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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6대 | ||||||||||
프란치스코 | }}}}}}}}}}}} |
가톨릭 교회의 교황 | ||||
제223대 바오로 4세 | → | 제224대 비오 4세 | → | 제225대 성 비오 5세 |
<colbgcolor=#ffe100><colcolor=#670000> | |
교황명 | <colbgcolor=#FFFFFF,#1F2023>비오 4세 |
본명 | 조반니 안젤로 메디치 (Giovanni Angelo Medici) |
출생 | 1499년 3월 31일 |
밀라노 공국 밀라노 | |
사망 | 1565년 12월 9일 (향년 66세) |
교황령 로마 | |
재위기간 | 1559년 12월 25일 ∼ 1565년 12월 9일 (5년 349일) |
문장 |
[clearfix]
1. 개요
제224대 교황.2. 생애
1499년 3월 31일에 밀라노 공국 밀라노에서 공증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처음에는 의학을, 나중에는 법학을 공부하고, 1525년 볼로냐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은 다음 2년 후 교황청에 들어갔다. 교황 바오로 3세 아래서는 교황령의 총리로 일하면서 자신의 행정능력을 증명했다. 헝가리 왕국과 에르데이에서는 교황군을 통솔했고(1542~1543), 교황 특사단의 일원으로 볼로냐에 파견되기도 했다. 1545년 12월 24일에 라구사의 대주교, 1549년 4월 8일에는 산 푸덴치아나 성당의 사제급 추기경이 되었다. 율리오 3세 시절에는 대심원에서 봉직했으나, 바오로 4세의 스페인 적대 정책과 엄격한 종교재판 정책에 동조하지 않아 그의 눈 밖에 났고 1558년에 스스로 로마를 떠났다. 법학자로서는 존경받았지만, 개혁의 지지자로 알려지지는 않았다.프랑스파와 스페인파의 대립으로 약 4개월 동안 바오로 4세의 후임 교황을 선출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카라파 추기경이 이끄는 제3세력을 등에 업고 마침내 조반니 안젤로 메디치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독재적인 전임 교황과는 달리 비오 4세는 상냥하고 쾌활했다. 정치적으로 영민했던 그는 교황이 되자마자 바오로 4세의 강압 조치들을 뒤집어, 부당하게 이단 혐의를 받은 조반니 모로네 추기경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유랑 수도자에 대한 금지 조항을 삭제하는 한편, 이단심문소의 권한을 제한하고, 1559년 금서 목록을 개정했다. 바오로 4세의 합스부르크 왕조 적대 정책을 폐기한 그는, 스페인의 펠리페 2세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겸 오스트리아 대공 페르디난트 1세와 우호 관계를 맺고, 빈, 베네치아, 피렌체에 교황 대사를 파견했다. 바오로의 조카들에 대한 민중의 증오가 컸으므로, 그는 카를로 카라파 추기경과 팔리노 공작 조반니를 재판에 회부하여 스페인과의 전쟁을 선동한 죄, 조반니 부인 살인죄와 그 밖의 다른 죄목들로 처형했다. 그도 노골적으로 족벌주의에 빠져 있었지만, 조카인 젊은 가롤로 보로메오를 밀라노 대교주장 및 추기경으로 임명한 것은 교회로 봐서는 크게 다행한 처사였다. 그리고 보로메오를 국무원장으로 임명하여 교회 개혁을 추진하는 삼촌에게 점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했다.
비오의 역사적 업적은 1552년에 중지된 트리엔트 공의회를 재개해 종결지은 것이다. 비오가 선출 전 약속한 내용이기도 한 공의회 소집은, 프랑스 칼뱅파의 출현으로 보편 공의회에 대한 요구가 커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문제는, 이 공의회가 프랑스와 합스부르크 제국에서 추구하는 새로운 공의회가 될 것인가 아니면 스페인이 요구하는 옛 공의회의 연속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헝가리 전역에서 독일 제후들의 도움이 필요했던 페르디난트 1세는 여전히 루터교회와의 화해를 원하고 있었다. 공의회 소집 칙서에는 언급되지 않았으나, 1562년 1월 18일 트리엔트에서 공의회가 열렸을 때 사실상 이 문제가 별도의 의제로 재개되었다. 공의회는 여러 난관에 봉착했다. 특히 교황이 주교들의 교구 상주 의무를 면제하는 문제가 그러했다. 그리고 열강들이 공의회의 자치권을 위협해 중단될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비오는 공의회의 통제권을 지켰고, 1563년 봄에 의장인 모로네 추기경의 조언과 외교력을 동원해 어려움을 극복했다. 공의회는 1563년 12월 4일 25차 회기 때 해산되었다. 비오는 1564년 1월 26일에 구두로 공의회 교령들을 승인하고, 7월 30일에 칙서를 발표했다.
비오는 트리엔트 공의회가 가톨릭 국가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노력했으나 성공적이지만은 않았다. 그는 교령의 올바른 해석과 시행을 위해 1564년 8월 2일 추기경 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위원회는 후에 교황청 각 성으로 발전하게 된다. 1564년 11월 13일 그는 '트리엔트 신앙고백서'라는 교리요약집을 만들어 주교들에게 배포하였다. 비오는 행정 개혁을 공의회 역량 밖의 문제가 여겼으므로, 그는 이미 1561년과 1562년에 공소원, 내사원, 회계원 그리고 상서국을 개혁하는 교령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가 이러한 개혁 정책들을 추진할 때 조카인 보로메오 추기경이 적극 도왔다. 비오는 또 로마 신학교를 설립하여 예수회에 운영을 맡겼다.
이처럼 비오는 적극적인 가톨릭 개혁 추진으로 명성을 얻었으나, 독일, 프랑스, 잉글랜드 등에서 개신교의 확산을 막지 못했다. 프랑스의 경우 위그노파와의 전쟁에 재정적으로 지원했고, 잉글랜드의 경우 다시 가톨릭으로 돌아오기를 희망하여 엘리자베스 1세의 파문을 자제하기도 했다. 바오로 4세에 의해 단절된 르네상스 전통을 부활시킨 그는 예술가와 학자들에게 관대했고, 대학을 설립하거나 재건했으며 로마에 인쇄소를 세워 그리스도교 서적들을 간행했다. 도시 방어를 강화하고, 피아 문,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성당, 바티칸 정원의 피아 빌라 같은 건물로 로마를 장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