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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06 16:16:57

신삼대토스


1. 개요2. 상세3. 상대 전적4. 스타일5. 명칭의 미묘함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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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신삼대토스.jpg

2002~2004년 프로토스 프로게이머의 선두주자들이었던 박정석, 강민, 박용욱삼대토스의 위상을 계승하였던 신진 프로토스 게이머로, 박지호, 오영종, 송병구[1]를 묶어서 부르는 말이다. 이들은 삼대토스의 뒤를 이어 프로토스를 새로이 이끌었다.

2. 상세

신삼대토스의 양대 개인리그 경력
이름 온게임넷 스타리그 MSL
본선 횟수 본선 횟수
박지호 0 0 2 7회 0 0 0 3회
오영종 1 1 0 5회 0 0 0 2회
송병구 1 3 2 17회 0 1 1 10회
박지호는 2003년, 오영종과 송병구는 2004년에 데뷔했고, 3인 모두 2005년부터 개인리그에 데뷔한다.

프로토스의 황금기였던 2003 시즌[2]을 지나 2004 시즌이 되자 프로토스는 단 한 명도 우승하지 못했을 정도로 암울한 시기를 맞았는데, 더 큰 문제는 성적이 아니라 프로토스의 유망주 수급이었다. 4강 진출도 강민, 박정석, 박용욱 이 3명 밖에 없었다. 심지어 본선 진출자까지 범위를 넓혀도 전태규, 김성제, 김환중, 안기효가 전부였다.[3]

2005 시즌에 접어들자 강민은 PC방 리거라는 놀림거리가 될 정도로 부진했으며, 박용욱의 활약도 프로리그에 국한되었고, 그나마 박정석이 우주닷컴 MSL에서 결승까지 진출하는 등 고군분투 했으나 안기효를 제외하면 나머지 선수들도 삼대토스와 동세대 선수들이었을 정도로 프로토스의 신예가 매우 부족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던 차에 2003년부터 팀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던 박지호와 팀리그에서 이윤열을 꺾는 등 잠재력을 보여주던 오영종 이 두 명의 기량이 비약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하고, 여기에 아마추어 시절부터 알음알음 유명하던 송병구가 데뷔하자마자 챌린지리그를 우승하고 EVER 스타리그 2005에 진출하게 되면서 프로토스의 신예들에 대한 기대가 커지게 된다.

이 3명이 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에서 공동 다승왕을 수상하면서 그 기대감이 현실이 되기 시작하고, 거기에 So1 스타리그 2005에 박지호와 오영종이 처음으로 개인리그 진출에 성공하고, 직전 시즌에 데뷔한 송병구까지 2회 연속 스타리그 진출을 이뤄내면서 이때부터 이 3명을 프로토스의 미래라고 부르며 신삼대토스라고 지칭하게 된다.

결국 오영종과 박지호는 So1 스타리그 2005에서 각각 우승과 4위라는 호성적을 거두면서 가을의 전설을 이뤄냈고 이 리그에서 이전까지는 자주 사용하지 않던 아비터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으며, 캐리어까지 애용하면서 프로토스의 로망을 자극하는 동시에 프로토스의 발전까지 이루어냈다. 이때부터 이들은 새로운 프로토스의 기둥으로 자리 잡는다.

이후 박지호는 다음 시즌인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에서 2회 연속 4강 진출을 달성했고, 2006 시즌에는 개인리그에서는 8강 이상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프로리그에서는 박성준, 염보성과 함께 박지성 라인의 일원으로 팀의 후기리그 우승, 통합 챔피언전 우승까지 이끌었다. 2007 시즌에는 개인리그에 한 번도 진출하지 못하는 등 부진했지만, 에이스 결정전 11연승을 달성하는 등 프로리그에서 맹활약했다.

오영종은 2006 시즌에는 부진하다 가을 남자답게 가을 시즌에 부활해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 준우승, 팀의 프로리그 포스트 시즌까지 이끌었고 2007 시즌이 되자 개인리그에서는 단 한 번도 진출하지 못하는 등 부진했지만 후기리그 MVP/다승왕/결승전 MVP, 통합 챔피언전 MVP까지 수상하며 팀의 최초이자 마지막 우승을 이끌며 맹활약했다.

송병구는 이 두 명과 대비되게 2006 시즌까지는 개인리그 8강에도 진출하지 못했고, 프로리그도 이전과 다르게 부진했지만[4] 2007 시즌이 되자 포텐셜이 터지며 Daum 스타리그 2007 3위, 곰TV MSL 시즌2 준우승, WCG 2007 금메달, EVER 스타리그 2007 준우승 등 개인리그, 프로리그 할 것 없이 맹활약하게 된다.

2007 시즌까지는 이 3명 모두 활약했지만 2008 시즌이 되자 올드 게이머들이 그렇듯이 박지호와 오영종은 하락세를 맞이했고[5], 송병구는 신삼대토스 시절 이상의 활약을 이어나가며 드래프트 세대 강자급 선수들인 이영호, 이제동, 김택용과 라이벌리를 이루며 택뱅리쌍의 일원으로 스타판 황혼기를 책임졌다.

팀 단위 대회 성적은 박지호가 프로리그 우승 1회, 준우승 1회, 통합 챔피언전 우승 1회, 위너스 리그 준우승 1회, 오영종이 프로리그 우승 1회, 준우승 1회, 통합 챔피언전 우승 1회, 송병구가 프로리그 우승 2회, 준우승 1회, 통합 챔피언전 준우승 1회를 기록하였다. 팀 단위 대회 수상 실적은 박지호가 다승왕 1회, 오영종이 다승왕 2회, 정규 시즌 MVP 1회, 결승전 MVP 1회, 통합 챔피언전 MVP 1회, 송병구가 다승왕 1회, 정규 시즌 MVP 1회, 결승전 MVP 1회를 기록하였다.

공교롭게도 이 3명 모두 MSL보다 스타리그에서 강세를 보였다. 박지호는 스타리그에서는 본선 진출 7회에 4강 2회를 기록하였고, 기량이 많이 떨어진 2009년 이후로도 16강~36강 진출에 성공했지만 MSL에서는 본선 진출 횟수가 단 3번에 16강이 최고 성적이었다. 오영종은 스타리그에서는 본선 진출 5회에 우승 1회, 준우승 1회를 기록했지만 MSL에서는 본선 진출 단 2번에 16강 1회, 32강 1회씩만을 기록했다. 송병구는 스타리그에서는 본선 진출 17회로 프로토스 및 모든 선수 통틀어 본선 진출 횟수 1위를 기록하였고, 우승 1회, 준우승 3회, 4강 2회, 통산 다승 3위(100승)를 기록하였으나 MSL에서는 준우승 1회, 4강 1회로 다소 아쉬운 성적이지만 10번이나 MSL 본선에 진출하는 등 그나마 박지호, 오영종에 비해 양대 리그에서 고른 활약을 보였다.

명예의 전당에는 개인리그 결승 진출 경험이 없는 박지호를 제외한 2명이 헌액되었다.

3. 상대 전적

신삼대토스 간의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기준 상대 전적 리스트.
(공식전/비공식전 포함, 왼쪽의 선수가 앞으로)
박지호 오영종 송병구
박지호 3:2/3:2 1:4/1:4
오영종 2:3/2:3 3:5/4:7
송병구 4:1/4:1 5:3/7:4

4. 스타일

삼대토스가 그러하듯 신삼대토스도 본인들만의 스타일로 팬들을 열광시켰는데, 박지호는 엄청난 물량과 과감한 공격성으로 스피릿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오영종은 다크 템플러 활용을 통한 사신이라는 별명과 함께 뛰어난 판짜기와 전략성을 보여주었으며, 송병구는 안정적인 운영과 단단함으로 무결점의 총사령관이라는 별명과 함께 이름을 날렸다[6].

보통 박지호와 송병구가 정파, 오영종이 사파로 분류 되었지만 삼대토스 선수들도 각각의 별명과 달리 물량과 전략 모두 능하듯이 신삼대토스 선수들도 정석과 전략 모두 좋은 선수들이었다. 정파로 분류된 박지호는 아비터 활용의 시초로 불릴정도로 새로운 해법을 보여준 선수고, 송병구는 전투 이전에 빌드부터 이기고 들어가는 스타일이다. 반대로 사파로 분류된 오영종은 처음 붙은 별명이 질럿 공장장이듯이 물량을 뽑는데도 능했다.

5. 명칭의 미묘함

분명 2005년을 기점으로 꽤 활발하게 쓰였던 용어임에도 불구하고 자세히 파고 들어가면 꽤 미묘한 용어다. 분명 이 용어가 탄생한 So1 스타리그 2005 시점에서는 3명의 신인 프로토스를 묶는 용어로 큰 결격점이 없었지만 So1 스타리그 2005 이후부터는 3명을 같은 라인으로 묶기에는 애매한데 그 이유는 2007 시즌 이전까지 송병구가 다른 둘에 비해 커리어를 추가하지 못해 따로 노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송병구가 챌린지리그를 우승하며 3인 중 스타리그에 가장 먼저 데뷔했지만 2005 시즌에 오영종이 우승, 박지호가 2연속 4강을 찍을 동안 개인리그 16강을 뚫지 못했다. 2006 시즌에는 개인리그에서 오영종만 16강을 뚫어 준우승을 기록했고 박지호와 송병구 두 명 모두 개인리그에서는 16강을 뚫지 못하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그나마 박지호는 프로리그에서 소속팀의 우승을 이끄는 등 맹활약을 했지만 송병구는 프로리그에서도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즉, 2006 시즌을 끝난 시점에서 봤을 때 성적은 오영종 - 박지호 - 송병구의 순서였고, 송병구가 개인리그, 프로리그 모두 다른 둘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물론 전신인 삼대토스도 그렇고 타 종족의 조진락, 변태준, 마준동, 3김저그, 삼신전 등 3명을 묶은 라인은 대개 1명이 다른 2명에 비해 처지는 커리어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가장 처지는 선수도 충분히 라인으로 묶일만한 성적을 기록했다. 반면 2006 시즌 까지의 송병구는 박지호, 오영종과 비교했을 때 커리어의 격차가 꽤 큰 상태였다. 아래에서 언급될 안기효조차 송병구보다 커리어가 좋았음에도 오영종, 박지호에 견줄 수는 없었으니 말 다했다.

이 판도는 2007 시즌이 되면서 뒤집어지는데 문제는 뒤집어도 너무 뒤집어놨다는 것. 가장 뒤에 처져있던 송병구가 개인리그에서 활약을 하기 시작했지만 박지호, 오영종은 개인리그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춰버렸고 오히려 뜬금없이 김택용이 치고 올라오면서 택뱅을 형성했다. 그나마 프로리그 에서는 3명 모두 활약했지만 2008 시즌이 되면서 박지호, 오영종은 완전히 하락세를 맞이했고 송병구는 상승세를 그리며 택뱅리쌍으로 묶이게 되고, 최종적으로 신삼대토스 중 가장 좋은 커리어를 보유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기대받던 3인의 신인 프로토스를 표현한 말로서 이 3명이 이룬 커리어만 보면 이름값을 했다. 하지만 박지호, 오영종이 활약하던 시기는 송병구가 크게 처지고, 송병구가 활약하자 박지호와 오영종이 가라앉기 시작하는 등, 3명을 라인으로 묶기에는 시기별로 활약한 선수들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라인으로 묶기에는 다소 미묘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6. 여담

사실 이들이 활약하던 시기에는 안기효까지 포함하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2006 시즌까지의 커리어는 오히려 안기효가 송병구보다 앞섰다.[7] 하지만 신삼대토스가 2005 시즌에 두각을 나타내던 신예 3인을 묶은 말인데, 안기효의 개인리그 데뷔가 이 3명보다 앞선 2004 시즌이라는 점, 이 3명이 최소한 4강 진출은 달성했는데 안기효는 결국 8강을 넘지 못했다는 점, 이 3명에게 상대전적이 모두 열세라는 점들이 겹쳐 최종적으로는 제외되었다. 재밌는 것은 개인리그 데뷔가 빨랐다는 점, 커리어가 밀린다는 점, 상대 전적이 열세라는 점등 여러모로 신삼대토스 이전의 3인을 묶은 삼대토스에 포함되지 못한 전태규와 유사한 점들이 많다.

박지호는 2010년 들어 코치와 선수를 병행하다 2011년 팀의 해체와 더불어서 은퇴했고, 오영종은 2008년 가을 공군에 입대한 뒤 2010년 전역과 동시에 친정팀에 복귀했다가 2011년 팀의 해체로 인해 은퇴한다. 송병구는 2012년까지 주전력으로 활약했고 스타크래프트 2로 바뀌고 난 뒤까지 활약하다 팀이 2016년에 프로리그의 폐지와 동시에 해체하자 동시에 은퇴하게 된다. 이 중 박지호와 송병구는 은퇴 뒤 아프리카TV BJ로 활동하고 있고, 오영종은 잠시 BJ 활동을 하다 그만두고 지금은 일반인의 삶을 살고 있다.
[1] 이쪽은 드래프트 세대 중 뛰어난 활약을 보였던 프로토스 5명(김구현, 김택용, 도재욱, 윤용태, 허영무)과 묶여서 육룡으로 분류되기도 한다.[2] 그마저도 채러티, 패러독스섬맵의 단기적인 효과에 불과했다.[3] 심지어 하나포스 센게임 MSL에서는 프로토스 본선 진출자가 강민 단 한 명 밖에 없었고, IOPS 스타리그 04~05에서도 프로토스 본선 진출자가 박정석 단 한 명 밖에 없었다.[4] 이때 와우에 빠져 스타를 소홀히 한 게 원인이었다.[5] 그나마 박지호는 2010 시즌까지 개인리그에 진출했지만, 오영종은 2008 시즌이 마지막 개인리그 진출이었다.[6] 다만 송병구의 별명은 기량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2007시즌 이후부터 붙은 별명이고 2006시즌 까지는 큰 커리어도, 특색도 없었기에 이렇다할 별명이 없었다. 무난하고 안정적이기만 한 스타일인데 개인리그 활약도 크게 없었기에 이전 삼대토스나 다른 신삼대토스의 일원들은 고사하고 전태규, 이재훈, 김성제, 김환중, 안기효 등의 다른 토스들과 비교해서도 본인만의 뚜렷한 개성이 없다는 평도 들었다.[7] 안기효가 8강 2회를 기록했지만 송병구는 8강에 한 번도 진출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