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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9 22:02:38

김장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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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철, 윤철, 태규, 대호

1. 김장임박이란?2. 하지만 시기상조3. 밀었던 이유?4. 종말5. 이후의 행보

1. 김장임박이란?

사대천왕, 택뱅리쌍에 이어 스타판에서 밀었던 라인으로 민철, 윤철, 태규, 대호 4명을 묶어 부르던 라인이다.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 때 사용되었다. 프로리그에서 차츰차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10-11 시즌 중반기 들어서는 어느 정도 팀의 안정적인 1승 카드까지 발전한 이들의 포텐셜을 높게 사 나중에 우승을 할 수 있는 재목을 지녔다고 여겨졌던 선수들을 지칭한다.

김민철은 저그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방어력을 보여주며 김민철벽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장윤철은 2010년 5월 16일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4라운드 때 이영호를 꺾으면서 테프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고, 피디팝 MSL 8강에서 이제동에게 5전까지 가는 혈전을 보여주며(비록 지기는 했지만) 저그전도 무시할 만할 실력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었다. 임태규박대호는 10-11 시즌 들어서 송병구를 제외한 기존 게이머들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전자 칸을 지탱하고 있던 버팀목이었다.

2. 하지만 시기상조

하지만 선배들의 커리어와는 비교가 안 되는 게 가장 큰 문제점으로 작용했다. 결정적으로 이 네 게이머들 중 누구도 개인리그 4강조차 들지 못했다. 가장 높은 커리어조차 장윤철피디팝 MSL 8강 1회 뿐이었고 김민철도 양대 16강 3회, 36강 1회에 그쳤으며, 임태규는 36강 1회가 고작에 박대호는 개인리그 본선조차 진출한 적이 없다. 전성기가 매우 짧았거나 뜬금 4강 진출, 강라인으로 평가가 절하될지라도 한때의 강자 취급을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나 유의미한 커리어가 개인리그 4강 1회부터라는 점을 생각하면 치명적이었다.

그나마 장윤철은 상대가 택뱅리쌍 중 한명인 이제동에 2:3의 접전 끝에 패배했다는 점, 1경기와 5경기가 피디팝의 4강 4저그 참사의 원인 중 하나라 평가받는 토스 압살맵 단테스 피크였고 불리한 상황에서 최강자를 만나 분패했다는 조건과 노력은 인정해 줘야 하지만 이런 요소가 장윤철이 김장임박 중 커리어가 월등하다고 평가되거나 전체 커리어를 뒤집을 만큼 큰 것은 절대 아니다. 장윤철은 이 시즌 빼고는 16강은 고사하고 모두 32강~36강에 그쳤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다들 신인이라서 그런지 경기력이 불안불안했고, 또한 다전제 경험이 적다는 것도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예를 들자면 박대호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 1라운드 때 7연승을 했지만, 이영호에게 패한 이후로 처음의 저력은 나오지 못하고 한동안 연패를 기록했다.

또한 다들 택뱅리쌍을 상대로 그다지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김민철의 경우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 때 택뱅리쌍 모두에게 패한 적이 있으며[1], 장윤철은 비록 이영호이제동을 모두 잡은 적이 있다고 하나 상대전적에서는 둘에게 다 밀렸다. 리그 위로 올라갈수록 택뱅리쌍을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이들이 과연 택뱅리쌍을 이길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었다.[2]

실제로 2007년 3.3 혁명 이후부터 스타 1 공식리그가 종료되기 전까지 택뱅리쌍을 제외하고 우승을 차지한 게이머들은 송병구를 16강, 이영호를 4강에서 꺾은 김준영[3], 김택용을 결승에서 꺾은 박성균[4], 4강~결승에서 리쌍을 연달아 격파한 박지수[5], 이제동을 4강에서 꺾은 김윤환[6]신동원[7], 이영호를 결승전에서 역스윕시킨 김정우[8], 송병구를 결승전에서 셧아웃시킨 정명훈[9][10], 이영호를 8강, 16강에서 꺾은 허영무[11][12][13]였다. 택뱅리쌍을 상대하지 않고 우승한 사례는 EVER 스타리그 2008[14]박성준로스트사가 MSL 2009에서 우승한 박찬수밖에 없다. 그나마 박성준은 드래프트 세대가 아닌 올드 세대에 속하는 게이머이며, 박찬수도 WCG에서 송병구를 꺾고 금메달을 수상한 경력이 있고 MSL 우승 또한 택뱅리쌍과 같은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허영무를 상대로 이룬 것이었다.

3. 밀었던 이유?

택뱅리쌍의 비교적 오래된 전성기에 반발한 것과 승부조작 사건으로 여러 준척급 선수들[15]이 이탈한 것에 대한 실망감, 신인들의 유입이 줄어들면서 이 판에 새로운 피가 수혈되기를 바라는, 나아가 스타 1의 공식리그가 좀 더 이어지기를 바랬던 스덕들의 희망이 어느 정도 반영된 거라 볼 수 있겠다. 다만 공식리그가 너무 끝물이라 활약할 기회가 적었지만 신동원이 우승 1회와 4강 2회를 기록하며 준수한 활약을 펼쳤고, 새로운 피는 아니었지만 기존의 강자였던 허덴이 스타1 막바지에 물오른 기량을 선보이며 피날레를 화려하게 수놓았으니 스덕들의 바램은 어느 정도 성공한 셈.

4. 종말

김장임박 중 김민철, 장윤철, 박대호 세 명이 당시 최강이었던 이영호에게 압도적으로 패하면서, 김장임박은 소위 거품이 빠지기 시작했다.

박대호는 2010년 11월 30일에 열린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 2라운드 때 이영호에게 패했다. 장윤철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 때 이영호를 한 번 이긴 적이 있었지만,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에서 이영호에게 2연패[16]를 당했다. 김민철은 2011년 1월 26일에 열린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 3라운드 때 이영호에게 압도적으로 패했고 준플레이오프에서도 패했다.

임태규다행히도 이영호와는 겨룬 적이 없었다.

이렇게 이영호에게 김장임박 중 세 명이 압도적으로 패해서 김장임박에 대한 평가와 기대치가 크게 떨어졌는데, 결정적으로 김장임박 전원이 온게임넷 스타리그 8강에 단 한 번도 올라가지 못했다. 피디팝 MSL 8강에서 이제동과 명경기를 펼쳤던 장윤철은 스타리그에서는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 2, 박카스 스타리그 2010에 2연속으로 진출하지만 모두 36강에서 그쳤으며, ABC마트 MSL에서도 32강 광탈을 기록하였다. 피디팝 MSL과 ABC마트 MSL에서 두 대회 연속으로 정명훈을 32강에서 탈락시킨 김민철 역시 두 번 다 16강에서 머물렀으며, 그나마 넷 중 유일하게 tving 스타리그 2012 본선에 진출하며 온게임넷 스타리그 16강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이조차도 재경기 끝에 8강 진출에 실패해 탈락하고 말았다.

결정적으로 임태규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 2에서 36강에 1번 진출한게 최고점이고, 그나마 2011 MSL 시즌 2 32강에 진출하며 첫 MSL 본선 진출을 이루었지만 하필이면 대회 자체가 취소되고 MSL이 사라지고 말았다. 박대호는 스타리그고 MSL[17]이고 개인리그 본선에 아예 올라가지도 못했다. 또한 병행 시즌 등 공식리그 말기에 들어서 개인리그에서 택뱅리쌍을 압도하는 기량을 보여준 선수는 이 선수들이 아니라 기존의 강자였던 허영무정명훈이었다.

그리고 2011년을 끝으로 MSLMBC GAME이 사라지고 김장임박에 대한 관심도 시들해지며 사실상 사어화됐다. 주목 받은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너무 일찍 화제성이 사그라든 셈.

5. 이후의 행보

5.1. 김민철

김장임박 4인방 중에서 가장 커리어가 흥한 케이스.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시즌 1 들어 멘탈이 붕괴된 김명운을 대신하여 웅진 스타즈의 저그 라인을 이끌고 실질적인 에이스 노릇을 하며 12승 6패로 다승 공동 4위, 저그 다승 공동 1위를 기록했다. 잡은 선수들만 봐도 염보성, 신노열, 김윤환 등 톱 클래스 선수들이었다. 다만 tving 스타리그 2012에서는 16강 조별리그에서 재경기 끝에 탈락하며 끝내 개인리그 성과는 남기지 못했다.

그래도 스타크래프트 2 전환 이후로도 발군의 활약을 이어가며 웅진 스타즈의 명실상부 에이스로 활약한 것은 물론이고 협회 측에서 수위로 꼽는 저그로 성장했고, 신종철로[18]의 일원에도 포함되는 등 고평가받았다. 2013 WCS Korea Season 1, MANGOSIX GSL에서는 이신형을 꺾고 커리어 첫 개인리그 우승이라는 성과도 거뒀고, 웅진의 해체 이후로도 개인리그에서 꾸준히 두각을 드러냈다. 2016년에 은퇴를 선언한 뒤 아프리카로 넘어와 스타1으로 돌아왔고, KSL 시즌2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특유의 탄탄한 플레이로 초창기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기량을 발휘하였다. 2023년 들어서는 ASL 시즌16~17 2연패도 달성했다.

5.2. 장윤철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시즌 1에서는 이경민, 진영화 등이라는 좋은 프로토스 카드를 보유하고 있는 CJ 엔투스에서 주전 경쟁을 뚫어내는 것이 1차적 과제였다. 소위 CJ 프로토스 3인방이 모두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 때보다는 전체적으로 저조한 성적들을 거두었는데, 장윤철은 4승 6패(+ 준플레이오프 1패)를 기록했다. 그래도 SK플래닛 프로리그 시즌1에서 승리한 상대 중에 이제동, 김대엽 등이 포함되어 어느 정도 기대를 해볼 법도 했지만, tving 스타리그 2012 예선 J조 결승전에서 김명운에게 패하면서 단 한 차례도 스타리그 16강을 밟지 못했다.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시즌 2 결승전에서 이영한을 상대로 승리하여 마지막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공식전 승자로 남게 되었지만, 스타크래프트 2에서는 테란으로 종족을 전향하고도 적응에 실패해 0승 클럽에 가입했다. 이미 웅진의 테란 라인이 약한 가운데서도 밀려날 정도로 부진했고, 결국 2013년 5월 28일 부로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후에는 가업을 도우면서 향후 진로에 대해 고민했다가 군복무를 마친 이후인 2017년, 스타크래프트 1로 복귀했고, 빠르게 기량을 회복하면서 준우승을 하거나 ASL이나 MPL에서 이영호를 잡는 등 2019년 여름 기준 프테전 기량만큼은 톱클래스로 평가받는다. 여러모로 현역 시절의 잠재력을 뒤늦게 발휘하고 있다는 평. 아쉬운 점이라면 우승 없이 준우승만 2번 있다.

5.3. 임태규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시즌 1에서 허영무, 송병구의 뒤를 이어 삼성전자 칸프로토스 카드로 자리매김하며 7승 4패(+ 플레이오프 1패)를 기록했다. 비록 출전 빈도가 아직 적고 테프전 검증이 필요했지만, 유병준이 2011년 ABC마트 MSL 8강 진출 이후 매너리즘에 빠져 부진하던 와중에 꽤나 기대할 법한 활약상을 펼쳤다.

그러나 시즌 종료 후 유병준, 전민호와 함께 은퇴를 선언하고 리그 오브 레전드 전향을 시도했다. 이후 빠르게 적응해 '꿍'이라는 닉네임으로 LoL에서도 나름의 커리어를 남긴 유병준과 달리, 임태규는 프로팀에 합류할 수준의 실력은 쌓지 못했는지 프로 무대 재진입에 실패했다. 지금은 스타와는 전혀 관련 없는 회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5.4. 박대호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시즌 1에서 5승 2패(+플레이오프 1패)를 기록하며 이성은이 빠진 삼성전자 칸의 테란 라인을 김기현과 함께 잘 지탱하였다. 특히나 김대엽을 상대로 매너 파일런 2번에 분노해, 기습 5배럭 바카닉으로 전략을 바꿔 김대엽을 탈탈 털어버리는 미친 임팩트를 보인 탓에 작은 하마 이야기에서 따와 작은하마라는 별명이 생긴 것은 덤. 그러나 이때도 특유의 무한정 공격이라는 스타일 때문에 저막이란 치명적인 단점을 갖고 있었으며, 이 탓에 tving 스타리그 2012 예선에서도 8강전부터 만난 이예훈에게 참패해 브루드워 개인리그 본선을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 시즌 2에서는 스타2 적응에 실패한 탓에 스타1에서도 부진했다. 당시 성적은 브루드워 2승 6패, 자유의 날개 2승 5패로 도합 4승 11패. 스타2 완전 전환 이후로도 부진을 이어간 탓에 패왕에 등극했다가 군단의 심장으로 넘어오더니 자신의 공격적 스타일이 잘 먹혀들기 시작하면서 성적이 올랐다.

하지만 2014년 11월에 팀을 나간 이후에는 제대로 된 활약이 없었고, 결국 조용히 은퇴했다. 현재는 팀 동료들도 근황을 잘 모르는 듯.


[1] 그나마 위안거리는 택뱅리쌍과 동급으로 여겨지는 정명훈에게 매우 강했다는 점.[2] 대표적으로 이들 중 가장 높게 간 장윤철의 8강 1회조차 이제동한테 패해 막힌거다.[3] Daum 스타리그 2007 우승.[4] 곰TV MSL 시즌3 우승.[5] Arena MSL 2008 우승.[6] 아발론 MSL 2009 우승.[7] 피디팝 MSL 우승. 신동원은 김장임박 멤버들과 비슷한 세대이다. 팬들이 김장임박 멤버들에게 기대했던 성과를 실제로 보여준 선수가 바로 신동원이다. 다만 우승한 대회가 대명사화될 정도로 망해서 큰 임팩트가 없었다.[8]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 1 우승.[9] 박카스 스타리그 2010 우승.[10] 우승은 못 했지만 김택용과 이영호를 4강에서 셧아웃시킨 전적도 있다.[11] 진에어 스타리그 2011, tving 스타리그 2012 우승.[12] 허영무는 당 대회에서 준우승하기는 했지만, 송병구를 4강에서 셧아웃시킨 적도 있다.[13] 게다가 이 중에서 허영무랑 정명훈은 워낙 커리어가 대단했기에 택뱅리쌍 시대에 우승한 이들 수준이 아니라 택뱅리쌍과 충분히 묶일만한 선수들로 취급되며 드래프트 세대 내에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선수 또한 택뱅리쌍허덴 이 6명이 전부이다. 명예의 전당에 가장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는 김윤환신동원이 우승 1회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도 결국은 양대 4강에서 꼼덴에 패해 막힌거다.[14] 이 대회는 3.3 혁명 이후 스타 1 공식리그가 종료되기 전까지 택뱅리쌍허덴 중 어느 한 명도 4강에 진출하지 못한 유일한 대회이다.[15] 3.3 혁명 이후 가파른 하락세를 겪으며 로스트사가 MSL 2009 8강을 끝으로 더 이상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마재윤은 차치하더라도 박찬수는 우승 1회, WCG 금메달, 4강 2회, 박명수는 준우승 1회, 진영수, 신희승, 문성진은 개인리그 4강까지 가 본 선수였다. 나머지 선수들도 개인리그 8강 정도는 진출한 기록이 있으며, 연루자들 중 정말로 이렇다 할 성적조차 없는 선수는 2군에서만 있었고 공식전 출전 자체가 전무한 정진현이 유일하다.[16] 각각 2010년 11월 14일, 2011년 1월 15일[17] 서바이버 토너먼트에 한 차례 진출했으나 탈락했다.[18] , 정윤, 김민, 신노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