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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4-15 14:18:58

벨라베자 조약

파일:벨라베자조약.jpg
1991년 12월 8일에 열린 벨로베즈스카야 조약 서명식
1. 개요2. 전개3. 여담

1. 개요

1991년소련의 일부 구성국간에 체결한 조약. 벨라루스 벨라베자 숲의 명칭에서 유래하며 영어식으로는 벨로베자 조약(Belovezha Accords)이라 한다.

1991년 12월 8일 러시아 SFSR 대통령 보리스 옐친, 벨라루스 SSR 최고회의 의장 스타니슬라우 슈시케비치, 우크라이나 SSR 대통령 레오니드 크라우추크소련을 해체하고 독립국가연합(CIS)을 창설하는 것에 합의한 조약이다. 이 조약을 끝으로 소련은 해체가 확정됐다.

2. 전개

8월 쿠데타 실패와 1991년 12월 1일 우크라이나 독립 국민투표 이후 소련 대통령 고르바초프를 제외한 러시아 SFSR 대표 보리스 옐친과 나머지 우크라이나 SSR, 벨라루스 SSR 대표가 12월 8일벨라루스에 위치한 벨라베자 숲의 별장에 모여서 비밀리에 서명한 조약이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연방을 유지하고자 했던 보리스 옐친1991년 12월 8일 벨라베자에서 크라우츠크를 만났을 때 한 번 더 새로운 연방 조약안에 서명하도록 설득했다. 하지만 크라우추크는 우크라이나 독립 투표 결과가 높게 나왔다며 거부했다. 우크라이나가 연방조약안에 서명을 끝내 거부하자 옐친도 우크라이나 없이는 서명할 수 없다면서 고르바초프 주도의 주권국가연맹 창설을 거부하기로 결심했다.[1] 우크라이나를 잃으면 소련에 잔류하기로 했던 중앙아시아무슬림 인구 비중이 높아져 옐친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었고, 결국 소련을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해당 비밀 조약에 초대받지 못한[2]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이러한 행위가 소련 정부의 동의와 적법한 전국적 투표를 거치지 않았다고 비판하였으나[3], 벨라베자 조약 체결 이후 카자흐 SSR[4]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를 제외한 다른 공화국 지도자들도 이를 동의하자 고르바초프도 결국 승인하게 되었다.

이 조약과 함께 같은 해 12월 21일에 체결된 '알마아타 조약(Alma-Ata Protocol)\'[5]으로 인해 독립국가연합이 수립되면서 고르바초프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났고 12월 26일에 소련이 해체되었다.

3. 여담

소련 존속에 관한 전연방 국민투표 결과에서 나왔듯이 소련 해체 반대 여론이 대부분의 공화국에서 훨씬 더 높았던 과거가 있었지만 소련의 핵심 구성국중 하나인 우크라이나가 8월 쿠데타 이후 우크라이나 독립 국민투표를 통해 압도적인 찬성표로 독립을 찬성하자 해당 조약이 체결되는 사태가 벌어짐으로써 소련 시대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6]

2007년보리스 옐친이 사망하고, 2022년 5월 4일스타니슬라우 슈시케비치, 동년 5월 10일레오니드 크라우추크가 사망함으로써 벨로베즈스카야 조약의 3인방이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 세르히 플로히, 『유럽의 문 우크라이나 : 독립과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역사』, 허승철 역, (서울 : 한길사, 2022), p.550.[2] 8월 쿠데타 이후 아예 공개적으로 보리스 옐친에게 실권이 잠식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방송에서 "어서 명단을 읽으시오!"라고 옐친에게 호통을 듣는 장면이 생중계된 사건은 유명하다.[3] "고르비 「독립공동체」 “불법” 성명 전문", 한국일보[4] 소련 해체 당시 가장 마지막으로 탈퇴한 공화국이다.[5] 러시아어: Алма-Атинская декларация[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