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성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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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 |||
<colbgcolor=#808080><colcolor=#fff> iloveoov 최연성 (崔然星 / Choi Yeon-sung) | |||
출생 | 1983년 11월 5일 ([age(1983-11-05)]세) | ||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191cm, 87kg, AB형 | ||
본관 | 전주 최씨 | ||
병역 | 상근예비역 소집해제 | ||
가족 관계 | 아내 김초롱, 아들 최시우, 2남 1녀 중 둘째 | ||
종교 | 개신교 | ||
ID | iloveoov[1] | ||
소속 | Afreeca Freecs 감독 (2016.11.30~2019.05.25) Afreeca Freecs 단장 (2019.05.25~2019.12.19) Afreeca Freecs 감독 (2019.12.19~2020.11.0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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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족 | 테란 | ||
데뷔 | 2003년 SKT T1 입단 | ||
별명 | 치터 테란, 괴물, 이중이 쵱녀성, 쵱, 쵱코치, 쵱감독 빌드 깎던 노인, 연생이, 머슴, 가츠 테란 | ||
소속 | SKT T1 (2003~2007) SKT T1 플레잉 코치 (2008.10~2011.08) SKT T1 감독 (2013.09~2016.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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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2]한때 이윤열, 홍진호와 같은 게임아이 길드 소속이었다고 알려져 있었으며[3], 랜덤으로 시작했었던 게이머다. 실력은 좋지만 매너는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IS 소속이었던 주훈 감독과 임요환은 이 게이머를 영입하느냐 마느냐로 의견이 엇갈렸으며 임요환은 끝까지 영입해야 한다고 강하게 밀어붙였고, 결국 영입하기로 결정을 내렸는데 처음으로 오프라인에서 만난 주훈 감독과 임요환은 지방에서 올라온 최연성의 순박하고 순진한 모습에 놀랐다고 한다. 심지어 최연성은 감독과 임요환을 처음 만난 그때 피자라는 음식을 처음 먹게 되었다고 한다.[4] 따지고 보면 데뷔를 상당히 늦게 한 편이다. 빠르면 중고등학교, 커트라인이 20세라는 프로게임계에서 이윤열보다 1살 많고, 홍진호보다 1살 적은 83년생임에도 2003년에 데뷔했던 것. 훗날 주훈 감독은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기억나는 선수 첫번째로 최연성을 꼽았는데 엄청나게 성실했기 때문이라 했다. 주훈 감독은 일주일에 하루는 외출 외박을 허용했는데, 최연성은 6개월간 단 두 번만 외출하고 내내 시간을 쏟을 정도로 독하게 연습했다고 한다. 그 두 번조차 부모님이 오셔서 잠깐 저녁식사를 하고 온 게 다였다고 한다.
종족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로 고민하던 때에 홍진호와 연습 경기를 하고 "테란 실력이 가장 괜찮은 것 같다. 테란을 해라"라는 그의 말에 따라 테란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2020년경 유튜브에서 스타 선수들 썰풀이를 진행한 지하성 44층 던전에서 좀더 자세한 썰을 풀었는데, 본래 최연성은 모든 종족을 두루 플레이했으나 게임단 IS 입단을 위한 연습 경기에서 홍진호에게마저 랜덤을 픽하는 패기를 부려서 이를 건방지게 여긴 홍진호가 2경기를 모두 이겨버리고 최연성에게 "꺼져라"를 시전하고 자존심을 꺾은 다음에 주종을 택하라는 조언을 했다고 한다. 결국 최연성은 테란을 선택했고, 아예 전성기 시절에 더블 커맨드 빌드로 홍진호의 인간상성으로 거듭나고 만다.
아마 시절부터 뛰어난 물량으로 유명했으며, "치트키라도 치고 하느냐"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이후 치터 테란이라고 불렸다. 그가 데뷔하기 전부터 임요환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선수가 있다!"고 푸쉬를 해줘서 많은 주목을 받았으며 마치 저그와도 같은 미친 듯한 물량은 그의 상징이 되었고, 데뷔한지 불과 9개월도 안 돼 MSL에서 우승하며[5] '괴물 테란'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심지어는 스타크래프트 리그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압도적이고 강렬한 임팩트를 준 선수가 누구냐라고 묻는다면 십중팔구 최연성을 지목할만큼 그의 등장은 충격적이었다.[6] 이른바 괴물 테란의 탄생이었다.
스타판 망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는 그의 전성기 시절 승률. 특히 04년만 놓고 보면 최연성을 토스로 이긴 선수는 많지 않다. 다전제에서도 박정석, 강민, 박용욱, 전태규까지 모두 패했으며 특히 강민은 커리어 내내 최연성에게 시달렸다. 2005년이 되어서야 박정석, 오영종이 다전제에서 이겼으며 저그도 박성준이 3대2로 이기기 전까진 적수 자체가 없었다. 2003년 후반기부터 2004년까지 최연성은 말 그대로 2001년부터 2002년 초반의 임요환, 2002년부터 2003년 상반기의 이윤열이나 2003~2004년 초반의 강민, 2004~2005년 상반기의 박성준, 2007년의 김택용, 2009년부터 2010년 초반의 이제동, 2010년의 이영호와 비견될 정도의 포스를 보여주었다. 더 중요한 것은 최연성은 임요환, 이윤열, 강민, 박성준, 김택용, 이제동, 이영호와는 다르게 준우승이 전혀 없다. 5번 결승 중 5번 모두 우승이다.[7]
최연성은 물량으로 유명했고 그것이 그의 이미지였지만, 사실은 경기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지략가 타입에 가까운 게이머였다. 흔히 많은 게이머들은 게임을 준비할 때, 강한 상대와 함께 연습하면서 게임 내적으로 안정성을 보완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인다. 최연성의 물량은 일반적으로 일단 초반에 작은 한타를 이겨놓고 그 다음에 멀티를 가져가는 식으로 이루어지는데, 바로 이러한 초반 한타의 장인이 임요환이다.[8] 임요환은 최연성의 최고의 연습 상대가 되어주었고 그의 소속 팀에는 좋은 스파링 파트너가 많았기에[9] 그런 연습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는 연습을 연습생이나 아마추어와도 많이 했다. 아예 압살하는 게임을 하면 실제 게임에서 그렇게 게임을 하게 된다고. 이런 방식으로 최연성은 자신의 빌드를 시험하고, 자신감을 키우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아마추어와 교류를 했고, 실제로 그렇게 알게 된 아마추어들 중 몇 명은 T1에 입단하기도 했다. 또, 빌드를 만드는데 천부적인 기질이 있어 테란이 저그나 프로토스를 상대로 쓸 수 있는 많은 무기를 개발해 많은 테란들이 최연성의 플레이를 벤치마킹한 적도 있다.[10] 게임 외적으로는 상당히 거만한 스타일을 유지했는데, 이는 상대와의 게임을 앞두고 일부러 센 척을 함으로서 심리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실제로 인터뷰나 게임 스타일을 심리전에 이용한다는 개념을 쓴 게이머는 최연성이 최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임요환의 제자를 자처한 덕분에 임요환 팬덤을 등에 업었고, 이는 안티들의 공격에서 큰 실드가 되었다.[11]
이윤열과의 상대 전적 때문에 역대 최고의 농부로 통하며, 존재 자체로 콩을 까는 인물이기도 하다. 테란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홍진호 때문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의미심장한 부분. 자세한 것은 아래 홍진호와 최연성의 커리어 비교 참고.
홍진호 | 최연성 |
온게임넷 스타리그 준우승 2회 |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 2회 |
MSL[12] 준우승 3회 | MSL 우승 3회 |
WCG 준우승 1회 | WCG 우승 1회 |
프로리그 팀 준우승 4회 | 프로리그 팀 우승 4회 |
프로리그 그랜드 파이널(G.P)[13] 준우승 1회 | 프로리그 그랜드 파이널(G.F.) 우승 1회 |
그리고 서로가 결승에서 맞붙은 TG삼보 MSL은 홍진호의 마지막 양대 개인 리그 준우승이자 최연성의 첫 우승이다. 이때 최연성은 3경기 '유보트 혈전'을 포함한 명승부 끝에 감격적인 첫 우승을 기록하게 된다. 다만 자신을 본좌의 자리로 올려 놓는데 어느 정도 역할을 한 사람이 홍진호라는 점을 생각하고 있어서인지 직접적으로 그를 까지는 않는다.
2. 플레이 스타일
'거장' 최연성최연성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말은 뭐니뭐니해도 물량. 후대의 도재욱처럼 당대의 상식을 초월한 무지막지한 물량이 트레이드마크였던 게이머로, 그가 보여줬던 물량은 당대보다 약 3~4년은 지나서야 다른 게이머들에게서도 볼 수 있는 엄청난 수준이었다. 저그도 아닌 테란이, 그것도 이윤열이나 서지훈처럼 손이 빠른 것도 아닌 최연성이 선보인 물량은 당시로서는 불가사의 그 자체였고, 최연성을 상대해야 했던 선수들은 중반 지나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물량과 투닥거리면서 겨우겨우 막고 나면 이미 이를 초월하는 2차 물량과 상대하고, 이를 넘어서면 그보다 더 많은 말도 안 되는 물량 러시에 그만 GG를 치는 것이 주 패턴이었다.
특히 상성 종족에다 유닛의 가성비도 뒤떨어지는 저그는 최연성만 만나면 그야말로 지옥을 맛봐야 했으며[14] 당대 수많은 저그가 최연성만 만나면 그야말로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갔다. 이 시기 저그들이 최연성을 만났을 때의 행보는 참으로 눈물겨웠는데, 무난하게 가면 정립되지 않은 빌드의 차이로 물량에서 쓸려버리고, 초반을 공략하려 하면 최연성의 막강한 수비에 무난히 막히고, 중반 이후 진출 타이밍에 빈집을 시도하면 이미 테란 본진에 대기중인 병력이 진출 병력보다 더 많아서 허무하게 막혀버리고 GG를 쳤다. 그냥 이길 수 없는 상대나 마찬가지였던 셈이었다.
별명이 '괴물'인 것처럼 어마어마한 물량으로 대변되는 게이머지만 사실 순수 피지컬적으로 물량을 무지막지하게 뽑아내는 건 이윤열의 초창기 플레이 방식에 가깝고,[15] 오히려 최연성의 진가는 지능적인 플레이에 있었다. 이 지능이라는 것이 임요환과 같은 전략적이고 변칙적인 플레이가 아닌, 대국적인 판짜기와 이를 뒷받침해주는 효율적인 빌드를 토대로 한 것이라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이다.[16] 그래서 초창기 최연성의 진가를 제대로 파악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고, 전략적인 플레이보다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게이머라는 인식을 받았던 것. 실제로 최연성을 폄하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래퍼토리도 "힘으로 찍어누르는 방법 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였을 정도였다.[17] 해설진들 역시 당시에는 최연성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마치 홍진호의 라바 최적화를 폭풍 러쉬로 퉁쳤듯 그냥 "물량이 많은 괴물/치터 테란"으로만 생각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연성은 드래프트 세대 게이머들이 주로 하는 말인 '개념', '게임이 져있다'와 같은 점을 체계화하여 처음으로 선보인 게이머라 할 수 있다. 가시적인 물량과 컨트롤을 넘어 일꾼을 하나 더 찍느냐 마느냐, 테크를 올리는 순서에 따라 먹고 먹히느냐가 갈리는 치열한 빌드 싸움의 시초가 된 것이다. 이는 이전 세대의 게이머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었는데[18], 이전 테란 본좌였던 임요환, 이윤열이 최연성에게 패한 후 자신의 전성기가 끝났다는 점을 직감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사실 최연성은 빌드를 짜는 것에 매우 탁월한 재능을 보였으며, 상대방과의 수싸움에서도 거의 우위를 점하고 들어가는 철저하게 전략적인 게이머였다. 인터뷰에 따르면 선수 초창기 시절 연습 시간의 70%를 빌드만 짜면서 보냈으며 운영 연습을 하도 안 한 탓에 빌드빨로 다 이긴 경기를 종종 후반 가서 말아먹기도 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곰의 탈을 쓴 여우. 최연성 본인은 양산형이라는 칭호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으며, 사실 최연성이나 그 전에 데뷔했던 올드 게이머들의 세대는 선수마다 자신만의 스타일, 개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양산형이라는 개념이 없었다.[19] 양산형은 2~3년 후인 2007~2008년 사이에 등장한 개념이며, 초창기 양산형 테란들의 교과서가 최연성의 플레이였던 것.[20] 더불어 지금은 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드물었던 심리전을 펼치는 선수였다. 이런 빌드 창출 능력과 심리전은 코치 전업 이후 팀의 후배 테란 정명훈이 수위급 테란으로 발돋움하는데도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전략적인 빌드 운용과 더불어 판짜기 능력이 대단한 수준으로, 사실상 오늘날 모든 게이머들이 중시하는 판짜기의 중요성을 처음 일깨운 선수라고 볼 수 있다. 그외에도 테테전이나 테프전에서 보여주는 자리잡기가 정말 탁월해서 상대는 최연성의 수비 라인을 뚫기 위해 쏟아붓다가 결국 뚫어내지 못하고 GG를 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APM은 평균 300~400 선에 머무는 여타 테란 게이머들과 달리 반해 최연성은 고작 250 안팎이었다. 그럼에도 저그를 그 정도로 때려잡았으니 전략, 수비력에 있어서는 놀라운 수준이다.[21] 즉,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은 머리로 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 게이머였다.
선수 생활 후반까지도 2배럭 1마린 더블 커맨드를 적극적으로 사용했었고,[22] 빌드의 한계로 최연성에게 물량에서부터 밀렸던 당대의 저그들은 최연성을 잡기 위해 초반을 주로 공략하려 시도해 보았지만, SCV 수비에 자신이 있던 최연성은 상대가 9발업으로 달려들더라도 SCV를 동원해 막아낼 경우 테란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걸 판단, 더블 커맨드로 6개월간 저그전 무패를 기록할 정도로 강력함을 자랑했다. 당시 이를 유일하게 뚫을 수 있었던 건 박성준의 레어 테크 저럴 한방이었다.
최연성 경기 운영의 핵심은 최적화된 빌드와 함께 이를 받쳐주는 탁월한 방어 능력. RTS 게임은 특성상 공격보다 방어가 유리한 경우가 많다. 수비 측은 공격 측보다 생산 기지와 전투 지역의 거리가 짧을 수밖에 없고[23] 당연히 병력 충원 속도도 더 빠르다. 또한 심시티를 활용해서 적 병력의 움직임을 제한할 수도 있으며, 정 안 되겠다 싶으면 SCV를 동원해 발악해볼 수도 있다.[24] 또한 테란은 방어에 특화된 종족인데, 가령 SCV는 체력이 60으로 매우 높아 몸빵으로도 쓸만하며 공격력 또한 무시하기엔 아픈 공격이다.[25] 최연성은 이를 극대화시켰는데, 전술했던 더블 커맨드처럼 일명 '배를 쨈'으로써 상대의 공격을 유도한 후 이 공격을 적절한 방어로 막아내며 이득을 취한다.
예) 발업한 저글링 2부대 가량이 공격해왔지만 1벙커와 SCV 비비기로 마린 1, 2기만 잃고 막아냄.
여기서 발생한 이득은 저글링 2부대와 마린 2기를 바꿔준 것, 즉 상대보다 미네랄 500만큼 이득을 본 것이다. 이 이득을 최연성은 커맨드 건설로 회전시킨다. 당장의 이득은 돌아오지 않겠지만 약 5분 후엔 상대와 엄청난 차이를 벌리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러면 상대는 다시 차이를 좁히기 위해서 공격을 오는데, 그걸 또 막아낸 후 커맨드로 회전한다. 이런 회전 수 차례를 통해 얻는 막대한 자원으로 생산 기지 다수를 건설한 후 미칠 듯한 물량으로 승리. 이것이 최연성 승리의 공식이었다. 이는 최연성만의 사기적인 수비 능력 덕택에 가능했다. 나락으로 빠져들던 07시즌에도 사기적인 SCV 디펜스를 선보이며 당시 테테전 최강 이성은을 상대로 파이썬에서 역전승을 한 적도 있다.
또한 상대가 예측하기 힘든 타이밍에 가져가는 몰래멀티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몰래멀티는 성공만 한다면 전황을 뒤집을 수도 있지만 거기에는 그만큼 위험부담이 따른다. 대표적으로 2가지의 경우가 있는데, 멀티 건설 중에 들킴으로써 파괴되어 자원적 손실만 입고 전력의 공백이 생기는 경우와, 멀티를 가져가는 중에 발생하는 전력의 공백기에 들어오는 적의 공격에 방어 라인이 뚫리며 무너지는 경우다. 최연성은 엄청난 수비 능력 덕분에 전력의 공백기를 무난하게 넘길 수 있었고, 만약 중간에 들켜서 파괴되어 생기는 전력의 공백에도 끝끝내 수비하며 버틴 후 모아놓은 한방 병력으로 경기를 뒤집어버리는 플레이가 가능했기 때문에 자신있게 몰래멀티를 할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멀티를 허용하고 만 상대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말도 안 되게 쏟아져 나오는 최연성의 병력에 그냥 밀려버릴 수밖에 없었다.[26]
※ 최연성 경기 요약 1. 앞마당 → 수비 → 멀티 → 수비 → 진출 → 자리 잡기 → 멀티 → 수비 → 그동안 모은 병력으로 압살 2. 몰래멀티 → 수비 → 앞마당 → 수비 → 멀티 → 진출 |
당연하지만 이러한 빌드 연구 없이 똑같이 째는 플레이를 한다고 우위에 설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수비가 뛰어나 공격으로 뚫을 수 없으니 나도 똑같이 배를 불리겠다"는 간단한 발상으로 이길 수 있는 플레이 스타일이었다면 최연성이 2년 가까이 최강의 테란으로 군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당대 최연성에 대해서는 가만히 놔두면 못 이긴다라는 인식이 있었고, 때문에 많은 선수들이 최연성의 수비를 뚫어보려 노력했지만[30][31] 박성준을 제외하면 결과는 안좋았다.[32][33]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는데, 당시 최연성의 기본적인 플레이 스타일은 무턱대고 멀티부터 가져가는 생더블이 아니라 투배럭 더블이다. 즉 어설프게 배를 쨌다가는 중반 시점 들어오는 한방 러시에 게임이 터진다.[34] 설령 컨트롤이 별로일지라도 이길 수밖에 없는 빌드와 타이밍을 만들었으니 질 수가 없었다. 실제로 최연성의 스타일을 완벽하게 파훼하기 시작한 것은 마조작의 3해처리로 대변되는 배째기와 함께 적절한 타이밍에 들어오는 뮤짤 견제였다.[35]
요약하자면 최연성의 스타일은 초반의 자원 이득을 보고 이를 바탕삼아 중반 한방 진출로 게임을 끝내거나, 끝내기 직전까지 가는 것이다. 테란은 유닛들의 가성비가 좋아 타 종족보다 자원을 덜 먹어도 된다. 즉 자원을 비슷하게 먹거나 더 먹으면 거의 무조건 유리한 상황인 것이다. 이런 이점을 임요환은 극단적인 견제를 통해, 이윤열은 견제와 한 박자 빠른 앞마당을 통해, 그리고 최연성은 두세 박자 빠른 앞마당을 통해 최대한 살렸다. 이런 최연성의 스타일에 대해 저그와 토스는 중후반 고급 유닛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모색했고, 여기서 나온 게 디파일러와 아비터의 재발견이다. 여기에 손이 느린 최연성에게는 쥐약과도 같았던 뮤탈짤짤이가 저그들에게 기본 스킬로 장착되었으며, 수비력이 뛰어난 최연성도 지형과 SCV를 통한 비비기가 통하지 않는 뮤짤에는 속수무책이었다. 후반으로 가면 필패나 다름없어진 후기 저그전에서, 서둘러 끝내지 못하도록 휘두르는 무기까지 생긴 신세대 저그들은 최연성에게 대단히 강력한 상성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최연성도 이에 대응해 빠른 발키리나 메카닉 활용 등 다양한 방안을 고안해봤지만, 저그전에서 바이오닉 카드를 이미 제외하고 나오는 테란은 저그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36]
이처럼 저그와 토스가 초반에 같이 배를 불리면서 후반 고급 유닛을 통한 운영법을 들고 나오자 손이 느린 최연성은 거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37] 테란은 고급 유닛의 효용이 없다시피했으며, 유닛들 각각에 특수 기능이 있는지라 컨트롤하기 매우 힘들어서 APM이 200 초중반이었던 최연성에게는 특히나 불리했던 것이다. 그래서 최연성의 전성기가 끝난 시점에서 그의 경기를 보면 중반 타이밍에 끝내려고 시도하다가 그게 막혀서 지는 경기가 허다했다. 특히
초고속 GG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임요환이나 이윤열과는 달리 선수 시절에 관광당한 경기가 별로 없다. 기본기나 임기응변에 의존하는 두 선수와 달리 처음부터 판짜기와 빌드로 승부하기 때문에 지는 경기도 버텨봐야 가망이 없다는 걸 빨리 인지하기 때문으로 보인다.[39][40] 이 때문인지 임요환, 이윤열과는 달리 불리해졌을 때 역전해낸 경기가 별로 없으며[41] 상대전적으로 압도하던 박정석에게 0:2로 밀리자 그대로 셧아웃당하는 등 기세를 잃으면 쉽게 회복하지 못하는 편이다. 이건 사실 판짜기가 기본 스킬이 된 드래프트 세대의 특징이기도 하다. 판을 대국적으로 보니 상황이 얼마나 불리하고 돌이킬 수 있는가 없는가의 여부를 빨리 파악할 수 있어 GG 타이밍도 빨라진 것.[42] 헌데 선수생활 말기에는 GG를 치는 타이밍이 늦어지고 불리한 상황이라도 어떻게든 끌고 가보려는 성향이 강해졌으며 덕분에 이성은,
개인리그 결승전을 2회 이상 진출한 선수 중 김동수와 함께 단 둘뿐인 결승전 무패 기록만 봐도 다전제에서의 판짜기가 뛰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의 전략성과 심리전을 엿볼 수 있는 예로 이영호가 개인방송에서 언급한 바에 따르면[43] 중요한 무대를 앞두고[44] 최연성이 이영호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자기 실력이 최고라 생각하고 자신이 있는 만큼 가장 잘 할 수 있는 걸로 준비했을 거다. 아마 5경기 모두 더블 커맨드만 준비했을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당시 이영호는 진짜로 더블 커맨드만 준비했다면서 자신의 심리를 꿰뚫어본 최연성이 굉장히 인상깊었다고 말했다.[45]
3. 커리어/선수 시절 활약상
유명한 아마추어 고수로 데뷔 당시부터 엄청난 기대를 받으며 등장하였다. 하지만 2003년 2월 치른 데뷔전에서는 박상익에게 완패했고[46], 이후 약 4개월 동안 공식전에는 출전하지 않다가, 같은 해 6월 공식전에 재등장한 후에는 완전한 괴물로 성장해 있는 상태였다.[47] 이 시점부터 연전연승을 달렸으며 결국 데뷔한 지 불과 8개월 만에 TG삼보 MSL에서 이병민, 이윤열, 홍진호를 차례로 다전제에서 꺾고 우승하고 그 뒤로 하나포스 센게임 MSL에서 강민, 이병민, 김정민을 격파하고 결승전에서 이윤열을 이겼다. Spris MSL에서는 박성준을 압살한 뒤 박용욱, 강민 등 프로토스들을 때려잡고 우승하여 MSL 역사상 두 번째 3연패를 달성하게 된다. 또한 최연성은 최초로 단일 리그 결승에서 저그, 테란, 프로토스 3종족의 선수들을 전부 상대해 이겼다.[48]MSL뿐만 아니라 팀 단위 리그인 프로리그에서도 한때 무적 포스였다. KTF EVER Cup 온게임넷 프로리그에서도 8승 1패로 다승왕을 수상하며 동시에 팀도 우승. LG IBM MBC GAME 팀리그 03-04에서도 토스전 6전 전승 포함 13승 2패로 다승왕을 먹었다. 특히 패자 결승전에서 서지훈, 강민, 이재훈, 김환중을 압살하며 슈마 GO를 올킬해버리고 결승전에서는 KTF에게 선봉으로 지명당하고도 변길섭, 박정석, 조용호 포함 선봉 3킬을 했다.[49] 종족 상성도 무시해버리고 상위권 선수들과도 상당한 격의 차이를 보여주는 당시의 포스는 역대 어느 본좌라 불리는 선수보다도 압도적이라고 할 만했는데, 김철민 전 MBC게임 캐스터는 합동방송에서 역대 최고의 포스를 보여준 선수를 최연성으로 꼽았으며 당시의 최연성은 맡겨놓은 트로피 찾아간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개인 리그인 MSL과 팀 단위 리그인 프로리그를 우승한 최연성은 처음으로 진출한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도 우승은 당연해 보였다. 질레트 스타리그 2004 16강에서 강민, 박정석, 이병민을 이긴 뒤 8강에서 전태규를 꺾었고 양대 개인리그 우승과 로얄로더 등극은 당연해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무적 포스를 끝내버린 사람은 바로 박성준. 최연성이 저그전 25연승을 달리고 있을 때 온게임넷 스타리그 4강에서 만났다. 박성준은 이미 최연성에게 상대 전적 0:6 열세로 크게 뒤져 있었지만 4강에서 재회한 박성준은 전혀 다른 인물이 되어 있었다. 임요환, 전상욱, 서지훈 등 저그전 강자를 모조리 이기며 2004년 테란전 승률이 무려 76.7%였다. 결국 여기서 최연성은 2:3로 충격의 패배를 당하며 연승이 끊기고 말았으며 이후 iTV 랭킹전에서 박성준과 재회했는데, 여기서 최연성은 박성준과 6번을 붙어 5번을 패하는 더더욱 충격적인 결과를 받아들게 된다. 최연성은 박성준과의 3전 2선승제로 치러지는 1차 결승전에서 0:2로 완패한 뒤[50], 1개월 후 치러지는 2차 결승전에서도 1:3으로 패배하면서 준우승에 그친다. 이로써 무적을 자랑하던 저그전 포스가 깨진 것은 물론, 절대 본좌의 이미지를 잃게 된다.[51]
하지만 3, 4위전에서 나도현을 이김으로써 차기 시즌 시드 확보에는 성공했고 그 다음날 바로 이어진 프로리그 결승전에서 박영민[52]에게 승리, EVER 스타리그 2004에서는 박태민만 3번 때려잡고 올라간 뒤 이윤열, 박정석을 접전 끝에 이기고[53] 스승인 임요환마저 꺾으며 첫 스타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약 8개월간 승률 5할대 초반에 그치는 등 부진의 늪에 빠지게 되는데 KT Megapass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2승 7패를 당하며 동네북 신세가 되었고[54] EVER 스타리그 2005에서도 이윤열, 박정석을 이겼지만 8강에서 천적 서지훈에게 완패당했고 2005년 상반기에는 이중 계약 사건까지 겹쳐 프로리그에는 출전도 못하는 등 악재가 계속되었고 양박과 이윤열이 전성기를 맞은 삼신의 시대에 최연성은 그저 강자 중 하나로만 남아야 했다.
이후 2005년 후기 프로리그 출전이 가능해지면서 두 차례의 프로리그 결승전에서 2승 포함 8승 2패를 거두며 다시금 활약상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하락했던 경기력도 차츰 되찾아가면서 기존의 본좌 포스는 아니더라도 독보적인 테란 원탑 수준의 기량을 되찾는 데는 성공한다. So1 스타리그 2005 16강에서 홍진호와 장판파 명경기 끝에 승리를 거두면서 포스가 올라오게 됨과 동시에 특히 자신에게 굴욕을 주었던 박성준을 온게임넷 스타리그 8강에서 2:0으로 이기면서 상대 전적 상에서 우위를 되찾았지만 4강에서 오영종에게 막히면서 3위. 차기 리그인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에서는 테란전, 저그전만 계속 치렀고 임요환, 한동욱을 상대로 풀세트 접전 끝에 꺾으며 결승에 진출하여 박성준에게 셧아웃 우승을 거두면서 이전의 굴욕을 말끔히 되갚아주며 응징했다.
그러나 무려 3회 연속 우승을 차지하는 등 자신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던 MSL에서는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당신은 골프왕 MSL 8강에서는 그간 상대전적 3:0으로 앞서고 있던 서지훈에게 8강, 4강에서 두번 만나 모두 패배하고 탈락, 역으로 천적 관계가 됨과 동시에 4회 연속 결승 진출에 실패했고, 우주닷컴 MSL에서는 그간 밥이었던 박정석에게 0:3이라는 충격적인 셧아웃을 당하며 4위에 그쳤다. 다음 대회였던 CYON MSL에서는 자신의 최대천적이자 자신의 무적과도 같았던 저그전이 붕괴하는 단초였던
그리고 이제는 스타리그에서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의 우승 이후 부진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 24강전에서 차재욱에게는 가뿐히 승리했으나, 그간 밥이었던 조용호에게 패배한 뒤 만난 신인
이후에는 강자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전형적인 과정을 밟았으며, 그래도 2006년 말까지는 테란 강자의 위치는 유지할 수 있었으나, 2007년부터는 신인 선수들에 밀려 이전의 본좌 최연성보다는 노장투혼으로서의 이미지가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2007년에는 연패하는 모습과 2007년 MSL 16강에 2번이나 진출하는 등 불태우겠다는 말이 겹쳐 재연성으로도 불리기도 했으며, 그와 함께 팀을 지탱하던 주축 선수들도 대부분 같은 테크를 탄 탓에 T1에 짙은 암흑기를 가져오게 되었다.
다만 이 시절도 토스전 감각만큼은 죽지 않아 여러 기적적인 승리를 보여주었고, 승률 역시 10승 4패. 심지어 이 시기는 송병구가 테란전의 강세로 주가를 올리기 시작했을 시기라 더 돋보인다. 컨트롤빨이 상대적으로 적고 빌드가 중요했기 때문. 07 시즌에도 3-3업 버티고 테란을 들고 나와 토스 맵에서[57] 강민, 이승훈 등을 안드로메다로 보낸 바가 있다.
결국 2007년부터는 경기력이 급속도로 하락하였고 이때 당시 빠르게 변화하는 메타를 따라잡지 못해 끝내 몰락했다. 감각이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어서 자신의 옛 독무대였던 MSL에서는 2007년 내내 본선에서 자리를 지켰고, 프로리그에서도 승률 5할은 찍으며 나름 선방은 했지만, 왕년의 본좌가 가까스로 승률 5할을 찍는 평범한 테란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은 올드 게이머 세대의 몰락과 함께 많은 사람들에게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2008년 곰TV MSL 시즌4 32강에서 권수현에게 1차전에서는 승리했으나 최종전에선 초반부터 뮤탈 반부대 정도에 앞마당이 개털리자 병력이 충분한데도 커맨드를 띄우는 것으로 대응하는 이상한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코앞에 있는 몰래멀티도 확인하지 못하면서 해설진들에게 대놓고 연습 부족이라는 소릴 들었고[58], 나중에 가디언 대부대 관광까지 당하면서 완패를 당했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상 선수로서의 마지막 경기가 되고 말았다. 2009년에 프로리그에서 갑자기 선수로 복귀하긴 했지만, 코치로 전환하기 전 순수 선수로서의 경기는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2007년 말, 샤워 도중 넘어지는 바람에 팔목 부상 악화 및 슬럼프 등으로 인해 은퇴해서 코치로 전향했다. 하지만 은퇴한 뒤 10개월 만에 박용운 감독이 현역으로 복귀시켜 플레잉 코치라는 이중 직업을 가지게 됐다. 이때 T1이 프로리그에서 극악의 부진에 빠져있던 때라...
2008년 5월 24일 미모의 신부와 결혼하였다. 브루드 워 데뷔 이전부터 5년 간의 연애 끝에 결혼했다. 프로게이머로는 두 번째 유부남.[59] 축가는 세팅의 마술사가 불렀다.
2008년 11월 4일까지는 기량이 확실히 예전만 못한 모양인지, 친한 사이인 박지호로부터 "오늘 연습을 SK텔레콤의 최연성 코치랑 했다. 내가 다 혼냈지만 게임 실력은 대단하더라. 연성이 형이 내 연습해주면서도 타이밍이나 빌드 연구를 하더라. 그래서 깜짝 놀랐다. 옛날에는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선수였는데 요즘은 그 정도는 아니었고 솔직히 웃음이 좀 나왔다(웃음). 연습을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와 같은 농담 섞인 평가를 받고 있는 중이다.
플레잉 코치였던 2009년까지만 해도 "이윤열과의 대결은 언제나 환영이며 기대하고 있다"라는 말을 했었지만 완전히 코치로 돌아선 2010년에는 "더이상 재대결에 관심이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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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주요 선수들과의 관계
이윤열과의 관계가 유명한데, 주로 최연성 쪽이 이윤열에게 친한 척을 하는 편. 본인 말에 의하면 아마추어 시절에 테란, 저그, 프로토스[60] 3종족으로 각각 플레이한 아이디를 게임아이 서버 탑 플레이어 10위 안에 집어넣을 정도로 3종족에 모두 뛰어난 모습을 보였으나, 이윤열과 한 번 플레이한 이후로 상성상 밀리는 저그를 하지 않고 테란으로 종족을 바꿨다고 밝혔을 정도로 아마추어 시절부터 이윤열과의 관계는 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 가지 웃긴 것은, 당시 주로 떠돌던 최연성과 이윤열의 리플레이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최연성이 로템에서 이윤열을 저그로 올 멀티 관광보낸(...) 리플레이다.게다가 결정적으로 프로 무대에 올라와서 이윤열을 최고로 많이 괴롭힌 선수가 바로 최연성. 최연성의 전성기 시절 약점은 테란전으로 타 선수들에게 뚜렷한 우위를 점하지는 못하는 편이었는데, 이윤열에게만큼은 상대전적 면에서 1차 은퇴 직전의 전적이 최연성 기준 20승 9패였으며 수많은 고비에서 이윤열을 압도적으로 꺾어버린 적이 많다. TG삼보배 MSL 패자 결승과 센게임배 MSL 결승에서 이윤열을 이겼으며 그 외 수많은 대회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이윤열을 떨어뜨리며 굴욕을 안겨준 바 있다. 그나마 이윤열이 이긴 경기도 대부분이 다전제 세트 경기인지라 실질적으로는 9패가 아닌 2패 정도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혹자들은 저렇게 이윤열을 강하게 의식한 인터뷰가 립 서비스가 아닌가라는 의혹을 품고 있다. 또한 이윤열은 IEF 2006에서 최연성을 꺾고 우승했기 때문에 최연성은 극복했다고 발언했으나 그 다음에 열린 스타리그와 올스타전에서도 지면서 고통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최연성은 당대 최강이었던 이윤열과 처음 맞붙었을 때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마우스가 패드 밖으로 나간 것도 모른 채 플레이를 했을 정도였다고 술회한 바 있다. 후에 센게임 MSL 결승에서 3:2로 이윤열을 꺾고 우승했는데, 최연성이 당시를 회고하길 신인인 자신을 얕잡아 본 이윤열이 당연히 3:0으로 이길 거라 계산해서 3경기까지밖에 준비를 안 했던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물론 이건 최연성의 느낌일 뿐, 이윤열은 당시 결승전을 준비하면서 최연성을 철저히 분석했었다.[61] 분석 결과 최연성은 빠른 멀티를 가져간 뒤 수비 후 많은 물량을 쏟아내는 타입이었고 당시 이윤열은 최연성의 그 빠른 물량이 나오기 전에 끝낼 전략을 들고 나왔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럼에도 4세트에서의 그 신들린 듯한 수비력 때문에 끝장을 내지 못했고 마지막 세트마저 내주면서 패배하고 만다. 여하튼 서로 깊은 관계가 있는 것만은 사실. 사석에서도 서로 얘기 잘 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이때는 머머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서로간의 호각세였으나 이 결승전 매치는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었다.
이상하게 이윤열은 최연성과의 경기에서는 평범한 운영이 아닌 전략적인 카드를 자주 들고 나왔고 그 전략들은 거의 다 최연성의 수비력에 막혀 아무 것도 못 하고 역관광당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예를 들면 이윤열의 투스타 레이스를 막은 뒤 최연성이 3스타 역레이스로 관광하는 형태. 헌데 반대로 이윤열이 정석 들고 나오면 최연성은 정석 때려잡는 빌드로 또 여행을 보내버린다. 정석으로 해도 말리고, 전략 써도 말리고 이윤열로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하자면 빌드의 상성, 심리전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 것이다. 그것도 거의 매번. 최연성의 우람한 외모에 묻혔지만 그의 지능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일화. 이윤열도 그 후로 라이벌과 천적을 논할 때 존경을 하면서 라이벌로 삼고 싶었던 선배 임요환보다도 최연성을 라이벌로 가장 먼저 언급할 정도로 인정을 했다.
이윤열과의 결승에서의 비화가 있는데, 워낙 최연성의 이미지가 좋지 않았던데다가 이윤열이 당시 테란전 감도 매우 뛰어났기 때문에 압도적 다수의 사람들이 이윤열의 승리를 점쳤고 심지어 최연성 자신도 "난 이윤열 못 이길 거야"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의 여자친구, 현재의 시우 어머님께 이런 생각을 고백하자 그분은 "맞아, 자기는 절대로 이윤열 못 이겨"라고 회답했고, 그러자 최연성은 오기가 치솟아 미친 듯이 빌드를 짜고 연습을 해 결국 이윤열을 꺾었다고 한다.[62] 그리고 이윤열은 두 시즌 연속으로 최연성에게 지면서 리그를 마감한 것은 물론 이번엔 우승까지 헌납해버리자 분통을 이기지 못한 채 인터뷰를 하다가 끝내 울먹이는 모습을 보였으며 결승이 끝난 후 송호창 감독이 족발과 소주를 사주면서 밤새 팀원들과 같이 소주 마시고 속상한 마음에 숙소에서 엉엉 울었다고 회고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이윤열에게 몹시 약했던 서지훈을 상대로는 약세를 보였다.
워낙 서지훈이 대표적인 최연성의 천적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역시 무표정이라 '이모티콘'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변길섭, 한웅렬 등의 테란 선수들 또한 최연성에게 밀리지 않은 편이였다. 최연성 식 플레이스타일의 약점이 보이는 장면. 이병민 역시 비공식전 포함, 다전제에서 3번 붙어서 전패하긴 했지만 상대전적은 7:8로 박빙이었으며, 단판전에서는 3연승을 하기도 했다.
스승 임요환과는 서로 주고받으면서 호각을 유지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이득은 전부 최연성이 챙겨갔다.[67] EVER 스타리그 2004 결승에서 3:2로 승리하고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 8강에서도 임요환을 2:1로 꺾었다. 그 후로 2006년 프링글스 MSL 시즌1 16강 경기에서 임요환의 초반 전략에 일격을 맞아 패배, 상대전적은 5:4로 굳혀졌다. 그나마 흠으로 남은 점이 있다면 8강에서의 장기전과 결승전 4경기 바이오닉 명경기도 그렇고[68] 유독 임요환에게 패한 경기들이 전부 하나같이 명경기로 남은 것 정도. 다른 테란 게이머들에 비해 수비력이 극강인 선수로 유명했지만 그조차도 아예 처음부터 작정하고 나온 임요환의 승부수에는 얄짤없었다.
하지만 사석에서는 선배인 임요환을 그저 떠받드는 완성형 임빠로, 그 유명한 홍조가의 실제 저자라는 설도 파다하다.[69] 실제로 그는 드랍동(임요환 팬 클럽) 회원이다. 자기 팬 카페 글은 안 올려도 드랍동 공지엔 댓글 다는 모습에서 그 일면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임빠 기질이 농후했기 때문에 스갤의 꾸준 리플러 저질임빠가 그였다는 소문도 있다.
그리고 도발과 거만함을 이미지로 내세워 구축했던 그에게도 임요환만큼은 예외다. 최연성의 첫 스타리그 우승 상대가 임요환이었고 그가
처음 게이머가 되어 오리온 숙소에 합류했을 때는 매일 그분 주무실 때 곁에 가서 '나도 이렇게 생겼으면 좋겠다'라고 하고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고. T1 스키장 나들이 때는 180에 육박하는 덩치의 그분을 무릎 위에 앉혀 두고 장갑을 묶어주질 않나, 남쪽으로 휴가를 가면 오일을 발라드리고, EVER 스타리그 결승 당시에는 타임머신 안에 들어가 있는 그분을 보고 좋아라 돌진하다가 투명도가 그다지 높은 것도 아닌 타임머신 문에 헤딩을 하고, 공군 소속 그분이 이긴 장면을 보고 너무 좋아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혀 웃음을 사기도. 정말 지극정성이 따로 없다. 쏟아지는 짤방이나 영상이 너무 많아 최연성 임빠 시리즈를 만들 수 없을 정도. 물론 이것도 그의 지능형 플레이와 더불어 임요환을 안 건드리는 것이 자신에게 더 이로운 걸 아니까 좋아하는 척하는 술수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실제 꼬꼬마 시절부터 함께한 이윤열조차 예전엔 노골적으로 임요환 컴플렉스를 드러내곤 했었는데, 데뷔전부터 지금까지 한결 같은 그의 요환 사랑은 순수히 받아들이기에 미심쩍을 만하다. 인터뷰나 스갤 등지에서 과장되어 캐릭터화된 감이 있을 뿐, 실제 최연성의 인터뷰를 보면 무조건적으로 그분을 좋아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인생에 끼친 영향이나 자신이 다다르고 싶은 이상적인 롤 모델이 곁에 있었다는 점에 감사하는 모양이다.
배틀넷 첫 대면에서 최연성은 원래 게임 좀 하다가 군대에 상근예비역으로 갈 예정으로 입대 신청까지 한 상황이었고, 자존심 때문에 공방에 그 임요환이 떴는데도 말도 한 번 안 걸어볼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최연성의 소문을 들은 임요환이 먼저 직접 최연성에게 귓말을 건냈고 최연성은 입대가 1주일 남은 시점에서 극적으로 군대를 미루고 상경하게 된다. 최연성뿐만 아니라 고인규도 처음 4U에 합류했을 당시를 이야기할 때는 "연습할 컴퓨터도 부족할 정도로 좁은 숙소에서 임요환이 등장했는데 막 후광이 났다. 첫눈에 반한 거 같다"라고 회상하는데 이후 임요환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이들은 아무래도 스타 임요환이 자신들과 같은 수준의 환경에 임하는 모습과 실물의
돈 안 쓰기로 유명한 게이머였으나, 정작 임빠질에는 돈을 쓰는지 그분과 커플룩인 자켓이 있다.[71]
이러한 임빠 이미지 덕분에 임요환 모에화 캐릭터 임요희가 등장한
데뷔 초기에 라이벌로 주목받았던 이병민과의 전적은 비등비등했는데 공식전 6:5, 비공식전 포함 8:7로 호각을 보였다. MSL, 프로리그, 챌린지 리그에서 서로 박빙으로 주고받다가 질레트 스타리그에서 레이스 관광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최연성의 포스가 많이 떨어진 2006년도에는 듀얼 토너먼트에서 이병민이 최연성을 패자 조에서 이기면서 PSL로 떨어뜨리고 프로리그에서 최연성이 복수하는 등 팽팽한 싸움을 했다. 그러나 다전제에서의 승리와 상성을 무시했던 레이스 벌처 관광 경기가 너무 부각되어서 그런지 보통 최연성이 이병민에게 우위라는 평가가 많다.
최연성이 본좌로 등극한 때 많은 저그 유저들이 최연성에게 짓밟혔는데, 홍진호는 TG삼보 MSL 결승전에서 셧아웃을 당하고 SO1 스타리그에서 장판파 관광을 당하며 무참하게 패했으며 홍진호의 스타일을 바탕으로 성장한 변은종, 박태민도 최연성에게 열세를 면치 못했다. 변은종은 각종 메이저 개인리그와 프로리그에서 최연성에게 가로막혀 상위 라운드 진출과 팀의 승리가 좌절되었고,[72] 박태민은 프로리그 첫 만남에서 최연성의 끊임없는 물량에 짓밟힌 것을 시작으로 스타리그에서는 16강에서 재재경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최연성의 심리전에 휘둘리며 패배한다. 이 경기들에서 박태민은 자신의 장기인 1해처리 운영부터 본인이 그토록 혐오하던 4드론까지 꺼내들었지만 결국 패배를 맛본다. 추후 최연성이 일시적으로 동네북으로 전락한 시기 프리미어 리그에서 거둔 1승이 박태민의 유일한 승리. 변은종과의 전적은 공식전 7:2, 비공식전 포함 8:2이며 박태민과는 공식전 4:1, 비공식전 포함 6:1이다.
박성준과는 서로 주고받는 모양새로 신인시절에는 최연성이 압도했다가 2004년 이후에는 밀리고 2005년 후반기 이후로는 우위를 되찾는 모습을 보였다. 박성준은 최연성의 빠른 확장 스타일이 약한 타이밍을 캐치, 막강한 전투력으로 이를 파고들어 순식간에 무너뜨리는 방식의 경기를 선보였고, 이것이 제대로 먹혀 iTV 랭킹전 결승 패배와 질레트 스타리그 4강전까지 연이어 패배하여, 데뷔 후 44승 5패[73]를 자랑하던 최연성의 저그전에 금이 갔고, 그 충격 탓인지 이후 개최된 KT Megapass 프리미어리그에서 동네북이 되며 2승 7패로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보였고,[74] 삼신 시대에 최연성은 변방의 강자였다. 이후 모 코치가 T1으로 이적하며 아주 안 좋은 소문을 남겼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이후로 박성준을 So1 8강에서 2:0, 신한은행 2005 결승에서 3:0으로 꺾으면서 또 다시 압도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2006 프로리그 그랜드 파이널에서 일격을 당하고, 2007년 곰TV MSL 시즌2에서 또 패배하면서 2연패로 마지막 대결을 마무리했다.
이후
프로토스 선수들에게는 초기부터 말기까지 쭉 강한 모습들을 보여주는 편이었다. 저그전의 경우 저그들 자체가 최연성이 개발한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한 경향이 커서 일방적으로 짓밟히다가 트렌드를 따라잡은 후에는 역으로 짓밟게 되지만, 손이 느린 대신 물량과 자리잡기가 뛰어난 최연성의 스타일은 기본적으로 프로토스전에 매우 강하기 때문. 게다가 힘싸움만 뛰어난 게 아니라 각종 견제와 흔들기에도 능했기에 어떤 스타일에도 대응할 수 있었다. 전성기 시절에는 삼대토스 모두에게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다. 이 중 정파와 사파 스타일이 고루 혼합된 박용욱이 상대적으로 선전했으며[77] 비교적 한쪽에 치중된 스타일인 강민은 물론 동시대에 테란전을 잘한다고 평가받던 토스 박정석, 전태규도 최연성에게 약했다. 박정석은 그나마 UZOO MSL에서 최연성을 3:0으로 셧아웃시키는 기염을 토했지만, 경기 내적으로는 천적 관계를 극복했다고 보기 어려웠으며 이후에는 여전히 계속 짓밟히는 모습을 보였다.
전성기가 조금 지난 후 만난 신 3대 프로토스와의 경기 수는 많지 않은데, 대체로 전성기 시절에 비해 호각인 편이었다. 유사한 스타일에 전략성까지 갖춘 박지호와는 힘싸움에서 호각을 다투었고, 오영종에게는 So1 스타리그에서 1:3으로 패배했으며,[78] 셋 중 전성기가 늦었던 송병구와는 초창기에 만나 압승했지만 선수 생활 말기에 다시 만나 패배했다. 이외에 김택용, 박영민, 김구현, 윤용태 등의 후발 프로토스들을 상대로는 호각을 이루었으나 뚜렷한 우세를 점하지는 못했으며, 저물어가는 시기에도 프로토스전만큼은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정도였다.
5. 기록
- 1년 기준 상성 종족(저그) 간 최고 승률(2003년 27승 5패 84.4%)
- 브루드 워 공식전 테저전 17연승 역대 1위[79](비공식전 포함 저그전 25연승)
- MSL 테란 3대 우승(TG삼보 MSL, 하나포스 센게임 MSL, Spris MSL)
- 온게임넷 테란 6대 우승(EVER 스타리그 2004), 8대(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
- MSL 최초 3종족 상대 우승(TG삼보 MSL vs 홍진호(저그), 하나포스 센게임 MSL vs 이윤열(테란), Spris MSL vs 박용욱(프로토스))[80]
- 스타크래프트 역사상 단 둘뿐인 결승전 승률 100%[81]
6. 주요 선수와의 상대 전적(전체 전적)
6.1. 테란전
vs. 이윤열 20:9vs. 임요환 5:4
vs. 서지훈 4:7
vs. 변길섭 6:6
vs. 이병민 8:7
vs. 변형태 1:1
vs. 한승엽 4:0
vs. 김선기 3:0
vs. 조정현 2:1
vs. 차재욱 7:2
vs. 한동욱 4:4
vs. 한웅렬 1:3
vs. 베르트랑 2:0
vs. 전상욱 3:3
vs. 나도현 5:4
vs. 이학주 1:1
vs. 이영호 0:3
vs. 김동진 4:1
vs. 김정민 3:2
vs. 박성균 2:3
vs. 신상문 2:0
vs. 박지수 1:0
vs. 이성은 1:3
최연성은 상대적으로 테란전이 가장 부진했다. 빌드상으로 우위를 가져감으로서 경기 자체를 지배하는 편이었던 프로토스전이나 저그전과 달리 그러한 우위가 부재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승률은 60%가 넘으며 5판 3선승제에선 진 적이 없다. 이윤열과는 머머전이라는 라이벌 구도의 매치로 유명했지만, 상대전적을 따져보면 매우 강력했다. 이윤열에게 다전제에서 진 적이 없으며 중요한 경기에서는 거의 다 이겼다. 사실상 저그전과 프로토스전의 압도적인 승률로 묻혀서 그렇지 테란전도 결코 무시할 수 없었으며 최연성을 내내 압도하던 유일한 테란은 서지훈[82]으로 상대의 심리전을 무시하면서 기본기가 단단한 정석 플레이에 능했던 서지훈에게 심리전을 토대로 상대를 흔들어놓고 몰래멀티를 먹으면서 주도권을 굳혀 찍어누르는 방식인 최연성의 플레이는 상성이었다고 볼 수 있다. 나중에 본인이 직접 밝히기를 이윤열은 유닛으로 찔러보면 심리가 훤히 보여서 본인이 준비한 플레이대로 상대가 가능했는데 서지훈은 아무리 찌르고 때려도 심리가 아예 보이지 않았다고. 최연성이 무적 포스를 내뿜던 초기 시절에는 변길섭, 한웅렬[83]이 최연성에게 강한 모습을 보였지만 변길섭은 2004년 후반을 기점으로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최연성에게 연패하면서 동률이 되어버렸고 한웅렬도 얼마 안 가 소리 소문없이 사라지면서 기억하는 이가 많지가 않다. 자신의 기량이 매우 하락하였던 때 만났던 신예였던 이영호에게는 0:3으로 밀렸다. 선수 생활 말기에 MSL 16강에서 각각 이성은, 박성균에게 패배하였다.최종 전적 112승 72패 60.9%
- 테란과의 5판 3선승제
2003 TG삼보 MSL 패자조 결승전 vs 이윤열 3:1 승리
2004 하나포스 센게임 MSL 결승전 vs 이윤열 3:2 승리
2004 Gillette 스타리그 2004 3,4위전 vs 나도현 3:2 승리
2004 EVER 스타리그 2004 결승전 vs 임요환 3:2 승리
2005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 4강 vs 한동욱 3:2 승리
6.2. 프로토스전
vs. 박정석 11:8vs. 강민 10:4
vs. 기욤 패트리 3:0
vs. 김환중 3:2
vs. 박용욱 9:5
vs. 전태규 4:3
vs. 박지호 7:4
vs. 이재훈 4:4
vs. 오영종 2:4
vs. 안기효 2:1
vs. 이승훈 4:1
vs. 문준희 2:0
vs. 박정길 5:2
vs. 서기수 3:1
vs. 박영민 3:3
vs. 송병구 1:1
vs. 김택용 2:2
vs. 김학수 2:0
vs. 김구현 0:2
vs. 윤용태 1:2
vs. 류오시안 4:1
전성기 시절 최연성은 온게임넷 스타리그보다는 주로 MSL에서 프로토스들과 대결하였다. 전성기에는 95%에 이르는 역대 최강급인 저그전에 비해 약세인 편이었으나 저그들이 최연성을 압도하기 시작한 말기에는 오히려 프로토스전에서 강세를 보인 편이었다. 박용욱은 Spris MSL 2번의 다전제에서 모두 패배했고 우주닷컴 MSL 8강에서도 1:3으로 패배. 허나 프링글스 MSL 8강에서 최연성에게 승리하였다. 강민 역시 MSL 2번의 다전제에서 패배했고 MSL 2연속 우승 후 로열로더를 노리는 최연성과 질레트 스타리그 개막전에서도 최연성의 수비에 막혀 패배. 프로리그에서도 마구 짓밟혔다. 박정석은 스타리그와 프로리그에서 자주 패배했지만 최연성에게 5전제로 이겨본 유이한 프로토스인데 EVER 스타리그 2004에서는 눈이 정화되는 경기들 끝에 2:3으로 패하였지만 우주 MSL 패자 4강에서는 최연성에게 3:0으로 승리. 허나 2달뒤 프로리그 개막전 1세트에서 최연성의 탱크, 벌쳐의 조이기에 패배했다. 전태규는 프로리그에서 드라군들이 벌처에 털리는 굴욕적인 패배를 맛봤고 질레트 스타리그 2004 8강에서도 져서 탈락. 테란 킬러로 유명하던 이재훈과는 동률의 전적을 가지고 있다. 사실상 최연성에게 밀리지 않으며 상대전적을 앞서는 토스는 오영종이 유일했으며 So1 스타리그 4강에서 그에게 상당히 굴욕적인 패배를 안겼다.[84] 1경기는 전진게이트 이후에 다크 템플러에 농락당했고 2경기는 전진 팩토리가 들키는 바람에 주도권을 뺏기면서 자원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패했다. 그나마 3경기에서 특유의 괴물 같은 수비력으로 전진게이트를 막아내고 이겼으나 4경기 815에서 오영종의 3리버 3드라 폭탄드랍 필살기 한 방에 무너지고 말았다. 3경기를 제외하면 오영종의 본진 한번도 못밟아본채로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한채 패배했으며 이후 프로리그에서도 만나서 패배했다. 박지호와는 2005년에 스타리그 3,4위전에서 3:2로 이겼는데 힘싸움이 대단하였다. 올드게이머가 다 그렇듯이 자신이 끝물일때 등장한 게이머들에게는 전적에서 밀리지만 최연성은 상대한 경기의 수가 적고 은퇴시기도 빨라서 그렇지 끝물시기에 등장한 프로토스 게이머들에게 생각보다 선전한 편에 속한다. 특히 김택용의 경우 한창 전성기라 평가받는 MSL 2회 연속 우승 이후에 만나서 승리하여 공식전 전적이 동률이고 송병구를 상대로도 1승 1패로 주고받았다.
최종 전적 102승 58패 63.7%
- 프로토스와의 5판 3선승제
2004 EVER 스타리그 2004 4강 vs 박정석 3:2 승리
2005 우주닷컴 MSL 패자 4강 vs 박정석 0:3 패배
2005 So1 스타리그 2005 4강 vs 오영종 1:3 패배
2005 So1 스타리그 2005 3,4위전 vs 박지호 3:2 승리
6.3. 저그전
vs. 홍진호 5:3vs. 조용호 6:3
vs. 박경락 3:0
vs. 변은종 8:2
vs. 박성준 20:13
vs. 이재항 1:2
vs. 박태민 6:1
vs.
vs.
vs. 이제동 2:2
vs. 김명운 1:1
vs. 이재황 2:0
vs. 박상익 3:1
vs. 김준영 1:1
vs. 성학승 7:1
vs. 삼성준 3:0
vs. 심소명 7:0
vs. 김근백 2:1
vs. 이주영 2:0
vs. 주진철 4:0
vs.
vs. 신정민 2:0
vs. 김정우 2:0
vs. 주영달 2:0
vs. 임재덕 2:0
최연성은 한때 저그전에서 이영호처럼 스타 1 역사상 가장 우수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고 질레트 스타리그 2004 4강전 직전에 저그전 43승 2패에 8개월 동안 25연승 무패를 달리고 있었다. 보통 저그전을 잘하는 선수들은 화려한 컨트롤의 바이오닉을 선보이는 경우가 많지만 최연성은 바이오닉을 잘 쓰는 선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빌드의 우위와 판짜기를 통해 물량에서 저그를 압도하는 방식으로 저그들을 짓밟았다. 홍진호는 최연성의 첫 우승 제물이었으며 조용호 역시 최연성에게 여러 대회에서 패배하였고 박성준만이 최연성에게 맞설 수 있었지만 그조차도 2005년 이후로는 최연성에게 압도당하고 말았다. 박경락, 변은종, 박태민 등도 최연성에게 상대적으로 압도당했으며 결과적으로 2005년까지 저그는 최연성의 상대가 되지 못하였고 그 마저도 새로운 빌드로 인한 상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최연성을 압도하던 저그는
최종 전적 124승 54패 69.7%
- 저그와의 5판 3선승제
2004 Gillette 스타리그 2004 4강 vs 박성준 2:3 패배
2004 7차 iTV 랭킹전 결승전 vs 박성준 1:3 패배
2005 CYON MSL 패자 4강 vs 성학승 3:1 승리
2005 CYON MSL 패자결승 vs
2005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 결승전 vs 박성준 3:0 승리
7. 스타크래프트 1&2 코치, 그리고 감독 시절
플레잉 코치로 보직 변경 후 2008년 11월 T1 로스터에 들어가면서 2008년 11월 17일 웅진 스타즈전에서 김명운을 상대로 복귀전을 가졌으나 참패했다.코치 시절 만들어낸 발리앗(발키리 골리앗)을 자신의 인형으로 쓴다는 평을 듣던 정명훈을 이용해 쓰게 하여 사기 빌드라는 소리가 나오게 하였으나(본인이 허세도 많이 부렸다) 1주일도 안 되어 김정우에게 발리면서 망한 빌드가 되어 버렸다. 본인의 복귀전에서도 이 빌드를 썼으나 결과는 처참했다. 그러나 신희승은 이 빌드로 저그전 10연승을 달렸다.
오히려 요즘은 플레잉 코치는 핑계고 사실은 공군 에이스에 들어가려 한다는 얘기도 있다(참고로 아직 군입대 안 했다). 결국 29살 12월달에 최대한 미루고 상근예비역으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신한은행 08-09 위너스리그 개막일인 2009년 01월 17일. 대 공군전에서 김환중을 상대로 선봉에 나왔다. 둘 다 전성기시절에 비해 경기력이 너무 쇠락했기 때문에 경기는 졸전에 졸전을 거듭한 나머지 최연성의 승리로 끝났다. 이때까지만 해도 각종 스타크래프트 관련 커뮤니티들에서는 공군의 다음 타자가 나오면 최연성은 곧바로 무너질거라는 의견이 대다수.
그런데 이후 박대만에 이어 한동욱까지 잡아내며 유부남 최초 승리와 3킬(!)을 하는 맹활약을 보여 팀에게 승리를 안겨준 일등 공신이 되었다. 박대만과 한동욱과 경기했을 때는 1경기보다 경기력이 더 좋아졌다는 점은 덤.
그런데, 그의 대활약은 당일 열렸던 KTF 매직엔스 vs 삼성전자 칸 경기에서 박찬수가 올킬을 해 버리는 바람에 그의 활약이 다소 묻힌 감이 있다.
그 후 웅진 스타즈와의 위너스 리그 중 김명운을 상대로 완벽한 빌드[86]를 통해 승리함으로써 "역시 최연성"이라는 탄성을 자아냈다(그러나 그 다음 판을 바로 져서 물러났다).
코치가 된 이후에는 거침없는 말로 상대를 도발하는 걸 즐기는 듯하다. 아직까지는 수위 조절을 잘 못해서 까이는 떡밥이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지만... 하단 도발 참조.
아발론 MSL에서 경기 초반에 'About Player'라는, 코치나 감독이 코멘트를 하는 부분이 있는데 고인규와 정명훈의 경기 때
같은 T1 팀 소속인 고인규와 승부 조작 사건 이전의
16강 진출 결정전에서 다시 벌어진 '고인규 VS 팥' 경기에서는 오늘 우리 1위 했으니까 빨리 이기고 회식 가자라고 깠다.
얼마 전 김택용과 정명훈의 MSL 16강 대결에서 "명훈아! 김택용만 이기면 결승이다!", "택용아! 정명훈만 이기면 결승이다!"라는 코멘트가 나왔다.
NATE MSL 결승 당시 리쌍록에서 누가 이길 것 같냐는 질문에 대답한 뒤 마지막으로 결승 뒤에는 둘 다 못해야 된다. 명훈이랑 택용이가 1위해야 된다는 코멘트를 달기도 했다.
최연성 코치가 온게임넷 스타리그 8강 추첨을 할 때마다 티원 팀킬 매치가 성사되어서 쵱코치의 저주로 불리고 있다. 전태규 코치에게도 같은 저주가 옮은 듯하다.
이후 다시 코치로 복귀. 프로리그 참석 때 선수복이 아닌 양복을 입고 나오며 코치 일을 하고 있다. 그의 화려했던 옛날을 기다리던 사람은 아직도 많지만...
2010년 1월 19일 복수용달 5화에 출연, 박성준에게 응징당하고 3대 본좌 자리를 빼앗겼…나? 근데 본좌 자리가 문제가 아닌 게 패자 벌칙이 '박성준을 업고 세트장을 한 바퀴 돌기'였다. 지못미. 물론 그는 유부남이기에 어느 정도 가감이 되었다. 무슨 내용인지는 해당 항목 참고 바람.
SS501김형준 프로게이머되다 4화에 출연했다. 운동 중에 그분에게 끌려 나와서는 김형준에게 U R Man 안무를 그분과 같이 안무를 맞춰서 춤까지 췄다. 하지만 워낙에 몸치였던지라, 대폭소를 금하지 못할 장면이 될 듯. 그래도 나중에 '아내 앞에서 써먹으면 괜찮다고 생각했는지 끝까지' 옆에서 배웠다.
그분께서 핵을 쓰시는 걸 보며 반칙패를 주장했지만 배럭스에서 나온 유닛인 관계로 반칙패는 수용되지 않았다. 이후에도 계속 김형준 옆에서 코칭을 해줬지만 결과는 관광. 안 되겠다 싶었는지 형준과 선수 교체까지 했지만 상황은 바꿀 수 없었고, 결국 포기하고 "형준씨가 해보고 싶은 대로 해보세요"라고 하면서 자리를 피했다.
2010년 4월 28일, 5월 로스터에서 플레잉 코치에서 코치로 다시 돌아갔다.
2010년 5월 11일, 스갤과 시청자, 해설진에게 큰 웃음을 준 '정명훈 vs 김성대' 경기에서 엄청난 표정들을 보였다. 4드론을 막은 정명훈이 생마린 부대를 갖고 나갔다가 매복하고 있던 저글링에게 털리자, 쵱코치는 머리를 쥐며 아쉬움이 짙은 표정으로 뭐라고 소리쳤는데 입모양을 보면 "벙커 박어!"라고 추정된다. 결국 정명훈이
조종이 안되 어헣헣
표정 vs 표정
12월 16일 최호선이 이영호를 개막전에서 잡아내면서 체면치레는 했다.[88] 게다가 이영호는 이후 패자 조에서도 김도우에게 지면서 광탈했다...
최연성이 대 KT 도발을 하고 패배한 뒤로 SKT는 내리 4연패를 해버렸다. 일명 최연성의 저주. 저번 리그 결승전도 그런거 보면 진짜로 효력 있는 듯...
2011년 1월 29일 드디어 정명훈이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을 해내면서 쵱코치의 최대 염원이 이루어졌다.[89] 그런데 우승 이후로는 다시 침체 중.
10-11 위너스리그 결승전에는 백발 노인 분장으로 등장, 큰 웃음을 줬다. 일설에는 이영호를 격파할 정명훈, 최호선의 빌드를 짜느라 머리가 다 하얗게 됐다고 한다. 포모스에서는 대놓고 할아버지라고 까고 있다.
포모스에서 기획 인터뷰를 했는데 한 인터뷰로 여러 명을 깐다는(...) 말을 듣고 있다.
프로리그 결승전이 끝나고 2011년 12월 20일 상근으로 입대할 예정이라고 한다.
전 프로게이머 구성훈에 따르면 클래스가 다른 코치였다고. 빌드 개발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2012년 12월 7일 아프리카TV 방송 도중 10시 54분경 발언함).
이후 2013년 9월 19일 상근 전역 후 9월 26일 임요환이 건강상의 문제로 사퇴하자 T1의 수석 코치로 승격되었다. 감독 대행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사실상 감독이 된 셈이다.
상근 전역 후 포모스와의 인터뷰에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는데, 주요 내용은 밸런스 패치로 게임을 휙휙 바꿔버리는 데이비드 킴을 까는 이야기다. 임요환 감독의 사퇴에 대해선 많이 아쉽다고 하며, 빌드 짜는 능력이 좋은 최연성 수석 코치에게 스 2가 빌드짜기 더 좋고 이미 2개 정도 구상해둔 게 있다고 한다.
위 밸런스 패치 부분은 게임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찬반 양론이 크게 엇갈리며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최연성을 위해 변호를 해보자면 전략을 짰는데 다음 패치에서 막히면 정말 허무하다는 것이다. 물론 스타크래프트 2는 아직도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서 일단 밸런스를 맞추는 게 중요하지만 전략을 짜는 사람 입장에선 허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스타크래프트 2의 마지막 확장팩 발매와 황금 밸런스를 맞춘 최종 밸런스 패치를 해야 아마도 최연성이 스 1에서 한 것처럼 매뉴얼 수준의 빌드를 짤 수 있을 것이다.
2013년 11월에 정식으로 T1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다만 감독이 된 후 평가가 매우 나쁘다. 엄청나게 화려한 선수진을 데리고 포스트시즌에 가지 못 하기도 하고, 결국 결승전까지는 어찌 갔으나, 하던 대로만 하다가 발리는 모습을 보여줬으며 결승전 패배 이후에 티원 선수단이 대규모로 나가는 일이 발생하면서[90] 향간에는 같이 도는 루머와 함께 선수단 장악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팀을 나온 선수들이 인터뷰마다 최연성과 맞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선수단을 다소 하드코어하게 돌렸다가 갈등이 생긴 것 같다.[91] 이후 본인의 개인방송에서 본인도 스타 시절엔 선수들을 많이 혼냈다고 간접적으로 마찰에 대해 시인을 했다. 여담으로 스타 시절 유일하게 혼을 내지 않는 선수가 있는데 다름 아닌 김택용.
그러나 이렇게 많은 선수가 빠져나가며 약해졌다는 평가를 들었던 SKT T1은 오히려 3라운드까지 총 전적 18승 3패를 달리며 무시무시한 페이스를 선보이고 있다. 어윤수는 초반 부진을 딛고 프로리그에서 조난지 마스터로 대활약 중이며, 박령우도 개인리그에서 높이 못 올라가는 것이 아쉽지만 저그 에이스로 성장했고, 무엇보다도 보통 테란이었던 조중혁을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테란으로 키워내며 역시 최연성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거기에 이신형이 2라운드에 부진하자, 일부러 이신형을 엔트리로 내세우는 일을 줄였다. 그 이유는 이신형이 실력은 여전하나 자신감의 문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며, 실제 이신형은 왜 자신을 내보내지 않냐고 화를 내고서 3라운드 결승전에 나가서 2킬. 그 후로도 전성기에 폼을 찾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2015 프로리그에서 T1을 1라운드 우승. 3라운드 우승. 4라운드 1위 진출. 통합 포스트시즌 1위 진출을 시켰으며, 앞서 5명이 나가서 처음에 약팀으로 평가받은 T1을 김지성, 김준혁을 포함한 서브카드까지 실력이 뛰어난 팀으로 무장시켜 운영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선수 자체가 잘한 경우일지도 모르나, 이신형의 사례와 조중혁에 T1 시스템으로 실력이 올랐다는 사실을 보면, 최연성의 선수를 키우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고도 할 수 있다.
여담으로 2015년 1월쯤 티원 갤에 프로리그 로스터가 발표되자 당시 프로리그에서 자주 안보이던 어윤수 좀 프로리그에 내달라고 하는 글인 일명 죄시윤내(죄이중 시발아 윤수 좀 내라)에 나타나서 뜬금없이 유저 욕을 하고 역삼동으로 나오라는 식의 글을 써서 화제가 되었다. 게다가 번호까지 인증했는데 처음에는 설마 최연성이겠나 해서 번호를 확인해 보니 최연성의 번호인 게 맞다는 게 밝혀졌다. 물론 욕을 한 갤러의 잘못이 크긴 하지만 이후 최연성은 역동님이 되었다(...). 그런데 이 프로리그 죄시윤내는 프로리그 2015 결승전에서 어윤수 3세트 출전 승리 후 김도우가 6세트를 끝내면서 우승, 그리고 최연성 감독의 감독 첫 우승이 이루어지면서 증명되었다.
2016년 1라운드 플레이오프는 그 작년의 최종 포스트시즌 대진인 진에어와의 대결이었으나, 정규시즌에서 1승도 올리지 못한 김명식을 출전, 2킬을 거두는 신의 한 수를 성공시키며 4 대 2 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 시점의 SKT는 1군 멤버 전원이 우승자 혹은 결승 경험자임과 동시에 2군 역시 만만치 않은 강자들인 데다가, 정규시즌 1위와 우승이 당연해보일 정도로 가히 선수 시절의 최연성의 전성기를 감독의 지휘봉을 잡고 재현하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최연성 감독의 남다른 프로 정신이 담긴 마지막 인터뷰가 팬들에게 큰 공감을 주었다.
8. 리그 오브 레전드 감독
SKT T1의 스타 2 팀이 해체된 후 2016년 11월 30일부터는 아프리카 프릭스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임단의 감독을 맡게 되었다. 그 후 마린, 스피릿, 쿠로 등 롤판에서 내로라하는 S급 선수들이 입단을 확정짓고 월즈 MVP 출신인 마린이 최연성 감독님을 보고 들어욌다는 인터뷰를 하면서 다시 한번 최연성이라는 이름값에 기대감을 더했다.[92]그런데, 라이엇 게임즈가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 스프링에 참가를 신청한 코칭 스태프 및 선수 전원에 대해 게임 내 불건전 행위 내역을 조회한 뒤 케스파와 함께 상벌위원회를 개최해 징계 조치를 내렸는데, 게임 내 욕설 사용으로 인해 제재를 받은 5명의 코칭 스태프&선수 명단에 최연성도 포함되면서 롤판에서 감독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이 벌써부터 사고를 치냐고 지탄을 받았다. 그리고 과거 선수 시절 비매너 행동과 스타 2 감독 시절에 시전한 '역동님' 사건이 재조명됐다.
8.1. 2017년
인터뷰 전문2017년 3/28자로 올라온 최연성 감독 인터뷰다. 달변가답게 팀 철학에 대해 상세한 인터뷰가 나왔다. 아프리카의 놀라운 성장세, 그리고 오프 더 레코드를 통해 드러나는 좋은 팀 분위기와 더불어 역시 종목이 두 번 바뀌어도
서머 시즌 들어서 빌드 깎는 노인이라는 평을 들었던 그답게 재기발랄하고 실험적인 밴픽과 전략을 들고 나와 재미를 톡톡히 보았지만, 동시에 선수들의 폼 저하와 장기전에서의 판단 미비로 인해 다전제에서 번번이 좌절하며 최종 순위 5위를 기록했고 롤드컵 진출에도 실패했다. 결국 일시적인 날빌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두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평을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
리그 오브 레전드 팀 감독이 된 후에 솔로 랭크는 시즌 7 9월 기준으로 1600판 플레이, 플래티넘 1을 기록했다.
8.2. 2018 시즌
그러나 2018년에 들어서면서 아프리카 프릭스는 거침없는 상승세를 보이며 LCK 스프링시즌에서는 2라운드까지 2등을 유지하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밴픽에서부터 적극적인 심리전을 거는 것은 물론 인게임에서도 와드 설계를 통한 조직적 카정 전략을 구사하는 등 빌드 깎는 노인의 내공이 여실히 느껴지는 운영과 전략을 보여주고 있다.포스트시즌에서 KT를 상대로 운영에 밀려 선취점을 내줬음에도 불구하고 타코야끼와 거석신앙 조합이나 과학이 받쳐주는 3연속 함정 카드 픽 등을 보여주며 기어코 팀을 창단 이래 첫 결승전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으나 스프링 시즌 기준으로 최고의 폼을 보여주다시피 하고 있던 킹존의 벽을 넘지 못하고 아쉽게 준우승에 머무르고 말았다.
이 와중에 서브 원딜인 '에이밍' 김하람이 일베 논란[94]이 일어난 상황에서 '변명으로 일관한 사과문 + 다음 경기 '에이밍' 김하람 선발 출전'으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상세는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일베 논란 문서 참조.
하지만 아프리카 프릭스는 준우승은 거저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듯 서머 시즌에도 여전히 강세를 보이며 선전하고 있으며 완전히 뒤바뀌어버린 메타 속에서도 현 메타에 가장 최적화된 팀이라는 높은 평가를 받으며 성공적으로 순항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술한 에이밍의 일베 논란을 거의 무시하다시피 한 채로 꾸준히 기용하는 태도로 여론은 꾸준히 나빠지고 있으며 대외적인 이미지 또한 좋지 않은 상태. 그리고 리프트 라이벌즈에서 에이밍의 스로잉으로 한국 팀이 준우승을 하여 다시 많은 욕을 먹었다.
결국 서머 시즌 중반부터 비원딜 메타에서 원딜 메타로 회귀하는 과정으로 서서히 성적이 나빠져 5위는커녕 6위로 떨어졌다. 팬들에게 정의구현이라는 반응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게다가 에이밍의 폼이 계속 나빠짐에 따라 구원 등판한 크레이머가 여러모로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며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짓고 와일드카드전, 플레이오프에서도 승리를 이끌었기에 에이밍 기용에는 더더욱 의문점이 붙고 있다. 그 와중에도 전략을 짜는 모습은 어디 안 가는지 스피릿의 인터뷰에 따르면 2018 서머 포스트시즌에서 선보인 포식자 그라가스는 최연성의 제안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포스트시즌에서 탑 퀸, 포식자 그라가스, 크레이머의 기용 등 용병술이 적절히 맞아들어가면서 서머 시즌 최종 3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고 kt가 롤챔스를 우승하면서 1시드로 옮겨갔고 남은 팀 중 최다 서킷 포인트를 쌓아둔 덕에 2시드로 아프리카를 창단 첫 롤드컵에 올려놨다. 어찌 되었든 팀을 맡은 지 2년 만에 롤드컵에 올려놓은 걸 보면 전략가로서 역량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95]
8.2.1. 리그 오브 레전드 2018 월드 챔피언십
롤드컵 그룹 스테이지를 앞두고 'TheShy' 강승록, 'Uzi' 젠쯔하오와 함께 벌금 징계를 받았다. 앞의 두 선수야 솔로 랭크에서 조금만 심보가 뒤틀려도 트롤링을 일삼는 등 멘탈에 문제가 많다는 사실이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진 터라 놀랍지도 않은데, 최연성의 경우 명색이 한 팀을 이끄는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벌금 징계를 받았다. 심지어 솔로 랭크에서 게임 하기 싫으면 그냥 강제 종료해버리기로 유명한 더샤이보다 500달러나 더 많은 벌금을 부과받았다. 내역은 더 가관인데, 약 80게임에서 다른 유저들로부터 리폿을 받았으며, 이는 9월 한달 솔로 큐의 70%를 넘는 게임 수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국내 팀 감독 중 유일하게 벌금형 징계를 받았다. 예전 징계와 더불어 인성 논란이 불거지는 중.최연성의 계정에서 보이는 정글 럼블 따위의 이상한 픽들과 뉴 메타를 찾아내는 아프리카 팀의 성향 때문에 빌드 실험을 솔랭에서 한 것이 문제가 되어 트롤링으로 신고당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다. 그러나 픽 트롤 가지고 무려 70퍼센트의 리폿률을 달성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진 않다. 백날 트롤 픽을 해도 게임을 던지지 않고 끝까지 진행하며 욕설 등을 하지 않았다면 리폿 사유는 아니다. 정글 럼블 정도가 아니라 정글 트페, 정글 코그모 같은 것을 해도 게임을 끝까지 열심히만 했다면 솔로 랭크에서는 리폿 안 되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고작 플래티넘 티어에서 픽 실험이라고 해봐야 프로 레벨에선 전혀 써먹을 거리도 아니다. 애초에 라이엇 측은 게임을 던진 것보다는 악성 글(toxicity)의 빈도수가 높다고 밝혔다.
조별 리그에서는 약팀으로 평가받은 G2에게 오만한 밴픽을 하더니 일방적으로 찢겨버렸다. 밴픽 자체는 코치의 역량이긴 하나... 다음날 플래시 울브즈에게 또 오만한 밴픽에 패배한 건 물론 G2가 퐁부에게 짐으로써 그 G2에게 간발의 차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진 게 말이 되냐며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다.
허나 1주차 마지막 퐁부를 이긴 것을 기점으로 플래시 울브즈-퐁부-G2를 연파하면서 4연승을 하는 저력을 보여주며 결국 1위로 진출, 1승 5패로 평가가 나락으로 떨어진 젠지와 최우범에 비해 평가가 훨씬 좋아졌다. 물론 성적 측면에서나 하는 말이고 최연성 개인에 대한 여론은 여전히 매우 좋지 않다(댓글창 참고). 애초에 논란이 된 부분이 성적보다는 인성적 요소였기 때문에, 설령 아프리카가 우승을 하더라도 인성질하는 감독이라는 오명은 절대 벗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8강에서는 약팀으로 평가받은 C9를 상대로 3:0 광탈이라는 기록을 썼다. 14 나진이나 18 kt처럼 중국 팀도 아니고 북미 팀 상대로 말이다. 밴픽도 안 좋았고 다 이긴 경기를 어이없이 뒤집히는 등 내용은 더 처참했다.
스토브리그에서는 kt의 유망주 유칼과 EDG의 감독 노페[96]가 최연성을 바라보고 들어왔다고 인터뷰에서 언급하며 선수와 코치진 사이에서는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8.3. 2019 시즌
그러나 롤챔스 스프링의 최종 순위는 충격의 8위. 같은 롤드컵 동지인 kt, 젠지와 함께 하위권을 깔아주었다.kt의 오정손처럼 무능하다는 평가는 많지 않지만, 일단 노페까지 들어왔는데 성적이 이 모양이다.[97] 유칼 폼의 급격한 하락과 유일하게 오더가 되는 스피릿의 노쇠화가 타격이 컸다. 스피릿의 노쇠화는 예상 범주 안이었지만 유칼 폼의 급격한 하락은 예상하기 힘들었을 듯.
게다가 유칼, 썬을 데리고 탑 서브인 브룩을 미드로 기용하거나, 작년에는 죽어라 욕먹으면서 에이밍을 쓰다가 폼 올라온 에이밍 대신 쏠을 기용한다거나 이상한 전략을 내는 등 명장놀이에 심취한 모습을 보여줬다. 다행히 시즌 후반 주전이 안정되고 드레드와 에이밍의 폼이 상승하면서 승강전행은 면하는 데 성공했다.
서머 시즌을 앞두고 아프리카 프릭스 단장으로 승격되었다. LOL 팀은 노페가 감독대행으로써 맡는다고. 그리고 피지컬이 뛰어난 선수들로 주전이 확정되면서 서머 시즌 아프리카의 경기력은 살아난 듯 보였지만, 오더가 하나도 되지 않으면서 정말 손으로만 플레이하는 뇌절 플레이가 이어지고 있다. 왜 스프링 때 최연성이 이 선수 저 선수 테스트 했는지 알 수 있는 듯한 모습.
8.4. 2020 시즌
단장에서 감독으로 다시 복귀했다. 새로 짠 로스터는 기존 기인-스피릿-드레드-썬-쏠-젤리에 플라이-미스틱이라는 다소 연령이 높은 선수들이 추가로 영입되었다. 플라이같은 경우 작년 젠지에서의 모습이 좋지 않아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케스파컵에서 준수한 폼을 보여주었으며, 거기에 기인-스피릿-미스틱의 캐리까지 더해 케스파컵에서 우승, 최연성 감독 최초의 우승 커리어를 추가하는 데 성공한다.엄청난 합을 보여주면서 우승후보로 부상한 아프리카는 상하체의 선전에, 럼블 서폿과 정글 약세 메타에서 카서스 픽 등 최연성 특유의 빌드를 시도하고 전부 성공하면서 3승을 달리고 있다. 미스틱이 픽하는 애쉬도 최연성의 추천 때문이라고. 다만 2주차 APK전의 부진이 옥에티. 그리고 며칠 뒤 DRX전 패배 이후로 팀의 약점들이 속속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당시 꼴등팀 KT한데도 발밴픽 끝에 지는 추태를 보였다. 그래도 1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드레드를 활용한 용병술과 밴픽으로 T1을 잡아내며 4강을 유지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2라운드에 들어서 밑도 끝도 없는 연패를 겪고 6위로 추락했다. 미스틱의 가정사가 있었다고 하지만 에이스 기인을 포함한 선수단이 전체적으로 깊은 부침을 겪었던 건 감독의 책임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2라운드 유일한 승리를 거두었던 그리핀전 pog 인터뷰에서 선수들의 분위기가 매우 다운되어 있었는데, 연패를 겪으며 전체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은 듯하다.
서머 시즌에는 조금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강팀에게는 쪽도 못 쓰고 발리면서 판독기라는 오명을 뒤집어썼고 최종 성적 역시 4위에 그쳤다. 그 후 선발전에서마저 T1에게 패배하며 롤드컵 진출에 실패한 것은 덤.
결국 2020년 11월 3일, 공식 팀 SNS를 통해 계약 종료 소식이 공지되었다.
계약 종료 이후에는 구직 소식은 커녕 이렇다 할 근황조차 전해지지 않고 있다.[98]
심지어 4년 후인 2024년에는 T1 창단 20주년 다큐멘터리인 <명가>에서도 박용욱과 함께 나오지 않을 정도로[99] 근황이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박태민 피셜로는 자신도 연락이 안된다고 하며 인터넷 댓글로 '청계천 쪽에서 가게를 하고있다.' 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출처나 사진 증거 조차도 없는 찌라시라서 여전히 근황은 묘연하다.
8.5. 평가
부임 초기 화제가 된 인터뷰를 보면 전반적으로 노력과 연습량을 맹신하는 모습이다.[100] 스타크래프트 시절의 훈련 경험을 리그 오브 레전드 쪽에 도입하려는 모습을 보여 e스포츠의 역사와 함께 한 감독답게 노련하다는 평도 나왔다. 특히 2018년에는 LCK 최초로 10인 로스터를 성공적으로 도입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매 시즌 5~6위를 전전하던 아프리카가 내부 스크림을 통해 엄청난 연습량과 분석으로 스프링 시즌 준우승까지 차지해 롤드컵 진출을 달성한 것은 분명한 성과였기 때문. 그 외에 2019년 케스파컵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중위권 팀으로 평가받던 아프리카에게 롤드컵 진출과 케스파컵 우승을 안겨준 것은 공로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최연성의 아프리카 부임 기간은 2017~2020년으로 결코 짧지 않기에 저것만으론 만족스러운 성과라고 하기만은 어렵다. 특히 해를 갈수록 성적이 오르기는 커녕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는데 2018년 롤드컵 진출을 달성하였다고는 하나 그 해 서머부터는 팀의 폼이 꾸준히 하락했기에 결국 롤드컵에서 매우 안 좋은 경기력과 함께 8강의 아쉬운 성적을 거두었다. 이후 최연성이 감독-단장으로 부임하는 기간 동안에 다시는 롤드컵 무대를 밟지 못 했고 2019년 스프링에는 충격적으로 8위를 기록해 승강전만 겨우 면하기도 했다.
최연성을 평가하는 데에는 다인 로스터를 빼놓을 수 없다. 10인 로스터에 대한 신봉이 꽤나 확고한 수준이었는데 2018년 이후로는 부임 내내 9~10인 로스터를 유지했다. 1라운드에 6인으로 시작한 시즌도 2라운드 어떻게든 채워서 10인을 만들었다. 그러나 2018 스프링 아프리카의 준우승 이후로 LCK에 10인 로스터 붐이 잠깐 불었을 뿐 이를 성공적으로 운영한 사례는 전 세계에서도 그닥 많지 않고 최종적으론 오히려 선수들에게 압박감만 가중시켜 안 좋은 결과만 낳는다는 쪽으로 돌아섰다.[101][102] 연습은 물론 중요한 요소지만 근성론에 기반한 연습량 증가와 스타크래프트식 내부 닭장 경쟁만으로는 어느 분야나 한계가 있다는 것이 중론이고, 노골적으로 스타크래프트 시절처럼 연습하면 된다고 하는 것이 신인 선수들에게 유효한 방식인지는 회의적인 시각이 생기게 되었다. 게임이 달라지고 시대가 달라졌음에도 여전히 스타크래프트 에이스-연습생 시절의 방식을 팀 운영에 도입하고 부임 기간 내내 이를 수정하지 않은 것은 실책이다.[103]
더불어 에이스-연습생의 구조를 어필한 것에 대비하면 그다지 유망주를 육성하거나 지켜내지 못 하기도 했다. 목표로 하는 구조에 맞게 아프리카의 주전 로스터는 대체로 스피릿 등을 위시한 베테랑 위주로 편성되었고 나이 어린 선수는 10인 로스터의 서브로 많이 활용되었다. 그러나 10인 로스터에 포함된 선수들 중 소리 없이 사라진 선수들도 적지 않고, 에이밍 같은 경우는 KT에 가서야 포텐이 터졌으며, 어린 나이부터 팀의 최고 에이스였던 기인의 폼은 과도한 캐리 부담에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최연성은 베테랑을 이용해 당장의 성적을 내는 데 주력하면서 유망주를 육성해 베테랑의 노쇠화를 미리 준비했는데, 정작 그 유망주는 아프리카에서 터지지 못하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거나 가능성이 보이는 선수는 타 팀에 뺏겨 거기서 빛을 보는 경우가 많았고, 결과적으로 아프리카 선수진은 꽤 젊은 편이었던 2018년과 달리 점점 나이 많은 노장 선수들만 팀에 포집한게 된 것이다.
또한 빌드 깎는 노인이라는 명성답게 부임 초기에는 스타에서의 날빌스러운 모습을 섞거나 날카로운 밴픽, 기습 챔피언 활용법 등 호평받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2020년 들어서는 허점이 많은 괴이한 밴픽이나 기인에게 캐리를 심하게 일임하는 운영 방식 등 전술적으로도 좋지 않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롤 선수 출신이 아니기에 밴픽 및 전술에서 본인을 보좌할 코치진이 필요했는데, 여러 면에서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채우철 코치를 2년이나 중용한 부분도 확실한 실책이라고 할 수 있다.[104]
그래도 폼 떨어진 선수들을 써먹는 능력만큼은 꽤 좋은 편이다. IM에서 피지컬은 좋지만 뇌지컬이 안좋아 게임을 자주 던진다는 평을 받은 투신을 리그 정상급 서폿으로까지 키워내기도 했고 전성기에 비해 피지컬이 죽어서 누가봐도 하위권 정글러였던 스피릿을 리그 중위권까지 끌어올렸고 젠지에서 라인전조차 버거워하던 플라이를 서부의 수문장 격으로까지 끌어올려서 리그 내에서 쵸비, 쇼메, Bdd 다음 가는 레벨까지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페이커만 만나면 벌벌 떨면서 라인에 서있지도 못하는 쿠로에게 오히려 상대 전적 우세를 안겨다주며 페이커 공포증을 극복시키는 등 선수의 고점을 높여주지는 못하지만 저점을 끌어올리는 역할은 잘 하는 편.
그런데 최연성의 마지막 시즌인 Afreeca Freecs/리그 오브 레전드/2020 시즌에 대한 평가를 보면 부임 초기와는 다르게 코칭 스탭에 대한 대한 아프리카 팬덤의 인식이 결코 좋지 않은 점을 알 수 있다. 오죽하면 이 분야에서 제일 안 좋게 평가받는 코칭 스탭 중 하나인 KT의 오창종 사단에 비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최연성이 나간 후 2021 스프링 시즌에 아프리카가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다시 재평가설이 솔솔 새어나오는 중이다. 일단 확실한 건 아프리카를 거쳐간 감독이 여럿 있었지만 그 어느 누구도 최연성 반만큼의 커리어도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 초창기 감독인 강현종과 19 시즌에 최연성을 대신해서 지도한 노페는 플옵과 선발전은 간신히 진출하긴 했지만 롤드컵을 가거나 타이틀 획득에는 실패했고, 현재 감독인 릭비는 아예 아프리카를 꼴찌 직전의 수렁으로 굴러 떨어뜨려서 LCK 준우승, 롤드컵 진출, 케스파컵 우승을 이끈 최연성에 비해선 그 누구도 나은 점이 없다. 그러나 정신을 차린 아프리카가 LCS에서 활동함으로써 걸출한 커리어를 가지게 된 장누리 감독을 데려온 후 팀의 문제점이 개선되어 가면서 21 스프링 시즌의 부진은 최연성의 부재 탓이 아니라 초짜 감독이었던 한얼에게 모든 걸 맡긴 아프리카 프런트의 잘못+뱅의 먹튀 때문인 것으로 결론이 났다.
요약하자면 중위권에 걸맞은 감독이자 최우범과 함께 연습 강조의 안 좋은 면을 보여주는 지도자. 분명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땐 2020시즌 판독기 역할을 하며 서부의 수문장 역할을 했던 것처럼 정상을 노릴 인물은 아니었어도 중간은 하는 감독이지만 아프리카 팬들이 최연성에 대한 평가가 나쁜 이유는 롤드컵을 꾸준히 갈 수 있는 강팀이 되고 싶은데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105]
최연성 유일 롤드컵 커리어였던 2018년도는 과대평가와 과소평가를 모두 받고 있다. 과소평가는 그래도 스프링 준우승-서머 3위 커리어를 하고도 에이밍 논란과 롤드컵 폭파로 박한 평가를 받음을 뜻하고, 과대평가는 그럼에도 안일하게 RR 결승에서 패하여 중국에게 우승컵을 넘기거나 전성기 기인 데리고 8강에서 북미팀 C9에게 셧아웃 패배로 당시 1-5를 찍은 젠지와 함께 LCK의 몰락에 쐐기를 박았기 때문이다. 다만 스쿼드 문제는 킹존 데리고 롤드컵 탈락이라는 대참사를 기록하여 온갖 조롱을 먹은 강동훈 덕분에 참작되는 분위기.[106]
9. 기타
- 프로게이머 임에도 무려 키가 191 이라는 농구선수 평균 키인 엄청난 장신으로 당시 국내 스타리그 선수들 중 최장신 이었다. 근데 시간이 지난 후 본인보다 더 큰 게이머가 본인 소속 팀에 생겼었다. 2007년 10월 24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서울 SK 나이츠와 부산 KTF 매직윙스의 경기에서 시투를 했는데, 2m에 육박한 외국인 선수들과도 키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았다. 시투 기사[107]
- 머슴처럼 생겼다고 해서 머슴이라는 별명이 있다. 그의 플레이 스타일과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어 공식 별명화되었다. 사실 이 별명이 처음 붙을 때는 살집이 퉁퉁하던 그의 과거와 임요환 옆에만 붙어다니며 인터뷰마다 요환이 형님을 언급하는 행적 때문에 황제의 머슴이라는 좋지 않은 뜻이 있었으나, 그냥저냥 희석된 듯. 가진 것 중 그나마 좋은 별명이 괴물이라서 에버 스타리그 결승전은 '황제 vs 괴물'로 홍보되었다.
- '임요환 머리, 최연성 머슴, 이윤열 머신'의 통칭인 머씨 삼형제로 불리기도 하며 특히 이윤열과 최연성의 경기는 머머전이라고 부른다. 임요환도 마찬가지로 머씨 형제 중 한 명이긴 하지만 머리라고 불리진 않고 임대가르시아라 불렸다. 그래서 머머전이라는 말은 최연성과 임요환 대전에서는 쓰이지 않고, 사제지간 매치라는 점이 더 부각되는 편이다.
그리고 다른 쪽으로 더 부각받기도 하고...
- 2017년 9월 17일 자로 아프리카TV 개인방송을 시작했다. 주소는 여기. 다만, 개인방송을 한 적이 없어서인지 세팅하는데 애를 먹는 모습을 보여줬다.
사실은 롤 감독에 집중해서인지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가 없었다는 아니고 스2때 맵핵 쓰다 걸리고 정지먹어서 못사는 거임.
- 어느 순간부터 거주지가 청계산으로 나왔다. 실제 거주지는 불명이나 청계산 인근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그의 유명한 명언 중 하나인 과거의 영광에 취한 자는 죽은 자다[108]라는 명언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으며 그 명언으로 인해 과거에 잘했던 선수들이 나중에 부진하게 될 때마다 최연성이 계속 1승을 추가하고 있다.
10. 주요 기록
브루드 워 오프라인 개인 리그 결승전 및 3,4위전 취득 상금 총합: 1억 2천만 원 + $ 30,000 + 9만 5천 위안10.1. 주요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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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eR 임요환 ★ | NaDa 이윤열 ★ | NaDa 이윤열 ★★ | NaDa 이윤열 ★★★ | |
Stout MSL | TG삼보 MSL | 하나포스 센게임 MSL | Spris MSL | |
Nal_rA 강민 ★ | iloveoov 최연성 ★ | iloveoov 최연성 ★★ | iloveoov 최연성 ★★★ | |
당신은 골프왕 MSL | 우주닷컴 MSL | CYON MSL | 프링글스 MSL 시즌1 | |
GoRush 박태민 ★ | 기록 말소[1] | ChoJJa 조용호 ★ | 기록 말소[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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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dong 이제동 ★ | Never_V_ 박지수 ★ | Bisu 김택용 ★★★ | 기록 말소[2] | |
아발론 MSL 2009 | NATE MSL | 하나대투증권 MSL | 빅파일 MSL | |
Calm 김윤환 ★ | Jaedong 이제동 ★★ | FlaSh 이영호 ★ | FlaSh 이영호 ★★ | |
피디팝 MSL | ABC마트 MSL | MSL 폐지 | ||
hydra 신동원 ★ | FlaSh 이영호 ★★★ | |||
[1] 마재윤(sAviOr)의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 가담으로 인해 영구 제명으로 인한 기록 말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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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GC 2000 GoRush 박태민 ★ | WCG 2001 BoxeR 임요환 ★ | WCG 2002 BoxeR 임요환 ★★ | WCG 2003 기록 말소[1] | WCG 2004 XellOs 서지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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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G 2005 fOru 이재훈 ★ | WCG 2006 iloveoov 최연성 ★ | WCG 2007 Stork 송병구 ★ | WCG 2008 기록 말소[2] | WCG 2009 Jaedong 이제동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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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G 2010 FlaSh 이영호 ★ | WCG 2011 Mvp 정종현[3] ★ | WCG 2012 PartinG 원이삭 ★ | WCG 2013 Soulkey 김민철 ★ | WCG 2019 Maru 조성주[4] ★ | |
[1] 이용범(Ogogo)의 특수 절도 혐의로 인한 영구 제명으로 인해 기록이 말소되었다. | |||||
[2] 박찬수(Practice)의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으로 인한 영구 제명으로 인해 기록이 말소되었다. | |||||
[3] 스타크래프트 2로 종목 변경. | |||||
[4] 정식 종목이 아닌 초청 종목이다.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FFF> | 스타리그 역대 4강 진출자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000000> | 스타리그 역대 4강 진출자 |
10.1.1. 개인 리그
2003년 WCG 2003 최종 예선 16강(vs. 이병민 0:1)2003년 iTV 신인왕전 우승(vs. 차재욱 3:0)
2003년 TG삼보 MSL 우승(vs. 홍진호 3:0)(우승 상금: 2,000만 원)
2004년 하나포스 센게임 MSL 우승(vs. 이윤열 3:2)(우승 상금: 2,500만 원)
2004년 Gillette 스타리그 2004 3위(vs. 나도현 3:2)[109](3위 상금 : 500만원)
2004년 iTV 7차 랭킹전 준우승(vs. 박성준 1:3)
2004년 Spris MSL 우승(vs. 박용욱 3:2)(우승 상금: 2,500만 원)
2004년 EVER 스타리그 2004 우승(vs. 임요환 3:2)(우승 상금: 2,000만 원)
2005년 당신은 골프왕 MSL 패자조 4강(vs. 서지훈 1:2)[110]
2005년 아이옵스 스타리그 16강
2005년 우주닷컴 MSL 4위(vs. 박정석 0:3)
2005년 EVER 스타리그 2005 8강(vs. 서지훈 0:2)
2005년 So1 스타리그 3위(vs. 박지호 3:2)[111](3위 상금 : 500만원)
2005년 CKCG 2005 우승(vs. 이윤열 2:1)(우승 상금: 8만 위안)
2005년 WEF 2005 준우승(vs.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 우승(vs. 박성준 3:0)(우승 상금: 2,000만 원)
2006년 CYON MSL 3위(vs.
2006년 프링글스 MSL 시즌1 8강(vs. 박용욱 1:2)
2006년 1회 E스포츠 대상 4관왕(최우수 테란/물량/다승/최우수 선수)
2006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1 24강
2006년 WCG 2006 한국 대표 선발전 1위(vs. 전상욱 2:1.)
2006년 IEF 2006 준우승(vs. 이윤열 1:2)(준우승 상금: $ $ 5,000)
2006년 WCG 2006 브루드 워 부분 우승(vs. 박성준 2:1)(우승 상금: $ 25,000)
2007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 16강(vs.
2007년 Daum 스타리그 16강
2007년 곰TV MSL 시즌2 16강(vs. 이성은 1:2)
2007년 IEF 2007 3위(vs. 류오시안 2:1)[112]
2007년 WCG 2007 한국 대표 선발전 16강(vs. 박영민 0:2)
2007년 곰TV MSL 시즌3 16강(vs. 박성균 1:2)
2008년 곰TV MSL 시즌4 32강
2009년 IeSF 스타 인비테이셔널 클래식 8강
10.1.1.1. 전적
최연성의 스타크래프트 양대 개인리그 A매치 통산 전적 | |||
방송사 | 온게임넷 A매치 총 전적 | MBC게임 A매치 총 전적 | 양대 개인리그 합산 전적 |
vs 테란 | 49전 27승 22패(55.1%) | 46전 28승 18패(60.9%) | 95전 55승 40패(57.9%) |
vs 저그 | 34전 22승 12패(64.7%) | 30전 18승 12패(60.0%) | 64전 40승 24패(62.5%) |
vs 프로토스 | 27전 15승 12패(55.6%) | 41전 25승 16패(61.0%) | 68전 40승 28패(58.8%) |
총 전적 | 110전 64승 46패(58.2%) | 117전 71승 46패(60.7%) | 227전 135승 92패(59.5%) |
10.1.2. 팀 단위 리그
2003년 KTF EVER Cup 온게임넷 프로리그 우승[113]2004년 LG IBM MBC GAME 팀리그 우승[114]
2004년 SKY 프로리그 2004 1Round 준우승
2004년 Tucson MBC GAME 팀리그 우승
2005년 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 우승
2005년 SKY 프로리그 2005 후기리그 우승
2006년 SKY 프로리그 2005 그랜드 파이널 우승
2006년 SKY 프로리그 2006 전기리그 우승
2007년 SKY 프로리그 2006 통합 챔피언전 준우승
2008년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 3위
2009년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08-09 4위
2009년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우승
2010년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준우승
2011년 신한은행 위너스 리그 10-11 우승
2011년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 준우승
10.2. 통산 프로리그 개인전[115]
시즌 | 승 | 패 | 승률 |
KTE EVER 프로리그 2003 | 8승 | 1패 | 87.5% |
네오위즈 피망리그 2003 | 5승 | 2패 | 71% |
LG IBM MBC게임 팀리그 | 13승 | 2패 | 87% |
투싼 MBC게임 팀리그 | 2승 | 1패 | 67% |
SKY 프로리그 2004 | 7승 | 4패 | 64% |
MBC 무비스 팀리그 | 3승 | 2패 | 60% |
SKY 프로리그 2005 후기 | 8승 | 2패 | 80% |
SKY 프로리그 2006 | 5승 | 4패 | 56% |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 9승 | 8패 | 53% |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 4승 | 3패 | 57% |
11. 스타크래프트 2: 군단의 심장[116]
-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2014 1라운드 준우승[117]
-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2014 2라운드 5위
-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2014 3라운드 우승
-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2014 4라운드 준우승
-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2014 통합 포스트시즌 준우승
-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2015 1라운드 우승[118]
-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2015 2라운드 2위[119]
-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2015 3라운드 우승[120][121]
-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2015 4라운드 준우승[122]
-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2015 통합 포스트시즌 우승[123]
- 2015 대한민국 e-스포츠 대상 스타크래프트 2 최우수 지도자상[124]
12. 논란 및 사건 사고
12.1. 스타크래프트 시절
12.1.1. 이중 계약 사건
팀 내에서 팀원과의 불화로 인하여 이적하려고[125] 2005년 2월 19일 KTF와 계약을 맺은 뒤 계약이 끝나는 4월 15일에 입단하기로 했었다.[126] 그러나 4월 12일 SKT T1과 재계약하고 잔류를 선택했다. SKT와 계약된 상태에서 KTF와 계약을 하였으므로 이중 계약을 한 것인데, 규정을 보면 이중 계약에 대한 제재 항목이 없어서 당시 규정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계약이었다.어느 스포츠에서나 이중 계약은 해당 스포츠판을 뒤흔드는 중대한 문제로 규제를 하고 있는데, 그때까지 이중 계약 제재 규정이 없었다는 사실만으로도 KeSPA가 가루가 되도록 까여야 하는 사안이었다. 이 사건으로 KeSPA는 급하게 이중 계약 제재 규정을 신설했고, 최연성에 대해서도 소급 적용하여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결국 최연성은 2005 시즌 전기리그 출장 정지를 당했고 후기리그가 돼서야 출전하게 되었다. 단, 개인리그는 해당 사항이 없어서 멀쩡히 참가했다.
이 사건 이후 그의 계약 업적을 기리기 위해 최연성은 SKTF 소속의 죄이중 선수라고 불리게 되었다. 또한 그에 관련된 표현은 모두 이중으로 써야 한다. 예를 들자면 이중 드랍(글을 두 개씩 세우는 것), 이중 댓글(같은 댓글을 두 개씩 다는 것), 이중 등록(박정석과 최연성의 경기를 뜻함) 등이 있다. 사실 일부러 같은 댓글을 2개씩 쓰는 콩드립 문화는 최연성의 이중 드립이 원조였다. 그리고 그의 장기였던 더블 커맨드도 이중 커맨드라고 불렸다.
또한 이 사건은 e스포츠에서 FA 제도가 생기는 계기 중 하나[127]가 되었다.
절대 좋은 의미에서 생겨난 별명은 아니지만 팬들도 이중이라는 별명을 별 거부감 없이 사용하며, 심지어 최연성 본인조차도 디씨 최연성 갤러리에 인증 글을 이중으로 쎄운다거나, 다음 스타리그 조 지명식의 '이중 트릭' 등의 발언을 하기도 하고, 나아가 기타 T1 선수들끼리 자체적으로 만든 짤방에도 등장한다. 이런 걸 보면 최연성 본인도 이중이라는 별명을 그냥 즐기는 듯. 이후에는 콩이 스타판을 넘어 대중적으로도 인지도를 얻게 되면서, 같은 글을 두 번씩 이중으로 쓰는 것도 그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제대 후 스타행쇼 시즌 3에 출연해서 친 자폭 멘트. 이중 계약 때문에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아 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에서 SKT T1의 우승을 관중석에서 구경했다.[128]
한편 13년이 지나 2018년 3월 아프리카 프릭스 게임단 감독직을 수행하던 중 팀원인 에이밍 선수의 일베 논란으로 과거 이중 계약 사건이 거론되고, 이 과정에서 최연성 감독까지 싸잡아 인신공격을 당하자 입장 표명과 당시 이중 계약이 벌어진 상황에 대해 설명했는데, 이 말대로라면 과거 SKT T1은 희대의 양아치 게임단이었고 팬들의 비난을 혼자 감수한 최연성은 대인배가 되어버린다.[129] 이하는 입장 표명 글 중 이중 계약에 대한 해명 부분이다.
또한 제가 성적 만능주의를 가진 감독이기에 이런 결정을 내린 것도 아닙니다.
일각에서는 제가 이중계약도 한 인성이니 당연한 결정 아니겠냐는 의견도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14년만에 제 나름의 해명을 할까 합니다.
2005년 경에 팀 내 불화와 소외가 극에 달했고, 회사 측에 꾸준히 중재를 요청했으나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당시 제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 드리자면, 대회 전날 저와 연습해야 할 해당 종족 선수들이 연습생들까지 데리고 외출해버려
연습을 위해 아마추어를 찾아야 할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그래서 타 팀으로의 이적을 맘 먹고 계약을 진행하려던 것이 저를 지키려던 부모님의 결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결론은 이중계약이 되었는가를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로는 사전접촉과 이중계약이라는 중요한 룰을 몰랐던 저희의 실책입니다.
둘째로는 그 실책을 빌미로 한 강요와 회유 때문입니다.
당시 관계자가 이대로 이적하면 게임단을 해체하겠다는 말을 했고, 그 말은 일개 선수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부담이었습니다.
반대로 팀에 남게 되면 최선을 다해 방어해 주겠다, 결코 제게는 피해가 가지 않게 하겠다고 했던 약속을 믿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타 팀 계약서가 효력을 발휘하기 직전에 동등한 조건의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이후로는 팬 여러분도 아시는대로입니다.
단지 마음이 편한 곳에서 게임하고 싶었을 뿐인데, 저는 돈을 쫓아 이중계약을 한 인성 바닥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결코 피해가 가지 않도록 계약해지를 해주겠다던 관계자의 약속과는 다르게, 출장정지와 벌금이라는 징계도 받았습니다.
언론과 여론은 연일 제게 돌팔매질을 해댔으나, 아무도 저에 대한 해명과 도움은 없었습니다.
모두들 제가 잘못했다 인정하고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조용하게 일을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다그쳤습니다.
그 뒤로 저는 14년 동안 이중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침묵하고 잊고 살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제 평판으로 인해 선수들에게도 피해가 가는 지금의 상황을 마주하니
그게 정답이 아니었다는 후회가 들어 뒤늦게 털어놓습니다.
일각에서는 제가 이중계약도 한 인성이니 당연한 결정 아니겠냐는 의견도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14년만에 제 나름의 해명을 할까 합니다.
2005년 경에 팀 내 불화와 소외가 극에 달했고, 회사 측에 꾸준히 중재를 요청했으나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당시 제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 드리자면, 대회 전날 저와 연습해야 할 해당 종족 선수들이 연습생들까지 데리고 외출해버려
연습을 위해 아마추어를 찾아야 할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그래서 타 팀으로의 이적을 맘 먹고 계약을 진행하려던 것이 저를 지키려던 부모님의 결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결론은 이중계약이 되었는가를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로는 사전접촉과 이중계약이라는 중요한 룰을 몰랐던 저희의 실책입니다.
둘째로는 그 실책을 빌미로 한 강요와 회유 때문입니다.
당시 관계자가 이대로 이적하면 게임단을 해체하겠다는 말을 했고, 그 말은 일개 선수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부담이었습니다.
반대로 팀에 남게 되면 최선을 다해 방어해 주겠다, 결코 제게는 피해가 가지 않게 하겠다고 했던 약속을 믿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타 팀 계약서가 효력을 발휘하기 직전에 동등한 조건의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이후로는 팬 여러분도 아시는대로입니다.
단지 마음이 편한 곳에서 게임하고 싶었을 뿐인데, 저는 돈을 쫓아 이중계약을 한 인성 바닥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결코 피해가 가지 않도록 계약해지를 해주겠다던 관계자의 약속과는 다르게, 출장정지와 벌금이라는 징계도 받았습니다.
언론과 여론은 연일 제게 돌팔매질을 해댔으나, 아무도 저에 대한 해명과 도움은 없었습니다.
모두들 제가 잘못했다 인정하고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조용하게 일을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다그쳤습니다.
그 뒤로 저는 14년 동안 이중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침묵하고 잊고 살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제 평판으로 인해 선수들에게도 피해가 가는 지금의 상황을 마주하니
그게 정답이 아니었다는 후회가 들어 뒤늦게 털어놓습니다.
해당 부분에 대해 SKT T1의 공식 답변은 없었다. 하기야 당시 관계자들이 다 떠난 시점이니 최연성도 이런 말을 뒤늦게 털어놓을 수 있었을 테지만. 그토록 존경하는 임요환과 다른 팀을 각오해가면서까지 떠나려고 했던 건, 팀 내 불화가 최연성의 게이머 인생에 관련될 만큼 심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12.1.2. 귀맵 논란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 16강 최연성 대 안기효의 경기(맵 러시 아워 2)에서 비롯된 논란. 안기효가 11시 지역에 스타게이트를 지으면서 몰래 캐리어를 준비하는 와중에 최연성은 벌처 정찰을 통해 상대 추가 멀티가 있나 정찰하고 있었고 11시 지역도 벌처 정찰을 보냈으나 미네랄 지역만 확인하고 바로 벌처를 이동시켜서 스타게이트는 확인하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많은 최연성의 팬들이 안타까운 탄식으로 샤우팅을 해댔고 이에 반응이라도 한 듯 최연성의 벌처가 기수를 돌려 다시 11시 지역을 꼼꼼히 정찰, 스타게이트를 확인해냈다. 참고 영상경기는 결과적으로 안기효가 승리했지만, 팬들의 샤우팅 후에 벌처 정찰 방향이 바뀐 점 때문에 이 플레이에 대한 귀맵 논란이 일면서 이로 인해 한때 그의 별명이 귀이중(귀맵 + 이중 계약)인 적이 있었다.이 귀맵 논란은 다른 경기에서도 종종 있어 왔던 일인지라 이 경기를 통해 각 방송사에서 이에 대한 대처를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타임머신이란 장비를 실내에도 들여 놓는 계기가 되었다. 예로 MBC GAME의 세중게임월드 경기장 방음 강화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전해서 없어진 곳인 데다 방음 강화라고 해도 딱히 효과는 없었다는 게 중론.12.1.3. 도발 논란
08-09 시즌 프로리그 광안리 결승전에 각 팀의 각오를 들어보는 출사표에서 "화승 오즈의 우승은 e스포츠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는 발언을 하여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외에도 코치진이 한상용 하나밖에 없는 화승은 우릴 이길 수 없다는 도발까지.[130] 단순한 도발이라며 긍정하는 쪽도 있지만, 대체적으론 망언을 저질렀다는 맹비판이 더 많았다. 이 시기에 그의 신분은 플레잉 코치였기 때문에, 출전해서 이제동 선수에게 커맨드 몇 개 먹히고 나면 도움이 될지 안 될지 판단 가능할 것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은 개드립이었다. 또한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도 화승 팬들은 최연성을 인격 파탄자로 취급하고 있다. 그리고 최연성의 발언 덕에 이날 김태균의 발언은 묻혔다. 하지만 내용만 보면 "종족별 코치진이 있는 등 이런저런 투자를 많이 한 SKT가 별 투자가 없는 화승에게 지면 문제가 있다"라는 내용이다.그리고 2010년 8월 7일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열린 09-10 시즌 프로리그 결승전에서 저번과 같이 KT 롤스터를 상대로 도발을 했으나 졌다. 도발 내용은 "KT는 하위 팀에 이영호 애드온", "6강 PO를 걸쳐서 우리가 경험을 많이 쌓고 왔다. 5전제는 항상 이영호+3명 중 1명 이기고 에결 식이더라. 7전제는 모른다. 우리가 유리하다" 정도였다. 그러자 강도경이 "우리 5라운드에서 이영호 없이 T1 이겼는데 코치가 돼서 자기팀 경기도 안보나봐요? 6강 PO는 못하는 팀이나 하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조사를 잘못 하셨네요. 우리 팀 이영호 빼고도 2위입니다. 코치 되시는 분이 조사를 다음에는 더 잘하시고 오세요"라고 역관광을 보냈다. 경기에서 엔트리로 승리를 거두려고 했지만 그것마저 완전히 간파되며 완벽히 패배하고 말았다.[131]
이후 정말 7전제 리그가 되자 KT가 하위권으로 추락함으로써 그 말이 개드립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해버렸다. 거기에 T1은 1라운드 전승. 그런데 12월 7일, 최연성이 KT 롤스터가 10위로 최하위로 떨어지는 걸 보고 자신의 미니홈피에 상대 팀 KT를 도발, 아니 조롱하는 듯한 말을 대문에 올렸다. 당시 순위표의 SK와 kt에 동그라미를 쳐서 강조하고 밑에 "ㅋㅋㅋㅋㅋ"를 도배해 뒀다.
이것 때문에 도가 지나친 것 아니냐는 사람들과 이 정도 도발은 인정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사람들이 팬 사이트 등지에서 논쟁을 벌였다. 그리하여 당연하지만 최연성의 각종 도발 등으로 그를 싫어했던 사람들은 이때다 하고 미친 듯이 최연성을 까고 또 깠다. 이 얘기가 무슨 얘기인지 궁금한 사람은 이 기사를 참고하자.
근데 이영호의 MSL 조 지명식 드립에 있는 쪽 다 팔리고 역관광을 당했다.[132]
그리고 얼마 안 지나 12월 11일, 최연성이 이 문제의 도발에 대한 해명을 했다. e스포츠계를 위한 도발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로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자기 팀인 SKT T1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한 조치이고, 또 하나는 라이벌인 KT 롤스터의 분발을 촉구하자는 뜻에서 한 거라고 한다. 한 마디로 이번 도발을 계기로 SK텔레콤 팬이나 KT 팬이 프로리그 경기장을 가득 채우면 침체되어 있는 이스포츠에 조금이라도 활력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의미에서 한 도발이라는 얘기이다. 이에 "웃기지 마라", "그걸 누가 믿느냐"라며 다들 비웃었지만 시청률과 오프 인원이 개인 리그 4강급으로 나와 수치만 보면 그대로 증명되었다. 물론 도의적인 문제는 이런 걸로 해소되는 게 아니지만...
아무튼 이로써 2010년 12월 15일에 펼쳐진 SKT T1과 KT 롤스터의 대결에 좋은 떡밥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팀이 2:4로 졌고, 게다가 에이스 라인인 도재욱, 김택용, 정명훈 라인이 모두 무너지면서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게다가 역으로 강도경에게 도토리 관광까지. 그도 그럴 것이, 이날 도재욱은 이영호에게 희대의 개관광을 당하면서 1위의 체면이 땅에 떨어져 버렸다. 도재욱의 썰에 의하면 이 날 분위기가 상당히 안 좋았던데다 최연성은 크게 화가 나 있었다고 회고했다.
참고로 포모스 기사에 따르면 12월 15일 SKT T1과 KT 롤스터의 경기는 지상파 포함 전체 시청률 4위라는 위엄을 보여줬다. 기사 당연하다는 듯이 최연성을 옹호하는 팬과 까는 팬들이 나왔다.
그런데 2011년 3월 16일, 그 디스했던 KT 롤스터가 SKT T1을 올킬해버리고 전체 1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이날 경기에서 지난번 도토리 100개 관광에 이어 또다시 세레모니 관광을 당하는 굴욕을 당하고 말았다. 4월 9일 SKT T1과 KT 롤스터가 위너스리그 결승에서 만나는데, 이기는 측의 세레모니가 기대되는 이유.
위너스리그 결승에서는 입장이 입장인지라 강도경이 선공을 때려 박았는데 "스코어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KT와 SKT는 라이벌이 될 수 없다"라고 하자 최연성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생각은 자유"라며 민주주의 드립을 쳤다. 그리고 그 결과는 SKT T1의 대승. 티원은 숨겨진 왕의 파워를 앞세워 압도적으로 이겼다.
롤 감독으로 넘어간 뒤에는 별다른 언행에 따른 논란은 없는 편. 일단 무엇보다 팀이 좋은 성적이 나와야 도발도 가능하니(...).
12.2. 리그 오브 레전드 시절
12.2.1. 에이밍 일베 논란 비호 사건
2018년 서브 원딜인 '에이밍' 김하람이 일베 논란[133]이 일어난 상황에서 '변명으로 일관한 사과문 + 다음 경기 '에이밍' 김하람 선발 출전'으로 논란을 만들었다. 본인이 원해 징계를 유보했다며 선수를 사건 다음 날 경기에 출전시키는 바람에 아프리카는 비슷한 시기 논란이 터진 다른 두 팀보다 뒤늦은 대응을 해서 팀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었다. 상세는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일베 논란 문서 참조.12.2.2. 빈번한 욕설 징계
2017년 스프링 시즌 개최 전 코칭 스태프 및 선수 전원에 대해 게임 내 불건전 행위 내역을 조회한 결과 최연성 감독이 게임 내 욕설 사용으로 제재를 받은 기록이 확인되었다. 이에 50만원의 벌금과 사회 봉사 20시간 징계를 적용받았다.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2018년 월드 챔피언십 그룹 스테이지를 앞두고 'TheShy' 강승록, 'Uzi' 젠쯔하오와 함께 벌금 징계를 받았다. 앞의 두 선수야 솔로 랭크에서 조금만 심보가 뒤틀려도 트롤링을 일삼는 등 멘탈에 문제가 많다는 사실이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진 터라 놀랍지도 않은데, 최연성의 경우 명색이 한 팀을 이끄는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벌금 징계를 받았다는 점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심지어 솔로 랭크에서 게임 하기 싫으면 그냥 강제 종료해버리기로 유명한 더샤이보다 500달러나 더 많은 벌금을 부과받았다. 내역은 더 가관인데, 약 80게임에서 다른 유저들로부터 리폿을 받았으며, 이는 9월 한달 솔로 큐의 70%를 넘는 게임 수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국내 팀 감독 중에선 유일하게 벌금형 징계를 받았다.[134] 예전 징계와 더불어 인성 논란이 불거지는 중이다.
최연성의 계정에서 보이는 정글 럼블 따위의 이상한 픽들과 뉴 메타를 찾아내는 아프리카 팀의 성향 때문에 빌드 실험을 솔랭에서 한 것이 문제가 되어 트롤링으로 신고당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다. 그러나 픽 트롤 가지고 무려 70퍼센트의 리폿률을 달성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진 않다. 백날 트롤 픽을 해도 게임을 던지지 않고 끝까지 진행하며 욕설 등을 하지 않았다면 리폿 사유는 아니다. 정글 럼블 정도가 아니라 정글 트페, 정글 코그모 같은 것을 해도 게임을 끝까지 열심히만 했다면 솔로 랭크에서는 리폿 안 되는 게 당연하고, 해당 픽에 기분이 나쁜 유저들이 있더라도 저렇게 많은 리폿수를 달성할 수는 없다. 그리고 고작 플래티넘 티어에서 픽 실험이라고 해봐야 프로 레벨에선 전혀 써먹을 거리도 아니다. 애초에 라이엇 측은 게임을 던진 것보다는 악성 글(toxicity)의 빈도수가 높다고 밝혔다.#
기본적으로 리그 오브 레전드의 규정집에는 프로답지 못한 행동에 대한 규제가 있고 이는 희롱, 성희롱, 게임 내 제재, 차별 및 폄하 등등의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다. 이를 선수들에게 교육시켜도 모자란 감독이 오히려 빈번히 제재를 당하는 것은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는 모습은 아니다. 레전드급 선수에서 시작해 코치를 거쳐 감독이라는 무거운 자리까지 오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행위가 계속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선수 시절에도 온갖 언행 논란으로 욕을 먹은 사람이 치기어린 20대 시절도 아니고 30대 중반이라는 중후한 나이를 먹었음에도 이런 짓을 계속 하는 것이다.
[1] 한때 이 ID에 대한 러브 스토리가 유행하여 사실인 줄 아는 스타 팬들이 많았으나, 픽션이다. 네이버 지식iN 답변 탓에 이 글의 저자가 개그맨 김기열로 잘못 알려져 있었는데, 실제로는 pgr21의 추천 게시판까지 올라갔던 같은 내용의 글('박진호'라는 아이디의 인물이 작성)이 하루 먼저 작성되었으며, 김기열 본인도 저자가 아니라며 부정하였다. 김기열 문서 참고. 사실 익산에 ilove를 쓰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처럼 되고 싶어서 먼저 ilove를 쓰고, 뒤에 무엇을 붙일까 생각하다가 자신이 이기고 나면 채팅에 OOv를 쓴다는 점을 떠올려 oov를 붙여 아이디를 만들었다고 한다. OOv는 손가락 v 사인을 표현한 것으로 '내가 이겼지롱' 하고 약올리는 의미였다고 한다.[2] 은퇴는 했지만 프로게이머 자격증은 반납하지 않았기에 여전히 케스파 랭킹에 등재되어 있고, 09-10 신한은행 프로리그 올스타전 후보 명단에도 추가되어 있었다. 이런 식으로 은퇴는 했지만 자격증은 반납하지 않은 선수가 대표적으로 주진철, 전태규, 윤종민, 강민, 박종수, 손재범 등이 있다.[3] 길드 내에서 이윤열과 본인만 유일하게 테란을 했었다고 말했는데, 이 사실을 이윤열은 최연성이 언급하기 전까지 모르고 있었다.[4] 지금이야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당시만 해도 피자가 그렇게까지 대중적인 음식은 아니었다.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초등학생들이 맥도날드에서 생일파티를 할 정도로 햄버거나 피자 등 양식이 널리 퍼지지 않았고 2000년대 초반부터 대중적인 식사가 되기 시작했던지라, 당시로서도 좀 드물긴 하지만 외진 곳에 살거나 가난하거나 하다면 가능한 이야기. 반면 컴퓨터는 1990년대부터 정부정책으로 보급에 열을 올렸기에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다.[5] 특히나 당시 결승전 상대가 홍진호였는데, 결승전 전까지 8강 조용호를 제외한 모든 경기를 역상성인 테란을 만났음에도 단 한세트도 내주지 않고 결승에 올라왔다. 아무래도 당시 홍진호는 노련한 베테랑이었고, 테란을 상대로 최근 10경기동안 9승 1패를 기록할 정도로 원체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기에 세간에서는 홍진호의 우세를 점쳤으나 정작 결승전에서 최연성이 3:0으로 셧아웃을 시켜버렸다.[6] 당시 최연성의 임팩트를 롤판으로 비유해 보면 2014년 마타의 영향력과 2015년 마린의 파워 두 가지를 한번에 보여준 셈이다. 참고로 마타와 마린은 지금도 선구자 겸 역체 포지션 후보로 고평가받고 있다. 후속작에서는 핀란드에서온 기계 요나 소탈라가 2018년부터 대각성해 우승할 수 있는 대회는 모조리 휩쓸고 다녔는데 세랄이 보여준 압도적 임팩트가 최연성이 보여준 임팩트와 비슷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7] 공교롭게도 소속팀 T1의 후배 테란이자 애제자인 정명훈도 비슷하게 출전한 모든 프로리그 결승전에서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총 6전 전승을 기록하였다.[8] 다만 임요환은 마이크로 컨트롤에 강하고 물량이 많아지면 오히려 집중력이 떨어지는 스타일이라 한 번 승기를 잡으면 그대로 몰아쳐서 경기를 빠르게 끝내버리는 전략을 많이 구사하는 반면 최연성은 전투 승리로 얻은 이득을 끊임없이 자원 쪽으로 투자하여 승리의 가능성을 안정적으로 올려나가고 최종적으로 경기의 승패에 말뚝을 박아버리는 물량 차이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사용한다.[9] 단, 03~04 시절의 동양-T1은 저그 개인전 카드가 문자 그대로 없었다. 더 정확히는 동양 창단 멤버 중 저그 유저 자체가 이창훈밖에 없었고, 이창훈은 프로리그 시작부터 사실상 팀플 전담 멤버였다. 프로토스는 IS에서 김성제를 데려왔고 창단 직후 한빛에서 박용욱까지 데려오며 그런대로 굴러갔었지만, 저그는 팀이 T1으로 재창단된 이후에 04년 여름 성학승을 데려온 것이 첫 외부 영입이었다. 심지어 그 성학승조차도 개인전에선 지지부진했기에 결국 04시즌 종료 후 박태민을 거액의 이적료로 데려왔으나, 그의 뒤를 받쳐줄 저그라인은 여전히 부실했었기에 저그를 꺼내들만한 개인전 전장에서는 사실상 박태민이 고정적으로 출전하는 수준이었다. T1 이적 이후 박태민의 기량이 상대적으로 떨어진 것은 본인이 밝힌 연습방식의 차이뿐만이 아니라 이런 점도 복합적으로 작용한 셈이다.[10] 이런 특성 탓에, 그의 스타일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를 빌드 깎는 노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11] 최연성은 이윤열에게 상대전적에서 매우 앞서기 때문에 이윤열에게 감정이 좋지 못했던 임요환 팬덤은 열렬히 최연성을 지지했다. 물론 안티들은 플레이 스타일도 전혀 다른데 임요환한테 배운 게 뭐냐고 깐다.[12] KPGA 투어 리그 포함[13] 오타가 아니다. 홍진호 문서 참고.[14] 게다가 당시 저그들은 지금에 비해 전투력이 형편없었다. 박성준이 등장하기 전까지 저글링은 바이오닉에 녹아내리는 게 당연한 유닛이었으며 뮤탈짤짤이도 존재하지 않았고, 러커조차 영 기를 못 펴던 시절이라 다수 모인 테란 병력을 상대할 방법이 마땅히 없었다. 지금 같았으면 충분히 테란 병력을 쌈싸먹고 남을 병력으로도 줄줄이 녹아내리는 경우가 허다했으니 더더욱 답이 없었을 것이다.[15] 다수의 멀티를 통해 물량을 뽑아내는 최연성과 달리 이윤열은 달랑 앞마당 하나 먹고도 불가사의한 물량을 쏟아냈다. 피지컬도 그렇지만, 이윤열 항목에도 서술되어 있듯 자원 최적화 부분에서 특히 뛰어났기 때문이다. 앞마당 먹은 이윤열이라는 말 역시 그래서 나왔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윤열도 최연성과 비슷하게 초창기엔 재미없는 플레이를 한다며 욕하는 사람이 많았다.[16] 비유하자면 임요환이 전장에서의 전략, 전술에 능한 장군이라면, 최연성은 병력과 보급품을 충원하고 전장에 수송하는 보급 및 행정을 최적화하는 우수한 행정가에 좀더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17] 그러나 당시의 최연성은 이를 굳이 해명하지 않았고, 오히려 도발적인 인터뷰로 응수하며 남들이 생각하던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최대한 역이용하려 들었다. 굳이 이런 걸 해명한답시고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을 대외적으로 노출시킬 필요는 없었다.[18] 공식전/비공식전의 경계도 모호했고, 그저 수입을 위한 이벤트성 경기도 엄청나게 많았다. 그러다 보니 체계적으로 연습할 시간도 부족했고, 주어진 경기에서 즉흥적인 운영과 빌드가 중심이 되던 시기였다.[19] 그나마 양산형에 가깝게 평면적인 플레이를 선보인 올드 게이머가 있다면 이재훈 정도가 있다. 실제로 이재훈의 방송경기 전적은 당시 이름값에 걸맞지 못한 모습이었다. WCG 우승 덕택에 마냥 저평가받을 수준은 아니었다.[20] 사실 최연성의 안티가 특히 많아진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선수마다 각자의 개성적인 플레이 스타일이 난무하여 보는 재미가 있던 이전의 스타리그와 달리 최연성의 이런 스타일이 대세로 자리잡고부터는 너도나도 최연성의 전철을 따라가는 천편일률적인 경기가 많아졌기 때문.[21] 다들 알다시피 저그전의 주력 유닛인 바이오닉 테란은 마린, 메딕이 모두 인구수를 고작 1씩밖에 먹지 않기에 작정하고 뽑으면 저그만큼의 숫자도 나오는데다 테란이 저그보다 멀티도 적게 먹는만큼 최대 인구수 200 중 일꾼의 비중도 타 종족 대비 낮은 편인데, 컨트롤 난이도는 저그 유닛들보다 높은 편이다보니 피지컬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바이오닉 컨트롤이 어려워지고, 자연스레 저그전 승률도 까먹게 된다. 실제로 저막 테란들의 공통점도 바이오닉 컨트롤이 좋지 못하다는 것이며, 제자인 정명훈 또한 피지컬적으로는 다른 드래프트 세대의 테란들보다 떨어지는 편이었기에 바이오닉 운용 능력이 미숙해서 커리어 중반부까지 저막 취급받았다. 정명훈의 저그전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레이트 메카닉 개발 전후 시점부터 였다.[22] 최연성의 전성기를 직접 보지 않은 사람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 중 하나가 최연성이 원배럭 더블을 사용했다는 것인데, 최연성의 대 저그전은 기본적으로 투배럭 더블, 이후 투팩 탱크를 동반한 강력한 한방이었다. 1배럭 1마린 더블 커맨드가 '시도'라도 되기 시작한 것은 최연성이 이미 4번의 우승을 달성한 2005년 이후였고, 이에 마재윤을 필두로 한 저그는 3해처리로 대항하게 된 것이다. 최연성 전성기였던 03-04년은 테란들이 모두 투배럭을 사용했었고 그에 대해 저그들은 앞마당 이후 다수 성큰으로 수비를 하던 시절이다.[23] 물론 본진에서 멀리 떨어진 멀티가 공략당할 때는 예외.[24] 공격 측 역시 방어 측과 달리 병력을 한 곳에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다른 여러가지 면에서 방어 측이 좀 더 유리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25] 컨트롤 없이 1:1로 싸우면 SCV가 마린을 이긴다! 게다가 SCV는 울트라처럼 우클릭 연타로 공격 속도를 끌어올릴 수도 있다.[26] EVER 스타리그 2004 결승전 3경기에서도 임요환이 초반 콤보성 전략으로 주도권을 먼저 가져왔으나, 최연성의 몰래멀티를 너무 늦게 알아챈 탓에 초반에 벌어둔 포인트를 다 까먹고 결국 경기도 내줬다.[27] 제자 정명훈이 초반부 바막 기질로 까일 때 스갤에선 임요환과 최연성이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장면을 캡처해서 "연성아 저새끼 바이오닉 니가 가르쳤냐"라는 표현까지 쓰며 정명훈과 최연성을 싸잡아서 깠을 정도였다.[28] 그럼에도 베슬 관리는 상당히 잘 하는 편이었다. 최연성보다 손속도가 빠르고 기본기도 우수했지만 베슬 관리가 엉망이었던 서지훈과는 정반대.[29] 다만 정명훈 역시 동세대의 게이머들에 비해 피지컬적으로 굉장히 초라한 선수다. APM도 빨라야 300, 보통 200대 후반에서 머무르는 정도였다. 그 극한의 벌처 컨트롤을 생각하면 의외라고 여겨지겠지만, 그 정명훈도 사실 벌처에 집중하다 다른 걸 놓쳐서 지는 그림이 가끔 나오기도 했다.[30] 이 또한 심리전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는데, 가만 놔두면 안 된다라는 인식 때문에 초반부터 우세를 점해놓기 위해 공격을 갔다가 최연성의 수비에 막혀 손해를 보고, 최연성은 그것을 밑거름삼아 더더욱 나아가는 형식이다.[31] 그래서인지 서지훈처럼 특유의 마이웨이 스타일에 휘둘리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심리적인 인식 자체에 완전 면역이니 최연성 입장에서는 준비할 거 다 하고도 서지훈에게 패배하는 경우가 많았다.[32] 박성준의 컨트롤 역시 당대 테란의 개념을 넘어섰기에 같은 병력이라도 최연성의 계산에서 완벽히 벗어났던 것이다. 이마저도 일정 기간이 지나 충분한 대응책을 익힌 후에는 밀리지 않았다. 그래도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 결승전 셧아웃 이후 최연성과 2번 맞붙어서(SKY 프로리그 2006 통합 챔피언전, 곰TV MSL 시즌2) 모두 초반에 끝내버린 것을 보면 박성준의 초반 전투력은 여전히 최연성에게 위협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33] 사실 박성준도 마냥 좋지는 않았는데 질레트 스타리그의 5:0 관광 때문에 최연성이 박성준에게 약하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총 전적은 20승 13패로 앞서있으며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 결승전 에서는 3:0으로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며 So1 스타리그 2005 8강에서도 2:0으로 잡는등 오히려 최연성이 박성준의 천적에 가까웠다. 다만 앞서 말한 질레트 때나 SKY 프로리그 2006 통합 챔피언전에서 등 임팩트있는 승리를 챙겼기에 최연성은 박성준에게 약하다는 인식이 박혀버린 것이다.[34] 전술했듯 최연성은 자신의 대외적인 이미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바카닉이나 타이밍 러시로 상대를 잡아먹는 등 이미지를 역이용하는 것 또한 능했다. 질레트 스타리그 8강에서 전태규와의 넥서스랩으로 유명한 레퀴엠과 남자이야기 경기가 대표사례. 여기서 전태규는 최연성의 후반을 의식하여 가스 러시와 빠른 앞마당을 가져갔지만, 오히려 최연성은 초반 타이밍 러쉬로 순식간에 경기를 끝내버렸다.[35] 마모씨는 이런 점을 노려서 들어오는 최연성의 센터 배럭, 벙커링도 능수능란하게 잘 막았고, 3해처리를 바탕으로 초반에 저글링을 많이 뽑아 최연성의 진출 병력이 쌓이지 못하게 미리 줄여주는 등 최연성에 특화된 모습을 보였다.[36] 당장 정명훈이 직접 개발해서 저그들의 피눈물을 뽑아낸 레이트 메카닉조차도 초반에는 바이오닉으로 주도권을 쥐고 있어야 벌처를 가교 삼아 메카닉 전환이 쉽게 진행되며, 이에 김정우나 이제동처럼 피지컬에 강점을 보인 저그들은 뮤링 등으로 테란의 바이오닉을 탈탈 털어먹어 아예 레메를 가지도 못하게 만들거나 가더라도 수세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대응책을 내놓았다.[37] 실제로 당시 최연성은 마모씨에게 약하기로 유명했지만, 경기 내용만 보면 비슷한 시기 새롭게 최연성을 때려잡기 시작한 박치킨에게 더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마모씨를 상대로는 중장기전이 안 통하자 초반 공략을 시도해서 간간이 승리를 거둔 적도 있었지만, 박명수를 상대로는 뭘 해도 답이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38] 물론 서지훈도 2007년이 한계였고 이윤열이 그나마 2009년까지도 로스트사가 MSL 2009 8강까지 올라가는 노장 투혼을 선보이면서 롱런한 게이머가 되었다.[39] 사실 불리한 게임을 뒤집으려면 불리한 상황에서 가능한 강력한 전략보다도 피지컬이 더욱 중요한데, 이미 이 문서에도 줄기차게 언급되다시피 최연성은 전략에 특화된 선수지 피지컬은 저조했다. 누구보다 본인이 그것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으니, 패색이 짙어진 경기를 굳이 길게 끌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40] 성학승과의 CYON MSL 패자조 준결승 3세트에서는 해설자들도 누구의 GG인지 헷갈렸을 정도. GG가 나오고 무려 20초가 지나서야 최연성의 GG였음을 깨달았다.[41] 유명한 경기가 있는데 바로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 결승전 2경기에서 숙적인 박성준의 초반 공습을 어찌어찌 버텨낸 후 역전한 경기. 프로리그까지 확장하면 신한은행 2007 후기리그에서 자신의 생일날에 CJ 김성기를 상대로 몬티홀 맵에서 맵을 장악당한 상황에서 상대는 13팩토리, 본인은 4팩토리임에도 한방 드랍쉽 운영으로 역전승한 경기가 있다.[42] 정작 제자 정명훈은 GG 타이밍이 매우 늦은 선수로 유명하다. 때문에 울트라 먹방, 마패관광, 다다다다 등 험한 꼴을 많이 당한 편.[43] 술 먹방 후 썰 방송에서 언급했다.[44] 포모스에서 관련 인터뷰가 나온 바 있었기 때문에, 이는 NATE MSL 결승전을 두고 최연성이 언급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45] 사실 최연성이 제시한 개념을 완벽하게 이해했던 테란도 이영호밖에 없었다고 한다. 최연성 본인도 "내가 만든 배럭더블은 이영호가 속된 말로 뽕을 뺐다", "정작 T1 테란들은 그걸 기계적으로 소화하기에만 바빴다"라고 털어놓은 바 있다. 이영호 역시 개인방송에서 본인이 임요환, 이윤열, 최연성의 장점을 많이 가졌다는 팬들의 평에 대해 그래도 본인은 최연성 과에 가깝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스스로도 선수 시절 최연성의 개념으로 꿀빨았다고 말하며 최연성의 평가를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연성의 빌드를 흡수하는 선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더 발전시켜 나갔으며, 그 덕택에 드래프트 세대 중에서도 최고의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던 것이다.[46] 전성기가 짧긴 했지만 당시의 박상익은 못해도 중, 상위권 수준 저그는 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최연성의 당시 경기력은 기대를 받았던 것치고는 대단히 엉망이었는데, 임성춘은 이 경기를 보고는 기대가 컸는데 실망스러웠다고 평하기도 했다. 실제 경기를 보면 뭔가 계획은 있는데 계획대로 되지 않아 운영이 완전히 꼬여버린 모습이었다.[47] 이 기간 동안 빌드 연구를 위한 데이터 수집과 연습에 집중했으리라 추측해볼 수 있다.[48] 이후 이제동이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송병구, 정명훈, 박명수를 잡으며 최연성과 같은 기록을 세웠다. 양대 개인 리그로 치면 마재윤도 있긴 하지만, 흑역사가 되었으니 제외.[49] 이 당시 변길섭은 최연성에게 상대전적이 앞서있었던 소수의 선수 중 하나였다. 저격당했음에도 불구하고 3명을 꺾은 것.[50] 이 1차 결승전은 녹화 방송이었으며 방송일은 온게임넷 스타리그 4강 이후였지만 녹화 날짜는 이쪽이 먼저였다.[51] 비슷한 예로 이영호가 대한항공 스타리그 시즌 1 결승전 이전에 김정우를 이긴 적이 있어 기본기로만 준비했다가 결국 리버스 스윕을 당했는데 다른 점은 최연성은 그 후 공식리그 결승에서 박성준과 전적상 5:1(온게임넷 스타리그, wcg)로 앞서 복수에 성공한 반면 이영호는 그러지 못했다. 다만 이건 골마까지 딴 박성준과 달리 김정우가 우승 이후 전성기가 너무 짧았던 이유도 있다.[52] 노안으로 유명한 CJ의 그 박영민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당시 막강한 팀플로 유명했으나, 2005년으로 넘어가자마자 갑자기 은퇴해버렸다.[53] 박정석과의 4강전은 엄청난 명경기로 손에 꼽히는데, 특히 1세트는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는 어마어마한 물량전의 연속이었다. 최연성 본인조차 그렇게 작정하고 물량전한 싸움에서 진 건 처음이었다고 언급했을 정도.[54] 이 시기에는 자신이 상대전적으로 압살하던 박태민에게까지 졌다. 이때의 패배가 선수 생활 동안 박태민에게 당한 유일한 패배.[55] 이미 이전에 첫 만남이었던 WEF 2005에서 최연성은 2경기 모두 앞마당도 못 올린 상태에서 마재윤에게 4개 이상의 멀티를 내주는 굴욕을 보이며 완패했다. 당시의 패배가 교훈이 되었는지 이번에는 전통적인 더블 커맨드를 버리고 여러 전략을 시도해 보았지만 한계가 명확했는지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56] 박명수와 1승 2패로 동률이기는 했으나 그 박명수에게 패배했기에 승자승 원칙에 따라 최연성이 탈락하게 되었다.[57] 참고로 이 빌드는 후에 박카스 - 곰티비 리그 당시 이영호가 개량하며 카트리나에서 프로토스를 압살해냈다.[58] 사실 샤워 중 넘어져 손목 부상 때문에 연습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소식이 이미 알려져 있어서 그런 것이다.[59] 유부남 프로게이머 1호는 팬택 EX 소속이었던 이재항이지만,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은퇴했다.[60] 질럿, 드라군만으로 저그를 밟았다고 한다.[61] 이 결승전을 치르기 전의 기록만 봐도 TG삼보 MSL 패자조 최종 결승에서 자신을 물먹이며 KPGA 시절부터 이어지던 연속시즌 결승 진출 기록을 끊어버린 것은 물론, 프로리그에서의 맞대결도 물량 싸움에서 완파한 적이 있는 등 상대전적은 이때 이미 최연성이 앞서나가고 있었다.[62] 전술했듯 이미 상대전적에서 앞서나가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결승전 맞대결은 처음이었고 이윤열 역시 얼마 전에 프리미어리그 결승전에서 임요환을 꺾고 우승하는 등 페이스가 매우 올라와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진심으로 저런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63] 당신은 골프왕 MSL 승자 8강 1차에서 0:2 패배, 패자 4강 2차에서 다시 만나서 1:2 패배, EVER 스타리그 2005 8강에서도 0:2로 압도당하고 말았다.[64] 임요환의 경우는 2:7로 최연성보다도 더 큰 열세. 게다가 임요환이 현역 시절 단 한 번밖에 당하지 않은 공식전 5전제 스윕패가 바로 올림푸스배 4강에서 서지훈에게 당한 것이다.[65] 서지훈은 T1 테란들에게 유독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제자였던 전상욱은 둘째치고 임요환과 최연성은 양대리그 다전제에서 압도당하며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고 최연성의 제자 정명훈도 당시에 테란전 무패 행진을 달리다가 서지훈의 선수 생활 말기에 예상하지 못한 일격을 맞으며 마패관광까지 당했다. 여담으로 서지훈은 자신의 인생경기를 물어보면 정명훈 마패관광을 꼽는다고.[66] 그리고 서지훈의 이런 면모를 이어받은 GO-CJ 테란 후배들 역시도 T1 테란들에게 특히 강한 면모를 보여줬다. 선수 말년이던 서지훈이 한창 물오른 정명훈을 한 번 만나서 마패관광까지 보낸 임팩트가 커서 그렇지, 조병세는 아예 정명훈을 상대전적부터 압살했다.[67] 이런 식으로 상대전적이 팽팽하지만 실리는 한쪽이 다 챙겨간 관계는 이제동 vs 송병구 와도 흡사하다. 물론 이쪽은 서로 사제관계가 아니었고 소속팀부터 달랐지만.[68] 임요환은 저 4세트의 바이오닉 전략을 위해 1세트부터(!) 이미 초석을 깔아뒀었다.[69] 물론 드립일 뿐, 홍조가 원전은 저자가 바텀을 맡는 전제로 임요환과 스엉관계를 하고 싶다는 성희롱성 글이었다. 그러나 모자이크화된 짤방과 홍조가 1절만이 널리 알려지며 임요환/최연성 본인들조차 홍조가 드립에 언급되는 것을 즐기는 듯.[70] 이 때문에 당시 임요환은 개인리그에서 상당히 부진했었다. MSL은 말할 것도 없고 주무대였던 스타리그조차도 본선 진출에 실패했을 정도. 물론 팀이 T1으로 재창단된 이후에는 회복세를 보여주었고 이전 대비 떨어진 기량으로도 두 번의 결승 진출을 더 이뤄내기까지 했다.[71] 퍼가 붙은 청자켓인데 당시 청자켓이 유행했던 것도 아니고 어디서 협찬이 들어온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테란 게이머들이 많이 입어서 유명해졌다. 임요환, 최연성은 물론이고 이윤열, 서지훈, 변길섭까지 똑같은 옷을 입고 찍힌 사진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테란이란 공통점 외에는 같이 쇼핑을 가거나 할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고.[72] 다만 이쪽은 최연성이 저그전 투스타 레이스를 즐겨 쓰던 시기 퀸의 인스네어를 들고 나와 멋지게 되갚아준 경기도 있다.[73] 데뷔하자마자 3연패를 당한 후부터는 무려 44승 2패[74] 다만 이때도 박성준에게 마냥 당하기만 했냐면 그렇지도 않은 것이, 당골왕 MSL 패자 4강 1차에서 만나 2:0으로 승리한 바 있다. 이기자마자 본인도 서지훈을 다시 만나서 털리고 해당 시즌을 마감했다 물론 박성준이 MSL 공식전 5전제를 딱 한 차례, 그것도 2007년이 돼서야 치렀고 그조차도 셧아웃패를 당했을 정도로 엠막이었다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75] 첫 대면인 WEF 2005 결승전 경기 2개와 CYON MSL 4강전 2경기가 딱 이런 식으로 패배한 경기였다. 나머지는 최연성이 마모씨를 극복해보고자 온갖 실험적인 전략을 내놓은 경기들이었다.[76] 사실 마레기도 최연성만큼만 아니었을 뿐 손이 느리고 난전에 약한 편이라 먹힐 수 있었던 것이다.[77] 물론 같은 팀 소속이라 서로를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78] 오영종은 역대 프로토스 선수들 중 스타판 최후반부의 허영무와 함께 판짜기가 가장 탁월했던 프로토스 게이머로 꼽히는 편이다. 실제로 저 4강전을 경기별로 파고들면 1, 3, 4경기는 모두 오영종의 전략이 통하느냐 막히느냐로 승패가 갈렸다. 최연성의 전진 건물 시도가 막혀서 제대로 된 공격 시도조차 못 해보고 밀봉 관광을 당한 2경기는 논외.[79] 2위는 14연승 임요환.[80]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이제동이 이 기록을 달성한다. EVER 스타리그 2007 vs 송병구(프로토스), BATOO 스타리그 2008 vs 정명훈(테란), 박카스 스타리그 2009 vs 박치킨(저그).[81] 비공식전까지 포함하면 iTV 랭킹전 결승에서 박성준에게 패했던 적이 있다. 양대리그 한정으로는 100%가 맞다.[82] 넓게 보면 선수 생활 막바지에 붙었던 이영호도 있다.[83] 이 2명도 서지훈 못지 않은 무표정으로 유명하다. 최연성의 약점을 알수 있는 대목.[84] 최연성은 8강에서 자신에게 첫 스타리그 4강에서 굴욕을 안겼던 숙적 박성준을 2:0으로 완파하고 4강에 오른 상태였다. 그 상황에서 또 다시 로열로더 후보 신인한테 스무스하게 완패를 당해버렸고 그로 인해 3,4위전 박지호와의 경기에서 하루 종일 좋지 못한 기분으로 경기에 임했다.[85] 사실 이 3경기는 보기보다 최연성이 썩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다만 GG타이밍이 상대의 멀티를 깬 후에 몇 초간의 정적 후라는게 포인트.[86] 1/1/1 빌드의 프로토 타입이었다.[87] 정명훈이 인터뷰에서 밝힌 바이다.[88] 심지어 빌드도 이영호가 앞섰다. 그리고 인터뷰에서 최호선이 템페신을 마패관광으로 이긴 것에 대해 등급에 맞지 않는다고 무시하며 예고 마패를 날렸으나 현실은...[89] 자신이 코치로 있는 동안 T1의 테란 우승자 육성, 그 중에서도 특히 정명훈의 우승을 바란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었다.[90] 노준규, 정윤종, 정명훈, 원이삭, 김민철이 나갔다. 혹자는 어윤수와 최연성만 팀을 옮긴 수준으로 팀을 갈아 엎었다고 평했을 정도.[91] 원이삭, 정윤종[92] 참고로 마린은 최연성이 SKT 스타크래프트 팀 감독이던 시절에 한솥밥을 먹어서 이전부터 교류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93] 다만 인터뷰에 문제가 되는 요소도 없진 않은데 "김연아는 일주일에 6일 연습하고, 아사다 마오는 이틀에 한 번 연습하니까 김연아는 발목이 아프고 허리가 아파도 트리플 럿츠를 돌고, 아사다 마오는 못하는 것이다." 라는 말은 타 종목 선수에 대한 전혀 근거없는 폄하다. 트리플 러츠는 연습량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구사 가능한 여성 선수 자체가 드물고 아사다 마오의 연습량이 적다는건 전혀 근거 없는 소리다.[94] '고무터진두부현'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라스칼' 김광희에게 새 닉네임으로 '노무터진두부현'이 어떻냐는 말을 했다.[95] 일단 본인부터가 솔로랭크를 꾸준히 돌리며 플레티넘 1을 달성하는 등 롤에 대해 꾸준히 공부하며 준비하는 모습을 보인 점에서 KT의 오창종과는 궤를 달리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아프리카가 날빌, 조커픽으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식의 밴픽에는 강하지만 팀의 전반적인 운영이나 정석적인 밴픽에는 약하다는 평을 받은 만큼 선수 출신의 코칭스테프를 통해 인게임 피드백이 가능한 코칭스테프를 보강하긴 해야할 듯 하다. 다행이도 2018 시즌에는 LCK 준우승자 출신인 이재민 코치가 역할을 톡톡히 해주며 기존의 강점은 그대로 살리면서도 팀의 전반적인 운영에 안정감이 생겼다.[96] 감독이 아닌 코치로 영입되었다.[97] 사실 커리어나 개인 평가로 볼때 최연성이 그 무능하다던 오-정-손 코치진보다 잘나가던 시절은 18 시즌 스프링이 유일하다.[98] 다만 계약 종료 직후 박용운 전 감독과 함께 북악산에 등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99] 스타 쪽 인사들이 다들 못 나오면 납득이나 하는데, 영상 구성상 스타쪽 내용도 대거 들어가 있어서 타 팀 소속이었던 강민, 김정민, 송병구, 이제동을 제외해도 창단 멤버였던 주훈 감독과 임요환을 필두로 김성제, 고인규, 도재욱, 정명훈이 출연했다. T1이라는 팀 자체에서 임요환 다음으로 반드시 거론되어야 하는 인물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임요환과 정명훈의 사이를 지탱하는 인물이었기에 20주년 영상에서 최연성이 등장하지 않은 것은 스타크래프트 역사 부분을 설명할 때 다소 어색하면서도 불완전하게 느껴진다는 평을 받고 있다. 다만 마찬가지로 T1 스타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박용욱은 출연하지 않았으며, 김택용과 같이 중간에 타 팀에서 들어온 선수와 T1에서 다른 팀으로 이적한 선수들도 출연하지 않았다. 다만 T1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김택용은 아프리카TV 코인 게이트 논란으로 인해 이미지가 상당히 추락했던 상태였기에 나오기가 애매했다. 이는 타 팀이었어도 충분히 나올 명분이 있었던 이영호도 마찬가지.[100] 이는 최연성과 같이 스타크래프트 선수,코치 시절을 거쳐 리그오브레전드의 지도자로 자리잡은 최우범의 지도력도 이에 해당된다. 어떻게 보면 최연성보다도 먼저 리그 오브 레전드의 지도자로 부임하여 근성론에 기반한 연습량 증가와 스타크래프트식 내부 닭장 경쟁 시스템을 팀에 도입하여 롤드컵에서 1회 우승, 1회 준우승의 성과를 기록한 사례가 있는 만큼, 최연성의 지도 방식은 사실상 최우범의 마이너 카피라고 해도 무방하다.[101] 2021년의 T1이 10인 로스터를 돌리며 발생한 문제들로 10인 로스터에 대한 안 좋은 면들이 특히 크게 부각되었다. 10인 로스터를 경험한 SK Gaming의 서포터 Treatz는 "10인 로스터를 겪어본 사람으로서 말하건대, 정말 X같고(it fxxking sucks) 아무 이유 없이 모든 선수에게 많은 압박감(a lot of pressure)을 준다." 라고 발언하는 등 관계자들 대다수가 이에 대해 부정적이다. 추가적인 내용은 T1/리그 오브 레전드/2021 시즌이나 양대인 항목 참고. 물론 아프리카는 10인 로스터를 돌리면서도 주전-비주전은 확고히 구분했고 T1처럼 10인 돌림판 로스터를 꾸린 것은 아니므로 케이스가 온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한 팀에 10명의 선수를 넣고 내부 연습량을 늘리고 경쟁시키는 것이 장기적으로 선수들 경기력 향상보다는 극도의 스트레스와 번아웃을 주는 것이 많은 사례로 드러났다.[102] 이와 반대로 10인 로스터의 성공사례도 있는데, 2019 T1이 2018 시즌의 흑역사 극복 및 명예회복을 위하여 드림팀을 구성한다는 명분으로 확실한 에이스급 선수 영입과 10인 로스터로 시즌을 운영하였지만, 적어도 이때는 확실한 주전라인업을 정한 상태에서 시즌을 진행하였고, 시즌이 지나면서 에이징 커브가 오게 된 마타를 대신하여 섬머 시즌 에포트를 주전으로 기용하여 LCK 스프링,섬머를 모두 우승하였다. 게다가 아프리카와 다르게 당시 T1의 감코진은 확실한 전문성과 멘탈관리를 선수들에게 어필 및 보조를 해줄 수 있었기 때문에 선수들이 극도의 스트레스 및 번아웃이 오는 불상사를 차단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10인 로스터의 주전-비주전을 확실히 구분하는 것까진 좋았으나 2019 T1의 감코진처럼 선수들에게 멘탈 관리 및 전력 분석을 하는 것에 있어서 아프리카 감코진은 이에 대해 상당히 부족했다고도 볼 수 있다.[103] 당장에 2016 롤드컵 준우승 - 2017 롤드컵 우승을 기록하여 명장이라고 평가받는 최우범도 이와 비슷한 지도 방식으로 인한 한계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7 롤드컵 우승 이후 2018 롤드컵에서는 조별예선 1승 5패의 최악의 흑역사를 기록하였으며 2019 시즌은 아예 롤드컵 선발전조차 가지도 못하였다. 게다가 근성론을 강조하는 지도스타일로 인하여 2017 롤드컵 우승을 기록한 선수들의 폼 유지를 꾸준히 유지하지 못하여 2018시즌 심적으로 극도의 불안을 호소했던 크라운, 2019 LCK 최악의 시즌을 보내게 되어 유일한 에이스 역할을 했던 룰러조차 번아웃 증후군을 겪었던 것을 보면, 근성론에 기반한 연습량 증가 및 내부 닭장 경쟁은 단기간에 성과는 분명히 낼 수 있고 기량에 따라 정상까지도 도달할 수 있으나, 정상의 자리를 장기간 유지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최우범, 최연성을 통하여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104] 총단장 승격 건을 포함해 아프리카에서는 최연성에 대한 신뢰가 꽤 큰 편이었기에 프런트가 억지로 지명한 코치진이라고도 볼 수 없다.[105] 이러한 코칭 스타일 탓에 새로운 팀의 감독직을 맡기가 더더욱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적어도 최연성과 함께 근성론을 강조하며 노력으로 밀어붙였던 최우범은 호불호가 갈리기는 해도 롤드컵 1회 우승, 1회 준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아 올렸으며 리빌딩/노장 부활에 최적화된 성향이기 때문에 신생팀과 다름없는 브리온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팀 순위는 최하위이지만 경기력 및 성적 면에서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LCK 리그가 수준이 상향 평준화가 되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근성론을 강조하며 지도 스타일의 장점을 보여주지 못하는데 단점 역시 뚜렷하고, 2018 롤챔스 스프링 준우승, 2018 롤드컵 8강, 2020 케스파컵 우승 이외에 4년 동안 장기집권을 하며 이렇다할 커리어와 좋은 성적을 보여주지 못한 상황에서 최연성의 지도자 복귀는 더더욱 쉽지 않은 것이 현실.[106] 당장 18 킹존은 어나더 레벨이라 불릴 정도로 분명한 강팀이었다. 당시 검증된 베테랑 선수였던 프레이 - 고릴라 듀오가 팀의 중심을 잡아주면서 당시 핫플레이어였던 칸, 하이 리스크를 감수하는 공격성으로 LCK 뿐만 아니라 국제대회에서도 큰 활약을 보여주었던 피넛, 데뷔 때부터 LCK 미드 라이너 중 최상위권으로 평가받는 독보적인 라인전과 1:1 능력을 지닌 초반 최강의 미드였던 비디디, 롱주 시절 유망주 신인이었던 커즈로 선수 라인업을 구성하였음에도, 스프링 우승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MSI 준우승의 충격파가 섬머까지 이어져, 결국 롤드컵 진출에 실패하는 대참사가 일어나게 된다.[107] 참고로 이 날은 T1 선수들은 물론이고, 라이벌 KTF 매직엔스 선수들도 같이 직관을 했다.[108] SKT T1 코치 시절 아발론 MSL 2009 조별리그 경기에서 고인규가 마XX과 경기를 앞뒀던 고인규에게 남긴 코멘트다. 정확한 전체 멘트는 옛 영광에 취한 이는 죽은 자다. 죽은 마XX을 박살내라.인데, 마XX의 당시 부진을 저격했던 발언.[109] 4강에서 박성준에게 2:3으로 패배.[110] 승자조에서 서지훈에게 0:2 패배 후, 패자조에서 4강까지 오른 후에 다시 패배.[111] 4강에서 오영종에게 1:3 패배[112] 4강에서 김택용에게 1:2 패배.[113] 신인왕, 다승왕.[114] 다승왕.[115] 포스트시즌 포함, 당시는 위너스 리그 대신 팀리그였기에 팀리그도 포함했다.[116] 감독으로서의 경력[117] 정규 시즌 3위.[118] 정규 시즌 1위, 포스트시즌 우승.[119] 정규 시즌 4위, 준플레이오프 패배.[120] 정규 시즌 전승 1위, 포스트시즌 우승.[121] 정규 시즌 전승, 결승전 승으로 전승 우승 달성.[122] 정규 시즌 1위.[123] 인터뷰에서 감격한 나머지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다.[124] 위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개인리그의 수상 성적에도 있듯 10년 전에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125] 누군지는 못 밝힌다고 한다.[126] 훗날 당시 KTF 감독이었던 정수영 감독이 강민의 개인방송에 출연해서 증언을 했는데 입단 합의를 카페에서 했다고 한다. 하지만 하필 카페 직원이 스타크래프트 팬이었고, 결국 소문이 일파만파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127] 또 다른 예로는 당시 팬택 EX 소속이던 이병민의 KTF 이적 건이 있다.[128] 여담으로 세 번째 사진에 보이는 '원선재'라는 연출자의 이름은 前 kt 롤스터 소속이었던 원선재였다.[129] 사전 접촉과 이중 계약이라는 룰을 모른 것은 분명 최연성의 실책이나, 이를 빌미로 적법한 대응 대신 협박을 한 것은 명백히 팀 차원에서의 문제다. 그러나 이 부분이 사실이라면 이후 최연성이 이런 짓을 자행한 SKT의 플레잉 코치와 감독직까지 수행한 점은 의아한 부분이다.[130] 여기에 한상용은 원하신다면 4:1로 스파링 떠드리겠습니다.라며 화끈하게 응수했다.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한상용은 킥복싱 선수 출신.[131] 이후 도재욱은 개인방송에서 이 당시 '코치님 왜 저러시지?이러다 지면 진짜 큰일나겠는데?'란 생각에 걱정만 들었다고 밝혔다,[132] 참고로 이때 이영호가 "하려는 생각도 들었지만 프로답지 않은 것 같아서 안 했다"라고 말한 행동은 2006년에 마레기가 한 번 했다가 그야말로 포풍처럼 까였다. 이걸 팬과 팬 사이의 분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당시 KOR 팀의 팬층이 그렇게 두텁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보기엔 무리가 있다.[133] '고무터진두부현'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라스칼' 김광희에게 새 닉네임으로 '노무터진두부현'이 어떻냐는 말을 했다.[134] 코치 중에는 제법 있고 감독 중에서도 선수 시절에 받은 사례는 있을 수 있으나, 현직 감독직을 수행하면서 징계를 받았던 것은 최연성이 최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