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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1:14:51

장인초

성명 장인초(張仁初)
이명 장윤초(張允初), 장인상(張仁尙), 장인보(張仁甫), 장인복(張仁福)
생몰 1877년 ~ 1910년 9월 30일
출생지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어대리
사망지 대구형무소
위패 국립서울현충원 무후선열
추서 건국훈장 독립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장인초는 1877년경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어대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본래 목수로 일하다가 1909년 2월 보성, 순천 등지에서 활약하던 안규홍 의병장의 휘하에 들어가 선봉장(先鋒將)이 되었다. 이후 60~70정의 총기로 무장한 80~90명의 의병과 함께 보성, 장흥, 강진 등지를 전전하며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1909년 3월 중에는 염인서·염문명(廉君明)·임하중(林夏仲) 등과 함께 보성군 봉동에서 양민으로부터 금품을 약취하던 박봉조(朴鳳朝)를 처단했다. 또한 그해 7월에는 나주, 강진 일대에서 활약하던 심남일 의병장의 휘하에 들어가 역시 선봉장을 맡고 장흥, 강진, 보성 등지에서 항전을 지속했으며, 8월에는 안규홍 휘하로 돌아와 총기류 확보에 노력했다.

1909년 말에 부하 100명을 거느리고 독자적으로 의병장으로 활동하다 강진 실공장(實公場) 병영 부근에서 체포되었다. 이후 1910년 6월 28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폭동 및 강도, 모살 혐의로 교수형을 선고받고 공소했지만 9월 30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었고 즉시 교수형에 처해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장인초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국립서울현충원 무후선열에 그를 기리는 위패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