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lbgcolor=#ddd,#000><colcolor=#000,#ddd> 조르주 소렐 Georges Sorel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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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조르주 외젠 소렐 Georges Eugène Sorel |
| 출생 | 1847년 11월 2일 |
| 프랑스 왕국 셰르부르 | |
| 사망 | 1922년 8월 29일 (향년 74세) |
| 프랑스 제3공화국 불로뉴비양쿠르 | |
| 국적 | |
| 가족 | 가족관계 |
| 학력 | 에콜 폴리테크니크 |
| 직업 | 이론가 |
| 종교 | 무종교 ,(무신론), |
1. 개요
프랑스의 이론가, 철학가, 기자. 좌익 파시즘과 생디칼리슴, 공산주의에 영향을 준 인물로 유명하다.[1]젊은 시절에는 민족적, 국가주의적인 조합주의, 말년에 레닌주의로 전향하였다.
2. 생애
1847년 11월 2일 셰르부르에서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1864년 파리로 이사하였고, 1년 뒤 에꼴 폴리테크니크에 입학한다. 그로부터 4년 뒤인 1869년, 공무원이 되었다. 그는 청년기인 1889년에는 전통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출발했으나, 1894년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 그러나 곧 제2인터내셔널이 부과한 이론적 체계로부터 거리를 두게 된다.1909년에 이르러 소렐은 군주주의 진영과 연대하며, 보수 잡지 『악시옹 프랑세즈』에 기고하여 민족주의를 지지한다. 군주주의자들과 반드레퓌스파에 붙은 후, 말년에 접어들어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과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혁명을 동시에 찬미하는 입장으로 나아간다. 세월이 흐르면서, 소렐 사상의 유산은 특정한 마르크스주의와 아나키즘뿐만 아니라 파시즘의 이념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3. 사상
소렐의 사상은 생디칼리슴 그 자체였다. 사실 소렐의 사상이 파시즘이니 아나키스트니 레닌주의자니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는 오직 단 하나의 사상만을 가젔고 이 사상은 그 어떤 정치적 파업도 거부하는 생디칼리슴이였기에 소렐은 그 어느 사상에도 속할 수 없었다. 실제로 『노동조합의 사회주의적 미래』(1899)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노동계급 외부의 어떠한 지도에도 종속되지 않고, 스스로의 정치적, 법적 역량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사람들이 여기에 의문을 달고 그럼 왜 소렐은 민족주의의 길을 갔었고 왜 반유대주의자가 됐었고 심지어는 왜 무솔리니와 레닌에 큰 환호를 보냈는가?를 말할 수 있지만 이는 소렐 생디칼리슴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소렐의 생디칼리슴은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조직과 온전한 노동자들의 의지와 힘만에 의한 혁명을 핵심으로 삼았다. 소렐은 여기서 《진보의 환상》(1908)을 통해 정치권이라는 것에 대한 혐오감과, 나아가서 의회라는 것에 대한 혐오감을 통해 정치권과 노동조합간의 모든 관계의 단절을 외쳤고 그의 대표적인 저서《폭력에 대한 성찰》( Réflexions sur la violence)을 통해 그의 사상의 모든 점을 보여줬다. 소렐에 따르면, 노동조합 위에는 어떠한 사회적, 정치적 권력도 존재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 그의 의회주의 비판이 비롯된다. 생디칼리즘은 정당 체제의 대안적 반대항으로 드러나며, 동시에 모든 생산 요소로 구성된 단일한 사회적 유기체의 형성에 기여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의회에서 부르주아지와의 대화를 통해 사회적 조건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던 온건 사회주의에 맞서, 소렐은 노동조합을 정치적 실천의 주체로 상정한다. 그 임무는 폭력을 통해 국가의 공적 권력을 폐지하는 데 있다. 부르주아 체제의 최종적 보증자인 국가가 제거될 때에만 새로운 질서, 곧 “자유인들의 작업장”을 수립할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고 그는 보았다.
Es preciso que los socialistas estén convencidos de que la obra la que se consagran es una obra grave, temible y sublime; sólo con esa condición podrán aceptar los innúmeros sacrificios que requiere una propaganda que no puede procurar ni honores, ni provechos, ni siquiera satisfacciones intelectuales inmediatas. Aun cuando la idea de huelga general no lograse más resultado que el de tornar más heroica la noción socialista, sólo por ello debería ser considerada como dotada de inapreciable valor
“사회주의자들은 자신들이 헌신하는 작업이 중대하고, 두려우며, 숭고한 작업임을 확신해야 한다. 오직 그러한 조건에서만 명예도, 이익도, 심지어 즉각적인 지적 만족조차 제공하지 못하는 선동 활동이 요구하는 수많은 희생을 감내할 수 있다. 설령 총파업의 관념이 사회주의적 개념을 더욱 영웅적으로 만드는 것 외에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G. Sorel, Reflexiones sobre la violencia, op. cit., p. 199.
“사회주의자들은 자신들이 헌신하는 작업이 중대하고, 두려우며, 숭고한 작업임을 확신해야 한다. 오직 그러한 조건에서만 명예도, 이익도, 심지어 즉각적인 지적 만족조차 제공하지 못하는 선동 활동이 요구하는 수많은 희생을 감내할 수 있다. 설령 총파업의 관념이 사회주의적 개념을 더욱 영웅적으로 만드는 것 외에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G. Sorel, Reflexiones sobre la violencia, op. cit., p. 199.
소렐은 이 책에서 노동자들은 그들을 묶을 하나의 신화적 요소 즉 총파업이라는 요소를 통해 혁명을 이뤄내야한다고 말했다. 이는 곧 전체 노동자의 못해도 반 이상이 정치적 파업 없는 오직 경제적 요소에 근거한 총파업이라는 신화를 통해 혁명을 이뤄내야한다는 주장이였고 이는 노동자의 반 이상을 조직하지 못한다면 총파업 혁명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소렐은 당시 노동자들이 열광하는 사상에 들어가 참여했고 조직에 들어갔고 움직였다.
의회 사회주의가 거대한 사회 변혁을 수행하지 못하는 무능력 앞에서, 폭력은 현재 역사의 위대한 사실로 부상한다. 따라서 혁명적 사회주의의 고유한 성격은 과학주의나 합리주의적 진보주의가 아니라 폭력적 행위에 있다. 프롤레타리아 폭력은 착취받는 생산자들의 조건에 내재된 봉기의 연장이며, 총파업이라는 동원적 신화에 의해 드러나고, 자유인들의 결사로서의 사회주의를 예형한다. 동시에 폭력은 부르주아 국가 권력에 맞서는 가장 효과적인 투쟁 수단으로 드러난다.
소렐이 악시옹 프랑세즈[2]에 참여한 것은 이 시기 드레퓌스 사건에서 프랑스는 광적인 반유대주의에 빠져있던 시기였던 것이였고 그가 민족주의적 성격을 가진 것은 그 당시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패배로 프랑스 노동자는 광적인 프로이센 왕국의 대한 복수론[3]으로 가득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둘의 성격을 가진 이탈리아 파시즘[4]이 탄생하니 이를 지지했다가 레닌의 극적인 성공으로 프랑스 공산당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자 레닌주의자로 돌아선 것도 바로 그 시대의 그 사상이 노동자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소렐은 이를 토대로 대중이 점점 더 노동조합과 총파업의 신화로 묶여 사회를 혁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는 이러한 길을 겪은 것이다.
4. 여담
베니토 무솔리니는 소렐을 파시즘의 아버지라고 평하기도 했다.나치즘의 주요 사상가 알프레트 로젠베르크가 쓴 유명한 책 《20세기의 신화》의 제목에 들어가는 '신화'는 소렐이 쓴 용어인 신화인 것으로 보인다.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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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학철학도 꽤 건드리긴 했다.[2] 프랑스의 파시스트 단체로 프로토파시즘 취급을 받으며 극렬한 반유대주의, 반근대주의, 근왕적 지방분권주의, 길드 조합주의를 주장했다.[3] 실제로도 프랑스의 혁명적 생디칼리슴 노동조합인 CGT은 당시 프랑스 노동자들 절대다수가 전쟁을 원하는 것에 맞춰 우리는 조합원들에게 정치적인 이유로 무언가를 강제할 수 없으니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맞춰나가야한다는 생각으로 반전운동이 아닌 찬전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였었다.[4] 이탈리아 파시즘 또한 프랑스처럼 1차 세계대전 당시 협상국에게 배신당했다는 것에 대한 복수론, 반유대주의적 성격이 포함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