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2. 1900년대
2.1. 1900년(고종 37년, 광무 4년)2.2. 1901년(고종 38년, 광무 5년)2.3. 1902년(고종 39년, 광무 6년)2.4. 1903년(고종 40년, 광무 7년)2.5. 1904년(고종 41년, 광무 8년)2.6. 1905년(고종 42년, 광무 9년)2.7. 1906년(고종 43년, 광무 10년)2.8. 1907년(순종 1년, 융희 원년)2.9. 1908년(순종 2년, 융희 2년)2.10. 1909년(순종 3년, 융희 3년)
3. 1910년대3.1. 1910년(순종 4년, 융희 4년)3.2. 1911년3.3. 1912년3.4. 1913년3.5. 1914년3.6. 1915년3.7. 1916년3.8. 1917년3.9. 1918년3.10. 1919년
4. 1920년대4.1. 1920년4.2. 1921년4.3. 1922년4.4. 1923년4.5. 1924년4.6. 1925년4.7. 1926년4.8. 1927년4.9. 1928년4.10. 1929년
5. 1930년대5.1. 1930년5.2. 1931년5.3. 1932년5.4. 1933년5.5. 1934년5.6. 1935년5.7. 1936년5.8. 1937년5.9. 1938년5.10. 1939년
6. 1940년대6.1. 1940년6.2. 1941년6.3. 1942년6.4. 1943년6.5. 1944년6.6. 1945년6.7. 1946년6.8. 1947년6.9. 1948년6.10. 1949년
7. 1950년대7.1. 1950년7.2. 1951년7.3. 1952년7.4. 1953년7.5. 1954년7.6. 1955년7.7. 1956년7.8. 1957년7.9. 1958년7.10. 1959년
8. 1960년대8.1. 1960년8.2. 1961년8.3. 1962년8.4. 1963년8.5. 1964년8.6. 1965년8.7. 1966년8.8. 1967년8.9. 1968년8.10. 1969년
9. 1970년대9.1. 1970년9.2. 1971년9.3. 1972년9.4. 1973년9.5. 1974년9.6. 1975년9.7. 1976년9.8. 1977년9.9. 1978년9.10. 1979년
10. 1980년대10.1. 1980년10.2. 1981년10.3. 1982년10.4. 1983년10.5. 1984년10.6. 1985년10.7. 1986년10.8. 1987년10.9. 1988년10.10. 1989년
11. 1990년대1. 개요
20세기에 한반도에 찾아온 이상 저온을 정리한 문서.- 해당 기간의 기온의 평균값 기준으로는 저온이지만 중앙값으로 보면 저온이 아닌 경우 ☆ 표시
- 볼드체는 평년과의 차이가 큰 경우
- 파란색 볼드체는 평균 기온 편차가 기록적으로 큰 경우
- 서울 월평균기온, 월평균 최고기온, 월평균 최저기온 표는 링크 참고.
2. 1900년대
1900년대는 1890년대처럼 1월 한파도 강한 해도 있지만 오히려 고온이 잦았다. 반면 2월 중심으로 특히 강한 한파를 보인 해가 많았으며[1], 비교적 더운 여름이 많았던 1880~1890년대에 비해 서늘한 여름이 많아졌다.[2] 8월 하순에 늦더위가 강했던 1900년과 8월 중심으로 엄청난 폭염을 보였던 1901년과는 달리 1902년, 1905년이 특히 서늘했고 나머지 해들도 폭염이 있어도 심하지 않거나 반짝 수준에 그쳤다. 또한 6월의 저온 현상이 심각했다.당시 조선에서 처음으로 공식 기상관측이 시작된 연대이다. 지점별 공식 기상관측 시작일은 다음과 같다.
지역 | 관측 개시 | 데이터상 시작[3] | 결측 기록 |
목포 | 1904년 3월 25일[4] | 1906년 1월 1일 | 1904년 4월 8일 ~ 1905년 12월 31일 |
부산 | 1904년 3월 26일[5] | 1904년 4월 9일 | - |
인천 | 1904년 4월 9일[6] | 1904년 4월 9일 | 1950년 6월 1일 ~ 1951년 9월 30일 |
원산 | 1904년 4월 10일[7] | ? | ? |
신의주[8] | 1904년 5월 1일 | ? | ? |
성진 | 1905년 5월 13일 | ? | ? |
남포[9] | 1906년 8월 1일 | ? | ? |
평양 | 1907년 1월 1일 | ? | ? |
대구 | 1907년 1월 7일[10] | 1909년 1월 1일 | 1907년 1월 31일 ~ 1908년 12월 31일 |
서울 | 1907년 10월 1일 | 1907년 10월 1일 | 1950년 9월 1일 ~ 1953년 11월 30일 |
강릉 | 1911년 10월 3일 | 1912년 1월 1일 | 1950년 ~ 1950년 10월 31일 1951년 1월 1일 ~ 1951년 8월 31일 |
2.1. 1900년[11](고종 37년, 광무 4년)
1월 한파가 매우 기록적인 해이다. 상순과 중순도 매우 추웠고 하순이 시작되며 기온이 오른 후 내려간 끝에 1월 26일에 인천 -17.5°C, 부산 -13.3°C를 기록해 이는 19세기 마지막을 장식하는 대한파였다. 그리고 여름은 평범했으나 8월 늦더위가 역대급으로 강력했고, 가을철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낮고 12월에는 초중순까지 1월의 장기 한파를 연상시키듯 춥다가 하순부터 기온이 올랐다.- 1월 - 한파/대한민국/20세기[12] 문서 참고. 인천 월 평균기온 -6.1°C, 월 최저기온 평균 -10.1°C, 월 최고기온 평균 -2.1°C이며 특히 일 최저기온은 1월 1일부터 9일까지 9일 연속 -10°C 이하였고 그 이후로도 추워서 최저기온이 -10°C 이하인 날이 20일[13]에 달했다. 특히 1월 25~26일에는 엄청난 한파가 찾아와 1월 25일 최고 기온 -8.9°C, 1월 26일 최저 기온 -17.5°C를 기록했다. 이 정도면 서울은 -20°C 밑으로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도 매우 추워서 월 평균기온 0.7°C(실질적으로 0.0°C)를 기록했으며 일 최저기온이 1월 2일 -9.4°C, 1월 16일 -11.1°C, 1월 26일 -13.3℃를 기록했다. 특히 1월 26일 -13.3°C는 공식 기록이었으면 부산의 역대 최저기온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 2월 - 인천 월 평균기온 -1.4°C. 인천 일 최저 기온 2월 1일 -10.5℃, 2월 4일 -13.0℃, 2월 5일 -13.0℃, 2월 6일 -15.5℃, 2월 7일 -11.5℃. 부산 일 최저 기온 2월 6일 -11.1°C, 2월 7일 -9.4°C.
2.2. 1901년(고종 38년, 광무 5년)
장기 한파인 전년도 1월과 달리 이해 1월은 이상 고온이었으나 2월 상순 한파가 강했고, 2015년을 능가하는 역대급 가뭄을 보였고 서울의 연 강수량이 525mm에 불과했으며[14] 인천도 연 강수량이 537.9mm로 역대 가장 적었다. 이 심각한 가뭄 때문인지 중부 지방을 중심으로 폭염과 이상 고온이 강했다. 구한말 기간 중 1890년, 1894년과 함께 고온 현상이 잦았던 해이다. 한편 부산에서는 2월 강수량이 기록되지 않았다.- 2월 - 인천 월 평균기온 -3.1°C, 부산 월 평균기온 1.1°C. 인천의 2월 2일 아침 최저 기온 -16.5℃, 한낮 기온 -9.4℃에 머무르는 등 강력한 한파가 찾아온다. 다음 날인 2월 3일에도 -15.0℃까지 떨어졌다.
- 7월 부산 - 월 평균기온 22.1°C.
2.3. 1902년(고종 39년, 광무 6년)
1월도 한파가 꽤 강했고 1905년, 1980년을 능가하는 20세기에서 가장 쌀쌀한 여름을 보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나[15] 늦더위가 매우 심해서 가을~12월 전체가 엄청난 고온이었으며 이는 현대 기준으로도 초이상 고온이라는 말을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기온이 매우 높았다.[16] 즉 상반기 편차가 매우 낮고 하반기 편차가 매우 높은, 극과 극의 날씨를 보였다.[17] 기온 분포가 8월, 12월을 제외하면 여러모로 100년 후인 2002년과 정반대이다.- 1월 일부 - 인천 일 최저기온 1월 4일 -16.0℃, 1월 24일 -15.0℃.
- 6~8월 - 20세기 극초반임을 감안해도 굉장히 쌀쌀한 여름이었다. 아마도 1980년과 양대산맥을 이루는, 오히려 더 낮은 20세기에서 최고로 쌀쌀했던 여름으로 추정된다. 동아시아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서늘한 축에 속했다. 우선, 6월부터 놀라운 기록을 내고 시작하는데 6월 12일 인천의 최저 기온이 9.0℃에 달했다. 이는 공식 기록이라면 1921년 6월 2일(8.7℃)에 이어 6월 최저 기온 역대 2위에 해당한다. 문제는 이것이 6월 중순의 기록이라는 것. 실제로 6월 역대 최저 기온 극값 1~5위 모두 6월 상순이다. 중순인데도 월 전체 최저 기온 2위를 기록했다는 것인데, 6월 중순에 9.0℃까지 떨어진 것은 놀라운 일이며 기존의 6월 중순 역대 최저 기온인 1926년 6월 15일의 10.5℃를 가뿐하게 밑도는 기록이다. 이 저온 현상은 한여름까지 길게 이어져, 한반도 기상학의 역사를 다루는 블로그에 의하면 비공식적이지만 인천의 7월 평균 기온이 22.6℃, 8월 평균 기온이 23.4℃에 머물렀다. 특히 8월의 23.4℃는 공식적인 역대 최저 1위와 0.9℃ 차이로 큰 차이가 없다. 옆 나라 일본은 이상 저온이 더 극단적이어서 일본 기상청의 도쿄 월평균 기온 자료에 따르면[18] 7월 평균 기온이 21.8℃[19], 8월 평균 기온이 22.9℃에 머무르는 초이상 저온 여름'''이 이어졌다.[20] 부산도 6월, 7월, 8월 평균 기온이 각각 19.1℃, 23.1℃, 24.1℃로 이상 저온이 심했다. 다만 11월에는 이상 고온이 왔다. 이는 2011년과 비슷하다.
2.4. 1903년(고종 40년, 광무 7년)
1년 동안 이상 저온이 고르게 분포해 있는 해이다.- 6월 - 가장 놀라운 것은 이달의 이상 저온인데, 인천의 최저 기온이 1903년 6월 27일에 10.0℃를 기록하였고 6월 28일에 9.5℃를 기록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6월 상순이 아니라 7월을 며칠 앞둔 6월 하순에 이러한 기온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공식 기상 관측 기록이라면 6월 전체에서도 역대 최저 기온 각각 4위와 2위에 해당하는 값이다. 문제는 기존 기록에서 1~5위는 전부 6월 상순이라는 점. 당연하게도 같은 6월 내에서 하순은 상순보다 최저 기온이 3℃ 가량 높고 한여름을 며칠 앞둔 시기인데도 저러한 기온을 기록한 것이다. 7월을 며칠 앞두고 이러한 초이상 저온을 보인 것은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인천의 1904~2022년 공식 기상 관측 기간 중 6월 하순 역대 최저 기온이 1956년 6월 27일의 12.4℃인데, 이보다 무려 3℃ 가까이 낮은 압도적인 기록이다. 결국 이 여파로 인천의 6월 평균 기온은 19.3℃로 20℃ 이하를 기록했다.
2.5. 1904년(고종 41년, 광무 8년)
이해 1월은 엄청난 한파가 기승을 부렸다.[21] 또한 이해에 부산, 인천, 목포, 원산에서 한반도 최초의 공식 기상 관측이 시작되었다.- 1월 하순 - 인천 일 최저기온 1월 23일 -16.0℃, 1월 24일 -14.0℃, 1월 25일 -14.5℃, 1월 26일 -16.5℃.
2.6. 1905년(고종 42년, 광무 9년)
1월은 1898년, 2020년급으로 고온이 매우 강했으나 여름은 앞서 서술한 1902년급으로 매우 쌀쌀했다.[22]- 7~8월 - 인천의 7월, 8월 평균 기온이 각각 23.4℃와 23.0℃. 7월 18일에 최고 기온이 32.6℃를 기록했는데, 이것이 연중 유일하게 30℃ 이상의 기온이었다. 나머지 날들은 전혀 30℃를 넘지 못했다. 심지어 연중 가장 더운 8월에도 30℃를 넘은 날이 없었다. 즉 7월 18일 더위는 반짝이었고 나머지는 26~29℃ 이하였다는 이야기이다. 한 술 더 떠서, 7월 25일과 8월 9일에는 최고 기온조차 19.0℃가 기록되기도 했다. 부산 역시 7월 12일에 30.4℃를 기록하고는 그 뒤로 여름철 내내 30℃를 넘지 못했다.[23][24] 인천이 이랬으니, 이 당시 기상 관측이 시작되지 않았던 서울도 여름철 내내 이상 저온으로 몸살을 앓았을 것이 자명하다.[25]
2.7. 1906년(고종 43년, 광무 10년)
1월 9~10일에 부산에서 역대 최악의 폭우가 기록되어 있는 해이다.- 2월 - 1월은 그럭저럭 평범했으나 2월이 되자 강력한 한파가 찾아왔는데, 당시 공식 기상 관측이 진행되었던 인천의 자료를 보면 2월 3일 -14.8℃, 2월 10일 -13.9℃, 2월 11일 -15.4℃ 등 2월 상순은 물론 중순임에도 불구하고 최저 기온 -15℃ 전후의 큰 추위가 기록되어 있다. 2월 중순에 인천이 이 정도였으니 서울은 당일 -16~-17℃의 최저 기온을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2월 중순이 매우 추웠던 1957년, 1977년은 물론 1892년[26]에 근접할 정도의 상당한 2월 중순 한파이다. 한파는 2월 18일까지 -12.8℃를 기록하며 이어졌으나 이후에는 기온이 올랐다.
- 3월 초순 - 추운 날씨가 별로 없던 2월 하순과 반대로 3월 3일부터 최고 -1.0℃, 최저 -6.4℃에 머무른 것을 시작으로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6일 최고 -3.9℃, 최저 -6.9℃에 이르며 절정에 달하였다. 7일에도 최저 -7.0℃, 최고 -1.9℃에 머물렀고, 8일에도 최저 -5.9℃인 등 꽃샘추위가 계속 머무르다가 9일부터 기온이 올라가며 상황이 나아졌다. 이 며칠 동안의 추위 때문에 2월 하순(2.8℃)과 3월 초순(-1.2℃) 평균이 서로 뒤바뀌었다. 부산에서도 3월 6일 최고기온이 3.6℃에 불과했고, 7일에는 -4.1℃까지 하강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 목포 역시 3월 6일 최고기온이 1.3℃에 불과했던 것을 보아 꽃샘추위가 전국을 한바탕 휩쓸고 간 듯 싶다. 서울은 기상 관측 시작 1년 전이라 기록이 없으나, 거리가 가까운 인천 기록을 참고하면 3월 6일 최고 -3~-4℃, 7일 최저 -8~-9℃까지 굴러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2.8. 1907년(순종 1년, 융희 원년)
서울, 대구, 평양에서 공식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27]- 3월 - 2월 28일 기온 강하의 여파로 3월은 강력한 꽃샘추위와 함께 시작되었다. 1일 인천이 -8.9℃로 내려갔고, 추위가 덜 내려온 목포는 -3.8℃까지 내려갔는데, 놀랍게도 그 부산이 -7.0℃까지 내려가며 강한 추위를 기록하였다. 체감상 기온은 인천보다 부산이 더 낮았을 것으로 추정. 이후 14일부터 다시 기온이 하강, 15일 인천에서 최고 0.0℃, 16일 최저 -5.8℃를 기록하였고, 부산도 16일 최저 -4.0℃까지 내려갔으며, 목포는 15일과 17일 최저 -1.9℃를 기록하였다. 이때를 기점으로 강력한 꽃샘추위가 끝났다.
- 10월 8~9일 - 이틀간 저온이 찾아왔는데, 서울 기준으로 10월 8일에 일평균 기온 8.9℃, 10월 9일에는 최저 기온 3.8℃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외에는 대체로 포근했고
10월 14일에는 인천에서 28.6°C를 기록해[29] 월평균 기온은 당시 기준으로는 평년보다 조금 높은 13.9°C를 기록했다.
- 11~12월 - 11월 24일에 서울 최저 기온 -5.0℃로 전날보다 기온이 10.9℃나 하강하였고 일평균 기온도 영하에 진입하며 기상학적 겨울이 시작되었다. 12월에 접어들며 본격적인 한파가 시작되었고, 하순이 되자 한파가 극점을 찍어 12월 22일 -18.0℃, 12월 23일에는 더 낮아져 -20.1℃로 12월 역대 최저 기온 4위에 등극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12월 24일에는 일평균 기온, 최저 기온, 최고 기온이 모두 전날보다 10℃ 이상 올랐고, 12월 25일에는 최저 기온조차 영상 1.1℃로 오르며 이틀 전보다 기온이 21℃ 이상 올라가는 이례적인 이상 난동을 보였다. 하지만 12월 26일을 기점으로 다시 추워지기 시작했고 연말까지 -14℃ 이하의 한파가 이어졌으나 다음 해 1월은 평년보다 따뜻했다.
2.9. 1908년(순종 2년, 융희 2년)
1월은 당시 기준으로 평년보다 따뜻했으나 2월 한파가 매우 강했다. 11월도 저온이 강했고 5월과 7~8월은 평년보다 1℃ 정도 낮았으며 3~4월, 6월, 9월도 약간 낮았다. 대체로 극단적인 저온은 없을지언정 고르게 저온이 이어졌던 해이다.- 2월 - 따뜻했던 1월의 날씨가 2월로 넘어오면서 급변, 2월 3일부터 최저 기온 -10℃를 밑돌기 시작하더니 2월 7일에 한파가 가장 강해 -15.8℃를 기록하였다. 중순까지도 혹독한 추위가 계속되었고 2월 전체에서 거의 절반에 가까운 13일이 최저 기온 -10℃ 이하였다.[30] 장기적인 2월 한파의 영향으로 서울 월평균 기온이 -4.0℃로 역대 최저 6위에 이름을 올렸다.[31]
- 3월 - 서울 평균기온 2.9°C로 평년보다 다소 낮았다. 상순~중순에는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많았지만 특별히 낮은 기온은 없었던 반면, 4월을 앞둔 하순에 꽃샘추위가 찾아와 3월 27일에 -5.8℃까지 내려갔다.
- 4월 - 서울 평균기온이 10.1°C로 역시나 평년보다 약간 추웠다. 하지만 당시 기준으로 그리 강한 저온은 아니다. 재미있게도 연도의 십의 자리랑 일의자리를 서로 바꿔놓은 1980년과 같다. 물론 체감하기로는 1980년이 더 저온이다.[32] 4월 15~16일에 기온이 하강해서 영하에 근접한 0.1℃, 0.6℃를 기록했다. 하지만 2주 후에 다시 강력한 저온의 영향으로 4월 28일에 2.2℃, 4월 29일에 1.5℃까지 내려갔다.
- 5월 - 서울 월평균 기온이 14.9℃이다. 가장 높은 극값이 5월 25일의 25.2℃에 불과했으며, 최저 기온도 10℃ 미만 정도는 양반 수준이고 심지어 5℃ 근처[33][34]24일]]이었다.]까지 떨어진 날들도 있었다. 사실상 고온을 보인 4월이라고 말해도 위화감이 없을 지경.[35] 즉 고온 자체도 전무했다. 정작 5월이 다 지나가고 6월 2일에 28.0℃를 기록했다.
- 8월 하순 - 서울 순 평균기온 21.9℃로 1958년과 같아 역대 최저 공동 3위이다. 8월 29일까지는 최저 기온이 18℃를 넘겼지만 8월 30일에 기온이 하강해 최저 기온 14.8℃의 저온이 발생했다. 그러나 최고 기온은 27.9℃로 오히려 올라갔고 일교차가 커서 일평균 기온은 낮지 않았다.[36]
- 9월 - 월평균 기온이 19.3°C.
- 11월 - 서울 월평균 기온 3.6℃로 평년보다 2℃ 남짓 낮았다.[39] -10℃ 이하를 기록한 날은 없었지만 11월 28일에 최저 기온 -8.6℃를 기록하여 상당히 추웠다. 그러나 12월은 월평균 기온 -0.8℃를 기록하여 당시 평년보다 따뜻했다.
2.10. 1909년(순종 3년, 융희 3년)
1월은 비교적 따뜻했으나 2월 한파가 강해서 매우 추웠다. 3월도 마찬가지로 추위가 남아있어서 평년보다 1.5℃ 낮았고 4월에 접어들어 평년 기온을 회복하였지만 5월 들어서서 다시 평년보다 다소 낮아졌고 나머지 달들은 모두 평범하거나 근소하게 낮았지만 10월은 유의미한 저온이 찾아왔고 12월은 상당히 추워서 월평균 기온 -3.4℃를 기록했다. 특이하게도 1월보다 2월과 12월의 월평균 기온이 더 낮았다.- 2월 - 1월은 월평균 기온 -2.5℃, 최저 기온 극값도 -13.6℃[40]로 현대와도 거리감이 없고 온화했지만 2월이 되자 전년도와 비슷한 흐름으로 한파가 찾아와서 2월 6~8일까지 사흘 연속으로 -10℃를 밑돌았고[41] 나머지 날들도 대부분 -7~-9℃의 최저 기온을 꾸준히 기록하였으며, 2월 중순[42]은 물론 하순에도 사흘 연속으로 한파일수가 기록되는 등[43] 상당히 추운 날씨가 이어졌다. 비록 이해 2월은 1910년이나 1913년, 1947년 2월처럼 -17~-20℃를 기록하는 초이상 저온은 없었지만 -10~-13℃의 날씨가 한 달 내내 이어진 탓에 월평균 기온이 -3.2℃로 상당히 낮게 기록되었다. 게다가 하순의 한파가 풀리지 않으면서 꽃샘추위로 남아 3월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 3월 - 2월 한파의 영향으로 3월도 거의 대부분의 날이 영하로 내려갈 정도의 추위를 보였고, 특히 중순이 상당히 추워서 3월 15일에 -8.0℃, 3월 18일에도 -7.1℃까지 내려갔다. 심지어 완연한 봄에 가까울 시기인 3월 26일에도 -6.9℃까지 내려가는 등[44] 마치 겨울을 방불케 하는 날씨를 보였다. 2월과 마찬가지로 장기적인 꽃샘추위의 영향으로 서울의 3월 평균 기온이 1.8℃에 불과했다. 그나마 4월이 되어서야 기온이 오르며 평년 기온에 가까워졌다.
- 4월 일부[45] - 3월의 꽃샘추위를 뒤로하고 4월은 대체로 평범한 날씨를 보였으며 월평균 기온은 10.4℃로 당시 평년과 비슷했지만 몇몇 날에 이상 저온이 발생하여 4월 7일에 -1.6℃, 4월 11~12일에도 각각 -1.0℃, -0.9℃였고 4월 13일에 갑자기 크게 따뜻해져서 최저 기온이 13.5℃로 전날보다 14℃ 이상 올랐으나 다시 내려가서 4월 16일에도 -1.6℃를 기록했다. 즉 기온의 변화가 유독 큰 달이었다.
- 8월 13~16일 - 인천의 최고 기온이 22~26℃ 사이를 기록했으며, 그중 8월 15일에는 최고 기온이 22.2℃밖에 되지 않았다. 7월 중에도 가끔 최고 기온 22℃ 이하를 기록한 날이 있었는데, 7월 6일에는 19.6℃에 불과했고 7월 12일에도 21.7℃까지밖에 올라가지 않았다.
- 9월 상순 - 서울 기준으로 최고 기온 25℃ 이하의 서늘한 날씨가 이어졌다. 기온이 오른 9월 6~7일에도 30℃를 넘지 않고 각각 29.0℃, 28.8℃에 그쳤으며 9월 9일에는 최저 기온이 11.3℃까지 하강했다. 이는 후술할 1912년을 넘는 9월 상순 최저 기온이며, 덕분에 9월 상순 평균 기온도 19.8℃로 20℃를 넘지 않고 하위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월평균 기온은 20.2℃로 낮지 않았다.
- 10월~11월 상순 - 10월 7일에 서울 최저 기온이 4.9℃를 기록. 게다가 10월 30일에는 -0.8℃로 하반기 첫 영하를 기록했다. 월평균 기온도 12.2℃로 당시 평년보다 1℃ 내외 낮았다. 11월도 10월과 비슷하게 월초에 며칠간 저온이 찾아와 11월 5일에 -5.2℃, 11월 6일에 -4.9℃였다. 11월도 평년보다 조금 낮은 5.2°C 였다.
- 12월 - 서울 월평균 기온 -3.4℃로 평년보다 거의 2℃ 낮았다. 12월 10일 -11.1℃를 시작으로 중순 내내 -9~-15℃의 강추위가 기승을 부렸고[47], 하순에도 성탄절을 전후로 나흘 연속 한파일수가 기록되었다.[48] 다행히 12월 28일부터 크게 따뜻해지며 포근한 연말로 마무리되었지만 앞서 이야기한 한파의 영향으로 이해 12월은 1월, 2월보다도 추웠다.
3. 1910년대
1910년대에는 대한민국 기상 관측 이래 연평균 기온이 가장 낮은 연대였다. 특히 1912년, 1913년, 1917년이 기록적으로 낮았다. 기상 관측 이후 모든 연대를 통틀어 저온이 강력했던 해가 가장 많아서, 1910년대 저온 = 2010년대 중반~2020년대 초반 고온 수준이라는 말도 나왔다. 1910년대 초~중반에는 한여름에도 서울에서 이렇다 할 폭염 기록은 없었으나 정반대로 대구는 이 시기에도 36~39℃를 넘나드는 등 매우 더웠다. 또한 굉장히 쌀쌀한 5월이 많았는데, 이는 이상 고온이 잦은 2010년대의 5월과 정반대이다. 이로 인해 4-5월 평균기온 격차가 3-4월 및 5-6월에 비해 적은 기형적인 기온 분포를 보인 해가 많았다. 그나마 1914년 연평균이 12.029°C로 현대와 비슷하다.3.1. 1910년(순종 4년, 융희 4년)
1월 3년 연속으로 따뜻했지만 1월 30일~2월에 큰 한파가 와서 2월은 1월보다도 낮으며 1917년 2월 수준이었다. 봄~여름에는 일부 고온 현상이 있었지만 저온 현상이 더욱 강해 10월까지 월평균 기온이 꾸준히 낮았다. 다행히도 11월은 당시 치고는 평년과 비슷했고 12월은 1967년 12월 수준의 매우 낮은 월평균 기온을 기록했다. 여름철 기온 편차가 1912년, 1913년보다 심하지 않았지만 나머지 달들의 저온이 강력해서 서울 연평균 기온이 10.412℃로 역대 최저 5위를 기록해 공통 기록으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 1월 30일~2월 - 1월 29일까지는 평년과 비슷하거나 고온을 보이며 따뜻한 겨울이 지속되었지만, 1월 30일부터 기세가 완전히 뒤바뀌어 강력한 한파가 찾아왔고 나흘 동안 -17~-20℃ 사이를 기록했다.[49] 그나마 2월 3일부터는 평년~약간 낮은 기온을 보이며 2월이 마무리되었지만 상순 초반의 기록적인 한파와 한 달 내내 고온 없이 이어진 추위의 여파로 서울의 2월 평균 기온은 -3.4℃에 달했다.
- 3~4월☆ - 상순과 중순은 -10℃ 이하를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최저 기온은 꾸준히 영하에 머물렀다. 그러다 3월 31일에 서울 최저 기온이 -3.7℃를 기록하는 초이상 저온이 찾아왔다. 이 여파로 3월 평균 기온은 2.5℃로 당시 평년보다 1℃ 정도 낮았다. 4월도 3월에 비하면 덜하지만 비교적 저온을 띄어 월평균 기온 9.9℃를 기록했으며, 특히 4월 15일에 -1.8℃까지 내려가서 강한 저온을 보였다. 단 일별 평균 기온의 중앙값은 10.55℃로 평범했다.
- 5월 일부 - 2~4월과 달리 5월은 비교적 평범한 기온을 유지하며 월평균 기온도 16.3℃로 평년과 거의 같았지만 몇몇 날에 저온이 있었다. 5월 19~20일 사이에 서울이 각각 5.9℃, 7.4℃를 기록했고 5월 25일에도 7.5℃까지 내려갈 정도로 낮았다. 반대로 강한 고온도 있었다.
- 6월 - 서울의 6월 평균 기온 19.8℃로 당시 평년보다 1℃ 남짓 낮았다. 다만, 이달 역시 월 전체가 저온에 시달리지는 않았고 특정 시기에만 저온이 강했으므로 일 단위로 서술하겠다. 서울은 6월 1일부터 6월 10일까지 하루가 지날수록 최고 기온은 올라갔으나 최저 기온은 오히려 내려가는 등, 일교차가 점점 크게 벌어지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6월 11일에는 이상 고온으로 서울 최고 기온이 무려 31.2℃까지 상승하는 때이른 폭염이 찾아왔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6월 18일에 31.5℃를 기록한 이후 곧바로 기온이 내려가서 이틀 만인 6월 20일에 최저 기온 15.0℃, 최고 기온 22.5℃로 서늘한 날씨가 찾아왔다. 또한 6월 22일에는 서울의 최고 기온이 20.4℃까지밖에 올라가지 않는 등 한여름을 앞둔 시기임에도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물론 다음 날부터는 다시 최고 기온 27℃를 웃돌았지만, 최저 기온은 여전히 낮아 6월 24일에는 14.4℃, 6월 28일에는 12.8℃까지 낮아지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일부 날짜에 폭염이 강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저 기온은 꾸준히 낮아서 월평균 기온이 20℃에도 미치지 못했다.
- 7월 - 이해 7월은 최저 기온 기준으로도, 최고 기온 기준으로도 기록적인 저온은 없었는데 서울 월평균 기온 23.3℃로 당시 평년보다 1℃ 정도 낮았다. 다만 7월 2일에는 서울 최고 기온이 20.0℃에 불과하기도 했다.
- 8~9월 - 8월 폭염이 없었으며, 경술국치의 시련을 날씨도 아는 것인지는 몰라도 8월 상순에 잠시 서울의 기온이 29~32℃로 평년 수준의 날씨를 기록한 이후 빠르게 식어서 초가을 날씨가 매우 일찍 찾아왔다.[50][51] 8월 하순에 잠시 더워지나 싶었더니 그나마도 반짝 현상에 그쳤다. 결국 8월 평균 기온은 24.2℃로 이상 저온인 2002년 8월과 같게 나왔다. 이러한 저온 현상은 9월까지 이어져서 9월은 서울 월평균 기온 19.1℃로 역대 최저 4위이며 최고 기온 27℃를 초과한 날이 단 하루도 없었고[52] 현대의 9월 하순에 나타날 날씨가 9월 상순부터 기승을 부렸다. 또한 9월 25일에는 최고 기온이 17.4℃까지 떨어졌다. 최저 기온도 한 자릿수까지 내려가지는 않았으나 꽤 낮아서 9월 15일과 9월 26일에는 10.4℃까지 떨어졌고 9월 28일에는 이보다도 낮은 10.2℃의 최저 기온을 보였다.
- 10월 일부 - 월평균기온은 13.7°C로 당시 치고 살짝 높았지만 10월 9일 최고 기온이 13.4℃였고, 10월 10~11일에는 연속으로 서울 최저 기온이 1℃대를 기록했다.[53]
- 11월 상순~중순 - 11월 3일부터 날씨가 확 추워지며 11월 4일에 서울 최저 기온 -4.1℃의 이른 추위가 한반도를 방문했다. 다행히 11월 5~12일은 최저 기온도 영상권을 회복했지만 11월 13일부터 다시 영하로 추락하더니 11월 19일에 -8.4℃를 기록하며 상당히 추웠다. 정작 하순에는 최저 기온이 -2℃ 이하로 내려간 날이 하루도 없었다(...). 그래도 상순과 중순의 기록적인 저온 덕분에 서울 월평균 기온이 5.5℃로 평년과 비슷하거나 조금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 12월[54] - 가을의 마지막 날인 11월 30일에는 서울 최저 기온이 5.1℃일 정도로 이상 고온이었지만 겨울의 첫날인 12월 1일로 넘어오자 기다렸다는듯이 -6.8℃를 기록하며 전날보다 12℃나 하강했다.[55] 기상학적 겨울이 완벽하게 12월 첫날에 시작된 셈. 이 한파는 12월 2~3일에 더 심해져서 이틀 연속 -9℃ 이하를 기록했고[56] 12월 8일부터 다시 추워져 12월 9일 -13.0℃, 12월 10일 -14.8℃, 심지어 12월 11~12일에는 날짜상 아직 한겨울이 아닌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이틀 연속으로 최저 기온 -16.8℃를 기록하는 어마어마한 한파가 들이닥쳤다. 결국 서울의 12월 상순 평균기온은 -4.8℃로 1944년 다음으로 역대 최저 2위를 기록했으며, 나머지 날들도 -10℃에 근접하거나 밑도는 추운 날씨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 결과 서울의 12월 평균 기온이 -4.6℃를 기록하여 역대 최저 6위에 달했다.
3.2. 1911년
1월 한파가 꽤 강했고 2~3월은 평년보다 약간 높았지만 4월 꽃샘추위가 강한 편이었다. 5월도 나름대로 낮았으며, 8월은 그럭저럭 여름 날씨를 보였지만 7월도 꽤 저온이었고 10월의 저온이 특히 강력했으며 12월도 상당히 낮은 축에 속했다. 다만 3월과 8월, 9월, 11월 등은 그럭저럭 높아서 서울의 연평균 기온이 10.654℃로 전체로는 최저 8위이며 1910년대에서는 최저 6위에 속했다. 한편, 이해 10월 2일부터 강릉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되었다.[57] 여담으로 서울의 강수일수가 가장 많았던 해이다.[58]- 1월[59] - 그리 춥지 않았던 전년도 12월 하순의 날씨가 1월 1일부터 급변하여 서울은 1월 2일 아침에 -19.7℃를 기록할 정도로 추웠다. 다행히 1월 3일부터 1차 한기는 물러가고 평년과 비슷한 날씨를 보이다 1월 11일이 되자 어김없이 한파가 찾아와 1월 12일 -18.0℃, 1월 13일에는 -21.5℃를 기록하는 초강력 한파가 찾아왔다. 그러나 이 한파도 오래가지는 않아서 1월 14일부터 약 1주일 동안은 평년~약간 낮은 기온으로 되돌아갔지만, 하순에 3차 한기가 내려와서 1월 23일 -17.9℃, 1월 24일 -19.7℃를 기록했다. 그러다 1월 26일부터 2월 1일까지는 역으로 이상 고온이 찾아와 따뜻한 1월로 마무리되었고 2월 2일부터 평년의 날씨를 되찾았다. 서울의 1월 평균 기온은 -5.0℃로 평년보다 약간 낮은 수준에 불과했지만[60] 1920년 1월과 함께 1월 상순, 중순, 하순 모두 -19℃ 이하를 기록한 둘 뿐인 달이기도 하다. 2월도 몇몇 날에 한파가 오기는 했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예년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추위여서 비교적 무난한 날씨를 보였다.
- 4월 - 온화했던 2~3월을 뒤로한 채 4월 들어서며 저온이 불어닥쳤다. 물론 4월 13일에는 이상 고온이 나타나 서울의 최고 기온이 24.1℃까지 올랐지만 불과 6일 뒤인 4월 19일에 서울에서 눈이 내릴 정도로 기온이 급강하했다.[61] 심지어 때아닌 적설까지 기록되었다. 눈이 오고 난 후 4월 20일 서울 최저 기온은 0.3℃로 영하에 가까울 정도로 내려갔으며, 4월 22일까지 1℃대를 기록하며 추웠지만 4월 23일부터 날씨가 풀렸다. 월평균 기온도 9.4℃로 당시 평년보다 1℃ 정도 낮았다.[62] 공교롭게도 정확히 100년 뒤인 2011년 4월도 저온 현상을 보였는데, 만약 2011년 4월의 평균 기온이 1911년 4월에 나타났다면 평년 수준인 것이다.
- 5월 - 5월 7일에 최저 기온이 3.7℃, 5월 16일에 5.6℃, 5월 24일에 8.3℃ 기록. 그러나 5월 31일에는 최고 기온이 30.0℃까지 올라가는 등 편차가 매우 컸다. 하지만 저온 현상의 여파로 5월 평균 기온은 15.6℃로 다소 낮았다.
- 6월 5일 - 서울 최저 기온 10.7℃. 이 여파로 월평균 기온은 20.3°C로 다소 낮았다.
- 7월 - 서울 월평균 기온 23.5℃. 하순에 최저 기온이 20℃ 이하인 날도 있었다.[63] 대신 8월은 월평균 기온 25.0℃로 평년 수준이었고 7월에 비해 여름이 한층 더워졌지만 상순에 저온이 남아있어서인지 8월 7일 최저 기온이 18.0℃를 기록했다.
- 10월 - 10월 10일에 찬 공기 남하로 인해 서울 최저 기온이 0.1℃를 기록.[64] 기록상[65] 가장 빠르게 영하에 근접한 기록이고, 10월 중 최악으로 추웠다는 이듬해 10월보다도 무려 사흘이나 빠르다.[66] 수원같이 서울보다 조금 더 기온이 들쑥날쑥한 지역은 아예 10월 상순에 영하를 기록했을 가능성마저 존재하고, 파주, 동두천 등 경기도 북부는 아예 영하 확정이다. 그 뒤로는 큰 저온은 없었지만 10월 29일에 또 다시 같은 수치인 0.1℃를 기록했다. 이 기록적인 저온 현상 때문에 10월 최저 기온 극값이 상순인 10월 10일(정확히는 10월 29일도 포함)에 기록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67] 월평균 기온은 11.6℃에 불과했고, 다음 해 10월과 불과 0.5℃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여담으로 동시기에 신해혁명이 일어났다.
3.3. 1912년
서울 월평균 기온 기준으로, 가을철인 9~11월은 아예 전체가 하위 1위로 뒤덮여있는 해이다. 특히 4월부터 시작된 이상 저온은 6~7월에 약해졌으나 이듬해 말인 1913년 12월까지 매우 길게 이어졌으며 1914년 1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저온이 누그러졌다. 이 영향으로 1912년 서울 연평균 기온 10.123℃로 역대 네 번째로 낮았다.[68]특히 1912년 9월~1913년 8월에는 저온 현상이 매우 잦아 이 기간동안 서울 연평균기온은 9.3°C 로 연속 12개월 역대 최하위이다.
- 1월 - 일제강점기에서는 비교적 평범한 겨울로 강한 고온도 강한 저온도 별로 없어서 월평균 기온 -4.7℃를 기록하여 평년과 비슷했지만 1월 3일에 최저기온 -15.2℃로 꽤 낮았다.
- 4월 - 저온 현상이 잦아서 서울 월평균 기온이 9.8℃로 중간 강도의 저온이다. 4월 1일에 -2.4℃, 4월 5일에 -2.5℃를 기록하여 4월 상순의 저온으로는 순위권에 들 정도로 낮았고 중순인 4월 12일에도 -0.4℃까지 낮아져서 초봄에 가까운 날씨를 보였다. 그 이후로는 저온의 기세가 잦아들었지만 5월을 며칠 앞두고 다시 추워져서 4월 28일에 3.5℃를 기록한다.
- 5월 - 서울의 월평균 기온이 14.8℃로 역대 최저 7위이다. 다음 해 5월과 더불어 25℃를 넘긴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는데, 1913년이 닷새 정도에다 30℃ 이상이었다면, 이해에는 한 달 중 고작 사흘[69]에 불과했다. 하지만 6~7월은 그럭저럭 평년 수준의 날씨를 보였다.
- 7월 하순[70] - 이때 최저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며 7월 23일 최고 기온이 25.0℃를 기록했고 7월 25일에는 최저 기온이 16.0℃까지 떨어져서 7월 하순 최저 기온 1위의 극값을 보였다.[71] 하지만 이후에 기온이 올라 7월 29일 32.2℃가 기록되며 여름 날씨가 다시 시작되었다.
- 8월 - 서울 월평균 기온 24.4℃로 저온이었으나 심하진 않고 오히려 8월 상순은 꽤 더운 편이었지만 8월 19일에 최저 기온 17.7℃, 최고 기온 20.3℃로 일평균 기온이 19.3℃를 기록하며 8월 중순 하위 4위에 이름을 올렸다.
- 9월 - 서울의 월평균 기온이 17.7℃로, 역대 최저 2위인 1929년 9월과 1.1℃ 차이로 압도적인 역대 최하위이다.[72][73] 9월 첫날에는 늦더위로 최고기온 32.2℃의 고온 현상이 발생했으나 9월 4일부터 최고 기온이 낮아지고 9월 7일부터 최저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낮에도 20~25℃에 그쳤으며, 기상학적 가을마저 매우 일찍 시작되었고, 9월 11일부터는 최저 기온 한 자릿수의 쌀쌀한 날씨가 오래 지속되었다.[74] 서울의 9월 중순 평균 기온은 하위 1위인 16.5℃를 기록했고, 전후 연도와 비교해도 최저 기온이 가장 빨리 떨어졌다.[75]
- 10월 - 역시 10월에도 월평균 기온 11.1℃로 역대 최저 2위인 1926년 10월과 0.4℃ 차이로 역대 최하위이다.[76][77] 9월과 양상이 비슷하며, 10월 17일과 10월 22~23일, 10월 30일에 영하로 떨어졌다.[78] 11월 1일에 기상학적 겨울로 접어들었다.
- 11월 - 11월에도 월평균 기온 1.4℃로 2위인 1930년 11월과 1.7℃의 압도적인 차이로 역대 최하위이다.[79] 이해 11월은 그냥 겨울이나 진배없는 날씨가 계속되었다. 시작부터 추위가 지속되어 서울의 11월 상순 평균 기온은 3.3℃로 아예 하위 1위를 기록했고, 상순 전체 중에서 일최저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날이 절반 이상인 7일이나 관측되었으며, 특히 11월 7일에는 최저 기온이 -7.8℃, 다음 날인 11월 8일에도 -7.7℃를 기록하며 11월 상순에 이틀 연속으로 -7℃를 밑도는 추위가 찾아왔다. 또한 11월 8일에는 최고기온마저 -0.4℃에 그쳐 영상권으로 오르지 못했다. 마치 2016년 11월 1일 이상 저온의 1910년대 버전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상당한 추위가 찾아온 것이다. 그 밖에 11월 6일과 11월 9일에도 서울 기준 최저 기온이 -5℃ 이하로 내려갔다. 이후 중순~하순에도 추위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물론 -10℃ 이하의 온도를 기록하는 강추위는 찾아오지 않았지만 11월 16일에 최저 기온이 -9.9℃, 11월 21일에도 -9.2℃까지 하락했으며 12월에 해당되는 날씨를 계속 보였다. 요약하자면 9월은 완연한 가을(9월 하순~10월 중순) 날씨, 10월은 늦가을 날씨, 11월은 초겨울 날씨를 보인 셈. 심지어 이달은 월평균 최고 기온이 최하위가 아니었던 9월, 10월과 달리 11월의 월평균 최고 기온(6.8℃), 월평균 기온(1.4℃), 월평균 최저 기온(-3.8℃) 3개 부문 모두 완벽하게 최하위이다!
- 12월 - 1912~1913년 겨울은 -20℃ 이하의 기온을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강력한 한파가 자주 찾아왔다. 특히 12월 24일에 -18.6℃까지 내려가서 매우 추웠다. 한파/대한민국/20세기 문서 참조.[80]
3.4. 1913년
저온 현상이 매우 잦아 서울의 연평균 기온이 10.086℃로 역대 세 번째로 낮았다.[81] 또한 일제강점기에 서울에서 단 하루도 폭염일수(최고 기온 33℃ 이상)가 기록되지 않은 유일한 해이다.[82][83] 월별로 고온 현상이 있어도 저온 현상이 더욱 강해 연평균 기온이 매우 낮은 것이 특히나 놀라운 부분이다.[84] 또한 고온이 적었지만 매우 강하게 온 특징이 있어서 기온 상승/하강 폭이 매우 큰 해이다.- 1~2월 - 서울의 1월 평균 기온 -5.1℃, 2월 평균 기온 -3.7℃. 1월 평균 기온은 당시 기준으로 조금만 낮았지만 2월은 일제강점기임을 감안해도 평년보다 매우 낮았다. 특히 1912년 10월 하순부터 시작된 겨울은 12월 하순에 본격적으로 심화되었고, 1월 5일 -18.8℃, 1월 14일 -18.9℃ 등 1월 내내 강약을 반복하며 2월로 이어졌다. 특히 다음 달인 2월 9일에는 -19.6℃까지 떨어져서 1910년 2월 2일과 함께 2월 역대 최저 기온 공동 1위를 기록하였다. 한파/대한민국/20세기 문서 참조. 다만 2월 중순부터는 한파가 물러가고 평범한 날씨로 끝이 났다.[85]
- 3월 - 3월 15일까지 강력한 꽃샘추위가 찾아왔고[86] 3월 2일에 -11.4℃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3월 7~9일까지 사흘 연속으로 -10℃를 밑돌았고[87] 그중 3월 7일에 최고 기온 -2.1℃, 최저 기온 -12.0℃로 한파일수를 기록했다. 이후 3월 16일부터 본격적으로 기온이 올라가 3월 17일에 18.4℃까지 오르는 등 4월에 해당하는 고온을 보이는 듯했으나... 하순부터 다시 기온이 떨어져서 3월 23일에 다시 최저 기온이 -3.9℃, 3월 26일에도 -3.1℃까지 떨어졌고, 3월 27일 -2.5℃, 3월 30일 -0.6℃로 마지막 영하권을 기록하여 강력한 꽃샘추위는 끝이 났다. 3월 평균 기온은 1.9℃로 2월만큼 이상저온이 강했다.[88] 하지만 4월이 되자마자 기온이 급격히 올라 4월 3일에는 23.5℃까지 오르는 고온 현상을 보였다. 이는 현대까지도 매우 강한 축에 속하는 이상 고온이다. 2014년, 2016년, 2021년 4월 1일, 2018년 4월 2일의 최고 기온과 비슷하다.
- 4월 중순~하순[89] - 4월 상순과 4월 21일은 고온을 보여서 최종적으로 서울 월평균 기온이 10.9℃로 당시 기준으로는 평년보다 살짝 높은 편이었으나, 월평균 기온이 아닌 일별 기온을 살펴보면 특히 최저 기온 중심으로 심한 이상 저온을 보인 날이 많았고 일교차도 유독 큰편 이었다.4월 14일은 평년수준이거나 조금 높았고 그외의 날도 최고기온 한정으로 평년 이상인 날이 있었지만 4월 18일에 최저 기온이 0.9℃까지 내려가서 평년 3월 중순 수준의 강한 꽃샘추위를 보였다. 그 이후 기온이 급상승해서 4월 21일에는 25.6℃의 최고 기온[90]을 기록하며 4월 하순은 다시 고온으로 돌아가는 듯했으나, 이는 반짝 현상이었고 다시 급락하여 4월이 끝날 때까지 20℃를 넘긴 날이 단 하루[91]밖에 없었다. 월평균 최고기온은 17.4°C로 평년보다 확실히 높았다. 이는 곧바로 5~6월의 저온 현상으로 이어진다.
- 5월 - 서울의 월평균 기온이 14.4℃로 역대 최저 4위이다. 5월에도 4월같은 기온이 이어지며 5월 전체를 통틀어 25℃를 넘은 날이 고작 5일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하순에 몰려있다.[92] 최저 기온 역시 낮았다. 5월 1일에서 5월 23일까지 이상 고온이 아예 전무했던 것이 더욱 눈에 띄는 부분이다. 특히 5월 10일에는 최저 기온이 5.4℃, 5월 11일에는 5.0℃를 기록하여 마치 4월 초중순같은 날씨를 보였다. 이후 5월 23일까지 비슷한 저온이 이어지다 5월 24일에 갑자기 30.0℃까지 기온이 상승해 2020년 5월의 극값과 같은 고온을 보였으나[93] 5월 26일에 다시 급락했다. 5월 29일에는 비가 내린 기록이 없으나 최저/최고 기온의 편차가 작아서 최고 기온이 19.9℃로 20℃에도 못 미쳤다.[94] 이후 또다시 기온이 가파르게 올라 5월 31일까지 27.0℃의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 6월 - 6월 상순은 당시로서 평년 수준이었고, 월 최고 기온은 30.8℃[95]를 기록했으나 이것이 극값으로 그쳤다. 중순부터 최고 기온 25℃를 넘지 못하는 날이 생기더니[96] 6월 하순에는 최고 기온 극값이 26.9℃[97]에 불과하였고[98] 6월 28일에는 최고 기온이 무려 19.7℃로 20℃조차 넘지 못했다. 이는 아마 잦은 강수일수 때문으로 보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저 기온도 비교적 저온이라 서울에서 최저 기온 20℃를 넘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6월 하순은 장마 기간이라 쳐도 6월 상순부터 강수가 기록된 일수가 꽤 많이 존재하였고 일조 시간도 적었다. 서울의 6월 평균 기온은 20.2℃로 역대 최저 7위를 기록했다.
- 7월[99] - 1931년, 1954년 7월에 준하는 매우 저온의 7월이다. 6월 중순 후반부터 시작된 이상 저온이 7월에도 지속되었다. 이는 잦은 장맛비로 인해 높은 운량 등 일사 차단과 적은 일조 시간으로 기온이 오르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은 7월 첫날부터 최저 기온 17.6℃로 상당히 낮게 시작하였고, 다음 날인 7월 2일에는 더 낮아져 15.9℃까지 떨어졌다. 7월 3일에도 최고 기온이 21.8℃에 그쳤다. 이에 그치지 않고 7월 5일, 8~10일에는 아예 최저 기온이 15℃를 밑도는 강력한 저온을 보였고, 그 중 7월 9일에는 무려 13.0℃[100]까지 떨어지며 서울의 7월 역대 최저 기온 2위[101]를 기록하고 말았다. 그나마 최고기온은 26℃를 넘기긴 했지만 이 역시 평년보다 꽤 낮은 값이다. 같은 날 대구와 강릉에서는 최저 기온이 무려 11.3℃까지 떨어지며 도저히 7월이라고 할 수 없는 평년 5월 초중순 수준을 보였고, 심지어 부산에서도 14.2℃로 15℃를 밑돌았다. 결국 서울 기준 7월 상순 평균기온은 20.4℃로 하위 2위였다. 중순에도 비슷한 수준의 저온이 계속 이어졌는데, 서울 기준으로 중순 전체 중에서 최고기온이 25℃를 넘지 못한 날이 절반 이상인 6일에 달했으며, 그 중 7월 11일에는 최저 기온이 15.1℃였고, 심지어 이 날 부산에서는 14.3℃까지 떨어지며 서울보다 더 심각한 저온을 보였다. 대구도 14.8℃까지 내려갔다. 그리고 7월 13일에도 서울 최고 기온이 22.2℃[102]에 그칠 정도로 선선한 날씨를 보였다. 그나마 15일에는 잠시 평년 수준을 보였지만 16일부터 다시 떨어져 19일까지 최고 기온이 24℃를 넘지 못하는 초이상 저온이 나타났다. 결국 7월 중순 평균기온은 22.1℃로 하위 4위였다. 이후 7월 22~23일에도 서울 기준 최고 기온이 각각 23.2℃, 25.3℃에 그쳤으며, 그 중 23일에는 최저 기온도 18.4℃로 상당히 낮았다. 절기 대서인데도 전혀 이름값을 하지 못했던 셈이다. 강릉에서도 7월 24일에 18.0℃까지 떨어지는 등 하순 초반까지 강한 저온 현상이 지속되었다. 이후 25일부터 30℃를 넘는 더위가 시작되어 저온이 해소되었다. 결국 서울의 7월 월평균 기온은 22.3℃로 1954년 7월 다음으로 가장 낮은 역대 최저 2위를 기록했으며, 심지어 인천은 월평균 기온이 21.1℃로 역대 최하위였다. 또한 그 덥다는 대구에서도 24.1℃로 25℃를 넘기지 못했다.[103] 여담으로, 이 달 합계 강수량은 324.7mm로 평년과 비슷하거나 적었고 강수일수도 많지만 7월 치고는 많은 편은 아니었다.
- 8월 - 서울 월평균 기온이 23.8℃로 역대 최저 6위를 기록했다. 최고 기온은 8월 상순을 제외하면 그리 큰 저온은 아니었으나[104] 최저 기온이 낮았으며 상순인 8월 1~10일에 최저 기온 20℃ 이상을 기록한 날이 3일[105]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열대야는 커녕 이른 가을 날씨를 보였다.[106] 특히 8월 28일에는 최저 기온 14.5℃, 8월 31일에는 그보다 0.1℃ 낮은 14.4℃까지 내려가 서울의 8월 역대 최저 기온 2위를 기록함으로[107] 마치 현대의 9월 중하순에 해당하는 날씨를 보였다.[108]
- 9월 - 9월 상순에는 전달 하순의 이상 저온을 그대로 물려받아 최저 기온이 닷새 연속으로 12~14℃까지 내려가는[109] 비정상적으로 낮은 기온을 보였다. 그러나 최고 기온은 비교적 높았고 초중순에 늦더위가 살짝 있어서 9월 11일에 30.0℃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후 금세 평년 수준으로 돌아가며 9월 16일에 최저 기온이 10.9℃까지 하강했다. 9월 19일부터는 최고 기온 위주로 저온 현상이 다시 찾아와서 9월 20일까지 이틀간 최고 기온이 21℃를 겨우 넘었다.[110] 이후로는 최고 기온은 그럭저럭 높아졌지만 이번에는 다시 최저 기온이 낮아져서 7~9℃의 한 자릿수를 기록하는 날도 3일이나 되었고[111] 9월 29일까지 최저 기온이 15℃를 넘지 못했다. 하지만 9월 30일부터는 기온이 올라가서 10월 상순에는 기록적인 늦더위가 찾아온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9월 평균 기온은 19.3℃를 기록하여 역대 최저 7위의 기온을 보였다.[112]
- 10월[113] - 9월 하순부터 기온이 갑자기 올라가서 10월 2일까지 최고 기온 27℃를 넘어섰고, 심지어 10월 3일에는 서울 최고 기온이 30.1℃로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서울의 10월 역대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114][115]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이상 저온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굉장히 이례적이다. 하지만 10월 4일이 되자마자 칼같이 이상 고온의 기세가 꺾여서 곧바로 저온으로 돌입, 10월 5일에는 최저 기온 8.5℃로 한 자릿수 기온으로 떨어졌다. 불과 이틀 만에 기온이 20℃ 이상 하락하는 상당한 이상 기후를 보였다. 이후 그럭저럭 평년 수준을 기록하였으나 중순부터는 최고 기온은 비교적 심한 저온이 아니었지만 최저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서, 중순인 10월 11~20일간 최저 기온 두 자릿수가 기록된 날이 고작 2일[116]에 불과했으며 10월 19일에는 4.1℃까지 떨어졌다. 이 저온은 10월 하순으로 갈수록 심해져 10월 24일 0.2℃, 10월 27일에는 -1.0℃로 영하권을 기록함으로써 11월로 이어졌다. 이 여파로 서울의 10월 하순 평균 기온은 8.0℃로 역대 최저 4위를 기록했다. 또한 10월 평균 기온은 13.0℃로 2018년 10월보다 0.1℃ 낮았으며 1980년 10월과 같았다. 만약 월초에 이상 고온이 없었다면 12℃대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117]
- 11월 - 11월 상순은 삼한사온의 형태를 보였다. 10월의 저온 현상이 이어지며 11월 3일부터 -4.2℃를 기록하여 강한 한파가 왔다. 이후 11월 5~6일에 최고 기온 15~17℃대, 최저 기온 0~4℃대를 기록하며 날씨가 살짝 따뜻해졌으나 다음 날부터는 다시 애매하게 낮아지더니 11월 14일에는 아침 최저 기온 -6.2℃, 낮 최고 기온조차 3.2℃로 1월에 해당하는 강한 추위를 보였다. 이후 애매하게 쌀쌀한 날씨가 계속되다 11월 28일부터 강한 한파가 와서 11월 28일 최고 기온 0.4℃, 11월 29일 최저 기온은 -8.9℃로 매우 강한 추위가 왔다. 서울의 11월 평균 기온은 4.9℃를 기록해 역대 최저 13위로, 손에 꼽힐 만한 이상 저온은 아니었지만[118] 평년보다 1°C 정도 낮았다.
- 12월 - 12월 1일까지는 어느 정도 날씨가 풀렸으나 12월 2일부터 12월 5일까지 한파가 왔다. 이후 그럭저럭 애매하게 낮다가 12월 13일을 시작으로 다시 한파가 와서 12월 18~19일은 -16℃ 아래로 내려가[119] 한파가 가장 강했다. 성탄절에 접어들어 한파는 풀렸으나 중순 한파의 영향으로 월평균 기온이 -1.9℃로 2017년 12월과 같다. 그러나 1914년 1~2월은 일제강점기 치고는 이상 고온을 보여 별다른 한파는 없었다.
3.5. 1914년
저온이 매우 강했던 1910년대에서 고온이 힘을 발했으며 현대 기준으로 가장 정상적인 기온을 보인 해이다. 당시 기준으로는 월평균 기온이 평년보다 낮은달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이해 서울의 연평균 기온은 12.029℃로 2011년과 같고 1907~2022년 연평균기온보다도 조금 높아 1910년대는 물론 일제강점기 중에서 가장 높다.[120] 이해는 서울에서도 7월에 35.0℃[121]의 무더위가 있었으며 6월에도 35.0℃[122] 기록이 있어 2020년 6월 하순을 연상케 했다. 일부 고온이나 저온 현상은 있었지만 12월까지 그럭저럭 수준에 그쳤다.- 3월 중순~하순 - 전체적으로 매우 따뜻한 3월이었지만 3월 15일에는 최고 기온이 2.3℃에 그치며 일시적으로 저온이 찾아왔다. 그리고 잠깐 동안이지만 하순에도 꽃샘추위가 있었는데, 3월 26일에 -4.3℃를 기록했다.
- 4월 상순 - 4월 평균 기온은 10.5℃로 평년과 비슷했지만 몇몇 날에 꽃샘추위가 찾아왔다. 후술할 1916년과 같은 월평균 기온이다. 4월 상순의 경우 기록적인 저온은 없었지만 상순 내내 최저 기온이 꾸준히 낮아 4월 3~10일까지는 모두 0~2℃ 사이에 머물렀고[123] 4월 13일에는 최고 기온이 10.2℃였다.
- 9월 20일 - 서울 최고 기온 18.5℃.
- 11월 하순 - 겨울을 앞둔 11월 하순에 이른 한기로 11월 28일에 -7.0℃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12월은 이해 1~2월과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 치고 따뜻해서 별다른 한파는 없었다.
3.6. 1915년
서울 기준으로 7월은 그럭저럭 월평균 기온이 높았고 10월부터는 그럭저럭 따뜻해져서 12월은 현대 기준으로도 이상 고온에 속했다.[124][125] 그러나 나머지 달은 이상 저온이 잦았다. 1월의 경우 상순에는 따뜻했지만 중순 전반에 시베리아 고기압의 급확장으로 엄청난 한파가 일어났고 중순 후반에 추위가 풀렸지만 하순일부에 추위가 다시 나타나고 해서 기온의 변화가 컸다. 2월은 비교적 추웠으며 3~4월까지 역대급 꽃샘추위 등으로 상반기가 1931년과 유사했다.[126] 서울의 연평균 기온은 10.898℃로 기상 관측 역대 최저 10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당시 기준으로는 조금만 낮다.- 1월 12~15일 - 월평균 기온은 -3.9°C로 당시 치고는 평년보다 조금 높았다. 서울은 1월 상순까지는 평년과 비슷하거나 약간 높은 기온을 보이다가, 1월 11일 밤부터 갑자기 기온이 곤두박질하여 1월 12일 최저 기온이 전날인 1월 11일보다 무려 18℃ 가까이 낮은 -20.9℃를 기록했고, 특히 1월 13일에는 최저 기온 -21.3℃, 최고 기온 -16.3℃로 일평균 기온이 무려 -19.2℃에 달해 기상 관측 사상 일평균 기온 역대 최저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1월 16일이 되자 기온이 크게 오르며 다시 평년~약간 높은 수준으로 돌아갔지만, 강력한 한파의 영향으로 서울의 1월 중순 평균기온은 -7.5℃로 2011년보다는 높았지만 평년보다 크게 낮아 역대 최저 14위를 기록했다. 하순은 고온과 한파가 번갈아서 나타났다. 26~27일은 최고기온이 10도가 약간 넘는 초봄 날씨를 보였다.[127] 자세한 내용은 한파/대한민국/20세기 문서 참조.
- 2~4월 - 1월 중순의 역사적인 한파를 뒤로 하고 남은 1월은 평범한 날씨로 끝났지만 2월이 되자 다시 추워져 2월 5일에 -16.3℃를 기록한다. 하지만 이달 한파의 포인트는 하순 끝자락에 등장하는데, 2월 27일에 서울 최저 기온이 -12.5℃로 전날인 2월 26일보다 13℃ 이상 내려갔고 2월 28일에는 일 최고 기온이 -11.6℃, 일 평균 기온은 -13.0℃에 달해, 2월 하순의 날씨라고는 믿기지 않는 엄청난 초이상 저온을 보였다.[128] 2월 평균 기온도 -2.7℃로 낮은 편이었다. 다음 날인 3월 1일에는 서울의 최저 기온이 -14.1℃로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3월 역대 최저 기온을 기록했다.[129][130] 그 뒤로 3월 15일에 최저 기온이 -7.7℃까지 떨어졌다가 3월 27일과 3월 30일에 -3.0℃를 끝으로 풀렸다. 4월 7~9일에도 단발성 꽃샘추위로 -2.0℃를 기록. 하지만 그 뒤에도 저온은 이어져서 4월 23~24일에는 서울 최저 기온이 1℃ 남짓까지 내려갔다.[131] 3월 평균 기온은 0.6℃로 1933년 3월과 같은 기온이다. 4월 평균 기온도 9.5℃로 1956년, 2010년 4월과 같다.[132]
- 5월 - 5월 2일 최저 기온 4.1℃, 5월 12일 최고 기온 14.0℃, 5월 26일 최저 기온 8.9℃. 3~4월만큼은 아니지만 5월도 산발적으로 저온이 찾아와 월평균 기온이 15.3℃로 평년보다 낮았다.
- 8월 - 서울의 8월 평균 기온은 24.4℃로 7월보다 0.7℃ 낮았고 당시 평년 기준으로도 1℃ 정도 낮아서 비교적 시원했다. 일별로 보면 8월 상순에는 더웠으나 중순에 일시적으로 폭염이 풀려서 8월 12~13일에는 최저 기온이 각각 18.2℃, 18.5℃에 머물렀다. 특히 8월 12일에는 최고 기온도 22.4℃밖에 오르지 못해서 일평균 기온도 20.1℃로 매우 낮았다. 그러나 8월 14일부터는 최고 기온이 다시 30℃를 넘어서고 한여름에서 벗어날 시기인 8월 20일에도 31.8℃까지 올라가는 등 늦더위가 나름 오래 지속되었지만 이후로는 다시 낮아져 8월 22일에는 최고 기온이 22.1℃였으며 8월 29일에는 최저 기온이 16.3℃까지 내려가서 여름이 저물어갔다.
3.7. 1916년
1915~1916년 겨울은 매우 따뜻해서 서울 연평균 기온이 10.911℃로 전체로는 최저 11위이며 의외로 1910년대 치고는 다소 높고 당시 기준으로도 비교적 평년 수준의 기온을 보였다. 그러나 1~2월이 이상 고온을 보여서 그런 것이며 3월부터 본격적으로 낮아지기 시작해서 저온 현상이 1910년, 1912년, 1913년, 1917년급으로 나름 강했다. 그나마 4월은 평년 수준이었으며, 8월은 그럭저럭 여름의 날씨를 보였다. 11~12월에 저온의 힘이 약해지고 고온 위주로 찾아왔지만 대신 11월과 12월 모두 월말 기습 한파가 매우 강했다. 이와 같은 저온을 보였던 이유는 4월부터 1892~1893년급의 강한 라니냐 현상을 보였기 때문이다.[134]- 3월 - 1915~1916년 겨울은 따뜻한 편이었으나 봄에 들어서부터 평년보다 기온이 낮아졌다. 2월에도 찾아오지 않았던 -10℃ 이하의 날씨가 3월 2일에 찾아와 -10.1℃를 기록하기도 했고, 그 뒤로도 -5~-8℃ 가량의 날씨가 열흘 넘게 이어졌다. 특히 3월 15일에 -6.4℃, 심지어 3월 25일까지 -5.3℃를 기록하였다. 결국 서울의 3월 평균 기온이 0.4℃로 전년도보다 낮고 역대 최저 3위를 기록했다.[135][136] 이 이상 저온으로 인해 3월 하순이 평균 3.3℃를 기록하고서야 비로소 1월 상순 평균(2.9℃)을 넘어서게 되는 희한한 광경까지 일어났다.
- 4월 상순 - 4월에도 꽃샘추위는 여전히 지속되어 4월 2일과 4월 6일에 -3.9℃를 기록하였다. 이 영향으로 서울의 1916년 4월 상순 평균 기온은 5.3℃를 기록하여 하위 1위이다. 대구에서도 복사냉각이 활발했는지 4월 6일 -6.0℃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4월 중순~하순에는 3월, 4월 상순의 뒷북 추위를 비웃기라도 하듯 잠시나마 따뜻한 날씨가 찾아왔고 몇몇날의 경우 따뜻하다 못해 더운 날씨를 보이기도 했다. 결국 이것이 상순의 저온을 상쇄시켜서 4월 평균 기온은 10.5℃로 평년과 비슷했다. 3월의 강한 저온 때문에 이해의 4월을 이상 고온으로 느꼈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 5~7월 - 5월과 6월은 일교차가 큰 편이었다. 5월 8일 최저 기온 3.3℃, 5월 10일 4.6℃ 등 5월 상순에는 대체로 최저 기온이 상당히 낮았다. 그러나 5월 13일에는 일시적으로 29.7℃의 때이른 더위가 찾아왔고 5월 15일까지 이어졌으나, 이후로는 많이 내려가서 5월 18일 최고 기온이 13.5℃로 불과 닷새 만에 16℃나 하락했다. 그러다 봄이 끝나가는 시기인 5월 하순에는 다시 최저 기온을 중심으로 이상 저온이 매우 심했는데, 특히 5월 29일 최저 기온 8.0℃, 5월 30일에는 7.0℃까지 내려갔을 정도였다. 덧붙여 5월 29일은 다른 날들에 비해 일교차가 작아서 최고 기온도 17.0℃까지밖에 오르지 않았다. 이로 인해 서울은 5월 하순 평균 기온 15.3℃를 기록하여 하위 1위이다. 이상 저온은 5월 31일 최저 기온 8.1℃를 기록하며 여름으로 이어졌고, 6월에 들어서까지 9.6℃로 한 자릿수를 기록했다. 6월 상순부터는 이상 저온이 끝나는 듯했지만 일주일 간격으로 몇 차례 더 찾아와서 6월 11일 11.1℃, 6월 18일 13.2℃를 기록한다. 7월도 선선한 편이었고 서울의 최고 기온은 높아봐야 31~33℃ 정도였으며 최저 기온은 7월 3일의 16.3℃였다. 또한 7월 18일에는 17.5℃로 한여름이 시작되는 시기임에도 매우 시원한 날씨를 보였다. 대체로 5월부터 7월까지 모두 저온이 짧고 빈번하게 찾아오는 양상을 보였고, 5월 평균 기온은 14.5℃, 6월도 20.1℃로 20℃를 간신히 넘는 월평균 기온을 기록했으며 7월도 23.6℃를 기록했다.
- 9~10월 - 쌀쌀한 가을 날씨가 이어졌고 서울의 9월 평균 기온은 19.2℃로 1918년 9월과 함께 역대 최저 5위를 기록했으며, 9월 11~12일에는 저온 현상이 특히 강해 9월 11일 서울 최고 기온 21.5℃, 9월 12일 최저 기온 8.5℃로 9월 중순부터 한 자릿수까지 떨어졌다. 9월 중하순은 평년보다 살짝 고온이었지만 9월 하순부터 눈에 띄게 기온이 떨어져서 9월 24일에 최고 기온 18.1℃를 기록했고 9월 28일, 9월 30일 최고 기온 19.9℃에 9월 29일 최저 기온은 6.8℃까지 떨어지면서 10월 중순에 가까운 날씨를 보였다. 저온의 여파로 서울의 10월 평균 기온은 12.7℃로 다소 낮았다.
- 11월 하순, 12월 하순 - 11월은 월평균 기온 6.5℃로 일제강점기 치고 따뜻한 편이었으나 11월 하순에 -10℃에 가까운 추위를 보였다.[137] 이후 12월에 들어서 평년과 비슷하거나 따뜻한 날씨를 보였지만 성탄절 오후부터 쌀쌀해지면서 최저 기온이 13℃ 가까이 떨어지더니 12월 26일에는 -19.0℃의 강력한 한파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다음 해 1월로 넘어가면서 더욱 심해져, 후술할 한반도 역사상 유래없는 최강의 한파로 이어진다.
3.8. 1917년
1916년과 마찬가지로 기록적인 라니냐로 강한 이상 저온 현상을 보인 해이며[138], 특히 1월에는 한반도 역사상 최강의 한파가 찾아오면서 이상 저온의 끝을 보여주었다. 여름에는 서울 기준 2016년급인 36~37℃의 무더위가 있기는 했으나, 12월에도 동년 1월 한파를 연상시키는 매우 기록적인 한파가 찾아왔다. 결국 1월과 12월의 월평균 기온이 압도적으로 낮아서 서울 연평균 기온이 9.858℃로 1910년대 중 가장 낮았으며, 기상 관측 이래 1936년과 함께 연평균 기온 역대 최저 2위이다.[139] 6~7월 폭염이 없었다면 연평균 기온 역대 최저 1위를 찍었을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연평균 최저 기온은 1월의 여파와 복사냉각의 영향인지 4.8℃로 역대 최저 1위이다.[140]다른 지역들의 연평균 기온은 서울보다 더 기록적이었는데, 인천, 부산, 대구 등 당시에 기상관측소가 있던 지역들은 1912년, 1913년, 1934년, 1936년, 1947년, 1956년 등 1년 전체가 이상 저온으로 뒤덮여 연평균 기온이 매우 낮았던 해들을 가볍게 넘기고 연평균 기온 역대 최저 1위를 기록했다! 인천의 연평균 기온은 9.7℃를 기록하여 1947년과 공동으로 역대 최저 1위를 기록하였고[141], 부산도 12.4℃로 역대 최저 1위[142][143], 대구 역시 11.1℃로 압도적인 역대 최저 1위[144]를 기록했다.
- 1~2월 - 서울의 1월 평균 기온이 무려 -9.0℃를 기록해 역대 최저 2위이다. -9.2℃로 역대 최하위를 기록한 1963년 1월보다는 조금 높지만 최저 기온은 1917년 1월이 훨씬 낮았다.[145][146] 자세한 내용은 한파/대한민국/20세기 문서 참조. 2월도 1월의 여파로 한파가 이어져서 서울 월평균 기온 -3.4℃로 역대 최저 8위이다. 1월은 평균 기온상으로는 1963년에 밀려 역대 최저 2위이지만 월평균 최저 기온은 1963년보다 낮았고[147] -14.4℃로 역대 최저 1위를 기록했다. 1월의 기온 양상을 보면 상순에는 매우 추웠고, 중순에는 기온이 올라 몇몇 날이 최저 기온 -10℃ 이상으로 올라갔지만 하순에 다시 강력한 한파가 찾아왔는데, 만약 중순에 몇몇 날이 최저 기온이 높지 않았다면 아마 월평균 기온 -10℃ 전후에 월평균 최저 기온은 -15℃ 이하를 기록했을 수도 있다. 거기다 습도가 66.4%로 습도까지 높은 뼛속까지 어는 추위여서 1963년에 버금간다.
- 3~4월 - 3월 하순까지도 영하로 떨어지는 쌀쌀한 날씨가 계속되었지만 3월 저온이 이보다 더 심각했던 해가 많아서 3월은 서울 월평균 기온 2.8℃로 기록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일별로 보면 3월 1일부터 -9.5℃를 기록하며 강한 추위를 보였고 중순에 다시 꽃샘추위가 강해져 3월 16일에도 -7.6℃를 기록했다. 4월도 큰 저온 현상은 없었지만 서울의 월평균 기온은 10.2℃로 조금 낮았으며 3월과 마찬가지로 역대 최저 12위이다. 현대 기준으로 보면 굉장히 낮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평년보다 조금만 낮았다. 일교차가 커서 평균 최고기온은 17.1°C로 오히려 당시 치고는 약간 높았다. 후술할 2년후도 마찬가지. 4월 8일에 최저 기온이 -0.3℃로 영하권을 기록하기도 했고 4월 17일에도 0.7℃로 매우 추웠다. 4월 30일에는 5월을 단 하루 앞두고 있으면서도 최저 기온이 1.8℃까지 내려갔고, 이는 4월 30일의 역대 최저 기온 극값 중 최하위이며, 하루만 더 늦었으면 5월 최저 기온이 1℃를 달성하는 대기록을 세울 뻔했다.
뭐 조선 시대에는 진짜로 5월 최저 기온 1℃를 기록하고도 남았을 것 같기는 한데... 좀 더 과장하면 5월 영하도 있었을 법하다. 특히 1655년과 1659년
- 5월[148] - 서울 월 평균기온 14.1℃로 역대 최저 3위이다.[149] 서울은 5월 2일 최저 기온이 2.4℃까지 떨어져서 5월 역대 최저 기온 기록을 세웠고, 5월 10일도 4.6℃까지 떨어졌다. 심지어 5월 5일은 최고 기온이 9.9℃로 5월 최고 기온 중 압도적인 역대 최하위였다.[150][151] 서울의 5월 상순 평균 기온은 10.4℃로 4월 상순 수준이었고 현재까지도 하위 1위이며, 코앞인 4월 하순 평균(10.4℃)과 동일하였다.[152] 5월 15일까지 최고 기온 20℃를 넘기지 못했으며 하순까지도 최저 기온이 두 자릿수를 넘기지 않은 날이 많았다.[153] 심지어 인천은 훨씬 더 기록적이어서 인천의 5월 평균 기온이 12.9℃로 역대 최저 2위이다.[154] 월평균 최고기온은 16.8°C로 역대 최하위이다.[155] 5월 5일에는 최고 기온이 9.2°C에 불과했다. 또한 이상 고온은 커녕 평년보다 높은 날이 단 하루도 없어서 5월 최고기온 극값이 고작 21.1°C[156]에 그쳤다. 5월 한 달 내내 현대(90년대 이후)의 4월이라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날씨가 이어졌다. 5월 평균기온 최하위인 1945년 조차도 낮에는 초여름 날씨를 보인날이 있을 정도면 말 다한 것이다.
- 6월 4~5일 - 서울의 6월 평균 기온은 21.5℃로 당시 평년보다 높아서 비교적 더웠지만, 6월 5일에는 최저 기온 9.7℃의 저온이 발생했다. 하지만 곧바로 기온이 크게 올라 6월 16일에는 36.7℃의 엄청난 폭염이 찾아와서 남은 6월은 저온이 없었다.
- 8월[157] - 앞서 저온 현상과 대조적으로 6월~8월 2일에는 최고 기온 36~37℃의 무더위가 있었지만[158], 하지만 8월 4일부터 폭염은 언제간듯이 이상 저온이 찾아왔고 몇몇 날에는 가을 날씨가 찾아왔다.[159] 특히 8월 15~16일 사이에 저온이 가장 강해서 8월 15일에는 16.4℃까지 내려갔다. 월평균기온도 24.8°C로 다소 낮았다.
- 9월 - 9월은 서울 월평균 기온이 20.0℃로 일제강점기임을 감안해도 평년보다 조금 낮았다. 9월 8일의 최저 기온이 12.7℃를 기록해서 10월 상순과 같은 날씨를 보였고, 13일에도 11.6°C까지 떨어졌다.
- 10월 29일~11월 - 10월은 28까지 전반적으로 평범했지만 29일 부터 기온이 눈에 띄게 떨어지기 시작해서 11월 월평균기온 서울 3.3℃, 대구 4.8℃로 서울은 역대 최저 4위, 대구는 역대 최저 2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특히 서울 기준으로 11월 상순 중에서 일최저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날이 절반 이상인 7일이나 관측되었으며,[160] 11월 4일에 -1.1℃로 추위의 시작을 알리더니, 급기야 11월 7일에는 무려 -7.6℃로 11월 상순이라는 시기를 고려하면 매우 놀라운 저온을 보였다. 심지어 대구에서는 11월 상순 평균 기온이 6.2℃로 아예 하위 1위에 이름을 올렸으며, 영하권을 기록한 날도 상순 전체 중에서 3일이나 있었다.[161] 이후 남은 중순~하순에도 몇몇 날을 제외하면 영하의 기온이 꾸준히 기록되었으며, 특히 11월 28일에는 서울의 최저 기온 -7.1℃, 강릉의 최저 기온 -4.3℃로 추위가 절정에 달했다.
- 12월 - 11월부터 시작된 추위가 12월에도 비슷한 기온을 유지하는 듯 보였으나... 12월 15일부터 12월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역대급 한파를 보이면서 서울 월평균 기온 -5.7℃로 1944년 12월(-5.8℃) 다음으로 역대 최저 2위이다. 물론 월초에는 서울 최고 기온이 10℃를 넘는 포근한 날씨가 있었지만[162] 이후 12월 15일부터 한파일수에 충족한 -12℃ 이하를 기록하면서 상당한 추위를 보였고 하순에는 -20℃ 이하로 내려가기까지 해서 12월 하순 평균 기온이 -10.7℃로 하위 1위를 경신한다. 이후 다음 해인 1918년 1월도 상순까지 역대급 한파를 보였고 중하순도 추운 편이라서 1917년 1월 못지않게 추웠다.[163]
3.9. 1918년
1917년 12월의 한파가 1월 중순까지 영향을 미쳐서 1월이 매우 추웠지만[164] 2월부터는 라니냐도 풀리고[165] 4월까지 전반적으로 따뜻한 편이었다. 다만 여름철에도 동해안 지역은 오호츠크해 기단으로 저온이 매우 심했으며 5월과 가을철(9~10월)의 저온이 강했고[166] 12월도 편차는 강하지 않았지만 딱히 고온은 아니었다. 그래서 서울 연평균 기온 10.540℃로 전체로는 최저 7위, 1910년대 중에서는 최저 5위였다.- 1월 - 한파/대한민국/20세기 문서 참조. 서울 월평균 기온 -7.5℃로 역대 최저 7위이며, 최저 기온 극값은 1월 3일의 -21.8℃.[167]
- 5월 - 라니냐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따뜻한 봄을 맞이하며 3~4월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따뜻했지만 그리고 5월에도 몇몇 날에 저온을 보여서 5월 7일 4.3℃, 5월 14일 4.5℃를 기록한다. 5월 평균 기온은 14.8℃에 그쳤다.
- 7월 - 강릉의 7월 평균 기온이 20.9℃로, 6월 평균 기온(21.9℃)보다 더 낮았다. 서울 역시 월평균 기온 23.3℃로 평년보다 1℃ 이상 낮았는데, 7월 15일에는 최저 기온이 16.1℃였고 나머지 날들도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저온을 보인 날이 흔했다.
- 9월 - 9월 상순은 현재도 평년 수준에 그치지만 중순부터 최저 기온이 한 자릿수를 보이는 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168] 하순은 특히 일교차가 강해 최고 기온은 20~26℃인데 최저 기온이 8~12℃까지 떨어지는 등 일평균 기온이 낮게 나오면서, 서울의 9월 평균 기온이 19.2℃로 1916년 9월과 함께 역대 최저 5위를 기록했다.
- 10월 - 전달에 시작된 저온 현상이 그대로 이어져서 10월 2일에는 최저 기온이 4.3℃까지 내려갔다. 그리고 10월 19일에 -0.6℃로 영하의 날씨가 찾아왔고 10월 21~22일에는 정반대로 고온이 찾아왔지만 바로 급락해 10월 25일에 다시 -2.6℃를 기록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저온이 심한 날도 있었지만 이와 반대로 고온을 보인 날도 만만치 않아서 서울의 10월 평균 기온은 12.9℃로 평년보다 조금 낮은 수준이었다.
3.10. 1919년
이해 1~2월은 한파가 있었지만 지난 2년(1916~1917~1918년)의 겨울만큼 비상식적이지는 않았다. 4~5월에도 다른 1910년대 해보다 심하지는 않으나 저온이었고 9월과 12월에 특히 저온이 강했지만 여름철의 무더위가 상당히 강해서[169] 결국 서울 연평균 기온 11.151℃로 전체로는 최저 13위이지만 1910년대에서는 1914년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시기를 감안하면 평년과 비슷하거나 조금 높다.- 1~2월 - 서울은 1월이 시작되면서 비교적 강한 한파가 찾아왔지만 1917년이나 1918년 1월과 달리 -15℃ 이하의 한파가 일주일 넘게 이어지는 비현실적인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1월 19일부터 다시 크게 추워지며 1월 21일에 -17.5℃로 상당히 낮았다. 이 한파는 강약을 반복하다 2월에 다시 한 번 절정을 찍어 2월 5일에 -18.3℃를 기록했으나 이후로는 평년의 겨울로 되돌아갔고 한파가 끝났다. 서울 월평균 기온은 1월, 2월 각각 -4.7℃, -1.7℃로 평년보다 약간만 낮아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는 오랜만에 평범한 겨울을 보냈다.[170]
- 3월 하순~4월 - 2월에는 한파가 있었지만 3.1 운동이 시작된 3월부터 서울은 그럭저럭 평년과 비슷한 날씨를 보였고, 대신 3월 29일에 서울의 최저 기온이 -5.9℃를 기록했고 이후에는 고온을 보인 날도 있었지만 4월 1일 -3.9℃, 4월 25일에도 1.9℃를 기록하여 월평균 기온은 10.2℃로 1917년, 1959년, 1996년 4월의 10.2℃와 같다.[171]
- 5월 - 5월 3일 최저 기온 3.7℃, 5월 4일 최저 기온 3.1℃, 5월 12일 최저 기온 4.6℃, 5월 22~23일 최저 기온 6.5℃. 날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열흘 정도의 간격으로 이상 저온이 찾아왔다.
- 8월 18일 - 1919년 여름은 무서운 폭염이 널린 현대 기준으로도 매우 더운 여름에 속해서 저온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8월 18일에 서울 최저 기온이 17.0℃까지 떨어지며 오랜만에 선선한 날씨를 보이는 듯 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최고 기온은 여전히 매우 높아 34.1℃까지 치솟아서 무더위가 도무지 끝나지 않으려는 날씨를 보였다. 아무래도 복사냉각 이후 구름 하나 없이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었던 듯.
이것도 모자라서 이틀 뒤에는 35.7℃까지 올랐다.
- 9월 - 9월 7일 최저 기온 13.1℃, 9월 13일 최저 기온 11.1℃. 장기적인 폭염에서 벗어나 선선한 날씨가 찾아오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이다. 9월 17~18일에는 최저 기온이 10℃ 안팎으로 내려가기도 했다.[172] 다만 최저 기온만 낮았을 뿐 최고 기온은 여전히 26℃를 넘었다. 그래도 이같은 저온의 영향으로 서울 월평균 기온 19.5℃를 기록하여 평년보다 낮았다.
- 11~12월 - 11월 중순부터 -5℃ 이하인 날이 기록되며[173]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11월 25일에는 -9.3℃를 기록하여 한겨울의 날씨가 일찍부터 찾아왔다. 12월 상순에는 기온이 딱히 낮아지지 않았으나 중순부터는 겨울이 깊어지는 만큼 점차적으로 추워졌고, 성탄절 이후에 며칠간 상당히 따뜻해졌으나 12월 29일부터는 정반대로 매우 혹독한 추위가 몰려와서 12월 30~31일에 -17~-20℃의 강추위로 연말을 마무리했다.
4. 1920년대
1910년대보다는 아니지만 1920년대 역시 겨울이 매우 추웠다. 극값도 이곳에 있는 날들이 매우 많고 고온을 보인 겨울도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극단 한파가 장기적으로 이어지지도 않고, 그 밖의 계절도 매우 추워도 기록적 수준은 아니라 월평균 기온이 최하위를 기록한 달은 거의 적다. 즉 겨울은 전반적으로 매우 춥고 가끔 일 최저 기온이 극단적으로 낮았으나 장기 한파는 적었다. 그러나 여름의 경우 대부분의 해에 더위가 와서 연교차가 크게 나타났다. 자세한 내용은 폭염/사례 문서의 1920년대 문단 참조. 그리고 그 밖의 계절들도 저온이 가끔 있었다.[174] 또한 10~11월에 이른 추위가 오며 저온이 오는 경향이 많아졌는데, 10월 평균 기온이 13℃ 미만인 해가 많으며 11월 평균 기온이 6℃ 이상인 해는 1920년, 1925년, 1926년, 1927년 뿐이다. 다른 해들은 11월 평균 기온이 3~4℃ 정도로 매우 낮은 편이었으며 높아도 1928년처럼 5.2℃에 그쳤다.4.1. 1920년
비록 1월 하순 끝자락이 고온이었지만 초중순이 기록적 한파라서 상당히 낮은 편이었고 2월도 1월만큼 추워서 1917년 2월과 비슷한 편이었다. 3월과 5월은 전반적으로 온화하고[175] 4월은 꽃샘추위가 찾아왔으나 저온인 날이 그렇게 많지 않고 월평균 기온이 10.4℃로 평년 비슷범위였다. 6월은 폭염과 저온이 공존하였으나 저온이 더욱 강해 현재 기준으로는 낮은 편이다. 그러나 7~8월에는 이렇다 할 고온과 저온 없이 평범한 여름 날씨를 보여 100년 후인 2020년처럼 서울에서 6월 최고 기온 극값이 연중 가장 높았다. 또한 2020년처럼 8월 상순에 집중호우가 심해 비가 매우 많았다. 이후 가을철에는 9월 상순의 늦더위를 제외하고는 평범했으며 당시 치고는 이상 고온이었다. 12월까지 평범한 날씨가 이어지다 12월 하순에는 한파가 강했다. 서울 연평균 기온은 11.408°C로 일제시대 중에서는 높은 편이다.- 1~2월[176] - 전년도 1~2월과 달리 매우 기록적으로 추운 겨울이었다. 서울은 1월 시작부터 급속도로 추워지더니 1월 4일에는 무려 -22.3℃로 역대 최저 기온 3위를 기록했으며[177] 이후로도 강추위가 잦았다. 특징이라면 1920년 1월은 1917년이나 1918년 1월처럼 최저 기온이 매우 낮은 한파가 열흘 이상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강력한 한파가 며칠 이어지다 풀리고 며칠 만에 다시 찾아오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게다가 한파가 찾아온 날의 최저 기온이 하나같이 매우 낮은 것도 특징. 1월 5일까지 -19.2℃를 기록하다 풀린 한파는 1월 8일에 다시 부활해 1월 9일에도 -19.5℃를 기록하고, 다음 날부터 조금씩 나아지나 싶더니 1월 14일에 다시 추워져 1월 15일 -18.8℃, 1월 16일 -19.6℃, 1월 17일 -19.8℃의 맹렬한 추위가 찾아왔다. 그 이후 며칠간은 다시 평년 수준을 유지하다가 하순에 도로 낮아져 1월 23일에도 -19.7℃를 기록하고 며칠 동안 풀리는 등... 그러다 1월 28일이 되자 반복적인 한파에서 벗어나 이상 고온이 왔다. 하지만 상순부터 중순, 하순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 한파의 영향으로 서울의 1월 평균 기온은 -6.8℃에 달해 매우 낮았다.[178][179] 2월 1일까지 따뜻한 날씨가 유지되다 2월 2일부터 다시 추워졌고, 2월 11일에 -18.5℃[180]로 마지막으로 강력한 한파를 남기고 잦아들었다. 2월 평균 기온도 -3.2℃로 꽤나 낮은 편이었다.
- 4월☆ - 서울의 월평균 기온이 10.4℃. 시대를 감안하면 2012년과 2019년의 4월과 비슷한 정도로 저온이라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4월 15일에는 0.5℃까지 떨어지는 등 강한 꽃샘추위가 찾아왔다. 하지만 일별 평균 기온의 중앙값으로 보면 11.0℃로 오히려 조금 높다.
- 5월(강원도 영동) - 강원도 영동 한정으로 매우 경이로운 이상 저온을 보였는데, 강릉의 월평균 기온이 13.9℃로 역대 최저 1위이다. 5월 상순에는 거의 모든 날이 최저 기온 한 자릿수로 도배되었으며 그중 5월 1일과 5월 4일에는 5.6℃까지 떨어졌다. 중순에도 기온은 살짝 올랐으나 여전히 최저 기온 한 자릿수의 날씨가 지속되었고, 최고 기온도 20℃를 겨우 넘기는 수준이었다. 그중 5월 18일에는 7.8℃, 전날인 5월 17일은 최고 기온이 12.8℃를 기록했다. 이후 며칠간 기온이 급격하게 올라갔으나 이는 일시적 현상으로 5월 23일부터 다시 평년보다 살짝 낮아졌고, 5월 29일에 다시 최저 기온 8.0℃를 기록하여 강한 저온이 계속 이어졌다. 또한 5월 19일과 5월 22일의 일시적 고온을 제외하면 25℃ 이상인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서울은 월평균 기온이 17.3℃로 2021년 5월보다 높으며 당시 치고 꽤나 따뜻한 편이었다. 지금 기준으로도 아주 심한 저온은 아니다. 1964년 4월과 비슷한 사례.
- 6월 일부[181] - 6월 24일 최저 기온 14.3℃. 그러나 서울 기준 폭염/사례 문서에도 나오듯이 몇몇 날에 폭염이 매우 심했기 때문에 월평균 기온 21.6℃로 평년보다 높았다. 물론 현대 기준으로는 평년보다 낮다.
4.2. 1921년
1910년대의 혹독한 겨울과 달리 이해 1~2월에는 그다지 춥지 않은 겨울 날씨를 보였다. 봄철은 3월이 약간 낮았지만 4월이 약간 높아 월평균 기온이 당시 치고 평년보다는 다소 높았고 5월은 평년 수준이었다. 6~7월에는 별다른 더위 없이 이상 저온을 보이다가 8월 중순에는 꽤 더웠다. 하지만 9월 중하순에는 저온이 다시 시작되어 11월로 갈수록 심화되었다. 하지만 정작 12월에는 큰 추위가 없다가 다음 해 1월에는 매우 강한 장기 한파가 기승을 부렸다. 서울 연평균기온은 10.969°C이다.- 3~4월 - 겨울철과 달리 일별로 보면 저온이 잦아서 3월 14일 최고 기온 -0.8℃, 3월 15일 최저 기온 -6.6℃를 기록했다. 하순에도 심하지는 않았지만 며칠 동안은 날씨가 쌀쌀해져서 3월 23일 -4.7℃, 3월 29일 -3.9℃를 기록했다. 4월 상순에도 꽃샘추위의 영향인지 영하로 떨어지는 날들이 있었다.[182]
- 6~7월 - 6월 상순이 되자 며칠간 기온이 크게 낮아서 10℃ 이하로 내려갔다.[183] 6월 20일에도 최저 기온이 14.1℃에 불과했다. 대체적으로 6월은 저온이 우세해서 서울 월평균 기온이 20.1℃로 평년보다 1℃ 정도 낮게 나왔다. 인천은 19.6℃를 기록했다. 7월도 그럭저럭 낮아서 월평균 기온이 서울 24.0℃, 인천 23.5℃를 기록. 8월 상순에도 최고 기온이 약간 낮았다가 중순에서야 본격적인 더위가 찾아왔다. 그러나 서울 기준으로 8월 하순까지는 최고 기온이 35℃에 근접하는 등 매우 더웠으나 8월 28일부터는 최고 기온이 높게 오르지 않아서 25℃ 안팎이었고 8월 29일에는 최고 기온 21.1℃를 기록했다.
- 9월 하순 - 9월 1~17일의 늦더위로 평균 기온이 22.7℃[184]까지 올랐으나, 끝내 하순 전체의 저온 현상 때문에 최종 19.8℃로 하강해버렸다. 따라서 월평균 기온만 놓고 보면 그냥 평균보다 약간 낮았다고 오해를 하기 쉽다.
평균의 함정하순에도 25~27℃ 정도는 연례행사급인 것과 달리, 이때는 23℃마저도 올라가지 못했고[185], 급기야 9월 27일 최고 기온 14.3℃, 일평균 기온 12.4℃까지 굴러떨어져, 역대 9월 27일 최고 기온과 일평균 기온 부문에서 최하위까지 기록.[186] 이 여파로 서울의 9월 하순 평균 기온이 14.9℃에 불과해 하위 1위이다.
- 10~11월 - 서울의 10월 평균 기온 12.3℃, 11월은 3.4℃. 특히 11월 10일에 -5.1℃까지 떨어졌고, 11월 26일에는 -9.4℃로 -10℃ 근처까지 내려가서 이른 겨울이 찾아왔다. 추가로 12월은 월평균 기온상으로는 따뜻했으나 상순에 한파가 강해서 12월 2일 -12.1℃, 12월 3일 -12.4℃를 기록했지만 중순에는 이상 고온이 왔고, 성탄절 무렵에 단기 한파가 있어서 12월 25일에 -13.6℃를 기록했지만 이것이 최저 기온 극값으로 그쳤다.
하지만 다음 해 1월은...?
4.3. 1922년
그다지 춥지 않았던 전년도 12월의 날씨가 새해부터 돌변하여 1월이 매우 추웠다. 다행히도 2월은 따뜻해졌으나... 3월 하순의 꽃샘추위가 너무 비현실적으로 심해서 3월 평균 기온은 낮은 편이었다. 4월에는 월말이 고온이라 월평균 기온이 12.3℃로 일제강점기 치고 상당히 높았다.[187] 하지만 5월에도 4월같은 날씨가 이어져서 월말이 고온임에도 불구하고 월평균 기온이 평년과 비슷했다. 6월은 최저 기온이 낮았지만 최고 기온은 일부 고온인 날도 있어서 월평균 기온이 21.7℃로 현재 치고는 저온이나 당시 치고는 높게 나왔다. 7~8월은 서울에서 전년도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188] 가을철에는 9월은 낮지 않았으나 10월부터 낮아져 전년도처럼 11월의 저온이 심각한 편이었다. 하지만 하순에만 반짝 추위가 찾아온 전년도와는 다르게 이해는 12월도 상당히 추워서 월평균 기온이 2005년 12월과 같았다. 서울 연평균기온은 10.873°C이다.- 1월[189]~2월 1일 - 매우 강한 한파가 찾아왔다. 서울 월평균 기온 -7.8℃로 1945년과 함께 공동 최저 5위이며, 최저 기온이 가장 낮았던 날은 1월 20일로 무려 -21.0℃까지 떨어졌다. 이 저온 현상은 2월 1일까지 이어져 -17.6℃를 기록했다.
- 2월 27일~3월[190] - 2월은 월평균 기온은 0.7℃로 오히려 높으나 2월 27일에 -12.0℃를 기록해서 이상 저온을 다시 알렸고 서울의 월평균 기온이 2.7℃.[191]2월과 같은 기온이다. 이해 3월의 날씨를 2021년 2월에 갖다 붙여놓고 2월이라고 우겨도 될 지경이다.] 3월 중순에는 그럭저럭 봄이 찾아온 듯 싶다가 하순부터 꽃샘추위가 찾아왔는데, 그 꽃샘추위 수준이... 며칠 내내 끝도 없이 기온이 낮아진 끝에 3월 25일 최저 기온이 무려 {{{#blue -10.2℃[192]최근으로 따져도 1999년 3월 22일의 -6.2℃와 2013년 3월 21일의 -4.0℃가 있으며, 이 이후로는 3월 하순에 심한 꽃샘추위가 찾아오지 않고 있다. 3월 온난화가 심화된 현재 마지막으로 하순에 영하로 내려간 2022년 3월조차 -0.3℃에 그쳤으니 말 다한 셈이다. 조금만 더 늦어서 4월 상순 초반에 이러한 꽃샘추위가 왔다면 독보적인 차이로 4월 역대 최저 기온 기록을 세우는 것은 물론 4월 적설량 최다 기록도 남겼을 것이며 일단 경북 내륙, 충북 내륙, 강원도처럼 역전층같은 현상이 일어나서 기온을 크게 떨어뜨려야 한다. 이외에도 19세기에 서울이 기상관측을 시행했다면 강원도처럼 극단적인 복사냉각으로 -25~-26도까지 가능할거란 주장도 있다.]}}}였다. 그 외에도 3월 하순인데도 최고 기온이 1℃ 남짓[193]밖에 되지 않는 등, 이쯤되면 한기가 봄에 무슨 원한을 졌나 싶을 정도로 늦게까지 판을 쳤다. 이 한기의 원인인지는 몰라도 3월 23~24일에는 서울과 인천에서 대폭설이 내렸다는 기록이 있으며, 인천은 무려 43.8cm(???)이며 강수량으로는 41.9mm라는 믿을 수 없는 적설량을 기록했다고 하지만 서울만큼 압도적으로 기온이 낮지 않다. 한겨울도 아니고 3월 하순에 이렇게나 많은 눈이 내렸다는 것이 매우 이례적이며 인천 정도의 온도여도 충분히 한겨울 느낌이 날 수 있다. 이 영향으로 때마침 들어온 한기와 함께 반사율(알베도)로 눈이 태양열을 반사시켜 기온이 극단적으로 낮아졌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렇듯 하순의 꽃샘추위가 역대급으로 심각해서 서울의 3월 하순 평균 기온이 1.3℃로 하위 1위이다. 다만 이에 대한 반작용인지 4월은 12.3℃로 지금 기준으로 봐도 평년에 속할 정도로 따뜻해졌다.
- 9월 중하순 - 9월 19일부터 최저 기온이 12.9℃로 내려가고 최고 기온도 22℃ 정도로 저온이 찾아오더니 9월 20일에는 최저 기온 7.8℃를 기록했다. 9월 21일까지 저온이 이어지다가 이후에는 바로 올랐으나 9월이 끝나갈 무렵에 다시 낮아져서 9월 29일에 6.2℃까지 떨어졌다.
- 11월 - 서울 월평균 기온 3.5℃. 11월 10일에 -4.1℃를 기록하며 시작된 추위는 11월 20일에 -8.4℃까지 내려가며 실질적인 겨울이 시작되었고 하순에는 아예 절정을 찍어 11월 26일 최고 기온 -4.3℃, 11월 27일 최저 기온 -11.6℃를 기록했다.
- 12월 - 100년 뒤인 2022년 12월과 비슷하게 한파가 길게 이어졌다. 한파/대한민국/20세기 문서 참조. 12월 상순부터 매우 추워 12월 6일에는 -12.0℃로 한파일수를 기록하였고, 이후 중순이 되자 더욱 심해져 12월 16일에 -14.8℃를 찍더니 급기야 12월 20일에 -15.7℃로 한파의 극점을 기록하고 만다. 이후 다음 날에도 -15.0℃를 기록해 한파가 계속 이어졌고 이후 12월 27~30일에 따뜻해졌자만 이 여파로 서울의 월평균 기온은 -3.9℃로 2005년 12월과 같았다. 이후 12월 31일부터 다시 추워져 다음 해에는 역대 가장 강한 신정 한파가 찾아왔다.
4.4. 1923년
전년도까지는 아니지만 1월 한파가 강력했으며 2월도 낮았다. 3월에는 중순 꽃샘추위를 제외하면 그럭저럭 날씨가 풀렸지만 4월에는 매우 낮은 월평균 기온을 기록했다. 5~8월도 전년도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195] 9~10월도 저온인 날들이 많아 월평균 기온이 낮은 편이었으며 11월 저온도 앞서 두 해보다는 약했으나 상당히 강했다. 12월도 전년도보다는 따뜻하지만 월평균 기온은 낮은 편이었다. 서울 연평균기온은 10.698°C이다.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 1~2월 - 한파/대한민국/20세기 문서 참조. 서울 월평균 기온은 1월, 2월 각각 -5.8℃, -3.0℃였으며 일별로 기록적인 한파가 빈번하게 찾아왔다. 특히 2월 하순의 경우 평균기온이 -6.2℃로 역대 최하위이며, 3월을 사흘 앞둔 2월 26일에 최저 기온이 -13.9℃까지 떨어졌다.
- 4월 - 3월 들어 기온이 올라갔지만 4월이 되자 역대급 꽃샘추위가 와서 서울 월평균 기온 9.3℃를 기록했다. 4월 20일에 최저 기온 -1.3℃를 기록했으며, 이는 기록상 가장 늦게 찾아온 영하권의 기온이다. 즉 4월 20일이 영하권의 마지막 커트라인이라는 의미이다.[196]
꽃은 도대체 언제 제대로 피나
- 5월 29일 - 서울 최저 기온 8.3℃.
- 11~12월 - 11월은 전체적으로 유의미한 저온이 없었던 가운데 한 달 내내 약한 저온이 이어졌다. 그러다 11월 29일에 최저 기온 -9.4℃를 기록하였고 11월 30일에는 -10.9℃로 전년도 못지않은 한파로 가을을 마무리했다. 마치 2022년 11월 30일의 20세기 버전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이 여파로 서울의 11월 평균 기온이 4.7℃로 다소 낮게 기록되었다. 이 한파는 겨울의 첫날인 12월 1일에 -13.1℃를 기록하며 시작되었고 여기서부터는 삼한사온의 패턴으로 이어지나 싶었는데 성탄절을 지나 12월 28일부터 갑작스러운 한기로 12월 29일 최저 기온 -16.8℃, 최고 기온 -9.0℃의 강력한 한파가 다시 찾아왔다.
4.5. 1924년
앞서 두 해와 다르게 1월 하순과 2월 하순에 강한 한파가 찾아온 것 빼고는 그럭저럭 따뜻한 편이었지만 3월에는 꽃샘추위가 강해 월평균 기온이 매우 낮았다. 4월은 11.1℃를 기록하여 2020년과 같았는데 현대 기준으로는 저온이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오히려 약간 높다. 5~6월도 평년과 비슷하다가 7~8월에는 상당히 더워서 1919년 여름 수준이었다. 가을철의 저온은 11월이 갈수록 역시나 심각해지는 경향을 보여서 11월도 앞서 세 해와 같이 저온이 매우 강했다. 다만 12월은 작년인 1923년보다 따뜻했다. 서울 연평균기온은 11.070°C이다.- 1~2월 - 한파/대한민국/20세기 문서 참조. 2018년 1월과 비슷한 흐름으로 한파가 찾아온 1월이었으며, 2월은 간혹 고온을 보인 날도 있었지만 저온이 더욱 잦았고 하순에 늦추위가 강력했다.
- 3월 - 단 3일[197]을 제외하고 최저 기온이 영하로 도배되었으며, 3월 2일에는 -9.6℃를 기록했다. 이 이상 저온은 변함없이 계속되어 중순에도 대부분의 날들이 -5℃ 이하를 기록할 정도로 추웠고[198] 3월 13~14일은 최고 기온조차 2℃대에 머물렀다.[199] 물론 하순으로 갈수록 기온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저온이었고 3월 31일에야 잠시 풀렸다. 결국 3월 평균 기온은 1.1℃로 역대 최저 7위이다.
- 4월 일부[200] - 4월 2일에 비가 온 것으로 추정되는 날씨를 보인 뒤 다시 꽃샘추위가 찾아와 4월 4일에 최고 기온 5.4℃, 4월 5일에 최저 기온 -2.8℃까지 떨어졌다. 4월은 월평균 기온 11.1℃를 기록하여 당시 기준으로느 평년보다 약간 높았지만 앞서 서술한 4월 4~5일 외에도 중하순에 며칠 동안 기온이 낮아져 4월 18~19일에 최저 기온 1.3℃를 기록했고 금세 올라갔다가 열흘 정도 지나 다시 기온이 하강하여 4월 28일에 3.0℃를 기록했다. 즉 기온의 변화가 유독 컸던 달이었다.
- 10월 중순~하순 - 19일부터 기온이 급락하면서 10월 20일 최저 기온 -1.5℃였고, 인천의 최저 기온 0.5℃, 전주도 2.2℃까지 떨어졌다. 이후 서울 기즌으로 10월 21일 최저 기온 -1.9℃, 10월 25일 최저 기온 -4.0℃를 기록하는 등 초겨울 추위가 이어졌다. 서울에서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후 10월 중순에 -1℃ 이하의 기온을 기록한 해는 1956년을 제외하면 아예 없으며, 하순에 -4℃ 이하를 기록한 해 역시 1942년을 제외하면 아예 없다. 이와 같은 이상 저온의 영향인지 10월 평균 기온은 12.6℃를 기록하여 평년보다 낮았다.
- 11월[201] - 서울 월평균 기온 3.3℃로 1917년 11월과 같아 역대 최저 공동 4위이다. 비록 시작은 평범했으나 상순부터 매우 경이로운 이상 저온을 보였는데, 11월 9일에 최저 기온이 무려 -8.5℃라는 엄청난 기록을 보여주었다. 이는 서울의 11월 상순 최저 기온 중 압도적으로 가장 낮은 기온이며, 현대보다 춥던 일제강점기의 11월 하순에도 이 정도면 매우 추운 편에 속한다. 심지어 최고 기온도 영상으로 오르지 못해 -0.8℃에 불과했고 일평균 기온도 -4.5℃로 매우 낮았다. 다음 날인 11월 10일에도 최저 기온 -5.2℃를 기록했으며, 11월 상순 평균기온도 겨우 4.9℃에 불과해 하위 5위였다. 11월 17일까지 최저 기온은 -1~-5℃에 머물렀다. 다행히 11월 18~20일 사이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으며 이상 저온이 끝나는 줄 알았으나 이는 반짝 현상이었고 하순이 되자 급격히 낮아져서 11월 24일은 최고 기온이 -1.1℃에 그쳤으며, 11월 27일에는 최저 기온이 -9.0℃까지 떨어졌다.
4.6. 1925년
1~2월은 최저 기온 극값이 -15℃ 정도로 크게 낮지는 않지만 월평균 기온이 살짝 낮았다. 3월도 전년도 수준으로 꽃샘추위가 강력했으며, 4월도 평년보다 낮았다. 여름철에도 잦은 비 때문에 매우 선선했으며 9월은 평년이었으나 10월은 평년보다 약간 낮았고 산발적으로 강한 저온히 발생하였고 11월은 앞선 네 해와 달리 늦가을 한파가 찾아와도 온화한 편이었으며 12월도 초중순까지는 한파가 없고 이상 고온이 심했으나 12월 16일부터 매우 추워졌다.- 1월 일부 - 서울은 1월 상순~중순 초반까지 약간 추운 날씨를 보이며 한파가 이어졌다. 1월 12일에 -15.4℃로 가장 낮았지만 일제강점기의 1월 치고는 비교적 높은 극값이며, 남은 기간은 한파가 거의 없이 따뜻한 날씨를 보여서 월평균 기온은 -4.1℃로 당시의 평년보다 조금 높았다.
- 2월 - 다시 한파가 찾아왔고 그대로 하순까지 누그러진 채로 이어지다가, 하순에 갑자기 초이상 저온이 찾아와서 2월 24일에 -13.3℃, 2월 25일에 -15.2℃[202]를 기록한 이후 한파는 잦아들었다. 이 영향으로 2월 하순 평균기온은 -5.5℃로 1923년, 1969년 다음으로 역대 최저 3위이며, 월평균 기온 역시 -2.9℃로 기록되어 당시 기준으로도 1℃ 이상 낮아서 상당히 추웠다.
- 3월 - 서울 월평균 기온 1.5℃. 2월 하순부터 시작된 꽃샘추위가 상당히 오래 지속되어서 3월 8일에 -10.3℃를 기록했지만 중순부터는 그다지 기록적인 꽃샘추위가 없었다. 그래도 기온상으로는 저온을 보인 날들이 많았다.
- 4월☆ - 4월 6일에 -3.3℃를 기록했고 중순까지도 기온이 낮았다. 서울 월평균 기온은 9.8℃로, 평균값 상으로는 꽤 낮지만 일별 기온으로 보면 이달 일평균 기온의 중앙값은 10.55℃로 크게 낮지 않다.[203]
- 6월~7월 중순 - 기온이 그나마 높았던 몇몇 날을 제외하면 선선했으며, 인천의 7월 평균 기온이 23.2℃로 기록되었다. 그 당시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해서 을축년 대홍수가 일어났고 한강을 비롯한 중남부 지역의 주요 강들이 대부분 범람하는 등 집중호우의 여파였던 셈. 일별로 상세히 보면 6월 15일에는 서울의 최저 기온이 10.6℃까지 내려갔으며, 7월 3일도 14.7℃까지 떨어져서 폭우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선선한 여름이었다. 7월 10일에는 최고 기온이 19.6℃로 20℃ 이상으로 오르지 않았다. 사실 1925년 자체가 기온이 평년보다는 낮은 편이었다. 일제강점기의 기온이 모두 평년보다 낮기는 하나 1925년은 일제강점기인 것을 감안해도 낮은 기온이다.
- 8월 상순~중순 - 이상 저온이었던 6~7월과 달리 8월은 월평균 기온 25℃ 이상을 기록해서 평년 수준이었으나, 특이사항으로는 폭염일수를 기록한 날이 상순~중순에는 하루도 없었고 하순에 모여있다.[204] 뒤집어 말하면 8월 상순~중순에는 이상 저온을 보인 날들이 많았다는 이야기이다.[205] 8월 7일에 최저 기온 17.4℃를 기록했다. 다만 최고 기온은 폭염일수의 기준인 33℃ 이상으로 올라가지는 않아도 대부분 30℃ 이상으로 올랐기 때문에 저온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애매하다. 이 시기에 7월 만큼은 아니지만 집중호우가 내린 기록이 있는데 이 여파로 기온이 낮게 내려간 듯하다.
- 9월 21일 - 최저 기온 8.1℃.
- 12월 중순~하순 - 상순에는 따뜻했지만 12월 16~17일부터 기온이 낮아지기 시작해 12월 18일에 -14.5℃까지 내려갔고, 월말에 강한 한파가 찾아와 12월 30일에 -17.4℃를 기록했다.
4.7. 1926년
1월, 2월은 월초 한파를 제외하면 그다지 춥지 않고 여름철에도 여름다운 평범한 날씨를 보였다. 하지만 3월도 나름대로 살짝 낮았고 4월과 10월의 저온 현상이 역대급으로 강력했다. 11월에 들어서 1920년대의 11월 저온 현상 치고는 다소 높은 월평균 기온을 기록했지만 12월은 월초 한파의 영향으로 상당히 낮았다. 자세히 보면 이 해는 유독 겨울철을 제외한 최저기온이 상당히 낮은 경우가 많았다.[206]- 1월 상순 - 전년도 12월의 한파가 1월에도 계속되어 1월 3일에 -18.6℃를 기록했고 상순까지는 추운 날씨가 이어졌으나 중순부터는 몇 번의 반짝 한파를 제외하면 그맘때 기온이었고 월평균 기온도 평년과 비슷했다.
- 3월 하순 - 3월 상순과 중순은 특별히 저온이 아니었고 고온도 없어서 평범했지만, 하순이 되자 1주일 가량 저온이 찾아왔는데 그중 3월 26일에는 최저 기온 -6.5℃를 기록해서 몹시 추웠다. 물론 낮 최고 기온도 높아봐야 한 자릿수였고, 3월 28일부터 최고 기온이 15℃ 가량으로 오르며 따뜻해졌다.
- 4월 - 서울 월평균 기온 9.1℃. 5년 후인 1931년 4월이 월평균 기온 8.8℃를 기록하기 전까지 4월 평균 기온으로써 최하위를 지키고 있었다. 4월 22일 최저 기온이 0.3℃로 영하권만 겨우 면한 수준이었고[207], 이것이 기록상 가장 늦은 0℃대의 기록이기도 하다. 서울의 4월 하순 평균 기온은 10.0℃로 하위 1위에 기록되었다.[208] 그리고 월평균 최저 기온은 아예 3.2℃로 1931년 4월과 2010년 4월을 제치고 가장 낮은 기록을 가지고 있다. 또한 서울에서 일 최저기온이 10℃ 이상인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그리고 월 최고기온이 20.3°C에 불과해 2011년에 이어 역대 2번째로 낮았다.
- 5월 일부 - 5월 1일 서울 최저기온 5.1°C. 월평균은 16.7°C로 당시 평년보다 높았지만 극단적인 저온도 없고 고온도 없어서 월 최고기온이 25.8°C에 불과해 1908년에 이어 역대 2번째로 낮았다.
- 6월 상순~중순 - 5월 하순부터 기온이 떨어지더니 최저 기온 중심으로 이상 저온을 보여 최저 기온 12℃ 이하의 날씨가 많았고, 특히 6월 15일에는 서울의 최저 기온이 10.3℃까지 기온이 떨어져서 지난 해인 1925년의 같은 날의 기온인 10.6℃를 재경신하며 현재까지도 6월 중순 최저 기온으로 남아있다. 같은 날 강릉의 최저 기온은 아예 9.6℃를 기록하면서 한 자리수를 기록했고, 다음 날에는 더 떨어져서 8.3℃를 찍는 등 강한 저온이 나타났다. 다만 중순 후반부터 기온이 올라 30℃ 이상의 날씨도 있었고 하순은 평범했다. 하지만 이 저온으로 월평균 기온 20.7℃를 기록하여 평년보다는 약간 낮았다.[209]
- 10월 - 서울 월평균 기온 11.5℃로 역대 최저 2위. 월평균 최고 기온은 아예 17.1℃로 역대 최하위를 찍었다.[210] 10월 7일에 최저 기온 2.4℃를 찍으며 시작된 저온은 아이러니하게도 중순에 급변하여 따뜻한 날씨로 전환되었지만, 금세 다시 저온으로 돌아서서 10월 18일 최고 기온 9.7℃, 10월 19일 최저 기온 -0.2℃를 기록했다. 하순에도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비교적 낮은 기온을 유지했다. 현대 11월 최고기온과 비교해도 거의 차이가 안 날 정도의 낮은 최고기온을 기록한 날이 많았다. 하지만 다음 달인 11월은 저온이 없어서 평년보다 높았다.
- 12월 - 서울 월평균 기온 -4.0℃이다. 장기 한파 치고는 다소 높은 월평균 기온이고 21세기에서 가장 낮은 2012년 12월보다도 살짝 높지만, 이는 12월 극초반과 중하순 일부가 따뜻해서 그런 것이며 12월 상순부터 애매하게 춥다가 12월 8일을 기점으로 강한 한파가 찾아오는데, 12월 상순인데도 이틀 연속으로 -16℃ 이하인 비현실적인 기온을 보여주었다. 그중에서도 12월 9일은 -16.9℃까지 떨어져서 한파의 극점을 기록했다. 12월 9일의 최저 기온 기록과 12월 8일의 일평균 기온 -13.4℃ 기록은 기상 관측 사상 12월 상순 최저 기온/일평균 기온에서 2위와 약 1~2℃씩 차이나는 압도적인 최하위 기록이다. 12월 11~12일은 -13.3℃로 여전히 추웠지만 12월 10일과 12월 13~17일은 따뜻한 편이라 12월 상순의 강력 한파는 다소 가시는 듯했으나 역시나 12월 18일부터 다시 추워졌고, 성탄절 이후 한파는 다시 정점에 달하여 12월 25~26일까지 이틀 연속으로 -16℃ 이하를 기록했다.[211] 이 혹한은 12월 끝자락에 풀려 다음 해 1월 상순은 고온을 보였으나... 그 다음의 내용은 밑의 1927년 문단 참조.
4.8. 1927년
1월에 접어들어서 전년도 12월과는 다르게 갑자기 따뜻해져서 고온을 보였다. 하지만 1월 하순부터 눈이 내린 듯한 날씨와 함께 한파가 어김없이 찾아와서 1월 전체는 평년 수준이었다. 2월도 월말까지 한파가 기승을 부려 상당히 낮은 축에 속했고 3월도 조금 낮았다. 4월은 그래도 11.7℃로 상당히 높은 편이었으나... 하지만 5월의 저온 현상이 역대급으로 강력했으며, 덕분에 4월과 5월의 기온 차이는 매우 작았다. 여름철에는 꽤 더웠지만 9~10월 저온 현상도 못지않게 강했다. 11월은 다행히도 따뜻해져서 현대 기준으로도 높은 편이지만 12월은 월말에 엄청난 폭설과 한파가 기승을 부렸다.[212]- 1월 하순[213] - 서울 월평균 기온은 -4.1℃로 평년보다 높았으나, 이는 상순이 초이상 고온을 보였기 때문이며, 1월 18일을 기점으로 강한 한파가 찾아와서 1월 22일에는 서울의 최저 기온이 -17.7℃로 1926~1927년 겨울 최저 기온을 기록했다. 하지만 북한의 평안북도와 자강도 지역이 눈 때문에 -40℃ 이하의 유례없는 한파를 보였다. 자세한 내용은 한파/대한민국/20세기 문서 참조.
- 2월 - 이상 고온과 한파가 번갈아 찾아온 1월과 달리 2월은 연속적인 한파가 이어졌다. 2월 9일에 -14.8℃로 상당히 낮았고, 중순에도 -10℃를 넘나들었으며 2월 28일에도 -13.3℃를 기록하여 3월을 하루 앞둔 시기 치고는 꽤나 지나친 추위였다. 결국 2월 평균 기온은 -2.9℃를 기록했다.
- 5월 - 서울의 5월 평균 기온이 13.8℃[214]19.3℃, 월평균 최저 기온은 8.9℃로 역대 최하위이다. 특이한 게 똑같은 5월 초이상저온인 1945년 5월과 비교하면, 일최저/일평균/일최고가 1927년 5월은 8.9/13.8/19.3°C, 1945년 5월은 9.0/13.6/19.7°C 로 월 평균기온은 1945년 5월이 낮았지만 최저기온과 최고기온은 1927년 5월이 더 낮았다. 월평균 최고 기온은 아예 2010년대~2020년대 초반 고온이 찾아온 5월 평균 기온과 비슷한 수치이고, 월 평균기온은 2023년 4월과 같고, 월평균 최저 기온은 2021년 3월 평균 기온과 비슷하니 말 다한 셈.]로 역대 최저 2위이다. 이해에는 후술할 1945년 5월과 같이 이른 더위가 관측되지 않았다. 더불어 강수일수도 평년보다 많은 축에 속했고 강수량도 5월 시작부터 53mm의 비가 내려 평년보다 많은 축에 속했다. 마지막에 26℃로 급격하게 기온이 올라가는 것을 제외하면 현재 4월과 다름없는 기온을 보였다. 특히 5월 2일에는 최고 기온 12.6℃로 현재 3월 수준의 강한 꽃샘추위가 찾아왔다. 5월 하순부터 날씨가 제대로 풀리며 기온이 급격하게 올라갔으나 5월 31일에는 다시 최고 기온이 20℃에도 못 미치면서 잠시 급락...했지만 이후 6월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높았다.
- 10월 중순 -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기 시작해 10월 13일 최고 기온이 12.1℃에 불과했고, 10월 14~16일 사이에는 최저 기온이 영하에 가까울 정도로 낮았다.[215] 이 기간의 영향인지 서울의 10월 평균 기온이 12.8℃로 평년보다 약간 낮게 기록되었으며, 유난히 저온이 심했던 10월 중순의 평균 기온은 하위 1위인 9.2℃를 기록하였다.
- 12월[216] - 서울 월평균 기온 -2.0℃이다. 평년보다 조금만 낮은 기온이니 크게 특별해 보이지 않을 것 같으나 이는 중순이 따뜻해서 그런 것이며, 서울은 하순에 19.5cm에 달하는 대폭설이 내린 이후 기온이 급락하여 12월 29일에는 최저 기온 -20.7℃, 특히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에는 -23.1℃로 1907년 기상 관측 사상 서울 역대 최저 기온을 기록하였다.[217][218]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은 한파/대한민국/20세기 문서 참조.
4.9. 1928년
1월 상순에는 1920년 1월 수준의 강력한 한파가 기승을 부렸다. 이후 2월까지 따뜻해졌다가 한파가 찾아오기를 반복했다. 3~4월은 그럭저럭 따뜻한 봄 날씨를 보였고(4월은 평년보다 높았다) 5월도 평년과 비슷하거나 약간 높았다.[219] 9월 중순까지 평범하거나 더운 늦여름, 초가을 날씨를 보이다가 9월 하순부터 급격하게 추워져 10월에는 상당히 낮았다. 11월도 낮은 편이었으나 1920년대 치고는 저온 현상이 강하지 않았고 12월도 반짝 한파를 제외하면 지난 2년과 다르게 크게 춥지는 않았다.- 1월[220][221] - 지난 해 12월 31일에 서울 역대 최저 기온 -23.1℃를 기록한 이후, 당연하게도 1월 상순에도 한파가 계속 이어져 새해 첫날부터 -20.0℃를 기록했고 특히 1월 5~7일에는 다시 기온이 급락해 1월 5일에는 -22.2℃로 서울 역대 최저 기온 4위의 기록을 세웠다. 또한 1월 5~7일은 기상 관측 사상 1915년 1월 12~14일과 함께 사흘 연속으로 -21℃ 이하의 초강력 한파가 이어진 유이한 사례이다.[222][223] 그러다가 갑자기 1월 9일에 최저 기온이 16℃ 가까이 오르며 날씨가 급격히 따뜻해졌으나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었고 1월 12~13일에도 -17℃ 이하의 강한 한파가 기승을 부렸다. 1월 15일부터 다시 기온이 올라 남은 1월은 삼한사온의 날씨를 보이며 마무리되었다. 서울의 1월 상순 평균 기온은 -9.3℃로 10년 후인 1938년과 함께 하위 4위에 기록되었다. 1월 9일과 1월 10일이 높지만 않았다면 후술할 1986년 1월 상순(-9.6℃)과 비슷하거나 더욱 낮았을 듯하다.
- 9월 하순~10월 - 서울 기준으로 9월 24일부터 최저 기온이 갑자기 10℃ 이하로 떨어졌고, 9월 26일에는 최저 기온이 3.2℃까지 떨어졌다. 이 3.2℃는 현재까지도 서울의 9월 최저 기온 중 가장 낮은 온도로 남아있다. 9월 30일에도 최저 기온이 4.4℃까지 떨어졌다. 최고 기온 역시 9월 25일에 15.6℃, 9월 28일에도 17.0℃까지 떨어졌다. 2010년 9월 하순보다도 더 심하다. 그러나 9월 평균 기온은 20.3℃로 일제강점기 치고는 오히려 평년 수준인데, 이 이상 저온 발생 전까지만 해도 27~29℃의 더운 날씨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대관령은 -4~-5℃ 내외까지 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여파로 10월 평균 기온은 12.3℃였다. 10월은 그리 기록적이지는 않지만 저온을 보인 날들이 있었는데, 10월 18일에 -0.1℃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정작 하순에는 초이상 고온으로 10월 26일 최고 기온이 25.7℃까지 올라갔는데, 불과 며칠 만에 완전히 반전되어 10월 31일에는 -1.5℃의 초이상 저온이 다시 찾아오는 등 기온 변동이 매우 활발했다.
- 11월 - 앞서 설명한대로 10월은 기온 변동 폭이 컸지만, 최종적으로 마지막 날에 영하의 기온을 기록하며 시작된 추위가 11월로 넘어오면서 조금 누그러진 채로 지속되었다. 중순에는 이른 추위가 찾아와서 11월 17일에 -7.7℃로 한겨울의 날씨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하순에는 1920년대의 다른 해들과 달리 -10℃에 가까운 최저 기온을 기록하지 않았고 따뜻하거나 평년과 비슷한 날씨를 보여서 11월 평균 기온은 5.2℃로 평년보다 조금 낮은 정도에 그쳤다.
- 12월 - 12월 3일부터 기온이 크게 내려가서 다음 날에 -9.6℃로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었다. 그후로 평범한 기온을 유지하는 듯하다가 12월 19일에 -16.3℃를 기록하여 엄청나게 추웠다. 대신 하순에는 기온이 많이 올라서 당시 치고 평범한 겨울로 마무리되었다.
4.10. 1929년
1월과 2월은 한파가 주기적으로 찾아오기를 반복해 조금 낮은 편이었다. 봄철은 평범했지만 여름철에는 상당히 강한 무더위가 있었으나 8월 하순부터 급락해서 9월은 역대급으로 낮았다. 이 영향으로 가을철 전체가 기온이 낮았지만 12월은 이상 고온이 심해서 현대에도 고온으로 평가받는 2019년 12월보다도 높았다.- 1월 - 그리 심한 추위는 없었지만 1월 첫째 주에 한파가 찾아와서 1월 7일에 -17.5℃로 가장 낮았다. 이상 고온으로 따뜻했던 날도 거의 없었고 한파가 찾아온 날도 많지 않아서 월평균 기온은 당시 기준으로 평년보다 조금 낮았다.
- 2월 - 서울 월평균 기온 -2.8℃로 일제강점기임을 감안하면 그렇게까지 낮지는 않지만, 일별로 확대하면 꽤나 강력한 한파가 잦아서 2월 2일 -17.1℃, 2월 14일 -16.3℃를 기록하는 등 시대를 감안해서라도 추웠다.
- 4월 - 월평균 기온은 10.4℃로 평년보다 조금만 낮아서 저온이라고 보기에는 애매하지만 4월 13일 최고 기온 9.1℃, 4월 14일 최저 기온 0.0℃, 4월 29일 최저 기온 2.4℃ 등 산발적으로 강한 저온이 찾아왔다.
- 8월 하순~9월 - 서울 기준으로 8월 초중순까지는 2012년 8월의 최고 기온 극값과 동일한 36.7℃의 폭염이 8월 5일과 8월 12일에 관측되었으나 8월 21일부터 갑자기 기온이 급하락하여 30~32℃ 이상이었던 최고 기온이 내려가고 최저 기온도 16~18℃로 내려가며 저온 현상을 보였다.[224] 8월 30일에는 최고 기온조차 25.1℃로 내려가면서 현재 9월 중하순에서나 볼 법한 날씨가 찾아왔다. 9월은 최고 기온은 평년 수준이었으나 최저 기온이 빨리 떨어지면서 9월 상순에도 최저 기온이 16℃ 이하였으며, 9월 6일에는 최저 기온이 12.8℃까지 떨어졌다. 또한 중순과 하순 일부에는 최저 기온이 한 자릿수까지 떨어진 날도 있었다.[225] 결국 18.8℃로 9월 평균 기온 역대 최저 2위를 기록하였다. 9월 평균 기온 역대 최하위인 1912년 9월까지는 아니지만 최저 기온이 빨리 떨어지면서 나타난 저온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향으로 가을철 전체가 평년보다는 낮았으나 12월에는 2019년 12월의 월평균 기온보다도 높은 이상 고온 현상이 기승을 부렸다.[226]
- 12월 하순 - 중순에 심한 이상 고온이 찾아왔으나[227] 12월 21일부터 따뜻한 날씨가 잠시 중단되고 한파가 찾아와 12월 25일에 -16.8℃를 기록했다. 다만 한파의 기간이 너무 짧았고 성탄절 이후로 다시 고온이 찾아와서 한강은 이때 결빙하지 않고 이듬해 1월로 미뤄졌다.
5. 1930년대
1913년을 제외한 일제강점기의 모든 해가 폭염을 보이기는 했으나, 이 연대부터 폭염이 더욱 심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현대 기준으로도 1936년을 제외하면 매우 더운 여름이 많았다. 겨울철 한파의 경우 최저 기온은 1920년대보다 비교적 높았으나 월평균 기온은 여전히 매우 낮았고 1920년대와 달리 이상 고온을 보인 겨울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12월과 1월의 기온 편차가 매우 컸다. 12월은 고온이 잦았으나 1월은 1932년 1월만이 현대 기준으로 고온에 속하며 나머지 해들은 모두 1월이 추웠다.[228] 1910년대가 매우 추웠으나 가끔 고온이 있었고 1920년대는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계속 추웠다면, 1930년대는 12월이 1935년, 1937년, 1938년을 제외하면 따뜻했으나 1월이 매우 추워지는 특징을 보였다. 한편 기상 관측 사상 엘니뇨가 없었던 유일한 연대이기도 하다.5.1. 1930년
따뜻했던 전년도 12월에 비해 1월은 조금 추웠으나 그 뒤로 기온이 많이 올라 2~3월은 현대 기준으로도 높았으며 4월의 경우도 현대 기준으로는 평년 수준이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크게 높았다. 이 여파로 5월을 제외하고 여름까지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하지만 9월과 11월의 저온이 강했으며, 12월은 오히려 당시 기준으로는 높지만 월평균 기온이 영상권은 아니었다. 서울 연평균기온 11.793°C로 일제시대에서는 상당한 고온이었다.- 1월 - 12월 한파가 월말에 자취를 감추었으나 1월에는 다시 조금씩 추워져서 영하로 내려갔고, 1월 4일부터 강한 한파가 찾아왔다. 1월 6일에 -17.4℃로 가장 낮았으나 일제강점기에서는 예년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추위라서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상순과 중순까지 -10℃를 밑도는 날이 많았다. 하순에는 한파가 다소 약해졌지만 고온이라고 할 만한 날씨는 거의 없었다.. 1월 평균 기온은 -4.5℃로 현대 기준으로는 매우 춥지만 당시의 평년과 비슷했다. 이후 2월은 0.9℃로 8년 만에 영상의 월평균 기온을 기록했다.
- 5월 상순, 하순 - 5월 5일 최고 기온 13.5℃, 5월 23일 최저 기온 7.6℃. 3~4월은 이상 고온이 매우 심했고 5월도 16.7℃로 당시 기준으로는 평년보다 조금 높지만 일별로는 가끔 저온을 보인 날들이 있었다.
- 11월 - 서울 월평균 기온 3.1℃로 역대 최저 2위이다. 상순에는 최저 기온이 극단적으로 낮지 않았지만 최고 기온이 높게 오르지 못했고, 그중 11월 3일에는 최고 기온이 4.9℃에 불과할 정도로 낮았다. 중순과 하순에도 평년보다 상당히 낮은 기온을 보이며 이상 저온이 이어졌는데, -10℃보다 낮은 극값은 없었으나 11월 12일에 서울이 -8.5℃까지 떨어졌고, 이는 41년 만에 이른 추위가 온 것이다.[229] 또한 주목할 점은 11월 11일부터 11월 18일까지 연속으로 최저 기온이 영하를 기록했다. 이후 11월 19일부터 기온이 조금 올랐으나 11월 22일부터 다시 급락해 월말까지 대부분의 날이 -3~-7℃의 기온이 연속으로 기록되었다. 1912년 11월이 비록 압도적인 차이로 11월 평균 기온 역대 최하위에 속하기는 하지만 기온 분포가 크게 다르지 않고 비슷하게 강한 저온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역대 최저 2위를 기록했다.
5.2. 1931년
1~3월은 따뜻하다가 갑자기 초강력 한파를 보이는 날씨가 이어지며 역대 기록들을 경신하였고 4월은 매우 낮아 2021년 3월보다 월평균 기온이 낮았으나 5~6월은 평범했다. 7월에 다시 저온이 심해졌지만 8월에는 평범했고 오히려 반짝 폭염도 있었다. 하반기에는 산발적으로 강한 저온과 늦더위가 번갈아 일어났으며, 10월 평균 기온이 낮았으나 9월, 11월은 평년보다 조금 높았다. 12월도 중순이 추웠지만 이것도 반짝 한파였고 다음 해 1월에는 이상 고온의 날씨를 보였다. 여담으로 서울의 연교차가 58.5℃로 가장 컸던 해이다.- 1월 - 월평균 기온을 비교했을 때 당시 치고 평년보다 조금 높은 -3.9℃의 월평균 기온을 서울에서 기록했으나... 이는 상순이 따뜻하고 중순 중반~하순까지 비교적 평범해서 그런 것이며, 1월 9~13일 한파가 역대급으로 강했다. 서울은 1월 9일부터 전날보다 최저 기온이 13℃나 떨어지는 기습 한파가 시작되었고 1월 10일에는 일평균 기온 -18.9℃로 역대 최저 2위, 1월 11일에는 최저 기온 -22.5℃를 기록하여 서울의 1월 역대 최저 기온 1위, 연 전체로 확대해도 기상 관측 사상 역대 최저 기온 2위를 기록했다. 인천에서도 최저 기온 -21.0℃를 기록, 이는 1915년을 넘는 역대 최저 1위의 기온이다. 그리고 한파의 잔여물인지는 몰라도 나머지 1월도 평년보다 살짝 낮은 날씨를 보였다. 1월 상순이 고온이 아니었을 경우에는 월평균 기온 -5~-6℃ 사이를 기록했을 법하다. 자세한 내용은 한파/대한민국/20세기 문서 참조.
- 2월 - 2월에 들어서 한파가 완전히 풀리는 듯했으나... 역시나 2월 6일부터 급락해서 영하 두 자릿수의 날씨가 이어졌고, 특히 2월 8일에 서울에서 -17.8℃를 기록하여 2월 치고 매우 추운 한파를 보였다. 그 다음부터는 1월과 비슷하게 다소 추운 날씨를 보이며 끝났다.
- 4월 - 서울의 4월 평균 기온이 8.8℃, 인천은 8.0℃[230]로 둘 다 역대 최하위이며 당시 기준으로도 약 2℃ 낮았다. 특히 4월 6일에는 눈이 내리면서 최고 기온이 3.7℃에 불과할 정도였다.[231] 4월 평균 기온이 10℃ 이하인 달답게 중순이 다 지나가는 4월 18일에 최저 기온 0.5℃를 기록했다. 결국 이틀 뒤인 4월 20일에야 기상학적인 봄이 시작되었을 정도. 물론 바로 급상승했다지만 초중순의 꽃샘추위를 커버하기란 도저히 힘든 수준. 초중순에 심한 저온이 나타나고 하순에 평년 수준의 기온을 기록한 점에서는 1996년과 비슷하다. 이마저 하순에 1926년 수준으로 쌀쌀했다면 8.1℃정도가 나올 수도 있다.
- 7월 - 서울은 7월 한정으로 더위가 거의 전멸했다. 7월 전체를 통틀어 30℃를 넘긴 날이 단 하루뿐이었고, 최저 기온도 중순에 5월 수준으로 떨어졌다.[232] 서울의 7월 중순 평균 기온은 21.5℃로 기록되어 하위 1위이다. 여름이 덥기로 악명높은 대구에서도 7월에 30℃를 넘긴 날이 단 7일[233]에 불과했으며, 7월 12일에는 최고 기온이 19.7℃로 떨어졌다. 서울의 7월 평균 기온은 22.4℃, 대구는 22.2℃이며, 대구의 경우 월말에 이상 고온을 기록한 6월의 22.2℃와 동일하다. 또한 1941년 7월과 함께 역대 7월 평균 기온 최하위이다.[234] 그 이후 8월도 8월 8~9일, 8월 13~16일의 반짝 더위를 제외하면 현재의 9월 상순과 비슷할 정도로 선선했으며 북한 평양에서는 비공식적으로 1931년 7월 평균 기온 21.7℃를 기록하여 역대 최하위이다.[235]
5.3. 1932년
1월은 고온이 강했으나 2월부터 고온의 힘이 약해지고 3월은 다소 낮았으나 5월은 서울에서 가장 빠른 폭염일수를 기록하여[237] 월평균 기온 17.0℃로 당시 치고는 높았다.[238] 6월은 약간 높았으나 여름철이 많이 더웠고 9월~10월은 상당히 낮았지만 12월에는 현대에 비해서도 약간 높았다.울산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 2월 중순 - 상순에는 한파가 없었지만 2월 16일부터 기습 한파가 와서 2월 17일에 -14.1℃로 2월 중순 치고 상당히 추운 날씨를 보여주었다. 위에서 잠깐 서술했듯이 이해 1월은 이상 고온이 심해서 최저 기온 극값이 -12.9℃[239]에 불과했기에 1월보다 2월이 더 낮았다. 또한 흥미로운 사실은 1931~1932년 겨울은 1월에 고온이 집중적이어서 최저 기온이 -13℃ 이하로도 내려가지 못했지만 12월과 2월, 그것도 각각 하순, 상순도 아닌 중순에 -14℃ 이하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현대에는 2월 중순에 -11℃ 이하로 내려가기만 해도 굉장히 추운 편에 속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랍다.
- 3월 - 서울 월평균 기온 2.8℃. 3월 중순이 되자 시기에 걸맞지 않는 이상 저온이 찾아왔는데, 서울의 최저 기온이 3월 14~16일까지 사흘 연속으로 -6.2℃를 기록하더니 3월 17일에는 -7.8℃까지 떨어졌다. 3월 16일에는 최고 기온도 1.0℃에 그쳤다. 그 뒤로 며칠간 저온의 강도가 약해졌으나 4월을 앞두고 다시 심화되어 3월 31일에도 -3.6℃까지 떨어졌다.
- 11월 7~8일[240][241] - 11월 2일부터 기온이 차츰 올라 11월 5일에 22.5℃를 기록했으나, 갑자기 들이닥친 한기가 기온을 고속으로 하락시키는 바람에 11월 7일에는 최고 기온 0.0℃, 최저 기온 -6.5℃, 일평균 기온 -3.3℃가 기록되었다.[242] 다시 말해 단 이틀만에 기온이 29℃나 하락한 셈. 다음 날 낮부터 다시 온기가 고속으로 복귀했고, 한동안 이 이하로 기온이 떨어지지 않다가[243] 장장 35일이 지난 12월 12일이 되어서야 11월 7일보다 낮은 기온을 기록했을 정도였다.
5.4. 1933년
그다지 춥지 않았던 전년도 12월과 달리 1~3월에는 매우 낮았으며 4월까지 계속 낮았다.[244] 7월 하순에 잠시 더웠던 것을 빼면 여름도 평범했고 8월은 서울에서 폭염을 보이지 않았다. 가을철도 다소 낮았으나 12월은 높은 편이며 현대의 평년과 비슷하지만 월말에 한파가 발생하여 다음 해 1월로 이어진다.서울의 기상 관측소를 (기존의 낙원동에서) 현재의 종로구 송월동으로 옮긴 해이다.
- 1~2월 - 서울 월평균 기온이 각각 -6.4℃, -3.7℃로 매우 낮았으며, 최저 기온 극값은 1월이 -18.4℃[245], 2월이 -14.2℃[246]였다. 한파/대한민국/20세기 문서 참조.
- 3월 - 3월 5~7일에 최고 기온 -3.7~-4.0℃, 최저 기온 -11.2~-12.8℃까지 떨어졌다. 3월 14일의 -5.5℃를 끝으로 강력한 꽃샘추위는 끝났다. 물론 꽃샘추위가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라서 4월 1일까지는 약한 꽃샘추위가 이어졌다. 3월 평균 기온은 0.6℃로 1915년 3월과 같다.
5.5. 1934년
1월이 매우 추웠으며 이 여파로 4월까지 낮았다. 5월과 6월은 그럭저럭 높았지만 7월과 8월은 당시 기준으로도 1℃ 정도 낮았고 가을철의 저온이 매우 강했으며, 12월은 한강 결빙이 관측 사상 가장 빨랐으나 중순 이후로는 고온을 보여 현대보다도 높았다. 여름철이 조금 더운 것을 빼면 1936년과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 물론 5~8월이 조금 더 더웠고 12월도 이상 고온이라[247] 2~3월도 1936년보다는 덜했지만 가을철 편차가 1936년보다 낮고 저온이 심해서 결국 서울 연평균 기온이 10.200℃로 1936년보다는 높았지만 1912년, 1956년과 공동으로 네 번째로 낮았다.- 1월 - 한파/대한민국/20세기 문서 참조. 서울 월평균 기온 -8.3℃로 역대 최저 4위를 기록했다. -19℃ 이하의 최저 기온은 없었지만 1월 한 달 동안 최저 기온 -10℃ 이상을 기록한 날이 단 3일[248]로 1936년 1월과 공동으로 가장 적었다. 한파가 가장 강했던 1월 12일에는 서울 최저 기온이 -18.7℃를 기록했고, 1월 26일에도 -18.0℃를 기록했다. 하지만 곧바로 풀려서 2월에는 한파가 약했다.
- 4월~5월 2일 - 서울 월평균 기온 9.1℃로 매우 낮았으며, 최고기온의 중앙값은 14.5℃로 더욱 처참하다. 4월 14일 최저 기온 -0.6℃, 4월 15일 최저 기온 -0.2℃. 5월 1일 최고 기온 11.6℃. 5월 2일 최저기온 4.2℃
- 8월 - 상순에는 기록적인 저온이 없는 대신 최고 기온이 폭염일수 기준으로 올라간 날이 하루에 불과했고[249], 8월 14일에는 최저 기온 17.4℃, 최고 기온 21.1℃를 기록했다. 하순에도 몇몇 날에 기온이 내려가서 8월 27일 최저 기온이 16.0℃였다. 이렇듯 상순부터 하순까지 이상 저온이 골고루 찾아왔는데, 이상 저온이 끊임없이 길게 이어진 것이 아니라 하루~이틀 지속되다가 곧바로 풀리고 며칠 만에 다시 찾아오는 형식으로 이어진 바람에 월평균 기온은 24.1℃로 크게 낮지는 않았다. 그래도 당시의 평년보다 1.3℃ 낮으며 현대의 평년보다는 2℃나 낮은 수치이다.
- 10월 - 서울에서 기록상 가장 빠르게 영하를 기록했다. 월평균 기온도 11.7℃로 매우 낮아서 하위 4위이다. 10월 17일 서울의 최저 기온이 -0.7℃[250]1.3℃였다. 이때의 날씨가 장안의 화제로 오르내릴 만큼 꽤나 추웠는데, 이것보다 2℃나 더 낮았다는 것.]를 기록. 이는 10월 중 사상 최악으로 추웠던 1912년 10월보다도 며칠이나 더 빠르게 기록된 것이다. 같은 날 전주도 2.1℃, 인천도 2.5℃까지 떨어지는 등
- 11월 하순 - 11월 28일 최저 기온 -9.1℃, 11월 29일 최저 기온 -9.2℃. 1924년 이후 10년 만에 서울에서 11월에 -9℃ 이하로 내려갔다. 게다가 12월은 최저 기온 극값이 -8.7℃[251]에 불과할 정도로 이상 고온이어서 11월의 최저 기온 극값이 12월보다 더 낮은 기현상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12월 4일에 한강이 결빙한 것도, 12월 때문이 아니라 11월 하순의 이른 추위가 원인일지도 모른다.
5.6. 1935년
이해는 12월의 장기 한파와 9월 늦더위와 저온, 그 외 하반기 일부의 저온을 빼면 별다른 특징이 없는 평범한 해이다. 여름철도 평범하게 더웠고 나머지 달도 5월과 12월을 제외하면 월평균 기온이 그리 낮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2년 후인 1937년과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 2월 상순 - 2월 5~8일에 한파가 찾아와 2월 7일 최저 기온이 -14.9℃를 기록하였다. 상순~중순 나머지 날들도 어느 정도 겨울 날씨였지만 하순에 강한 이상 고온이 발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년도 12월과 이해 1월 최저 기온 극값이 일제강점기 치고 매우 높았기 때문에[252] 2월 7일이 1934~1935년 겨울 시즌 중에 가장 낮은 기온을 기록한 날이 되었다.[253]
- 9월 중순 - 상순에는 늦더위가 매우 심했고 9월 8일 아침에 최저 기온 25℃를 넘는 열대야(!)가 기록되었으며 낮에도 33.0℃를 기록하여 폭염일수와 더불어 9월 8일 역대 최고 1위의 기온을 기록했다. 하지만 늦더위는 단 며칠이 지나고 완전히 깨져서 9월 14일 아침 최저 기온 6.1℃, 중순 후반(9월 17~20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9월 중순 역대 최저 기온 1위를 찍었다. 저온은 9월 16일까지 이어지다 하순에 기온이 올라 잠시 평년보다 높았으나 하순 중반에 다시 평년~조금 낮은 수준으로 기온이 내려갔다. 그러나 이 저온의 여파로 1935년은 9월 최저 기온 극값이 중순에 있는 해가 되었다. 상순 늦더위에도 불구하고 9월 평균 기온은 20.3℃로 평년과 비슷했으나 현대 치고는 다소 낮다.
- 11월 중순 - 한기 유입으로 11월 17일 최저 기온이 -6.0℃를 기록했다. 하지만 상순과 하순이 당시 평년보다 조금 높았기 때문에 11월 평균 기온은 6.6℃로 다소 높았다. 물론 현대보다는 다소 낮다. 바로 아래의 12월 혹한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 12월 중순~하순 - 바로 위에서 서술한대로 11월 중순에 꽤 강한 추위가 지나간 후 11월 하순~12월 상순은 따뜻했고 평년보다 다소 높았지만 12월 9일부터 다음 해 4월까지 이어지는 혹한의 서막을 알리기 시작하여 급속도로 추워지게 되었다. 서울은 12월 9일부터 12월 16일까지 일주일 이상 영하 두 자릿수 이하, 낮 기온 영하를 기록하였고 계속되는 한기 유입으로 생성된 해기차 구름으로 복사냉각이 약해 몇몇 날은 평범한 최저 기온을 기록했지만[254] 그 이외에는 전부 -10℃ 이하였다. 이후 12월 하순이 되자 갑자기 최저 기온이 크게 올라갔는데, 이는 일시적 현상이었고 12월 30일에 -16.9℃를 기록하여 12월 중 가장 강한 한파가 찾아오게 된다.[255] 12월 평균 기온은 상순이 고온이고 복사냉각으로 최저 기온 위주로만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3.9℃로 2005년 12월과 같았다. 한편 하순 막바지의 강력 한파는 어김없이 다음 해 1월로 넘어가면서 더욱 강력해졌으며, 매우 길게 이어지는 장기 한파로 이어진다.
5.7. 1936년
서울의 연평균 기온 9.777℃로 1947년에 이어 역대 최저 2위인 해이다. 특히 이해는 상반기에서 8월까지의 기간이 기상 관측 사상 역대급으로 추웠으나[256] 가을철 편차는 여전히 낮기는 했지만 다소 평범해서 1917년에 비해 아주 심하지는 않았고 12월은 상대적 고온이어서 1917년과 같은 연평균 기온이 나왔다. 상반기가 앞서 서술한 1934년의 상위호환이며 1936년과 같은 기온 경향은 50년 후인 1986년에서도 비슷하게 흘러간다. 상반기 한파와 저온의 영향으로 벚꽃이 4월 26일에 개화하여 역대 가장 늦었다.[257]- 1월 - 한파가 매우 강해서 1월 평균 기온 -8.8℃로 역대 최저 3위. 한파/대한민국/20세기 문서 참조. 특이한 점은, 평균 기온상으로는 역대 최저 3위이지만 -10℃ 이하인 날이 월 전체에서 28일에 달해, 1월 평균 기온 최저 1, 2위인 1963년과 1917년보다 더 많았고 1934년과 공동 최다 기록이다. 당연하게도 장기 한파가 매우 심했던 1900년[258], 1922년, 1945년, 1981년, 2011년 등보다도 많은 역대 1위이다. 특히 한파가 절정에 달한 1월 17일에는 서울의 최저기온이 -20.1℃까지 떨어졌고, 최고기온도 -12.0℃에 불과했으며, 전주와 대구의 최저기온도 각각 -16.5℃, -14.6℃로 강한 한파가 나타났다. 심지어 한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부산에서도 -12.4℃까지 떨어지며 한파일수가 기록되었다. 다음날인 18일에도 서울 기준 최저기온도 -19.7℃까지 떨어지는 등 전국적으로 장기 한파가 이어졌다.
- 2월 - 한파/대한민국/20세기 문서 참조. 서울 2월 평균 기온 -4.4℃로 1968년과 공동으로 역대 최저 3위. 서울 기준 2월 최저극값은 -17.5℃[259]였으며, 한파일수를 기록한 날도 6일[260]이나 관측되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하순에도 늦추위가 나타나면서 2월 21일 최저 기온 -11.6℃, 마지막 날인 2월 29일에도 -10.8℃까지 떨어지며 월말까지 추위가 풀리지 않았다. 이후 3월 극초반에는 더 강한 한기가 몰려오면서 더욱 강해진 꽃샘추위가 찾아오게 된다.
- 3월 - 서울의 월평균 기온이 -0.3℃[261]-0.2℃이다. 기상자료개방포털에는 음수를 오사육입해서 -0.2℃로 기록되어 있다.]로 유일하게 3월에 영하의 월평균 기온을 기록했으며 역대 최하위이다. 3월 상순은 1915년처럼 -14℃ 이하를 기록하지는 않았으나 전년도 12월에 시작된 추위가 1~2월을 장악한 이후로 훨씬 길게 이어져서 3월 첫날부터 -12.8℃, 다음 날은 오히려 더 낮아서 -13.7℃를 기록한다. 서울은 3월 4일까지 영하 두 자릿수의 최저 기온을 기록했고 3월 11일까지 단 하루도 최저 기온이 -5℃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또한 3월 상순에는 낮 기온마저 거의 오르지 못해 겨우 영상권을 기록했으며, 사실상 1월이라고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꽃샘추위를 넘어선 매우 강한 한파를 보였다. 이 영향으로 서울의 3월 상순 평균 기온은 -4.8℃로 현재까지도 하위 1위이다. 3월 중순에는 다행히 날씨가 따뜻해졌으나 3월 13일의 0.4℃를 제외하면 여전히 최저 기온이 영하권이었고 이러한 기온 경향이 이어져서 3월 28일에 최고 기온 10.5℃[262]를 기록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최고 기온이 10℃ 이상을 기록한 날이 없었다.[263]
- 4월 - 3월 하순에 기온이 꽤 올라가서 4월은 평년 수준을 기록하나 싶었더니 4월 1일이 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기온이 내려가서 최저 기온 -2.0℃를 기록했다. 이후에도 4월 3일에는 최저 기온 -0.5℃, 최고 기온 4.5℃로 1931년의 악몽을 생각나게 하는 꽃샘추위가 있었다가 다시 급상승해서 4월 7일에는 19.4℃를 기록하여 평년보다 높았다. 하지만 4월 9일부터 다시 한기가 찾아와 4월 9일 낮 최고 기온이 9.0℃로 한 자릿수를 기록했으며, 4월 10일까지도 -0.1℃로 최저 기온이 영하권을 기록했다. 4월 10일을 끝으로 봄철 영하권의 최저 기온은 없었지만 여전히 4월 중순까지 높아도 5℃대에 그치는 매우 낮은 최저 기온을 기록했으며 4월 21일부터 최저 기온이 급격히 올라 4월 22일에는 10.1℃의 최저 기온을 기록했으나, 이는 일시적 현상으로 4월 하순이 될 때까지 최저 기온이 두 자릿수를 기록하지는 못했다.[264] 그리고 4월 24일 이후부터 4월이 끝날 때까지 최고 기온도 20℃ 이하를 기록했다. 이해 4월의 특징은 중간에 고온에 해당되는 날이 몇몇 있었으나[265] 전부 일시적인 현상에 그쳤고 다른 날들은 최저 기온과 최고 기온이 모두 낮은 경향을 보였다. 그래서 이 영향으로 1926년, 1934년과 공동으로 4월 평균 기온이 9.1℃를 기록하여 역대 최저 2위에 속하는 값을 세웠다. 기상학적인 봄 역시 4월 21일에 시작되어 가장 늦게 시작되었고, 벚꽃은 4월 26일에 개화하였다.[266]
- 5월 - 1~4월처럼 역대 기록을 경신할 정도의 저온은 아니었으나, 이달도 저온의 여파가 이어져서 서울 월평균 기온 15.8℃로 다음 해인 1937년 5월과 함께 공동으로 최저 13위에 기록되었다. 그러나 당시 기준으로는 조금만 낮은 것이다. 이해 1~4월에 비하면 정말 양반이다. 5월 상순와 중순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은 경향을 보였다.[267] 하지만 5월 하순은 여름을 앞둔 시기 치고는 저온이 강했는데, 5월 19일부터 5월 28일까지 최고 기온 25℃ 이하, 최저 기온 12℃ 이하의 4월 하순~5월 상순에 해당하는 기온을 보였다. 특히 5월 25일 최고 기온이 16.8℃를 기록하였다. 이와 같은 저온 현상은 5월 29일부터 최고 기온이 26℃ 이상으로 올라가 평년 수준을 보이며 해소되었다. 하지만 최저 기온은 여전히 오르지 않아서 5월 하순까지 12℃를 겨우 넘기는 수준에 그쳤다.
- 6월 - 5월 하순에 기온이 올라가나 싶었더니 그대로 다시 하강하여 6월 3일 최고 기온이 21.4℃에 그쳤으며 6월 4일 최저 기온은 9.9℃로 한 자릿수를 기록하였다. 이후 최고 기온이 좀 올랐으나 6월 8일에는 최고 기온 21.3℃로 닷새 전보다도 0.1℃ 낮았다. 그리고 6월 중순은 그맘때 기온이었으나 6월 하순에는 저온을 보여 6월 28일 최고 기온도 21.4℃에 불과했다. 최저 기온도 20℃ 이상인 날이 이틀[268] 뿐이었다. 결국 6월 평균 기온도 20.7℃를 기록하여 최저 12위에 속했다. 다만 당시 기준으로는 심한 저온은 아니다.
- 7월 - 7월 상순까지도 최고 기온 25℃, 최저 기온 20℃를 넘지 못하는 날이 종종 있었으나[269] 이후 기온이 점차 올라서 7월 중순은 그맘때 수준이었고 7월 21~23일에는 약간의 더위가 있어서 서울 최고 기온이 34.3℃[270]를 기록했으나 곧바로 기온이 내려가서 최저 기온은 그럭저럭 비슷했으나 7월 하순까지도 최고 기온이 30℃조차 넘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특히 1년 중 가장 더울 시기인 7월 31일도 최고 기온이 26.6℃에 그치는 저온을 보여주었다. 7월 평균 기온도 23.6℃로 최저 12위에 속했다.
- 8월 - 서울의 8월 평균 기온 22.7℃로 역대 최저 1위이다. 1년 중 가장 덥다는 8월 상순에도 33℃를 넘는 폭염은 커녕 30℃조차도 넘지 않는 날씨가 계속되었으며 2020년과 다르게 최저 기온도 낮아서 8월 4일부터 8월 6일까지 최저 기온이 20℃조차 넘지 못했고, 높은 날도 22℃대에 그쳤다.[271] 또한 8월 중순부터는 최고 기온 25℃조차 넘기지 못한 날이 보이기 시작하고 최저 기온 20℃를 넘은 날이 단 4일에 불과했으며[272] 8월 17일에 잠시 30.7℃를 기록하기는 했지만 문제는 이것이 8월의 최고 기온이라는 점. 그리고 8월 20일에는 최고 기온이 24.0℃에 그쳤다. 결국 서울의 8월 중순 평균 기온이 22.5℃로 하위 1위이다. 또한 강릉시는 8월 17일에 최저 기온이 16.1℃까지 떨어졌고, 대구에서도 8월 14일 최저 기온 16.6℃를 기록하는 등 선선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하순에도 이와 비슷한 날씨가 이어졌으며, 이상 저온에 알맞게 8월 27일 서울의 최고 기온 22.0℃, 8월 28일 최저 기온 16.8℃를 기록했다. 한편 이 시기에 3693호 태풍이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8월 하순에는 기온이 조금 오르기는 했지만 여전히 27℃ 정도에 그쳤으며, 중부 지방은 저온이었으나 대구는 강한 폭염을 보였던 1913년과는 다르게 이해 8월은 남부 지방도 매우 선선하여 8월 평균 기온 최저 1~5위 사이에 이름을 올렸다.[273] 심지어 그 덥다는 대구도 8월에 33℃ 이상의 폭염이 전혀 없었다.[274] 특히 인천과 부산은 1980년처럼 8월 최고 기온이 30℃를 넘지 못했다.
- 9월 중순 - 9월에도 8월의 기온 경향을 보이며 점차 평년과 비슷해졌지만 9월 17~20일에는 저온이 와서 9월 17일 최고 기온이 20.4℃에 그쳤다. 다음 날인 9월 18일은 최저 기온이 10.0℃로 간신히 두 자릿수를 기록하였으며 이러한 최저 기온은 9월 20일까지 이어졌다가 점차 올라서 평년과 비슷해졌다. 그 외에도 늦더위 없이 꾸준히 최고 기온이 낮아서 9월 15일 최고 기온 22.8℃처럼 몇몇 저온인 날도 있었으며 9월 하순에도 기온이 높지 않고 저온이 이어져서 9월 25일 최고 기온이 21.1℃에 그쳤다. 9월 평균 기온은 20.1℃로 최저 15위를 기록했다. 당시 기준으로는 평년 비슷 범위이다.
- 10월 일부 - 10월 2~3일까지는 9월과 비슷했으나 10월 4일이 되자 최저 기온이 한 자릿수를 기록하였고 높아도 10℃ 수준이었다. 최고 기온도 20℃ 이하의 기온을 기록한 날들이 보이기 시작했으며 10월 7일에는 최저 기온이 5.4℃까지 내려갔다. 중순은 그맘때 기온이었으나 10월 18일에는 최저 기온이 2.2℃까지 내려갔다. 하순도 이와 비슷했으며 10월 23일 최저 기온이 0.8℃까지 내려갔으나 갑자기 기온이 올라서 10월 25일은 비가 오며 최저 기온이 15.4℃까지 오르는 고온을 보였으나 이는 반짝 현상으로 곧바로 1℃대의 최저 기온을 회복하였다. 다만 10월에 영하권을 기록한 다른 일제강점기 연도들에 비해 편차가 크지 않아서 10월 평균 기온은 평년보다 조금만 낮은 13.2℃로 최저 16위를 기록했다.[275]
- 11월 - 11월 상순부터 영하권을 기록하는 날이 몇몇 보이기 시작했으며 11월 8일에는 최고 기온도 9.5℃로 한 자릿수에 그쳤다. 이후 중순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아주 살짝 낮은 정도에 그쳤으나 11월 22일부터는 추운 날씨가 계속되어 11월 28일 최저 기온 -7.7℃, 최고 기온 0.0℃를 기록했다. 이 영향으로 11월 평균 기온은 5.7℃로 근소하게 낮았다. 다만 12월에도 이러한 기온 경향이 이어져서 서울에서 -10℃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으며 -0.5℃로 당시 치고 조금 고온인 월평균 기온을 기록했다.
5.8. 1937년
이해도 12월의 한파와 하반기 일부의 저온을 빼면 현재와도 거리감이 없고 평범한 해이다. 전체적으로 1935년과 비슷하나 봄철은 더 추웠고 여름철은 조금 더 더웠다.충청북도 영동(추풍령)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276][277]
- 10월 중순 - 10월 17일 최고 기온 9.7℃, 10월 18일 최저 기온 -0.5℃.[278] 참고로 동시기 서울보다 기온이 높은 대구에서도 서울과 비슷하게 기록되었다. 아마 추위 강도와 체감은 중부보다는 남부가 더 쎘던 듯.
- 12월 - 서울 월평균 기온 -3.9℃로 2년 전과 같았다. 12월 2일부터 기온이 내려가면서 한파가 시작되었고, 12월 4~5일에는 -11.4℃로 겨울 시작의 추위로서는 제법 강했다. 그 이후로는 약한 추위가 길게 지속되다가 하순에 한파가 강해져서[279] 12월 26일에 -16.0℃를 기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해 1월 최저 기온 극값이 일제강점기 치고 매우 높았기 때문에[280] 12월 26일의 최저 기온이 1937년의 연 전체 최저 기온 극값이 되었다. 한파는 다음 해 2월까지 이어졌다.
5.9. 1938년
비록 1935~1936년 겨울만큼은 아니지만 1~2월 추위가 강했다. 하지만 3월부터는 5월을 제외하고[281] 당시 기준으로 온화한 날씨를 보였고 여름철도 다소 더웠다. 반대로 9월은 매우 낮았으나 아이러니하게도 10월에는 고온이 강했고 11월은 다시 또 매우 낮은 극과 극의 가을을 보인 것이 특징이며 12월도 약간 낮았다.경상북도 울릉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 1~2월 - 서울 월평균 기온이 각각 -6.3℃, -3.3℃를 기록하여 평년보다 상당히 낮았다. 1월은 고온을 보인 날이 전혀 없었고, 상순부터 하순까지 강추위가 잦았으며 2월도 마지막 날에 기온이 크게 오르기 전까지는 고온이 전무했다.
5.10. 1939년
2018년을 연상시키는 역대급 폭염으로 고온 현상이 강력하기는 했지만 산발적으로 강한 이상 저온이 발생했던 해이다. 1~2월도 각각 한파가 꽤 강해서 평년보다 조금 낮았으며, 4월 상순에 영하로 떨어졌다. 그리고 하반기에는 중순까지 고온, 하순에 강한 저온 형태의 날씨가 연속으로 이어졌으며, 12월도 당시 기준으로 조금 높았지만 중순에 한파가 있기는 했다.이해 5월 1일에 광주에서 최초의 기상 관측이 시작되었다.
- 1월 상순, 하순 - 전년도 성탄절부터 연속으로 -10℃ 이하를 기록하는 등 춥더니 12월 31일~1월 1일에 잠시 기온이 올라갔다. 하지만 1월 2일부터 다시 한기가 와서 1월 3~9일까지 연속으로 -11℃ 이하를 기록했다. 심지어 1월 5일에는 강력한 한기가 와서 최저 기온 -16.6℃, 최고 기온 -10.9℃를 기록했고 다음 날인 1월 6일에는 최저 기온 -19.6℃를 기록했다. 한파는 1월 13일부터 풀렸으나 1월 19일을 기점으로 한기가 다시 남하하여 1월 20일에도 -15.9℃를 기록하였고 하순까지 다소 추운 날씨를 기록해 서울의 월평균 기온은 -5.2℃로 꽤 낮은 편이었다. 어떻게 보면 2018년 1월의 상위호환으로도 볼 수 있다.[282]
- 2월 상순 - 한파는 2월 상순에도 풀리지 않고 계속 이어져 2월 6일 최저 기온 -16.0℃, 2월 8일에도 -15.3℃를 기록했다. 그리고 다른 날에도 -8~-13℃의 날씨가 기록되어 상당히 추웠다. 2월 12일부터 한파가 풀려 평년과 비슷하거나 조금 높았지만 월평균 기온은 이 여파로 -2.0℃를 기록해 조금 낮았다.
- 3월 중순 - 3월 상순에는 오히려 고온 현상이 발생하여 지금 기준으로도 상당히 높지만 중순부터 최저 기온 -3~-5℃를 기록하는 등 다소 추운 날씨가 이어졌다. 3월 20일에 -5.2℃를 기록한 이후 하순에는 기온이 올라 평년 수준의 날씨를 보였다. 덕분에 월펑기온은 4.7°C로 당시 치고는 다소 높았다.
- 4월 일부[283] - 4월 2일부터 4월 8일까지 쌀쌀한 날씨가 이어져 최저 기온이 상당히 낮았다. 특히 4월 4~5일에는 연속으로 -2℃ 이하를 기록하기도 했고 특히 4월 4일에는 -2.7℃의 기온을 보여 -3℃에 가까운 강한 꽃샘추위를 보였다. 서울 기준으로 4월 최저 기온 극값 순위도 하위 7위로 꽤 기록적인 편. 하지만 4월 9일부터 따뜻해져서 중순부터는 고온을 보였다. 이후 4월 22일부터 기온이 다소 떨어져서 최저 기온 3~7℃ 전후, 최고 기온 14~18℃ 전후의 날씨가 이어져 평년보다 조금 기온이 낮은 날이 4월 28일까지 이어졌다. 23일, 25일, 28일의 경우 최고기온은 저온이 아니었고 중순의 고온 때문에 평균 기온이 11.6℃로 당시 치고는 1°C 정도 높은 편이기는 하다.[284]
- 5월 일부[285] - 상순 일부에 최저 기온이 5℃대 기록하기도 했고[286], 중순도 이와 비슷한 기온을 유지하며 상당히 낮았다. 특히 5월 12일 최저 기온이 5.7℃를 기록했다. 그뿐만 아니라 전날 최고 기온도 14.9℃인 것이 특히 놀라운 부분이다. 5월 18일 이후로 그맘때 기온을 보였고 5월 하순에 연례행사 급으로 찾아오는 더위도 있기는 해서 5월 28일에 2018년 5월 최고 기온 극값과 같은 29.6℃까지 올랐으나 중순까지의 저온으로 인해 월평균 기온은 15.7℃로 다소 낮았다.
- 9월 하순~10월 1일 - 상순~중순에는 폭염의 여파로 늦더위가 심했지만 하순이 되자 빠르게 식어 최저 기온이 한 자릿수까지 급격히 하강했다. 이는 2010년과 비슷하다. 9월 23일에 9.3℃를 기록하였고 일주일 후인 9월 30일에는 5.7℃까지 떨어졌다. 이 5.7℃ 기록은 1928년 9월 26일(3.2℃), 1923년 9월 28일(5.6℃) 다음으로 9월 최저 기온 역대 3위의 기록이다. 그러나 이후 10월 상순에 다시 올라 이상 고온 현상을 보였다.
- 10월 일부[288] - 10월 14일까지 29.3℃를 기록하는 등 심각한 고온이 이어졌지만 이후 빠르게 기온이 식었고 10월 19일부터 10월 24일까지 저온이 이어졌다. 10월 20일 최저 기온 2.5℃, 최고 기온 9.3℃에 다음 날인 10월 21일에는 -1.6℃로 영하권으로 떨어졌다. 10월 25일부터 평년~그 이상으로 기온이 다시 오르기는 했지만 심각한 고온은 아니었으며, 월말에 다시 한 번 떨어져 10월 31일 최저 기온이 0.5℃를 기록했다.
- 11월 일부[289] - 10월 하순에 기온이 떨어진 것이 이어져서 11월 첫날부터 영하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 뒤로 기온이 올라 11월 6일에 20.2℃의 고온을 보였으나 11월 10~14일에 다시 한기가 와서 최저 기온이 -3℃를 맴도는 등 11월치고 상당히 추운 날씨가 이어졌다. 그 다음에는 또 기온이 올라 평년과 비슷하거나 높은 날씨를 보였으나 11월 24일부터 영하권으로 내려가기 시작했고 11월 25일부터 아예 매우 크게 떨어져, 11월 26일에는 -10.2℃로 영하 두 자릿수를 넘기는 강한 한파를 보였다. 최고 기온도 -3.3℃로 거의 12월에서나 볼 법한 강추위를 보인 것이다. 이 때문에 11월 26일 일평균 기온이 -6.5℃를 기록하여 1979년 11월 13일과 공동으로 하위 5위를 기록했다. 이후로도 월말까지 최저 기온 -4~-6℃권의 쌀쌀한 날씨가 이어짐에 따라 11월 평균 기온은 5.9℃로 당시 치고 약간 낮은 편이었다.
- 12월 일부[290] - 11월 하순의 한파로 인해 12월 상순도 다소 추운 편이었으나 이후 기온이 올랐다. 하지만 중순에는 꽤 추운 날씨가 이어져서 최저 기온 -7~-13℃의 날씨가 계속 이어졌고 12월 15일에 -13.6℃를 기록했다. 다만 하순에는 기온이 올라 크게 춥지 않은 날씨를 보여서 월평균 기온은 -0.9℃로 그럭저럭 평범하거나 약간 높았으나... 1940년 1월에는 매우 추운 날씨를 보였다.
6. 1940년대
1940년대는 1930년대보다 폭염이 더욱 심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점차적으로 평균 기온이 높아지기 시작하는 연대이기도 하다. 겨울은 1930년대와 반대로 1월에는 1940년, 1945년 1월 말고는 장기 한파가 그닥 뚜렷하지 않았고, 대략 -3~-4도대로 다소 평범했으나 대신 12월의 장기 한파가 눈에 띄게 증가하여 12월 평균 기온이 매우 낮은 해가 많았다.[291] 특히 1942~1951년에는 전국적으로 가뭄이 심해서 일조량도 많고 일교차와 연교차 모두 큰 편이었다. 그로 인해 잘 살펴보면 여름철 폭염과 겨울철 한파의 강도가 동시에 강력해졌다.6.1. 1940년
1월 시작부터 강추위가 찾아와서 월평균 기온이 순위권으로 낮았으나, 2월부터는 장기 한파에서 벗어났고 3월도 중순을 제외하면 눈에 띄는 꽃샘추위가 없었다. 하지만 4월은 꽤나 낮았고 5월에 다시 평년의 기온을 회복했지만 6월부터 8월까지의 여름철은 장마가 찾아오고 이상 저온의 영향으로 세 달 모두 월평균 기온이 평년보다 1℃ 가량 낮았다. 그리고 이 저온의 영향인지 9월도 평년보다 약간 낮았으나 10월부터는 고온 위주의 날씨를 보여서 12월까지 월평균 기온은 평년보다 다소 높게 기록되었다.- 1월 - 한파/대한민국/20세기 문서 참조. 서울 월평균 기온 -7.4℃로 역대 최저 8위이며, 월평균 기온과 최저 기온 극값이 21세기 이후 최강 한파로 불리는 2011년 1월과 거의 같았다.[292] 특히 서울은 1월 하순 동안 최저 기온이 -13℃ 위로 올라가지 못했으며, 지속적인 장기 한파의 영향으로 서울의 1월 하순 평균 기온은 -11.0℃로 하위 1위를 기록하였다.
- 2월 상순 - 1월 한파의 영향으로 2월도 상순까지는 최저 기온이 영하 두 자릿수를 벗어나지 못했다. -14℃ 이하로 떨어지지는 않았으나 2월 8일에 -13.9℃를 기록한 이후, 2월 9일부터는 최저 기온이 영하 두 자릿수로 내려가지 않고 최고 기온도 영상권을 회복하며 겨울이 끝나갔다.
- 3월 중순~하순 - 3월 상순에는 최저 기온이 낮아도 -6.0℃[293]에 그쳤고 낮 최고 기온도 5~15℃로 그리 춥지 않은 봄 날씨로 출발했으나, 3월 14일부터 뒤늦은 꽃샘추위가 와서 3월 15일 최저 기온이 -7.7℃까지 하강했고, 심지어 최고 기온조차 0.0℃를 기록했다.[294] 3월 17일까지 최저 기온 -6~-7℃를 유지하다가 다시 기온이 조금씩 올라갔으나, 여전히 영하권이었고 3월 28일까지 (3월 25일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날들의 최저 기온이 영하에 머무르는 등 저온은 길게 이어졌다. 이렇게 장기적으로 기온이 낮았는데도 3월 평균 기온은 3.7℃로 평년과 별 차이가 없었는데[295] 이는 일제강점기에는 3월 중순과 하순에 최저 기온 영하를 기록하는 일이 워낙 흔하기도 했고, 3월 상순에 꽃샘추위가 왔다 하면 -8~-10℃, 심하면 그 이하를 기록하던 일제강점기의 다른 해에 비해 1940년 3월은 상순의 꽃샘추위가 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4월 - 서울 월평균 기온 9.4℃. 당시의 평년보다도 1℃ 이상 낮은 값이며 전술한 1923년과 거의 맞먹는 기온이다. 일별로 기록적이라고 할 만한 저온이 찾아오지는 않았지만, 상순에 영하를 기록한 날들도 있었고[296] 중순에도 4월 14~15일, 하순에도 뚜렷한 저온은 없었지만 한 달 내내 고온이 없었고 비교적 낮은 기온을 유지해 평년보다 추웠다.
- 6~8월 - 전술한 1936년과 후술할 1947년, 1980년, 1993년보다 저온 현상이 강하지는 않아서 서울의 6월, 7월, 8월 평균 기온은 각각 20.1℃, 23.4℃, 24.3℃로 역대 최저 6위, 9위, 10위였으나 잦은 비로 인해 기온이 크게 오르지 못했다. 6월 7일에 서울은 최저 기온이 10.2℃까지 떨어졌고 나머지 날들도 높아봐야 13℃ 정도로 최저 기온이 매우 낮았다. 중하순에는 며칠 동안 폭염이 찾아와서 6월 20~22일까지 폭염일수에 근접한 32~33℃를 기록했으나[297] 곧바로 시원해져서 하순에는 최저 기온이 19℃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았고 대부분 16~19℃에 그쳤다. 심지어 7월은 24일 동안 비만 주구장창 왔으며[298] 역대 7월 강수량 1위를 기록했다. 특히 7월 20일, 7월 22일에는 최저 기온 18.0℃를 기록하였고, 그 중 7월 20일은 일교차가 극단적으로 작아서 최고 기온도 21.3℃까지밖에 오르지 못했는데[299] 7월 중하순이라는 시기에 이렇게 낮은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는 것이 경이롭다. 8월 상순~중순에는 서울에서 폭염일수를 기록한 날이 아예 없었고[300] 8월 8일에는 최고 기온 23.5℃, 최저 기온 17.0℃로 매우 놀라운 이상 저온을 보였다. 덧붙여 8월 7~11일에는 최저 기온이 모두 20℃ 이하를 기록했다.[301] 시간이 흘러 중순에는 저온이 덜했고 8월 21일에는 늦더위로 34.3℃의 폭염이 시작되었으나, 이조차도 오래 가지 못하고 금세 저온으로 바뀌었으며 8월 26일에는 최저 기온이 13.5℃까지 내려가서 서울의 8월 역대 최저 기온을 기록했다. 다음 날인 8월 27일에도 14.2℃까지 내려갔다.
- 9월 상순~중순 - 9월 3일 최고 기온 19.2℃. 그러나 일주일 후인 9월 10일에는 최고 기온 30℃ 이상의 늦더위가 있었지만 일주일 만에 다시 저온이 찾아와서 9월 17일은 최고 기온 18.7℃를 기록했고 9월 18일은 최저 기온 9.3℃를 기록했다. 그러나 또 일주일이 지난 9월 27일에는 늦더위로 최고 기온 28.3℃를 기록하는 등 기온이 정말 변덕스러웠다.[302] 결국 9월 평균 기온은 19.9℃로 평년보다 미세하게 낮았다.
6.2. 1941년
1월은 초이상 고온과 초강력 한파가 찾아오는 극과 극의 날씨를 보이며 기온 편차가 매우 컸으나[303] 2월에서 3월 상순은 평년보다 낮은 기온이 주를 이루었고 4월도 나름대로 낮았다. 시간이 흘러 한여름인 7~8월은 매우 시원했으나 가을철에는 뚜렷한 저온을 보이지 않았고 11월과 12월은 고온으로 따뜻한 연말이었다.- 1월 중순~2월 - 위에서 언급한대로 1월은 상순에 고온이 심했으나 중순부터 최저 기온 -14℃를 밑도는 추운 날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한파의 서막을 알리더니, 하순에 한파가 가장 강해 1월 25일 -18.7℃, 1월 31일에는 무려 -20.4℃로 일제강점기에서 마지막으로 -20℃ 이하를 기록하였다.[304] 게다가 2월에도 최저 기온 -10℃를 훨씬 밑도는 날들[305]이 많았지만 중순부터 평년의 기온을 어느 정도 회복하며 겨울이 끝나는 듯 보였으나...
- 3월 - 2월 중순 이후 평년과 비슷하거나 약간 추운 날씨를 보이다가 3월이 되자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하여 3월 4일에는 최고 기온 -3.8℃, 최저 기온 -13.0℃를 기록하는 이례적인 초봄 한파가 찾아왔다. 3월 12일에도 -4.5℃를 기록했고, 한동안 따뜻했다가 3월 25일에 -3.7℃로 다시 쌀쌀해졌으나 4월 상순에 풀렸다. 다만 이달은 저온이 길게 이어지지 않았으며 며칠 동안 기온이 낮았다가 풀리고 고온이 찾아왔다가[306] 다시 저온이 찾아오는 등 기온의 상승/하강이 단기간에 큰 폭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월평균 기온은 3.8℃로 의외로 평년보다 낮지 않았다.
- 7월 - 전국적으로 중순에 최저 기온이 12~15℃까지 떨어졌다. 특히 서울의 최저 기온은 7월 14일에 14.6℃를 기록할 정도였다. 또한 대구에서는 2주 이상 최고 기온이 23~25℃ 선에서 머무르는 날이 많았으며, 최저 기온도 하순에 19~21℃ 선에서 그쳤다. 대구의 7월 평균 기온이 22.2℃로 서울의 23.7℃보다 낮게 기록되었고, 1931년 7월과 함께 7월 평균 기온 역대 최하위이다.[307] 참고로 이해 여름은 목포, 광주, 제주를 제외한 관측 지역에서 열대야가 발생하지 않았다.
- 8월 - 서울은 8월 7일에 33.6℃의 마지막 폭염일수를 기록한 뒤로 며칠간에 걸쳐 기온이 하강했고, 8월 11일에는 최고 기온이 22.7℃에 불과했다. 물론 다음 날부터 곧바로 더워져서 30℃를 넘겼지만, 최저 기온은 여전히 20℃를 겨우 넘는 수준에 그쳤고, 하순에는 최저 기온이 20℃를 넘은 날이 하루도 없을 정도로 비교적 선선한 날씨가 이어졌다. 그 중 8월 22일에는 최고 기온마저 21.6℃에 그쳐 평년 10월 초중순 수준의 기온을 보였으며, 다음 날에는 최저 기온이 2022년 8월 28일과 동일한 값인 16.1℃를 기록했다. 같은 날 강릉의 최저 기온은 15.5℃로 더 낮았으며, 강원 내륙 등 일부 지역에서는 10℃ 전후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대구도 8월 27일에 최저 기온 16.7℃를 기록했다.서울의 8월 평균 기온은 23.8℃로 평년보다 2℃ 가까이 낮았으며, 순위는 최저 6위이다.
- 11월 하순 - 상순과 중순에는 따뜻하거나 고온을 보여서 11월 평균 기온은 평년보다 매우 높은 7.7℃를 기록했으나, 겨울을 앞두고 날씨가 급격히 추워져서 11월 29일에 -8.8℃를 기록했다. 그러나 12월은 추위가 와도 심하지 않았고 다음 해 1월에 한파가 찾아오기 전까지 평년보다 따뜻했다.
6.3. 1942년
1월과 2월은 고온이 찾아온 기간을 제외하면 매우 추운 날씨가 이어져서 월평균 기온이 꽤 낮았지만 3월은 고온이 강했다. 다행히 4~5월은 시원했으나, 여름철에는 현재까지도 전설로 남아있는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하지만 늦더위가 9월에 끝나고 쌀쌀한 날씨가 찾아와서 9월 하순~12월은 평년보다 다소 낮았다.전라남도 여수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 1~2월 - 서울의 1월 평균 기온이 -6.4℃로 상당히 낮았다. 특히 중순의 한파가 기록적이었는데, 최저 기온 극값은 -17.9℃[308]로 그렇게까지 낮지는 않지만 중순 내내 -14~-18℃의 한파가 길게 이어진 탓에 서울의 1월 중순 평균 기온이 -10.9℃로 하위 1위를 기록하고 말았다. 광주와 대구에서도 1월 17일에 각각 -15.7℃, -13.5℃를 기록하는 등 전국적으로 강한 한파가 맹위를 떨쳤다. 이후 하순에는 기온이 상승하여 평년 수준으로 되돌아갔지만 2월 중순에 다시 강한 한기로 2월 13일에 -16.7℃까지 내려가면서 1월 못지않은 최저 기온을 기록했으며 2월 평균 기온도 -3.5℃로 상당히 낮았다. 그러나 반대로 3월은 따뜻한 바람이 자주 유입되면서 당시 기준으로는 따뜻한 축인 5.9℃라는 월평균 기온을 기록하면서 2월과 3월의 차이가 10℃ 가까이 차이가 났다.[309]
- 4월 - 겨울이 끝나면 항상 뒤따르던 3월 꽃샘추위가 무색하게, 이해 3월은 고온으로 평년보다 2℃ 가량 높았으나 4월이 되자 서서히 꽃샘추위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4월 6일에 서울은 -1.4℃까지 떨어졌고, 최고 기온도 10.2℃에 불과했다. 중순에도 최고 기온이 대부분 16℃ 이하에 그쳤고 최저 기온은 0.5℃[310]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물론 하순에는 몇몇 날에 기온이 오르며 점차 봄에 가까워졌지만, 여전히 최저 기온 5℃ 이하[311]에 최고 기온 15℃ 이하[312]를 기록한 날들이 있었다. 이로써 4월 평균 기온은 9.9℃로, 당시의 평년을 감안해도 다소 낮았으며 현대로 비교하면 2013년급 이상 저온이다. 상순에 꽃샘추위가 더욱 강해서 -2~-3℃ 이하를 기록한 날들이 있었다면 월평균 기온도 나름 순위권을 노려볼 정도로 낮았을 것이다.
- 5월 - 앞서 4월에 저온이 지나간 이후 5월에는 한 층 더 강화된 저온이 시작되었다. 서울 월평균 기온 15.3℃로 평년보다 약 1도 낮았다. 5월 4일에는 최고 기온이 12.5℃로 현대의 2월에 고온이 찾아오면 빈번히 기록하는 최고 기온과 맞먹을 정도로 낮았으며, 다음 날인 5월 5일에는 최저 기온 4.1℃를 기록했다. 심지어 날씨가 슬슬 더워지며 여름이 가까워지는 5월 중순에도 최저 기온 10℃ 이하를 기록하는 날들이 많았고, 그중 5월 13~14일에는 5.6℃, 5.5℃까지 낮아지기도 했다. 다음 날인 5월 15일에는 최고 기온조차 13.7℃를 기록했다. 하순에 들어서는 최저 기온이 여전히 낮았으나 최고 기온은 하루가 지날수록 점점 높아지더니 급기야 5월 28일에 30℃를 넘어섰고, 이 무렵부터는 4~5월의 저온 현상을 복수하기라도 하듯 뜨거운 폭염이 시작되어 그대로 7~8월까지 이어지고 만다.[313]
- 9월 하순 - 서울 기준으로 9월 12일까지 30℃ 이상의 폭염이 남아있었으나 중순 쯤에 기온이 떨어져 가을 날씨로 돌입했고 하순에는 아예 저온이 찾아와 최저 기온 10℃를 밑돌더니, 9월 29일에는 최고 기온마저 15.2℃에 그쳤다. 다만 이날을 끝으로 갑자기 고온이 와서 10월 1~3일에는 27℃를 웃돌았다.
- 10월[314] - 10월 중순에는 23℃를 웃돌던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서울 기준 10월 23일 최고 기온이 4.5℃, 10월 24일에는 최저 기온 -5.1℃를 기록하였다.[315] 이 -5.1℃ 기록은 지금까지도 서울의 10월 역대 최저 기온으로 남아있으며 일평균기온이 이틀 연속으로 0℃대이다. 이때 대관령은 대략 -12℃ 정도까지 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10월 25일 낮부터 기온이 풀려 한동안은 그럭저럭 가을의 날씨를 이어간다. 다만 이 여파로 인해 서울의 10월 하순 평균 기온은 7.9℃로 1980년, 2002년에 이어 역대 최저 3위를 기록했으며, 월평균 기온 역시 12.5℃로 일제강점기라는 것을 감안해도 평년보다 약 1℃ 낮았다. 심지어 대구는 기온 하강의 폭이 훨씬 커서 10월 25일 -1.1℃로 그해 8월 1일에 기록한 대구의 역대 최고 기온인 40.0℃에서 단 3개월 만에 영하권의 날씨를 보였다.[316]
- 11[317]~12월 - 1920년대처럼 기록적인 11월 이상 저온이 기승을 부리던 해들에 비하면 다소 약하지만, 이해도 11월 평균 기온이 4.7℃로 평년보다 상당히 낮았다. 11월 9일에 -4.7℃를 기록했고, 중순에는 11월 14~19일까지 영하의 기온을 지속해나가며 그럭저럭 추웠다가 하순이 되자 며칠 동안 쉴 새 없이 기온이 급하강, 11월 28일에 -11.1℃라는 매우 기록적인 한파를 시작으로 겨울에 들어섰다. 하지만 12월 상순~중순과 하순 초반까지는 오히려 약한 강도의 한파만 지속되고 -10℃ 이하로 내려가는 날이 없었으나, 성탄절이 끝나고 12월 26일부터 급격한 한기 남하로 한파가 찾아와 12월 28일 최저 기온 -15.4℃를 기록했다. 이 한파는 12월 29~31일에 잠시 쉬어가다가 다음 해 1월에 본격화되었다.
6.4. 1943년
여름철의 강력한 폭염과 달리 겨울철에는 한파가 매서웠지만, 봄철과 가을철은 전체적으로 포근했다. 서울의 일조시간이 2,844.5시간으로 역대 가장 많았던 해이다.경상북도 포항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 1~2월 - 서울의 1월 평균 기온 -6.6℃, 최저 기온 극값은 1월 12일의 -18.6℃.[318] 자세한 내용은 한파/대한민국/20세기 문서 참조. 한파는 2월에도 쉽게 풀리지 않아서 2월 8일에 -15.5℃를 기록했다. 이후로도 한파는 약해졌지만 고온이 없어서 2월 평균 기온도 -2.4℃로 낮은 편이었다.
- 4월 중순 - 4월 8일 최저 기온 -1.9℃를 기록한 뒤로 4월 20일까지 최저 기온은 5℃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했고(4월 18일 제외), 서울의 4월 중순 평균 기온이 7.5℃로 하위 1위. 그러나 하순에는 매우 높았다. 월평균 기온은 10.6℃로 당시 평년 기온과 비슷했다.
- 7월(남부 지방)[319] - 한창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중부지방과 달리 대구광역시는 이상 저온을 보여 월평균기온이 24°C대로 전년도와 대비되는 시원한 날씨를 보였다. 서울도 7월 25~26일 한정으로 갑자기 크게 서늘해지며 저온을 보였다. 7월 24일까지만 해도 30℃를 웃돌던 최고 기온이 단 하루만에 24.0℃까지 떨어졌다. 심지어 7월 25일 최저 기온은 17.0℃까지 내려갔다. 다음 날인 7월 26일 오전까지 선선해서 새벽~정오 사이에 최저 기온 17.8℃를 기록했지만, 이날 오후부터는 빠른 속도로 열기가 들어와서 최고 기온이 31.8℃까지 치솟았고 이후로도 9월 하순에 날씨가 풀리며 가을에 접어들기 전까지 지루한 폭염이 계속되었다.
- 11월 중순 - 11월 16일에는 17.5℃까지 오를 정도로 따뜻했는데, 11월 17일부터 한기 유입으로 날씨가 빠르게 급변하여 11월 19일에 최저 기온 -9.2℃로 12월 19일이라고 해도 믿겨지는 초이상 저온이 찾아왔다. 이 압도적인 초이상 저온의 여파인지, 이달은 상순 초반, 중순 중반의 고온이 강했고 하순에도 추위가 강하지 않았는데 월평균 기온 6.1℃를 기록하여 평년보다 크게 높지는 않았다. 다만 11월 하순에 풀린 추위가 12월에도 달라지지 않아서 이해 12월은 한파가 약했으며, 전년도와 달리 기습 한파도 찾아오지 않았다.
6.5. 1944년
4월, 12월 저온 현상이 강한 해이며, 여름철도 지난 두 해보다는 아니지만 7월 하순~8월 상순에 35~36℃의 무더위가 순간적으로 발생했고 이례적으로 8월 하순~9월 상순이 매우 더운 양상을 보였다. 그 외에 2월도 평년보다 다소 낮았으며, 11월 하순에는 12월의 장기 한파와 대비되게 매우 높았다.- 5월 - 5월 5일에 서울의 일평균 기온이 7.6℃에 달했고, 최고 기온이 11.9℃[320]2021년 5월 1일에 이미 한 자릿수를 찍은 바 있다. 그 정도만 해도 굉장히 심각한 이상 저온으로 5월 꽃샘추위라는 말도 나올 정도였는데... 일 최고 기온이 11.9℃면 어느 정도인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 수치이다. 다만 2021년 5월 1일의 일평균 기온은 10.2℃로 3℃ 가량 높았다.], 최저 기온이 5.4℃로 5월 역대 일평균 기온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그 외에도 5월 6일 최저 기온이 4.6℃까지 떨어졌고, 최저 기온이 한 자릿수인 날도 제법 많아서[321] 5월 평균 기온이 15.9℃로 추산되었다. 1991~2020년 기준 평년 5월 평균 기온(18.2℃)보다는 굉장히 낮지만, 의외로 당시의 평년 5월 평균 기온(16.1~16.5℃)보다는 조금만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정작 이런 기록도 후술할 다음 해 5월에 비하면 정말 양반이다.
- 12월 - 2012년 12월처럼 한 달 내내 강한 한파가 이어져 서울 월평균 기온이 -5.8℃로 1917년 12월보다 0.1℃ 낮아 역대 최하위이다.[322] 12월 1일부터 기온이 매우 급락해 최저 기온이 -9.2℃를 기록하고 월 전체가 고온 없이 -10℃를 밑도는 장기 한파가 계속 이어졌으며,[323] 한파가 절정에 달했던 12월 27일의 최저 기온은 -15.5℃로 2021년 12월과 극값이 같았다. 이는 12월 15일부터 본격적인 한파에 돌입한 1917년 12월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해 11월 하순에는 매우 따뜻하다가 12월이 되자마자 2014년, 2022년처럼 매우 급락해 11월 하순 평균 기온 9.3℃로 상위 3위에서 12월 상순 평균 기온 -5.8℃로 하위 1위로 가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6.6. 1945년
광복절 이전까지 일제강점기 말기와 제2차 세계 대전의 피해로 인한 시련을 연상시키기라도 하는 듯, 4월을 제외한 1~7월 전체가 쌀쌀하고 저온을 보였다.[324] 하지만 광복절 이후로는 평년과 비슷하거나 높아 상반기와 하반기의 차이가 큰 해이다. 다만 1~3월과 5월의 여파로 인해 연평균 기온은 매우 낮았다. 한편 7~8월의 경우 2020년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325]- 1~2월 - 광복절 이전의 마지막 겨울답게, 1935~1936년처럼 한파가 매우 강했다. 1월 평균 기온은 -7.8℃로 1922년과 더불어 공동으로 역대 최저 5위이며 2월 평균 기온도 -4.9℃로 역대 최저 2위[326]이다. 특히 지난 해 12월부터 이어진 최악의 연말 한파가 이해 연초까지 연결되면서, 겨울 전체(12~2월) 평균 기온이 -6.1℃로 역대 가장 낮았으며 1936년과 비슷하게 상반기가 매우 추웠고 한파가 극에 달한 1월 27~28일에는 최저 기온이 각각 -19.1℃, -18.4℃를 기록하여 매서운 추위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추위가 2월에도 지속되면서 2월 상순 서울의 평균기온은 -8.5℃로 역대 최저 2위이며, 2월 3일에 -15.6℃까지 떨어졌다. 자세한 내용은 한파/대한민국/20세기 문서 참조.[327]
- 3월 - 겨울철 한파에서 이어진 이상 저온으로 인해 서울 월평균 기온이 2.5℃였다. 3월 8일에 -8.9℃까지 내려갔고 중순에는 더 기록적이어서 3월 17일에 -7.4℃로 3월 중순이라는 시기에 한겨울에 필적할 추위가 찾아왔다. 그나마 4월에는 날씨가 풀렸지만 5월에는 다시 최하위가 되었다.
- 5월[328] - 서울의 5월 평균 기온이 13.6℃로 역대 최하위이다.[329] 5월 6일과 5월 7일에 최저 기온이 각각 2.7℃, 2.9℃를 기록했고, 5월 12일에는 2.8℃까지 떨어졌는데 이는 현재까지도 5월 중순을 통틀어서 압도적으로 가장 낮은 최저 기온 기록이다! 다른 해 같으면 거의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는 이른 더위 역시 한 달 중에서 5월 30일까지 없었다.[330] 특히 5월 23일에는 최저 기온이 9.7℃로 한 자릿수로 떨어졌고 최고 기온도 17.8℃에 그쳐서 강한 저온 현상을 보였다. 즉 다시 말하자면 현재 5월 평균 기온 수준의 기온이 최고 기온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최고 기온이 25℃를 넘은 날이 월 전체에서 3일[331]에 불과했다. 이후 6월은 6월 11일까지 5월보다 조금 높은 수준으로 계속 이어지다 7월 이전까지 이상 저온이 있기는 했으나 거의 평년보다 조금만 낮은 기온을 기록했다. 5월 31일조차 평년보다 크게 낮으면 13도대 초반을 기록할 수도 있다.
- 7월 - 7월 16일에 저온이 찾아와서 최고 기온이 23.2℃까지 내려갔다. 단 나머지 날들은 27~32℃로 평년 수준의 기온을 보여서 저온의 길이는 짧았지만 월평균 기온은 23.2℃에 불과했다.
- 8월 상순 - 상순에 강한 저온을 보였다. 2020년처럼 8월 상순 최고 기온이 30℃를 넘지 못했으며 최저 기온도 낮아 항상 20~22℃를 기록했다. 그중 8월 5일에는 19.1℃까지 떨어졌으며, 사실상 9월 상순이라고 해도 믿을 수준의 기온 분포를 보였다. 서울의 1945년 8월 상순 평균 기온은 23.5℃로 하위 3위이며 2위인 1993년과 불과 0.1℃ 차이로 맞먹는다.[332] 하지만 중순부터 슬그머니 더워졌고, 한반도가 광복을 맞아 일제로부터 독립한 그날을 기점으로 폭염이 나타났으며 이후 8월 하순까지 강력한 늦더위를 보여 여러모로 2020년 8월의 상위호환에 가까운 달이 되었다. 이렇듯 상순이 매우 낮았는데도 불구하고 중순~하순의 폭염의 영향이 더욱 컸던 탓인지 서울의 8월 평균 기온 25.5℃로 평년과 비슷했다. 물론 현대의 평년보다는 조금 낮다.
6.7. 1946년
전반적으로 강한 장기 한파가 찾아온 12월, 9월~10월 상순과 11월의 이상 고온을 빼면 평범한 해이나 3월에는 낮은 편이었으며 그 밖에도 산발적으로 이상 저온이 조금 있었던 해이다.- 3월 상순~중순 - 2월 하순까지 따뜻한 날씨가 3월 시작에도 변함이 없었으나, 3월 4일부터 다시 영하로 내려가며 점차 추워지더니 3월 8일에 -10.7℃를 기록하였다. 앞서 서술한대로 2월은 중순부터 한파가 약했기에, 3월 8일의 최저 기온은 2월 10일 -11.4℃ 이후로 거의 한 달 만에 가장 낮은 최저 기온이었다. 심지어 이 꽃샘추위는 쉽게 풀리지도 않아 3월 11일과 3월 15일에도 -8.6℃를 기록하였고 3월 23일에 최고 기온이 13℃ 이상으로 오르기 전까지 쌀쌀한 봄 날씨가 이어졌다. 서울 월평균 기온은 2.5℃로 당시의 평년보다도 1℃ 정도 낮은 수치이다.
- 12월 - 서울 월평균 기온 -4.3℃로 역대 최저 7위이다. 바로 한달 전인 11월이 당시에 역대급으로 가장 더웠었으나[333], 12월이 되자마자 바로 2년 전처럼 급작스럽게 반전되어 12월 9~10일에 최저 기온 -14℃ 이하의 한파가 찾아왔고 이 영향으로 12월 12일에 한강 결빙이 이루어졌으며 중순에는 며칠간 기온이 올랐으나 12월 19~20일에는 이틀 연속 -15.0℃를 기록했고 12월 26일에 일시적으로 크게 따뜻해졌으나 다시 급락해 12월 29일에 -17.0℃로 절정을 찍어 1946년의 연 최저 기온 극값이 되었다. 그러나 12월 31일에는 다시 기온이 크게 올랐고 이듬해 1월은 큰 추위가 없었다.
6.8. 1947년
1년 대부분이 이상 저온이어서 서울 연평균 기온이 9.655℃로 역대 최하위이다.[334]4℃ 낮고, 평년보다도 약 3℃나 낮았다.][335] 그나마 1월은 평년보다 높았고, 4월, 8월은 평년과 비슷하였지만 2월과 6월은 역대 최저 1위이고 3월, 7월, 10월, 11월, 12월도 매우 낮았다. 5월과 9월도 약간 낮았다. 또한 서울에서 마지막으로 연평균 기온 9℃대를 기록한 해이기도 하다. 덧붙여 서울의 연평균 최고 기온도 14.8℃로 역대 최하위이다.[336]- 1월 하순~2월 - 1월은 꽤나 추웠던 전년도 12월과 달리 당시 치고는 평년보다 조금 높은 월평균 기온인 -3.9℃를 기록했지만, 1월 하순부터 시작한 한파가 2월에 끝내 풀리지 않으면서 서울의 최저 기온은 2월 3일 -17.2℃, 월평균 기온은 -5.3℃로 2월 평균 기온 역대 최하위를 기록했다. 자세한 내용은 한파/대한민국/20세기 문서 참조.
- 3월 - 1월 하순부터 이어진 한파가 2월을 장악한 것도 모자라 3월까지 길게 이어지면서 3월 4일 최저 기온 -10.6℃를 기록하며 강한 꽃샘추위를 보였고 월평균 기온도 1991~2020년 평년값인 6.1℃보다 4.6℃ 낮은 1.5℃를 기록함으로 1925년과 함께 역대 최저 8위를 기록했다.[337]
- 4~5월 - 4월 10.5℃, 5월 15.9℃로 당시 기준으로 4월은 평년과 비슷했고, 5월은 평년보다 조금만 낮았지만 현대 기준으로는(1991~2020년 대비) 2℃ 남짓 낮다. 4월 5일에는 -1.0℃까지 떨어지기도 했고 5월 9일에는 시기상 완연한 봄인데도 불구하고 최저 기온이 7.9℃로 한 자릿수를 기록했다.[338] 서울의 5월 합계 일조 시간이 315시간으로 현재까지도 역대 가장 많지만 여전히 기온은 그대로였다. 강릉에선 5월 9일에 뜬금없이 -0.8℃까지 내려가며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5월에 영하를 기록했다.
- 6월 - 6월의 날씨가 현재 5월에 가까울 만큼 저온 현상이 오래감으로 인해 서울의 6월 평균 기온도 18.7℃를 기록하며 역대 최하위를 찍었다.[339] 서울의 6월 최고 기온은 6월 14일에 기록된 27.5℃이며 이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했고 6월 5일에는 최저 기온 10.3℃로 거의 한 자릿수에 가까웠다. 6월 중순에도 저온이 이어져 6월 11일에 서울 최저 기온이 12.2℃였고, 최고 기온은 더욱 가관이었는데 불과 16.4℃에 그쳤다. 이로 인해 6월 중순 일최고기온 하위 1위에 이름을 올렸으며, 일평균기온도 13.9℃에 그쳐 1940년대임을 감안하더라도 평년보다 약 8℃ 이상 낮은 초이상 저온을 보였다. 한 술 더떠서 강릉의 최저/최고기온은 각각 11.6℃, 15.3℃에 그칠 정도로 매우 선선한 날씨가 이어졌다. 6월 17일에도 강릉의 최저 기온이 10.3℃까지 떨어졌다. 만약 이때 대관령면에서 기상관측이 이뤄졌다면, 최저기온은 아예 5℃ 전후를 기록했을 것이며, 최고기온도 겨우 10℃를 넘기거나, 심하면 최고 기온마저 한자리수를 기록할 가능성이 있었을 것이다. 강릉은 월평균 기온이 16.4℃로 역대 최저이다.
- 7~8월 상순 - 서울의 7월 평균 기온 22.9℃를 기록하여 역대 최저 5위이며 7월 28일까지 최저 기온 17.0℃를 기록하며 현재의 6월과 다름없는 기온을 보였고, 다음날인 7월 29일에도 최저 기온 18.7℃, 최고 기온도 23.7℃에 그쳤다. 쉽게 말해서 6월은 5월과 같은 봄 날씨를 보였고, 7월이 되자 여름이 시작했지만 이마저도 초여름 수준이었다. 물론 그 다음은 항상 더운 8월 상순인 만큼 8월 2일에는 최고 기온 33.5℃의 더위가 찾아오기는 하였지만 또 기온이 급격하게 하강하여 8월 5일에는 최저 기온이 7월 28일과 같은 17.0℃를 기록했으며 최고 기온조차 22.3℃를 기록했다. 그 외에도 2010년대의 8월 최저 기온에서 볼법한 기온이 최고 기온으로 기록되는 등 저온 현상이 심각했지만 8월 12일부터 30~34℃의 늦더위가 찾아와서 폭염일수가 있었고 하순까지 이어져서 서울의 8월 평균 기온은 25.1℃로 1991~2020년 평년값인 26.1℃보다 1℃ 낮은 수준에 그쳤다.
- 9~11월 - 앞서 8월의 늦더위가 9월 1일이 되는 순간 기온이 급격하게 하강해서 쌀쌀한 가을 날씨가 이어졌다. 그 다음부터는 기온이 조금 올라서 9월 5일 최고 기온 29.9℃를 기록하며 30℃에 가깝기도 했지만 그 뒤로 쭉 내려가서 9월 30일에는 최저 기온 10.1℃로 한 자릿수에 가까웠다. 월평균 기온도 19.6℃로 후술할 1980년과 같고 1991~2020년 평균에 비해 2℃ 낮은 값이며 일제강점기에는 더욱 저온 현상을 보인 9월이 많아서 평년보다 크게 낮지는 않지만 광복 이후로는 여전히 최저 3위이다.[340] 아이러니하게도 6월이 초이상 저온이라 6월 평균 기온보다 기온이 높았다. 10월에도 월평균 기온 11.8℃로 1991~2020년 평년값인 15.0℃보다 3.2℃ 낮은 역대 최저 5위이고 10월 30일에는 아예 -1.6℃까지 떨어졌다. 마찬가지로 11월에도 이러한 저온 현상은 이어져서 월평균 기온 3.5℃로 1991~2020년의 평년값인 7.5℃보다 4℃ 낮았으며 다음 해 12월보다도 낮았다. 11월 상순은 오히려 고온 현상이 있었지만 중순부터 급격하게 추워져 11월 18일에 -8.7℃를 기록했고, 서울의 11월 중순 평균 기온이 0.8℃로 하위 1위이다. 하순에는 일시적으로 저온 현상이 완화되었으나 곧바로 추워져 11월 27일에는 최저 기온 -11.8℃로 1970년 11월 30일의 -11.9℃에 이은 11월 역대 최저 기온 2위를 기록함으로 거의 한겨울에 가까운 날씨를 보이기도 했다. 이 저온으로 인해 11월 하순 평균 기온이 -0.3℃로 역대 최저 5위를 기록했다.
- 12월 - 한파가 풀리지 않고 지속되어 서울 월평균 기온 -5.4℃로 1944년의 -5.8℃, 1917년의 -5.7℃에 이은 역대 최저 3위이며 현재 1월은 물론 일제강점기의 1월보다도 낮은 기온을 보였다.[341] 특히 이달의 중순 한파가 매우 역대급으로 강력해서 중순 평균 기온은 -10.8℃로 하위 1위이다. 다만 1948년 1~2월은 평년 수준에 그쳤다.
6.9. 1948년
1월과 2월은 한파가 찾아온 기간을 제외하면 평년과 비슷했고 3월과 4월은 이상 고온을 보여서 평년보다 1~2℃ 높았다. 그리고 5월부터 10월까지는 모두 평년과 완전히 일치하는 월평균 기온을 기록하여 당시 기준으로는 가장 평범한 해였으나 현대 기준으로는 저온에 속하며, 11월은 추웠지만 12월은 매우 기록적인 초이상 고온을 보였다. 또한 서울에서 2023년까지 마지막으로 9월에 폭염 일수를 기록한 해였다.- 1월 하순~2월 상순[342] - 서울의 1월 평균 기온은 -4.5℃로 전년도 12월보다 높고 평년과 거의 비슷했지만, 1월 20~21일에 고온이 찾아온 이후 1월 25일부터 강한 한파가 시작되어 1월 27일에 최저 기온이 2016년 1월의 최저 극값과 같은 -18.0℃를 기록했다. 비록 전년도 12월보다 월평균 기온은 높았지만 최저 기온 극값은 더 낮았다. 그리고 2월 상순의 경우도 2월 3일에 -15.8°C까지 떨어지는 등 전년도 만큼 추운 날씨가 이어졌지만 중순부터는 추위가 약해지고 기온이 점차 오르며 겨울이 끝났다.
- 5월 - 서울 월평균 기온은 16.0℃로 평년보다 조금 낮았지만, 상순부터 최저 기온이 한 자릿수를 기록하며 다소 추웠고 5월 15일에는 6.4℃까지 떨어졌다. 하순에도 저온은 계속되었는데, 5월 26일에 8.4℃까지 떨어졌으며 6월 1일에 9.7℃를 기록한 이후로 더워지기 시작했고 여름철에는 저온이 거의 없었다.
- 11월 - 서울 월평균 기온이 5.1℃로, 11월이 지금보다 추웠던 1940년대 기준으로도 평년보다 1℃ 정도 낮았다. 월평균 최저기온은 -0.4°C로 상당히 낮았다. 상순과 중순에는 특별히 낮은 기온은 없었지만 하순에 갑자기 추워지며 11월 28일에 -8.7℃, 11월 29일에 -8.5℃를 기록하였다.[343]
6.10. 1949년
1월과 2월에 한파가 찾아오기는 했으나 평년보다 높았고 3월도 그리 낮지 않았으며 봄철은 4월을 제외하고 평년과 비슷했다. 여름철에는 다른 해와 마찬가지로 폭염이 있었으나 의외로 6월은 저온을 보인 날들이 많이 있었고 8월에는 37℃를 넘는 강력한 무더위가 찾아와서 현대의 평년과 비슷할 정도로 높았다. 대신 9월부터 11월까지의 가을철은 고온이 심하지 않아 평년보다 조금 높아도 비슷한 범위였고 12월도 일부를 제외하면 뚜렷한 한파가 없었다.이해는 서울에서 가뭄이 일어난 해인데, 연 강수량이 623.9mm에 불과해 1907년 공식 기상 관측 이후 역대 최소를 기록했다.
- 6~7월 울산 - 6월 5일만 해도 28.3℃였던 기온이 급강하하여 6월 6일부터 6월 11일까지 서늘한 날씨가 찾아왔으며, 6월 12~14일에는 다시 28℃를 넘겼으나 6월 15일에 다시 21.8℃로 하강했고, 6월 16~17일에는 다시 25℃를 넘어갔지만 6월 18일부터 7월 14일까지 거의 한 달 내내 서늘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7월 31일에도 24.7℃까지 급강하했다. 결국 5월 평균 최고 기온(23.5℃)보다 6월 평균 최고 기온(22.4℃)이 더 낮은 기현상이 발생했으며, 월평균 기온을 비교해도 각각 5월 17.8℃, 6월 18.7℃로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7월도 상순의 이상 저온의 여파로 월평균 기온 23.1℃를 기록. 8월에는 그맘때 기온을 기록했으나, 8월 18일과 8월 30일에 최고 기온이 24℃대까지 떨어졌다.
앞서 설명한대로 서울에서도 6월에 일부 이상 저온이 발생했는데, 6월 7일에는 최고 기온이 18.0℃밖에 되지 않았고 6월 11일의 최저 기온은 10.9℃로 매우 낮았다. 하지만 남부 지방인 울산에서 이상 저온을 보였던 6월 중하순에 정반대로 서울에서는 폭염이 찾아와 6월 20일에 무려 36.0℃까지 올라갔다. 아이러니하게도 한여름을 연상케 하는 이 폭염은 다음 날에 곧바로 꺾였고 다시 이상 저온이 시작되어 6월 23일에 14.3℃까지 하강했으며, 7월을 하루 앞둔 6월 30일에는 최고 기온조차 20℃를 간신히 넘길 정도로 시원했다. 다행히 7월에는 폭염이 찾아왔지만 기온이 그렇게까지 높게 오르지는 못했으나, 8월에는 초중순부터 끝도 없이 기온이 올라가더니 광복절이 되자 현대에도 식겁할 정도의 무더위가 찾아왔다. 폭염/사례 문서 참조.
7. 1950년대
1940년대에 비하면 전반적으로 겨울이 포근해져서 연평균 기온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한 년대이다. 다만 현대(1991~2020년) 기준으로 본다면 당연히 매우 추운 편으로 1월 평균기온이 -5~-6℃를 기록한 해들이 많았다. 다만 1월은 -6.0°C가 가장 낮으며 12월은 1951년, 1953년, 1955년, 1958년, 1959년이 이상 고온이 심했고[344], 2월도 1959년이 이상 고온이 심했다. 반면 여름은 1940년대의 고온 경향을 이어받아 6.25 전쟁 때(1950~1953년)까지 매우 더웠다가 1954년, 1956년, 1957년처럼 시원한 여름이 나오기도 했다. 그래도 1959년까지는 전반적으로 더웠다.7.1. 1950년
여름철의 폭염이 강한 해이며, 1~2월은 한파가 찾아온 기간을 제외하면 따뜻했고 3월부터 5월까지의 봄철도 평년의 기온을 크게 웃도는 등[345] 이상 고온을 보였다. 그나마 가을철은 평범했고 9월과 11월은 당시 기준으로도 이상 저온이었지만 12월은 춥지 않았다. 서울 연평균기온은 12.1°C(추정)로 당시 기준 1914년을 제치고 가장 높았다.6.25 전쟁의 여파로 이해부터 중부 지방의 기상 관측이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가, 1951~1953년 사이에 재개되었다.[346]
- 1월 상순 - 서울에서 1월 6일 최저 기온 -16.2℃를 기록했고 최고 기온마저 -10.8℃에 그쳐 일평균 기온이 -14.2℃를 기록했으며, 1월 7일의 최저 기온은 무려 -18.0℃로 강력한 한파가 찾아왔다. 그러나 중순부터는 최저 기온마저 영상으로 올라가고 이상 고온을 보여 마치 2021년 1월을 연상케 했고 하순에는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폭우가 내리는 등 여러모로 특이한 양상을 보여주었다.
- 3월 일부[347] - 전술한대로 이해 1월과 2월은 일부 기간을 제외하면 한파가 약세를 보였으나, 3월에는 꽃샘추위가 강력했다. 3월 8일의 -5.0℃를 시작으로 3월 13일까지 계속 -5℃ 이하의 기온이 관측되었으며, 특히 3월 11일에는 최저 기온이 아닌 최고 기온이 -5.2℃에 그쳐 공식 기록상 역대 가장 늦은 꽃샘추위로 남게 되었다.[348] 다음 날인 3월 12일은 최저 기온마저 -9.3℃로 -10℃에 가까웠다. 3월 17일부터 풀리는 듯했으나 다시 3월 20일부터 3월 22일까지 사흘 동안 기온이 내려갔다. 그러나 정작 서울의 3월 평균 기온은 4.6℃로 당시의 평년보다 높아서 오히려 이상 고온에 가까운 수준이었는데, 비록 이 문단에서 꽃샘추위를 강조하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이상 고온을 보인 날이 종종 있었고[349] 하순에는 꽃샘추위가 물러가고 이상 고온이 매우 강해서 3월 23일부터 3월 31일까지는 대부분의 날이 최고 기온 17~20℃를 기록한 것은 물론 3월 30일에는 21.9℃로 현대에도 초이상 고온에 속할 정도의 날씨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 5월 일부[350], 6월 - 이 기간 동안에는 기온이 매우 변덕스러웠다. 5월 20일에는 최고 기온 11.3℃, 5월 21일에는 최저 기온 7.4℃를 기록할 정도로 이상 저온이었다. 그러나 열흘이 지난 5월 30일에는 34.4℃[351]5월 역대 최고 기온이다.]의 폭염이 찾아왔는데, 이것도 잠시 6월 8일에는 크게 낮아져 최고 기온 17.9℃의 이상 저온이 다시 발생했다. 그리고 6월 15일에 곧바로 32.5℃까지 올라 2차 폭염으로 여름이 시작되나 싶었지만, 6월 20일에 다시 급락해 최고 기온이 19.9℃로 20℃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나마 6월 하순~7월 상순에는 기온이 올라도 30℃를 넘는 폭염은 없었다가 7월 중순에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온다.
- 8월 하순 - 중순까지는 몇몇 날에 최고 기온이 36℃를 넘기며 2016년 8월을 연상케 하는 어마어마한 폭염이 멈추지 않고 지속되었으나 처서인 하순부터 기온이 약간 내려갔다. 하지만 이때도 최고 기온은 여전히 33℃에 근접할 정도로 더웠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최저 기온이 매우 낮게 내려가서 8월 24일은 15.2℃까지 떨어졌고 나머지 날들도 최저 기온 한정으로 이상 저온이었다. 8월 중순까지만 해도 최저 기온이 24~26℃였던 것을 보면 사실상 하순부터 폭염이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한 것으로 보아도 될 듯하다. 추가로 9월 평균 기온은 19.7℃로 약간 선선한 날씨를 보였는데, 안타깝게도 서울은 6.25 전쟁으로 9월 1일부터 기상 관측이 잠정 중단되어서 이후의 날씨를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9월의 상세한 날씨는 폭염/사례 문서에 추측을 기반으로 서술된 내용이 있으니 참조하기 바란다. 여담으로 1950년 8월은 역대 서울 일조시간 1위(318.9시간)인 달이다.
- 11월 중순 - 11월 15일에 부산이 -6.5℃, 대구가 -7.7℃를 기록했으며, 강릉 역시 11월 14일과 11월 15일에 각각 -7.6℃, -7.4℃를 기록하였다. 강릉과 비슷한 위도에 위치한 서울의 경우 이 당시 기상 관측이 끊겨서 공식 자료를 조회할 수 없지만, 미군에 의해 비공식적으로 관측된 기록에 따르면 11월 15일 서울 최저 기온이 -9.8℃였다고 한다. 남부 지방 뿐만 아니라 서울, 강릉 등의 중부 지방에서도 웬만한 한겨울에 찾아올 만한 추위가 11월 중순에 찾아온 셈이다.
7.2. 1951년
4월, 9월이 심한 저온이었고 2월, 3월도 저온이었으나 7월, 12월은 고온이었고 특히 8월은 상당한 고온이었다. 서울 연평균기온은 11.3°C로 추정된다.- 3월 상순 - 3월 1~4일 사이에 한파 현상이 발생했으나, 서울과 인천은 전란 중이라 비공식 기록마저 전무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서울, 인천도 아닌 수원[352]-23.1℃까지 내려간 것을 포착한 것도 바로 이 비공식 기록이다.]에서 비공식 기상 관측을 시행했던 자료가 남아 있는데, 자료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2월 하순에 따뜻했던 날씨는 3월 1일로 넘어가자마자 거짓말같이 기온이 수직 하락하였다. 3월 1일 1.3℃/-8.1℃, 3월 2일 -5.3℃/-10.9℃, 3월 3일 -0.9℃/-12.6℃[353]-13~-14℃에 이르는 한파가 들이닥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서울의 3월 역대 최저 기온 2~3위에 드는 기록이다.][354]아무리 높아도 -12.9℃를 못 벗어났고, 대략 -13.1℃~-13.3℃ 언저리였다는 말이 된다. 이는 1936년 3월 3일(-12.2℃)를 뛰어넘는 수치이고, 게다가 미군의 기록은 서울보다 수원이 1℃씩 더 높게 측정되는 특유의 패턴이 있어서 -13℃ 중반까지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그야말로 전란 때문에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을 뿐이지 그야말로 1936년 3월 이후로 가장 매서운 3월 초 한파였던 듯.]였다고 하며, 단 나흘간의 한파가 휩쓸고 지나간 뒤 다시 평년의 기온을 회복했다고 한다. 이것을 바탕으로 추측해보자면, 서울과 수원은 공식 기록으로도 형제처럼 기온이 비슷하게 흘러가는 경향이 있어서 서울 역시 수원의 기온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저 기록을 서울에 대입시켜보면, 역대 3월 2일 최고 기온(MIN)[355]과 역대 3월 3일 최저 기온(MIN)[356]의 공식 극값 기록보다 낮은 것이 된다. 그 외로 따뜻한 날이 그렇게 많지 않다 보니 서울과 수원도 월평균 기온이 2.5~2.7℃ 사이로 추정된다.[357] 이 사이트[358]에는 서울의 1951년 3월 평균 기온이 2.9℃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사이트 특유의 오차를 고려하면 이보다 약간 낮은 2.5~2.7℃일 가능성이 있다.
- 4월 - 수원의 비공식 관측 기록상 월평균 기온이 9.6℃에 불과했다. 4월 13일 아침에 -0.3℃를 기록했고, 서울 역시 월평균 기온 9.4~9.7℃ 사이로 추정된다. 앞서 제시한 러시아 사이트에도 9.7℃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아 거의 확실하다. 이렇게 되면 2010년, 1956년 4월 다음으로 세 번째로 늦은 9℃대가 된다.
- 9월 - 서울의 월평균 기온이 18.9℃였다고 한다. 이 사이트 특유의 오차를 고려하면 18.7~19.3℃ 사이인데, 1931~1960년 기준 9월 평균 기온으로 치면 1.3℃ 낮고, 순위는 1957년과 같은 역대 최저 3위이다. 그러나 미군이 관측한 1951년 9월의 평균은 19.4℃이다. 실제 비공식 기록으로도 9월 16일 서울의 최고 기온이 16.3℃에 불과했다고 한다.[359] 부산도 월평균 기온이 20.1℃로 상당히 저온이었다.[360] 정작 대구는 21.3℃로 평범하거나 조금 높았다. 북한 신의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 단둥에는 월평균 기온 15.9℃로 1957년 9월과 함께 역대 최하위이다.[361] 아마 한반도 북쪽에 한기가 밀집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7.3. 1952년
2월, 12월은 상당한 저온이었다. 반면 7월은 고온이고 5월은 초고온이었다. 서울 연평균기온은 11.7°C로 추정된다.- 2월 -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해 2월도 한파가 꽤나 강했다. 전년도 10월부터 관측이 재개된 인천을 통해 서울의 한파를 유추하는 것이 가능한데, 1월은 한파가 찾아와도 평년보다 기온이 낮지 않아서 인천의 월평균 기온은 -2.5℃였다.[362] 그러나 2월 첫째 주를 시작으로 1월을 능가하는 강한 한파가 찾아와 2월 3일에 -14.1℃를 기록하였다. 같은 날 서울은 -15℃ 이하로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 한파는 하순까지 계속되어 인천의 최저 기온은 2월 17일, 2월 19일, 2월 23일에도 -10℃에 가까울 정도로 낮았고 서울 역시 2월 중순~하순에 -10℃ 이하를 꾸준히 기록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2월 한 달 동안 이상 고온이 거의 전무하다 싶을 정도로 없었는데, 기온이 가장 높았던 2월 14일에도 인천의 최고 기온이 8.7℃에 불과했고 나머지 날들은 6℃를 넘은 날이 하루도 없었다. 이렇게 따뜻한 날씨 없이 지속된 한파로 인해 인천의 월평균 기온이 -3.1℃로 매우 낮았으며, 서울도 -3.1℃를 기록했다고 하지만 이 사이트의 오차를 고려하면 실제로는 -3~-3.5℃에 달하는 월평균 기온을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4월 일부 - 인천 기준으로 4월 5일~14일에는 전반적으로 따뜻했으며 특히 4월 10일에 갑자기 최고 기온이 24.2℃에 이를 정도로 따뜻하다 못해 약간 더웠으나, 그 뒤로 기온이 하강하여 4월 15일 최고 기온이 9.8℃에 그쳤으며, 이후 4월 18일에 일시적으로 한기가 내려왔는지 4월 19일 최고 기온이 6.9℃에 그쳤다. 최저 기온 역시 3.3℃에 불과해 딱 4월 상순의 최저 기온과 비슷했고, 그 다음 날인 4월 20일에는 아예 1.5℃까지 하강했다.[363] 2020년 4월을 연상하게 하는 부분인데, 옆 지역인 서울 역시 인천처럼 한기의 영향을 받아 크게 추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 뒤 기온이 올랐다가 다시 내려가서 4월 26일에도 최고 기온이 10.7℃에 그치기도 했다. 강한 고온과 강한 저온이 함께 나타난 달인 만큼 인천 월평균 기온은 10.0°C로 평년과 비슷하였다.[364] 5월에는 최저 기온이 한 자릿수인 날이 하루[365]에 불과할 정도로 기온이 올라가서 초이상 고온을 보였다.
- 12월 상순 - 서울의 월평균 기온이 -2.0℃이다.[366] 비공식이지만 12월 3일에는 서울 최고 기온이 -5.9℃, 최저 기온이 -12.6℃를 기록했다는 자료가 존재하며, 같은 날 인천도 최고 기온 -5.5℃, 최저 기온 -12.8℃를 기록하여 12월 상순의 한파로서는 매우 강했다. 그러나 12월 6일부터는 한파가 풀려 영하 한 자릿수를 유지하다가 월말에 다시 추워졌으나 상순의 한파보다도 약했다.
7.4. 1953년
2월, 11월은 저온이지만 여름철(5~10월)을 중심으로 고온 현상이 잦아서 서울 연평균기온은 11.9°C(추정)로 상당히 높았다.- 1월 - 미군에서 실시한 비공식 관측상 월평균 기온 -4.9℃. 비공식보다 조금 낮은 것을 감안시 -5도 이하이다.
- 2월 - 미군에서 실시한 비공식 관측상 월평균 기온 -2.7℃.[367] 입춘 무렵에 -14.8℃[368]나 되는 강추위가 있었으며, 2월 중순과 하순 초에도 제법 강도가 쎈 추위가 한차례 있었다. 한편 양상을 살펴보면 2022년 2월과 일정 부분 일치한다.[369]
- 11월 - 비교적 더웠던 10월을 뒤로 하고, 11월은 그와 반대로 이상 저온이 심했다.[370] 비공식 기록상 서울의 월평균 기온이 5.0℃였으며, 월 전체를 통틀어 최고 기온 극값이 16.9℃에 불과할 정도였고, 11월 20일에는 -5.9℃까지 하락.[371] 희한하게도 12월 1일 최고 기온(16.2℃)[공식]이 11월 1일 최고 기온(11.3℃)[비공식]보다 5℃ 가까이 높다.
7.5. 1954년
1월은 초이상 고온을 보여 서울 월평균 기온이 -1.5℃로 당시 평년치보다 3℃ 가량 높았으며[374] 2월도 평년보다 높아 이상 고온에 폭우까지 내렸으나, 6~7월, 10월, 12월은 이상 저온을 보였다. 겨울철과 여름철의 기온 분포가 전체적으로 2020년과 비슷한 해이다.[375]- 6~7월 - 서울의 6월 평균 기온이 19.6℃로 역대 최저 2위, 심지어 7월 평균 기온은 21.9℃로 역대 최하위이다.[376] 6월 상순 평균 기온이 17.1℃로 하위 1위이며, 7월 12~13일에는 기온이 가장 낮아서 13.8℃, 13.6℃로 매우 경이로운 이상 저온을 보여주었고 6월과 7월을 다 합쳐서 30℃를 넘긴 날이 단 4일[377] 뿐이었다. 광주 등 남부 지방에서도 7월 평균 기온이 낮게 기록되었다. 연중 가장 더운 시기인 7월 29일에도 최저 기온이 19.1℃를 기록하는 등 저온이 심했고, 결국 7월 하순 평균 기온은 23.1℃로 역대 최저 2위를 기록하고 말았다. 추가로 8월도 시작은 이상 저온이어서 8월 1일 최저 기온이 16.9℃였고 다음 날인 8월 2일에는 최고 기온이 21.2℃일 정도로 무더위를 상실한 여름이었지만 초중순부터 그럭저럭 폭염이 찾아오며 평년에 가까워졌다.
- 10월 - 서울 월평균 기온 12.5℃. 10월 3일과 10월 6일은 최고 기온이 각각 16.5℃, 15.2℃였고, 10월 4일은 최저 기온 4.4℃를 기록했다. 이상 저온은 상순으로 끝나지 않아서 10월 12~13일도 1.0℃, 1.2℃까지 내려갔다. 하지만 그 이후로 기온이 많이 올라갔고 11월은 이상 고온이 심각했다.
- 12월 - 서울 월평균 기온 -2.7℃. 최저 기온 극값은 -12.5℃[378]로 기록적이지는 않으나 한 달 내내 약한 한파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월평균 기온이 낮게 나왔다.[379]
7.6. 1955년
겨울철의 한파가 다소 강했으며 5월과 10~11월도 평년보다 낮았다.- 1월, 2월 하순 - 서울의 1월 평균 기온 -5.6℃로 평년보다 확연히 낮았다. 최저 기온 극값은 1월 11일의 -17.2℃. 다만 1월 하순부터 날씨가 풀리기 시작했고 2월까지 이렇다 할 추위는 없었으나 2월 하순에 다시 한파가 휘몰아쳐 2월 21일에 -14.2℃를 기록했다가 곧바로 따뜻해졌다.
- 5월 - 서울 월평균 기온 15.9℃이다. 시작부터 추운 것은 아니었는데, 5월 10일에 뜬금없이 29.0℃까지 치솟는 이상 고온을 보였으나 다음 날인 5월 11일에는 최저 기온이 한 자릿수로 내려갔고 최고 기온도 15.3℃로 하루 만에 14℃ 가까이 급강하하는 반전이 일어났다. 그리고 나머지 기간도 기록적인 이상 저온은 없었지만 평년보다 낮은 기온이 주를 이루어[380] 월평균 기온이 다소 낮았다.
7.7. 1956년
1917년처럼 강한 슈퍼 라니냐의 영향으로 세계도 연평균 기온이 매우 낮았으며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보다 더 춥고 해방 이후로 1947년과 같이 역대급으로 이상 저온이 강력했다. 서울 연평균 기온도 10.113℃로 전술한 1912년, 1934년과 공동으로 역대 최저 4위이며, 이상 고온 자체가 없이[381] 연도 대부분[382]이 평년보다 낮아서 1년 사계절이 전체적으로 추운 날씨를 보였다.- 1월 - 라니냐의 해이지만 의외로 1월은 그리 강력한 한파가 없었다. 1월 9일의 -15.7℃가 가장 낮은 기온이었으며, 남은 1월도 이상 고온은 없었지만 한파도 약해서 월평균 기온은 -3.9℃로 평년보다 약간 높았다.
- 2월 - 1월에는 그럭저럭 평범했으나 2월에는 상당한 추위가 찾아왔다. 서울 월평균 기온 -3.4℃를 기록했으며, 상순부터 영하 두 자릿수를 기록하며 춥더니 중순에는 한파가 더욱 강해져 2월 17일에 최저 기온이 -13.1℃까지 하강하기도 했다. 라니냐의 영향으로 같은 시기 유럽에서는 더 심각한 한파가 찾아왔는데, 자세한 내용은 한파/사례 문서 참조.
- 3월 중순 - 이상 저온이 강하게 찾아온 다른 해 3월과 달리 이해에는 상순에 -10℃ 이하를 기록하지 않았고 월평균기온도 3.7°C로 평년과 비슷했지만, 3월 12일에 -8.5℃로 매우 강력한 꽃샘추위를 보였다.
- 4월[383] - 서울의 월평균 기온이 9.5℃이다. 4월 2일의 최고 기온이 5.5℃에 불과했고, 남은 4월도 최고 기온 극값이 계속 21.4℃[384]에서 오르지 못했으며, 최저 기온도 4월 하순임에도 3.3℃[385]에 이르는 추위가 찾아왔다.[386] 특히 4월 15일에 최저 기온 11.1℃를 기록한 후, 다시 두 자릿수를 기록하는 날이 5월 15일, 즉 5월 중순이므로 한 달 뒤이다. 다시 말해, 4월 16일부터 한 달 동안 최저 기온이 한 자릿수로 도배된 셈이다. 이렇듯 서울은 저온이 심했지만 의외로 동해안과 남부 지방은 저온이 상대적으로 약해서 평년보다 조금만 낮았다. 제주도는 오히려 평년보다 조금 높았다. 그리고 1956년 4월 이후로 더 이상 월평균 기온이 한 자릿수를 기록하는 사례가 없을 듯했으나, 54년 뒤인 2010년 4월이 한 달 내내 꽃샘추위가 불어댄 끝에 1956년 4월과 같은 월평균 기온을 기록하고 만다. 숫자상으로는 같지만, 시대를 감안한다면 1956년 4월의 경우 2010년보다는 2011년에 가깝다.
- 5월[387] - 5월 2일 최고 기온이 15.3℃, 5월 10일에는 14.6℃를 기록했으며, 5월 25일에 최고 기온이 16.4℃까지 굴러떨어졌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4월 중순부터 계속된 한 자릿수 기온이 5월 중순까지 한 달 동안 계속되었다. 이렇게 되어 서울의 월평균 기온이 15.1℃로 매우 낮았으며 1956년 5월 이후로 여전히 이보다 낮은 월평균 기온을 기록하는 해가 나오지 않고 있다. 다만 동시기에 강릉과 울릉도는 평년보다 오히려 높았다. 아마도 4~5월간 북서풍의 영향으로 추정된다.[388]
- 6월 - 서울 월평균 기온 19.7℃. 6월 17일 최고 기온이 17.9℃였으며, 이해는 사실상 6월까지 봄이었다. 하순에는 더 기록적으로 낮았는데, 6월 24일 최저 기온이 12.4℃까지 내려갔고 나머지 날들도 13~15℃인 날이 많았으며 6월 26일은 최고 기온이 20℃ 이상으로 오르지도 않아서 17.4℃를 기록했다.
- 9월 일부 - 중간에 최고 기온이 20℃를 넘지 못하는 날이 있었다.[389] 특히 하순은 최저 기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는 등[390] 이상 저온이 심각했다. 그래도 월평균 기온은 20.4℃로 평범했으며 6월보다 높았다. 진짜 이상 저온은 다음 해에 찾아오게 된다.
- 10월 - 앞서 9월에 이상 저온이 마무리되고 10월 시작부터 기온이 매우 낮았지면서 10월 3일에는 4.4℃까지 떨어졌다. 이에 그치지 않고 중순에는 더 강한 한기가 내려오면서 전국적으로 최저 기온이 5℃ 아래로 떨어지는 저온 현상이 찾아왔다. 10월 12일 서울의 최저 기온이 2.5℃였고, 대구 2.7℃, 광주도 3.8℃까지 떨어졌으며, 10월 13일에는 대구의 최저 기온이 3.3℃였다. 10월 19일에는 더 낮아져 서울과 인천의 최저기온이 공동으로 1.9℃를 기록했고, 전주 2.6℃, 강릉 4.8℃ 등을 기록했고, 추위의 절정인 10월 20일에는 서울 아침 최저 기온이 급기야 -1.1℃까지 떨어지며 10월 중순에 영하의 날씨가 찾아왔다.[391] 전주에서도 -0.7℃로 영하권을 기록했으며, 인천 0.5℃, 대구 0.7℃, 광주도 3.1℃까지 떨어졌다. 결국 서울 기준 월평균기온 12.8℃로 다소 낮았다.
- 11월 - 서울 월평균 기온 3.2℃로 역대 최저 3위이다. 11월 2일에는 기온이 20.6℃로 오르는 등 다소 이상 고온을 보였으나 11월 4일부터 기온이 떨어지는 듯하더니 11월 6~8일에는 강한 저온이 왔다. 11월 7일 서울 최저 기온 -2.7℃에 최고 기온이 9.9℃를 기록하여 낮 최고 기온도 한 자릿수에 머무르는 추위가 왔다.[392]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중순으로 접어들자 최저 기온 영하의 날씨가 며칠씩이나 기록되었고 11월 15일부터는 더욱 맹렬해져 11월 16일에 최저 기온 -7.9℃, 최고 기온도 -0.2℃로 영하권이었다. 11월 15~17일까지 모두 최고 기온이 0℃ 전후에 머물렀다.[393] 심지어 하순은 최저 기온이 모두 영하였으며, 추위는 11월이 끝나갈수록 더욱 강력해져 11월 25일 -7.8℃, 11월 28~30일에는 최저 기온 -7~-8℃의 기온이 연속으로 기록되어 일제강점기와 동급일 정도로 추운 11월을 보냈다. 11월 28일 최저 기온 -8.8℃로 극값을 기록했고 11월 30일의 최고 기온은 -0.8℃를 기록했다. 이 영향으로 1956년 11월 하순 평균 기온이 -1.2℃로 하위 2위이다.[394]
- 12월 - 서울 월평균 기온 -5.3℃로 역대 최저 4위이다.[395] 12월 시작은 11월 하순의 추위가 살짝 나아지면서 그래도 평년과 비슷했으나 12월 4일부터 슬그머니 추워지기 시작, 바로 -10℃ 이하의 장기 한파가 닥쳐 12월 9일부터 -14.1℃, 12월 10일은 -15.0℃를 기록하였고 중순 중심으로 매우 추워 12월 8일부터 12월 25일까지 단 하루도 최고 기온이 영상으로 오르지 않고 12월 23일을 전후로 마지막 한기가 남하해 12월 23일에는 -15.1℃로 최저 기온 극값을 기록했다. 12월 치고 매우 기록적인 혹한은 12월 26일이 지나자 풀렸으나 그래도 이전의 한파와 이상 저온이 워낙 길었기 때문에 월평균 기온이 순위권에 들 정도로 매우 낮았다. 그래도 다음 해 1월은 평범했...으나 2~3월은 이상 저온이 심각했다.
7.8. 1957년
전년도의 강력한 라니냐의 여파로 인해 이해도 심한 이상 저온이 길게 이어졌으며 11월에 들어서야 그나마 이상 저온이 풀렸다. 역대 최저 1위를 기록한 달은 없었지만 극값 순위에 당당히 등장하는 달이 많았고 나머지 달들도 10월까지는 월평균 기온이 매우 낮았다. 서울 연평균기온은 10.516°C이다.- 2~3월 - 1월은 평범했으나 2월은 한파가 강했는데, 서울 월평균 기온이 -4.3℃[396]로 역대 최저 5위에 랭크되었다. 특히 2월 9~13일 한파가 매우 기록적이었는데, 2월 9일에 최저 기온이 -14.0℃로 전날보다 10℃ 이상 급강했고 2월 10일에는 -15.8℃, 2월 11일에는 무려 -17.3℃로 입춘이 일주일이나 지났음에도 매우 경이적인 한파를 보여주었다. 2월 19일의 -13.4℃를 끝으로 한파는 서서히 종적을 감추었지만 여전히 평년보다 추웠고, 3월은 1915년 3월의 상위호환(...) 격으로 꽃샘추위가 찾아왔다. 3월 상순부터 최고 기온마저 -2℃에 가까운 날씨를 보이더니, 3월 12일과 3월 13일에는 최저 기온이 -9.4℃, -9.5℃까지 떨어졌다. 바로 1년 전 이날에 -8℃까지 떨어지더니, 그것도 모자라 바로 1년 뒤에 또 경신해버린 셈. 그 뒤로도 줄곧 영하권의 날씨를 기록, 4월 4일의 -0.8℃를 끝으로 4월 5일부터 최저 기온도 영상권에 진입했다. 결국 3월 평균 기온은 0.0℃[397]1월과 같은 월평균 기온이다(...). 일제강점기 1월에 나타난 월평균 기온이 이해 3월에도 나타나고 만 셈. 다만 1916년 1월은 일제강점기임에도 불구하고 이상 고온이 매우 심했고, 현대와 비교해도 이상 고온에 속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로 역대 최저 2위이다.
- 7월~8월 - 서울 월평균 기온이 각각 22.4℃, 24.1℃이다. 6월 하순에 폭염이 일찍 찾아와서 32.5℃까지 올랐지만, 7월 2일부터 곧바로 급락하더니 중순까지 최고 기온은 몇몇 날을 제외하면 높아도 25~26℃대에 머물렀고 최저 기온도 빈번하게 20℃ 이하로 내려갔다. 하순에는 어느 정도 여름에 가까워져서 28~31℃까지 올랐지만, 그마저도 7월 하순이라는 시기를 감안하면 이상 저온에 속한다. 심지어 1년 중 가장 덥다는 8월 상순에도 무더위가 거의 없다시피할 정도로 시원했고, 단 이틀을 제외하면 폭염일수를 기록한 날이 하루도 없었다. 심지어 반짝 더위가 찾아온 8월 10~11일도 33.5℃로 간신히 폭염일수를 기록할 뿐이었다. 여기에 7월부터 8월까지의 한여름 기간 동안 최저 기온도 꾸준히 낮아서 열대야는 둘째 치고 아무리 높아도 24℃ 이상으로 오르는 날이 없었고, 20℃ 이하로 내려간 날이 28일[398]로 거의 절반에 달한다. 한낮에도 높게 오르지 않는 것은 물론 밤이 되어 선선하게 내려가는 기온의 영향으로 이해 7~8월은 폭염 없이 서늘한 여름으로 남았다. 그리고 이 이상 저온은 그대로 9월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 9월 - 서울 월평균 기온 18.9℃로 1929년 9월과 0.1℃ 차이로 높지만 역대 최저 3위이다. 특별하지는 않은 듯하지만 9월은 편차가 작은 달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이상 저온이고, 웬만한 일제강점기보다도 낮았으며 최저 기온이 떨어지는 속도는 1912년, 1929년보다는 크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딱히 이상 고온도 없었으며 평년과 비슷하거나 낮은 상태가 9월 하순까지 지속되다 9월 하순부터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져서 9월 27일 최저 기온이 6.6℃에 불과했으며 9월 30일에는 최고 기온 17.8℃로 기온이 눈에 띄게 하강했다.
7.9. 1958년
전년도와 전전년도의 강한 이상 저온만큼은 아니라 고온도 많이 있었지만 1월, 8~10월이 이상 저온이었다. 특히 1월의 한파와 8월의 저온 현상이 매우 강했다. 하지만 11월 이후에는 평년보다 매우 높아 12월은 당시 평년치보다 5.5℃ 높은 초이상 고온을 보였다.- 3월 1일~3월 4일, 3월 27일~4월 19일[399] - 3월 1일 기온 급강하를 시작으로 2일 최고 -4.1℃에 그치는 추위가 발생했으며[400], 다음날 아침에는 -11.2℃까지 내려앉았다. 전체적으로 7년 전인 1951년 3월 1일~4일과 놀랍도록 똑같았다. 3월 26일에 최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등 조짐을 보이더니 3월 27일부터 영하의 꽃샘추위가 시작되었고, 특히 28일에는 최고기온이 0.2℃[401]에 불과했다. 3월 29일, 3월 30일에는 최저 기온이 각각 -6.7℃, -5.6℃까지 떨어졌다. 이 영하의 꽃샘추위 자체는 4월 1일에 끝이 났지만, 4월 19일까지 최저 기온은 쌀쌀한 수준을 유지했고, 4월 16일에는 최고 기온이 9.7℃까지 떨어졌다. 4월 20일부터 이상 저온이 끝났는데, 불과 며칠 만에 최고 기온이 25~27℃까지 올랐다. 더불어 5월에는 30℃ 근처까지 치솟을 정도로 더운 날이 많았으며, 6월은 7~8월보다 최고 기온 극값이 높은 폭염이 찾아오기까지 했다.[402] 오히려 7~8월 한여름에는 그리 심한 폭염을 보이지 않았고 이상 저온을 보였다.
- 7월 일부~8월 - 울산에서 7월 13일부터 7월 16일까지 최저 기온 19~22℃의 시원한 날씨가 찾아왔다.[403] 그 뒤 8월 6일부터 8월 13일까지 1주일 동안 시원한 날씨가 찾아왔다. 서울도 6월의 강한 폭염과 달리 7~8월은 폭염이 적었고 월평균 기온도 7월, 8월 각각 25.5℃, 23.8℃로 7월은 다소 높았으나 8월은 상당히 낮았다. 대구 역시 8월 5~9일을 제외하면 8월 폭염일수가 기록되지 않았으며, 8월 23일에는 최저 기온이 16.2℃까지 떨어졌고, 8월 28일부터 8월 31일까지는 아예 최고기온마저 20~22℃에 머무는 상당한 이상 저온을 보였다.
7.10. 1959년
- 1월 - 전년도 12월에 초이상 고온을 보인 것과 대조적으로 이해 1월로 넘어오자 연초부터 초강력 한파가 시작되어 1월 5일 서울 최저 기온 -19.8℃를 기록했다. 중순 초반에는 잠시 추위가 약해졌으나 중순 후반에 짧은 한파로 1월 17일에 -18.0℃까지 떨어졌으며 하순 들어 기온이 크게 올라서 결국 1월 전체 평균 기온은 -5.1℃로 당시 기준으로 크게 낮지 않았다.[404] 그러나 다음달은 다시 이상 고온이 나타나서 사실상 이때의 겨울은 짧고 굵은 셈이다.
8. 1960년대
비록 1963년 1월처럼 역대 1월 평균이 낮은 시기가 있었으나, 1960년대 전체로 치면 1월 평균기온이 대체로 -4도 전후로 평균 -4도대 후반 정도를 기록하던 일제 시절과 해방 직후보다 겨울이 조금씩 따뜻해지는 티가 나는 시기였다. 한파의 위력도 약해져 이전과 달리 한파가 와도 최저 기온이 -18°C대에 머물렀다.한편 겨울철의 혹독한 한파와 동시에 맹렬하게 타올랐던 여름은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예전보다 그 위력이 상당히 사그라들었다. 이 기조는 1990년대 초까지 계속되었으며, 이는 옛날 사람들로 하여금 60~70년대 여름이 더웠는지도 기억을 못 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한마디로 1960년대는 여름이든 겨울이든 그 기온 격차가 예전보다 작아졌다. 일교차 역시 이전보다 작아졌다.
또한 이 시기부터 봄철 기온이 오르기 시작했으며, 특히 1960년 3월, 1964년 4월, 1967년 5월처럼 지금 기준으로도 고온인 달들도 있었다.
8.1. 1960년
- 1월 하순[405] - 특이하게도 서울 월평균 기온은 -3.3℃로 당시 기준으로 평년보다 약간 높았지만 상순과 중순은 비교적 고온이었고 하순에만 유난히 한파로 뒤덮였다. 1월 21일 최저 -9.9℃로 한파의 시작을 알리더니, 한파가 극에 달한 1월 23~25일에는 최저 기온이 모두 -15℃ 이하를 기록했으며[406] 그 중 1월 23일에는 최고기온조차 -9.6℃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1월 21~31일 하순 평균 기온이 -7.5℃로 20세기에서 2번째로 낮았으며 그 유명한 2011년 1월과 거의 동급이다.[407][408]
- 7월 상순[409] - 울산에서 7월 6일부터 7월 10일까지 기온이 하강. 특히 7월 9일에는 최고 기온이 아예 20℃ 미만인 19.6℃였다. 또한 서울도 마찬가지로 저온이 찾아와서 7월 7~8일에 최고 기온이 22.3℃에 머물렀다. 그래도 7월 10일부터 기온이 오르기 시작해 7월 11일부터는 폭염이 찾아왔다.
- 11월 하순 일부[410] - 11월 중순까지는 큰 추위가 없었으나, 하순 중반부터 급격히 추워졌다. 특히 11월 26일에 -10.2℃, 11월 27일에는 -11.2℃까지 떨어지며 11월 하순에 이틀 연속으로 -10℃를 밑도는 강력한 11월 한파가 기승을 부렸다.
- 12월[411] - 서울 월평균 기온이 -1.9℃로 당시 평년보다 0.4℃[412], 현대 평년보다 2.1°C 낮았으며 2017년 12월과 같았다. 특히 하순 중심으로 강한 한파가 찾아와 하순 평균기온 -5.1℃로 평년보다 3℃ 이상 낮았다. 그 중에서도 12월 28일~31일에는 매우 강력한 한파가 찾아왔으며, 서울 기준 최저 기온 극값은 12월 30일의 -16.0°C였다. 그리고 같은 날 인천과 강릉에서도 각각 -14.3°C, -13.1°C를 기록하며 한파일수가 기록되었다. 이 때 대관령은 무려 -21°C라는 기록적인 추위가 나타났을 것으로 보인다.
8.2. 1961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1월 - 서울 월평균 기온 -5.2℃. 1월 5일에 -16.5℃, 중순까지 최저 -15℃ 이하를 빈번히 기록하는 등[413] 강력한 한파였지만 하순에 잠시 평년 수준으로 되돌아갔고 2월은 상순 초반에 강한 추위로 2월 1일 -14.2℃를 기록했으나 곧바로 평년의 기온을 회복하였다. 다만 이상하게도 한강은 결빙하지 않았다.[414]
- 5월 일부 - 5월 자체는 평년보다 낮지 않았으나, 5월 2일 최저 기온이 4.2℃에 불과한 기록을 세웠다. 이후 더 이상 4℃의 기온이 찾아오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5월 5일에도 5.9℃에 불과했다.[415] 하순에는 이례적이게도 여름이 다가오는 5월 하순이라는 시기에 태풍 '베티'가 영향을 주어서 서울 기준으로 5월 28~29일 최고 기온이 각각 20.8℃, 20.6℃에 불과했다. 이후 기온이 올라 5월 30일에는 최고 기온 27.1℃를 기록했으나 5월 31일에는 23.4℃를 기록하면서 평년보다 조금 낮았다. 물론 태풍 '베티'가 오기 전이었던 5월 26일에는 간신히 30℃를 넘긴 30.1℃로 반짝 더위가 있었으나 5월 28~29일 저온 현상이 존재함으로 서울은 17.3℃로 평년보다 조금만 높은 월평균 기온을 기록하였다.[416]
8.3. 1962년
봄철 저온 현상이 강한 해이다. 그러나, 이해는 한파 일수가 전혀 없었고 1월 최저 기온 극값도 -11.3℃[417][418]에 그쳤으며, 월평균 기온이 -3.4℃로 당시 평년치보다 1.3℃ 높았다.- 4월 - 서울의 4월 평균 기온이 10.0℃. 4월 18일에는 최저 기온이 0.7℃였고, 특히 4월 3일에는 최고 기온 1.5℃, 최저 기온 -3.5℃, 일평균 기온 -1.0℃라는 4월 중에는 전무후무할 기록을 세웠다. 당연히 4월 일평균 기온 순위 중에 가장 낮다.[419] 사실상 1915년 1월 한파의 4월 버전이라고 봐도 될 정도이다. 그 외에도 4월 4일에도 최저 기온이 -3.8℃인 등, 4월임에도 도통 겨울을 벗어나질 않는 날씨가 계속되었으며 결국 4월 5일이 돼서야 진정한 봄이 시작되었다..
- 6월 일부 - 5월 31일에 일사로 인해 크게 올랐던 기온은 6월 1~2일 사이에 비가 내리며 급락했다. 특히 6월 2일 서울의 최고 기온이 18.3℃에 그치며 평년 4월 수준의 날씨를 보였고[420], 현충일인 6월 6일에는 최저 기온이 11.2℃를 기록하며 평년보다 다소 낮은 기온을 보였다. 이후에는 평년과 비슷하게 가다가 6월 17일에 서울에서 32.4℃를 기록하는 등 중순 후반에 더위가 찾아왔으나, 6월 21일에 다시 강우로 인하여 20.9℃까지 급락했다.
8.4. 1963년
이해까지는 기상 관측 지점이 소수였으며, 겨울철의 한파가 매우 강하고 길었으나 그 기간을 제외하면 평년과 비슷하거나 높은 기온이 잦아서 별다른 특징이 없는 평범한 해라 서울의 연 평균기온은 11.312℃로 당시 평년과 비슷했다.[421] 반면 남부, 영동 지방은 연평균 기온도 매우 낮았다. 부산은 연 평균기온 13.2°C를 기록해 1980년보다 0.1°C 낮았다.- 1월 - 서울 월평균 기온 -9.2℃, 부산 월평균 기온 -2.2℃로 역대 최하위를 기록, 그 밖의 지역도 매우 기록적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한파/대한민국 문서 참조. 특히나 서울의 경우 1월 최저 기온 극값이 -18.4℃로 일제강점기 겨울들에 비하면 기록적으로 낮지는 않았지만, 낮 최고 기온이 극단적으로 낮은 날이 한 달 내내 이어져서[422] 월평균 기온 역대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러한 한파는 다음 달인 2월 상순까지 지속되었다. 재미있게도 1973년 1월의 경우 십의 자리만 하나 달라졌을 뿐인데 초이상 고온을 보였다.[423] 거기다 습도가 67.3%로 습도까지 높은 뼛속까지 어는 추위여서 한국의 겨울이 건조하다는 상식을 깨는 추위이며 체감온도는 더 낮아져서 추위지옥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 2월 - 서울 월평균 기온 -2.5℃. 2월 상순 초반에 강한 한파로 2월 1일에 -12.6℃, 2월 2일에 -12.1℃를 기록하였고, 이후 2월 중순~하순에도 고온 현상 없이 꾸준히 낮았다.
- 4월 일부 - 월평균 기온은 11.4°C로 당시 평년보다는 약간 높았지만, 상순 후반에 꽃샘추위가 찾아왔고. 잦은 흐린날씨와 비로 인해 평균 최고기온은 15.7°C로 다소 낮았다. 특히 4월 8~10일 서울의 최저 기온이 연속으로 1℃ 전후를 기록했고[424], 그 중 4월 8일에는 최고 기온이 불과 5.9℃에 머물렀다. 이 저온 현상은 4월 10일 오후부터 차츰 풀렸다. 그 밖에도 서울에서 4월 강수 일수가 가장 많았다.
- 6월 4~8일 - 이 기간 동안 흐린 날씨로 인하여 일사가 차단된 데다가 동풍의 영향까지 받은 강릉, 포항 등 동해안 지역에 일평균 기온 11~12℃로 4월 수준의 날씨가 나타났다. 특히 포항 이북 지역의 최고 기온은 더 심각한데 13~14℃로 아예 3월 하순 날씨를 보였다.[425] 이러한 저온 현상은 정확히 한 달 뒤인 7월 상순에도 찾아오게 된다.
- 7월 상순 일부[426] - 지난달 상순에 찾아왔던 동해안 지역의 이상 저온은 7월 상순에도 며칠 이어졌다. 특히 강릉의 경우 7월 5일 최고 기온이 아예 20℃ 미만인 19.3℃를 기록했고, 포항의 경우도 7월 6일에 20.9℃를 기록하며 평년보다 다소 낮았다. 대프리카로 유명한 대구에서도 이 기간에는 25~26℃ 전후를 기록하여 조금 선선한 날씨를 보였다.
- 11월 상순, 하순 - 11월 평균 기온은 6.5℃로 당시 평년치와 비슷하거나 약간 높았지만 상순 후반과 하순 중후반에 이상 저온이 있었다. 특히 12월 9~10일에는 이틀 연속으로 최저 기온이 -2℃ 이하를 기록했으며 이후 중순에는 이상 고온이 왔으나 하순에 다시 한기가 몰아쳐 11월 29일에는 -7.2℃를 기록했다.
8.5. 1964년
이 해는 2월의 강한 한파, 3월 중순, 11월 일부를 제외하면 현재와도 거리감이 없고 이상 고온이 강한 해이다. 봄철은 당시 평년보다 매우 높았으며, 여름철도 현대와 비슷하게 더웠지만 가을철도 뚜렷한 저온을 보이지 않았으며, 12월은 0.2℃로 1991~2020년 평년치와 같았지만 1월, 4~5월이 1991~2020년 평년치보다도 높아서 서울의 연평균 기온은 12.2℃로 당시 평년치보다 상당히 높았다.경기도 수원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427]
- 2월 - 1월은 2020년에 거의 맞먹을 정도로 이상 고온이 심해서 서울의 최저 기온 극값이 -8.2℃[428]에 불과했고 월평균 기온도 -0.1℃로 간신히 영하를 기록하는 등 이례적인 고온을 보였다. 하지만 2월 중순이 시작되자 기온이 급락해 한파가 찾아왔으며 특히 2월 12일의 최저 기온은 -15.0℃, 2월 13일에는 무려 -16.2℃를 기록해 1월 최저 기온 극값보다도 8℃ 이상 낮았으며 이 여파로 서울의 월평균 기온은 1984년 2월과 같은 -3.5℃를 기록하여 1월 평균 기온보다 3.4℃나 낮았다.
- 4월 강원도 영동 - 서울, 전주, 제주는 당시 기준 월평균 기온 역대 최고 1위일 정도로 이상 고온이 심했지만, 특이하게도 동해안은 기온이 낮았으며 강릉은 7.9℃로 1936년을 누르고 월평균 기온 역대 최저 1위이다. 동쪽과 서쪽 지역이 극과 극을 보이는 다이나믹한 현상이 나타났으며 당시 기준 월평균 기온 상위 1위와 하위 1위가 동시에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429]
8.6. 1965년
1월 한파가 다소 강했고 2월 상순까지 이어졌다. 입춘이 지난 후에는 그럭저럭 날씨가 풀렸으나 2월 하순부터 4월까지 이상 저온이 이어졌다. 5월에는 평범한 날씨를 보였으나 5월 하순에 이른 더위가 찾아왔고 6월에도 당시 치고 다소 높았다. 6월 하순~7월 상순에 35℃ 안팎의 폭염을 보였으나 이후 한여름에는 이상 저온으로 폭염이 없었다. 9~11월은 1981~2010년 평년과 비슷하고 시기 치고는 다소 온화했으나 가끔 저온과 고온이 있었고 12월 중순 이후 강한 한파가 왔다.- 1월 - 한파가 약했던 전년도 12월과 달리 갑자기 한파가 강해지면서 추웠다.[431] 1월 하순은 한파가 비교적 약했지만 2월의 시작과 함께 한파가 다시 강해졌다. 한파/대한민국 문서 참조.
- 3~4월 - 제주의 3월 평균 기온이 6.8℃. 3월의 이상 저온은 4월에도 이어져 월평균 기온이 11.2℃로 기록되었다. 서울도 3월이 2.7℃로 다소 낮았고 4월은 10.3℃로 조금 낮았다. 특히 3월 상순 중 서울에서 -5℃ 이하의 꽃샘추위가 찾아온 날이 절반 이상인 6일[432]이다. 4월에도 강력한 꽃샘추위가 이어져 4월 2일에 -1.3℃까지 떨어지며 1962년 이후 3년 만에 4월 영하권을 기록했다.
- 7~8월 - 인천에서 7월 2일에 31.5℃를 기록한 이후, 줄곧 30℃를 넘은 날이 없었다. 결국 7월 평균 기온 23.7℃, 8월 평균 기온 24.4℃를 기록. 그 밖의 지역도 폭염이 거의 전무했다. 서울은 6월 하순~7월 상순의 폭염으로 7월 2일에 35.4℃를 기록해서 35℃를 넘었고 폭염 일수가 5일이었으나 최저 기온은 낮아서 열대야를 기록하지 않았고, 한여름 이상 저온으로 열대야가 전무했다. 한여름에는 폭염이 전혀 없었다. 결국 7월은 2020년과 같고, 8월은 24.4℃로 매우 낮다.
- 9월 28~29일 - 비교적 평범했던 9월이지만 하순 후반에 잠깐 저온이 찾아왔다. 9월 28일 서울의 최저 기온이 10.0℃로 아슬하게 두 자릿수를 기록했고, 다음 날인 9월 29일에도 11.9℃로 평년보다 약간 낮았다.
- 10월 일부[433] - 10월 상순 초반에 잠시 늦더위가 찾아온 뒤 10월 8일부터 저온이 찾아왔다. 10월 8~9일에 서울 최저 기온이 연속으로 6℃대[434]를 기록했고, 이후 10월 12일까지 잠시 기온이 올랐다가 10월 13~14일 폭우가 내린 뒤 10월 15~18일에는 최저 기온 3~6℃, 최고 기온 12~17℃로 11월 초중순에 해당되는 기온을 보였다.
- 12월[435] - 서울 월평균 기온 -2.0℃이며, 2010년 12월과 비슷하게 중순 일부와 하순에 강한 한파가 찾아왔다. 특히 중순인 12월 17일에 -18.2℃를 기록했으며 최고기온, 일평균기온, 최저기온 모두 종합해볼때 12월 중순에 2021년 1월 7~9일 한파와 비슷한 매우 경이로운 기록이다. 자세한 내용은 한파/대한민국 문서 참조.
8.7. 1966년
겨울철 한파가 다음 해 못지않게 매우 강한 해이다.강원도 춘천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 6월 상순 - 6월 5일 서울 최저기온 9.7°C.
- 11~12월[436] - 11월의 경우 상순은 큰 추위가 없었지만 중순부터 영하로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하순에는 서울에서 -8℃ 이하를 기록한 날이 3일이나 될 정도로 추웠다.[437] 이 추위는 12월이 되면서 더 강해졌고, 특히 성탄절부터 사흘 연속으로 -15℃ 안팎의 한파가 찾아왔다.[438][439] 결국 월평균 기온은 각각 5.9℃[440], -3.0℃를 기록했다. 심지어 대구에서도 12월 평균 기온이 -0.2°C로 영하권을 기록했으며, 그 유명한 2005년, 2012년 12월보다 겨우 0.1°C 높은 수준이다. 최저기온 극값은 12월 27일의 -11.6°C. 이 강추위는 다음 해 2월까지 이어졌다. 다음 해에 묻히지만 이 해 12월도 꽤나 추운 셈이다.
8.8. 1967년
충청북도 청주, 경상남도 통영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1월 상순~중순 - 전년도 12월의 강한 한파가 이어져 서울 월평균 기온은 평년과 비슷한 -4.5℃를 기록했으나 이는 하순의 이상 고온이 강력해서 그나마 높게 나왔으며, 중순까지는 -10℃ 이하의 장기 한파가 이어졌다. 하지만 1월 30일을 기점으로 기온이 다시 확 낮아져서 2월은 가벼운 한파가 길게 이어졌다.
- 12월 - 한파/대한민국/20세기 문서 참조. 서울 월평균 기온 -4.9℃로 역대 최저 5위이다. 월초에는 평범했지만, 상순 중반부터 기온이 급락하여 12월 8일에 최저기온 -14.5℃를 기록했고 하순에 한파가 절정에 달했는데, 12월 30일에 -17.4℃로 극값을 기록했다. 또한 12월 하순 평균기온도 무려 -9.1℃를 기록하며 하위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 한파는 다음 해 2월까지 끈질기게 이어졌다. 2012년 12월의 상위호환이다.
8.9. 1968년
강원도 속초, 충청남도 서산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1월 중~하순 - 서울 월평균 기온은 -4.0℃로 2018년 1월과 같았으나 당시 평년치보다는 0.7℃ 높았다. 하지만 중순부터 기온이 크게 내려가기 시작했고, 한파는 1월 15일에 절정을 찍어 최저 기온이 -15.1℃를 기록하였으며, 이 한파는 3월 상순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 2월[441] - 서울 월평균 기온이 -4.4℃를 기록해 2월이 1월보다 더 낮은 기현상이 일어났다. 자세한 기온 분포를 보면, 2월 1일부터 2월 12일까지 3일과 10일을 제외한 모든 날의 최저 기온이 한파일수 기준인 -10℃ 이하였으며, 최저 기온 극값은 2월 1일의 -13.8℃이다. 이후 2월 13일부터 2월 18일까지 추위가 잠시 약해졌다가 2월 19일부터 다시 한파가 찾아와 2월 20일에 -13.0℃를 기록하였다. 이 강추위는 2월 25일까지 약 일주일간 이어진 뒤 차츰 풀렸다. 하지만 3월 시작과 함께 다시 꽃샘추위가 찾아왔다. 자세한 내용은 바로 아래 참고.
- 3월 상순 - 3월의 시작은 꽃샘추위로 이어졌다. 3월 1~3일 서울의 최저기온이 -5℃ 전후를 기록하였고,[442] 심지어 남쪽에 위치한 부산에서도 -2.6℃를 기록하며 영하권을 보였다. 또한 3월 6일에도 서울에서 -4.3℃, 3월 10일 -4.1℃를 기록하는 등 3월 상순은 대체로 평년보다 추웠다. 이 저온으로 인해 서울의 3월 상순 평균기온은 0.7℃로 평년보다 약 3℃ 가량 낮았다.[443] 이후 3월 중하순은 대체로 평년과 비슷하거나 약간 높은 분포를 보였다.
- 5월 일부[444] - 6월을 며칠 앞둔 시점에서 흐린 날씨로 일사가 차단되어 이상 저온이 찾아왔다. 해당 기간 동안 서울의 최고기온이 17~20℃에 그쳤으며,[445] 강릉은 5월 27일에 최고 기온이 아예 13.2℃에 머물며 강력한 초이상 저온을 보였다.[446] 이 저온 현상은 6월 3일에 맑은 날씨를 보이며 차츰 풀렸다.
- 6월 일부[447][448] - 하지만 6일 뒤인 6월 9일부터 강우로 인해 다시 기온이 하강했다. 특히 6월 10일 서울의 최고기온이 15.6℃에 그쳤으며, 대프리카로 유명한 대구에서도 24℃를 넘지 못했다. 그리고 6월 12일 이후부터는 기온이 평년 수준이거나 약간 높은 수준으로 올라 더운 날씨를 보였다. 그러다가 6월 19일부터 동쪽 지방 한정으로 일사 차단으로 인한 이상 저온을 보였다. 강릉의 경우 6월 19일에 최고 기온이 17.2℃에 머물렀고, 포항에서도 6월 20일에 최고 기온 18.4℃를 기록했다. 서울도 저온이었으나 동쪽 지방보다는 확실히 약했다.
- 7월 일부[449][450] - 7월 상순 일부에도 장맛비로 인해 잠깐 저온이 찾아왔다. 서울의 경우 총 92mm의 일강수량을 기록한 7월 4일에 최고 기온 22.0℃를 기록했고, 다음 날에도 23.6℃에 그치며 비교적 선선했다.[451] 이후 남부지방은 7월 16일까지, 중부지방은 7월 20일까지 오락가락 장맛비가 이어진 후 7월 하순 시작과 함께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 8월 일부[452] - 지난달 하순부터 시작된 무더위가 8월 10일부터 동쪽 지방 한정으로 동풍과 흐린 날씨로 인해 조금 누그러졌다. 강릉의 경우 종일 흐린 날씨를 보인 8월 13~16일에 최고 기온이 모두 23~24℃선에 그쳤으며,[453] 대구에서도 8월 16일에 총 170mm의 폭우를 맞으면서 24.2℃까지 떨어졌다.[454]
- 9월 하순 ~ 10월 일부 - 9월 초중순은 대체로 최고기온 30℃를 전후하는 늦더위가 있었으나, 하순에는 대체로 저온이 찾아왔다. 9월 21일 서울의 최저기온이 9.4℃까지 떨어져 9월 하순의 시작과 함께 한자리수를 기록했으며, 23일까지 최고 기온이 25℃를 넘기지 못했다.[455] 이후 9월 28일까지 잠시 평년 수준을 보이다가 9월 29일에 다시 하락하여 최고 기온이 19.1℃에 머물렀다. 다음 날인 9월 30일부터 10월 2일까지 서울의 최저기온이 모두 한 자리수를 기록하며[456] 쌀쌀한 날씨가 이어지다가 이후 잠깐 기온이 올라 10월 4일에는 27.4℃의 이상 고온을 보였다. 그러나 10월 7일부터 다시 기온이 낮아져 10월 13일까지 8일과 11일을 제외한 모든 날의 최고기온이 20℃ 아래를 보였고, 이후 더 낮아져 10월 16~17일 이틀 연속으로 최고 기온 12.4℃, 다음 날인 10월 18일에는 3.5℃까지 떨어져 10월 중순 치고 다소 낮았다.
- 11월 9~12일, 11월 28일 - 11월은 초반에는 대체로 고온을 보이다가 11월 9일부터 기온이 하강하여 영하권의 추위를 보였다. 특히 11월 9~10일에는 서울의 최저기온이 모두 -6℃를 밑돌았으며,[457] 11월 11~12일에도 -3℃대의 추위가 찾아왔다. 이후엔 큰 추위 없이 비교적 포근한 날씨를 보이다가 11월 28일에 -3.0℃의 반짝 추위가 왔다. 이후 12월에는 몇몇 날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이상 고온을 보였다.
8.10. 1969년
서울 연평균 기온이 10.928℃로 1960년대에서 상당히 낮았다. 그도 그럴 것이 뚜렷한 고온 없이 1월, 9월을 제외하고 대부분 월평균 기온이 평년보다 낮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여름에는 폭염 일수가 아예 없었고 겨울철 한파도 꽤 강하고 길게 이어졌다.대전, 전라북도 부안, 임실, 정읍, 경상남도 진주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 1월 상순~중순[458] - 서울 월평균 기온은 -3.5℃로 당시 평년보다는 높았으나[459] 이는 하순의 이상 고온으로 인한 것이며, 상순~중순은 유난히 한파로 뒤덮였고 최저 기온 극값은 1월 3일에 기록된 -15.2℃. 이후 1월 16일까지 -9~-12℃ 전후를 기록하며 한파가 길게 이어지다가 1월 19일에 10.7℃까지 오르는 등 하순에는 기온이 잠시 크게 올랐으나 폭설이 내린 뒤 2월이 되자 더 심해졌다.
- 2월[460] - 1월 하순의 엄청난 폭설의 여파로 한파가 2월부터 시작되면서 상순은 꽤 낮았다.[461] 중순에는 기온이 잠시 올랐으나 하순에는 기온이 매우 떨어져서 2월 25일 춘천의 최저 기온이 -16.4℃까지 떨어졌고, 서울도 -12.2℃가 기록되어 2월 하순 치고 강한 한파가 나타났다. 이 여파로 서울의 2월 하순 평균 기온은 -6.1℃로 1923년 2월 하순에 이은 역대 최저 2위이다. 21세기인 현재는 2월 하순이 잦은 고온이라 거의 불가능한 수치이다. 이 여파로 서울 월평균 기온이 -2.7℃를 기록한다.
- 3~4월 상순 - 서울의 3월 평균 기온 2.9℃. 2월 하순의 한파가 3월 상순에도 이어지면서 3월 1일에 -8.4℃, 3월 5일에 -6.7℃를 기록하는 등 상순은 낮았고 이후에도 꾸준히 낮았다. 또한 3월 1일부터 3월 24일까지 19일, 20일을 제외한 모든 날에 최저기온이 영하권을 보였으며, 이후 3월 25일부터는 잠깐 따뜻한 날씨를 보였다. 하지만 4월이 되자 다시 기온이 급락하여 4월 4일에 최저기온이 -0.2℃[462]를 기록하는 등 4월에도 상순을 중심으로 낮은 기온 분포를 보였다. 이후 중하순에는 당시 기준 평년 또는 조금 높았다. 그래도 상순의 여파로 월평균 기온은 10.6℃로 평년과 비슷했다.[463] 시대를 감안하면 2006년, 2019년 4월과 비슷하다.
- 5월~6월 - 5월의 경우는 전년도와 비슷하게 상순~중순은 당시 평년 수준이었으나 하순부터 기온이 낮아졌다. 서울의 경우 5월 27일에 최고기온 17.8℃에 머물렀고, 5월 29일에도 17.2℃까지 떨어져 전년도 이맘때와 비슷한 날씨를 보였다. 이 저온 현상으로 인해 서울의 5월 하순 평균기온은 16.3℃로 평년보다 3℃ 이상 낮았고, 전년도보다는 0.3℃ 낮았다. 이후 6월 상순까지 저온이 이어져 6월 5일에 17.1℃를 기록했고, 6월 11일에도 20.8℃에 머물렀다. 그 결과 서울의 6월 평균 기온이 20.0℃를 기록했다. 또한 같은 해 9월보다도 낮았다.
- 7~8월 - 서울의 7~8월 평균 기온은 각각 24.0℃, 24.4℃. 이해 여름철은 33℃를 넘는 폭염이 일절 기록되지 않아 크게 덥지 않은 여름이었다. 그래서 이해 여름은 폭염 일수가 0일이며, 열대야 일수도 7월 28일, 8월 9일, 8월 11일 단 3일에 불과하다.[464][465] 이후 폭염일수가 0일이었던 여름은 11년 뒤인 1980년에 다시 찾아오게 된다.
- 9월 하순 ~ 10월 상순[466] - 9월은 당시 평년보다 조금 높았으나 9월 하순부터 기온이 떨어지면서 9월 21일 서울의 최고 기온이 21.2℃에 머물렀고, 9월 30일에는 15.4℃까지 떨어졌다. 이후 10월로 넘어가면서 기온이 더 떨어져 10월 상순은 평균 기온 12.7℃로 하위 1위를 기록한다. 10월 10일에 3.2℃까지 떨어졌다. 다만 중순부터 당시 기준으로는 평년 수준으로 높아지더니 10월 21일에 24.4℃까지 오르는 등 하순은 대체로 이상 고온을 보여서 월평균 기온은 13.9℃로 당시 평년과 비슷했다.
- 11~12월 - 극단적인 저온은 없으나 일부를 제외하고 꾸준히 낮아 월평균 기온 5.0℃, -2.0℃를 기록했다. 11월 17~18일, 11월 24~25일에 서울의 평균기온이 영하권을 기록하였고, 그 중 11월 25일에는 최저기온이 -5.6℃까지 떨어졌다. 12월의 경우도 몇몇 날은 제외하고는 강추위가 계속 이어져 12월 13일, 12월 26~28일에 한파일수가 기록되었다. 최저 기온 극값은 12월 27일의 -14.9℃.
9. 1970년대
1970년대 들어 겨울철 평균기온이 상당히 온난화되어 1월 평균기온이 초이상 고온을 기록한 해들이 많아졌고(1972~1973년, 1979년), 사실상 1981~2010년 평균과 별 차이가 없었을 정도다. 12월도 별로 춥지는 않았다. 대신 2월은 현대 기준으로 꽤 추운 편이었다. 이 년대부터 구평년(1981~2010) 기준으로 고온인 첫 해(1975)가 나타났다. 반면 여름은 더 시원해져서 이 시기에 초이상 저온 여름이 잦았다. 즉, 연교차가 가장 작았던 시기이다.9.1. 1970년
- 1월 - 5일 서울에서 -20.2℃를 기록하였다.[467] 다만 일교차가 매우 커서 최고 기온은 -9.2℃로 많이 올라갔으나, 중순인 1월 16일에 다시 -16.4℃의 한파가 찾아와서 월평균 기온은 -4.8℃로 평년보다 낮았다.
- 2월 상순 - 2월 상순 일부에도 한파가 찾아와 2월 1일 -4.9℃였던 서울의 최저 기온이 날마다 계속 하락하여 2월 5일에 -10.1℃, 2월 6일에는 -9.4℃를 기록했다. 그리고 강추위가 절정에 달한 2월 10일에는 강원도 춘천의 최저 기온이 -16.3℃까지 떨어졌고, 충청북도 청주 -14.6℃, 서울 -10.8℃, 전라북도 전주 -10.2℃ 등을 기록하며 강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이 추위는 2월 11일 낮부터 차츰 풀렸고 이후 2월 중하순은 대체로 온화한 날씨를 보였다가 월말부터 다시 추워져 3월 대부분 날들에 꽃샘추위가 이어졌다. 자세한 내용은 바로 아래 참고.
- 3월[468] - 전국적으로 3월이 2월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 낮은 기이한 현상이 펼쳐졌다. 서울만 해도 2월 26일부터 다시 시작된 영하의 날씨가 3월 26일까지 한 달이나 지속되었을 정도이다. 단 3월 15일은 최저 기온이 영상이었으나 이날 눈이 내렸으며 다음 날 급락했다. 이후 3월 27일부터 평년 수준을 회복했으나 3월 26일까지의 저온의 여파가 커서 결국 서울의 3월 평균 기온이 0.4℃로 평년 2월과 같고 1916년 3월과 같게 기록되었다. 전국에서 가장 따뜻한 제주도 예외는 아니라서, 3월 평균 기온이 5.8℃로 2월 평균 기온 6.4℃보다도 더 낮았고 서울 평년 3월과 비슷한 기온을 보였다. 그러나 다음 달인 4월은 이에 대한 반작용인지 당시 기준으로는 평년보다 높은 기온을 보였다.[469] 이마저 3월 하순 후반에 평년으로 돌아와서 비교적 높은 기온을 기록한 26~31일까지 매우 낮았다 해도[470] 월평균 -0.4~-0.5℃정도로 1936년을 넘고 3월 평균 최저를 기록할 수도 있다. 다만 월 최저 극값은 -7.3℃로 2024년보다 더 높은 것으로 볼때 -10℃ 미만의 극심한 한파는 없었으며 꾸준한 저온이 이어졌다.
- 5월 일부 - 5월에도 강력한 저온은 없지만 일부 날짜에 평년보다 낮은 기온을 보였다. 5월 2일 서울의 최고 기온이 18.6℃, 대전 17.4℃에 그쳤고, 이후 5월 3일부터 5월 9일까지는 평년과 비슷하거나 높은 기온을 보이다가 5월 10일부터 다시 저온이 이어져 광주의 최고 기온 17.0℃, 대구 17.6℃, 5월 11일에도 서울 18.8℃, 전라북도 전주 17.0℃를 기록하는 등 다소 낮았다. 이후 기온이 올라 초여름 날씨를 보이다가 5월 26일에 다시 기온이 하락하여 서울의 최고 기온이 16.8℃에 그쳤으며, 강원도 강릉도 17.2℃를 보였다. 그리고 월말에도 동쪽 일부 지방 한정으로 저온이 이어져 5월 31일에 경상북도 포항의 최고 기온이 17.1℃에 머물렀다.
- 6월 - 6월에는 대체로 평년과 비슷한 분포를 보였으나, 월초에는 동쪽 일부 지방에서 이상 저온 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6월 4일 경상북도 포항의 최고 기온이 16.7℃에 그쳤고, 부산도 17.7℃에 그쳤다.[471] 이후 차츰 기온이 올라 6월 14일까지 평년과 비슷하거나 조금 높은 기온을 보이다가 6월 15일부터 기온이 떨어져 전국적으로 이상 저온 현상을 보였다. 서울의 경우는 6월 16일에 최고 기온이 19.2℃를 보였고, 6월 18일에는 더 낮아져 18.0℃에 그쳤다. 또한 강원도 강릉은 6월 17일에 16.4℃를 기록하며 평년 4월 수준에 해당하는 기온을 보였으며, 경상북도 포항에서도 6월 15일에 17.3℃, 더위로 유명한 대구광역시에서도 6월 18일에 18.6℃까지 떨어지는 등 6월 중순은 대부분 지역에서 이상 저온을 보였다. 이 여파로 서울의 6월 중순 평균기온은 20.3℃로 평년보다 2℃ 이상 낮았으며, 이 저온 현상은 6월 21일부터 차츰 해소되었다. 그리고 상반기 마지막 날인 6월 30일에 일부 지역에서 다시 저온을 보여 서울 22.8℃, 광주 23.1℃ 등을 기록했다. 그 여파로 6월 평균기온은 꽤 낮았다.
- 7월 - 7월의 경우도 초중반에는 몇몇 날의 장맛비로 인하여 기온이 크게 오르지 못한 날들이 있었다. 서울의 경우 7월 4일에 최고 기온이 21.4℃를 기록했고, 7월 6일에는 더 낮아져 아예 20℃에 못 미치는 19.2℃에 머물렀다. 이후 기온이 잠깐 올랐다가 7월 9일에 다시 떨어져 20.2℃에 그쳤고, 7월 16~18일에도 서울 기준 22~23℃대의 저온을 보였다. 더위로 유명한 대구의 경우에도 상순 일부에 강력한 이상 저온이 발생하여 7월 8일에 최고 기온이 불과 19.4℃에 그쳤고, 다음 날인 7월 9일에도 22.4℃에 그치며 전날보다는 높았지만 여전히 평년보다는 낮았다. 이로 인하여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7월 상순 평균기온은 평년보다 2~3℃ 낮게 관측되었다. 이후 7월 하순에는 평년 수준을 회복했다.[472]
- 8월 일부 - 8월에도 몇몇 날의 저온이 이어져 8월 6일에 서울의 최고 기온이 23.4℃를 기록하였고, 이후 8월 7~23일까지 17일, 18일을 제외한 모든 날에 최고 기온 30℃를 웃도는 무더위가 이어진 뒤,[473] 이후 조금씩 기온이 낮아져 8월 27일에 최고 기온 24.3℃의 저온을 보였다.[474] 하지만 이상 저온이 발생했던 날보다는 무더위가 이어졌던 날들이 더 많아 서울의 8월 평균기온은 2021년 8월과 같은 25.9℃로 당시 평년보다 조금 높았다.[475]
- 9월 일부 - 9월에는 상순의 경우 대체로 최고 기온 29℃를 넘기는 늦더위가 며칠 있었고, 중순 일부에는 이상 저온 현상이 나타나 9월 12일에 서울의 최고 기온 23.8℃, 강원도 강릉에서는 20.8℃까지 떨어졌다. 또한 9월 17일에는 중부 일부 지방에 강한 폭우가 내려 총 165mm의 일강수량을 기록한 서울에서는 최고 기온 22.1℃를 기록했고, 인천에서는 212mm가 넘는 강수량을 기록하며 최고 기온이 21.8℃에 머물렀다. 그리고 하순 일부에도 저온이 이어져 9월 21일 대구의 최고 기온이 22.5℃에 그쳤고, 이후 잠깐 오른 뒤 월말에 다시 큰 폭으로 낮아져 9월 29일에 서울의 최고 기온이 16.2℃ 기록, 다음날인 9월 30일에는 최저 기온이 7.9℃, 강원도 춘천에서는 3.6℃까지 떨어지며 강력한 저온을 보였다.
- 10월 일부 - 10월 2일에 서울의 최저 기온 9.4℃를 기록한 뒤 이후부터는 기온이 차츰 올라 10월 상순 중반부터 하순 초반까지는 대체로 큰 추위 없이 평년과 비슷하거나 높은 날씨를 보이다가 하순 중반부터 다시 기온이 하강하여 10월 27일에 서울의 최저 기온이 1.1℃까지 떨어졌고, 10월 30일에는 더 떨어져 서울 0.5℃, 강원도 춘천 -3.1℃, 전라북도 전주 -1.4℃, 대구 2.2℃ 등을 기록하며 전국적으로 할로윈 추위가 찾아왔다.
- 11월[476] - 월평균 기온 5.7℃로 조금 낮았다. 자세한 기온 분포를 보면, 11월 11일에 서울의 최저 기온이 -0.2℃를 기록하며 3월 이후 첫 영하권을 기록했고, 이후 잠깐 올랐다가 다시 큰 폭으로 떨어져 11월 14일에 -2.0℃, 11월 15일에는 서울의 최저기온 -4.9℃, 강원도 춘천 -5.8℃, 대구에서도 -2.6℃를 기록하며 초겨울 추위를 보였다. 이후 11월 17~20일까지 온화한 날씨를 보이다가 다시 낮아져 11월 23일에 -5.5℃까지 떨어졌고, 월말에는 더욱 더 강력한 한기가 몰려오면서 11월 30일에 서울의 11월 역대 최저 기온인 -11.9℃까지 떨어졌고, 체감온도는 -15℃를 밑돌았으며, 강원도 춘천도 -13.1℃까지 떨어졌다. 그 밖에 대구 -8.2℃, 전라북도 전주 -7.6℃, 광주에서도 -6.0℃를 보이며 11월 추위가 절정에 달했다. 단 서울 기준 일별 평균 기온의 중앙값은 7.8℃로 높고, 일부 날들에는 대체로 온화한 날씨를 보여 월 자체가 저온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 12월 - 12월은 강력한 한파 없이 대체로 평년과 비슷하거나 낮은 기온 분포를 보였으나, 성탄절 전후로 잠깐 한파가 찾아왔다. 특히 12월 27일에 서울의 최저 기온이 -11.2℃[477][478], 강원도 춘천 -14.8℃, 대전 -11.7℃ 등을 보였다. 이후 연말에는 다시 기온이 올라 강력한 추위 없이 한 해가 마무리되었다. 서울 월평균 기온 -1.1°C
9.2. 1971년
강원도 원주, 인제, 평창(대관령), 홍천, 전라북도 남원, 충청북도 보은, 제천, 충주, 충청남도 부여, 전라남도 고흥, 완도, 장흥, 해남, 경상북도 울진, 경상남도 거제, 거창, 남해, 밀양, 산청, 합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성산읍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되었다.- 1월 상순, 하순 - 1월 5일에 서울 최저 기온 -16.1℃, 체감온도 -21.4℃까지 내려가는 강력한 한파가 찾아왔으나 중순에는 최저 기온마저 영상으로 오르는 등 한파와 매우 거리가 먼 날씨를 보였다. 이로 인해 상순과 중순의 평균 기온 차이가 5.6℃나 났다. 이후 하순에 -11℃를 밑도는 한파가 찾아왔으며,[479] 서울 월평균 기온은 -2.4℃로 정확히 50년 뒤인 2021년 1월과 월평균 기온이 같았다!
- 2월 1~11일 - 1월 하순의 한파가 2월에도 이어져 2월 1일에 최저 기온 -12.4℃를 기록했으며, 같은 날 춘천에서는 무려 -18.6℃, 수원에서도 -17.9℃라는 강한 추위를 보였다. 이후 2월 4일에도 춘천의 최저 기온이 -18.0℃, 서울도 -8.8℃까지 떨어지는 등 전국적으로 추위가 이어졌다. 이 여파로 서울의 2월 상순 평균기온은 -5.2℃로 평년보다 크게 낮았다.
- 10월[480] - 서울 월평균 기온 13.0℃로 2018년 10월과 비슷했으며, 진행 양상도 매우 유사하다. 서울 기준 10월 최고기온 극값이 24.1℃[481]로 최근 이상 저온이었던 2020년 10월처럼 25℃를 넘기지 못했으며, 10월 6일에 서울 최저 기온 7.4℃까지 떨어졌고, 다음 날인 10월 7일에도 7.9℃를 기록했다. 이 저온 현상은 중순이 되면서 더욱 심해졌는데, 특히 10월 12일에 2.5℃까지 떨어졌을 정도였다. 최고 기온도 13.8℃에 불과해 일평균 기온 역시 7.9℃에 그쳤다. 다음 날인 10월 13일에도 3.0℃까지 떨어졌으며, 이날 대관령에서는 무려 -6.6℃라는 기록적인 저온을 보여 10월 중순 역대 최저 기온 1위를 기록하고 말았다. 이후 17~21일에는 평년과 비슷하거나 조금 높았다가 23일부터 다시 기온이 낮아져 10월 24일 최저 기온 서울 3.8℃, 대관령 -4.4℃ 등을 보였으며, 10월 25일에도 서울 기준 최저 3.9℃ 최고 10.5℃로 강한 저온을 보였다.
- 11월 28일~30일 - 이 사흘 동안 이루어진 한기 남하로 인해 기온이 크게 떨어졌고, 29일 -8.8℃를 기록하면서 사상 최초로 기록될 뻔한 영하 없는 11월을 무산시켰다.[482][483] 결국 이 영하 없는 11월은 33년 뒤인 2004년 11월에 최초로 달성했다.
- 12월 - 서울 월평균 기온이 -1.2℃로 평년보다 낮았다. 12월 5일부터 기온이 급락하기 시작하여 12월 6일에 -7.0℃를 기록하였고, 이후 12월 11일을 제외하고 12월 16일까지 -5~-7℃의 한파가 길게 이어졌다. 그러나 12월 17일에는 잠시 이상 고온을 보였지만 12월 19일에 한기가 내려와 12월 22일에 -10.0℃로 절정을 찍었으나... 다음 해 1월이 0.8℃로 4℃ 이상 높은 초이상 고온을 보여 다음 해 1월보다 극값이 낮았다.
9.3. 1972년
가을철 저온 현상이 강한 해이며, 1월은 한파가 없고 오히려 당시 평년치보다 5℃ 이상 높은 초이상 고온을 보여 서울 월평균 기온이 0.8℃를 기록하였고, 이는 당시 기준으로 최고 1위, 현재도 역대 최고 3위에 해당할 정도로 이상 고온이 심했다. 심지어 1월 최저 기온 극값이 -9.1℃[484][485]에 불과해 포근한 겨울을 맞았지만 8~9월, 11월은 이상 저온이 발생하였다.인천 강화, 경기도 양평, 이천, 충청남도 금산, 보령, 천안, 전라남도 순천, 경상북도 영덕, 영주, 영천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 2월 하순 - 상순은 평범했으나 2월 19일부터 2월 29일까지는 봄을 앞둔 시기인데도 최저 기온 극값은 -9.6℃[486]로 기록적이지 않지만, 대신 최고 기온이 5℃ 이하에 그치는 한파가 찾아왔다. 그리하여 이해 2월은 월평균 기온이 -0.6℃로 당시 평년치보다 조금 높은 수준에 그쳤다.
- 3월 31일~4월 2일 - 전국 단위로 최저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특히 서울은 4월 1일에 최저 기온 -4.3℃까지 곤두박질쳤고, 이는 서울의 4월 기온 중 역대 최저 1위로 남아있다. 그러나 그 이후는 전반적으로 따뜻하였다. 덕분에 서울의 4월 평균은 11.5℃로 평년과 비슷했다.
- 8~9월 - 8월 서울의 평균 기온이 23.1℃로 역대 최저 3위이다.[487] 7월에는 더웠지만 8월에는 여름철 이상 저온의 아이콘으로 유명한 1993년 8월보다도 0.1℃ 더 낮다! 7월 하순까지 기승을 부리던 폭염이 8월 첫날이 되자마자 칼같이 기세가 끊겼고, 8월 13일에는 최저 기온이 18.1℃, 급기야 8월 19일에는 최고 기온이 20.0℃로 곤두박질쳤다.[488] 그나마 8월 5일과 8월 16일에 열대야에 준하는 날씨가 찾아오고 8월 17일에 최고 기온이 32.1℃로 올라갔지만, 곧바로 하강하며 뜨거운 의미의 여름은 그대로 끝났다. 저온 현상은 9월에도 지속되었다. 27.2℃ 이상으로 올라간 날이 없었으며 25℃를 넘는 날도 많지 않았다. 심지어 하순에는 20℃ 이하로도 하강했고, 최저 기온은 9월 30일에 한 자릿수까지 떨어져 9월 평균 기온이 19.0℃를 기록하여 역대 최저 4위이다. 이때에도 전국에서 기상 관측을 했다면 아마 1980년보다 낮은 8~9월 평균 기온 최하위권을 기록했을 듯하다.
- 10월 일부 - 10월 10일 최고 기온 14.8℃, 최저 기온 6.2℃로 굴러떨어졌으며, 10월 20~22일에는 아예 흘러가는 양상이 2021년 10월 15~17일과 거의 흡사했다. 물론 찾아온 시기나 추위의 강도나 모두 2021년 10월이 한 수 위였고 가끔씩 고온도 있었기 때문에 월평균 기온은 13.8℃로 평년과 비슷했다.
- 11월[489] - 서울의 11월 월평균 기온 5.2℃이다. 중순까지는 그럭저럭 평년과 비슷하거나 높았으나 11월 17일부터 영하로 떨어지기 시작, 11월 하순에 저온이 집중된 것이 특징이다. 최저 기온은 항상 -4~-6℃를 맴돌았고 최고 기온도 0~1℃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월말부터 최고 기온은 높아지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최저 기온은 그대로여서 서울의 11월 하순 평균 기온이 -3.0℃로 하위 1위이다.
1972년 11월 21일, 김두한은 오랜 지병에 갑작스런 한파까지 겹쳐 결국 사망했다.[490]이로 인해 11월 하순 평균이 연중 순별 평균 중에서 제일 낮은 기현상이 발생하였다. 달리 말하면 1972년 1월, 2월, 12월이 11월 하순보다 따뜻했다는 얘기다.
- 12월 일부[491] - 전반적으로 따뜻한 12월이지만 극초반과 중순에 한파가 있었다. 특히 12월 13일은 -12.0℃로 한파 일수를 기록하였고, 1972년의 연 전체 최저 기온 극값이 되었다. 이는 역대급 초이상 고온이 동년 1월에 찾아와 최저 기온 극값이 -9.1℃에 그쳤기 때문이다. 또한 대관령면에서는 12월 2일 최저 기온이 무려 -21.7℃까지 떨어졌다.
9.4. 1973년
1월은 엘니뇨로 인해 전년도 못지 않게 이상 고온이 심했으나, 전년도와 달리 이해는 서울 최저 기온이 -10℃ 이하를 기록한 날은 있었다.[492] 그러나 6월부터 라니냐로 전환되어 10월~12월 동안에는 다음해와 같이 이상 저온이 상당히 강했다.경상북도 구미, 문경, 안동, 의성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그리고 전국 단위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 2월 23~25일 - 전반적으로 포근한 2월이지만 25일에 -9.4℃까지 떨어져 추위가 찾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순의 이상고온으로 서울 월평균 기온은 0.6℃를 기록해 평년보다 높았다.
- 3월 일부 - 2월 말의 추위가 3월에도 이어져서 3월 상순은 다소 추웠으며, 상순평균기온은 조금 낮았다. 이후 중순부터는 기온이 올라 평년보다 조금 높은 날씨를 보였고, 하순인 25일에는 마지막 꽃샘추위로 -4.5℃를 기록하고는 기온이 큰폭으로 올라, 30일에는 20.8℃까지 올라 심한 고온을 보였고 이 고온은 6월까지 이어지다 여름철엔 폭염을 보였다.
- 9월 27일~10월 - 9월에는 당시 평년기준으로 조금 높은 20.7℃를 기록하였으나 26일부터 기온이 하강해서 27일 최저기온이 8.3℃를 기록한다. 9월 말의 저온이 10월에도 이어져 10월 서울월평균 기온 13.0℃를 기록한다. 상순에도 최저기온이 한자리수로 내려간 적이 2번 있었으며, 중순에는 14일과 18일에 3.2℃까지 내려간다. 하순에도 10월 26일에 최저 기온이 2.2℃까지 곤두박질쳤고 최고 기온마저 12.2℃에 그쳐 강한 저온을 보였다. 이러한 저온 경향은 연말까지 이어진다.
- 11~12월 - 10월 하순에 추위가 11월에도 그대로 이어져 몇몇날을 제외하고 꾸준히 추웠다. 그래도 상순은 극단적인 기온없이 낮았으나 중순부터 영하의 기온을 기록하더니 20일에는 -7.1℃까지 내려간다. 이후 하순에도 강도는 중순보다 약하지만 꾸준히 추위가 이어지고 12월 상순부터는 바로 한파가 이어진다. 다행히도 상순이 지나고 중순은 추위가 풀렸지만 20일부터 기온이 급락해서 23~25일에는 한파일수를 연속으로 기록하고 이중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에는 -17.4℃까지 떨어진다. 남은 12월도 추위가 이어지고 그 결과 서울의 11~12월 평균 기온은 각각 4.7℃, -3.0℃를 기록했다.[493]
9.5. 1974년
1917년처럼 강한 라니냐로 인해 저온이 매우 많이 발생했던 해이다. 겨울은 1917년보다는 높았으나 여름은 시원한 축에 속했다. 그리하여 이해 전국 연평균 기온은 11.1℃로 최저 2위를 기록하였다.- 1월 하순 - 한파/대한민국 문서 참조. 서울 월평균 기온은 -2.5℃로 당시 기준으로는 이상 고온이었으며 전국적으로는 -2.5℃로 평년과 비슷했다.[494] 그러나 상순과 중순은 고온이었고 하순에 한파가 절정이었다. 최저 기온 극값은 1월 24일의 -15.5℃. 같은 날 평창 대관령면은 기온이 매우 극단적이어서 최저 기온 -28.9℃로 해당 지역 역대 최저 1위, 대한민국 역대 공식 최저 기온 6위의 기록을 세웠다.
- 2월[495] - 서울 월평균 기온 -2.1℃. 특히 하순인 2월 25일에는 서울의 최저 기온 -13.4℃, 최고기온도 겨우 -8.1℃에 그쳤으며, 다음날인 2월 26일에는 최저 기온 -14.0℃로 강력한 늦겨울 한파를 보였다. 같은 날 대관령에서는 무려 -21.1℃까지 떨어졌고, 강원도 홍천군에서도 -17.0℃ 등을 기록하며 3월을 불과 이틀 앞둔 상황에서 강한 한파가 몰아닥쳤다. 심지어 대구에서도 -12.0℃까지 떨어지며 턱걸이로 한파일수가 기록되었다. 이 여파로 서울의 2월 하순 평균기온은 -4.9℃로 역대 최저 4위였다.
- 6~7월(특히 7월 강원 영동 및 영남 일부 지방) - 6월은 19.5℃로 전국 평균 기온 역대 최하위, 게다가 동해안에서는 7월 최고 기온이 6월 최고 기온보다 더 낮은 현상이 발생했다.[496] 장마도 서울 기준 2020년 54일, 2013년의 49일, 1969년 47일 다음으로 길게 지속되어 45일로 역대 4위를 기록하였으며, 똑같이 저온이 심했던 1980년 여름하고도 같은 기록이다. 강릉은 7월 평균 기온이 19.2℃로 봄 날씨를 보였고 6월보다도 낮았으며, 속초도 7월 평균 기온이 18.3℃︎, 포항도 7월 평균 기온이 20.8℃︎를 기록해 세 지역 모두 역대 최하위이다. 대구에서도 7월 평균 기온이 22.6℃︎를 기록해 역대 최저 3위였다. 7월 이상 저온이 어느 정도였냐면, 강릉의 경우 한달 전체를 통틀어 최고 기온이 30℃︎를 넘긴 날이 7월 31일 딱 하루에 그쳤을 정도였고, 속초는 더욱 심각했는데 7월 한 달 내내 30℃︎는 커녕 28℃ 이상으로 오르는 날이 단 하루도 없었으며[497], 7월 6~7일, 10~11일에는 최저 기온이 14.0℃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그 덥다는 대구에서도 7월 1일, 20일, 31일을 제외하면 최고 기온이 30℃︎를 넘기지 못했으며, 7월 13일에는 아예 최고 기온이 19.4℃로 20℃에도 못 미쳤다. 결국 대구 7월 중순 평균기온은 22.1℃︎로 1954년과 같아 하위 4위였다. 또한 대관령에서는 7월 1일에 최저기온 8.2℃[498]로 7월에 한 자리수라는 대기록을 세워버렸다. 서울도 월평균기온 23.3℃로 저온을 보였지만, 그래도 영동 지방에 비하면 매우 양반이다.
- 11월 - 서울의 월평균 기온이 5.4℃로 평년보다 1.2℃ 낮았다. 중순을 중심으로 이상 저온을 보였으며, 11월 13일에 -4.8℃를 기록했다. 그러나 하순에는 기온이 올랐으며, 12월은 최저 기온 극값이 -10.2℃[500]에 불과할 정도로 따뜻한 날씨가 이어져 월평균 기온이 -0.5℃로 고온을 보였으며 이 고온 현상은 다음 해에 더욱 심화되어, 5월을 제외하고 12월 상순까지 이어졌다.
9.6. 1975년
라니냐의 해인데도 불구하고 앞뒤 년도와 반대로 이상 고온이 심해서[501] 5월 일부와 12월을 제외하면 별다른 저온이 없었다.- 5월 일부[502] - 1941~1970년 기준 평년과 완전히 들어맞는 16.7℃를 기록했으나, 일부 날짜에 저온 현상이 있었다. 강력한 이상 고온을 보인 5월 1일과 달리, 5월 2일부터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5월 4일에는 최고 기온이 13.5℃였고, 다음 날인 어린이날에는 최저 기온이 8.8℃까지 떨어졌다.
- 11월 23~24일 - 이해 11월은 상순~중순에 초이상 고온을 보여 서울의 월평균 기온이 평년보다 매우 높은 9.0℃를 기록했으나, 겨울을 앞두고 한기가 생성되어 11월 23일에 최저 기온 -6.4℃, 최고 기온 -0.1℃를 기록했다. 하지만 24일 이후 기온이 올라 12월 상순까지 이상 고온이 이어졌으며, 중순부터는 한파가 와서 고온 현상은 끝이 났으나, 다음 해에 이상 저온이 더욱 심화되었다.
9.7. 1976년
1974년만큼은 아니지만 이상 저온이 강하게 지속된 해이다. 서울 기준으로 2~3월, 12월만 평년보다 높았고, 1월, 4~6월, 10월은 평년과 비슷하였고, 나머지 달은 모두 평년보다 낮았다. 이러한 와중에 뜬금없이 2월에 강한 고온을 보이며 2021년보다도 월평균 기온이 높았다.[503] 대체적으로 60년 전인 1916년과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흐름이 유사한 편이다.- 4월 상순 - 서울에서 7.5℃의 평균 기온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중순과 하순은 상순을 비웃기라도 하듯 따뜻한 날씨가 이어졌다. 당시 기준으로 중순과 하순은 평년보다 조금 높았다. 이달 전체 평균 기온은 11.3℃로 현대 기준으로는 저온이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평년과 비슷하였다.
- 5월 - 상순에는 단 2일[504]을 제외하고 모두 최저 기온이 한 자릿수로 도배되었으며 그중 5월 4일에는 5.5℃까지 떨어졌다. 5월 5일에도 최고 기온이 겨우 13.6℃에 불과했다. 또한 중순에도 저온이 이어졌고, 5월 17일에는 9.2℃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저온 현상은 5월 23일이 지나자 풀리고 기온이 급격하게 올라가 5월 27일은 32.2℃[505]25.1℃. 5월임에도 불구하고 날씨가 여름같이 느껴졌다던 2012년 5월 2일, 2013년 5월 25~26일, 2014년 5월 30~31일, 2015년 5월 27~29일, 2016년 5월 18~23일, 2017년 5월 29~30일, 2018년 5월 15~16일, 2019년 5월 16~17일, 5월 24~26일, 2021년 5월 14일, 2022년 5월 23일, 2023년 5월 16일이 23~24℃대였는데 이 사례들보다 높았다. 이 기록은 5월 27일 최고 기온, 최저 기온, 일평균 기온 상위 1위이기도 하다.]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5월 23일까지의 강한 저온의 여파로 월평균 기온은 16.7℃로 평년과 같았다.
- 7월[506] - 6월 말의 더위와 다르게 7월 2일 서울의 기온이 최저 13.0℃, 최고 19.0℃였고, 7월 3일은 최저 12.9℃, 최고 15.4℃[507]5월 29일]]의 가장 낮은 최고 기온 기록이 15.4℃이고, 2월 16일의 가장 높은 최고 기온 기록 역시 15.4℃이다. 5월 하순에 최고 기온이 이 정도에 그쳐도 서늘하다 못해 춥기까지 할 정도인데, 1976년에는 아예 이 온도를 7월 상순에 기록했다. 더구나 불과 며칠 전인 6월 28일에는 서울의 최고 기온이 34.8℃를 기록, 2020년 6월 22일을 연상시키는 고온을 보여 6월 28일 최고 기온 기록 중 1위를 차지할 정도였는데,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이렇게 급락해버렸으니 이때는 정말로 체감 날씨가 초봄같았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비교 대상인 5월 29일은 1976년에는 이상 고온이 판을 치던 시기였다. 오히려 이때가 7월 상순보다 더 여름같아보일 지경.]였다. 일평균 기온은 고작 14.3℃이다. 이는 4월 중하순에 해당되는 기온이고 2002년 1월 15일과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기온 편차가 적은 한여름에 평년보다 10℃ 가까이 낮은 것이니 엄청난 이상 저온이다. 월평균 기온도 23.1℃였다.
- 8월 - 서울 월평균 기온 23.7℃︎.
- 9월 - 전국 평균 기온 18.8℃로 역대 최저 2위. 아이러니하게도 전년도 9월에는 22.1℃로 역대 최고 1위였는데 한 해 동안 극과 극의 9월이 오고간 셈이다.[508] 서울도 19.9℃로 20℃ 미만이었다.
- 12월 25~31일 - 고온이었던 12월 24일까지의 날씨를 뒤로하고 매우 강력한 한파가 찾아온다. 12월 27일에 서울 최저 기온이 -18.5℃를 기록했다. 이 한파가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보면, 이상 고온을 보인 12월 1~24일까지의 월평균 기온이 3.4℃로 1948년에 버금가는 강력한 고온이었는데, 이를 단숨에 0.4℃로 3℃나 폭락시켰다.[509] 12월 26~31일까지 6일 동안의 일평균 기온 평균값이 -11.5℃인 것이 압권.
9.8. 1977년
1~2월에는 강한 한파가 왔으나 이후로는 고온 현상이 잦았다.- 1~2월 - 한파/대한민국 문서 참조. 전년도 크리스마스에 들이닥친 한파가 그대로 이어져 서울의 1월 평균 기온이 -6.7℃를 기록하여 2011년 1월과 양상이 비슷했다.[510] 그러나 의외로 최저 기온 극값은 -15.8℃로 전년도 1월보다 높았다.[511] 그러나 2월 중순에는 이전보다 더 강력한 한파가 들이닥쳐 2월 16일에 -16.8℃로 1월보다도 낮은 최저 기온 극값을 세웠다. 특히 2월 16일 부산은 -12.6°C까지 떨어져서 역대 2월 최저기온[512]이고 심지어 제주는 2월 15일 -5.9°C, 2월 16일 -6.0℃까지 떨어져서 1923년 기상 관측 이래 역대 최저기온 1~2위로 남아있다. 서울 2월 평균 기온도 -2.4℃︎로 낮았다.
- 3월 3~5일 - 사흘 동안 심각한 저온을 보여 7년 전의 3월 상순과 맞먹을 정도였으며, 특히 3월 4일에 서울의 최저 기온이 -11.5℃, 일평균 기온이 -9.4℃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3월 6일 이후부터는 전반적으로 따뜻해서 결국 월평균 기온은 당시 기준으로 평년보다 높은 5.4℃를 기록하였다.[513] 3월 5일(-11.4℃)을 끝으로 더 이상 3월에 -10℃가 기록되는 일은 찾아오지 않고 있다. 사실상 이 날이 마지막인 셈이다.[514]
9.9. 1978년
전반적으로 포근한 해였으나 2월에는 한파가 왔다.- 1월 일부[516]~2월 - 한파/대한민국 문서 참조. 특히 2월은 서울 월평균 기온이 -2.5℃를 기록하였고 1월보다 낮았으며, 2월 첫날부터 -16.0℃를 기록하여 강력한 한파가 찾아왔다. 2월 중순에는 평창 대관령면에서 강력한 추위가 찾아왔는데, 2월 15일에 -27.6℃를 기록하였으며 2월 16일에도 -26.7℃로 매우 기록적인 추위가 찾아왔다.
- 3월 중순 - 3월 10일 이후로 강력한 꽃샘추위가 발생하여 3월 12일에 최저 기온이 -7.1℃까지 떨어졌고, 한낮 기온마저 -0.4℃에 머물러 하루종일 영상권으로 오르지 못했다. 이후에도 3월 16일까지 영하권의 날씨를 보이는 등 추위가 이어져 결국 중순 평균기온은 1.7℃에 불과했다.
- 5월 하순 - 최저 기온 한정으로 저온이었다. 일부 지역에서 최저 기온이 한 자릿수를 기록한 날이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낮에는 28~33℃, 혹은 그 이상의 이상 고온이 찾아왔다.[517]
9.10. 1979년
이해는 1~3월을 중심으로 이상 고온이 심했고, 특히 1월은 당시 평년치보다 5℃ 이상 높은 초이상 고온을 보여 서울 월평균 기온이 0.9℃를 기록하여 2020년 다음으로 높으며, 2019년까지는 아예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7월, 9월, 11월은 이상 저온이 발생하였다.- 11월 중~하순[518] - 전국적으로 11월 상순까지만 해도 20℃를 넘는 이상 고온이 발생했지만, 중순에 접어들자 불과 며칠 만에 기온이 최소 10℃ 이상, 심한 곳은 20℃ 이상 곤두박칠치는 기습 한파가 찾아왔다. 중부 지방은 며칠 만에 최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고, 그나마 따뜻한 남부 지방조차 기습 한파를 피할 수 없었다. 특히 11월 14일에는 서울이 -11.1℃[519]를 기록해 역대 11월 중순 최하위이다. 같은 날 인천은 한술 더 떠서 -12.0℃[520]까지 내려가 11월 중순은 물론 11월 전체로도 압도적 최하위이다.
10. 1980년대
1980~1986년까지는 1970년대에 비해 겨울이 다소 추워지면서 12~2월 내내 장기 한파를 보이는 경향이 늘어났다.[521] 다만 1987년 이후로는 사실상 겨울 평균기온이 1990~2000년대처럼 높아져 더는 극심한 한파 겨울이 찾아오지 않고 있다.10.1. 1980년
3월 상순, 5월 하순과 11월 등 평년보다 고온을 보인 시기도 있었으나, 1월~2월, 4월~5월 중순, 7월~10월, 12월에는 저온 현상을 보여 저온이 심했다. 이로 인해 전국 연평균 기온이 11.0℃로 역대 최하위이다. 서울도 1월, 3월, 6월, 11월을 제외하면 평년보다 모두 낮으며 연평균 기온이 10.824℃로 일제강점기와 비슷하거나 조금 낮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평균 기온 10℃대를 기록한 해이기도 하다.- 1월 일부~2월 - 각각 서울의 월평균 기온 -3.7℃, -3.1℃로 1월은 평년[522]과 비슷하거나 조금 높았으나 몇몇 날에 한파가 찾아왔으며 2월은 상당히 낮았다. 특히 2월 상순 서울의 평균기온은 -8.8℃로 역대 최하위이며, 2월 7일에 대관령면의 최저 기온 -21.1℃, 서울도 -14.5℃까지 떨어졌다. 한파/대한민국 문서 참조. 단 3월은 당시 치고는 다소 높았다.
- 4월~5월 중순[523] - 서울의 월평균 기온은 10.1℃로 평년보다 상당히 낮았으며[524] 최고 기온은 평균 대비 더 낮았다. 특히 4월 16일에는 서울의 최저 기온이 2.9℃였고, 최고 기온도 9.9℃로 10℃를 밑돌았으며, 4월 21일에도 최저 기온 3.9℃로 마치 2020년 4월 이맘때를 연상케 하는 저온을 보였다. 5월 초중순에도 강릉을 제외하고 저온이 이어져서 16.5℃로 일제시대에서는 평년수준이지만 이시기 기준에서는 다소 낮았다. 2021년 5월 상순 및 하순과 비슷한 날씨였다. 다만 5월 하순에는 이상 고온이었고, 6월은 21.6℃로 1961~1990년 기준 21.5℃와 비슷한 기온을 보였으며 동쪽 지역은 이상 고온이었다.
- 7~8월 - 서울의 월평균 기온이 7월 22.7℃, 8월 22.8℃로 1993년 여름보다도 약간 낮고 7~8월만으로는 역대 가장 시원한 여름 중 하나이다.[525] 특히 부산과 대구는 서울보다 더 낮아서 22.0°C로 부산과 대구 모두 역대 8월 최하위이다. 전국적으로는 8월에 21.8℃를 기록하여 역대 최하위였다. 어느 정도였냐면 서울은 1980년 5월 31일에 31.7℃를 기록하고 7~8월에도 31.7°C보다 높은 기온을 기록하지 못했다. 특히 인천은 1년 내내 30℃ 이상을 기록한 날이 하루도 없다. 포항에서도 7월 13일에서 7월 31일까지 5월에나 보일 법한 저온을 기록했다. 서울도 7월 31일에 최저 기온이 17.9℃로 6월 중순에 해당하는 기온을 보였다. 이유는 평년에 비해 강하게 발달한 오호츠크해 기단이 한반도에 많은 영향을 주며 상대적으로 서늘한 기온을 보였고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같은 날에 세인트 헬렌스 화산 폭발 등으로 인한 저온 현상이 1981년까지 이어지면서 이와 같은 유래없는 이상 저온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서울의 여름 계절 평균 기온으로 보면 이보다 더한 저온 현상을 보인 해가 1913년, 1936년, 1947년 등 꽤 있으나 그래도 이 정도도 평년을 훨씬 밑도는 저온 현상을 보인 여름에 속한다. 게다가 1936년, 1947년도 이상 저온이 심했으나 서울에서 폭염 일수가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1980년은 폭염 일수조차 없었다는 점에서 앞의 해들을 능가한다고 볼 수도 있다. 단 1980년 여름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기록적이었고 1993년 여름은 남부 및 영동 지방을 중심으로 기록적이니 전국적으로는 1993년이 약간 더 심각한 편이다. 당시 신문에는 이상 저온과 냉해 문제가 하루~나흘에 한 번씩 나올 정도라서 기록적인 저온 현상을 보였다는 증거가 되겠다. 8월 2일 기사, 8월 5일 기사, 8월 6일 기사, 8월 11일 기사, 8월 14일 기사, 8월 19일 기사, 8월 21일 기사, 8월 25일 기사, 9월 1일 기사.
- 9월 - 서울의 월평균 기온이 19.6℃로 평년보다 0.8℃︎ 낮았다. 심지어 전국 9월 평균 기온은 18.6℃로 또다시 역대 최하위였다. 결국 이해에도 6월보다 낮은 9월 평균 기온을 기록하게 되었다. 9월 10일에 서울의 최고 기온이 19.2℃에 그쳤고, 9월 23일에는 최저 기온이 8.1℃까지 떨어졌다.
- 10월[526]~11월 3일 - 서울의 월평균 기온이 13.0℃로 평년보다 0.6℃︎ 낮았다. 1980년 10월은 2010년대 10월 중 가장 낮았던 2018년 10월의 평균 기온 13.1℃보다 약간 더 낮았고 다음 해 10월에 이어 두 번째로 빠른 첫눈을 기록했다(10월 25일). 특히 10월 하순의 경우 서울 평균기온이 6.9℃로 역대 최하위를 기록했으며, 10월 26일에는 서울의 최저기온이 0.0℃를 기록했고, 최고기온도 6.0℃에 머물렀다. 10월 31일에도 0.9℃까지 떨어지며 2015년~2016년 이맘때와 비슷한 수준의 저온을 보였다. 이 이상 저온 현상은 11월 3일까지 이어졌다.
10.2. 1981년
전년도인 1980년의 이상 저온 현상에 비해 3월 중순과 12월 하순 등 비교적 확실한 고온 현상도 있었고 3월, 4월, 7월, 12월 같이 저온이 아닌 달들도 있었으나 여전히 저온 현상이 우세하였고 서울에서 가장 이른 첫눈을 기록한 해이다. 특히 가을철의 이상 저온 현상이 매우 심각하였다. 그리하여 이해 전국 연평균 기온은 11.2℃로 최저 3위를 기록하였다.- 1~2월 - 한파/대한민국 문서 참조. 서울의 1월 평균 기온 -7.0℃로 평년보다 3.5℃ 낮았고, 2월 평균 기온은 평년과 비슷한 -1.4℃를 기록했으나, 전국적으로는 1월이 -5.3℃로 11월과 같이 역대 최하위였다. 전형적인 장기 한파 유형의 겨울이었으며 1월은 2011년 1월과 비슷하게 고온 없이 한 달 내내 매우 꾸준히 낮았다. 특히 이해 1월 5일에 양평에서 최저 기온 -32.6℃로 대한민국 역대 공식 최저 기온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저온이 유독 심한 수원의 경우 월평균 기온 -9.8℃, 최저 기온 극값 -24.8℃[528]를 기록하였다. 서울도 1월 4일에 -16.5℃를 기록했으며 2월 하순까지도 늦추위가 매우 강력한 양상을 보였는데, 2월 26일에 -15.6℃[529]를 기록하였으며 이는 현재까지도 2월 하순 역대 최저 기온으로 남아있다.[530] 심지어 제주마저 -5.1°C까지 떨어졌다.
- 3월 상순[531] - 2월 하순 늦추위의 영향인지 3월 7일 단 하루 빼고 상순 내내 종일 영하의 날씨가 이어졌다. 3월 6일에 -5.1℃를 기록했다. 이어 3월 15~16일, 3월 26~27일에도 최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저온 현상이 있었으나 나머지 중하순은 평년보다 매우 높은 날씨가 이어져서 결국 3월 평균 기온은 5.7℃로 이상 고온이 심화된 1981~2010년 기준과 같고 당시 기준으로는 오히려 높은 편이다.
- 4월 일부[532] - 4월 3일에 서울 최저 기온이 1.7℃를 기록했다. 4월 7~9일에는 고온 현상이 찾아왔으나 4월 9일 이후로 최저 기온이 10℃ 이상을 기록한 날이 거의 한 달 뒤인 5월 6일이다. 하지만 기온이 크게 하락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었고 4월 16일, 4월 19일, 4월 24일에 강수의 영향으로 최고 기온이 낮은 것을 빼면 모두 그맘때 기온이었다. 서울 4월 평균 기온도 11.9℃로 당시 평년과 비슷하거나 조금 높았다.
- 5월~6월 4일[533] - 5월 1일까지는 평년보다 다소 고온이었으나 5월 3일 서울 최고 기온이 14.0℃로 급격하게 떨어졌다. 다음 날인 5월 4일에는 5.4℃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저온 현상은 5월 6일 들어 기온이 올라가며 해소되었지만 중순에 다시 추워져 최저 기온 한 자릿수를 기록한 날이 많았고 5월 14~15일을 제외하면 최고 기온이 20℃ 이상으로 올라간 날이 전무했다. 게다가 5월 17일 최고 기온이 13.8℃, 5월 18일 최저 기온 6.7℃를 기록하여 5월에 꼭 한 번씩 찾아오는 이른 더위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하였다. 하순에 기온이 올라 평년 수준으로 되돌아갔고 5월 26~27일에는 최고 기온 28.3℃, 28.5℃를 기록하는 더위가 잠시 나타났으나 다음 날인 5월 28일에도 강수의 영향으로 최고 기온 20.3℃에 그쳤다. 그리고 5월 31일 밤부터 다시 한기가 내려오며 이날 24시경 11.9℃를 기록하였고 6월 1일의 저온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해서 서울의 5월 평균 기온은 15.9℃로 상당히 낮은 값을 보였다. 그리고 6월 1일의 최저 기온이 8.8℃로 한 자릿수 기록. 이는 서울의 6월 최저 기온 극값이다. 최고 기온도 6월 4일까지 22~24℃를 기록하여 5월 초중순 수준의 날씨를 보였다. 하지만 중하순에는 평년보다 다소 높은 날이 이어져서 서울의 6월 평균 기온은 21.8℃로 평년과 비슷했다.
- 8월 일부 - 7월 하순에 최고 33.9℃를 기록[534]하는 폭염이 있었고 8월 3일까지는 최저 기온 중심으로 다소 높은 경향을 보이다가 8월 4일부터는 기온이 내려가기 시작해서 8월 7일에는 서울 최저 기온이 17.9℃였다. 하지만 중순에는 그맘때 기온을 보이고 8월 14일에 33.0℃를 기록했으나 8월 하순에 최저 기온 20℃ 이하의 날씨가 꽤 오래 이어졌고 강수의 영향으로 8월 25일 최고 기온이 23.2℃를 기록하는 등 약한 저온이 이어져서 8월 평균 기온 24.5℃로 조금 낮았다.
- 9월 - 9월 상순부터 이른 가을 날씨로 최저 기온 중심으로 낮았고 최저 기온이 높은 날은 최고 기온이 낮은 현상이 이어졌다. 9월 4일 최저 기온 15.6℃[535], 9월 13~15일에는 최저 기온이 연속으로 11℃대를 기록하는 등[536] 저온 현상이 심했다. 9월 14일 아침에는 대관령에서 -0.6℃를 기록하면서 전국 기온을 통틀어 가장 빠르게 영하가 관측되기도 했다. 하순 초반에 늦더위가 찾아와서 평균 기온을 많이 올렸지만 9월 평균 기온 20.0℃로 다소 낮았다.
- 10~11월 - 10월 상순~중순에는 2020년 10월처럼 평년보다 낮거나 비슷한 날씨가 이어졌다. 그리고 10월 23일에는 0.6℃까지 기온이 떨어져, 위에서 언급한대로 기상 관측 사상 가장 이른 첫눈을 기록하게 되었다. 최고 기온도 6.1℃로 한 자릿수였다. 이후 10월 26일까지 평년보다 쭉 낮다가 월말에 기온이 올랐으나 다시 약간 떨어지며 11월 1일에 13.6℃를 기록했는데, 이것이 11월의 최고 기온 극값이었다. 상순 중심으로 이상 저온이 매우 심했으며 11월 7일에 최고 기온 1.0℃, 11월 8일에는 무려 -7.0℃[537](-8.5℃), 1912년(-7.8℃), 1917년(-7.6℃)이다. 대신 1~3위 모두 일제강점기에 기록되었으므로, 1981년은 일제강점기에도 11월이 춥기로 소문난 해들과 맞먹는 매우 강한 저온 현상을 보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까지 매우 크게 떨어져 한겨울 수준의 날씨를 보였다. 11월 상순 치고 매우 비정상적인 한파를 보여 결국 이해 11월은 최저 기온 극값이 상순으로 남게 되었다. 중순 초반에는 평년 수준으로 기온이 올라갔으나 여전히 최저 기온 중심으로 영하를 기록하면서 다소 추운 날씨가 이어졌고 하순에 다시 한기가 남하하여 11월 28일에 -5.9℃로 상순의 한파 만큼이나 추운 날씨를 보여주었다. 이렇게 나온 11월 평균 기온은 3.6℃로 매우 낮았으며 전국 11월 평균 기온은 4.4℃로 역대 최하위를 기록했다.[538] 이로 인해 1981~1982년 겨울은 2002~2003년 겨울과 비슷한 양상을 띄었다.
- 12월 상순~중순 - 11월 하순 한파가 이어지면서 12월 2일부터 최저 기온 -11.0℃를 기록했고, 대관령면에서는 -20.2℃까지 떨어지는 등 매우 추웠고 이후 기온이 올랐으나 중순까지 여전히 평년보다 살짝 낮은 날씨를 보였다. 하지만 하순의 이상 고온 현상으로 12월 평균 기온은 0.1℃로 평년보다 조금 높았다.[539]
10.3. 1982년
이해는 엘니뇨의 해인지라 지난 2년의 라니냐 및 저온 현상과 달리 1월을 제외하면 별다른 한파나 저온이 없는 포근한 해이다. 하지만 가을철에는 산발적으로 꽤 강력한 이상 저온이 발생했다.- 1월[540] - 상순에는 지난 해 12월 하순의 고온으로 인해 포근했지만 중순부터는 1월 14일에 -13.8℃의 한파가 찾아와서 서울의 중순 평균 기온은 -6.7℃로 평년보다 다소 낮았다. 하순에 고온이 오나 싶었지만 역시나 1월 27일부터 다시 급락해 한파가 이어졌고 1월 29일에는 1984년 1월보다 낮은 최저 기온 극값인 -14.1℃를 기록하였으며 월평균 기온도 -3.6℃를 기록하여 평년보다 0.1℃ 낮았으며[541], 상순과 중순이 뒤바뀐 것을 빼면 2003년 1월과 양상이 비슷했다.[542]
- 10월 23~25일 - 1982년 10월은 슈퍼 엘니뇨로 이상 고온을 보여주었지만 10월 23~25일 한정으로는 겨울 수준의 추위가 나타났다. 10월 24~25일에는 영하로 떨어졌고 10월 24일 최고 기온이 6.6℃에 그쳤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했고 10월 26일부터 기온이 크게 올라 10월 30일에는 23.8℃를 기록하는 등 이상 고온을 다시 보였다.
- 11월 24~26일 - 전반적으로 포근한 11월이였지만 이 시기 한정으로 강한 한파가 기승을 부려 11월 24일에 최저 기온 -5.8℃를 찍은 후, 11월 25일에는 -7.1℃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11월 27일 이후 다시 올라 12월에는 이상 고온을 보였고 최저 기온 극값도 -9.8℃[543]에 불과했다.
10.4. 1983년
전년도에 이어 엘니뇨의 영향으로 포근한 해였으며 봄철을 중심으로 이상 고온이 심했고, 그 밖의 달도 평년과 비슷하거나 이상 고온을 보였지만 2월은 서울 기준 1월과 같은 월평균 기온을 기록하는 등 나름 추웠고, 7월도 낮았고 11월 중순~12월도 조금 낮았다.- 1월 일부[544] - 전반적으로 고온이 심해서 서울 월평균 기온은 -1.7℃를 기록하여 평년보다 높았지만 일부 날짜는 다음 해에 맞먹는 한파가 찾아왔으며 1월 9일에 -13.9℃를 기록하였다.
- 2월[545] - 서울 월평균 기온이 1월과 동일한 -1.7℃이며, 특히 2월 13일에는 -13.3℃를 기록하여 1월 최저 기온 극값과 비슷한 추위가 이어졌으며, 이후 하순인 2월 21일에도 -11.2℃까지 하강한 후 다음 날 한강이 해빙되어 한파가 끝났다. 만약 상순의 이상 고온이 없고 평년 수준이였다면 월평균 기온이 -2℃ 이하를 기록했을 것이고, 이 기간동안 1980년, 1984년 수준의 극단적인 한파가 왔다면 월평균 기온이 -4℃ 이하를 기록해 순위권에 들 가능성도 있었다.
- 7월 상순~중순 - 목포의 7월 기온이 하순 중반 전까지 6월보다도 더욱 낮은 날이 있었다. 그리고 7월 중순까지 전국적으로 기온이 낮았다. 다만 8월에는 기온이 매우 올라서 남부 지방 중심으로 37℃를 넘는 폭염이 찾아왔다.
- 8월 일부(중부지방) - 19일 대관령면의 최저기온이 8.4℃, 22일에는 7.8℃까지 떨어졌으며, 서울도 23~24일 최고기온이 22℃에 그쳤다. 하지만 대체로 고온이었던 날들이 더 많아 월평균기온은 26.0℃로 당시 치고는 꽤 높았다.
- 11월 일부[546] - 상순에는 따뜻했지만 11월 11일 밤부터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지더니, 11월 12일에는 서울 최저 기온이 0.9℃까지 떨어졌고, 이후 11월 14~15일에 살짝 올랐지만 11월 16일에는 -3.3℃, 11월 17일에는 -6.0℃까지 떨어져 강한 추위가 찾아왔다. 하순에 이상 고온이 다시 찾아왔으나 11월 25~27일에도 -3~-4℃의 한파가 찾아와[547] 월평균 기온은 6.7℃로 평년과 비슷했으며, 전반적으로 2023년 11월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 12월 중순~하순 - 서울의 월평균 기온이 -1.1℃로 평년보다 0.5℃ 낮았다. 12월 2일에는 최고 기온이 11.1℃를 기록해서 따뜻했으나, 12월 23~24일에는 -11.0℃, -11.3℃의 추위가 왔고 성탄절에는 더 심해져서, 서울 최저 기온이 -13.5℃를 기록하여 12월 최저 기온 극값이 되었으며, 같은 날 인천 강화는 -19.8℃, 천안은 -18.1℃를 기록하여 서울보다도 훨씬 낮은 극값을 세웠다. 이 한파는 이듬해 1월까지 풀리지 않고 지속되었으며 2월이 되자 더 심해졌다.
10.5. 1984년
지난 2년 동안의 엘니뇨 현상이 끝나고 약간 -중립을 띄다가 11월부터 라니냐로 전환되어 겨울철 저온 현상이 매우 강했던 해이다. 2~3월은 전국 평균 기온 역대 최하위를 기록했으며, 1월과 12월 하순도 꾸준히 낮았다. 다만, 4월 중순~8월, 10월 중순, 11월과 12월 상순~중순은 당시 기준으로 평년보다 높았다.- 1~2월 - 한파/대한민국 문서 참조. 서울의 1월 평균 기온 -5.9℃, 2월 평균 기온 -3.5℃를 기록하였으며, 전국적으로는 1월이 -4.3℃로 역대 최저 4위, 2월이 -2.3℃로 역대 최하위였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1월 최저 기온 극값은 -13.6℃로 오히려 높아[548][549] 2월 최저 기온 극값인 -15.1℃[550]가 더 낮았다. 특히 2월 상순의 서울 평균 기온은 -8.2℃를 기록하여 1월 하순보다도 1.1℃ 낮아 하위 3위[551]를 기록하였다. 또한 저온이 유독 심한 평창 대관령면의 1월 평균 기온은 -11.2℃를 기록하였고 최저 기온 극값도 -25.8℃[552]로 매우 기록적이었다.
- 3월 - 서울 월평균 기온이 2.5℃. 마지막으로 3월 평균 기온 2℃대를 기록한 해이기도 하며 전국 3월 평균 기온은 3.2℃를 기록하여 역대 최하위였다. 그러나 다음 달은 3월의 이상 저온을 비웃기라도 하듯 월평균 기온 12.1℃로 당시 기준으로 평년 수준이거나 오히려 약간 높았다. 이는 1922년, 2019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 4월 일부(동해안 지역은 월 전체) - 3월 하순의 꽃샘추위가 그대로 이어지면서 4월 6일에 서울은 최저 기온이 0.1℃까지 내려갔고, 7일에도 최저 기온이 0.4℃였으나 오후부터 풀려 평년 수준으로 되돌아갔지만 특아하게도 동해안 지역은 동풍이 불어 복사냉각이 강해 한달 내내 최저 기온이 한 자릿수에 머물렀으며, 강릉은 최저 기온이 9.6℃ 위로 올라가지 못해 월평균 기온이 8.9℃로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 9월 - 서울의 9월 최고 기온 극값이 28.7℃[553]에 불과해 29℃를 넘기지 못했다. 특히 9월 1일에 태풍으로 인해 268.2mm(???)라는 유례없는 폭우가 내려 기온이 급강하해 9월 2일에는 최고 기온이 21.3℃에 그쳐 10월 초중순 날씨를 보였으며, 9월 상순 평균기온도 18.6℃로 역대 최하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이후 9월 26일에는 최저 기온이 10.1℃로 두 자릿수를 간신히 넘겼고, 9월 28일에는 폭우로 인하여 기온이 오르지 못해 최고 기온이 19.3℃에 그쳐 20℃에도 미치지 못했다. 결국 이 이상 저온의 여파로 서울의 9월 평균 기온은 20.1℃를 기록했다. 특히 중간에 폭우 현상이 발생해 기온 상승도 지체되었다.
- 10월 21일 - 서울 최저 기온이 1.2℃까지 곤두박질쳤으며 최고 기온도 10.7℃에 불과했다. 다만 서울의 월평균 기온은 13.8℃로 약간만 낮았다. 그러나 11월이 되자 기온이 올라 이상 고온을 보여 12월 중순까지 이어졌다.
- 12월 하순 - 서울의 12월 하순 평균 기온이 -6.9℃를 기록하여 하위 4위이다. 심지어 이달 상순~중순의 초이상 고온을 하순의 장기 한파로 인해 모두 상쇄시켜서 서울의 월평균 기온이 -0.9℃로 평년보다 0.3℃ 낮았으나 전국적으로는 0.8℃로 비슷하거나 약간 높았다. 최저 기온 극값은 12월 29일의 -12.8℃.
10.6. 1985년
겨울철 저온 현상이 최저 극값 기준으로는 전년도보다 더 심한 해이다. 1월은 아예 전년도와 같은 월평균 기온을 기록했으며, 한파까지 강했다. 11월도 저온이었고 12월도 전년도보다 훨씬 낮았다. 단 2월은 오히려 평년보다 높았다. 3~4월은 평년 수준이었고, 5~8월과 10월은 당시 기준으로 평년보다 높았다.강원도 태백, 경상남도 창원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 1월 - 서울 월평균 기온은 극값은 낮지 않으면서 꾸준히 저온이 이어졌던 전년도와 동일한 -5.9℃였으나, 이해는 전년도와 다르게 매우 강한 한파가 있었다. 최저 기온 극값은 1월 14일에 -16.7℃를 기록하였으며 1월 29일은 최고 기온이 영하 두 자릿수에 근접한 -9.7℃를 기록하였다.
- 9월(최고 기온) - 월평균 최고 기온이 23.9℃로, 월평균 최고 기온에서 역대 최하위를 기록. 정작 월평균 기온과 월평균 최저 기온은 9월 상순의 영향으로 평균 수치에 그쳤다. 잦은 강수로 인한 일사 차단이 원인으로 보인다.
- 12월[556] - 한파/대한민국 문서 참조. 서울 월평균 기온 -3.4℃. 특히 12월 10일에는 최저 기온이 -13.6℃를 기록하여 12월 최저 기온 극값을 세웠다. 12월 20일까지 장기 한파가 이어지다가 12월 21일에 기온이 잠깐 올랐지만 이듬해 1월에는 더 심해졌다.
10.7. 1986년
1980년, 1981년, 1993년처럼 20세기 후반에 저온 현상이 많은 해이다. 12월을 제외하면 큰 고온은 없었다. 1~2월에는 강한 한파가 왔고 3~6월에는 평범했으나 7~8월에는 시원한 여름이였고 가을철에도 저온을 보였다.- 1~2월 - 매우 강한 한파가 찾아왔다. 서울과 수원은 마지막으로 각각 -19℃ 이하, -20℃ 이하를 기록했다.[557] 서울 월평균 기온은 각각 -5.4℃, -3.3℃이다. 자세한 내용은 한파/대한민국 문서 참조. 이와 더불어 1986년 2월을 기점으로 2월 평균 기온이 -3℃ 이하를 기록하는 해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고 있다. 1월도 2011년 1월을 제외할 시 -5℃ 이하의 월평균 기온을 기록하는 해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558] 즉 이해 1~2월 한파가 마지막 대한파(大寒波)였던 셈. 특히 1월은 그렇다쳐도 2월 평균 기온이 -3℃ 이하를 기록하는 해는 사실상 끝났다고 봐야 하는 수준인데, 1990년대 이후로는 2월의 고온 현상이 심화되면서 봄이 일찍 찾아오는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559]
- 9~11월 - 시원했던 여름에 이어 9월이 되어서도 매우 추웠으며 서울 월평균 기온은 19.9℃[560]로 20℃ 미만을 기록했다. 전국 9월 평균 기온은 18.9℃로 1980년의 18.6℃, 1976년의 18.8℃에 이어 역대 최저 3위였다. 10월은 서울에서 12.7℃를 기록했고, 전국적으로는 12.3℃로 역대 최하위였으며 10월 31일에 서울에서 -0.5℃까지 떨어졌다. 11월도 서울에서 5.2℃를 기록했다. 그러나 12월이 되자 기온이 올라가서 이상 고온이 찾아왔다.
10.8. 1987년
여름철 저온 현상이 강한 해이다. 서울 연평균 기온이 11.9℃로 마지막으로 11℃대를 기록했으며, 1987년 이후 연평균 기온은 12~14℃ 사이를 오가고 있다. 또한, 이해부터 겨울이 포근한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561]- 1월 일부[562] - 서울의 월평균 기온은 -3.0℃로 평년과 비슷했으나 일부 날짜는 강한 한파가 찾아와서 1월 10일에는 북한의 삼지연이 -40.0℃, 서울은 1월 14일에 -15.1℃를 기록하였다.
- 2월 24~28일, 3월 24~26일 - 이 기간을 제외한 나머지 날들은 삼한사온의 순환이 잘 일어나 대체로 평범했으나 하순 추위가 강했는데, 2월 27일에는 서울 -9.1℃, 3월 25일에는 -7.6℃'''를 기록했다. 심지어 3월 25일의 최고 기온은 0.9℃로 기상 관측 사상 3월 25일이라는 날짜에 기록된 가장 낮은 최고 기온 기록이며, 이는 압도적인 최저 기온을 기록한 1922년 3월 25일의 최고 기온보다도 더욱 낮다.
- 4월☆~5월 상순 - 비록 4월 5~9일, 4월 18~20일 처럼 평년보다 높은 날씨도 있었지만 초이상 저온이 몇몇 날에 있었다. 서울은 4월 1일에 0.4℃, 4월 13일에 0.5℃를 기록했다. 최저 기온 한 자릿수의 날씨는 4월 하순에 계속 이어지다 5월 1일에 잠시 풀렸으나, 그 뒤로도 5월 8일까지 한 자릿수의 날씨가 길게 지속되었다. 덕분에 4월 평균 기온은 10.8℃에 머물러서 다소 낮았다. 그렇다고 4월 자체가 저온이었다고 보기도 힘든 것이 일별 평균 기온의 중앙값으로 보면 12.0℃로 그리 낮지는 않았다.[563] 서울은 5월 3일에 5.8℃를 기록했다. 5월 18일에도 7.5℃를 기록했으나 5월 21일에 크게 올라 28.9℃를 기록했고, 5월 31일에도 29.0℃의 더위가 오며 흡사 여름같은 날씨를 보여주었다.
- 7~8월 - 1980년처럼 인천에서 7~8월 내내 30℃ 이상을 기록한 날이 하루도 없다. 그나마 이쪽은 6월은 고온인 편이라 6월 25일에 30.5℃를 기록하기는 했다. 서울도 최고 기온이 여름 동안 고작 31℃ 언저리에 불과했다.[564]
- 9월 - 대체적으로 여름의 이상 저온이 길게 이어져 평년보다 낮았다. 서울은 최고 기온 29℃를 넘지 않고 28.6℃가 9월 최고 기온으로 기록[565][566]되었으며 특히 9월 25~27일에 저온 현상이 심화되어 9월 27일 서울은 6.3℃를 기록하였다. 이는 기상 관측 사상 9월 27일의 역대 최저 기온이다. 이 저온 현상뿐만 아니라 상순~중순에도 30℃ 이상의 늦더위가 없었기 때문에 9월 평균 기온은 20.1℃로 다소 낮은 편이었다.
- 10월 19~23일 - 9월 기온이 10월에 계속 이어져 초중순에 늦더위 현상이 크게 발생했지만 이 기간은 최저 기온이 한 자릿수 이하로 낮아져서 평년보다 조금 낮았다. 10월 22일에는 서울에서 2.2℃가 기록되었다. 하지만 늦더위를 상쇄하기에는 규모가 그렇게 강한 편은 아니었고 월말에 또 기온이 올라서 고온을 보였기 때문에 서울 평균 기온은 15.5℃로 오히려 평년보다 높았다. 덜 극단적인 2021년 10월으로 보면 이해하기 쉽다.
- 11월 일부 - 10월 하순의 고온은 11월 4일이 되자 다시 해소되었고 11월 6일에 서울 최저 기온이 -1.0℃를 기록했다. 이후 몇몇 저온인 날이 있었으나 대부분 최저 기온 0~-1℃ 사이여서 큰 저온은 아니었고 나머지 날의 이상 고온이 심해서 월평균 기온이 크게 오르던 와중, 11월 27일에 한기가 급속도로 내려와 11월 28~30일에 기온이 매우 급락해서 11월 29일에는 서울 최저 기온이 -9.2℃로 매우 크게 낮았다. 하지만 이 사흘이 월 전체 평균 기온을 크게 떨어뜨렸음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날들의 이상 고온이 심해[567] 서울 월평균 기온 7.5℃로 1991~2020년 평균과 같고 당시 기준으로는 오히려 높았다.
- 12월 1~7일, 12월 30~31일 - 11월 한파가 계속 이어져 12월 상순에도 추웠고 12월 2일에 서울 최저 기온 -10.2℃를 기록하여 강한 저온을 보였다. 이 한파는 12월 7일까지 다소 길게 이어지다 풀렸고, 중순 초반에도 약한 저온을 보였지만 12월 15일에 그대로 풀려 하순은 이상 고온이 길고 강하게 이어졌다. 하지만 12월 30~31일에는 기온이 다시 떨어져 12월 31일에 -10.6℃를 기록하여 세밑 한파를 보였다. 서울 월평균 기온은 0.9℃로 평년보다 높았으며, 2019년 12월을 연상케하는 기온 양상을 보였다. 그리고 강수량이 매우 적고 건조해 전국 기준으로는 1987년 12월이 역대 가장 적은 강수량을 기록하게 되었다.
10.9. 1988년
강원도 철원, 전라북도 장수, 경상북도 봉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 한경면 고산리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2월 - 서울 월평균 기온은 -1.5℃로 평년보다 조금 낮았으나 2월 3일에 최저 기온 -12.9℃를 기록해 한파일수가 기록되었고, 중순에도 2월 16일에 -10.0℃를 기록하는 등 추운 날씨가 길게 이어졌다.
- 3월 상순[568][569] - 전국 단위로 최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지역들이 많았고, 서울 기준으로 최저 기온이 -5℃ 이하를 기록한 날이 상순 전체 중에서 5일이나 되며, 그 중 3월 3일에는 -6.6℃, 3월 7일에는 -6.8℃까지 떨어졌다. 그리고 대관령에서는 3월 3일에 최저 기온이 무려 -14.9℃까지 떨어졌고, 봉화군에서도 3월 4일에 -13.0℃를 기록하는 등 전국적으로 늦추위가 찾아왔다. 결국 서울의 3월 상순 평균 기온은 -0.3℃[570]로 영하권을 기록했으며, 평년보다 3℃ 이상 낮았다. 이후 3월 10일부터 날씨가 풀렸으나, 그 이후로도 영하로 떨어진 날이 있는 등 그리 따뜻하지 못했다. 3월 평균 기온은 4.3℃로 당시 기준 평년과 비슷한 편이었으며, 2010년 3월과 같았다.
10.10. 1989년
이해부터 한반도의 온난화가 본격화된 해이며, 1월은 서울의 월평균 기온이 1972년 1월과 같은 0.8℃로 당시 기준으로는 최고 2위, 현재도 1972년과 공동 최고 3위일 정도로 이상 고온이 심했다. 다만 10월에는 저온도 있어서 평년보다 조금 낮았다.11. 1990년대
1980년대까지[571]는 저온이 더 우세한 날씨를 보였으나 1990년대[572]에 접어들고 지금과 같이 고온이 더 우세한 날씨가 찾아오기 시작한다. 특히 겨울철은 1986~1987년 겨울부터 시작된 고온 경향을 이어받아 거의 대부분의 겨울철이 고온이었다. 하지만 5월의 상승세가 뚜렷한 2010년대와 달리 1990년대에는 5월에 이상 저온을 보인 해가 꽤 존재한다.11.1. 1990년
1월에는 반짝 한파가 있었는데 매우 강력했고[573] 서울의 연 강수량이 역대 가장 많은 해이나(2,355.5mm) 아이러니하게도 10월에는 강수량이 기록되지 않았다.- 1월 19~27일 - 서울 월평균 기온은 -3.2℃로 2016년 1월과 같았으며, 기온 진행 양상도 2016년과 매우 유사하다. 상순에는 고온이 왔으나 1월 19일부터 기온이 급락하기 시작해 1월 20일에 -10℃를 밑도는 한파가 찾아왔으며, 1월 24~25일에는 최저 기온이 각각 -16.4℃, -17.1℃를 기록했고 최고 기온이 각각 -10.5°C, -10.6°C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2월에는 이를 비웃듯이 이상 고온이 찾아왔다.
- 11월 10~11일, 21일 - 이상 고온이 심한 11월이나 이 날들은 강한 추위가 왔으며 11월 10일에는 최저 -4.1°C, 최고 1.2°C, 일평균 -1.5°C를 기록하여 11월 상순에 매우 추운 날씨가 나타났다.[574]
11.2. 1991년
2월은 월평균기온은 평년 수준이었으나 하순 기습한파가 강했고 7~8월, 10~11월도 조금 낮았으며 3월과 5월은 평년 수준이었고 1월과 9월은 평년보다 조금 높았고 12월에는 이상 고온이 왔다. 6월도 평년보다 높았다.- 2월 19~25일[575] - 1월은 비교적 따뜻하여 최저 기온 극값도 -12.9℃[576]에 그쳤고 월평균 기온도 -2.6℃였으며 2월에도 그 기온을 유지하는 듯 보였으나 중순 후반부터 믿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한파가 찾아왔다. 한파가 찾아오기 전인 2월 1일부터 18일까지 최저기온 극값이 -6.7℃에 그쳤을 정도로 다소 온화한 날씨를 보였으나, 2월 19일부터 기온이 급락하기 시작하여 2월 20일 서울 최저 기온이 -9.2℃로 한파의 시작을 알리더니, 하순으로 넘어가자 더욱 심화되어 급기야 2월 22일에는 최고기온이 겨우 -8.4℃에 그쳤고, 다음 날인 2월 23일에는 최저 기온이 무려 -15.0℃까지 곤두박질쳤다. 이는 서울의 2월 하순 역대 최저 기온 3위이다. 심지어 일평균기온도 무려 -11.1℃로 -10℃를 크게 밑돌았다. 같은 날 장수는 최저 기온 -25.8℃로 전국 최저, 평창 대관령면은 -22.2℃를 찍는 등 3월을 일주일 앞둔 시기 치고는 꽤나 지나친 추위였다. 대구에서도 -12.4℃로 한파일수가 기록되었다, 24일에도 한파가 이어져 장수 -23.5℃, 대관령 -20.4℃, 봉화 -19.8℃까지 떨어졌고, 서울도 -13.0℃를 기록했다. 이 한파는 25일 오전까지 이어지다가 오후부터 차츰 풀렸다. 결국 이 추위로 인해 서울의 2월 하순 평균기온은 -4.4℃로 1933년과 같은 역대 최저 공동 5위이며, 현대 평년 기준으로 하면 무려 6℃ 이상 낮은 수준이다. 또한 직전의 2월 중순에 비해서도 5.4℃나 낮은 기현상이 일어났다.
- 4월 1일 - 서울 일 최저기온 -3.4℃. 1996년을 끝으로 서울에서 4월에 영하를 기록하는 사례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영하를 찍먹한 수준을 뛰어넘어 -3°C대가 기록되었던 것은 엄청난 초이상 저온이다.
- 5월 1일 - 전국적으로 이상 저온 현상이 나타났다. 26일에는 3~4일 전에 발생한 고온 현상의 반작용으로 서울의 최고기온이 13.4℃에 그쳐 역대 5월 하순에 기록된 최고기온들 중 가장 낮았다.
- 8월 - 강원도와 경상도 동해안을 중심으로 쌀쌀했으며 중순의 반짝 더위를 빼면 매우 선선했다. 한편 이해부터 3년 연속 서늘한 여름이었다. 특히 8월 28일에는 서울의 아침 최저 기온이 15.7°C. 같은 날 철원은 8.8℃였는데, 이 정도면 남한에서 가장 추운 동철원(舊 김화) 지역에서는 5℃ 근처까지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 가능하다. 더욱이 철원은 1988년에 기상관측소가 설치되어 1980년, 1987년, 1993년, 2003년 등의 쟁쟁한 이상 저온을 기록한 여름 사이에 관측이 시작되었으므로, 광복 이후 8월 아침 최저 기온 최저 3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다만 최고 기온은 28~30℃까지 올랐다는 점에서 대비되었다. 전국 월평균 기온은 23.6℃였다.
- 10월 일부
11.3. 1992년
강원도 동해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며, 1~2월은 한파가 없었고 최저 기온 중심으로 이상 고온을 보여 서울 월평균 기온이 -0.2℃로 간신히 영하를 기록하였고 최저 기온 극값도 -9.1℃[577] 이하로 떨어지는 날이 없었으며, 최고 기온 극값마저 7.6℃[578]에 그쳐 한달 내내 애매한 날씨를 보였다.[579] 그러나 5~6월에는 저온을 보였고 10~11월에도 평년보다 조금 낮았다. 4월과 9월은 평년 수준이였으나 겨울철과 3월의 이상 고온이 심해서 기온 분포가 전체적으로 2007년과 비슷한 해이다. 하지만 2007년과 달리 저온이 뚜렷하고 더 잦아 연평균기온은 2007년보다 확실히 낮았다.- 4월 일부[580] - 상순에 고온이 이어졌다가 4월 10일에 비가 내린 뒤 기온이 급락하여 이상 저온이 발생하였다. 4월 12일에 서울의 최저기온이 1.5℃, 대관령면은 무려 -4.8℃, 최고기온도 겨우 1.6℃에 일평균기온 -2℃를 기록해 4월 상순이 아닌 중순에 강력한 꽃샘추위가 찾아왔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기온이 급락했으니 체감으로도 매우 차가웠다. 한 술 더떠 저온이 절정에 달했던 4월 15일에는 서울의 최고기온이 겨우 8.9℃에 그치며 2020년 4월 22일과 유사한 수준의 초이상 저온을 보였고, 대관령면은 최고기온 3.7℃를 기록해 아예 4℃를 넘지 못했다. 이 저온 현상은 19일까지 이어졌다. 결국 서울의 4월 중순 평균기온은 9.0℃로 하위 16위에 해당하는 값을 보였다.
- 5월 - 서울 월평균 기온이 16.4℃로 1961~1990년 평년값보다 1℃, 1991~2020년 평년값보다 1.8℃ 낮았다. 전국 5월 평균 기온은 15.7℃로 역대 최하위였다. 특히 5월 25일에는 서울에서 최저 기온 9.8℃, 최고 기온 14.5℃라는 초강력 저온 현상이 나타났다. 심지어 5월 평균 기온 최하위를 기록한 1945년 5월 23일과 비슷하거나 더 심하다.
- 6월 - 서울 월평균 기온이 20.9℃로 동년 9월과 같았다.[581] 6월 1~3일에는 이상 고온을 보였으나 6월 4일에 56.0mm라는 폭우가 발생하여 최고 기온이 21.0℃에 그쳤고, 6월 8일에는 복사냉각으로 인해 최저 기온이 10.8℃까지 떨어져 2021년 5월 30일과 비슷한 이상 저온을 보였다.
- 10월 - 서울 월평균 기온이 14.0℃로 평년보다 조금 낮았다. 10월 6일에 서울 최저기온 8.1℃를 기록해 2020년 10월 5일과 비슷한 수준의 저온을 보였고, 중순은 평범했으나 하순에 다시 저온이 찾아와 10월 26일에 4.0℃까지 떨어졌다.
- 11월 - 서울 월평균 기온 6.2℃. 일단 상순 후반부터 이상 저온을 보였는데, 11월 9일에 12.6mm의 폭우가 내리고 기온이 크게 오르지 못해 최고 기온이 8.9℃에 머물렀으며, 다음 날에는 최저 기온 1.3℃, 최고 기온 5.5℃를 기록했다. 이후 중순에는 현대 평년과 비슷하고 당시 기준으로는 약간 높은 이상 고온이 찾아왔으나, 하순에 더욱 강한 추위가 찾아와서 11월 27일에 -9.0℃까지 내려갔으며, 11월 26일에는 최저 기온 -8.5℃, 최고 기온 -2.4℃, 일평균 기온이 -5.7℃를 기록했다.
11.4. 1993년
이해 여름이 매우 시원해서 제주도에 이틀간 폭염이 온 것을 빼면 폭염 일수도 없고 1980년과 맞먹는 매우 서늘한 여름이 찾아왔다. 1980년의 여름, 2010년의 봄과 더불어 냉해 피해가 가장 컸다. 그리고 1980년과 같이 여름에만 이상 저온이 찾아온 것이 아니어서 평균 기온은 매우 낮았다. 1993년 이후로는 현재까지 이 기록보다 더 낮게 나온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서울 기준으로 열대야를 단 한 번도 기록한 적이 없는 마지막 해이기도 하다.[582]- 4월[583] - 서울에서 4월 10일에 눈이 관측되었다. 그밖의 날도 추운 날이 많았지만 이상 고온을 보인 날도 가끔 있었다. 21세기 중에서는 2011년과 가장 비슷했다. 서울의 4월 평균 기온은 10.6℃이다.
- 6~8월 - 1980년, 1987년, 2003년과 함께 광복 이후 가장 선선했던 여름 중 하나로, 7월은 거의 5월 하순, 8월은 거의 9월 중순, 심하면 9월 하순에 해당되는 선선한 날씨였다. 특히 서울은 8월에 최고 기온이 30℃ 이상으로 올라간 날이 사흘뿐이었다.[584][585] 전국 평균 기온 상으로는 7월이 22.0℃로 역대 최하위였고 8월이 21.9℃로 역대 최저 2위였다.[586] 1980년 여름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이상 냉하였다면 1993년은 남부 지방 및 영동 지방을 중심으로 심각한 냉하이다. 서울도 매우 낮았으나 1980년보다는 높았지만 영남 및 영동 지방은 아예 1980년보다도 낮았다. 7월 하순도 비가 많이 내려 선선했는데, 서울은 7월 21일에 최저 기온 16.2℃까지 떨어졌고, [587] 심지어 전주 등 남부 지방 일부는 이상 고온이 심한 겨울이었던 2002년 1월 중순의 기온과 비슷한 지역이 나오기도 했다.[588] 대관령 같은 지역은 아예 여름이 실종되기까지 하였다.[589] 이유는 장마 자체도 꽤나 긴 편이었고 북태평양 수온이 평년에 비해 매우 차가워서 기록적인 여름철 이상 저온이 발생한 것이다. 서울 월평균 기온도 각각 21.3℃, 23.3℃, 23.2℃로 6월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약간 낮앚고, 7~8월은 상당히 낮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1994년 폭염이 1993년의 이상 냉하 때문이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 9월 하순~10월[590] - 9월 21일부터 늦더위가 끝나고 추워졌으며 10월에는 서울 월평균 기온 13.4℃로 평년보다 1℃ 정도 낮았다. 여름까지 춥더니 가을까지 추운 해가 되어버린 셈이다. 2010년대 가장 낮은 10월 평균 기온을 보인 2018년 10월(13.1℃)과 비슷한 수준이다.[591] 다만 11월은 이상 고온이 찾아왔으며, 9월은 평년과 비슷했다.[592]
- 11월 하순[593], 12월 일부 - 이상 고온이었던 11월이지만 하순에 갑자기 추워졌다. 11월 24일에 서울 최저 기온이 -9.0℃를 기록했다. 순 평균 기온도 0.9°C로 이후로 이보다 낮은 기온을 기록한 적은 없었다. 이후 12월에도 가끔씩 이상 저온이 왔는데, 12월 15일에 -11.2℃까지 하강하는 한파가 있었다. 더군다나 이해 1~2월은 한파가 약했고 1월 최저 기온 극값은 -11.1℃[594]에 불과했던지라, 12월 15일의 -11.2℃ 기록이 1993년의 연 전체 최저 기온 극값이 되었다.
11.5. 1994년
강원도 영월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3월을 제외하고는 모두 평년보다 높은 달이 많았고 특히 여름이 매우 더웠던 해다.- 3월[595][596] - 꽃샘추위가 찾아와서 한랭건조한 날씨로 이상 저온이 찾아온 결과 서울 월평균 기온이 4.0℃였다. 당시 기준으로는 평년보다 심하게 낮은 것은 아니다. 서울 기준 3월 1일과 10일에 최저 기온 -5℃를 밑돌았고, 특히 3월 10일 대관령면은 -12.2℃에 체감온도는 -20℃에 가깝게 떨어졌다. 이후 하순에도 비가 내리며 이상 저온이 발생했는데, 특히 3월 24일에는 서울의 최고기온이 겨우 4.1℃에 그칠 정도였다. 이후 29일까지 대체로 쌀쌀한 날씨가 지속되었다. 그러나 3월 31일부터 기온이 크게 올라 4월에는 2022년을 능가하는 초이상 고온이 찾아왔다.
- 6월 - 20일 서울의 최저기온 13.4℃로 역대 6월 20일 기온 중 가장 낮은 값이다.
11.6. 1995년
1~3월과 10월에는 고온을 보였으나 4~5월, 9월, 12월은 저온을 보였고 11월도 평년보다 조금 낮았다. 강원도 영동 지역은 6월도 이상 저온을 보였다.- 4~5월[597] - 4월 1~12일 사이에 꽃샘추위가 잦았다. 4월 2일 서울 최저 기온은 -0.4℃를 기록하여 영하의 추위가 찾아왔으며 이후로도 4월 8일을 제외하고 평년보다 낮았고, 4월 11~12일 최고 기온은 서울 기준으로 평년보다 6~7℃나 낮았다. 그 이후로 기온이 올라서 4월 14~17일에는 고온 현상이 나타났으나, 4월 19~22일에 기온이 다소 떨어졌다. 이후 차츰 올라서 4월 27일부터는 평년보다 높아져서 4월 28~30일은 다시 이상 고온 현상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고온 현상도 전반의 저온의 여파를 이기지 못하면서 서울의 이달 평균 기온은 11.3℃로 평년보다 0.5℃ 낮았다. 심지어 5월은 전국 평균 기온이 15.8℃로 역대 최저 2위였다.[598]
- 6월 강원도 영동 - 강릉의 월평균 기온이 18.7℃이고 평창 대관령면은 6월 평균 기온 12.9℃로 역대 최하위이다.[599][600] 그러나 서울은 21.6℃의 월평균 기온을 기록하여 평년과 비슷했다.
- 11월 상순 - 11월 1일 최고 기온이 6.4℃에 불과했으며, 역대 11월 1일 최고 기온 기록 중 가장 낮은 값이다. 그러나 최저 기온과 일평균 기온은 1912년, 1974년, 2016년보다 한 수 아래였다.
- 12월 - 서울의 월평균 기온이 -1.0℃로 평년보다 낮았다. 최저 기온 극값은 -10.3℃로 크게 낮지 않지만 최고 기온 극값도 6.9℃에 불과했다. 즉 이해 12월은 큰 고온이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유의미한 저온도 없었다.
11.7. 1996년
4월 이상 저온이 심한 해이며 2~3월(수도권 제외), 7월과 11월도 조금 낮았다. 서울에서 4월에 영하를 기록한 날이 있는 마지막 해이다.- 3[603]~4월[604][605] - 3월은 서울 평균 기온 4.9℃로 당시 치고 평년 수준이었으나 전국적으로는 4.7℃로 다소 낮았으며 4월은 서울의 평균 기온이 10.2℃.[606][607]9.65℃에 불과했다.] 4월 2일에는 서울의 최저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식목일과 4월 8일은 나름 평년수준에 가까웠지만 나머지는 4월 22일 오전까지 강한 저온이 계속 이어졌다. 국회의원 15대 선거일인 4월 11일에도 최저기온 1.6°C의 꽤나 추운 기온을 보였으며 최고기온도 10.9°C에 불과해서 평년보다 6°C 정도나 낮았다. 4월 23~24일은 최고기온은 평년 수준이었지만 4월 24일까지 최저 기온이 한 자릿수였다가 다음 날에야 비로소 10℃를 넘었다. 전국 월평균 기온은 10.0℃로 2010년 4월(9.7℃) 다음으로 역대 최저 2위를 기록했다. 한편 1996년 4월 2일 최저 기온 -0.9℃ 이후로 더 이상 4월에 영하를 기록하는 날이 찾아오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14년 뒤에는 이해 4월 저온을 비웃을 정도의 심한 저온이 찾아왔다.
- 7월 3~10일 - 7월 3일에 강원도 강릉의 최고기온이 불과 18.6℃[608]에 그쳤고, 7월 9일에는 더 낮아져 16.6℃에 그쳤다. 경상북도 포항에서도 7월 2일에 33.1℃였던 최고기온이 가파르게 떨어져 18~20℃ 선에 머물렀다.
- 8월 하순[609] - 초중순 동안 길게 이어졌던 무더위가 8월 22일에 꺾였으며 그 이후 기온이 크게 떨어져 이상 저온 현상이 발생했다. 8월 24일 서울의 최저 기온이 19.5℃였고, 이틀 뒤인 26일에는 더 낮아져 2022년 8월 30일처럼 최저기온 18.0℃, 최고기온 20.0℃라는 강한 저온을 보였다. 그리고 28일에는 17.6℃까지 떨어졌다. 또한 대관령면에서는 24일에 최저 기온이 9.2℃로 한 자리수를 보이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8월 하순 평균기온은 22.5℃로 다소 낮았다. 하지만 이 이상 저온이 초중순의 더위를 상쇄시키지 못해[610] 서울의 월평균 기온은 26.0℃로 다소 높았다.[611]
11.8. 1997년
전라남도 신안 흑산도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엘니뇨로 포근한 해였으나 1월 상순, 하순 및 5월과 9월 중하순, 10월에 이상 저온을 보였다.- 1월[612] - 서울의 월평균 기온이 -3.3℃로 평년과 비슷하나 의외로 1990년대 1월 중 가장 낮았다. 1월 1일 밤부터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져 1월 2일부터 -10℃를 밑도는 한파가 시작되었고, 그중 1월 22일에 -13.7℃로 한파가 가장 강했다.
- 5월 - 서울 기준 월평균 기온 17.0℃로 1961~1990년 평균보다 0.4℃ 낮았다. 물론 몇몇 날이 고온이어서 평균 기온이 생각보다 높을 뿐 5월 23일 서울은 최고 기온이 19.0℃를 기록해 20℃에도 못 미쳤고 최저 기온도 9.8℃로 한 자릿수까지 떨어졌다. 더불어 5월답지 않게 강수량이 많아서 서울 기준 월합강수량 291.3mm로 현재까지도 역대 1위이다. 그 영향으로 합계 일조 시간이 173.4시간으로 평균 일조 시간인 213시간보다 39.6시간 적었다. 이는 최근 일조가 적은 5월인 2020년, 2021년 5월보다도 더 적다.[613]
- 9월 중순~10월[614] - 여름철(특히 6월)에 더웠기 때문에 9월 상순에 30~32℃를 지속적으로 넘는, 2010년 수준의 강한 늦더위가 찾아왔으나 9월 10일에 비가 내린 뒤 기온이 급락하여 기상학적 가을이 일찍 시작되었다.[615] 9월인 만큼 기온이 규칙적이어서 한 자릿수 기온을 기록하지는 않았으나 9월 19일에 11.0℃까지 떨어졌다. 9월 하순은 일교차가 크고 건조했으며 9월 22일에는 10.3℃까지 떨어져 한 자릿수에 가까웠다. 아이러니하게도 최고 기온은 평년과 비슷했으나 비가 왔던 9월 25~26일에는 최고 기온도 17.5℃, 17.0℃에 그쳤다. 결국 상순에 강한 늦더위가 찾아왔지만 이후의 저온으로 서울 월평균 기온 20.2℃로 평년보다 다소 낮았다. 전국적으로는 20℃ 미만이다. 그러나 10월 1~3일에는 25℃ 이상의 늦더위를 보여서 고온 현상이 발생했지만 10월도 10월 17~23일의 이상 고온을 빼면 평년보다 매우 낮은 이상 저온이 심했다. 심지어 첫눈이 10월에 내리고 영하를 기록했을 정도다. 10월 31일에 -2.0℃를 기록했다.
- 11월 17~19일 - 가뜩이나 당시 IMF에 구제를 요청하는 지경에 이를 정도로 국가 전체의 분위기가 뒤숭숭했는데, 여기에 최저 기온 -3℃, 최고 기온 3℃의 저온 현상까지 겹쳐 어수선한 분위기를 더욱 악화시켰다. 1998년 수능 시험일인 11월 19일에도 상당히 추웠기에 수능 한파의 사례로 남기도 했다.
11.9. 1998년
경기도 동두천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해이다. 이상 고온이 심했으나 1월에는 반짝 한파가 있었고 여름은 시원한 편이였다.- 1월 18~25일 - 1월 1~17일까지는 대부분의 날들이 이상 고온으로 따뜻한 겨울을 보냈지만, 1월 18일부터 최저 기온이 돌연 12℃ 이상 떨어지는 기습 한파가 시작되었고 1월 20~22일 사이에 조금 나아졌으나 다시 한파가 찾아와 1월 24일에는 서울 최저 기온이 -15.4℃를 기록하여 1990년대 치고는 꽤나 강한 한파를 보여주었다. 추위는 1월 25일까지 이어지다가 잦아들었다.
- 3월 14~15일, 3월 20~23일 - 이상 고온을 유지하다가 3월 14일에는 최고 기온이 10°C를 밑돌더니 다음날에는 최저 기온이 -1.9°C로 떨어졌다. 이후 바로 풀렸다가 3월 20~23일에 또다시 갑자기 기온이 떨어져 한파가 왔다. 3월 20일에는 서울의 최고 기온이 2.5℃에 불과했다. 다만 3월 24일부터 회복해서 3월 평균 기온은 7.3℃로 상당히 높았다.
- 4월 1~3일 - 4월이 시작되고 며칠간은 전국적으로 저온 현상이 있었다. 그러나 곧바로 한기가 물러가고 부지불식간에 벌어진 북태평양 고기압의 빠른 개입 때문에 월평균 기온이 계속 올라가는 바람에 이때의 저온 현상이 철저하게 묻혀버렸다. 그 와중에 4월 3일에 벚꽃이 개화하기도 했다.
- 6월 상순[616] - 거의 5월 날씨를 보였으며 동년 4월 하순보다 기온이 낮았다. 게다가 5월 하순은 20.7℃로 완연한 초여름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예 6월 초순 평균(18.6℃)이 4월 하순 평균(18.7℃)과 거의 비슷하다! 초순 최고 평균(22.6℃)마저 4월 중순 최고 평균(21.6℃)과의 차이가 1℃에 불과할 정도로 기온 상승세가 상당히 지체되었다.
- 8월(중부지방)[617] - 연이은 폭우 때문에 폭염이 약했다. 다만 나머지 달의 고온 현상 때문에 전국 연평균 기온은 2016년과 2019년에 이어 3위였다. 8월 서울의 월평균 기온은 25.0℃로 평년보다 낮았다. 물론 이달은 폭우가 심한 것이 대표적이었다.[618] 서울 기준 1998년 여름은 그닥 낮지는 않았으나 비가 잦아 최고 기온이 낮아 폭염 일수 자체가 없고 전국적으로 5월, 속초는 4월[619], 서울은 9월[620]에 연 전체 최고 기온 극값을 세우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 11월 18~25일 - 한파가 꽤 길게 이어져 서울은 11월 19일에 -6.8℃를 기록해, 11월 이상 저온으로 놀라움을 자아낸 2017년 11월 19일보다도 0.2℃ 낮았다.[621] 하지만 11월 22일부터 최저 기온이 올라가기 시작했고, 11월 25일의 반짝 추위 이후에는 다시 기온이 평년보다 높아졌다. 이후 1998~1999년 겨울에도 고온 현상이 지속되었다.[622]
11.10. 1999년
전년도처럼 전반적으로 이상 고온이 심한 해였다. 평년 수준이였던 5월과 10월을 제외하고는 모두 평년보다 높았으나 3월 하순 일부에는 강한 꽃샘추위가 왔고, 10월 중순에는 이상 저온이 와서 서울이 1.5℃까지 떨어졌다.- 3월 21~23일 - 한창 따뜻한 날씨를 보이던 와중에 비가 내려 하순부터 기온이 낮아졌으며, 서울은 3월 22일 최저 기온이 -6.2℃를 찍으면서 절정에 달하였다. 그 후에는 기온이 올라갔지만 3월 29일에 다시 내려갔다. 그러나 이런 날씨가 있었던 사실을 천연덕스럽게 부정하기라도 하듯, 3월 평균 기온은 6.7℃로 순위로는 상위 14위로 오히려 이상 고온인 수준이다.[623]
- 7~8월 남부지방[624] - 중부지방은 다소 더운 편이었으나 남부지방은 몇몇 날의 폭염을 제외하면 대체로 저온을 보였다. 특히 남해군은 7~8월 평균 기온이 각각 22.0℃︎, 22.8℃︎를 기록해 각각 1961~1990년 평년보다 무려 2.9℃︎, 3.1℃︎ 낮은 초이상 저온을 보였다. 7월은 아예 1973년 기상 관측 시작 이래 하위 1위이며 8월도 1993년과 같은 월평균 기온을 기록했다.
- 10월 16~19일 - 1961~1990년 기준 평년과 완전히 들어맞는 월평균 기온 14.3℃를 기록했으나 10월 16~19일에는 2021년을 능가하는 이상 저온이 있었다. 특히 10월 16일에는 서울 최고 기온이 9.3℃에 그쳤고 10월 17일에는 최저 기온이 1.5℃까지 떨어져 11월 중순에 해당되는 추위가 있었다.[625]
[1] 서울 기준으로, 1920년대 2월의 상위호환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1920년대 2월이 주로 월평균 기온 -2℃ 정도를 기록했다면, 1900년대 2월은 (추측상) -3℃ 정도로 보이는 월평균 기온을 연속으로 기록했기 때문. 부산은 아예 1905년부터 1910년까지 6년 연속으로 1월보다 2월 평균 기온이 더 낮았다...[2] 이는 이 당시 공식 기상 관측 자료가 존재하는 일본 쪽이 도드라진다. 1902년 7월, 1905년 8월과 같은 여름철의 강력한 이상 저온 현상도 이 시기에 있었다.[3] 일종의 테스트였는진 모르겠으나, 당시 기상 관측이 시작되었다지만 실제로는 시작일로부터 한동안은 결측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4] 기상청 사이트상 1904년 4월 8일. 당시로써는 전국에서 가장 빠르게 시작되었다.[5] 기상청 사이트상 1904년 4월 8일. 비공식상 1883년 8월 12일.[6] 비공식상 1883년 9월 1일.[7] 비공식 1885년 8월 1일.[8] 당시 용암포.[9] 당시 진남포. 링크에 의하면, 1908년에 기상업무가 대한 제국 정부에 인계되면서 다른 지역들은 기상 관측이 계속되었는데, 이 지역만 언급이 없어 계속되었는지 폐지되었는지 불명.[10] 기상청 사이트상 1907년 1월 31일.[11] 1900년은 20세기가 아니지만, 19세기에 넣으면 1900년대의 개념에서 벗어나서 더욱 부자연스러우니 20세기 문서에 정리하였다.[12] 1900년은 19세기지만, 1900년대에 있다 보니 20세기 문서에 있다.[13] 1월 1일 -11.0°C, 1월 2일 -13.0°C, 1월 3일 -12.0°C, 1월 4일 -11.0°C, 1월 5일 -13.0°C, 1월 6일 -13.5°C, 1월 7일 -12.0°C, 1월 8일 -13.0°C, 1월 9일 -12.0°C, 1월 11일 -10.0°C, 1월 12일 -11.0°C, 1월 14일 -11.5°C, 1월 15일 -13.5°C, 1월 16일 -14.0°C, 1월 17일 -15.0°C, 1월 18일 -11.0°C, 1월 24일 -10.0℃, 1월 25일 -15.0℃, 1월 26일 -17.5℃, 1월 27일 -15.0℃[14] 월 강수량 525mm는 여름철에 비가 많이 내리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이해는 연 전체 강수량이 525mm였다는 것이다. 현대인 2011년 7월 서울 집중호우로 비교하자면 7월 26~27일 동안의 강수량 472.5mm와 맞먹는다. 베이징시 연강수량 평균이 이정도이다. 한수당블로그 기준으로는 서울 강수량이 525.0mm가 나오지만 경미한 차이가 있는걸 고려하면 실제 강수량은 520~530mm 내외일 수도 있다. 이것도 1770년부터 측정한 강수량 중에서 가장 낮다.[15]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1936년, 1993년, 2003년 등도 우리나라는 매우 서늘한 여름이었으나 일본은 1902년, 1905년, 1980년보다 평균 기온이 조금 높았다.[16] 만약 이때부터 전국적으로 기상 관측을 시작했다면 1975년 가을철의 고온을 능가하고 최고 기온 역대 1위를 차지했을 가능성도 있다.[17] 11~12월이 고온이 매우 심했는데 11월은 역대 최고 1위인 2011년 11월에 맞먹을 정도이며 인천의 최저 기온 극값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12월도 마찬가지로 역대 최고 1위인 1958년 12월을 제외하고 사실상 대적할 만한 해가 없는 역대급 고온이었다. 인천의 12월 최저 기온 극값이 고작 -5.5℃였다.[18] 도쿄는 대한민국보다 이른 1875년에 공식 기상 관측을 시작했기 때문에 공식 자료이다.[19] 역대 7월 평균 기온 중 최저이다. 1981~2010년 도쿄의 7월 평균 기온이 25.8℃이므로, 평년보다 무려 4℃나 낮은 셈. 이를 서울로 대입할 시 7월 평균 기온 24.9℃인 서울에 20.9℃라는 듣도보도 못할 초이상 저온이 찾아왔다는 소리가 된다(...).[20] 도쿄의 1981~2010년 기준 8월 평년값은 26.4℃로 서울의 1981~2010년 기준 8월 평년값(25.7℃)보다 0.7℃ 높다. 즉 서울로 치면 8월 평균 기온이 22.2℃에 머무른 것과 같다. 참고로 서울의 8월 평균 기온 역대 최저치는 1936년 8월의 22.7℃이다. 1902년 도쿄의 저온도 편차(anomaly)가 약간 더 심하다.[21] 비공식 기록이기는 하지만 당시 한반도에 정착해서 기상 관측을 한 뮈텔 주교의 일기에 의하면, 서울에서 1월 23~25일까지 사흘 동안 -22~-23℃가 관측되었다고 한다. 다만 뮈텔 주교는 기온을 작성할 때 소수점을 표기하지 않고 정수로만 표기했기에,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고 반올림값으로만 해석해야 한다. 특히 1월 24일은 서울 최저 기온이 -23℃라고 적혀있는데, 반올림값인 것을 감안하면 정확한 기온은 -22.5~-23.4℃ 사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1907년 공식 기상 관측 이래 서울의 역대 최저 기온인 1927년 12월 31일의 -23.1℃보다 조금 더 낮을 수도 있다. 다만 이 기록도 신빙성에 다소 논란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한파/대한민국/20세기 문서 참조.[22] 차이점이라면 1902년은 7월, 1905년은 8월에 강력한 저온 현상이 한반도, 일본 열도를 가리지 않고 나타났다.[23] 여름철이 강조된 이유는, 가을철인 9월에 발생한 늦더위로 최고 기온이 32.0℃로 갱신되었기 때문이다.[24] 인천, 부산과 비슷한 시기에 관측이 시작된 목포는 아쉽게도 연속성이 보장되는 관측이 1906년 1월 1일부터 시작되어 1905년 여름철의 기록은 거의 없다. 다만 최고 기온만 적혀 있는 7월 17일은 30.7℃를 기록했다고 한다.[25] 아닌게 아니라,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을 빠르고도 길게 받는 일본 도쿄조차 7월 평균 기온 23.3℃, 8월 평균 기온이 22.2℃로 도쿄 관측 사상 가장 낮은 8월 평균 기온을 기록했고, 최고 기온도 32.9℃로 폭염이 기록되지 못했다. 8월 평균 기온 22.2℃ 기록을 서울의 평년으로 치환할 시 21.4℃로 2020년 9월과 같다. 이를 통해 서울 역시 7~8월 평균 기온이 22~23℃선에 불과했을 것으로 보이나, 아쉽게도 1905년은 서울에서 공식 기상 관측이 시작되기 2년 전이라 공식적인 자료가 없어서 막연하게만 추측할 수밖에 없다.[26] 1892년은 서울과 인천 모두 공식적인 기상 관측이 없었으나, 일제에 의해 비공식적으로 관측된 해관기상관측 자료에 의하면 1892년 2월 16일에 인천의 최저 기온이 -16.6℃를 기록했다고 한다. 인천이 이 정도였으니 서울은 같은 날 -17~-18℃까지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공식 기상 관측 이후 2월 중순에 이 정도로 기온이 내려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27] 이중 서울의 기록은 나무위키에서 한파/대한민국, 이상 저온/사례, 이상 고온/사례, 폭염/사례 문서에서 기본적으로 인용된다. 만약 서울의 기록이 없다면 인천, 부산, 대구(폭염 한정)의 기록이 인용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전란 중이던 1951년 1~3월은 전주와 수원(비공식)의 기록이 인용되었다.[28] 서울은 이때 기상 관측 시작까지 불과 다섯달 전이라 기록이 없으나, 5월 10일 중 가장 낮은 기온이 4.6℃이고 시기는 1916년과 1917년이다. 이때 인천도 둘다 7.9℃가 찍혔는데, 단순 비교하자면 1907년 5월 10일 서울의 최저가 3℃에 불과했던 셈이 된다... 물론 이는 단순 비교에 불과하다.[29] 기록상 오류로 보인다. 당시 서울은 19°C였던 걸로 보아 10℃ 단위로 오기한 듯. 인천 기온 기록은 공식 기록임에도 이렇게 오류가 난 듯한 기록이 은근히 많은데 아직도 수정되지 않고 그대로 있다.[30] 2월 3일 -10.8℃, 2월 4일 -10.3℃, 2월 5일 -11.6℃, 2월 6일 -13.3℃, 2월 7일 -15.8℃, 2월 8일 -11.3℃, 2월 9일 -11.4℃, 2월 10일 -10.6℃, 2월 12일 -12.4℃, 2월 13일 -12.3℃, 2월 17일 -13.0℃, 2월 18일 -12.9℃, 2월 19일 -11.0℃[31] 1위는 1947년(-5.3℃), 2위는 1945년(-4.9℃), 공동 3위는 1936년과 1968년(-4.4℃), 5위는 1957년(-4.3℃)[32] 1908년 당시의 사람들이 추운기온에 더 익숙했고 하물며 최고기온도 1908년이 더 높았다.[33] 5월 4일 5.2℃, 5월 14일 5.7℃, 5월 15일 5.5℃[34] 가장 최근인 2021년 5월 첫날의 경우 오후 3시에 9.3℃를 기록, 그 다음 날은 7.3℃를 기록했으며 그 뒤로도 계속 5월 11일까지 대부분의 날들이 한 자릿수 기온이고 최고 기온도 17~19℃에 그치자 역대급 이상 저온으로 쌀쌀하다는 말이 많았는데, 5월 중순에 연속으로 5℃대까지 떨어졌다는 말은... 심지어 상반기 중 마지막으로 최저 기온이 한 자릿수를 기록한 날이 [[5월 24일|5월[35] 실제로도 이상 고온이 심하게 나타났던 2022년 4월의 월평균과 거의 같으며, 1998년, 2024년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밀린다.[36] 1991년 및 2022년의 8월 28일과 비슷하다.[37] 10월 30일에 -0.3℃ 기록. 다만 어디까지나 '기록상' 최초일 뿐, 일제강점기 시절과 10월 평균 기온이 비등하거나 더 낮았던 것으로 보이는 구한말에도 이미 10월에 빈번하게 영하를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다. 후술할 1934년 10월에 기록된 것도, 어쩌면 구한말 시기에 더 빠르게 기록했을지도 모른다.[38] 1911~1940 기준 10월은 13.1°C 이다.[39] 서울의 기상 관측은 1907년부터 시작되어 1901~1930년 기준 평년값은 알 수 없으나, 1911~1940년 기준으로는 평년보다 1.8℃ 낮다.[40] 1월 22일 기록[41] 2월 6일 -11.7℃, 2월 7일 -13.2℃, 2월 8일 -11.2℃[42] 2월 12일 -11.5℃, 2월 13일 -12.7℃, 2월 17일 -10.7℃, 2월 20일 -10.9℃[43] 2월 21일 -12.7℃, 2월 22일 -12.8℃, 2월 23일 -12.4℃[44] 3월 하순에 이를 능가할 정도로 추웠던 해는 기록적인 폭설을 동반한 꽃샘추위가 찾아온 1922년밖에 없다.[45] 6~8일, 10~12일, 15~16일, 19일[46] 6월 10일 11.2℃, 6월 11일 12.4℃, 6월 12일 11.7℃[47] 12월 11일 -10.5℃, 12월 12일 -11.2℃, 12월 13일 -12.4℃, 12월 14일 -14.3℃, 12월 15일 -13.9℃, 12월 16일 -13.3℃, 12월 17일 -12.9℃, 12월 18일 -9.7℃, 12월 19일 -9.5℃[48] 12월 24일 -12.3℃, 12월 25일 -12.5℃, 12월 26일 -14.6℃, 12월 27일 -12.2℃[49] 1월 30일 -18.5℃, 1월 31일 -19.9℃, 2월 1일 -17.8℃, 2월 2일 -19.6℃[50] 이 사례를 21세기에서 찾아보면 2014년 8월과 비슷하다.[51] 반대로 해방을 맞은 1945년 8월에는 한반도가 환희에 빠진 것을 날씨도 알았는지는 몰라도 때마침 8월 중순부터 더워졌고, 광복절부터 기온이 33.9℃로 올라 폭염으로 발전했으며, 처서인 8월 23일에 37.0℃까지 올라 절정에 이르렀다.[52] 9월 8일의 27.0℃가 최고 기온 극값이다.[53] 10월 10일 1.3℃, 10월 11일 1.8℃[54] 2~3일, 8~17일, 21~24일. 특히 9~13일, 22일.[55] 이는 1944년, 1954년, 2014년과도 비슷하다.[56] 12월 2일 -9.9℃, 12월 3일 -9.2℃[57] 다만 연속성이 보장되는 관측 시작은 1912년 1월 1일부터이다. 1911년 10~12월도 기상자료개방포털에 자료가 남아있기는 하나 몇몇 날들은 결측되어 있고, 자료가 남아있는 날들도 대부분 최고 기온과 최저 기온만 기록되어 있다.[58] 2위는 2010년[59] 특히 1~2일, 11~13일, 22~25일.[60] 1911~1940년 기준 1월 평균 기온은 -5.0℃이지만, 1900년대는 상대적으로 1910년대에 비해 1월이 덜 추운 편이라서 1901~1930년 기준으로 하면 평년보다 약간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61] 심지어 1911년 4월 19일에 내린 눈은 기상 관측 이래 서울에서 가장 늦게 내린 눈 기록이었으나 2020년 4월 22일에 서울에서 눈발이 날려서 현재는 1위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62] 만약 13일의 고온이 없었다면 8도대 후반으로 떨어져 2021년 3월에게 추월당할 가능성이 있었다.[63] 7월 23일 19.9℃, 7월 27일 18.6℃, 7월 30일 19.2℃[64] 감이 안 온다면, 2021년 10월 17일에 기록된 1.3℃라는 (근래에 들어 상당히 드물었던) 추위보다 1℃나 낮고, 이렇게 추운 날씨가 1주일 더 빨리 온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2021년 10월 추위 당시에도 겨울옷 챙겨라는 말이 뉴스 단위로 나왔을 정도인데, 1911년 10월은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이다.[65] 당시 기상 관측이 이뤄지지 않았던 1877년 10월은 아예 1911년 10월보다도 며칠 빠르게 기온 하강이 이뤄진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있어서, 1911년 10월도 사실 가장 빠른 사례는 아닐 것이다.[66] 다만 이는 극도로 심한 복사냉각이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며, 최고 기온은 0.1℃라는 수치에 비해서는 매우 높은 14.6℃를 기록했다. 물론 이 역시 평년보다 크게 낮은 기온이다. 그리고 2022년 8월 28일의 사례와 비슷했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최저 기온이 극히 낮아서 압도적인 기록인 것은 변함없다.[67] 후술할 1935년 9월 중순에도 이러한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68] 후술할 1913년보다는 살짝 높은데, 1912년 2월은 1.0℃로 고온이었고 3월도 1913년만큼의 저온은 아니었으며(당시 기준으로는 평년보다 오히려 조금 높은 4.2℃이다) 1913년 여름이 1912년보다 더욱 시원했기 때문이다.[69] 5월 15일 25.5℃, 5월 16일 25.2℃, 5월 17일 29.7℃. 심지어 하순에는 25℃ 이상이 아예 기록되지 않았다.[70] 특히 22~25일[71] 다만 일교차가 커서 최고기온은 28.3℃로 평년 수준을 보였다. 이는 2022년 8월 28일과도 비슷하다.[72] 지구 온난화로 기온이 오른 현대와 비교해보면, 이상 고온이었던 2015년, 2016년, 2019년, 2021년, 2023년 9월보다 5~6℃ 가량이나 낮고, 심지어 역대 상위 1위인 2024년 9월(25.5°C)보다 무려 7.8°C나 낮다![73] 다만 일교차가 커서 그런지 월평균 최고 기온은 의외로 최하위가 아니다. 월평균 최고 기온 역대 최하위는 1985년 9월의 23.9℃. 1912년 9월은 24.6℃로 1934년 9월과 같다.[74] 9월 11일 최저 기온이 7.8℃까지 떨어졌는데, 최근인 2020년의 예시를 비교해보면 9월 21일에 최저 기온이 13.6℃까지 떨어지니 쌀쌀해졌다는 반응이 있었고, 시간이 지나 10월 5일에 1912년 9월 11일보다 조금 높은 8.5℃까지 떨어지자 더욱 추워졌다는 반응이 많았으며, 겨울이 슬슬 오는 게 아니냐는 반응도 소수 있었다. 10월 24일에는 무려 3.2℃까지 떨어졌고 체감온도는 겨울이 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다만 2020년은 연 대부분의 기간 동안 고온이 강한데다가 최저 기온이 크게 내려가지 않아 평년보다 조금만 낮아도 엄청난 추위로 과장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것도 9월 내내 기온이 식어가는 현상을 겪었음에도 그렇지만 8월의 늦더위는 서울의 최저 기온을 21.5℃ 아래로 떨어뜨리지 않았으며 남부 지방은 더 심했고, 그로 인해 적응이 다른 해보다 2주 정도 늦어 평년 수준~조금 낮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초이상 저온으로 느낄 수 있었다. 2020년은 1~3월을 제외하면 평균 기온이 그닥 높지 않았지만 최저 기온의 경우 잘 떨어지지 않거나 이상 고온을 보였다. 그러므로 다른 해였다면 연례 행사로 가는 저온도 엄청나다고 느껴진 것이다. 1912년의 경우 더운 여름철과 9월 상순의 늦더위를 겪어서 추운 날씨에 적응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저렇게 기온이 떨어졌으니 체감온도가 얼마나 낮았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게다가 저런 현상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9월 하순까지 갔으니...[75] 월평균 기온이 1981~2010년 5월과 맞먹을 정도이며 2006년 10월보다도 낮다. 여담으로 같은 기온이어도 9월은 5월보다 낮의 길이가 짧고, 여름의 더위에 적응된 몸을 가지고 있어서 체감온도가 더 낮기 때문에 5월같은 날씨가 9월에 나타나면 실제로는 더 춥게 느껴진다(반대로 9월같은 날씨가 5월에 나타나면 한여름 날씨처럼 느껴진다. 최저 기온도 높을 경우에는 체감상 열대야에 가깝다. 2014년, 2018년, 2020년 5월 일부가 이러했다). 이렇게 최저 기온이 빨리 떨어진 이유는 1912년 8월 시베리아 중부 일대가 저온을 보였는데 그 여파가 동아시아로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76] 월평균 기온이 2020년 4월, 2011년 11월과 맞먹는 수준이다.[77] 역시 9월처럼 10월도 월평균 최고 기온은 최하위가 아니다. 월평균 최고 기온 역대 최하위는 1926년 10월의 17.1℃로 1912년 10월보다 0.4℃ 낮았다. 월평균 기온이 1926년 10월보다 1912년 10월이 0.4℃ 낮았던 것과 반대되는 부분이다.[78] 10월 17일 -0.6℃, 10월 22일 -0.1℃, 10월 23일 -1.2℃, 10월 30일 -0.1℃[79] 한술 더 떠서, 역대 가장 높은 1월 평균 기온을 기록한 2020년 1월보다도 0.2℃ 낮으며, 같은 11월끼리 비교해보면 역대 가장 높은 11월 평균 기온을 기록한 2011년 11월보다 무려 9.3℃나 낮다.[80] 한파는 해가 넘어가면서 더욱 강해져 1913년 2월 상순인 2월 9일에 -19.6℃를 기록했으며, 1913년은 매우 잦은 저온 현상으로 서울 연평균 기온이 10.0℃로 1912년보다 약간 낮아 역대 최저 3위를 달성했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그러나 10월에는 유일하게 서울에서 30℃를 넘는 늦더위가 찾아온 점이 흥미롭다.[81] 1위는 1947년의 9.6℃, 2위는 공동인 1917년과 1936년의 9.8℃이다. 1936년 12월이 비교적 덜 추웠던 것과는 달리 1913년은 12월도 같은 월평균 기온을 기록한 2017년 12월 수준으로 상당히 추웠다.[82] 1950~2000년대까지는 서울에서 이렇다 할 폭염이 1994년 폭염을 제외하고는 별로 없으나, 의외로 1880~1940년대에는 현재까지도 전설로 남아있는 폭염 기록들이 상당히 많다. 1939년 폭염, 1942-1943년 폭염 등이 그 예시이다. 일제강점기~해방 초기에는 저온이 심한 해(1916년, 1925년, 1936년, 1940년, 1941년, 1947년, 1957년, 1965년 등)에도 최고 기온이 폭염일수를 충족시킨 날은 적어도 하루 이상 있었다. 단 열대야가 없는 경우는 많았다. 한편 서울에서 폭염이 없던 해는 1913년, 1969년, 1979년, 1980년, 1986년, 1987년, 1992년, 1993년, 1998년, 2003년이다.[83] 여담으로 1913년 여름은 굉장히 특이한 여름이라고 볼 수 있는데, 중부 지방은 강수량이 그다지 많은 수준은 아니었으나 기록적 저온이 발생하였다. 하지만 대구는 7월 하순에 38℃가 넘는 기록적 더위를 보였다. 중부 지방과 남부 지방이 동시기에 전혀 다른 기온 양상을 보였다는 점에서 굉장히 특이한 여름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대구는 7월 28일에 38.9℃를 기록했고 8월 17일까지도 38.6℃를 기록했다. 다만 대구와 비슷한 위도에 위치한 전라북도 지역은 이 당시에 아직 기상 관측이 시행되지 않았기에, 남부 지방이 얼마나 더웠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어서 여러모로 아쉽다. 1913년 여름의 미스테리[84] 2020년과 반대라고도 볼 수 있다. 이쪽은 상반기의 고온이 너무 심해서 기록적 저온이었던 7월과 그 밖에도 4월, 5월 일부, 10월 등이 저온 현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평년보다 매우 높았다.[85] 다만 하순에도 한파가 조금 남아있어서인지 2월 24일과 2월 27일에 -10.2℃를 기록했다. 물론 현대와 달리 일제강점기에는 2월 하순에 -10℃ 이하를 기록하는 일이 흔했지만...[86] 최고 기온은 3월 14일까지.[87] 3월 7일 -12.0℃, 3월 8일 -10.8℃, 3월 9일 -10.2℃[88] 중순의 고온 현상이 없었다면 1915년, 1916년, 1936년, 1957년 수준의 매우 추운 3월이 되었을 법도 하다.[89] 특히 최저기온. 4월 14일, 4월 21~22일, 4월 30일 제외, 4월 13일과 4월 15일, 4월 19~20일은 최저 기온 한정으로 저온이었다.[90] 여담으로 반대의 여름 날씨를 보였던 105년 후인 2018년 4월 21일도 이와 같은 기온을 보였다.[91] 4월 30일 20.6℃[92] 5월 24일 30.0℃, 5월 25일 27.5℃, 5월 28일 25.1℃, 5월 30일 27.1℃, 5월 31일 27.0℃[93] 그런데 정작 최저 기온은 9.2℃로 오히려 저온이었다. 사실 기상자료개방포털에서 5월 24일의 시간대별 기온을 보면 오전 6시에 10℃에도 미치지 못했던 기온이 오전 10시에 19.1℃로 상승하더니, 오후 2시에 26.6℃까지 올랐고 오후 6시에는 저녁인데도 오히려 더 올라서 29.6℃를 기록했다. 즉 5월 24일의 최고 기온 30.0℃는 오후 1~2시가 아닌, 오후 6시 쯤에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크며 이를 통해 5월 24일 오전까지는 저온을 띄다 오후부터 급속도로 고온이 유입되어 단 몇 시간 만에 날씨가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94] 사실 이는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2006년 10월 19일과 2020년 9월 17일도 비가 없고 평균 운량도 '흐림'이 아닌 '구름많음'인데도 최저/최고 기온의 편차가 작았다.[95] 6월 14일 기록[96] 특히 6월 16일에 서울에서 최고 기온이 21.0℃를 기록했다.[97] 6월 23일 기록[98] 한편 이날 최저 기온은 6월 중 가장 낮아 13.3℃를 기록하며 5월 하순같은 날씨를 보였다.[99] 25~31일 제외.[100] 이는 2018년 4월의 월평균기온과 맞먹는다.[101] 1위는 1976년 7월 3일에 기록된 12.9℃로 겨우 0.1℃ 차이난다.[102] 이는 마치 2020년 같은 날을 연상케 한다.[103] 이마저도 하순의 폭염으로 인해 오른 값이며, 만약 25일 이후에도 폭염이 없었고 저온이 계속 이어졌다면 아예 22℃대에 그쳐 순위권으로 낮았을 가능성이 있다.[104] 8월 상순에도 최고 기온이 8월 1일과 8월 8일의 31.7℃가 극값이었을 정도로 더위가 없다시피 했다. 하지만 8월 하순까지 이와 같은 기온이 이어지며 중하순의 최고 기온은 그리 눈에 띄는 저온이 아니었다.[105] 8월 1일 23.1℃, 8월 2일 22.0℃, 8월 10일 22.6℃[106] 특히 8월 3일부터 나흘간은 최저 기온이 크게 낮았는데, 일별로는 8월 3일 17.4℃, 8월 4일 16.9℃, 8월 5일 17.0℃, 8월 6일 17.6℃였다. 주로 1년 중 가장 더울 시기인 8월 상순에 17℃까지 내려갔다는 것은 매우 기록적이다.[107] 1위는 1940년 8월 26일의 13.5℃이다.[108] 다만 8월 28일 최고 기온은 28.1℃라서 엄밀히 말하자면 9월 하순에 이러한 최고 기온은 이상 고온에 해당하므로, 일평균 기준으로는 9월 초중순 수준이다.[109] 9월 1일 12.4℃, 9월 2일 12.5℃, 9월 3일 13.2℃, 9월 4일 13.4℃, 9월 5일 13.9℃[110] 9월 19일 21.5℃, 9월 20일 21.3℃[111] 9월 21일 8.0℃, 9월 23일 8.7℃, 9월 24일 8.0℃[112] 동년 6월과 양상이 비슷하다. 월초는 평년 수준이었지만 중하순의 저온이 강한 것, 월평균 기온이 두 달 모두 각 월에서 역대 최저 7위를 기록한 것 등.[113] 특히 10월 24일, 27~28일, 31일.[114] 늦더위가 일상이 된 2010년대 이후의 10월도 깨지 못한 기록이다. 9월이 저온이었음을 감안하면 이날의 체감온도는 습기빠진 폭염 수준이다.[115] 심지어 동년 5월과 9월보다도 최고 기온이 높았다.[116] 10월 11일 11.7℃, 10월 15일 12.4℃[117] 다만 이것도 당시 기준으로 심한 저온이라고 보기는 어렵다.[118] 일제강점기는 이보다 추운 11월도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전년도인 1912년 11월이 압도적인 차이로 역대 최저 1위를 기록하며 매우 강한 저온을 보였다.[119] 12월 18일 -16.9℃, 12월 19일 -16.3℃[120] 물론 1910년대 기준 서울 연평균 기온은 약 10.7℃인데, 이를 감안하면 평년보다 약 1.3℃가량 높아 2023년급의 이상 고온이다. 하지만 4월에는 꽃샘추위가 일부 존재해서 현대 평년보다는 확연히 낮다. 그러나 당시 기준으로는 평년과 비슷했다. 무엇보다 1914년이 1910년대 중에서 그나마 가장 따뜻했다는 것이지, 지구 온난화로 사계절 모두 기온이 오른 현대와 비교하면 당연히 추운 편이다. 그 춥다는 2011년과 같았으니... 비공식 기록들까지 포함하면 1890년, 1894년보다 낮았을 것으로 추정된다.[121] 7월 26일 기록[122] 6월 24일 기록[123] 4월 3일 0.8℃, 4월 4일 0.2℃, 4월 5일 0.1℃, 4월 6일 0.8℃, 4월 7일 0.8℃, 4월 8일 1.1℃, 4월 9일 1.2℃, 4월 10일 1.8℃[124] 10~11월도 일제강점기 치고는 고온이었다.[125] 정확히 100년 뒤인 2015년 12월도 이상 고온을 보였다는 점이 흥미롭다.[126] 1월 중순에 매우 강한 한파로 역대 최저 기록을 싹쓸이하고 며칠 후 다시 평년 기온으로 돌아갔다는 점이 1931년과 매우 유사하다. 1931년은 3월과 5월의 저온이 1915년보다 강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4월의 역대급 꽃샘추위로 월평균 기온 역대 최저 1위 기록을 세우게 된다. 하지만 6월은 1915년보다는 높았다.[127] 만약 11일, 16~20일도 강력 한파가 있었다면 평균기온이 -10℃를 밑돌면서 역대 최하위를 기록할 가능성도 있었다.[128] 이게 단 하루만 미루어져서 3월에 나타나도 난리가 났을지도 모른다. 날짜가 며칠 미루어져 해당 월에서 기록적인 저온 현상이 나타난게 1976년 7월 3일이다.[129] 이는 현대의 1월 평균 최저 기온(약 -5℃)보다도 무려 9℃나 낮은 값이다.[130] 그런데 한파가 찾아온지 바로 며칠 뒤인 3월 4일에는 최고 기온 16.7℃, 최저 기온 2.5℃로 올랐다가 다음 날에 다시 급락했다. 1주일 안에 천국과 지옥의 날씨가 오간 셈이다.[131] 4월 23일 1.7℃, 4월 24일 1.1℃[132] 우연이지만 1915년 4월과 2010년 4월이 달력 모양과 음력 날짜가 유사하다.[133] 12월 18일 -12.0℃, 12월 19일 -12.8℃[134] 라니냐는 2년 후인 1918년 2월에 풀렸다.[135] 1915년 12월 0.8℃, 1916년 1월 0.0℃, 2월 -0.8℃로 1월, 2월만 간신히 넘고 12월보다 낮다. 그리고 1월은 한 해 중 가장 추운 시기인 만큼, 1월 평균 기온이 0.0℃이면 일제강점기는 물론 현대와 비교해봐도 2℃ 가량 높은 기온이다. 자세한 내용은 이상 고온/사례 문서 참조. 실제로 기온이 압도적으로 높아 전국 1월 평균 기온 역대 최고 1위를 기록했던 2020년 1월의 서울 월평균 기온(1.6℃)이 기록되기 전까지는 1월 평균 기온이 영상 1℃ 이상을 기록한 해는 없었다.[136] 이는 역대 가장 낮은 3월 평균 기온을 기록한 1936년 3월의 -0.3℃보다 조금 높은 값이며, 2위는 1957년 3월의 0.0℃이다.[137] 11월 28일 -8.2℃, 11월 29일 -8.6℃, 11월 30일 -9.7℃[138] 라니냐는 이듬해인 1918년 2월에 점차 물러갔다. 이 정도로 라니냐의 정석을 보여준 해는 현재까지도 없다(1892~1893년은 기온 자료가 없으므로 예외). 다만 라니냐의 특징 중 하나인 8월 하순~10월 늦더위는 큰 특이사항이 없었다.[139] 1963년은 1월 평균 기온은 1917년보다 약간 낮았지만, 일제강점기처럼 연 전체에 강력한 저온 현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연평균 기온은 결국 순위권 밖이다.[140] 1912년(5.1℃), 1913년(4.9℃)은 물론 1936년(5.3℃), 1947년(5.0℃)보다도 낮다.[141] 3위는 1913년(9.9℃), 4위는 1936년(10.0℃)[142] 1981~2010년 서울보다도 더 낮다.[143] 2위는 1936년(12.5℃), 3위는 1947년(12.6℃)[144] 2위는 1947년(11.4℃), 3위는 1936년(11.5℃)[145] 1917년 1월 22일 서울 최저 기온 -21.1℃, 1963년 1월 23일 서울 최저 기온 -18.4℃[146] 1963년은 최저 기온은 1917년처럼 -20℃ 이하를 기록하지 않고 -18.4℃에 그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평균 기온 역대 최저 1위를 기록한 이유는 일 최고 기온이 매우 낮은 날이 한 달 내내 이어졌기 때문이다.[147] 1917년 1월 평균 최저 기온 -14.4℃, 1963년 1월 평균 최저 기온 -13.0℃. 참고로 1936년 1월은 -13.6℃이고, 1918년 1월은 -13.4℃이다.[148] 17~20일, 27~29일 제외. 특히 5월 상순. 그 중 5월 2~3일, 5~7일, 10일이 저온이 매우 심했다.[149] 최저 1위는 1945년 5월(13.6°C), 최저 2위는 1927년 5월(13.8°C)[150] 현대에도 2016년 5월 3일, 2021년 5월 1일같이 강수로 인해 오후 3시에 9℃ 전후까지 내려간 적이 있지만 일 최고 기온은 이보다 훨씬 높았기에, 일 최고 기온 한 자릿수는 전례없는 기록이다. 그나마 2010년 4월 28일이 7.8℃라 사흘 늦으면 한 자릿수를 기록할 뻔했다.[151] 1908~2022년까지 114년 동안 집계된 5월 5일의 평균 최고 기온이 21.5℃이므로, 무려 11.6℃나 낮은 것이 된다. 단순 비교로 2018년 1월 24~27일 사이에 낮 최고 기온 -10℃를 찍을 때 평균 최고 기온이 0℃대로 10℃에 이르는 차이를 보였는데, 1917년 5월 5일은 이보다 더욱 심하다. 아마 당시 체감온도는 정말로 한겨울과 같았을 것으로 추정된다.[152] 차이점이 있다면 4월 하순은 복사냉각의 영향으로 최고와 최저평균의 격차가 컸지만, 5월은 흐렸던 날이 많은 탓인지 평균 격차가 적다는 점이다. 참고로 역대 4월 하순 최하위가 10.0°C, 역대 5월 중순 최하위가 13.1°C이다. 이 정도면 5월 하순 최하위는 11.5°C 전후 정도 되어야 하나 실제로 10.4°C가 기록된 것은 다른 기간보다도 훨씬 심한 저온이 찾아왔다고 할 수 있다. 현대의 모스크바 수준이다.[153] 특히 5월 26일에는 최저 기온이 8.0℃에 불과했다.[154] 1위는 1945년 5월의 12.8℃[155] 하위 2위가 17.6°C(1927년 5월)이니 압도적 최하위이다. 2021~2024년 4월 최고기온 평균보다도 낮다. 심지어 역대 10월 최고기온 평균 최하위(16.9°C, 1926년 10월, 1986년 10월)보다도 0.1°C 낮고 11월 최고기온 평균 1위(15.4°C, 2022년 11월)과도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156] 5월 19일과 5월 29일 기록.[157] 1~3일 제외[158] 최고 기온이 가장 높았던 날은 6월 16일로 36.7℃였다. 게다가 7월 31일과 8월 2일에도 36.6℃까지 오르는 등 8월 상순까지 폭염이 이어졌다. 자세한 내용은 폭염/사례 문서 참조.[159] 정확히 100년 뒤인 2017년과 비슷한 케이스이며, 2017년에도 8월 상순에는 무더위가 지속되다가 8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기온이 빠르게 떨어져 중하순에는 이상 저온으로 때이른 초가을 날씨를 보였다는 점이 흥미롭다.[160] 역대 11월 평균 최하위였던 1912년 11월과 동급이다![161] 11월 5일, 11월 7일 -2.2℃, 11월 10일 -2.7℃[162] 만약 12월 1~2일, 9일의 고온이 없었다면 1944년 12월을 능가하는 역대 최하위를 기록했을 것이다.[163] 월평균 기온은 1917년 1월보다 높지만 최저 기온은 1918년 1월이 더 낮았을 정도이다(1917년 1월 22일 서울 최저 기온 -21.1℃, 1918년 1월 3일 서울 최저 기온 -21.8℃). 다만 1918년 2월부터는 라니냐의 쇠퇴로 한파가 점차 풀려 중순의 반짝 한파를 제외하면 최고 기온은 3월같이 따뜻했다. 1917년 12월은 한 달 내내 장기 한파를 보인 1944년 12월과는 달리 초중순까지 눈에 띄는 추위 없이 보내다가 12월 15일부터 본격적으로 한파에 돌입했는데, 한파의 기간이 1944년 12월의 절반밖에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월평균 기온이 1944년 12월과 거의 비슷한 값을 보였다는 점에서 1917년 12월 한파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위엄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다만 11월은 유난히 따뜻했던 1944년과 달리 1917년은 바로 위에 서술했듯이 11월도 최하위권에 속할 만큼 강한 저온을 보였다. 게다가 기상자료개방포털 자료 기준으로 음수는 사사오입을 하지 않기 때문에, 1944년 12월 평균 기온을 반올림하지 않을 경우 -5.7℃가 되어 1917년 12월과 같아서 공동 최저 1위가 된다.[164] 1월 상순은 아예 일평균 기온 -10℃ 이하로 뒤덮여 있다. 그래서 월평균 기온이 매우 낮았던 것. 1월 상순 이후로도 최저 기온이 여전히 영하 두 자릿수를 기록하였으며, 본격적으로 따뜻해진 시점은 라니냐가 물러간 2월부터이다.[165] 다만 2월 중순에는 잠시 한파가 찾아와서 2월 18일에 -11.4℃까지 하강했다.[166] 여담으로 이 시기에 스페인 독감이 조선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저온까지 합세해 당시 사람들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혔을 것으로 추정된다.[167] 다만 인천의 경우 같은 날 최저 기온 -14.4℃를 기록하여 서울보다 많이 따뜻했다. 사실 1917~1918년 겨울의 진행 양상을 보면 서울과 인천이 좀 다른데, 서울의 경우 12월 15일에 -12℃ 이하로 내려가며 시작된 한파가 하순에 훨씬 강해져서 12월 27일에 -20.4℃를 기록한 뒤, 이듬해 1월 1~2일 사이에 따뜻해졌다가 1월 3일에 -21.8℃로 크게 낮아져서 극값을 재경신했고 1월 8일에도 -20.5℃를 기록하는 등 매우 추운 날씨가 상순 내내 이어지다 중순이 되어서야 한파가 한 풀 꺾였다. 반면 인천은 서울과 마찬가지로 12월 15일부터 -12℃ 이하의 한파가 시작되었고 하순에 매우 추워져 12월 27일에 -17.9℃로 가장 낮았지만, 이후로는 -15℃ 이하의 한파가 찾아오지 않았고 1월 3일에도 -14.4℃에 그쳤으며, 남은 1월 상순도 -14℃ 이하의 한파가 없었다. 12월까지는 한파의 진행이 비슷하지만 1월은 서울과 인천의 기온 차이가 상당히 컸기 때문에(특히 1월 5일 최저 기온은 서울 -19.3℃, 인천 -11.2℃로 8℃ 이상의 차이가 나며 다른 날들도 7℃ 정도의 차이를 보였다), 1918년 1월 서울의 최저 기온은 1927년 12월 31일, 1922년 3월 25일과 마찬가지로 관측소 오류 의심일 가능성도 있어보인다. 허나 오류가 아니라 추위가 인천보다 서울에 더 집중되었다고 하며 낙원동에 있어서 복사 냉각이 심했다고 하면 오류가 아닐 수도 있다.[168] 9월 20일 8.7℃[169] 1919년 여름은 서울에서도 상당히 더운 축에 속하는 여름이다. 1919년 여름의 최고 기온 극값이 8월 1일의 37.5℃였는데, 지구 온난화와 열섬 현상이 심화된 현대와 비교해도 2018년을 제외하면 2010년대 어느 해보다도 높고 기상 관측 전체로 확대해도 이보다 높은 최고 기온을 기록한 해는 1939년, 1943년, 1949년, 1994년, 2018년 뿐이다. 즉 현대에 들어서도 기록적인 수준의 폭염이 1910년대에 찾아온 셈이다.[170] 1916~1917년, 1917~1918년 겨울은 1월을 중심으로 매우 기록적인 한파가 찾아왔고, 1915~1916년 겨울은 정반대로 이상 고온을 보였으며, 1914~1915년 겨울은 전체적으로 따뜻했지만 1월 중순과 2월 하순에 역대 기록들을 경신할 정도의 한파가 찾아왔다는 특이점이 있어서, 1918~1919년 겨울은 이전에 있었던 겨울들에 비하면 (당시 기준으로) 오랜만에 찾아온 평범한 겨울이었다고 볼 수 있다.[171] 비교적 현대인 1996년 기준으로는 상당히 낮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조금만 낮다.[172] 9월 17일 8.6℃, 9월 18일 9.6℃[173] 11월 19일 -5.4℃[174] 다만 서울 기준으로 역대 최하위를 기록한 달은 없다.[175] 다만 5월 한정으로 강릉에 엄청난 저온이 있었다.[176] 특히 1월 1~5일, 8~9일, 14~18일, 23~24일, 2월 9~13일.[177] 1월 상순으로 한정하면 역대 최저 기온 1위이다.[178] 사실 이것도 월말인 1월 28~31일이 고온이어서 그렇지 한파가 본격적으로 찾아오며 일평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기 시작한 1919년 12월 28일부터 1920년 1월 27일까지 31일간의 일평균 기온을 합산하여 평균을 계산해보면 -8.0℃로 1922년, 1945년 1월보다도 낮다. 즉 1919~1920년 한파가 단 나흘만 늦게 찾아왔으면 월평균 기온이 역대 최저 5위를 기록했을 것이다.[179] 특히 최저기온이 기록적으로 낮은 날이 많아서 월 최저기온 평균은 -12.7°C로 역대 최저 8위였다. 반면 일교차가 매우 커서 최고기온 평균은 -1.9°C였다. 1월 4일에는 최저기온은 -22.3°C인데 최고기온은 -8.5°C였고 다른 날도 일교차가 10°C 이상인 날이 많았다. 기묘하게도 정확히 100년 뒤인 2020년 1월에는 한파는 커녕 제대로 된 추위도 없이 역대급 초고온으로 1월 평균기온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점이 흥미롭다.[180] 2월 중순 역대 최저 1위 기록[181] 7일, 12일, 15~16일, 24일[182] 4월 6일 -0.7℃, 4월 8일 -0.5℃[183] 6월 2일 9.6℃, 6월 3일 9.3℃, 6월 6일 9.8℃. 이중 6월 6일의 기록은 관측 사상 가장 늦게 기록된 한자릿수 기온으로 남게 되었다.[184] 이는 최근 이상 고온이었던 2019년, 2021년 9월보다 0.1℃ 높은 수치이다.[185] 참고로, 1912년 9월도 하순에는 23℃를 넘겼다. 다만 그게 전부인 것이 문제.[186] 100년 뒤인 2021년 1월이 명확한 반대 사례를 보였다. 당시에도 1월 13~15일은 고온이었지만 상순의 강한 한파가 있어서 여전히 평균 기온이 -5℃ 이하로 21세기 치고 매우 낮았는데 하순의 초고온으로 인한 평균 기온 역전 현상이 일어났던 점. 따라서 월평균 기온만 놓고보면 심한 한파와 심한 고온 없이 평범했다고 착각할 수 있다.[187] 현대 기준으로는 평년 수준이다.[188] 8월 상순까지 그럭저럭 더위가 적었으나 광복절 전후로 폭염이 찾아온 것.[189] 특히 17~25일, 28~31일. 그 중 19~21일, 30~31일의 편차가 매우 강했다.[190] 10~17일, 29~31일 제외.[191] 2021년[192] 3월 하순에 이러한 기온은 관측 사상 전무했으며(3월 중순만 해도 -10℃ 이하를 기록한 해가 없으며 3월 9일까지 올라가야 -10℃ 이하를 기록한 해가 나온다), 3월 평균 기온이 계속 올라가는 현대의 날씨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비유하자면 한겨울에 서울이 -23℃ 이하로 떨어져 역대 최저 기온 극값을 재경신하는 것만큼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며 인천과 기온 차이를 보면 원리도 이와 똑같다. 인천은 3월 24일 -4℃, 25일 -3.5℃밖에 떨어지지 않아서 서울과 차이가 많이 난다. 따라서 송월동으로 옮기기 전인 1927.12.31이나 1922.3.25나 강한 복사냉각으로 유난히 서울이 낮게 나온 것으로 보인다. 가장[193] 3월 21일과 3월 24일에 서울 최고 기온이 각각 1.4℃, 1.2℃였다.[194] 정확히 100년 뒤인 2022년 10월 10일에도 한기 유입으로 인해 강력한 초이상 저온이 찾아왔다는 점이 흥미롭다. 또한 최고 기온 역시 1922년보다 2022년이 더 낮았다(1922년 12.5℃, 2022년 11.9℃). 이는 평년 11월 수준이다.[195] 다만 차이점이라면 1923년은 8월 초중순에 서울에서 더위가 가장 강했다.[196] 그 다음으로 1926년 4월 22일의 0.3℃가 0℃대의 마지막 커트라인이다.[197] 3월 21일 1.3℃, 3월 22일 0.5℃, 3월 30일 1.5℃[198] 3월 11일 -5.3℃, 3월 14일 -6.8℃, 3월 15일 -7.0℃, 3월 16일 -6.6℃, 3월 17일 -5.7℃, 3월 18일 -5.1℃, 3월 19일 -6.0℃[199] 3월 13일 2.3℃, 3월 14일 2.0℃[200] 3~6일, 17~20일, 26~29일 단 6일, 19일, 28일은 최저기온 한정[201] 8~17일, 24~28일. 특히 9~16일, 25~27일[202] 이후 반세기도 더 넘은 56년 동안 기록을 지키고 있다가 1981년 2월 26일(-15.6℃)에 경신되어 2위로 내려갔다. 다르게 말하면 늦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게 당연하던 옛날에도 2월 하순에 -15℃ 이하로 내려가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203] 비슷한 예시로 1987년 4월도 평균값 상으로는 낮지만 일평균 기온의 중앙값은 그리 낮지 않다.[204] 8월 22일 33.1℃, 8월 27일 33.6℃[205] 사실 7월 하순에도 비가 그치고 더위가 와서 폭염일수를 기록한 날이 있기는 했다.[206] 이는 1925년에 분화한 백두산의 영향일 가능성도 있다.[207] 서울보다 그나마 더 따뜻할 것 같은 대구는 아예 영하를 찍먹한 수준이 아니라 -2.1℃까지 내려가며 옛 시대 특유의 최저기온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역대 4월 하순 중에서는 유일하게 이 날만 영하이다.[208] 순별로 따져보면 중순 최저평균이 2.4℃이고, 하순은 4.4℃였다. 4월 중순은 둘째치고, 아무리 쌀쌀한 일제 시절 때도 4월 하순쯤 되면 기온 상승세에 가속이 붙는게 일반적이었고, 전후 년도들도 4월 하순 최저평균이 7~8℃선이었으며, 현대에는 낮은 축으로 취급되는 2010년, 2011년, 2020년 4월도 6~7℃선이었다. 그런데 유독 이 해에는 4월 하순에도 4℃선에 그칠 정도로 도무지 따뜻해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특히 최고기온은 4월 하순의 경우 현재와 큰 차이가 없다.[209] 이후의 여름 날씨를 요약하자면 7월 15일과 8월 15일에 33.0℃를 기록했지만 7~8월은 심한 저온까지는 아니지만 매우 평범한 날씨가 지속되어 33℃를 넘은 날은 없어 여러모로 무난한 여름에 속했다.[210] 10월 평균 기온 역대 최저인 1912년 10월(17.5℃)보다 낮았다.[211] 12월 25일 -16.3℃, 12월 26일 -16.2℃[212] 그래도 12월 중순은 고온이라서 월말에 서울 역대 최저 기온 극값을 기록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월평균 기온은 -2.0℃로 평년보다 조금만 낮았다.[213] 특히 1월 19~23일[214] 월평균 최고 기온은[215] 10월 14일 0.8℃, 10월 15일 1.2℃, 10월 16일 0.8℃[216] 특히 12월 28~31일[217] 하지만 이 -23.1℃ 기록은 공식 기록임에도 신빙성이 다소 의심된다. 같은 날 인천은 최저 기온이 -13.5℃에 불과했으며 전날까지 합쳐도 -14.2℃, 강릉이 -10.2℃, 남부 지방도 영하 한 자릿수로 오히려 평년보다 크게 낮지 않은 기온을 기록했는데, 서울 혼자 -23℃ 이하로 떨어져 역대 최저 기온 1위를 기록했다는 점이 다소 의문스러운 부분. 제주도는 당일 최저 기온이 아예 영상권이었다. 서울 공식 기상관측소가 이날만 유난히 반사율(알베도)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혼자 이렇게 추웠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래도 논란이 많은 기록이기는 하다. 다만 비공식적으로 같은 날 서울 북쪽의 철원에서 -31.0℃까지 떨어졌다는 기록이 있고 횡성도 -29.8℃를 기록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마냥 신빙성이 의심된다고 보기도 어렵고... 내륙쪽에 반사율이 심해서 그에 따른 복사냉각으로 기온이 내려간 것으로 추정되며 이당시엔 서울이 도시 규모가 작아서 시골마냥 기온이 크게 내려갔을 확률이 높다.[218] 사실 서울의 시간별 기온페이스를 보면 1927년 12월 31일은 의외로 말이 되는 흐름을 보여주는 반면 1928년 1월 5일은 새벽에 기온이 1도 이상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22.2도라는 매우 낮은 최저기온을 기록했다는 것에서 후자가 더 의심이 되는 기록이며 1922년 3월 25일도 서울만 혼자 -10.2도를 기록해서 이쪽도 신빙성 논란 주장이 있긴 하다. 하지만 한파 기록은 거시적인 시베리아 기단뿐만 아니라 역전층, 복사냉각 같은 미시적인 요인으로도 크게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실제 기록이 거의 유력하다. 양평 -32.6℃ 같은 기록은 역전층 같은 미시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반면 1979년 11월 14일은 인천이 더 낮았으며 전국적으로 낮아서 이런 주장이 없다. 낙원동이나 송월동이나 한두블럭 차이라 송월동에 있어도 1~2도정도만 높고 큰 차이가 없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 당시엔 서울이 높은 빌딩이 많이 없었으며 인구도 현대 기준으로 중소도시 급이라 시골마냥 기온이 크게 떨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게 사실이라면 외려 19세기엔 -25~-26도까지 떨어졌을 가능성도 있으며 수원이 현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25.8도를 기록한 적이 있다. 일본에서는 아사히카와시가 현대에 -25도 이하로 잘 안떨어져 이러한 유형의 논란이 없지 않지만 대개는 복사냉각, 역전층 등 이런걸로 보고 있다.[219] 하지만 현대의 기준으로는 저온에 속한다.[220] 1월 9~10일, 1월 16~19일, 1월 21~28일 제외[221] 특히 1월 1~8일, 1월 12~14일[222] 정확히는 반올림 -21℃ 이하가 사흘 동안 이어졌는데, 1915년과 1928년 모두 -20.9℃를 기록한 날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1915년은 1월 12일에 -20.9℃였고, 1928년은 1월 6일에 -20.9℃였다. 그리고 정확히 말하면 1915년은 1월 15일에도 -20.5℃였기 때문에 반올림으로 치면 나흘 연속 -21℃ 이하이다.[223] 다만 기상 관측 이전인 1904년 1월에는 비공식이기는 하나 서울에서 1월 23~25일까지 사흘 연속으로 반올림 -22℃ 이하의 초강력 한파가 이어진 적도 있다.[224] 최근의 사례로는 2017년을 예시로 들 수 있는데, 2017년은 최고 기온이 빨리 떨어졌으나 1929년은 최저 기온이 빨리 떨어지면서 8월 하순 내내 19℃ 이하를 보인 날이 많았으며 8월 29일에는 16.2℃까지 떨어졌다.[225] 9월 17일 8.7℃, 9월 20일 8.6℃, 9월 21일 9.7℃[226] 이는 50년 전인 1879년 하반기와 비슷하다. 8월의 폭염, 9~11월의 저온, 12월의 고온과 강수량 등등...[227] 자세한 내용은 이상 고온/사례 문서 참조.[228] 당시 기준을 감안해도 1932년과 1935년, 1937년이 따뜻한 1월이었다.[229] 1889년 11월 12일에도 인천에서 최고/최저 0.8℃ / -6.3℃ 정도 떨어졌다는 기록이 있다.[230] 기상청에서는 7.7℃로 나와 있으나 이는 오류로, 4월 하순 중 일평균 값이 1.0℃로 잘못 기록된 날이 있다. 비슷한 시기 서울의 일평균이 두자릿수라 실제로는 10.0℃로 추정되며, 이 경우 실평균은 8.0℃로 서울 평균과 살짝 더 근접하게 된다.[231] 다만 월평균 최고 기온은 2010년이 더 낮았다. 이유는 2010년은 5월 2일까지 기록적인 꽃샘추위가 이어진 반면 1931년은 4월 하순에 본격적으로 기온이 올라가면서 하순 평균 12.1℃로 당시 기준 평년 수준으로 차츰 회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중순의 이상 저온은 도저히 커버가 불가능해서 결국 월평균 기온은 역대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것도 모자라서 90년 뒤, 92년 뒤인 2021년, 2023년 3월이 9.0℃, 9.8°C를 기록함으로써 4월이 3월에 추월당한 유이한 해가 되었다.[232] 7월 13일 15.2℃, 7월 14일 15.2℃[233] 7월 2일 30.2℃, 7월 3일 32.0℃, 7월 8일 31.2℃, 7월 16일 30.5℃, 7월 17일 31.8℃, 7월 18일 31.4℃, 7월 30일 31.4℃[234] 묘하게도 이 최하위를 기록한 해들은 이듬해에 지옥조차 학을 뗄만한 폭염이 찾아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1931년 7월 - 1932년 7월, 1941년 7월 - 1942년 7월, 1993년 7월 - 1994년 7월과 비슷하다. 그리고 2020년 7월 - 2021년 7월과도 유사성이 강하다. 그러나 1954년 7월은 21.9℃로 서울의 7월 평균 기온 역대 최하위를 기록했지만 1955년 7월도 그다지 높지 않고 낮은 편에 속하는 24.5℃의 월평균 기온을 기록하여 예외적인 사례이다. 이는 1981~2010년 기준의 24.9℃보다 낮고, 2010년대에서 7월 평균 기온 최저인 2011년의 24.6℃보다도 낮다. 그리고 2018년 7월은 역대급으로 더웠던 여름이지만 그 전년도인 2017년 7월도 26.9℃로 꽤 높았다.[235] 여담으로 대한민국의 이상 저온과 중국의 기록적인 홍수 피해가 났다는 점에서 2020년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공교롭게도 이 두 해는 달력 모양까지 같다.[236] 10월 26일 -0.5℃, 10월 27일 -2.0℃, 10월 28일 -3.0℃, 10월 29일 -1.5℃, 10월 30일 -1.0℃[237] 5월 17일 33.5℃[238] 물론 현대에 비해서는 확실히 낮다. 월평균 기온이 2021년 5월(17.1℃)보다도 0.1℃ 낮은데, 2021년 당시에는 약 10여 년 만에 5월이 춥다고 난리친 것을 감안했을 때 1932년 5월은 2021년 5월보다 추웠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치고 평년보다 높았다고 하니, 일제강점기와 현대의 기후의 차이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리고 중순의 고온도 공통점이다.[239] 1월 8일 기록[240] 11월 8일은 최저 기온 한정.[241] 11월 평균 기온은 5.8℃로 현대 기준으로 보면 저온이기는 하나, 당시에는 저온인 것도 아니었으므로.[242] 역대 11월 7일의 최고 기온과 일평균 기온 부문에서 최하위. 다만 최저 기온은 이미 1912년 11월 7일(-7.8℃)이 기록했다.[243] 11월 29일 최저 기온이 -5.5℃로 되려 22일 전보다 높다.[244] 단 4월은 10.2℃로 당시 기준으로 심한 저온은 아니었다.[245] 1월 26일과 1월 27일 기록[246] 2월 4일 기록[247] 1936년 12월도 고온이나, 현대 치고는 조금 낮다.[248] 1월 16일 -8.0℃, 1월 19일 -6.8℃, 1월 29일 -4.4℃[249] 8월 7일 33.4℃[250] 참고로... 갑자기 여름에서 겨울로 돌변했던 2021년 10월 17일의 최저 기온이[251] 그마저도 상순인 12월 5일에 기록된 기온이며, 12월 6일 이후로는 -5.5℃ 이하로 내려간 날이 아예 없었다.[252] 특히 1934년 12월은 최저 기온 극값이 12월 5일의 -8.7℃로 일제강점기 12월 중 가장 높았고, 1935년 1월은 최저 기온 극값이 1월 22일의 -13.1℃에 불과해 현대 수준의 고온을 보인 1916년, 1932년을 제외한 일제강점기 1월 중 가장 높았다.[253] 실제로 2월 상순에 겨울 전체 최저 기온을 기록하는 해는 생각보다 적지 않게 존재한다. 사실 2월 상순은 12월 하순과 달리 -20℃ 이하를 기록한 적은 없었지만, 평균 기온을 비교해보면 2월 상순이 12월 하순보다 낮다.[254] 대부분 운량이 많고 강수 기록이 있어서 아마도 눈이 내렸을 것으로 추정된다.[255] 추가되는 한기가 강한 눈구름을 동반하면 이러한 현상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1928년 1월 9~10일의 사례가 대표적이다.[256] 심지어 이 기간 동안 편차가 1917년과 1934년, 1947년조차 가볍게 넘기는 역대 최하위 기록을 줄줄이 세우며 상반기가 역대급으로 추웠다. 12월도 1917년만큼 추웠다면 연평균 기온 역대 최저 1위를 찍는 것뿐만 아니라 연평균 기온 9.5℃ 이하도 불가능은 아니었을 듯하다.[257] 공동 2위는 1923년과 1931년의 4월 25일, 4위는 1917년의 4월 23일. 벚꽃은 상반기 기온, 특히 3월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2020년과 2022년 3월이 월평균 기온 7.7℃로 같지만 2022년은 3월 일조 시간도 적고 2월이 추웠기 때문에 4월 4일에 핀 반면 2020년은 3월 일조 시간이 많고 1~3월이 매우 따뜻해서 3월 27일에 개화하였다. 1월 상순에 강력한 한파가 있던 2021년은 1월 하순부터 강력한 이상 고온의 누적으로 한파의 영향은 사실상 사라지고 벚꽃이 3월 24일에 피어,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빠르게 개화하였다. 이를 증명하듯 1936년은 3월 평균 기온이 유일한 영하인 -0.3℃로 역대 가장 낮았고 2021년은 3월 평균 기온이 9.0℃로 역대 가장 높았다. 참고로 21세기에서 가장 늦게 개화했던 해는 2012년과 2013년의 4월 15일인데, 두 해 모두 1~3월이 저온이었다. 2011년은 1월과 3월이 역대급으로 낮아도 2월이 비교적 덜 추웠던 반면 2013년은 기온이 오르려고 하면 심한 저온이 지속적으로 왔기 때문에 아마도 더 늦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2012년 역시 2~3월이 매우 추웠고 4월 상순까지 계속 심한 저온을 보였기 때문이다(물론 4월 중순부터 크게 올랐지만).[258] 이때는 서울 공식 기상 관측이 시작되기 전이라 인천의 해관기상관측자료를 보며 서울의 대략적인 한파 강도를 추측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17년과 1922년에 버금가는 엄청난 한파를 보였다.[259] 2월 5일 기록[260] 2월 1~5일, 12일[261] 이것 역시 사사오입이 미반영될 시[262] 가장 최근인 2022년 2월 끝자락에 비로소 11.5℃까지 오르자 그제서야 날씨가 따뜻해졌다는 말들이 나왔는데, 4월이 가까워지는 3월 하순에 그제서야 10℃를 기록했다면 체감이 어떨지 안 봐도 뻔한 일이다. 아마 공중파 뉴스에서 '이례적인 강력 꽃샘추위'라는 타이틀을 달고 토크를 진행하고도 남을 일일지도 모른다.[263] 요즘에는 2~3월 이상 고온이 강한 추세라서 2월에도 10℃를 넘는 일이 흔해졌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매우 대단한 기록이다. 결국 2023년 3월이 월평균 기온 9.8℃를 기록하여 역대 최저와 최고의 격차가 10.1℃에 이르게 되었다.[264] 특히 4월 26일에는 최저 기온이 2.9℃에 불과했다.[265] 4월 7일 최고 기온 19.4℃, 4월 17일 최고 기온 22.5℃, 4월 21~23일도 살짝 고온이었다.[266] 만발 날짜는 아예 5월 1일로 관측 사상 가장 늦다. 참고로 그 '홋카이도'가 평균기온이 많이 오른 지금도 4월 하순에야 개화한다는 점에서 1936년 봄날씨가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차가웠는지 알 수 있다.[267] 물론 최저 기온이 쉽게 두 자릿수를 기록하지 않았고 몇몇 저온인 날도 있었다(5월 4일, 5월 9일, 5월 16일, 5월 19일).[268] 6월 18일 20.9℃, 6월 26일 20.1℃[269] 그중 7월 2일은 최고 기온 22.0℃, 최저 기온 15.6℃를 기록했고 7월 4일과 7월 5일도 최저 기온이 15.6℃였다. 7월 9일도 최고 기온이 23.6℃에 그쳤다.[270] 7월 23일 기록[271] 2020년은 최저 기온이 열대야도 하루 있었고 일평균 기온도 몇몇 날이 평년 수준이었다.[272] 8월 11일 20.4℃, 8월 19일 21.0℃, 8월 25일 20.5℃, 8월 31일 20.5℃[273] 물론 대구의 1913년 7~8월 평균 기온도 현대와 비교하면 이상 저온이다.[274] 8월 9일의 32.5℃가 최고 극값이었다.[275] 물론 이 정도도 현대 치고는 상당한 저온이다. 13.1℃를 기록한 2018년 10월을 생각해 보자.[276] 도 전체에 관측 시설이 없던 충청도로써는 첫 관측 시작이고, 경기도 다음으로 늦게 시작되었다. 사실 인천은 당시 경기도 관할이었음을 감안하면 충청도가 확실히 늦기는 했다.[277] 다만 애석하게도 12년이나 지난 1949년 1월 1일부터 제대로 된 기상 관측이 시작되었고, 그마저도 1년 뒤인 1950년 6월 1일에 전란의 기운을 감지했는지 관측을 중단했으며, 그대로 1952년 9월 30일까지 시행되지 않았다가 10월 1일부터 재개된 뒤 70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278] 참고로 이 기록 때문에 84년 뒤인 2021년 10월 17일이 일제시절급의 강한 저온을 자랑했음에도 10월 17일 극값 기록에서는 완전히 묻혀버렸다.[279] 특히 21일경의 추위는 가장 최근인 2023년 12월 21일과 대등한 추위였다.[280] 1월 11일의 -13.2℃가 1월 중 가장 낮은 기온이었으며, 이는 현대 수준의 고온을 보인 1916년과 1932년, 그리고 바로 2년 전인 1935년을 제외한 일제강점기 1월의 최저 기온 극값 중 가장 높다.[281] 평년보다 고온인데다 이쪽은 강수일수가 18일이다. 그 2021년과 같다. 과거 일조 시간의 경우 오류가 뜬 자료들도 있을 것 같지만 일조 시간은 2021년이 더 적었다. 사실 1938년은 3월도 매우 많은 강수일수를 보여서 다소 특이한 축에 속했다.[282] 1939년과 2018년 1월 둘 중 하나를 반대로 보면 기온 분포에서 많은 부분이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순에 한파가 풀려 꽤 따뜻한 편이었고 상순과 하순에는 한파가 매우 강했다는 점이 비슷하며, 차이점은 1939년은 상순 한파 > 하순 한파였지만 2018년은 반대로 하순 한파 > 상순 한파이다. 다만 1939년 쪽이 기온이 더 낮기 때문에 월평균 기온도 -5℃ 이하로 더 낮게 나왔다. 또한 두 해 모두 여름에 매우 강력한 폭염이 찾아왔다는 것을 보니 판박이인 점도 좀 있다.[283] 4월 2~8일, 4월 22~28일, 단 23일, 25일, 28일은 최저기온 한정[284] 1985년, 2006년과 같다. 물론 이 정도도 현대 4월에 비하면 저온이기는 하다. 1985년의 경우 당시 기준으로는 평년과 비슷했다.[285] 5월 1~3일, 5월 5~6일, 5월 8~17일[286] 5월 2일 5.6℃, 5월 3일 5.1℃, 5월 9일 5.5℃[287] 8월 22일에 37.7℃를 기록했다. 이 기록은 8월 하순 역대 최고 기온 2위에 해당하고, 2018년조차 0.1℃ 차이로 능가한 기록이며 이보다 높은 기록은 1943년 8월 24일의 38.2℃ 뿐이다.[288] 10월 19~24일, 10월 30~31일[289] 11월 1~2일, 11월 10~14일, 11월 25~30일[290] 12월 1~3일, 12월 10~15일, 12월 17~19일[291] 1941년, 1943년, 1948년은 월평균 기온이 영상권이었고 1948년 12월은 이중에서도 엄청난 이상 고온을 보였으나, 1944년, 1946년, 1947년의 12월이 매우 추웠고 나머지 해들도 12월 평균 기온이 -1℃대라 이전에 비해 확실히 추운 12월의 비중이 높아지기는 했다. 결론은 어떤 해든 중간이 없었다.[292] 1940년 1월 -17.7℃, 2011년 1월 -17.8℃.[293] 3월 2일 기록[294] 전날에는 -0.2℃로 더 낮았다.[295] 1911~1940년 기준 3월 평균 기온 3.3℃, 1921~1950년 기준 3월 평균 기온 3.4℃, 1931~1960년 기준 3월 평균 기온 3.6℃[296] 4월 7일 -0.7℃, 4월 9일 -0.5℃[297] 6월 20일 32.4℃, 6월 21일 32.5℃, 6월 22일 32.3℃[298] 역대급 장마로 기록된 2011년 7월의 강수일수인 21일보다 많고, 2010년 8월의 24일과 같다. 자세한 내용은 장마/연도별 상황 문서 참조.[299] 이는 마치 2020년 7월 13일을 연상케 한다. 물론 이때는 더 기록적이어서 낮 기온이 아예 20°C 이상으로 오르지 않았으며, 일 최고기온이 새벽에 기록되었다.[300] 그나마 8월 1일에 32.9℃로 0.1℃만 높았으면 폭염일수가 기록될 뻔했다.[301] 8월 7일 18.7℃, 8월 8일 17.0℃, 8월 9일 17.2℃, 8월 10일 19.5℃, 8월 11일 17.4℃[302] 심지어 이 늦더위는 9월을 넘어 10월까지 갔는데, 10월 4일의 최고 기온이 무려 28.5℃를 기록했을 정도였다.[303] 여기까지 보면 80년 후인 2021년 1월과 유사하다. 차이점은 상순과 하순의 날씨가 뒤바뀌었다는 것이며, 한파의 강도는 1941년 1월이 더 강했지만 이상 고온은 2021년 1월이 더 심했다.[304] 단 하루만 늦었으면 2월 역대 최저 기온인 -19.6℃ 기록이 경신될 뻔했다. 여담으로 이날 이후 서울은 29년 동안 최저 기온 -20℃ 이하를 기록하는 날이 없었다가, 후술할 1970년 1월 5일에 마지막으로 -20℃ 이하를 기록한 이후 현재까지 더 이상 -20℃ 이하로 내려가지 않고 있다.[305] 2월 1일 -18.2℃, 2월 2일 -16.3℃, 2월 3일 -10.5℃, 2월 6일 -10.9℃, 2월 7일 -13.1℃, 2월 8일 -14.8℃, 2월 11일 -13.8℃[306] 특히 3월 20일에는 최고 기온이 19.3℃까지 올라갔다.[307] 묘한 것은, 1931년 7월도 서울보다 낮은 월평균 기온, 드문드문 보이는 더위, 다음 해와 월평균 기온이 천지 차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앞서 1941년 7월도 대구의 월평균 기온이 최하위를 기록할 정도로 이상 저온이었는데, 이듬해 7월은 불지옥 같은 폭염이 찾아와 대구의 7월 평균 기온이 29.3℃를 기록했다. 세부적으로는 1941년 7월 최고/최저 32.2℃/14.2℃, 1942년 7월 최고/최저 39.7℃/17.4℃이다. 월평균 기온부터 서로 정반대인 1931년 7월 - 1932년 7월, 1993년 7월 - 1994년 7월과 흡사하다. 그리고 2020년 7월 - 2021년 7월도 유사했다.[308] 1월 18일 기록[309] 이런 양상은 76년 뒤 2018년과 80년 뒤 2022년에 다시 재현됐다. 이 해 역시 2월에는 저온이 길게 나타나면서 월평균이 상당히 낮았지만, 3월에는 이상 고온이 나타나면서 월평균이 2℃ 가량 높게 기록되었다.[310] 4월 11일과 4월 18일 기록[311] 4월 21일 4.8℃, 4월 22일 4.4℃, 4월 23일 2.8℃, 4월 29일 4.8℃[312] 4월 21일 11.6℃, 4월 22일 13.5℃[313] 엄연히 말하면 저온은 6월 상순까지 이어졌다. 6월 상순에도 최저 기온이 높아도 15℃대이고 낮으면 11℃대를 기록할 정도로 선선했는데, 최고 기온은 30℃를 넘는 날들이 많아지면서 사실상 여름에 도달했다. 다만 6월은 전체적으로 최고 기온이 높은 반면 최저 기온은 낮은 날들이 많았는데, 이 여파로 서울의 월평균 기온이 22.0℃를 기록했다. 당시의 평년보다는 1℃ 이상 높지만 현대의 평년보다는 0.7℃ 낮은데, 최고 기온에 비해 월평균 기온이 낮았던 이유는 열섬 현상이 없는 일제강점기라 낮에 기승을 부리는 뜨거운 폭염에 비해 밤이 되면 기온이 빨리 떨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1942년 6월은 역대 6월 일조시간 1위(304.2시간)이라 더 그런 면도 있었다.[314] 특히 10월 23~25일[315] 이는 1년 전인 1941년 10월 23일에 늦은 이상 고온이 와서 최고/최저 26.8℃/7.1℃를 기록한 것과 완전히 대칭된다.[316] 최근의 사례로는 2018년 8월 1일 서울 최고 기온 39.6℃에서 3개월이 지난 10월 31일 최저 기온 0.7℃가 있다. 두 해 모두 여름이 덥고 10월이 평년보다 낮은 이상 저온을 보였던 것이다. 강원도 홍천은 더 심각한데 2018년 8월 1일 최고 기온 41.0℃에서 2018년 10월 31일 최저 기온 -0.9℃로 뚝 떨어졌으며 12월 29일에는 -17.3℃까지 떨어져서 불과 5달만에 60도 가까이 떨어졌다. 그러나 1942~1943년의 강한 한파와 달리 2018~2019년은 몇 번의 간헐적인 한파 빼고는 포근한 겨울로 이상 고온이 나타났다는 차이점이 있다.[317] 특히 7~10일, 14~19일, 25~29일.[318] 2021년 1월과 극값이 같다.[319] 25~26일은 서울도 포함.[320] 여담으로 하루 중 가장 높은 15시의 기온은 일제강점기도 아닌[321] 5월에 최저 기온 한 자릿수는 대부분 매년마다 있는 일이라 특별하지 않을 것 같으나, 상순이면 몰라도 중순~하순이면 거의 드물다. 2020년 5월에 10년 만에 서울이 중순에 최저 기온 한 자릿수를 기록해서 단 하루 9.2℃까지 떨어진 적이 있었는데, 이때 엄청 쌀쌀하다는 말이 많았었다. 게다가 이런 날씨가 중순~하순에 연속으로 일어나면... 심지어 5월 이상 저온이었던 2021년에도 중순에 한 자릿수를 기록한 날이 있었다.[322] 기상자료개방포털에는 이해 12월 평균 기온이 -5.7℃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는 사사오입을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며 사사오입 반영 시 -5.8℃로 1917년 12월보다 0.1℃ 낮아 역대 최하위이다. 12월 상, 중, 하순 3개 평균값으로는 1917년 12월은 -5.6℃임에 비해 1944년 12월은 -5.8℃로 나온다. 따라서 1884년 12월 이후로 60년 만에 12월 평균이 낮았다고 보아야 한다.[323] 심지어 12월 13일부터 18일까지는 엿새 연속으로 일평균 기온이 -8℃ 이하로 뒤덮여 있다.[324] 4월 평균 기온은 서울 기준 11.0℃로, 현재 기준으로는 제법 낮은 편에 속하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평년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조금 높기까지 했다. 1921~1950년 기준 4월 평년 기온이 10.6℃, 1931~1960년 기준 10.5℃로 조금 높았으며, 1941~1970년 기준이 되어서야 11.1℃로 평년과 거의 비슷해진다. 2020년 4월의 서울 월평균 기온과 거의 비슷하다.[325] 공교롭게도 3년 전에는 7월에 더웠고 8월에 선선했고 겨울이 추웠으며, 2년 전에는 서울에 최악의 폭염이 찾아왔다는 공통점도 있다. 그러나 시작은 각각 정반대였다.[326] 당시 기준으로는 최저 1위. 후술할 1947년으로 인해 2위로 밀려났다.[327] 여담으로 1944~1945년 겨울에 일조량이 기록적으로 최상급을 기록했고 그에 따른 복사냉각으로 1월에는 최고 기온에 비해 최저 기온이 낮은 현상을 보여주었다. 어느 정도 과장된 수치였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겨울 시즌 내내 고온이 극히 드물다는 것은 일제강점기 당시에도 쉽게 기록하기 어려운 것이다.[328] 5월 31일 제외[329] 이상 고온이 찾아온 2014~2018년 4월, 이상 저온이 찾아온 2011년, 2018년 10월과 기온이 맞먹는다. 이상 고온이 찾아온 2001년, 2002년 4월과는 완전히 같다. 2022년~2024년 4월보다는 확실히 낮으며 당시 10월 평균과도 큰 차이가 없다. 현대의 프랑스 파리보다는 확실히 춥고 독일 베를린의 5월과도 비슷하다. 미국에서나 볼 수 있는 이상 저온이 나타난 것이다. 1911~1940년 기준으로 해도 편차는 -2.3℃이다.[330] 5월 31일 하루에 반짝 더위가 찾아와서 29.2℃를 기록했다. 이는 월평균 기온이 가장 높았던 2012년 5월의 최고 기온 극값과 맞먹는다. 하지만 1945년 5월은 나머지 날들이 높아도 22~24℃대에 그쳤으며, 6월 1일이 되자 다시 급락하였다.[331] 5월 21일 25.1℃, 5월 25일 26.4℃, 5월 31일 29.2℃[332] 1위는 1980년의 22.9℃[333] 11월 최고 평균이 14.9℃였으나, 76년 만인 2022년 11월(15.4℃)에 의해 2위로 밀려났다.[334] 연평균 기온이 최상위권에 드는 1998년, 2015년, 2016년, 2019년, 2021년과 비교하면 약[335] 슈퍼 엘니뇨로 서울에서 1~12월 전체가 이상 고온이었던 2015년과 정반대의 사례이다.[336] 연평균 최저 기온은 1917년이 기록했다.[337] 서울의 3월 평균 기온 역대 최하위는 1936년의 -0.3℃, 2위는 1957년의 0.0℃, 공동 3위는 1916년과 1970년의 0.4℃, 공동 5위는 1915년과 1933년의 0.6℃, 7위는 1924년의 1.1℃이다.[338] 2023년 5월 8일에 7.9℃까지 떨어진 것과 같다. 재밌게도 두 해는 각각 연평균이 가장 낮은 해와 높을 예정인 해로 갈린다는 것이다.[339] 이것보다 더 낮은 6월은 일제강점기는 커녕 구한말에서도 보기 힘들고, 현대 시대에는 당연히(...) 볼 수 없으며, 조선 시대 후기인 184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겨우 멎먹을 수준이다. 1847~1849년 당시 중국 상하이에서는 3년 연속으로 6월 평균 기온 21℃대를 기록했고, 1849년 6월에는 21.4℃로 여름 구실은 했는지 의문일 정도로 낮았으니(참고로 현대의 5월 평년 기온과 비슷) 서울로 치면 6월인데도 월평균 기온이 17℃대 후반~18℃대 초반(...)에 그친 셈이며 실제로 1849년 6월에 서울에서 측정했다면 그렇게 나올 가능성도 있다. 보통 일제강점기 시절 서울이 6월에 19~22℃를 기록할 때, 상하이는 22~25℃를 기록했었다. 그리고 1849년 6월 이후로 상하이의 6월 평균 기온이 21℃대를 기록하는 사례는 다시는 찾아오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1947년 6월은 추측상 거의 100년 만의 초저온 현상일 가능성이 크다. 2년 전 5월처럼 미국에서나 볼만한 초저온 현상이 나타난 것이며 1911~1940 평균으로 해도 2.2℃정도 낮다.[340] 1957년 18.9℃, 1972년 19.0℃ 이후 1980년과 같이 공동 3위[341] 1981~2020년의 1월 중에서 1981년 -7.0℃, 2011년 -7.2℃, 1984년과 1985년 1월의 -5.9℃를 제외하면 1986년 1월과 같은 -5.4℃를 기록했다.[342] 특히 1월 26~29일, 2월 3~10일.[343] 하지만 정작 다음 달인 12월은 기온이 크게 올라서 평년보다 매우 높은 초이상 고온을 보였고 최저 기온 극값 -7.7℃(12월 3일 기록)와 월평균 최저기온 -0.2°C로 11월보다 오히려 높았다. 월 평균기온도 3.8°C로 11월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자세한 내용은 이상 고온/사례 문서 참조.[344] 이중 1953년과 1955년은 월평균 기온이 0.6℃로 현대 기준으로는 근소하게 높지만, 서울 기준으로 최저 극값이 -9℃ 안팎에 그쳐 한파가 오면 영하 두자릿수를 기록하는 현대의 12월에 비하면 확실히 따뜻했다.[345] 하지만 3월은 1956년, 1957년, 1958년 3년 연속으로 때에 걸맞지 않은 꽃샘추위가 찾아왔다.[346] 서울은 1950년 9월 1일에 중단되었다가 1953년 12월 1일에 재개되었고, 인천은 1950년 6월 1일에 중단되어 1951년 9월 30일에 재개되었으며, 강릉은 1950년 6월 26일~7월 6일과 1950년 9월 1일~10월 31일, 1951년 1월 1일~8월 31일 기간 동안 중단되었다가 1951년 9월 1일부터 완전히 재개되었다.[347] 8~16일, 20~23일[348] 공식 기록을 강조하는 이유는, 1892년 3월 13일 당시 인천의 최고 기온이 -4.2℃에 머물러 기록상 가장 늦은 꽃샘추위로 남아있기 때문. 최저 기온도 -8.0℃였다. 1950년 3월 11일 인천의 최고/최저 기온 극값이 -4.7℃/-8.4℃였기에 서울도 둘의 꽃샘추위 강도가 비슷했던 것으로 추정된다.[349] 3월 5일에 최고 기온이 16.5℃까지 상승했다.[350] 5월 20~21일[351]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서울의[352] 공식 기상 관측은 1964년 1월 1일에 시작되었으나, 이미 1951년 2월 5일 오후부터 미군에서 비공식 관측을 시작했다. 관측지는 권선구 권선동으로, 현재의 공식 관측소가 위치한 서둔동과는 거리가 좀 있다. 다른 얘기로, 1963년 1월 23일에 수원이[353] 심지어 이것도 수원에서는 비교적 높게 기록된 것이고, 서울 종로구로 추정되는 지역은 아예[354] 당대 전주의 기록을 보면 1951년 3월 1~4일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 1958년 3월 1~4일 중에 3일에 -8.6℃를 기록했지만 51년 3월 3일(-10.3℃)보다 -1.7℃보다 높았다고 나온다. 이를 서울에 대입하면 58년 3월 3일 최저가 -11.2℃였으니 51년 3월 3일은[355] 1958년 3월 2일 -4.1℃[356] 1936년 3월 3일 -12.2℃[357] 추정인 이유는 수원의 3월 기록 중 1주일 동안 결측이 발생했기 때문.[358] 해당 사이트는 전문이 러시아어로 작성되어 있는데, 해당 링크는 서울의 월평균 기온과 연간 기온(Средние месячные и годовые температуры воздуха в Сеуле)을 정리한 표이다. 다만 해당 사이트는 20세기 이후의 관측 기록들 중에서 실제 데이터와 0.1~0.5℃의 오차가 있는 기록들이 있다(예를 들어 1917년 1월 평균 기온이 실제로는 -9.0℃인데 해당 사이트에서는 -9.3℃로 기록되어 있다). 그래도 대략적인 기온 분포를 확인하기에는 유용한 사이트이므로 결측 기간의 기온 데이터를 확인하는데 적합하다. 강수량은 일치하지 않는 데이터가 너무 많아서 대략적인 값도 알기 어렵다.[359] 이게 사실이면 7월 1일에 36.3℃를 기록한지 불과 2개월하고 보름 만에 20℃나 추락한 셈인데, 이는 오류일 가능성이 크다. 다른 모델에서는 이 날 20℃까지 올라갔고, 종로구 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뚜렷하게 기온이 낮았다는 표시도 없기 때문.[360] 그리고 이 저온 현상은 옆 나라 일본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도쿄의 경우 1951년 9월 평균 기온이 20.7℃로 1931~1960년 기준 평년보다 2.1℃나 낮으며, 순위는 145단계 중 138위이다. 홋카이도 하코다테는 아예 이달 평균 기온이 15.7℃로 기록되어 1872년 관측 이래 1913년 9월과 함께 가장 추운 9월로 남아있게 되었다.[361] 1957년 9월도 후술하겠지만 이상 저온이 강하게 찾아온다.[362] 최저 기온 극값은 1월 25일의 -13.6℃[363] 그런데 이 한기의 규모가 아주 컸던 것인지 한반도와 거리가 있는 제주의 최저 기온도 4.0℃까지 떨어졌다. 4월도 절반 이상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364] 1931~1960년 기준 인천의 4월 평년기온은 9.7°C이다.[365] 5월 1일 9.0℃[366] 미군 관측을 참고한 월평균은 -2.2℃이다.[367] 더 정확히는 -2.65℃이다. 사사오입을 취하는 기상청이었다면 -2.6℃로 표시했을 듯.[368] 기록에 의하면 이렇지만, 미군이 기온이 상승하거나 하락할 때마다 0.5~0.6℃ 단위로 표시[626]해 두었기 때문에 실제 기온은 -14.6℃~15.0℃ 사이일 수 있다. 아무튼 입춘 한파 치고는 상당히 강력했던 건 사실이었던 듯 하다.[369] 공통적으로 2월 중순과 하순 초에 저온, 25일부터 기온이 상승하였다. 물론 저온은 1953년 2월이 한수 위이고, 고온은 2022년 2월이 한수 위였다. 이해 서울 벚꽃 개화일은 4월 15일 이었는데 당시 치고는 살짝 빠른 개화이다. 즉 3월과 4월 전반은 기온이 평년보다 약간 높았을 것으로 예상된다.[370] 이는 2017년과도 비슷하다. 이 해 역시 10월에는 이상 고온으로 비교적 더운 날씨가 나타났지만, 11월에는 이상 저온으로 평년보다 추운 날씨가 이어졌다.[371] 비교 대상인 2017년 11월 19일 최저기온 -6.6℃보다는 살짝 높지만, 이 역시 시기를 감안하면 꽤 강한 저온이다.[공식] 기묘하게도 전란의 여파로 기상 관측이 잠정 중단되었다가 다시 재개된 12월 1일부터 고온 현상이 왔다.[비공식] [374] 양상도 2018년 1월의 하위호환격이다.[375] 좀 더 상세히 설명하자면, 두 해 모두 1월의 이상 고온이 심각했으나 2월 상순에 늦추위가 찾아왔고, 7월의 이상 저온이 강했지만 8월은 무더위가 찾아와서 월평균 기온이 평년과 비슷했다는 점이 일치한다. 물론 겨울철의 난동은 2020년이 더 심했고, 여름철의 냉하는 1954년이 더 심했다는 세부적인 차이가 존재한다.[376] 6월은 2012년 5월의 19.7℃보다도 낮았고(다만 이쪽은 최저 기온이 높아서 이상 고온이 찾아왔다) 7월은 1991~2020년 기준 6월의 평년 월평균 기온인 22.7℃보다도 낮다. 사실상 7월 초까지 봄이었고 기상학적으로도 6월이 봄이고 7월이 되어서야 여름이 시작되었다. 이후 8월 10일에 34.3℃를 기록하는 더위가 있었으나 심하지는 않아서 8월 평균 기온은 당시 평년보다 0.1°C 높은 25.7℃를 기록했다.[377] 6월 27일 30.4℃, 7월 14일 30.3℃, 7월 16일 31.9℃, 7월 20일 31.4℃[378] 12월 27일 기록[379] 이는 2014년, 2022년과 유사하다. 극심한 추위는 없었으나 고온 없이 꾸준히 낮게 유지된 점.[380] 5월 28일 최고 기온이 16.8℃에 불과했다.[381] 물론 일별로 보면 아예 없지는 않았다.[382] 1월, 3월, 9월 제외[383] 제주도 제외[384] 4월 15일, 4월 21일, 4월 22일 기록[385] 4월 29일 기록[386] 이는 2010년 4월과 비슷했다. 같은 월평균 기온, 20.7℃ 이상 오르지 못하는 최고 기온, 한 달 내내 계속 불어대는 찬바람, 월말임에도 최저 기온이 3.3℃까지 추락함 등등...[387] 강릉, 울릉도 제외[388] 즉 한기가 4월은 커녕 5월까지 물러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며, 심지어 6월에도 찾아온 듯 하다.[389] 9월 9일 18.7℃, 9월 26일 19.5℃[390] 9월 26일 9.5℃, 9월 27일 7.5℃, 9월 28일 8.1℃[391] 이는 10월 중순에 -1℃ 미만을 기록한 둘뿐인 사례 중 하나다. 나머지 하나는 32년 전인 1924년이며, 무려 -1.5℃까지 떨어졌다.[392] 사실 그 전날인 11월 6일이 최고 기온 8.9℃로 더 낮았다.[393] 11월 15일 1.9℃, 11월 16일 -0.2℃, 11월 17일 3.5℃[394] 1위는 후술할 1972년 11월 참조.[395] 실제 값은 -5.258도로 오사육입 하는 기상개방자료포털 기준으로는 -5.2도.[396] 더군다나 1956년 12월부터 강한 한파가 시작되어 1월에 조금 풀렸다가 2월에 다시 한파가 맹위를 떨쳤으므로, 1956~1957년 겨울은 1월보다 12월과 2월의 월평균 기온이 더 낮았다. 최저 기온 극값도 12월은 -15.1℃(12월 23일), 1월은 -14.5℃(1월 22일), 2월은 -17.3℃(2월 11일)로 1월보다 12월과 2월의 최저 기온이 더욱 낮게 내려갔다.[397] 이는 심지어 1916년[398] 7월 1일 18.2℃, 7월 2일 19.5℃, 7월 3일 18.2℃, 7월 4일 18.7℃, 7월 5일 18.0℃, 7월 6일 18.8℃, 7월 7일 19.9℃, 7월 8일 18.3℃, 7월 9일 18.3℃, 7월 10일 17.8℃, 7월 12일 19.9℃, 7월 14일 19.5℃, 7월 20일 19.8℃, 7월 21일 19.9℃, 7월 22일 19.8℃, 7월 23일 18.1℃, 7월 24일 19.6℃, 7월 28일 19.8℃, 8월 1일 19.6℃, 8월 3일 19.6℃, 8월 5일 19.4℃, 8월 7일 19.9℃, 8월 12일 19.7℃, 8월 13일 19.3℃, 8월 28일 19.3℃, 8월 29일 16.9℃, 8월 30일 18.6℃, 8월 31일 16.0℃[399] 4월 3~6일 제외[400] 이는 3월 2일 최고 중 가장 낮은 값이나, 7년 전인 1951년 3월 2일에 최고 -5℃선을 기록한 적이 있어 사실 역대 1위는 아니다.[401] 최저가 아니라 최고가 저 정도였다. 2010년대부터 3월의 기온 추세가 크게 바뀌어 3월 하순 아침에 0.2℃까지 내려가도 계절이 거꾸로 돌아간다는 소리가 나올 판국이니 한낮에 0.2℃밖에 안 올라갔을 때 체감온도는 설명 생략. 더불어 역대 3월 하순 최고기온 중 가장 낮은 값이기도 하다.[402] 6월 24일에 최고 기온이 37.2℃를 기록했는데, 이는 현재 6월 이상 고온으로 취급되는 2020년 6월보다 더 심했다.[403] 7월 13일 21.0℃, 7월 14일 19.7℃, 7월 15일 19.2℃, 7월 16일 21.8℃[404] 어떻게 보면 한파에 있어서는 2021년 1월의 상위호환, 이상 고온에 있어서는 2021년 1월의 하위호환으로 볼 수도 있다. 2021년 1월도 연초부터 강력한 한파로 1월 8일 최저 기온이 -18.6℃까지 떨어졌으나 중순 초반에 10°C 가까이 잠시 따뜻해졌다가 다시 추워져 중순 후반인 1월 19일에 최저 기온 -11.6℃까지 떨어졌고, 하순에 초이상 고온이 찾아와 1월 24~25일 최고 기온이 13.9℃까지 올라갔다. 다만 1959년 1월은 상순에 최저 기온 -19.8℃로 2021년 1월(-18.6℃)보다 더 낮았고, 중순 초반에는 2021년 1월과 달리 이상 고온이 아니라 상순에 비해 약간 올라간 것일 뿐 여전히 추웠으며, 중순 후반 최저 기온도 -18.0℃로 2021년 1월(-11.6℃)보다 훨씬 낮았고, 하순의 최고 기온도 9.8℃로 2021년 1월(13.9℃)에 비해 이상 고온이 훨씬 약했다. 요약하자면 한파와 이상 고온의 대략적인 추이만 비슷했을 뿐 월평균 기온은 1959년 1월이 넘사벽이다. 당시 기준으로도 다소 낮은셈이며 현재보다는 3°C나 낮아 평년과 비슷했던 2021년 1월과 달리 1959년 1월은 저온이 우세했다.[405] 30~31일 제외. 특히 1월 22~28일. 그 중 1월 23~25일, 27~28일의 한파가 매우 강했다.[406] 1월 23일 -15.8℃, 1월 24일 -17.0℃, 1월 25일 -15.3℃[407] 이달 최저 기온 극값도 -17.0℃로 크게 기록적인 수준은 아니고 월평균 기온은 아예 평년보다 높았기에 특별하지는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달 상순~중순까지는 대부분의 날들이 고온을 보여 1월 1~20일까지의 월평균 기온이 -1.0℃(2015년, 2019년 1월과 비슷한 수준이다.)였는데 하순의 한파로 인해 월평균 기온이 -3.3℃로 2.3℃나 하락했으니 하순 한파가 월평균 기온을 크게 하락시킨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408] 이 점은 2023년과도 비슷하다. 이 해 역시 초중순에는 대체로 이상 고온을 보였으나 하순에는 강한 한파가 있었다.[409] 7월 6~9일[410] 특히 11월 26~27일[411] 2~5일, 9~16일 제외. 특히 17~19일, 26~31일. 그 중 28~31일이 저온이 매우 심했다.[412] 1921~1950년 기준 -1.5℃[413] 1월 1일 -15.0℃, 1월 5일 -16.5℃, 1월 11일 -16.4℃, 1월 12일 -16.3℃, 1월 17일 -16.2℃[414] 사실 그냥 관측을 안 했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415] 5℃대 자체는 이후로도 1976년, 1981년, 1987년 5월에 찾아왔고, 2010년 5월 첫날에도 찾아왔다. 그 뒤 12년이 지난 현재까지 찾아오지 않고 있다. 게다가 2012년같이 12°C 이상인 해도 있었다.[416] 물론 1991~2020년 기준으로 하면 평년보다 0.9℃ 낮다.[417] 1월 23일과 1월 27일 기록[418] 1973년, 2022년 1월과 극값이 같다! 대신 1962년 1월은 이상 고온이 길었던 1973년 1월이나 한파와 이상 고온이 번갈아 찾아온 2022년 1월과 달리, 한 달 내내 가벼운 한파가 연속으로 이어진 타입이라서 월평균 기온은 놀랍게도 2013년 1월과 같다.[419] 평년 기준으로 볼 때 최고 기온은 1월, 최저 기온은 2월 중순과 비슷하다. 즉 1~2월에 나올 법한 날씨가 4월에 나왔다는 것은 매우 기록적이다.[420] 이틀 전에 비해 최고 기온이 10℃ 이상 급하강했다. 이는 다른 지역들도 마찬가지.[421] 1월이 -9.154도, 2월이 -2.457도로 음수는 오사육입을 하는 기상개방자료포털에선 각각 -9.1도, -2.4도로 나오지만 음수도 사사오입을 하는 엑셀로 돌리면 -9.2, -2.5도가 맞다.[422] 월평균 최고기온은 무려 -4.8°C로 압도적 최하위이다. 참고로 하위 2위인 1936년 1월이 -4.0°C, 하위 5위인 2011년 1월이 -3.4°C이다.[423] 이는 한 달 내내 최악의 이상 고온으로 유명한 2020년 1월과 100% 대조된다.[424] 4월 8일 1.8℃, 4월 9일 1.5℃, 4월 10일 0.6℃[425] 반대로 서쪽 지방에 위치한 서울은 29.8℃를 기록하여 이 저온 현상과 완전히 대비되었다.[426] 7월 5~7일[427] 해방 이후 제주도 서귀포시에 이어 두번째로 빠르게 시작되었다. 다만 기상청 소관이 아닌 비공식으로는 1951년 2월 5일부터 시작되었다.[428] 1월 4일 기록[429] 최근 사례로는 2015년 4월이 있으며 이때 서쪽 지역은 초중순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조금 높았으나 강릉 지역은 연일 동풍으로 기온이 크게 낮았으며 중순까지는 매우 기록적이었다. 하순에는 전국이 상당히 높았고 강릉은 초이상 고온이 왔지만 월평균 기온은 높이지 못했다.[430] 11월 12~17일, 11월 19일, 11월 22일, 11월 24~25일, 11월 30일[431] 그래도 1월 전체 중에서 한파 일수를 기록한 날은 8일로 비율이 크게 높지는 않다. 최저 기온 극값은 1월 12일의 -18.1℃.[432] 3월 1일 -6.2℃, 3월 4일 -6.5℃, 3월 5일 -7.4℃, 3월 6일 -5.6℃, 3월 7일 -6.6℃, 3월 10일 -5.4℃[433] 10월 8~9일, 10월 14~18일[434] 10월 8일 6.4℃, 10월 9일 6.0℃[435] 12월 3~4일, 12월 8~12일, 12월 14일, 12월 19~22일 제외. 특히 12월 15~18일, 12월 24~25일.[436] 16~21일 제외[437] 11월 21일 -8.2℃, 11월 22일 -9.7℃, 11월 30일 -10.7℃[438] 12월 25일 -13.2℃, 12월 26일 -14.4℃, 12월 27일 -15.2℃[439] 이는 2021년과도 비슷하다. 2021년에도 성탄절 전후로 -15℃ 전후의 한파가 찾아왔다.[440] 11월은 과거부터 현재보다 높은 월평균 기온이 자주 나타나서 이 당시에도 6℃대였으니 5.9℃이면 다소 낮은 기온이다.[441] 1~12일, 19~25일. 특히 1~2일, 4~9일, 20~22일.[442] 3월 1일 -6.0℃, 3월 2일 -5.4℃, 3월 3일 -4.8℃[443] 30년 뒤인 1998년 3월 상순에 초이상 고온을 보였던 것과 대조된다.[444] 5월 26~30일[445] 5월 26일 17.5℃, 5월 27일 16.9℃, 5월 28일 20.6℃, 5월 29일 19.0℃, 5월 30일 16.9℃[446] 이는 3월 수준이며, 현대(1991~2020) 5월 하순 평년과 비교하면 무려 11℃나 낮다.[447] 6월 9~11일, 6월 19~21일[448] 단, 6월 19~21일은 동쪽 지방 한정[449] 7월 4~5일, 7월 14~16일[450] 단, 7월 14~16일은 최고 기온 한정, 중부지방은 20일까지 해당.[451] 다만 비가 내렸고 7월 특성상 습도가 높아 크게 선선하다는 느낌은 거의 없었다.[452] 8월 10~16일[453] 8월 13일 24.1℃, 8월 14일 22.4℃, 8월 15일 23.3℃, 8월 16일 24.8℃[454] 반대로 서울, 전주, 광주 등 서쪽 지방은 이 기간 내내 31~33℃ 전후의 무더위가 지속되었다.[455] 2010년 9월과 비슷한 양상이다.[456] 9월 30일 8.7℃, 10월 1일 9.6℃, 10월 2일 9.9℃[457] 11월 10일에 기록된 -6.7℃의 경우 11월 10일의 최저 극값이다.[458] 17~20일 제외[459] 1931~1960년 기준 -4.7℃, 1941~1970년 기준 -4.4℃[460] 8~14일, 17~18일 제외. 특히 2~6일, 21~28일. 그 중 5~6일, 24~26일이 저온이 매우 심했다.[461] 그나마 서울은 2월 상순 최저 기온이 -15.9℃에 그쳤지만, 당시 도시 규모가 작아서 열섬 현상이 없었던 기타 중부 지방(수원, 청주, 춘천)은 최저 기온이 -25℃는 가뿐히 밑도는 매우 추운 날씨를 보였으며 열거한 세 지역 모두 역대 최저 기온 1위를 찍었다. 다만 수원이나 청주, 춘천은 모두 기상 관측이 1960년대에 시작되어 서울에 비하면 한참 늦게 시작되었으므로, 만약 일제강점기에 기상 관측을 했었더라면 이보다도 낮은 최저 기온이 기록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462] 1965년 이후 4년 만에 4월 상순 영하권 기록.[463] 1931~1960 기준으로 하면 비슷하지만 1941~1970 기준으로 하면 다소 낮다.[464] 서울 기준 최고 기온 극값은 8월 17일의 32.9℃로, 단 0.1℃ 차이로 폭염일수가 기록되지 않았다. 비슷한 사례로 2022년 8월에도 8월 4일에 똑같이 폭염 기준에 0.1℃ 못 미치는 32.9℃가 최고 극값으로 기록되어 8월 폭염일수가 없었다.[465] 단 7월의 경우는 1969년에는 7월 8일에 최고기온 19.1℃, 7월 16일에도 23.4℃에 그치는 등 몇몇 날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저온을 보였으나, 2022년에는 정반대로 7월 상순과 하순에 심한 이상 고온이 기승을 부렸던 것이 대조된다.[466] 정확히는 10월 13일까지. 특히 9월 30일~10월 5일, 10월 9~12일[467] 이해 1월 5일에 -20.2℃를 기록한 이후 서울 공식 기상 관측소 기준으로 -20℃ 이하의 기온이 더 이상 기록되지 않고 있다. 다만 이는 서울 도심의 열섬 현상이 심화된 것이 주요한 원인으로, 열섬 현상이 비교적 덜한 도심 외곽 김포국제공항 일대의 경우 2020년대까지도 여전히 AWS로 -20℃ 안팎의 기온이 기록되고 있다. 다만 이는 공식 기상관측소에서 측정되는 기온이 아니라서 비공식 기록이다.[468] 27~30일 제외[469] 물론 4월 8일에 0.8℃, 4월 14일에 1.0℃ 등을 기록하는 등 몇몇 날에 꽃샘추위는 있었다.[470] 하순 평균이 3.9℃를 기록했다. 3월 하순 특성상 아무리 강한 한파가 와도 초중순보다는 높아질 수밖에 없어서 잘해야 역대 3월 하순 최하위인 1922년과 비슷한 1.3℃ 정도를 기록할 것이다.[471] 반대로 서울, 전주 등 서쪽 지방은 이상 저온 현상 없이 대체로 평범한 날씨가 이어졌다.[472] 이상 고온은 없어 서울에서는 평균기온이 23.0°C였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7월 폭염일수가 기록되지 않았다. 단 8월에는 폭염일수가 기록되었다.[473] 특히 8월 12일에는 35.0℃를 기록하여 1970년에서 유일하게 폭염경보일수가 기록되었다.[474] 단 최저 기온은 22.8℃로 평년과 비슷한 정도여서 일교차가 1.5℃로 매우 적었다.[475] 물론 현대(1991~2020) 평년보다는 0.2℃ 낮다.[476] 1~4일, 8~9일, 13일, 17~21일, 26일 제외. 특히 11일, 14~15일, 22~24일, 28~30일. 그 중 15일, 22~23일, 29~30일은 1912년 11월에 맞먹을 정도로 저온이 매우 심했다.[477] 참고로 이 -11.2℃라는 값은 12월 최저 극값인데, 지난달의 최저 극값보다 높다는 것이다! 보통 12월 최저 극값이 11월 최저 극값보다 높은 경우는 드물다.[478] 여담으로 지난해에도 동일하게 12월 27일에 12월 최저 극값이 기록되었는데, 그 값과 비교하더라도 3.7℃나 높은 것이다.[479] 1월 29일 -11.8℃, 1월 30일 -11.0℃[480] 10월 1일, 9~10일, 16~21일, 30~31일 제외. 특히 6~7일, 11~13일, 23~26일.[481] 10월 9일 기록[482]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면 11월 옆에 28~30일이라는 기간이 굳이 작성됐음을 주목해야 한다. 1971년 11월 중 저 사흘의 기간 빼고는 영하는 커녕 1℃선도 안 내려갈만큼 따뜻한 날씨가 뒤늦게까지 이어졌다.[483] 그 외에 구한말 1890년 11월의 양상과 100% 일치한다. 27일까지 1℃선도 없는 날씨가 이어지다가 28~30일에 한기가 기록되고, 29일에 -8.4℃까지 내려갔기 때문. 다만 이쪽은 인천해관에서 기록되었다는 게 유일한 차이점이다. 이 때문에 1971년 11월(8.7℃)과 1890년 11월의 월평균 차이가 거의 없다시피할 것으로 추정.[484] 1월 22일과 1월 27일 기록[485] 이마저도 1월 하순에 기록된 것이며, 상순~중순 동안에는 최저 기온이 1월 3일에 기록된 -6.5℃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어 마치 2020년 1월을 연상케 했다.[486] 2월 20일 기록[487] 2006년 7월, 2016년 9월, 2018년 6월과 같다.[488] 이는 10월 중순에 해당하는 날씨이다. 8월 19일이 아니라 10월 19일 수준이다[489] 특히 하순. 단 2~5일, 9~15일은 제외.[490] 실제 기록상 11월 21일에 일평균 기온마저 -4.7℃까지 떨어졌고, 전날에 비해 기온이 17.5℃씩이나 하강했다. 고혈압이 악화되는 원인 중 하나가 급격히 한랭해지는 날씨 때문임을 생각해보면, 인터넷에 떠도는 밈 치고는 의미심장해지는 이야기이다.[491] 12월 1~3일, 12월 12~13일[492] 1월 2일 -11.0℃, 1월 3일 -11.3℃[493] 이는 2012년과도 비슷하다. 이 해 역시 11~12월에 상당히 강한 한파가 있었다.[494] 1941~1970년 기준 -4.2℃[495] 3~6일, 14~19일 제외. 특히 9~12일, 23~28일.[496] 이는 6년 뒤인 1980년, 32년 뒤인 2006년, 46년 뒤인 2020년에 또 일어났다.[497] 7월 20일의 27.3℃︎가 최고 극값이었다.[498] 이는 2021년 3월 서울의 월평균기온보다도 낮다.[499] 이 정도면 4월 평균 기온과 맞먹는 기록이다.[500] 12월 3일 기록[501] 특히 가을의 고온이 심해 역대 1위이다.[502] 5월 3~5일, 5월 13일, 5월 18~19일, 5월 31일[503] 그리고 2021년도 1976년처럼 성탄절 전후로 한파가 들이닥쳤다. 물론 위세는 서로 비교해봤자 2021년만 처참해진다. 1976년은 지역에 따라 아예 1917년 성탄절의 추위를 비웃을만큼 강력했기 때문이다.[504] 5월 2일 10.0℃, 5월 10일 10.8℃[505] 일평균 기온은[506] 특히 1~4일[507] [[5월 29일[508] 이와 같은 현상은 24년 뒤에도 똑같이 재현되었다. 1999년 22.0℃로 역대 최고 2위, 2000년 19.5℃.[509] 물론 0.4℃라고 해도 현재 기준으로도 0.2℃ 높으며 당시 기준으로는 고온이기는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이상 고온을 보인 기간(12월 1~24일, 총 24일)이 한파에 시달린 기간(12월 25~31일, 총 7일)보다 길어서 그런 것일 뿐, 하순의 한파만 놓고 보면 어지간한 일제강점기급의 12월 한파이다.[510] 월평균 기온은 2011년 1월(-7.2℃)이 조금 더 낮다.[511] 다만 이달 최저 기온 극값은 1월 29일의 -15.8℃에 불과했지만 상순과 중순, 하순 모두 -10℃ 이하를 기록한 날이 잦았다. 1월 1일 -13.6℃, 1월 2일 -15.2℃, 1월 3일 -15.1℃, 1월 4일 -15.7℃, 1월 5일 -10.6℃, 1월 6일 -12.0℃, 1월 13일 -13.0℃, 1월 14일 -12.9℃, 1월 27일 -12.6℃, 1월 28일 -14.4℃, 1월 30일 -15.0℃, 1월 31일 -15.0℃로 월 전체에서 거의 절반에 가까운 13일이 최저 기온 -10℃ 이하였다.[512] 1월까지 포함해도 역대 최저 5위(비공식 기록 포함시 역대 최저 6위)이다. 부산에서 이보다 더 낮은 기온은 1915년 1월 13일 -14.0°C, (1900년 1월 26일 -13.3°C), 2011년 1월 16일 -12.8°C, 1917년 1월 8일 -12.7°C, 1915년 1월 14일 -12.7°C 뿐이다.[513] 현대 기준으로는 약간 낮지만, 심한 저온은 아니다.[514] 1978년 3월 1일에 -8.2℃까지 내려갔으나 -10℃선을 넘보긴 역부족이었고, 이후로는 온난해짐에 따라 더 이상 불가능해졌으므로 생략.[515] 가장 낮았던 날은 8월 14일의 17.1℃이며, 월 전체에서 최저 기온 20℃ 이하를 기록한 날도 11일이나 된다. 8월 6일 19.2℃, 8월 12일 18.8℃, 8월 13일 18.3℃, 8월 18일 19.5℃, 8월 19일 19.5℃, 8월 21일 19.9℃, 8월 23일 19.4℃, 8월 26일 19.1℃, 8월 27일 18.1℃, 8월 28일 19.1℃.[516] 1월 9~10일, 1월 15~17일, 1월 21~22일, 1월 29~31일[517] 2019년 5월도 최저 기온은 평년이나 조금 높은 수준이고 이는 비가 많이 내려서 일교차가 작았던 2020년 5월보다 약간 낮았지만 월평균 최고 기온은 1위를 달성했다.[518] 특히 11월 12~14일[519] 역대 최저 기온 극값으로도 11월 26일에야 -10.2℃로 다시 두자릿수를 기록할 정도였고, 그마저도 11월 14일보다 높았다. 이말인즉, 어지간한 일제 시절 한파도 울고 갈 정도로 대단한 한파가 일찍 방문한 셈인데, 동일한 강도로 보름 늦게 왔으면 절대 -11.1℃로 안 끝났을 것이다. 1922년 3월 25일과 쌍벽을 이루고 있다.[520] 과장이나 농담이 아니라 공식 기록에 이렇게 나와 있다. 인천은 해안 특유의 환경 때문에 최저기온이 미세하게 높은 게 일반적임에도 서울보다 1℃나 더 낮았다고 한다.[521] 특히 1980~1981년 겨울과, 1983~1984년 겨울, 1985~1986년 겨울[522] 1941~1970년 기준 -4.2℃︎[523] 강릉은 4월 한정[524] 1950 ~ 1979년 평균 대비 1.4℃ 낮았다.[525] 일제강점기에는 1932년, 1939년, 1942년, 1943년처럼 현대에도 무지 덥다고 느낄 수 있는 폭염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해방 이후보다 저온 현상이 많았다. 전국적으로 보면 1993년이 더 시원하다 볼 수 있지만 1980년은 서울특별시 등 수도권에는 1993년보다 더 이상 저온이 심했고 동쪽 지역(특히 강릉)은 오히려 6월이 이상 고온이어서 그렇다.[526] 특히 10월 하순. 그 중 10월 22일, 25~28일, 31일이 저온이 매우 심했다.[527] 1941~1970년 기준 -1.1℃[528] 1월 5일 기록[529] 기온도 기온이거니와, 시기도 3월로 넘어가기 불과 이틀 전이다. 만약 이틀 더 늦게 왔으면 1915년 3월 1일(-14.1℃)을 뛰어넘어 역대 가장 늦은 극한파로 남았을 것이다... 이 -15.6℃가 3월로 옮겨져도 2월 하순의 극값이 크게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기도(1925년 2월 25일, -15.2℃) 하다.[530] 2월 하순이 잦은 고온을 보이는 현대에는 더 이상 경신이 불가능한 기록이다.[531] 3월 7일 제외[532] 4월 2~3일, 4월 16일, 4월 19일[533] 특히 5월 16~20일, 6월 1일[534] 7월 26일 기록[535] 최고 기온도 25.4℃로 낮았다.[536] 9월 13일 11.6℃, 9월 14일 11.6℃, 9월 15일 11.8℃[537] 의외로 11월 상순 최저 기온 극값에서는 4위에 그쳤는데, 1~3위는 순서대로 [[1924년][538] 2위가 1976년 11월, 3위가 2002년 11월이다. 서울의 경우 0.1℃ 차이로 1976년 11월이 1981년보다 낮다. 2002년은 4.0℃.[539] 물론 현대 기준으로는 0.1도 낮다.[540] 특히 1월 12~14일, 1월 28~30일[541] 사사오입 미반영시 -3.5℃로 평년과 완전히 들어맞는다.[542] 1991~2020년 기준으로는 1.6℃ 낮다.[543] 12월 6일 기록[544] 특히 1월 8~11일, 1월 20~22일[545] 특히 2월 9~14일, 2월 18~21일[546] 특히 11월 12~13일, 11월 16~17일, 11월 25~27일[547] 11월 25일 -3.7℃, 11월 26일 -4.2℃, 11월 27일 -4.4℃[548] 1월 26일과 1월 27일 기록[549] 1985년 12월과 극값이 같다![550] 2월 6일 기록[551] 1위는 1980년의 -8.8℃지만 최저 극값은 1984년이 훨씬 낮았다.[552] 1월 29일 기록[553] 9월 7일 기록[554] 2월 14일, 2월 20~25일[555] 2012년, 2017년과 양상이 비슷하며, 12~2월도 2012년, 2017년을 연상시키게 하는 낮은 평균 기온과 강추위가 찾아왔다.[556] 12월 3~5일, 12월 22일, 12월 27~30일 제외[557] 다만 이는 서울 도심의 열섬 현상이 심화된 것이 주요한 원인으로, 열섬 현상이 비교적 덜한 도심 외곽 김포국제공항 일대의 경우 2020년대까지도 여전히 AWS로 -20℃ 안팎의 기온이 기록되고 있다. 다만 이는 공식 기상관측소에서 측정되는 기온이 아니라서 비공식 기록이다.[558] 참고로 2018년 1월은 1월 10~13일과 1월 23~27일에 매우 강한 한파가 찾아왔으나 1월 14~22일의 고온 현상으로 -5℃ 이하는 실패했고, 2021년 1월도 초중순 한파는 매우 강해서 월평균 기온이 매우 낮게 기록되는가 싶었지만, 결국 하순의 2020년 1월을 능가하는 이상 고온으로 깎였다.[559] 또한 2010년대 이후 추위 자체는 잦아졌지만, 주로 한파 겨울이 12월을 중심으로 찾아와서 그런 것 같다. 오히려 2월은 하순 중심으로 고온이 심해졌다.[560] 마지막으로 9월 평균 20℃ 미만을 기록했다. 즉 1986년 9월 이후로는 월평균 기온 20℃ 미만을 기록한 해가 현재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다만 전국(전체) 월평균 기온 기준으로는 1986년 이후에도 19℃대를 기록하는 해가 종종 있었고 2012년에 19.9℃를 기록한 뒤 2013년 이후에야 20℃를 넘는 9월이 나오지 않고 있다.[561] 물론 1990년, 2001년, 2011년, 2016년, 2018년, 2021년, 2023년 1월 및 2012년 2월 등 서울 최저 기온이 -17℃ 전후로 내려가는 강한 한파 겨울도 여전히 찾아오고 있지만 과거에 비하면 빈도가 크게 줄어들었다.[562] 특히 1월 10~14일, 1월 25일[563] 고온도 일부 있었고 평년 수준~약간 저온을 보인 날이 대부분이지만, 강한 저온이 찾아온 날은 기간이 짧을지언정 그 강도가 강했다는 것이다.[564] 7월 중 가장 높았던 날은 7월 20일, 31.2℃였으며 8월 중 가장 높았던 날은 8월 14일, 31.6℃였다.[565] 9월 2일과 9월 3일 기록[566] 즉, 같은 해 5월보다도 극값이 낮았다는 이야기이다.[567] 특히 최저 기온 위주로 보면 더더욱.[568] 1일 제외. 특히 3월 2~4일, 7~8일.[569] 단, 3월 10일은 대관령 등 일부 지역만 해당.[570] 마지막으로 3월 초순에 기록된 영하권 평균값이다. 이후 2011년 3월 상순(0.7℃)이 그나마 낮았으며, 2014년 3월부터 시작된 온난화가 2018년 3월에 이르러 초순까지 영향이 심해진 고로 더이상 불가능해졌다.[571] 정확히는 1988년까지[572] 정확히는 1989년 이후이며, 평년보다 낮은 1993년, 2005년, 2010년~2013년 제외[573] 사실 1990년 1월의 최저 기온 극값 -17.1℃는 일제강점기 기준으로 보면 그저 평범한 수준이고 1950~1980년대 기준으로도 평년보다 조금 낮은 정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에서는 최저 기온 1위에 속하는 값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지구 온난화가 본격화되면서 겨울이 따뜻해지는 현상이 심화된 영향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1990년대는 다른 년대들에 비해 유난히 겨울이 따뜻하고 한파가 힘을 쓰지 못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당장 2000년대만 보더라도 최저 기온 극값이 -18.6℃였고[627] 2010년대에도 -18.0℃[628], 2020년대도 -18.6℃로[629] 1990년대를 제외한 모든 년대가 서울 최저 기온 -18℃ 이하를 기록했는데 1990년대는 -17.1℃에 그쳤으니, 지구 온난화가 더욱 심해진 현대의 기준으로 봐도 유난히 한파가 적고 겨울이 따뜻한 시기였음을 알 수 있다.[574] 이는 2022년과도 유사하다. 11월 상순에 추위가 찾아왔으나 중~하순에 기온이 떨어지지 않은 점.[575] 특히 2월 22~24일[576] 1월 6일 기록[577] 1월 19일 기록[578] 1월 28일 기록[579] 최저 기온 극값의 경우, 1972년 1월과 극값이 같다![580] 10~16일, 18~19일, 21~22일, 25~26일, 28일, 30일, 특히 11~15일. 그 중 12일, 15일은 2020년 4월 22일에 맞먹는다. 26일은 최저기온 한정[581] 정확히는 6월, 9월 모두 20.850°C이며, 마지막으로 6월에 20°C대를 기록한 해이다.[582] 여름이 선선했던 2003년에도 8월 22일에 열대야가 관측된 적이 있다. 2020년이 열대야 없는 여름이 될 뻔 했으나, 8월에는 예보보다 최저 기온이 높게 나오고 최고 기온은 낮게 나오면서 8월에는 가볍게 열대야 기온을 넘겼다.[583] 1~3일, 18~23일 제외[584] 8월 9일 30.5℃, 8월 11일 30.3℃, 8월 12일 30.6℃[585] 결국 서울은 7~8월이 아닌 5월에 연중 최고 기온을 달성하고 만다. 다시 말해 1993년 5월 29일 최고 기온이 31.9℃였는데, 이것이 1993년의 최고 기온 극값이 되어버렸다.[586] 공교롭게도 다음 년도 역시 7월이 8월보다 높았다. 단 압도적으로. 참고로 가장 높은 7월 평균 기온 기록은 1994년의 27.8℃이고, 가장 높은 8월 평균 기온 기록은 2018년의 27.1℃이다.[587] 1912년 7월 25일에 이은 7월 하순 일최저기온 역대 2위.[588] 특히 울산의 경우 2002년 1월 15일의 최고 기온이 19.2℃, 1993년 7월 27일의 최고 기온이 20.9℃로 불과 2℃도 차이나지 않는다.[589] 6~8월을 통틀어 최고 기온 극값이 25.3℃에 불과했고, 6~8월 평균 기온은 각각 15.4℃, 15.4℃, 16.1℃였으며, 월평균 최고 기온마저 6월과 8월의 19.8℃가 최고치이다. 심지어 저 극값도 6월에 기록된 것이고, 한여름인 7~8월 최고 기온 극값은 각각 24.5℃, 24.6℃로 6월보다 더 낮았다.[590] 10월 4~9일, 11~14일, 20일, 28일 제외[591] 그런데 2018년 여름은 최악의 폭염이 와서 8월 평균 기온이 1993년보다 6℃나 높고, 서로 정반대의 성격의 여름이였다.[592] 이 점은 10년 후인 2003년과도 같다. 이해도 여름과 10월에 이상 저온을 보였으나 9월은 평범했고 11월은 이상 고온이었다. 2018년은 여름 자체, 2020년은 6월과 8월이 더웠던 것을 제외하면 하반기 양상이 1993년, 2003년과 흡사하다.[593] 특히 11월 21~24일[594] 1월 19일 기록[595] 4~8일, 19~21일, 31일 제외[596] 특히 1일, 10일, 24~28일[597] 4월 7~8일, 13~15일, 17~18일, 27~30일, 5월 1~2일, 8~9일, 12일, 16~19일, 23~24일 제외[598] 단, 서울은 17.1℃로 평년보다 조금만 낮았다.[599] 이 정도면 서울의 4월 평균 기온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다.[600] 그러나 평창 대관령면은 기상 관측이 1971년이 되어서야 시작되었으므로, 일제강점기처럼 저온 현상이 훨씬 심했던 시절에는 이보다도 낮은 월평균 기온을 기록한 적이 있었을 것이다.[601] 1~2일, 22~24일, 30일 제외[602] 당시 기준으로 평년보다 0.6℃ 낮은데, 9월이 원래 편차가 적은 달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평년보다 낮은게 확실하다.[603] 수도권 제외[604] 25~29일 제외, 최고기온은 5일, 8일, 23~24일도 제외[605] 특히 4월 1~4일, 10~12일, 17~21일.[606] 그나마 이것도 하순 일부의 고온 덕분에 간신히 두자리수를 시킨 것이다. 그 고온마저 없었다면 한자리수를 기록했으며 그 기간마저도 저온이면 8도대도 바라볼수 있었다.[607] 일별 평균 기온 중앙값(median)은[608] 전날 30.5℃에서 무려 12℃ 가량 하락했다.[609] 21~22일 제외. 특히 25~28일. 그 중 26~27일이 저온이 매우 심했다.[610] 당장 하순의 저온을 제외시키고 8월 초중순(1~20일)까지의 평균 기온을 계산해보면 무려 27.96℃로 2013년 8월보다 높고 그 유명한 2016년 8월과 거의 동급 수준으로 매우 더웠다.[611] 물론 현대(1991~2020) 평년과 비교하면 0.1℃ 낮은 수치이긴 하다.[612] 1월 10~13일, 16~17일, 26~27일 제외. 특히 1월 21~23일.[613] 이는 (서울 기준) 많은 일조량을 기록하여 역대 2위를 달성한 2019년 5월의 일조 시간 314시간의 55% 수준이며 2019년에는 이상 고온까지 덤으로 찾아왔다. 참고로 5월 일조량 역대 1위는 1947년의 315시간이다.[614] 10월 1~3일, 10월 17~23일 제외[615] 이해 9월 상순이 엄청나게 더웠기 때문에, 며칠 만에 크게 떨어진 기온으로 체감상으로는 엄청나게 추웠을 것이다.[616] 9~10일 제외. 특히 2~5일.[617] 특히 27일.[618] 이는 2020년 7월과도 비슷한데, 실제로도 각 월별 순위에서 2020년 7월과 1998년 8월이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1951년~1953년 여름까지 합산할 시에는 아예 둘다 81위이다.[619] 4월 20일 32.1℃. 하순도 아닌 중순에 연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는 점이 놀랍다.[620] 9월 12일 32.8℃. 상순도 아닌 중순에 연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는 점이 놀랍다.[621] 하필 이 당시 기온이 급격히 내려간 11월 18일에 1999년도 수능이 있던지라 진짜로 수능 한파가 불어닥쳤었다.[622] 반대로 2017년에는 12월 이후 강력한 한파가 찾아와 다음 해 2월까지 길게 이어졌다.[623] 이런 점은 전년도 3월과 어느 정도 비슷하다. 하순에 뜬금없는 꽃샘추위, 이런 꽃샘추위를 능청스럽게 부정하는 월평균 기온 등등... 비슷한 사례를 2월에서 찾아보자면 2021년 2월이 비슷하다.[624] 특히 남해군[625] 10월 16일 최고 기온은 2021년 10월 16~17일보다 낮았고 10월 17일 최저 기온은 2021년보다 0.2℃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