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47a0> 출생 | 1870년 11월 11일 |
평안북도 구성 | |
사망 | 1933년 4월 3일 |
평안북도 | |
상훈 | 건국훈장 독립장 |
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2. 생애
1920년 5월 상해 임시정부 연통제 구성군 참의에 임명되어 김형식, 장경전, 홍석천, 홍식 등과 함께 활동했다. 또한 1920년 1월, 만주에서 조직된 대한독립단에 가입해 국내특파원으로 파견되었으며, 홍식, 배준오 등과 함께 평북일대에서 동년 8월까지 밀정처단, 군자금 모집, 단원 확보 등의 무장활동을 전개했다.동년 12월 대한독립단이 광복군사령부에 통합되자 이에 가입해 김성엽, 이운봉 등과 함께 사령부 출장원으로서 의주, 구성 등지에서 지방조직과 군자금 모집 활동을 계속하였다.
또한 최시흥, 박응백, 박영찬, 최윤희, 김세진, 김상옥, 김용택 등과 함께 천마산대를 조직해 부관으로서 활동했다.
그는 각지의 청장년 500여명을 모집해 재래식 무기인 화승총 및 적에게서 빼앗은 무기를 가지고 도내 각지를 왕래하며 유격전을 전개하여 적의 주재소, 경찰서, 면사무소 등을 습격하고 일제의 경찰과 밀정들을 곳곳에서 처단했다.
대표적인 예로서 1920년 6월 대원 20명을 이끌고 의주군 옥상면주재소 및 면사무소를 습격한 사건을 들 수 있다. 그 밖에 동년 10월 삭주경찰서 습격, 동년 12월의 창성군 대유동주재소 습격 등도 있다.
이렇게 활발히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중 체포되어 1921년 4월 1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여러차례의 감형으로 1930년 9월에 출옥하였으나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