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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4 08:40:23

오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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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리
オードリー | Audrey
파일:audrey_profile.jpg
멤버 와카바야시 마사야스 / 카스가 토시아키
결성년도 2000년
소속사 K Dash Stage
장르 오와라이
팬덤 리틀 투스(リトルトゥース)[1]
링크 프로필

1. 개요2. 역사
2.1. 학창시절2.2. 콤비 결성2.3. 무명시절2.4. M-1그랑프리 20082.5. 카스가 버블2.6. 현재
3. 스타일(芸風)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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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external/articleimage.nicoblomaga.jp/3d1b079fefb233b817818185a2e4ccc6f93f01531437716410.jpg

オードリー. 와카바야시 마사야스(츳코미, 좌)와 카스가 토시아키(보케, 우)로 구성된 일본의 게닌콤비. K Dash Stage 소속.

한글로는 '오드리'가 정확한 표기이다. 유럽의 여성 이름 'Audrey'에서 콤비명을 따왔기 때문. 콤비명의 유래는 화려하지 않은(또는 평범하게 생긴. 華のない) 두 사람에게 유명 영화배우 오드리 햅번처럼 화려해지라는 의미에서 소속사무소의 사장이 지어준 것이라 전해지고 있다.

2. 역사

두 사람은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니는 절친사이였다. 따라서 콤비의 역사는 그들의 중학교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2.1. 학창시절

두 사람이 다닌 중-고등학교는 일본대학 제2중학교(日本大学第二中学校)와 일본대학 제2고등학교(日本大学代に高等学校)로, 중-고연합형 학교였다. 제2중학교를 졸업하면 자연스레 제2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것. 중2때 같은 반이 되어 친해진 두 사람은 고등학교에서 미식축구부에 같이 들어가게 된다.[2] 당시 포지션은 와카바야시는 러닝백, 카스가는 디펜스엔드. 카스가는 꽤 실력이 있어서 도대표로 전국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들의 말로는 참 평범하기 그지 없었다고 한다. 와카바야시는 말을 재미있게 해서 좀 웃긴 녀석 정도였고, 카스가는 중-고 전체 개근할 정도로 모범생이었으나[3] 의도치 않은 몸개그를 할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공부는 둘 다 잘하는 편이 아니었으나, 카스가가 좀 더 잘한 편이었다고.[4][5]

2.2. 콤비 결성

고등학교 졸업 이후 두 사람은 각자 다른 대학에 진학, 졸업하게 된다. 카스가는 평범한 회사원이 되려고 하였으나, 어렸을 때 부터 개그맨을 꿈꿨던 와카바야시가 카스가를 설득하여 콤비를 결성하게 된다(2000년). 당시 콤비명은 '나이스미들(ナイスミドル, '멋진 중년'이라는 뜻)'. 이후 길고 긴 무명생활이 시작된다.

2.3. 무명시절

오도리의 무명시절은 쇼펍(Show Pub, ショーパブ : 무대가 설치된 술집) '키사라'와 함께한 시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로 무명 모노마네 게닌을 무대에 올리던 키사라에서 오도리는 실력을 갈고 닦았다.[6]

초기에는 지금과는 반대로 와카바야시가 보케, 카스가가 츳코미를 했다. 카스가의 츳코미 실력은 형편없어서 주변 사람들이 와카바야시에게 카스가와 헤어지라는 말을 할 정도. 그러나 카스가 본인은 그 당시 자신이 아카시야 산마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전혀 발전가능성이 없는 파트너와, TV출연은 전혀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 계속되자 와카바야시는 해체를 결심했으나, 기타노 타케시를 흉내내던 모노마네게닌 '비토 타케시(ビトたけし)'[7] 가 고민중인 와카바야시에게 찾아와 기타노 타케시의 목소리로 "너, 죽어도 그만두지 마(あんちゃんよ、死んでもやめんじゃねぇぞ)"라고 말했는데, 마치 그것이 기타노 타케시가 자신에게 해 준 말인 것 같아 감동해 눈물을 흘리고는 "다시 한 번 해보자!"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8]

이후 보케와 츳코미를 교체하고 콤비명을 오도리로 개명. 시행착오를 겪은 후 지금의 스타일을 완성했다. 이를 통해 조금씩 이름을 알리게 되었고, 꿈에 그리던 TV출연도 할 수 있었다.

2.4. M-1그랑프리 2008

그들이 인기를 폭발적으로 드높이게 된 계기는 바로 M-1그랑프리. 패자부활전을 통해 준결승에 참여한 오도리는 지금까지 없었던 스타일의 만자이와 카스가의 독특한 캐릭터로 최고점수를 기록하며 결승에 진출.[9] 그러나 아쉽게도 결승에서는 '논 스타일(Non Style)'[10]에게 패배하며 준결승에 머문다.

2.5. 카스가 버블

M-1그랑프리 이후 2009년, M-1 역사상 처음으로 우승자보다 준우승자가 더 인기가 많은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이는 주로 카스가의 독특한 캐릭터에서 비롯된 것으로, 오도리는 2009년과 2010년에 '가장 방송출연이 많았던 연예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당시 카스가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는데, 오키나와에 촬영을 갔을 때 카스가를 보기 위해 중심가가 마비될 정도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또한 1만명이 카스가와 함께 동시에 '투스'[11]를 외치는 기네스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캐릭터는 언젠가는 질리는 법. 2011년에 들어 카스가의 인기는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2.6. 현재

일본예능에서 게닌이 살아남으려면 토크력이 크게 요구된다. 만자이콩트로 이름을 알렸다고 해도 토크를 잘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는 것이다. 카스가는 토크보다는 몸으로 웃기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거품이 꺼진 이후로 토크방송에 나가면 여지없이 썰렁캐릭터(すべりキャラ)가 되어 놀림당하는 것으로 웃음을 유발하고 있다. 그러나 토크를 전혀 못한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 입담이 좋다는 게닌들도 부담스러워 하는 방송 중 하나인 '히토시 마츠모토의 썰렁하지 않은 이야기(人志松本のすべらない話)'에 출연하여 MVS[12]를 획득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13]
즉 명확한 주제가 있고 충분한 여유를 주면 카스가도 말을 조리있고 재미있게 할 능력은 있지만[14] 순발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순간적인 대처에는 약한 편인데, 일본 개그계의 주류가 틈이 보이면 무조건 치고 나간다를 모토로 삼는 칸사이계 게닌들이다 보니 순발력 싸움에서 밀리는 것.[15][16]

그러나 평소에는 주로 체육관련 예능과 해외로케(우리나라로 따지면 '정글의 법칙'과 같은 방송)위주로 솔로활동을 하고 있다. 아래는 카스가가 방송을 통해 도전한 스포츠 리스트

이쯤 되면 카스가의 직업이 스포츠맨인지 게닌인지 헷갈리는 상황. 와카바야시는 이 점을 놓치지 않고 착실히 만자이 네타로 써먹고 있다. 아예 카스가 본인도 써먹을 정도.

카스가 버블 이후 와카바야시는 오히려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카스가가 말고 다른 애(春日じゃない方)'라고 불리던 시절은 이제 아주 옛말이 된 것이다. 와카바야시는 이제 센스있는 츳코미와 토크실력으로 차세대MC로서 성장하고 있다.

3. 스타일(芸風)

오도리의 만자이 스타일은 즈레만자이(ずれ漫才)[18]로 불리는데, 와카바야시가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려고 하면 카스가가 어이없는 타이밍에 태클(츳코미)을 걸거나 한참 전에 지나간 이야기에 대해 걸고 넘어지는 등 핀트가 어긋난 츳코미를 건다. 이 어이없는 츳코미가 바로 카스가의 보케인 것이다. 와카바야시는 그러거나 말거나 네타를 진행하고, 카스가의 보케에 대해서는 무시하거나 담담하게 넘어가고 도가 지나치다 싶으면 강력하게 측두부를 후려친다.[19]
투닥투닥하다가 와카바야시가 "너랑 만자이같은거 못해먹겠다 진짜"라는 말을 흘리기라도 하면 카스가는 "너 그거 진심이야?"라며 정색, 그에 와카바야시가 "진심으로 그런 소리 하면 너랑 만자이같은거 하겠냐"라고 흘리듯 말하면 서로 마주보며 "헤헤헤헤헤"하고 웃는것도 18번 개그.

4. 여담



[1] 정확하게 말하면 라디오방송 '오도리의 올나이트닛폰'의 청취자들을 지칭하는 용어이나, 거의 팬덤 이름으로 굳어졌다. 앞에서 언급한 라디오방송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레이디 가가가 자신의 팬들을 '리틀 몬스터'라고 부르는 것에 착안하여 카스가의 개그인 '투스'를 붙여 만듬[2] 이를 계기로 오도리는 NFL해설프로그램인 'NFL클럽(NFL倶楽部)'에 출연하고 있으며, 매해 슈퍼볼(NFL 결승전) 현지중계에 참여하고 있다.[3] 일본에서 말하는 모범생은 공부와는 상관없이 착하고 부지런한 학생을 말한다.[4] 그래서인지 퀴즈방송에 나가면 착실한 이미지의 와카바야시가 우스꽝스러운 이미지의 카스가보다 문제를 못 맞추어 이미지 붕괴 현상이 일어나고는 한다.[5] 정작 대학은 둘 다 닛토코마센 라인으로 진학했다. 이 학교들은 그냥 중상위권 정도 대학으로 한국에 대입하면 인서울 하위권과 비슷한, 공부를 그럭저럭 한 정도의 대학이다.[6] 여기서 함께 지냈던 무명 게닌(비토 타케시, 버몬트 히데키, 쿠지라, 마이코 료 등)은 라디오 '오도리의 올나이트 닛폰'에서 쏠쏠한 개그소재로 사용되고 있다.[7] 헷갈리면 안된다. 기타노 타케시의 예명 "비트 타케시"는 일본어로 '비-토 타케시(ビートたけし)'로 발음된다. 장음과 단음의 차이[8] 나중에는 "그러고보니 그 자식은 가짜잖아!"라며 분통해 했다고.[9] 최고점수를 기록한 준결승 당시, 카스가는 대사를 버벅거렸으나 와카바야시의 빠른 대응으로 오히려 관객을 빵 터트렸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오오타케 마코토는 "버벅거렸으면서 웃기는 건 도대체 뭐냐!"라며 절찬을 했다.[10] 이시다 아키라와 이노우에 유스케로 이루어진 콤비. 사실 이쪽도 오도리보다는 아니지만 성공을 하는데 여러 고난이 있었다. 중학교 동갑친구로써 길거리 만자이로 시작하고 인기를 끌었지만, 이시다는 데뷔 전부터 정신질환을 앓아왔고, 데뷔후에 물려받은 아버지의 빚때문에 오와라이를 그만두려 했지만, 어찌저찌해서 여러 오와라이 콘테스트들에서 수상과 우승을 거두고, 못생겼다고 놀림받지만 나름 훈남인 이노우에와, 잘생겼지만 장난기 많고 까부는 이시다의 독특한 캐릭터들로 승부하여 인기를 끌었다. 우승후에는 TV 레귤러는 오도리보다 적지만, 이노우에는 부자멘 (못생겼지만 훈남) 캐릭터로 CM이나 프로그램 등에서 인기를 유지하고, 이시다는 영화감독, 연극 각본 및 출연등을 하면서 활약하고 있다.[11] 카스가가 검지를 치켜올리면서 외치는 구호. 유래는 미식축구에서 '집합'을 뜻하는 구호[12] 'Most Valuable Suberanai Hanashi'의 약자로, 그 회에 가장 재밌는 이야기를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13] 2015년 7월 11일 제28회[14] 위의 썰렁하지 않은 이야기(정확히는 실패하지 않는 이야기 정도로 의역하는게 맞는 편) 역시 자신의 순서에 본인 끼어드는 사람이나 시간제한 없이 말하는 방송이다[15] 파트너 와카바야시의 증언에 의하면, 모 방송에선 방송내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라고 할 정도로 츳코미 난무의 현장에선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듯[16] 더군다나 네타를 할 때의 카스가의 이미지는 뻔뻔하고 근거없는 자신감이 넘치는 캐릭터인데 비해, 의외로 평소에 말하는건 지극히 평범하다. 본인의 성격이 워낙에 착실하고 성실하기 때문에 막나가는 캐릭터를 소화하지 못하는 것도 버블의 원인.[17] 2015년 ~ 2016년[18] 직역하면 "어긋난 만자이".[19] 카스가가 "그럴 턱이 있나!"어긋난 츳코미를 하며 와카바야시의 팔뚝을 때리면 곧바로 측두부를 후려치며 제대로 된 츳코미를 하는 것 까지가 원셋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