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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미로 레데스마 라모스 Ramiro Ledesma Ramo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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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db121a,#db121a><colcolor=#000,#000> 출생 | 1905년 5월 23일 |
| 스페인 왕국 사모라 알파라스 데 사야 | |
| 사망 | 1936년 10월 29일 (향년 31세) |
| 스페인 제2공화국 아라바카 | |
| 국적 | |
| 신체 | NNNcm, NNkg, 혈액형 |
| 가족 | 이름 (관계) |
| 학력 | 마드리드 대학교 (과학대학·철학대학 / 학사) |
| 종교 | 불가지론 |
| 직업 | 작가, 철학자, 정치인 |
| 소속 | 팔랑헤 |
| 서명 | |
1. 개요
스페인의 작가, 철학자, 정치인. 팔랑헤의 공동 창당자이다.2. 생애
1905년 5월 23일, 라미로 레데스마는 사모라 지방의 알파라스 데 사야라는 작은 마을의 소박한 가정에서 태어났다.[1] 그의 아버지는 시골의 초등교사였고, 그는 아버지에게서 기초 교육을 배우고 학업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이러한 교육에, 철 같은 의지와 강도 높은 학습 규율을 더한 결과, 당시에 소수에게만 허락되었던 대학 문이 열렸으며, 두 번의 공무 경쟁 시험을 통과해 마드리드 우편행정에서 행정직을 맡게 되면서 생계를 위한 소박한 직업 경력도 확보했다.그는 철학, 문학, 물리, 수학 분야의 강의를 들었으며, 이 두 분야 모두에서 눈에 띄는 성취를 이루었다. 스스로에게 엄격한 성격 덕분에 매우 오래 공부했고, 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었으며 논리정연하고 절제되고 간결하며 강렬한 문체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이 시기에 칸트, 셸러, 하이데거, 헤겔,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내면 세계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니체에 대한 그의 존경심을 품었다. 그는 스페인 지성계의 새로운 흐름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특히 미겔 데 우나무노와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저작에 매료되었다. 그는 곧 가세트의 제자이자 협력자가 되었고, 오르테가가 주도한 명망 높은 잡지 Revista de Occidente에서 여러 작업과 번역에 참여했다.
1929년과 1930년, 니체와 샤를 모라스의 영향 아래, 그리고 스페인과 유럽에서 곧 일어날 격동의 사건들을 앞두고 그의 정치적 소명이 깨어났다. 1930년 7월 Gaceta Literaria에 실린 “전위란 무엇인가?”라는 설문에 대한 그의 답변에서, 레데스마는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가톨릭, 왕당파 모두가 “오늘의 스페인이 지닌 비밀, 즉 자기긍정적이고 민족주의적이며 권력 의지를 지닌 스페인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다”고 단언했다. 같은 해 그는 나치 독일로 연구 여행을 떠나 히틀러 운동의 준군사 조직들과 그들의 격렬한 반(反)마르크스 투쟁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1931년 2월, 불과 스물다섯의 나이에 그는 정치에 뛰어들며 유명한 국가의 정복 정치 선언(Manifiesto político de La Conquista del Estado)을 발표했다. 같은 해 3월, 그는 정기간행물 La Conquista del Estado의 첫 호를 발행했으나, 지속적 정부 탄압 때문에 곧 폐간했다.
1932년 11월, 국가의 정복(La Conquista del Estado) 그룹은 오네시모 레돈도의 카스티야 히스파니즘 행동위원회(Juntas Castellanas de Actuación Hispánica)와 합병되었고, 이 합병을 통해 JONS(Juntas de Ofensiva Nacional Sindicalista. 국민생디칼리슴 공세평의회)를 만들었다. JONS 창설 이후 그는 조직을 스페인 전역에 확산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레데스마의 노력은 무엇보다도 젊은 마르크스주의자와 아나키스트 활동가들을 민족적 이념으로 끌어오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
“그는 노동조합 대중의 민족화를 강박적으로 추구했다. 그리고 CNT의 폭력적이고 뿌리 뽑힌 아나키스트 대중에게 조국의 의미, 스페인에 대한 자애적 사랑이라는 민족적 내용을 부여하기 위해 필사적이면서도 장엄한 노력을 기울였다.”
기예른 살라야
기예른 살라야
1934년 2월, JONS는 호세 안토니오 프리모 데 리베라가 이끄는 새로운 국민혁명적 영감의 운동인 스페인 팔랑헤와 합병되었다. 새 조직은 FE de las JONS라는 이름을 채택하였으며, 회원증 번호 1번을 받은 라미로는 루이스 데 알다, 호세 안토니오와 함께 운동의 집단 지도부를 구성한 최초의 3인 지휘부의 일원이 되었다. 하지만, 리베라가 갈수록 지주, 자본가와 연합하는 행태를 보이자 부르주아 냄새나는 사람과 함께 못하겠다며 당을 탈퇴하며 JONS를 빼내려했다가 실패했다. 그의 진단에 따르면 팔랑헤 내부에는 혁명정신의 경직, 수동성과 무활동성, 불모의 의회정치에의 침잠, 대중의 관심과 진정한 정치적 소명에서 단절된 지식인들의 증가, 지나친 우경화 등의 문제가 나타나고 있었다.
1936년 7월 11일, 봉기가 일어나기 일주일 전, 그는 사실상 마드리드에서 홀로 남아 있었다. 경제적 어려움과 그 발행을 반대하던 마르크스주의 노동조합의 압력을 극복하고, 그는 새 정기간행물 Nuestra Revolución의 첫 호를 발행했다. 후안 아파리시오는 이를 “스페인 혁명의 마지막 예고”라고 표현했다. 두 번째 호는 7월 18일 발행될 예정이었으나, 발간되지 못했다. 바로 그날 스페인 내전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마드리드는 이미 적색 민병대의 통제 하에 있었으며, 그때부터 반동과 파시즘 혐의를 받는 모든 이들에 대한 잔혹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레데스마는 마르크스주의 무리들이 자신을 위험한 적으로 간주하며 뒤쫓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도피하거나 숨기를 거부했다. 8월 1일, 그는 형과 함께 마드리드의 한 거리를 걷다가 민병대 순찰대에게 체포되었다. 같은 해 10월 29일, 라미로 데 마에즈투와 함께 악명 높은 파세오(paseo)로 끌려가던 중 “나를 죽일 곳은 내가 정한다. 너희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외치며 그들의 무기 하나를 빼앗으려 하다가 민병대의 근거리 총격으로 살해당했다.
파리에 머무르던 그의 스승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이 비보를 듣고 “그들은 한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지성을 죽였다”고 말했다.
3. 활동
라미로 레데스마 라모스는 스페인의 파시즘이란 것을 처음 만들어 스페인식 국민생디칼리슴이란 것을 스페인에서 처음 창조한 인물이다. 국가의 정복~JONS 시기의 스페인 국민생디칼리슴은 직접민주주의와 자본가-기술공-일반노동자을 포함하는 노동조합의 노동조합 자가관리를 통한 노동조합국(Syndicat State)의 건설을 통한 근대적 스페인의 회복과 전체주의 스페인의 건설이였다.4. 여담
[1] Jiménez Cortacans, A. (2013). El fracàs d'una utopia. Comunicació política dels feixismes a Espanya durant la Segona República, 1931-1936. Universitat de Girona. http://hdl.handle.net/10803/124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