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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17 03:05:56

히틀러가 되었다/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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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목록
2.1. 독일
2.1.1. 나치당2.1.2. 군부2.1.3. 민간인
2.2. 영국2.3. 프랑스2.4. 이탈리아2.5. 덴마크2.6. 노르웨이2.7. 유고슬라비아 → 세르비아2.8. 스페인2.9. 포르투갈2.10. 터키2.11. 소련2.12. 자유 러시아2.13. 미국2.14. 중국2.15. 일본2.16. 한국2.17. 베트남2.18. 인도네시아2.19. 인도2.20. 에티오피아2.21. 아르헨티나2.22. 쿠바

1. 개요

웹소설 히틀러가 되었다의 등장인물을 설명하는 문서.

2. 목록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2.1. 독일

2.1.1. 나치당

2.1.2. 군부

2.1.3. 민간인

2.2. 영국

2.3. 프랑스

2.4. 이탈리아

2.5. 덴마크

2.6. 노르웨이

2.7. 유고슬라비아 → 세르비아

2.8. 스페인

2.9. 포르투갈

2.10. 터키

2.11. 소련

2.12. 자유 러시아

2.13. 미국

2.14.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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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베트남

2.18. 인도네시아

2.19. 인도

2.20. 에티오피아

2.21. 아르헨티나

2.22. 쿠바



[1] 부산 출신이며 동래구에 거주하고 있고 병역은 육군 병장 만기 전역이다. 작가의 전작인 대영제국의 폐급장교의 주인공과 이름이 똑같다.[2] 죽을 때마다 시간이 더욱 더 뒤로 가는 페널티를 받는다. 처음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였으나 회귀하면서 제1차 세계 대전 복무 중인 시간대까지 밀려나 전장에서 개고생을 한다.[3] 일단 기본적인 연설 능력도 뛰어나긴 한데 실제 연설들을 베껴서 써먹는 짓도 자주 한다. 윈스턴 처칠의 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입니다를 베낀 게 대표적인 예시.[4] 내가 히틀러라니!를 의식했는지 독일에 의해 한국이 해방되면 파시즘 정권이 들어설 확률이 높고, 그렇다고 내버려뒀다가 원 역사처럼 분단되거나 소련에 의해 공산화되는 것은 더더욱 원하지 않기에 한반도 전체가 미국에 의해 해방되어 민주주의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최선으로 생각하고 있다.[5] 본인이 개발한 요리 중 치킨이나 티라미수(퓌러쿠헨)나 컵라면(퓌러누델) 같은 음식들은 인기를 끌었지만, 하와이안 피자나 김치 그라탕 같은 것들은 괴식 취급받았다. 그러나 김치 그라탕은 히틀러가 한식을 즐겼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현대에 와서야 인기를 끌게 되었다.[6] 실제로도 히틀러는 지독한 금연주의자였으며, 본인 주변에서 담배를 못 피우게 하거나 대중교통에서 담배를 금지한 것도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작중에서는 아예 흡연자인 군인에게 포상금과 휴가를 미끼로 금연서약서까지 받아내는 걸 보면 현대 한국인이었을 때도 담배를 매우 싫어한 듯하다.[7] 특히 1929년의 대공황, 일본의 침략 행보와 중국의 비상을 예측하였기 때문에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대공황 발생 이후 세계 곳곳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다만 인터넷이나 인공지능, 화성 탐사 같은 너무 먼 미래 이야기는 터무니없다고 여겨질 거라며 뺐다.[8] 원래는 뒤에서 암암리에 배격하려 했으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편지를 받은 이후 일부러 독일의 여러 주 출신 인물들을 맨 앞 방청객으로 앉힌 후 자신도 오스트리아 출신이고 앞에 앉은 이들도 전부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았지만 우린 모두 독일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며 인종이 아닌 독일인이라는 정체성으로 뭉치자고 연설하여 공식적으로 반유대주의를 배격하였다.[9] 히틀러 입장에서는 그냥 정답지대로 한 것뿐이고 또다시 전쟁을 일으킬 생각은 없었는데 되려 적수들이 히틀러를 안 믿어서 또다시 전쟁을 일으켰고, 히틀러도 어쩔 수 없이 반격해서 승전하고, 그렇게 독일이 또다시 팽창하고, 적수들이 또다시 히틀러를 안 믿어주고...의 반복이 되어버렸다.[10] 다만 영토 확장을 바라는 부하들과 국민들의 눈치를 봐서 벨라루스 서부, 갈리치아까지는 독일의 영토화하기로 했다.[11] 은퇴 선언은 샤를 드골의 하야 연설을 표절했다.[12] 이는 히틀러가 원 역사와 달리 대선에 출마하지 않아서 악감정이 생기지 않은 것 덕분이기도 하다.[13] 정작 원 역사에서는 본인이 돌대가리 밑에서 굴려지다가 자살한 게 개그 포인트다.[14] 사실 히틀러도 핵무기의 사용이 가져올 결과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용을 주저했으나, 상대인 스탈린이 어린아이까지 자폭병으로 전선에 갈아넣으면서까지 발악을 하자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 총대를 매었다. 이에 아인슈타인도 데꿀멍해서는 돌아가는 장면이 압권.[15] 이 소식을 의무병으로 복무하고 있는 원 역사에서 하얀 장미를 이끄는 한스 숄이 듣고는 삼류 소설가가 배은망덕하다고 깐다.[16] 원 역사와 달리 홀로코스트도 없고 공산당과 사민당 외의 정당 해산도 없었기에 비교적 고분고분한 태도로 바뀌었다고.[17] 처칠의 연설 중 가장 유명한 "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인 연설이다.[18] 아예 내레이션에게 정부 호소인 집합소라고 까이는 처지다.[19] 이때 댓글이 압권이다. '그러게 누가 지랬냐?\'라고(...).[20] 이 대답을 들은 히틀러는 하와이안 피자를 대접했던 바돌리오와는 달리 무솔리니에게 티라미수를 대접한다.[21] 이탈리아인들은 자신들의 음식에 마개조를 가하는 걸 싫어하니 이탈리아 정부수반에게 하와이안 피자를 대접하는 건 외교상 결례다. 사실상 능욕. 히틀러에게 아첨을 일삼는 카이텔도 이 접대만큼은 커버를 쳐주지 못했다.[22] 니콜라이 쿠즈네초프, 알렉산드르 노비코프, 콘스탄틴 로코솝스키, 키릴 메레츠코프 등의 장성들과 세르게이 코롤료프, 발렌틴 글루시코, 미하일 얀겔 등의 과학자들.[23] 히틀러도 원래는 이 정도만 요구할 생각이었으나 측근들이 이 영토들은 이미 손에 넣은 것들이니 더 요구할 필요가 있다는 점, 약한 태도를 보였다가는 소련이 전황을 유리하게 해석할 우려가 있다는 점, 그리고 소련의 전쟁 수행능력을 더 깎아야 한다는 점들을 들어 반대하자 생각을 바꿨다.[24] 다만 초반 밀릴 때의 전문을 보면 남러시아 전체를 넘겨줘야 할 거라 생각하긴 했다.[25] 후퇴 금지, 작전 회의에 자기 멋대로 참여하기, 히틀러 벤치마킹한다고 대역을 썼다가 대역이 사망함 등등 세기도 어려울 정도다.[26] 특히 유대인들에 대한 탄압이 더 심해졌는데, 원 역사의 나치 독일이 워낙 유명해서 그렇지 러시아도 유서 깊은 반유대주의 국가인데 여기서는 나치 독일이 유대인에게 호의적인 만큼 반대로 소련의 유대인 탄압이 더 심해져 소련 내의 유대인들은 대부분 유대인 자치주로 강제 이주당하고 반발하는 이들은 처형되거나 굴라그로 보내졌다. 원 역사에서 유대인 자치주로의 이주는 어디까지나 자원 형식으로 이뤄졌고 이주자에게 지원도 해줬던 걸 생각하면 사실상 소련판 홀로코스트로 변모한 셈이다. 그런데 쿨리크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자치주의 유대인들이 이를 틈타 녹우크라이나가 있던 지역에 이스라엘을 건국하고는 하켄크로이츠를 휘두르면서(???) "히틀러 만세!(???)"를 외치면서 격렬하게 저항해댔다. 천하의 히틀러도 이 소식을 듣고는 어이없음에 멘탈이 나가서 뇌정지가 왔을 정도였다.[27] 화력은 T-34와 동급, 기동성은 살짝 우세, 방호력 우세로 전차 자체의 성능은 T-34의 상위 호환이지만 생산성에서는 T-34를 따라오지 못한다는 평을 받는다. 차체 중심이 전면에 쏠려있어 신뢰성도 T-34보다 떨어지는 것은 덤. 거기다 화력도 작중 88mm를 도입하고 있는 독일에 밀린다. 제식명은 T-43으로 변경되었다.[28] 앞의 두 사건과 달리 히틀러의 짓이 아니었는데, 존 에드거 후버가 한 짓이라는 게 암시된다.[29] P-80 슈팅스타, F-84 썬더제트, F-86 세이버, F2H 밴시, F9F 팬서 등.[30] M46 패튼이 차체 장갑 150mm, 주포 190mm, 중량 50t으로 개발되고, 그 외에도 차체 정면 150mm, 포탑 정면 300mm, 측면 200mm, T53 120mm 전차포를 탑재한 M29 중전차, M1 240mm 곡사포를 탑재한 M92 자주포 등이 개발되었다.[31] 루스벨트가 4선까지 가지 못하고 3선 임기 중 사망하여 미국 헌법에 대통령의 3선 금지가 명문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32] 이로 인해 공화당은 듀이(2선)+맥아더(3선)+태프트(2선)로 무려 28년을 집권하게 되었다.[33] 태도가 다른 전범들과 같이 사형을 선고하게 되면 미국의 일방적인 보복으로 보이게 될 점을 우려한 면도 있다.[34] 히로히토가 처형당한 후 일본 각지에서 수천 명이 히로히토를 따라서 자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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