푸르지오 아파트의 경우는 행당초등학교로, 이외 행당2동 지역은 행현초등학교로 배정된다. 행현초등학교는 2005년에 신설된 학교인데, 본래 행당2동에는 초등학교가 없어 서울무학초등학교와 금북초등학교에서 분산 수용을 했었으나, 행현초등학교가 개교하며 통학거리는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었다.다만 행현초등학교가 아파트 단지 내에 아주 작은 자투리 부지에 세워진 만큼, 수용 가능 학생 수가 다른 학교에 비해 현저히 적어 대림아파트와 한진타운의 경우는 일부 서울금북초등학교로 배정 받은 적도 있었다. 대림아파트에서 101~108동의 경우는 행현초보다는 금북초가 훨씬 통학거리가 가깝긴 하다.
중학교는 관내에 행당중학교, 무학중학교가 있고, 인근 동마중학교, 한양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로 배정되기도 한다. 본래 행당중, 무학중, 한대부중은 모두 여중이었어서(행당여중, 무학여중, 한양여중) 남학생들은 동마중학교나 응봉동의 광희중학교 말고는 갈 곳이 없었으나, 2000년대에 와서 인근 여중들이 모두 남녀공학으로 바뀌며 이런 불편은 조금 해소되었다.
관내에 덕수고등학교(행당분교)와 무학여자고등학교를 제외하면 고등학교가 없는데, 이는 행당동 주민들의 이탈 요인이기도 하다. 인근 한양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도 여고(한양여고)였다가 남녀공학으로 전환되었으나 자사고로 지정되어 일반고로 진학하는 남학생들로서는 덕수고등학교로 진학하거나 아예 구가 다른 성동고등학교가 제일 가까워 그리로 진학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고, 심지어는 성수동의 성수고등학교나 경일고등학교, 멀리 용산구 보광동의 오산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경우도 있었다. 2017년에 금호고등학교가 개교하면서 그나마 숨통이 트였지만, 대신에 덕수고등학교가 위례신도시로 이사를 가면서 오히려 행당1동 지역의 남학생들이 통학거리가 굉장히 늘어났다.
관내 대학교는 한양대학교가 있다.
9. 출신 인물
10. 기타
- 경원선 선로 위로 지나는 과선교를 행당동굴다리라고 한다. 1968년에 지어진 것으로, 정식 명칭은 행당교지만 그 위에 있는 버스 정류장 이름도 오랫동안 행당동굴다리였기 때문에 명칭이 그렇게 굳어졌다. 지금은 해당 정류장 명칭이 '행당1동주민센터.성동소방서'로 바뀌어서 옛말이 되었다.
- 원래는 왕십리에 밀려서 행당동이라는 지명 자체는 인지도가 그렇게 높지는 않았지만, 행당족발 덕분에 조금씩 인지도가 올라가고 있다.
[1] 2024년 4월 기준[2] 수도권 전철 4호선 한대앞역은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한양대학교 에리카캠퍼스 앞이므로 이곳과는 관계 없다.[3] 대표 지번은 사근동 110[4] 이태원, 홍제원, 보제원, 전관원[A] 2024년 5월 주민등록인구[A] [7] 오늘날의 행당 한진타운[8] 오늘날의 행당대림아파트[9] 현재는 폐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