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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11:19:24

대립교황

라틴어 Antipapa
영어 Antipope
한자 對立敎皇
1. 개요2. 역사3. 역대 대립교황4. 현대
4.1. 콜랭파 교회 소속4.2. 팔마리아 교회4.3. 진정한 가톨릭 교회
5. 기타6. 창작물7. 유사 사례
7.1. 이슬람7.2. 티베트 불교
7.2.1. 겔룩빠(황교)7.2.2. 부탄 제켄포
7.3. 다른 그리스도교 종파
7.3.1.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7.3.2. 네스토리우스파7.3.3. 라틴 총대주교

1. 개요

가톨릭 교회에서 교황이 두 명 또는 그 이상이 동시에 존재한 경우, 당대 혹은 후대 기준에서 적법한 절차 없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고 여기는 사람을 대립교황이라 한다.

기존 교황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새로 옹립한 교황인 경우가 많았다.

2. 역사

역사적으로 교황이 동시대에 두 명 이상 병립한 시절은 생각보다 길고, 지금까지 대립교황은 약 40여 명이 있었다.

당시에는 당연히 대립교황도 자신이 정통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이 대립교황이라고 인정한다면 그 시점에서 이미 '나는 교황이 아니다.' 하고 말한 셈이니까. 교황의 정통성에 대한 기준이 명확치 않은 측면이 있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 정통교황과 대립교황이 뒤바뀌기도 한다.

가톨릭 교회에서 대립교황은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교황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통상적으로는 교황청에서 발행하는 교황청 연감을 기준으로 대립/정통교황을 지칭하지만, 당시 교회법의 법률적 허점이나 선출 당시의 복잡한 상황으로 말미암아 학자들에 따라 정통/대립교황을 교황청 연감과 다르게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

대립교황은 여러 가지 역사적 정황에 따라서 나타났으나, 세속군주와 기존 교황의 대립이 문제가 된 경우가 가장 많다.

역대 대립교황들은 다음의 경우로 출현하곤 했다.

사족으로, 독자 교회를 창설한 것도 아니면서 대립교황이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미국 캔자스 주의 토피카에 거주하는 데이비드 보든(교황명은 미카엘 1세)이 그 사람이다. 당연하지만, 이 사람은 딱히 무슨 종교적인 신념이나 신학적인 견해에 따라서 대립교황을 자처하는 것이 아닌, 단순한 관심종자라서 미국가톨릭 신자들도 딱히 관심을 갖는 것도 아니고, 바티칸 측에서도 그에게 별 신경을 쓰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기인 취급을 받고 있는 중이다. 다만, 아주 뜬금없이 이러는 건 아니고, 보든의 집안이 가톨릭과 결별하지 않은 전통 가톨릭 계열 단체인 성 비오 10세회의 지지자들이라고 하며, 그 본인도 전통 가톨릭의 모태신앙인이라고 한다[1].

3. 역대 대립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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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데르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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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오 1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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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교회 대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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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스 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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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현대

아직도 일부 독립교회에서 교황을 자칭하는 이들이 종종 나타나곤 한다. 주로 가톨릭에서 분리된 이단 분파에서 이런 이들이 나오는 데, 위에서 언급했듯이 역사상 의미있는 대립교황은 펠릭스 5세가 마지막이므로, 이런 대립교황들에 대해 가톨릭 측에서는 언급할 가치도 없다고 여긴다. 정확하게는 가톨릭 내에서 대립교황이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대립교황은 없다고 본다. 후술하는 대립교황은 가톨릭과 결별하고 독립교단을 세운 이들이 선출하였으므로 바티칸과 절대다수의 가톨릭 신자들이 무시하는 것이다.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정통 교황의 계보가 단절되었다고 선언한 이단에 가까운 부류가 있다.[2] 공의회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공의회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올바르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들을 전통 가톨릭이라고 부르는데, 크게는 현대 가톨릭과 이견이 있으나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는 단체들,[3] 정통 교황의 계보가 단절되었으므로 교황이 없는 상태에서 교회를 이끌어야 한다는 교황공석주의 단체들, 여기서 더 나아가 정통 교황이 끊겼으니 아예 새로이 정통 교황을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콘클라베주의 단체들로 나뉜다. 그러나 그 세력은 극히 미미하므로 가톨릭 계열의 이단적 분파 정도로 간주받는다.

이런 가톨릭과 결별한 전통 가톨릭 교회나 단체들을 독립 가톨릭 교회라고 부르기도 하나, '독립 가톨릭 교회'란 어디까지나 가톨릭으로부터 독립한 교회라는 뜻이고, 꼭 전통 가톨릭 계열 교회만 가리키는 명칭은 아니다. 일례로, 네덜란드위트레흐트에 그 본부를 두는 구 가톨릭교회는 이 교회가 결성된 19세기에 가톨릭 교회와 그 중심인 바티칸 측이 보수적인 경향을 띠는 것에 반발해 독립한 이들로, 그 교리 면이나 사회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전통 가톨릭과는 달리 철저하게 진보적인 경향을 띄며 성공회와 상통했을 정도다. 또 다른 사례인 필리핀 가톨릭 교회미국-스페인 전쟁 직후에 시작된 미군의 필리핀 침공에 대해 바티칸 측이 외면하는 것에 대한 비판의 의미로 독립한 이들이며, 전통 가톨릭이 등장한 원인이 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과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한다[4].

당연히 이들은 전원 가톨릭 측으로부터 이단 판정을 받아서 파문되었고, 자신들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로마 가톨릭과 결별했다고 본다. 현대의 대립교황에는 다음과 같은 이들이 있다.

4.1. 콜랭파 교회 소속

콜리나이트(콜랭파) 교회는 캐나다퀘벡에서 창설된 가톨릭 이단이다. 공식 명칭은 '무한한 사랑의 사도'(Apôtres de l'amour infini)이다.

4.2. 팔마리아 교회

팔마리아 교회는 스페인에 본부를 두고 있는 가톨릭 교회와는 별개의 독립 교회다.

4.3. 진정한 가톨릭 교회

미국 몬태나 주에 본부를 두고 있는 독립 가톨릭 교회다.

5. 기타

6. 창작물

7. 유사 사례

그리스도교 외 종교에서 가장 유명한 사례는 이슬람교에서의 칼리파위 관련 분쟁과 티베트 불교에서의 제11대 판첸 라마에 대한 정통성 논쟁이 있다.

7.1. 이슬람

칼리파에서는 수니파 내부의 분쟁이 가장 유명하다. 우마이야 왕조압바스 왕조에 의해 일시로 멸망하고, 우마이야 왕조의 왕족인 아브드 알 라흐만이베리아 반도로 달아나자, 이베리아 반도 현지의 무슬림 영주들이 그를 칼리파로 추대하면서 칼리파가 둘이나 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보통 아바스 왕조의 칼리파가 정통 칼리파로 인정받았으므로, 압드 알 라흐만이 세운 후우마이야 왕조의 역대 칼리파들은 대립 칼리파로 여겨졌다.

사실 우마이야 왕조는 원래 대립 칼리파와의 싸움으로 시작한 왕조다. 당시 우마이야 왕조의 창건자인 무아위야 1세가 집권할 때만 해도 칼리파는 선출직이었는데, 무아위야가 선거도 치르지않고 자기 아들 야지드 1세를 차기 칼리파로 내정하여, 무함마드의 사촌남동생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의 혈통이 세습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시아파와 칼리파를 선출직으로 해야한다고 주장하던 하리지파를 동시에 자극하고 말았다.

결국 하리지파 계열이 반란을 일으켜서 대립 칼리파로 이븐 주바이르를 옹립했으나, 우마이야 왕조의 5대 칼리파인 아브드 알 말리크에게 이븐 주바이르가 패하여 사망하면서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파가 유일한 칼리파가 되었다. 그런데 나중에는 아바스 왕조에 의해 패망하여 자기들이 오히려 대립 칼리파로 전락했음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7.2. 티베트 불교

7.2.1. 겔룩빠(황교)

티베트 불교에서는 1950년에 중국이 티베트를 병합한 후 1950년대 후반에 겔룩빠[5] 수장이자 병합 이전 티베트의 국가원수인 달라이 라마 14세가 중국의 탄압에 반발하여 인도에 망명정부를 세웠고 1990년대에 겔룩빠 서열 2위인 판첸 라마 10세가 입적하자 망명정부에서는 게둔 최키 니마를 새 판첸 라마 환생자로 지명했다. 그러자 중국은 망명정부에서 지명한 판첸 라마 11세를 납치하고 친중 성향이며 친중 티베트인 부모를 둔 기알첸 노르부를 진짜 환생자라고 주장했다. 이후 망명정부에서 지지하는 판첸 라마 11세 환생자는 생사불명이고[6] 중국에서는 망명정부 측 환생자의 생사여부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당연히 티베트 망명정부티베트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기알첸 노르부를 정통 판첸 라마로 인정하지 않고 중국공산당이 공인한 기알첸 노르부는 대외적으로 대립 판첸 라마로 간주된다.

7.2.2. 부탄 제켄포

직접적인 종교 지도자의 대립항인 것은 아니지만, 부탄에서 국사(國師)인 제켄포[7]의 후계자를 자칭하는 사람이 셋이나 나와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8] 원래 티베트 불교는 덕망 있는 고승들은 어떤 사람으로 다시 환생하여 자신의 자리를 되찾고 다시금 중생들을 이끈다는 독특한 믿음이 있으므로, 각 사원의 주지승은 전임 주지의 환생자로 지명된 사람이 후계자가 된다. 위에서 언급한 11대 판첸 라마인 게둔 최키 니마도 10대 판첸 라마가 지명한 전임 라마의 환생자였고, 독실한 티베트 불교 신자인 스티븐 시걸네팔의 존경받던 고승인 충닥 도르제(Chungdrag Dorje)의 환생자로 공인받아서, 그가 생전에 수행하던 사원에서 설법을 한 적도 있었다.

당연히 부탄제켄포도 전임자가 생전에 어떤 아이로 환생할 것이라고 유언을 남겼는데, 문제는 전임 제켄포가 말한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아이가 셋이나 나왔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부탄 전체가 발칵 뒤집혔고, 정부가 나서서 셋 중 누가 진짜고 가짜인지를 판별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다가 결국 한 아이가 진짜 후계자라고 결론이 지어지면서, 환생자를 판별하는 방법에 대한 규정을 부탄 국회에서 제정하여 반포하였다[9]. 이 덕분에 향후 대립 제켄포가 나올 여지는 일단 사라졌다고 보면 된다.

7.3. 다른 그리스도교 종파

7.3.1.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교황 직책은 가톨릭에만 있지 않다. 정교회동서 대분열 이후로, 오리엔트 정교회의 일부 종파는 칼케돈 공의회 이후로 정통 교황의 계보가 끊어졌다고 보지만, 콥트 정교회와 정교회는 아프리카 전체의 교황을 칭하는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가 교황직을 맡는다.

이는 성공회의 종교 지도자인 캔터베리 대주교가 성공회 주교들의 대표자에 불과한 것과도 같다. 교황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라틴어 단어인 Papa, 영어 단어 Pope, 그리스어 단어인 πάππας가 어원적으로 '아버지'라는 뜻인 걸 보면, 사실 당연한 사실임을 알 수 있다. 가톨릭의 교황이나,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의 총대주교들이 세속군주와 같은 대우를 받은 것은 이들이 실제로 바티칸과 같이 한 나라의 군주였다거나, 동로마 제국의 정계에 수시로 간섭하였거나, 아시리아인들과 같이 특정 민족의 정치 지도자의 역할을 겸하느라고 군주와 같은 권력을 실제로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초기 기독교 시절만 해도 세속권력을 쥐고 있었을 리가 만무하므로 당시에는 종교 지도자로서의 의미가 더 강한 지위였고, 당대의 신자들에게는 실제 아버지처럼 자애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친근한 존재로 받아들여졌는데, 서구권 교황의 칭호는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10]. '교황'이나 일본에서 쓰는 '법왕'이라는 번역명은 이런 역사적 연원을 다 잘라먹고, 가톨릭의 교황이 가진 절대적인 권위만 보고 번역한데서 기원했다.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측에도 대립교황이 꽤 있었다. 특히, 콥트 정교회가 창시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초기 기독교가 분열되는 과정에서 수시로 대립 총대주교가 옹립되기도 했다. 현재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직이 정교회와 콥트 정교회 계열로 갈린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한때 콥트 정교회의 전신인 합성론파 계열이 총대주교로 선출되자, 아타나시우스파를 지지하던 동로마 제국 측에서 이를 고깝게 여겨서 합성론파 총대주교를 축출하고 그 자리에 아타나시우스파 총대주교를 앉힌 데서 갈등이 촉발된 것이다.

7.3.2. 네스토리우스파

네스토리우스파가톨릭 교회와 재일치하느냐 마느냐로 교단이 두 쪽으로 갈린 바 있었고, 때문에 각 분파들끼리 각자 대립 총대주교를 옹립하는 일이 잦았다. 현대까지 그 지위를 유지하는 쪽은 아시리아 동방교회와 가톨릭과 일치한 교회인 동방 가톨릭 계열인 칼데아 가톨릭이 있다. 이 중, 아시리아 동방교회의 총대주교는 이슬람의 박해와 학살로 인한 신자 수의 감소로 인해, 특이하게도 총대주교직을 세습직으로 한 적이 있었다[11].

총대주교 본인은 독신자여야 하는 의무가 있었고 주교들도 독신이 강요되었으므로[12] 총대주교직은 삼촌에게서 조카에게로 세습되었는데, 문제는 이 때문에 아시리아 동방교회를 믿는 유력 귀족들이 총대주교 자리를 두고 피튀기는 분쟁을 일으켰으며, 대립 총대주교도 여럿 옹립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최후의 세습 총대주교인 시문 23세가 선종한 후에 총대주교 가문의 혈통이 단절되면서 끝내 선출직으로 되돌아갔고, 근 400년만에 재개된 선거에서 딩카 4세가 선출되었다.

네스토리우스파의 남은 분파인 칼데아 가톨릭은 위에서 언급한 아시리아 동방교회의 총대주교직 세습 문제를 두고 총대주교 선거의 재개를 주장한 이들이 대립 총대주교를 선출한데서 그 역사가 시작했고, 결국에는 아예 키릴로스의 학설을 채택하기로 결의하고 가톨릭과의 일치를 선언하면서 아시리아 동방교회와 결별했다. 사실상 아시리아 동방교회의 총대주교가 칭하는 바빌론 총대주교의 대립 총대주교인 칼데아 가톨릭의 총대주교는 현재는 가톨릭의 추기경직을 겸한다.

7.3.3. 라틴 총대주교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라틴 총대주교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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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가톨릭은 한때 교황로마 외에도 명목상 콘스탄티노폴리스,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예루살렘을 포함하여 5대 교구를 전부 관할한다는 의미에서 각 교구별로 대립 총대주교를 임명한 적이 있었다. 로마 교구의 주교는 교황 본인인 만큼, 당연히 로마 교구를 제외한 나머지 교구마다 가톨릭 총대주교를 임명하여 정교회오리엔트 정교회 계열 총대주교와 대립하는 관계가 되었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가톨릭 내에서는 타 종교, 타 종파와의 화해와 공존이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고, 요한 바오로 2세가 로마와 예루살렘 교구를 제외한 나머지 3개 라틴 총대주교좌를 폐지했다. 이는 정교회가 더 이상 가톨릭의 이단이 아니고, 자신들과 모종의 이유로 갈라진 형제임을 의미했다. 물론, 동서 대분열이 된 지 900년도 넘었으므로 이러한 조치가 곧 양자 간 재통합을 의미하지는 않았지만, 이후로 가톨릭은 더 이상은 (예루살렘을 제외한) 대립 총대주교를 임명하지 않는다.

사실 동서 대분열의 근본원인은 서방교회와 동방교회 간 정치적, 문화적 차이였지 신학적인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중세 기간 내내 양자는 어떻게든 교회의 통합을 이루고자 발악했다. 결국 15세기에 간신히 두 교회의 통합이 눈 앞에 다가왔지만, 오스만 제국이 정교회의 보호자를 자처하던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며 통합이 물 건너갔고, 이 상태로 오늘날까지 내려와 고착되었다.

오리엔트 정교회는 아예 기본이 되는 신학 이론부터가 다른 이들이므로, 그들이 자체적으로 선출한 총대주교는 그 존재만 인정받는 것에 그쳤다. 물론 지금이 십자군 원정 시절도 아니고, 더 이상 오리엔트 정교회가 가톨릭과 노골적으로 대립하지는 않겠지만, 이들은 정교회와는 달리 가톨릭과 완벽히 일치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이들 중에서 동방 가톨릭이라 하여 가톨릭과 일치를 선언한 이들은 있었으나, 이런 교회의 주교들은 현지에 존재하는 정교회나 오리엔트 정교회 주교들의 대립주교 취급을 받는다. 종교 때문에 피 흘리며 전쟁을 벌이던 시기는 이미 지났기 때문에, 그냥 소 닭 보듯 하는 정도이다. 일례로 정교회의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테오도로스 2세콥트 정교회 측의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를 겸하는 콥트 정교회 교황타와드로스 2세가 자신과 같이 재재직는 데다 이름도 그리스식으로 하면 둘 다 '테오도로스'로 같아서 "같은 테오도로스끼리 잘 지내봅시다."라며 덕담을 주고받기도 했지만, 일단 공식적으로는 서로가 서로의 대립총대주교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쪽도 관습적으로 교황을 자칭한다. 그러니까 테오도로스 2세타와드로스 2세는 서로의 대립교황이기도 하다.


[1] 데이비드 보든은 2022년 08월 02일에 사망했다.[2] 물론 이단의 판단은 상대적이므로, 저들 역시 정통 가톨릭을 이단으로 여길 수 있다.[3] 이 중 계속 트리엔트 미사 등을 고수하긴 해도 교황청과 화해를 이룬 경우도 있고, 성 비오 10세회 등과 같이 완전히 일치를 이루지 못해 일부 성사의 합법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교회법상 불법적인 단체로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4] 사족으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유명한 배우인 멜 깁슨이 바로 교황공석주의 계열 종파의 신자였다. 현재는 가족들 중에서도 멜 깁슨 본인만 가톨릭으로 원복한 상태라고 한다.[5] 행사 때 승려가 쓰는 모자 색을 따서 황모파 또는 황교라고도 불린다. 다른 학파는 홍모파나 홍교로 불린다.[6] 납치되었을 당시 중국공산당에게 비밀리에 살해당했다는 설도 있다.[7] 티베트 불교의 종파들 중의 하나인 까규빠 계열의 라마이고, 달라이 라마처럼 환생제도를 통해 계승된다.[8] 제켄포는 초걀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본래 티베트 문화권의 영주를 가리키는 말이라서, 인도시킴 주에서는 초걀이 왕을 가리키는 칭호로 쓰인다. 허나, 부탄에서는 전통적으로 티베트 불교의 승려들이 사적으로 관할 사원이 있는 곳의 영주를 자처했으므로, 초걀이 종교 지도자를 지칭하는 용어로도 종종 쓰인다.[9] 이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방송된 바 있었다.[10] 기독교에서 수녀를 '어머니'라는 뜻의 mother라고 부르는 것도 여기서 유래됐다. 역시 당대인들에게는 수녀들이 곧 어머니같은 존재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11] 사족으로 비슷한 이유로 인해, 몬테네그로 정교회도 총대주교직을 아시리아 동방교회처럼 삼촌-조카 간 세습으로 계승하도록 한 적이 있다. 당시 몬테네그로는 주변의 다른 정교회 국가들이 오스만 제국에 의해 패망하면서 발칸 반도 유일의 정교회권 독립국가로 남았고, 그 때문에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와의 연락이 힘들어지면서 그리스도교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자, 궁여지책으로 대주교직을 세습직으로 전환한 것이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아시리아 동방교회는 세습직 전환 이후로 두 번 다시는 인구 수 면에서 우세를 차지하지 못하여 총대주교 가문이 단절될 때까지 세습제를 그대로 유지한 반면, 몬테네그로 정교회는 이웃한 세르비아가 독립하면서 정교회 인구 수가 다시금 이슬람 신자 수를 압도하게 되면서 교세가 부활했기 때문에, 세습제를 유지할 필요가 없어서 기존 대주교 가문은 세속군주로 전향하고 대주교직을 세르비아 정교회 측에서 파견한 주교에게 넘겼다는 것이다.[12] 비단 아시리아 동방교회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어지간한 종파들은 개신교 계열이 아닌 이상, 주교는 독신자 중에서만 뽑는다. 이는 이렇게 해야 교단 내에서 부정부패가 일어날 위험이 줄어들고, 주교 본인이 책임질 가정이 없어서 성직 생활에 더 충실해진다는 것 때문이다. 그래서 기혼자가 신부가 될 수 있는 정교회조차 주교직은 미혼인 신부들 중에서 임명된다. 그 주교들의 수장인 총대주교가 독신자여야하는 조건이 걸려있는 것도 이것때문이며, 그래서 개신교를 제외한 그리스도교 종파의 주교들은 수도자 출신도 드물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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