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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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국성{{{#!wiki style="margin: -15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250><tablebordercolor=#fbe673> 密陽 朴氏 (密城 朴氏) 밀양 박씨 (밀성 박씨) | }}} | |
관향 | <colbgcolor=#fff,#191919>경상남도 밀양시 | ||
원시조 | 혁거세 거서간 | ||
비조 | 경명왕 박승영(朴昇英) | ||
시조 | 밀성대군 박언침(朴彦忱) | ||
파시조 | 박언부(朴彦孚), 박언상(朴彦祥), 박언인(朴彦仁), 박양언(朴良彦), 박천익(朴天翊), 박을재(朴乙材), 박원(朴元), 박척(朴陟), 박원광(朴元光), 박중미(朴中美), 박위(朴威), 박현(朴鉉) 등 | ||
집성촌 | 서울특별시 마포구 부산광역시 수영구 대구광역시 동구·군위군 경기도 성남시·화성시 충청북도 청주시·영동군·충주시 충청남도 천안시·금산군·예산군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전라남도 보성군·장성군·진도군 전라남도 해남군 경상북도 경주시·김천시·상주시 경상북도 영천시·의성군 경상북도 청도군·청송군 경상남도 밀양시·의령군·합천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서귀포시 | ||
인구 | 3,168,084명(2015년) | 국내 2위 | ||
링크 | 신라오릉보존회(박씨대종친회) 밀양박씨규정공파대종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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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상남도 밀양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박씨 인구의 78%를 차지한다. 김해 김씨에 이어 본관별 인구로는 2위다. 이씨 최대 본관인 전주 이씨보다도 많으므로 본관 순위로는 김해 김씨-밀양 박씨-전주 이씨가 된다.2. 역사
[[신라| 신라의 역사 ]]新羅歷史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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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왕조 주요 귀족 | 박씨 왕조 | 석씨 왕조 | 김씨 왕조 성골 | 진골 | 육두품 |
밀양 박씨[1]를 포함한 대부분의 박씨는 신라 건국자인 박혁거세의 후손들이다. 초창기 신라(서라벌) 6촌 백성들의 지도자로 선출된 박혁거세는 신라 시대 내내 신라인들의 시조로 숭상되어 왔다. 훗날 금척 전설이 생기고 김·석씨 왕들이 혁거세를 시조로 여겨 신궁에서 제사 지낸 것은 그것을 뒷받침해주고 있으며, 조선 시대에는 왕실에서 주관하여 세종 때 경주 숭덕전을 세워 이를 이어왔고, 임진왜란 이후엔 박씨 선비들이, 현재엔 오릉보존회 등의 단체들이 해마다 봄, 가을에 모여 혁거세에 대한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고 한다.
박씨는 신라 초기에 7명, 후기에 3명, 총 10명의 국왕을 배출하였다. 박혁거세의 후손은 크게 절대다수인 일성왕계와 소수인 파사왕계로 나뉘는데, 밀양 박씨는 그중 일성왕계로 분류되며 경명왕의 제1왕자인 30세 밀성대군 박언침(密城大君 朴彦忱)을 도시조로 한다. 박언침은 밀양, 반남 박씨들의 공동 시조가 된다.[2]
고려 개국 시점에, 밀성대군이 아버지 경명왕으로부터 분봉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밀양과 경주시 일부 등 영남에 기반을 둔 신라계 유력 호족 중 하나였고, 밀성대군의 아들 박욱이 기인 제도로 삼한벽상공도대장군으로 고려조정에 출사해 개경에 진출했다.
박욱의 7대손 박언부는 고려의 황금기였던 문종 치세에 태사중서령을 역임하고 문하시중에 올라 당시 최충 등과 함께 명재상 반열에 올랐다. 이후, 좌복야 박언인, 밀직부사 박양언, 판도판서 박천익, 삼사좌윤 박을재, 도평의사사사 박언상 등등 고려 역사에서 가장 태평성대에 주요 관직에 후손들이 이름을 올림으로써 이름이 있는 문벌귀족이 되었다.
비록 권신이나 왕비를 배출해 중앙정계에서 강한 권력을 휘두르거나 재상지종가문은 아니었으나, 개경에서 가까운 경기, 패서 일대에 기반을 둔 유력 문벌귀족들에 비해 결코 떨어지는 집안이 아니었다. 중국인의 관점에서 쓴 송나라 책인 고려도경에 이들이 언급될 정도로 영남 기반의 실력이 있는 문벌귀족 집안이었다.
특히 신라 말엽부터 경주 땅은 박씨의 영향력이 강했다고 볼 수 있는데, 실제로 신라 말기의 영토가 경주 일대로 축소되어 김씨들의 기반이 거의 날아갔는지 이 시점부터 박씨 왕들이 새로 나오기 시작했고, 김현승의 김씨 복위반란으로 경주 안에서 시가전이 일어났지만 박씨인 경명왕이 이를 진압해서 지배력을 확고히 할 수 있었던 것이 결정적 근거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박씨 왕들의 무덤이 몰려 있는 경주 남산 서쪽면 배동 일대에 경애왕릉, 배동 삼릉, 오릉, 박씨의 성지인 나정과 경애왕이 피살당한 제사용 연회공간인 포석정 등 박씨와 역사적 연관성이 높은 유적들이 대거 몰려있는 것으로 보아 이쪽 구역이 박씨와 특별히 연관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3]
대몽항쟁 이후, 고려 정부가 원나라의 식민통치를 받아들였을 때 전라도 진도군에서 삼별초의 난이 일어나자, 경상도 밀성군(현재의 밀양) 군민들이 고을 부사를 죽이고 인근의 청도군까지 세력을 넓힌 후 삼별초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건이 벌어진다. 현재 학계에서는 이때 밀양 박씨가 그 배후세력의 핵심에 있었던 것으로 본다. 당장 드러난 주동자 5명(박평, 박공, 계년, 방보, 박경순) 중 3명이 박씨다. 삼별초는 진압되고 이후 밀성은 반역의 땅으로 낙인되어 귀화부곡(歸化部曲), 즉 천민들이 사는 땅으로 바뀐다.[4] 이 흔적은 현재도 지명으로 남아있는데 바로 밀양 바로 서쪽의 창녕군 부곡면, 즉 부곡하와이가 그것이다. 이후 복권되지만, 군이 현이 되고 다시 군이 되는 등 원간섭기에 꽤나 수난을 겪는다. 그런 와중에도 오히려 밀양 박씨는 권문세족들이 강성하던 사이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인재들을 배출했고, 절묘하게도 반원자주를 국가정책으로 밀었던 공민왕 시기에 정점에 달했다.
이 시기의 주요 인물로는 충렬왕 때 급제한 후 내부시승에 임명된 충헌공 박척, 판전교사사로 봉해지고 원나라로부터 문하찬성사로 증직받은 박원, 전법판서 박천명, 사헌부 규정 박현[5], 대제학 박중미, 박광후, 박윤겸, 공민왕 때 장원급제한 성균관대사성 박의중, 고려군 1만 명을 이끌고 왜구의 전초기지인 대마도를 정벌한 박위, 공민왕 때 문하시중을 지낸 박득중, 고려 때 호조전서였으나 조선 개국 후 두문동 전설에서 죽었다는 박침, 박침의 아들로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고 참찬의정부사에 제수되었으며 세종에게 딸을 후궁으로 시집보낸 박강생 등이 있다.
고려 말 정국군파 파시조 박위가 대마도를 정벌할 때는 군사 1만 명과 전함 100척을 동원했는데, 기록상 고려 중앙군이 긴 전란으로 궤멸되고 다른 신흥무인들이 정벌을 주저할 때, 박위와 박천[6] 등 개인 사병들이 주축이 되어 먼저 출항하고 여러 다른 신흥무인들의 합세를 나중에 받은 것으로 보아 당시 밀양 박씨가 고려 내 크고 작은 신흥무인들 사이에서 구심점이 되어 세력을 이룰 정도의 경제, 군사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주목할 만한 점은 정벌 이후 류큐의 오키나와 왕국이 고려에 신하가 되려고 특산물 등 조공을 보냈다는 것이다. 조선 개국 이후에도 조공을 바쳤으며 이 시기부터 조선과 오키나와는 교류하기 시작했고, 낙후되어 있던 오키나와의 문화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다. 이들은 임진왜란 이후 규슈 다이묘였던 시마즈 가문의 정복으로 일본 영토가 되기 전까지 200여 년간 조선과 교류한다.
한편 고려 말 당시에 규슈 지방 토착 봉건 영주들이 정벌 얼마 후 사신을 보내 고려에 저자세를 취하며 접근해 왔으며 1390년엔 규슈절도사가 조공을 바쳤던 기록이 있고, 1391년엔 규슈에서 고려인 포로들을 돌려보내는 등 성과들을 거두었다. 이들은 일본 남조 잔여세력으로 규슈는 고려 말 왜구의 발흥과 직접 연관있는 아지트였다. 이들은 꽤나 무장한 정규군이면서도 교토 인근까지도 약탈하는 등 자국내에서도 상당히 악명 높은 해적이었는데, 일단 머리를 숙여온 것이다. 이 시기 대마도 정벌은 확실히 밀양 박씨의 공이 크다.
고려 말 규정공파 박현의 후손들이 조선조에 유학에서 두각을 드러내면서 가장 많은 문과 급제자를 배출했고 현재 각파별 인구면에서도 가장 많다.
밀양 박씨는 조선 개국 이후 518년을 통틀어 문과 급제자가 261명, 무과 급제자 1125명, 상신(相臣) 1명, 대제학(大提學, 문형) 2명, 청백리(淸白吏) 2명, 공신 6명, 생원진사 756명을 배출하는 등 대단한 가문적 행보를 선보였다. 260명을 넘는 문과 급제자 숫자에 비해 정승은 광해군 때 숙민공 박승종(영의정)[7] 한 명뿐이다.
밀양 박씨 집성촌은 경주 이씨와 마찬가지로 대체로 경상도·전라도·충청도에 포진되어 있으며, 특히 부산광역시나 전라남도 여수시, 목포시나 전라북도 군산시 부근으로 갈수록 전체 인구에서 밀양 박씨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진다. # 다른 본관에 비해 집성촌이 남한 지역에 편중되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이북 지역에도 집성촌이 많은 전주 이씨나 경주 김씨와 대비된다.
현대의 인물 중에서는 두산그룹 일가[8]와 포스코의 창업자인 박태준 등이 밀양 박씨이다.
3. 항렬[9]
항렬의 폭이 굉장히 넓은 밀양 박씨의 경우 동 연령대지만 항렬이 10세손 이상 차이나는 경우가 의외로 흔하다. 동 연령대에서 복야공파나 은산군파에 속하는 사람은 규정공파나 양산군파에 속하는 사람에 비해 항렬이 훨씬 높다. 복야공파나 은산군파 계열은 현재 시조 61~64세손에 포진해 있는데, 규정공파 기준 해당 항렬이면 최소 조선 정조 시대까지 올라가야 한다.3.1. 규정공파[10]
<rowcolor=#ece5b6> 세수(파시조) | 세수(시조) | 항렬자 |
20世 | 64世 | <colbgcolor=#ffffff,#222>재(載)○|기(基)○ |
21世 | 65世 | ○진(鎭)|○수(銖) |
22世 | 66世 | 준(準)○|영(永)○ |
23世 | 67世 | ○래(來)|○화(和) |
24世 | 68世 | 노(魯)○|성(性)○|병(炳)○|희(熙)○ |
25世 | 69世 | ○규(圭)|○신(信)|○재(在) |
26世 | 70世 | 종(鍾)○|상(商)○|용(鏞)○ |
27世 | 71世 | ○순(淳)|○수(洙)|○호(浩)|○원(源) |
28世 | 72世 | 상(相)○|주(柱)○|인(仁)○ |
29世 | 73世 | ○열(烈)|○용(容)|○희(熙) |
30世 | 74世 | 중(重)○|시(時)○|준(埈)○ |
- 파조는 밀성대군 16세손, 시조 45세손인 규정공 박현. 밀양 박씨 중에서 규모가 큰 분파 중 하나로, 숙민공파, 돈와공파 등 밀양 박씨 중에서도 많은 지파를 가지고 있다.
- 주로 경상남도와 전라도 지역에 비교적으로 많이 분포하는 밀양공파와는 달리, 규정공파는 전국 각 지역에 고루고루 분포한다. 주로 혁거세 68세손부터 74세손 사이에 많은 인구가 있다.
3.2. 판서공파
<rowcolor=#ece5b6> 세수(파시조) | 세수(시조) | 항렬자 |
26世 | 67世 | <colbgcolor=#ffffff,#222>수(壽)○|○희(羲)|상(尙)○|기(基)○ |
27世 | 68世 | 선(善)○|○현(鉉)|석(錫)○|○한(漢) |
28世 | 69世 | 영(永)○|○수(洙)|택(澤)○|주(柱)○ |
29世 | 70世 | 식(植)○|근(根)○|환(桓)○|○연(然) |
30世 | 71世 | 엽(燁)○|유(裕)○|변(變)○|훈(勳)○ |
31世 | 72世 | 희(喜)○|○곤(坤)|재(宰)○|길(吉)○ |
- 파조는 혁거세 46세손(밀양대군 17세손)인 전법판서 박밀양.[M] 충헌공파에서 분파했다. 밀양 박씨는 모든 지역에 골고루 잘 분포해있지만 판서공파는 주로 경상남도와 전라도 지역에 비교적으로 많이 분포한다. 판서공파의 유명인으로는 박근형, 영탁, 박유천 등이 있다. 주로 혁거세 67세손부터 72세손까지가 많다고 한다.
3.3. 정언공파
<rowcolor=#ece5b6> 세수(파시조) | 세수(시조) | 항렬자 |
23世 | 64世 | <colbgcolor=#ffffff,#222>병 [○秉] |
24世 | 65世 | 용[容○] |
25世 | 66世 | 원[○遠] |
26世 | 67世 | 상[商○] |
27世 | 68世 | 준[○濬] |
28世 | 69世 | 주[柱○] |
29世 | 70世 | 연[○然] |
30世 | 71世 | 종[種○] |
31世 | 72世 | 용[○鏞] |
32世 | 73世 | 해[海○] |
33世 | 74世 | 직[○稙] |
34世 | 75世 | 사[思○] |
35世 | 76世 | 성[○城] |
36世 | 77世 | 기[冀○] |
37世 | 78世 | 봉[○鳳] |
38世 | 79世 | 정[汀○] |
39世 | 80世 | 래[○來] |
40世 | 81世 | 형[炯○] |
41世 | 82世 | 배[○培] |
42世 | 83世 | 만[鏋○] |
3.4. 복야공파
<rowcolor=#ece5b6> 세수(파시조) | 세수(시조) | 항렬자 |
22世 | 58世 | <colbgcolor=#ffffff,#222>○흠(欽) |
23世 | 59世 | ○호(浩) |
24世 | 60世 | 내(來)○ |
25世 | 61世 | ○하(夏) |
26世 | 62世 | 희(喜)○ |
27世 | 63世 | ○용(用) |
28世 | 64世 | ○범(範)[14] |
29世 | 65世 | 병(昞)○ |
30世 | 66世 | ○정(正) |
31世 | 67世 | 의(義)○ |
32世 | 68世 | ○기(紀) |
33世 | 69世 | 용(鏞)○ |
34世 | 70世 | ○재(宰) |
35世 | 71世 | 종(種)○ |
36世 | 72世 | ○규(揆) |
- 항렬자는 오행상생법을 따르다가 63세부터 천간법을 따른다.
- 항렬이 다른 지파에 비해 높은 편으로, 혁거세 61세손에서 66세손 사이가 많다. 집성촌은 충청북도 영동군을 중심으로 경상북도 김천시, 구미시, 칠곡군, 충청남도 금산군, 전라북도 무주군 등지에 많으며 해당 지역을 벗어나면 굉장히 보기 드물어진다.
- 세종 때 아악을 편찬했던 난계 박연은 단순히 음악가로만의 인물이 아니며 예문관 대제학에 올랐던 문신인데, 그는 고려시대 좌복야 벼슬을 했던 박언인의 후손이므로 좌복야공파의 인물로서 난계공파의 파조이다. 박연의 조부인 대제학 박시용이 고려 후기에 본거지인 밀양을 떠나 처가인 충북 영동에서[15] 세거하게 되었는데, 박시용의 손자인 박연, 박흥생, 박흥거에서 좌복야공파가 각각 난계공파, 국당공파, 이요당공파로 다시 분파된다.
3.5. 아당공파
<rowcolor=#ece5b6> 세수(시조) | 항렬자 |
66世 | <colbgcolor=#ffffff,#222>묵(默)○ |
67世 | ○진(鎭) |
68世 | 해(海)○ |
69世 | ○상(相) |
70世 | 제(濟)○ |
4. 분파
밀양 박씨의 분파는 수없이 많은데, 이를 각 파시조의 가계와 종법상의 순서에 따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파시조 옆의 세수(世數)는 혁거세 거서간의 30세손(29대손)인 밀성대군 박언침(朴彦忱)을 시조로 한다. 진하게 적은 것은 12개의 주요 파의 파시조를 나타낸다.[16] 그런데 영동정공파 파시조 박원광은 밀직부사공파 시조 박양언의 5대손 중 족보에 기록된 유일한 인물이므로, 현대에 밀직부사공파와 영동정공파는 사실상 동일한 집단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밀성부원군파(密城府院君派): 박언부(朴彦孚) - 8세[17]
- 은산군파(銀山君派): 박영균(朴永均) - 14세
- 전객령파(典客令派): 박천경(朴天卿) - 15세
- 아당공파(啞堂公派): 박조(朴調) - 16세
- 행산공파(杏山公派): 박세균(朴世均) - 14세
- 좌상공파(左相公派): 박춘(朴椿) - 14세
- 규정공파(糾正公派): 박현(朴鉉) - 16세
- 간성공파(杆城公派): 박지생(朴祗生) - 규정공 5세
- 호군공파(護軍公派): 박의문(朴疑問) - 규정공 6세
- 절도사공파(節度使公派): 박대손(朴大孫) - 규정공 7세
- 대간공파(大諫公派): 박의영(朴義榮) - 규정공 9세
- 낙촌공파(駱村公派): 박충원(朴忠元) - 규정공 11세
- 숙민공파(肅愍公派): 박승종(朴承宗) - 규정공 14세
- 연안공파(延安公派): 박승조(朴承祖) - 규정공 14세
- 김제공파(金提公派): 박승황(朴承黃) - 규정공 14세
- 부정공파(副正公派): 박안민(朴安民) - 규정공 13세
- 양성공파(陽城公派): 박승안(朴承顔) - 규정공 14세[18]
- 영해공파(寧海公派): 박안국(朴安國) - 규정공 13세
- 별좌공파(別坐公派): 박응현(朴應賢) - 규정공 12세
- 참군공파(參軍公派): 박용현(朴用賢) - 규정공 12세
- 화록공파(華麓公派): 박호현(朴好賢) - 규정공 12세
- 의암공파(義庵公派): 박승근(朴承槿) - 규정공 14세
- 경력공파(經歷公派): 박효원(朴孝元) - 규정공 11세
- 전한공파(典翰公派): 박인원(朴仁元) - 규정공 11세
- 충정공파(忠靖公派): 박숭원(朴崇元) - 규정공 11세
- 여산공파(礪山公派): 박재현(朴齋賢) - 규정공 12세
- 지평공파(持平公派): 박우현(朴友賢) - 규정공 12세
- 송월공파(松月公派): 박호원(朴好元) - 규정공 11세
- 승지공파(承旨公派): 박순원(朴舜元) - 규정공 11세
- 눌재공파(訥齋公派): 박증영(朴增榮) - 규정공 9세
- 문도공파(文度公派): 박훈(朴薰) - 규정공 10세[19]
- 주부공파(主簿公派): 박혜(朴蕙) - 규정공 10세
- 해백공파(海伯公派): 박소영(朴召榮) - 규정공 9세
- 승지공파(承旨公派): 박안영(朴安榮) - 규정공 9세
- 진사공파(進士公派): 박성원(朴誠元) - 규정공 11세
- 별제공파(別提公派): 박경원(朴敬元) - 규정공 11세
- 낙봉공파(駱峰公派): 박근원(朴謹元) - 규정공 11세
- 선곡공파(仙谷公派): 박안현(朴顔賢) - 규정공 12세
- 공간공파(恭簡公派): 박건(朴楗) - 규정공 8세
- 사인공파(舍人公派): 박승약(朴承爚) - 규정공 9세
- 청재공파(淸齋公派): 박심문(朴審問) - 규정공 6세
- 참판공파(參判公派): 박눌생(朴訥生) - 규정공 5세
- 송당공파(松堂公派): 박영(朴英) - 규정공 9세
- 찬성공파(贊成公派): 박신생(朴信生) - 규정공 5세
- 간의공파(諫議公派): 박사인(朴思仁) - 규정공 3세
- 군수공파(郡守公派): 박사민(朴思敏) - 규정공 3세
- 사문진사공파(四門進士公派): 박원(朴元) - 10세
- 밀직부원군파(密直府院君派): 박중미(朴中美) - 15세
- 충헌공파(忠憲公派): 밀성군(密城君) 박척(朴陟) - 13세[20]
- 판서공파(判書公派): 박밀양(朴密陽)[M] - 17세
- 대제학공파(大提學公派): 박대양(朴大陽) - 17세
- 진사공파(進士公派): 박소양(朴紹陽) - 17세
- 정언공파(正言公派): 박삼양(朴三陽) - 17세
- 평간공파(平簡公派): 박거겸(朴居謙)[22] - 22세
- 참찬공파(參贊公派): 박계양(朴啓陽)[23] - 17세
- 장사랑공파(將使郞公派): 박재양(朴載陽) - 17세
- 부마공파(駙馬公派): 박갱(朴賡)[24] - 20세
- 현령공파(縣令公派): 박집(朴緝) - 22세
- 직장공파(直長公派): 박경(朴經) - 22세
- 봉사공파(奉事公派): 박위(朴緯) - 22세
- 첨정공파(僉正公派): 박유(朴維) - 22세
- 주부공파(主簿公派): 박찬(朴纘) - 22세
- 청제공파: 박수 - 22세
- 도평의사공파(都評議事公派): 박언상(朴彦祥) - 8세
- 돈재공파(遯齋公派): 박연생(朴衍生) - 18세
- 백우당공파(栢友堂公派): 박상의(朴尙義, 1538~1621) - 24세
- 정혜공파(貞惠公派): 박수량(朴守良, 1491~1554) - 22세
- 좌복야공파(左僕射公派): 박언인(朴彦仁) - 8세[25]
- 난계공파(蘭溪公派): 박연(朴堧) - 16세
- 국당공파(菊堂公派): 박흥생(朴興生) - 16세
- 이요당공파(二樂堂公派): 박흥거(朴興居) - 16세
- 밀직부사공파(密直副使公派): 박양언(朴良彦) - 13세
- 영동정공파(令同正公派): 박원광(朴元光) - 13세
- 판도판각공파(版圖判閣公派): 박천익(朴天翊) - 8세
- 삼사좌윤공파(三司左尹公派): 박을재(朴乙材) - 8세
- 정국군파(靖國君派): 박위(朴葳) - 15세
- 무은공파(霧隱公派): 박계봉(朴桂鳳, 1596~1651)[26]
5. 인물
- 룬레이
- 마르빈 파르크
- 박가원
- 박강훈
- 박건배
- 박건욱
- 박규리
- 박관용
- 박권상
- 박경
- 박경리(1926)
- 박경리(1990)
- 박경석
- 박경완
- 박경원
- 박경원
- 박경혜
- 박계동
- 박계원
- 박광정
- 박귀수
- 박규상(정치인)
- 박근영
- 박근형
- 박근호
- 박기동
- 박기웅
- 박기춘
- 박남정
- 박나래
- 박노수
- 박노식
- 박노식
- 박대동
- 박대석
- 박대온 (개명 전 박광열)
- 박덕흠
- 박동규
- 박동수
- 박동진
- 박동호
- 박동희
- 박두병
- 박두진
- 박리나
- 박마리아
- 박명수
- 박명환
- 박문수
- 박문일
- 박미선
- 박민경
- 박민규
- 박민균
- 박민식
- 박민주
- 박민정
- 박민혁
- 박맹우
- 박범계
- 박범신
- 박범진
- 박병권
- 박병규(기업인)
- 박병욱
- 박병선
- 박병선
- 박병주
- 박병철
- 박병호
- 박보람
- 박보영
- 박봉환
- 박봉흠
- 박산다라
- 박상조
- 박삼구
- 박상경
- 박상규
- 박상규
- 박상규
- 박상면
- 박상민
- 박상민
- 박상원
- 박상일
- 박상진
- 박상천
- 박상철
- 박상현
- 박상현
- 박상현
- 박서진
- 박서준
- 박선영
- 박성광
- 박성민
- 박성범
- 박성용
- 박성중
- 박성준
- 박성태
- 박성태(1939)
- 박성하
- 박성호
- 박성화(1998)
- 박성훈(1971)
- 박성훈(2002)
- 박세미
- 박세일
- 박세직
- 박세창
- 박소연
- 박소영(1993)
- 박소정(2004)
- 박소진
- 박소희
- 박수근
- 박수애
- 박수진
- 박수영
- 박수홍
- 박순석
- 박순용
- 박슬기
- 박슬기
- 박승태
- 박승영
- 박승진
- 박승호
- 박승환
- 박시균
- 박시영
- 박시은
- 박시춘
- 박신혜
- 박아론
- 박양실
- 박영옥
- 박영준
- 박용래
- 박용만
- 박완규
- 박완수
- 박원숙
- 박원순
- 박원주
- 박원홍
- 박연
- 박연차
- 박영규
- 박영진
- 박영탁
- 박영환
- 박예은
- 박예준
- 박용곤
- 박용만
- 박용성
- 박용오
- 박용우
- 박용만
- 박용하
- 박용호
- 박우진
- 박유나
- 박유천
- 박윤국
- 박은식
- 박은영
- 박은진
- 박은태
- 박은혜
- 박인복
- 박인상
- 박인수
- 박인천
- 박인환
- 박인환
- 박일
- 박일남
- 박일용
- 박일호
- 박임항
- 박재상
- 박재우
- 박재윤
- 박재완
- 박재정
- 박재범
- 박재한(가수)
- 박재찬
- 박정구
- 박정권
- 박정근
- 박정민
- 박정수
- 박정아
- 박정아
- 박정현
- 박정원
- 박조호
- 박종구
- 박종규
- 박종원
- 박종윤
- 박종윤
- 박종웅
- 박종준
- 박종진
- 박종철
- 박종철(법조인)
- 박주현
- 박종화
- 박주미
- 박주선
- 박준각
- 박준경
- 박준규
- 박준금
- 박준서
- 박준오
- 박준혁
- 박준형
- 박준희
- 박중빈
- 박중한
- 박중훈
- 박증환
- 박지선
- 박지성
- 박지성(NCT)
- 박지연
- 박지원(프로미스나인)
- 박지원
- 박지원(2009)
- 박지민
- 박지민(2006)
- 박지헌
- 박지후
- 박진영
- 박진영(GOT7)
- 박진우
- 박진우
- 박진주
- 박진희
- 박차정
- 박찬구
- 박찬열
- 박찬종
- 박찬현
- 박창오
- 박창화
- 박천광
- 박철민
- 박철순
- 박철완
- 박철언
- 박철웅
- 박초롱
- 박초아
- 박춘금
- 박충순
- 박충재
- 케빈박
- 박탐희
- 박태권
- 박태원
- 박태준
- 박태현
- 박태호
- 박태환
- 박하선
- 박한별
- 박한상
- 박한이
- 박한철
- 박화요비
- 박해미
- 박해민
- 박해옥
- 박해일
- 박해진
- 박해충
- 박혜미
- 박현빈
- 박현수
- 박현식
- 박현정
- 박현태
- 박형식
- 박형준
- 박혜원
- 박홍근
- 박화성
- 박효신
- 박효진
- 박흥식
- 박희도
- 박희부
- 박희수(1920)
- 박희순
- 박희태
- 박상연
- 존 앤드루 박 (박성규)
6. 여담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재조명된 성씨인데, 바로 서울특별시는 밀양 박씨에서 해주 오씨로 바뀌고 부산광역시는 해주 오씨에서 밀양 박씨로 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물론 밀양 박씨와 해주 오씨 둘 다 흔한 본관인 만큼 아주 신기한 일은 아니다.일본의 성씨 아라이(新井)는 한국의 박씨들이 유독 통명이나 일본인으로 귀화할 때 이 성을 많이 쓴다. 우물에서 알이 나왔다는 시조 박혁거세의 설화 때문.
[1] 함양 박씨, 순천 박씨, 반남 박씨, 고령 박씨, 영해 박씨 등을 비롯한 대부분의 박씨들은 박혁거세의 후손들이다. 네덜란드인 박연이 귀화한 것은 박씨 본관이 이미 모두 생긴 뒤였다.[2] 1899년 밀양 박씨 측 기록에서 반남 박씨 박응주가 경명왕의 장남 언침의 후손이라며 반남 박씨를 밀양 박씨와 같은 계열로 추정하였지만, 반남 박씨 측은 이를 부정한다. 밀양 박씨 측 기록에는 경명왕의 아들들이 언(彦) 자 항렬을 사용했다는데, 경명왕 당시에는 항렬이라는 개념이 보편적으로 존재하지 않았고, 또한 ‘대군’이라는 당대에는 존재하지 않던 호칭이 사용됐기 때문에 밀양 박씨 측 기록을 후대의 창작으로 보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3] 다른 설로는 신라의 왕실이 박성에 박씨, 석씨, 김씨 씨족이 나뉜 사실상 한 가문이라는 설도 있다. 엄격한 성씨구분이 적용됐을 경우 이는 매우 타당하다. 비슷한 예로 백제와 고구려의 경우 왕실끼리 서로 같은 성이라 여겼지만 기록상 국성이 다르다. 이는 국성이 다르다기 보단 국씨가 다르다 봐야 할 것이다. 2020년대 이후 이 가설이 학계에서 급격히 부상하고 있어 상당히 신뢰성 있는 가설이다.[4] 참고로 고려시대 행정체계는 부, 군, 현, 향, 부곡, 소 순으로 내려간다. 학교에서는 흔히 "향. 소. 부곡이 천민의 동네였다"라고 가르친다.[5] 조선조 밀양 박씨 최다 문과급제자를 배출한 규정공파의 파시조.[6] 구산 박씨의 시조.[7] 선조 때 조정에 출사해 임진왜란 때 광해군을 호종했다. 왜란 후 병조판서에 올라 문란해진 군적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등 그 능력을 증명했다. 붕당은 동인(소북) 소속으로, 밀창부원군으로 봉해지는 등 이이첨, 류희분과 함께 광해군의 삼창(三昌)이라 불릴 정도의 최측근이었다. 손녀는 광해군의 세자빈(며느리)였고 우, 좌, 영의정을 모두 지냈으나 인조반정 당일 전세가 기울자 경기감사였던 장남 박자흥과 함께 자결한다. 둘째 박자응은 유배 후 풀려나 후사를 이었고 이들이 규정공파에서 분적한 정승공파다.[8] 기사에는 부마공파라고 나온다.# 항렬자를 遠에서 原으로 바꿨다고 한다.#[9] 참고[10] 참고[11] 박휘순은 현대 한국남성에게 흔치 않은 '순'이란 글자 때문에 종종 같은 향렬로 오해 받는데 모 프로그램에서 자신은 상주 박씨라고 밝힌 바 있다.[M] 부마공파 파조 박갱의 증조부인데, 박윤문 처 김씨 묘지명 등 각종 묘지명에는 박밀양으로 기재된 반면 『문화 류씨 가정보』 및 『씨족원류』에서는 그를 밀양군 박린(朴僯)이라고 기재했다. [13] 해당 항렬에서 대양의 대제학공파, 소양의 진사공파, 삼양의 정언공파, 계양의 참찬공파, 재양의 장사랑파 등이 분파했다.[14] 일부 문중에서는 범(範)○ 또는 세(世)○ 항렬자를 쓴다.[15] 임진왜란 이전까지만 해도 아들이 처가에 들어가 살고 딸과 사위가 부모의 집을 물려받는 경우가 대다수였다.[16] 선정 기준: 밀양 박씨 규정공후 절도사공파세보 1권 335~6면.[17] 문하시중공파(門下侍中公派)라고도 한다.[18] 박승안의 아버지인 박안명(朴安命)을 파시조로 간주하고 월봉공파(月峰公派)라고 부르기도 한다.[19] 파시조의 호를 따서 강수공파라고도 한다.[20] 고려 충선왕 때 인물로, 밀성군은 작위이고 사후 충헌공의 시호를 받았다. 밀성군파 혹은 척자공파라고도 불린다.[M] [22] 조선전기 지훈련관사, 중추원부사, 판강릉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아버지는 증호조판서 박경빈(朴景斌)이다.[23] 일명 돈지(敦之).[24] 조선 정종의 장녀인 함양옹주와 결혼하여 부마가 됐다.[25] 복야공파라고도 한다.[26] 계보 불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