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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23세 | 바오로 6세 | 요한 바오로 1세 | 요한 바오로 2세 | 베네딕토 16세 | ||||||
제266대 | ||||||||||
프란치스코 | }}}}}}}}}}}} |
가톨릭 교회의 교황 | ||||
제194대 복자 베네딕토 11세 | → | 제195대 클레멘스 5세 | → | 제196대 요한 22세 |
<colbgcolor=#ffe100><colcolor=#670000> | |
교황명 | <colbgcolor=#FFFFFF,#1F2023>클레멘스 5세 (Clemens V) |
본명 | 레몽 베르트랑 드 고트 (Raymond Bertrand de Got)[1] |
출생 | 1264년 |
프랑스 왕국 가스코뉴 빌랑드로 | |
사망 | 1314년 4월 20일 (향년 49~50세) |
프랑스 왕국 랑그도크 로크모르 | |
재위기간 | 1305년 6월 5일 ~ 1314년 4월 20일 |
언어별 명칭 | 라틴어: Clemens PP. V 프랑스어: Pape Clément V 이탈리아어: Papa Clemente V 영어: Pope Clement V |
[clearfix]
1. 개요
제195대 교황. 프랑스 왕국의 왕 필리프 4세에 휘둘려 교황권의 쇠퇴를 결정적으로 가져온 인물이자 아비뇽 유수를 말미암아 아비뇽 교황 시대를 연 장본인이다.2. 성전 기사단 해체
클레멘스 5세는 프랑스 왕국의 왕 필리프 4세의 강한 압력으로 선출되었다. 교황은 1307년 프랑스 왕국의 성전 기사단 소속 수백 명을 체포하기 시작했고, 이들에게 사채, 사기, 이단, 직권남용 등의 죄를 붙여 고발했다. 목적은 교황청의 재정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은 물론 교황권을 강화하는 것이었으나, 그 배후에는 교황의 힘을 빌려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고 싶던 필리프 4세가 있었다. 클레멘스 5세는 성전 기사단원들을 교회 법정에 세우고자 했으나, 필리프 4세는 교황의 의견을 은근스레 무시하고 왕국 자체적으로 성전 기사단원들을 재판함으로써 교황은 점차 유럽 정치 무대에서 소외되어만 갔다.클레멘스 5세는 필리프 4세의 막무가내 태도에 대단히 불쾌했다. 그러나 필리프 4세는 이에 그치지 않고 교황에게 성전 기사단에 관해서 논의하는 공의회를 소집하도록 요구했고, 국왕의 강압에 못 이긴 교황은 1311년 빈 공의회를 열었다. 빈 공의회를 통해 성전 기사단을 이단으로 단죄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해체하기로 결정되었다. 성전 기사단의 프랑스 왕국 지부의 재산은 구호기사단에게 양도되었으나 필리프 4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성전 기사단의 재산을 무단 사용하였다.
3. 아비뇽 유수
프랑스 왕국은 교황청이 주재하고 있는 로마는 귀족들의 권력 다툼과 로마 교구의 주교좌 성당인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이 화재로 전소되는 일 등 치안이 불안정하고 위험한 곳이기 때문에 교황청은 안전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교황청 이전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결국 1309년 3월, 클레멘스 5세는 교황청을 프랑스 왕국 푸아티에 지역으로 이전했다. 4년 뒤, 교황은 교황청을 당시 아를 왕국의 도시였던 아비뇽으로 이전하는 사건, 일명 아비뇽 유수가 발생했고,[2] 이후 약 70여년 동안 지속되는 아비뇽 교황 시대가 열렸다. 이는 강력했던 교황권이 쇠퇴의 길목에 이르렀음을 알려주는 신호탄이었고, 동시에 세속 권력이 교회 권력을 장악한 역사적인 격동을 의미했다.아비뇽 유수는 교황령에 있어서도 달갑지 않은 사건이었다. 교황이 자리를 비우게 된 교황령은 세 명의 추기경이 교황 대리로 통치권을 위임받았으나 당시 로마는 유명 귀족 가문들인 콜론나 가문과 오르시니 가문이 세력 다툼을 벌여 제대로 통제할 수가 없었다.
[1] 일부 문서에서는 Goth 혹은 Guoth 등으로 쓰이기도 했다.[2] '아비뇽 유수'라는 명칭은 당시 유명 시인 페트라르카가 바빌론 유수에 빗대어 표현한 것에 비롯되었다. 다만, 현대의 주류 역사학계는 아비뇽 유수가 반드시 프랑스 왕국의 의도대로만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고, 결과론적으로는 교황권의 약화를 불러온 사건이지만 적어도 당대에는 무너진 교권을 다시 세우고 엉망이 된 가톨릭 교회를 추스르려는 자구책으로서의 성격도 있었다고 보고있다. 실제로 이 기간에 서방 교회 대분열이라는 악재가 있었기는 하나, 이것이 수습된 후에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사코 디 로마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교황령이 최소 이탈리아반도 내에서만이라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아비뇽 유수 시기에 교황청이 있었던 아비뇽까지 교황령의 영토로 흡사해서 프랑스 대혁명 직전까지 이곳을 실효지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