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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그리스어 | Ορθόδοξο σχίσμα Μόσχας-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ης |
러시아어 | Разрыв Русской православной церкви с Константинопольским евхаристического общения патриархатом (2018) |
영어 | Orthodox Church schism of 2018 혹은 2018 Moscow–Constantinople schism |
우크라이나어 | Московсько-Константинопольська схизма (2018) |
한자 | 2018 正敎會分裂 |
다만 이 사건이 특별히 상대적으로 큰 주목을 받아서 그렇지, 이런 식의 성사교류 단절이 드문 일은 아니었다.
2. 배경
이 사건은 종교적 문제와 정치적 문제가 뒤섞인 복합적인 사건이다. 우크라이나 국민의 대다수는 정교회 신자다. 폴란드의 영향을 오래 받아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을 믿는 서부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전국 대부분이 정교회를 믿는다. 그리고 정교회는 나라별로 교회의 독립성 여부가 상당히 다르다. 독립교회(獨立敎會)는 수장 격인 주교를 자체 시노드[1]에서 선출하는 반면 자치교회(自治敎會)는 수장을 상위의 총대주교가 임명한다. 또 어떤 정교회 내부의 행정적/교리적 논란에도 독립교회는 자체적으로 판단하는 반면 자치교회는 상위 총대주교가 최종 재판관으로 역할한다.이웃나라의 조지아 정교회는 역사가 깊어 러시아 제국이 통치했던 시절 외에는 러시아 정교회하고는 독립적이었던 것과는 달리 우크라이나 정교회(이하 약칭 UOC-MP[2])는 모스크바 총대주교청 산하의 자치교회였다. 1686년에 당시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였던 디오니시오스 4세가 키이우 관구의 관할권을 모스크바 총대주교청(러시아 정교회)으로 이관한 이후 우크라이나의 정교회 관할권은 모스크바에 있었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와 우크라이나에는 모스크바 총대주교의 관할권에서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다른 정교회의 분파가 나타났는데 '키이우 총대주교청 우크라이나 정교회(이하 약칭 UOC-KP[3])'라고 불리는 분파와 '우크라이나 독립 정교회(이하 약칭 UAPC, UAOC라고도 한다.[4])'라고 불리는 분파다. 당연히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은 UOC-MP만을 우크라이나의 합법적인 정교회 조직으로 인정했고 UOC-KP와 UAPC를 분열자들로 보아 주요 성직자들을 파문했다. 우크라이나의 정교회 신자들 중에서도 누구는 UOC-MP를, 누구는 UOC-KP를 따르고 누구는 내가 다니는 성당이 어느 교파든 관심없다고 생각하여 서로 뒤죽박죽이었지만 이들 중 정교회 세계에서 널리 인정받고 교류하는 합법적인 정교회 단체는 분명히 UOC-MP 쪽이었다. 우크라이나가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꾸준히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압력을 가해 왔지만 2014년부터 더욱 가일층하여 돈바스 전쟁이 일어났다.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 페트로 포로셴코(Петро Порошенко)는 러시아로부터 종교적 독립을 추구하고 자국의 정교회가 모스크바 총대주교의 관할을 벗어나 독립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UOC-KP와 UAPC가 여기에 적극 동조했음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었으나 UOC-KP와 UAPC 소속 주요 성직자들을 파문하기까지 했던 러시아 정교회가 우크라이나 정교회 관할권을 포기할 리 없었다. 그리하여 우크라이나 정부에서 외교부 라인을 동원하고 정교회 독립을 지지하는 파들이 나선 끝에 UOC-KP의 수장으로서 '키이우 총대주교'를 자칭하는 필라레트(Філарет)가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와 만나는 자리를 주선했다.
3. 진행 과정
2018년 10월 11일 콘스탄티노폴리스 정교회는 1686년에 발표한 '키이우 관구를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에 이관하는' 결정을 철회하고 우크라이나 정교회를 합법적인 독립교회로 인정하며 러시아 정교회가 우크라이나에 간섭할 권한을 취소하고 러시아 정교회가 내린 파문도 철회한다고 밝혔으며 우크라이나 정교회를 독립교회로 올리기 위해 형식상으로 잠깐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산하의 자치교회로 삼았다.[5]이러한 사항이 발표되자 우크라이나 정부와 주요 정교회 인사들은 국가 내의 분열된 정교회를 통합할 새로운 정교회 조직을 구성하기로 하고 통합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는데 이 과정에서 포로셴코 대통령도 참가했다.[6] 우크라이나의 정교회 통합 추진위원회에서 UOC-KP와 UAPC는 양 교단을 합치는 데 적극 찬성했지만 UOC-MP는 일부만이 추진위원회에 가담했다.
당연히 러시아 정교회는 분노하여 동년 동월 14일에 시노드를 소집해 콘스탄티노폴리스 정교회와의 성사단절을 결의하고 이튿날(15일) 이를 발표했다. 이날을 기점으로 모스크바 총대주교구 산하 정교회 신자들이 콘스탄티노폴리스 측 교회의 성찬예배 등의 성사에 참여하는 것이 금지되었다.[7] 또 양 총대주교청은 저마다 서로의 교회법적 정당성을 주장했다.
한편 러시아 정교회가 성사단절을 발표한 바로 그날 우크라이나의 통합 정교회 추진위원회는 통합 우크라이나 정교회(OCU)를 발족하고 우크라이나의 첫 독립정교회의 수장으로 (UOC-KP 소속 주교였던) 에피파니(Епіфаній)[8]를 선출하고 '키이우와 전 우크라이나의 관구장주교(Митрополит Київський і всієї України, Μητροπολίτης Κιέβου και πάσης Ουκρανίας)'로 인정했다. 이러는 과정에서 UOC-MP 신자들이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지만 대세를 바꿀 수는 없었다. 2019년 1월 5일에는 포로셴코 대통령과 에피파니 관구장주교가 튀르키예로 건너가 바르톨로메오스 1세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가 우크라이나 정교회를 독립교회로 인정한다는 토모스(교회명령서)에 서명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관련 기사 유튜브 영상[9] 이로써 우크라이나 통합 정교회가 독립교회로서 정식으로 출범했다.
본디 에피파니는 (UOC-KP의 수장으로 자칭 '키이우 총대주교'였던) 필라레트로부터 주교로 서품을 받았고 필라레트의 비서로도 일했던 사람이다. 에피파니 관구장주교도 우크라이나 통합 정교회의 수장으로 선출된 뒤 필라레트에게 명예를 돌리기도 했는데 러시아 정교회를 편드는 이들은 에피파니가 아니라 필라레트가 우크라이나 통합 정교회의 실제 수장이라고 의심한 듯하다.
에피파니는 2019년 2월 3일 자신의 만 40세 생일에 키이우의 성 미카엘(미하일) 황금 돔 수도원(Михайлівський Золотоверхий монастир)에서 착좌식을 거행함으로써 우크라이나 통합 정교회의 수장으로 정식으로 취임했다. 관련 영상
4. 러시아 정교회 입장
흔히 혼동되는 사안이지만 애시당초 러시아 정교회 내부에서는 UOC의 독립과 자치 자체는 인정했다.[10] 단지 교회법적, 원칙적으로 UOC-MP가 유일하게 우크라이나 정당한 교회라는 점을 고수하고 '우크라이나 총대주교좌'와 이에 대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좌의 간섭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다.어떤 교회에서는 인정받고 어떤 교회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반쪽짜리 정교회들은 이미 이전에도 여럿 있었다. 어느 한 총대주교좌가 어느 교회에 '자치권을 부여'하고 다른 교회들이 이에 찬반을 표함은 별로 큰 문제도 아니고 드문 일도 아니다. 단적인 예로 미국 정교회(Orthodox Church in America)는 1970년대에 러시아 정교회를 포함하여 총대주교좌 3곳, 총 6교회로부터 지지를 받았지만 다른 정교회들이 반대해서 지금까지도 위치가 애매하다.
UOC-KP는 1992년에 이미 사실상 독립했고 우크라이나에서는 UOC-MP를 능가하는 최대 종교단체이며 20년 넘게 적당히 공존해 왔다. 결국 우크라이나 독립교회 및 자치권보다는 한 총대주교가 다른 총대주교의 영역에 독단적으로 개입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이것 때문에 논란의 중심이 되었어야 할 우크라이나 독립, 자치권은 뒷전으로 밀려 세계 총대주교 수위권 문제의 도매품이 되어 버렸다.
모스크바 입장에서 문제가 된 요소는 아래 5가지다.
- 한 총대주교의 관할 구역에 다른 총대주교가 개입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주교들 중 누구도 자기 권위를 타 교구로 뻗치지 않는지 타 구역들이나 타 교구들이나 모든 곳에서 감시될 것이다.제3차 세계공의회 제8조 中
어느 총대주교청 산하도 아닌 제3의 교회에 자치권을 부여하는 정도라면 몰라도 이미 '다른 교회들로부터 인정받은 한 총대주교청의 관할구역'에 타 총대주교가 간섭해서 문제가 된 것이다.
러시아 정교회는 988년 '루스의 세례'로 형성되었다. 현 러시아 정교회는 러시아니 우크라이나니 하는 현존하는 국가보다 더 역사가 오래되었다. '러시아' 정교회라고 번역하지만 정확한 명칭은 루스 정교회(Русская православная церковь)이지 러시아 정교회(Российская православная церковь)가 아니다. 현 우크라이나 땅(특히 키이우)은 루스 정교회의 시발점이고 모스크바 총대주교좌가 신설된 후에도 우크라이나 지역의 최고성직자는 'Патриарший экзархат'[11]라 불리며 총대주교에 준하는 위치와 자치권을 부여받는 특례가 있었으며 1686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청 또한 직접 우크라이나를 모스크바 총대주교청 관할구역으로 넘기는 데 동의했다.
말하자면 고려시대에 '한반도 정교회의 서울 총대주교'라는 지위가 성립되고 한반도 전체를 관할구역으로 다른 총대주교들에게도 인정받았는데 후에 남한과 북한으로 나눠지자 갑자기 모스크바 총대주교가 이전 동의를 철회하고 '북한 정교회의 평양 주교'를 따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 '명예 총대주교'라는 전례 없는 호칭의 묵인(?)우리의 성 대 그리스도 교회는 이 문제에 관한 여러분의 거룩한 '러시아 교회의 독점적 권한'을 전적으로 인정하여 상술된 내용들에 대한 시노도스 결정을 수용합니다.세계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스, 1992년 8월 26일 키이우 관구장주교 필라레트의 파문 결정에 대한 답신만약 주교, 사제, 보제들이나 직분자들 중 누군가가 파문된 자들과 교류하는 것으로 드러난다면, 그 자신도 교회 직분에 혼란을 야기하는 자로서 교회적 친교 밖으로 내몰릴 것이다.안티오키아 공의회 제2조, 사도헌장 제10·11조
정확히 말하면 콘스탄티노폴리스는 키이우를 '총대주교좌'로 인정하지 않는다. 토모스를 받은 수장 에피파니 역시 '키이우와 전 우크라이나의 관구장주교'라는 칭호를 사용한다. 다만 우크라이나 통합정교회가 이번에 성립되는 과정에서 UOC-KP와 그 수장 필라레트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UOC-KP라는 명칭 자체가 '키이우 총대주교좌'를 표방하기 때문에 나왔으므로 그 수장인 필라레트는 당연히 스스로를 총대주교라고 칭했다. 콘스탄티노폴리스는 필라레트가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받은 파문을 철회해 주고 필라레트가 중심이 되어 올린 우크라이나 정교회 자치권 부여 요청에 응답했다. 이러는 과정에서 꾸준히 러시아 정교회에게 어그로를 끌었고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통합하는 과정에서 UOC-KP를 흡수[12]했지만 필라레트는 결코 '키이우 총대주교'라는 칭호를 버리려 하지 않았다.
결국 통합정교회의 수장으로 선출된 이는 필라레트가 아니라 비서였던 에피파니 주교였고, 콘스탄티노폴리스도 에피파니 주교를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수장으로 인정했다. 그래서 교회의 정식 수장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에피파니지만 통합정교회 내에는 별개로 키이우 총대주교가 그대로 존재한다는 애매한 구조가 되었다. 일단 우크라이나 통합정교회는 필라레트에게 '명예 총대주교'란 칭호를 인정했고 필라레트도 '대외적으로 에피파니가 우크라이나 교회를 대표하고, 나는 우크라이나 교회 내부를 단합시키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명예 총대주교'라는 것은 교회법적으로든 전통으로든 전례가 없는 희한한 칭호로, 다분히 타 정교회의 비판을 피하기 위한 정치적 방어 의도가 묻어난다.[13] 결국 이것 때문에 우크라이나 통합정교회는 다른 정교회들로부터 강력한 항의와 비판을 받았고[14] 통합정교회를 지지하는 콘스탄티노폴리스도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정리하자면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이전부터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함한 다른 총대주교좌들의 동의 아래 파문을 받았던 자칭 키이우 총대주교 필라레트와 접촉하여 다른 정교회의 비판을 받는 상황에서 비록 필라레트를 키이우 총대주교로 인정하지 않고 에피파니를 우크라이나 교회수장으로 인정했지만 우크라이나 통합정교회가 '키이우 총대주교좌'라는 직함을 버리지 못하고 '명예 총대주교'라는 무리수를 두면서 껴안으려고 하자 이를 지지한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입장이 더 난감해지고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 셈이다. - 한 국가 내에서 다른 총대주교청 산하 교회들의 공존 거부
사실 오늘날 각 총대주교좌나 정교회끼리 관할구역이 겹치거나 경계가 모호해짐은 그리 드문 현상이 아니었다. 비록 1국가 1교회 원칙이 있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키기가 불가능할 때가 많았으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적당히 '상호존중'하면서 공존하는 쪽으로 정리함이 대다수였으나 2018년 11월 2일 콘스탄티노폴리스 소속 대주교 이오프는 '한 국가에 대등한 교회 2곳이 존재할 수는 없다. UOC-MP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공존 거부를 못박아 버렸다.
2015년 기준으로 UOC-MP의 신자는 우크라이나 총 인구의 약 20.8%를 차지했다. 비록 UOC-KP 신자 수(약 44.2%)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지만 다른 종교들은 총 인구의 10%를 넘는 교세를 확보한 곳이 없다. 2015년 기준으로 한국에서 개신교(약 19.7%), 불교(약 15.5%), 가톨릭(약 7.9%)였음을 감안하면 UOC-MP 역시 우크라이나의 메이저 종교단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
그런데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이들의 존재를 모조리 부정하여 UOC-MP 소속 우크라이나인들이 등을 돌렸다. - 위 문제에서 다른 정교회들의 합의와 협상 없이 한 총대주교 단독으로 일을 진행오늘날 콘스탄티누폴리 수석주교는 그에게 소속된 관구장주교들 상위에서 제일이자 유일하며 최종적인 판관이다. 그러나 기타 총대주교들에게 소속된 이들에게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야기하였듯, 모든 총대주교들의 최종공동판관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세계공의회이기 때문이다.니코디모스(Νικόδημος ο Αγιορείτης)[15]의 저서 피달리온(Πηδάλιον) 中 제4차 세계공의회 결정사항 제9조에 대한 주해 일부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주교는 모든 관구장주교들이 아니라 오직 그에게 소속된 관구장주교들 상위의 판관으로 인정된다. 왜냐하면 시리아의 관구장주교들이나 팔레스티나 관구장주교들이나 페니키아 관구장주교들이나 이집트 관구장주교들은 자기 의사에 무관히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주교의 법정에 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서품되고 소속된 바에 따라 시리아 관구장주교들은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의 심판에, 팔레스티나 관구장주교들은 예루살렘 총대주교의 심판에 속하고, 이집트 관구장주교들은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에 의하여 심판되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것이야말로 전체를 아우르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자 마이너스 시너지를 이루는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정교회라는 교회 자체가 한 주교가(로마 총대주교, 즉 교황) 지나치게 과도한 권력과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엄격히 배격한 교회이며 때문에 이러한 '교황적 행보'에 대해서는 그 동로마 제국 시절부터 엄격하게 금기시되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가 세계총대주교라는 직함을 사용하지만 교황이 아니고 심지어 교황조차 교황직할인 대리감목구가 아닌 한 하위 관구나 교구에 대해서 이렇게 간섭하진 않는다. 그런데 동등한 총대주교좌들끼리 서로 남의 관할구역을 간섭하고 독단적으로 처리해 버렸으니 문제가 커져 버렸다. 정교회의 총대주교좌들끼리는 대등한 관계이고 정교회들은 연합체의 성격을 띤다. 각 정교회끼리 불일치나 불화가 일어날 경우 서로 협의와 합의를 거쳐 일을 처리함이 원론이다. 그런데 세계총대주교좌에서 다른 정교회들의 의견을 묻지 않은 채 타 총대주교좌의 관할구역을 간섭하고 (비록 '명예'란 딱지를 붙였으나) '총대주교'라는 최고위 정교회 성직자의 위치를 묵인(또는 방조)했다. 이것 때문에 오히려 이런 행동으로 인해 우크라이나 정교회 자치권 부여에 있어서 호의적이었던 교회들도 등을 돌리게 되었다. - 우크라이나 정부와 튀르키예 정부의 개입
크게 보자면 정교회는 국가에 따라 성립되지만 '국가'가 분열되거나 통합되거나 하는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나고 이것 때문에 국가 정교회의 관할구역과 실제 국가 영토 상의 불일치, 각 정교회들 간의 관할구역 겹침, 친서방적으로 에큐메니컬 교회 통합운행을 행해 오던 콘스탄티노폴리스와 이에 반대하던 모스크바간의 의견 충돌 등 '국가교회'를 표방하는 정교회들의 태생적인 구조상의 문제가 이 사건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이 푸틴과 손잡고 우크라이나를 지배하려고 한다는 음모론·루머가 있다. 푸틴과 모스크바 총대주교청 간의 공공연한 유착 겸 정교분리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는 영미권 언론 포린 폴리시에서도 기사가 나올 만큼 국제적으로 말이 많이 나온다. 정부와 교회가 유착했다고 어떤 국가가 교회를 통해서 다른 국가를 지배하거나 여론을 조작한다는 건 현실성이 없다. 더구나 UOC-KP가 이미 교세 면에서 UOC-MP를 가볍게 능가한 마당에 UOC-MP의 성직자들이 단체로 러시아 정부의 개가 된다고 하더라도 여론을 조작하기는 어렵고 오히려 UOC-KP로 전향하는 신자들만 늘어날 뿐이다.
이 사건에 세계총대주교가 개입하게 된 계기는 우크라이나 대통령 포로셴코가 2018년 3월 9일 튀르키예에서 세계총대주교와 만나 우크라이나 자치권 부여에 대해 논한 일이었다.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는 공식적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청과 '상호협력 조약'을 체결했다.# #2
그뿐만 아니라 포로셴코는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도 만나 우크라이나 정교회 자치권 부여에 대해 논했다. 크림 타타르계 우크라이나 의원인 무스타파 제밀레우(Mustafa Cemilev / Мустафа Джемилев)[18]는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만나 우크라이나 자치권 부여에 대해 논했는데 에르도안은 이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며 우크라이나는 자치권을 얻을 것을 확신한다."[19][20]고 대답했고 이후 포로셴코 대통령이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했다.#, #2 우크라이나 자치권 부여 문제에 있어서 우크라이나 정부가 개입했음은 공공연한 사실이라 통합 정교회와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청은 오히려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정교분리의 파괴'라는 비난을 받았다.
결론적으로 우크라이나 통합정교회와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청은 단순히 '정교분리의 파괴' 혹은 '정치와 종교의 유착' 정도를 넘어 세속 정부들과의 '공식적인 전략적 협력', '정치인들의 교회 지배'를 보였으며 이 시점에서 러시아 정교회를 나무랄 처지가 아니게 되고 역으로 러시아 정교회에 비난받는 처지로 전락했다.
러시아 정교회 대변인은 "블라디미르 푸틴은 교회가 우크라이나 당국을 비난할 수 있는 좋은 프로파간다 기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영토에는 모스크바 총대주교청 산하의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존재하며 총대주교에게 있어서 우크라이나 당국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발언했다.##
UOC-KP와 UOC-MP를 제외하면 우크라이나 전체 인구의 10%를 넘는 종교단체는 없다. UOC-MP는 창설 이래 우크라이나 통합 정교회가 형성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전체 인구의 10% 아래로 내려간 적 없는 전통적인 우크라이나의 주요 종교단체이고 역시 우크라이나 정교회이며 신도들과 사제들도 우크라이나인 맞다. 정말로 푸틴이 러시아 정교회를 이용해 우크라이나를 지배하려고 하고 UOC-MP의 성직자들이 공공연하게 우크라이나에 반하는 푸틴과 푸틴의 정책을 지지하고 찬성하고 푸틴이 교회를 이용해 우크라이나를 지배하려고 했으면 UOC-MP는 애초에 이 정도 교세를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교회가 물리적인 강제력을 지닌 것도 아니고 UOC-KP라는 대체제가 있는 상황에서 싫으면 그냥 딴 교회 다니면 된다.
총합하자면 러시아 정교회가 러시아 정치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건 사실이지만 이건 정교회권 전체의 태생적인 특성이고 오히려 해당 사태에 국한해서 보자면 러시아 정교회는 푸틴 정부와 불화하며 손발이 안 맞는 모습을 보여준 반면 반대로 UOC-KP측이야 말로 우크라이나, 튀르키예 양국 세속 정부와 노골적으로 같이 놀아나며 오히려 정교유착 비판을 받아야 할 쪽은 UOC-KP로 부각됐다. 애초에 냉전기적 감정에 기반한 러시아에 대한 의심과 적개심은 팽배한 반면 정교회는 문화적으로도 낮설기만 한 서방에서야 통하는 언플이지 오히려 러시아 정교회측에서는 억울하며 KP쪽이야말로 노골적으로 정치인들과 놀아났는데 무식한 서방인들 상대로 언플 잘~친다고 반발했다.
러시아 정교회의 총대주교좌의 위치는 16세기에 세계총대주교 이에레미아스 2세(Ιερεμίας Β΄ Τρανός)에 의해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모스크바의 주교가 스스로 총대주교로 인정받음과 동시에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를 자신의 장으로 인정해야 함을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중략) 어떤 교회법학자들은 이런 새 총대주교들과 독립교회들이 세계총대주교에 의해 창설되었다는 것은 특정한 시점에서 세계총대주교가 필요하다고 여긴다면 그것을 취소할 권리를 가진다고 말합니다.
세계공의회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청 대표, 텔메소스 대주교 조브(Archevêque Job de Telmessos)[21]
즉 세계총대주교좌는 타 총대주교좌 대해서 단순한 영향력이 아닌 우위성, 수위권을 가지고 필요할 경우 타 정교회의 총대주교좌나 독립교회 지위 취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러시아 정교회 측은 극렬하게 반발했다.세계공의회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청 대표, 텔메소스 대주교 조브(Archevêque Job de Telmessos)[21]
결국 이 사태를 독립교회에 대한 단순 의견 불일치나 타 교구에 대한 간섭이 아닌 교회 대 교회의 충돌과 분열로 이어지는 데 쐐기를 박아 버린 셈이다.
5.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청 입장
5.1.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청과 우크라이나 교회의 관계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같이 우크라이나인들, 그리고 고대 루스인의 모든 후예의 기독교 신앙, 특히 정교회 신앙의 뿌리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청에 두고 있다. 여기서 10세기 키이우 대공 볼로디미르의 세례나 이후 키이우 루시 전역의 정교회 확산 등 이미 잘 알려진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서는 굳이 자세히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으로 봤을 때 세계 총대주교청은 전 우크라이나들의 어머니 교회가 된다. 마찬가지로 세계 총대주교청이 전 러시아의 어머니 교회, 전 벨라루스의 어머니 교회도 되듯이 말이다.또 분명히 생각해 보아야 할 사실은 충분한 교인들과 사제들, 주교들을 보유한 우크라이나 교회의 독립이 왜 승인되지 말아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우크라이나보다 작은 폴란드 정교회는 독립이 승인되었고 거의 대부분의 동유럽 정교회는 충분한 규모를 이루었을 때 세계총대주교청은 늦든 빠르든 독립을 승인해주었다. 2018년의 분열을 다루면서 이 시기에만 집중해서 교회법의 합당·부당을 다투는 것은 오히려 협소한 시각이다. 애초에 우크라이나 교회가 분열된 가장 큰 원인은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의 합당한 이유없는 민족주의적 욕망에 따른 독립 불인정이었다.
세계 총대주교청의 고대 공식 문서에 정교회 러시아 대교구 관련 기록이 있는데 10세기 동로마 황제 레온 6세 시절의 문서를 보면 러시아 대교구는 세계 총대주교청의 60번째 관리구(eparchy)라고 나온다.[22] 이 교회는 본시 키이우를 주교좌로 두고 "키이우와 전 루스"라는 이름 아래 하나의 교회를 구성하고 있었다. 키이우 대주교들은 나중에 자신들의 거처를 블라디미르로 옮겼다가 최종적으로 모스크바로 이전했지만 거주지만 옮겼을 뿐 교회법상 그들의 주교좌는 여전히 키이우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15세기 중반 무렵에 이르러 키이우 대교구는 1448년 모스크바 대공국이 당시 교회통합론자였던 세계 총대주교 그리고리오스 3세에 대한 반발로 그의 승인 없이 선출한 모스크바 대주교 요나와 세계 총대주교청에서 선출한 그리고리오스 대주교 둘로 나뉘었다.
그러다가 1470년 교황 비오 2세로부터 키이우 대주교로 서품된 불가리아인 그리고리오스 2세가 정교 신앙으로 돌아와 세계 총대주교 디오니시오스 1세에게 받아들여진 한편 1561년에 세계 총대주교청과 상의도 없이 모스크바에 새 대주교 테오도시가 착좌했다.
1589년 세계 총대주교 예레미야스 2세에 의해 모스크바 대교구가 총대주교좌로 승격한 후에도 키이우 대교구는 여전히 세계 총대주교청에 속한 교회로 계속 기능하였다. 세계 총대주교청이 여전히 키이우 대교구에 교회 권위를 행사했다는 근거로는 대표적으로 1589년 세계 총대주교 예레미야스 2세가 키이우를 방문해서 키이우 대주교 오네시포로스를 중혼죄로 면직하고 미하일 라고자를 새 대주교로 임명한 사례가 있으며 이뿐만 아니라 예레미야스 2세 총대주교는 우크라이나에 수도원 설립을 인가하고 우크라이나 교회회의 소집을 명령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 교회에 대한 세계 총대주교청의 가장 큰 기여는 바로 폴란드의 우크라이나 합병으로 우크라이나 교회가 완전히 라틴화되어 주교들이 전부 동방 가톨릭으로 넘어가는 사태가 일어났을 때였다. 1620년 세계 총대주교는 예루살렘 총대주교 테오파니스의 우크라이나 방문을 허락해 그곳에서 정교회 주교들을 새로 서품하고 우크라이나 교회회의를 회복시킨 다음 세계 총대주교의 허가로 키이우 대주교를 선출하도록 했다. 물론 키이우 대주교가 예루살렘 총대주교에게 서품되었다고 해서 키이우 대교구가 예루살렘 총대주교청 산하로 적을 옮긴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1654년 정치적으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병합되자 모스크바 총대주교와의 우크라이나 지역 교회 통합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의 대주교들과 주교들, 사제들과 보제들, 귀족들과 전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 정교회와 통합되기를 강력하게 거부했다. 1684년 러시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계 총대주교 야코보스로부터 키이우 대교구를 가져오는 데 실패했다. 키이우 대주교 실베스테르와 그의 후임자들인 디오니시오스, 요셉, 안토니오스는 모스크바 총대주교에게 서품받지 않았다. 그들의 후계자 기데온이 1685년 모스크바 총대주교 요아킴에게 서품받음을 수락하라고 설득당했으나 이때 키이우에 소집된 대회의는 세계 총대주교가 모르게 소집됐기 때문에 대주교의 선출과 서품 모두 불법으로 선언됐다.
모스크바 총대주교의 이러한 행위는 중대한 위법 행위였다. 관할 총대주교의 동의 없이 교회 관할권 밖에 속한 주교를 대주교로 승격시킴은 정교회의 교회법을 거스르는 행위다. 이를 금지하는 교회법으로는 사도법령 제35조, 제1차 세계 공의회 교령 6조, 안티오키아 공의회 교령 13조와 22조, 사르디스 공의회 교령 15조가 있다. 동시에 제2차 세계 공의회 교령 2조와 안티오키아 공의회 교령 13조와 22조, 사르디스 공의회 교령 3조는 다른 총대주교의 교회 관할권을 침범하는 행위를 단죄하였다. 제3차 세계 공의회 교령 8조와 트룰로의 퀴니섹스트 세계 공의회 교령 39조는 다른 교구를 장악하려는 행위는 고대 교회의 특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단죄하였다.
기데온과 모스크바 관계자들은 결국 세계 총대주교청의 승인 없인 어떠한 것도 불가능함을 이해했기 때문에 그들은 당시 세계 총대주교 디오니시오스 4세에게 기데온의 서품을 인정해 달라고 설득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이를 위해 러시아 황실과 정부의 사절 니키타 알렉시예프가 당시 디오니시오스 4세가 머물러 있던 하드리아노폴리스로 찾아갔다. 이들의 협상과 막후활동은 예루살렘 총대주교 도시테오스 2세가 저술한 12권짜리 예루살렘 총대주교청 역사서에 기록되었는데, 도시테오스 총대주교 역시 러시아 황족과의 사적 친분관계로 당시 회담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대화와 협상의 결과는 1686년 6월자 "총대주교 및 시노드 교령" 또는 "문제에 대한 서한"(Γράμα ἐκδόσεως)에 기록되어 있는데 세계 총대주교 디오니시오스 4세가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 성 시노드가 서명한 다른 주교들과 함께 서명했다. 이 교령의 실제 원본은 현재 사라졌지만 러시아어 번역문은 물론 칼리니코스 2세 총대주교 시절(1688년, 1689-1693년, 1694-1702년)에 남긴 그리스어 사본이 남아 그리스어 원문을 정확하게 복원할 수 있다.[23] 이뿐만 아니라 세계 총대주교 디오니시오스 4세가 러시아 황제들 이반과 표트르, 황녀 소피아에게 보낸 서한의 그리스어 원본도 남아 1826년 러시아 정부 공식 문서 모음집에 첨부되어 출판되었다.[24]
이 두 문서의 내용을 종합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키이우 대교구 문제는 당시 "국가 간에 오간 공방전"이라는 특수한 시대적 상황으로 인한 "오만의 자세"와 "오이코노미아(οἰκονομία)"의 이유로 발생했다. 이러한 연유로 "바르고 참되고 거룩하고 흠 없는 정교 신앙의 적이 밀곡 사이(즉 정교회 안)에 잡초와 가시를 심었으며, 이로 인해 외부 집단에 의해 정복당할 위험이 있다."[25][26][27]
1686년 콘스탄티노플 교회는 우크라이나 교회(당시 키이우 대교구)에 대한 임시적 관할권을 모스크바 총대주교에게 위임했다. 그러나 이 위임은 전면적이고 영구적인 관할권 양도가 아니었으며, 일정한 조건을 포함한 임시적 조치로 해석된다. 당시 콘스탄티노플은 동방 정교회의 최고 명예좌로서 우크라이나 교회를 관할하고 있었지만, 정치적·교회적 이유로 모스크바 총대주교에게 우크라이나의 관리 권한을 임시적으로 맡겼다. 이는 특히 러시아 차르국의 정치적 영향력과 맞물려 이루어진 결정으로, 우크라이나 지역이 모스크바의 정치적 통제 아래 놓였기 때문이다. 위임할 때에도 우크라이나 교회의 독립적 지위를 인정하는 요소가 남아 있었고, 모스크바 총대주교는 세계 총대주교에 대한 의존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이 포함되었다. 모스크바 총대주교가 키이우 대주교를 임명할 때는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의 승인을 받아야 했으며, 또한 예배 중에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의 이름을 계속해서 기도에서 언급해야 했다. 이는 콘스탄티노플이 우크라이나 교회에 대한 최종 권위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이를 통해 콘스탄티노플은 우크라이나 교회에 대한 관할권을 영구적으로 양도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 즉, 1686년 위임이 이러한 권리 하에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여전히 우크라이나 교회 문제에 대한 최종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를 근거로 콘스탄티노플 교회는 2018년 우크라이나 정교회 자치권을 부여한 것이다.
5.2. 튀르키예 정부 개입 음모론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는 튀르키예 정부의 꼭두각시가 아니다. 1980년대까지 튀르키예는 철저한 세속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정교회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활동을 억제했고 에르도안 정권기에 종교적으로 풀어 주어 유화되었다. 우크라이나 정교회 독립 문제가 튀르키예 정부의 이익과 전혀 상관이 없을뿐더러 튀르키예 정부와 합의 따위도 없었다.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도와줘서 감사하다고 발언을 하기는 했지만 그냥 외교적 수사일 뿐이다. 이후 기자회견에서 튀르키예 정부의 지원을 받았느냐는 질문을 받고 포로셴코 대통령은 "굳이 말하자면 지금까지 오는 데 방해해주지 않아서 에르도안에게 감사할 뿐"이라고 대답했다.# 튀르키예 주류 언론에서도 그냥 '아,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모스크바에서 떨어져 나갔나보다.' 하고 끝이었다. 에르도안도 교회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6. 여파
6.1. 한국의 정교회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청 산하 정교회 한국대교구는 그동안 한국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 신자들이 한국 대교구 산하 성당에서 슬라브식 예법으로 성찬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배려해 왔다. 그리하여 러시아인들은 서울 성 니콜라스 대성당에 딸린 성 막심 성당에서 따로 성찬예배를 드렸는데[28] 2018년 연말에 모스크바 총대주교가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와의 성사교류를 끊어 버리면서 한국에 사목구 설립 및 사제 파견을 결정했다.#러시아 정교회는 대사제 올레크 넬린(Протоиерей Олег Нелин)을 파견해 2019년 1월에 러시아 정교회의 성직자들이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대로62길 45-11(한강로1가 216-3) 2층에 자리를 잡고 첫 성탄절 성찬예배를 거행했다. 여기에는 절반의 주한 러시아 신자들뿐만 아니라 일부 한국인 신자도 적을 옮겼다고 한다. 페이스북 페이지 당연히 콘스탄티노폴리스 소속 정교회 한국 대교구에서는 이에 대해 교회법 위반이며 분열주의 분파 집단이기에 교회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했다. 같은 해 4월에는 유즈노사할린스크 출신 한국계 러시아 주교 테오판 김(Феофан Ким 1976년 출생, 2011년 주교 수품)가 러시아 정교회 산하 대한정교회의 교구장 주교로 임명되었다.
6.2. 기타 독립교회·자치교회
2019년 11월 8일 알렉산드리아와 전 아프리카 총대주교 테오도로스 2세가 그리스 정교회에 이어 세 번째로 우크라이나 정교회를 인정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 그는 이집트 카이로 다히르 성 대천사 성당에서 열린 성찬예배에서 키이우와 전 우크라이나의 대주교 에피파니의 이름을 딥티코스(Diptychs)[29] 낭독 중에 기념하였다. 이에 러시아 정교회는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청과 성사교류를 중단하고 아프리카에 총대주교 대리구를 설정해 관할 주교를 임명하고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청에서 이탈한 사제들을 편입시키는 월권을 저지르면서 갈등을 빚었다.안티오키아 정교회는 러시아 정교회와 뜻을 같이하며 우크라이나의 교회 분열에 대해 반대합니다.
총대주교 유한나 10세(البطريرك يوحنا العاشر / al-Baṭriyark Yūḥannā al-‘Āshir)
2018년 10월 6일,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청의 시노드는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자치문제에 대하여 정교 통합주의적인 예배[30]를 지지할 것이며 지난 역사에서 정교회의 통합을 해쳐왔던 정치문제와의 연관이라는 덫에 빠지지 않도록 이 사태를 유의 주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 2019년 1월 17일에는 안티오키아 총대주교 유한나 10세가 우크라이나 문제에 있어서 러시아 측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선언하였다.# 또 유한나 10세는 세계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스 1세에게 우크라이나 문제는 정교회의 통합과 단결을 저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총대주교 유한나 10세(البطريرك يوحنا العاشر / al-Baṭriyark Yūḥannā al-‘Āshir)
2019년 10월 12일 그리스 정교회 시노드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청에 이어 두 번째로 통합 출범한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독립교회 지위를 인정하고 공식 승인하였다.
- 키프로스 정교회
하지만 2020년 10월 24일 키프로스 파포스 인근에 소재한 흐리소로야티사(Χρυσορρογιάτισσα) 수도원에서 진행된 행사에서 흐리소스토모스 2세는 독립교회로서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권리와 에피파니 대주교의 착좌를 인정한다고 밝혔고 딥티코스 낭독에 우크라이나 정교회와 에피파니 대주교를 거명하기로 하는 등 입장을 선회했다. ##
저는 항상 관구장주교 오누프리(Митрополит Онуфрій, UOC-MP의 키이우 관구장주교)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우리는 그가 우크라이나 국민을 사랑하고 모든 정교회 신도들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그에게 보내신 모든 시험을 극복하기 위해 힘과 건강을 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총대주교 네오피트(Патриарх Български Неофит)
처음에는 공식입장 표명을 꺼려 온 불가리아 총대주교청은 2018년 12월 15일 공식 웹사이트에 비딘 관구장주교 다니일(Видински митрополит Даниил)의 인터뷰를 게재하였다. 인터뷰에서 다니일 주교는 우크라이나 정교회 통합추진위원회는 교회법적으로 잘못되었으며 그들이 진행하는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자치교회화는 단지 정치적인 행동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 또 불가리아 정교회 시노드 대변인인 멜니크 주교 게라심(Мелнишки епископ Герасим)은 우크라이나의 현 상황과 그 복잡성에 대해 잘 알지만 정교회가 천 년 동안 고수해 온 교회법을 엄격히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을 지지했다.총대주교 네오피트(Патриарх Български Неофит)
루마니아 정교회 시노드는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단일한 교회로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는데, 여기에 대한 선결 조건을 제시했다. 범정교회적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하며 최종적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와 모스크바 사이 합의로 결론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 폴란드 정교회
우크라이나의 적법한 교회에 반하는 행동을 엄격히 비난합니다. 교회의 단합을 해치는 것은 중죄입니다. 우리는 형제 오누프리(UOC-MP 관구장주교)와 고통받는 우크라이나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총대주교 테오필로스 3세(Πατριάρχης Ιεροσολύμων Θεόφιλος Γ')
2018년 11월 10일 수장 라스티슬라우 대주교(Arcibiskup Rastislav)는 UOC-MP의 성직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관구장주교 오누프리를 지지한다고 표명했다.#총대주교 테오필로스 3세(Πατριάρχης Ιεροσολύμων Θεόφιλος Γ')
우크라이나의 분열주의자들을 돕는 이들은 러시아 정교회의 적일 뿐만 아니라 슬라브 정교회, 모든 정교회의 적입니다.
전 총대주교 이리네이(Патријарх српски Иринеј)
세르비아 정교회는 11월 12일자로 우크라이나 통합정교회의 사제들과 성사를 교류함을 금지했다.전 총대주교 이리네이(Патријарх српски Иринеј)
각 총대주교들의 발언 내용은 러시아의 종교신문 '십일조(десятина)'의 2018년 9월 152호 참조.
7. 콘스탄티노플 세계총대주교청 측 문서
ΠΑΤΡΙΑΡΧΙΚΟΣ ΚΑΙ ΣΥΝΟΔΙΚΟΣ ΤΟΜΟΣ ΧΟΡΗΓΗΣΕΩΣ ΑΥΤΟΚΕΦΑΛΟΥ ΕΚΚΛΗΣΙΑΣΤΙΚΟΥ ΚΑΘΕΣΤΩΤΟΣ ΕΙΣ ΤΗΝ ΕΝ ΟΥΚΡΑΝΙΑι ΟΡΘΟΔΟΞΟΝ ΕΚΚΛΗΣΙΑΝ
〈우크라이나 교회에 독립교회 지위를 부여하는 총대주교 및 시노드 교령〉
하느님의 은총으로 새 로마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대주교이며 세계총대주교인 바르톨로메오스가
"너는 시온 산으로부터 왔고, 처음 태어난 교회로다."(히브 12:22~23) 모든 민족의 사도이신 복된 바울로 사도께서 이처럼 모든 믿는 이들에게 선포한 바, 교회를 산으로 적절하게 비유함과 같이, 교회의 굳건함과 안정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확신과 승인을 내리고자 합니다. 하느님의 교회는 모두 정교 신앙 고백을 공유하는 한 양 떼, 하나인 그리스도의 몸이지만, 성령 안에서 이뤄지는 성사를 통한 친교와 사도시대 초기부터 이어져 오는 사도 계승의 지속 그리고 교회법상 합법적인 직제는 또한 지역과 민족 교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교회들은 내부적으로, 그들 스스로의 목자, 교사 그리고 그리스도 복음의 종들이자, 역사적으로나 세속적으로나 이 도시들과 땅에서 중요할 뿐 아니라 개별적인 사목상의 필요를 채우는 지역 주교들이 자체적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헌신적이고 거룩히 보호받는 우크라이나가 천상의 지혜로 굳건해지고 위대해졌으며, 또한 포괄적으로 정치적인 독립을 얻었고, 이로써 민간과 교회의 지도자들은 30년 넘는 세월 동안 그토록 간절히 교회의 자치 행정권을 추구해왔습니다. 이에 주기적으로 우크라이나인들은 이전부터 비슷한 요청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자리한 지극히 거룩한 사도좌에 더욱 울려 퍼지게 했습니다. 오랜 교회법적 전통에 따라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지극히 거룩한 사도좌는 거룩한 정교회들이 직면한 어려움을, 특별히 성령 안에서 우리의 형제이요, 성사의 공동 집전자인 역사적인 키이우 관구와 같이 교회법적인 연대와 연관되어 있는 어려움을 직면할 때 이를 돌볼 의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에, 정교 세계의 위대한 그리스도의 교회가 해결해야 할 지역 교회의 긴요한 분열과 분리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하여, 헌법상으로나 정치적으로 완전히 독립된 우크라이나의 지리적 경계 안에 있는 교구, 대교구, 수도대교구 주교좌와 그에 속한 교회적 기관뿐만 아니라 수도원과 본당을 포함하는 전체 정교회를 이제로 부터 '독립 교회' 지위로 격상하여 독자적으로 존속하여 자치하도록 만장일치로 결정하고 선포하는 바입니다. 그 합법적인 수석 주교로 '키이우와 전 우크라이나의 수도대주교'를, 곧 모든 교회의 사안을 관장할 수석 성직자로 인정하며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의 승인 없이 이외의 칭호를 합법적으로 추가하거나 제할 수가 없습니다. 수석주교는 매년 교대로 그리고 연차순으로 선임하고 우크라이나의 지리적 영역 안의 주교단들로 구성되는 시노드를 주재할 것입니다. 이는 이 땅에서 교회 사무가 거룩하고 신성한 교회법이 공포하는 바에 따라 자유롭게, 성령 안에서 그리고 방해받지 않고, 다른 어떤 외부 간섭으로부터 떨어져 치리되는 방식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총대주교와 시노드가 승인한 교령에 따라 우크라이나 내의 주권 영토 내에 세워진 이 '독립교회'를 우리의 영적인 딸로서 인정하고 선포하며, 세계의 모든 정교회들이 이를 받아들이고 역사적인 키이우에 주교좌가 자리한 '지극히 거룩한 우크라이나 교회'라는 이름으로 기억해줄 것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이로써 세계총대주교좌로부터 적법하게 독립을 얻은 지역에 다른 정교회들은 지금부터는 주교를 세우거나 관할 구역 외에 제대를 세우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세계총대주교좌는 디아스포라 공동체에 대한 교회법상의 효력을 보유하는 대신, 우크라이나 영토 내에서의 관할권은 제한받을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이 독립교회 당국에 모든 현존하는 특권과 주권을 부여하는 바 이로써 모든 교구장들이 지극히 거룩한 우크라이나 교회의 수석이자 으뜸 주교로 기념하는 동안, 키이우와 전 우크라이나의 수도대주교좌는 모든 정교회 교구들을 전례 속에서 기념할 것입니다. 내부 교회 행정에 관련한 사안들은 수석 주교와 거룩한 시노드가 절대적으로 중재와 판결 그리고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수석 주교와 거룩한 시노드는 복음의 가르침과 우리 거룩한 정교회의 신성한 전통과 공경해야 할 교회법적 규칙을 준수해야 하며 뿐만 아니라 제1차 니케아 세계 공의회에서 결정한 교령 제6조의 가르침과 명령, 곧 "두세 사람의 주교가 반대했을 때 그것이 합리적이며 교회법과 상응한다면 다수결이 우선한다." 하는 규범에 따라야 합니다. 나아가 제4차 칼케돈 세계 공의회에서 규정한 거룩한 교령 제9조와 17조에 의거하여 모든 주교단과 성직자단들이 지역교회에 주교와 다른 성직자들에 관한 사안에 불가역적인 판결을 내릴 교회법적인 책임을 지닌 세계총대주교에게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합니다.
위 사항 이외에, 우리는 우크라이나 독립교회가 다른 총대주교들과 수석주교들처럼 지극히 거룩한 세계총대주교 사도좌를 머리로 두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을 선포하며, 우크라이나 교회 또한 다른 교회법상의 의무와 책임 그리고 가장 으뜸가는 임무로 세계총대주교청과 다른 정교회들 간의 교회법상 일치와 친교를 변함 없이 유지하는 것 뿐 아니라 신성불가침한 정교회 신앙의 보전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키이우와 전 우크라이나의 수도대주교를 비롯해 지극히 거룩한 우크라이나 교회의 주교단은 이제로부터 현재 총대주교청과 시노드 교령에서 제시한 협정 조항과 함께 거룩하고 신성한 교회법상의 규율과 이에 상응하는 교회 헌장의 규정들에 의거하여 선출됩니다. 모든 주교들은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도록 하느님 백성을 돌볼 의무가 있으며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 안에서 그들의 국가와 교회의 평화와 화합으로 나아가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성령께서 평화의 줄로 여러분을 묶어 하나가 되게 하여주신 것을 그대로 보존하도록 노력하십시오."(에페 4,3)라고 가르친 바, 하느님의 교회 사이의 영적인 일치와 연대는 약화되지 않고 항상 남아 있습니다. 키이우와 전 우크라이나의 수도대주교는 교부들의 고대 전통에 따라 세계총대주교와 총대주교들, 지역 독립교회의 수석주교들을 딥디크를 낭송하는 순간에 기억할 것이며 교회법상의 서열에 따라 거룩한 딥티코스와 교회 회의 모두에서 키이우와 전 우크라이나의 수도대주교를 체코슬로바키아 교회의 수석주교 다음 서열에 자리할 것입니다.
동시에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그 수석주교와 혹은 키이우 수도대주교좌의 합법적인 대리를 통해 일찍부터 존재해온 교부들의 거룩한 관습에 따라 중요한 교회법상, 교의상 그리고 기타 문제들을 다룰 해마다 열릴 정교회 간 협의에 참석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정교회 수석 성직자는 선임 이후 즉시로 그의 선임을 세계총대주교와 다른 수석주교들에게 필요한 평화의 서신을 보내 알려야 합니다. 동시에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그의 평화의 여정을 영적 일치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성 미론(견진성사용 성유)을 받는 으뜸 사도좌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로부터 마찬가지의 권한을 부여받습니다. 교회적, 교의적 그리고 교회법적인 주요 문제들은, 키이우와 전 우크라이나의 수도대주교 복하는 반드시 그의 교회 시노드를 대신해 우리 지극히 거룩한 세계총대주교좌에 의사를 표현하고 그 권위있는 의견과 결정적인 조언을 구하며, 한편으로는 거룩한 우크라이나의 대리구와 '총대주교 직할 수도원(stavropegial institution)'에 대한 세계총대주교의 권위는 소홀함 없이 보존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모든 것과 모든 조건에 기초하여 우리 거룩하고 위대한 그리스도의 교회는 우크라이나 정교회를 독립교회로 축복하고 선언하는 바이며, 하느님으로부터의 풍부한 선물과 경계를 넘어서는 모든 성령의 보물들이 우크라이나 땅의 공경하올 주교단, 의로운 성직자단 그리고 신실한 백성들에게 내려지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으뜸가고 위대하신 대사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극히 거룩하시고 복되신 하느님의 어머니 동정녀 성모 마리아와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사도 대등자 성 볼로디미르 대공과,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성 대공비 올하, 하느님과 함께한 공경하올 성 교부들과, 키이우 라브라를 비롯한 모든 수도원의 은수자들과 수도자들의 중보를 통해 영원토록 우크라이나 독립교회를 지지해줄 것을 기도하는 바입니다. 이제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하나이요 거룩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와 한 몸이 되었으며 그 안정과 일치, 평화를 내리며, 그리스도의 영광과, 또한 성부와 성령께도 영광을 돌리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 사항들은 공경하올 정교 신앙의 중심으로부터 기쁘게 공포되고 시노드에서 비준한 바 결정되고 확정되었습니다. 이 총대주교청과 시노드의 교령은 영구적인 보존을 위해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위대한 그리스도의 교회가 서명하고 기록하였으며, 교령을 준수하고 영구히 확인하기 위해 지극히 거룩한 우크라이나 교회의 수석 주교인 에피파니 대주교와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동일한 내용으로 정확한 사본을 전달하는 바입니다.
2019년 1월 6일
교령 제12호
*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바르톨로메오스, 여기 그리스도 하느님 안에서 결정합니다.
* 우를라의 판델레이몬
* 이탈리아와 몰타의 겐나디오스
* 독일의 아브구스티노스
* 트라누폴리스의 게르마노스
* 뉴저지의 에방겔로스
* 로도스의 키릴로스
* 레팀노와 아블로포타모스의 에브게니오스
* 한국의 암브로시오스
* 싱가포르의 콘스탄티노스
* 오스트리아의 아르세니오스
* 시미의 흐리소스토모스
* 시카고의 나타나엘
〈우크라이나 교회에 독립교회 지위를 부여하는 총대주교 및 시노드 교령〉
하느님의 은총으로 새 로마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대주교이며 세계총대주교인 바르톨로메오스가
"너는 시온 산으로부터 왔고, 처음 태어난 교회로다."(히브 12:22~23) 모든 민족의 사도이신 복된 바울로 사도께서 이처럼 모든 믿는 이들에게 선포한 바, 교회를 산으로 적절하게 비유함과 같이, 교회의 굳건함과 안정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확신과 승인을 내리고자 합니다. 하느님의 교회는 모두 정교 신앙 고백을 공유하는 한 양 떼, 하나인 그리스도의 몸이지만, 성령 안에서 이뤄지는 성사를 통한 친교와 사도시대 초기부터 이어져 오는 사도 계승의 지속 그리고 교회법상 합법적인 직제는 또한 지역과 민족 교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교회들은 내부적으로, 그들 스스로의 목자, 교사 그리고 그리스도 복음의 종들이자, 역사적으로나 세속적으로나 이 도시들과 땅에서 중요할 뿐 아니라 개별적인 사목상의 필요를 채우는 지역 주교들이 자체적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헌신적이고 거룩히 보호받는 우크라이나가 천상의 지혜로 굳건해지고 위대해졌으며, 또한 포괄적으로 정치적인 독립을 얻었고, 이로써 민간과 교회의 지도자들은 30년 넘는 세월 동안 그토록 간절히 교회의 자치 행정권을 추구해왔습니다. 이에 주기적으로 우크라이나인들은 이전부터 비슷한 요청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자리한 지극히 거룩한 사도좌에 더욱 울려 퍼지게 했습니다. 오랜 교회법적 전통에 따라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지극히 거룩한 사도좌는 거룩한 정교회들이 직면한 어려움을, 특별히 성령 안에서 우리의 형제이요, 성사의 공동 집전자인 역사적인 키이우 관구와 같이 교회법적인 연대와 연관되어 있는 어려움을 직면할 때 이를 돌볼 의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에, 정교 세계의 위대한 그리스도의 교회가 해결해야 할 지역 교회의 긴요한 분열과 분리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하여, 헌법상으로나 정치적으로 완전히 독립된 우크라이나의 지리적 경계 안에 있는 교구, 대교구, 수도대교구 주교좌와 그에 속한 교회적 기관뿐만 아니라 수도원과 본당을 포함하는 전체 정교회를 이제로 부터 '독립 교회' 지위로 격상하여 독자적으로 존속하여 자치하도록 만장일치로 결정하고 선포하는 바입니다. 그 합법적인 수석 주교로 '키이우와 전 우크라이나의 수도대주교'를, 곧 모든 교회의 사안을 관장할 수석 성직자로 인정하며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의 승인 없이 이외의 칭호를 합법적으로 추가하거나 제할 수가 없습니다. 수석주교는 매년 교대로 그리고 연차순으로 선임하고 우크라이나의 지리적 영역 안의 주교단들로 구성되는 시노드를 주재할 것입니다. 이는 이 땅에서 교회 사무가 거룩하고 신성한 교회법이 공포하는 바에 따라 자유롭게, 성령 안에서 그리고 방해받지 않고, 다른 어떤 외부 간섭으로부터 떨어져 치리되는 방식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총대주교와 시노드가 승인한 교령에 따라 우크라이나 내의 주권 영토 내에 세워진 이 '독립교회'를 우리의 영적인 딸로서 인정하고 선포하며, 세계의 모든 정교회들이 이를 받아들이고 역사적인 키이우에 주교좌가 자리한 '지극히 거룩한 우크라이나 교회'라는 이름으로 기억해줄 것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이로써 세계총대주교좌로부터 적법하게 독립을 얻은 지역에 다른 정교회들은 지금부터는 주교를 세우거나 관할 구역 외에 제대를 세우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세계총대주교좌는 디아스포라 공동체에 대한 교회법상의 효력을 보유하는 대신, 우크라이나 영토 내에서의 관할권은 제한받을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이 독립교회 당국에 모든 현존하는 특권과 주권을 부여하는 바 이로써 모든 교구장들이 지극히 거룩한 우크라이나 교회의 수석이자 으뜸 주교로 기념하는 동안, 키이우와 전 우크라이나의 수도대주교좌는 모든 정교회 교구들을 전례 속에서 기념할 것입니다. 내부 교회 행정에 관련한 사안들은 수석 주교와 거룩한 시노드가 절대적으로 중재와 판결 그리고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수석 주교와 거룩한 시노드는 복음의 가르침과 우리 거룩한 정교회의 신성한 전통과 공경해야 할 교회법적 규칙을 준수해야 하며 뿐만 아니라 제1차 니케아 세계 공의회에서 결정한 교령 제6조의 가르침과 명령, 곧 "두세 사람의 주교가 반대했을 때 그것이 합리적이며 교회법과 상응한다면 다수결이 우선한다." 하는 규범에 따라야 합니다. 나아가 제4차 칼케돈 세계 공의회에서 규정한 거룩한 교령 제9조와 17조에 의거하여 모든 주교단과 성직자단들이 지역교회에 주교와 다른 성직자들에 관한 사안에 불가역적인 판결을 내릴 교회법적인 책임을 지닌 세계총대주교에게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합니다.
위 사항 이외에, 우리는 우크라이나 독립교회가 다른 총대주교들과 수석주교들처럼 지극히 거룩한 세계총대주교 사도좌를 머리로 두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을 선포하며, 우크라이나 교회 또한 다른 교회법상의 의무와 책임 그리고 가장 으뜸가는 임무로 세계총대주교청과 다른 정교회들 간의 교회법상 일치와 친교를 변함 없이 유지하는 것 뿐 아니라 신성불가침한 정교회 신앙의 보전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키이우와 전 우크라이나의 수도대주교를 비롯해 지극히 거룩한 우크라이나 교회의 주교단은 이제로부터 현재 총대주교청과 시노드 교령에서 제시한 협정 조항과 함께 거룩하고 신성한 교회법상의 규율과 이에 상응하는 교회 헌장의 규정들에 의거하여 선출됩니다. 모든 주교들은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도록 하느님 백성을 돌볼 의무가 있으며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 안에서 그들의 국가와 교회의 평화와 화합으로 나아가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성령께서 평화의 줄로 여러분을 묶어 하나가 되게 하여주신 것을 그대로 보존하도록 노력하십시오."(에페 4,3)라고 가르친 바, 하느님의 교회 사이의 영적인 일치와 연대는 약화되지 않고 항상 남아 있습니다. 키이우와 전 우크라이나의 수도대주교는 교부들의 고대 전통에 따라 세계총대주교와 총대주교들, 지역 독립교회의 수석주교들을 딥디크를 낭송하는 순간에 기억할 것이며 교회법상의 서열에 따라 거룩한 딥티코스와 교회 회의 모두에서 키이우와 전 우크라이나의 수도대주교를 체코슬로바키아 교회의 수석주교 다음 서열에 자리할 것입니다.
동시에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그 수석주교와 혹은 키이우 수도대주교좌의 합법적인 대리를 통해 일찍부터 존재해온 교부들의 거룩한 관습에 따라 중요한 교회법상, 교의상 그리고 기타 문제들을 다룰 해마다 열릴 정교회 간 협의에 참석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정교회 수석 성직자는 선임 이후 즉시로 그의 선임을 세계총대주교와 다른 수석주교들에게 필요한 평화의 서신을 보내 알려야 합니다. 동시에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그의 평화의 여정을 영적 일치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성 미론(견진성사용 성유)을 받는 으뜸 사도좌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로부터 마찬가지의 권한을 부여받습니다. 교회적, 교의적 그리고 교회법적인 주요 문제들은, 키이우와 전 우크라이나의 수도대주교 복하는 반드시 그의 교회 시노드를 대신해 우리 지극히 거룩한 세계총대주교좌에 의사를 표현하고 그 권위있는 의견과 결정적인 조언을 구하며, 한편으로는 거룩한 우크라이나의 대리구와 '총대주교 직할 수도원(stavropegial institution)'에 대한 세계총대주교의 권위는 소홀함 없이 보존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모든 것과 모든 조건에 기초하여 우리 거룩하고 위대한 그리스도의 교회는 우크라이나 정교회를 독립교회로 축복하고 선언하는 바이며, 하느님으로부터의 풍부한 선물과 경계를 넘어서는 모든 성령의 보물들이 우크라이나 땅의 공경하올 주교단, 의로운 성직자단 그리고 신실한 백성들에게 내려지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으뜸가고 위대하신 대사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극히 거룩하시고 복되신 하느님의 어머니 동정녀 성모 마리아와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사도 대등자 성 볼로디미르 대공과,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성 대공비 올하, 하느님과 함께한 공경하올 성 교부들과, 키이우 라브라를 비롯한 모든 수도원의 은수자들과 수도자들의 중보를 통해 영원토록 우크라이나 독립교회를 지지해줄 것을 기도하는 바입니다. 이제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하나이요 거룩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와 한 몸이 되었으며 그 안정과 일치, 평화를 내리며, 그리스도의 영광과, 또한 성부와 성령께도 영광을 돌리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 사항들은 공경하올 정교 신앙의 중심으로부터 기쁘게 공포되고 시노드에서 비준한 바 결정되고 확정되었습니다. 이 총대주교청과 시노드의 교령은 영구적인 보존을 위해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위대한 그리스도의 교회가 서명하고 기록하였으며, 교령을 준수하고 영구히 확인하기 위해 지극히 거룩한 우크라이나 교회의 수석 주교인 에피파니 대주교와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동일한 내용으로 정확한 사본을 전달하는 바입니다.
2019년 1월 6일
교령 제12호
*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바르톨로메오스, 여기 그리스도 하느님 안에서 결정합니다.
* 우를라의 판델레이몬
* 이탈리아와 몰타의 겐나디오스
* 독일의 아브구스티노스
* 트라누폴리스의 게르마노스
* 뉴저지의 에방겔로스
* 로도스의 키릴로스
* 레팀노와 아블로포타모스의 에브게니오스
* 한국의 암브로시오스
* 싱가포르의 콘스탄티노스
* 오스트리아의 아르세니오스
* 시미의 흐리소스토모스
* 시카고의 나타나엘
8. 러시아 정교회 측 문서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교구에 의한 러시아 교회 법적 영역 침해 관련 러시아 정교회 성 시노도스 성명러시아 정교회 성 시노도스 2018년 10월 15일자 회의
9.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 산하 한국대교구장인 암브로시오스 조그라포스 대주교는 2019년 인터뷰에서 러시아 정교회는 이전부터 러시아 정부에 적극적으로 협력해 그와 뜻을 같이하는 제국주의적 야욕을 여러 번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이때는 '푸틴이 러시아 정교회를 통해 자신의 권위와 독재의 정당성을 보강하고 있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란 시각과 '우크라이나에도 신자들이 있는 러시아 정교회가 과연 러시아 편만 일방적으로 들 수 있을까'란 시각이 서로 엇갈렸는데 그로부터 3년 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자 러시아 정교회가 푸틴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것으로 방향을 정하면서 이 사건에 대한 평가는 결과적으로 '거봐, 저런 애들한테 우크라이나를 맡기면 안 된다니까?'로 흘러갔다.모두가 매우 잘 알고 있으며 그래서 자주 간과하게 되는 사실은 러시아의 발상지가 바로 키이우였다는 점이다. 그것이 '국가'건 '교회'건, 키이우 없는 러시아는 근본이 쏙 빠져 버린 러시아일 수밖에 없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이유도, 러시아 정교회가 우크라이나 정교회 독립에 반발한 이유도, 따지고 보면 다 이것 때문이었다. 다른 명분은 결국 이것보다 앞설 수 없었고 그래서 키릴 1세는 교회법과 명분, 양심도 내버리고 푸틴의 침략을 지지했다. 사건 당시엔 분명 러시아 정교회에 명분이 있었고 세계 정교회 공동체에서 러시아 정교회의 입장을 지지하는 견해가 적지 않았다. 크림 반도 강탈과 돈바스 전쟁으로 러시아의 제국주의가 이미 실체화된 상황이었음에도 주변에선 러시아 정교회를 지지해 줬는데 러시아 정교회는 이 지지에 담긴 속뜻(?)을 완전히 무시했다.
이는 전혀 다른 의미로 해결의 열쇠가 되었다. 이제 우크라이나의 정교회 신자들은 우크라이나 정교회 성립 원인과 과정 그리고 정당성 여하를 떠나서 적국 러시아를 비호하는 모스크바 총대주교의 사목을 결코 용납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키릴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신명나게 줄타기를 했어도 민심을 돌릴까 말까인데 우크라이나를 파괴하고 우크라이나인들을 죽이는 짓을 성전이라고 주장하는 자를 우크라이나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러시아 정교회의 입장' 문단에 서술한 내용 일부를 다시 보도록 하자.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이 푸틴과 손잡고 우크라이나를 지배하려 한다는 음모론·루머가 있다. (…) 정부와 교회가 유착했다고 어떤 나라가 교회를 통해서 다른 나라를 지배, 또는 여론을 조작한다는 건 현실성이 없다. (…) UOC-MP의 성직자들이 단체로 러시아 정부의 개가 된다고 하더라도 여론을 조작하기는 어렵고, 오히려 UOC-KP로 전향하는 신자들만 늘어날 뿐이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저기서 얘기하던 '음모론 및 루머'는 현실이 되었고, 그 밑의 "만일 러시아 정교회가 푸틴의 개가 된다면, 다들 반대쪽으로 가버릴 게 아닌가" 또한 현실화되었다. 2022년 3월 기준으로 통합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신자는 전 인구의 52%까지 늘어난 반면 러시아 정교회의 신자는 4%로 줄어들었다. 러시아 정교회의 성직자들까지도 슬금슬금 우크라이나 정교회로 갈아탔고 2022년 5월 27일에는 아예 UOC-MP가 공의회를 열어 모스크바 총대교구에서 탈주를 선언했다. 돌고돌아 다시 우크라이나 안에 정교회 둘이 병존하게 되었다. 이참에 두 교회가 일치해야 한다는 당위도 대두되었지만 이미 양측간 갈등의 골이 깊은 데다 이후에도 UOC-MP에서 러시아와 관련한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우크라이나 보안국 수사 중에 러시아 루블, 친러시아 선전행위가 나오질 않나, 점령지 UOC-MP 교회가 러시아에 협력하고 우크라이나군이 지역을 해방하자 러시아 공무원들과 함께 도망가는 일도 있었다.# 우크라이나 당국도 UOC-MP를 국가 안보에 관한 문제로 보고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생겼다. #그리고 이 사태에서 러시아 정교회는 근본적으로 책임이 크다. 사실 러시아 정국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은 푸틴이 아무리 잔혹한 독재자라도 실로비키를 비롯한 정권 내외로 어쨌든 책임져야 하는 이해집단이 없는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고 살벌한 독재 아래서도 그렇게 푸틴이 일방적으로 대할수 없고 정권 상대로도 충분히 카드가 있는 단체가 있다면 러시아 정교회는 그 중 하나였다. 결국 서슬퍼런 공권력 아래 진압되었다지만 2022년 개전 당시엔 러시아에서도 반전시위, 성명 발표가 적지 않았고 이후에도 러시아인들이 대거 탈출하면서 무엇보다 시민사회 여론을 반영하는 상황은 서방의 낙관론자들이 원하는 만큼의 '대안적 러시아'만큼은 아니라고 해도 이 전쟁이 결코 푸틴과 정권 지지자들이 원했던 만큼의 러시아 대중의 전적인 지지를 받았다고 보긴 힘들다.
이 상황에서 푸틴이 전쟁을 일으키는 걸 제동걸 수 있는 몇 안되는 러시아의 권력 집단이 있었다면 러시아 정교회는 분명 그 중 하나였고 본문에 언급된 것처럼 2022년 러시아의 군사적 침공으로 인해 해당 분쟁이 정교회 교회들, 종교인들 간 싸움 수준을 한창 벗어나 현 시대의 가장 뜨거운 국제 분쟁으로 떠오르기 전까지는 신학적, 교회학적 관점에서 국제 정교회권 주류는 분명 러시아 정교회 편을 들고 있었다. 러시아 정교회 내부에서 이 전쟁에 적극적으로 부역할 사정이 있었든, 러시아 정교회가 이번 전쟁에서 적극적으로 부역하는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전쟁에 제동을 거는 시늉이라도 취했다면 윗 문단의 개전 이전 시점에 서술된 구도가 여전히 유효했을 것이다.
2024년 8월 20일,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는 의원 322명 중 265명의 찬성으로 러시아 정교회를 불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UOC-MP는 9개월 안에 러시아 정교회와의 완전한 단절을 선언해야 한다.
10. 관련 문서
[1] Synod. 대표(대의원)들을 구성하여 교회 관련 문제를 논의하는 회의체.[2] Ukrainian Orthodox Church-Moscow Patriarchate. 즉 모스크바 총대주교청 산하의 우크라이나 정교회라는 뜻.[3] Ukrainian Orthodox Church - Kiev Patriarchate[4] 각각 Українська автокефальна православна церква(우크라이나어), Ukrainian Autocephalous Orthodox Church(영어)의 약자다.[5] 총대주교가 산하의 자치교회를 독립교회로 인정해 주는 형식을 취하기 위해서다.[6] 키릴 1세는 이 부분도 공격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정교회가 정권과 밀착하기 때문에 못 믿겠다고 하는데 왜 우크라이나 정교회 통합추진위원회에는 대통령 포로셴코가 의장이 되었느냐는 것이다.[7] 다만 콘스탄티노폴리스 측 정교회에서 받은 세례 등은 인정된다.[8] 속명은 세르히 페트로비치 두멘코(Сергій Петрович Думенко). 1979년 2월생. 에피파니는 수도자가 되면서 받은 수도명이다.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관구장주교로 선출된 시점에서 불과 만 39세였다.[9] 33초쯤에 나오는 파란 제의를 걸치고 하얀 두건을 쓴 이가 우크라이나 통합 정교회의 첫 수장으로 선출된 에피파니 관구장주교다. 50초쯤에는 바르톨로메오스 1세의 오른편에 우크라이나 대통령 포로셴코가 있는 모습도 나온다.[10] 이는 비단 러시아 정교회뿐만 아니라 겹치는 교회가 공존하는 국가에서 다 그렇다. 교회가 직접적인 세속권력이 없는 현대시대에 뭘 인정하고 불인정하고가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11] 직역하면 '총대주교업을 수행하는 대관구장' 정도가 된다.[12] 다만 UOC-KP가 우크라이나 정교회들 중 압도적으로 교세가 크고 UOC-KP의 수장이자 키이우 총대주교를 자칭하는 필라레트가 자치권 부여와 교회 통합에서 가장 주도적으로 역할을 했음을 감안하면 사실상 UOC-KP가 다른 교회들을 흡수했다고 볼 수 있다. 단지 '총대주교좌'라는 칭호에 어그로가 끌리는 것을 막기 위해 반대로 표현하는 것이고…[13] 필라레트가 통합정교회가 출범하는 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에 무시할 수는 없는데, 그렇다고 총대주교 칭호를 포기하려고도 하지 않았으니 통합정교회 입장에선 필라레트를 달래면서 타 정교회의 비판을 피하는 고육지책이었을 가능성이 크다.[14] 특히 총대주교좌가 없는 정교회들. '이제 우리도 우리 마음대로 명예 총대주교 만들어서 총대주교좌로 승격하자!'는 농담성 주장이 나오는 판이었다.[15] 1749–1809. '성산(聖山)의 니코데모'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진 정교회의 교회법 주석자다. 1955년 세계총대주교 아티나고라스의 주도 하에 정교회 성인으로 시성되었다.[16] 원래 동로마 제국 황제의 비서였으나 아내와 자식들이 죽은 뒤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생활을 하며 역사 연대기나 신학저서 등을 집필하였다.[17] 결국 동로마 제국이 건재하고 다른 총대주교좌들이 이슬람권에 넘어가서 이름만 남아 있던 그리스 정교회의 최전성기에조차 타 총대주교좌에 대한 간섭과 개입은 금기시되었다.[18] 크림 타타르에서 눈치챘겠지만 우크라이나 정부가 작정하고 튀르키예 정부의 협력을 얻기 위해 보낸 것이다.[19] 1시간 20분 동안 부부동반으로 회동했는데 튀르키예 쪽에서는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언론에 내보내지 않았다. 다만 포로셴코 대통령이 에르도안과의 면담 이후 "튀르키예 정부의 지원을 받았는가?"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냥 정치적으로 개입하고 방해하지 않아서 고마울 뿐"이라고 일축했다. 시리아 문제 때문에 튀르키예는 러시아와 공조해야 하는 입장이었고 러시아가 발끈할 게 뻔했데 러시아를 버리고 우크라이나를 선택하는 것은 튀르키예 정부의 이익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바르톨로메오스와 에르도안 사이의 협의도 없었으며 공식적인 만남도 없었다.[20] 다만 반대로 예를 들어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이 푸틴과 만나 스코틀랜드 독립에 대해 논하고 푸틴이 "스코틀랜드는 독립할 것이며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대답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렇다면 설령 러시아가 스코틀랜드 독립에 정말 실질적인 개입이나 도움을 주지 않았다 할지라도 '러시아 정부가 영국의 정치와 스코틀랜드 독립에 개입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있을까? 포로셴코와 에르도안은 각 국가의 국가원수이고 이 발언으로 인해 우크라이나 정부에 이어 튀르키예 정부마저 이 사건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피할 수 없다.[21] 우크라이나계 캐나다인이다.[22] J. Darrouzès, Notitiae episcopatuum Ecclesiae Constantinopolitanae, Paris, 1981, 388.[23] В. Г. Ченцова (V. G. Tschentsova) Синодальное решение 1686 г. о Киевской митрополии, Древняя Русь. Вопросы медиевистики 2 (68) (2017), 100-102.[24] Собранiе государственныхъ грамотъ и договоровъ, хранящихся въ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й коллегiи иностранныхъ дѣлъ, Часть четвертая, Moscow, 1826, 514-517.[25]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한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과거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의 사목지였던 우크라이나를 모스크바 총대주교가 떼 써서 양보하게 해놓고서는, 러시아의 침략과 모교회의 방관으로 고통받은 우크라이나 신자들의 요구를 수용하고자 세계총대주교의 사목적 권한으로 교회의 치리적 질서를 이전으로 돌려놓으려고 하니 이제 와서 성내는 거냐?"[26] 이에 관한 반박으로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은 카르타고 공의회 결정사항 제129(133)조의 내용: "만약 누군가... 어떤 지역을 보편적 일치로 전향시키고 3년 동안 이 지역을 자기 관할 하에 둔다면, 다른 누구도 그로부터 이 지역을 요구할 수 없고, 더욱이 3년간 자격이 주어진 주교가 존재했더라도 그가 침묵했다면 이 지역은 전자로부터 이탈되지 않을 것이다."와 칼케돈 공의회 제17조의 내용: "각 교구 내 사목구들은... 그들을 관리하는 주교들의 권위 하에 변함 없이 재류해야 하는데, 특히, 만약 30년 동안 그들이 논란 없이 사목구들을 자기 관할과 통솔 하에 두었다면 그러하다."를 들어 이를 반박하고 있다출처[27] 그리고 다시 모스크바의 반박을 반박한 게 윗 문단의 텔메소스의 대주교 욥의 발언이다.참 복잡하다.[28] 공교롭게도 주임 사제가 우크라이나 출신이었다.[29] 정교회에서 사용하는 세계 정교회 독립교회 주교들의 명단이다. 성찬예배 중에 보제가 큰소리로 낭송하는데 세계 각지 여러 정교회들과 영적으로 연대하고 기억한다는 뜻이다. 반대로 말하면 딥티코스에서 이름을 언급하지 않겠다는 것은 독립교회의 수장이나 심하면 독립교회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30] 즉, 러시아 정교회 산하인 UOC-MP[31]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아닌 그리스 아테네 대주교 산하 그리스 교회를 말한다.[32] 체코슬로바키아는 분단되었으므로 정확히 말하면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정교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