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FIFA 월드컵
역대 월드컵 기록 | ||
20세기 | 2002~2010 | 2014~2022 |
1.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1.1. 32강 조별리그 폴란드전 - 2 : 0 승1.2. 32강 조별리그 미국전 - 1 : 1 무1.3. 32강 조별리그 포르투갈전 - 1 : 0 승1.4. 16강 이탈리아전 - 2 : 1 승1.5. 8강 스페인전 - 0 : 0 무(PSO 5 : 3 승)1.6. 4강 독일전 - 0 : 1 패1.7. 3위 결정전 터키전 - 2 : 3 패
2. 2006 FIFA 월드컵 독일3.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3.1. 32강 조별리그 그리스전 - 2 : 0 승3.2. 32강 조별리그 아르헨티나전 - 1 : 4 패3.3. 32강 조별리그 나이지리아전 - 2 : 2 무3.4. 16강 우루과이전 - 1 : 2 패
4. 둘러보기1.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1]
대한민국은 이 대회 개최국이었기에 지역예선을 면제받아 자연스럽게 5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차범근이 경질된 후 허정무가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했는데, 허정무호 역시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였다. 2000 AFC 아시안컵 레바논 조별리그에서 쿠웨이트에게 패배해 조별리그 탈락 직전까지 갔다가 3차전에서 인도네시아를 꺾고 간신히 8강에 올랐다. 8강에서는 지난 대회 때 2:6 대참패를 기록한 이란을 맞아 연장 혈투 끝에 2:1로 꺾고 4강에 올랐다. 그러나 이란과 씨름하느라 진을 다 뺀 탓인지, 4강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무기력한 경기력을 보인 끝에 1:2로 패배해 또 다시 우승에 실패했다. 3위 결정전에서 중국을 1:0으로 꺾고 간신히 3위를 했지만 라이벌이자 공동 개최국 일본은 우승을 차지했기에 상처만 남고 말았다.결국 허정무는 아시안컵이 끝난 직후 재계약 없이 감독직에서 물러났고, 개최국으로서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 이왕이면 거물급 외국인 감독을 섭외하자는 여론이 대두되었다. 그리하여 대한축구협회는 1순위로 지난 대회에서 프랑스에게 첫 월드컵 우승을 안겨준 에메 자케와 접촉했다. 그러나 자케는 어떤 팀 감독도 맡고 싶지 않고 쉬고 싶다며 거절했고, 2순위로 접촉한 인물이 바로 지난 대회에서 대한민국을 울렸던 거스 히딩크였다. 거스 히딩크는 대한축구협회 측의 제안에 썩 매력을 느끼지 않았으나, 프랑스 월드컵 이후 그도 커리어에 하락세가 와서 터닝 포인트가 필요했던 데다가 대한민국이 도저히 들어줄 수 없을 것 같은 요구사항까지 다 들어주겠다고 하니 결국 대한민국의 제안을 수락했다.
하지만 이렇게 출범한 히딩크호도 처음엔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월드컵의 예행 연습 같은 대회인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한국·일본 개막전에서 대한민국은 프랑스에게 0:5 참패를 당했다. 이후 멕시코를 2:1로 이기고 호주를 1:0으로 이겼지만, 프랑스가 호주에게 0:1로 패배하는 바람에 멕시코는 3전 전패로 탈락이 확정되었고 한국, 프랑스, 호주 3팀이 모두 2승 1패로 동률을 이루었으나 대한민국은 골득실이 -3에 불과해 결국 조 3위 대회 5위로 4강 진출에 실패했다. 반면 공동 개최국 일본은 준우승을 차지했고, 그 때문에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컨페드컵 이후로는 유럽 원정 평가전을 떠났는데, 이때 당시 황금세대가 즐비했던 체코를 상대로 또 0:5 참패를 당했다. 이때 거스 히딩크 전 감독에게 붙은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바로 '오대영'이었다. 계속되는 졸전으로 인해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을 경질하라는 여론이 솔솔 일어나기 시작했고, 여기에 외국인 지도자들에게 배타적이었던 대한민국의 원로 축구인들이 불을 지폈다. 조광래 전 감독은 칼럼을 통해 베스트 11을 빨리 정하여 전술 조직력을 다지지 않고 매일 체력 훈련만 하는 히딩크를 강하게 비판했고, 박종환 전 감독은 아예 거스 히딩크를 사기꾼이라고 거칠게 비난하며 자신이 대표팀 감독을 맡으면 8강까지 진출시킬 수 있다고 큰소리를 뻥뻥 쳤다. 이렇게 점점 여론이 악화되었지만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은 자신의 시계는 2002년 6월에 맞춰져 있다고 받아치며 기다려줄 것을 호소했다. 대한축구협회장 정몽준도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의 후원자를 자처하며 흔들리지 않게 다잡아 주었다.
거기다가 2001년 12월에 있었던 조 추첨은 대한민국을 더욱 절망에 빠뜨렸다. 대한민국은 폴란드, 포르투갈, 미국과 함께 D조에 속했는데, 폴란드는 그 빡센 유럽 지역예선을 가장 먼저 통과해 본선 진출에 성공한 팀이었고 포르투갈은 당시 루이스 피구, 파울레타, 세르지우 콘세이상 등 황금세대 슈퍼스타들이 즐비했던 우승 후보였으며 미국 역시 북중미의 강호로 마냥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속담에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고 했던가? 공동 개최국인 일본은 유럽에서도 중위권 정도 실력에 불과한 벨기에, 러시아, 그리고 약체인 튀니지와 함께 H조에 속해 대한민국보다 훨씬 더 수월해서 부럽게만 느껴졌다.
이렇게 흔들리던 히딩크호가 다시 희망을 찾게 된 건 2002년 3월이었다. 유럽 원정 평가전에서 튀니지, 핀란드, 터키와 맞붙어 1승 2무의 성적을 거두며 서서히 여론이 반전되기 시작했고, 4월에는 2002 CONCACAF 골드컵 4강에서 1:3 패배를 안겨주었던 코스타리카와 다시 맞붙어 2:0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5월에는 스코틀랜드를 4:1로 대파했고, 뒤이어 마이클 오언, 데이비드 베컴 등이 버티던 잉글랜드를 상대로 1:1 무승부를 거두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년 전 0:5 참패를 안겨준 프랑스를 상대로 대등한 경기력으로 맞서다 2:3 석패를 당했다. 1년 사이에 이렇게 팀이 강해지면서 대한민국 축구팬들은 다시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희망 그리고 용기를 얻었고, 이번에야말로 첫 승과 16강이 가능하리라 보았다.
- 대표팀 최종 엔트리
- GK : 1. 이운재, 12. 김병지, 23. 최은성
- DF : 2. 현영민, 4. 최진철, 7. 김태영, 15. 이민성, 20. 홍명보
- MF : 3. 최성용, 5. 김남일, 6. 유상철, 8. 최태욱, 10. 이영표, 13. 이을용, 17. 윤정환, 21. 박지성, 22. 송종국
- FW : 9. 설기현, 11. 최용수, 14. 이천수, 16. 차두리, 18. 황선홍, 19. 안정환
감독 : 거스 히딩크
1.1. 32강 조별리그 폴란드전 - 2 : 0 승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D조 1경기 2002년 6월 4일 화요일 20:30 (UTC+9) | ||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연제구) | ||
주심: 오스카르 루이스 | ||
관중: 48,760명 | ||
2 : 0 | ||
대한민국 | 폴란드 | |
26' 황선홍 (A. 이을용) 53' 유상철 | - | |
경기 하이라이트 | 매치 리포트 | ||
경기 최우수 선수: 유상철 |
1.2. 32강 조별리그 미국전 - 1 : 1 무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D조 3경기 2002년 6월 10일 월요일 15:30 (UTC+9) | ||
대구월드컵경기장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수성구) | ||
주심: 위르스 마이어 | ||
관중: 60,778명 | ||
1 : 1 | ||
대한민국 | 미국 | |
78' 안정환 (A. 이을용) | 24' 클린트 매시스 (A. 존 오브라이언) | |
경기 하이라이트 | 매치 리포트 | ||
경기 최우수 선수: 브래드 프리델 |
1.3. 32강 조별리그 포르투갈전 - 1 : 0 승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D조 5-1경기 2002년 6월 14일 금요일 20:30 (UTC+9) | ||
인천문학경기장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남구) | ||
주심: 앙헬 산체스 | ||
관중: 50,239명 | ||
0 : 1 | ||
포르투갈 | 대한민국 | |
- | 70' 박지성 (A. 이영표) | |
27' 주앙 핀투 66' 베투 | - | |
경기 다시 보기 | 경기 하이라이트 | 매치 리포트 | ||
경기 최우수 선수: 박지성 |
1.4. 16강 이탈리아전 - 2 : 1 승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16강 8경기 2002년 6월 18일 화요일 20:30 (UTC+9) | ||
대전월드컵경기장 (대한민국, 대전광역시 유성구) | ||
주심: 비론 모레노 | ||
관중: 38,588명 | ||
2 : 1 (서든데스 연장전) | ||
대한민국 | 이탈리아 | |
88' 설기현 117' (골든골) 안정환 (A. 이영표) | 18' 크리스티안 비에리 (A. 프란체스코 토티) | |
- | 103' 프란체스코 토티 | |
경기 다시 보기 | 경기 하이라이트 | 매치 리포트 | ||
경기 최우수 선수: 안정환 |
1.5. 8강 스페인전 - 0 : 0 무(PSO 5 : 3 승)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8강 3경기 2002년 6월 22일 토요일 15:30 (UTC+9) | ||
광주월드컵경기장 (대한민국, 광주광역시 서구) | ||
주심: 가말 간두르 | ||
관중: 42,114명 | ||
0 : 0 A.E.T. (PSO 3 : 5) | ||
스페인 | 대한민국 | |
- | - | |
경기 다시 보기 | 경기 하이라이트 | 매치 리포트 | ||
경기 최우수 선수: 이운재 |
승부차기 | ||||
스페인 GK: 이케르 카시야스 | 3 : 5 | 대한민국[2] GK: 이운재 | ||
후축 | 선축 | |||
페르난도 이에로 | 1 | [3] | 황선홍 | |
루벤 바라하 | 2 | 박지성 | ||
사비 에르난데스 | 3 | 설기현 | ||
호아킨 산체스 | (골키퍼 선방) | 4 | 안정환 | |
- | 5 | 홍명보 |
1.6. 4강 독일전 - 0 : 1 패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4강 1경기 2002년 6월 25일 화요일 20:30 (UTC+9) | ||
서울월드컵경기장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마포구) | ||
주심: 위르스 마이어 | ||
관중: 65,256명 | ||
1 : 0 | ||
독일 | 대한민국 | |
75' 미하엘 발락 | - | |
경기 다시 보기 | 경기 하이라이트 | 매치 리포트 | ||
경기 최우수 선수: 미하엘 발락 |
1.7. 3위 결정전 터키전 - 2 : 3 패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3위 결정전 2002년 6월 29일 토요일 20:30 (UTC+9) | ||
대구월드컵경기장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수성구) | ||
주심: 사드 마네 | ||
관중: 63,483명 | ||
2 : 3 | | |
대한민국 | 터키 | |
9' (FK) 이을용 90+3' 송종국 | 1'[4]11초로 월드컵 역대 최단 시간 득점이다.] 하칸 쉬퀴르 13', 32' 일한 만시즈 | |
경기 다시 보기(전반전) | 경기 다시 보기(후반전) | 경기 하이라이트 | 매치 리포트 | ||
경기 최우수 선수: 하칸 쉬퀴르 |
2. 2006 FIFA 월드컵 독일[5]
자세한 내용은 아드보카트호/2006 FIFA 월드컵 독일 문서 참고하십시오.4강 신화를 쓴 거스 히딩크가 계약 만료로 대표팀을 떠난 후, 한동안 공석이었던 대표팀 감독 자리에는 포르투갈 출신의 움베르투 코엘류가 부임했다. 그러나 새로이 출범한 코엘류호 역시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사실 출범 초기에 맞붙었던 상대들과 결과를 보면 아주 나쁜 성적은 아니었다. 우루과이를 상대로 0:2로 패했지만 슈팅 수는 대한민국이 10개나 더 많았고 볼 점유율도 더 높았다. 며칠 후 아르헨티나를 상대로도 매우 선전해 0:1로 석패했다. 그런데 문제는 4강 신화의 기억이 너무나도 진하게 남아서 대한민국 축구팬들의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졌다는 것으로, 이로 인해 코엘류는 급속도로 인기를 잃었다.[6]
그런데다 2004 AFC 아시안컵 중국 예선에서 베트남에게 0:1로 패배하고 뒤이어 오만에 1:3으로 패배하는, 이른바 오만 쇼크로 코엘류에 대한 여론은 마치 화산 폭발 직전과 같았다. 간신히 재신임을 얻은 코엘류호는 우여곡절 끝에 독일 월드컵 예선에 돌입했다. 이 대회에서 아시아는 4.5장의 출전권을 부여받았다. 우선 예선 참가국 중 FIFA 랭킹이 가장 낮은 14개 팀끼리 홈 & 어웨이 방식으로 경기를 치른 뒤 살아남은 7개 팀과 부전승으로 2차 예선에 올라온 25개 팀과 함께 32개 팀이 8개 조를 이루어 각 조 1위 팀만이 최종 예선에 오른다. 그리고 최종 예선에 오른 8개 팀은 2개 조로 나누어 각 조 1위, 2위 팀은 본선에 직행하고 3위 팀은 3위 팀끼리 플레이오프를 치른다. 그리고 그 경기 승자는 북중미 지역 최종예선 4위 팀과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거쳐 승리하면 출전권을 확보한다.
2차 예선에서 대한민국은 레바논, 베트남, 몰디브와 함께 7조에 속했다. 1차전 레바논과의 홈 경기는 2:0으로 가볍게 승리했다. 그러나 2차전 몰디브 원정 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하는 굴욕을 당하고 말았다. 이른바 몰디브 쇼크. 결국 이 사태로 인해 코엘류는 전격 경질되었고, 후임으로 네덜란드 출신의 조 본프레레 전 감독이 부임했다. 이렇게 출범한 본프레레호는 베트남과의 홈 경기에서 2:0 승리를 거두며 일단 한숨을 돌렸다. 2승 1무로 조 1위 자리를 지키긴 했지만 2위 레바논과의 승점 차가 겨우 1점이었다. 4차전 베트남 원정 경기에서도 박진섭이 자책골을 넣으며 불리한 경기를 했지만 2:1 역전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레바논 역시 몰디브를 5:2로 이겼기에 여전히 1점 차로 불안한 1위를 했다. 이제 5차전 레바논 원정 경기가 열렸다. 이 경기에서 반드시 이겨야 레바논과의 승점 차를 4점으로 벌려서 최종 예선 진출을 확정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이 중요한 경기에서 1:1 무승부에 그치며 결국 최종전까지 결과를 지켜봐야 했다. 6차전 몰디브와의 홈 경기에서도 상당히 고전했다가 후반 중반에야 김두현의 선제골과 이동국의 쐐기골로 2:0 승리를 거두며 4승 2무로 조 1위를 지켜 최종예선 진출에 성공했다.
최종예선에 오른 대한민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우즈베키스탄과 함께 A조에 속했다. 1차전 상대는 쿠웨이트였다. 2005년 설날에 치른 이 경기에서 대한민국은 이동국과 이영표의 골로 가볍게 2:0 승리를 거두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2차전 상대는 사우디아라비아였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1989년 이후로 사우디아라비아를 이기지 못하는 징크스를 갖고 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사우디아라비아의 담맘에서 열린 이 경기에서 대한민국은 졸전 끝에 그만 0:2로 패배하고 말았다. 거기다가 본프레레는 경기 후 선수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인터뷰를 하여 더욱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며칠 후 홈에서 열린 3차전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도 상당히 고전한 끝에 2:1로 간신히 승리를 거두었다. 반환점을 돌았을 때 A조의 중간 순위는 대한민국이 2승 1패로 조 1위, 사우디아라비아가 1승 2무로 조 2위, 쿠웨이트가 1승 1무 1패로 조 3위, 우즈베키스탄이 1무 2패로 조 4위에 있었다. 4차전은 우즈베키스탄 원정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대한민국은 우즈베키스탄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또 불리한 경기를 했으나, 경기 막판에 당시 떠오르는 신예였던 박주영의 천금 같은 동점골로 간신히 1:1 무승부를 거두게 되었다. 4차전 직후 A조 순위는 사우디아라비아가 8점으로 1위, 대한민국이 7점으로 2위, 쿠웨이트가 4점으로 3위, 우즈베키스탄이 2점으로 4위였다. 그러므로 5차전 쿠웨이트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면 본선 진출이 확정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대한민국은 쿠웨이트를 무려 4:0으로 대파하여 6회 연속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마지막 경기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홈 경기였다. 이미 본선 진출은 확정되었지만 대한민국으로선 이 경기가 5개월 전 담맘에서 겪은 치욕을 설욕할 기회였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대한민국은 또 사우디아라비아에 0:1로 패배하고 말았다. 2005년 동아시안컵에서 2무 1패라는 졸전으로 꼴찌를 한데 이어 또 사우디아라비아에게 패배하자 여론은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결국 본프레레는 본선 진출에 성공하고도 경질되고 말았다.
그 뒤로 대표팀 감독에 부임한 인물은 역시 네덜란드 출신이었던 딕 아드보카트였다. 딕 아드보카트는 4년 전 4강 신화를 함께 했던 히딩크 사단의 일원인 핌 베어벡 전 코치와 압신 고트비 전 비디오 분석관과 함께 대한민국 땅을 밟았다. 이렇게 출범한 아드보카트호는 본선 직전까지 열린 평가전에서 조금 기복이 있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래도 코엘류호, 본프레레호 때 모습보다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기에 본선에 대한 기대감을 다시 일으켰다. 그리고 조 추첨 결과 대한민국은 프랑스, 스위스, 토고와 함께 G조에 속해 나름 최상의 조 편성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4강 신화 재현의 꿈을 안고 태극전사들은 결전의 땅 독일로 떠났다.
- 대회 최종 엔트리
- GK : 1. 이운재, 20. 김용대, 21. 김영광
- DF : 2. 김영철, 3. 김동진, 4. 최진철, 6. 김진규, 12. 이영표, 18. 김상식, 22. 송종국, 23. 조원희
- MF : 5. 김남일, 7. 박지성, 8. 김두현, 13. 이을용, 15. 백지훈, 17. 이호
- FW : 9. 안정환, 10. 박주영, 11. 설기현, 14. 이천수, 16. 정경호, 19. 조재진
감독 : 딕 아드보카트
2.1. 32강 조별리그 토고전 - 2 : 1 승
[[2006 FIFA 월드컵 독일|]] 2006 FIFA 월드컵 독일 G조 1경기 2006년 6월 13일 화요일 15:00 (UTC+1) | ||
도이체 방크 파르크 (독일, 헤센 주 프랑크푸르트) | ||
주심: 그레이엄 폴 (잉글랜드) | ||
관중: 48,000명 | ||
2 : 1 | ||
대한민국 | ||
54' (FK) 이천수 72' 안정환 (A. 송종국) | 31' 모하메드 카데르 쿠바자 | |
- | 53' 장 폴 아발로 | |
경기 하이라이트 | 매치 리포트 | ||
Man of the Match: 안정환 |
2.2. 32강 조별리그 프랑스전 - 1 : 1 무
[[2006 FIFA 월드컵 독일|]] 2006 FIFA 월드컵 독일 G조 3경기 2006년 6월 18일 일요일 21:00 (UTC+1)[7] | ||
첸트랄 슈타디온[8] (독일, 작센 주 라이프치히) | ||
주심: 베니토 아르춘디아 (멕시코) | ||
관중: 43,000명 | ||
1 : 1 | ||
대한민국 | ||
9' 티에리 앙리 (A. 실뱅 윌토르) | 81' 박지성 (A. 조재진) | |
경기 하이라이트 | 매치 리포트 | ||
Man of the Match: 박지성 |
2.3. 32강 조별리그 스위스전 - 0 : 2 패
[[2006 FIFA 월드컵 독일|]] 2006 FIFA 월드컵 독일 G조 5-2경기 2006년 6월 23일 금요일 21:00 (UTC+1) | ||
하인츠 폰 하이덴 아레나 (독일, 니더작센 주 하노버) | ||
주심: 오라시오 엘리손도 (아르헨티나) | ||
관중: 43,000명 | ||
2 : 0 | ||
대한민국 | ||
23' 필리페 센데로스 (A. 하칸 야킨) 77' 알렉산더 프라이 | - | |
경기 하이라이트 | 매치 리포트 | ||
Man of the Match: 알렉산더 프라이 |
3.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9]
독일 월드컵을 17위로 마친 후 딕 아드보카트는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감독으로 떠나버렸고, 대한축구협회는 수석코치 핌 베어벡을 감독으로 승격시켰다. 이렇게 출범한 베어벡호는 '생각하는 축구'라는 슬로건을 표방했다. 거스 히딩크와 딕 아드보카트라는 두 명장을 훌륭하게 보좌했던 베어벡이었기에 한국 축구팬들이 거는 기대는 내심 컸으나, 정작 베어벡호의 모습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그런데다 베어벡은 어떤 면에선 왕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정말 불운했다. 2007 AFC 아시안컵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직전부터 주력 선수들인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EPL 3인방은 부상으로 이미 엔트리에서 대거 이탈했고, 다른 공격 옵션들인 박주영, 안정환 등은 리그에서 부진, 그나마 믿고 뽑았던 이동국은 미들즈브러에서 최악의 시즌을 보낸 후 잔부상에 시달려서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등 주전 공격진은 사실상 전멸당한 상태였다. 그럼 이제 K리그에서 새 얼굴들을 뽑아야 했는데 문제는 K리그 감독들이 줄줄이 선수차출을 거부했다는 것이다.[10] 그렇기에 베어벡은 선수 선발에 심각한 제약을 겪었다.이렇게 쓸 수 있는 자원이 극단적으로 한정된 상황에서 베어벡이 취한 길은 '극단적인 수비축구'였다. 물론 조별리그 2차전에서 바레인에게 1:2로 덜미를 잡히는 이른바 바레인 쇼크를 겪기도 했지만, 3차전에서 조 최약체 인도네시아를 1:0으로 간신히 꺾고 8강 진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8강 상대 이란을 맞아 120분 동안 걸어 잠그는 질식 수비로 0: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 끝에 4:2 승리를 거두어 4강에 올랐다. 그리고 4강에서도 당시 화끈한 공격 축구를 구사했던 이라크를 맞아 또 120분 동안 걸어 잠그는 질식 수비로 0:0으로 버티며 승부차기로 끌고 갔으나 이때는 3 : 4로 패배했다.[11] 그리고 3위 결정전에서 일본을 상대로도 또 120분 동안 걸어 잠그는 수비 축구로 일관하여 3연속 승부차기로 끌고 갔고 6:5로 승리하며 3위를 차지했다. 순위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성적이 1승 4무 1패(승점 7점), 3득점 3실점이어서 국민적 비난이 폭발했다. 결국 베어벡은 '포백 수비의 완성'이란 업적을 남겼으나 여론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자진 사퇴했다. 베어벡이 떠난 후 몇 달 동안 공석으로 유지되었던 대표팀 감독은 허정무가 차지하게 되었다.[12]
이번 대회에도 아시아는 4.5장의 출전권을 부여받았다. 당시 지역 예선은 이렇게 치러졌다. AFC 소속 46개 팀 중 43팀이 지역 예선에 출전했는데 지난 대회 본선에 진출했던 대한민국, 호주, 일본,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이 5개국은 무조건 3차 예선으로 직행한다. 그리고 나머지 38개 팀은 1차 예선을 치러야 하는데 19개 팀씩 A, B 두 그룹으로 나누어 A그룹 팀과 B그룹 팀을 무작위로 추첨해 홈 & 어웨이 방식으로 겨루어 합산 점수를 따져 점수가 높은 쪽이 이긴다. 그리고 1차 예선 생존자 19개 팀을 피파랭킹 순으로 정리했을 때 상위 11개 팀은 3차 예선에 직행하고 하위 8개 팀은 2차 예선을 치른다. 예선 방식은 1차 예선과 같다. 그리하여 3차 예선에 직행한 5팀 + 1차예선에서 생존한 11팀 + 2차 예선에서 생존한 4팀까지 총 20개 팀은 5개 조로 나누어 홈 & 어웨이 방식의 리그제로 경기하고 각 조 1위, 2위가 최종 예선에 진출한다. 최종 예선에 오른 10개 팀은 다시 2개 조로 나누어 홈 & 어웨이 방식 리그제로 경기하고 각 조 1위, 2위는 본선에 직행한다. 그리고 3위 팀은 3위 팀끼리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그 승자가 오세아니아 지역예선 1위와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치러 이겨야 본선에 진출할 수 있다.
한국은 3차 예선부터 시작했는데 북한, 요르단, 투르크메니스탄과 함께 3조에 속했다.[13] 1차전에서 대한민국은 투르크메니스탄을 4 : 0으로 대파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그러나 2차전 북한과의 경기에선 북한의 밀집 수비에 고전하며 0 : 0으로 비겼다. 3차전 요르단과의 홈 경기에서도 2 : 0으로 앞서가다가 수비 실책으로 2 : 2 무승부에 그쳤다. 그러나 4차전 요르단 원정 경기에서 고전했으나 1 : 0으로 이겼고 5차전 투르크메니스탄 원정 경기도 3 : 1로 승리하며 한 경기 남은 시점에서 최종예선 진출을 확정했다. 한편, 북한도 한국과 같은 승점을 기록해 역시 최종예선 진출을 확정했다. 6차전 북한과의 경기에선 또 0 : 0 무승부에 그쳐 3승 3무로 3차 예선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최종예선에서 한국은 죽음의 조에 걸리고 말았다. 한국은 북한,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과 함께 B조에 속했다. 심히 껄끄러운 상대들만 잔뜩 있었던 셈이다. 설상가상으로 1차전 북한과의 경기에서 또 1 : 1 무승부에 그쳐 2008년 동아시안컵부터 4연속 북한전 무승부의 늪에 빠져버렸다. 출발부터 삐끗한 것이다. 그러나 2차전 아랍에미리트와의 홈 경기에서 4 : 1 대승을 거두며 다시 본 궤도를 찾아갔다. 그리고 3차전 사우디아라비아 원정 경기에서 기어이 19년 간 이어온 사우디 무승 징크스를 깨고 2 : 0 승리를 거두며 선두로 치고 나갔다. 4차전은 아자디 징크스로 악명 높은 이란 원정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한국은 선제골을 먹으며 불안한 출발을 했지만, 후반 막판 주장 박지성의 극적인 동점골로 1 : 1 무승부를 거두었다. 반환점을 돌았을 때 중간 순위는 2승 2무(승점 8점)을 기록한 한국이 1위였고 예상 외로 북한이 2승 1무 1패(승점 7점)를 기록하며 2위를 차지했다. 3위는 1승 3무(승점 6점)를 기록한 이란이 4위는 1승 1무 2패(승점 4점)에 그친 사우디아라비아가 5위는 1무 3패(승점 1점)에 그친 아랍에미리트가 차지했다.
5차전 경기는 북한과의 홈 경기였다. 한국으로선 반드시 이 경기를 이겨야 조기에 본선 진출을 확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북한의 밀집수비를 깨뜨리는데 또 애를 먹으며 고전했고 오히려 북한 에이스 정대세에게 실점할 뻔했으나 이운재 골키퍼가 라인을 넘기 직전에 쳐내며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 그렇게 또 0 : 0의 스코어가 이어지던 중 후반 41분에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을 얻었다. 킥커 김치우가 왼발로 감아찬 것이 북한 주장 홍영조 손에 맞고 굴절되며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고전 끝에 북한을 1 : 0으로 이긴 한국은 북한보다 1경기 덜 치른 상태에서 1위 자리를 굳혔다. 그리고 6차전 아랍에미리트 원정 경기에선 양 팀이 서로 1명씩 퇴장당하는 거친 경기 끝에 2 : 0으로 승리해 4승 2무(승점 14점)의 전적을 기록하며 2경기 남은 시점에서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아시아 팀으로선 최초로 세계에서 6번째로 7회 연속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7차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홈 경기에선 크게 무리하지 않고 페이스를 조절하면서 0 : 0 무승부를 거두었다. 이 경기 결과로 남은 경기에 관계 없이 한국은 조 1위가 확정되었다.
이제 최종예선도 각자 1경기를 남겨둔 시점에서 A조는 이미 호주와 일본의 본선 진출이 확정되었고 B조에서도 한국의 본선 진출이 확정되었다. 이제 남은 직행 티켓은 B조 2위 자리 단 하나뿐이었다. 7차전까지 B조의 순위는 한국이 4승 3무(승점 15점)로 1위, 북한과 사우디아라비아가 3승 2무 2패(승점 11점)로 동률이었으나 골 득실에서 북한이 +2, 사우디아라비아가 0이어서 북한이 2위, 사우디아라비아가 3위였다. 그리고 이란이 2승 4무 1패(승점 10점)로 4위였고 아랍에미리트는 1무 7패(승점 1점)로 5위였다. 이미 본선 진출이 확정된 한국과 탈락이 확정된 아랍에미리트를 뺀 나머지 3팀 모두 본선 진출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래서인지 남북한이 같이 본선에 가는 시나리오가 점점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북한이 본선에 진출하는 경우의 수는 이랬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이기면 무조건 본선에 간다. 만약 비기게 되면 이란의 승점이 13점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있으므로 반드시 한국이 이란과 최소한 비기기라도 해야 한다. 만약 이란이 이길 경우 플레이오프 진출이 확정된다. 만약 지게 되면 한국이 이란을 반드시 이겨야만 플레이오프라도 갈 수 있다. 먼저 한국 대 이란의 경기가 열리고 뒤이어 사우디아라비아 대 북한의 경기가 열렸다. 이 경기에서도 한국은 후반 초반에 선제골을 내주며 불리한 경기를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주장 박지성이 한 건했다. 침대축구로 시간을 끌던 이란을 향해 후반 36분에 또 다시 천금 같은 동점골을 뽑아냈다. 그리고 경기는 1 : 1 무승부로 끝이 났다. 이로서 한국은 최종 예선을 4승 4무(승점 16점)로 마치며 20년 만에 무패로 끝냈다. 이 경기 무승부로 이란의 승점이 11점에 묶이면서 북한이 크게 유리해졌다. 최종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에서 골키퍼 리명국의 신들린 선방쇼와 질식 수비를 앞세워 0 : 0 무승부를 기록했다. 북한과 사우디아라비아는 3승 3무 2패(승점 12점)로 동률이었으나 골 득실에서 북한이 2골이 더 앞서며 B조 2위를 차지해 1966 잉글랜드 월드컵 이후 44년 만에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분단 국가가 월드컵 본선에 동반 진출한 건 서독과 동독이 함께 진출했던 1974 서독 월드컵 이후 36년 만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서독이 개최국이었고 나란히 지역 예선을 치러 통과한 건 이번이 최초였다.
그리고 조 추첨 결과 대한민국은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그리스와 함께 B조에 속해 비교적 무난한 조 편성을 받았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희대의 졸장 디에고 마라도나의 엉성한 지휘로 인해 지역예선에서 무려 6번이나 패배하며 겨우겨우 본선에 올라왔고, 그리스와 나이지리아는 세대교체 실패로 하락세를 타고 있었으며 한국이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팀이었다. 그래서 아르헨티나는 좀 어렵지만 그리스와 나이지리아 정도는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한편 같이 본선에 올라온 북한은 조 추첨에서 최악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브라질, 포르투갈, 코트디부아르와 함께 죽음의 조인 G조에 속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도 16강 진출을 장담할 수 없는 어려운 난이도인데 44년 만에 월드컵 무대에 복귀한 북한에는 너무도 가혹하기 그지없는 조 편성이었다.
- 대회 최종 엔트리
- GK : 1. 이운재, 18. 정성룡, 21. 김영광
- DF : 2. 오범석, 3. 김형일, 4. 조용형, 12. 이영표, 14. 이정수, 15. 김동진, 22. 차두리, 23. 강민수
- MF : 5. 김남일, 6. 김보경, 7. 박지성, 8. 김정우, 13. 김재성, 16. 기성용, 17. 이청용
- FW : 9. 안정환, 10. 박주영, 11. 이승렬, 19. 염기훈, 20. 이동국
감독 : 허정무
3.1. 32강 조별리그 그리스전 - 2 : 0 승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B조 1경기 2010년 6월 12일 토요일 13:30 (UTC+2) | ||
넬슨 만델라 베이 스타디움 (남아프리카 공화국, 포트엘리자베스) | ||
주심: 마이클 헤스터 (뉴질랜드) | ||
관중: 31,513명 | ||
2 : 0 | ||
6' 이정수 (A. 기성용) 51' 박지성 | - | |
경기 하이라이트 | 매치 리포트 | ||
Man of the Match: 박지성 |
3.2. 32강 조별리그 아르헨티나전 - 1 : 4 패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B조 3경기 2010년 6월 17일 목요일 13:30 (UTC+2) | ||
사커 시티 스타디움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 | ||
주심: 프랑크 더 블레이케러 (벨기에) | ||
관중: 82,174명 | ||
4 : 1 | ||
16' (OG) 박주영 32', 75', 79' 곤살로 이과인 | 45' 이청용 | |
경기 하이라이트 | 매치 리포트 | ||
Man of the Match: 곤살로 이과인 |
3.3. 32강 조별리그 나이지리아전 - 2 : 2 무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B조 5-2경기 2010년 6월 22일 화요일 20:30 (UTC+2) | ||
모지스 마비다 스타디움 (남아프리카 공화국, 더반) | ||
주심: 올레가리우 벤케렌사 (포르투갈) | ||
관중: 61,874명 | ||
2 : 2 | ||
11' 칼루 우체 (A. 치디 오디아) 68' (PK) 야쿠부 아이예그베니 | 37' 이정수 (A. 기성용) 48' (FK) 박주영 | |
경기 하이라이트 | 매치 리포트 | ||
Man of the Match: 박지성 |
3.4. 16강 우루과이전 - 1 : 2 패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16강 1경기 2010년 6월 26일 토요일 16:00 (UTC+2) | ||
넬슨 만델라 베이 스타디움 (남아프리카 공화국, 포트엘리자베스) | ||
주심: 볼프강 슈타르크 (독일) | ||
관중: 30,597명 | ||
2 : 1 | ||
7', 79' 루이스 수아레스 | 67' 이청용 | |
경기 하이라이트 | 매치 리포트 | ||
Man of the Match: 루이스 수아레스 |
4. 둘러보기
4.1. 나라별 국가대표팀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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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vs 대한민국 0:2 패 | (2018) vs 일본 1:0 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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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cc,#330000> (2004) vs 그리스 0:1 패 | <colbgcolor=#cfc,#003300> (2016) vs 프랑스 1:0 (연장) 승 | ||||
기타 경기 | |||||
(2002) vs 대한민국 0:1 패 | (2006) vs 네덜란드 1:0 승 | (2022) vs 대한민국 1:2 패 | (2022) vs 모로코 0:1 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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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 vs 체코슬로바키아 2:1 승 | (1938) vs 헝가리 4:2 승 | (1970) vs 브라질 1:4 패 | (1982) vs 서독 3:1 승 | (1994) vs 브라질 0:0 무 (PSO 2:3 패) | |
(2006) vs 프랑스 1:1 무 (PSO 5:3 승) | |||||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결승전 | |||||
(2012) vs 스페인 0:4 패 | (2021) vs 잉글랜드 1:1 무 (PSO 3:2 승) | ||||
기타 경기 | |||||
(1934) vs 잉글랜드 2:3 패 | (1962) vs 칠레 0:2 패 | (1966) vs 북한 0:1 패 | (1982) vs 브라질 3:2 승 | (2002) vs 대한민국 1:2 (연장) 패 | |
(2010) vs 슬로바키아 2:3 패 | (2017) vs 스웨덴 0:1 (합계) | (2022) vs 북마케도니아 0:1 패 | (2022) vs 아르헨티나 0:3 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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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vs 네덜란드 1:0 (연장) 승 | |||||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결승전 | |||||
(2008) vs 독일 1:0 승 | (2012) vs 이탈리아 4:0 승 | (2024) vs 잉글랜드 2:1 승 | |||
기타 경기 | |||||
(1994) vs 대한민국 2:2 무 | (2002) vs 대한민국 0:0 무 (PSO 3:5 패) | (2014) vs 네덜란드 1:5 패 | (2022) vs 일본 1:2 패 |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경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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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 vs 헝가리 2:3 승 | (2002) vs 브라질 0:2 패 | (2014) vs 아르헨티나 1:0 (연장) 승 | |||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결승전 | |||||
(2008) vs 스페인 0:1 패 | |||||
기타 경기 | |||||
(1982) vs 오스트리아 1:0 승 | (1994) vs 대한민국 3:2 승 | (2002) vs 대한민국 1:0 승 | (2014) vs 브라질 7:1 승 | (2018) vs 멕시코 0:1 패 | |
(2018) vs 대한민국 0:2 패 | (2022) vs 일본 1:2 패 | ||||
※ 동독 대표팀 기록 제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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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vs 브라질 3:0 승 | (2006) vs 이탈리아 1:1 무 (PSO 3:5 패) | (2018) vs 크로아티아 4:2 승 | (2022) vs 아르헨티나 3:3 무 (PSO 2:4 패) | ||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결승전 | |||||
(2016) vs 포르투갈 0:1 (연장) 패 | |||||
기타 경기 | |||||
(2002) vs 세네갈 0:1 패 | (2006) vs 대한민국 1:1 무 | (2018) vs 덴마크 0:0 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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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vs 독일 0:1 (연장) 패 | (2022) vs 프랑스 3:3 무 (PSO 4:2 승) | ||||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 | |||||
(2016) vs 칠레 0:0 무 (PSO 2:4 패) | (2021) vs 브라질 1:0 승 | (2024) vs 콜롬비아 1:0 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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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vs 대한민국 4:1 승 | (2018) vs 크로아티아 0:3 패 | (2022) vs 이탈리아 3:0 승 | (2022) vs 사우디아라비아 1:2 패 | (2022) vs 네덜란드 2:2 무 (PSO 4:3 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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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vs 브라질 2:1 승 | (2010) vs 대한민국 2:1 승 | (2010) vs 가나 1:1 무 (PSO 4:2 승) | (2022) vs 대한민국 0:0 무 |
4.2. 감독별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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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폴란드전 · 미국전 · 포르투갈전 · 이탈리아전 · 스페인전 · 독일전 · 터키전) | |||
친선 경기 (브라질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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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FIFA 월드컵 독일 (토고전 · 프랑스전 · 스위스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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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위(3승 2무 2패, 승부차기전 포함 시 4승)[2] 대한민국의 키커 5명은 우연일수도 있지만 키커 5명 전원이 모두 월드컵 본선에서 골을 넣은 경험이 있는 선수들로 선정되었으며, 이 중 홍명보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은 이 대회에서 이미 득점을 기록했던 선수들이다.[3] 이케르 카시야스의 옆구리를 스치고 골라인 통과.[4] 정확하게는[5] 17위(승점 4점 1승 1무 1패).[6] 이 남미 2연전 당시 얼마나 분위기가 가라앉았던지 기초군사훈련 중이던 안정환까지 국방부에 협조를 구해 대표팀에 급하게 차출시켰을 정도였다.[7] 대한민국 시간으로 2006년 6월 19일 월요일 새벽 4시.[8] 現 레드불 아레나.[9] 15위(승점 4점 1승 1무 2패).[10] 자세히 확인된 사항은 아니지만 베어벡을 불구대천의 원수 취급했을 정도로 싫어했던 조광래가 이 같은 선수 차출 거부를 주도했다는 설이 있다.[11] 이것이 이운재의 A대표팀 커리어에서 유일하게 패배한 승부차기였다.[12] 당시 베어벡은 국대와 U-23 감독을 겸임하고 있었는데, 사퇴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두 자리가 비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위원회는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다고 늑장을 부렸다가 결국 외국인 후보들에게 모두 까였고 부랴부랴 당시 전남 드래곤즈 감독으로 있던 허정무와 부산 아이파크 감독으로 있던 박성화를 각각 국대, 올대 감독으로 빼앗아갔다. 특히 박성화는 부산 감독으로 선임된 지 불과 17일 만에 올대 감독으로 갔다.[13] 본래 북한 원정 경기는 평양에서 열려야 했으나, 당시는 남북관계가 극악이었던 이명박 정부 시절이라 북한 측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입국을 거부했고 결국 대한민국 VS 북한의 경기 중 북한의 홈 경기는 중국 상하이에서 열렸다. 다만 대한민국의 홈 경기는 그대로 서울특별시에서 열렸고, 인공기도 게양되었고 북한 애국가도 정상적으로 연주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