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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3 22:12:56

유동하

파일:유동하.jpg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1892년 1월 5일
함경남도 원산시
사망 1918년 (향년 26세)
가족 아버지 유승렬 (劉承烈), 어머니 강씨
여동생, 남동생 유동주 (劉東周) 조카 김파[1]
본관 강릉 유씨 (江陵 劉氏)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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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제강점기 때 활동했던 독립 운동가. 일명은 강로(江露)이며 함경남도 원산 출신이다. 1909년 안중근이토 히로부미 저격 당시인 하얼빈 의거에 안중근, 우덕순과 동참하였다가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일본 헌병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고 이후 러시아로 건너가 독립 운동을 하였다.

2. 생애

파일:external/i2.media.daumcdn.net/20091025174304384.jpg
※. 사진 오른쪽 끝에 있는 인물이 유동하이다. 당시 나이 17세 때 찍은 사진.

파일:external/web.pbc.co.kr/315750_1.0_titleImage_1.jpg
※. 하얼빈 의거 이후 재판정에서. 피고인석에서 첫번째에 앉은 인물이다. 옆에 있는 사람은 조도선, 우덕순, 안중근.

1892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나 1902년 10살 때 러시아 국경 지대 보그라니츠나야에 이주하여 러시아어를 배우고 러시아인 철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유동하의 아버지 유경집은 러시아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만주, 러시아 지역 독립 운동가들을 지원했다. 안중근 의사가 오기도 했다. 그때 의거에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부탁을 받았고 러시아어를 하는 유동하가 간 것이다. 그래서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우덕순, 조도선과 함께 하얼빈 의거에 동참했다가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일본 헌병에 체포되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1911년 만기 출소했다. 출소 후 러시아로 건너가 볼셰비키 사회주의 혁명군에 가담하여 활동하면서 한국 독립운동을 지원하다가 일본군에 의해 총살되어 1918년 향년 26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하였다. 198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3. 대중매체에서



[1] 조선족 시인이며 외삼촌과 가문의 이야기를 대하소설로 써 한국에 출판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