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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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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기[1] 교황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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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로마의 주교

Papa
Summus Pontifex Et Episcopus Romanus
Pope
파일:Pope_Francis.jpg
<colbgcolor=#ffe100><colcolor=#670000> 현직 <colbgcolor=#ffffff,#1f2023>프란치스코 (Franciscus)
즉위 2013년 3월 13일
즉위 미사 2013년 3월 19일
경칭 Sanctitas Sua (성하)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명칭
2.1. Papa2.2. Summus Pontifex2.3. 직함
3. 상징4. 영향력5. 역대 교황6. 역사7. 가톨릭에서의 위치8. 선출 과정9. 국적10. 교황의 하루 일과11. 알현 시 외교 예절12. 관저13. 교황에게 부여되는 교통편14. 복식15. 신비주의설들16. 통계17. 타 그리스도교 교파의 입장
17.1. 정교회17.2. 개신교
17.2.1. 성공회
18. 기타19. 창작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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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external/images.travelpod.com/typical-statues-dotted-around-the-basilica-vatican-city.jpg
교황 비오 8세의 무덤
피에트로 테네라니, 1866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제작된 작품. 보좌에 앉아 양팔을 펼치고 있는 성상은 예수이고, 예수 앞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조각상은 교황 비오 8세, 왼쪽의 열쇠를 든 성상은 성 베드로, 오른쪽의 칼과 책을 든 성상은 성 바오로다. 교황의 권위와 의무가 어디서 비롯되는지 시각적으로 잘 표현한 작품이다.
그대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후계자가 아니라 한 어부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2]

모든 권력이나 권위의 행사는 봉사하는 데 있으며, 교황은 자기 자신을 즐겨 'Servus servorum Dei'(하느님의 종들의 종)라 부른다.

이브 콩가르

교황()은 가톨릭 교회의 수장이자 로마주교이며, 바티칸 시국의 선출직 군주이다.

2. 명칭

라틴어로 Papa[3] 혹은 Summus Pontifex[4]라 한다.[5]

교황을 부를 때는 성하(聖下, His/Your Holiness)라고 예칭한다.

라틴어에는 아버지를 가리키는 또 다른 표현으로 'Pater'가 있는데 이는 '생물학적 아버지'를 의미하며, Papa는 '법적 책임자'로서의 아버지를 뜻한다. 따라서 어원으로만 보면 '교부(敎父)'로 표기하는 게 맞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교황의 동의어로 '교화황(敎化皇)', '법왕(法王)', '법황(法皇)', '로마 법왕(Roma 法王)' 등이 등록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처음에는 '백성을 하느님에게 이끌어 감화시키는 자'라는 의미에서 '교화황(敎化皇)'이라 했고, 또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친 모든 교리를 세상에서 주관하는 자라는 의미에서 '주교자(主敎者)'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교화황을 줄인 교황과 교종을 혼용했으나, 차츰 교황이라는 말이 널리 퍼지면서 완전히 정착되었다. 1992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춘계총회에서 용어위원회 논의를 거쳐 교황이 공식 용어로 최종 확정됐다. 북한에서는 로마 법왕이라고 한다.

근래 들어 교황이라는 호칭이 황제군주를 연상시킨다며 지나치게 권위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2013년 3월 21일 명동성당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경축 미사를 집전한 강우일 베드로 주교(당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는 강론에서 교황 대신 '교종(敎宗)'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였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름을 택한 분의 복음적 영혼과 삶을 드러내는데 임금과 황제를 표현하는 '교황'이라는 어휘가 어울리지 않게 느껴졌다"는 것이 이유. 강 주교는 이미 1990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전례위원장 시절부터 교황의 호칭을 '교종'으로 교체하는 것을 검토한 적이 있었다. 강 주교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시에도 다시 한번 교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현재 공식적으로 한국 가톨릭교회에서는 '교황'이라는 기존의 용어를 구태여 '교종'으로 바꿔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교황이라는 용어가 다소 군주적인 의미가 있다 하더라도 이 점은 '교종'도 마찬가지이며, 오히려 한자의 연원을 따지면 황(皇) 자의 기원이 되는 중국 전설상의 삼황오제는 직위를 혈통에 따라 세습하지 않고 덕망이 있는 타인에게 물려주는 방식을 취했으므로 '교종'보다 '교황'이 선출직인 교황직에 더 어울리는 글자라는 것이다.[6] 교회의 제도를 반드시 민주제로 인식하여야 할 필요는 없다. 학술적으로도 교황직은 군주정(monarchy)의 일종으로 보고 있으며, 교황직이 교회의 한 봉사직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나, 교회 제도의 가시적인 형태를 보아 '교황'이라는 용어가 걸맞다고도 볼 수 있다. 신성 로마 제국황제황제선거에서 선제후들이 선출한 선출 황제였지만 아무도 그 황제 칭호를 가리켜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 역시 온당하지만은 않다. 이 주장은 무엇보다 가톨릭 내부에서도 교황을 왕이나 황제로 이해하지 않는다는 걸 간과한 것이다. 학술적으로 교황직이 군주정monarchy인 건 맞지만, 애당초 영어 monarchy 및 동일 어근의 서양 언어들은 한자 皇이나 王에 대응하는 의미가 아니다. 1인이mono 앞섬-archy을 의미하는 것일 뿐이다. 이 '1인의 앞섬'monarchy이 정치학적으론 한자어 '군주'와 외연이 비슷하지만 뉘앙스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7] '교황'은 엄연히 한국 천주교에서 사용하는 공식 용어이니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라틴어 Papa의 가족적인 어감과 가톨릭교도권의 교황직 이해를[8] 더 정확히 반영하기 위해 더 나은 번역어를 찾는 건 분명 올바른 방향이다.

또한 한국 문화에서 교황이라는 번역어가 맞는지에 대한 논쟁인데, 한국에서는 황제가 중국 전설의 삼황오제, 본래적 의미를 두고 쓰이지는 않는다. 현대 한국인의 시선에서 황제는 왕보다 격이 높은 존재, 곧 천자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공식 입장대로 선출직 황제에 대해 논하려면 유럽 역사와 중국사에 대한 전 국민적 이해가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한국인 다수가 동서양의 선출직 황제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가톨릭의 공식 입장은 어디까지나 중국 번역이나 유럽에서의 교황 별칭을 논할 때 쓰임이 적절하다. 어디까지나 papa의 불인정이 아닌,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번역어에 대한 논쟁이기 때문이다.

'교종(教宗)'은 중국, 대만중화권에서 교황을 일컫는 말이며, 일본에선 교황(教皇)과 '로마 법왕(ローマ法王)'이 혼용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메이지유신 이후부터 2010년대까지 일본 정부의 대내외 공식 문서와 NHK, 요미우리 신문 등 일본 주요 언론들에서 '로마 법왕'이라고 칭했으며,[9] 일본 가톨릭에서는 1981년 2월 요한 바오로 2세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부터 교황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일본에서 교황을 '법왕'이라고 하는 건 번역 과정에서 원래 불교 화엄경 한역(漢譯)에서 Dharma-raja에 대한 상대어로 사용한 해당 단어를 석가모니를 비롯한 부처, 나아가 교계의 지도자를 일컫는 말로 쓰던 용례를 인용해 와서 갖다 붙인 것이기 때문. 당연히 일본 가톨릭은 불교 냄새가 짙은 이 단어를 안 좋아하기 때문에, 일본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는 한국과 같이 '가르치다'는 의미를 강조하는 교황이라는 단어를 선호하였으나, 교세가 작아 보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가톨릭교회와 세속 세계에 의해 2가지 호칭이 혼용되어 쓰이다가, 2019년 11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일본 방문을 계기로 일본 정부와 NHK는 공식 명칭으로 '로마 교황'(ローマ教皇)을 사용하게 되었다.[10] #

'폰티펙스 막시무스'라는 호칭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로마 황제가 겸하던 대제사장의 호칭이다. 379년 그라티아누스 황제가 이 명칭을 포기하자 로마 주교가 이어받아 사용했다고 한다.

2.1. Papa

'교황'으로 번역되는 라틴어 Papa(파파)(영어: Pope)고전 그리스어에서는 원래 아버지를 부르는 애칭으로 쓰이는 단어지만, 라틴어에서 이를 차용하면서 존칭으로 바뀌게 되었다 (평어는 pater). 그러다가 그리스어를 사용하던 동방 교회 쪽과 라틴어를 쓰던 서방 교회 쪽 모두 사제주교, 총대주교를 Popa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현재도 그리스, 러시아, 세르비아의 정교회에서는 교구 신부들을 Pope라고 호칭한다.[11]

반면 서방 교회에서는 이 사용이 점차 의미가 좁혀지면서 3세기 초 무렵 고위 성직자를 일컫는 존칭으로 Papa를 사용하다가[12] 5세기 무렵부터는 주로 로마의 주교를 일컬을 때 사용하고, 8세기 이후에는 오로지 로마의 주교에 대한 호칭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Papa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쓰게 된 건 10세기 이후로, 그 이전까지는 '로마의 주교'라는 직함을 공식적인 명칭으로 사용했다. 단, 아버지를 의미하는 다른 라틴어 단어인 Pater 하고는 조금 의미가 다른데, Pater는 생물학적 아버지, Papa는 법적 책임자로서의 아버지이다. 아무튼 Papa는 두루 주교를 부르는 말로 썼으나 점차 교황을 가리키는 말로 유보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2.2. Summus Pontifex

영어로 Supreme Pontiff로 번역되는 Summus Pontifex[13]도 한국어에선 '교황'으로 번역된다.

본래 Summus Pontifex는 직역하면 '최고 사제'이며 불가타 성경 일부 구절에서[14] '대사제'를 가리키는 데 쓰였다. 그러나 Papa와 비슷하게 점점 교황을 의미하는 의미로 뜻이 좁아졌다.

Pontifex(Pontiff, 사제)라고만 적을 경우엔 오늘날엔 넓게는 주교를[15] 뜻하고 좁게는 교황을[16] 뜻한다.

2.3. 직함

공식적으로 2000년이 넘는 역사가 오래된 직위답게 호칭이 많다. 「교황청 연감(Annuario Pontificio)」에 따른 교황의 공식 직함은 다음과 같다.

교황청 연감에 수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관례적으로 현재까지 사용되는 명칭은 다음과 같다.

3. 상징

파일:교황 문장.svg 파일:프란치스코(교황) 문장.svg
교황의 문장(紋章). 교황의 왕관인 삼중관과 금색으로 된 하늘나라의 열쇠, 은색으로 되어 하늘나라의 열쇠의 권위가 땅에도 소급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열쇠, 또 그 둘이 나누어질 수 없는 관계이며 한 사람에게 속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붉은 실로 이루어져 교황의 권위를 나타낸다. 로마 교구의 문장이기도 하다. 마태오 복음 16장의 내용이 문장의 기반이다. 현임 교황 프란치스코의 문장.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이어 교황관 대신 금색 줄 3개가 있는 주교관이 위에 있고, 교황의 조국인 아르헨티나를 상징하는 태양 문양 안에 교황의 출신 수도회인 예수회의 문장과 예수의 수난을 상징하는 성정, 그 밑에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별, 그 배필인 나자렛의 성 요셉을 상징하는 나르드 꽃이 새겨져 있다. 아래에 사목 표어가 쓰여있는 것은 이례적이다.

4. 영향력

카노사의 굴욕은 중세 시대 교황의 파워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지만, 이 사건 이전이나 이후로는 교황의 권력이 그토록 강하지는 못했다. 카노사의 굴욕 몇년 후 교황이 황제에게 폐위당했다는 후사는 잘 언급되지 않는다. 사실 중세 시대를 보면 교황이 세속 군주와 끊임없이 경쟁을 하긴 했지만 대부분 굴욕의 역사였다.[18] 11 ~ 13세기 정도를 제외하면 교황의 권력은 그렇게 강하지는 않았다. 11세기까지 교황은 황제의 하수인으로 인식되었고, 11세기 중반 이후 교황의 권력이 급격히 강해졌지만, 교황이 일으킨 십자군 전쟁의 실패가 이어지고, 13세기 대공위 시대 때 독일 제후들이 담합하여 교황을 왕따시키며 이후로 교황의 영향력은 급격히 약화되었고, 얼마 후 아비뇽 유수가 일어나며 더 이상 교황은 역사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15세기말 교황의 빵셔틀은 독일뿐이었다. 1517년 루터의 종교 개혁이 발생하며 가톨릭에서 독립한 개신교 국가에서는 교황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가톨릭 세계 안에서도 광활한 신대륙 남미를 식민지로 삼으며 머리가 커진 스페인이 더 이상 교황의 말을 듣지 않게 되었다. 1527년 황제 카를 5세(카를로스 1세)가 로마를 정복하여 교황을 굴복시킨 후 스페인은 교황의 영향력을 배제하며 자국의 종교 재판장이 스페인 가톨릭의 최고 권위자로 군림했다. 그렇게 교황은 현대사까지 세계사에 언급되는 경우가 거의 없게 되었다.

오히려 현대 사회에서 교황의 권위는 예전보다 훨씬 커졌다. 종교 개혁으로 큰 타격을 입은 가톨릭은 새로운 수요처를 뚫기 위해 후진국에 선교사 파견에 공을 들였는데, 증기선의 발달로 대륙 간 선박 이동이 원활해진 19세기 남미 이민자가 급증하며 급격하게 성장했고, 이와 함께 가톨릭의 영향력도 커졌기 때문이다. 원래 남미의 가톨릭은 유럽의 교황과 그렇게 유대감이 강하지는 않았고, 상당수 지역은 가톨릭과 사실상 별개로 거의 독자적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20세기 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남미인들은 그동안 얼굴도 모르던 교황을 직접 텔레비전으로 보게 되었고, 웅장함과 화려함의 극치를 보이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의 교황은 마을 성당의 주교나 사제들과는 차원이 다른 신성함 그 자체로 다가왔다.(이 점은 한국의 가톨릭교도들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20세기에 유럽, 북미 등에서 가톨릭의 종교적 영향력이 크게 감소했지만, 남미에서 가톨릭의 영향력은 여전히 크고 그 중심에 교황이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14억 명이라는 전 세계 최대 종교인 가톨릭의 수장인 교황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독립 국가인 바티칸의 국가 원수 자격으로 타 국가 원수와 동일한 예우를 받으며, 세계 외교가에서도 입김이 세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세계 각국의 중요한 이슈에 대해 교황이 말 한마디 언급하면 각국 언론에 실릴 정도다. 현재에도 교황은 전 세계의 종교, 정치, 외교, 문화에 있어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친다.[19]

우리나라에서도 교황이 방한했을 경우에는 다른 국가 원수들이 방한했을 때와 같은 의전과 예우를 제공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울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군 예식령에 규정된 바에 따라 국가 정상에게 행해지는 예포 21발이 사용되었으며(장관급은 17발, 총리급은 19발이 사용됨), 이는 교황의 권위가 한 나라의 수장과 같은 수준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교황이 타 국가를 방문하거나 국제적인 행사 등에 참석할 시에는 일반적으로 세속 국가 정상들보다 의전 서열이 더 높고 우선적으로 예우를 받는데, 교황이 일반적으로 고령이기도 하고 종교 지도자로서 대우해 주는 경향 때문이다.

포브스에서 선정한 세계 권력자 순위에서는 교황을 6위로 책정하였다.# 이는 세계 주요 강대국 지도자인 미국 대통령, 중국 주석, 러시아 총리, 독일 총리 다음가는 수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지닌 전제 군주인 사우디아라비아국왕보다 높은 것이다.

5. 역대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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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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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가톨릭에서의 위치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당신 교회의 보이는 초석으로 삼으셨으며, 그에게 교회의 열쇠를 맡기셨다. 베드로의 후계자인 로마 교회의 주교는 “주교단의 으뜸이고 그리스도의 대리이며, 이 세상 보편교회의 목자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936항. 원문 링크.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가톨릭은 교황의 권력이 존재함으로써 중앙 집권적인 교회 체계가 완성될 수 있었으며, 교황이라는 존재는 가톨릭 교회에서 사도들과 성인들 다음으로 존경할 만한 대상이자[20] 상징과도 같다. 교황은 특히 우두머리로서 가톨릭교회를 이끈다. 역사적으로 일부 교황들은 이런 존경심을 권력으로 악용하여 부패한 적도 많다. 이에 실망한 신자들이 대거 종교 개혁을 일으켜 만들어진 개신교로 전향한 때도 있었으나, 트리엔트 공의회를 통한 쇄신과 반성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한 개혁 등, 교황들의 주도 아래 지속적으로 가톨릭 교회의 쇄신과 개혁 운동이 진행되고 있고, 개신교와도 그리스도인 일치 운동으로 화합과 대화를 이으려 한다.

교의적인 관점과는 별개로 교회 정치적 관점에서 보자면, 교황직은 로마 지역 교회가 세계의 지역 교회들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과 동시에 로마 지역 교회에 대하여 세계의 지역 교회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로마 주교가 세계 가톨릭교회의 추기경들을 서임하고 그 세계 교회의 추기경들이 로마 주교를 선출하면서, 로마의 교회와 세계의 지역 교회들이 서로에게 강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이 드러나는 예가 현대 교황들의 출신지인데, 폴란드인요한 바오로 2세가 선출된 1978년부터 [age(1978-01-01)]년째 '이탈리아의 수석 주교[21]이탈리아인이 아닌'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선출에 세계 교회의 추기경들이 관여하면서 교황이 세계 가톨릭교회에 대해 가지는 대표성을 실질적으로 보완해준다. 본래 교황은 로마 주교의 또 다른 이름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오히려 전 세계 가톨릭 공동체를 대표하는 추기경단에 의하여 선출된 인물이 교황이자 로마 주교가 되는 것이다. 그만큼 오늘날의 교황직은 이탈리아의 전유물이 아닌 국제화된 직위임을 잘 나타내는 면모이다.

7.1. 교황 수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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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교황 무류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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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wdtprs.com/Vatican-I.jpg
제1차 바티칸 공의회

교황의 말은 언제나 옳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 때 발표된 '교황 무류지권(無謬之權)'을 잘못 이해한 것으로 '교회' 자체에 대한 복잡한 신학적 논쟁의 산물이다. 교회 자체에 대한 이해와 정의를 담보로 하기 때문에 지금도 가톨릭 내부에서나 외부에서나 중요한 신학적 논쟁 사항이다.

교황이 무류지권을 선언하기에는 다음과 같은 과정이 필요하다.또한 무류성의 마지막 조건은 반드시 교황의 선언이 전 세계 모든 가톨릭교회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 즉, 교황이 공식적인 순서를 밟아 모든 가톨릭교회를 향해 선포한 것이 아니라면 그 선언은 무류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 즉 교황의 결정이 전부 무류하다는 것이 아니라 신앙과 윤리에 관한 결정이 무류하다는 것이며 그나마도 위에 적은 것과 같은 절차를 거쳐야만 무류성이 인정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역으로 '교황 무류성이 행사되지 않은 다른 가톨릭의 교리는 종교적으로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물론 이런 견해에 의하면 그리스도교의 핵심 사상인 유일신 사상이나 삼위일체, 단죄와 구원에 관한 교리들조차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에 이런 식의 극단적인 견해를 취하는 사람은 드물다. 가톨릭 교리의 가장 큰 권한은 성경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있으며 그에 대한 유권적 해석의 최종 권한('절대 권한'이 아님)이 교황에게 있는 것일 뿐이다.

현재 대체적으로 교회학자들이 모두 동의하는 교황 무류성이 발동된 교리는 아래의 3가지뿐이다. 가톨릭에서 전통적으로 인정해 왔던 교리를 재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중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칼케돈파 교회[22]에서는 이견 없이 믿는 교리이지만, 성모 무염 시태 교리나 성모 승천 교리는 특히 교파에 따라 교리가 크게 다르다. 위와 같이 교리가 다른 이유는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오랫동안 교회에서 '성전(聖傳)'으로 전승되어 온 교리이기 때문에 그렇다. 특히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강조하는 개신교는 가톨릭교회의 전승을 대부분 인정하지 않는데, 이에 관하여 가톨릭교회에서 전승되어 온 교리를 교황의 무류권에 근거하여 공식화했다고 볼 수 있다.

교황의 무류지권은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이미 오랫동안 논쟁이 되었던 문제에 대해 이쪽이 더 타당하니 이렇게 정하고 더 이상 논하지 말 것을 교황이 도장을 찍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이렇게 정해진 사안에 대해서 반대하고 일어나면 그 순간 로마 가톨릭교회와는 분리되어 나간 것이라고 간주하기 때문에, 강력한 권한인 것은 사실이다. 즉, 교리적 차원이 아니라 교회라는 조직을 운영하는 차원에서 이야기한다면 강력한 종교적 통일성을 지향하는 가톨릭 교회의 특성상 어떤 문제(예컨대 교리)를 두고 논란이 분분할 경우 교황이 자신의 권한을 발휘하여 '이쪽이 더 타당하니 이것을 우리(가톨릭교회)의 원칙으로 정한다.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말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아주 강력한 권한인 만큼 사전에 충분한 논의를 거쳐 모든 절차를 적절하게 거쳐 공식적으로 명확히 발휘되어야만 유효하고 또 그 적용 범위 역시 정해져 있다는 것.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013년에 퇴위하자 "교황 무류성의 권위가 모호해지지 않느냐"는 의문이 제기된 바 있다. 이에 바티칸"교회법상 교황의 무류성은 베네딕토 16세의 후임 교황이 지니게 되며, 사임한 교황은 더는 도그마를 선포할 권한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제까지 교황이 선종한 후 차기 교황이 결정될 때까지의 기간과 마찬가지로, 새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는 어떠한 주교도 무결성을 보유할 수 없다는 것이다.

8. 선출 과정


교황이 되는 법.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가톨릭 신자인 남성이 신부주교추기경 코스를 거쳐 교황이 되는 과정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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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교황은 전임 교황의 사망(또는 사임[23])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후 15일~20일 이내에 선출된다. 교황의 선출은 세속 선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될 뿐 아니라 아주 특이한 방법으로 세계 곳곳에 널리 알려진다. 라틴어로 ‘닫힌 공간’이라는 뜻의 콘클라베라 불리는 교황 선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스티나 경당에서 이루어지며 국적이나 출신 등에 관계없이 80살 이하 전 세계의 모든 추기경들이 투표에 참석한다. 외부와의 소통이 일제히 단절된 채 추기경들은 매일 2번의 비(非)공개 투표를 하며, 그 결과는 전통적으로 짚이나 종이를 태워 알리게 되어 있다. 짚은 검은 연기(선출 불발)를 내고 종이는 하얀 연기(새 교황 당선)를 내는데, 연기는 시스티나 경당 내부의 작은 굴뚝을 통해 경당 정면 오른편에 있는 박공 앞의 한 지점으로 뿜어져 나온다.

교황으로 선출되면[24] 새 이름을 정하게 되는데, 보통 존경해 온 전임 교황과 내면적 관계를 연결 짓거나 그의 사목 방향을 지지하는 취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가문에서 배출된 선임 교황 이름을 이어 쓰기도 하며, 교황으로 선출된 그날이 축일이거나 존경하는 성인의 이름을 따서 짓는 경우도 있다.[25] 교황명 개칭 관습에는 "베드로좌에 오른 새 교황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 지상 최고의 다리를 놓는 새 사람이 됐다"는 뜻이 함축돼 있다. 아울러 로마 주교의 수위권이 강화되고 교황 직무가 강조되면서 다른 교구장 주교와 차별을 두려는 취지도 담겨 있다.

이렇듯 교황의 교체는 대부분 전임 교황의 사망 이후 이루어지는데, 교황이 선종했을 때 그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선 수석 추기경이 교황의 본명을 3번 부르며 은망치로 이마를 3번 두드리는 방법을 취하고 있으나 실제로 이 방법이 사용된 적은 없고 의사과학적 소견을 받아서 하며 선종이 확인되면 수석 추기경이 교황의 오른손에서 어부의 반지를 떼내 은망치로 표면에 2개의 깊은 십자 흠집을 내어 기능을 정지시키는 의식을 치른다. 베네딕토 16세는 퇴위하기로 한 날인 2013년 2월 28일 20시에 스위스 근위대가 철수하고 반지를 처리했다.

교황이 새로 재임할 때 같이 새로운 추기경들을 임명하곤 한다. 이 추기경 목록엔 '비공개' 처리된 사람이 최소 1명씩 있다. 추기경 문서의 인 펙토레 추기경 참고. 어디서 사는 비밀 추기경인지 공산당에 의해 가톨릭이 통제되는 중국 혹은 구소련 지역이자 정교회가 뿌리 깊은 러시아 지역 추기경이라는 설이 있지만 언제나 떡밥만 무성하다. '예전에 비해 말도 안 될 빈도로 언론에 노출될 정도로' 규모 확대일로에다 아예 조직 스스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엑소시즘 파트 담당자라는 소문도 있다.

선입견과는 달리, 교황이 될 자격은 원칙상으론 가톨릭 세례 성사견진 성사를 받은 남성 누구에게나 있다. 사전에 입후보 인사를 미리 선출하지도 않으며, 그 이전에 추기경일 필요조차 없다. 콘클라베가 열릴 때 언론에서 선정하는 '유력 후보'는 이전까지의 경력이나 직위, 활동 면에서 교황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인사들을 임의로 선정한 것일 뿐이다. 그래서 아예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인사가 교황으로 깜짝 등장 하는 일도 있다. 실제 역사에서는 아예 일개 수사가 교황청에 빨리 새 교황을 뽑으라고 독촉하는 편지를 보냈다가, 그걸 본 추기경들이 이런 인물이야말로 교황이 되어야 한다고 표를 던져서 즉위한 사례까지 있다.

다만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출된 사람이 주교일 경우, 선출된 사람이 이를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교황이다. 설령 어떠한 사정으로 즉위식을 거행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교황으로서 정통성에 지장이 생기지 않는다. 만약 선출된 사람이 주교가 아니라면, 해당 인물이 결정을 받아들인 뒤 주교직을 서품받아야 한다. 주교품을 받은 뒤에야 비로소 교황이 되며, 만약 주교로 서품되지 않으면 교황이 되지 못한다. 이는 교황이 원칙적으로 '로마의 주교'이기 때문이다.

9. 국적

대부분의 교황이 프랑스계 아니면 이탈리아계였으나 폴란드 출신의 요한 바오로 2세 때부터 새로운 역사가 열렸다. 그가 교황으로 선출되었을 당시에는 냉전 시대였고 폴란드는 공산주의 국가였다. 한편 베네딕토 16세독일 출신, 프란치스코아르헨티나 출신[26]이다.

왜 '출신'을 강조하느냐 하면 교황은 바티칸 시국의 통치자이므로 당연히 국적이 바티칸이고,[27] '보편 교회의 수장이 특정 국가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바티칸 이외의 국적을 포기하기 때문이다. 다만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국인 아르헨티나는 법적으로 국적을 포기할 수 없는 탓에, 프란치스코만 이례적으로 이중 국적이다.

초창기 교황들의 이름은 의외로 대부분 로마식이 아니라 그리스식인데, 그럼에도 그들 대부분이 그리스인이라는 설명은 거의 개연성이 없어 보인다. 실제로 교황 연대표는 "초창기 교황들 중 7명은 로마를 비롯하여 이탈리아 출신이고, 베드로 한 사람만 유대인이다"라고 기술한다. 아마도 그들은 예수가 시몬을 케파라는 이름으로 바꿔주고, 이를 그리스식으로 베드로라고 읽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자신들의 이름도 그리스식 이름으로 바꿨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추측이 사실이라면 그리스식으로 개명하는 이런 관행은 제13대 교황 엘레우테리오[28]에 이르러서도 끝나지 않았고, 심지어 중세에도 그리스식 교황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베드로의 시대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그리스식 이름을 택하는 관행의 중요성은 더욱 줄어들었다. 이는 그리스 정교회권과의 관계가 점점 소원해졌기 때문이다.

교황이 공식 석상에서 발언할 때에는 본인을 단수로 '나'라고 칭하지 않고 우리라고 칭했다. 유럽에서 군주급 인물이 자신을 가리키는 1인칭 대명사를 복수로 칭한 전통에서 유래하는데, 이를 장엄 복수형이라 하여 Majestic plural 또는 Royal we라고 하며,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우리의 모습을 따라 인간을 만들자!'라고 한다거나 히브리어에서는 신을 단수형인 엘이 아닌 엘로힘으로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동양에서는 그냥 짐(朕)으로 번역하고, 프랑스에서는 왕이 Je가 아닌 Nous로 자칭하며 스페인에는 이런 관습이 없다. 비슷한 전통이 있는 이슬람쿠란에서도 신은 자신을 '우리'라고 칭한다. 가톨릭에서 이 전통을 깬 사람은 바로 요한 바오로 1세. 자신을 그냥 '나'라고 칭하여 주변인을 놀라게 했다.[29]

10. 교황의 하루 일과

국외 순방이나 외빈 접견과 같은 특별한 사정이 아닌 이상 아래와 동일하다고 한다. 취침 중에 급한 사정이 발생하면 일어나서 처리한다고 하며 삼종 기도, 각종 기도 시간, 묵상 등의 시간을 제외하면 일에 치여서 휴일이 없다고 한다.

아래는 현임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일과이다. 근거

11. 알현 시 외교 예절

다른 군주국의 군주를 알현할 때와 마찬가지로 교황을 알현할 때 역시 엄격한 예법과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 무릎을 꿇고 어부의 반지에 입을 맞추는 것이 원칙.[30] 다만, 오늘날에는 (특히 세속 국가의 지도자들은) 이렇게까지 격식을 갖추지는 않는다.

남성은 검정 연미복을 입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검은 정장에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은 색의 넥타이라면 충분히 예를 갖춘 것으로 간주한다.

여자는 복장 예절로 검은색 긴 소매 옷과 검은색 머릿수건을 착용해야 하나[31], 교황의 수단과 같은 흰색 옷을 입을 수 있는 특권을 받은 여자들이 있다. 가톨릭 군주국 가운데서도 교황청에 의해 '최고의 가톨릭 군주(Rex Catholicissimus)'로 인정받은 국가의 여왕 또는 왕비만 이런 특권을 받는다. 대통령, 총리 같은 공화정 국가의 영부인이나 비가톨릭 왕가의 여왕·왕비는 이 특권을 부여받을 수 없다.

현재는 스페인 보르본 왕가, 벨기에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 룩셈부르크 나사우바일부르크 대공가, 모나코 그리말디 공가,[32] 이탈리아 왕국의 옛 통치 왕가인 사보이아 가문 등 5개 왕가만이 보유하고 있는 특권이다.

2016년 기준으로는 스페인레티시아 오르티스 로카솔라노 왕비와 소피아 왕대비, 벨기에의 마틸다 왕비와 파올라 왕대비, 룩셈부르크의 마리아 테레사 대공비, 이탈리아 마리나 공비[33], 모나코샤를린 위트스톡 공비 등 7명이 이 특권을 받았다. 관련 기사

프란치스코 교황 대 들어 탈권위적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여성이 검은 옷과 검은 베일을 쓰지 않아도 단정하고 수수한 색의 정장 정도는 입을 수 있도록 분위기가 완화되었다. 또한 알록달록하고 무늬가 화려한 옷이라도 특정 문화권의 격식 있는 전통 복식이라면 알현 시 입는다 해도 결례가 아니다. 주교황청 대한민국 대사관의 오현주 대사가 신임 대사로 발령받았을 때 한복을 입고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하였으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방한 시에도 영부인이었던 이순자김옥숙이 한복을 입었다. 김정숙 여사의 경우 문재인 일가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 엄숙한 복장을 했을 뿐이다.

12. 관저

4세기부터 교황들은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 인근에 있는 라테라노 궁전에서 기거했지만 아비뇽 유수가 종식된 이후에는 바티칸사도 궁전에 거처해 왔다. 로마 시내의 퀴리날레 언덕에도 교황 소유의 궁전이 있었지만 이탈리아 통일 전쟁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몰수했고 현재는 이탈리아 대통령 관저로 바뀌었다. 한편 로마 교구의 주교좌, 즉 교황좌는 성 베드로 대성당이 아니라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에 있다. 아비뇽 유수가 일어나기 전까지 교황들이 라테라노 궁전을 1천 년 가까이 관저로 삼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추기경 때부터 거주하던 산타 마르타 게스트하우스에서 계속 살고 있기 때문에 그의 임기 동안은 관저로 쓰이지 않게 되었다.

13. 교황에게 부여되는 교통편

이탈리아의 철도 사업자인 '트레니탈리아'는 3~4량의 교황 전용 객차를 보유하고 있고 이탈리아의 국영 여객 항공 회사였던 '알리탈리아(ALitalia)'[34]는 여객기를 전세하는 방식으로 제공하며 이탈리아 공군은 H-3D 31-2번기를 Elicottero Del Papa(교황의 헬기)라고 부르며 운영 중이다. 아마도 이탈리아 공군이 H-3 시킹 시리즈를 AW101 시리즈로 통일 운영할 시에는 아무래도 교황 전용 헬기 역시 바뀔 것으로 추정된다.

육로를 이용한 대외 활동을 할 때는 전용 차량에 타고 이동한다. 흔히 영화 같은 데서 교황이 나올 때 특이한 자동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이것. 이 교황 전용 차량은 파파모빌(Papamobile)로 불리고 있으며 방탄 소재로 되어있다. 파파모빌의 차량 번호는 SCV 1. 다만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이후에는 일반적인 무개차로 개조된 SUV나 소형차를 타고 있다. 기존 차량들은 보관 중이라는 모양.

국내에서 <둘이 합쳐 아이큐 100>으로 개봉된 <Le Comiche>라는 이탈리아산 논스톱 코미디 영화에도 교황이 타고 다니는 파파모빌이 등장하는데, 난데없이 난입한 두 주인공 때문에 사막 랠리 경주에 휘말려서 엉뚱하게 랠리 우승을 하기도 한다.

교황에게는 미국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과 같은 전용기가 없다. 가톨릭 교회의 영적 지도자이자 세속적으로는 로마 안에 있는 도시 국가 바티칸 시국의 국가 원수이기도 한 교황에게 전용기가 없다는 것은 다소 뜻밖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교황청은 그동안 교황의 외국 방문 때마다 민간 항공기를 빌려 사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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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은 관례로 로마에서 출국할 때는 이탈리아 국적기인 ITA 항공[35]의 항공기를 임차하고, 외국 방문 뒤 돌아올 때는 방문국의 국적기를 탑승한다. 가령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에는 알리탈리아A330 전세기로 한국에 왔고, 로마로 귀국할 때는 대한항공보잉 777을 이용했다.

교황이 타는 항공기는 에어포스 원과 같은 국가 정상의 전용기가 아니라 민간 여객기이다 보니 방어용 무기 등이 전혀 장착돼 있지 않고 전세기에 지휘 통제 센터도 없다. 교황이 탔다는 걸 알리는 건 동체 어딘가에[36] 조그만하게 붙은 교황의 문장뿐이다. 게다가 교황의 좌석도 일등석이 아니라 이보다 등급이 한 단계 낮은 비즈니스다. 알리탈리아 항공 여객기에는 일등석이 없이 비즈니스석과 이코노미석만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교황이 누리는 특권이라면 비즈니스석 첫 줄에 혼자 앉는 것뿐이다.[37] 그 항공편이 출발지로 복귀할 때는 보통 일반 승객들을 태우고 돌아오는데, 특별편이 부여된다.

영미권 언론들은 교황이 타는 비행기를 '셰퍼드 원(Shepherd One)'이라고 부르는데, 성경 구절의 '착한 목자'[38]라는 뜻의 셰퍼드미국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14. 복식

교황의 상징색은 흰색. 그래서 교황은 항상 흰색의 수단을 착용한다. 교황이 흰색 수단을 입는 이유는 흰색이 고대로부터 신을 상징하는 고귀한 색이고 대사제만 입을 수 있었던 특성에서 연유한다. 따라서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인 최고의 목자라는 점에서 흰색 수단을 입는다. 이 흰색 수단은 현임 교황에서 명예 교황(Pope Emeritus)으로 퇴위한 후에도 유지할 수 있어서 베네딕토 16세는 사망 전까지 공식 석상에서 항상 흰색 수단을 입고 등장했다.

15. 신비주의설들

성 말라키 오모르라는 12세기의 수도자라틴어 두세 단어로 112명의 교황을 예언했다고 전해지는 문서가 있는데 이 예언[39]에 따르면 베네딕토 16세의 후임 교황이 마지막 교황이다.

여기서 언급되는 '태양의 신고(辛苦)' 혹은 '일식'은 요한 바오로 2세, '올리브의 영광'은 베네딕토 16세라고 하며 마지막 112번째 교황은 '로마베드로'. 요한 바오로 2세는 일식 기간에 태어나 일식 기간에 사망했으며 베네딕토 16세라는 교황명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베네딕토 수도회의 상징이 올리브. 이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명을 따온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의 속명(조반니 디 피에트로 디 베르나르도네)에 베드로의 이탈리아어 버전(피에트로)이 들어간다고 하면서 이번 교황이 마지막이라는 주장을 하지만, 꿈보다 해몽이다. 예언을 끼워 맞추기 위해 억지로 대립교황[40]들까지 끌어다 붙였다는 점에서 이미 신뢰도는 크게 떨어진다.

물론 성 비오 10세가 1909년에 실신 상태에서 깨어나며 남긴 말, "아아, 나인지 나의 후계자인지는 모르나 그가 교황좌에서 내려와 로마를 떠날 때 그는 형제들의 시체를 밟고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와 같은 무시무시한 예언이 화제가 되었는데, 이에 대해 위 예언과는 무관한 교황의 암살을 예언한 파티마의 성모 사건의 제3예언[41]과 관련된 일화일 뿐이라고 간주하는 견해도 존재한다.

이나마도 실신한 교황이 위의 비오 10세를 포함해 비오 12세라든지 바오로 6세라는 등 자료마다 내용이 천차만별이다. 애초에 제 1, 2예언보다 공개가 한참 늦었던 제 3예언을 둘러싸고 핵전쟁 예고라는 둥 각종 음모론이나 추측이 난무했으며, 예언이 모두 공개된 시점에도 "그렇게 사소한 예언을 교황청이 100년 가까이 일급 기밀로 숨겼을 리 없다"며 많은 음모론이 쏟아져 나오는 실정이다. 세계 최대의 단일 조직의 수장이 암살당할 것을 예고한 예언이 과연 사소한 것일지는 읽는 이의 판단에 맡기겠다. 여하튼 상황이 이러하니, 이와 관련해서 교회의 공적 발표를 제외하면 믿을 만한 자료는 거의 없다. 게다가 실제로 2013년 초 교황좌에서 내려온 베네딕토 16세는 명예교황으로 2022년까지 무탈하게 생존한 바 있다.

16. 통계

17. 타 그리스도교 교파의 입장

17.1. 정교회

정교회가톨릭동서 대분열은 신학적, 문화적, 정치적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 매우 복잡하다. 정치적인 문제로는 교황의 수위권 논쟁을 들 수 있다. 동로마 제국의 교회에서도 베드로의 후예인 교황, 정교회의 관점으로는 로마 주교가 주교들 중에 으뜸임은 인정하나, 그 으뜸이라는 표현은 명예적인 것으로 교황이 다른 교구를 실질적으로 지배할 권리는 없다고 보았다.

17.2. 개신교

가톨릭에서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추존하는 것에 대하여, 예수 사후 베드로의 행적은 거의 알려진 바 없으며 대부분의 복음 전파는 사도 바오로가 주축으로 행했다는 점과, 베드로로마에서 죽었다는 근거가 희박하다는 이유로 교황이라는 개념을 부정한다.(참고글 "로마교황권에 대한 정리)

개신교의 다른 주장으로는 베드로의 '고백'[46]이 반석이 되어 교회가 세워진 것이지 '베드로'가 반석이 된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이 주장은 가톨릭 측의 입장인 '베드로의 인격에 내려진 권위'를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논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중세철학적으로는 '사람'이 아닌 '믿음'이 축복 등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떡밥이 되기도.

또한 베드로의 인격에 내려진 권위이든 믿음에 내려진 권위이든 간에, 그 권위를 타인이 승계(세습)할 수 있는지 여부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개신교 측의 주요 논거 중 하나이다.[47] 따라서 개신교에서는 교회의 우두머리는 예수 이외에는 없으며, 교황은 교회의 우두머리가 될 수 없다고 본다[48]

요약하자면 교황의 권위의 근거는 가톨릭개신교 사이에는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다분하며 예민한 주제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이나 영국, 서유럽 등의 주류 개신교 국가에서도 교황을 적그리스도라 하는 경우가 많다.[49] 교황이 적그리스도라는 주장 자체는 애초에 마르틴 루터장 칼뱅, 울리히 츠빙글리는 물론이고 후대의 존 웨슬리(감리회 창시자)도 했던 주장이다. 또한 변형되지 않은 장로회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5장에도 명백히 언급하고 있다. 다만 몇몇 음모론이나 종말론에 심하게 현혹, 심취되어 집착하는 몇몇 극단적 세대주의에 빠진 개신교 이단에서는 교황을 적그리스도(anti-christ)라고 하고 신빙성 떨어지는 음모론 영상과 자료를 올린다. 이런 건 가려낼 필요가 있다.

개신교 근본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민중신학 등 진보적 성향의 개신교나 신학자들도 해방신학 성향 가톨릭의 전체주의식 조직 구조가 가지는 보수성과 권위(주의)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원래 개신교가톨릭사제의 존재와 의미에 관련해서 여러모로 다를 수 있으며, 그 권위적 질서의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교황이라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개신교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인 '만인사제론'과 '개교회주의'의 특성간 개교회 간,[50] 신자들 간 수평적[51]인 구조를 가지고 있고, 교황이라는 자리는 이 두 정체성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원론적으로 받아들이기 매우 어렵다. 그렇다 보니 그냥 편하게 이웃 교회로 간주하기도 하는 듯.

반면에 가톨릭은 전통과 권위가 존중되는 본래적 의미의 보수성이 강하기 때문에, 내부 비판이 엄격히 통제되고 조용히 넘어가게 되는 성향이 강하다. 평신도-성직자 및 상급 성직자-하급 성직자 간 순명이라든지 교도권이라는 수직적 질서가 강하다는 것. 파문을 비롯한 종교적·영적 제재의 의미도 훨씬 엄격하기도 하고 한 교회에 뿌리 박고 지내는 경우가 비교적 많은 목사와 달리[52] 주기적으로 전출하므로[53] 설령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그 신부를 다른 곳으로 보내 버리는 방식으로 조용히 해결하기 쉽다. 각자에 의해 해석된 교리를 최종 결정할 권한[54]도 독점되어 있기에 이상한 사이비 종파도 잘 나타나지 않는다.[55]

이런 면에서는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근본적인 보수성과 폐쇄성 때문에 기존의 구조와 질서를 깨뜨리기 쉽지 않다는 한계도 지닌다. 한국 가톨릭은 훨씬 사회 참여에 적극적으로 정치적으로 진보적, 타 종교에 개방적인 편인 것은 사실이다.[56] 하지만 보수적인 가톨릭 신자[57]와 신부들은 정의구현사제단을 교황청에서 이단시하는 해방신학을 따르는 이단이라고 간주하거나 심지어 종북이라 말하는 등[58] 내부적인 부분에서는 좀 다를 수 있다.

다만 종교개혁의 효시라 할 수 있는 마르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에서는 교황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적·교리적 한계가 어디까지인가를 놓고 이야기하고 있다.

17.2.1. 성공회

교황직과 그 권위에 대한 성공회의 전반적 입장은 당연히 가톨릭의 입장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지는 않으나, 세세한 해석은 그 성공회 신자의 신앙 자세가 고교회파/저교회파/광교회파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국적이나 소속된 관구/교구가 어디인지 등에 따라 꽤 넓은 스펙트럼을 보이는 편이다.[59] 성공회는 신자 개개인의 신앙적 성향을 일일이 터치하지 않기 때문에, 가톨릭과의 통합을 주장하는 부류부터 가톨릭을 적대시하는 부류까지 매우 다양하다. 개신교의 여느 다른 교파들처럼 소속 교파만 보면 그 신자의 신앙 자세를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지 않기 때문에, 성공회 신자 앞에서 교황이나 가톨릭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조심하는 것이 좋다.

성공회는 당시 헨리 8세의 이혼과 후사 문제 그리고 잉글랜드 교회와 웨일스 교회에 대한 과세와 교회 재산의 소유권 문제를 놓고 잉글랜드-웨일스 왕국[60]과 스페인 왕국, 합스부르크 왕가[61], 가톨릭교회를 중심으로 한 정치적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교황권에 대한 해석은 위의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과는 조금 시작점이 다르다.

18. 기타

19. 창작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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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시에 교황청 국기이기도 하다.[2] 교황의 세속 통치권(속권)은 어디까지나 교황의 교도권이나 목자로서의 의무를 행하기 위해 주어진 부차적인 권한에 불과하므로 그것을 우선시해서는 안된다는 뜻. 베르나르도가 ‘콘스탄티누스의 후계’를 거론한 이유는 당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서유럽의 통치권을 교황에게 양도했다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그에 관한 증거로 콘스탄티누스의 기진장이라는 문서가 나돌기도 했는데 나중에 그것이 위조로 밝혀지는 해프닝도 있었다.[3] 영어: Pope[4] 영어: Supreme Pontiff[5] 단, 전혀 다른 계통의 두 어휘가 모두 '교황'으로 혼용되어 번역되는 것이라는 문제점은 있다.[6]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발간 2000년 천주교 용어집의 설명. 당시 한국주교회의는 '교황'을 정식 용어로 하고, '교종'을 시험 삼아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용어로 허용하였으나. 2017년 용어집을 재개정하면서 '교황'을 단독 정식 용어로 확정했다.[7] 비유를 하자면 Papa를 '교황'으로 번역하는 건 라틴어 Princeps를 '황제'로 번역하는 것과 비슷하다. Princeps와 '황제'는 뜻의 외연은 유사하지만, 본래 Princeps는 왕정의 뉘앙스를 전혀 유도하지 않는 단어이며, 그 뉘앙스까지 옮기면 '수령' 내지 '원수'에 더 가깝다.[8] 교황이 황제나 왕이 아니라는 건 교황권이 현대 문화와 타협해서 나온 억지 양보 같은 게 아니라, 원래 가톨릭 교리가 그렇다. 외교상으로 바티칸의 국가 원수가 맞고 황제로 비유도 많이 되어왔지만, 역사상 그 어떤 권위적 성격의 교황도 최소한 원칙적으로는 자신의 직무를 왕이나 황제로 이해하진 않았다.[9] 일본천주교회에서 교황으로 명칭을 수정해 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에서는 "정변이나 쿠데타로 나라가 바뀌지 않는 한, 한번 등록된 직책명은 바꿀 수 없다"는 이유로 입장을 바꾸지 않아, 천주교회나 외국에서 작성한 게 아닌 한, 대부분의 경우 교황이 아닌 로마 법왕이라는 명칭으로 일본 정부의 공문서들과 각종 미디어에서 널리 표기되었다.[10] 또한 일본 가톨릭교회 내에서는 교부(敎父), 파파님(パパ様)이라는 표현도 쓰인다 한다.[11] 영어의 pope가 아닌 라틴어 papa에서 나온 러시아어 단어이다.[12] 다만 이건 papa에 대한 것이고, 아버지라는 의미의 존칭들은 21세기까지도 교황이 아닌 사람들에게 계속 사용되고 있다. 베네딕토회의 장상이 아빠스로 불린다거나, 신부에 대한 영어 존칭이 father라던가. 물론 father는 성부 하느님에 대해서도 쓰이는 표현이다.[13] Pontifex Maximus라고도 한다. 뜻은 유사하다.[14] 예: "Ioachim autem summus pontifex de Hierusalem venit in Bethuliam cum universis presbyteris suis ut videret Iudith"(유딧 15장 9절. 히에로니무스 불가타)[15] 예: Pontifical Mass는 '교황 미사'가 아니라 '주교 미사'이다.[16] 예: Pontifical College는 교황청립 대학을 의미한다.[17] 서방 총대주교라는 직함은 AD 642년에 교황 테오도로 1세가 사용하고나서 아주 조금 쓰인 정도일 뿐 애초에 자주 쓴 직함이 아니었다. 심지어 서방 총대주교란 말이 교황 직함으로 본격 주목받은 건 16-17세기이고, 정식 명칭으로 쓰인 건 1863년이다. 그래서 현대에 들어서 삭제했던 것.[18] 이게 가능했던 게 중세 시대는 비록 영주들 간에 서열이 있다고는 해도 그들은 맨투맨 계약 관계에 있었고 이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한 싸움에는 급이 없었다. 즉 황제와 일개 백작 사이에서도 전쟁은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었다. 백작령이라 하더라도 제국에서 독립된 영주권을 갖는 것이 인정된다면 그는 황제의 직속 하급자가 된다.[19] 심지어 가톨릭이 마이너한 국가의 국민들도 교황은 거의 다 안다.[20] 가톨릭에서는 하느님은 창조주이자 구원자로 흠숭(숭배)과 찬미를 받고,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인 인간은 존경을 받는다. 즉, 창조주이자 구세주이신 하느님과 피조물인 인간의 위계 구분이 존재하며, 이 위계의 구분에 따라 그 대상이 누릴 수 있는 영광의 종류도 달라지는 것.[21] 교황이 당연직으로서 겸한다.[22] 칼케돈 공의회에서 공인된 교리를 인정하는 교파를 칼케돈파라고 하며,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가 모두 여기에 속한다. 다시 말해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절대다수는 칼케돈파 교회이며, 비칼케돈파 교회는 오리엔트 정교회 등 소수이다.[23] 베네딕토 16세의 사임으로 교회법도 개정되었다.[24] 동양 임금의 묘호는 사후(死後)에 정하는 데에 비해, 교황명은 선출되자마자 본인이 정한다.[25] "베드로"라는 이름은 규칙으로 정해진 바는 없지만 사용하지 않는다.[26] 극히 드문 비유럽 출신이자 최초의 신대륙 출신[27] 바티칸 국적 자체는 추기경이 됨과 동시에 받게 된다.[28] 그리스어로 '자유인'이라는 뜻이다.[29] 요한 23세도 탈권위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교황청 기관지인 <로세르바토레 로마노>에서는 교황에 대해 언급할 때, 말하자면 "지극히 존엄한 이의 입술에서 옥음이 내리시어 울려퍼진다" 같은 식으로 표현했는데, 요한 23세는 그냥 "교황이 말했다"라고 쓰라고 지시했다.[30] 사실 이는 주교와 사제를 대면할 때에도 적용되는 예절이고, 대사 편람에 따르면 교황·주교·사제의 반지에 친구(입맞춤)하는 행위 자체에 부분대사도 부여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날 신자들에게 이런 예절을 가르치는 경우가 적고, 사제들이 성직을 상징하는 반지를 착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 친구하려 해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31] 김정숙 여사의 예가 있다.[32] 그리말디 가문은 21세기 들어서야 이 특권을 부여받은 듯한데, 그레이스 켈리 때만 해도 교황을 알현할 때 검은색 드레스를 착용했다. 이탈리아 같은 경우 왕정이 폐지된 상황이고, 직계가 단절될 분위기라 상대적으로 비교가 되는 군주국인 모나코를 계속 차별 대우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33]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의 손자이자 마지막 국왕인 움베르토 2세의 아들 나폴리공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디 사보이아(Vittorio Emanuele di Savoia, Principe di Napoli 1937~2024)의 아내.[34] 2021년 파산해서 해체되었다. ITA 항공이 계승.[35] 2021년까지는 알리탈리아[36]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시에는 동체 좌측 두 번째 출입구 옆이었다.[37] 돌아오는 비행기에는 일등석을 탈 수 있긴 하다.[38]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 요한 복음 10장 11-16절
[39] 112 로마베드로가 교회를 다스리고 많은 환난 속에 들을 치리라, 그때가 지나면 일곱 언덕 위의 도시는 파괴되고 두려운 심판자가 당신 백성을 심판하시리라. 끝.[40] 정통성이 없어서 정식 교황이 아닌 교황. 간혹 이 대립교황 때문에 교황의 역사 기록에 오류가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문인지 참고 차원에서 대립교황 명단이 따로 있다고 한다.[41] 제1예언은 양차 세계대전을, 제2예언은 공산주의의 대두와 몰락을 예언하였으며 제3 예언은 1981년 요한 바오로 2세 암살 미수 사건으로 현실화되었다. 교회에서는 예고된 시련을 성모 마리아의 충고에 따라 신심과 영성으로 극복해낸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요한 바오로 2세의 품에 마침 성모 마리아의 상본이 있었던 것도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의 몸에 박혔던 총알을 파티마의 성모에게 봉헌했다.[42] 현임 프란치스코는 263대가 아니라 266대 교황이지만, 145대, 147대, 150대 교황 베네딕토 9세가 퇴위와 복위를 반복하면서 3선을 했기 때문.[43] 대립교황 요한 16세는 제외하고 요한 20세는 서류상의 착오로 실재하지 않음.[44] 생전에 퇴위한 베네딕토 16세까지 포함한다면 베데딕토 16세가 최고령 사망 1위이다. (향년 95세)[45] 수도원에서 다른 수도자들과 공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 은둔해서 수도하는 수도자[4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마태오 복음 16장 16절)'.[47] 특히 대부분의 개신교 교파에서는 '사도'라는 직분이 초대교회 이후로는 사라진 직분이라고 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48]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에서도 주장하는 내용[49] 개신교 교파 중 그나마 가톨릭과 사이과 원만한 루터교회 중 보수 교단들에서도 이렇게 지칭하는 경우도 있다.[50] 국교회를 의미할 수도 있고, 교단을 의미할 수도 있으며, 교회 하나하나의 관계를 의미할 수도 있다. 해석에 따라 다르다. 확실한 것은 가톨릭의 수직적인 구조를 거부한다는 점.[51] 심지어 사제직을 인정하는 성공회조차 만인사제론을 받아들인다.[52] 이것도 나라마다 다르다. 네덜란드 등에서는 목사의 임기가 정해져 목사가 이동하는 일이 한국보다 상당히 많은 편이다. 사실 한국에서도 교단에 따라 차이가 크긴 하나, 한국 개신교의 다수를 차지하는 장로회는 원론적으로 교회 장로들이 합의를 통해 설교자(목사)를 해임하고 다른 설교자를 초빙할 수 있고 실제로도 그런다. 또한 교회 개척 등 다른 이유로 다른 교회로 옮기는 목사들도 상당히 많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에 비해 한 교회에 목사가 오래 머무는 것은 사실이다.[53] 이것도 나라마다 다소 차이는 있다. 가령 유럽 일부 국가들에서는 한 성당에 꽤 오래 머무는 사제들도 있다.[54] 이를 교회의 교도권이라 한다.[55] 물론 가톨릭에서 사이비 종파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얘기가 아니다. 드물긴 해도 있긴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베이사이드 성모와 국내의 마리아의 구원방주 문서를 참고.[56] 실제로 가톨릭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근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수용하고 중도우파(자유보수주의~사회자유주의)적 포지션을 취하며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특히 한국 가톨릭은 군사독재 시절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통한 투쟁을 거치며 그러한 성향이 더 두드러진다. 물론 가톨릭도 교구별로 성향 차이가 있다. 대구대교구는 보수적이기로 유명하고, 광주대교구는 진보적인 편.[57] 대한민국 수호 천주교인 모임 등[58] 물론 이 정도로 말하는 사람들은 좀 심각한 사람들로, 가톨릭 내부에서 비판받는 이들이다. 진보파 성직자들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불호를 떠나 가톨릭 교리상 그들을 비난함은 교도권에 불순명한다고 비칠 수 있기 때문.[59] 예를 들어 영국 지역교회 통합론자들을 중심으로 한 가톨릭에 우호적인 목소리에서는 "교황을 그리스도교 세계의 어른으로 존중할 수도 있다"는 식이고, 가톨릭에 부정적인 측에서는 극단적으로는 "교황의 존재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식. 그냥 교황이라고 안 부르고 로마 주교라 부르기도 한다. 반면에 성공회 성당의 성물방에는 아예 교황의 저서들을 파는 경우도 있다.[60] 정확히는 그 내부에서도 왕실과 의회를 중심으로 한 헨리 8세 지지 세력과 교회를 중심으로 한 반대 세력 사이의 갈등이 있었고, 결국 왕실과 의회가 교회를 굴복시키는 형태로 내부에서 전개됐다.[61] 스페인과 합스부르크 왕가는 당시 혼인 동맹 관계였다. 헨리 8세의 본처가 스페인 공주 출신인 아라곤의 캐서린이었고, 만약 이대로 헨리 8세가 숨지면 살리카 법을 인정하지 않는 잉글랜드-웨일스 왕국의 왕위는 자연스럽게 그 딸인 메리에게 돌아갈 것이 뻔했기 때문에, 헨리 8세의 이혼 문제는 자연스럽게 스페인-합스부르크를 중심으로 한 이혼 반대파와 잉글랜드-웨일스를 중심으로 한 이혼 찬성파의 국제적 논쟁으로 번졌다.[62] 그 나라를 방문했는데 암살당할 뻔하다는 것은 그 나라의 국제 사회에서도 체면을 크게 깎이는 것은 기본이요 정권이 흔들릴 수 있는 상황으로 초래할 수 있다. 이는 아웅 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으로 보여주었다.[63] 2015년 워싱턴 D.C.에 교황이 방문했을 때 미국 비밀임무국이 경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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