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29 09:54:56

알렉산데르 3세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 linear-gradient(to right, #ccb400, #ffe100 20%, #ffe100 80%, #ccb400)"
{{{#!wiki style="padding: 5px 0; display: inline-block; margin: -1px 0px"
{{{#!folding   [초대-제60대]
{{{#!wiki style="padding-top: 0px; margin: 1px -1px -10px"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제5대
베드로 리노 아나클레토 클레멘스 1세 에바리스토
제6대 제7대 제8대 제9대 제10대
알렉산데르 1세 식스토 1세 텔레스포로 히지노 비오 1세
제11대 제12대 제13대 제14대 제15대
아니체토 소테르 엘레우테리오 빅토르 1세 제피리노
제16대 제17대 제18대 제19대 제20대
갈리스토 1세 우르바노 1세 폰시아노 안테로 파비아노
제21대 제22대 제23대 제24대 제25대
고르넬리오 루치오 1세 스테파노 1세 식스토 2세 디오니시오
제26대 제27대 제28대 제29대 제30대
펠릭스 1세 에우티키아노 카이오 마르첼리노 마르첼로 1세
제31대 제32대 제33대 제34대 제35대
에우세비오 멜키아데 실베스테르 1세 마르코 율리오 1세
제36대 제37대 제38대 제39대 제40대
리베리오 다마소 1세 시리치오 아나스타시오 1세 인노첸시오 1세
제41대 제42대 제43대 제44대 제45대
조시모 보니파시오 1세 첼레스티노 1세 식스토 3세 레오 1세
제46대 제47대 제48대 제49대 제50대
힐라리오 심플리치오 펠릭스 3세 젤라시오 1세 아나스타시오 2세
제51대 제52대 제53대 제54대 제55대
심마코 호르미스다 요한 1세 펠릭스 4세 보니파시오 2세
제56대 제57대 제58대 제59대 제60대
요한 2세 아가피토 1세 실베리오 비질리오 펠라지오 1세 }}}}}}}}}{{{#!wiki style="padding: 5px 0; display: inline-block; margin: -1px 0px"
{{{#!folding   [제61-120대]
{{{#!wiki style="padding-top: 0px; margin: 1px -1px -10px"
제61대 제62대 제63대 제64대 제65대
요한 3세 베네딕토 1세 펠라지오 2세 그레고리오 1세 사비니아노
제66대 제67대 제68대 제69대 제70대
보니파시오 3세 보니파시오 4세 아데오다토 1세 보니파시오 5세 호노리오 1세
제71대 제72대 제73대 제74대 제75대
세베리노 요한 4세 테오도로 1세 마르티노 1세 에우제니오 1세
제76대 제77대 제78대 제79대 제80대
비탈리아노 아데오다토 2세 도노 아가토 레오 2세
제81대 제82대 제83대 제84대 제85대
베네딕토 2세 요한 5세 코논 세르지오 1세 요한 6세
제86대 제87대 제88대 제89대 제90대
요한 7세 시신니오 콘스탄티노 그레고리오 2세 그레고리오 3세
제91대 제92대 제93대 제94대 제95대
자카리아 스테파노 2세 바오로 1세 스테파노 3세 하드리아노 1세
제96대 제97대 제98대 제99대 제100대
레오 3세 스테파노 4세 파스칼 1세 에우제니오 2세 발렌티노
제101대 제102대 제103대 제104대 제105대
그레고리오 4세 세르지오 2세 레오 4세 베네딕토 3세 니콜라오 1세
제106대 제107대 제108대 제109대 제110대
하드리아노 2세 요한 8세 마리노 1세 하드리아노 3세 스테파노 5세
제111대 제112대 제113대 제114대 제115대
포르모소 보니파시오 6세 스테파노 6세 로마노 테오도로 2세
제116대 제117대 제118대 제119대 제120대
요한 9세 베네딕토 4세 레오 5세 세르지오 3세 아나스타시오 3세
미즉위 선출자
교황 선출자 스테파노 }}}}}}}}}{{{#!wiki style="padding: 5px 0; display: inline-block; margin: -1px 0px"
{{{#!folding   [제121-180대]
{{{#!wiki style="padding-top: 0px; margin: 1px -1px -10px"
제121대 제122대 제123대 제124대 제125대
란도 요한 10세 레오 6세 스테파노 7세 요한 11세
제126대 제127대 제128대 제129대 제130대
레오 7세 스테파노 8세 마리노 2세 아가피토 2세 요한 12세
제131대 제132대 제133대 제134대 제135대
베네딕토 5세 레오 8세 요한 13세 베네딕토 6세 베네딕토 7세
제136대 제137대 제138대 제139대 제140대
요한 14세 요한 15세 그레고리오 5세 실베스테르 2세 요한 17세
제141대 제142대 제143대 제144대 제145대
요한 18세 세르지오 4세 베네딕토 8세 요한 19세 베네딕토 9세
제146대 제147대 제148대 제149대 제150대
실베스테르 3세 베네딕토 9세 그레고리오 6세 클레멘스 2세 베네딕토 9세
제151대 제152대 제153대 제154대 제155대
다마소 2세 레오 9세 빅토르 2세 스테파노 9세 니콜라오 2세
제156대 제157대 제158대 제159대 제160대
알렉산데르 2세 그레고리오 7세 빅토르 3세 우르바노 2세 파스칼 2세
제161대 제162대 제163대 제164대 제165대
젤라시오 2세 갈리스토 2세 호노리오 2세 인노첸시오 2세 첼레스티노 2세
제166대 제167대 제168대 제169대 제170대
루치오 2세 에우제니오 3세 아나스타시오 4세 하드리아노 4세 알렉산데르 3세
제171대 제172대 제173대 제174대 제175대
루치오 3세 우르바노 3세 그레고리오 8세 클레멘스 3세 첼레스티노 3세
제176대 제177대 제178대 제179대 제180대
인노첸시오 3세 호노리오 3세 그레고리오 9세 첼레스티노 4세 인노첸시오 4세 }}}}}}}}}{{{#!wiki style="padding: 5px 0; display: inline-block; margin: -1px 0px"
{{{#!folding   [제181-240대]
{{{#!wiki style="padding-top: 0px; margin: 1px -1px -10px"
제181대 제182대 제183대 제184대 제185대
알렉산데르 4세 우르바노 4세 클레멘스 4세 그레고리오 10세 인노첸시오 5세
제186대 제187대 제188대 제189대 제190대
하드리아노 5세 요한 21세 니콜라오 3세 마르티노 4세 호노리오 4세
제191대 제192대 제193대 제194대 제195대
니콜라오 4세 첼레스티노 5세 보니파시오 8세 베네딕토 11세 클레멘스 5세
제196대 제197대 제198대 제199대 제200대
요한 22세 베네딕토 12세 클레멘스 6세 인노첸시오 6세 우르바노 5세
제201대 제202대 제203대 제204대 제205대
그레고리오 11세 우르바노 6세 보니파시오 9세 인노첸시오 7세 그레고리오 12세
제206대 제207대 제208대 제209대 제210대
마르티노 5세 에우제니오 4세 니콜라오 5세 갈리스토 3세 비오 2세
제211대 제212대 제213대 제214대 제215대
바오로 2세 식스토 4세 인노첸시오 8세 알렉산데르 6세 비오 3세
제216대 제217대 제218대 제219대 제220대
율리오 2세 레오 10세 하드리아노 6세 클레멘스 7세 바오로 3세
제221대 제222대 제223대 제224대 제225대
율리오 3세 마르첼로 2세 바오로 4세 비오 4세 비오 5세
제226대 제227대 제228대 제229대 제230대
그레고리오 13세 식스토 5세 우르바노 7세 그레고리오 14세 인노첸시오 9세
제231대 제232대 제233대 제234대 제235대
클레멘스 8세 레오 11세 바오로 5세 그레고리오 15세 우르바노 8세
제236대 제237대 제238대 제239대 제240대
인노첸시오 10세 알렉산데르 7세 클레멘스 9세 클레멘스 10세 인노첸시오 11세 }}}}}}}}}{{{#!wiki style="padding: 5px 0; display: inline-block; margin: -1px 0px"
{{{#!folding   [제241대 이후]
{{{#!wiki style="padding-top: 0px; margin: 1px -1px -10px"
제241대 제242대 제243대 제244대 제245대
알렉산데르 8세 인노첸시오 12세 클레멘스 11세 인노첸시오 13세 베네딕토 13세
제246대 제247대 제248대 제249대 제250대
클레멘스 12세 베네딕토 14세 클레멘스 13세 클레멘스 14세 비오 6세
제251대 제252대 제253대 제254대 제255대
비오 7세 레오 12세 비오 8세 그레고리오 16세 비오 9세
제256대 제257대 제258대 제259대 제260대
레오 13세 비오 10세 베네딕토 15세 비오 11세 비오 12세
제261대 제262대 제263대 제264대 제265대
요한 23세 바오로 6세 요한 바오로 1세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6세
제266대
프란치스코 }}}}}}}}}}}}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러시아의 차르에 대한 내용은 알렉산드르 3세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교황 문장.svg 가톨릭 교회의 교황
파일:170_alessandro_III.png
제169대 하드리아노 4세 제170대 알렉산데르 3세 제171대 루치오 3세
<colbgcolor=#ffe100><colcolor=#670000>
제170대 교황
알렉산데르 3세
Alexander III
파일:교황 알렉산데르 3세-1410?.jpg
교황명 <colbgcolor=#FFFFFF,#1F2023>알렉산데르 3세
본명 롤란도 반디넬리
(Rolando Bandinelli)
출생 1105년
시에나
사망 1181년 8월 30일 (향년 75~76세)
재위 제170대 교황
1159년 9월 7일 ~ 1181년 8월 30일

1. 개요2. 생애3. 교황 선출4. 개혁 노력

[clearfix]

1. 개요

교황 알렉산데르 3세(라틴어: Alexander PP. III, 이탈리아어: Papa Alessandro III)는 제170대 교황이다.

2. 생애

시에나 태생으로 14세기 기록에서는 그가 반디넬리 가문 일족이라고 했지만 확실하지 않다. 오랫동안 그는 12세기 교회법학자 겸 신학자인 볼로냐의 롤란도와 동일인물로 통했다. 볼로냐의 롤란도는 《그라티아누스 교령집》의 가장 오래된 주석서인 《롤란도 대전》(Stroma 또는 Summa Roland)의 저자인데, 그의 문체는 피에르 아벨라르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그러나 존 T. 누넌과 루돌프 위그앤드 등은 볼로냐의 올란도와 알렉산데르 3세를 서로 다른 인물로 보기도 한다.

롤란도는 아마도 볼로냐에서 공부한 듯하다. 토리니의 로베르는 그가 볼로냐에서 신학을 가르쳤다고 기록했다. 1150년 10월 교황 에우제니오 3세는 롤란도를 산티 코스마 에 다미아노 성당의 부제급 추기경에 서임했다. 나중에 롤란도는 산 마르코 성당의 사제급 추기경이 되었다. 1153년 그는 교황청 상서원장과 신성 로마 제국프리드리히 1세 황제에 반대하는 추기경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교황 하드리아노 4세의 가장 신임받는 추기경이 된 그는 친노르만 정책을 추진해 시칠리아 국왕 굴리엘모 1세와 협상하여 교황령과 시칠리아 왕국 사이의 평화로운 관계를 회복한 베네벤토 조약을 성사시켰다.

3. 교황 선출

1159년 9월 7일 롤란도는 대다수 추기경들에게 지지받아 교황 하드리아노 4세의 후임자로 선출되었고, 자신을 '알렉산데르 3세'로 명명했다. 그러나 일부 추기경들은 옥타비아누스 추기경대립교황 빅토르 3세로 내세워 신성 로마 제국의 지지를 받았다. 당시 상황은 알렉산데르 3세에게 매우 위기였는데, 당시 기록들을 보면 신성 로마 제국이 내세운 대립교황이 포르투갈, 시칠리아, 스페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 왕국들로부터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161년 헝가리의 게저 2세가 알렉산데르 3세를 합법적인 교황이라고 인정하는 문서에 서명하고, 오직 그만이 가장 으뜸가는 영적 지도자로서 성직 서임식을 행사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이는 알렉산데르 3세의 합법성이 점점 지지를 얻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곧 프랑스의 루이 7세와 잉글랜드의 헨리 2세도 알렉산데르 3세를 지지하고 나섰다. 이탈리아 내에서 신성로마제국의 영향이 강했기 때문에 알렉산데르 3세는 어쩔 수 없이 교황으로서 재위하는 동안 많은 시간을 로마 외 지역에서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알렉산데르 3세와 대립교황 빅토르 4세(그리고 이후 이어진 대립교황 파스칼 3세와 대립교황 갈리스토 3세) 간의 논쟁은 1176년 레냐노 전투에서 프리드리히 1세가 패배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결국 프리드리히 1세는 1177년 베네치아 조약에서 알렉산데르 3세를 교황으로 인정하였다. 그리하여 1178년 3월 12일 알렉산데르 3세로마로 귀환할 수 있었다. 그러자 대립교황 갈리스토 3세 역시 1178년 8월에 알렉산데르 3세에게 항복하였다.

4. 개혁 노력

1163년 알렉산데르 3세는 불법적인 성직록 분배과 성직자들의 고리대금십일조 문제를 다루기 위해 잉글랜드와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의 고위 성직자 및 사제들을 투르 지역 공의회에 참여해 성직자들의 기강을 바로 잡도록 하였다.

1179년 3월 알렉산데르 3세는 중세 교회의 중요한 세계 공의회들 중의 하나이자 11번째 세계 공의회인 제3차 라테라노 공의회를 소집했다. 공의회 교부들은 대립교황으로 말미암아 교회에 겪은 분열을 치유하기 위한 교황의 몇 가지 제안들을 실행에 옮겼는데, 그 중 가장 눈여겨볼 것은 교황 선출에 관한 규정이다. 규정은 추기경단에서 3분의 2 이상 지지를 받아야만 교황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규정은 1996년에 약간 수정되었다가 2007년에 원래대로 복구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의회가 끝나자마자 로마 코뮌은 알렉산데르 3세를 겁박해 로마를 내보냈으며, 이후로 알렉산데르 3세는 다시는 로마로 돌아가지 못했다. 1179년 9월 29일 일부 귀족들이 대립교황 인노첸시오 3세를 옹립했다. 그러나 알렉산데르 3세는 우여곡절 끝에 다시 권력을 잡았으며, 대립교황은 1180년 1월 쫓겨났다. 1181년 알렉산데르 3세는 스코틀랜드의 일리엄 막 안리크를 파문하고 스코틀랜드 왕국 전역에 성무금지처분을 내렸다.[1]

알렉산데르 3세는 1181년 8월 30일 치비타카스텔라나에서 사망했다.
[1] 요컨데 스코틀랜드에서 가톨릭 종교의례를 거행할 수 없게 막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