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555555,#aaaaaa | 성인 2001~2002 | 전체 (2001|2002) |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폴란드전 · 미국전 · 포르투갈전 · 이탈리아전 · 스페인전 · 독일전 · 터키전) | |||
친선 경기 (브라질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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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히딩크호의 출범2. 칼스버그컵3. 두바이컵
3.1. 모로코전 (2001/2/08, UAE 알니자르 스타디움): 1:1 무3.2. UAE전 (2001/2/11, UAE 알니자르 스타디움): 4:1 승3.3. 덴마크전 (2001/2/15, UAE 알니자르 스타디움): 0:2 패
4. LG컵 4개국 친선대회4.1. 4강전 이란전 (2001/4/24, 카이로 인터내셔널 스타디움): 1:0 승리4.2. 결승전 이집트전 (2001/4/26, 카이로 인터내셔널 스타디움): 2:1 승리
5. 5월 평가전 카메룬전 (2001/5/25, 수원 월드컵 경기장): 0:0 무승부6.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한국·일본6.1. 8강 조별리그 A조 프랑스전 (2001/5/30, 대구 월드컵 경기장): 0:5 패배6.2. 8강 조별리그 A조 멕시코전 (2001/6/1, 울산문수축구경기장): 2:1 승리6.3. 8강 조별리그 A조 호주전 (2001/6/3, 수원 월드컵 경기장): 1:0 승리
7. 8월 평가전7.1. 체코전 (2001/8/15, 드로노비체 스타디움): 0:5 패배
8. 9월 평가전8.1. 나이지리아전 (2001/9/13, 대전 월드컵 경기장): 2:2 무승부8.2. 나이지리아전 (2001/9/16,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 2:1 승리
9. 11월 평가전9.1. 세네갈전 (2001/11/8, 전주 월드컵 경기장): 0:1 패배9.2. 크로아티아전 (2001/11/10, 서울월드컵경기장): 2:0 승리9.3. 크로아티아전 (2001/11/13, 광주 월드컵 경기장): 1:1 무승부
10. 12월 평가전10.1. 미국전 (2001/12/9, 제주 월드컵 경기장): 1:0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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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히딩크호의 출범
히딩크 감독이 부임하기 전인 2000년 12월 28일에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가 대표팀 명단을 발표하였다.# 총원 25명으로 구성되었다.GK(3명): 김병지(울산), 이운재(상무), 김용대(연세대) DF(7명): 홍명보(가시와), 이민성(상무), 김태영(전남), 김영선(수원), 심재원(부산), 이임생(부천), 박재홍(명지대) MF(9명): 박진섭(상무), 이영표(안양), 박지성(교토), 김상식(성남), 서동원(대전), 이을용(부천), 유상철(가시와), 윤정환(오사카), 고종수(수원) FW(6명): 김도훈(전북), 서정원(수원), 최용수(안양), 박성배(전북), 정광민(안양), 김은중(대전) |
이 첫 훈련에서 그가 계속 강조하는 강한 체력이 처음으로 언급된다. 이 과정에서 허정무호 1기 시절에 한국 축구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것이라 기대했던 젊은 선수들이 무더기로 하차하는 충격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수비수 박동혁은 훈련 중 지쳐서 휴식을 요청했다가 바로 퇴소(...) 조치 당했으며, 좌영표 우진섭이라 불리며 천재라 칭송 받던 박진섭[1]도 순식간에 대표팀에서 사실상 퇴출됐다. 이영표 역시 도로 후보로 강등되었을 정도. 단, 이 와중에 가장 먼저 대표팀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한 젊은 선수는 올림픽 대표팀에도 승선한 바가 있지만 사람들에게 주목은 받지 못한 박지성이었다.
울산 훈련에서 거스 히딩크와 베어백 코치는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는 대표팀 훈련을 보고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이후 유럽 축구의 선진적인 훈련 프로그램과 비디오 분석관, 충공깽의 체력 트레이너 등의 스탭을 합류시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전반적으로 개선해 나갔다. 이 때문에 한국 축구의 역사를 히딩크 전후로 나누어 평가할 정도. 국내 축구인들이 이 과정에서 많은 것을 보고 놀랐던지, 이후 선진 축구를 배우러 유럽 구단으로 연수를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는 한국 축구 역사에서 꽤나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 히딩크 부임 이전 국내 전문가들의 평은 "한국 선수들은 체력과 배짱, 뚝심 등 피지컬과 멘탈은 강하기 때문에 조직력 기반의 팀 축구는 잘 해도 뒤쳐진 환경과 경험 부족으로 개인기와 기술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히딩크와 그의 코칭스태프들의 당시 평가는 정 반대였다. 한국 선수들은 기술은 수준급이지만 체력도, 멘탈도 약하고 뚝심도 없었으며 기본기도 부족했다는 것. 기술이 부족하다는 국내 전문가들의 의견이 '우물 안 개구리 속' 착각에 불과했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최초의 계기라고 할 수 있겠다.
울산에서 훈련이 끝나고 대표팀은 홍콩으로 출국하여 칼스버그컵 4개국 축구대회에 참가하여 노르웨이, 파라과이랑 각각 경기를 치렀다.
2. 칼스버그컵
2.1. 준결승 대한민국 2 vs 3 노르웨이
2001 홍콩 칼스버그컵 준결승전 2001. 01. 24. (수) 15:15 (UTC+8) | ||
홍콩 스타디움 (중국, 홍콩특별행정구) | ||
주심: 안데르스 프리스크(스웨덴) | ||
| 3 : 2 | |
노르웨이 | ||
35' 프로데 욘센 42' 토르슈타인 헬스타드 69' 토미 외렌 | 24' 고종수 (P) 66' 김도훈 | |
경기 영상 |
전반 24분 고종수가 자신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골키퍼가 막을 수 없는 오른쪽 하단 구석으로 찔러넣으면서 1:0으로 앞서나갔다. 전반 35분 문전 혼전 상황에서 프로데가 동점골을 넣으면서 경기는 1:1 동점이 되었다. 전반 42분 상대 역습 상황에서 토르슈타인을 마크맨이 놓치면서 역전골을 내주고 1:2로 전반전을 마쳤다. 교체 투입된 김도훈이 후반 22분 절묘한 발리슛으로 2:2 동점을 만들어냈다. 역전의 기쁨도 잠시 후반 23분에 상대 크로스를 마크맨이 놓치면서 토미가 헤딩골을 넣으면서 2:3으로 다시 노르웨이가 경기를 리드하게 되었다. 경기는 2:3으로 졌지만, 당시 FIFA 랭킹 14위의 노르웨이를 상대로 대등한 경기를 보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모습은 분명 있었다. 경기 이후, 히딩크는 선수들이 4-4-2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논평하였다. 실제로 히딩크는 취임 이후 포백 전술을 이식하려고 노력하였으나, 이는 주전 수비수 홍명보의 장점을 극대화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월드컵 본선에서는 스리백 전술로 선회하게 된다.
2.2. 3·4위전 대한민국 1(6) vs (5)1 파라과이
2006 홍콩 칼스버그컵 3·4위전 2001. 01. 27. (토) 14:45 (UTC+8) | ||
홍콩 스타디움 (중국, 홍콩특별행정구) | ||
주심: 오카다 마사요시(일본) | ||
1 : 1 P.S.O. 5 : 6 | | |
파라과이 | ||
68' 구스타보 모리니고 | 56' 고종수 | |
경기 영상 |
승부차기 | ||||
파라과이 | 5 : 6 | 대한민국 | ||
선축 | 후축 | |||
디에고 가빌란 | 1 | 최용수 | ||
루벤 말도나도 | 2 | 김도훈 | ||
에드가 로블레스 | 3 | 이영표 | ||
파올로 다실바 | 4 | 서동원 | ||
다니엘 카세레스 | 5 | 이임생 | ||
우고 오르티스 | 6 | 이민성 |
이후 히딩크호는 거센 비난에 휩싸였다. 심지어 2001년 초반, K리그 경기를 둘러보던 자리에서 한숨을 쉬었다고 기자들은 한국 프로축구를 비하했다며 1면[3]에 실어가면서 정신없이 씹어댔다. 근데 평소에 그들만의 리그 운운하면서 K리그 씹어 댄 건 기자들이었다.(...)
3. 두바이컵
- 출전 명단(굵은 글씨는 두바이컵에서 새롭게 합류한 선수)
GK(3명) : 김병지(울산), 이운재(상무), 김용대(연세대) DF(7명) : 김태영(전남), 심재원(부산), 이민성(상무), 홍명보(가시와), 김영선(수원), 김현수(성남), 이임생(부천) MF(9명) : 고종수(수원), 박지성(교토), 유상철(가시와), 이영표(안양), 김상식(성남), 박진섭(상무), 서동원(대전), 송종국(부산), 신상우(대전) FW(7명) : 김도훈(전북), 박성배(전북), 김은중(대전), 서정원(수원), 설기현(앤트워프), 안정환(페루자), 정광민(안양) |
참고로, 이 대회에서 가진 경기들 중 모로코와 덴마크는 리그 선발팀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두 팀과의 경기는 정식 A매치 경기로 인정받지 못했다.
3.1. 모로코[4]전 (2001/2/08, UAE 알니자르 스타디움): 1:1 무
경기일 | 2001년 2월 8일 18:30 (현지시각) | |
경기장 | 알니자르 스타디움 | |
국가 | 대한민국 | 모로코 |
점수 | 1 | 1 |
득점 | 유상철 (87') | 아사스 (10') |
경기영상
전반 10분 모로코에게 선취골을 내줬다가 후반 종료 직전에 유상철이 동점골을 넣었다.
이 경기 전반에는 슈팅수가 0-7, 스코어는 0-1로 모로코에게 압도당했다. 최전방에 김도훈, 섀도우 스트라이커로 고종수를 기용했지만, 상대 문전에 제대로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팀이 전반적으로 수비와 미드필더, 공격진의 구분을 찾지 못하고 선수들이 우왕좌왕했다. 이러는 사이 심재원의 실책으로 왼쪽을 뚫렸고, 페널티 지역으로 날라온 볼을 수비수들이 처리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던 사이 라치드가 오른발로 차 넣었다.
후반에 한국은 고종수를 왼쪽으로 배치하면서 다소 활기를 찾았으나 그럼에도 공격은 시원찮았다. 그러다 후반 43분 유상철이 페널티 아크 지역에서 혼전 중에 흘러나오는 볼을 강슛으로 때렸고, 이것은 상대 수비에 굴절되어 모로코 골대에 박혔다.
여담으로, 이 날 모로코를 이끌었던 코엘류는 2년 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임명됐다.
3.2. UAE전 (2001/2/11, UAE 알니자르 스타디움): 4:1 승
경기일 | 2001년 2월 11일 18:30 (현지시각) | |
경기장 | 알니자르 스타디움 | |
국가 | 대한민국 | UAE |
점수 | 4 | 1 |
득점 | 송종국 (45') 유상철 (65') 설기현 (72') 고종수 (89') | 압둘라헴 주마 (24') |
경기영상
이 경기는 모로코와의 1차 전에 비해 한결 나았다. 홍명보와 이민성이 버틴 수비진이 안정되었고, 수비 라인에서 미드필드로 이어지는 패스가 잘 이어졌다. 여기에 홍명보와 이민성은 틈틈이 최전방까지 전진해 나가 공격수들에게 볼을 공급했고, 미드필드 좌우 날개를 맡은 고종수와 송종국은 최후방 수비까지 커버 플레이를 잘 해냈다. 이날은 히딩크가 정착시키려 한 4-4-2 포메이션이 잘 돌아갔다.
득점은 UAE의 압둘라헴 주마가 전반 24분 선취골을 넣었으나, 전반 종료 직전 송종국이 동점골을 기록하고, 후반에 유상철과 설기현, 고종수가 차례로 골을 터트려 홈팀을 대파했다. 김도훈은 이 경기에 어시스트 헤트트릭을 기록했다.
3.3. 덴마크전[5] (2001/2/15, UAE 알니자르 스타디움): 0:2 패
경기일 | 2001년 2월 14일 18:30 (현지시각) | |
경기장 | 알니자르 스타디움 | |
국가 | 대한민국 | 덴마크 |
점수 | 0 | 2 |
득점 | - | 얀 미켈슨 (24') 브라이언 스틴 (78') |
경기영상
히딩크는 이 경기 안정환과 설기현 유럽파 공격수들을 선발로 내세웠다. 전형은 4-4-2 대신 김도훈을 원톱으로 한 좌우로 안정환과 설기현이 포진한 4-3-3 포메이션.
이 경기 볼 점유율은 한국이 우위였지만, 측면 돌파만 고집하는 단조로운 플레이를 했다. 이런 한국을 상대로 덴마크는 끈끈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압박을 이용한 파워 플레이로 전반과 후반에 각각 한골씩 기록하였다.
이 경기 한국 대표팀의 포백 수비는 개인기 부족과 덴마크의 강한 압박에 잦은 패스 미스를 일으켰고, 상대 공격수도 번번히 놓쳤다. 여기에 미드필드에서 공간 확보가 되지 않으니 공격력도 자연히 약해졌다.
이 당시 대표팀이 겪은 유럽 징크스를 깨지 못한 경기였지만, 이 경기의 덴마크의 플레이는 나중에 한국이 벤치마킹하게 된다.
4. LG컵 4개국 친선대회
- 출전 명단(굵은 글씨는 LG컵에서 새롭게 합류한 선수)
GK(3명): 이운재(상무), 김용대(연세대), 최은성(대전) DF(6명): 김태영(전남), 서덕규(울산), 송종국(부산), 심재원(부산), 이민성(상무), 최성용(린츠) MF(7명): 김상식(성남), 박지성(교토), 서동원(수원), 서정원(수원), 윤정환(오사카), 이영표(안양), 하석주(포항) FW(5명): 김도훈(전북), 박성배(전북), 설기현(앤트워프), 안효연(교토), 이동국(브레멘) |
4.1. 4강전 이란전 (2001/4/24, 카이로 인터내셔널 스타디움): 1:0 승리
경기일 | 2001년 4월 24일 18:00 (현지시각) | |
경기장 | 카이로 스타디움 | |
국가 | 대한민국 | 이란 |
점수 | 1 | 0 |
득점 | 김도훈(PK) (6') | - |
4.2. 결승전 이집트전 (2001/4/26, 카이로 인터내셔널 스타디움): 2:1 승리
경기일 | 2001년 4월 26일 20:30 (현지시각) | |
경기장 | 카이로 스타디움 | |
국가 | 대한민국 | 이집트 |
점수 | 2 | 1 |
득점 | 하석주 (12') 안효연 (61') | 마자르 압델(21') |
5. 5월 평가전 카메룬전 (2001/5/25, 수원 월드컵 경기장): 0:0 무승부
경기장 | 대한민국 수원시 - 수원 월드컵 경기장 | |
경기일 | 2001년 5월 25일 19:00 (GMT+9) | |
국가 | 대한민국 | 카메룬 |
점수 | 0 | 0 |
득점 | - | - |
참고로 해당 경기는 수원 월드컵 경기장 개장 이후 첫번째 경기였다.
6.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한국·일본
1998 월드컵에서 1-3 패배를 안겨준 멕시코를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코뼈가 내려앉았던 유상철의 결승 헤더로 2-1로 이기며 설욕했으며, 호주까지 잡았지만, 아쉽게 대회 5위로 결국 4강 진출에 실패했다. 프랑스가 호주를 상대로 대충 경기를 하다가 패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도 초장부터 프랑스한데 5대0으로 대차게 깨진 것도 일종의 결정타였다.결국 프랑스, 호주, 한국이 2승 1패로 동률이 되어 골 득실차가 가장 밀린 한국이 조 3위 대회 5위로 마쳐야 했다.[8]
이때 일본은 준우승을 해서 히딩크호는 비난을 들었다. 하지만 일본은 브라질[9]을 제외한 상대적으로 쉬운 상대들인 캐나다나 카메룬을 상대했고, 한국은 지역예선 돌풍의 주역이던 호주, 99컨페드컵 우승 디펜딩 챔피언 멕시코, 세계 최강 프랑스의 3연타라 비교는 어불성설이다. 여기서 한국은 멕시코를 이기며 멕시코 상대 역대 전적에서 다시 우위를 차지했고, 멕시코의 엔리케 메사 감독은 안 그래도 지역예선 성적 부진으로 본인 자리가 아슬아슬한 판에 결국 대회 종료 이후 자진 사퇴했다...... 멕시코가 이 대회에서 매우 부진한 경기력을 보인 점도 우리에겐 불운이었다고 볼 수 있다.
6.1. 8강 조별리그 A조 프랑스전 (2001/5/30, 대구 월드컵 경기장): 0:5 패배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한국·일본 조별리그 A조 1경기 2001. 05. 30.(수) 17:00(UTC+9) | ||
대구월드컵경기장 (대한민국, 대구) | ||
주심: 가말 알간두르(이집트) | ||
| 5 : 0 | |
프랑스 | ||
9' 스티브 말렛 19' 파트리크 비에라 34' 니콜라스 아넬카 80' 유리 조르카에프 90+2' 실뱅 윌토르 | - | |
경기 영상 |
라인업 | 번호 | 이름 | 비고 | 라인업 | 번호 | 이름 | 비고 |
선발 | 1 | 이운재 | GK | 선발 | 1 | 울리히 라메 | GK |
3 | 최성용 | 2 | 윌리 사뇰 | ||||
4 | 송종국 | 3 | 비센테 리자라쥐 | ||||
6 | 유상철 | 4 | 파트리크 비에이라 | ▼66' | |||
7 | 김태영 | ▼76' | 7 | 로베르 피레스 | |||
11 | 설기현 | 8 | 마르셀 드사이 | ||||
15 | 이민성 | 9 | 니콜라스 아넬카 | ||||
19 | 이영표 | ▼45' | 10 | 에릭 카리에르 | |||
20 | 홍명보 | 13 | 미카엘 실베스트르 | ||||
21 | 박지성 | 17 | 스티브 말렛 | ▼67' | |||
22 | 고종수 | ▼71' | 21 | 크리스토프 뒤가리 | ▼73' | ||
교체 | 12 | 김용대 | GK | 교체 | 12 | 그레고리 쿠페 | GK |
23 | 최은성 | GK | 23 | 미카엘 랑드로 | GK | ||
2 | 강철 | 5 | 니콜라스 질렛 | ||||
5 | 박용호 | 6 | 유리 조르카에프 | ▲73' | |||
8 | 윤정환 | 11 | 실뱅 윌토르 | ▲67' | |||
9 | 김도훈 | 14 | 프레드릭 니 | ||||
10 | 최용수 | 15 | 제레미 브레셰 | ||||
13 | 서덕규 | 16 | 올리비에 다쿠르 | ▲83' | |||
14 | 서동원 | 18 | 프랑크 르뵈프 | ||||
16 | 안효연 | ▲71' | 19 | 크리스티앙 카랑뵈 | |||
17 | 하석주 | ▲76' | 22 | 로랑 로베르 | |||
18 | 황선홍 | ▲45' | 22 | 요앙 미쿠 |
대구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개막전에서 당시 세계 최강의 프랑스에 0:5로 대패했다.
레블뢰는 당시 지단과 앙리, 트레제게가 빠졌지만, 당시 최고의 전성기로 접어들고 있었던 니콜라 아넬카, 실뱅 윌토르, 크리스토프 뒤가리 등 UEFA 유로 2000 우승의 주역들이 건재했고, 미드필더 라인은 지단 다음으로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꼽히는 유리 조르카에프, 아스날 FC에서 전성기를 구가하던 파트리크 비에이라와 로베르 피레스, 수비라인은 비센테 리자라쥐와 마르셀 드사이, 윌리 사뇰 등 최고의 진영으로 짜여있었다. 어찌보면 0:5 참패가 당연지사일 수도 있었다.
여담으로, 박지성은 이 경기는 과거로 돌아가면 절대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기로 이 경기를 꼽았다. 이 당시에는 뭘 해도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당시 프랑스가 축구를 굉장히 잘 했다고 한다.
6.2. 8강 조별리그 A조 멕시코전 (2001/6/1, 울산문수축구경기장): 2:1 승리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한국·일본 조별리그 A조 2경기 2001. 06. 01.(금) 19:30(UTC+9) | ||
울산월드컵경기장 (대한민국, 울산) | ||
주심: 휴 댈러스(스코틀랜드) | ||
2 : 1 | | |
멕시코 | ||
56' 황선홍 90' 유상철 | 80' 빅토르 루이즈 | |
경기 영상 |
무려 99컨페드 우승팀 디펜딩챔피언 멕시코를 2:1로 격파하며, 98월드컵 참패 복수를 했다.
6.3. 8강 조별리그 A조 호주전 (2001/6/3, 수원 월드컵 경기장): 1:0 승리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한국·일본 조별리그 A조 3경기 2001. 06. 03.(일) 19:30(UTC+9) | ||
수원월드컵경기장 (대한민국, 수원) | ||
주심: 오스카스 루이스 (콜롬비아) | ||
1 : 0 | | |
호주 | ||
23' 황선홍 | - | |
경기 영상 |
7. 8월 평가전
예비 엔트리▲GK= 이운재(상무), 서동명(전북), 김용대(연세대)
▲DF= 이민성(상무), 심재원(부산), 서덕규(울산), 김정수(대전), 강철(전남), 윤희준(부산)
▲MF= 송종국(부산), 이기형(수원), 김도근(전남), 이을용(부천), 이영표(안양), 김재영(부산), 이천수(고려대), 유상철(가시와 레이솔), 전우근(부산), 한종성(상무), 최성용(라스크 린츠)
▲FW= 이동국(포항), 김도훈(전북), 안정환(페루자), 설기현(안더레흐트), 최태욱(안양), 황선홍(가시와 레이솔)
하석주, 홍명보, 고종수가 빠진 대신 이동국, 안정환이 사면(?)되어 히딩크호에 컴백했고, 그 외에 김정수, 윤희준, 전우근 등 K리그에서 두각을 드러낸 신예들이 처음으로 합류한다.
7.1. 체코전 (2001/8/15, 드로노비체 스타디움): 0:5 패배
경기일 | 2001년 8월 15일 16:40 (현지시각) | |
경기장 | 브르노 드로노비체 스타디움 | |
국가 | 대한민국 | 체코 |
점수 | 0 | 5 |
득점 | - | 파벨 네드베드 (29') 미로슬라프 바라네크 (65', 85', 90+2') 브라티슬라프 로크벤치 (74') |
거기다 광복절, 유럽 원정을 가서 체코의 브르노에서 열렸던 체코전에 역시 0:5로 대패하면서 결국 오대영 감독이라는 오명이 붙었다. 당시 언론들은 비슷한 시기 오세아니아 네이션스컵 챔피언인 호주를 3-0으로 이긴 일본(2000 AFC 아시안컵 레바논 챔피언으로, 이 경기는 오세아니아 - 아시아 챔피언 슈퍼컵 대회였다.)과 견주면서 더 욕했다. 당시 세계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칭송받던 네드베드를 중심으로, 포보르스키, 로시츠키, 얀 콜러 등 내로라 하는 선수들이 총출동한 FIFA 랭킹 2위의 체코 1진을 상대로 원정 가서 당한 것[10]과 호주를 안방에서 이긴 것을 비교하는 것은 어떻게 봐도 무리수[11].
상당수 축구인들과 관련 인사들의 입장도 부정적이었다. 이주일[12]은 "외국인 감독 하나 데려오면 뭐가 달라지나? 그 돈으로 유망주 육성을 해야지!"라고 대놓고 비난했고, 국내 축구 인사들 대부분도 '쓸모없는 평가전은 그만 하고 단체 합숙하며 조직력을 키워야 한다'는 식으로 비난을 했다.
이 와중에도 당시 히딩크를 옹호하던 사람들은 훗날 붉은악마의 중추로 활약한 극소수 축빠들과, 당시 기술위원장이였던 이용수, 정몽준 축협 회장과 축협 인사들, 그리고 심지어 직전 월드컵에서 히딩크에게 오대영으로 거하게 털렸던 차범근 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정도였다.
이런 온갖 비난과 헐뜯음 속에서도 그는 묵묵히 하던 일을 하며 열심히 선수들을 물색하고 전략을 세우고 있었다. 체코에 대패했을 땐 도리어 떳떳하게 "강호에게 크게 진다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다. 당신들은 아직도 대한민국 축구가 굉장히 수준 높다고 멋대로 착각하고 있다."며 팩트폭력을 가했지만, 불편한 진실을 말해서인지 언론에게 틈만 나면 비난받곤 했다.
송종국의 회고에 따르면 히딩크 감독은 당장의 결과에 신경쓰지 말고 큰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준비하면 된다는 식으로 선수들을 격려했다고 한다. 그래서 대패한 경기 이후에도 선수단 분위기는 항상 좋았다고 한다.
8. 9월 평가전
8.1. 나이지리아전 (2001/9/13, 대전 월드컵 경기장): 2:2 무승부
경기일 | 2001년 9월 13일 19:00 | |
경기장 | 대전 월드컵 경기장 | |
국가 | 대한민국 | 나이지리아 |
점수 | 2 | 2 |
득점 | 이천수 (65') 최용수 (77') | 추쿠 은두쿠에 (8', 38') |
8.2. 나이지리아전 (2001/9/16,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 2:1 승리
경기일 | 2001년 9월 16일 19:00 | |
경기장 | 부산 월드컵 경기장 | |
국가 | 대한민국 | 나이지리아 |
점수 | 2 | 1 |
득점 | 김도훈(PK) (58') 이동국 (90+1') | 추쿠 은두쿠에 (61') |
최은성의 A매치 데뷔전을 이동국이 버저비터 결승골로 빛내주었다.[13]
9. 11월 평가전
9.1. 세네갈전 (2001/11/8, 전주 월드컵 경기장): 0:1 패배
경기일 | 2001년 11월 8일 19:00 | |
경기장 | 전주 월드컵 경기장 | |
국가 | 대한민국 | 세네갈 |
점수 | 0 | 1 |
득점 | - | 파파 부바 디오프 (42') |
여담으로, 이 날은 거스 히딩크 감독의 55번째 생일이었는데, 패하면서 안타깝게도 생일의 기쁨은 크게 누리지는 못했다.
9.2. 크로아티아전 (2001/11/10, 서울월드컵경기장): 2:0 승리
경기일 | 2001년 11월 10일 19:00 | |
경기장 | 서울월드컵경기장 | |
국가 | 대한민국 | 크로아티아 |
점수 | 2 | 0 |
득점 | 최태욱 (63') 김남일 (66') | - |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최초의 경기이다.
9.3. 크로아티아전 (2001/11/13, 광주 월드컵 경기장): 1:1 무승부
경기일 | 2001년 11월 13일 19:00 | |
경기장 | 광주 월드컵 경기장 | |
국가 | 대한민국 | 크로아티아 |
점수 | 1 | 1 |
득점 | 최용수 (42') | 보리스 지브코비치 (62') |
10. 12월 평가전
10.1. 미국전 (2001/12/9, 제주 월드컵 경기장): 1:0 승리
평가전 | ||
경기장 | 대한민국 서귀포시 -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 | |
경기일 | 2001년 12월 9일 17:00 (GMT+9) | |
국가 | 대한민국 | 미국 |
점수 | 1 | 0 |
득점 | 유상철 (20') | - |
경기 영상
라인업 | 번호 | 이름 | 비고 | 라인업 | 번호 | 이름 | 비고 |
선발 | 23 | 김병지 | GK | 선발 | 1 | 자크 손튼 | GK |
4 | 송종국 | 3 | 파블로 마스트로에니 | ▼68' | |||
5 | 최진철 | ▼76' | 8 | 디에고 구티에레즈 | ▼45' | ||
6 | 유상철 | 12 | 제프 아구스 | ||||
8 | 김남일 | ▼54' | 13 | 코비 존스 | ▼72' | ||
10 | 이을용 | 14 | 크리스 아마스 | ||||
11 | 최태욱 | 15 | 조쉬 울프 | ▼45' | |||
14 | 이천수 | 16 | 카를로스 라모사 | ||||
16 | 김상식 | 19 | 매니 라고스 | ||||
18 | 황선홍 | ▼68' | 20 | 브라이언 맥브라이드 | ▼56' | ||
21 | 박지성 | ▼80' | 21 | 랜던 도노반 | |||
교체 | 1 | 이운재 | GK | 교체 | - | 팀 하워드 | GK |
24 | 김용대 | GK | 9 | 브라이언 웨스트 | ▲72' | ||
2 | 현영민 | 11 | 엔트 라조프 | ▲56' | |||
3 | 최성용 | ▲76' | 17 | 카를로스 보카네그라 | ▲45' | ||
7 | 김태영 | 22 | 리차드 멀루니 | ▲68' | |||
9 | 김도훈 | ▲68' | 23 | 제프 커닝햄 | ▲45' | ||
12 | 이영표 | ▲54' | - | 댄 칼리프 | |||
13 | 안효연 | - | 제스 마시 | ||||
15 | 이민성 | ||||||
17 | 김도근 | ▲80' | |||||
19 | 차두리 | ||||||
20 | 이동국 | ||||||
22 | 조성환 | ||||||
25 | 조병국 | ||||||
26 | 김승현 |
12월 첫날에 있었던 조 추첨에서 본선 상대가 폴란드, 미국, 포르투갈로 결정되면서 일정이 변경되었는데, 원래 2월에 예정된 칼스버그컵 참가를 취소하고 3월 유럽 전지훈련 때 계획 중이던 포르투갈전도 당연히 취소하였다. 하지만 12월 9일 제주월드컵경기장 개장 기념으로 미국과 평가전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이건 그대로 치렀다. 아마도 시간이 일주일 남짓밖에 안 남았었기 때문에 팀 구하기도 여의치 않았고, 또한 어차피 한달 후 CONCACAF 골드컵 본선에서 또 맞붙어야 하기 때문에 걍 그대로 진행한 듯.
이 경기는 당해 1월, 칼스버그컵 때 윙병지 모드를 보여주었었던 김병지가 오랜만에 국가대표팀으로 돌아와 선발 풀타임을 뛰었다.
선발 라인업은 김병지 - 최진철, 유상철, 김상식 - 이을용, 박지성, 김남일, 송종국 - 최태욱, 황선홍, 이천수였다. 눈 여겨 볼 것은 유상철이 중앙 수비수로 자리를 옮기고 계속 중앙 수비수로 뛰었던 송종국이 우측 윙백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경기는 전반 20분, 수비수로 나왔던 유상철이 이천수의 크로스를 받아 헤딩으로 선취골을 넣었고, 이것을 잘 지켜 1:0으로 승리하였다. 다만 여태 그래왔듯이 후반 중반을 넘어가면서 선수들의 체력이 눈에 보일 정도로 저하되었고, 미국에 집중적으로 공격당했다. 파워 프로그램을 통한 체력 향상은 2002년 골드컵 때 처음 실시했기 때문에 이 경기가 그 동안 대한민국의 체력 상태를 보여준 마지막 경기였다.
[1] 이 시절 박진섭은 올대뿐 아니라 국가대표에서도 주전을 차지하고 있었다.[2] 윙병지 사건으로 김병지가 히딩크에 눈 밖에 나서 이운재가 대표팀 주전 골키퍼가 된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하지만 이후에 히딩크의 말로는 그냥 이운재가 더 잘 해서 뽑힌 거라고 한다. 히딩크는 모국 네덜란드를 이끌고 우리나라를 상대한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 김병지의 인상적인 활약을 코 앞에서 본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한 경기만으로 김병지에 대한 평가를 끝냈다는 것은 어폐가 있다. 하지만 이후 2001년 대부분의 평가전에 이운재가 출전한 것은 맞다. 심지어 김병지는 같은 해 늦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엔트리에도 탈락하는 등 2001년엔 더 이상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는 듯 했다. 그러나 2002년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골드컵부터 프랑스 평가전까지 총 14경기에서 히딩크는 이운재와 김병지를 각각 7경기씩 기용하였다. 그리고 이운재는 7경기 660분 출전 7실점했고, 김병지는 7경기 630분 출전 7실점했다. 출전 시간은 이운재가 30분 더 많지만, 이는 2002 CONCACAF 골드컵 8강전을 연장전까지 치러서 30분 더 뛴 것이므로 사실상 출전 시간도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경기, 총 출전 시간, 실점까지 3가지 다 놓고 봤을 때 같은 스탯으로 월드컵 직전에 두 선수의 기량이 너무 막상막하여서 고민하다가, 결국 컨디션이 비교적 좋은 이운재가 주전으로 출전하게 되었고, 이를 김병지에게 알리면서도 상당히 미안해했다고 한다.[3] 스포츠조선.[4] 모로코 국내 리그에서 선발된 선수들로 구성되었다. 다만 감독은 A대표 감독 움베르토 코엘류가 그대로 나왔다.[5] 덴마크 국가대표가 아닌 덴마크 리그 선발팀이었다.[6] 9월에야 비로소 사면(...)되었다.[7] 하지만 서덕규는 박지성과 달리 마지막까지 대표팀에서 생존하지 못했다.[8] 참고로 당시 호주는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통가한테 22:0, 아메리칸 사모아에게 31:0으로 이기는 등 기록적인 점수차를 세웠다. 특히 아메리카 사모아와의 경기는 현재까지도 A매치 최고 점수 기록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결국 플레이오프에서 남미 전통의 강팀인 우루과이를 만나 탈락한다.[9] 물론 1년 후 2002월드컵 7전 전승 우승하지만, 한국과 터키의 4강 이변에 가려져서 그렇지 당시 브라질은 지역예선에서 부진해서 브라질의 선전을 예상한 사람들 역시 많지 않았다.[10] 체코는 비록 기량이 예전만 못한 편이긴 하지만, 지금도 FIFA 랭킹이 20위권 안에 드는 여전히 쉽지 않은 팀이다.[11] 악질적이던 게 스포츠조선인데 1면으로 일본과 견주며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스포츠조선은 2001년 초반부터 히딩크가 한국리그 현장을 보고 비하했다는 소리로 1면 보도하던 바 있다.[12] 코미디언이 무슨 자격으로 축구를 평가하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주일은 학창 시절에 축구선수로 뛰었고, 많은 축구인들과 막역한 관계를 지닐 정도로 축구에 매우 관심이 많은 열성 축빠다. 사망 직전에 열린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도 휠체어를 타고 직관했을 정도. 참고로 그와 가장 가까웠던 축구인은 춘천고등학교 동창생이자 1980년대에 감독으로 명성을 떨친 박종환.[13] 최은성의 처음이자 마지막 A매치 경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