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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노 겐/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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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로 음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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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命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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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아라가키 유이]] ||

1. 개요2. 인물 관련
2.1. 취향 / 특이사항2.2. 인상 / 성격2.3. 생애 일화 / 행보2.4. 연애 및 결혼
2.4.1. 결혼 전2.4.2. 아라가키 유이와의 결혼2.4.3. 결혼 후
3. 음악
3.1. 본인 관련3.2. 감상 관련
4. 취미 및 미디어
4.1. 게임 / PC4.2. 만화/애니메이션4.3. 드라마 / 영화 / 연기 / 콩트4.4. 인터넷 / SNS4.5. 요리 / 책 / 라디오4.6. 그 외
5. 한국에서의 별명6. 한국 관련7. 여러 인물들과의 일화 및 접점8. 이야깃거리
8.1. 블랙뮤직과 J-POP
8.1.1. 옐로우 뮤직과 변화
8.2. 팬들의 SNS 계정 관련 발언8.3. 과거의 과오에 대한 재기록과 변화8.4. 멀티 엔터테이너로서의 관련 일화8.5. 호시노 아이와의 유사점?

[clearfix]

1. 개요

호시노 겐에 대한 여담을 정리한 문서.

2. 인물 관련

2.1. 취향 / 특이사항

2.2. 인상 / 성격

집단따돌림, 공황장애, 불안장애, 우울장애, 부족한 외모와 몸매를 통한 자신감 상실, 자신의 생각과 논리들이 여러 사람들로부터 잘 이해받지 못하는 것[6], 자신의 옆에 있는 어둠을 어릴 때부터 인지하고 인정하고 직시하는 그의 모습, 염세주의, 처음부터 스카우트도 되지 않아 여러 곳을 직접 뛰어다녔어야하는 초기 시절, 어릴 때부터 의존할 수 있는 부분이 적어 업계에서 사기를 당하지 않도록 항상 긴장 및 경계하고 결국 'NO WORK NO MONEY'가 머릿속에 가득찼던 날들, 생활의 열악함, 증오, 분노,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고독/ 소외/ "하나만 해"/ 스트레스, '호시노 겐은 재능이 없다', '연예계에서 못 버틸 것 같다'라는 계속되는 이야기들, 원한, 인간 혐오,

어느 한 곳에 속하지 못하는 멀티 엔터테이너의 고질적인 문제, 조증, 악착같이 일하고 고통과 고뇌가 많았던 이른 나이에 자신이 원하지 않게 걸린 치사율이 높은 지주막하출혈과 두 번의 수술, 그 직후 투병생활 동안의 고통과 정신의 피폐, 외모지상주의에 기반한 특정 대중들의 얼굴 비하, 여전히 자유와 자연스러움을 갈망하지만 스타가 되고 난 후 끊임없이 프레임화되고 비교평가당하는 자신의 모습, 책임감과 부담감, 머릿속에 끊임없이 계속되는 소리와 음악과 말, 그의 말을 통한 대중들의 오해,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악플들과 안티, 허무주의, 억울한 찌라시
}}}그것들을 견뎌내거나 짊어지면서 '힘들고 추악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7]의 주체성과 생명력을 북돋고 싶은 것'을 여러가지 창작활동으로 이야기하고 있다.[8] 실제로 그의 곡들 중에서는 '염세주의허무주의의 한가운데에서 창조회복탄력성위버멘쉬를 목놓아 외치는' 곡들이 꽤 많은 편이다. 그리고 그가 겪은 모든 것들은 (여기 위키에는 직접적으로 적긴 했지만) 미세하게 그림자만 풍길 뿐이지 표면적으로 다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주변인물들의 도움들 또한 크게 작용했겠지만.
나 또한 그에게 분노 에피소드를 두 배 분량으로 되돌려 줄 만큼 업무상 여러 불합리한 문제들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 두 사람에게는 암묵의 규칙이 있다. '심각한 분노 에피소드일수록 웃기고 재미나게'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분노를 토해 내는 행위란 그걸 받아들이는 상대의 마음을 크게 동요시킬 만큼 부정적인 에너지로 넘쳐 난다. 하지만 가만히 담아 두기만 하면 마음이 점점 불안정해지고 몸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되도록 즐겁고 재미있게 토해 낼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생명의 차창에서
그러니까 힘들었던 것들을 말하는 것도 중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보다는 '어떻게 그 이후 즐겁게 살았을까'라는 것... (중략)

제가 일들을 하는 의미라는 건 어쩌면 없을지 모르지만, 지금 즐겁거나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계속하고 싶어요. 즐거움을 갱신하는 것이, 100% 괴롭고 절망적이었던 그날들의 제게 할 수 있는 격려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포기하지 않길 잘했다'라면서요. (2021) #
  • 일이라고 해서 뭔가를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사석에서와 같은 나 자신'으로 있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 인상 때문에[9] 사랑에 연이 없는 모태솔로 역할을 2번이나 주연으로 했지만, 실제로는 육식계이며, 자칭 ‘변태아저씨’라고 한다. 야동을 좋아한다고 밝히는 건 물론 야동 취향까지 스스럼없이 이야기했다. 현재는 시대 분위기가 점점 바뀌고, 결혼을 하니 본인의 라디오를 제외하고 방송에서 그런 쪽으로 이야기하는 건 급격하게 줄어든 모양. 본인의 라디오에서 시모네타(음담패설)도 종종 하는데, 그렇다고 기분 나쁜 의미의 변태는 아니고 한국 연예인에 비유하면 신동엽이 치는 드립과 비슷한 느낌이다. (일본 배우 후지이 미나의 말에 따르면 신동엽의 섹드립은 일본 공영방송 수준이라고 한다.) 직접적인 성표현을 피하고, 문학적인 비유표현을 사용하면서 선을 넘지 않는 시모네타를 한다.

2.3. 생애 일화 / 행보

  • 외동이다. 그러나 태어났어야 할 여동생이 있었고, 결국 태어나지 못했다. 그 여동생을 생각해서 호시노 겐이 만든 곡이 있다. 제목은 兄妹(남매). 그렇다보니 '그 아이의 몫까지 2인분의 몫으로 살아있다고 생각하면,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라는 호시노 겐의 곡 해설을 포함해 곡의 가사가 상당히 슬프다.
  • 사춘기에 눈에 띄는 반항이나 행실 불량이 없어 부모님이 많이 걱정해 "담배나 좀 피우지 그래? 오토바이를 타 볼까?"라고 권유했으나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런 사춘기 때의 특징이 밖이 아니라 마음 안 쪽의 정신에서 일어난 것 같다고.
  • 사춘기때 자신의 얼굴을 거울로 보고 "아, 이상한 얼굴이구나.", 옷을 입고 "아, 이상한 옷이구나." 그런 식으로 자신감을 가질 수 없었다고 한다.
  • 학업이랑 교우관계 및 따돌림 관련해서 적응을 하지 못했던 거나[10], 공황장애, 불안장애, 우울장애 등이 계속되어 학교를 나가지 않았을 무렵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의 의지를 포함하여 부모님의 교육관이나 지지가 꽤 컸었던 모양. 실제로 가장 어두웠던 시기에 부모님과 함께 있었던 시간이 제일 행복했었다고 공언하고 있다.
  • 본인이 생각하기를 자신은 남들처럼 회사원이 되어서 하는 보통의 직장생활로 가는 미래는 보이지 않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고 한다.
  • 부모님한테 너는 얼굴도 안 좋으니 남들보다 3배는 노력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 내향형 인간이었고 낯가림이 심했으며 교우관계 및 대인관계에 적응하기 힘들었으나, 점점 시간이 지나며 그대로 안주하는 것은 '저는 의사소통과 대인관계에 있어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이니 그쪽에서 조심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의사소통과 대인관계에 있어 노력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 20대 때는 높은 곳에서 위태위태하게 떨어질 것 같아도 무섭지 않았는데 짊어질 게 점점 생기고 가정이 생기고 지킬 게 생기니까 고소공포증스러운게 생겨났다고 한다.
  • 25살 때 일적으로도 사생활적으로도 최악인 일을 겪었거나 그런 상황이었어서 죽고 싶을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 때 쓴 곡이 ばらばら(뿔뿔이)라고. 적어도 마음안에서만큼은 굉장히 긍정적인 노래라고 한다. 호시노 겐은 2023년 라이트하우스에서 "이런 장르에서 지금 내가 이 곡을 능가하는 걸 다시 만들기는 힘들 것 같다"라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
  • 에세이에 '지주막하출혈 당시가 1억배는 더 힘들었다'고 말할 정도로 지주막하출혈 투병 생활 당시는 엄청 힘들었던 모양. 지주막하출혈에 걸리기 직전에 일종의 조증 상태였다고도 밝혔다.
  • 호시노 겐이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코이로 한창 뮤지션과 배우 모두 대히트 및 사회현상의 한가운데에 있을 때, 단독 라이브 공연 이후 식당 하나를 전세로 빌린 뒤풀이 술자리에서 끝까지 남아 스태프 전원 한 명 한 명에게 악수나 포옹을 하며 감사인사를 남기고 배웅했다는 일화가 있다. 스태프 일동은 한창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호시노 겐의 자세에 감격했다고. #
  • 항문거근증후군[11]을 앓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서 에세이를 쓴 것이 있는데, '모니카병(モニカ病)'이라고 개인적으로 이름을 지었다. 이 에세이가 상당히 반향이 커서, 일본에서는 항문거근증후군을 일반적으로 모니카병(モニカ病)이라고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여담이지만, 아즈미 신이치로 아나운서도 이 병을 앓은 적이 있는데, 호시노 겐의 에세이가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 매년 새해나 연말에 성묘(墓参)하고 묘를 청소하러 가는 듯하다. #
  • 이사를 하면 새로운 환경의 자극으로 곡이 생긴다고 한다.
  • 혼자서 한숨을 쉬거나 약한 소리를 할 때 끝음에 R을 추가하면 우울해지지 않는 리빙포인트를 찾았다고 한다. # 아 힘들얼ㄹㄹㄺ
  • 2022년 7월 코로나19에 감염됐다.# 이후 2022년 8월 완치됐다.
  • 2023년 9월에 2024년 2월달에 해야될 일이 정해졌는데 2023년 10월에 그 일이 엎어져서 그 대신 2024년 2월 오도리의 도쿄 돔 공연 게스트로 나오고 슬로우 트레인을 찍었다고 한다.

2.4. 연애 및 결혼

2.4.1. 결혼 전

  • 초식남, 모태솔로 배역을 다수 맡기도 했으나 실제로는 자칭 육식계이며 연애에 있어 적극적이라고 한다.
  • 수학여행을 학생들이 기획하던 고등학교였어서 해외도 갈 수 있었는데, 원래 수학여행에 흥미도 없지만 좋아하던 여자애가 호주로 수학여행을 가겠다고 신청서를 넣어서 같이 신청서를 넣었다고 한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고 있는 도중에 그 여자애가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듣고 '진짜로?'하면서 좀 충격받았다고 한다.
  • 호시노 겐은 살면서 먼저 고백받은 적은 없고 항상 자기가 먼저 고백했다고 한다. (아라가키 유이와의 결혼 또한 호시노 겐이 먼저 결혼해달라고 고백했다.)
    인기를 쉽게 얻으려면 선천적인 재능이 있어야 한다. (중략) 인기에 대해 고찰하고 탐구해서 인기박사라고 자칭할 정도가 된 내가 단언하기를, 나는 그런 능력이 없다. 팬층이 있다는 것과 인기가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르다. (중략)


    이것을 읽고 있는 여러분, 당신은 고백을 받은 적이 있는가? 나는 없다. 남자로 보이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고백은 받은 적이 있었지만 사랑의 고백은 아직 없다. 전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내가 먼저 필사적으로 고백했다. 타율은 지금 약 3할 정도다. 패배의 연속으로부터, 어떻게든 이 성적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은 피나는 노력의 결과다. "나를 흔든 사람들, 언젠가 후회하게 해줄게! 나는 언젠가 반드시 멋져질테니까!"라는 연료에 날마다 수행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이 세상에는 "마음에 드는 사람이 어느샌가 나를 좋아하게 되어있고, 고백을 받아버렸어, 나 콤플렉스 있는데 말이야.. 이런 나라도 좋은 걸까?"라고 말할 수 있는 정말 부러운 인종이 있다.


    콤플렉스가 있다는 부분은 괜찮다. 인기 있는 사람들에게도 마음의 어둠이 있다. 오랜 연구로 알게 된 것은 인기 있는 사람도 평범하게 고민하고 우울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부럽다. 같은 콤플렉스투성이지만 인기까지 있으니까 말이다. (2011)



호시노 겐: 사랑을 할 때는 (중략) "좋아해요!"라고 바로 말해버려요. 참지 않는다고나 할까요. 으아아! 하고 좋아져버려서 '좋아해요'라고 말하고 차이면, '어쩔 수 없네...' 하고 바로 포기하는 느낌이에요.

MC: 그쪽에서 먼저 좋아한다고 말하면요? 지금 많이 있겠지만요.

호시노 겐: 음... 뭔가 듣고 싶네요. 고백이라던가 받고 싶잖아요? 받아본 적이 없어서 해줬으면 해요. 누군가! #
  • 같은 싱어송라이터인 aiko와 4~5년(2007~2012)간 연애했다는 소문이 있다. 당시 그녀와 장기간 연애했던 일반인 남자친구가 사실은 당시 aiko보다 대중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12] 호시노 겐이었다는 것이다. 2011년 두 사람이 다정히 있는 파파라치 사진[13]이 찍힌 적이 있으며, 2012년 호시노 겐이 지주막하출혈로 쓰러져 투병 중일 때도 병원에서 aiko가 극진히 간호하는 모습이 여러 번 목격되었다고 한다. 물론 둘의 연애 의혹에 대해 당사자들이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일본에서는 aiko와의 연애는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이후 영화 지옥이 뭐가 나빠에서 함께 출연한 니카이도 후미와의 열애설이 불거진 적이 있으나, 사진도 없는 단순 찌라시에 가깝고, 본인이나 니카이도 후미가 인정한 적은 없다.
  • 2016년 10월 말 라디오에서 '10년 정도 후의 장래희망은?'이라는 질문에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바라건대 아이가 있고, 크고 못난 개와 살고 싶다라고 대답했다.
  • 한창 대중적인 대히트를 쳤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으로 크게 떴지만, 인간 호시노 겐은 '사랑'이 점점 두려워졌었다고 한다.
    {{{#!folding [ 생명의 차창에서2 스포일러 펼치기 · 접기 ]
미디어에서도 거리에서도 끊임없이 「恋(사랑)」이 흐르고, 그것이 당연한 상황으로서 정착해 가는 모습은, 기존의 J-POP이라고 하는 면역을 파괴해, 세상이라고 하는 육체에 새로운 상재균을 만들어 낸 것 같았다.

다음해인 2017년. 팝적인 활동이 두드러져, 「양」적인 존재가 되어감과 동시에, 「음」적인 나 자신이 부풀어 오르게 되었다.
일에서는 즐겁게 웃는 얼굴로 있을 수 있어도 집에 가서 혼자 있으면 무기력해지고, 정신을 차려보면 허무감에 범벅이 되어 머리를 감싸쥐고, 무엇을 해도 슬픔밖에 느끼지 않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것은 날마다 천천히, 조금씩 증식하는 바이러스처럼, 나의 몸과 정신을 갉아 먹어 갔다.

먼저 말을 걸 수 있게 된 것이 공포심이 되어, 거리에서는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도록 얼굴을 가리고 도망 다녔고, 베란다에 나가는 것조차 무서워서, 맑은 날에도 커튼을 닫게 되었다.
나의 악곡과는 달리 사랑과는 거리가 멀어져 여자를 설득하는 것도, 여자가 있는 자리에 가는 것도 두려워졌다.

알 수 없는 타이밍에 눈물이 나게 되고, 눈앞에 물이 담긴 컵이 있으면 벽에 던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게 되고, 누군가와 이야기하다 보면 지금 이 사람에게 침을 뱉거나 하면 모든 것이 끝날까 망상하며 속으로 고개를 윙윙거렸다. 그리고 그 고통들을 극복하기 전에 팬들에게 누설하거나 누군가에게 토로하는 것은 매우 촌스럽다는 생각에, 감정을 작은 마음속에 집어넣게 되면서 부정적인 증상은 더욱 심화되었다. (중략)

아무리 노력해도 항상 웃는 얼굴만 있을 수는 없다. 그때의 나는, 그런 괴로움들을 극복할 수 있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생명의 차창에서 2}}}
  • 결혼 상대에게 요구하는 것으로서 '욕설을 하지 않을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2.4.2. 아라가키 유이와의 결혼

<tablealign=center><tablewidth=560>파일:호시노 겐과 아라가키 유이.jpg
2021년 5월 19일 배우 아라가키 유이와의 결혼을 발표했다 #
배우란 힘든 직업이다.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남이 쓴 대사를 읊는다. (중략) 인기를 얻으면 주변사람들이 떠받들어 주면서 누가 주의를 주지도 않는다. 그런 환경 속에서 다른 경쟁 배우들과 밑도 끝도 없는 의자 뺏기 게임을 치열하게 되풀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정신상태로 '보통'의 감각을 지닐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기가 올라갈수록 정신은 고립되고, 분주함에 비례하여 에고 또한 비대해진다. 안 그려려고 노력해도 방자해지고 주변을 살피지 않게 된다. (중략) 점점 더 보통에서 멀어진다.

10대 때부터 활약해 온 그녀에게는 틀림없이 상상을 초월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으리라. 아마도 처음부터 지금과 같지는 않았을 터다. 그런 와중에 그녀는 일터에서 성취할 수 있는 성실함을 찾았고, 더 나아가 웬만한 배우들은 도달하지 못하는 '보통'이라는 상태를 스스로 손에 넣었다. (중략)

그래서 여기에 몰래 글로 칭찬하려고 한다. 부디 그녀가 크랭크업까지 이 글을 읽지 않기를.

당신은 정말로 근사한 보통 사람이야.
생명의 차창에서
아라가키 유이와는 2016년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에 함께 출연했으며, 이후 2020년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SP를 촬영할 때 재회한 것을 계기로 촬영을 모두 마친 후 결혼을 전제로 교제를 시작했다고 한다. 결혼 발표 회견은 별도로 하지 않았고, 결혼식이나 피로연 일정도 현재는 미정이다. 아직 입적은 하지 않았으며, 향후 시기를 보고 입적할 예정이라고 한다.#
호시노 겐 결혼 발표 전문
[ 펼치기 · 접기 ]
항상 응원해 주시는 여러분께

안녕하세요 호시노 겐입니다.
이렇게 세상이 어려운 시기에 사사로운 일로 대단히 송구스럽습니다만,
이번에 저 호시노 겐은 아라가키 유이 씨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이런 식으로 조심스럽게 보고를 드렸던 게 병으로 쓰러져서 활동을 중단했을 때로 기억합니다.
이번엔 그 당시 걱정을 끼쳤던 분들을 포함해 항상 지지해 주시는 여러분께 이런 보고를 하게 되어 너무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합니다.

앞으로는 둘이서 힘을 합쳐서,
평온한 생활을 살아가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음악 활동이나 배우로서의 활동, 문필 등 여러 가지 일에 대해서 지금까지 이상으로, 하나하나 소중히 마주 보고 싶습니다.

항상 따뜻한 응원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가까이에서, 멀리서, 항상 지지해 주시는 여러분,
응원해 주시는 여러분이 더 즐거워하실 수 있도록,
앞으로도 즐거운 일들을 계속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2021년 5월 19일
호시노 겐
호시노 겐, 아라가키 유이 연명 친필 코멘트 전문
[ 펼치기 · 접기 ]
관계자 여러분

신록의 계절, 여러분이 하시는 일이 번창하시길 기원합니다.
평소 각별히 배려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 호시노 겐과 아라가키 유이는 이번에 결혼하게 되었음을 보고드립니다.

앞으로도 서로 지지하며 풍부한 시간을 쌓아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숙한 두 사람이긴 합니다만, 따뜻하게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지도 편달을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감염 확대가 하루라도 빨리 종식되길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2021년 5월 19일
호시노 겐 아라가키 유이
2021년 11월 호시노 겐이 본인의 에세이에서 올해 결혼하고 가정을 가졌다고 언급했으며, 아내와 같은 집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쯤 있었던 에피소드를 밝혔다.#1 #2

호시노 겐은 자신의 에세이에서, 喜劇(희극)(2022)의 가사 일부는 아내인 아라가키 유이 및 그들의 반려견과 있었던 행복했던 순간의 일화를 가사로 담아낸 곡이기도 하다고 밝혔다.[14]

2023년 4월, 아라가키 유이가 메자마시 테레비에서 호시노 겐을 언급할 때 '남편'이라는 호칭을 써서 화제가 되었었던 적이 있다.[15] # 호시노 겐도 2023년 라이트하우스에서 아라가키 유이를 '아내'라는 호칭을 써서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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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 결혼 후

일본을 강타한 히트 드라마에서의 인연이 현실에서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까지 크나큰 화제가 되어 여러 이야깃거리나 일화들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나 호시노 겐의 에세이나 라디오에서 아내와의 일화가 종종 나오고 있다.

3. 음악

3.1. 본인 관련

파일:F19231D6-4043-4F93-B0C5-455ED6266BF7.png파일:085F2DC8-5FB5-4131-B3E7-3106719E540A.png파일:38893905-16AD-4C13-801E-7A43E1002DB6.png }}}

3.2. 감상 관련



(참고)

4. 취미 및 미디어

4.1. 게임 / PC

좌우간 숨는 걸 좋아한다. 적 거점을 한 군데 공략할 때, 일단은 적병 사이에 숨어서 천천히 시간을 벌고, 몰래 뒤로 접근한 뒤 상대방 겨드랑이 밑으로 양팔을 넣어 목덜미를 꽉 조른 다음 꼼짝 못하게 한다. 나이프로 위협하면서 다른 적병의 눈에 띄지 않는 곳까지 이동시킨 뒤, 거기에서 신문하고 자원 아이템과 포로, 기밀문서 등의 타깃이 있는 장소를 실토받는다. 그러면서 다른 병사의 위치마저 털어놓게 하고 기절시킨 다음에 풀톤을 회수한다.

만약 총을 쏘면 적 전체가 발포음을 감지하고 단숨에 경계 태세에 돌입하며, 적군의 경비도 늘어나서 총은 잘 쓰지 않는다. 소음기를 단 마취총으로 병사를 잠재우는 전형적인 공략법을 좋아한다.

그렇게 조용히 시간을 들여 적 진지에서 병사를 한 사람씩 회수한다. 적병의 수가 줄어드는 순간, 통신 기기를 망가트리면 그 파괴음 탓에 경계가 삼엄해지지만 어차피 바깥에 있는 병사에게 지원 요청을 못한다. "이상 발생! 지원을 부탁한다!"라고 애타게 부른들 응답이 없어서 그저 어쩔 줄 모르고 황망해하는 병사도 볼 수 있다.

그런 적들 한 명 한 명에게 몰래 접근해서 등 뒤에 총을 들이대고 손을 들게 한 다음 신문하고 정보를 캐내고 기절시키고 회수한다. 진지에서 적이 점점 사라지는 모습은 적병 입장에서는 호러 영화지만, 잠복해 있는 쪽에서는 유쾌하기 그지 없다.

최후의 병사가 남고 아무도 도와주러 올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성대하게 소리를 내면서 그 녀석 주변으로 총을 갈기거나 지면과 벽에 미리 설치해 둔 폭약을 폭파시켜서 깜짝 놀라게 하고 로켓포로 근처 건물을 공격하며 즐긴다.

"으악!"하고 당황해서 엉뚱한 방향으로 반격하거나 수차레 무전으로 도움을 요청해보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다. 그렇게 우왕좌왕하며 뛰어다니는 병사가 가여우면서도 썩 귀엽다. 그런 광경을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서 싱글벙글 바라본다. 뭐랄까, 다소 악취미적으로 게임을 즐기게 된다.

그마저도 싫증이 나면 천천히 적의 배후로 다가가서 기절시키고 회수한다. 적진에서 병사가 죄다 사라지면 '제압'이라는 글자가 화면에 뜬다. 적병을 한 명도 죽이지 않고 전부 회수하였을 때의 쾌감이란. 물론 더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도 얼마든지 있겠지만 숨을 죽이고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들키지 않도록 행동하는 공략법이 어린 시절에 처음 즐겼었던 숨바꼭질의 두근거림과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생명의 차창에서}}}

4.2. 만화/애니메이션

4.3. 드라마 / 영화 / 연기 / 콩트

4.4. 인터넷 / SNS

4.5. 요리 / 책 / 라디오

4.6. 그 외

5. 한국에서의 별명

6. 한국 관련

호시노 겐이 한 것과 안 한 것 (트위터)
이제는 진짜 내한만 안 하는 호시노 겐의 한국 접점 (디시)

우스갯소리로 '한국과 관련된 다른 건 다 했는데 내한만 안 한다'는 뉘앙스의 글이 여러 커뮤니티에 가끔 올라온다. 팬들은 나라불문하고 잘 챙겨주지만, 한국을 좋아한다거나 K-POP을 좋아한다고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는, 친한 성향의 연예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방면으로 접점이 많아졌기 때문. 오죽하면 '호시노 겐 주변인들은 다 내한했는데 호시노 겐만 안 한다'[31]는 글도 올라온다.
겐상,

저는 사실 일본어를 잘 못합니다. 이 책도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만들고 있는데요. 그래서 수없이 듣던 음악의 가사를 번역을 찾아보고서야 뒤늦게 이해하기도 하고, 이해했던 가사도 보면서 듣지 않으면 금세 다시 잊기도 해요. 번역을 보면서 듣는다 할지라도 가사에 사용하신 표현의 정확한 느낌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 언어가 같은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모든 것들이 저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셈입니다.

그래서 꾸준히 저를 괴롭혔던 질문이 있습니다. 저는 부족한 감상을 하고 있는 걸까요? 겐상의 언어와 문화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겐상의 음악을 정말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지금은 제 나름의 결론이 있는데요. 어쩌면 저는 많은 부분을 놓치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 언어나 문화를 알아야 더 정확하고 깊은 이해가 가능한 부분들이 분명 존재하니까요. 그러나 언어는 부족할지라도 감상은 부족하지 않다고 믿습니다. 제가 놓치는 부분만큼, 저를 채워주는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완벽히 같은 감상이란 존재할 수 없고, 저의 감상은 저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나의 언어로 나의 나라에서 살아온 나의 삶에 겐상이 더해졌을 때 존재하는 특수한 감각과 경험이 있습니다. 예컨대 가사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음악을 듣다가 어느 날 찾아본 가사에 모든 게 맞아떨어지면서 전율이 느껴지는 건 일본어를 할 줄 아는 분들은, 심지어 겐상조차도 할 수 없는 경험이 아닐까요.

이 책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저처럼 일본어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부터 일본에서 살고 계신 분까지 꼭 일본에 대한 게 아니더라도 이들은 모두 다른 삶을 살아왔습니다. 한국인이라는 공통점 하에 모였지만 우리는 동질적이지 않습니다. 겐상도 아시겠지만 외국인은 특히 타자화되기 쉬운 존재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책에 참여한 사람들이 '외국인 팬들'이라는 하나의 덩어리보다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개별의 사람들로 비치길 바랍니다. 물론 국적이 안겨주는 공통점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내부에 있는 저보다는 책을 읽는 겐상의 눈에 더 잘 보일 수도 있겠네요.

이들은 팬으로서도 겐상을 좋아하게 된 계기부터 가장 좋아하는 곡, 좋아하는 드라마의 장면, 좋아하는 이유나 방식까지 모두 달라요. 그리고 이건 아마 겐상이 개개인의 고유성을 존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겁니다. '남들이 싫어하는 걸 좋아해도 좋고, 남들이 좋아하는 걸 좋아해도 좋다'고 말해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있으니까요.

연예인과 팬의 관계는 특수합니다. 나는 그를 알고, 그는 나를 모르고, 나에게 그 사람은 한 명이고, 그에게 팬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겐상을 떠올릴 때면 저는 오히려 저의 고유성을 느끼게 됩니다. 기분 좋은 이상함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우열 없는 각자의 삶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겐상을 좋아하고 응원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는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과 '나'이기 때문에 특수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을 모두 담으려 했습니다. 부디 모두 전해지길 바랍니다.

먼 곳도 이어져 있어요!}}}
한 사람의 집합체로 집단이나 조직은 형성된다. 아무리 결속력이 강한 수단이라도 얼굴도 목소리도 사고방식도 모두 다르다. 설사 북한 퍼레이드처럼 아무리 짜여져 보여도 하나가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인 '많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남녀도 하나가 될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둘이다.

집단 속에 오래 있으면 자연스레 '일치단결해야 한다'라고 느낀다. 그 집단이 진취적이면 진취적일 수록 연대감을 중시하며 '전원이 한 방향을 향해야 한다'는 사상으로 기운다. 전원을 통솔하는 리더가 생기고 인원수가 늘어나면, 대인원을 관리하는 규칙이 생기고 그 집단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틀'이 완성된다. 그리고 그 틀을 조금이라도 벗어나거나 삐져 나오면 따돌림을 당하고, 거기서 쫓겨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서둘러 그 틀 속에 몸을 던져 집단과 함께 '하나'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것이 일본 사회에서 생겨난 집단의 기본적인 '화목(和)'의 기본 구조이다.

그러나 역시 그건 답답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모두가 제각각이라고 해도 뭐가 어떤가. (중략)

정말 우수한 집단이라는 것은 아마 '하나로 있는 것을 지속시킬 수 있는' 사람들보다 '모두가 다른 것을 생각하면서 지속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7. 여러 인물들과의 일화 및 접점

파일:시치노스케 호시노 겐.jpg}}} ||
파일:호시노 겐 요네즈 켄시.jpg}}} ||<width=500>
파일:호시노 겐 요네즈 켄시2.jpg
||

8. 이야깃거리

8.1. 블랙뮤직과 J-POP

{{{#!wiki style="margin: -20px -10px -17px"<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2CB05>
여러분은 호시노 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그는 캐치함을 구실로 한 변태 뮤지션, 말하자면 센스 덩어리다. 일본과 서양을 불문하고 여러가지 음악을 흡수해, 그것을 제대로 팝에 담아내는 뮤지션. 누구나 하고 싶어도 잘 할 수 없는 것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뮤지션은 대부분의 경우 일반인보다 더 많은 음악을 듣고 있다. 재즈, 클래식, 펑크, 일렉트로니카, 민족음악 등등. 그리고 그걸 그대로 아웃풋하고, 결과적으로 팔리지 않는 패턴이 대부분이다. 일본과 해외는 음악적 토양이 전혀 다르고, 대다수의 뮤지션들은, '해외에서는 저렇게 센스 있는 음악이 팔리고 있는데 왜 일본에서는 아직까지 이해되지 않는 것일까?'라고 대체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 재즈나 클래식, 일렉트로니카 등을 일본에서 이해되는 팝에 담아내면 된다. 그런데 그걸 대중적으로 히트시키기는 정말 어렵다. 그러나 호시노 겐은 그것을 계속 해 버린다. 일본인 누구나 마음을 여는 멜로디를 만들어 내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을 흥분시키는 어레인지를 넣어 오는 것이다.

호시노 겐의 최강 시대가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되었던 참에 출현한 것이 요네즈 켄시. 여기서부터는 이들의 신곡에서 눈을 뗄 수 없다. (후략)

}}}||
{{{#!wiki style="margin: -20px -10px -16px"<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2CB05>
POP VIRUS 앨범은 "'음악적으로 실험적인 노래'는 대중이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단순한 변명으로 만들었다.

}}}||
'블랙뮤직을 흡수하거나 차용하거나 해서 고유의 음악적 정체성으로 구축하는, 일본 비주류 및 인디음악씬에서 왕성하게 불고 있던 움직임'에 호시노 겐 또한 그 일원이었다. 그보다 더 뛰어난 음악성을 가진 음악작품들은 엄청나게 차고 넘치지만, 호시노 겐은 '옐로우 뮤직'이라는 개념을 앞세워, 기존 블랙뮤직에서 그만의 필터를 통과시켜 독자적인 해석을 가미한 동시에 일본의 대중음악 및 상업음악적 색채까지 적절하게 추가하여 일본의 일반 대중들과 매니아적인 음악팬들을 모두 고려한 최대공약수적인 음악을 개척해나갔다.

2011년 싱글 1집의 수록곡인 湯気(수증기)를 시작으로, 2013년 싱글 6집의 곡인 地獄でなぜ悪い(지옥이 뭐가 나빠)까지 단순히 '취미'에 비슷하게 도전해오다가, 지주막하출혈 완치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 그의 음악 생활인 싱글 7집 Crazy Crazy/桜の森부터 정규 4집 YELLOW DANCER를 거쳐 정규 5집 Pop Virus까지의[47] 그 결과물들은 그의 목표를 보여주며 꽤나 성공적이었다. 이윽고 당대 일본의 아이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중적 네임드 팝 아이콘이 되었으며, 여럿 후배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주거나 샤라웃을 받는 뮤지션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는 현재, 이전까지 자신이 내세웠던 '옐로우 뮤직'이라는 단어가 상당히 편협한 시각이었다는 것에 대한 후회를 하고 있지만, 이 단어와는 별개로 실제로 이 당시 그의 작업물들은 상업적 대중 음악씬은 물론이고, 인디 음악씬을 포함하여 설명할 때도 종종 사용되는 예시이다.
cero의 「Obscure Ride」와 호시노 겐의 「YELLOW DANCER」, 이 2편은 양자의 디스코그래피에 있어서 분명한 전환점이며, 블랙뮤직의 흡수에 크게 방향을 튼 기념비적인 작품 중 하나라고 하는 공통점을 가진다. (중략)

호시노 겐의 『YELLOW DANCER』와 더불어 cero의 『Obscure Ride』의 선행곡의 제목이 'Yellow Magus'였다는 것은 매우 시사적인 동시성 현상이지만, 옐로우라고 의식적으로 자칭함으로써 블랙뮤직에 대한 거리감을 강제로 해방시킨 것, 또 그 대담함과는 달리 사운드 창조를 쿨하게 마주한 것, 양자의 그러한 도전이야말로 돌파구가 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일본 팝 음악의 지평을 개척해 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Obscure Ride』와 『YELLOW DANCER』에 깃든 반J-POP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악곡 전개나 사운드 메이킹, 전자에 감도는 도시·도쿄의 느낌이나, 후자에 달라붙는 가요의 맛이 동거하는 모습은, 지극히 앰비밸런스[48]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2023) 연이어 출현하는 카오틱하고 팝적인 소리를 내는 젊은 음악가들의 삐뚤어진 작품을 접하면 이 당시 생겨난 이질적인 작품군이 상기되는 것이다. #
호시노 겐이 POP VIRUS(2018)로 그린 '팝'은 혁신적인 것이다. 타이틀 곡인 'Pop Virus'에서 적은 '새기는 한 박의 영원을'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번 작품은 비트가 음악을 형성한다는 것에 특히 의식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블랙 뮤직을 독자적인 해석으로 자신의 음악에 도입하면서, '옐로우 뮤직'을 만들어 나간다고 하는 호시노 겐의 대처. 그 블랙뮤직 자체가 애초에 시대와 함께 변해가는 것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옐로우 뮤직' 또한 진화해가는 것을 강렬하게 느끼게 하는 앨범이기도 하다. 그리고 호시노 겐은 당연한 듯 힙합 비트를 민감하고도 자연스럽게 팝과 댄스 뮤직에 도입해 왔다. (중략)

시대를 비추며 변화를 거듭해 온 비트의 트렌드. 그러나 거기에는 변함없는 블랙 뮤직의 유전자가 이어져 오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전세계에 계속 확산되는 '팝'의 '바이러스'라고도 할 수 있다. POP VIRUS는 그러한 마음이 담긴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순수종보다 잡종이 생명력이 강하도록, 「YELLOW DANCER」를 거쳐 탐욕스럽게 하이브리드의 사운드를 요구해 가는 것으로, 이번에 호시노 겐이 확산하려고 하고 있는 바이러스는 앞으로도 또 변이, 진화, 강화해 나갈 것이 약속되어 있는 소리다. #

8.1.1. 옐로우 뮤직과 변화

호시노 겐이 2015년에 이야기했'었'던 '옐로우 뮤직'이라는 단어는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렇게 정의된다. #
해외의 음악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단순한 흉내나 그 질감의 추구 뿐만이 아니라, 일본인으로서의 세계관을 실현한 팝
핫토리 료이치와 나카무라 하치다이 같은 작곡가들이 만든 일본의 가요곡, 그리고 거기에 영향을 받은 다양한 유행가에는, 특히 재즈와 블루스 같은 블랙 뮤직의 영향을 꼭꼭 씹어 받아들이되 흉내만 내지 않고 일본 음악으로서 새롭게 재탄생시킨 놀라운 역사가 깃들어 있다.

내 부모와 조부모, 오늘날의 일본인과 그 선조가 아무렇지도 않게 즐겨 온 일본 팝의 유전자 속에는 애초부터 흑인 음악의 감수성이 숨쉬고 있었고, 거기서 드러나는 일본 정서에도 흑인 문화의 바람이 불어 들었다. 나는 내가 사는 이 나라의 음악, 옐로우 뮤직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호시노 겐의 에세이, 생명의 차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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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뮤지션들이 블랙뮤직을 정체성 구축의 수단으로 활용한 것과 달리, 그는 일본 대중음악의 탄생 과정에서 필수 불가결했던 'J-POP의 DNA 속 블랙뮤직'을 알리는데 집중했다. (중략) 선조 때부터 무의식 중에 내재되어 온 그 '융합의 그루브'를 '옐로우 뮤직'이라는 이름으로 다시금 소환한 셈이다.

- 황선업 대중음악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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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경애하는 호소노 하루오미를 의식적으로 계승하여, "옐로우 뮤직"이라고 하는 컨셉을 내걸어 왔다. 인종적 의미도 포함한 "화이트와 블랙"을 둘러싼 대립 속에 제3항으로서 "옐로우"을 끼워 넣어 다른 문화를 도입하려고 할 때 생기는 왜곡을 (그는)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일본인이 외래의 음악을 만든다」는 것의 비틀림에 다시 눈을 돌려, 다소 망각되고 있던 "안과 밖"을 둘러싼 물음을 재차 시작하는 이 컨셉은, 주의해야 할 점도 있지만, 의의가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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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R&B, 소울, 힙합 등 블랙 뮤직으로부터 받은 영향을 J-POP에 녹여내어, 「옐로우 뮤직」이라는 장르를 개척해나가고 있다고 한다. 블랙 뮤직을 그대로 재현하고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필터를 거쳐서, 일본인에게 친숙한 음악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옐로우 뮤직' 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독자적으로 창출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고.
Q. YELLOW DANCER를 통해 옐로우 뮤직이라는 큰 지표가 생기면서 음악 대처 방식에 변화가 있나요?

A. '옐로우 뮤직'이라는, 제가 마음에 그리고 있는 장르나 언어를 좀 더 침투시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네요. 저는 원래 블랙뮤직을 좋아하는데 그런데 블랙뮤직을 따지는 것만으로는 그게 우리 음악이 될 수 없다는 난제가 마음 속에 계속 있어서요.

잘 흉내내고 잘 따라하면 칭찬을 받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그 와중에 우리 음악이 뭘까 생각했을 때, 여러 나라 음악을 흡수하면서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필터'를 통한 음악, 옐로 뮤직이라는 것을 생각했어요. '恋(코이)' 그리고, 'Continues'처럼 더 이상 설명을 하지 않아도 신체 감각으로 옐로우 뮤직으로 딱 맞는 곡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6년 호시노 겐이 말하는 "옐로우 뮤직"의 새로운 전개
솔로 초기에도 자신의 음악에 블랙뮤직을 융합하는 그런 움직임은 있었으나 싱글 B면에 수록하는 등 실험적이었다면, 「Week end」, 「SUN」, 「時よ(시간이여)」 등 주옥같은 명곡이 수록된 정규 4집 「YELLOW DANCER」(2015)에서 그 생각을 직접적으로 내세워 본격적으로 전개했다. 그리고 그의 접근법은 사운드뿐만이 아니라 가사에서까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소울이나 R&B등의 가사는, 황홀한 그 음악과는 달리, 실은 자주 들어보면 노골적으로 X스를 부르고 있거나 해서, 일본인이 가사를 읽으면 어이없어[49] 웃을 수밖에 없게 되어 버리는 일이 많다. 그래서 호시노는 본고장의 블랙뮤직과 마찬가지로, Snow Men의 내용은 X스에 관한 것이지만, 미국의 양식을 그대로 직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인의 미의식에도 맞게 은유의 형태로 문학적으로 써본 것이라고 한다.

"뭐랄까 관능적인 일본 문학 있잖아요. 그 느낌을 좀 디스코 클래식이라고 할까, 소울뮤직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서요." #
이후 대히트한 9번째 싱글 「恋(코이)」(2016)에서는 자신이 말하는 '옐로우 뮤직'이 무엇인가를 대중에게 각인시키고 펼쳐보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흐름은 「ドラえもん(도라에몽)」(2018), 「アイデア(아이디어)」(2018)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한편 오리엔탈리즘을 작위적이지 않은 이국적인 감성으로 표현하는 것은 호소노 하루오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

Pop Virus 이후로 그는 '옐로우 뮤직'이라는 단어가 편협한 시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직접적으로는 쓰고 있지 않고 있으며, 그 이후로 여러 도전을 모색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2019년 애플 뮤직의 라디오 Beats 1의 Pop Virus Radio에서 이야기했듯이, 그가 악곡을 만들 때의 본질적인 가치관은 변하지 않았다.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과 저의 영혼을 공명시켜 저의 음악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나의 문화, 나의 역사 속에서 나의 음악을 만들어 가고 싶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
Pop Virus Radio에서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즈음. 나는 '옐로우 뮤직'이라는 말을 하나의 음악 장르로서 성립시킬 수 없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만드는 음악도 그 장르라고 널리 알리려고 했다. (중략)

하지만 일본에서 살고 있는 일본인인 내가 만드는 음악을 옐로우 뮤직이라고 칭할 경우, 다른 아시아계의 인식이 완전히 누락되는 데다가, 애초에 나의 음악은 블랙뮤직을 중심으로 일본을 포함하여 세계 여러 다양한 인종이 탄생시킨 음악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옐로우 뮤직 이라고 아시아계가 탄생시킨 음악인 것처럼만 말해 버리는 것은, 문화의 도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작품과 그 디자인에 옐로우라는 단어나 색을 사용해 아시아계인 것을 표현하거나 자긍심을 가지는 것과, 자신의 음악을 옐로우 뮤직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인종이 만들어 온 음악문화를 하나의 인종의 음악인 것처럼 장르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원래 모욕적으로 사용되어 온 말이기 때문에, 아시아계를 '옐로우'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신중함도 있는 편이 좋겠지.

알지 못했다. 그건 시대의 변화를 운운할 게 아니라, 그저 내가 무지하고 어리석었던 것 뿐이다.
2022년 6월호 다빈치 연재 에세이 #
현재까지도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은 계속 현재 시대상을 반영하여 다양한 음악 장르를 본인만의 다양한 접근 방식으로 재해석하거나 계승하고 있다.

===# 타 인물들의 평가/일화 #===
호소노 하루오미: 질문이 왔네요, "호시노 씨의 악곡을 처음 들었을 때, 지금(2017년)의 호시노 씨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습니까?" 아니, 할 수 없었습니다(웃음). 아직 호시노 군이 20대에, SAKEROCK을 하고 있었을 당시였나요?

SAKEROCK은 상당히 장난스럽고 재미있었죠. 하지만 지금의 느낌은 상상하지 못했어요, 수염을 기르거나 정장을 입거나 하면서 저를 오마주하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지금의 호시노 군의 악곡을 들으면 "내 영향은 별로 없잖아"라고 생각하지만(웃음).

호시노부시(星野節)라고 해야 하나. (중략) 가슴이 뭉클한 멜로디 라인이랑 코드가 있거든요. 가사도 그렇구요. 게다가 가사가 없는 인스트루멘탈 곡을 만들면 또 확 바뀌기 때문에 가능성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모타운이나 펑크를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얼마 전에도, (저랑 이야기할 때) 디안젤로를 이야기하면서 흥분하고 있었으니까요(웃음).
호소노 하루오미의 올 나이트 닛폰 (2017. 11.)
요네즈 켄시: '이 반짝임은 내 것이 아니라 세상의 빛을 비추고 있을 뿐이야 / 어울리지 않는 자존심은 너에게 줄게 받아서 버려줄래' 저는 이 가사가 정말 좋아요. 매우 동질감을 느껴요. 겐 씨와 제가 완전 같은지는 잘 모르겠고, 어떤 점에서는 매우 다른 부분도 있겠지만, 뭐랄까 저도 팝송을 하는 사람으로서 어느 날 갑자기 유명해졌고, 그 안에서 이런저런 감정을 느껴요. 감사함도 느끼고, 음악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날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대체 이게 뭘까 싶은 회의감이나 조금 식어버린 관점을 가진 자신도 함께 있어요. 때문에 그 가사를 듣고, 저의 그런 감정들에 대한 공감을 느꼈어요. 이 노래가 마치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을 정도로 마음에 훅 들어왔어요.

(좋아하는 곡) 많이 있어요. 地獄でなぜ悪い(지옥이 뭐가 나빠)도 엄청 좋아해요. (중략) 그 곡이 그런 아픈 일들을 겪고 나온 곡이라는 것에 공감하지만 소프트락적으로는 매우 소란스러운 소리잖아요. '빰빰빰'하면서 경쾌하게 시작되고 노래 부르는데 제일 처음 등장하는 말이 '병실!' 와 이거는 최고다 싶었어요. (중략)

그 가사도 좋네요. '그저 지옥을 나아가는 자만이 슬픈 기억을 이겨내' 뭔가 이것보다 긍정적인 메세지는 없다는 느낌이 들어요. '지옥이 뭐가 나빠'라는 곡의 전체적인 가사만 보면 부정적인 우울함에 빠질지도 모르겠지만, 그야말로 하나의 단어와 구가 긍정적으로 작용되게 하는 어떤 것이 아닐지...그런 혼신의 힘을 겐 씨가 매우 진중하게 목표로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후략)
호시노 겐의 올 나이트 닛폰 (2020.09.01)
R-指定: 대본이 말이죠.. "호시노 겐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되어 있었어요...[50] 좀 놀랐습니다. 위험했어... 호시노 겐 씨(さん)이니까!

(중략)

DJ松永: 그렇지만, 확실히 호시노 씨는 그 멀티 플레이어의 상태고, 그마저도 1명 수준이 아니에요.

R-指定: 나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까지의 호시노 겐씨의 활약? 이제 그건 혼자서는 무리야.

DJ松永:노래 하시고, 춤추기도 했고, 악기도 여러 가지 연주할 수 있으시고..

R-指定: 배우도 하시고 계시고.

DJ松永: 문필가로서도 유명하시고.. (후략)
Creepy Nuts의 올 나이트 닛폰 0(제로) (2020. 11. 10)
이쿠타 리라: 호시노 씨의 라디오에 게스트로 출연한 후에 직접 말씀드렸습니다만, 좀 부끄럽지만요. 제가 고3일 당시, 2018년 12월 말에 호시노 겐 씨가 'POP VIRUS'라는 앨범을 내셨잖아요? 세뱃돈을 부모님께 받고, 그 세뱃돈으로 발매 한 달 뒤에 CD를 사러 숍에 갔다는 에피소드가 있거든요. 그때 저는 아르바이트 같은 것도 안 하고 음악 활동과 학교 생활밖에 안 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주는 그 세뱃돈이 귀하다고 할까... 뭐, 스스로 말하면 그렇지만. 세뱃돈의 그 봉투 그대로 가져가서 스튜디오 라이브 음원 같은 것 전부 들어 있는 것을 "이거 주세요!"라고 말했어요(웃음).

CD가 5000엔 정도였나? 그래서 거스름돈 절반이 돌아왔고.'이건 소중히 쓰자'고 생각해서요. 그래서 그 Pop Virus CD는 지금도 공부책상의 특등석에 두고 있어요. 그 일화를 직접, 본인께 전할 수 있다니.
YOASOBI의 올 나이트 닛폰 X (2021.06.22.)
아침부터 영화나 드라마 촬영, 장시간 레코딩을 하고 나서 닛폰방송에 온다. 옆에서 봐도 완전히 지쳐 있다. 그런데도 방송에 임하고, 즐기고, 오히려 기운을 차리고 돌아가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그때 내 자신이 얼마나 편하게 응석 부리고 있는지를 통감한다. 호시노 씨의 앞에서 바쁘다는 등의 말은 절대로 할 수 없다. (중략)

일이 바빠져서 대충 하게 될 때, 언제나 호시노 씨의 얼굴이 떠오른다. 더 바쁜데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다.
이시이 히카루(전 올 나이트 닛폰 디렉터)의 에세이
그 즈음의 나는 MIU404라는 드라마로 호시노 겐이라는 뮤지션(겸, 배우 겸, 작가)을 알게 되어 그야말로 '미친 듯이' 덕질을 하고 있었는데, 그 해 가을 서양 고전 공포 영화인 <큐브>를 일본에서 리메이크한 버전의 OST를 그가 맡게 되었다. 나는 예술을 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만 같은 천재 뮤지션이 공포 영화 OST를 도대체 어떤 식으로 만들었을 지 궁금해서 돌아버릴 지경이었고, 목이 빠져라 발매일을 기다리다 발매가 되자마자 허겁지겁 들은 후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얼마나 무서울까? 얼마나 살벌할까?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해서 무슨 악기들을 썼을까? 나의 예상을 모두 빗겨가는 음악이었다. 무섭지도, 기괴하지도, 살벌하지도 않았다. 아니, 공포 영화 음악을 이렇게 만든다고? 내가 여태 했던 생각은 다 뭐지?

호시노 겐의 <Cube>라는 음악은 어쩌면 그간의 내 생각들이 편협했을 수도 있겠구나,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해주었다. 내가 매해 여름마다 만들고 있는 음악은 발매 두 번째만에 '호러송'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게 되었는데, 이 연례행사가 더 멀리가기 전에 잠깐 멈춰 점검을 할 수 있게 되어 다행스러웠다. 호시노 겐, 그는 음악의 신이 분명하다. '얘, 그렇게 만드는 것도 좋지만 이걸 한번 들어보렴'하고 불쌍한 어린양의 귓가에 나직이 도움을 속삭이려 지상에 내려온 것일 거다.

그래서 세 번째 호러송을 작업할 때는 이 호러송이라는 배꼽이 배보다 커지지 않게 조심했다. 더 많이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고민을 많이 덜어내는 방법으로.
- 안예은, 안 일한 하루(2022)
후지하라 사토시: 홍백가합전에서 호시노 겐님을 처음 만나서, 저희 CD를 드리고 이야기를 잠깐 나누고..

나라자키 마코토: 저는 긴장해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마츠우라 마사키: (저는) 엄청 긴장해서... 학창시절부터 팬이었고, 노래방에 가서도 (그의 곡을) 노래했고, 그의 존재는 저에게 있어서 엄청난 신 같은 존재기 때문에요.

오오이즈미 요: 다가가기 힘든 그런 아우라 같은 거랑 다르지 않나요? 후쿠야마 마사하루처럼 그런 것도 아니고.

후지하라 사토시: 그 분위기는.. 엄청나게 유명한 음악이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건 그 사람밖에 할 수 없어요. 그래서 무서워요.
Official髭男dism이 출연한 2022년 6월 23일자 SONGS
아노: 아까 저는 처음으로 호시노 겐 님을 뵙고 인사를 드렸는데요, (중략) 굉장히 좋은 사람이고, 저런 예쁜 눈은 본 적이 없어요. 아마 한 번도 체포되지 않았을 거에요!
아노의 올 나이트 닛폰 0(제로) (2023. 04)
UMI: 호시노 겐씨는 마음속 깊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만날 때마다 '이런 사람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진짜 착하세요. 저뿐만이 아니라 남들 케어도 되게 해줘요. 음악도 사람을 위해서 만드는 마음이 강하다는 걸 느끼고 이기심이 없어요. '사람을 위해서'라는 것을 굉장히 느끼죠. 썸머소닉 리허설 때도 모두를 챙겨주시고, 공연이 끝난 후에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해 주었어요. 저도 그런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
와카바야시 마사야스: 호시노 씨의 그 첫 번째 허밍? 나올 때 그거. 엘리베이터 같은 걸로. (중략) 뭔가 '노래를 잘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게 맞나? 뭔가 음양사 같았어. 무대의 공기를 순식간에 바꿨다고 해야 되나? 노래 잘 부른다고.

카스가 토시아키: 끌린다고 해야 되나? 단순히 음정이 맞다거나 목소리가 예쁘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노래를 잘한다' 말고 다른 표현이 뭘까.. (중략)

와카바야시 마사야스: 내가 호시노 씨 등장 전에 디제잉을 했는데, (호시노 씨의 등장 이후로) 공짱이 나한테 '드디어 프로가 나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라고. (중략) 어쩔 수 없어(웃음). 호시노 씨는 프로 중의 프로니까. 그래서 처음에 호시노 씨가 올라오며 등장할 때 "오랜만이야 도쿄 돔!"이라고 말했었잖아? 그거 굉장했지. 그 한마디! 뭐 호시노 씨, 라디오에서 "돔적으로는 역시 선배니까"라고 스스로 말했으니까(웃음).

카스가 토시아키: 5대 돔?

와카바야시 마사야스: 5대 돔 완판남이니까(웃음). #
imase: 학창시절부터 뭔가 긴장되는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호시노 겐님의 곡을 듣고 힘을 얻고 있었습니다. (중략) 사운드 면에서는 복잡한 코드 진행에도 난해하게 들리지 않고 팝으로 승화하고 있는 것이 정말 멋지시고 존경스러워요. 또한 아날로그 신스와 드럼의 프로그래밍과 생음의 균형 등 미세한 소리의 제작도 매우 매력적이에요. 가성과 중성을 덧대는 방법이나 신스의 음색은 매우 참고하고 있습니다.
YELLOW MAGAZINE+ 5명의 게스트가 기대하는 호시노 겐의 2024년

8.2. 팬들의 SNS 계정 관련 발언

무단 전재 계정 관련 라디오 발언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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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소식이 있습니다. 무려 이 '호시노 겐의 올 나이트 닛폰' 공식 인스타그램을 시작합니다! (박수). 지금까지 프로그램 공식으로는 홈페이지뿐이었지만, 이번 주부터 처음으로 인스타그램을 시작합니다. (중략)


자, 여기서...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말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요. 실은 말이죠, 벌써 인스타그램에 이 「호시노 겐의 올 나이트 닛폰」의 공식 홈페이지의 블로그의 글과 사진을 무단으로 전재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게 말이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지워 주세요. '인스타그램 하자' 이런 얘기를 하다가, "근데 사실은 이런 사람이 있거든요."라고 해서 보니까 정말 그렇고, "아, 슬프네"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근데 이런 건 말이야 뭐라고 해야 해?"라고 말이 나와서...

음, 듣고 계시면 계정을 삭제해 주셨으면 합니다. 만약 어느 팬 분이 팬으로서, 예를 들면 "모두가 보기 쉽게..."라든가, 그런 식으로 생각해 주고 있는, 그 친절심 같은 것은, 굉장히 고맙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굉장히 민폐라서요. 왜냐하면 홈페이지를 만드는 사람이나 올려주는 사람이나 물론 이 홈페이지를 만드는 데도 디자이너가 있고, 그걸 만든 사람들이 있어서, 사람들이 이 홈페이지에 보러 와 주니까 열심히 만들려고 만들어 준 사람이 있어서.

그래서 그 올린 사진도 우리 매니저라든지, 이 프로그램의 스태프들이 열심히 찍고, 많은 것들 중에 열심히 골라줬어요. 그래서 그 글도, 테라 씨[51]가 시간을 들여 써주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만약에 그걸 친절심으로 하고 있는 거라면 그게 아니에요. 이 공식 홈페이지를 보는 걸 다들 목적으로 해주고 있으니까. 그러기 위해서 공식 트위터에서 '홈페이지에 올라왔어요!' 라며 공지하고 있으니까요. (중략) 최근 들어, 또 점점 체급을 늘리고 있는 것 같아서요. 곤란하다,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그러니까 하지 마세요. 그리고, 왠지, 잘은 모르겠지만, 여러가지를 보면 '자기가 뭔가를 하고 있다'라고 생각이 든다거나 '뭔가를 자기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고 해야 되나, '뭔가 타인의 표현의 일단에 관련되어있는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생각하거든요.

「무단 전재는 그만두세요」, 「All Rights Reserved」라고 하는 느낌으로, 「권리는 여기에 있어요」처럼 표시가 되어 있는데, 일부러 그런 것을 한다는 것은 역시 뭔가, 자신이 뭔가 도움이 되고 싶다든가, 뭔가의 표현의 일단에 관여하고 싶다는 것이라고....모르겠지만, 아마 그럴 거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근데 그게 언어도단이죠. 남의 훈수로 스모를 해서[52]는 안 되죠. 그 행동으로 뭔가 자기가 직접 표현한 마음이 든다면, 그것은 정말 큰 실수이고,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생각은 여러분의 인생에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아요. 역시 무언가를 표현하거나 무언가를 세상에 전달하는 것은, 무언가 자신의 필터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건 제가 창작활동을 통해서 굉장히 실감나는 일이기 때문에. 그걸 게을리하면 아무 성장도 없고. 뭐, 그렇게까지 스토익하게 뭔가를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는 물론 생각합니다만. 하지만, 그렇게 있어 주는 것이 즐겁다는 것이라고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삭제해달라는 느낌인 거예요.

(중략)

아까는 이 「호시노 겐의 올 나이트 닛폰」의 블로그의 내용을 사진과... 미안해요. 이걸 자꾸 말하니까 안쓰럽네요. 뭐 좀 무단 전재를 했다는 게 있어서. '그건 안 돼' 이런 식으로 얘기한 거죠. 그렇지만, 왜 안 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냐면, 뭐랄까 분명 안되지 않아? 거기에 관해서는. 왜냐하면 '무단 전재 금지입니다'라고 해서 'All Rights Reserved'처럼 물론 쓰여 있고, 공식 홈페이지 블로그에 보러 오는 것이 중요해서 그 흐름을 우리가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라서요.

무단 전재한 Instagram에서 볼 수 있으면 홈페이지에서는 보지 않게 되어 버리기 때문이죠. 그래도 제가 말한 이후에 바로 삭제해 주셨기 때문에, 그건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 훌륭합니다. 근데 아마 듣기에 엄청 힘들었을 거예요. 물론 저는 괴롭히려고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나는 이렇게 생각해'라는 걸 똑바로 얘기했더니, 그걸 받아들여줘서 해줬으니까. 그건 정말 고맙고 기쁜 일이에요. 그래서 감사해요.
SNS 프로필 사진 관련 라디오 발언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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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이 왔네요. 후지사와시의 분. "공식 인스타그램 바로 팔로우 했어요.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저는 겐씨의 팬으로, 아이콘(프로필 사진)에 겐 씨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아 왔네, 이 질문이... "겐 씨 의 사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겐 씨는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겐 씨가 싫다면 그만두려고 합니다. 마음을 들려주세요."


그 아이콘 그거 엄청 애매하잖아요. 왠지 회색지대 같은 느낌이랄까. 저는 평소에 트위터 같은 걸 전혀 안 보거든요. 작품을 냈을 때 소감을 항상 '모집합니다' 하고 (중략) 해시태그로 모집하고 그래서 보내준 걸 매니저분이 저에게 다 보여줘요. (중략) '호시노 씨에게 보여드리겠습니다' 같은 느낌의 내용이 들어있다는 것은 저에게 역시 직접적으로 오는 것이니까. 그건 굉장히, 역시 뭔가 전해지는 게 있는 거죠. 그래서, 굉장히 기뻐요.

하지만, 그 때에 역시 나의 아이콘을 붙여주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서는... 싫어요. 죄송합니다. 왜냐하면, 원래 안 되는 거죠(웃음). 다들 하니까 이제 자리잡은 것 같은데. 보통, 예를 들어, TV 화면을 찍고, 그것을 아이콘으로 만들거나, 스스로 올리거나 하는 것은 사실은 안 되는 일이에요. 법률적으로도요.

그리고, 잡지를 찍어서 올린다든가. 우리가 낸 트위터 이미지 같은 걸 또 자기가 올린다든가 하는 건 사실 안 되는 거에요. 근데, '그래도 홍보가 되니까 좋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그것은 홍보가 되는 범위와 안 되는 범위가 있죠. 자기만족의 범위와 홍보가 되는 범위는 역시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앨범의 재킷 사진 같은 거면 좋을 것 같은데, 아티스트 사진[53] 이런 거 아이콘 하면 내 아이콘 아니야? 그건 그냥 헷갈리는 거죠.

제 팬분들은 아마 팬분들과 연결될 때 같은 아이콘이 아마 연결도 잘 될 테고, 그런 가운데 동료의식이나 친구 같은 게 분명히 생겨 있을 테니까. 그리고 이 일에 관해서는 저, 지금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정말 아무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100%, 아무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좋은 기회니까. 지금 말이죠, 딱 좋으니까 말하면, 저는 그건 정말 죄송하지만, 싫어요.

왜냐하면 역시 헷갈리는 거죠. 그리고 제 계정이라는 게 있는 거니까. 그리고 그 매니저가 보여주는 감상을 볼 때, 역시 내 아이콘이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요.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는 것은 손해라고 생각해요. (중략)

만약에 내가 트위터나 SNS를 한다면, 그 사람의 인간을 알고 싶을 거에요. (중략) 전용 계정을 만들어서 의사 표명을 위해서 내 아이콘을 달고 그런 것 같은데, 그래도 역시 그 속에는 인간을 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건 내 이기주의인가? 저번에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아이콘으로 그 사람의 인간이 보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왜 이 사람은 이런 아이콘으로 만드는 걸까? 이 사람의 인간이 꽤나 거기서 보이는 거 아니야?" 내가 보기엔 그거 엄청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어떤 사람이 이런 걸 써요.「재미있네」 「굉장히 좋네」 「애달프네」 「즐겁네」 「슬프네」라든가... 그것이 '팬이니까'라고 하는 이유만으로 전부 저의 아이콘... 뭐, 그것도 즐겁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런데 그건 정말 아깝다고 나는 생각하니까 싫다는 생각이 들어요. '안 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저에 대한 일러스트를 그리기도 하고 그런 사람도 있는거 아냐? 그것은 역시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내 사진을 가지고 와서 그냥 잘라내는 건 표현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사진과 함께 접한 작품이나 인품이나 이런 것들을 글로 써서 열심히 표현한다든가, 그림을 그린다거나, 그런 건 그 사람의 표현이라고 나는 생각하니까 자꾸 했으면 좋겠고 저는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뭐랄까 '역시 아이콘에 꼭 호시노 씨의 얼굴을 올리고 싶어!'라고 생각하면 아무리 서툴러도 그림을 그리면 돼요. 그건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당신만의 표현이에요. 그것은 이제 정말 거지같은 인터넷이라고 하는 사회 속에서 유일하게, 인간성을 낼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이나 아이콘 같은 것을, 그 거지같은 인터넷 파도에 휩쓸리지 않게, 되도록이면 그렇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뭔가 좋은 기회니까 말할 수 있었네요. 정말 고맙습니다. 왜 다 나쁜 건 아니니까. 만약 앞으로 그렇게 해주신다면 정말 저는 기쁠 것 같습니다.
이 회차의 라디오에서의 발언 이후, 라디오를 듣던 다수의 일본팬들은 호시노 겐의 발언에 호응해주고, SNS에서의 아이콘(프로필 사진)을 바꾸기 시작했다. 호시노 겐은 라디오에서 말하며 팬들이 본인의 부정적인 말과 강한 워딩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싫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되게 이해를 해주고 받아주고, 괴로웠던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받아줘서, 그 상황들을 보고 굉장히 '팬들과의 인연' 같은 걸 느껴 개인실에서 울었다고 한다.

그러나 호시노 겐은 대중적 연예인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이 발언은 호시노 겐 본인의 팬들 뿐만이 아니라 일본 인터넷 상으로도 퍼질만큼 상당히 파급력이 컸다. 일본 여러 인터넷 기사에서 호시노 겐의 발언이 기사화되고, 다수의 네티즌들은 여러 입장 차이를 보였다.

결국 입장들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으며, 원론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사안이기에 여러 갑론을박은 자연스레 사그라들게 되었고, 호시노 겐은 이후 라디오에서 이에 관련된 자신의 입장을 내놓았다.
호시노 겐: 메일이 왔네요. "저도 포함해서 겐씨의 생생한 말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마음이 전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그 말이 또 인터넷에서 기사화되어 다른 뉘앙스로 전해지고 있는 부분도 조금 있어서, 그것이 유감입니다. 기사만으로는 절대 전달되지 않고, 읽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사뿐만 아니라 생생한 말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도 응원하겠습니다"라고 보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죠. 음, 아무래도 거기는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해요. '꽤 그 일에 대해 굉장히 괴로웠다'는 메일이었습니다만, 하지만 뭔가 그 사건이라든지, 나머지는 예를 들면 보도... 연예 뉴스에서도 뭐든지 그렇지만, 실제의 일, 순간등을 모르는 기사들이 많기도 합니다.

이번에 저는 라디오에서 말했고, 그것을 뉴스와 기사로 만들어 주었다고 하는 것 중에서, 얼마나 다른가?라고 하는 것이 그 장소에 따라서, 그 문장을 쓰는 분에 따라서 다르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굉장히 알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거짓말은 하고 있지 않지만, 말을 집약시킴으로써 뭔가 굉장히 엄격하다든가, 차가운 뉘앙스에도 빠져 버리는 듯한 문장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목도 포함, 문장도 포함.

8.3. 과거의 과오에 대한 재기록과 변화

호시노 겐은 2013년 지주막하출혈 투병생활 당시 본인이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느끼며 투병생활을 억지로 버텼던 것들을 가능한 한 솔직하게 여과없이 에세이로 작성했고, 그 에세이는 '되살아나는 변태'로 편찬된다. 다만 이후 복귀 라이브의 퍼포먼스까지 합쳐 성적인 내용이 많았으며, 성욕이 강하다거나 색욕이 있다고 보일 만한 내용들이 있었기에 에세이에서의 일부 내용들이 (호시노 겐의 결혼을 기점으로) 2021년에 인터넷의 일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만 뒤늦게 이야기되기 시작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2014년 당시 호시노 겐은 이제 막 무도관 라이브를 솔로로서 처음 성사시켰을 정도로 톱스타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호시노 겐의 학창 시절은 라디오에서도, 방송에서도 성적인 내용을 아주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세대였기 때문에 그가 일본 내에서 탑 급 연예인 중 한 명으로 자리잡을 때도 그의 과거 에세이 내용에 대해 위법이나 직접적인 행동 및 방송에서의 발언이 아니었고, 생각을 단순히 에세이로 풀어냈다는 측면에서 일본에서 대중적으로는 공론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무절제한 성생활을 하지는 않았으며, 한창 크게 떴을 때 여러 기자들이 붙었는데도 뭐가 안 나올만큼 사생활이 깨끗했다.[54] 오죽하면 유일하게 찍힌 게 친구(남자)들이랑 고깃집 갔던 거였을 정도다. 또한 라디오의 접근성이 뛰어난 일본 내에서도 호시노 겐은 후쿠야마 마사하루처럼 시모네타(음담패설)을 어느 정도 하며 그것이 선을 크게 넘지 않는 이미지라고만 박혀있었으며, 대중들의 인지도와 호감도를 조사하여 매기는 순위인 닛케이 파워 랭킹 음악 부분에서 항상 상위권이었다.

그렇게 사실상 젊은 혈기의 소치(若気の至り)[55]로 치부되고, 에세이의 일부 내용들을 해가 지날 수록 점점 삭제해가며 아무 사건 없이 지나가는 듯 했으나, 호시노 겐은 2022년 6월 다빈치 '생명의 차창에서' 연재 에세이 글에서 본인의 과거를 되돌아보며 이 주제에 대한 내용을 본인이 직접 먼저 언급한다.
나의 책이 문고화될 때마다, 그 원고 확인 작업을 할 때마다, 언제나 머리를 움켜쥔다.

"왜 이런 걸 써버렸을까..."

그러므로 필사적으로 고친다. 무의식중에 차별적인 말을 하거나,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불쾌함을 느끼게 했을 거라고 느낀 부분은 가능한 한 수정하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고쳐도 문고판이 발간된 1년 후에는 나의 상식이 더 바뀌어가고, 더 세심하게 깨닫게 되어, '수정한 거 부족하잖아... 좀 더 조심했다면 고칠 수 있었잖아...'라고 후회하게 된다. 하지만 그때부터는 이제 수정할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없다. 중판이 되어 부수를 늘리는 타이밍에서 수정하는 건 가능하지만, 그 타이밍은 언제 올 지 알 수 없다. (중략)

이러한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걸. 그때는 알아채지도 못했네.'를 나는 반복한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빈도는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무섭다. 되도록이면 없애가고 싶다. 앞으로도, 나도 세상도, 분면 한층 더 끝없이 변화해 갈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사고 방식과 안테나를 업데이트 하면서 '지금 무엇이 가장 좋은 선택인가'를 계속 찾는 것은,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으로도 이어지고, 하루하루를 더 잘 살아가는 것으로도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고 느낀다.
2022년 6월호 다빈치 '생명의 차창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 라디오 언급 (한국어 번역)
이 연재 글에서 호시노 겐은 본인의 무도관 라이브 복귀 퍼포먼스와 에세이의 일부 내용, 더 나아가 '옐로우 뮤직'이라는 단어, 그리고 라디오 네임들을 되짚어본다. 10년이 지나며 변화된 자신의 가치관과, '지금이었다면 이랬을 텐데'라는 후회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글의 기고 이후 호시노 겐은 자신의 라디오에서 한 번씩 읽어줬으면 좋겠다며 여러 내용을 언급했다.

그리고 그의 말들은 무시하고 싶은 과거가 아니라, '나 자신이 점점 자라고, 시대가 변하고, 높은 곳에 오르며 발전했다'는 식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문필활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2014년 에세이집 『살아나는 변태』(매거진 하우스)의 문고판 『살아나는 변태』(분슌문고 2019년)에서는 컴플라이언스적으로 엄격한 음담패설이 삭제되었다. (중략)

| 항상 인식을 업데이트하여 자신의 행동에 반영

이렇게 과거를 없었던 것처럼 하는 조치를 비판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커리어의 스테이지나 사회적인 자세가 바뀌면, 언행, 행동에 요구되는 것은 높아진다. 젊은 에너지는 그것으로서, 항상 인식을 업데이트 해, 자신의 행동에 반영해 간다. 그러한 시대의 변화를 느끼고 있는 것을, 알기 쉽게 사운드나 문장으로 구현해 간다. 사회의 "지금"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을 창작을 통해 세상에 호소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그의 발언 자체에 설득력을 주고 있다. 사람은 변하고 성장한다. 호시노는 그 당연하고 어려운 것을 몸소 증명해 주고 있다. #

8.4. 멀티 엔터테이너로서의 관련 일화

이사를 하기로 했다.
이제 세탁실이 따로 있는 이 집과는 안녕이다. (중략) 창가에 대량의 벌레들의 사체가 떨어져 있는 이 집과 이제는 완전 바이바이다. (중략) 또, 점점 나무 바닥이 벗겨져서 플로링이 아닌 거의 합판 수준이 되어 버린 이 바닥과도 헤어진다. (중략)

그날 나는 대충 들어갔던 부동산에서 상당히 좋은 집을 발견했다. (중략) 계약을 하기로 하고 부동산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밝은 갈색 머리의 젊은 남자가 질문을 했다.

“죄송합니다. 전혀 관계없는 일을 좀 여쭙겠습니다만, 직업은요?”
직업?
“아, 네, 자격 심사를 해야 해서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다. 계약할 때 방을 빌리려면 심사가 있고 빌리는 사람이 집세를 잘 낼 수 있는 급여를 받고 있는지, 제대로 된 직업이 있는지를 묻고 그 집에 적합한지 여부를 판단한다. 어쩌지.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서 마음이 조급했다. 나는 직업이 몇 개 있다.

배우.
음악가.
문필가.
촬영 감독.

전부 수입이 고정적이지 못하다. 이 직업들을 동시에 진행시켜 바쁘게 일을 하고 있어서 일단 수입은 안정되어 있지만 이런 엔터테이너의 일이란 언뜻 겉만 번지르르한 꿈을 좇는 직업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 이 직업들을 지금 이 상황에서 이야기해도 설득력이 결여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중간한 일이 아니며 배우라는 직업 하나만 보더라도 주어진 일을 정확히 해내야 하며 때로는 기다리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을 찾아야 할 때도 있고 자신의 작은 실수가 소속사에 지대한 피해를 줄 수도 있는 아주 막중한 책임이 있는, 즉 회사원과 다를 바가 없는 직업인 셈이다. 덧붙이자면 우리 극단은 굉장히 엄격해서, 지각을 하거나 하면 무서운 후폭풍이 몰아친다.

음악도 그렇다, 우리 밴드는 내가 중심이어서 밴드의 책임=나의 책임이기 때문에 그 압박감도 생각보다는 크고, 소속된 소속사 겸 레이블도 큰 회사가 아닌 작은 인디 회사여서 권리관계 같은 것도 공부해 둬야 하고 음악 업계에는 나쁜 사람들이 지이~인짜 산더미만큼 있으므로 이 또한 항상 사기를 당하지 않도록 태세를 갖추고 경계해야 한다. 정말 NO MUSIC NO LIFE 혹은 음악만 있으면 된다! 같은 멋진 기분이 되기는 좀처럼 힘든, 내 머릿속은 NO WORK NO MONEY라는 생각으로 가득찼다.

하지만 내 나이 정도쯤의 사람들 중에 이런 직업을 가지려 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더 많다.

이렇게 고민을 하는 사이에도 그의 얼굴 표정은 굳어져만 갈 뿐이었다. 여기서 입을 다물고 있으면 자연스레 ‘무직’으로 흘러가버릴 수 있으므로 일단 대답을 해보기로 했다.

“음, 그러니까……여러 가지 있는데요. (중략) 저는 배우와 밴드를 동시에 하고 있고 가끔 글도 쓰고 뮤직비디오 촬영도 합니다.” (중략)

옛날부터 딱 한 가지만을 추려내는 것이 서투른 아이였다. 옛날 동화를 읽을 때도 왜 작은 상자하고 큰 상자 중에서 하나밖에 고르면 안 되는 걸까 생각했었고 (중략) 그 버릇은 어른이 되어서도 바뀌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은 다 하고 싶고, 가지고 싶은 것은 전부 가지고 싶다. 그래서 음악과 연극을 시작했을 때도 동시에 이 두 가지를 하는 건 좋지 않다고 주변 사람들이 말려서 깜짝 놀랐다.

“하나만 해. 이 세계에서 양쪽을 다하는 건 안 좋아.”
엄마도 말했다. “너 제대로 잘 못하잖니, 항상 부업이 되잖아.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한 마리도 못 잡는 법이야.”

사실 그렇긴 하다.

하지만 늘 ‘짚신을 두 개씩 신으면 재미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현실적으로 짚신 위에 짚신을 하나 더 신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니 그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 보고 싶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엄청 빠르게 도망치는 두 마리의 토끼를 한 사람이 잡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현실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절대 무리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두 마리를 다 잡아 버린다면 멋지지 않은가.

둘 다 실현하기 힘든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모두가 절대로 안 될 거라고 말하는 일들을 최대한 노력해서 해보려 하고, 만약 가능해진다면 훨씬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왜 다들 그렇게 안 하는 것일까. 언제나 생각하는 소박한 의문점이다.

또, 예전에는 '겐은 연기보다는 음악에 더 소질이 있는 것 같으니 배우보다 음악에 전념하는 편이 좋겠다'고 자주 들었고 글 쓰는 재능도 그다지 없으니까 이제 그만두라는 말도 자주 들었다.

이 또한 맞는 말이다.

연기를 하는 재능도 글을 쓰는 재능도 딱히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알고 있으니까 잘 할 수 있게 되고 싶은 거였고 잘 못하기 때문에 동경했다. 처음부터 잘하면 그야 그 나름대로 좋겠지만 잘 못했던 일들을 잘 하게 될 수 있다면 정말 대단한 일이고 실제로 후자 쪽이 더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중략)

그 후 내가 하는 일들을 그에게 자세히 설명하면서 극단 사무소 선배 중에 쿠도 칸쿠로씨가 있다고 말하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점장이 슥 나와서 자기가 그분 드라마를 자주 본다며 유명한 분이 있는 사무소니까 괜찮지 않겠냐며 이야기를 거들어 주어 결과적으로 계약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쿠도 씨 덕분에 무사히 이사를 하게 된 것이다. 간접적으로 내 인생을 지탱해 주고 있는 쿠도 씨는 여러분들이 다 아시다시피 배우이자 밴드맨이자 각본가로, 이 모든 일들을 온전히 해내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댄 애크로이드 같은 사람이다, 라고 이 글을 쓰면서 지금 알았다.

"오~ 배우와 밴드를 하고 글을 쓰고 뮤직비디오도 찍나요?"

이 말을 아주 큰 소리로 들었을 때, 윽, 지조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여겨져, 내가 하는 일을 솔직히 말 한 것을 후회하는 와중에 그는 얼굴이 거무칙칙해지면서도 웃는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대단하신데요”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2009)
저는 중학교 1학년때부터 연극과 음악을 시작하고, 고3때부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에 각자 마음대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음악과 연기는 학교 안에서 처음으로 시작이 되어, 점점 일이 되었고, 그리고 글쓰기는 어른이 되고나서 점점 일이 됐어요.

그 와중에 연극 현장에 가면 "음악 업계 쪽 사람이지?"라는 말을 듣고, 그리고 음악 현장에 가면 "연극 쪽 사람이지?"라고 해서...

어느 현장에 가도 허탕을 치는 느낌이랄까, "내가 있을 곳이 없구나" 라는 식으로 계속 생각하고 있었어요. 거기에 더해 글쓰기까지 시작했기 때문에, '하나로 좁히지 않아?'라든가, '뭐가 제일 하고 싶어?'라고 하셨죠.

어렸을 때 부터 그야말로 여러사람의 활동을 보고있는 도중 든 생각이 있습니다. 제가 동경하는 사람들은 그렇게나 많은 것을 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다들 하나로 좁히는 게 낫다고 하는 걸까요?

물론 두 켤레의 짚신을 대충 하면 안 될 것 같아 '어느 일이든 정말로 좋아하고, 이제 이것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필사적으로 임하다가 점점 일이 되어갔다, 그런 감각이 있어서, 왠지 굉장히 쓸쓸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어떤 그룹에 속하는 것으로 동경하고는 있었지만, 대체로 항상 조금은 어긋나 있었습니다. (중략) 정말로 동경하는 듯한, 멀리에, 계속 등대처럼 이타미 씨가 불빛을 비춰주시는데 아무래도 거기에는 못 가게 되어 있고, 큰 바다가 저희 섬과 이타미 씨의 섬 사이로 흐르고 있었죠.

그것을 뒤쫓으려 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점점, 그게 아니라 자기 자리를 만들라고, 너는 너의 장소를 만들어라, 그런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0대 후반부터 어쨌든 좋아하는 것에 제 몫을 제대로 하고 싶은 그런 마음으로 어느 일이나 하다 보니 이런 멋진 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타미씨에게, "그것이 너의 장소야."라는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아서 되게 기뻤습니다. (중략)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정말로 추구하고, 따지고, 그것을 모두에게 소개하거나 실천함으로써 주변 사람들이 굉장히 즐거워하거나, 일본이라는 곳을 보는 사람들이 (일본을) 모두가 신나게 놀거나, 즐겁다고 생각하거나, 마음이 좀 바뀌기도 하는 것. 그거는 대단한 거라고 생각해요.

분노조차도 재미있는 것으로 바꾸고, 모두에게 보여주면서 다 기분 나쁠 수 있는 게 아니라 굉장히 재미있었다는 생각으로 극장을 나서게 만들거나, 텔레비전의 스위치를 끄기도 하는, 그런 표현을 하는 사람은, 너무 너무 멋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사람이 언젠가 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실은 굉장히 밝은 사람이 아니지만, 재미있는 것들을 전달해도 좋다고 생각이 들었다고 할까요.

그런 제가 받은 것이라고 하는 것은 무조건 어떤 형태로든 연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죽어도, 그것을 모두가 이야기하거나, 이어나가거나, 자신의 필터를 통해 뭔가 이야기를 하거나 표현함으로써, 유전자는 연결되어 갑니다. 그런 유전자를 저도 받고 있기 때문에, 뭔가 저의 표현이라는 형태로, 제대로 저의 필터를 통한 형태로, 그 유전자를 연결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후략)
이타미 주조상 수상 연설 일부 #

8.5. 호시노 아이와의 유사점?

#1, #2, #3, #4, #5

아카사카 아카【최애의 아이】 키퍼슨인 호시노 아이를 설정할 때 여러 인물들을 모티브로 삼아 분위기를 넣어서 만들었다고 했는데, 한자까지 같은 성씨(星野)를 가지고 있고, 댄스 팝을 하는 음악가 겸 배우라는 입장, 그리고 【최애의 아이】 속 등장인물들의 발언 또한 호시노 겐의 예전 발언을 참고해 가져온 것이 있어 호시노 겐도 모티브로 들어간 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

호시노 아이의 남편이 사실은 호시노 겐이 아니냐라는 장난성 드립도 있고, 호시노 겐에게는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여동생도 있어서 호시노 가문에 같이 포함될 때도 있다. 그 외에도 외모적인 측면을 제외하면 호시노 아이의 행보나 성격은 호시노 겐과 미묘하게 닮은 구석이 많다. 우스갯소리에 가까워 재미로만 보자.

[1] 사실 한국과 다르게 일본인 다수가 동성애에 대해서 개방적인 편이다.[2] 여기서의 의미는 사랑하는 대상이 2차원이라고 해도 그 사랑은 잘못되거나 비난받을만한 것이 전혀 아니라는 의미다.[3] 다만 일본의 불교는 한국에서의 위치와 살짝 다르다. 현지화가 상당히 강하게 이루어졌고, 일본으로 불교가 전래된 뒤로 불교는 한국의 유교처럼 사상적, 교육적인 부분에 많이 편중되어 있었으며, 일본의 사회 문화 전반에 상당히 뿌리내렸다. '일본인들에게 현세의 종교는 신토이며, 내세의 종교는 불교이다' 라는 말도 있을 정도. 자세한 내용은 일본 불교 문서 참고.[4] 당시 자체 레이블인 'sakerock'으로 발매했는데, 그 레이블의 표시가 연꽃모양이다. 또한 앨범이 '죽어서도 신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표방했고, 앨범 속에 하단의 그림이 있는 걸 보면 불교에 영향을 꽤 받았다던가 사십구재를 모티브로 잡은 듯하다.
파일:앨범 YUTA 속 그림.jpg
[5] 2019년 Same Thing 때는 깐머, 2020년 MIU404때는 덮머, 2021년 不思議, 創造 때는 깐머, 2022년 喜劇 때는 덮머, 2023년 라이트하우스(예능), 光の跡/生命体 때는 깐머다.[6] 이와 관련해서 상당히 인상깊은 가사가 있다: '나에게만 보이는 것과, 여러 사람이 보는 세계 중 어느 쪽이 거짓인지 선택하면 돼. 너는 어느 쪽을 갈래? 나는 한가운데를 갈래.'[7] 그리고 여기에는 노래를 부르는 호시노 겐 본인 또한 포함될 때가 종종 있다. 실제로 그가 죽고 싶었을 때 음악을 만들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하고, '내가 내 자의로 죽으면 내가 만든 나의 음악을 배신하는 셈이다'라는 생각으로 버틴 적도 있었다.[8] 호시노 겐은 さらしもの(사라시모노)라는 악곡에서 자기자신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차라투스트라'라고 말하고 있다. 호시노 겐의 (정신적) 행보들을 보면 이 책에 나오는 차라투스트라와 유사한 부분이 많으며, 여기서 나오는 차라투스트라의 선물이 '인간은 어떻게 '나 자신'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뜻한다는 것을 보면 틀린 이야기는 아닌 셈이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창작 활동의 세계관 문서 참고.[9] 오오이즈미 요랑 만난 이후부터 오오이즈미 요가 호시노 겐을 계속 동정이라고 부르며 놀렸다. (약간의 시모네타 주의) 방송에서는 썰을 풀때 유학생, 재수생으로 순화해서 표현한다.[10] 실제로 학교폭력 관련 노래도 있다.[11] 항문거근이라는 것은 항문주변을 싸고 있는 근육 중의 하나인데, 항문거근증후군이란 이 근육에 어떤 이상이 생긴 병이다. 갑작스러운 극심한 통증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되거나 한밤중에 통증으로 깨어나거나 한다고. 이 병의 확실한 원인은 밝혀져 있지 않다. 일종의 항문근육통에 가깝다.[12] 당시 그들의 위상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aiko 열애 찌라시가 나왔을 때 호시노 겐이 일반인 남자로 모자이크 처리될 정도였으니.[13] 파일:300x225x9022660bf3523bdf32cfc2e8ea63c46730-300x225_jpg_pagespeed_ic_OAs6U7EVfU.jpg[14] 결혼 직전에 발매한 러브송인 不思議(불가사의)에 대해 아라가키 유이와의 연인 생활을 담아낸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는데, 호시노 겐은 이에 대해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타마코 마켓을 보고 난 후 가득찬 사랑 성분을 담아냈다고 밝혔다(...)[15] ‘남편’이라고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될 만큼, 두 사람의 결혼이 얼마나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었는지 알 수 있다.[16] 고급 맨션으로 보안이 철저해서 일본의 유명 연예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고 한다.[17] 2015년경부터 일본 금융시장에는 '인기 연예인의 결혼 발표와 시장 변동이 겹친다', '연예인의 결혼 발표는 일본 주식을 폭락시킨다,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도시 전설적인 징크스가 존재하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2021년 5월 19일 중국에서 금융기관에 암호자산 관련 업무를 금지하는 통지가 내려지면서 전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비트코인 가격이 당시의 반값 가까이 급락한 것이 큰 이유.[18] 결혼 발표 직전 호시노 겐은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35주년 테마곡 創造(창조)를 작곡하며 CF에 참여하였고, 배우자인 아라가키 유이모여봐요 동물의 숲 광고 모델을 맡고 있었다.[19] 2016년 당시에는 음정이 불안불안한 것이 확연히 들릴 정도였지만, 2022년에는 진성과 가성을 많이 오가는 곡임에도 불구하고 음이탈이 없었으며 잘 마무리했다.[20] 초회한정판에 콘서트 녹화영상, 메이킹 등 어떤 컨텐츠들이 들어가는지를 짧게 보여주며 소개해주고, 간단 코멘터리를 붙이는 식. 그의 부캐인 니세 아키라가 2014년에 생긴 이후로부터는 니세 아키라를 이용한 짧은 예능(콩트) 등을 초회한정판의 컨텐츠로 곁들이고 있다. 대체로 광고를 시작하는 말은 '도모.' 그리고 나중에는 이 뮤직비디오들의 완전판들을 수록하고 이와 관련된 해설 및 관계자 인터뷰, 메이킹 영상을 구성한 Music Video Tour라는 블루레이/DVD까지 출시한다.[21] 일본 재즈 밴드[22] 넘버 걸의 재결합 당시에는 안하다가, 결국 넘버 걸이 2022년에 다시 해산해서,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라이브에서 다시 히키가타리로 커버하고 싶다는 의향을 밝혔다.[23] 울려라! 유포니엄 3의 당시 시대가 2017년도쯤인데, 그 당시 일본에서 가장 인기곡이던 코이의 취주악이 신입생 환영회에서 흘러나오도록 시대를 맞춘 것이기도 하다.[24] 매우 바쁜 시기였지만 소속사에 제발 하루만 시간을 빼달라고 요구하고 요구한 끝에 하루를 비워 관람했다. 덧붙여 그의 아이돌 마스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아이돌 마스터측도 알고 있는지라 관계자로서 초대했다.[25] 이 대담은 YELLOW MAGAZINE+에서 확인 가능하다.[26] 묻지마 사랑,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지옥이 뭐가 나빠[27] 이는 리미널 스페이스가 의도하는 것 중 하나이기도 하다.[28] 그 당시에는 라이트 노벨이라는 용어가 제대로 정립된 때도 아니었고 판타지 소설이었다고 한다.[29] 2018. 03. 31. 까지 방송.[30] 그렇다보니 유재석과 관련된 장난성 드립이 나오기도 한다. #1, #2 호시노 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일부 커뮤니티 네티즌들이나 안티들 또한 이 뜻에서 파생해서 호시노 겐을 '일본의 멸칭 + 유재석의 멸칭'으로 부르기도 한다.[31] 마츠시게 유타카 등 배우 쪽은 물론이고, 이시바시 에이코, 나가오카 료스케 등 음악적 동료들 일부 또한 이미 내한한 적이 있다. SAKEROCK의 예전 멤버가 만든 인디밴드인 '자이니치 펑크'도 이미 내한했다.[32] 지옥이 뭐가 나빠(2013)에 같이 나온 적도 있었고, LIFE!라는 일본 콩트 프로그램에서 2017년 쯤에 같이 합을 맞추었던 적이 있다. #[33] 약 2만 5천명이 있었다보니 댓글의 속도가 상당히 빨랐다.[34] 지유노모리가쿠엔고교(자유의 숲 학원)가 시험과 성적이 없는 사립 대안학교로 한국어 교육이 있었다거나, 한국 강좌 교과가 따로 있었고, 일제강점기, 위안부 문제 등 한국 관련 역사 교육에 힘쓰고 있었다는 사실이 있다. 이 학교가 전쟁같은 폭력에 반대하는 교육 이념을 가지고 있어 그것에 영향을 받았을 순 있겠으나, 애초에 예체능 쪽으로 특화된 학생이라 수업을 못 들었을 가능성이 엄청나게 높다. 실제로 라디오에서 학창시절에 공부를 안 했다는 걸 후회하는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35] 실제로는 순수 일본 성이지만, 네티즌들 사이에서 재일교포 유래라는 잘못된 인식이 있었었다.[36] 특히나 그가 히트 칠 당시에는 한일관계가 악화되었었던 시기라 대체로 재일한국인 설은 안티들의 음해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잦았다. 그의 아내인 아라가키 유이도 재일한국인 설이 돌았었던 적이 있다.[37] 이 들어간 음악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긴하지만 존재하며, 그 외에도 랩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힙합을 모티브로 잡고 그걸 다른 장르들로 나타낸 곡들이 상당히 많다.[38] 같이 합동 공연을 했었던 적이 있다. 그 공연 당시의 유닛명은 'SAKERAP'으로 했었다.[39] 아라가키 유이가 한동안 가부키에 빠졌던 게 이 이유인 듯하다.[40] 그의 특징 문서에서도 서술했으나 호시노 겐은 '인트로(도입부)는 특히 편곡가의 솜씨를 보여주는 곳이다'라고 언급했을만큼 도입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41] 요네즈 켄시는 주제가인 感電(감전)을 만든 아티스트였고, 호시노 겐은 드라마의 주연 중 한 명이었다.[42] Creepy Nuts가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올 나이트 닛폰 제로'의 화요일 퍼스널리티였는데, 이는 호시노 겐의 바로 뒷 순서이다.[43] 아노최애의 아이 실사화 버전의 MEM쵸역을 담당하기도 한다.[44] 히무라 유우키와는 아키하바라@딥 에서 처음만나 친해져서 호시노 겐이 솔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 매년 히무라의 생일노래를 만들어주고 있고, 시타라 오사무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테마곡을 만들어준 적도 있다.[45] 참고로 나카무라도 호시노의 생일을 알고 있었다.[46] 일본의 밴드 인디고 라 엔드, 게스노키와미오토메, 제니하이에서 활동하는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카와타니 에논이 작성한 칼럼이다.[47] Pop Virus 직후, 그는 번아웃 증후군이 왔고, 40대가 되면서 새로운 자극을 찾아 여러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다.[48] 전혀 다른 심리 상태가 마음속에 같이 존재하고 있는 것[49] 일본은 흔히 성진국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한국중국이 더 엄격할 뿐이지 서양에 비해서는 보수적이고 기준이 빡빡하다.[50] 올 나이트 닛폰 제로를 시작하기 전에 대체로 "시각은 3시가 되었습니다. 000, 수고하셨습니다. 20xx년 x월 x일 0요일, 이 시간에는 올 나이트 닛폰 0(제로)을 보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시작한다.[51] 담당 작가 테라사카 나오키[52] 일본의 관용구로, 타인의 도움을 받아 스모를 하듯이 타인의 물건을 자신의 공이나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것을 뜻한다.[53] (연예인 등의) 홍보를 위해 광고 회사나 신문 등에 제공되는 사진.[54] 쉽게 말해서 생각이 드는 것이랑 실제로 직접 행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긴 하다. 그의 2013년도 에세이인 '일하는 남자' 또한 일본 원서로 한국에 들어왔을 때 '19세 이상 열람 가능' 표지가 붙었다. #[55] '젊었을 때의 무책임한 패기와 말'이라는 뜻이다.[56] 본인의 에세이에서 초등학교 시절 구구단도 못 외웠던 바보였다고 언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