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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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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식 프로필 ▼ ]
파일:external/contents.oricon.co.jp/2044783_201411190654454001416391646c.jpg소속사 공식 프로필 사진.[1][2]
バナナマン
바나나맨
<colbgcolor=#595959> 멤버 시타라 오사무, 히무라 유우키
결성 1993년
소속 호리프로 콤(HoriPro com)[3]
동기 안잣슈, 나인티나인, 아리요시 히로이키[4]
친분 오기야하기, 라멘즈, 바카리즈무, 호시노 겐, 도쿄03, 노기자카46

1. 개요2. 활동3. 멤버4. 역사
4.1. 결성4.2. 데뷔 후4.3. 2000년대의 행보4.4. 활약의 시작4.5. 현재
5. 개그 스타일
5.1. 빨간 연필5.2. 곳도탕5.3. 이로모네아
6. 콤비 관계
6.1. 친분
7. 여담8. 출연
8.1. 방송
8.1.1. 현재 진행 중인 레귤러8.1.2. 비정기 특방8.1.3. 과거
8.2. 라디오8.3. 드라마8.4. 영화
9. 음반10. 단독 라이브

1. 개요

バナナマン. 일본의 코미디언 콤비.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여 서서히 인기를 얻어 정상급까지 올라온 대기만성형 콤비이다.

2. 활동

일본의 오와라이 콤비이자 노기자카46 멤버들의 공식 오빠.[5] 소속사는 호리프로. 현 일본 중견게닌 중에서도 인지도와 호감도가 함께 높은 콤비 중 하나이다. 1993년 10월에 결성한 후, 1994년에 데뷔해 꾸준히 인지도를 높여갔다. 이렇다할 큰 브레이크는 없었지만, 천천히 인기를 쌓아가다가 2010년대 들어서 자신들이 메인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이 생기면서, 여러 예능방송들에 돋보이는 레귤러 패널이나 탁월한 진행자들로써 활약하고 있다. 자칭 저공비행 게닌.[6] 자신들은 이렇게 크게 될 수 있었던건 역시 매년 하는 라이브가 가장 큰 요소라고 말한다. 바빠진 최근에는 1년 1회만 하고있지만 예전에는 매월 각본을 짜며 전국을 돌아다닌 적도 있다고.

오와라이 팬들은 콤비간의 편차도 크지 않고, 역할분담도 잘 되어있는 등 궁합이 잘 맞아 안정감이 높다는 평이다. 둘도 이런 점을 알고, 서로를 높이 평가한다. 예전 바나나맨의 칸무리 방송 바나나파이어에서 서로의 좋은 점을 많이 말하는 쪽이 이기는 대결을 했었는데 시타라가 히무라는 1인 것을 10이든 100이든 해내는 힘이 있다고 말하자, 이에 히무라가 시타라는 0에서부터 1을 만들어내는 힘이 있다. 오히려 그 쪽이 대단한거다 라고 맞받아친다. 이에 한 일본 네티즌은 "0에서 1을 만드는 시타라랑, 1을 10이든 100이든 해내는 히무라라서 바나나맨은 이렇게 재밌는 거네" 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 시너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곳이 바로 손나바카나만이라는 칸무리 방송의 퍼시픽 히무[7]. 시타라가 상황에 따라 정말 기상천외한 지령을 내리는데 그것을 상상 이상의 재미로 소화해내는 히무라를 보면, 둘의 개그 궁합은 최고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 보러가기#1 #2

최근 근황은 여전히 잘 나가는 중. 시타라는 2015년도, 2016년도에 조사된 선호하는 MC 순위 탑 텐에 들 정도이며[8] 둘 다 한해동안 가장 많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 순위권에 들어가는 등 천천히 올라온 만큼 그 인기를 누리는 중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사건사고들이 없었기도 하고, 행동과 발언으로 논란이 된 적도 없어서 호감도가 높은 편.[9] NHK 홍백가합전의 우라토크 등 큰 장소의 사회 자리를 맡을 때에도 그 기대에 부합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개그는 예전만큼이나 선보이지는 않지만 매년 성황리에 콩트 라이브 공연을 열고, 히무라가 여러 프로그램들에서 개그로 맹활약한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개그 스타일 참조.

3. 멤버

자세한 사항은 각 멤버 문서 참조.

3.1. 시타라 오사무(設楽統)

파일:시타라.png

3.2. 히무라 유우키(日村勇紀)

파일:히무라.png

4. 역사

4.1. 결성

1993년 10월, 두 사람의 지인인 니시아키 겐키의 요청에 의해 4인조 그룹을 결성하면서 첫 만남을 가졌다. 당시 히무라는 고교 동창과 콤비를 하다가 그만둬 다른 파트너를 찾고 있었고, 시타라는 개그맨 와타나베 마사유키의 심부름꾼으로 일하고 있었다. 4인 그룹에서 탈퇴해 2인조가 된 경위는, 시타라의 제안이었다. 그룹의 2번째 연습에서 시타라가 니시아키와 그의 파트너가 별로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고, 또 4인조 개그맨 그룹이라는건 들어본 적도 없어서 그 날 히무라의 집에 가서 나머지 두명을 제외하고, 둘이 콤비를 하자고 제안한다. 결국 그 다음날에 니시아키에게 탈퇴 의사를 전했는데, 그 순간이 사실상 바나나맨의 결성 순간이었다. 그 순간에 니시아키는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쇼후쿠테 츠루베의 방송에서 이러한 결성 이야기를 자세히 했던 적이 있는데, 츠루베는 4인조에서 탈퇴하고 콤비를 제안한 시타라의 행동을 일컬어 '용케 그런 얘기를 잘도 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시타라를 제외한 세명은 모두 게닌 경험이 있었고, 시타라는 제일 연하에다가 오와라이에는 정말 처음 발을 들인 상태였기 때문(...). 시타라가 세명 중 히무라를 선택한 이유는 비슷한 나잇대이기도 하고, 자신이 쓴 개그 대본을 한명씩 읽어보게 한 적이 있는데, 히무라는 자신이 생각한것보다 그 이상으로 대본을 재밌게 소화해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21] 이러한 시타라의 제안을 받아들인 히무라도, 왠지 모르겠지만 받아들였다고.

결성 당일 히무라의 집에서 자려고 누워있는데, 히무라가 오밤중에 불을 켜서 '우리, 이제부터 굉장해질테니까.' 라고 진지하게 말했다는 것도 자주 언급된 이야기.[22] 동급생도 아는 사이도 아니었던 둘이 이렇게 오래 하게 될 줄은 자신들도 몰랐다고 말한다.

여담으로 히무라는 시타라보다 연상에 게닌 선배이기도 하니 시타라를 만나면 초면에 기선제압을 해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타라를 처음 만나자마자 그건 무리겠구나 싶어서 관두었다고... 그래도 히무라의 시타라에 대한 첫인상은 '보기보다 상냥하다' 였다고 한다. 서서 시타라를 기다리는데, 멀리서 날라리처럼 생긴 시타라가 껄렁한 자세로 다가와서는 굉장히 정중한 자세로 '혹시 히무라 씨이신가요..?' 라고 말을 걸었었다는 일화도 있다.

4.2. 데뷔 후

1994년 2월 '시타라히무라' 라는 이름으로 데뷔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바나나맨'으로 콤비명을 바꾼 후 그 해에 단독 라이브 공연을 개최한다. 당시에는 라이브 공연을 도는 게닌은 드물었다. 바나나맨 콩트 특유의 정교한 스토리성과 뛰어난 연기력으로 업계에서의 평가는 높지만[23], 텔레비전 방송들은 개그를 선보일 수 있는 시간이 짧고 개그의 임팩트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많았기 때문에 코미디 방송과는 인연이 없었다. 이후로도 매년 콩트 라이브를 개최한다. 다른 게닌들과 유닛을 만들어 유닛 라이브도 자주 선보였다. 자세한 사항은 여담 항목 참조. 일과는 별개로 1999년에 시타라는 19살 때부터 교제하던 아내와 결혼했다.

데뷔 당시부터 현재까지 공사 양면으로 바나나맨과 친밀하며, 여러 콩트 각본에도 참여하고, 제 3의 바나나맨이라고도 불리는 방송작가 오쿠라와의 인연도 이때부터이다. 바나나맨의 첫 단독 라이브 공연과 프로덕션 진리키샤 라이브 등에 게스트로 출연한 바나나맨을 보고 충격을 받은 오쿠라는 적극적으로 바나나맨에게 접근하고[24], 시타라의 집에 놀러갈 정도의 사이가 된다. 원래 게닌이었던 자신이 쓴 개그 각본을 엄청나게 재미있게 소화해내는 히무라를 보고, 자신은 게닌보다는 방송 작가 쪽이 맞다고 느끼며 시타라에게 '함께 하고 싶습니다.' 라는 의사를 전해왔다.[25] 이때의 바나나맨을 오쿠라는 콩트 괴물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표현한다.

또 현재 일본 최고의 핀게닌이자 MC라 해도 과언이 아닌 아리요시 히로이키가 90년대에는 사루간세키라는 그룹의 음반 대 히트로 인기 절정을 달리던 시기가 있었는데, 당시 선배인 바나나맨이 사루간세키의 카게무샤[26] 일을 하는 굴욕적인 시기도 있었다. 바나나맨을 사루간세키인줄 착각하고 사람들이 몰려들때 그틈을 타서 사루간세키가 퇴장해서 다음 행사로 간다던지, 바나나맨이 사루간세키가 노래하러 나오기 전에 무대에서 바람잡이 일을 하기도 했다.

이때까지는 텔레비전 방송에 나가지 않고도 '콩트 라이브 무대만 열심히 하면 되겠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시기의 개그 프로그램들에 별로 출연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금 회상해보면 진작에 텔레비전 방송에 발을 들일 걸 그랬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4.3. 2000년대의 행보

라이브 무대에서 텔레비전 방송으로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2003년 웃짱난짱의 우치무라가 진행하고 사마~즈 등이 레귤러진으로 있는 '우치무라프로듀스'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오기야하기, 게키단 히토리등과 함께 와카테게닌으로써 비정기적으로 출연하며 지명도를 높여갔다. 그러다가 2005년도에는 와카테게닌 붐이 일어난다. 하지만 타카 앤 토시, 블랙 마요네즈, 오기야하기 등 또래 콤비들이 조명을 받는 가운데 바나나맨은 별로 눈에 띄지 못한다. 소속사 선배 게닌이나 연예인도 없었고, 조언을 받거나 하는 등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기 때문. 바나나맨은 스스로 현장 경험을 쌓아가며 시행착오를 반복해갈 수 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방송 분위기를 금방 파악하고, 방송에서 요구하는 것에 대한 대응력을 습득했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바나나맨이 눈에 띄기 시작한건 2006년부터이다. 관동 게닌을 대표하는 톤네루즈의 방송 '톤네루즈의 여러분 덕분입니다'에는 레귤러 수준으로 불려나가기도 했고, 다운타운, 사마~즈, 아메아가리 결사대 등 거물급 게닌들이 다수 레귤러로 있는 링컨의 '프렌들리 다운타운'이라는, 다운타운과 친해진다는 기획에 출연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링컨의 게스트로써 자주 출연하게 되기도 하였다. 히무라는 특유의 캐릭터성으로 개인으로 출연해서 박장대소를 일으키곤 했다. 특히 히무라는 몰래카메라에 잘 걸리는 게닌으로 활약했는데, 2006년 한해동안 몰래카메라에 총 24번이나 걸렸다. 한달에 두번 꼴로 걸린 것 바나나맨 스스로는 링컨에 출연하며 다운타운 등에게서 '이런 때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 좋다', '이 때는 다같이 웃는 것' 등 방송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또 이러한 초기는 히무라의 캐릭터성에 시타라가 눈에 띄지 않던 시기. 바나나맨 중 히무라 아닌 쪽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2006년도에는 안잣슈의 와타베가 아닌 쪽 코지마와 함께 특징 없는 게닌이라는 주제로, 2008년도에는 가야 게닌이라는 주제로 아메토크에 나갔을 정도.[27]

2007년은 많은 방송에 불려나가며 선배 게닌들에게 '너희 브레이크 한 거 아니냐'라는 농담을 들을 정도였는데, 별개로 시타라에게 인생 3대 사건 중 하나가 벌어졌던 년도이다. 2007년 3월, 자택에서 화재가 발생해 자신의 방이 전소한다. 원인은 다 끈 줄 알았던 담뱃불(...).[28] 소중한 물건들이나 DVD, 라이브 대본이고 콩트 대본이고 뭐고 전부 불타버렸다고. 하지만 바로 6시간 후 개그 경연대회 '이로모네아' 촬영에 임한다. 이로모네아의 의상인 정장도 불타버려서, 둘이 함께 턱시도로 새로 맞춰입고 등장했다. 그리고 경연에서 그 화재를 이용한 네타로 이로모네아에서 처음으로 100만엔의 상금을 타가게 된다! 자세한 사항은 시타라 오사무 항목 참조. 또 이 '이로모네아'에서 바나나맨은 첫번째 주자를 자주 맡았다. 방송 관계자는 바나나맨을 항상 첫번째 주자로 부탁하면서, 수록 전체의 분위기가 결정되는, 관객의 분위기도 잡는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역할인데도 정말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아무튼 시타라는 이 화재로 화제가 되어, 이것을 소재로 괴롭힘 받는 캐릭터로 잠깐이지만 떠올랐었다. 또 시타라는 2007년 게닌 요리왕 결정전의 초대 챔피언이 되는 등의 활약을 펼친다.

2008년에는 킹 오브 콩트의 결승에 오르지만 버팔로 고로에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이것에 대해서 결승전 우승자 결정 방식에 대해 작은 논란이 있었는데, 아래 여담 항목 참조.) 이후로는 스스로 쌓아온 방송 경험들로 여러 방송에서 활약한다. 시타라는 막나가는 MC로써의 재능을 발휘하고[29], 히무라는 부사이쿠 캐릭터와 온 몸을 던지는 개그로 활약한다. 그리고 2010년경, 일본 버라이어티 계에서는 변화가 일어났다. 바나나맨이 잘 활약할 수 없었던 오와라이 개그 방송의 시대가 끝난 뒤 토크의 시대가 찾아왔고, 바나나맨은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4.4. 활약의 시작

2009~2010년경 일본 버라이어티 계가 바뀌고, 자신들이 웃기려는 생각은 일단 두고 방송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하며 바나나맨의 능력이 개화한다. 여러 거물들과 맞물렸던 수많은 방송 경험을 토대로 해서, 경험이 적은 출연자들에게서도 재미를 뽑아내는 대응력, 즉 방송의 질을 높이는 능력이 좋은 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30] 시타라는 이러한 자신들을 중간 관리자 게닌이라고 표현했다.

이러한 중간 관리자 역할 뿐만이 아니라 게스트로써 나왔을 때에 기획 완성도가 높은 점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대표적인 활약이 바로 곳도탕링컨이라 할 수 있겠다. 오랫동안 준레귤러로써 참가해온 곳도탕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레귤러진은 그냥 앉혀두고, 히무라와 시타라가 몸과 입담을 써가며 빵빵 터트리는 기획이 있을 정도이다. 링컨도 2010년도에 들어서며 둘이 각자의 능력을 살려 여러 기획에서 활약하곤 했다.

그 외에도 여러 방송 관계자들에게 신뢰도가 높다. '기획을 성립시키는 능력이 뛰어나다', '특집 등으로 방향이 제대로 정해지지 않은 기획도 정확하게 목표를 잡아준다' 등의 호평이 자자하다. 또 기본적인 태도 면에서도 '아무리 바빠도 손을 빼지 않는다, 누구보다 열심히 연습한다'는 등 호평을 받는것도 성공의 토대인 것으로 보인다. 매니저들 사이에서도 '이 게닌의 매니저가 하고싶다' 랭킹의 2위에 뽑히며,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쁜 소문을 들은 적이 없다' 라는 칭찬의 말을 들었다. 또한 심한 츳코미를 하지 않는 바나나맨의 개그 스타일도 호감도가 높은 것이다.

한번에 확 뜨지 못했고, 이렇다할 브레이크가 없었지만 결국 이것이 바나나맨이 지금 이 위치에 있을 수 있는 이유로 꼽힌다. 말 그대로 대기만성의 표본. 그때그때 방송이 자신들에게 요구하는 것을 살폈고, 바뀌는 버라이어티 계에 적응했다. 스스로 갈고 닦은 능력들로 어느새 골든이나 심야의 메인 레귤러로 존재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4.5. 현재

둘이 합쳐서 레귤러 방송 10개 이상, 이미지도 실력도 좋은 게닌 콤비로 거듭났다.

2012년에 시타라가 새로 시작하는 주5일 아침 정보 방송인 '논스톱!'의 MC로 취임. 처음으로 본격적인 MC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논스톱의 한 방송 관계자는 '시타라 씨가 정보 방송의 MC를 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만든 프로그램이라는 발언을 했을 정도로 MC 능력을 높이 산 모양이다.

일주일 내내 바나나맨을 텔레비전에서 만나볼 수 있을 정도로 바빠졌다. 게다가 시타라는 아침 오비방송인 논스톱!을 맡기 때문에, 매일매일 일이 끊이지를 않다 보니 사생활이 없어졌다고. 그래도 게닌이라고 '무슨 재밌는 에피소드 있나요?' 라는 질문을 들어도 일만 하니까 대답할 에피소드가 없는 게 고민이라고 한다. 팬들의 입장에서는 일이 많아진 건 좋지만, 과로로 쓰러지는 거 아니냐며 걱정하는 중. 2016년 말에는 몇년동안 한번도 빠지지 않은 논스톱!의 수록을 장염 때문에 결석하기도 했다. 아픈 와중에 그래도 하겠다며 방송국까지 왔지만 결국 하루 쉬었다고 한다.

2013년에는 결성 20주년을 맞아 결성 10주년을 맞은 도쿄03과 유닛을 결성해 합동 라이브 공연을 했다! 유닛명은 handmade works. 도쿄03은 선후배 관계지만 한명을 빼고는 동년배이기도 하고, 여러모로 친밀한 관계이다.

2014년부터는 NHK 측에서 직접 오퍼가 들어와 NHK 홍백가합전의 홍보위원인 홍백 선전부를 맡게 되었다. 선전부장은 시타라. 선전부 활동으로는 2014년부터 현재까지 우라토크 채널의 진행과, 사전 방송의 사회를 맡고 있다. 특히 우라 토크 채널은 시청자의 시선에서 무대에 대한 호응을 하고, 가수의 정보를 주는 것과 동시에 자유로운 진행으로 개그나 웃음을 빵빵 터트려주기 때문에 반응이 좋다. 자타공인 여동생들 노기자카46이 등장한 순간의 바나나맨 우라토크 영상을 보면 멤버들을 아주 각별히 여기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와중에 가사한테 츳코미하는것은 덤. 자세한 사항은 NHK 홍백가합전 참조. 홍백 우라토크 진행은 2017년 홍백까지 맡았고, 2018년부터는 샌드위치맨이 그 자리를 물려받게 되었는데, 샌드위치맨의 다테는 시타라에게 이에 대한 상담도 부탁했다고 한다.

참고로 NHK 홍백가합전의 홍백 선전부로써 2014년의 첫 진행이 굉장한 호평을 받았다. 한 스포츠지에서는 바나나맨을 홍백의 숨겨진 MVP라 칭했을 정도. 기사 원문. 그래서 2015년의 홍백에서는 무려 모든 사회자와 가수들을 제치고 바나나맨이 첫번째 참가자로 발표되었다.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홍백가합전의 출연진 목록에 사회자와 가수들은 아직 발표되지 않아서 몇주동안 오직 바나나맨의 이름 하나만 맨 위에 덩그러니 있었다고 한다. 본인들이 괜히 두근거렸다고.. 더불어 2015년에는 2014년에 1회만 진행했던 홍백선전부라는 생방송을 무려 21일부터 30일 홍백날 직전까지 매일매일 진행했다. 2016년과 2017년에는 생방송 홍백선전부는 사라졌지만 '홍백 직전 스페셜'의 사회를 맡았다.

2015년부터 다운타운마츠모토 히토시[31], 사마~즈미무라 마사카즈, 오오타케 카즈키와 함께 시타라, 히무라 다섯명이서 킹 오브 콩트의 심사위원을 맡고 있다. 심사위원 라인업을 보면 알겠지만 다들 바나나맨의 선배 게닌들에다가, 대회 참가자가 심사위원이 된 경우는 일본 개그 경연 대회들을 전부 통틀어서도 바나나맨이 처음이라는 것만 봐도 바나나맨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다만 2015년부터 채점방식이 어느 심사위원이 무슨 점수를 주는지 다 오픈되는 방식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은 전부 심히 부담이 컸다는 후문. 다운타운의 마츠모토는 대회 시작 전에 사마~즈와 바나나맨을 일컬어 이런 심사 자리에 나섰다는 것 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라 언급했다.

파일:external/com.horipro.co.jp/haraguro.jpg
2017년 2월 2일 발매된, 2016년 바나나맨 라이브 Haraguro no Namaiki의 DVD 표지.

2017년 6월 16일자 바나나맨의 라디오 바나나문 GOLD에서 2017년 바나나맨 라이브의 이름과 날짜가 공개되었다. 라이브명은 Super Heart Head Market. 포스터는 언제나처럼 마주보며 웃는 바나나맨이다. 8월 10일부터 13일까지, 4일간 다섯번의 공연을 성황리에 종료. 졸업한 노기자카46 멤버 하시모토 나나미, 후카가와 마이, 게닌 후배 도쿄03 등 다양한 유명인들이 보러 와 주었고, 호리프로의 사장도 바나나맨의 라이브를 보고 간 뒤 페이스북에 극찬의 코멘트를 남겼다. 그 바쁜 와중에도 매년 빼먹지 않고 단독 라이브를 하는 것은 상당한 노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2017년 6월 28일에 열린 테레토 음악제에서는 마침내 공식 여동생 노기자카46과의 콜라보 공연을 선보였다! 테레토 음악제 공식 계정에서 올라온 무대 뒤 사진. 노기자카x바나나맨 콜라보라고 발표했지만 사실상 무대에 서는것은 노기자카x히무코[32]이고, 시타라는 그저 참석해서 첫인사를 함께 하고 사회를 거들었을 뿐이다. 노기자카46의 인플루엔사 무대 중반 이후로 히무코가 등장해, 무려 센터를 맡아 춤을 춘다. 1년에 몇번 없는 음악제에서 바나나맨에게 센터를 맡긴 노기자카 측도 대단 얇고 가녀린 멤버들 사이로 풀샷에서 비춰지는 거구[33]와 센터로 원샷을 잡힐 때의 파급력(...)에 잠시동안 히무코가 급상승 검색어 1위, 노기자카의 곡 인플루엔사는 10위, 히무라는 11위 등 순위권에 오르는 위엄을 보였다. 히무라가 히무코를 연기할 때에 늘 그렇듯이 춤과 연기력의 완성도는 매우 높았고, 노기자카 팬들의 반응도 아주 좋았다. 히무코가 태어난 방송 곳도탕의 PD도 무대 뒤에 있었던 모양인데, 무대 뒤의 모습도 굉장히 재미있었다며 그 모습을 노기중에서 촬영했으니 꼭 봐달라는 트윗을 남겼다. 곳도탕 PD가 올린 히무코.

이후 7월 2일에 진구 구장에서 있었던 노기자카 콘서트의 인플루엔사 무대에 히무코가 난입해 함께 춤을 추었다! 팬들도 환호성으로 환영해주었고 노기자카 멤버들도 전혀 몰랐기에, 갑작스런 등장에 놀라면서도 자연스레 대형을 바꾸어 히무코를 끼워주었다. 그리고 노기자카 공사중에서 7월 16일자, 7월 23일자 2회에 걸쳐 히무라가 음악제를 위해 인플루엔사를 연습한 과정과 진구 구장에 난입하게 된 경위가 담긴 바나나맨 다큐를 방영했다. 방송을 보면 음악제 생방송에서 틀린 것에 대해 히무라가 아쉬워하자, 시타라가 직접 '지금 노기자카의 높으신 분 계셔? 나한테 맡겨' 라더니 노기자카 운영위원장 콘노와 직접 대담해 히무라도 모르는 사이에 키워온 권력을 사용해 진구 구장의 난입에 대한 허락을 받아낸다. 이후 구장에서의 무대에선 틀리지 않았고, 노기자카와 히무코의 콜라보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2017년 상반기(1월~6월) TV출연횟수 랭킹의 모든 연예인 부문에서 시타라는 1위, 히무라는 10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게닌 부문에서는 시타라 1위, 히무라 6위. 게닌 콤비 중에서 콤비 두명 모두 10위 안에 이름이 오른 콤비는 바나나맨뿐이며, 일본에서 제일 바쁜 게닌 콤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34] 게닌 인기 랭킹에서는 16위를 차지했지만, 위로는 대부분 거물급 혹은 현역으로 네타를 선보이는중인 게닌들임을 감안하면 사회쪽으로 자리를 잡은 중견 게닌 치고는 선방한 편. 이후로는 다시 고쿠분 타이치에게 밀려 2위를 유지하는 중이다.

2017년 8월 11일자 라디오 바나나문 골드에서 최근에 뉴 싱글 패밀리 송을 발매한 호시노 겐을 게스트로 맞이했다. 둘 모두 지금처럼 뜨기 이전인 2006년부터의 인연이기에 바나나맨의 '우리도 패밀리인거 맞지?' 라는 말에 호시노 겐도 흔쾌히 그렇다고 대답을 해서, 호시노 겐의 공식 형이 되었다.늘어가는 가족 이에 호시노 겐은 노기자카의 공식 오빠인 바나나맨이 자신의 형이면, 간접적으로 자기도 노기자카의 공식 오빠가 되는거냐고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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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의 단독 라이브명은 "one-half rhapsody"이며, 8월 2일부터 4일간 이루어졌다.[35]

2018년 4월에 히무라가 교제하던 아나운서와 결혼에 골인했다는 호사가 전해지고 얼마 안 지난 9월, 히무라가 미성년자와 불륜을 했다는 찌라시가 퍼졌다. 이에 팬들도 멘붕하고 사람들은 어떻게 결혼하고 바로 그럴 수 있냐며 까기 바빴지만 진상은... 상대 여성이 나이를 속이고 만났던 데다가, 16년도 더 된 이야기였다. 즉, 히무라가 30살일 적에 성인이라고 속이고 접근해 온 미성년자 여성과 사귄 적이 있는데, 그 여성이 16년이 지난 지금 찌라시 잡지에 히무라를 팔아먹었다는 것. 진상이 밝혀지자 순식간에 내용의 심각성이 옅어지고 저런 여자에게 속아넘어간 히무라가 불쌍하다는 쪽으로 흘러가며 이렇다할 논란은 되지 않았지만, 게닌들에게 놀림은 받았다.

5. 개그 스타일

5.1. 빨간 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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赤えんぴつ
왼쪽부터 오-짱, 히-톤.

2001년 결성된 포크 듀오. 보컬에는 오-짱의 시타라[43], 기타는 히-톤의 히무라가 역할을 맡는다. 시타라의 말에 의하면 기분 나쁜 놈들이 지들같은 노래를 하는 것이 컨셉이라고. 아주 옛날에 결성되었지만 최근까지 매년 라이브에서 선보이고 있고, 팬들 사이에서도 꾸준한 인기를 자랑한다. 바나나맨이 라이브에서만 콩트의 일환으로 연기하는 가상의 포크 듀오라고 볼 수 있다.
콩트 라이브의 컨셉에 맞춘 노래를 부른다.[44] 매번 다른 시시한 이유로 싸움이 일어나 몸싸움으로까지 번지며 라이브가 중단되고, 히-톤이 울음을 터트리고, 순식간에 화해한 뒤에 라이브를 재개하는 것이 전례이다. 화해 방법은 네 손가락으로 서로를 톡톡 건드리는 것. 귀엽다 싸움의 과정은 먼저 오짱이 히톤을 화나게 하며, 히톤이 의자채로 오짱을 뒤로 넘어트려버린 후 라이브는 중단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오짱이 반격을 하고 일방적으로 맞은 히톤은 울음을 터트린다. 이후 서로의 배와 머리를 네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며 화해를 한 후에, 라이브를 재개한다. 노래가 끝난 후에는 오짱이 CD를 5000원에 팔고있으니 사달라는 멘트를 한다.[45] 이후 히톤이 개그를 하고, 반드시 웃는 얼굴로 안녕! 이라는 말과 함께 웃으며 위를 올려다보며 막을 내린다.

처음에는 웃기려고 시작한 포크 듀오이지만, 점점 진심으로 노래하는 것 같다고. 작곡은 둘이서 하고 작사는 거의 모두 시타라가 맡는다. 시타라 曰, 작곡이라고 해봤자 자신이 아무 음이나 흥얼거리면 그것을 듣고 히무라가 기타로 코드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그래서 전문 뮤지션들에게서 말도 안 되는 코드 진행이라고 들은 적 있다고 한다. 음악적인 면 보다는 가사를 통한 이야기의 전달에 중심을 두기 때문에, 음악적으로 다채로운 코드의 변화는 없지만 음악의 완성도도 높고 이야기 중에서는 진지한 내용도 있어 듣는 관객이 감동해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있다.

콩트 듀오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전문 아티스트 팬도 존재한다. 스키마스위치, 가수 모자인 모리야마 료코와 모리야마 나오타로, 시이나 링고 등. 그 중에서도 모리야마 나오타로는 들어가겠다고 할 정도로 빨간 연필의 음악적 재능과 가창력을 극찬하며, 자신이 직접 작곡한 노래 코이노보리(잉어연)를 선물하기도 했다.[46] 노래들은 기본적으로 라이브에서만 들을 수 있으며, 따로 발매되지 않아 라이브 DVD가 아니면 들을 방법도 없다. 그리고 유튜브에는 전부 있다.

과거 한 라이브에서 중대 발표라며, 메이저 데뷔는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2012년도 DVD 발매 이벤트에서는 빨간연필의 곡 수가 앨범 하나를 낼 정도로 많아졌다며, 노래를 모아 앨범을 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것을 가슴에(それを胸に) 라는 노래는 가장 긴 노래이기도 한데, 노래를 부르기 전에 시타라가 음정을 잡지 못하고 해프닝이 벌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관중은 물론 자신들도 대폭소. 콩트로 짜여진 내용이 아니다! 노래에 대해서는 노래 한 곡에 드라마 한 편이 담겨있다는 평. 또 여담으로 2014년도 라이브에서의 오짱과 히톤의 싸움 대목에서는 오짱이 히톤의 탱크탑을 찢어버렸는데, 놀랍게도 깔끔히 어깨 부분의 천이 뜯겨져나왔다. 그리고 이렇게 깔끔하게 옷이 찢어지는 경우도 드물다며 호시노 겐에게 부적으로 전달되었고, 호시노 겐의 라이브에서도 등장했다.

5.2. 곳도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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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곳도탕 레귤러진 오기야하기, 게키단 히토리와 함께 곳도탕 영화화를 홍보하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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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도탕 마지우타 선수권이 낳은 히무라의 역대급 캐릭터 히무코어? 귀엽다
ゴッドタン[47]

2005년 특집으로 진행된 곳도탕 파일럿 방송의 키스 참기 선수권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2007년 곳도탕의 정식 프로그램 확정 년도부터 준레귤러로 참석해 초기에는 2화중 1화 꼴로 출연했다. 아이돌 애교 선수권에는 아예 사회자로 출연할 정도. 안그래도 레귤러진인 오기야하기가 정말 데뷔 당시부터 쭉 함께해온 콤비이기도 하고, 워낙 자주 나오다보니 2008년에 공식 준레귤러로써 인정받았다. 레귤러 멤버인 게키단 히토리는 곳도탕에서의 바나나맨에 대해 새로운 기획이 시작될 때 등 불안한 때에 와주곤 한다라고 언급할 정도로 믿음직한 준레귤러 멤버인듯.

하지만 2015년을 기점으로 개인적인 일정이 바빠진 요즘에는 다수의 기획들에 참가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2014년도까지는 연초부터 연말까지 그래도 꾸준히 출연했지만 2015년에는 8회, 2016년도에는 딱 두번 출연했다. 곳도탕의 인기 기획인 게닌 마지우타 선수권만은 반드시 참가해, 히무라가 연기하는 히무코가 늘 무대를 뒤집어놓는 역할을 해주곤 한다. 2017년 초에 진행된 마지우타 선수권에도 참가해 안정적으로 웃음을 뽑아내고 갔다.[48] 키스 참기 선수권에도 히무라가 참는 역할, 시타라는 지켜보는 사회 역할로 자주 출연했다. 그래서 게키단 히토리가 주연으로 찍은 '곳도탕 키스 참기 선수권 THE MOVIE'에 특별 출연했다.

게닌 마지우타 선수권이란 판정단이 입에 우유를 머금고 있는데, 게닌들이 나와서 마지우타, 즉 진심으로 노래를 부른다. 게닌들은 웃기려는 게 아니고 진심으로 노래를 부르지만, 누가 봐도 웃겨서 빵 터지는 것이 컨셉. 그래서 3명 이상(후에 룰변경으로 4명) 우유를 뿜으면 노래를 중단시킨다. 그러면 노래가 중단된 마지우타 게닌들은 판정단들을 노려보는것도 약속된 진행 중 하나이다. 노래는 게닌들이 직접 작사작곡한 오리지널 곡으로 하는 것이 규칙.[49] 초기에는 일반 기획처럼 자주 진행했지만 나중에는 특집처럼 되어 연초에만 하는 것이 되었다. 거의 매번 노래하기 전의 코멘트부터 빵 터트려서, 1회차는 노래가 시작하자마자 끝나버리고 2~3회차에 들어서야 전곡을 들을 수 있곤 한다. 바나나맨은 이 마지우타 선수권의 1회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빠지지 않고 개근 출연한 기획 중 하나이기도 하다. 라이브 콘서트도 매년 여는데 할 때마다 공연장이 커져서 2016년에는 무도관에서 했다.
키스 참기 선수권에는 시타라는 참가하지 않고, 히무라가 거의 매 회 참가하곤 한다. 키 몬스터즈 챔프는 히무라가 괴상한 분장을 하고, 시타라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 다양한 게임을 통해 아이돌을 놀라게 하고, '가장 기분나쁜 사람'을 선정하는 기획이다.

5.3. 이로모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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イロモネア
도전자로써 참가하던 시절과, 2016년 mc가 되어 돌아온 모습.

웃짱난짱이 진행하는 '웃난 극한 네타배틀, 더 이로모네아, 웃게 하면 100만엔!' 줄여서 이로모네아라는 개그 경연 프로그램과는 깊은 인연이 있다.[51] 2005년부터 2011년까지 활발히 출연했으며 콤비로써 17회 출연으로 모든 출연진들 중 최다 출연 기록을 가지고 있다. 자칭 미스터 이로모네아, 이로모네아 출신 게닌이라는 별명이 붙어있을 정도. 이 이로모네아에서 바나나맨은 첫번째 순서를 자주 맡았는데 방송 관계자는 바나나맨을 항상 첫번째 순서로 부탁하면서 수록 전체의 분위기가 결정되는, 관객의 분위기도 잡는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역할인데도 정말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한다.

다섯가지 종목의 도전을 전부 성공하여 100만엔을 획득한 횟수도 최다 기록을 가지고 있다. 시타라는 바나나맨 콤비로써의 3번의 기록과 2009년 11월 26일의 '더 핀모네아'라는 홀로 도전하는 특집에서의 우승 기록으로[52] 총 네번의 획득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프로그램 최다 기록이다. 프로그램 내에서 네번의 100만엔 획득 기록을 가진 유일한 게닌.

바나나맨 콤비로써는 임펄스, 게키단 히토리, 앙가루즈의 타나카 타카시의 넷이 함께 세번의 획득 기록을 가지고 있다. 첫번째 획득은 2007년 3월 23일인데, 그 유명한 시타라의 자택 화재 사건의 6시간 이후의 녹화에서 화재를 네타로 삼는 자학적인 개그로 최초로 상금을 획득했다. 자세한 사항은 시타라 오사무 항목 참조. 특히 그 녹아내렸지만 여전히 작동하는 휴대전화의 충격이 너무 커서, 프로그램 역사상 최초로 그 휴대폰을 사용해 출연진 단체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두번째 획득은 2010년 12월 18일, 마지막 도전인 물건개그에서 피아노로 그 유명한 히무라의 Get Wild 연주를 선보여 5명중 4명을 빵 터트려 100만엔 획득에 큰 공헌을 했다. 세번째 획득인 2011년 3월 25일의 상금은 바나나맨의 의사에 의해 동일본 대지진의 후원금으로 전액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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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많은 횟수를 출연한 만큼 바나나맨이 도전을 할 경우에는 관례처럼 되어있는 것들이 많다. 특히 첫번째 스테이지에서 '모노마네'를 선택해, 히무라의 대표 모노마네인 어린 시절의 타카노하나를 하는 것이 약속처럼 되어있다. 위 사진은 방송에서 히무라가 출연할 때마다 선보인 타카노하나들을 전부 모아놓은 것. 매번 함에도 불구하고 매번 스테이지를 통과하는 것도 여러모로 대단한 일이다.[53] 또 바나나맨은 저 많은 출연들 중 네번째 스테이지 이전에 실패한 적이 없는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프로그램도 종영하고, 연말특집처럼 년 1회만 진행하는 형식이 되었지만 2011년 이후로 출연하지 않다가, 2016년 12월 26일에 오랜만에, 그것도 웃짱난짱을 대신한 mc로써 이로모네아에 모습을 보였다! 물론 아예 mc를 넘겨받은 것은 아니며, 17년 1월 2일 이로모네아 본편을 위한 와카테 게닌 예선전에 웃짱난짱이 스케쥴이 맞지 않아 바나나맨이 mc를 맡게 된 것. 하지만 인기 없는 와카테 시절을 함께하던 이로모네아에, 유명한 중견 게닌이 되어 mc로써 돌아온 것은 여러모로 기념적인 일이다.

6. 콤비 관계

두 멤버간 사이가 상당히 좋아 라디오 생방송에 선물을 준다거나 하는 일도 많으며 다른 연예인들도 이들의 사이가 좋다고 증언한다. 히무라는 아라시니시야가레에 홀로 나와서 시타라가 정말 좋고, 시타라의 자는 모습을 찍는 것이 취미라고 고백(?)하며 몇 장 공개한 적도 있다. 자는 모습이 귀엽다며, 시타라 말고 다른 사람들의 자는 모습은 흥미 없다고. 시타라는 '히무라 유우키의 재미를 세상에 전하는 것이 내 사명'이라는 발언도 종종 한다. 일에 관해서도 히무라는 맞고 구르는 등의 험한 일들은 자신의 역할이니까 자신에게 맡기라고 한 적이 있으며, 시타라는 히무라가 이러한 이미지와 캐릭터 때문에 방송에서 웃음거리가 되거나 하찮은 취급을 당하는 것이 심했을 경우에 화를 낸 적이 몇 번 있다.

특히 서로의 생일마다 선물을 챙겨주고, 여행을 다녀오거나 하면 형식적이고 겉치레고 그런 거 없이 진심으로 오미아게[54]를 사다주는것은 유명한 일화. 선물의 경우 처음에는 개그의 일환으로 외발자전거, 저글링 등 어이없는 생일선물을 사주던 것이 그냥 평범히 받으면 기뻐할만한 생일선물로 변했다고. 시타라는 아내보다 히무라에게 비싸고 좋은 선물을 해주는 것 같다고 했다. 특히 시타라가 Y.H라는 히무라의 이니셜을 새겨서 선물한 루이비통 지갑은 방송에도 인질로 자주 출연했고, 히무라가 루이비통을 좋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선물에 관해 SMAPxSMAP에서 밝힌 이야기에 의하면, 히무라는 2014년 자신의 생일에 시타라에게서 받은 금팔찌를 언제 어디서나 항상 끼고다닌다고 한다. 이는 현재까지도 마찬가지이다. 잘 때도, 목욕할 때도, 꼭 벗어야 할 상황이 아닌 이상 늘 끼고있다고. 실제로 2014년 이후 방송을 보다보면 확인할 수 있다. 이제는 팔찌가 없으면 자신이 아닌 것 같다고 한다. 한편 히무라도 2015년 정월에 여행을 갔다가 시타라에게 답례로 금팔찌를 선물한 바 있다. 시타라가 선물한 금팔찌, 히무라가 선물한 금팔찌. 시타라는 늘 끼지는 않고 그날그날 골라서 착용하는 편이다. 방송을 보다보면 자주 낀다 이 이야기를 듣고 놀라는 방청객들과 아무런 기념비도 아닌 날에도 선물을 해주냐며 질색하는 나카이에게, 필사적으로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고 해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55] 해체를 생각해본 적 있냐는 말에도 둘 다 전혀 없었다는 대답.

시타라는 콤비 관계에 대해, 둘이 맨날 모여서 꺄꺄거리는 것만이 사이가 좋은 것이 아니고, 그냥 함께 있기만 해도 괜찮고 무슨 일이 생기면 이야기를 나누는 것 만으로도 사이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콤비 중에 자신들처럼 계속 사이 좋은 경우도 별로 없다고. 히무라의 경우는 콤비 관계에 대해 애정을 특히 더 드러내는 편이다. 자세한 내용은 히무라 유우키 항목 참조.

프로그램에서 다툴 때에는 뺨을 때려 결말을 짓는 경우가 잦다. 그중에서도 시타라가 때리고 히무라가 맞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도 예전부터 사석에서도 장난으로 뺨을 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나이든 요즘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만약 히무라를 때려야 하는 상황이 오면 온 몸을 휘둘러가며 진심으로 때리는 시타라를 볼 수 있다.

서로의 호칭은 시타라 상, 히무라 상. 어릴 적에는 시타라는 히무라를 히무켄, 히무라는 시타라를 이름인 오사무 라고 불렀다는데, 함께 개그를 짜다가 "이건 어떻습니까, 시타라 상?" 이렇게 장난스레 격조를 높이는 식으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렇게 굳어졌다고 한다. 시타라는 라디오에서 이제 호칭을 바꾸는 일은 없겠지만, 혹시 히무라의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 오면 히무켄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고 언급해 히무라를 감동시켰다.

개그 스타일에서 바나나맨은 즉흥 콩트에 정말 능하다고 서술되어 있는데, 정말 둘의 방송을 조금만 챙겨봐도 개그로 즉흥적으로 합을 맞추는 능력은 정말 굉장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누군가 애드립을 던지면 그에 맞춰서 개그를 하고, 또 둘이 합쳐서 개그를 하며 주고받기가 마치 짠 것처럼 술술 이어진다. 아 하면 어 어 하면 이 이는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함께 합을 맞춰온, 게다가 사이 좋게 지낸 둘이기에 가능하다고 여겨진다.

둘 다 이름이 '라'자 돌림인걸로도 잘 논다. '바나나맨에 한명을 영입한다면 라자돌림으로...'라는 농담을 한 적도 있다. 신년특집 VS아라시에서는 아라시 팀 조력자로 나왔지만 코너마다 플러스원 게스트가 한명씩 등장하는 바람에 게임에 자주 출연하지는 못했는데, 방송에서는 끝부분에 딱 한번 잡혔지만 방송 수록하는 2시간 내내 쉬는시간마다 둘이 서로를 때리며 라히무상태! 라시타상태! 를 주고받으면서 자기들끼리만 재밌어했다는(...) 아라시의 증언이 있었다. 참고로 라힘과 라시타는 타모리의 본명이 모리타인것처럼 이름을 뒤집은것. 이후에 아이바 마사키각트에게는 바이아상태, 토가쿠상태라고 이름붙여준다.

6.1. 친분

바나나맨은 기본적으로 게닌들 사이에서나,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서나 나쁜 소문이 없다고 할 정도로 두루 원만히 지내는 듯 하다. 그 중에서도 특별한 친분이 있는 인물만 서술한다.

7. 여담

8. 출연

콤비로 출연한 것만 기재, 개인 출연은 개인 항목에 작성.

8.1. 방송

8.1.1. 현재 진행 중인 레귤러

8.1.2. 비정기 특방

8.1.3. 과거

8.2. 라디오

8.3. 드라마

8.4. 영화

9. 음반

2016년 2월 13일, 시타라와 히무라가 T-Style이라는 듀오를 결성하고 T-BACK이라는 곡을 아이튠즈에 발매하였다. 노래가 마치 싸이강남스타일을 연상케 할 정도로 굉장히 중독성이 있다. 본래 여러 콩트의 설정들처럼(예를 들어 빨간연필) 바나나맨의 시타라, 히무라와는 관계 없는 사람들이라는 설정이었지만 나중에는 귀찮았는지 그냥 자신들인것마냥 이야기한다.

참고로 캐릭터 설정은 디제잉을 하는 것이 DJ시타(시타라), 티팬티를 입고 춤/노래를 맡는 것이 히무(히무라) 였지만 라디오에서 리스너에게서 티타라티무라는 어떻냐는 제안을 받고 굉장히 좋은 생각이라며 받아들이고 개명했다.


바나나맨 소속사인 호리프로 공식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뮤직비디오 샘플 영상. 엄빠주의.

2016년에는 무려 Girls Awards에서 공연을 선보였다. 하지만 이러한 공연을 전문으로 하던 사람들도 아니고, 무대 자체가 패션쇼를 위한 무대인지라 앞으로 매우 길어서 무대를 가로지르며 돌아다닌 티무라는 마지막에 거의 춤도 노래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에 티타라가 야매 디제잉을 하면서 효과음을 마구 연타해 지친 티무라를 대신해 노래를 채워준 감동(?)적인 일화도 있다.

10. 단독 라이브


[1] 논스톱에서 공개된 풋풋한 사진들. 아직 히무라의 머리모양이 버섯모양으로 정해지지도 않은 결성 초기중에서도 초기의 사진이다.[2] 참고로 일본 연예계는 우리나라보다 초상권이 엄격해 방송이나 잡지, 신문 등에 소식과 함께 사진을 실을 때 소속사에서 공식 사진으로 지정한 사진만 실을 수 있는데, 20대 후반에 등록한 이 사진을 여태 갱신하지 않아서 둘 다 40대가 넘었는데도 이 사진으로 방송이나 잡지에 실린다. 바나나맨은 사진이 저것밖에 없나?[3] 호리프로와는 별개의 호리프로 소속 자회사. 본래 1994년 설립된 M2컴퍼니라는 이름의 회사였고, 와타나베 마사유키의 연예인 서클같은 느낌의 사무실이었지만 2003년에 호리프로에서 병합하였다. 바나나맨은 M2컴퍼니 시절의 멤버. 이러한 경위 탓에 바나나맨은 호리프로에 대한 소속감이 없는 편이다.[4] 안잣슈의 경우 시타라는 후배, 히무라는 선배라서 동기처럼 지내며 나인티나인은 히무라만 동기이다. 아리요시의 경우 시타라는 후배, 히무라는 선배라고 아메토크에서 선후배 관계 정리를 할 때 밝혀졌다. 하지만 시타라와 히무라 모두 후배처럼 대한다.[5] 이는 바나나맨이 노기자카46의 칸무리 프로그램인노기자카는, 어디?노기자카 공사중을 지금까지 진행하고 있기도 하고, 공사 양면에서 노기자카를 잘 보살펴주는 모습 때문에 붙은 명칭이다. 사실 바나나맨이 본인들의 라디오에서 장난스레 언급한 것이 시초인데, 이후 노기자카 측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해주어서 공식 오빠 확정. 이후 팬들과 노기 멤버들도 공식 오빠로 불러주고 있다.[6] 크게 떠오르지는 않지만 일정한 위치의 인기를 유지하며 장수하는 자신들을 비유한 말이었다.[7] 시타라가 무선 지령을 내리면 히무라가 그 지령에 따라 움직여 미인들의 호감을 획득하는 코너이다.[8] 각 8위와 9위. 최근에는 아쉽게도 10위권에는 들지 못하지만 10위대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최고 11위.[9] 히무라의 경우 캐릭터 특성상 비호감 게닌 순위에 들고는 했지만 오래 봐 온 사람들은 모두 호감이라는 반응을 보인다.[10] 바나나맨의 음악 유닛 T-STYLE에서의 이름.[11] 야채 별명을 붙이던 히무라가 그냥 붙여준 별명. 자신은 검은 편도 아닌데 왜 우엉이냐고 반발했다.[12] 호리프로 갱신일 기준.[13] 하지만 일반적인 보케와는 많이 다르다.[14] 바나나맨의 음악 유닛 T-STYLE에서의 이름.[15] 학창시절의 별명. 핸드폰에 달고다니던 바이브가 울려서 생긴 별명이라고...[16] 원래 이가 많이 안좋았던 히무라는 2011년도 이빨을 전부 뽑고 임플란트로 했다.[17] 시타라가 예전부터 히무라를 놀리던 별명.[18] 사실 히무라는 시타라가 시도때도 없이 별명을 너무 많이 붙여준다고 하소연한적이 있다. 실제로 시타라는 엉뚱한 상황과 특징적인 것만 있으면 히무라에게 금세 별명을 붙여주곤 한다. 싫은 건 아니라고.[19] 하지만 가나가와현에서 자랐다.[20] 호리프로 갱신일 기준. 전혀 다르다는 뜻이다[21] 이는 지금도 시타라가 드물게 히무라를 칭찬할 때에 자주 언급하는 점이다. 히무라는 어떤 것이든 훨씬 더 훌륭히 소화해낸다고.[22] 히무라는 말을 하고 바로 불을 껐고, 시타라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를 당황스러움과 함께 어둠 속에 남겨졌었다고 회상했다.[23] 쇼후쿠테 츠루베가 당시 바나나맨의 첫 라이브 공연 DVD를 본 후에,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은 콤비의 콩트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고 평가하기도 했다.[24] 이 때 진리키샤의 소속 게닌인 도쿄03 토요모토 아키나가가 바나나맨과 오쿠라를 이어주었다고 한다.[25] 이후 오쿠라는 바나나맨 이외에도 도쿄03, 오기야하기 등 많은 연예인들의 각본에 참여한다.[26] 그림자 무사, 닮은 사람을 선정하여 진짜 당사자 대신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위장 대역, 즉 미끼이다.[27] 하지만 2010년도부터는 시타라도 위상이 높아져서 링컨에서 시타라가 어느 기획의 준레귤러 수준의 역할을 맡고 히무라는 그 기획의 게스트로 나오자, 링컨 멤버들이 '바타'(잘 나가는 사람에게 얹혀서 방송에 출연하는 사람)라고 놀리기도 했다. 곳도탕에서 바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에도 자신이 시타라 중심의 방송에 바타처럼 출연하곤 했다는 말을 했을 정도. 최근에는 이러한 차이가 별로 없다.[28] 히무라는 매니저에게 시타라의 집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이 몰래카메라 허술하네'라고 생각했다고. 촬영 전에 만나고 나서야 진짜라는 걸 알았다.[29] 자기가 하고싶은대로 룰을 바꿔버린다던가, 도S적인 성격으로 출연자들을 괴롭힌다던가.[30] 후배 게닌들의 '바나나맨이 MC로 있는 방송이면 걱정 없이 나간다'는 발언이나, 갓 데뷔한 노기자카46을 데리고도 방송의 틀을 잡은 등의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31] 하마다 마사토시는 MC를 맡았다.[32] 아래 곳도탕 항목 참조. 곳도탕에서 탄생한 히무라의 오네 캐릭터이다.[33] 멤버들과 같은 옷을 만든 디자이너가 히무라의 사이즈로 일부러 만들어주었는데, 옷감이 멤버들의 세배는 들었다고 한다.[34] 여담으로 시타라의 1위 탈환에 대해 자신들의 라디오에서 티셔츠까지 만들며 거하게 축하를 하였다.[35] 참고로 이번 라이브는 연례 행사처럼 이루어지던 빨간연필(아래 빨간연필 항목 참고)의 무대가 없어서 많은 팬들이 아쉬워했다.[36] 지금은 뭐 엄청 한다고 덧붙였다.[37] 전 장면에서 있었던 일의 이유가 다음 장면에서 등장하는 방식이 많다.[38] 예를 들어, 벽을 두고 시타라가 히무라의 팔을 잡아당기며 다투는데 벽에 히무라가 잠깐 가려진 사이에 팔을 다른 인물로 재빨리 교체시킨다. 시타라는 팔만 보이게 잡아 당기고 히무라는 다른 인물이 되어 반대쪽에서 등장하는 것이다.[39] 그래서 두 사람은 연기에도 능하다. 더빙을 맡았을 때에도 호평을 받았으며, 히무라는 시타라가 무슨 성격의 대사든지 자연스럽게 소화해낸다고 말했는데 자연스러운 일상 연기는 시타라가 일본 제일일 것이라고 단언했다. 시타라는 어느 드림매치에서 히무라가 엉뚱한 짓으로 츳코미를 받으며 웃음을 자아내는 게닌과 짝이 맺어졌을때 4분 내내 격한 츳코미를 연발하는 히무라를 보고 '정말 열심히 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자신과 할때는 그런 츳코미를 하지 않으니..[40] 바나나맨이 남들에게 등떠밀려 쇼트콩트를 선보이려 하면 주위 게닌들의 '바나나맨의 쇼트콩트라니 보기 드무네(메즈라시이네)~' 하는 반응을 볼 수 있다.[내용스포일러] 히무라가 밤늦은 새벽 두시에 집에 도착하자 시타라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밤중이기도 하고 받지 않자, 부재중 메세지로 기괴한 괴성을 남기고 끊는다. (*이 장면에서 관객도, 히무라도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그 후에 히무라는 전날 6시경부터 시타라에게서 걸려온 몇십개의 밀린 부재중 메세지를 확인한다. 처음에는 평범하게 시간이 흐르며 자신의 상황을 하나하나 일일이 히무라에게 전하는 것으로 웃음을 유발하다가, 점점 부재중 메세지의 내용은 기괴해진다. 부재중 메세지 속에서 시타라는 야쿠자에게 잡혀가고, 12시까지 히무라가 돈을 가지고 와주면 야쿠자들이 자신을 살려주겠다고 했다는 말을 오열하며 전한다. 하지만 히무라가 부재중을 확인한 것은 2시. 당연히 히무라는 가지 못했고, 이후 시타라의 부재중에서 시타라는 야쿠자들의 마약을 한 듯 이상한 목소리로 웃으며 이제부터 야쿠자 두목을 죽이려 한다고 말한다. 그 다음 부재중의 내용은 '나 사람을 죽여버렸어...'라는 시타라의 침울한 목소리. 그리고 멘탈이 붕괴된 듯 이것은 다 히무라의 탓이며, 죽여버리겠다는 내용의 말을 하며 괴성을 지른다. 그 후의 부재중들은 전부, 미쳐버린 시타라의 기괴한 목소리만이 남아있다.(*여기까지의 부재중을 듣고, 제일 처음에 시타라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다시 들으면 더 이상 웃을 수 없다.) 히무라는 집에서 공포에 떤다. 그리고 시타라가 히무라의 집을 총과 함께 쳐들어온다.(이 때 문이 열려있어서 시타라가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도중에 누군가 히무라에게 DVD를 돌려주고 나간 뒤 히무라가 문을 잠구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복선이 포함되어 있다.) 화면이 어두워지고 총성과 함께 화면이 밝아지자, 빨간 조명과 함께 죽은 채 쓰러져있는 시타라와, 몸싸움에서 이긴 듯 총을 들고 시타라를 살해한 뒤 멍하니 서있는 히무라가 드러난다. 그리고 마지막 부재중 메세지에서는, 히무라의 어머니에게서 애정어린 메세지가 흘러나온다. 마지막에 화면이 어두워지고 전화기에만 조명이 남는 것 까지 소름돋는 연출.[42] 당연하게도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일부 시청자들은 '저게 뭐가 재밌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43] 고교 시절 밴드에서 보컬을 맡았던 경험이 있다. 가창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요령있는 창법을 선보인다.[44] 2007년 'spicy flower'에서는 '탄생화', 2008년 '질풍의 난'에서는 '바람이 분다' 등.[45] 2004년 전까지는 카세트 테이프를 3000원에 팔고있다는 멘트였다.[46] 여태까지의 노래 중 처음으로 전문 아티스트에게 받은 곡이다. 모리야마 나오타로 曰, 만들어 놓고 보니 '어? 이 노래 빨간연필스러운데?' 라는 생각이 들어 바로 주었다고.[47] God Tongue을 일본식으로 읽은 발음.[48] 2017년까지 총 14번의 마지우타 선수권이 있었는데, 전부 참석했다.[49] 그러나 초기에는 유명한 노래와 일부러 거의 비슷하게 노래해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 현재는 햐다인 같이 대중가요를 작곡하는 작곡가의 곡으로도 한다.[50] 노래하기 직전까지 엄청나게 노래하기 싫어했으면서 갑자기 노래가 시작하자마자 엄청나게 적극적으로 노래해서 두소절만에 모두 빵 터져 노래가 중단되고 만다. 그래도 MC 야하기의 제안으로 후렴까지는 선보이는 데에 성공했다.[51] 프로그램의 진행 방식은 게닌이 다섯가지의 개그 종목을 하나씩 선택하며 다섯번의 도전을 하고, 도전 통과의 조건은 랜덤으로 선택된 다섯명의 방청객의 이빨이 보이도록 웃기는 것이다. 선택된 방청객은 자신이 선택된 줄도 모르며, 게닌들도 누가 선택되었는지 모르는 시스템이라서 호평을 받는 편. 종목은 모노마네, 쇼트콩트, 일발개그, 사일런트, 물건개그의 다섯가지. 네번째 스테이지까지는 3명만 웃기면 되며 마지막 스테이지에서는 다섯명을 전부 웃겨야 한다. 참고로 도전을 진행할수록 획득 금액이 올라가며 도중에 그만두고 얻은 금액을 챙길수는 있지만, 사실상 그만두는 사람은 없고 오기로라도 마지막 스테이지까지 도전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었다.[52] 콤비가 따로 도전하여 총 6명의 게닌이 참가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다 탈락한 후에 다섯번째 스테이지까지 도달한 단 두명의 도전자가 히무라와 시타라였다. 그냥 바나나맨[53] 나중에는 어린 시절의 타카노하나, 라고 말하기만 해도 빵 터지는 사람이 생길 정도이다.[54] 기념품 같은 것. 일본은 누군가 여행이나 휴가를 다녀오면 주변 사람에게 형식적이라도 선물을 챙기는 것이 매너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55] 사실 예능에서 팔찌 이야기를 할 때마다 방청객과 주변의 반응들에 사귀는 거 아니라고 해명하기 바쁘다.[56] 빈곤한 무명시절에 집값을 아끼기 위해 팀이 달라도 친한 게닌끼리 동거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57] 본명이 마스노 히데토모다[58] 아름다운 경치를 이르는 일본식 한자어이다.[59] 3기생이 들어오고, 3기생 중 결국 시타라의 딸과 같은 나이의 멤버가 생기게 되자 벌써 그렇게 되었냐며 놀란다.[60] 어차피 M-1그랑프리는 만자이 중심인데 바나나맨은 만자이를 하지 않았기에, 불참한 이후로도 만자이는 하지 않고 있다.[61] 이 기록은 채점 방식이 바뀐 2012년까지 깨지지 않았다.[62] 버팔로 고로 한표, 바나나맨 한표, 이후 버팔로 고로의 연속 3표로 과반수 득점으로 인해 버팔로 고로의 우승이 되었는데, 처음 두 표는 요시모토 소속 게닌이 아니며 다음 연속 세표는 모두 요시모토 게닌의 투표다. 과반수 득점으로 인해 공개되지 않은 마지막 한 팀의 게닌 또한 요시모토 소속의 게닌이었다.[63] 시타라는 '논스톱'이라는 주 5일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더 많다.[64] 멤버 오자와가 죠죠러라서 이 이름을 콤비명으로 붙였다고 한다.[65] 점수차가 너무 커서 더 게임을 진행해도 역전승이 불가능한 경우.[66] 소노사키가 종영하고 뒤를 이어 방영되는 프로그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