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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6 14:29:38

F-117

파일:미합중국 공군 마크.svg 현대 미합중국 공군 항공기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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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5a99> 미합중국 공군
United States Air Force, USAF
전투기 <colbgcolor=#005a99> 4세대/4.5세대 F-16(A/BR, C/D, CM/DM), F-15(C/D/E/EX)
5세대 F-22A, F-35A, F-23, F-32
6세대 {PCA}
공격기 AT-6B, A-10C, AC-130(H/U/W)R/AC-130J, F-117
폭격기 B-52(H/{J}), B-1B, B-2A, {B-21}
수송기 전술 C-12(C/D/F), C-12J, C-27J, C-41AR, C-144, C-145, C-146A, LC-130H, C-130(H/J/J-30)NG
전략 C-17A, C-5M
지원기 조기경보기 E-3(B/C/G), E-8CR, {E-7}, E-10
정찰기 E-9A, U-2S, U-28, CN-235
통신중계기 E-11A
계측통신정보기 RC-135S
전자정찰기 RC-135U, EC-130H/J/SJ, EA-37B
신호정보수집기 RC-135V/W, RC-26B
기상관측기 WC-130J
대기분석기 WC-135(C/W/R)
관측지원기 OB-135B
공중지휘기 E-4
공중급유기 KC-10A, KC-135R/T, {KC-46A}
회전익기 V-22, TH-1H, UH-1N, M/HH-60G/U, {HH-60W}, {MH-139}, V-44
무인기 SUAV RQ-11B, RQ-20B
UAV RQ-4A/B, RQ-170, RQ-180
UCAV MQ-1BR, MQ-9A/B, MQ-20, {CCA}
훈련기 T-1A, T-41C, T-51A, T-52A, T-53A, TG-16, T-6 II, T-38(A/C), TU-2S, {T-7A}
다목적기 UV-18B, U-27, U-28
특수목적기 MC-130(J/H/P), MC-12W
주요인사 탑승기 VC-25, C-20(A/B/C), C-20(G/H), C-21A, C-32(A/B), C-37(A/B), C-38A, C-40(B/C)
※ 윗첨자R: 퇴역 항공기
취소선: 개발 취소 및 도입 취소 기종
※ {중괄호}: 도입 예정 항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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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항기
쌍발기 일렉트라L ‧ 슈퍼 일렉트라L ‧ 로드스타L ‧ 마틴 2-0-2M ‧ 마틴 4-0-4M마틴 M-130M
3발기 L-1011L
4발기 L-188L제트스타L컨스텔레이션L
개발 취소 L-2000L
군용기
전투기 P-38LP-80LF-104LF-16LF-22F-35
공격기 F-117L
폭격기 A-28 / A-29 / AT-18 허드슨L벤추라LB-26M
수송기 C-130C-141LC-5L
정찰기 U-2LSR-71L
대잠초계기 P-2LP-3S-3L
무인기 데저트 호크 ‧ RQ-3 다크스타 ‧ RQ-170 ‧ X-44A ‧ 코모란트 ‧ 시 고스트 ‧ 스토커
헬리콥터
군용 AH-56L
윗첨자L: 록히드 단독 설계/생산 항공기
윗첨자M: 마틴 마리에타 단독 설계/생산 항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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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F-117A_1.jpg
Lockheed Martin F-117A Nighthawk

1. 개요2. 제원 및 성능3. 개발 배경 및 특징4. 운용 및 실전사례5. 퇴역 후 재취역6. 미디어7. 모형화8. 기타9. 참고 링크10.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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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이 개발한 세계 최초의 스텔스 공격기.[1][2] 이름의 나이트호크는 아메리카 쏙독새라는 의미.[3] 그 특유의 형태에서 착안하여 다리미라고 불리기도 한다. 스텔스란 명사 자체가 이 기체의 이름인 것처럼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2. 제원 및 성능

Lockheed F-117 Nighthawk
분류 쌍발 터보팬 스텔스 공격기
개발사 Lockheed Martin Aeronautical Systems
제조사 Lockheed Martin Aeronautical Systems
첫비행 1981년 6월 18일
실전배치 1983년 10월
'공식' 퇴역 2008년 4월 22일
'공식' 재취역[4] 2023년 1월 10일
생산대수 총 64기 (이중 5기는 프로토타입 기체다.)
승무원 1명
전장 20.09 m
전폭 13.21 m[5]
전고 3.90 m
익면적 72.5 m2
익면하중 329 kg/m² (67.3 lb/ft²)
공허중량 13,380 kg
탑재중량 2,300 kg
연료탑재량 8,255 kg
최대이륙중량 23,814 kg
엔진 General Electric F404-F1D2 터보팬 엔진 x2기[6]
엔진추력 각 48.0 kN (10,600 lbf)
최대속력 마하 0.95
항속거리 1,231 km
최대항속거리 1,720 km
전투행동반경 806 km
일반작전고도 13,716 m
최대상승고도 15,849 m
추력대비중량비 0.40
최대중력하중계수 +6.0 G
항전장비 레이더
목표 추적 장비 DLIR(적외선 하방감시기), 레이저 표적지시기, FLIR
하드포인트 내장 2기
무장 공대지[7] JDAM (2,000 Ib)
GBU-10 페이브웨이 II (2,000 Ib)
GBU-12 페이브웨이 II (500 Ib)
GBU-27 페이브웨이 III (2,000 Ib)
AGM-65 매버릭
AGM-88 HARM
B61 항공기 투하 전술핵무기
공대공 AIM-9 사이드와인더 (자체방어용)[8]
기타 외부 탑재물 [9]

3. 개발 배경 및 특징

미국 공군록히드 마틴의 특수설계팀인 '스컹크 웍스'에 의뢰해서 개발한 최초의 스텔스 공격기. 전투기를 뜻하는 'F'를 가지고 있지만 미 공군은 원래 그랬다. 미 해군에서 먼저 개발되어 미 공군도 도입한 기종(A-7 등)을 제외하면, 미 공군은 원래 근접지원 임무를 맡는 경우에만 A를 기체 임무 분류기호로 쓰고, 항공차단, 즉 AI임무를 주목적으로 하면서도 폭격기가 아닌 종류 즉 장거리 침투 공격기는 원래 F를 붙였다.

1974년 미 국방 선진연구설계국의 계획 XST(Experimental Survivable Testbed: 생존가능성 실험 테스트베드)에 참여한 6개 회사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이 중에서 채택된 것이 바로 록히드 마틴의 설계팀인 스컹크 웍스의 제출안이었다.[10]

사실 스컹크 웍스는 위 계획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스컹크 웍스는 저시인성 항공기 개발에 가장 경험이 많은 개발팀이었지만 전투기 계약에 참여하지 않은지 오래된데다[11] 주요 프로젝트를 CIA 위주로 계약하였고 공군과의 프로젝트도 대부분 극비로 행해왔다 보니 DARPA의 담당자가 이를 알지 못해 스컹크 웍스에 제안서를 요구하지 않았고 따라서 스컹크 웍스 역시 DARPA의 프로젝트에 대해 제때 알지 못했던 것. 때문에 1975년, 절망의 다이아몬드라고 이름 붙인 기본 설계안을 바탕으로 스텔스기를 연구하던 도중, 위에서 서술한 DARPA의 계획을 알게된 후 "이거 우리가 하려는 거 하고 똑같잖아"하고 참여하려 했으나 이미 예산[12]은 미리 참가하고 있던 5개 회사에 전부 나누어진 상황. 이에 계획 담당자는 대안으로 록히드 사에게 1달러짜리의 명목상 계약을 제안했으나 록히드 사는 이를 거절하고 온전히 자가부담으로 참여했다. 벤 리치의 회상에 의하면 이 결단으로 인하여 자사[13]가 개발 비용을 전액 부담하는 부담을 안게 됐지만 덕분에 스텔스 기술의 권리를 스컹크 웍스가 차지할 수 있게 되어 회사에 막대한 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14]

심지어 모형심사에서 노스롭을 제끼고 해브블루 2기 제작 계약을 따냈는데 추산비용이 2,800만 달러여서 공군에 3,000만 달러를 요구했더니 공군이 의회 허락 안 받고 쓸 수 있는 비밀자금 한계가 2,000만 달러라 부족한 1,000만 달러를 자사에서 우선 부담해야 했다. 허나 말그대로 자사부담을 한 덕분에 기술의 권리도 DARPA에게 뺏기지 않고 회사가 가지고 있어서 이후 돌아올 이윤도 큰데다 우선 눈앞에 있는 몫만 3000만 달러짜리 계약을 따냈는데도 불구하고 회장이 경영난을 이유로 이 1,000만불을 내는데 난색을 표했을 정도다. 그나마 경영진 회의를 열 수 있게 해줬고 그 회의에서 부회장과 사장이 적극 찬성해서 겨우 자금을 받을 수 있었다. 비행시험 초기 단계까지 3,400만 달러가 들어갔는데 공군 관계자가 시험비행사에게 얼마 들어갔냐고 해서 저 가격을 말하자 '아니 비행기 한대 가격 말고 2대 만드는 프로젝트 전체 비용이 얼마냐?'고 했을 정도의 비용이다. 그 비용의 1/3도 내기 힘들어 했을 정도의 경영난. 벤 리치는 이 회의에서 이 기술만으로 20~30억 달러의 이윤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는데 당시엔 이사진에게 이윤을 과장했다면서 지적받았지만 이후 터무니 없게 낮게 잡은 것으로 드러난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DARPA_USAirForce_HaveBlue.png

1976년에 절반 정도의 크기를 가진 '해브블루'라는 프로토타입 시작기가 2대 제작되었으며, 그 후 1978년에 선행양산기가 제작, 1979년에 A형이 5대 발주, 그후 브라운 국방장관이 예산 100배 증액하면서 시니어 트렌드로 전환, 1980년부터 1990년까지 59기가 생산, 공급되었다.[15]

개발은 극비리에 진행되어 정보누출을 줄이기 위해 시험비행을 밤에만 실시한다거나, 개발이 진행되던 기지에는 다른 제식기종인 A-7D의 운용으로 철저히 눈가림하면서 떡밥을 여기저기 뿌려댔는데, 미 국방부의 이러한 낚시는 매우 효과적이어서 F-117의 기밀을 성공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제인 연감조차 낚여서 몇 년(1986-1989)간 F-19를 싣고 있었다.[16]

근데 이때 1급 기밀로 지정되는 바람에 스컹크 웍스는 큰 불편을 겪었다고 한다. 어느 정도였냐면 해브블루 그림을 앞에, 기수를 중간에, 구름 끝에 꼬리 이런 식으로 그려놓은 머그잔을 만들었는데, 그래도 기수가 나와있다는 이유로 머그잔이 1급 기밀로 지정되어 버렸다. 커피 한 잔 마시고 나서 컵을 금고에 넣고 자물쇠로 잠가야 했다고.[17][18]

이후 제식 명칭이 F-117이 되었는데, 당시 미군의 개편된 제식부호 명명법 순서에도, 기존의 센추리 시리즈를 비롯한 순서에도 맞지 않았다. 덕분에 소련을 속이기 위해서라는 설부터 사실 112~116까지는 미국이 여러 경로로 입수한 소련제 전투기에게 붙인 번호라는 설, 또 미 공군이 F-1 부터 다시 번호를 시작했지만 내부적으로는 그렇지 않아서 F-117까지 나와버렸다는 설 등, 공개된 이후 다양한 추측이 나왔다.

결론은 싱겁게도 그냥 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아직 제식명칭이 붙기 전에 시험비행 조종사들은 자신들의 항공기의 무선호출 부호를 117로 썼다. 그런데 시험비행 조종사를 위해서라도 비행매뉴얼이 있어야 하다보니 록히드는 일단 평소 쓰던 양식대로 비행매뉴얼인 T.O[19]에 F-117A-1이라고 적었다.[20] 그리고 미 공군은 기왕 매뉴얼에 F-117이라고 이름이 붙은 것을 굳이 고치지 않았다. 그러려면 이미 인쇄해놓은 매뉴얼들을 폐기하고 각 매뉴얼마다 F-117이라고 적힌 부분을 싹 다 고쳐야하는데, 지금처럼 워드를 이용하여 책을 만들던 시절도 아니니 이 노가다를 하느니 그냥 F-117을 쓰기로 한 것. 같은 록히드 생산기 SR-71은 대통령의 말실수로 일일이 다 고친 것과 비교하면 아이러니. SR-71의 이름이 RS에서 SR로 바뀐 뒷배경이 밝혀지긴 했다. SR-71 문서 참조.

F-117의 독특한 모습은 스텔스 능력을 염두에 두고 설계됐기 때문이다. 즉, 필요 이상으로 각진 후퇴익과 다이아몬드 형상의 동체를 가지고 레이더나 폭탄창들을 모두 기체 내부에 수납, 그리고 레이더 흡수용 특수도료를 사용해 RCS를 0.01㎡까지 낮추는데 성공했다. 당시 쓰인 전파흡수물질(RAM)은 140km 밖에서 레이더에 걸릴 수 있는 수준의 물체를 23km 밖에서 겨우 포착할 수 있는 수준까지 떨어트리는 걸출한 능력을 자랑했으나 내구력이 영 좋지 않아 출격할 때마다 새로 도색해야만 했다.

저 외형이 그 문제의 악화에 일조했다. 저 수치면 보통 레이더로는 잘해야 로만 보인다. 그 독특한 형상 덕분에 많은 사람들은 나이트호크라는 정식 애칭 대신에 '다리미'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당시의 컴퓨터 성능이 낮은 관계로 스컹크 웍스팀이 에코1 프로그램까지 사용했음에도 곡면의 RCS 계산이 불가능해서 평면으로 설계할 수밖에 없었다. 평면으로 구성해서 가장 낮은 RCS를 가진 것이 마름모꼴 모양이기 때문에 그 모양이 된 것이다. 따라서 그런 모양은 스텔스성 자체보다는 당시 컴퓨터의 한계로 어쩔 수 없었다. 이후 컴퓨터 성능이 발달하면서 B-2, F-22, F-35 등의 항공기들은 스텔스 능력을 갖춘 채로 곡면의 형태로 설계된다. 자세한 것은 레이더 반사 면적 참조.

때문에 곡면이 필요한 항공역학까지 만족하는 기체를 만들 수 없는데, 이로 인해 비행 성능은 그리 좋은 편이 못되어 대부분은 F-16에서 유용된 플라이 바이 와이어 시스템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 설계 당시 공기역학 담당자가 스텔스 담당자와 현피를 뜨려고 했을 정도. "닥쳐! 비행기 설계는 내가 하니까 넌 거기다 스텔스 기능만 붙여!"랬던가. 문제는 F-117은 스텔스 성능을 최우선으로 했기에 스텔스 담당자가 설계에 관여한 부분이 더 크다는 것이다. 때문에 격한 회피기동 따위는 꿈도 못 꾸며, 혹시라도 거칠게 몰았다가는 곧바로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환상적인 기동성을 자랑한다. 그 탓에 현재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만 해도 개발 도중 5대 이상이 손실되었고 이는 F-117의 생산대수를 생각하면 엄청난 것이다. 다만 애초에 그 문제를 이미 예상하고 플라이 바이 와이어 시스템을 적용한 관계로 조종사 입장에서 조종성은 굉장히 좋다고 한다. 벤 리치에게 스컹크 웍스의 수장 자리를 주고 물러났던 전임자 켈리 존슨[21]은 F-117을 보고 "이런 똥덩어리가 날 것 같냐?!"라고 매우 화냈다고 한다.[22] FBW가 급격히 발달한 현대에는 고출력 엔진만 붙이면 벽돌도 날아다닐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니...

개발 중에 일화가 하나 있는데 RCS 측정 실험 중에 모형을 올려놓은 기둥의 RCS값이 더 크게 나와서 레이더 상에서 모형을 가려버린 적이 있다. 이 때문에 노스롭측 개발팀과 스컹크 웍스가 갹출해서 50만 달러짜리 새 기둥을 하나 만들고 이걸 1마일 밖의 개미도 찾아낼 수 있는 레이더로 측정하자 한마리 수준의 RCS가 나왔다고 한다. 이때 노스롭 관계자[23], 기둥이 이런데 모형은 얼마나 한다는 거임?"이라고 했다 한다.[24] 이후 스텔스기 사업에서는 록히드가 선정되었고, 해브블루라 이름 붙인 시제기가 제작되었다.[25]

이처럼 독특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으나, 내부 구조는 "스텔스를 실현한다"는 유일한 목표만 달성한다면 기존 기종의 부품은 최대한 쓰자는 주의로 조종석은 F/A-18의 것을 거의 그대로 사용하는 등, 기존 전투기들의 부품들을 최대한 끌어다 쓴 덕분에 조종사들은 기체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으며, 생산단가도 무려 9,000만 달러[26]를 절감할 수 있었다. 스텔스 성능은 오히려 한참 뒤에 생산된 F-22F-35보다 훨씬 높다고 한다.[27] F-22와 F-117의 스텔스 지향 개발 컨셉이나 기술의 발전의 세대차이도 감안하여야 한다[28].

파일:external/www.battle-fleet.com/F117.jpg

당시 기술 실증기였던[29] 해브 블루의 성능 또한 발군인데 당시 미군이 보유한 모든 소련레이더와 자국의 전투기 레이더에 걸리지 않았으며 오직 E-3 조기경보기와 지대공 미사일이[30] 미사일을 쏠 수 있는 최소 사정거리까지 접근해야 겨우 잡을 수 있었다. 기술실증기가 이 정도인데 양산형의 성능이야 말할 것도 없다. 우리 공군 호크 미사일 레이더가 F-117을 잡아냈다는 말이 있지만 사실은 같이 날던 편대기를 잡았다고 한다.[31] E-3도 옆에서 날던 걸 못 잡았는데...

만들어질 당시 최고 기밀로 부쳐져서 밤에만 훈련을 한 덕분에 밤에 훈련하다 낮이 되기 전 쉘터로 돌아가는 F-117을 보면서 관계자들은 바퀴벌레라는 고약한 별명을 붙여주었다. 이렇게 밤낮이 바뀌어서 생기는 스트레스에 조종사들의 공간지각능력이 매우 떨어져, 전등불을 별빛으로 착각하여 지면에 정면충돌하는 사고가 일어났으며, 해당 기체에 탑승중이던 조종사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러나 미군에선 다른 전투기인 F-101 부두 잔해를 뿌려놓고 그 지역에 출동한 소방대원들에게 비밀 서약까지 종용하며 사건을 감춘 일도 있었다. 거기다 불행히도 F-117 파일럿은 기밀 유지를 위해 지원제가 아니라 발령제였다. 어떤 식이냐면 "너 군 조종사 경력보니 괜찮네. 어떤 부대에 배속시키고 싶은데 거기가면 존내 쩔어주는 비행기를 몰 수 있어. 근데 yes라고 안하면 보여줄 수도 임무를 말해줄 수도 없어 yes라고 하면 취소는 못해" 그리하여 조종사들의 스트레스가 극대화되고 결혼 생활은 파탄으로 치닫는 등 조종사들 사이에서 F-117은 가정 파괴범이나 마찬가지였다. 1980년 처음으로 배치된 넬리스 공군기지 요원들도 A-7D 운용부대인 것처럼 연극을 시킬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코소보 사태에서 주간 공습에 격추당하자 미군에선 다시 주간비행을 금지시켰고 조종사들은 나이트호크라는 공식 이름보다 바퀴벌레라는 악명을 더 선호했다고 한다.

근데 정작 미국이 이처럼 온갖 희생을 치루면서 기밀을 유지했음에도 소련은 대충 상황을 파악해 VHF대역 레이더를 전면배치하여 방공망을 업그레이드한 상황이었다. 미군은 후에 VHF 라디오에 음성이 실리지 않는 걸 보고 이를 눈치챘다. 단, VHF, UHF 레이더는 본래 소련이 장거리 탐색 레이더로 쓰던 물건이긴 하다. 이 대역의 레이더는 굉장히 장거리까지 탐지 가능하지만 문제는 파장 자체가 길다보니 이 당시 U/VHF 레이더는 위치오차가 1km 가까이 난다. 그래서 탐색용으로는 쓸만해도 미사일 유도용으로는 부적합하다. 그나마 밑의 코소보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본래 200km급 이상의 탐색용 레이더지만 F-117은 겨우 20여 km 이내로 들어와야만 탐지가 가능하다. 간단하게 비유하자면 휴대폰위치추적이 A-GPS도 정밀도가 떨어지지만 (와이파이나 인근 도심 기지국이면 반경이 좁아서 정밀도가 오르고 GIS가 있으므로 훨씬 좋다) 진짜 GPS같은거라던가, 몇 년전 자주 쓰던 대형 기지국 탑기반일 경우 정말 넓은 범위로 어디서든 잡을 수는 있으나 위치는 기지국 반경만큼으로 나오는 것. 더 압축하면, 그냥 소리나 인기척이 나니까 저 멀리 반경 어딘가에 있다고 인지할 뿐, 서로 섣불리 못 나간다는 것이다. 계륵인 셈이다. 더군다나 저주파통신대역의 특성상 파장이 길어서 정말 방사 범위만 크다. 즉 초장파 대역의 레이더로도 이론상 탐지만 가능할 뿐 탐지범위는 크게 줄어들게 되며, 스텔스기는 이를 이용해 탐지범위의 사각으로 손쉽게 침투할 수 있다는 뜻.

파일:external/www.afwing.com/6f2416aa2f428db858086c6ede56e469.gif

미 해군의 A/F-X 프로젝트가 취소되자, 록히드 마틴 측에서는 해군측에 항공모함에 탑재할 수 있게 재설계한 'A/F-117X 시호크'(F-117N)의 도입을 주장했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4. 운용 및 실전사례

1980년 넬리스 공군기지에 A-7D 장비로 위장한 4450TG가 편성되었다[32]. 그 뒤 F-117은 1989년 파나마 침공 작전에서 첫 실전 데뷔, 이후 1991년 걸프 전쟁에서 "우리는 공격받고 있습니다"를 연출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심지어 100여대의 전투기가 대규모 스트라이크 패키지를 구성하고 달려들었다 실패했던 이라크원자력 발전소를 단 8기로 파괴해내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에도 이런저런 전장을 돌아다니면서 전투손실 0을 기록했으나…
당시 F-117 추락지점과 생존 조종사의 구조를 구현한 The Operations Room의 애니메이션

유고슬라비아 내전에서 F-117이 2K12 쿠프의 스트레이트 플러쉬 반능동레이더에 포착 당했고, 2발의 S-125(SA-3)미사일에 격추됐다. 이 사례는 세계 최초이자 아직까지는 유일한 스텔스기 실전 격추사례이다.
파일:external/cafefiles.naver.net/f-117-nn7.jpg
당시 격추된 F-117

격추 원인으로 당시 다음과 같은 추측들이 난무하였다.

당시 조종사는 "기체가 급격하게 추락했어요. 분명 미사일에 맞은 겁니다." 라고 진술했음에도 미 공군은 '엔진이 멀쩡하니 대공포로 격추된 거'라고 주장했다. 사실 일리가 아주 없진 않았던 것이 SA-3 같은 강력한 파편탄두에 맞았다면 십중팔구 동체에 심각한 손상을 입히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사진에서 보듯 F-117는 손상이 거의 없다. 또한 F-117의 특성상 조금만 손상을 입어도 기체가 불안정해져 추락하기에 눈먼 대공포에 맞았다는 설이 당시 가장 유력했다. 문제는 그렇지 않았을 뿐.

그러나 실제로 격추당한 것은 저녁 8:45분 경이었으므로 대낮이 아니라서 적에게 들킬 상황은 아니었다. F-117을 격추한 것은 단거리 대공미사일인 SA-3 미사일로, 이것의 파편은 현재 F-117 파편과 함께 세르비아 측에서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또한 당시 다른 NATO 연합군 전투기도 그랬고, 이 F-117도 그랬고 15000ft(4572m)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미 최소 1발 이상의 2000 파운드 폭탄을 투하하는 임무를 마치고 귀환 중이었기 때문에, 폭탄창이 열려서 미사일에 얻어맞았던 것도 아니었다.

현재까지 확실하게 알려진 격추 과정은 F-117이 SA-3에 의해 격추되었다는 것이다. 이 미사일은 단거리 미사일이므로(최대 사거리 20km) 세르비아가 F-117을 먼거리에서 정확히 확인한 다음 노리고 쐈을 가능성은 적다.

다만 전쟁이 끝난 뒤인 2005년에 USA Today에서 당시 F-117을 격추시킨 세르비아 측 방공포대의 지휘관과 인터뷰를 한 일이 있었다. 군사기밀이므로 정확히 어떻게 F-117을 격추시켰는지는 설명하지 않았으나,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언급하였다.

더불어 현재 알려진 바로는, 유고에서 코소보 전쟁 직전에 개량형 SA-3을 직접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SA-3는 레이더를 사용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하여 별도의 TV카메라를 가지고 있다. SA-3는 지상 관제소에서 적기를 추적하며 미사일에게 '어디로 날아가라'라고 알려주는 지령유도 방식이기 때문에 미사일 자체에는 어차피 탐색기가 붙어있지 않고, 지상 관제소만 레이더나 혹은 탐지거리는 더 짧지만 스텔스기 상대로나 전파방해 환경하에서도 쓸 수 있는 TV카메라로 적기를 추적 및 요격할 수 있는 것이다(이는 베트남전 당시 미군의 전파방해에 의해 SA-2가 종종 먹통이 되면서 SA-2 부터 SA-6 까지 대부분의 러시아 지대공 미사일에 붙어있는 기능).

세르비아는 이 TV카메라를 야간에도 사용할 수 있는 열영상카메라로 바꾸는 한편, 더 정확히 추적이 가능하도록 레이저거리 측정기를 장착하였고, 코소보 전쟁 직전에 이러한 업그레이드 키트를 해외수출 시도하기도 했다.[36]

즉 F-117은 먼 거리에서 레이더에 의해 추적당하다가 격추당한 것이 아니라, 하필 SA-3 방공포대 바로 옆을 지나가다가[37] 이 열영상카메라를 이용한 공격에 기습적으로 당한 것이다.

한편 최근에는 이 열영상카메라가 아니라 UHF 대역의 레이더를 사용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SA-3의 조기경보용 레이더인 UHF 안테나는 본래 150~200㎞가 넘는 탐지거리를 갖는다. 그런데 이 레이더가 대략 20~25㎞ 이내로 접근한 F-117을 탐지해낼 수 있다는 것. 이는 F-117이 기본적으로 전투기나 지대공 미사일의 추적용 레이더 전파 파장에 대하여 스텔스성을 갖도록 설계되었기에 UHF같은 낮은 주파수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스텔스 성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200㎞급 레이더로 25㎞ 밖에서 탐지한다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지만, 어쨌거나 이 정도 거리면 SA-3의 최대사거리 수준이므로 이 레이더를 이용, 근처에 비행중인 F-117에다가 미사일 유도용 전파를 최대한 집중조사하여 미사일을 유도, 격추시켰다는 이야기가 있다. 함부로 레이더를 켠다면 그 이전에 RWR로 눈치를 채겠지만 전투기에 탑재되는 RWR 장비는 크기 등의 한계상 엄청나게 넓은 전파대역을 모두 커버할 수 없으므로 UHF 같은 낮은 주파수까지는 탐지해낼 수 없다. 그렇기에 보통 이러한 조기경보용 레이더의 존재를 EA-6 같은 전자전기가 미리 파악해야 하는데 그날 따라 전자전 지원을 해줘야 할 EA-6가 이륙하지 않았으며, 세르비아측은 NATO연합군 기지 근처에 심어둔 첩보원들을 통해 그시각 EA-6가 활동하지 않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

F-117을 탐지한 수단이 열영상 카메라건, UHF 레이더건 문제는 SA-3의 사거리는 20㎞ 남짓이므로 어쨌거나 F-117은 이 미사일의 사거리 안으로 뛰어든 것이다. 그렇다면 이 SA-3는 왜 하필 F-117이 지나가는 경로 근처에 있었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몇 가지 추측이 존재한다. 먼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세르비아 측은 NATO 연합군의 무선을 감청하면서 비행경로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사일 포대가 순식간에 여기서 저기로 이동할 수는 없으므로 무선을 듣고 비행경로를 파악한 즉시 그쪽으로 미사일들을 옮겼을 가능성은 적다. 문제는 NATO 연합이 매번 비슷한 비행경로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즉 한 번 비행경로를 파악하면 그 뒤로는 그 근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적기를 요격하는 것이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이 부분은 추측이므로 정말 SA-3를 '일부러' F-117이 다닐 길목에 배치해둔 것인지, 아니면 '운 좋게' 배치한 것인지는 현재로서도 알 수 없다.

F-117은 이 사건으로 스타일을 완전히 구겼으며 세르비아 측은 나름 의기양양했다. 하지만 이때는 전쟁이 시작된 지 3일도 안 됐을 때 일어났던 일로, 그 뒤 나토군이 전략을 변경하자 대부분의 대공포들은 적기 추적을 위한 레이더를 켜지도 못하고, 서로 무선통신도 할 수 없었다. 또 미사일을 발사하고도 NATO 연합군에 반격받을까봐 아주 짧은 시간만 레이더를 켤 수밖에 없었으므로 미사일 명중률은 기대할 수 없었다. 이렇게 열흘 동안 먼지나게 얻어맞으면서 방공망은 그냥 시체 신세가 됐고, 연합군은 걸프전 때보다 세 배나 더 공격받았지만 손실한 비행기는 F-16 한 대와 F-117 한 대가 전부였다.[38] 한가지 흠이 있었다면 이 미사일 위협을 뚫고 NATO 연합이 폭격을 가한 목표물 중 상당수가 '낚시용 모형'들이었다는 것. F-117 조종사 대럴 패트릭 젤코 중령은 수시간 동안 숨어다니다가 연합군의 구조팀에 의해 구조되었으며[39], 곧 당시 NATO 연합군의 기지였던 이탈리아로 후송되었다.

당시 유고군은 격추된 잔해를 민간에 공개하는 위엄을 보였다. 이때 러시아 측 관계자들이 비밀리에 다녀가 정보를 입수했다는 첩보가 있으며 F-117의 특성상[40] 엔진이나 전자장비 등은 별볼일 없었기 때문에 유고연방 역시 몇몇 주요 부품만 옮기고 (당시 유고연방은 소련이나 미국과 모두 사이가 안좋았기 때문에 자급을 위해 항공산업이 꽤 발달되어 있었고, 한국보다도 훨씬 앞서 있었다. 1950년대에 이미 독자적인 전투기를 개발했을 정도.) 나머지는 그냥 내버려뒀다.

미군은 F-117의 잔해에 대한 추가폭격으로 잔해를 완전히 소거해버리고자 했지만, NATO 연합군 사령부의 미온적인 협조 때문에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고, 결국 제법 형태가 남은 상태의 잔해를 세르비아 측이 수거해 갈 수 있었다. 이 잔해는 각종 F-117 대응법 연구에 쓰인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현재는 세르비아의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그러나 격추 후에도 NATO군의 요청에 의해 더 많은 F-117이 추가 투입되었다. 그리고 코소보 전쟁 동안 F-117은 더 이상 공격당하지 않았는데, 그 뒤로는 비행경로를 수시로 바꾸고 하는 등 노력을 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후 퇴역하는 그날까지 더 이상 격추당한 F-117은 없었다. 사령부의 실책으로 1대가 격추당했다고는 해도 바꿔 말하면 1989년부터 다양한 전투에, 그것도 위험한 공격 임무에 수시로 투입되면서도 단 한 대밖에 격추당하지 않았다는 점은 대단한 일이다.

한편 전쟁이 끝난 뒤, 젤코 중령은 자신을 격추시킨 지휘관과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41]

이 격추사건 때문에, 넷상에서는 엄청난 밈이 되었다. 특히나 보스니아 전쟁 당시 NATO의 공습들을 비판하는 노래인 Crni Bombarder을 부른 로도유브 '로키' 부로비치(Rodoljub 'Roki' Vulović)와 많이 엮인다.[42]

작전 당시 스포터들이 F-117과 EA-6B등 레어한 NATO 항공기들이 출격하자 이를 촬영하고 날짜나 출격 소티등이 같이 기재되면서 세르비아의 F-117 격추에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5. 퇴역 후 재취역

2008년을 기점으로 모든 기체가 전투기동을 중지하고 애리조나로 기수를 돌렸다. 요컨대 전부 퇴역. 이건 F-22 랩터가 JDAM을 운용할 수 있게 된 탓이 컸다. 2010년 10월, 스텔스 기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날개만 떼고 애리조나에 보관 중이던 F-117의 전 기체를 스크랩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박물관에 전시된 몇 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고철 신세... F-14와 같은 운명을 맞게 된 줄 알았다.#

그런데 2014년 9월 네바다 주 브레인 워시 부트 공군기지에서 이 녀석이 돌아다니는 것이 포착되었다.# 심지어 한 언론에서는 왜 아직까지 F-117이 날아다니냐는 기사까지 썼다.#

2016년, 2017년에도 F-117이 활동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전문가들은 Su-57, J-20등 가상적국의 스텔스 전투기에 대항할 전술 개발을 위한 가상적기 역할을 하고 있던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2018년 6월, 네바다주 토노파에서 비행 중인 F-117이 다시 포착되었다. #

2017년에 중동 모처 미 공군기지에 F-117 4대가 배치되어 작전에 참여했다는 외국 언론 보도가 있다.#

2019년 2월, 캘리포니아주 R-2508에서 훈련비행중인 복수의 F-117이 다시 포착되었다. #

이를 두고 밀리터리 소식통들은 사실상 F-117이 재취역했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F-35 프로그램이 난항에 빠지자 예산을 돌리기 위해서 잠시 은퇴시킨 다음, F-35 배치가 정상궤도로 올라가자 F-22, F-35에 장착할 수 없는 2,000파운드(lb)급 GBU-27 페이브웨이III 폭탄을 사용하기 위해 다시 불러왔다는 것이다.

파일:형이왜.jpg
사실 F-117은 분해된 것이 아닌, 언제든지 비행가능 상태로 복귀가 가능한 상태인 Type 1000 상태로 토노파 공군 기지에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2017년 시리아 공습 당시 사용되었다는 루머도 존재한다고. #

2020년 10월에는 미 해병대의 미라마 기지에 편대단위로 이착륙하는 등 대놓고 날아다니고 있다.#

2021년 2월에는 KC-135 공중급유기로부터 급유를 받을 수 있는 인증을 다시 받아 사실상 재취역한것이 확정되었다.#

2021년 9월에는 미 공군에서 가상적국 스텔스 전투기 대역으로 훈련에 참여하고 있음이 공개되었다.

2023년 1월 10일, 미공군은 F-117 45대를 스텔스 가상적기 목적으로 재사용 예정이라고 공식발표했다. 이로써 F-117의 재취역이 미 공군에 의해 공식적으로 확정되었다.

파일:f-117 2023년.jpg
2023년 5월 알래스카에서 열린 '노던 엣지 2023' 훈련에서 가상적국 스텔스 전투기 대역으로 참여한 것이 공개되었다. 록히드 마틴 공식 인스타그램에서도 재취역을 인정했다.

6.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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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7. 모형화

워낙 유명한 스텔스 비행기인지라 다양한 모형회사에서 프라모델로 출시하였다.

8. 기타

9. 참고 링크

10.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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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술폭격기로 보는 견해도 많다.[2] 전투기라는 이름은 러시아 등 가상 적국들을 교란하기 위함이다.[3] 문서를 보면 알겟지만 기체의 생김새가 쏙독새의 입하고 상당히 닮았다.[4] 2008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비행해오며 임무에도 투입되었으나, 공식적으로 미 공군 및 제작사인 록히드 마틴이 해당 기체의 재취역을 밝힌 건 2023년이다.[5] 같은 전익기노스롭 그루먼 B-2와 전장은 비슷한데 전폭이 4배나 차이가 난다. B-2는 전폭 52m. 자체중량도 4배나 차이난다[6] 애프터버너 제거 버전. 애프터버너 사용시 발생하는 열에 의해 적에게 감지될 우려가 있어서, 즉 스텔스 성능 저하의 우려가 있어 기능 자체를 제거함. 이로 인해 기체의 최고 속도 또한 아음속의 영역에 머무름.[7] BLU-109 관통탄 장착가능[8] 이 미사일들은 실제로 달았는지는 의문. 제원 소개자료에 등장하긴 하는데 실제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은 없다. 2020년에는 전직 F-117A 조종사가 자체방어용을 넘어, 적의 조기경보기로 근거리까지 접근하여 격추하기 위한 용도였다고 증언했다는 주장이 나왔다.[9] 무장은 아니지만 내부 무장고에 추가로 연료탱크를 달 수도 있다. 다만 강제로 투하해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며, 보통 기지이동을 위해 장거리 이동을 할 때만 사용한다. 또한 이와 함께 기지 이동 시 조종사의 소지품과 항공기 자체의 정비이력서등을 함께 옮기는 트래블 포드(Travel Pod)도 달 수 있다. 뭐 사실 이건 일반 폭탄 탑재용 랙(Rack)이면 어디에든 달 수 있지만.[10]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계기는 1973년의 제4차 중동전쟁의 결과와 관련이 있다.[11] F-104가 마지막이고 이후 F-16이 되는 LWF계획에는 공군의 요구서의 연료탑재량이 너무 적다는 이유로 사실상 포기했다. 정확히는 요구서대로 제안서를 내지 않고 연료탑재량 및 그에 따른 기체 크기를 늘려서 제안해서 1단계에서 바로 탈락했다. 다른 업체는 제안서에는 공군 요구대로 제안했고 이후 설계를 수정하는 방식으로 계약을 따 냈다. 그것이 F-16와 이후 F/A-18이 되는 YF-17.[12] 업체당 100만달러[13] 록히드 마틴[14] 이 때의 일화를 거의 모험으로 평가하고 있는데 그럴 만 한게 당시 록히드는 경영난을 겪고 있었던 데다가 롤스로이스의 파산문제로 L-1011 프로그램의 난항까지 겹쳤고 LWF 계획에선 서류에서 탈락하는 등 전술공군과는 사실상 10년 이상 연이 없었다. 그나마 U-2의 추가 생산, C-141, C-5같은 전략 수송기와 로켓, 인공위성 등은 계속 팔았기에 미 공군 전체로 보면 아직 연줄은 남아 있었으나 악연적으로 이 때 경영난에 겹쳐 록히드 스캔들이 터지면서 몇 년동안 록히드의 상황은 지옥이 된다.[15] 원래는 100대까지 생산할 예정이었으나 냉전 종식으로 국방 예산이 대규모로 삭감되면서 결국 59기로 양산 종료.[16] 톰 클랜시도 여기 낚여서 소설 붉은 폭풍에 F-19를 등장시켰고, 프라모델 메이커인 테스터스와 이탈레리가 상상도를 바탕으로 프라모델을 출시했을 정도였다.[17] 다만 자서전에서 이 이야기를 한 벤 리치는 농담을 맛깔나게 하기로 유명한 사람이라 살짝 과장한 것으로 보이지만 스텔스기로서의 F-117의 평면형상이 일종의 기술적 기습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형상이 드러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서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 자서전은 공돌이가 쓴 책치고는 입심이 꽤 좋기 때문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18] 사실 사업초기만 하더라도 1급 기밀까지는 아닌 냉전 때 흔했던 무기개발사업의 일부였으나 스텔스라는 개념을 적용한 평평한 모양을 유지하면서 나는 것이 가능하다고 공군과 국방성이 알게 되자 이 프로젝트는 1급 기밀로 취급되었다. 게다가 1급 기밀도 보통 1급 기밀이 아니라 전 스컹크 웍스 개발진들에 의하면 맨하튼 프로젝트에 버금갈 정도의 최고 극비사항이었다고 한다. 때문에 냉전시대 소련의 정찰위성을 피해 수송기를 통해 해진 밤 네바다에 위치한 비밀 실험장으로 옮겼다고 한다.[19] Technical Order, 기술교범. 쉽게 말해 매뉴얼이다.[20] 일반적으로 -1은 비행매뉴얼을 의미하는 숫자[21] 전임자라곤 하지만 은퇴 후에도 스컹크 웍스의 자문을 꾸준히 맡았다.[22] 이 분이 무슨 꼰대같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 사람은 희대의 천재 집단 스컹크 웍스의 창시자이며 무려 25년을 그 조직의 수장으로 있었다. 공기역학적인 설계와 조직 관리에 있어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인물이다. 특히 자신의 주요 분야였던 공기역학적인 설계에 있어서 여러 일화들이 존재하는데, "저 스웨덴 놈(부모가 스웨덴 이민자 출신)의 눈엔 공기가 보이나?!"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였다. 단지 이 사람은 컴퓨터의 발전 속도를 감안하지 못했을 뿐이다.[23] 존 케센. 노스롭 그루먼의 스텔스 대부라 할 수 있는 인물. 금발미녀와 벤 리치를 이기는 것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후자를 고를거라고 했을 정도다. B-2 덕분에 소원성취했을 듯. 기체 외적인 영향이 더 크긴 했지만.[24] 출처: Skunk Works: A Personal Memoir of My Years of Lockheed.[25] 노스롭은 이후 B-2 전략폭격기 사업에서 이때의 패배를 설욕한다.[26] 기술실증기인 해브블루의 경우 2대 만드는데 3,000만 달러가 들어갔다고 한다.[27] F-117의 RCS 수치는 F-22, F-35보다도 훨씬 낮다고 알려져 있다. F-22의 RCS 수치는 F-35보다도 훨씬 낮다고 알려져 있다.[28] 예를 들어 스텔스를 위해 비행성능을 크게 희생한 F-117 과는 달리 F-22나 F-35는 대단히 뛰어난 비행성능과 함께 스텔스 능력까지 가진 것인데, 이는 역으로 보면 비행성능을 유지하기 위해 스텔스 능력을 더 높이는 것을 포기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항공기의 스텔스 성능에는 RCS 값 뿐 아니라 열 피탐성이나 전자전 능력등도 큰 영향을 끼치므로, RCS 값이 낮다고 무조건 스텔스 성능이 뛰어나다고 단정하는 것도 적절치는 않다.[29] 엄밀히 말하면 프로토타입이 아니다. YF-22같은 경우는 기술 실증기이면서도 프로토타입이지만, 해브블루는 프로토타입으로 보기 어렵다.[30] 나이키호크[31] 한국만 이런 건 아니고, 미국에서 시험비행 할 때도 공군이 "레이더에 보이는구만. 스텔스는 개뿔"이라고 했는데 알고보니 F-117을 관찰하려고 옆에서 날던 T-38기를 잡은 것이었다.[32] 따라서, 이 시기 51구역 근처에서 목격됐다는 UFO의 정체가 F-117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33] 어느 다큐에서의 미군과의 인터뷰에서 "저고도로 날고 있었는데, 야간기능이 고장 나는 바람에 격추되어 버렸다."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34] 이는 부대 운용 및 효율이 막장이 되는 셈이지만, 최소한 HARM에 얻어 맞진 않게 되니⋯.[35] 언뜻 그럴싸 해 보이지만... 애당초 레이더를 켜야만 '적 전투기가 가까이 왔는지 멀리 왔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세르비아 민병대는 여기저기 보초를 세워 놓고 전투기 소리를 듣거나 어딘가 폭격 받았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지휘부로 보고하였다고 한다.[36] 코소보 전쟁 이후에는 러시아도 비슷한 방식의 업그레이드 키트를 해외에 수출했다.[37] 실제로 미사일 포대에서 불과 13㎞ 떨어진 지점에서 격추당했다. 애당초 SA-3의 최대사거리가 20㎞ 남짓이다.[38] 걸프전에서는 이라크의 대공망에 당대 최신예기였던 F-15E나, 토네이도 등이 격추당했었다.[39] 한편 비슷한 시기 격추된 F-16의 조종사는 금방 구조되었는데, 해당 조종사 데이비드 골드파인은 후에 공군참모총장까지 오르게 된다.[40] 비용 절감을 위해 전용 부품을 최대한 줄이고 다른 기종에서 사용 중인 부품을 많이 썼다. 엔진과 레이더는 물론 조종석까지 타 기종과 물건을 쓸 정도.[41] Foes now friends: US stealth pilot and the Serb who shot him down(BBC 기사)[42] 이런식으로 파일:ucbgazn39wj11.jpg[43] Reagan offered to share F-117 technology with Britain[44] 대한뉴스 제1950호에 이 장면이 나온다. https://youtu.be/fRWwvFe3PLg[45] F-117의 엔진은 열에 의한 스텔스성 저하를 이유로 F404 엔진을 애프터버너 기능 자체를 제거한 형태로 개량해 사용했음. 제원표에 재연소 추력(혹은 AB 추력)이 표기되지 않는 것은 이렇게 애초에 애프터버너가 없기 때문[46] 쏙독새(夜鷹)의 꿈으로 번역했지만 한자 표기를 보면 한자 뜻 그대로 夜(밤-Night)+鷹(매-Hawk)로 F-117 나이트호크를 의미한다. 일본애니메이션 조이드 제네시스의 오프닝곡으로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