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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호시노 겐에 대한 여담을 정리한 문서.2. 인물 관련
2.1. 취향 / 특이사항
- 담배도 안 피고 있으며 술도 잘 못해서 특별한 날이 아니면 안 마셨다. 다만 직업 특성상 뒷풀이나 술자리에 갈 때가 많고,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는 게 좋아서 술자리 가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 물론 술은 안 마셔서 거의 맨정신일 때가 많았다.
그래서 푸념을 많이 들어줬다그러나 2023년부터 많이는 아니지만 술을 꽤 마시게 되었다고 한다. 좋아하는 안주는 (종류 상관없는) 치즈라고.
- 차는 사고가 날 것 같아 면허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오토바이는 더더욱 안 탄다.
그래서 가끔씩 아내가 대리러 올 때도 있다
- 인생이 도박 같아서 돈을 거는 도박은 질색이라고 한다.돈을 거는 도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데다, 평소 하는 일만으로 충분히 스릴을 느끼고 있다. 안정적이지 않은 대신에 한번 터지면 대박이 난다. 때때로 음악이 좋아서 일을 하는지, '도박'에서 이기려고 일을 하는지 헷갈리기도 한다.전자를 늘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무모하게 이기는 데에만 집착하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 일 자체가 사라져 버려서 끝내 자취를 감춘 선배들을 종종 봐 왔다. 인생을 건 일일수록 중독 요소도 너무 강하다.생명의 차창에서 (2014)
- 좋아하는 색은 빨간색이라고 한다.
- 타이야키(도미빵)는 머리부터 먹는다고 한다.
- 토마토를 좋아한다고 한다.
- 가장 좋아하는 산리오 캐릭터는 쿠로미다. 쿠로미 이름 후보 중에 우라미(원한)가 있었다는 걸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 그런 면이 좋다고.
그래서인지 이런 장면도 있었다.어릴 때는 케로케로케로피를 좋아했다고 한다.
- 2013년도 쯤 지주막하출혈 수술을 두 번 정도 한 이후로 기압에 따라 컨디션이 좌우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한다. # 수술 이후로 계속 뇌검사하러 병원에 가끔씩 간다고 한다. 또한 수술 영향 때문에 이마에 충격이 가는 격투기 같은 걸 못한다고 한다.
- 후술하겠으나, 호러 장르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호러물 애호가이다. 그 중에서도 리미널 스페이스와, 크리처물과, 코즈믹 호러에 대한 애정이 깊은 듯 하다. 창작물 속 괴이가 더 날뛰어줬으면 좋겠다고 언급하는 등, 호러 장르의 창작물들을 보면 뭔가 안정감이 있고 안심이 된다고 한다.
- 본인 피셜 그림을 잘 못 그린다. 특히나 다리가 있는 동물을 그리기만 하면 형태가 흐물흐물해진다고 한다. 예시1 예시2 예시3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걸 싫어하는 건 아니고 좋아한다. 시간을 들여서 여러 번 시도하면 꽤나 모양새가 나온다. 2021년 크리스마스 그림, 스파이 패밀리 그림
- 다른손잡이이다. 젓가락과 기타는 오른손으로 쥐고, 펜과 칼은 왼손으로 쥔다.
- 운동 신경이 그닥 좋지 않다고 한다. 다만 공연 체력 관리 및 배우 활동 때문에 헬스장은 종종 가는 듯하다.
- 배가 약해 화장실을 자주간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며 지금은 컨디션 관리법을 알게 되어 크게 곤란한 일은 줄었다고 한다.
- 여장 빈도수가 많다. 오겐상은 논바이너리기 때문에 여장이라고 보기 힘들긴 하나, 다른 예시도 꽤 있다. 라디오에서 겐코 호시유카. 여장에는 그다지 거부감은 없다고 한다. 호시노 겐 본인은 자신이 생물학적으로 남성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 실전에서 긴장하지 않도록 ON / OFF의 전환을 굳이 의식하지 않는다고.
- 하루가 30시간이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 드래곤볼 7개를 모았을 때 빌고 싶은 소원은? 이라는 질문에 '인류를 전부 다 없애버리고 싶다'고 답했다.
- 호시노 겐 본인은 자신이 생물학적으로 남성이고 이성애자라고 밝히긴 했으나, LGBTQ+에 대해서는 개방적인 듯 하다.[1] 실제로 넷플릭스 성소수자 다큐멘터리를 감명깊게 본 적이 있다고 하며, 2016년에 恋(사랑)을 발매했을 때와 2017년 Family Song을 발매했을 때 이런 발언들을 한 적이 있다.연애 스타일이라는 게 점점 다양해지고 있죠.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낡고, 바뀌어 가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그 사랑으로 인해서 그 사람들의 삶이 충실했다면 그게 '일반적으로 불리는 사랑'이랑 도대체 뭐가 다르냐라는 생각이 들어서요.혈연관계, 나이, 성별, 인종, 차원[2]. 그런 것들에 상관하지 않는 사랑노래를 쓰고, 듣고 싶었습니다. 사회라는 것에 사랑의 형태를 띄는 이 세상은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도 퀴어 뮤직비디오도 있다. 물론 '사회적 해석상의 소수'만을 생각한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흔히 '정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사회적 해석'이 그 '사랑과 가족'의 존재와 본질을 덮어버리지 말아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가깝다.
- 종교는 공식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고 무종교에 가깝지만, 창작활동에 있어서는 불교에 영향을 상당히 받은 듯하다.[3] 데뷔 앨범인 YUTA가 불교적 색채를 띄고 있고[4], 그 앨범의 七七日(칠칠일)이 할아버지의 장례식 및 불단을 보고 할아버지가 49일동안의 여행을 무사히 했으면 좋겠어서 붙인 제목이며, 솔로 데뷔 정규 1집의 가사에도 일본 가마쿠라 시대 불교 승려인 '니치렌'이 나왔다. 또한, 만남은 우연일지라도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던가, 제법무아, 제행무상, 욕망의 초월 등이 종종 곡에 나타나는 것을 보면 불교 신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불교에 영향을 꽤 받은 듯하다. 그리고 세인트☆영멘이라는 애니메이션에서도 붓다 역할을 하기도 했었다.
- 어느 한 디시 유저가 더 콰이엇 관련 힙합 갤러리 글인 '진짜 인생 살줄 아는 XX...jpg' 글을 차용하여 호시노 겐의 일부 이력을 정리해 놓았다. (비속어 단어 주의)
- '가수가 본업이냐 배우가 본업이냐'가 갈리긴 하지만, 정작 호시노 겐 본인은 그런 걸 크게 원치 않아하는 듯 하다. 실제로 그 두 직업에 흥미를 가져 연습들을 시작한 시점도 거의 똑같으며, 데뷔도 거의 비슷한 시점에 했고, 그의 문서의 데뷔 전 생애 문단을 보면 음악과 배우 둘 다 처음에서부터 시작했으며, 각 분야들의 여러가지 경험들을 쌓으면서 차근차근 올라왔다.호시노 겐: 저는 중학교 1학년때부터 연극과 음악을 같이 시작하고, 고3때부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에 각자 마음대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음악과 연기는 학교 안에서 처음으로 시작이 되어, 점점 일이 되었고, 그리고 글쓰기는 어른이 되고나서 점점 일이 됐어요.그 와중에 무대연극 현장에 가면 "음악 업계 쪽 사람이지?"라는 말을 듣고, 그리고 음악 현장에 가면 "연기 쪽 사람이지?"라고 해서... 어느 현장에 가도 허탕을 치는 느낌이랄까, (예전에는) "내가 있을 곳이 없구나" 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후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단의 인용문에서처럼 인식이 갈렸었던 건 결국 어느 분야에 가서도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멀티 엔터테이너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컸던 모양.
- 예능과 라디오로도 상을 받기는 했으나, 방송 활동은 본업이 아니라고 직접 밝혔다.
- 일본에는 '멀티 엔터테이너'라는 단어가 완전히 규정되어있지는 않고 멀티 탤런트 등으로 불리는데, 호시노 겐 본인은 2021년 당시 위키피디아에 있는 '멀티 탤런트'라는 단어를 지워줬으면 좋겠다고 라디오에서 언급했을만큼 '멀티 탤런트'로 이야기되는 걸 안 좋아한다고 한다.
- 2023년 기준으로 데뷔는 20년 정도 되었으나 솔로 데뷔한지는 13년 정도라 마음만큼은 아직 33살인데, 실제로는 43살이라 나이와 관련된 주변인물들의 일화를 들으면 시간이 가는 걸 느껴 신기한 감각을 느끼게 된다고 답했다.
2.2. 인상 / 성격
- 2020년 전까지 나이에 비해서 어려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오오이즈미 요는 호시노 겐이 35살 당시였을 때 호시노 겐을 보면서 마치 대학생 같아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 딱히 애교는 많이 하지 않지만 주변 인물들로부터 귀여움을 받고 있기도 하다. 심지어 연하한테까지 받고 있다. #
- 웃을 때와 무표정일 때의 차이가 심하다. '해맑게 웃을 때는 호감이 넘치고
귀여운5살 어린아이가 되지만 무표정으로 폼을 잡을 때는 색기 있는 어른으로 변한다'는 팬들의 말도 있을 정도다.
- 배우를 하고 있다보니 뮤직비디오에서의 인상 또한 뮤직비디오마다 다르다.
배우 포트폴리오일부 뮤직비디오들의 한 장면 상단 왼쪽부터 ドラえもん(도라에몽)(2018), 喜劇(희극)(2022), 創造(창조)(2021), 하단 왼쪽에서부터 Pop Virus(2018), 私(나)(2019), CUBE(2021)
- 2019년도 당시의 쓰리 사이즈는 84-75.5-95.5 (cm 기준).
- 내향형 인간이고 낯가림이 심했으며 교우관계 및 대인관계에 적응하기 힘들었으나, 점점 시간이 지나며 그대로 안주하는 것은 '저는 의사소통과 대인관계에 있어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이니 그쪽에서 조심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의사소통과 대인관계에 있어 노력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 30대 중반 때인 대히트를 치기 전에 신인시절부터 여러 활동을 열심히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에서 보답받지 못하거나, 여러 쓴소리를 계속 들어오거나, 더 어려워졌음에도 묵묵하게 했다보니 언더독 기질이 살짝 있었던 편인 듯 하다.재능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재능이 없어서 하는 선택지가 있어도 되잖아. 언젠가 재능이 없는 것이 재미가 있는 것을 만들어 낸다면, 그렇게 된다면, 재능이 없는 내 승리야.『일하는 남자』 (2013)호시노 겐: 제가 예전에 '일하는 남자'라는 책에서 '재능이 없어도 해도 되잖아'라는 걸 썼었는데, 저, 재능 있었어요(웃음). 음악도 배우도 저, 계속 "재능이 없다"라고 들었었거든요. 그래서 "재능이 없으니까, 그만두어라"라고 말을 계속 들었지만, (중략) 저는 계속 제 일을 끈질기게 악착같이 하는 성격이기도 했고, '별로 재능이 없어도 해도 되잖아!'라는 기분이 계속 드는 재능이 저에게는 있어서. (중략)그러니까 사람이 하는 말, 남이 본인을 부정하는 것을 전부 다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무심코 신용해 버려서 '나는 재능이 없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나는 있었고, 발견했기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나는 재능이 있었다!'라고 말해 가려고 해요. 그거는 뭐, 신이 났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찾는 거라는 것을 다시 새삼 깨닫게 되었네요. (2023) #
- 여러가지 것들에서 쉽게 감성적으로 되기도 한다.
- 마이페이스적인 기질을 포함해서, (좋은 의미로) 여러가지 욕망에 기반한 광기를 가지고 있다. 그가 여러 방면에서 일정량 이상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도 특정분야의 선천적인 재능이 전부였다기보다는, 두렵더라도 그냥 해보는 마음과, 운과, 그리고 그의 여러가지 욕망에 기반한 개인적인 목표와 집념과 정신력이 큰 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지만) 욕망에 따른 광기 때문에, 몸과 정신이 피폐해질 정도로 자기자신을 한계까지 혹사시켰던 적이 있었다.
- 일을 같이 하는 주변에서는 굉장히 상냥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전반적으로 받고 있으며, 상냥함과 광기가 같이 공존하는 사람이라는 평을 받고 있기도 하다.UMI: 호시노 겐씨는 마음 속 깊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만날 때마다 '이런 사람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진짜 착하세요. 저뿐만이 아니라 남들 케어도 되게 해줘요. 음악도 사람을 위해서 만드는 마음이 강하다는 걸 느끼고 이기심이 없어요. '사람을 위해서'라는 것을 굉장히 느끼죠. 서머소닉 리허설 때도 모두를 챙겨주시고, 공연이 끝난 후에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해 주었어요. 저도 그런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
- 어떠한 분야에 있어서 자신보다도 더 열정과 의욕이 넘치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한다.
- 머릿속에 생각이 너무 많다고 한다. 상황의 시뮬레이션은 기본이고, 깨어있는 동안 계속 여러 소리나 음악이나 말이 들리거나, 누구나 뭔가가 얘기를 한다고. 그것 자체는 일에도 도움이 되고 선천적인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나쁘게 보고 있지 않지만 아무래도 불안이나 어둠이나 부정적인 게 올라오면 살짝 힘들다고 한다. # 우스갯소리지만, 니세 아키라가 말하기를 호시노 겐군과 머릿속을 공유하고 있는데, 호시노 겐군의 머릿속은 상당히 복잡하고 여러 소리가 들린다고 말했다.
- 염세주의와 허무주의적 기질도 일부 가지고 있어 자기자신을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자기자신을 게으르고 욕심이 많다고 평가하기도 한다.호시노 겐: '뭔가 특정 일을 알아가본다던가, 할 때는 업무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제일이다'라고 하는 제 지론이 있어서요. 저는 게으르기 때문에 업무가 아니면 잘 하지를 않아서(웃음). (중략) 또 저한테 하는 버릇이 있는데, 저에게 압력을 가한다고나 할까요. 그래야 제대로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욕심이 많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고 나서 뭔가 긍정적으로 가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고통은 전부 저의 욕심에서부터 나온 것 같아요. 이거 하고 싶은데 못하니까 괴롭다던가.bridge 12월호 (2012)
- 회복탄력성이 높다. 여러가지 암울하거나 괴로운 부분들을 가지고 있거나 계속 겪었음에도 불구하고,{{{#!folding [ 자세한 내용 펼치기 · 접기 ]
집단따돌림, 공황장애, 불안장애, 우울장애, 부족한 외모와 몸매를 통한 자신감 상실, 자신의 생각과 논리들이 여러 사람들로부터 잘 이해받지 못하는 것[6], 자신의 옆에 있는 어둠을 어릴 때부터 인지하고 인정하고 직시하는 그의 모습, 염세주의, 처음부터 스카우트도 되지 않아 여러 곳을 직접 뛰어다녔어야하는 초기 시절, 어릴 때부터 의존할 수 있는 부분이 적어 업계에서 사기를 당하지 않도록 항상 긴장 및 경계하고 결국 'NO WORK NO MONEY'가 머릿속에 가득찼던 날들, 생활의 열악함, 증오, 분노,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고독/ 소외/ "하나만 해"/ 스트레스, '호시노 겐은 재능이 없다', '연예계에서 못 버틸 것 같다'라는 계속되는 이야기들, 원한, 인간 혐오, 어느 한 곳에 속하지 못하는 멀티 엔터테이너의 고질적인 문제, 조증, 악착같이 일하고 고통과 고뇌가 많았던 이른 나이에 자신이 원하지 않게 걸린 치사율이 높은 지주막하출혈과 두 번의 수술, 그 직후 투병생활 동안의 고통과 정신의 피폐, 외모지상주의에 기반한 특정 대중들의 얼굴 비하, 여전히 자유와 자연스러움을 갈망하지만 스타가 되고 난 후 끊임없이 프레임화되고 비교평가당하는 자신의 모습, 책임감과 부담감, 머릿속에 끊임없이 계속되는 소리와 음악과 말, 그의 말을 통한 대중들의 오해,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악플들과 안티, 허무주의, 억울한 찌라시 등 | }}}그것들을 견뎌내거나 짊어지면서 '힘들고 추악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7]의 주체성과 생명력을 북돋고 싶은 것'을 여러가지 창작활동으로 이야기하고 있다.[8] 실제로 그의 곡들 중에서는 '염세주의와 허무주의의 한가운데에서 창조와 회복탄력성과 위버멘쉬를 목놓아 외치는' 곡들이 꽤 많은 편이다. 그리고 그가 겪은 모든 것들은 (여기 위키에는 직접적으로 적긴 했지만) 미세하게 그림자만 풍길 뿐이지 표면적으로 다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주변인물들의 도움들 또한 크게 작용했겠지만. 나 또한 그에게 분노 에피소드를 두 배 분량으로 되돌려 줄 만큼 업무상 여러 불합리한 문제들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 두 사람에게는 암묵의 규칙이 있다. '심각한 분노 에피소드일수록 웃기고 재미나게'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분노를 토해 내는 행위란 그걸 받아들이는 상대의 마음을 크게 동요시킬 만큼 부정적인 에너지로 넘쳐 난다. 하지만 가만히 담아 두기만 하면 마음이 점점 불안정해지고 몸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되도록 즐겁고 재미있게 토해 낼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생명의 차창에서 그러니까 힘들었던 것들을 말하는 것도 중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보다는 '어떻게 그 이후 즐겁게 살았을까'라는 것... (중략) 제가 일들을 하는 의미라는 건 어쩌면 없을지 모르지만, 지금 즐겁거나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계속하고 싶어요. 즐거움을 갱신하는 것이, 100% 괴롭고 절망적이었던 그날들의 제게 할 수 있는 격려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포기하지 않길 잘했다'라면서요. (2021) #
2.3. 생애 일화 / 행보
2.4. 연애 및 결혼2.4.1. 결혼 전
호시노 겐: 사랑을 할 때는 (중략) "좋아해요!"라고 바로 말해버려요. 참지 않는다고나 할까요. 으아아! 하고 좋아져버려서 '좋아해요'라고 말하고 차이면, '어쩔 수 없네...' 하고 바로 포기하는 느낌이에요. MC: 그쪽에서 먼저 좋아한다고 말하면요? 지금 많이 있겠지만요. 호시노 겐: 음... 뭔가 듣고 싶네요. 고백이라던가 받고 싶잖아요? 받아본 적이 없어서 해줬으면 해요. 누군가! #
미디어에서도 거리에서도 끊임없이 「恋(사랑)」이 흐르고, 그것이 당연한 상황으로서 정착해 가는 모습은, 기존의 J-POP이라고 하는 면역을 파괴해, 세상이라고 하는 육체에 새로운 상재균을 만들어 낸 것 같았다. 다음해인 2017년. 팝적인 활동이 두드러져, 「양」적인 존재가 되어감과 동시에, 「음」적인 나 자신이 부풀어 오르게 되었다. 일에서는 즐겁게 웃는 얼굴로 있을 수 있어도 집에 가서 혼자 있으면 무기력해지고, 정신을 차려보면 허무감에 범벅이 되어 머리를 감싸쥐고, 무엇을 해도 슬픔밖에 느끼지 않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것은 날마다 천천히, 조금씩 증식하는 바이러스처럼, 나의 몸과 정신을 갉아 먹어 갔다. 먼저 말을 걸 수 있게 된 것이 공포심이 되어, 거리에서는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도록 얼굴을 가리고 도망 다녔고, 베란다에 나가는 것조차 무서워서, 맑은 날에도 커튼을 닫게 되었다. 나의 악곡과는 달리 사랑과는 거리가 멀어져 여자를 설득하는 것도, 여자가 있는 자리에 가는 것도 두려워졌다. 알 수 없는 타이밍에 눈물이 나게 되고, 눈앞에 물이 담긴 컵이 있으면 벽에 던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게 되고, 누군가와 이야기하다 보면 지금 이 사람에게 침을 뱉거나 하면 모든 것이 끝날까 망상하며 속으로 고개를 윙윙거렸다. 그리고 그 고통들을 극복하기 전에 팬들에게 누설하거나 누군가에게 토로하는 것은 매우 촌스럽다는 생각에, 감정을 작은 마음속에 집어넣게 되면서 부정적인 증상은 더욱 심화되었다. (중략) 아무리 노력해도 항상 웃는 얼굴만 있을 수는 없다. 그때의 나는, 그런 괴로움들을 극복할 수 있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생명의 차창에서 2}}}
2.4.2. 아라가키 유이와의 결혼 | <tablealign=center><tablewidth=560> |
2021년 5월 19일 배우 아라가키 유이와의 결혼을 발표했다 # |
배우란 힘든 직업이다.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남이 쓴 대사를 읊는다. (중략) 인기를 얻으면 주변사람들이 떠받들어 주면서 누가 주의를 주지도 않는다. 그런 환경 속에서 다른 경쟁 배우들과 밑도 끝도 없는 의자 뺏기 게임을 치열하게 되풀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정신상태로 '보통'의 감각을 지닐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기가 올라갈수록 정신은 고립되고, 분주함에 비례하여 에고 또한 비대해진다. 안 그려려고 노력해도 방자해지고 주변을 살피지 않게 된다. (중략) 점점 더 보통에서 멀어진다.
10대 때부터 활약해 온 그녀에게는 틀림없이 상상을 초월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으리라. 아마도 처음부터 지금과 같지는 않았을 터다. 그런 와중에 그녀는 일터에서 성취할 수 있는 성실함을 찾았고, 더 나아가 웬만한 배우들은 도달하지 못하는 '보통'이라는 상태를 스스로 손에 넣었다. (중략)
그래서 여기에 몰래 글로 칭찬하려고 한다. 부디 그녀가 크랭크업까지 이 글을 읽지 않기를.
당신은 정말로 근사한 보통 사람이야.
생명의 차창에서
아라가키 유이와는 2016년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에 함께 출연했으며, 이후 2020년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SP를 촬영할 때 재회한 것을 계기로 촬영을 모두 마친 후 결혼을 전제로 교제를 시작했다고 한다. 결혼 발표 회견은 별도로 하지 않았고, 결혼식이나 피로연 일정도 현재는 미정이다. 아직 입적은 하지 않았으며, 향후 시기를 보고 입적할 예정이라고 한다.#그러한 정신상태로 '보통'의 감각을 지닐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기가 올라갈수록 정신은 고립되고, 분주함에 비례하여 에고 또한 비대해진다. 안 그려려고 노력해도 방자해지고 주변을 살피지 않게 된다. (중략) 점점 더 보통에서 멀어진다.
10대 때부터 활약해 온 그녀에게는 틀림없이 상상을 초월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으리라. 아마도 처음부터 지금과 같지는 않았을 터다. 그런 와중에 그녀는 일터에서 성취할 수 있는 성실함을 찾았고, 더 나아가 웬만한 배우들은 도달하지 못하는 '보통'이라는 상태를 스스로 손에 넣었다. (중략)
그래서 여기에 몰래 글로 칭찬하려고 한다. 부디 그녀가 크랭크업까지 이 글을 읽지 않기를.
당신은 정말로 근사한 보통 사람이야.
생명의 차창에서
호시노 겐 결혼 발표 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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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노 겐, 아라가키 유이 연명 친필 코멘트 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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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노 겐은 자신의 에세이에서, 喜劇(희극)(2022)의 가사 일부는 아내인 아라가키 유이 및 그들의 반려견과 있었던 행복했던 순간의 일화를 가사로 담아낸 곡이기도 하다고 밝혔다.[14]
2023년 4월, 아라가키 유이가 메자마시 테레비에서 호시노 겐을 언급할 때 '남편'이라는 호칭을 써서 화제가 되었었던 적이 있다.[15] # 호시노 겐도 2023년 라이트하우스에서 아라가키 유이를 '아내'라는 호칭을 써서 언급했다.
2.4.3. 결혼 후
일본을 강타한 히트 드라마에서의 인연이 현실에서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까지 크나큰 화제가 되어 여러 이야깃거리나 일화들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나 호시노 겐의 에세이나 라디오에서 아내와의 일화가 종종 나오고 있다.- 결혼 발표 이후에 많이 나온 이야기 중에 하나는 사귀기 시작한 시점이 최소한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SP 촬영 종료 시점보다 더 이전이라는 이야기다. 참고로 2018년에 이미 호시노 겐이 아라가키 유이가 사는 맨션[16]으로 이사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호시노 겐이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2018년 이사 당시에는 아라가키 유이가 살고 있는 맨션이라는 것은 전혀 몰랐었다고 해명했다.#
- 두 사람이 2021년 5월 19일 결혼을 발표하면서, 비트코인을 포함한 암호자산 가격이 급락하여, 암호자산 시가총액 1조달러(당시 환율로 약 110조엔)가 순식간에 없어진 것으로 알려져 '각키 쇼크'라는 도시 전설이 생겨나기도 했다.[17]
- 이례적으로 닌텐도에서 공식적으로 결혼을 축하해주었다.[18] # 또한 닌텐도 뮤지엄 개관 전에 초대를 받아, 2024년 9월 25일에 부부끼리 닌텐도 뮤지엄 데이트를 했다고 한다.
- 호시노 겐은 자신의 라디오나 에세이로 아내의 허락을 받고 아내와의 일화 등을 가끔씩 언급하고 있다. 대부분의 썰이 마치 진짜로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에서 나올 법한 썰이기도 하다.
등등 여러가지 썰이 있다.
- 일본 유명인 부부 '공동 출연 CF 출연료' 순위에서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함께 남녀노소, 폭넓은 층에 지지받고 있으면서 결혼 후의 공동 출연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서 화제성은 물론 희소가치도 높다는 것이 그 이유. 참고로 1위는 오타니 쇼헤이, 다나카 마미코 부부다.
3. 음악
3.1. 본인 관련
- 가장 좋아하는 기타 코드는 Bb6/9라고 한다. #
- 본인보다 음악을 더 좋아하고 의욕이 넘치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한다. 영혼이 깎여져가도 음악이라는 것에 계속 매진해나가는 것을 아주 높게 평가하고 있다.
- 사운드클라우드에 이름을 밝히지 않고 다른 이름으로 곡을 만들어 가끔씩 올린다고 한다.
- 솔로 초기 시절, 본인이 직접 '목소리에 자신이 없고 많이 서투르다'라는 언급을 했듯이 라이브가 좋은 편은 아니었으나, 라이브 공연의 실력이 점점 일취월장했다. 당장에 恋(사랑)을 부른 2016년의 홍백가합전과 喜劇(희극)를 부른 2022년의 홍백가합전을 비교해서 보면 실력이 얼마나 많이 발전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19]
- 라이브 공연의 구성이 탄탄하고, 관객들을 위한 배려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거의 매번 니세 아키라를 출연시키고, 관객과 아주 가까운 곳에서 노래하는 2nd 스테이지 같은 것도 자주 한다.
- 공연, 특히 방송에 출연해서 노래를 부를 때 쩌렁쩌렁하게 "안녕하세요. 호시노 겐입니다!"하고 인사를 하는 버릇이 있다. #
- 2016년 9월 19일 「뮤직 스테이션 울트라 페스티벌 2016(ミュージックステーション ウルトラFES 2016)」에 출연했을 때 사회자 타모리가 "이어서 호시노 겐타군입니다!"라고 이름을 잘못 소개하자 장난기가 발동해 "호시노 겐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해서 큰 웃음을 줬다. 나중에 공식 트위터에서도 "호시노 겐타 출연 종료했습니다! 봐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라며 위트있게 대응했다.
{{{#!folding [ 사진 펼치기ㆍ접기 ]
- 공연할 때는 몸에 좋은 마누카 꿀 등을 비교적 그렇게 진하지 않게 뜨거운 물이나 미지근한 물에 타서 마시고 있다고 한다. 콘서트 도중에 차거나 시원한 물을 마시면 점점 염증이 강해져 버리기 때문에 목을 식히지 않기 위해 따뜻하게 한다고.
- 라이브를 밤에 할 때 그날 낮에는 '호시노 겐 전용 도시락'을 받아 먹는다고 한다. 항상 가는 밥집이 있는데, 거기에 개인적으로 '도시락을 만들어주세요'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소화도 잘 되고 양도 조절해준다고 한다.
- 라이브에서의 나레이션 대본은 스스로 직접 쓰고 있다.
- SAKEROCK 「회사원과 지금의 나」, 호시노 겐의「꿈 밖으로」등의 MV에서 춤추고 있는 아저씨는 이데비안 크루의 단장인 이데이다. 2001년, 호시노 겐은 이데비안 크루의 공연 「불일치」를 우연히 보고 충격을 받는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총 3번이나 보러 갔다고. 그 후, 호시노 겐은 이데비안 크루의 워크샵에 참가하거나 이데로부터 댄스 레슨을 받기도 하고 있었다.
- 노래방에 가면 엔카를 꽤 부르는데, 야시키 타카진의 なめとんか(나메톤카)와 やっぱ好きやねん를 자주 부른다고 한다. 부캐인 니세 아키라의 캐릭터성은 노래방에서 엔카 부르는 걸 좋아하는 호시노 겐의 특징에서 나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 2018년 2월 1일부터 한국에서 호시노 겐의 공식 유튜브 채널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링크 그런데 여기 올라오는 PV는 중간에 공연 DVD나 싱글 앨범 등에 대한 홍보 영상이나 코멘터리가 첨부된 것이 대부분이라 스트리밍 사이트 버전 음원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팬들 중에는 호시노 겐이 직접 코멘터리를 붙인 버전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
- 호시노 겐의 디지털 싱글 곡들을 제외하고, 싱글 및 정규 앨범의 '타이틀 곡 뮤직비디오'에는 앨범 광고가 들어갔다. 솔로 초기부터 계속 해왔는데, 1절이 끝나고 2절이 시작되기 전 중간에 광고를 끼워넣었다.[20] 그가 대중적인 히트를 치기 시작할 때도 여전히 중간에 넣었으나 분량은 예전보다 살짝 줄어들었다. 그의 유튜브 조회수가 낮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고 있으나,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손꼽아 기다리는 콘텐츠가 되었기도 하다. 2018년도인 Pop Virus부터는 곡이 전부 다 끝나고 그 이후에 광고가 약 2~3분 가량 등장하는 식으로 바뀌었으며, 2021년 발매한 싱글 12집에서부터는 발매 약 1~2주 전에 앨범 트레일러로 약 5분간 보여주는 식으로 광고가 뮤직비디오와 따로 분리되었다. 물론 뮤직비디오에서 곡이 전부 다 끝나고 나오는, 그의 개인 콘텐츠인 간단한 코멘터리는 여전히 계속 등장하고 있다.
- 2020년경 본인의 악곡이 SNS나 동영상 사이트에서의 댄스 동영상, 커버 악곡 등에서의 사용이 가능하다고 직접 밝혔다. #
- 2024년 초기에 라이브 공연 투어를 하고 싶다고 해도 대관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었다. 그래서 가능하면 여러 페스티벌은 나가고 싶다고.
3.2. 감상 관련
- 남이 좋아하는 '특정 음악 장르'를 폄하하거나 조롱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한다고 한다.
- 라디오 DJ 겸 진행자이며, 음악 프로그램을 여러가지 하기도 했고, 다양한 음악에 영향을 받은 뮤지션이다보니 재즈, 소울, R&B, 펑크, 힙합 등 블랙뮤직은 기본이고, 록, 8~90년대 대중가요, 외국 팝, 엔카, 일렉트로닉, 제이팝, 케이팝 등 다양한 여러 장르를 듣는다. 특히나 라디오에서 어떤 날에는 LP판을 이용하여 곡을 틀어주기도 한다.
- 호시노 겐이 선택한, 지금(2023년) 체험해봤으면 하는 재즈 플레이리스트 #
{{{#!folding [ 펼치기ㆍ접기 ]아티스트 앨범 또는 곡 The Big Four[21] オリジナル・ビッグ・フォア(오리지널 빅 포어) 토미 플래너건 Overseas The RH Factor Hard Groove 클리포드 브라운 & 맥스 로치 Study In Brown Clown Core Hell (곡, 소리주의) -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지상 BGM (곡) KNOWER Overtime (곡)
- 유년기 때는 음악 매니아인 부모님의 영향으로 여러 재즈와 소울을 듣고 자랐으며, 고등학생 때나 20대 때는 디안젤로, 마빈 게이, 짐 오루크, 제이 딜라, 라디오헤드, 넘버 걸, Fishmans, 윌코, 본 이베어 등의 아티스트들을 좋아했었다.
포붕이 출신인데 대중 팝으로 투메가 되어버렸다물론 유명해진 지금도 여전히 리스너로서 여러 아티스트들을 디깅하고 있다.
- 2019년 경에 자신의 라디오에서 리스너 입장의 음악 리터러시에 대한 생각을 언급한 적이 있다.리스너의 입장에서 제가 생각하는 '음악 리터러시'(음악 문해력)라는 것은, '단순히 뮤지션을 많이 알고, 음악 이론을 알고…'라든가, 그런 것이 아니고, 음악을 듣고 그대로 자신의 이미지를 부풀릴 수 있는 거예요.음악은 꽤나 정말 귀 근육이기도 한데요, (음악을 듣고) 자신 안의 이미지를 얘기해 주는, 예를 들어, '회색이고 모노톤인 차가운 이미지였는데 자꾸 듣다 보니 따뜻한 오렌지색 이미지로 바뀌었어요'라든가, '제가 태어나고 자란 이 거리가 생각났어요'라든가 '뭔가 대단한 바다가 보였어요!'라든가 '제가 어렸을 n살 때 그 느낌이 엄청 났거든요'라든가, '저의 그때 연애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런 거요. 그것이 저는 음악과 가장 순수하게 접하고 있는 리터러시라고 생각합니다.특정 음악을 접하고 감상을 말할 때 별로 저는 좋아하지 않는 것은, '그저 단순히 음악 전문가들처럼만 말해 버리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냥 전문가처럼만 얘기를 해버리는 사람들이 일본인들 중에서는 많아서요. (중략)지금의 사람들은 스스로 느끼기 전에, 예를 들어, 인터넷에서 평판 등을 먼저 보고, 자신이 느끼고 있는 생각이 모두와 다른 게 아닐까 불안하다고나 할까... 그런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 것 같다고 개인적으로는 느낍니다.호시노 겐의 올 나이트 닛폰 (2019) #
- 토미 플래너건의 'Overseas'라는 앨범에 대해, 모던 재즈의 스테디셀러 중 스테디셀러인데 팝하고 펑크나고 새로워서 좋아한다고 말했다.
- 어렸을 때 아버지가 하던 밴드의 공연을 자주 보러갔었는데, 엔딩곡인 Tadd Dameron sextet의 Our delight를 들으며 좋다고 느꼈었다고 한다.
- 10대 시절, 밤에 잠을 잘 수 없게 된 날이 계속되었을 때 키스 자렛이 아내를 위해 만든 앨범인 'The Melody at Night with You'를 부모님이 들려주셨는데 엄청 안심됐고 잘 수 있게 됐고 구원받았다고 한다.
- 톰 웨이츠의 데뷔 앨범 'Closing Time'에는 애틋하고 멋있는 곡들 뿐이라 엄청나게 좋아한다고 한다.
- 비틀즈의 곡 중 가장 먼저 좋아하게 된 것은 'Here, There and Everywhere'라고 한다.
- 중학생 때 판테라(밴드)의 I'm Broken이라는 곡을 듣고 이런 음악을 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 고등학생 때부터 힙합을 듣기 시작했다고 한다. 다만 이때는 외국힙합보다 스차다라파 같은 일본의 힙합을 들었었다고.
- 고2 때 호소노 하루오미의 'HOSONO HOUSE'를 듣고 나서, 계속 호소노 하루오미를 좋아했고, 泰安洋行(태안양행)이라는 앨범에 푹 빠졌었다고.
- 그에게 있어 호소노 하루오미는 '가장 신에 가까운, 매우 좋아하는 보통의 사람'이라고 한다.
- 고등학생 때 라디오헤드의 OK Computer(1997)라는 앨범을 계속 들었을 만큼 엄청 좋아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등학생 때 발표도 안 하고 공유도 안 하고 집에서 혼자 만든 곡들에 라디오헤드의 영향이 좀 많았다고.
20대 때 보컬의 꿈을 접은 이유가 있었다그래서 라디오헤드의 곡들을 들으면 자신의 청춘 시절이 생각난다고 한다.
-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기 싫은 아르바이트를 계속하면서, 눈앞이 캄캄했던 시절에 넘버 걸의 음악을 폭음으로 계속 들었다고 한다. 식비도 없다고 할 정도의 때에 필사적으로 돈을 모아서 그 밴드의 앨범만은 계속 사고 있었다고. 돈이 없어서 라이브도 못 가본 상태였었는데 넘버 걸이 해산해서 엄청 아쉬웠다고.
- 본인의 라이브에서 넘버 걸의 透明少女(투명소녀)를 히키가타리로 커버하는 경우가 많았다 (2012년 라이브)[22] 그 외에도 넘버 걸의 보컬인 무카이 슈토쿠와 같이 라이브 이벤트를 하기도 했었는데, 기타를 치며 같이 Iggy Pop Fan Club을 부르기도 했다.
- 2019년에 넘버 걸이 재결합한다는 소식을 듣고 엄청 기뻤다고 한다. 넘버 걸에 대해 '이후 겉모습만 따라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절대로 그것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 버린 대단한 밴드'라고 평하고 있다. #
- 조지 거슈윈을 엄청 좋아해서 한창 20대때 푹 빠진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가 메인 출연자인 호시노 겐의 음악 공론 2화가 조지 거슈윈에 관한 이야기다.
- 디안젤로를 좋아한다. 특히나 Voodoo(음반)를 엄청나게 좋아한다고 한다.
- 니나 시몬의 'I Loves You Porgy'는 지금도 듣는 자장가 같은 곡이라고 한다.
- 컨트리 가수 Peggy Seeger의 곡을 너무 많이 들어서 '내 피에 이 사람의 노랫소리가 섞인 것 같다'고까지 느꼈다고 한다.
- 오자와 켄지의 球体の奏でる音楽(구체가 연주하는 음악)을 들으며, 모던 재즈를 J-POP에 접목하는 균형감각이 엄청나고 대단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 오오타키 에이이치의 '후쿠오 스트랫'(앨범: NIAGARA MOON 수록)을 20대 초반에 매일 듣는 듯한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 CHAGE and ASKA를 너무 좋아하고, J-POP에 있어서 중요한 그룹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 UNICORN을 '일본 현대음악사에서 매우 중요한 밴드'라고 평하고 있다. '팝과 래디컬이 높은 수준에서 공존하고 있다. 정말 좋아한다'고 밝혔다. 록과 여러 나라음악에 하나 하지메와 크레이지 캣츠의 유머, 음악성, 그리고 쇼와의 음악 분위기를 융합하여 J-POP으로 잘 승화시킨 밴드는 UNICORN뿐이라고 평하고 있다.
- B'z에 대해 멋있는 사람들에 의한 멋진 곡인데 가사가 좋은 의미에서 이상하고, 인기 없는 인간에게만 알 수 있는 심리나 말이 가사에 있어서 정말 멋지다고 느끼고 있다고 한다.
- eastern youth와 스차다라파도 좋아한다. HIROSHIMA NO YANKEE의 사운드는 eastern youth를 생각하면서 '우리 표현으로 해볼 수 없을까'라는 생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 비치 보이스의 'Pet Sounds'라는 앨범의 'I Just Wasn't Made For These Times'라는 곡이 너무 좋아서 심야 전철 등에서 들으면 곡의 아름다움에 울어버린다고 한다. 가사 내용에도 울었다고.
- Wilco의 정규 6집인 'Sky Blue Sky'라는 앨범을 들으며, '요즘(2007년) 시대에 저런 소리를 내다니!'라고 느끼고, 너무 좋다고 느꼈다고 한다. URAWA-City는 Wilco가 생각나서 만들기 시작했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고.
- 자젠 보이즈의 정규 4집이 나오자마자 샀다고 한다.
- Bon Iver의 Bon Iver(음반)(2011)을 폭음으로 들으면 왠지 글이 좀 잘 써질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 브루노 마스의 24K Magic 음반을 좋아했었는데 결국 2017년에 브루노 마스와의 직접 대담이 성사되었다.
- 한신 타이거즈의 オマリーの六甲おろし(오말리의 Rokko Oroshi)라는 곡을 엄청나게 좋아해서 본인의 라디오에서도 꽤 자주 선곡하고 야마시타 타츠로, 타모리 등 여러 인물들과의 음악 대담에서도 종종 언급된다. 응원가 중 하나인데 처음 들었을 당시에 웃어버린 곡이라 좋아하게 되었다고.
- 2015년도에 가장 많이 들었던 곡은 아이돌 마스터 CINDERELLA PROJECT의 Shine!!이라고 한다. 올해(2015년)는 바빴는데 그런 본인에게 희망을 주었던 곡이라고. #
- Whitney의 Forever Turned Around 앨범을 비행기 안에서 들으며, 이런 앨범을 2019년에 들을 수 있어서 기쁘고, 좋아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 호시노 겐의 음악 공론 1화의 내용이 J Dilla 관련 내용인 만큼 그는 J Dilla한테서도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나 J Dilla가 트랙을 만들고 프로듀싱한 The Pharcyde의 Drop(1995)이라는 곡도 좋아했었다고.
- 누자베스를 좋아한다. 오겐상의 서브스크당에서 누자베스의 reflection eternal을 추천곡으로 틀며 소개해줬는데, 누자베스의 아버지가 좋아하셔서 파카나 굿즈를 호시노 겐에게 보내주었다고 한다. #
- 2015년도 쯤에 켄드릭 라마의 곡을 엄청나게 들었고 좋아하는 래퍼가 되었었다고 언급했었다. 특히나 To Pimp A Butterfly 앨범을 좋아하고 거기에 수록된 i를 엄청 좋아해서 들으며 계속 춤췄다고 한다. # 여담이지만, 2024년 드레이크 - 켄드릭 라마 디스전을 챙겨보고 재미있게 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Not Like Us)부터 보고는 '으악 큰일났다' 이런 식으로 더 이상 랩 게임이 아닌 것 같게 되어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고 한다.
- 프랭크 오션을 좋아한다고 한다. 라디오에서도 언급했으며 프랭크 오션의 인스타를 2023년인 지금까지도 팔로우하고 있다. 호시노 겐이 좋아하는 일부 곡들을 담은 플레이리스트에 프랭크 오션의 곡이 존재하기도 한다.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 등의 래퍼들의 곡들도 좋아한다.
- 라디오에서 카니예 웨스트의 팬인 것을 밝혔었다. 그의 곡을 들었을 때 인간의 본질적인 슬픔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논란되는 발언이 나올때마다 상당히 당혹스러우면서도 괜찮을까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한다. # 칸예의 여러 구설수 때문에 지금은 딱히 좋아하지는 않는 듯하긴 하지만.
- 차일디쉬 감비노의 This Is America 뮤직비디오와 악곡의 메세지가 굉장하다고 말하며 그에 대해 '물론 사회의 상황 같은 것도 전혀 다르지만 음악도 하고 배우도 하고 SNL에서 개그도 하고 등등 여러 일들을 공격적으로 계속 하고 있는 것들을 보고 개인적으로 굉장히 용기를 받았다'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
- 본인의 라디오에서 RASEN in OKINAWA 등의 국내힙합(일본힙합) 곡들도 가끔씩 선곡하거나 OZworld, JP THE WAVY 등의 래퍼들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한 걸 보면 지금까지도 국내힙합(일본힙합)을 종종 찾아듣는 듯 하다.
- 호시노 겐 본인의 음악 예능에서 NewJeans의 Super Shy라는 곡에 대해 좋다고 말하며 "트랙이 굉장히 조용하고 빠르지만 춤이 굉장히 공격적이고, 여러 시대의 여러 음악 장르 같은 걸 열심히 하고 있는데, 벌써 'NewJeans 소리'같은 느낌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 굉장하다"고 말했다. #
- 본인의 라디오에서 LE SSERAFIM의 이프푸# 와 CRAZY#에 대해 콘셉트와 곡과 안무가 좋다고 말한 적이 있다.
(참고)
4. 취미 및 미디어
4.1. 게임 / PC
- MOTHER 시리즈에 대한 애정이 강하고 본인의 창작활동에 있어서도 영향을 엄청나게 받았다고 한다. 시리즈 3작품 전부 했으며 다 명작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예술이 무엇인지도 잘 모를 때 이 게임을 하고 예술이란 무엇인지 감을 잡았다고. 오죽하면 나무위키 MOTHER 3 문서에도 그가 게임을 플레이한 후 남긴 감상을 볼 수 있을 정도다. 인디 밴드 시절 MOTHER의 BGM 중 하나인 Eight Melodies를 편곡하여 커버하기도 했다.
- 호러 게임과 리미널 스페이스 게임들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이야기했다. 본인의 라디오에서 OMORI, 두근두근 문예부!, 8번출구 등을 해봤다고 언급한 걸 보면 그 당시에 유행하는 공포 게임들은 거의 다 하는 모양. 재밌게 한 게임의 후속작도 기대하는지 8번 승강장도 해봤고 재밌었다고 언급했다.미우라 다이치: 최근에는 게임 할 수 있어요?
- 2012년 발매된 싱글 夢の外へ(꿈 밖으로)를 만들 때 호러 게임 유메닛키를 참고했다고도 한다.'꿈 밖으로'라는 말은 '꿈 같은 건 꾸지 말고 현실로 돌아와라'가 아니라 '꿈이나 허구 속에 있는, 당신만의 그 소중한 것을 현실로 데려오자'는 뜻입니다. 거기에 게임 '유메닛키'의 이미지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발상을 넓혀 만들었습니다.
- 게임 설명이나 공략 등을 읽지 않고 플레이를 시작해 발견과 놀라움을 즐기는 것이 좋다고 하며, 정해진 것 없이 아무거나 막 시도해볼 수 있는 자유도가 높은 게임들을 좋아한다고. 옛날에 패미컴 디스크 시스템을 친구에게서 빌려와 설명서를 읽지 않고 젤다의 전설(1986)을 한 그 경험이 되게 좋았었다고 한다. #
- 잠입 액션 게임들을 한창 플레이했을 때 숨지 않고 적을 보이는 족족 죽이는 방식보다는, 적에게 들키지 않고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한 명씩 기절 및 납치해나가고, 단 한 명의 마지막 적이 남았을 때 주변을 성대하게(?) 폭발시키는 정석적인 잠입 플레이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클리어해나가는 게 마치 적 입장에서 아군이 하나씩 사라져가는 호러 영화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고, 숨바꼭질 같은 두근거림과 즐거운 느낌을 준다고. 40대가 넘어가고 나서는
피지컬 이슈로예전만큼 많이 하지 않는다고 한다.
{{{#!folding [ 자세한 내용 펼치기 · 접기 ]
좌우간 숨는 걸 좋아한다. 적 거점을 한 군데 공략할 때, 일단은 적병 사이에 숨어서 천천히 시간을 벌고, 몰래 뒤로 접근한 뒤 상대방 겨드랑이 밑으로 양팔을 넣어 목덜미를 꽉 조른 다음 꼼짝 못하게 한다. 나이프로 위협하면서 다른 적병의 눈에 띄지 않는 곳까지 이동시킨 뒤, 거기에서 신문하고 자원 아이템과 포로, 기밀문서 등의 타깃이 있는 장소를 실토받는다. 그러면서 다른 병사의 위치마저 털어놓게 하고 기절시킨 다음에 풀톤을 회수한다.
만약 총을 쏘면 적 전체가 발포음을 감지하고 단숨에 경계 태세에 돌입하며, 적군의 경비도 늘어나서 총은 잘 쓰지 않는다. 소음기를 단 마취총으로 병사를 잠재우는 전형적인 공략법을 좋아한다.
그렇게 조용히 시간을 들여 적 진지에서 병사를 한 사람씩 회수한다. 적병의 수가 줄어드는 순간, 통신 기기를 망가트리면 그 파괴음 탓에 경계가 삼엄해지지만 어차피 바깥에 있는 병사에게 지원 요청을 못한다. "이상 발생! 지원을 부탁한다!"라고 애타게 부른들 응답이 없어서 그저 어쩔 줄 모르고 황망해하는 병사도 볼 수 있다.
그런 적들 한 명 한 명에게 몰래 접근해서 등 뒤에 총을 들이대고 손을 들게 한 다음 신문하고 정보를 캐내고 기절시키고 회수한다. 진지에서 적이 점점 사라지는 모습은 적병 입장에서는 호러 영화지만, 잠복해 있는 쪽에서는 유쾌하기 그지 없다.
최후의 병사가 남고 아무도 도와주러 올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성대하게 소리를 내면서 그 녀석 주변으로 총을 갈기거나 지면과 벽에 미리 설치해 둔 폭약을 폭파시켜서 깜짝 놀라게 하고 로켓포로 근처 건물을 공격하며 즐긴다.
"으악!"하고 당황해서 엉뚱한 방향으로 반격하거나 수차레 무전으로 도움을 요청해보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다. 그렇게 우왕좌왕하며 뛰어다니는 병사가 가여우면서도 썩 귀엽다. 그런 광경을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서 싱글벙글 바라본다. 뭐랄까, 다소 악취미적으로 게임을 즐기게 된다.
그마저도 싫증이 나면 천천히 적의 배후로 다가가서 기절시키고 회수한다. 적진에서 병사가 죄다 사라지면 '제압'이라는 글자가 화면에 뜬다. 적병을 한 명도 죽이지 않고 전부 회수하였을 때의 쾌감이란. 물론 더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도 얼마든지 있겠지만 숨을 죽이고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들키지 않도록 행동하는 공략법이 어린 시절에 처음 즐겼었던 숨바꼭질의 두근거림과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생명의 차창에서}}}
만약 총을 쏘면 적 전체가 발포음을 감지하고 단숨에 경계 태세에 돌입하며, 적군의 경비도 늘어나서 총은 잘 쓰지 않는다. 소음기를 단 마취총으로 병사를 잠재우는 전형적인 공략법을 좋아한다.
그렇게 조용히 시간을 들여 적 진지에서 병사를 한 사람씩 회수한다. 적병의 수가 줄어드는 순간, 통신 기기를 망가트리면 그 파괴음 탓에 경계가 삼엄해지지만 어차피 바깥에 있는 병사에게 지원 요청을 못한다. "이상 발생! 지원을 부탁한다!"라고 애타게 부른들 응답이 없어서 그저 어쩔 줄 모르고 황망해하는 병사도 볼 수 있다.
그런 적들 한 명 한 명에게 몰래 접근해서 등 뒤에 총을 들이대고 손을 들게 한 다음 신문하고 정보를 캐내고 기절시키고 회수한다. 진지에서 적이 점점 사라지는 모습은 적병 입장에서는 호러 영화지만, 잠복해 있는 쪽에서는 유쾌하기 그지 없다.
최후의 병사가 남고 아무도 도와주러 올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성대하게 소리를 내면서 그 녀석 주변으로 총을 갈기거나 지면과 벽에 미리 설치해 둔 폭약을 폭파시켜서 깜짝 놀라게 하고 로켓포로 근처 건물을 공격하며 즐긴다.
"으악!"하고 당황해서 엉뚱한 방향으로 반격하거나 수차레 무전으로 도움을 요청해보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다. 그렇게 우왕좌왕하며 뛰어다니는 병사가 가여우면서도 썩 귀엽다. 그런 광경을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서 싱글벙글 바라본다. 뭐랄까, 다소 악취미적으로 게임을 즐기게 된다.
그마저도 싫증이 나면 천천히 적의 배후로 다가가서 기절시키고 회수한다. 적진에서 병사가 죄다 사라지면 '제압'이라는 글자가 화면에 뜬다. 적병을 한 명도 죽이지 않고 전부 회수하였을 때의 쾌감이란. 물론 더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도 얼마든지 있겠지만 숨을 죽이고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들키지 않도록 행동하는 공략법이 어린 시절에 처음 즐겼었던 숨바꼭질의 두근거림과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생명의 차창에서}}}
- 게임들을 플레이하고 난 이후 본인이 진행하는 올 나이트 닛폰 라디오에서 평을 남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바이오하자드, 언더테일, 포탈, 콜 오브 듀티, 호라이즌 제로 던 등의 예시가 있다. 특히나 언더테일을 플레이하고 MOTHER 시리즈를 연상하며 '클리어하고 나서도 계속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그런 게임이었고, 굉장히 좋아하는 게임이 되었다'고 극찬했다. # 또한 퍼즐 게임 작품 'PORTAL 2'를 좋아해서, '왜 거기에 갇혀 있는가' 하는 수수께끼의 이유로 매우 우울했다고. 그 게임의 GLaDOS를 좋아한다고도 밝혔다. #
- 그의 에세이에서도 특정게임을 플레이하고 느낀 점을 글로 풀어놓을 때도 있다.
- 인터넷 라이브 토크 방송에서 팬들로부터 게임 플레이 방송을 한 번 해보는 거 어떠냐고 질문 받았으나, 게임 플레이 실력이 막 크게 좋지는 않고 혼자서 차분하게 즐기는 타입이라 게임 플레이 '방송'을 하는 것에 재능이 없을 것 같다고 답했다.
- Steam을 자주 이용하는데, 주로 인디 게임을 한다. 플레이하고 소감을 밝힌 것만 해도 OMORI, 두근두근 문예부! #, SIGNALIS, 미제사건은 끝내야 하니까 등이 있다. 부정적인 말을 잘 꺼내지 않는 호시노 겐 특성상 소감을 밝힌다면 그 게임이 최소한 재밌었다거나 인상깊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미제사건은 끝내야 하니까를 올 클리어(엔딩 2)를 했다면서 호평을 남기고# 제작자 SOMI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기도 했다.
- 오래전부터 닌텐도의 팬으로 유명했으며, 젤다 시리즈는 신작이 나오는 종종 (일이 없을 때) 플레이한다. 이 때문인지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35주년 테마곡 創造(창조)를 작곡하며 CF에 참여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을 발표하자, 배우자인 아라가키 유이 또한 발표 당시 모여봐요 동물의 숲 광고 모델을 맡고 있었어서 이례적으로 닌텐도에서 공식적으로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해주기도 했다. #
- 여러 게임을 불문하고 이루어지는 스피드런(RTA)나 여러 제약을 두고 플레이하는 영상들을 보며 '공식이 아닌 부분도 있겠지만 무한히 놀이 방법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 대단하고, 그래서 그 부분이 약간 힙합과 통한다는 걸 왠지 모르게 느끼게 된다'고 한다. #
- 메탈기어 솔리드 시리즈의 오랜 팬이다. 여러가지 게임 실황 영상이나 노코멘트 플레이 영상 등을 보는 것도 좋아해서 의식의 사람의 영상도 재밌게 보고 있었다고 한다. # 그렇다보니 메탈기어 솔리드 V 그라운드 제로즈의 오픈 무비를 코나미 사장 다음으로 보고 내용을 공표하지 않는다는 등의 확실한 서약서도 썼으며 코지마 히데오로부터 메탈기어 솔리드 V 그라운드 제로즈를 선물 받았다고 한다.
- 코지마 히데오와는 2012년 대담에서 처음 만났고, 게임에 대한 애정이 세간에 잘 알려져있다보니, 2021년에는 '게임 게놈'이라는 게임 교양 토크 프로그램에서 데스 스트랜딩을 주제로 한 회차에 코지마 히데오와 함께 출연했다.
- 주변에는 거의 미우라 다이치나 사쿠마 노부유키밖에 없을 정도로 다른 분야에 비해 게임 관련해서 공유할 수 있는 주변인물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느낀다고 한다. 특히나 공포게임은 더더욱 한정된 느낌이라고.
- 2022년 12월에 스팀덱을 샀다고 이야기했다. 작업이 막힐 때나 쉴 때 종종 한다고 한다.
- 2024년 8월, 코지마 히데오 생일 축하 겸 데스 스트랜딩 2가 곧 나와서 코지마 프로덕션에 견학을 다녀왔다고 한다. 전 세계 어디에도 공개되지 않은 것들을 보고 왔다고.
- 호시노 겐이 밝히기를 '우리 세대는 이미 그 컴퓨터 자체에 인격이 있다고 본다'고 한다.
이런 거 보면 아재 맞다
- 2023년 4월에 게임전용 PC의 GPU를 RTX 4070Ti로 바꿨다. 4090이 성능이 좋다고 해서 4090을 사려다가 PC 케이스가 꽤나 오래되어서 4090이 들어갈 만큼 그렇게 크지 않았다고 한다. #
- 2023~2024년 쯤에 PC(컴퓨터)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많아져서 여러가지를 알아보고 조사하고 있는 모양인지 라디오나 토크에서 간간히 컴퓨터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관련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자세하게는 모르고 초보자 겸 취미에 가까워서 청취자로부터 의견도 모으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 PCIe에 대한 개인적인 의문이나 이런 것들을 청취자들한테 물어본 적이 있었다. #
일단 모르는 사람들은 멍해진다
- 좋은 PC 케이스를 발견했어서, 좋은 사양의 커스텀 자작 PC를 만들어보고 싶어 여러가지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고 한다. 배우 일이 끝나고 2024년 3월 중순 새벽에 혼자서 만들기 시작했는데, 다 완성되고 아내한테 귀엽지 않냐며 자랑했다. # 한 번에 켜져서 정말 기뻤다고. 내부 모습은 YELLOW MAGAZINE+의 블로그식으로 간단하게 남긴 글에서 볼 수 있다. 다만 아직 초보자이고 취미인지 CPU 오류나 바이오스 업데이트 등에서 골머리를 앓았었다고 한다. #
- AMD의 최신 CPU인 ZEN 5의 RYZEN 9000 시리즈 발표회의 유튜브 라이브를 실시간으로 봤다고 한다. 첫 자작 PC는 인텔 코어 i 시리즈 14세대의 Core i7이었는데, 나중에 RYZEN 9000 시리즈를 사용한 PC를 새로 한 대 더 만들까 망설이고 있다고 한다. #
4.2. 만화/애니메이션
- 호시노 겐 본인은 서브컬처스러운 애니를 보는 것에 큰 거부감이 없는 듯하지만, 악곡 타이업을 하는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서브컬처적인 색채가 짙은 작품들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판타지를 가미한 일상물, 개그, 가족, 힐링 등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도라에몽, 스파이 패밀리, 오자루마루. 또한 더빙으로 참여하는 애니메이션 작품들도 비주류적인 작풍은 있을지언정 흔히 생각나는 서브컬처적인 색채와 전반적으로 멀다.
- 도라에몽을 어릴 때부터 엄청 좋아했다고 한다. 결국 2019년 10월부터 2024년 11월까지 매주 토요일에 방송되고 있는 도라에몽 애니메이션의 오프닝 곡을 담당했었으니 성공한 덕후가 되어버린 셈.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장문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도라에몽 TV ver. 오프닝
- 애니메이션을 정말 다시 좋아하게 된 계기는 러키☆스타(2007)라고 말한 적이 있으며 그 작품의 히이라기 츠카사 캐릭터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 외에도 교토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보면서 '역시 인간을 그리는구나' 하는 느낌을 자주 받아, 굉장히 감동을 먹는다고 한다. # 작품들 중 본인의 라디오에서 감상평 및 호평을 남긴 것들만 하더라도 러키☆스타, 울려라! 유포니엄, 빙과, 코바야시네 메이드래곤 # 등이 있다. 울려라 유포니엄을 볼 당시에 타나카 아스카 선배 생각으로 벅찼었던 적도 있다고. 그래서인지 울려라! 유포니엄 3(2024) 1화에 호시노 겐의 곡인 코이의 취주악 편곡 버전이 들어가기도 했다.[23]
- 상술한 교토 애니메이션 작품들 외에 애니메이션 SHIROBAKO를 엄청 좋아한다고 이야기하고 라디오에서 극찬을 남겼으며, 케무리쿠사는 작가성이 제멋대로 주장되는 게 아니라 잘 발휘되는 것 같아서 재밌게 봤다고 한다.
- 본인의 라디오에서 러키☆스타, 케모노 프렌즈 2, 시카노코노코노코코시탄탄 등의 주제가를 아주 가끔씩 선곡하는 걸 보면 아기자기한
미소녀애니메이션도 꽤나 선호하는 듯하다. 특히나 2024년 최근에는 시카노코노코노코코시탄탄 오프닝의 메탈 버전을 엄청 인상 깊게 봤다고.
- 소위 말하는 '배틀적인 애니메이션'에 푹 빠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 不思議(불가사의) 곡을 만들 당시 '심쿵한 러브송을 만들자'고 생각하고 그 심쿵 성분을 보충하기 위해서 스토리는 하나도 생각 안 하고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랑 타마코 마켓 애니메이션을 봤다고 한다. #
-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를 다 읽고, "이렇게 뿌린 씨앗을 제대로 회수하고 대단원을 맞이한 작품은 달리 모릅니다. 마지막권은 언제 읽어도 울어버립니다" 라고 극찬했다.
- 만화 귀멸의 칼날을 다 읽고, 애니메이션으로 보고 있을 때는 몰랐던 작가 분의 긍지와 마음가짐이 어느 컷에나 넘쳐나는 걸 느껴 애니메이션으로 보던 때보다 더 좋아졌다고 한다.
- 만화 원피스는 20대 중후반까지는 봤는데 그 이후로는 안 봐서 내용을 거의 다 잊어먹었다고 한다.
- 아이돌 마스터의 프로듀서(팬)으로도 알려져 있다.
진짜 프로듀서 출신 프로듀서2013년 세인트☆영멘에 출연했을 당시에 세인트☆영멘의 감독 타카오 노리코가 아이돌 마스터의 애니메이션에서 연출을 맡았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아이돌 마스터에 푹 빠져 후속 프로젝트로 전개되었던 신데렐라 걸즈까지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아이돌 마스터의 니시고리 아츠시 감독과도 친분이 있는 사이라고 한다. 본래 진짜 아이돌 그룹에도 별 관심이 없었지만 아이돌 마스터라는 작품에 등장하는 각종 악곡들이 단순한 캐릭터 송 정도로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훌륭한 퀄리티였고, 해당 성우들의 배역에 대한 애정, 제작진의 정성, 프로듀서 팬들의 성원, 그리고 이들 모두가 컨텐츠 공급자와 소비자의 벽을 넘어 한 데 어우러져 교감하는 것에 큰 감명을 받았던 모양이다. 라디오에서 아이마스 극장판을 보고와서 마스터피스에 대해 찬양하고, 10주년 라이브 관람[24], 데레애니, 데레스테 이야기를 하는 등# 아이마스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낸다.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마에카와 미쿠다. 가챠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한탄하기도 했고, 담당 성우인 타카모리 나츠미까지 본인이 진행하는 라디오의 게스트로 부른 적이 있다.# 게다가 안닌두부가 이런 그림까지 그려줬다. 그리고 2023년 2월 22일, 호시노 겐의 곡 코이(恋)가 데레스테에 마에카와 미쿠가 커버하여 들어갔다. ##
4.3. 드라마 / 영화 / 연기 / 콩트
- 일이 끝나면 못 본 영화랑 드라마를 상당히 몰아서 보기도 한다. #
- 울지도 못하고 웃는 것도 잘 못한,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는 절정의 고2쯤에 영화 도쿄 맑음(東京日和)을 보고, 댐이 무너지듯이 울었다고 한다. 영화가 끝나고도 극장 화장실에서 펑펑 울었다고.
- 2010년 쯤에 잡지에서 영화 감상 칼럼 연재를 한 적이 있다. 그 연재글들은 일하는 남자(2013) 책에서 일부를 볼 수 있다. 허트 로커, 싱글맨, 프레셔스, 더 로드, 어메이징 그레이스, 킹스 스피치 등의 영화들을 보고 난 후 칼럼을 작성했다.
- 여러 슈퍼히어로 영화를 종종 보는 듯 하다. 본인의 라디오에서 이스트레일 177 트릴로지, 데드풀, 에이전트 오브 쉴드, 블랙팬서, 어벤져스: 엔드게임, 조커 등을 보고 감상평을 남긴 적이 있다. 특히나 데드풀 2는 엄청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한다. 근본적으로 여러 곳에 굉장히 사랑이 숨어져 있고 연결되어있는 영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
- 아리 애스터 감독을 좋아한다고 한다. 아리 애스터 감독이 보 이즈 어프레이드 홍보를 하러 일본에 왔을 때 그 영화를 미리 보고 난 이후 직접 그와 영화에 대한 대담을 나눴기도 하다.[25] 영화들을 상당히 인상깊게 본 모양인지 그의 꿈 중 하나가 아리 애스터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 테드 래소를 본 이후 자신의 드라마 인생작 중 하나가 되었다고 언급했다. 특히나 '성공에 승패는 관계없다.선수가 플레이할 때도, 하지 않을 때도 최고의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것. 그게 성공이다'라는 대사에 상당한 충격을 받고, 본인과 연결시켜 결과라든지, 평판이라든지 그런 게 아니라, "지금 어떻게 행복할까? 지금 최고의 나로 있을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
- 배역으로 들어가는 작품 대본을 받아볼 때, 최종 단계의 대본(決定稿)에 이르기 전의 여러 구성이 많이 담긴 대본(準備稿)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 팬들로부터 '호시노 겐의 악역이나 사이코패스 역할을 한번 보고 싶다'고 꽤 종종 들었다고 하며, 호시노 겐 본인 또한 기회가 된다면 그런 역할을 해보고 싶은데 그런 배역이 들어오는 일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본인의 인터넷 라이브 방송에서 '이 라이브를 보고 있는 프로듀서 분들이 있으시다면 고려해주세요'라고 농담삼아 말하기도 했다. #
- 호시노 겐의 외적 인상이 뭔가 쎄한 악역에 나름 맞음에도 불구하고 악역 제의가 거의 들어오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호시노 겐'이 일본 여러 세대의 대중들에게 상냥한 이미지로 박혀있으며, 그와 동시에 호시노 겐이 여러 작품에서 찐따나 모태솔로 연기를 많이하다보니[26], 제의가 거의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호시노 겐 본인 또한 말하기를, '배우는 이미지가 생명'이라고.
- 호러 작품도 좋아해서 호러 영화에도 참여해보고 싶다고 한다.
- 첫 베드신 연기(2008년) 때는 엄청나게 긴장했다고 한다. 노골적인 장면이 몇 분간 나올 정도로 수위가 높을 뿐더러 매우 좁은 방이라 촬영 스태프들과도 거리가 엄청 좁아 스태프들이 기합이 들어가고 긴장하거나 진중한 모습도 볼 수 있었다고. #
- 콩트를 엄청 좋아해서 장례희망으로 콩트하는 걸 생각하기도 했는데 연기에 집중해야하고 음악도 해야해서 콩트까지는 팔을 안 뻗었다고 한다.
- 그래도 'LIFE ~인생에 바치는 콩트~'라는 NHK 콩트 프로그램에 2012년부터 2017년까지 고정크루로 계속 출연한 적도 있다.
- 그의 라디오에서도 '호시노 브로드웨이'라는 라디오 드라마 코너를 하고 있는데, 자주 콩트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예시
- 호시노 브로드웨이에서 한자와 나오키 패러디를 한 적이 있는데, 콩트 프로그램 경력이 있다보니 패러디도 꽤나 하는 편이다. (스포티파이 팟캐스트)
4.4. 인터넷 / SNS
- 최근(2024년) '신분과 얼굴을 밝히지 않는 뮤지션이 늘어난다'는 이야기에 엄청 부럽고, 본인도 하고 싶다고 농담삼아 언급한 적이 있다. 호시노 겐 본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완전히 다른 이름으로 지금까지 영상을 따로 계속 올리고 있는 유튜브 채널이 있는데, 엄청나게 재밌다고. 그 유튜브는 음악 쪽은 아니라고 한다.
- "인터넷 라이브 토크 방송 중에 엄청난 속도로 올라가는 코멘트들을 읽을 수 있는 동체 시력을 가지고 있다"고 스태프들로부터 평가받았다.
인방 재능충
- 쇼츠를 기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트렌드를 보기위해) 쇼츠를 볼 때는 노래 동영상 같은 걸 보고 싶어 다른 건 '표시 안 함' 같은 작업을 계속 하고 있는데 그래도 계속 같은 밈 범벅이 된다고.
- 일본에서는 인스타그램보다 X(트위터)가 일반적인 SNS지만, X(트위터)를 개인적으로 싫어하며 X(트위터)를 안 보고 안 하고 있다. 그곳에 올라오는 일부 내용들은 매니저를 통해 전달받고 있다.
- 인스타그램은 꽤나 활발하게 하는 듯하다. 다양한 릴스나 게시글에서 가끔씩 그의 좋아요를 볼 수 있다.
- 일본 내수용이 아닌 이상 인스타그램에 게시글을 올릴 때 일본어, 영어, 한국어, 중국어를 다 쓴다. 원래는 일본어랑 영어만 쓰다가 어느 순간부터 4개국어를 다 쓰기 시작했다. 실제로 한국팬들과 중국 + 대만팬들의 수가 꽤 있는 편이다. #
- 라이트하우스(예능)에서 "SNS에서 말하는 것은 자신의 본심 자체가 아니고, 남에게 보여질 가능성이 있는 것은, 자신의 본심 자체가 아니라 '표현'이라고 생각한다"라는 말을 꺼낸적이 있다.
4.5. 요리 / 책 / 라디오
- 20살~23살 때 이자카야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당시 요리를 어께너머로 보고 직접하며 요리실력이 조금 늘었다고 한다. 아르바이트가 2년 정도 되었을 때, 사장님이 만드는 방법도 알려주지 않고 특정 요리를 만들어보라고 계속 시켰었고, 혼도 꽤 났었다고. 자취할 때는 대충 먹었지만, 결혼 후에는 직접 장을 보고 재료를 준비해 아내한테 직접 요리를 해주기도 한다.
- 평소에는 머리가 복잡하고 여러가지 생각할 것들이 많지만, 재료들과 마주하며, 재료들을 자르고, 삶거나 볶고, 접시에 담는 그런 시간 동안에 마음이 차분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 요리에 대해 "피곤할 때일수록 하면 꽤 건강해지기도 한다", "요리를 하면 '(요리가) 이렇게 힘들구나'라고, 만들어주는 상대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
- 미소된장국에 먹다 남은 치킨을 넣어서 먹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한 국물 한 그릇이면 된다는 제안'이라는 책을 읽다가 된장국 만드는 방법 같은 것도 써 있어서 된장국을 계속 만들어 먹어봤는데, '무엇을 넣어도 좋다' 이런 식으로 써져있어서 전날 남은 프라이드치킨을 풀어서 넣었더니 너무 맛있었다고. #
- 밤에 잠들지 못할 때 호러소설을 읽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잘 잠들게 된다고. 스마트폰 책어플로 침대에서 읽는다고 한다.
- 본인의 에세이를 모아서 책으로 내놓는게 마치 자기 인생을 영화로 만든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 '라디오를 좋아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공언할 만큼 라디오를 엄청 좋아한다. 본인이 인기 라디오 DJ인 동시에 TBS 라디오 「라임스타 우타마루의 위크엔드 셔플(ライムスター宇多丸のウィークエンド・シャッフル)」[29]의 애청자이기도 했다. 2011년에는 이 프로그램에서 방송에 쓸 징글(jingle)을 공모했는데, 「슈퍼 음란 타임(スーパー・スケベ・タイム)」이라는 곡을 가명으로 만들어 우승했다. 2년 넘게 시그널 송으로 쓰는 동안 제작진도 이걸 응모한 사람이 호시노 겐이라는 걸 몰랐다고 한다. 비하인드 스토리
- 아즈미 신이치로에게 'TBS 라디오에서 레귤러 프로그램 하나 해보시지 않으실래요?'라고 들어서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TBS에서 임원급 대우를 받는 간판 아나운서고 대중적인 인지도도 꽤나 좋아 '그건 정치가 아닐까'라고 속으로 생각하는 동시에 되게 고마웠었다고.
4.6. 그 외
- 옛날에 AviUtl를 사용했었던 적이 있다.
- 공포 영화나 제작물이 무서운 것은 정말 좋아하지만, 여러 가지 일본의 심령 명소를 직접 가는 등의 실제는 정말 못한다고 한다.
- 애플을 좋아하는 듯하다. 에세이에서도 나왔으며, 2019년 경에 팀 쿡을 만나 밥을 먹은 적도 있고, 지금(2024년)까지도 아이폰을 계속 쓰고 있다.
- 여러 가지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도 굉장히 좋아한다고 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인 '힙합 에볼루션'을 굉장히 재밌게 봤다고. 힙합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저 그 장르가 그냥 좋은 것에 가깝고, 힙합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지식이 없고,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누가 레전드적인 존재인지, 어떤 사람들이 어느 지역에 있는지 잘 모르던 중에 굉장히 알기 쉽게 볼 수 있어 좋았다고 한다.
- 넷플릭스 예능인 라이트하우스를 찍기 전에, 넷플릭스에서 음악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얘기를 제안받은 적이 있었는데, 음악을 만들기까지의 과정 자체를 생생하게 여러 표현으로 보여주면 재밌지 않을까 싶어서, '연애 리얼리티 쇼의 음악판'같은 느낌으로 악곡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기획을 호시노 겐 본인이 냈지만 이 기획은 결과적으로는 없어졌다고 한다.
5. 한국에서의 별명
- 호시노 재석
사실상 한국의 여러 커뮤니티 네티즌들에게 있어서 호시노 겐의 가장 대표적인 별명이다. 2016년 일본을 강타한 히트작인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와 코이가 한국에도 상당히 많이 알려져, 작중 안경을 쓰고 나오는 호시노 겐의 모습이 유재석을 연상하게 해서 '호시노 재석'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그 이후에도 평상시에 닮았다기보다는 부캐일 때의 모습이 닮았다. # 유튜브와 구글에 호시노 재석을 검색하면 관련 검색 결과가 나올 정도. 같은 맥락으로 일재석, 호재석이란 별명도 가끔 사용된다.[30] 이와 관련하여, 우스갯소리지만, 호시노 겐이 일본의 대표적인 멀티 엔터테이너 중 한 명으로 자리잡았을 때 호시노 겐이 꽃미남은 아니지만 엄청나게 인기 있는 이유라는 칼럼이 나오기도 했다. 댄스 음악을 좋아하고 여러 곡을 가지고 있다는 점, 트로트를 부르는 부캐가 있다는 점, 그리고 일본의 여러 세대를 아울러 호감있는 대중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연예인으로도 비슷하다. 일본 지상파 예능에서 진행MC도 해봤기도 하다.무한도전 포즈도 가끔씩 한다고 카더라
- 성야원
호시노 겐의 이름에 들어간 한자의 한국식 발음 (星野源)
- 별의 근원
호시노 겐의 이름 자체가 이름을 일본어 훈독으로 읽으면 '별의 근원'이 되어, 팬들 사이에서 아주 가끔씩 나오는 별명이다. 일본에서도 가끔 '별의 근원'이라는 그의 이름이 예뻐서 회자되기도 하는데, 오조네 마코토는 2020년경에 호시노 겐에게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 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Origin of The Stars(별의 근원)' 라는 곡을 만들기도 했다.
- 호겐
일부 팬들 사이에서 '호시노 겐'을 두 글자로 줄여서 부르는 친근한 약칭.
- 최악의 일본인
한국에서도 유명했던 일본의 국민 여배우인 아라가키 유이와 2021년 결혼했을 때 생긴 별명으로, 팬들이 부른다기보다는 한국 남초 커뮤니티 등지에서 드립 및 밈으로 불리는 별명이다. 같은 맥락으로 '최악의 가수', '최악의 배우', '각키 도둑놈'이라는 별명도 있다. 한마디로 일본판 '대한민국 3대 도둑 중 하나인 비와 연정훈' 같은 장난성 드립과 밈.
- 브로콜리 형
2023년 경 한국 트위치에서 J-POP 이상형 월드컵이 한창 유행했을 때 생긴 별명으로, 전반적으로 노래가 복잡하면서도 건강해서 스트리머 룩삼의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브로콜리, 초장 안 찍고 그냥 먹어도 맛있는 브로콜리 같다"는 말에서 유래했다.
6. 한국 관련
호시노 겐이 한 것과 안 한 것 (트위터)이제는 진짜 내한만 안 하는 호시노 겐의 한국 접점 (디시)
우스갯소리로 '한국과 관련된 다른 건 다 했는데 내한만 안 한다'는 뉘앙스의 글이 여러 커뮤니티에 가끔 올라온다. 팬들은 나라불문하고 잘 챙겨주지만, 한국을 좋아한다거나 K-POP을 좋아한다고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는, 친한 성향의 연예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방면으로 접점이 많아졌기 때문. 오죽하면 '호시노 겐 주변인들은 다 내한했는데 호시노 겐만 안 한다'[31]는 글도 올라온다.
- 예전에 쿠니무라 준[32]에게 곡성 촬영 관련 일화를 들은 적도 있었고,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 등을 봤다고 한다. 한국에서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상으로 이미지가 좋은 친한으로 알려진 일본인 중 한 명인 마츠시게 유타카와는 나이 차이가 꽤 있음에도 친하게 지내는데, 그에게서 한국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들었었다고 한다.
- 2020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한국 R&B나 힙합 등을 찾아서 들어본다고 언급하기도 했었으며, 자신의 프로그램에서 프라이머리의 '~42' #, NewJeans의 Super Shy 등을 추천해주거나, 자신의 라디오에서 혁오의 LOVE YA!, BLACKPINK의 How You Like That, LE SSERAFIM의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 CRAZY 등 여러 한국 노래들을 선곡했다는 등 적지 않으며, 이후로도 스탠다드 프렌즈의 기리보이 영입 등 여러 한국 아티스트들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가끔 좋아요를 누르기도 한다.
- 유일하게 본인이 운영하는 SNS가 인스타그램인데, 2022년 한국 팬들이 만든 팬북을 받고 긴 한국어 감사 인사와 함께 인증샷을 올렸다. 인스타 링크 한국 팬들은 단순히 번역투가 아니라 검수받은 듯하고 북 에디터 메세지와 연결되는 진심이 담긴 장문의 한국어 글에 감동받은 경우가 많다.
{{{#!folding [ 팬북 에디터의 말 한국어 번역 전문 펼치기ㆍ접기 ]
겐상,
저는 사실 일본어를 잘 못합니다. 이 책도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만들고 있는데요. 그래서 수없이 듣던 음악의 가사를 번역을 찾아보고서야 뒤늦게 이해하기도 하고, 이해했던 가사도 보면서 듣지 않으면 금세 다시 잊기도 해요. 번역을 보면서 듣는다 할지라도 가사에 사용하신 표현의 정확한 느낌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 언어가 같은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모든 것들이 저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셈입니다.
그래서 꾸준히 저를 괴롭혔던 질문이 있습니다. 저는 부족한 감상을 하고 있는 걸까요? 겐상의 언어와 문화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겐상의 음악을 정말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지금은 제 나름의 결론이 있는데요. 어쩌면 저는 많은 부분을 놓치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 언어나 문화를 알아야 더 정확하고 깊은 이해가 가능한 부분들이 분명 존재하니까요. 그러나 언어는 부족할지라도 감상은 부족하지 않다고 믿습니다. 제가 놓치는 부분만큼, 저를 채워주는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완벽히 같은 감상이란 존재할 수 없고, 저의 감상은 저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나의 언어로 나의 나라에서 살아온 나의 삶에 겐상이 더해졌을 때 존재하는 특수한 감각과 경험이 있습니다. 예컨대 가사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음악을 듣다가 어느 날 찾아본 가사에 모든 게 맞아떨어지면서 전율이 느껴지는 건 일본어를 할 줄 아는 분들은, 심지어 겐상조차도 할 수 없는 경험이 아닐까요.
이 책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저처럼 일본어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부터 일본에서 살고 계신 분까지 꼭 일본에 대한 게 아니더라도 이들은 모두 다른 삶을 살아왔습니다. 한국인이라는 공통점 하에 모였지만 우리는 동질적이지 않습니다. 겐상도 아시겠지만 외국인은 특히 타자화되기 쉬운 존재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책에 참여한 사람들이 '외국인 팬들'이라는 하나의 덩어리보다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개별의 사람들로 비치길 바랍니다. 물론 국적이 안겨주는 공통점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내부에 있는 저보다는 책을 읽는 겐상의 눈에 더 잘 보일 수도 있겠네요.
이들은 팬으로서도 겐상을 좋아하게 된 계기부터 가장 좋아하는 곡, 좋아하는 드라마의 장면, 좋아하는 이유나 방식까지 모두 달라요. 그리고 이건 아마 겐상이 개개인의 고유성을 존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겁니다. '남들이 싫어하는 걸 좋아해도 좋고, 남들이 좋아하는 걸 좋아해도 좋다'고 말해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있으니까요.
연예인과 팬의 관계는 특수합니다. 나는 그를 알고, 그는 나를 모르고, 나에게 그 사람은 한 명이고, 그에게 팬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겐상을 떠올릴 때면 저는 오히려 저의 고유성을 느끼게 됩니다. 기분 좋은 이상함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우열 없는 각자의 삶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겐상을 좋아하고 응원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는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과 '나'이기 때문에 특수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을 모두 담으려 했습니다. 부디 모두 전해지길 바랍니다.
먼 곳도 이어져 있어요!}}}
저는 사실 일본어를 잘 못합니다. 이 책도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만들고 있는데요. 그래서 수없이 듣던 음악의 가사를 번역을 찾아보고서야 뒤늦게 이해하기도 하고, 이해했던 가사도 보면서 듣지 않으면 금세 다시 잊기도 해요. 번역을 보면서 듣는다 할지라도 가사에 사용하신 표현의 정확한 느낌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 언어가 같은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모든 것들이 저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셈입니다.
그래서 꾸준히 저를 괴롭혔던 질문이 있습니다. 저는 부족한 감상을 하고 있는 걸까요? 겐상의 언어와 문화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겐상의 음악을 정말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지금은 제 나름의 결론이 있는데요. 어쩌면 저는 많은 부분을 놓치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 언어나 문화를 알아야 더 정확하고 깊은 이해가 가능한 부분들이 분명 존재하니까요. 그러나 언어는 부족할지라도 감상은 부족하지 않다고 믿습니다. 제가 놓치는 부분만큼, 저를 채워주는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완벽히 같은 감상이란 존재할 수 없고, 저의 감상은 저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나의 언어로 나의 나라에서 살아온 나의 삶에 겐상이 더해졌을 때 존재하는 특수한 감각과 경험이 있습니다. 예컨대 가사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음악을 듣다가 어느 날 찾아본 가사에 모든 게 맞아떨어지면서 전율이 느껴지는 건 일본어를 할 줄 아는 분들은, 심지어 겐상조차도 할 수 없는 경험이 아닐까요.
이 책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저처럼 일본어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부터 일본에서 살고 계신 분까지 꼭 일본에 대한 게 아니더라도 이들은 모두 다른 삶을 살아왔습니다. 한국인이라는 공통점 하에 모였지만 우리는 동질적이지 않습니다. 겐상도 아시겠지만 외국인은 특히 타자화되기 쉬운 존재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책에 참여한 사람들이 '외국인 팬들'이라는 하나의 덩어리보다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개별의 사람들로 비치길 바랍니다. 물론 국적이 안겨주는 공통점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내부에 있는 저보다는 책을 읽는 겐상의 눈에 더 잘 보일 수도 있겠네요.
이들은 팬으로서도 겐상을 좋아하게 된 계기부터 가장 좋아하는 곡, 좋아하는 드라마의 장면, 좋아하는 이유나 방식까지 모두 달라요. 그리고 이건 아마 겐상이 개개인의 고유성을 존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겁니다. '남들이 싫어하는 걸 좋아해도 좋고, 남들이 좋아하는 걸 좋아해도 좋다'고 말해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있으니까요.
연예인과 팬의 관계는 특수합니다. 나는 그를 알고, 그는 나를 모르고, 나에게 그 사람은 한 명이고, 그에게 팬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겐상을 떠올릴 때면 저는 오히려 저의 고유성을 느끼게 됩니다. 기분 좋은 이상함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우열 없는 각자의 삶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겐상을 좋아하고 응원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는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과 '나'이기 때문에 특수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을 모두 담으려 했습니다. 부디 모두 전해지길 바랍니다.
먼 곳도 이어져 있어요!}}}
- 2019년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도쿄 돔 콘서트 실황이 (곡 가사까지 포함하여) 한국 자막은 있으나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2023년 8월에 드디어 한국 넷플릭스에 풀렸을 때도 한국어 게시글을 올렸다. 인스타 링크
- 라디오에서도 가끔씩 한국 팬들이 보내준 사연을 읽어주기도 한다. 예시
- 한국 일러스트레이터나 한국 디자인 스튜디오와도 협업한 적이 있다. 에세이 '생명의 차창에서'의 문고판 버전 표지 및 '생명의 차창에서 2'의 표지는 한국의 일러스트레이터인 변영근이 담당했었으며, 2023년 말~2024년 YELLOW MAGAZINE+의 이어북 및 새로운 로고는 한국의 디자인 겸 출판 스튜디오인 PRESS ROOM(프레스룸)이 담당했다. 호시노 겐에게 있어 해외 디자인 팀과의 협업 프로젝트는 이것이 첫 도전이었다고. PRESS ROOM의 대표 및 그래픽 디자이너인 양지은의 인터뷰(멤버십 가입 필요) 또한 YELLOW MAGAZINE+에 수록되어있다.
- 한국 인디 게임 개발자인 SOMI가 만든 미제사건은 끝내야 하니까를 올 클리어(엔딩 2) 했다면서 호평을 남기고# 제작자 SOMI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기도 했다.
- 2023년 기습 인스타 라이브에서는 한국 팬들의 코멘트를 언급할 때 "한글(ハングル)로 코멘트 써주시는 분들이 꽤 있네요 감사합니다"식으로 언급했었으며 # 光の跡(빛의 흔적) 뮤직비디오 공개 전 간단 유튜브 생방 토크에서는 '저번 인스타 라이브 때도 그렇고 한글 코멘트가 최근 들어 상당히 많이 보인다'고 언급하며 짧게 감사인사를 남기고, 어느 한국 팬들이 일본어로 적은 댓글을 캐치하여[33] 방송에서 읽어주고 감사인사를 남기며 '이키타이'(가고 싶어요)를 언급하기도 했다. #
2009년에 출판된 에세이인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에 북한이 아주 짧게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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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집합체로 집단이나 조직은 형성된다. 아무리 결속력이 강한 수단이라도 얼굴도 목소리도 사고방식도 모두 다르다. 설사 북한 퍼레이드처럼 아무리 짜여져 보여도 하나가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인 '많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남녀도 하나가 될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둘이다.
집단 속에 오래 있으면 자연스레 '일치단결해야 한다'라고 느낀다. 그 집단이 진취적이면 진취적일 수록 연대감을 중시하며 '전원이 한 방향을 향해야 한다'는 사상으로 기운다. 전원을 통솔하는 리더가 생기고 인원수가 늘어나면, 대인원을 관리하는 규칙이 생기고 그 집단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틀'이 완성된다. 그리고 그 틀을 조금이라도 벗어나거나 삐져 나오면 따돌림을 당하고, 거기서 쫓겨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서둘러 그 틀 속에 몸을 던져 집단과 함께 '하나'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것이 일본 사회에서 생겨난 집단의 기본적인 '화목(和)'의 기본 구조이다.
그러나 역시 그건 답답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모두가 제각각이라고 해도 뭐가 어떤가. (중략)
정말 우수한 집단이라는 것은 아마 '하나로 있는 것을 지속시킬 수 있는' 사람들보다 '모두가 다른 것을 생각하면서 지속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집단 속에 오래 있으면 자연스레 '일치단결해야 한다'라고 느낀다. 그 집단이 진취적이면 진취적일 수록 연대감을 중시하며 '전원이 한 방향을 향해야 한다'는 사상으로 기운다. 전원을 통솔하는 리더가 생기고 인원수가 늘어나면, 대인원을 관리하는 규칙이 생기고 그 집단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틀'이 완성된다. 그리고 그 틀을 조금이라도 벗어나거나 삐져 나오면 따돌림을 당하고, 거기서 쫓겨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서둘러 그 틀 속에 몸을 던져 집단과 함께 '하나'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것이 일본 사회에서 생겨난 집단의 기본적인 '화목(和)'의 기본 구조이다.
그러나 역시 그건 답답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모두가 제각각이라고 해도 뭐가 어떤가. (중략)
정말 우수한 집단이라는 것은 아마 '하나로 있는 것을 지속시킬 수 있는' 사람들보다 '모두가 다른 것을 생각하면서 지속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 그가 졸업했던 학교[34], '호시노'라는 성[35], 한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귀 모양 및 인상, 한국적인 패션 등으로 인해 일본 인터넷 내에서 재일한국인 설이 돌기도 했었던 적이 있다. 사실 일본 내에서의 재일한국인 설은 여러 일본스타들에게 종종 일어나는 일이고[36], 당연하게도 호시노 겐은 외국 유학도 다녀오지 않은 일본인이다.
- 멜론, 네이버뮤직, 벅스뮤직 등 한국 스트리밍 사이트에서는 2013년 발매곡까지만 업데이트 되어있어서 최신곡인 「ドラえもん(도라에몽)」, 「アイデア(아이디어)」는 물론 「恋(코이)」, 「Week End」, 「SUN」 등 호시노 겐하면 바로 떠오르는 히트곡도 감상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2019년에 스트리밍이 시작되었다.
- 한국에서 서비스되는 네이버뮤직과 벅스 뮤직은 호시노 겐의 장르를 J-POP과 J-ROCK으로 분류해놓았고, 멜론에는 호시노 겐의 장르가 J-POP이랑 랩/힙합으로 분류되어있다. 상당히 이례적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그의 곡들은 록적인 색채가 풍길 때도 있고, 힙합적인 색채[37]가 풍길 때도 있어서 그다지 특별한 일은 아니다.
7. 여러 인물들과의 일화 및 접점
- 배우인 이쿠타 토마와는 2006년 아키하바라@딥이라는 드라마에서 처음 만나 연기 호흡을 맞췄는데, 이후로도 같이 사적인 여행을 둘이서 다녀온 적이 있을 정도로 친한 사이라고 한다. # 호시노 겐이 3살정도 더 많은데 이쿠타 토마 쪽이 형같은 느낌이라고. 라디오에 게스트로도 종종 나온다.
- 호소노 하루오미와는 2000년대인 SAKEROCK 때부터 만났는데, 호소노 하루오미는 호시노 겐의 솔로 데뷔를 추천해주기도 했고, 그 이후 지금까지도 호시노 겐과 호소노 하루오미의 관계는 사제지간이자 친구로서 계속되어오고 있으며 대담도 여러 번 했다.
- 사카낙션의 보컬&기타인 '야마구치 이치로'와는 오래된 친구사이라고 한다. 두 명이 엮여서 그들의 그룹에서 이름을 따온 'サケノサカナ(사케노 사카나)콤비'로 불렸었던 적도 있고, 2011년 ~ 2013년 쯤에는 두 명이서 같이 유스트림에서 인터넷 방송을 하기도 했었다. #
- 드라이브 마이 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등의 여러 영화 오리지널 스코어를 담당한 음악가 이시바시 에이코와 친한 사이다. 이시바시는 호시노 겐이 솔로로서 무도관 공연을 한 2014년도부터 호시노 겐의 앨범 레코딩 및 코러스 어레인지와 라이브 공연에 자주 참여하고 있다. 이시바시는 인터뷰에서 "귀중한 경험이 되고 있네요. 겐씨와의 다양한 활동은 제가 설마 볼 줄은 몰랐던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습니다. 너무 감사드려요. 겐씨는 제가 처음 참가한 2014년 홀 투어에서 아무리 라이브의 규모가 커져도 '혼자'라는 축이 바뀌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끼는 것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전해지기 때문에 함께 연주할 때나 이야기할 때는 매우 안정감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2024년인 최근에는 호시노 겐이 언급하기를 이시바시 에이코가 음악적으로든 인지도적으로든 점점 유명해지고 있는 추세라 이시바시 에이코의 시간이 줄어들어 이전처럼만큼 같이는 많이 활동을 못하고 있다고 한다.
- 댄서인 미우라 다이치와도 엄청나게 친하다. 호시노 겐이 말하기를 '나의 스위치를 꺼도 되는 사람'이라고. '게임'이라는 취미도 공유하고 있어서 예전에 폴아웃 76을 같이 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 간단한 접점까지 포함하면, 일본 및 한국의 아이돌들과 접점이 많기도 하다. 호시노 겐 본인도 여러 아이돌을 좋아하기도 한다.
- 인디 및 비주류 음악 씬에서 약 10년(2001~2011) 동안 활동했어서, 그 당시에 접점이 있었던 여러 아티스트들이 많다. 호소노 하루오미부터, YUI, 넘버 걸의 무카이 슈토쿠, 스차다라파[38], EGO-WRAPPIN', eastern youth, UNICORN의 오쿠다 타미오 등. 지금(2023년) 호시노 겐의 밴드 구성 중 일부도 petrolz라는 일본 인디 밴드 멤버들 중 일부가 하고 있다.
왼쪽부터 YUI, 무카이 슈토쿠, 호시노 겐
- 일본의 인디 레이블 겸 소속사인 KAKUBARHYTHM에 약 10년정도 소속되어있었는데, 이후 아뮤즈라는 큰 곳으로 소속사를 옮겼어도 KAKUBARHYTHM에서 만난 일부 뮤지션들과의 인연들은 현재(2024년)까지도 여전히 이어나가고 있다.
- 결혼 전까지 CM, 뮤직비디오 등을 포함한 상대배역 운도 꽤 있었던 편이었다. 아라가키 유이는 물론이고, 하시모토 칸나, 하마베 미나미, 요시오카 리호, 니카이도 후미, 코마츠 나나, 카호, 오구리 슌, 아야노 고 등이 그 예시.
- 유명 가부키 배우이자 명문가 일원인 2대 나카무라 시치노스케와 절친한 사이다. 이는 2대 시치노스케의 아버지인 18대 나카무라 칸자부로의 영향이라 한다. 호시노 겐은 칸자부로를 보며 인생의 많은 것을 느껴, '化物(도깨비)'이란 곡을 작사 작곡하기도 했고, 칸자부로의 소개로 그의 아들들인 6대 나카무라 칸쿠로와 2대 시치노스케를 만나 헤이세이 나카무라자를 구경하기도 했다. 호시노 겐이 아라가키 유이와 결혼하자, 부부가 함께 나카무라자의 가부키 공연에 초대받기도 했다고 한다.[39]
- 아라시의 마츠모토 준이 시치노스케에게 호시노 겐을 소개해 달라고 해서 마츠모토 준과 호시노 겐이 어느 바에서 만나게 되었다는 일화도 있다. 호시노 겐이 아라시니시야가레에 출연했을 때도 마츠모토 준을 준군이라고 부르는 등 아라시의 다른 멤버들보다는 친분이 꽤 많은 모양.
- 2017~2018년도쯤 방탄소년단의 뷔가 좋아하고 같이 공연해 보고 싶은 일본 가수로 호시노 겐을 꼽았었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를 전부 시청하고 호시노 겐의 곡을 들었다고 언급했다. 호시노 겐 또한 본인의 라디오에서 이와 관련된 사연을 듣고, 음악방송을 같이 할 기회가 있었을 때 태형 군이 본인의 대기실에 와서 인사하고 간단한 이야기를 했다는 일화를 남겼다. "팬입니다. 니게하지(도망부끄) 전부 다 봤습니다"라는 말에 기뻤다고. 여담이지만, 호시노 겐은 방탄소년단과 관련해서는 DNA의 도입부[40]를 좋아한다고 한다. #
- 2019년 경, 요네즈 켄시랑 실제로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공통으로 아는 지인이 몇 명 있는데, 그 지인들한테 요네즈 켄시가 호시노 겐을 만나고 싶어한다는 말을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 기회되면 만나보고는 싶은데 딱히 이렇다 할 접점이 없을 때, 스다 마사키가 요네즈에게 말해둔다고 언급하여 연말에 사적으로 만나서 방송으로 할 수 없는 여러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고 한다. 공식적으로는 결국 2020년 MIU404로 아티스트와 배우로서[41] 만나 스폐셜 토크를 찍었고, 그 이후로 요네즈 켄시가 호시노 겐의 라디오에 2번 정도 게스트로 나와 음악 이야기 등 서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각자의 곡들 중 좋아하는 곡들을 꼽기도 했는데, 호시노 겐은 춘뢰를 좋아하고, 요네즈 켄시는 さらしもの(사라시모노)와 地獄でなぜ悪い(지옥이 뭐가 나빠)를 좋아한다고 한다. #
- 2019년, Official髭男dism의 첫 홍백가합전 출장 때 호시노 겐과 히게단 멤버들이 인사를 나눴는데, 드럼 포지션의 마츠우라 마사키와 베이스, 색소폰 포지션의 나라자키 마코토는 떨려서 굳었었다고 한다. 특히나 마츠우라 마사키는 2022년 6월 23일 SONGS에 출연했을 때 '드럼 연주 스타일은 호시노 겐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저에게 있어서 엄청난 스타같은 존재'라고 다시 언급할 만큼 호시노 겐의 엄청난 팬이라고 한다. 또한 호시노 겐과 후지하라 사토시는 서로 같이 음악 대담을 나눴기도 하다.
- 일본의 힙합 그룹 Creepy Nuts와는 라디오 때문에 접점이 종종 생겼다.[42] 서로의 라디오에서 꽤 간간이 언급되었기도 하고, 호시노 겐이 Creepy Nuts의 라디오 현장에 갑자기 난입하여 이야기를 간단하게 한 경우도 있었으며, 호시노 겐의 올 나이트 닛폰에 Creepy Nuts가 게스트로 나오기도 했다. 호시노 겐이 결혼을 발표한 이후에 밝히기를, Creepy Nuts로부터 돔 페리뇽 2병을 선물받았다고 한다.
- YOASOBI와는 라디오 방송 콜라보를 여러 번 했었거나, 음악방송에서 같이 SUN을 부르는 등 지금까지 접점이 종종 생겼다. 2021년 당시 호시노 겐 본인이 느낀 이쿠타 리라의 매력과 캐릭터를 자신의 라디오에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 결혼 발표 이후 YOASOBI는 호시노 겐에게 꽃다발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2021년 NHK 홍백가합전 엘리베이터에서 조우해서 호시노 겐이 그들에게 어떻게 해를 넘기는지 물어봤는데, Ayase가 ikura와 둘이서 새해 점프를 한다고 전하자 호시노는 나도 점프를 같이 한번 해보고 싶다고 대답했다. # 2022년에는 요아소비가 홍백에 출전하지 못하여 같이하지 못했으나, 2023년 홍백가합전에서 드디어 조우하게 되어 인스타그램에 2024년 새해 점프 릴스를 올렸다.
그리고 조회수 2000만 이상을 돌파했다그리고 오겐상의 서브스크당에 요아소비가 나오기도 했다.
- 일본의 배우인 아소 쿠미코가 호시노 겐의 광팬이라 # 같이 MIU404 촬영할 때 촬영 당시에는 괜찮으나, 촬영이 끝나고 난 이후 MIU404와 관련된 다른 일을 할 때 당사자가 옆에 있어 쑥스러워하면서 '정말로 얼굴이 이상해져 버린다'고 말한 적이 있다. #
- 스파이 패밀리의 아냐 포저 성우를 담당한 타네자키 아츠미가 호시노 겐의 왕팬이라 스파이 패밀리 특집으로 호시노 겐의 라디오에 나왔을 때 호시노 겐의 눈을 못 마주치고 엄청나게 긴장했다고 한다. #
- 일본의 가수인 아노가 2023년 '올 나이트 닛폰 제로'의 화요일 퍼스널리티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때 호시노 겐과 첫 대면을 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후에 ano는 관련 일화를 남겼는데 "(호시노 겐님 같은) 저런 예쁜 눈은 본 적이 없어요. 아마 한 번도 체포되지 않았을 거에요"라고 극찬했다. #
어?[43] 호시노 겐이 아노의 라디오에 갑자기 난입하여 간단한 이야기를 같이 하기도 했다. #
- 여러 게닌 콤비나 MC, 코미디언들과 접점이 많다. 바나나맨과는 이미 아주 잘 알려진 친한 사이[44]고, 오도리의 와카바야시 마사야스와는 2021~23년들어 접점이 늘어나고 있다. 콩트 프로그램에 고정출연했다보니 거기에 나왔던 여러 코미디언들이 호시노 겐의 콘서트에 특별 축하 영상을 보내줬었던 적이 있기도 하다. 바카리즈무와는 같이 스페셜 토크를 나누는 광고를 찍기도 했다.
- 일본의 국민 MC중 한 명인 타모리와 접점이 종종 있었는데, 타모리는 恋(사랑)의 가사를 극찬하기도 했고, 올 나이트 닛폰 55주년 기념으로 서로 만나서 음악 담론을 심도있게 나누었다. #
- 2019년 오샤레이즘이란 방송(MC는 크림시츄의 우에다 신야)에서 에어소프트건이 취미라고 밝히며 구매인증도 한 걸 보면 에어소프트건에도 관심이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유튜버인 맥 사카이를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해서 방송에서 초대해주고 선물도 받는 등 성덕인증을 했다.
- 성우인 야스모토 히로키와 오랜 친구사이라 한다.
- 드라마 이다텐 ~도쿄 올림픽 이야기~ 출연 당시에 캐릭터가 영어를 하는 역이다 보니 영어 강사를 두고 공부를 했는데 같은 강사 밑에서 배우던 마피아 카지타와 인연을 맺어 친한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카지타가 출연하는 와샤가나TV의 2021년 2월 18일 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위의 글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덕력이 꽤 있는 사람답게 함께 출연하는 나카무라 유이치의 생일을 알고 있다거나[45] 플레이 하는 게임인 몬스터팜에 사용할 CD를 고르면서 덕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2021년 2월 25일 스기타 토모카즈와 마피아 카지타가 DJ를 맡고 있는 아니게라디둔에도 출연하였다.
8. 이야깃거리
8.1. 블랙뮤직과 J-POP
{{{#!wiki style="margin: -20px -10px -17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2CB05> | 여러분은 호시노 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그는 캐치함을 구실로 한 변태 뮤지션, 말하자면 센스 덩어리다. 일본과 서양을 불문하고 여러가지 음악을 흡수해, 그것을 제대로 팝에 담아내는 뮤지션. 누구나 하고 싶어도 잘 할 수 없는 것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뮤지션은 대부분의 경우 일반인보다 더 많은 음악을 듣고 있다. 재즈, 클래식, 펑크, 일렉트로니카, 민족음악 등등. 그리고 그걸 그대로 아웃풋하고, 결과적으로 팔리지 않는 패턴이 대부분이다. 일본과 해외는 음악적 토양이 전혀 다르고, 대다수의 뮤지션들은, '해외에서는 저렇게 센스 있는 음악이 팔리고 있는데 왜 일본에서는 아직까지 이해되지 않는 것일까?'라고 대체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 재즈나 클래식, 일렉트로니카 등을 일본에서 이해되는 팝에 담아내면 된다. 그런데 그걸 대중적으로 히트시키기는 정말 어렵다. 그러나 호시노 겐은 그것을 계속 해 버린다. 일본인 누구나 마음을 여는 멜로디를 만들어 내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을 흥분시키는 어레인지를 넣어 오는 것이다. 호시노 겐의 최강 시대가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되었던 참에 출현한 것이 요네즈 켄시. 여기서부터는 이들의 신곡에서 눈을 뗄 수 없다. (후략) |
{{{#!wiki style="margin: -20px -10px -16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2CB05> | POP VIRUS 앨범은 "'음악적으로 실험적인 노래'는 대중이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단순한 변명으로 만들었다. |
'블랙뮤직을 흡수하거나 차용하거나 해서 고유의 음악적 정체성으로 구축하는, 일본 비주류 및 인디음악씬에서 왕성하게 불고 있던 움직임'에 호시노 겐 또한 그 일원이었다. 그보다 더 뛰어난 음악성을 가진 음악작품들은 엄청나게 차고 넘치지만, 호시노 겐은 '옐로우 뮤직'이라는 개념을 앞세워, 기존 블랙뮤직에서 그만의 필터를 통과시켜 독자적인 해석을 가미한 동시에 일본의 대중음악 및 상업음악적 색채까지 적절하게 추가하여 일본의 일반 대중들과 매니아적인 음악팬들을 모두 고려한 최대공약수적인 음악을 개척해나갔다.
2011년 싱글 1집의 수록곡인 湯気(수증기)를 시작으로, 2013년 싱글 6집의 곡인 地獄でなぜ悪い(지옥이 뭐가 나빠)까지 단순히 '취미'에 비슷하게 도전해오다가, 지주막하출혈 완치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 그의 음악 생활인 싱글 7집 Crazy Crazy/桜の森부터 정규 4집 YELLOW DANCER를 거쳐 정규 5집 Pop Virus까지의[47] 그 결과물들은 그의 목표를 보여주며 꽤나 성공적이었다. 이윽고 당대 일본의 아이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중적 네임드 팝 아이콘이 되었으며, 여럿 후배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주거나 샤라웃을 받는 뮤지션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는 현재, 이전까지 자신이 내세웠던 '옐로우 뮤직'이라는 단어가 상당히 편협한 시각이었다는 것에 대한 후회를 하고 있지만, 이 단어와는 별개로 실제로 이 당시 그의 작업물들은 상업적 대중 음악씬은 물론이고, 인디 음악씬을 포함하여 설명할 때도 종종 사용되는 예시이다.
cero의 「Obscure Ride」와 호시노 겐의 「YELLOW DANCER」, 이 2편은 양자의 디스코그래피에 있어서 분명한 전환점이며, 블랙뮤직의 흡수에 크게 방향을 튼 기념비적인 작품 중 하나라고 하는 공통점을 가진다. (중략)
호시노 겐의 『YELLOW DANCER』와 더불어 cero의 『Obscure Ride』의 선행곡의 제목이 'Yellow Magus'였다는 것은 매우 시사적인 동시성 현상이지만, 옐로우라고 의식적으로 자칭함으로써 블랙뮤직에 대한 거리감을 강제로 해방시킨 것, 또 그 대담함과는 달리 사운드 창조를 쿨하게 마주한 것, 양자의 그러한 도전이야말로 돌파구가 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일본 팝 음악의 지평을 개척해 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Obscure Ride』와 『YELLOW DANCER』에 깃든 반J-POP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악곡 전개나 사운드 메이킹, 전자에 감도는 도시·도쿄의 느낌이나, 후자에 달라붙는 가요의 맛이 동거하는 모습은, 지극히 앰비밸런스[48]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2023) 연이어 출현하는 카오틱하고 팝적인 소리를 내는 젊은 음악가들의 삐뚤어진 작품을 접하면 이 당시 생겨난 이질적인 작품군이 상기되는 것이다. #
호시노 겐의 『YELLOW DANCER』와 더불어 cero의 『Obscure Ride』의 선행곡의 제목이 'Yellow Magus'였다는 것은 매우 시사적인 동시성 현상이지만, 옐로우라고 의식적으로 자칭함으로써 블랙뮤직에 대한 거리감을 강제로 해방시킨 것, 또 그 대담함과는 달리 사운드 창조를 쿨하게 마주한 것, 양자의 그러한 도전이야말로 돌파구가 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일본 팝 음악의 지평을 개척해 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Obscure Ride』와 『YELLOW DANCER』에 깃든 반J-POP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악곡 전개나 사운드 메이킹, 전자에 감도는 도시·도쿄의 느낌이나, 후자에 달라붙는 가요의 맛이 동거하는 모습은, 지극히 앰비밸런스[48]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2023) 연이어 출현하는 카오틱하고 팝적인 소리를 내는 젊은 음악가들의 삐뚤어진 작품을 접하면 이 당시 생겨난 이질적인 작품군이 상기되는 것이다. #
호시노 겐이 POP VIRUS(2018)로 그린 '팝'은 혁신적인 것이다. 타이틀 곡인 'Pop Virus'에서 적은 '새기는 한 박의 영원을'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번 작품은 비트가 음악을 형성한다는 것에 특히 의식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블랙 뮤직을 독자적인 해석으로 자신의 음악에 도입하면서, '옐로우 뮤직'을 만들어 나간다고 하는 호시노 겐의 대처. 그 블랙뮤직 자체가 애초에 시대와 함께 변해가는 것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옐로우 뮤직' 또한 진화해가는 것을 강렬하게 느끼게 하는 앨범이기도 하다. 그리고 호시노 겐은 당연한 듯 힙합 비트를 민감하고도 자연스럽게 팝과 댄스 뮤직에 도입해 왔다. (중략)
시대를 비추며 변화를 거듭해 온 비트의 트렌드. 그러나 거기에는 변함없는 블랙 뮤직의 유전자가 이어져 오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전세계에 계속 확산되는 '팝'의 '바이러스'라고도 할 수 있다. POP VIRUS는 그러한 마음이 담긴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순수종보다 잡종이 생명력이 강하도록, 「YELLOW DANCER」를 거쳐 탐욕스럽게 하이브리드의 사운드를 요구해 가는 것으로, 이번에 호시노 겐이 확산하려고 하고 있는 바이러스는 앞으로도 또 변이, 진화, 강화해 나갈 것이 약속되어 있는 소리다. #
블랙 뮤직을 독자적인 해석으로 자신의 음악에 도입하면서, '옐로우 뮤직'을 만들어 나간다고 하는 호시노 겐의 대처. 그 블랙뮤직 자체가 애초에 시대와 함께 변해가는 것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옐로우 뮤직' 또한 진화해가는 것을 강렬하게 느끼게 하는 앨범이기도 하다. 그리고 호시노 겐은 당연한 듯 힙합 비트를 민감하고도 자연스럽게 팝과 댄스 뮤직에 도입해 왔다. (중략)
시대를 비추며 변화를 거듭해 온 비트의 트렌드. 그러나 거기에는 변함없는 블랙 뮤직의 유전자가 이어져 오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전세계에 계속 확산되는 '팝'의 '바이러스'라고도 할 수 있다. POP VIRUS는 그러한 마음이 담긴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순수종보다 잡종이 생명력이 강하도록, 「YELLOW DANCER」를 거쳐 탐욕스럽게 하이브리드의 사운드를 요구해 가는 것으로, 이번에 호시노 겐이 확산하려고 하고 있는 바이러스는 앞으로도 또 변이, 진화, 강화해 나갈 것이 약속되어 있는 소리다. #
8.1.1. 옐로우 뮤직과 변화
호시노 겐이 2015년에 이야기했'었'던 '옐로우 뮤직'이라는 단어는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렇게 정의된다. #해외의 음악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단순한 흉내나 그 질감의 추구 뿐만이 아니라, 일본인으로서의 세계관을 실현한 팝 |
핫토리 료이치와 나카무라 하치다이 같은 작곡가들이 만든 일본의 가요곡, 그리고 거기에 영향을 받은 다양한 유행가에는, 특히 재즈와 블루스 같은 블랙 뮤직의 영향을 꼭꼭 씹어 받아들이되 흉내만 내지 않고 일본 음악으로서 새롭게 재탄생시킨 놀라운 역사가 깃들어 있다.
내 부모와 조부모, 오늘날의 일본인과 그 선조가 아무렇지도 않게 즐겨 온 일본 팝의 유전자 속에는 애초부터 흑인 음악의 감수성이 숨쉬고 있었고, 거기서 드러나는 일본 정서에도 흑인 문화의 바람이 불어 들었다. 나는 내가 사는 이 나라의 음악, 옐로우 뮤직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호시노 겐의 에세이, 생명의 차창에서
내 부모와 조부모, 오늘날의 일본인과 그 선조가 아무렇지도 않게 즐겨 온 일본 팝의 유전자 속에는 애초부터 흑인 음악의 감수성이 숨쉬고 있었고, 거기서 드러나는 일본 정서에도 흑인 문화의 바람이 불어 들었다. 나는 내가 사는 이 나라의 음악, 옐로우 뮤직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호시노 겐의 에세이, 생명의 차창에서
{{{#!wiki style="margin: -20px -10px -17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ff000> | 다른 뮤지션들이 블랙뮤직을 정체성 구축의 수단으로 활용한 것과 달리, 그는 일본 대중음악의 탄생 과정에서 필수 불가결했던 'J-POP의 DNA 속 블랙뮤직'을 알리는데 집중했다. (중략) 선조 때부터 무의식 중에 내재되어 온 그 '융합의 그루브'를 '옐로우 뮤직'이라는 이름으로 다시금 소환한 셈이다. - 황선업 대중음악평론가 # |
{{{#!wiki style="margin: -20px -10px -17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ff000> | 그는 경애하는 호소노 하루오미를 의식적으로 계승하여, "옐로우 뮤직"이라고 하는 컨셉을 내걸어 왔다. 인종적 의미도 포함한 "화이트와 블랙"을 둘러싼 대립 속에 제3항으로서 "옐로우"을 끼워 넣어 다른 문화를 도입하려고 할 때 생기는 왜곡을 (그는)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일본인이 외래의 음악을 만든다」는 것의 비틀림에 다시 눈을 돌려, 다소 망각되고 있던 "안과 밖"을 둘러싼 물음을 재차 시작하는 이 컨셉은, 주의해야 할 점도 있지만, 의의가 있는 것이었다. |
그는 R&B, 소울, 힙합 등 블랙 뮤직으로부터 받은 영향을 J-POP에 녹여내어, 「옐로우 뮤직」이라는 장르를 개척해나가고 있다고 한다. 블랙 뮤직을 그대로 재현하고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필터를 거쳐서, 일본인에게 친숙한 음악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옐로우 뮤직' 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독자적으로 창출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고.
Q. YELLOW DANCER를 통해 옐로우 뮤직이라는 큰 지표가 생기면서 음악 대처 방식에 변화가 있나요?
A. '옐로우 뮤직'이라는, 제가 마음에 그리고 있는 장르나 언어를 좀 더 침투시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네요. 저는 원래 블랙뮤직을 좋아하는데 그런데 블랙뮤직을 따지는 것만으로는 그게 우리 음악이 될 수 없다는 난제가 마음 속에 계속 있어서요.
잘 흉내내고 잘 따라하면 칭찬을 받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그 와중에 우리 음악이 뭘까 생각했을 때, 여러 나라 음악을 흡수하면서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필터'를 통한 음악, 옐로 뮤직이라는 것을 생각했어요. '恋(코이)' 그리고, 'Continues'처럼 더 이상 설명을 하지 않아도 신체 감각으로 옐로우 뮤직으로 딱 맞는 곡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6년 호시노 겐이 말하는 "옐로우 뮤직"의 새로운 전개 중
솔로 초기에도 자신의 음악에 블랙뮤직을 융합하는 그런 움직임은 있었으나 싱글 B면에 수록하는 등 실험적이었다면, 「Week end」, 「SUN」, 「時よ(시간이여)」 등 주옥같은 명곡이 수록된 정규 4집 「YELLOW DANCER」(2015)에서 그 생각을 직접적으로 내세워 본격적으로 전개했다. 그리고 그의 접근법은 사운드뿐만이 아니라 가사에서까지 이어지고 있다.A. '옐로우 뮤직'이라는, 제가 마음에 그리고 있는 장르나 언어를 좀 더 침투시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네요. 저는 원래 블랙뮤직을 좋아하는데 그런데 블랙뮤직을 따지는 것만으로는 그게 우리 음악이 될 수 없다는 난제가 마음 속에 계속 있어서요.
잘 흉내내고 잘 따라하면 칭찬을 받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그 와중에 우리 음악이 뭘까 생각했을 때, 여러 나라 음악을 흡수하면서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필터'를 통한 음악, 옐로 뮤직이라는 것을 생각했어요. '恋(코이)' 그리고, 'Continues'처럼 더 이상 설명을 하지 않아도 신체 감각으로 옐로우 뮤직으로 딱 맞는 곡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6년 호시노 겐이 말하는 "옐로우 뮤직"의 새로운 전개 중
미국의 소울이나 R&B등의 가사는, 황홀한 그 음악과는 달리, 실은 자주 들어보면 노골적으로 X스를 부르고 있거나 해서, 일본인이 가사를 읽으면 어이없어[49] 웃을 수밖에 없게 되어 버리는 일이 많다. 그래서 호시노는 본고장의 블랙뮤직과 마찬가지로, Snow Men의 내용은 X스에 관한 것이지만, 미국의 양식을 그대로 직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인의 미의식에도 맞게 은유의 형태로 문학적으로 써본 것이라고 한다.
"뭐랄까 관능적인 일본 문학 있잖아요. 그 느낌을 좀 디스코 클래식이라고 할까, 소울뮤직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서요." #
이후 대히트한 9번째 싱글 「恋(코이)」(2016)에서는 자신이 말하는 '옐로우 뮤직'이 무엇인가를 대중에게 각인시키고 펼쳐보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흐름은 「ドラえもん(도라에몽)」(2018), 「アイデア(아이디어)」(2018)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한편 오리엔탈리즘을 작위적이지 않은 이국적인 감성으로 표현하는 것은 호소노 하루오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뭐랄까 관능적인 일본 문학 있잖아요. 그 느낌을 좀 디스코 클래식이라고 할까, 소울뮤직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서요." #
Pop Virus 이후로 그는 '옐로우 뮤직'이라는 단어가 편협한 시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직접적으로는 쓰고 있지 않고 있으며, 그 이후로 여러 도전을 모색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2019년 애플 뮤직의 라디오 Beats 1의 Pop Virus Radio에서 이야기했듯이, 그가 악곡을 만들 때의 본질적인 가치관은 변하지 않았다.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과 저의 영혼을 공명시켜 저의 음악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나의 문화, 나의 역사 속에서 나의 음악을 만들어 가고 싶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
Pop Virus Radio에서
Pop Virus Radio에서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즈음. 나는 '옐로우 뮤직'이라는 말을 하나의 음악 장르로서 성립시킬 수 없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만드는 음악도 그 장르라고 널리 알리려고 했다. (중략)
하지만 일본에서 살고 있는 일본인인 내가 만드는 음악을 옐로우 뮤직이라고 칭할 경우, 다른 아시아계의 인식이 완전히 누락되는 데다가, 애초에 나의 음악은 블랙뮤직을 중심으로 일본을 포함하여 세계 여러 다양한 인종이 탄생시킨 음악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옐로우 뮤직 이라고 아시아계가 탄생시킨 음악인 것처럼만 말해 버리는 것은, 문화의 도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작품과 그 디자인에 옐로우라는 단어나 색을 사용해 아시아계인 것을 표현하거나 자긍심을 가지는 것과, 자신의 음악을 옐로우 뮤직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인종이 만들어 온 음악문화를 하나의 인종의 음악인 것처럼 장르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원래 모욕적으로 사용되어 온 말이기 때문에, 아시아계를 '옐로우'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신중함도 있는 편이 좋겠지.
알지 못했다. 그건 시대의 변화를 운운할 게 아니라, 그저 내가 무지하고 어리석었던 것 뿐이다.
2022년 6월호 다빈치 연재 에세이 #
현재까지도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은 계속 현재 시대상을 반영하여 다양한 음악 장르를 본인만의 다양한 접근 방식으로 재해석하거나 계승하고 있다.하지만 일본에서 살고 있는 일본인인 내가 만드는 음악을 옐로우 뮤직이라고 칭할 경우, 다른 아시아계의 인식이 완전히 누락되는 데다가, 애초에 나의 음악은 블랙뮤직을 중심으로 일본을 포함하여 세계 여러 다양한 인종이 탄생시킨 음악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옐로우 뮤직 이라고 아시아계가 탄생시킨 음악인 것처럼만 말해 버리는 것은, 문화의 도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작품과 그 디자인에 옐로우라는 단어나 색을 사용해 아시아계인 것을 표현하거나 자긍심을 가지는 것과, 자신의 음악을 옐로우 뮤직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인종이 만들어 온 음악문화를 하나의 인종의 음악인 것처럼 장르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원래 모욕적으로 사용되어 온 말이기 때문에, 아시아계를 '옐로우'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신중함도 있는 편이 좋겠지.
알지 못했다. 그건 시대의 변화를 운운할 게 아니라, 그저 내가 무지하고 어리석었던 것 뿐이다.
2022년 6월호 다빈치 연재 에세이 #
===# 타 인물들의 평가/일화 #===
호소노 하루오미: 질문이 왔네요, "호시노 씨의 악곡을 처음 들었을 때, 지금(2017년)의 호시노 씨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습니까?" 아니, 할 수 없었습니다(웃음). 아직 호시노 군이 20대에, SAKEROCK을 하고 있었을 당시였나요?
SAKEROCK은 상당히 장난스럽고 재미있었죠. 하지만 지금의 느낌은 상상하지 못했어요, 수염을 기르거나 정장을 입거나 하면서 저를 오마주하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지금의 호시노 군의 악곡을 들으면 "내 영향은 별로 없잖아"라고 생각하지만(웃음).
호시노부시(星野節)라고 해야 하나. (중략) 가슴이 뭉클한 멜로디 라인이랑 코드가 있거든요. 가사도 그렇구요. 게다가 가사가 없는 인스트루멘탈 곡을 만들면 또 확 바뀌기 때문에 가능성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모타운이나 펑크를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얼마 전에도, (저랑 이야기할 때) 디안젤로를 이야기하면서 흥분하고 있었으니까요(웃음).
호소노 하루오미의 올 나이트 닛폰 (2017. 11.)
SAKEROCK은 상당히 장난스럽고 재미있었죠. 하지만 지금의 느낌은 상상하지 못했어요, 수염을 기르거나 정장을 입거나 하면서 저를 오마주하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지금의 호시노 군의 악곡을 들으면 "내 영향은 별로 없잖아"라고 생각하지만(웃음).
호시노부시(星野節)라고 해야 하나. (중략) 가슴이 뭉클한 멜로디 라인이랑 코드가 있거든요. 가사도 그렇구요. 게다가 가사가 없는 인스트루멘탈 곡을 만들면 또 확 바뀌기 때문에 가능성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모타운이나 펑크를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얼마 전에도, (저랑 이야기할 때) 디안젤로를 이야기하면서 흥분하고 있었으니까요(웃음).
호소노 하루오미의 올 나이트 닛폰 (2017. 11.)
요네즈 켄시: '이 반짝임은 내 것이 아니라 세상의 빛을 비추고 있을 뿐이야 / 어울리지 않는 자존심은 너에게 줄게 받아서 버려줄래' 저는 이 가사가 정말 좋아요. 매우 동질감을 느껴요. 겐 씨와 제가 완전 같은지는 잘 모르겠고, 어떤 점에서는 매우 다른 부분도 있겠지만, 뭐랄까 저도 팝송을 하는 사람으로서 어느 날 갑자기 유명해졌고, 그 안에서 이런저런 감정을 느껴요. 감사함도 느끼고, 음악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날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대체 이게 뭘까 싶은 회의감이나 조금 식어버린 관점을 가진 자신도 함께 있어요. 때문에 그 가사를 듣고, 저의 그런 감정들에 대한 공감을 느꼈어요. 이 노래가 마치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을 정도로 마음에 훅 들어왔어요.
(좋아하는 곡) 많이 있어요. 地獄でなぜ悪い(지옥이 뭐가 나빠)도 엄청 좋아해요. (중략) 그 곡이 그런 아픈 일들을 겪고 나온 곡이라는 것에 공감하지만 소프트락적으로는 매우 소란스러운 소리잖아요. '빰빰빰'하면서 경쾌하게 시작되고 노래 부르는데 제일 처음 등장하는 말이 '병실!' 와 이거는 최고다 싶었어요. (중략)
그 가사도 좋네요. '그저 지옥을 나아가는 자만이 슬픈 기억을 이겨내' 뭔가 이것보다 긍정적인 메세지는 없다는 느낌이 들어요. '지옥이 뭐가 나빠'라는 곡의 전체적인 가사만 보면 부정적인 우울함에 빠질지도 모르겠지만, 그야말로 하나의 단어와 구가 긍정적으로 작용되게 하는 어떤 것이 아닐지...그런 혼신의 힘을 겐 씨가 매우 진중하게 목표로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후략)
호시노 겐의 올 나이트 닛폰 (2020.09.01)
(좋아하는 곡) 많이 있어요. 地獄でなぜ悪い(지옥이 뭐가 나빠)도 엄청 좋아해요. (중략) 그 곡이 그런 아픈 일들을 겪고 나온 곡이라는 것에 공감하지만 소프트락적으로는 매우 소란스러운 소리잖아요. '빰빰빰'하면서 경쾌하게 시작되고 노래 부르는데 제일 처음 등장하는 말이 '병실!' 와 이거는 최고다 싶었어요. (중략)
그 가사도 좋네요. '그저 지옥을 나아가는 자만이 슬픈 기억을 이겨내' 뭔가 이것보다 긍정적인 메세지는 없다는 느낌이 들어요. '지옥이 뭐가 나빠'라는 곡의 전체적인 가사만 보면 부정적인 우울함에 빠질지도 모르겠지만, 그야말로 하나의 단어와 구가 긍정적으로 작용되게 하는 어떤 것이 아닐지...그런 혼신의 힘을 겐 씨가 매우 진중하게 목표로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후략)
호시노 겐의 올 나이트 닛폰 (2020.09.01)
R-指定: 대본이 말이죠.. "호시노 겐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되어 있었어요...[50] 좀 놀랐습니다. 위험했어... 호시노 겐 씨(さん)이니까!
(중략)
DJ松永: 그렇지만, 확실히 호시노 씨는 그 멀티 플레이어의 상태고, 그마저도 1명 수준이 아니에요.
R-指定: 나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까지의 호시노 겐씨의 활약? 이제 그건 혼자서는 무리야.
DJ松永:노래 하시고, 춤추기도 했고, 악기도 여러 가지 연주할 수 있으시고..
R-指定: 배우도 하시고 계시고.
DJ松永: 문필가로서도 유명하시고.. (후략)
Creepy Nuts의 올 나이트 닛폰 0(제로) (2020. 11. 10)
(중략)
DJ松永: 그렇지만, 확실히 호시노 씨는 그 멀티 플레이어의 상태고, 그마저도 1명 수준이 아니에요.
R-指定: 나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까지의 호시노 겐씨의 활약? 이제 그건 혼자서는 무리야.
DJ松永:노래 하시고, 춤추기도 했고, 악기도 여러 가지 연주할 수 있으시고..
R-指定: 배우도 하시고 계시고.
DJ松永: 문필가로서도 유명하시고.. (후략)
Creepy Nuts의 올 나이트 닛폰 0(제로) (2020. 11. 10)
이쿠타 리라: 호시노 씨의 라디오에 게스트로 출연한 후에 직접 말씀드렸습니다만, 좀 부끄럽지만요. 제가 고3일 당시, 2018년 12월 말에 호시노 겐 씨가 'POP VIRUS'라는 앨범을 내셨잖아요? 세뱃돈을 부모님께 받고, 그 세뱃돈으로 발매 한 달 뒤에 CD를 사러 숍에 갔다는 에피소드가 있거든요. 그때 저는 아르바이트 같은 것도 안 하고 음악 활동과 학교 생활밖에 안 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주는 그 세뱃돈이 귀하다고 할까... 뭐, 스스로 말하면 그렇지만. 세뱃돈의 그 봉투 그대로 가져가서 스튜디오 라이브 음원 같은 것 전부 들어 있는 것을 "이거 주세요!"라고 말했어요(웃음).
CD가 5000엔 정도였나? 그래서 거스름돈 절반이 돌아왔고.'이건 소중히 쓰자'고 생각해서요. 그래서 그 Pop Virus CD는 지금도 공부책상의 특등석에 두고 있어요. 그 일화를 직접, 본인께 전할 수 있다니.
YOASOBI의 올 나이트 닛폰 X (2021.06.22.)
CD가 5000엔 정도였나? 그래서 거스름돈 절반이 돌아왔고.'이건 소중히 쓰자'고 생각해서요. 그래서 그 Pop Virus CD는 지금도 공부책상의 특등석에 두고 있어요. 그 일화를 직접, 본인께 전할 수 있다니.
YOASOBI의 올 나이트 닛폰 X (2021.06.22.)
아침부터 영화나 드라마 촬영, 장시간 레코딩을 하고 나서 닛폰방송에 온다. 옆에서 봐도 완전히 지쳐 있다. 그런데도 방송에 임하고, 즐기고, 오히려 기운을 차리고 돌아가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그때 내 자신이 얼마나 편하게 응석 부리고 있는지를 통감한다. 호시노 씨의 앞에서 바쁘다는 등의 말은 절대로 할 수 없다. (중략)
일이 바빠져서 대충 하게 될 때, 언제나 호시노 씨의 얼굴이 떠오른다. 더 바쁜데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다.
이시이 히카루(전 올 나이트 닛폰 디렉터)의 에세이
일이 바빠져서 대충 하게 될 때, 언제나 호시노 씨의 얼굴이 떠오른다. 더 바쁜데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다.
이시이 히카루(전 올 나이트 닛폰 디렉터)의 에세이
그 즈음의 나는 MIU404라는 드라마로 호시노 겐이라는 뮤지션(겸, 배우 겸, 작가)을 알게 되어 그야말로 '미친 듯이' 덕질을 하고 있었는데, 그 해 가을 서양 고전 공포 영화인 <큐브>를 일본에서 리메이크한 버전의 OST를 그가 맡게 되었다. 나는 예술을 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만 같은 천재 뮤지션이 공포 영화 OST를 도대체 어떤 식으로 만들었을 지 궁금해서 돌아버릴 지경이었고, 목이 빠져라 발매일을 기다리다 발매가 되자마자 허겁지겁 들은 후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얼마나 무서울까? 얼마나 살벌할까?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해서 무슨 악기들을 썼을까? 나의 예상을 모두 빗겨가는 음악이었다. 무섭지도, 기괴하지도, 살벌하지도 않았다. 아니, 공포 영화 음악을 이렇게 만든다고? 내가 여태 했던 생각은 다 뭐지?
호시노 겐의 <Cube>라는 음악은 어쩌면 그간의 내 생각들이 편협했을 수도 있겠구나,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해주었다. 내가 매해 여름마다 만들고 있는 음악은 발매 두 번째만에 '호러송'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게 되었는데, 이 연례행사가 더 멀리가기 전에 잠깐 멈춰 점검을 할 수 있게 되어 다행스러웠다. 호시노 겐, 그는 음악의 신이 분명하다. '얘, 그렇게 만드는 것도 좋지만 이걸 한번 들어보렴'하고 불쌍한 어린양의 귓가에 나직이 도움을 속삭이려 지상에 내려온 것일 거다.
그래서 세 번째 호러송을 작업할 때는 이 호러송이라는 배꼽이 배보다 커지지 않게 조심했다. 더 많이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고민을 많이 덜어내는 방법으로.
- 안예은, 안 일한 하루(2022)
호시노 겐의 <Cube>라는 음악은 어쩌면 그간의 내 생각들이 편협했을 수도 있겠구나,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해주었다. 내가 매해 여름마다 만들고 있는 음악은 발매 두 번째만에 '호러송'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게 되었는데, 이 연례행사가 더 멀리가기 전에 잠깐 멈춰 점검을 할 수 있게 되어 다행스러웠다. 호시노 겐, 그는 음악의 신이 분명하다. '얘, 그렇게 만드는 것도 좋지만 이걸 한번 들어보렴'하고 불쌍한 어린양의 귓가에 나직이 도움을 속삭이려 지상에 내려온 것일 거다.
그래서 세 번째 호러송을 작업할 때는 이 호러송이라는 배꼽이 배보다 커지지 않게 조심했다. 더 많이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고민을 많이 덜어내는 방법으로.
- 안예은, 안 일한 하루(2022)
후지하라 사토시: 홍백가합전에서 호시노 겐님을 처음 만나서, 저희 CD를 드리고 이야기를 잠깐 나누고..
나라자키 마코토: 저는 긴장해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마츠우라 마사키: (저는) 엄청 긴장해서... 학창시절부터 팬이었고, 노래방에 가서도 (그의 곡을) 노래했고, 그의 존재는 저에게 있어서 엄청난 신 같은 존재기 때문에요.
오오이즈미 요: 다가가기 힘든 그런 아우라 같은 거랑 다르지 않나요? 후쿠야마 마사하루처럼 그런 것도 아니고.
후지하라 사토시: 그 분위기는.. 엄청나게 유명한 음악이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건 그 사람밖에 할 수 없어요. 그래서 무서워요.
Official髭男dism이 출연한 2022년 6월 23일자 SONGS 중
나라자키 마코토: 저는 긴장해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마츠우라 마사키: (저는) 엄청 긴장해서... 학창시절부터 팬이었고, 노래방에 가서도 (그의 곡을) 노래했고, 그의 존재는 저에게 있어서 엄청난 신 같은 존재기 때문에요.
오오이즈미 요: 다가가기 힘든 그런 아우라 같은 거랑 다르지 않나요? 후쿠야마 마사하루처럼 그런 것도 아니고.
후지하라 사토시: 그 분위기는.. 엄청나게 유명한 음악이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건 그 사람밖에 할 수 없어요. 그래서 무서워요.
Official髭男dism이 출연한 2022년 6월 23일자 SONGS 중
아노: 아까 저는 처음으로 호시노 겐 님을 뵙고 인사를 드렸는데요, (중략) 굉장히 좋은 사람이고, 저런 예쁜 눈은 본 적이 없어요. 아마 한 번도 체포되지 않았을 거에요!
아노의 올 나이트 닛폰 0(제로) (2023. 04)
아노의 올 나이트 닛폰 0(제로) (2023. 04)
UMI: 호시노 겐씨는 마음속 깊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만날 때마다 '이런 사람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진짜 착하세요. 저뿐만이 아니라 남들 케어도 되게 해줘요. 음악도 사람을 위해서 만드는 마음이 강하다는 걸 느끼고 이기심이 없어요. '사람을 위해서'라는 것을 굉장히 느끼죠. 썸머소닉 리허설 때도 모두를 챙겨주시고, 공연이 끝난 후에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해 주었어요. 저도 그런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
와카바야시 마사야스: 호시노 씨의 그 첫 번째 허밍? 나올 때 그거. 엘리베이터 같은 걸로. (중략) 뭔가 '노래를 잘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게 맞나? 뭔가 음양사 같았어. 무대의 공기를 순식간에 바꿨다고 해야 되나? 노래 잘 부른다고.
카스가 토시아키: 끌린다고 해야 되나? 단순히 음정이 맞다거나 목소리가 예쁘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노래를 잘한다' 말고 다른 표현이 뭘까.. (중략)
와카바야시 마사야스: 내가 호시노 씨 등장 전에 디제잉을 했는데, (호시노 씨의 등장 이후로) 공짱이 나한테 '드디어 프로가 나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라고. (중략) 어쩔 수 없어(웃음). 호시노 씨는 프로 중의 프로니까. 그래서 처음에 호시노 씨가 올라오며 등장할 때 "오랜만이야 도쿄 돔!"이라고 말했었잖아? 그거 굉장했지. 그 한마디! 뭐 호시노 씨, 라디오에서 "돔적으로는 역시 선배니까"라고 스스로 말했으니까(웃음).
카스가 토시아키: 5대 돔?
와카바야시 마사야스: 5대 돔 완판남이니까(웃음). #
카스가 토시아키: 끌린다고 해야 되나? 단순히 음정이 맞다거나 목소리가 예쁘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노래를 잘한다' 말고 다른 표현이 뭘까.. (중략)
와카바야시 마사야스: 내가 호시노 씨 등장 전에 디제잉을 했는데, (호시노 씨의 등장 이후로) 공짱이 나한테 '드디어 프로가 나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라고. (중략) 어쩔 수 없어(웃음). 호시노 씨는 프로 중의 프로니까. 그래서 처음에 호시노 씨가 올라오며 등장할 때 "오랜만이야 도쿄 돔!"이라고 말했었잖아? 그거 굉장했지. 그 한마디! 뭐 호시노 씨, 라디오에서 "돔적으로는 역시 선배니까"라고 스스로 말했으니까(웃음).
카스가 토시아키: 5대 돔?
와카바야시 마사야스: 5대 돔 완판남이니까(웃음). #
imase: 학창시절부터 뭔가 긴장되는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호시노 겐님의 곡을 듣고 힘을 얻고 있었습니다. (중략) 사운드 면에서는 복잡한 코드 진행에도 난해하게 들리지 않고 팝으로 승화하고 있는 것이 정말 멋지시고 존경스러워요. 또한 아날로그 신스와 드럼의 프로그래밍과 생음의 균형 등 미세한 소리의 제작도 매우 매력적이에요. 가성과 중성을 덧대는 방법이나 신스의 음색은 매우 참고하고 있습니다.
YELLOW MAGAZINE+ 5명의 게스트가 기대하는 호시노 겐의 2024년
YELLOW MAGAZINE+ 5명의 게스트가 기대하는 호시노 겐의 2024년
8.2. 팬들의 SNS 계정 관련 발언
무단 전재 계정 관련 라디오 발언 (2019년 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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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프로필 사진 관련 라디오 발언 (2019년 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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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호시노 겐은 대중적 연예인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이 발언은 호시노 겐 본인의 팬들 뿐만이 아니라 일본 인터넷 상으로도 퍼질만큼 상당히 파급력이 컸다. 일본 여러 인터넷 기사에서 호시노 겐의 발언이 기사화되고, 다수의 네티즌들은 여러 입장 차이를 보였다.
- 인터넷 세계에서는 연예인인 이상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한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어쩔 수가 없다.
- 유튜브 등지에서도 저작권을 무시한 사람들 것들이 많다. 이대로 괜찮을까? 연예인 사진 쓰는 사람들은 허락을 맡는 건가?
결국 입장들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으며, 원론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사안이기에 여러 갑론을박은 자연스레 사그라들게 되었고, 호시노 겐은 이후 라디오에서 이에 관련된 자신의 입장을 내놓았다.
호시노 겐: 메일이 왔네요. "저도 포함해서 겐씨의 생생한 말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마음이 전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그 말이 또 인터넷에서 기사화되어 다른 뉘앙스로 전해지고 있는 부분도 조금 있어서, 그것이 유감입니다. 기사만으로는 절대 전달되지 않고, 읽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사뿐만 아니라 생생한 말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도 응원하겠습니다"라고 보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죠. 음, 아무래도 거기는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해요. '꽤 그 일에 대해 굉장히 괴로웠다'는 메일이었습니다만, 하지만 뭔가 그 사건이라든지, 나머지는 예를 들면 보도... 연예 뉴스에서도 뭐든지 그렇지만, 실제의 일, 순간등을 모르는 기사들이 많기도 합니다.
이번에 저는 라디오에서 말했고, 그것을 뉴스와 기사로 만들어 주었다고 하는 것 중에서, 얼마나 다른가?라고 하는 것이 그 장소에 따라서, 그 문장을 쓰는 분에 따라서 다르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굉장히 알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거짓말은 하고 있지 않지만, 말을 집약시킴으로써 뭔가 굉장히 엄격하다든가, 차가운 뉘앙스에도 빠져 버리는 듯한 문장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목도 포함, 문장도 포함.
그렇죠. 음, 아무래도 거기는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해요. '꽤 그 일에 대해 굉장히 괴로웠다'는 메일이었습니다만, 하지만 뭔가 그 사건이라든지, 나머지는 예를 들면 보도... 연예 뉴스에서도 뭐든지 그렇지만, 실제의 일, 순간등을 모르는 기사들이 많기도 합니다.
이번에 저는 라디오에서 말했고, 그것을 뉴스와 기사로 만들어 주었다고 하는 것 중에서, 얼마나 다른가?라고 하는 것이 그 장소에 따라서, 그 문장을 쓰는 분에 따라서 다르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굉장히 알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거짓말은 하고 있지 않지만, 말을 집약시킴으로써 뭔가 굉장히 엄격하다든가, 차가운 뉘앙스에도 빠져 버리는 듯한 문장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목도 포함, 문장도 포함.
8.3. 과거의 과오에 대한 재기록과 변화
호시노 겐은 2013년 지주막하출혈 투병생활 당시 본인이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느끼며 투병생활을 억지로 버텼던 것들을 가능한 한 솔직하게 여과없이 에세이로 작성했고, 그 에세이는 '되살아나는 변태'로 편찬된다. 다만 이후 복귀 라이브의 퍼포먼스까지 합쳐 성적인 내용이 많았으며, 성욕이 강하다거나 색욕이 있다고 보일 만한 내용들이 있었기에 에세이에서의 일부 내용들이 (호시노 겐의 결혼을 기점으로) 2021년에 인터넷의 일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만 뒤늦게 이야기되기 시작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그러나 2014년 당시 호시노 겐은 이제 막 무도관 라이브를 솔로로서 처음 성사시켰을 정도로 톱스타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호시노 겐의 학창 시절은 라디오에서도, 방송에서도 성적인 내용을 아주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세대였기 때문에 그가 일본 내에서 탑 급 연예인 중 한 명으로 자리잡을 때도 그의 과거 에세이 내용에 대해 위법이나 직접적인 행동 및 방송에서의 발언이 아니었고, 생각을 단순히 에세이로 풀어냈다는 측면에서 일본에서 대중적으로는 공론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무절제한 성생활을 하지는 않았으며, 한창 크게 떴을 때 여러 기자들이 붙었는데도 뭐가 안 나올만큼 사생활이 깨끗했다.[54] 오죽하면 유일하게 찍힌 게 친구(남자)들이랑 고깃집 갔던 거였을 정도다. 또한 라디오의 접근성이 뛰어난 일본 내에서도 호시노 겐은 후쿠야마 마사하루처럼 시모네타(음담패설)을 어느 정도 하며 그것이 선을 크게 넘지 않는 이미지라고만 박혀있었으며, 대중들의 인지도와 호감도를 조사하여 매기는 순위인 닛케이 파워 랭킹 음악 부분에서 항상 상위권이었다.
그렇게 사실상 젊은 혈기의 소치(若気の至り)[55]로 치부되고, 에세이의 일부 내용들을 해가 지날 수록 점점 삭제해가며 아무 사건 없이 지나가는 듯 했으나, 호시노 겐은 2022년 6월 다빈치 '생명의 차창에서' 연재 에세이 글에서 본인의 과거를 되돌아보며 이 주제에 대한 내용을 본인이 직접 먼저 언급한다.
나의 책이 문고화될 때마다, 그 원고 확인 작업을 할 때마다, 언제나 머리를 움켜쥔다.
"왜 이런 걸 써버렸을까..."
그러므로 필사적으로 고친다. 무의식중에 차별적인 말을 하거나,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불쾌함을 느끼게 했을 거라고 느낀 부분은 가능한 한 수정하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고쳐도 문고판이 발간된 1년 후에는 나의 상식이 더 바뀌어가고, 더 세심하게 깨닫게 되어, '수정한 거 부족하잖아... 좀 더 조심했다면 고칠 수 있었잖아...'라고 후회하게 된다. 하지만 그때부터는 이제 수정할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없다. 중판이 되어 부수를 늘리는 타이밍에서 수정하는 건 가능하지만, 그 타이밍은 언제 올 지 알 수 없다. (중략)
이러한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걸. 그때는 알아채지도 못했네.'를 나는 반복한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빈도는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무섭다. 되도록이면 없애가고 싶다. 앞으로도, 나도 세상도, 분면 한층 더 끝없이 변화해 갈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사고 방식과 안테나를 업데이트 하면서 '지금 무엇이 가장 좋은 선택인가'를 계속 찾는 것은,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으로도 이어지고, 하루하루를 더 잘 살아가는 것으로도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고 느낀다.
2022년 6월호 다빈치 '생명의 차창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 라디오 언급 (한국어 번역)
이 연재 글에서 호시노 겐은 본인의 무도관 라이브 복귀 퍼포먼스와 에세이의 일부 내용, 더 나아가 '옐로우 뮤직'이라는 단어, 그리고 라디오 네임들을 되짚어본다. 10년이 지나며 변화된 자신의 가치관과, '지금이었다면 이랬을 텐데'라는 후회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글의 기고 이후 호시노 겐은 자신의 라디오에서 한 번씩 읽어줬으면 좋겠다며 여러 내용을 언급했다."왜 이런 걸 써버렸을까..."
그러므로 필사적으로 고친다. 무의식중에 차별적인 말을 하거나,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불쾌함을 느끼게 했을 거라고 느낀 부분은 가능한 한 수정하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고쳐도 문고판이 발간된 1년 후에는 나의 상식이 더 바뀌어가고, 더 세심하게 깨닫게 되어, '수정한 거 부족하잖아... 좀 더 조심했다면 고칠 수 있었잖아...'라고 후회하게 된다. 하지만 그때부터는 이제 수정할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없다. 중판이 되어 부수를 늘리는 타이밍에서 수정하는 건 가능하지만, 그 타이밍은 언제 올 지 알 수 없다. (중략)
이러한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걸. 그때는 알아채지도 못했네.'를 나는 반복한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빈도는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무섭다. 되도록이면 없애가고 싶다. 앞으로도, 나도 세상도, 분면 한층 더 끝없이 변화해 갈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사고 방식과 안테나를 업데이트 하면서 '지금 무엇이 가장 좋은 선택인가'를 계속 찾는 것은,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으로도 이어지고, 하루하루를 더 잘 살아가는 것으로도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고 느낀다.
2022년 6월호 다빈치 '생명의 차창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 라디오 언급 (한국어 번역)
그리고 그의 말들은 무시하고 싶은 과거가 아니라, '나 자신이 점점 자라고, 시대가 변하고, 높은 곳에 오르며 발전했다'는 식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문필활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2014년 에세이집 『살아나는 변태』(매거진 하우스)의 문고판 『살아나는 변태』(분슌문고 2019년)에서는 컴플라이언스적으로 엄격한 음담패설이 삭제되었다. (중략)
| 항상 인식을 업데이트하여 자신의 행동에 반영
이렇게 과거를 없었던 것처럼 하는 조치를 비판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커리어의 스테이지나 사회적인 자세가 바뀌면, 언행, 행동에 요구되는 것은 높아진다. 젊은 에너지는 그것으로서, 항상 인식을 업데이트 해, 자신의 행동에 반영해 간다. 그러한 시대의 변화를 느끼고 있는 것을, 알기 쉽게 사운드나 문장으로 구현해 간다. 사회의 "지금"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을 창작을 통해 세상에 호소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그의 발언 자체에 설득력을 주고 있다. 사람은 변하고 성장한다. 호시노는 그 당연하고 어려운 것을 몸소 증명해 주고 있다. #
| 항상 인식을 업데이트하여 자신의 행동에 반영
이렇게 과거를 없었던 것처럼 하는 조치를 비판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커리어의 스테이지나 사회적인 자세가 바뀌면, 언행, 행동에 요구되는 것은 높아진다. 젊은 에너지는 그것으로서, 항상 인식을 업데이트 해, 자신의 행동에 반영해 간다. 그러한 시대의 변화를 느끼고 있는 것을, 알기 쉽게 사운드나 문장으로 구현해 간다. 사회의 "지금"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을 창작을 통해 세상에 호소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그의 발언 자체에 설득력을 주고 있다. 사람은 변하고 성장한다. 호시노는 그 당연하고 어려운 것을 몸소 증명해 주고 있다. #
8.4. 멀티 엔터테이너로서의 관련 일화
이사를 하기로 했다.
이제 세탁실이 따로 있는 이 집과는 안녕이다. (중략) 창가에 대량의 벌레들의 사체가 떨어져 있는 이 집과 이제는 완전 바이바이다. (중략) 또, 점점 나무 바닥이 벗겨져서 플로링이 아닌 거의 합판 수준이 되어 버린 이 바닥과도 헤어진다. (중략)
그날 나는 대충 들어갔던 부동산에서 상당히 좋은 집을 발견했다. (중략) 계약을 하기로 하고 부동산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밝은 갈색 머리의 젊은 남자가 질문을 했다.
“죄송합니다. 전혀 관계없는 일을 좀 여쭙겠습니다만, 직업은요?”
직업?
“아, 네, 자격 심사를 해야 해서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다. 계약할 때 방을 빌리려면 심사가 있고 빌리는 사람이 집세를 잘 낼 수 있는 급여를 받고 있는지, 제대로 된 직업이 있는지를 묻고 그 집에 적합한지 여부를 판단한다. 어쩌지.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서 마음이 조급했다. 나는 직업이 몇 개 있다.
배우.
음악가.
문필가.
촬영 감독.
전부 수입이 고정적이지 못하다. 이 직업들을 동시에 진행시켜 바쁘게 일을 하고 있어서 일단 수입은 안정되어 있지만 이런 엔터테이너의 일이란 언뜻 겉만 번지르르한 꿈을 좇는 직업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 이 직업들을 지금 이 상황에서 이야기해도 설득력이 결여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중간한 일이 아니며 배우라는 직업 하나만 보더라도 주어진 일을 정확히 해내야 하며 때로는 기다리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을 찾아야 할 때도 있고 자신의 작은 실수가 소속사에 지대한 피해를 줄 수도 있는 아주 막중한 책임이 있는, 즉 회사원과 다를 바가 없는 직업인 셈이다. 덧붙이자면 우리 극단은 굉장히 엄격해서, 지각을 하거나 하면 무서운 후폭풍이 몰아친다.
음악도 그렇다, 우리 밴드는 내가 중심이어서 밴드의 책임=나의 책임이기 때문에 그 압박감도 생각보다는 크고, 소속된 소속사 겸 레이블도 큰 회사가 아닌 작은 인디 회사여서 권리관계 같은 것도 공부해 둬야 하고 음악 업계에는 나쁜 사람들이 지이~인짜 산더미만큼 있으므로 이 또한 항상 사기를 당하지 않도록 태세를 갖추고 경계해야 한다. 정말 NO MUSIC NO LIFE 혹은 음악만 있으면 된다! 같은 멋진 기분이 되기는 좀처럼 힘든, 내 머릿속은 NO WORK NO MONEY라는 생각으로 가득찼다.
하지만 내 나이 정도쯤의 사람들 중에 이런 직업을 가지려 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더 많다.
이렇게 고민을 하는 사이에도 그의 얼굴 표정은 굳어져만 갈 뿐이었다. 여기서 입을 다물고 있으면 자연스레 ‘무직’으로 흘러가버릴 수 있으므로 일단 대답을 해보기로 했다.
“음, 그러니까……여러 가지 있는데요. (중략) 저는 배우와 밴드를 동시에 하고 있고 가끔 글도 쓰고 뮤직비디오 촬영도 합니다.” (중략)
옛날부터 딱 한 가지만을 추려내는 것이 서투른 아이였다. 옛날 동화를 읽을 때도 왜 작은 상자하고 큰 상자 중에서 하나밖에 고르면 안 되는 걸까 생각했었고 (중략) 그 버릇은 어른이 되어서도 바뀌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은 다 하고 싶고, 가지고 싶은 것은 전부 가지고 싶다. 그래서 음악과 연극을 시작했을 때도 동시에 이 두 가지를 하는 건 좋지 않다고 주변 사람들이 말려서 깜짝 놀랐다.
“하나만 해. 이 세계에서 양쪽을 다하는 건 안 좋아.”
엄마도 말했다. “너 제대로 잘 못하잖니, 항상 부업이 되잖아.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한 마리도 못 잡는 법이야.”
사실 그렇긴 하다.
하지만 늘 ‘짚신을 두 개씩 신으면 재미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현실적으로 짚신 위에 짚신을 하나 더 신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니 그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 보고 싶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엄청 빠르게 도망치는 두 마리의 토끼를 한 사람이 잡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현실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절대 무리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두 마리를 다 잡아 버린다면 멋지지 않은가.
둘 다 실현하기 힘든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모두가 절대로 안 될 거라고 말하는 일들을 최대한 노력해서 해보려 하고, 만약 가능해진다면 훨씬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왜 다들 그렇게 안 하는 것일까. 언제나 생각하는 소박한 의문점이다.
또, 예전에는 '겐은 연기보다는 음악에 더 소질이 있는 것 같으니 배우보다 음악에 전념하는 편이 좋겠다'고 자주 들었고 글 쓰는 재능도 그다지 없으니까 이제 그만두라는 말도 자주 들었다.
이 또한 맞는 말이다.
연기를 하는 재능도 글을 쓰는 재능도 딱히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알고 있으니까 잘 할 수 있게 되고 싶은 거였고 잘 못하기 때문에 동경했다. 처음부터 잘하면 그야 그 나름대로 좋겠지만 잘 못했던 일들을 잘 하게 될 수 있다면 정말 대단한 일이고 실제로 후자 쪽이 더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중략)
그 후 내가 하는 일들을 그에게 자세히 설명하면서 극단 사무소 선배 중에 쿠도 칸쿠로씨가 있다고 말하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점장이 슥 나와서 자기가 그분 드라마를 자주 본다며 유명한 분이 있는 사무소니까 괜찮지 않겠냐며 이야기를 거들어 주어 결과적으로 계약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쿠도 씨 덕분에 무사히 이사를 하게 된 것이다. 간접적으로 내 인생을 지탱해 주고 있는 쿠도 씨는 여러분들이 다 아시다시피 배우이자 밴드맨이자 각본가로, 이 모든 일들을 온전히 해내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댄 애크로이드 같은 사람이다, 라고 이 글을 쓰면서 지금 알았다.
"오~ 배우와 밴드를 하고 글을 쓰고 뮤직비디오도 찍나요?"
이 말을 아주 큰 소리로 들었을 때, 윽, 지조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여겨져, 내가 하는 일을 솔직히 말 한 것을 후회하는 와중에 그는 얼굴이 거무칙칙해지면서도 웃는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대단하신데요”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2009)
이제 세탁실이 따로 있는 이 집과는 안녕이다. (중략) 창가에 대량의 벌레들의 사체가 떨어져 있는 이 집과 이제는 완전 바이바이다. (중략) 또, 점점 나무 바닥이 벗겨져서 플로링이 아닌 거의 합판 수준이 되어 버린 이 바닥과도 헤어진다. (중략)
그날 나는 대충 들어갔던 부동산에서 상당히 좋은 집을 발견했다. (중략) 계약을 하기로 하고 부동산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밝은 갈색 머리의 젊은 남자가 질문을 했다.
“죄송합니다. 전혀 관계없는 일을 좀 여쭙겠습니다만, 직업은요?”
직업?
“아, 네, 자격 심사를 해야 해서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다. 계약할 때 방을 빌리려면 심사가 있고 빌리는 사람이 집세를 잘 낼 수 있는 급여를 받고 있는지, 제대로 된 직업이 있는지를 묻고 그 집에 적합한지 여부를 판단한다. 어쩌지.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서 마음이 조급했다. 나는 직업이 몇 개 있다.
배우.
음악가.
문필가.
촬영 감독.
전부 수입이 고정적이지 못하다. 이 직업들을 동시에 진행시켜 바쁘게 일을 하고 있어서 일단 수입은 안정되어 있지만 이런 엔터테이너의 일이란 언뜻 겉만 번지르르한 꿈을 좇는 직업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 이 직업들을 지금 이 상황에서 이야기해도 설득력이 결여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중간한 일이 아니며 배우라는 직업 하나만 보더라도 주어진 일을 정확히 해내야 하며 때로는 기다리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을 찾아야 할 때도 있고 자신의 작은 실수가 소속사에 지대한 피해를 줄 수도 있는 아주 막중한 책임이 있는, 즉 회사원과 다를 바가 없는 직업인 셈이다. 덧붙이자면 우리 극단은 굉장히 엄격해서, 지각을 하거나 하면 무서운 후폭풍이 몰아친다.
음악도 그렇다, 우리 밴드는 내가 중심이어서 밴드의 책임=나의 책임이기 때문에 그 압박감도 생각보다는 크고, 소속된 소속사 겸 레이블도 큰 회사가 아닌 작은 인디 회사여서 권리관계 같은 것도 공부해 둬야 하고 음악 업계에는 나쁜 사람들이 지이~인짜 산더미만큼 있으므로 이 또한 항상 사기를 당하지 않도록 태세를 갖추고 경계해야 한다. 정말 NO MUSIC NO LIFE 혹은 음악만 있으면 된다! 같은 멋진 기분이 되기는 좀처럼 힘든, 내 머릿속은 NO WORK NO MONEY라는 생각으로 가득찼다.
하지만 내 나이 정도쯤의 사람들 중에 이런 직업을 가지려 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더 많다.
이렇게 고민을 하는 사이에도 그의 얼굴 표정은 굳어져만 갈 뿐이었다. 여기서 입을 다물고 있으면 자연스레 ‘무직’으로 흘러가버릴 수 있으므로 일단 대답을 해보기로 했다.
“음, 그러니까……여러 가지 있는데요. (중략) 저는 배우와 밴드를 동시에 하고 있고 가끔 글도 쓰고 뮤직비디오 촬영도 합니다.” (중략)
옛날부터 딱 한 가지만을 추려내는 것이 서투른 아이였다. 옛날 동화를 읽을 때도 왜 작은 상자하고 큰 상자 중에서 하나밖에 고르면 안 되는 걸까 생각했었고 (중략) 그 버릇은 어른이 되어서도 바뀌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은 다 하고 싶고, 가지고 싶은 것은 전부 가지고 싶다. 그래서 음악과 연극을 시작했을 때도 동시에 이 두 가지를 하는 건 좋지 않다고 주변 사람들이 말려서 깜짝 놀랐다.
“하나만 해. 이 세계에서 양쪽을 다하는 건 안 좋아.”
엄마도 말했다. “너 제대로 잘 못하잖니, 항상 부업이 되잖아.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한 마리도 못 잡는 법이야.”
사실 그렇긴 하다.
하지만 늘 ‘짚신을 두 개씩 신으면 재미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현실적으로 짚신 위에 짚신을 하나 더 신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니 그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 보고 싶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엄청 빠르게 도망치는 두 마리의 토끼를 한 사람이 잡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현실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절대 무리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두 마리를 다 잡아 버린다면 멋지지 않은가.
둘 다 실현하기 힘든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모두가 절대로 안 될 거라고 말하는 일들을 최대한 노력해서 해보려 하고, 만약 가능해진다면 훨씬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왜 다들 그렇게 안 하는 것일까. 언제나 생각하는 소박한 의문점이다.
또, 예전에는 '겐은 연기보다는 음악에 더 소질이 있는 것 같으니 배우보다 음악에 전념하는 편이 좋겠다'고 자주 들었고 글 쓰는 재능도 그다지 없으니까 이제 그만두라는 말도 자주 들었다.
이 또한 맞는 말이다.
연기를 하는 재능도 글을 쓰는 재능도 딱히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알고 있으니까 잘 할 수 있게 되고 싶은 거였고 잘 못하기 때문에 동경했다. 처음부터 잘하면 그야 그 나름대로 좋겠지만 잘 못했던 일들을 잘 하게 될 수 있다면 정말 대단한 일이고 실제로 후자 쪽이 더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중략)
그 후 내가 하는 일들을 그에게 자세히 설명하면서 극단 사무소 선배 중에 쿠도 칸쿠로씨가 있다고 말하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점장이 슥 나와서 자기가 그분 드라마를 자주 본다며 유명한 분이 있는 사무소니까 괜찮지 않겠냐며 이야기를 거들어 주어 결과적으로 계약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쿠도 씨 덕분에 무사히 이사를 하게 된 것이다. 간접적으로 내 인생을 지탱해 주고 있는 쿠도 씨는 여러분들이 다 아시다시피 배우이자 밴드맨이자 각본가로, 이 모든 일들을 온전히 해내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댄 애크로이드 같은 사람이다, 라고 이 글을 쓰면서 지금 알았다.
"오~ 배우와 밴드를 하고 글을 쓰고 뮤직비디오도 찍나요?"
이 말을 아주 큰 소리로 들었을 때, 윽, 지조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여겨져, 내가 하는 일을 솔직히 말 한 것을 후회하는 와중에 그는 얼굴이 거무칙칙해지면서도 웃는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대단하신데요”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2009)
저는 중학교 1학년때부터 연극과 음악을 시작하고, 고3때부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에 각자 마음대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음악과 연기는 학교 안에서 처음으로 시작이 되어, 점점 일이 되었고, 그리고 글쓰기는 어른이 되고나서 점점 일이 됐어요.
그 와중에 연극 현장에 가면 "음악 업계 쪽 사람이지?"라는 말을 듣고, 그리고 음악 현장에 가면 "연극 쪽 사람이지?"라고 해서...
어느 현장에 가도 허탕을 치는 느낌이랄까, "내가 있을 곳이 없구나" 라는 식으로 계속 생각하고 있었어요. 거기에 더해 글쓰기까지 시작했기 때문에, '하나로 좁히지 않아?'라든가, '뭐가 제일 하고 싶어?'라고 하셨죠.
어렸을 때 부터 그야말로 여러사람의 활동을 보고있는 도중 든 생각이 있습니다. 제가 동경하는 사람들은 그렇게나 많은 것을 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다들 하나로 좁히는 게 낫다고 하는 걸까요?
물론 두 켤레의 짚신을 대충 하면 안 될 것 같아 '어느 일이든 정말로 좋아하고, 이제 이것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필사적으로 임하다가 점점 일이 되어갔다, 그런 감각이 있어서, 왠지 굉장히 쓸쓸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어떤 그룹에 속하는 것으로 동경하고는 있었지만, 대체로 항상 조금은 어긋나 있었습니다. (중략) 정말로 동경하는 듯한, 멀리에, 계속 등대처럼 이타미 씨가 불빛을 비춰주시는데 아무래도 거기에는 못 가게 되어 있고, 큰 바다가 저희 섬과 이타미 씨의 섬 사이로 흐르고 있었죠.
그것을 뒤쫓으려 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점점, 그게 아니라 자기 자리를 만들라고, 너는 너의 장소를 만들어라, 그런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0대 후반부터 어쨌든 좋아하는 것에 제 몫을 제대로 하고 싶은 그런 마음으로 어느 일이나 하다 보니 이런 멋진 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타미씨에게, "그것이 너의 장소야."라는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아서 되게 기뻤습니다. (중략)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정말로 추구하고, 따지고, 그것을 모두에게 소개하거나 실천함으로써 주변 사람들이 굉장히 즐거워하거나, 일본이라는 곳을 보는 사람들이 (일본을) 모두가 신나게 놀거나, 즐겁다고 생각하거나, 마음이 좀 바뀌기도 하는 것. 그거는 대단한 거라고 생각해요.
분노조차도 재미있는 것으로 바꾸고, 모두에게 보여주면서 다 기분 나쁠 수 있는 게 아니라 굉장히 재미있었다는 생각으로 극장을 나서게 만들거나, 텔레비전의 스위치를 끄기도 하는, 그런 표현을 하는 사람은, 너무 너무 멋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사람이 언젠가 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실은 굉장히 밝은 사람이 아니지만, 재미있는 것들을 전달해도 좋다고 생각이 들었다고 할까요.
그런 제가 받은 것이라고 하는 것은 무조건 어떤 형태로든 연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죽어도, 그것을 모두가 이야기하거나, 이어나가거나, 자신의 필터를 통해 뭔가 이야기를 하거나 표현함으로써, 유전자는 연결되어 갑니다. 그런 유전자를 저도 받고 있기 때문에, 뭔가 저의 표현이라는 형태로, 제대로 저의 필터를 통한 형태로, 그 유전자를 연결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후략)
이타미 주조상 수상 연설 일부 #
그 와중에 연극 현장에 가면 "음악 업계 쪽 사람이지?"라는 말을 듣고, 그리고 음악 현장에 가면 "연극 쪽 사람이지?"라고 해서...
어느 현장에 가도 허탕을 치는 느낌이랄까, "내가 있을 곳이 없구나" 라는 식으로 계속 생각하고 있었어요. 거기에 더해 글쓰기까지 시작했기 때문에, '하나로 좁히지 않아?'라든가, '뭐가 제일 하고 싶어?'라고 하셨죠.
어렸을 때 부터 그야말로 여러사람의 활동을 보고있는 도중 든 생각이 있습니다. 제가 동경하는 사람들은 그렇게나 많은 것을 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다들 하나로 좁히는 게 낫다고 하는 걸까요?
물론 두 켤레의 짚신을 대충 하면 안 될 것 같아 '어느 일이든 정말로 좋아하고, 이제 이것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필사적으로 임하다가 점점 일이 되어갔다, 그런 감각이 있어서, 왠지 굉장히 쓸쓸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어떤 그룹에 속하는 것으로 동경하고는 있었지만, 대체로 항상 조금은 어긋나 있었습니다. (중략) 정말로 동경하는 듯한, 멀리에, 계속 등대처럼 이타미 씨가 불빛을 비춰주시는데 아무래도 거기에는 못 가게 되어 있고, 큰 바다가 저희 섬과 이타미 씨의 섬 사이로 흐르고 있었죠.
그것을 뒤쫓으려 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점점, 그게 아니라 자기 자리를 만들라고, 너는 너의 장소를 만들어라, 그런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0대 후반부터 어쨌든 좋아하는 것에 제 몫을 제대로 하고 싶은 그런 마음으로 어느 일이나 하다 보니 이런 멋진 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타미씨에게, "그것이 너의 장소야."라는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아서 되게 기뻤습니다. (중략)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정말로 추구하고, 따지고, 그것을 모두에게 소개하거나 실천함으로써 주변 사람들이 굉장히 즐거워하거나, 일본이라는 곳을 보는 사람들이 (일본을) 모두가 신나게 놀거나, 즐겁다고 생각하거나, 마음이 좀 바뀌기도 하는 것. 그거는 대단한 거라고 생각해요.
분노조차도 재미있는 것으로 바꾸고, 모두에게 보여주면서 다 기분 나쁠 수 있는 게 아니라 굉장히 재미있었다는 생각으로 극장을 나서게 만들거나, 텔레비전의 스위치를 끄기도 하는, 그런 표현을 하는 사람은, 너무 너무 멋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사람이 언젠가 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실은 굉장히 밝은 사람이 아니지만, 재미있는 것들을 전달해도 좋다고 생각이 들었다고 할까요.
그런 제가 받은 것이라고 하는 것은 무조건 어떤 형태로든 연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죽어도, 그것을 모두가 이야기하거나, 이어나가거나, 자신의 필터를 통해 뭔가 이야기를 하거나 표현함으로써, 유전자는 연결되어 갑니다. 그런 유전자를 저도 받고 있기 때문에, 뭔가 저의 표현이라는 형태로, 제대로 저의 필터를 통한 형태로, 그 유전자를 연결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후략)
이타미 주조상 수상 연설 일부 #
8.5. 호시노 아이와의 유사점?
#1, #2, #3, #4, #5아카사카 아카가 【최애의 아이】 키퍼슨인 호시노 아이를 설정할 때 여러 인물들을 모티브로 삼아 분위기를 넣어서 만들었다고 했는데, 한자까지 같은 성씨(星野)를 가지고 있고, 댄스 팝을 하는 음악가 겸 배우라는 입장, 그리고 【최애의 아이】 속 등장인물들의 발언 또한 호시노 겐의 예전 발언을 참고해 가져온 것이 있어 호시노 겐도 모티브로 들어간 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
호시노 아이의 남편이 사실은 호시노 겐이 아니냐라는 장난성 드립도 있고, 호시노 겐에게는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여동생도 있어서 호시노 가문에 같이 포함될 때도 있다. 그 외에도 외모적인 측면을 제외하면 호시노 아이의 행보나 성격은 호시노 겐과 미묘하게 닮은 구석이 많다. 우스갯소리에 가까워 재미로만 보자.
- 호시노 겐은 학창 시절 전반적인 인간관계와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어 외톨이일 때가 많았고, 공부머리도 좋지 않았으며[56], 중학생 때부터 음악 연습을 시작했고 대학교는 나오지 않았으며, 무명시절 초기에 주변의 거의 모든 것을 증오했다.
- 엉뚱한 면모와 마이페이스 부분이 있지만 진지할 때는 치밀하고 열정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고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편이다.
- 욕심과 야망이 있으며,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 암울하고 파란만장한 과거사를 가지고 있다.
{{{#!folding [ 호시노 겐의 경우 펼치기 · 접기 ]
[1] 사실 한국과 다르게 일본인 다수가 동성애에 대해서 개방적인 편이다.[2] 여기서의 의미는 사랑하는 대상이 2차원이라고 해도 그 사랑은 잘못되거나 비난받을만한 것이 전혀 아니라는 의미다.[3] 다만 일본의 불교는 한국에서의 위치와 살짝 다르다. 현지화가 상당히 강하게 이루어졌고, 일본으로 불교가 전래된 뒤로 불교는 한국의 유교처럼 사상적, 교육적인 부분에 많이 편중되어 있었으며, 일본의 사회 문화 전반에 상당히 뿌리내렸다. '일본인들에게 현세의 종교는 신토이며, 내세의 종교는 불교이다' 라는 말도 있을 정도. 자세한 내용은 일본 불교 문서 참고.[4] 당시 자체 레이블인 'sakerock'으로 발매했는데, 그 레이블의 표시가 연꽃모양이다. 또한 앨범이 '죽어서도 신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표방했고, 앨범 속에 하단의 그림이 있는 걸 보면 불교에 영향을 꽤 받았다던가 사십구재를 모티브로 잡은 듯하다.
[5] 2019년 Same Thing 때는 깐머, 2020년 MIU404때는 덮머, 2021년 不思議, 創造 때는 깐머, 2022년 喜劇 때는 덮머, 2023년 라이트하우스(예능), 光の跡/生命体 때는 깐머다.[6] 이와 관련해서 상당히 인상깊은 가사가 있다: '나에게만 보이는 것과, 여러 사람이 보는 세계 중 어느 쪽이 거짓인지 선택하면 돼. 너는 어느 쪽을 갈래? 나는 한가운데를 갈래.'[7] 그리고 여기에는 노래를 부르는 호시노 겐 본인 또한 포함될 때가 종종 있다. 실제로 그가 죽고 싶었을 때 음악을 만들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하고, '내가 내 자의로 죽으면 내가 만든 나의 음악을 배신하는 셈이다'라는 생각으로 버틴 적도 있었다.[8] 호시노 겐은 さらしもの(사라시모노)라는 악곡에서 자기자신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차라투스트라'라고 말하고 있다. 호시노 겐의 (정신적) 행보들을 보면 이 책에 나오는 차라투스트라와 유사한 부분이 많으며, 여기서 나오는 차라투스트라의 선물이 '인간은 어떻게 '나 자신'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뜻한다는 것을 보면 틀린 이야기는 아닌 셈이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창작 활동의 세계관 문서 참고.[9] 오오이즈미 요랑 만난 이후부터 오오이즈미 요가 호시노 겐을 계속 동정이라고 부르며 놀렸다. (약간의 시모네타 주의) 방송에서는 썰을 풀때 유학생, 재수생으로 순화해서 표현한다.[10] 실제로 학교폭력 관련 노래도 있다.[11] 항문거근이라는 것은 항문주변을 싸고 있는 근육 중의 하나인데, 항문거근증후군이란 이 근육에 어떤 이상이 생긴 병이다. 갑작스러운 극심한 통증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되거나 한밤중에 통증으로 깨어나거나 한다고. 이 병의 확실한 원인은 밝혀져 있지 않다. 일종의 항문근육통에 가깝다.[12] 당시 그들의 위상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aiko 열애 찌라시가 나왔을 때 호시노 겐이 일반인 남자로 모자이크 처리될 정도였으니.[13] [14] 결혼 직전에 발매한 러브송인 不思議(불가사의)에 대해 아라가키 유이와의 연인 생활을 담아낸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는데, 호시노 겐은 이에 대해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랑 타마코 마켓을 보고 난 후 가득찬 사랑 성분을 담아냈다고 밝혔다(...)[15] ‘남편’이라고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될 만큼, 두 사람의 결혼이 얼마나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었는지 알 수 있다.[16] 고급 맨션으로 보안이 철저해서 일본의 유명 연예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고 한다.[17] 2015년경부터 일본 금융시장에는 '인기 연예인의 결혼 발표와 시장 변동이 겹친다', '연예인의 결혼 발표는 일본 주식을 폭락시킨다,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도시 전설적인 징크스가 존재하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2021년 5월 19일 중국에서 금융기관에 암호자산 관련 업무를 금지하는 통지가 내려지면서 전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비트코인 가격이 당시의 반값 가까이 급락한 것이 큰 이유.[18] 결혼 발표 직전 호시노 겐은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35주년 테마곡 創造(창조)를 작곡하며 CF에 참여하였고, 배우자인 아라가키 유이는 모여봐요 동물의 숲 광고 모델을 맡고 있었다.[19] 2016년 당시에는 음정이 불안불안한 것이 확연히 들릴 정도였지만, 2022년에는 진성과 가성을 많이 오가는 곡임에도 불구하고 음이탈이 없었으며 잘 마무리했다.[20] 초회한정판에 콘서트 녹화영상, 메이킹 등 어떤 컨텐츠들이 들어가는지를 짧게 보여주며 소개해주고, 간단 코멘터리를 붙이는 식. 그의 부캐인 니세 아키라가 2014년에 생긴 이후로부터는 니세 아키라를 이용한 짧은 예능(콩트) 등을 초회한정판의 컨텐츠로 곁들이고 있다. 대체로 광고를 시작하는 말은 '도모.' 그리고 나중에는 이 뮤직비디오들의 완전판들을 수록하고 이와 관련된 해설 및 관계자 인터뷰, 메이킹 영상을 구성한 Music Video Tour라는 블루레이/DVD까지 출시한다.[21] 일본 재즈 밴드[22] 넘버 걸의 재결합 당시에는 안하다가, 결국 넘버 걸이 2022년에 다시 해산해서,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라이브에서 다시 히키가타리로 커버하고 싶다는 의향을 밝혔다.[23] 울려라! 유포니엄 3의 당시 시대가 2017년도쯤인데, 그 당시 일본에서 가장 인기곡이던 코이의 취주악이 신입생 환영회에서 흘러나오도록 시대를 맞춘 것이기도 하다.[24] 매우 바쁜 시기였지만 소속사에 제발 하루만 시간을 빼달라고 요구하고 요구한 끝에 하루를 비워 관람했다. 덧붙여 그의 아이돌 마스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아이돌 마스터측도 알고 있는지라 관계자로서 초대했다.[25] 이 대담은 YELLOW MAGAZINE+에서 확인 가능하다.[26] 묻지마 사랑,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지옥이 뭐가 나빠 등[27] 이는 리미널 스페이스가 의도하는 것 중 하나이기도 하다.[28] 그 당시에는 라이트 노벨이라는 용어가 제대로 정립된 때도 아니었고 판타지 소설이었다고 한다.[29] 2018. 03. 31. 까지 방송.[30] 그렇다보니 유재석과 관련된 장난성 드립이 나오기도 한다. #1, #2 호시노 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일부 커뮤니티 네티즌들이나 안티들 또한 이 뜻에서 파생해서 호시노 겐을 '일본의 멸칭 + 유재석의 멸칭'으로 부르기도 한다.[31] 마츠시게 유타카 등 배우 쪽은 물론이고, 이시바시 에이코, 나가오카 료스케 등 음악적 동료들 일부 또한 이미 내한한 적이 있다. SAKEROCK의 예전 멤버가 만든 인디밴드인 '자이니치 펑크'도 이미 내한했다.[32] 지옥이 뭐가 나빠(2013)에 같이 나온 적도 있었고, LIFE!라는 일본 콩트 프로그램에서 2017년 쯤에 같이 합을 맞추었던 적이 있다. #[33] 약 2만 5천명이 있었다보니 댓글의 속도가 상당히 빨랐다.[34] 지유노모리가쿠엔고교(자유의 숲 학원)가 시험과 성적이 없는 사립 대안학교로 한국어 교육이 있었다거나, 한국 강좌 교과가 따로 있었고, 일제강점기, 위안부 문제 등 한국 관련 역사 교육에 힘쓰고 있었다는 사실이 있다. 이 학교가 전쟁같은 폭력에 반대하는 교육 이념을 가지고 있어 그것에 영향을 받았을 순 있겠으나, 애초에 예체능 쪽으로 특화된 학생이라 수업을 못 들었을 가능성이 엄청나게 높다. 실제로 라디오에서 학창시절에 공부를 안 했다는 걸 후회하는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35] 실제로는 순수 일본 성이지만, 네티즌들 사이에서 재일교포 유래라는 잘못된 인식이 있었었다.[36] 특히나 그가 히트 칠 당시에는 한일관계가 악화되었었던 시기라 대체로 재일한국인 설은 안티들의 음해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잦았다. 그의 아내인 아라가키 유이도 재일한국인 설이 돌았었던 적이 있다.[37] 랩이 들어간 음악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긴하지만 존재하며, 그 외에도 랩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힙합을 모티브로 잡고 그걸 다른 장르들로 나타낸 곡들이 상당히 많다.[38] 같이 합동 공연을 했었던 적이 있다. 그 공연 당시의 유닛명은 'SAKERAP'으로 했었다.[39] 아라가키 유이가 한동안 가부키에 빠졌던 게 이 이유인 듯하다.[40] 그의 특징 문서에서도 서술했으나 호시노 겐은 '인트로(도입부)는 특히 편곡가의 솜씨를 보여주는 곳이다'라고 언급했을만큼 도입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41] 요네즈 켄시는 주제가인 感電(감전)을 만든 아티스트였고, 호시노 겐은 드라마의 주연 중 한 명이었다.[42] Creepy Nuts가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올 나이트 닛폰 제로'의 화요일 퍼스널리티였는데, 이는 호시노 겐의 바로 뒷 순서이다.[43] 아노는 최애의 아이 실사화 버전의 MEM쵸역을 담당하기도 한다.[44] 히무라 유우키와는 아키하바라@딥 에서 처음만나 친해져서 호시노 겐이 솔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 매년 히무라의 생일노래를 만들어주고 있고, 시타라 오사무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테마곡을 만들어준 적도 있다.[45] 참고로 나카무라도 호시노의 생일을 알고 있었다.[46] 일본의 밴드 인디고 라 엔드, 게스노키와미오토메, 제니하이에서 활동하는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카와타니 에논이 작성한 칼럼이다.[47] Pop Virus 직후, 그는 번아웃 증후군이 왔고, 40대가 되면서 새로운 자극을 찾아 여러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다.[48] 전혀 다른 심리 상태가 마음속에 같이 존재하고 있는 것[49] 일본은 흔히 성진국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한국과 중국이 더 엄격할 뿐이지 서양에 비해서는 보수적이고 기준이 빡빡하다.[50] 올 나이트 닛폰 제로를 시작하기 전에 대체로 "시각은 3시가 되었습니다. 000, 수고하셨습니다. 20xx년 x월 x일 0요일, 이 시간에는 올 나이트 닛폰 0(제로)을 보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시작한다.[51] 담당 작가 테라사카 나오키[52] 일본의 관용구로, 타인의 도움을 받아 스모를 하듯이 타인의 물건을 자신의 공이나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것을 뜻한다.[53] (연예인 등의) 홍보를 위해 광고 회사나 신문 등에 제공되는 사진.[54] 쉽게 말해서 생각이 드는 것이랑 실제로 직접 행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긴 하다. 그의 2013년도 에세이인 '일하는 남자' 또한 일본 원서로 한국에 들어왔을 때 '19세 이상 열람 가능' 표지가 붙었다. #[55] '젊었을 때의 무책임한 패기와 말'이라는 뜻이다.[56] 본인의 에세이에서 초등학교 시절 구구단도 못 외웠던 바보였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5] 2019년 Same Thing 때는 깐머, 2020년 MIU404때는 덮머, 2021년 不思議, 創造 때는 깐머, 2022년 喜劇 때는 덮머, 2023년 라이트하우스(예능), 光の跡/生命体 때는 깐머다.[6] 이와 관련해서 상당히 인상깊은 가사가 있다: '나에게만 보이는 것과, 여러 사람이 보는 세계 중 어느 쪽이 거짓인지 선택하면 돼. 너는 어느 쪽을 갈래? 나는 한가운데를 갈래.'[7] 그리고 여기에는 노래를 부르는 호시노 겐 본인 또한 포함될 때가 종종 있다. 실제로 그가 죽고 싶었을 때 음악을 만들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하고, '내가 내 자의로 죽으면 내가 만든 나의 음악을 배신하는 셈이다'라는 생각으로 버틴 적도 있었다.[8] 호시노 겐은 さらしもの(사라시모노)라는 악곡에서 자기자신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차라투스트라'라고 말하고 있다. 호시노 겐의 (정신적) 행보들을 보면 이 책에 나오는 차라투스트라와 유사한 부분이 많으며, 여기서 나오는 차라투스트라의 선물이 '인간은 어떻게 '나 자신'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뜻한다는 것을 보면 틀린 이야기는 아닌 셈이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호시노 겐/창작 활동의 세계관 문서 참고.[9] 오오이즈미 요랑 만난 이후부터 오오이즈미 요가 호시노 겐을 계속 동정이라고 부르며 놀렸다. (약간의 시모네타 주의) 방송에서는 썰을 풀때 유학생, 재수생으로 순화해서 표현한다.[10] 실제로 학교폭력 관련 노래도 있다.[11] 항문거근이라는 것은 항문주변을 싸고 있는 근육 중의 하나인데, 항문거근증후군이란 이 근육에 어떤 이상이 생긴 병이다. 갑작스러운 극심한 통증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되거나 한밤중에 통증으로 깨어나거나 한다고. 이 병의 확실한 원인은 밝혀져 있지 않다. 일종의 항문근육통에 가깝다.[12] 당시 그들의 위상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aiko 열애 찌라시가 나왔을 때 호시노 겐이 일반인 남자로 모자이크 처리될 정도였으니.[13] [14] 결혼 직전에 발매한 러브송인 不思議(불가사의)에 대해 아라가키 유이와의 연인 생활을 담아낸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는데, 호시노 겐은 이에 대해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랑 타마코 마켓을 보고 난 후 가득찬 사랑 성분을 담아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