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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3 16:25:35

세르지우 콘세이상

세르지우 콘세이상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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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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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축구 감독
파일:1000006953.webp
<colbgcolor=#eeeeee> 이름 <colbgcolor=#fff,#1F2023> 세르지우 콘세이상
Sérgio Conceição
<colcolor=#000> 본명 세르지우 파울루 마르세네이루 다콘세이상
Sérgio Paulo Marceneiro da Conceição
출생 1974년 11월 15일 ([age(1974-11-15)]세)
코임브라현 코임브라시
국적
[[포르투갈|]][[틀:국기|]][[틀:국기|]]
신체 177cm
직업 축구 선수 (윙어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eeeeee><colcolor=#000> 유스 아카데미카 코임브라 (1986~1991)
FC 포르투 (1991~1993)
선수 FC 페나피엘 (1993~1994)
레사 FC (1994~1995)
FC 펠게이라스 (1995~1996)[1]
FC 포르투 (1996~1998)
SS 라치오 (1998~2000)

파르마 AC (2000~2001)[2]
인테르나치오날레 (2001~2003)
SS 라치오 (2003~2004)
FC 포르투 (2004)
스탕다르 리에주 (2004~2007)
카디시야 SC (2007)
PAOK FC (2008~2010)
감독 스탕다르 리에주 (2010~2011 / 수석 코치)
SC 올랴넨스 (2012~2013)
아카데미카 코임브라 (2013~2014)
SC 브라가 (2014~2015)
비토리아 SC (2015~2016)
FC 낭트 (2016~2017)
FC 포르투 (2017~2024)
국가대표 56경기 12골 (포르투갈 / 1996~2003)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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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 가족 맏아들 세르지우 주니오르
둘째 아들 호드리구 콘세이상
셋째 아들 모이세스 콘세이상
넷째 아들 프란시스쿠 콘세이상
다섯째 아들 주제 콘세이상
}}}}}}}}} ||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2.2. 국가대표
3. 지도자 경력4. 기록
4.1. 선수
4.1.1. 대회 기록4.1.2. 개인 수상
4.2. 감독
4.2.1. 대회 기록4.2.2. 개인 수상
5. 이야깃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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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포르투갈축구 선수 출신 감독. 2017년부터 2024년까지 FC 포르투 감독을 맡았다.

선수시절 윙어로 활약했으며 힘있고 빠른 드리블 능력과 정확한 슈팅 능력을 겸비했다. 루이스 피구, 후이 코스타, 파울레타, 주앙 핀투, 누누 고메스 등과 함께 90년대~2000년대 초 포르투갈의 골든 제너레이션의 한 축이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한 클럽에 3년 이상 머문 적이 없었던 저니맨이었다. 1993년 포르투갈 세군다 리가FC 페나피엘에서 데뷔했으며, 이후 레사 FC, FC 펠게이라스를 거쳐 1996년 자국 명문인 FC 포르투에 입단했다. 포르투에서 2시즌동안 주전으로 활약하면서 팀의 리그 2연패에 공헌했으며, 1998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 이탈리아SS 라치오로 이적했다. 라치오 입단 직후 주전 자리를 차지하며 1998-99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우승 및 1999-00 시즌 세리에 A 우승에 공헌했으며, 2000년 에르난 크레스포가 SS라치오로 이적하는데 이적료와 콘세이상과 마티어스 알메이다를 합쳐서 이 두 선수를 떨이로 얹어서 파르마 AC로 굴욕적인 이적을 했다. 에르난 크레스포는 이 당시 역대 3위의 이적료를 자랑할 정도로 매우 비싼 선수였다.[3] 파르마에서 2000-01 시즌 코파 이탈리아 준우승에 기여한 뒤 시즌 종료 후 세바스티앙 프레이와의 맞트레이드로 인터 밀란으로 다시 팀을 옮겼으며, 출전 시간이 줄어들자 2003년 자신의 전 소속팀인 라치오로 복귀했으나 역시 주전 자리를 차지하는 데 실패해 겨울 이적시장에서 자신의 또 다른 전 소속팀인 포르투로 돌아가 2003-04 시즌 리그 우승에 일조했다.

이후 2004년 1년 계약으로 벨기에스탕다르 리에주에 입단했으며, 입단 첫 시즌인 2004-05 시즌 '벨기에 골든 슈'를 수상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 뒤 2005년부터 팀의 주장을 맡았으나, 2006년 상대 선수 및 심판에 대한 모욕적인 행위를 해 5개월 동안 경기 출전 금지라는 중징계를 받기도 했다. 이후 2006-07 시즌 팀의 컵대회 준우승에 기여했으며, 시즌 종료 이후 쿠웨이트카디시야 SC로 이적했다. 이후 2008년 그리스PAOK에 입단해 유럽 무대에 복귀했으며, 첫 시즌은 자신의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한 뒤 2008-09 시즌부터 팀의 주장을 맡으며 주전으로 활동했으나, 2009-10 시즌 무릎 부상을 입어 경기에 거의 출전하지 못하자 은퇴를 선언했다.

2.2. 국가대표

파일:external/www.rankopedia.com/65310.jpg

1996년, 우크라이나와의 1998 FIFA 월드컵 지역 예선 경기로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에 데뷔했으며, UEFA 유로 2000에 참가해 독일과의 16강 조별 라운드에서 해트트릭을 터뜨리며 팀의 3:0 승리, 잉글랜드전 3:2 승리를 이끄는 등 팀의 4강에 공헌했다.[4][5]

이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32개국 본선에도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박지성의 2002년 월드컵 포르투갈전 결승골 당시 박지성 앞에서 볼 컨트롤에 속아 슈팅 각도를 내준 선수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다만, 콘세이상의 실수라 할만한 장면까진 아니었다. 단지 박지성이 너무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을 뿐. 전문 수비수였다면 속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콘세이상은 수비수가 아닌 윙어인지라 이 장면으로 계속 비난받을 일은 아니었다.

파일:콘세이상.gif

게다가 경기 막판에 문전 혼전중 흘러나온 공을 그림같은 발리슛으로 반대 방향으로 찬게 골대를 맞고 나왔다. 그 경기에서 포르투갈의 가장 좋은 찬스였고, 당시 엄청난 슈퍼 세이빙을 기록하던 이운재조차 놓쳤는데 만약 이게 들어가서 동점이 되었더라면 미국에 골득실로 앞서서 조 2위로 16강 진출이 가능했었다는 점에서 포르투갈 입장에서는 너무나 아쉬운 기회였다.[6] 공이 골대를 맞고 나온 직후 표정에서 머리를 감싸쥐고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이었던 것이 압권.

사실 결정적인 두 장면을 제외하고도 이 경기에서 콘세이상의 경기력은 굉장히 처참했는데, 마찬가지로 부진했던 루이스 피구는 그래도 공을 받아서 전진하면서 공격의 물꼬를 틀어보려는 모습이라도 보여주었던 반면,[7] 콘세이상은 마크에 철저하게 지워져서 카메라에 잡히지도 못하는 수준이었다. 더군다나 이 당시 콘세이상과 피구 양쪽 윙은 포르투갈의 에이스인 동시에 전술의 핵심이었다. 계속해서 스위칭을 해가며 사이드 어택을 노렸지만 송종국과 이영표 두 윙백이 워낙 훌륭한 수비력을 보여주었기에 경기 내내 이렇다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 경기를 기점으로 콘세이상의 커리어는 내리막을 향하게 되었고, 2년 후 자국에서 열린 UEFA 유로 2004 16개국 본선에서는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다. 지못미. 통산 기록은 56경기 출전에 12골 득점.

3. 지도자 경력

2010년 선수 은퇴 이후 자신의 전 소속팀인 스탕다르 리에주에서 코치로 있었으며, 2012-13 시즌 SC 올랴넨스와 2013-14 시즌 아카데미카 드 코임브라 감독을 거쳤다.

2014-15 시즌은 SC 브라가의 지휘봉을 잡았다. 브라가에서는 전 시즌 9위였던 팀을 4위로 올려 놓았으나 시즌후 경질되었다.

이후 2015년 9월부터 비토리아 SC의 감독을 맡았다. 리그 10위로 시즌을 마친 후 상호 계약을 해지하였다.

무직 상태로 머물다가 2016년 12월 리그앙 19위로 처진 FC 낭트와 2년 계약을 맺었고, 팀을 7위로 올려놓으며 시즌을 마쳤다.

3.1. FC 포르투

파일:image324234.jpg

2017년 6월 친정팀인 포르투의 감독으로 이적하게 되었다. 2017-18시즌 라이벌구단 SL 벤피카의 5년 연속 우승을 저지하고 5년만에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19-20 시즌에는 리그 우승과 함께 타사 드 포르투갈 , 수페르타사에서 우승해 도메스틱 트레블을 달성했다. 2021년 3월 10일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유벤투스 FC를 꺾고 8강에 진출했다.

2022-23 시즌 역시 챔피언스리그 16강에 진출했다.

한국 시간 6월 18일, 포르투갈 지역지 헤코르드에서 파리 생제르맹 FC의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하는 것이 매우 가까워졌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감독이 된 것은 루이스 엔리케였고 콘세이상은 그대로 포르투 감독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2024년 5월, FC 포르투를 떠났으며, 이후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의 새 감독으로 부임이 유력했으나, 모종의 사유로 협상이 결렬되었다고 한다.

4. 기록

4.1. 선수

4.1.1. 대회 기록

4.1.2. 개인 수상

4.2. 감독

4.2.1. 대회 기록

4.2.2. 개인 수상

5. 이야깃거리

EA스포츠의 FIFA 99 게임에서는 선수들의 이름이 "R. Carlos", "J. Ahn" 과 같이 이니셜+성 형태로 되어 있는데, 세르지우 콘세이상만 유일하게 "SérgioConceição"이라고 전체 이름이 빈칸 없이 표기되었다. 다른 선수들은 뒤쪽 이름만을 불러주는 해설자도 저 이름을 다 불러 준다. 이는 당시 유명 축구 선수 중 브라질 국가대표 미드필더로 레알 마드리드 등을 거친 플라비우 콘세이상과 혼동을 피하기 위함으로, 당시 축구 중계시에도 이 두 선수의 이름은 풀네임으로 부르는 것이 관행이었다. 이름에 빈칸을 넣지 않은 것은 당시 해당 게임에 존재하던 15자 이름 제한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당시 숙소호텔 미용사 아가씨에게 반해 날마다 머리를 하러 갔다고 한다. 끈질기게 구애했지만 안타깝게도 콘세이상이 유명선수인지 몰랐던 미용사는 외국인 노동자라고 생각하고 깠다고 한다. 참고로 콘세이상은 그 당시 기혼자였고 아들도 있었다. 또한 한국과의 경기 이틀 전날 밤, 홍석천과 함께 7시간 동안 신명나게 술을 빨며 놀은 포르투갈 선수 4명 중 하나라고 한다.[9] 자세한 내용은 홍석천 문서에.

그의 자식들 역시 축구 선수의 길을 걷고 있는데 앞선 아들들은 기대에 못 미친 활약을 보여준 가운데 넷째 아들인 프란시스쿠 콘세이상이 많은 기대를 받고 있으며 2021년 1월 9일 자신이 감독를 맡고 있는 포르투에서 데뷔골을 넣는 모습을 본 후 진한 포옹과 볼뽀뽀 그리고 싸다구로 화답해 줬다. 그리고 프란시스쿠가 UEFA 유로 2024의 포르투갈 대표팀 명단에 오르고 조별리그 1경기에서 결승골을 넣는 대활약을 펼치며 자식 농사에 성공했다.


[1] 재정난으로 2005년 해체[2] 이게 왜 엄청 굴욕적인 이적이냐 하면 콘세이상과 마티아스 알메이다에다가 당시 기준으로 이적료 역대 3위에 해당되는 현금까지 얹어서 에르난 크레스포와 바꾼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콘세이상이 이적한 게 아니라 크레스포가 이적하는데 이적료를 지불하고 떨이로 콘세이상을 준 것이기 때문에 굴욕적인 것이다.[3] 1위 지네딘 지단, 2위 루이스 피구였다.[4] 1990 이탈리아 월드컵UEFA 유로 1996 우승을 경험한 노장 스타플레이어들로 이루어진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일방적으로 두들겨 16강 조별리그에서 탈락(15위)시킨 충격적인 경기였다. 독일은 이후 한동안 녹슨 전차군단이라 불리며 슬럼프에 빠졌지만, 세대교체를 통해 02 월드컵 준우승을 차지하며 부활했다.[5] 그리고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포르투갈은 독일과 만나기만 하면 지금까지 모두 패만 하고 있다.[6] 포르투갈 조 3위 월드컵 21위[7] 물론 물꼬를 틀어보려는 노력과 시도는 했지만, 하는 것마다 송종국한테 다 막혔다. 피구가 보여준 건 후반 막판 아슬아슬하게 빗나간 프리킥 하나였다.[8] 4강[9] 다른 3명은 페르난두 쿠투, 후이 코스타, 비토르 바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