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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12-19 16:26:22

박용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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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박용래(朴龍來)
본관 밀양 박씨
출생 1925년 음력 1월 14일[1]
충청남도 논산군 강경면 본정[2]
(現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홍교리)
사망 1980년 11월 21일 (향년 55세)
충청남도 대전시 중구 오류동 17-1번지 자택
(現 대전광역시 중구 오류동)
학력 강경공립보통학교[3] (졸업)
강경공립상업학교[4] (졸업)

1. 개요2. 생애3. 주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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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언제나 그의 눈물을 불렀다. 갸륵한 것, 어여쁜 것, 소박한 것, 조촐한 것, 조용한 것, 알뜰한 것, 인간의 손을 안 탄 것, 문명의 때가 아니 묻은 것, 임자가 없는 것, 아무렇게나 버려진 것, 갓 태어난 것, 저절로 묵은 것……. 그러기에 그는 한 떨기의 풀꽃, 한 그루의 다복솔, 고목의 까치둥지, 시래기 삶는 냄새, 오지 굴뚝의 청솔 타는 연기, 보리누름철의 밭종다리 울음, 삘기 배동 오르는 논두렁의 미루나무 호드기 소리, 뒷간 지붕 위의 호박 넝쿨, 심지어는 찔레 덤불에 낀 진딧물까지, 그는 누리의 온갖 생령(生靈)에서 천체의 흔적에 이르도록 사랑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사랑스러운 것들을 만날 적마다 눈시울을 붉히지 않을 때가 없었다."
이문구(李文求, 1941년 6월 17일 ~ 2003년 2월 25일), 《박용래 약전(略傳)|먼바다》(1984)
박용래(朴龍來, 1925년 음력 1월 14일 ~ 1980년 11월 21일)은 대한민국시인이다. 본관밀양(密陽)이다.
아버지는 박원태(朴元泰)이며, 어머니는 김정자(金正子)이다. 1955년 〈현대문학〉 6월호에 박두진의 추천을 받아 시 〈가을의 노래〉를 발표한 뒤, 〈황토길〉·〈땅〉 등으로 추천받아 문단에 등단했다.

2. 생애

1925년 음력 1월 14일(양력 2월 6일) 충청남도 논산군 강경면 본정(現 논산시 강경읍 홍교리)에서 아버지 박원태(朴元泰)와 어머니 김정자(金正子) 사이에서 3남 1녀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위로 박봉래(朴鳳來), 박학래(朴鶴來) 등 형 2명과 누나가 있었다.

강경공립보통학교(現 강경중앙초등학교)를 거쳐 1943년 강경공립상업학교(現 강경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조선은행에 채용되었다. 1944년 대전지점으로 전근했다가 1945년 8.15 광복을 맞아 사임하고, 1946년에는 일본에서 귀국한 김소운(金素雲)을 방문하여 문학을 배웠다.

그 뒤 향토문인들과 '동백시인회(柊柏詩人會)'를 조직하여 동인지 『동백(柊柏)』을 간행하면서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1948년 중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문학 수업을 계속하여 1955년 6월호 『현대문학』에 「가을의 노래」로 박두진(朴斗鎭)의 첫 추천을 받았고, 이듬해 「황토길」·「땅」을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나왔다. 1969년에 한국시인협회가 주관하여 발간한 『오늘의 한국시인선집』 중 하나인 첫 시집 『싸락눈』을 출간하였다.

이어, 한국시인협회 주선으로 1971년에는 한성기(韓性祺)·임강빈(任剛彬)·최원규(崔元圭) 등의 시인과 함께 동인시집 『청와집(靑蛙集)』을 출간하였다. 그의 작품 세계는 전원적·향토적 서정의 세계를 심화, 확대시킨 것이 특징이며 언어의 군더더기를 배제하여 압축의 묘미를 보여주고 있다. 「저녁눈」은 이러한 특성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으로서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

기타 저서로는 시집 『강아지풀』·『백발(百髮)의 꽃대궁』, 유고시집 『먼 바다』(1984)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우리 물빛 사랑이 풀꽃으로 피어나면』(1985)이 있다.

1980년 11월 21일 오후 1시 충청남도 대전시 중구 오류동(現 대전광역시 중구 오류동) 17-1번지 자택에서 심장마비별세했다.

3. 주요 시

늦은 저녁 때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저녁눈」
오동꽃 우러르면 함부로 노한 일 뉘우쳐진다.

잊었던 무덤 생각난다.

검정 치마, 흰 저고리, 옆 가르마, 젊어 죽은 홍래 누이 생각도 난다.

오동꽃 우러르면 담장에 떠는 아슴한 대낮,

발등에 지는 더디고 느린 원뢰.

-「담장」
한때 나는 한 봉지 솜과자였다가

한때 나는 한 봉지 붕어빵였다가

한때 나는 좌판에 던져진 햇살였다가

중국집 처마 및 조롱 속의 새였다가

먼 먼 윤회 끝

이제는 돌아와

오류동의 동전

-「오류동의 동전」
머리가 마늘쪽 같이 생긴 고향의 소녀와
한 여름을 알몸으로 사는 고향의 소년과
같이 낯이 설어도 사랑스러운 들길이 있다

그 길에 아지랑이가 피듯 태양이 타듯
제비가 날듯 길을 따라 물이 흐르듯 그렇게
그렇게

천연히

울타리 밖에도 화초를 심는 마을이 있다
오래오래 잔광이 부신 마을이 있다
밤이면 더 많이 별이 뜨는 마을이 있다

- 「울타리 밖」

[1] 양력 2월 6일.[2] #[3] 현 강경중앙초등학교[4] 김관식 시인과 강경중앙초등학교 및 강경상업고등학교 동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