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짭호 | 허유 | 난수 |
}}}}}} ||
前 스타크래프트1 프로게이머 | |
現 아프리카 TV 베스트 BJ | |
<colbgcolor=#779978> 성명 | 이승훈 |
출생 | 1987년 6월 11일 ([age(1987-06-11)]세) |
경상남도 합천군 | |
본관 | 연안 이씨 |
신체 | 185cm[1], 72kg, B형 |
학력 | 합천고등학교 (졸업) 한국폴리텍Ⅶ대학 진주캠퍼스 (수료) |
소속팀 | 온게임넷 스파키즈 |
종족 | 프로토스 |
데뷔 | 2006년 상반기 드래프트 KOR 1차 지명 입단 |
가족관계 | 아버지, 어머니, 남동생[2] |
배우자 | 은시[3] |
팬덤명 | 18사단 |
별명 | e스포츠의 악동, 18토스, 18좌, 현실 SCV[4] |
방송국 |
[clearfix]
1. 수상 기록
- 2005년 8월 여수 국제 청소년대회 4위
- 2005년 9월 대구 페스티발 본선
- 2005년 10월 KTF BiGi KOREA e스포츠2005 아마추어 입상
- 이 대회 입상으로 프로게이머 자격 획득. 커리지 매치를 거치지 않았다.
- 2005년 11월 용산구 상공회 스타대회 4위
- 2006년 2월 로지텍 G-Festival 3위
- 2007년 5월 곰TV MSL 시즌2 32강
- 2007년 8월 2007 서울 국제 e스포츠 페스티벌 스타크래프트 256강전 32강
2. 전적
이승훈의 스타1 양대 개인리그 A매치 통산 전적 | |||
방송사 | 온게임넷 A매치 총 전적 | MBC게임 A매치 총 전적 | 양대 개인리그 합산 전적 |
vs 테란 | 전적없음 | 5전 3승 2패 (60.0%) | 5전 3승 2패 (60.0%) |
vs 저그 | 전적없음 | 2전 0승 2패 (0.0%) | 2전 0승 2패 (0.0%) |
vs 프로토스 | 전적없음 | 전적없음 | 전적없음 |
총 전적 | 전적없음 | 7전 3승 4패 (42.9%) | 7전 3승 4패 (42.9%) |
3. 소개
대한민국의 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現 인터넷 방송인.선수 시절 화려한 견제 플레이로 유명했으며, 불리한 상황에서도 끈질긴 견제를 통해 경기를 뒤흔드는 플레이 하나만큼은 일품이었다.
처음 나간 아마추어 대회에서 4위를 했는데 이 때는 야자를 10시까지 하는 바람에 빌드만 머릿속으로 생각해서 나갔다 한다.[5] 이 때 본인은 프로게이머가 될 수 있을거라 거의 확신했다 하며 결국 두 달 뒤 다른 대회에서 결국 1등을 하여 프로게이머가 된다.
또한 피지투어에서 50승 1패하여 랭킹 1위를 찍어 드래프트 당시 꽤나 유명했다고... 그리고 미리 연락을 주고받았던 KOR팀에 들어갔지만, 이 곳은 알다시피 역대 최악의 게임단 중 하나이며, 이승훈 본인은 1년 6개월 동안 게임을 안 하고 주방일을 했다 밝혔다. 그리고 연봉계약을 못 해 무급생활을 꽤나 오래 했는데 18토스 사건 당시도 무급이었던지라 받은 거 없이 오히려 토해내는 상황이었다 한다.
2006년 5월 7일, 당시 MBC GAME HERO 소속이었던 이재호를 상대로 프로리그 데뷔전을 치렀으며, 그의 대표 별명인 18토스는 SKY 프로리그 2006 후기리그 도중 팀플레이에서 주진철과 같이 플레이하다가 도중 패색이 짙어지자 그가 육두문자인 "아놔 씨발;"을 채팅으로 친 게 그대로 생방송에 나와버리는 초대형 방송사고가 터져서 생긴 것. 결국 그 사건으로 그는 벌금 100만원, 프로리그 3경기 출장 금지 징계를 받았다. 물론 나중에 그가 팀 채팅을 하려다 조작 미스로 인해 일어난 실수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당시 팀플 파트너 주진철 또한 (아무리 친밀한 사이더라도) 본인보다 형이고 선배인데, 그런 사람 앞에서 그런 쌍쓰러운 욕설을 사용하는 것도 그다지 잘한 것이라 볼 수는 없었다는 평이었다.[6]
후일 전태규가 개인방송에서 말하길 관심을 끌고 싶어서 일부러 그런 거라고 주장했지만, 약간의 과장이 있었던 듯 하고, 관련 영상. 나중에 전태규와의 합방으로 이승훈 본인이 직접 해명하기로는 경기의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팀 채팅으로 서로 욕하면서 분하다가 실수로 전체 채팅을 켠 상태에서 그대로 욕설을 타이핑한 것이라 한다. 관련 영상. 상대팀이었던 박정석 - 임재덕에게는 당일 주진철과 함께 직접 만나 술 마시며 사과했다고 한다.[7]
어쨌든 그 사건 이후로 싸이월드까지 털렸고 거기에 적힌 이메일 아이디로도 더 까이게 되었다.[8]
그래도 욕설 채팅 사건 이후에 사과문을 올리는 등 적어도 자기가 잘못한 줄은 아는 것 같다. 협회와 팀 차원의 징계도 있었고... 그래서 어느 정도만 욕먹고 끝났다.
이런 사건을 겪은 후 절치부심했는지 바로 삭발을 하고 연습에만 매달린 결과 2007년에는 물오른 기량을 선보였다. 프로리그에서도 제법 활약이 컸고, 개인리그로는 곰TV MSL 시즌2 32강에도 진출했다. 이때 전상욱을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 KO시키고 올라갔는데, 전상욱에게 이긴 뒤 MSL 역대 우승자들의 사진이 걸려있는 벽으로 다가가 자신도 그 곳에 사진이 걸릴 거라는 패기 넘치는 세리머니를 한 바 있었다. 이 때 해설진들의 반응도 아주 뜨거웠었다. 근데 32강 조 편성에서 만난 선수들이 박성준, 이윤열, 최연성이니 스타판 레전드급 세 선수가 한 조에 몰린 셈이다.
비록 죽음의 조[9]의 벽을 넘진 못 했지만, 기죽지 않고 준수한 기량을 선보였다. 첫 경기에서 이윤열을 잡았고, 박성준과 최연성을 상대로도 좋은 경기를 펼쳤다. 특히 승자전 박성준과의 경기는 저프전 명경기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이승훈이 불리한 상황임에도 지독한 견제 플레이로 박성준을 끊임없이 흔들면서 처절한 혈전을 선보였다. 결국 박성준이 이기긴 했지만, 수십 기에 가까운 드론을 헌납했다(...).
이렇게 비호감 신인에서 친근한 악동토스로 자리를 잡았는데... 이러다가 다시 비호감 이미지를 쌓은 사건이 있었다.
바로 2007년 6월 26일 프로리그 팔진도에서 펼쳐진 경기에서 안기효를 상대로 불리한 상황에서 1시간 동안 끝까지 버티기만 하다가 재경기를 만든 사건이다. 물론 선수 입장에서는 이길 수 없다면 무승부라도 끌고 가야 하겠지만, 보는 팬들 입장에서는 다 끝난 게임을 꼬장 부리면서 질질 끄는 것으로밖에 안 보이므로 다시 욕을 엄청 먹었다.[10] 결국 어렵게 재경기로 끌고 가긴 했지만,
이런 비호감 이미지는 삼성전자 칸과의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11] 프로리그 결승까지 이어졌다. 2008년 8월 9일에 팀이 3:1로 밀리던 상황에서 마지막 주자로 나서서 5세트 콜로세움에서 허영무와 대결했지만, 상대편의 4게이트 노림수에 KO.[12] 정확히는 이 경기를 패해서가 아니라 본진이 완전히 끝장나서 이길 수 없음이 확정되고도 파일런 숨겨짓기 플레이로 시간을 끌다가 허영무의 병력에 자신의 건물이 모두 철거되는 순간까지도 끝내 GG를 안 쳤기 때문이다.
물론 현장에 있던 김창선 해설이 말한 것처럼 자신이 GG가 곧 팀의 준우승으로 이어지는 상황이라 멘붕해서 차마 GG를 못 쳤을 수도 있겠지만, 파일런이나 숨겨 짓다가 엘리를 당하는 순간까지도 GG를 안 치는 모습은 확실히 프로답지 못한 행동이었다. 특히 김캐리는 스타 뒷담화에서 이 행동에 대해 "그럴 거면 배틀넷처럼 디스라도 걸지, 디스는 왜 안 걸었냐?"며 깠다.
이게 프로답지 못한 행동인가에 대해서는 평가가 갈리는데, 사실 프로라면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팔진도에서 벌인 안기효와의 무승부 경기는 어쨌든 자신이 완전히 밀린 상황에서 다크 아콘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한 번의 기회라도 더 따냈다는 점에서 전략적으로 매우 좋은 판단이었다. 해당 경기가 나름 중요한 경기였기도 하고, 본인의 패배가 곧 팀 전체의 패배와 같은 상황이었으니 팀을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닛과 스킬을 총동원하여 버틴 것을 욕하기는 어렵다. 물론 이승훈이 명백히 비판받아야 될 점이라면 그렇게 버티는 전략을 택한 것보다는 경기 내내 시종일관 상대방을 약 올리듯이 히죽거리고 있었다는 부분 정도다.[13] 이승훈 역시 무승부 사건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14] 다만 프로리그 결승전에서의 그 일은 빼도 박도 못하는 비매너 맞다. 본인 역시 이에 대해서는 셀프디스도 하면서 허영무와 삼성전자 팀에게 자신의 잘못이라고 인정했다. 관련 영상.
일단 본인은 악동 이미지가 크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18토스 사건 때는 프로게이머 인생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팀에서 노이즈 마케팅 찬스로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3개월 동안 미친듯이 숙소에서 연습만 한 결과 팀 프로토스 에이스로 거듭났으니 인생사 새옹지마.
다만 악동 이미지가 kt 프런트에서 이승훈의 영입을 취소하는 결정적인 요인이었다고 말했으며, 화승과 공군에서도 같은 이유로 전부 자신을 컷해버렸다고 한다. 선수 입장에선 e스포츠 최악의 팀인 스파키즈에서 명문팀이자 인기팀이자 복지의 끝판왕이었던 kt로 갈 천금 같은 기회가 날아갔다는 건 확실히 매우 아까운 일일 것이다.[15]
그 후에 2009년 여름 즈음에 본인의 기존 연봉이 1800만원이었는데, 이유찬 감독에게 연봉 인상을 안하면 입대해버리겠다고 연봉 협상을 했으나, 이명근 감독은 되레 "군대 잘 가라."라고 회답하여 정말 은퇴와 동시에 현역 입대를 해버렸다고... 그 후 이명근은 전태규에게 연습생 토스 유저 중 2명을 주전급으로 키우란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16] 근데 이게 이승훈 본인 입장에선 정말 신의 한 수였는데, 입대하고 반 년이 지나자 승부조작이 드러나며 팀이 아주 박살이 나 버렸으니...[17][18][19]
한때는 이성은처럼 세레모니를 통하여 관객들의 환호를 얻는 서비스도 즐겨 했다.
08년도 이후 프로리그에선 전 시즌들에 비해서 부진하다가 공군 ACE 2009년 3월병 모집에 지원했다. 당시 경쟁자가 프로토스 쪽은 서기수와 박성훈, 테란 쪽은
08-09 시즌 4라운드 중이던 2009년 5월 16일에 자신의 미니홈피에 쓴 '게이머를 그만두고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의 글을 볼 때, 아마 공군 입대가 좌절되자 은퇴를 결심한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9월 22일에 대한민국 육군 현역 입대를 했다. # 입대 당시 프로게이머 자격은 그대로 유지된다고 했으나, 제대 이후에도 계속 미복귀인 것으로 보아 사실상 은퇴. 더군다나 팀도 사라져 버렸고, 이승훈 본인도 이미 팀 내에서 입지가 좁아진 상황이었는데다 나이도 적지 않아졌다 보니... 참고로 보직은 장군 운전병이었으며, 2011년 7월 18일 제대.
4. 아프리카 TV BJ 활동
2019년 1월 1일부로 아프리카 방송을 하는 모습이 드러났다. 닉네임은 18토스이승훈 → 악동이승훈. 전 스파키즈 멤버들 중 가장 근황을 알 수 없었던지라 갑작스러운 방송에 팬들이 놀랐다.[20] 선수 시절과 확연할 정도로 얼굴이 변했고 살이 빠졌다. 그냥 동네 마실 나온 아저씨 인상(...). 방송을 하게 된 계기는 김학수와 방송 관련 얘기를 하게 된 것이라고. 스파키즈 시절 군기반장이었다는 증언이 많았던지라 전태규 & 김봉준과의 관계가 어찌 설정될지가 관건.본디 전역을 하고 다시 팀으로 복귀하려고 했는데 팀이 사라지는 바람에 붕 떴다고 한다.[21] 그래서 다른 팀에도 들어가 보려고 했는데 연락한 곳마다 다 튕겨서 할 일도 없어 여러 기업들(ex. 넥슨)에서 면접을 봤으나 채용되지 못해서 기술이나 배우자 하고 용접을 배워서 조선소에 취직했다고 한다.[22] 벌이는 괜찮았지만 일이 노가다 이상으로 너무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앞으로의 앞날을 고민하다 김학수와 대화 후, 개인방송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2019년 1월 1일, 방송 첫날 "전업 BJ로 제2의 인생을 살아가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개인방송 2일차인 1월 2일, 방송을 진행하던 와중 옛날 스파키즈 팀원들 개인방송을 돌며 안부 인사를 전하고 스타를 3판 2선승제를 각각 했다. 그런데 김봉준을 한 번 이긴 거 빼고 나머지를 전패했다. 10년만의 공백은 어쩔 수 없는 건지 게임 개념과 빌드가 옛날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도 손은 프로토스 유저치고는 빨랐으며, 2007년 당시 스타일대로 다수의 셔틀은 운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부분의 전 프로들이 현역 시절보다 살이 더 쪘지만 이승훈은 용접공 일을 하며 받은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스파키즈 시절보다 더 살이 빠졌다. 마찬가지로 살이 더 빠진 암센세는 키라도 작지 이쪽은 키도 엄청 크기 때문에 과장 좀 보태서 뼈다귀 수준으로 보인다.
전태규와의 합방에서는 아놔 18사건, 안기효 무승부, 결승전 드래곤볼과 스파키즈 썰을 풀면서 자신을 서든에 빠지게 만든 범인이 전태규라고 폭로했다. 전태규가 선배 프로토스였기 때문에 보고 배워야 하는데 멘토라는 사람이 연습은 뒷전이고 자기 끌고 놀러 갔다며 전코치를 신나게 깠다. 사이좋게 펑펑 놀았는데 전태규 혼자 코치로 슝 전향해버려서 사실상 혼자 독학으로 연습을 했다고. 이후 전 스파키즈 멤버들과 하나씩 합방을 진행했는데, 말빨로는 어디 가서 밀리지 않는 신상문이 이승훈을 은근히 어려워하는 걸 보면 이승훈이 정말로 스파키즈에서 군기반장이긴 했던 모양.
전태규, 신상문과 더불어 전태규랑 친한 진영화, 홍구까지 더해 5명이서 술먹방을 거하게 진행했는데, 여기서 대형 사고(?)를 치고 만다. 방송 자체는
현역 시절의 이미지와는 달리 개인방송은 어그로, 막장이 판치는 아프리카답지 않게 정상적이다. 처음 오는 시청자들이 하나같이 하는 얘기가 기존의 이미지와는 정 반대로 사람이 매우 좋다고. 구 스파키즈 팀원들도 옛날 군기반장 시절과는 딴판이라고 얘기하는 중.
아침 방송을 선호하며 간혹 아침 1부, 저녁 2부로 나눠 방송하기도 한다.
주로 스타크래프트 래더, 빨무 방송을 하며, 여캠 코칭에도 일가견이 있어 석티어 프로리그와 DTL 시즌2를 모두 우승시킨 유일한 코치이기도 하다. 11월부터는 종겜비로 전향을 선언하고 V4를 오픈에 맞춰 시작했지만 2일만에 손절했다. 11월 12일 달빛조각사가 신서버를 오픈하면서 이에 맞춰 유튜브에 동시 송출하며 달빛조각사 방송을 진행 중이었다가 시청자도 적고 별풍선 조차 거의 터지지 않아 방송을 접을지 말지 고민에 빠져있었다.
그러던 중 2019년 12월 달에 마이너즈에서 변형태가 인턴에서 빠지고 바쁜 기뉴다의 인원을 대체할 2명의 신규 멤버 공개 채용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기업 입사 지원하듯이 면접을 준비한다.
이후 마이너즈 공식 채용에 지원하여 간신히 2순위로 짭호를 이기고 합격을 한 뒤 마이너즈 온라인 쇼타임 및 야외 쇼타임, 그리고 기타 여러 마이너즈식 방송을 진행 중이다.
4.1. 마이너즈 쇼타임 가입 이후
마이너즈 멤버 중 같은 대전에 거주하는 박지호와 가장 자주 합방 및 컨텐츠를 진행하며, 스스로 박지호의 매니저를 자초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마이너 촌뜨기 감성에 맞는 독특한 합동방송과 간절하게 펀딩에 목숨을 거는 방송들을 한다.마이너즈 쇼타임에서는 디스코드에서 유독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거나 부족한 애드리브로 시청자들의 원성을 자아내는 것이 특징. 그러나 유일하게 마이너즈 중에 팀의 사기를 돋구는 멘트를 하기도 한다.
유독 강한 모습을 보이는 게임은 야외 쇼타임 게임 대부분, 포트리스, 스타 빨무 및 헌터 팀플이며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게임은 카트라이더, 스타 부종전, 피파온라인4이다.
2020년 3월 31일, 방송 첫 시작 약 1년 3개월 만에 아프리카TV 베스트 비제이를 달성했다.
이후 마이너즈 쇼타임으로 인한 지속적인 부종 연습을 통해 타 마이너즈 멤버들에게 주종인 프로토스보다 저그를 더 잘하는 것 같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기존 선비 컨셉에서 약간 탈피해 본래의 성격대로 찐텐과 짜증을 내는 새로운 마이너즈 캐릭터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2020년 5월 12일 기뉴다와의 랜랜 멸망전에서 5:2 스코어로 승리하였다.
이후 변형태가 마이너즈에 재합류하자 기존 멤버인 박지호와 더불어 1군 출신 전 프로게이머로 스타크래프트 개인전에 많은 기대를 받으나, 동시에 실수를 연달아 하거나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일 때마다 서로 '니가 전프로야?', '프로게이머 맞아?' 등등의 공격들을 하며 애증의 케미를 보여주고 있다.
2020년 7월 15일 같은 마이너즈 크루 멤버들과 함께 바람의나라 연 모바일 게임을 새로 시작하였다. 이전부터 지속해오던 컨텐츠인 마이너즈 쇼타임에 바람의나라 연 방송까지 진행을 하고 있기에 긴 방송시간과 밤샘 작업으로 심신이 많이 지칠 것으로 보인다.
2020년 7월 19일 지친 이승훈의 피로함을 풀어줌과 동시에 잠들어있던 이성교제 연애세포를 되살릴 기회가 찾아온다.
여느 때와 같이 마이너즈 멤버들과 바람의나라 연 게임 방송 도중 전 항아리 엔터테인먼트 스타여캠이자 은18이라는 자신과 유사한 별명을 가진 아프리카TV BJ 은시와 운명처럼 연결이 되었고, 이후 몇시간동안 서로 디스코드를 함께하며 관계를 형성하던 도중에 갑자기 기뉴다에 의해서 다음날 이승훈이 본인의 승용차로 은시의 집인 청주시에서 픽업을 한 뒤에 부산 감전동까지 오는 긴 야외 방송 및 도착 한 뒤 감전동에서의 게임상 결혼식을 올리는 엄청난 컨텐츠가 시작되었다.
서로 엄청 조용하고 소극적인 스타일이라 많은 걱정과 우려를 낳았었지만..
2020년 7월 20일 야외 방송 초반에는 여자를 오랜만에 만나보는 이승훈의 과한 TMI와 은시의 단답형 대화 스타일 때문에 일부 시청자들은 '서로 18좌라 이어지지 않는구나' 등의 우려를 표현했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며 이게 웬걸 기뉴다의 이론적인 심리학 지식과 추진력 및 이승훈 특유의 뚝심과 훤칠한 외모로 결국 은시의 관심을 사로 잡는 것에 성공하게 되며 바람의나라 연 결혼식 및 우결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이후 여러 명장면을 낳은 로맨스를 계속 보여주다가 2020년 8월 6일 이승훈이 은시에게 방송중에 마음을 고백한 뒤 바로 방종을 하였고 결국 2020년 8월 13일 진결을 인정하는 방송을 한 뒤 공식적인 스타 커플이 되었으며 이후부터에는 모바일 게임들을 위주로 방송을 하며 게임은 잘하지만 재미는 없는 형 포지션을 맡으며 방송을 진행하고있다.
이후 드디어 2024년 10월 26일에 은시와 청주시 흥덕구에 있는 한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백년가약을 맺었다.
5. 여담
- 만약 은퇴가 몇 달만 늦었더라면, 더 큰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휘말렸을 가능성도 있었다. 더군다나 당시 팀 내의 대형 브로커도 있었으니 승부조작에 직접 연루됐다면... 설사 연루되지 않았더라도 신상문처럼 억울한 피해를 당했을 수도 있었다.
- 김봉준과 김창희의 증언에 따르면 연습 시간에 연습실에서 스타크래프트 연습은 안 하고 서든어택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코치들이 오면 화면을 알탭으로 변환 후 옵저버하는 척했다고 한다.
- 김봉준과 신상문, 이경민 등이 합방했을 당시 파일런을 숨겨짓고 엘리를 당한 이유가 차마 GG를 못치겠다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개인리그보다 관중들이 많은 프로리그 결승 무대 앞에서, 그것도 자신이 명백히 GG를 쳐야 할 상황이었고 비록 GG를 치게 되면 마지막 경기가 되는 상황이더라도 깔끔하게 마무리를 냈어야 했는데, 깔끔하기는커녕 질질 끄는 행동을 보여 주는 건 당연히 할 짓이 못 된다고 동료들은 이에 대해 비난했다.
- 김창희와 신상문이 말하기를 팀 내에서 군기반장이었다고 한다. 밑의 애들의 침구 정리, 설거지, 쓰레기통 비우기 등 무서운 왕고 역할을 해서 밑의 선수들이 많이 무서워했다고 한다.[24] 게임 연습을 할 때도 상대가 맞춤 빌드를 하면 경기가 끝나고 이것저것 전략을 했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꼬치꼬치 물어서 갈구기도 해서 연습을 기피하고 싶은 상대였다고. 이승훈이 은퇴해서 팀을 나가자 김창희가 다음 군기반장이 되어 이승훈한테 당했던 대로 똑같이 내리갈굼을 했고, 김창희가 주작으로 날아가자 그 다음은 김봉준이, 또 마지막은 한지원이 그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 다만 김봉준은 개인방송에서 밖에서 보여지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연습생들 잘 챙겨주고 잘 가르쳐줬다고 언급하기도 했었다.
- 전태규가 개인방송에서 이야기하기를 이승훈의 욕설과 비매너 행동들은 거의 프론트와 코칭스태프들이 짜고 벌인 일이라고 했다. 스파키즈는 인기가 어중간해서 차라리 악동 이미지로 어그로라도 끌어서 주목받자는 컨셉을 밀었고, 그것으로 인기를 끌었다. 전태규가 이야기하기를 팀에서 프로토스 넘버원을 노리고 있었다고 했다. 당시 스파키즈 프로토스 선수가 전태규, 박정길, 이승훈 이렇게 3명이었는데, 이승훈이 연습실에서 프로토스 성적이 가장 좋았다고 이것을 느낀 전태규는 그를 매우 경계했다고 한다.
- 전태규가 아프리카TV에서 한 언급에 따르면 팀 내에 1군급 프로토스가 자기밖에 없으니까 연봉 올려달라면서 연봉을 안 올려주면 군대 가겠다고 버티다가 그대로 군대로 간 거로 보인다.[25][26] 덕분에 전태규는 연습생이었던 조재걸, 이경민, 김학수, 김봉준 중에 두 명을 1군급으로 키우라는 윗선의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이경민은 신상문의 뒤를 잇는 에이스급 카드로 성장했지만, 나머지 세 명은 별 볼일 없게 되고 말았다! 물론 그 당시 시점이 그렇고, 이후 조재걸은 리그 오브 레전드, 김학수는 스타크래프트 2, 김봉준은 아프리카TV에 가서 터뜨렸으니 잘 된 걸지도...
- 김봉준을 n.Die 클랜 시절부터 제자로 알고 있었어서 하이트 스파키즈로 오게 만든 것도 본인이라고 하였다. 입단 이후에도 코치진들이 김봉준의 실력이 너무 부족하다고 판단해서 방출을 시켜야겠다고 1군들에게 말했을 때 본인이 직접 코치진들에게 조금만 더 두고 봐달라고 부탁하며 말렸었다고 한다. 그리고 김봉준은 2010년 역대 최고의 토스전 승률을 보유한 저그 게이머를 그의 공식전 마지막 경기에서 털어버렸다.
6.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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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을 하면서 혹사한 나머지 184.5cm가 되었다고 한다.[2] 인서울권 명문대의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LG전자에 취업 후 결혼도 한 엄친아라고 한다.[3] 2024년 10월 26일, 청주시 흥덕구에 있는 한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4] 프로게이머 은퇴 이후 가졌던 직업인 피복아크용접기능사를 스타크래프트의 테란 유닛 SCV에 빗대어 생긴 별명.[5] 고등학교 때 반에서 6등 정도는 했다고 한다.[6] 이승훈에 의하면 딱 한 가지 빌드를 제외하고 무조건 이길 자신이 있는 빌드를 준비해나갔는데 하필 박정석-임재덕이 그 빌드를 써서 패했고, 그 때 화가 좀 났다 한다.[7] 이승훈이 고개 숙이며 사과했고 박정석이 "괜찮다고, 이해한다"며 사과를 받아주었다.[8] 이승훈이 훗날 전태규의 방송에 나와 말하길, 욕이란 욕은 다 적혀 있고 부모님의 안부, 즉 패드립까지 나왔다고 한다.[9] 라지만, 이 세 사람은 이때 기량이 많이 하락한 상태였다. 그나마 이윤열이 전성기 때 못지않은 성적을 냈었고, 박성준은 이 대회에서 8강까지 오른다. 최연성도 이 때 16강까지는 올라가며 그 때까지는 테란 중에서 중상위권에서는 버티고 있었다.[10] 당시 이승훈은 프론트진에게 칭찬받았다고 하며 본인도 게임하면서 즐거웠다 한다. 99대1 경기를 5대5까지 만들어 무승부를 이끌었다는 게 그 이유. 사실 프로게이머라면 백 번이고 칭찬받아야 할 부분이다. 다 패한 경기를 잘 버텨서 패배를 면한 어찌 보면 근성과 집념이 빛을 발한 명경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승훈이 표정만 잘 관리했어도 명승부로 회자됐을지도 모른다.[11] 2008년에는 상반기에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이, 하반기에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까지 2개가 열렸다.[12]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이 플레이오프에서 김택용을 상대로 이 전략을 써서 스파키즈의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13]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을 했는데 그냥 카메라가 보이기에 거기다 대고 환히 웃었다고(...) 한다. 순수하다.[14] 사실 잘못이라고 볼 여지도 없다.[15] 더불어서 당시 kt는 강민의 은퇴와 박정석의 공군행으로 인해 토스라인이 망가져버린 상태였는데, 지금 시점에서는 별로 무의미한 얘기이기는 하지만, 만일 이승훈이 영입되었더라면 kt의 토스라인 부활에 조금이나마 기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우정호의 각성과 신한은행 프로리그 09-10부터는 김대엽까지 본격적으로 확 뜨면서 이승훈의 입지는 다시 좁아져서 영입 효과도 별로 없어졌을 것이다.[16] 그 결과 이경민이 확 성장했다.[17] 당초 입대하고자 한 공군 ACE에서도 1명이 가담했다.[18] 이 시기 승부조작 사건이 터지고 친정 팀 선수들이 대거 연루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팀에 연락해 누가 걸렸는지 알아봤는데 신상문 등 일부 선수를 제외하고 팀의 핵심 선수들이 죄다 가담했다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먼 훗날 기뉴다의 방송에서 밝혔다. 덤으로 원종서가 한명한명 데려가서 밥 한끼 사주면서 사주했을 거란 점과 원종서 빼곤 전부 다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착한 친구들이라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스파키즈 출신답게 사태의 흐름을 잘 알고 있었다.[19] 이승훈 본인이야 워낙 성격이 강하고 원종서랑 동갑이니 휘둘리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아예 사건에 연루될 여지가 없게 군복무도 할 겸 피해 있는 편이 낫기는 했다.[20] 사실 김학수랑 신상문이 개인방송에서 "승훈이 형 방송 준비하고 있다." 식의 말을 몇 번 하긴 했다.[21] 엄밀히 말하자면 그 사건 전에 모기업 온미디어가 CJ그룹에 합병되는 바람에 팀이 CJ 엔투스로 합병된 것이지만... 실제로 KeSPA의 공지에 의하면 일단 서류상으로는 그도 CJ 신분으로 있었다. 이 공지에 의하면 임의탈퇴 처리된 것으로 나와있다. 이는 별도의 은퇴가 공시되지 않았던 CJ에 합류하지 못한 다른 스파키즈 출신 선수들도 마찬가지. 애초 1군에 합류한 선수가 김상욱, 신상문, 이경민 밖에 없었고, 나머지 선수들은 다 집으로 돌아가거나 합류해도 거절하고 다른 팀에 간 경우가 많다고. 설령 CJ로 복귀한다 해도 당시 CJ에는 개인리그 준우승까지 거둔 진영화와 신예 장윤철이 활약하고 있었고, 해체된 하이트 스파키즈와 통합되어 이경민까지 합류하는 등 토스라인이 포화 상태였기 때문에 CJ 입장에서 이승훈을 받아줄 이유가 전혀 없었다.[22] 용접을 배우기 위해 한국폴리텍대학에 입학하면서 뒤늦게 대학에 진학했다.[23] 두 사람은 프로 시절 접점이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전태규의 인맥으로 처음 보는 것이나 다름없다.[24] 이승훈의 뒤를 이은 군기반장 김창희는 김봉준의 개인 방송에 게스트로 나와 "이 새끼는 이불도 안 개고 설거지도 안 하고, 설거지로 에펠탑을 쌓아라"며 갈궜다며 그 때의 이승훈을 회고했다. 그 후 김창희는 쓰레기통이 반 정도 차자 "쓰레기 쌓인 게 무슨 에펠탑 쌓아도 되겠네 같이 쌓자 X발놈들아"고 후배들을 갈궜다. 청출어람?[25] 당시 연봉이 1800이라 대기업 팀 연습생과 같은 수준이었다고 한다. 팀 내 프로토스 에이스라면서 대우가 고작 이 정도였으니...[26] 이승훈 본인 방송에서 언급하기를 군대를 가려고 같은 팀 선배였던 차재욱을 통해 공군을 알아봤으나 욕설 사건 때문에 안 될 것 같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하며, kt나 화승에서 이적 오퍼가 왔었으나 각 팀 사무국 모두 욕설 사건 때문에 인성이 안 좋을 거라는 이미지가 있다고 판단하여 이적도 무산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육군으로 현역 입대했다고... 당시 디스코드로 연락 온 김학수의 주장에 따르면 팀을 떠나기 전 2달 동안 부주장이라는 사람이 연습 시간에는 자고, 연습 시간이 끝나면 PC방에 가서 밤새도록 아이온을 플레이했다고 한다. 하지만 감독과 코치들이 깨우거나 연습하라고 말을 건다는 식으로 건들 법도 한데, 전혀 건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2달 내내 PC방만 갔던 것이며, 불화로 팀을 떠났던 한동욱처럼 될 것 같아 바로 군대를 가고자 팀을 떠났다고...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