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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ider |
1. 개요
aero towing 방식으로 이륙하여, 산간 지역에서 비행하고, 활주로에 착륙하는 모습.
산등성이 위에서 상승기류를 즐기는 글라이더.
넓은 의미의 글라이더는 엔진의 힘을 빌리지 않고 활공 비행을 하는 모든 항공기[1]를 뜻한다.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글라이더 뿐만이 아니라 행글라이더, 패러글라이더, 심지어는 종이비행기까지 이 범주에 속한다.
좁은 의미의 글라이더는 영어로 sailplane이라고도 하며, 일반 비행기와 같은 형체를 가지되 엔진의 도움 없이 활공 비행을 하는 항공기다. 다만 일부 글라이더는 활공 비행을 연장시키거나 최초 이륙에 사용하기 위한 전기모터 또는 터빈엔진을 가지고 있기도 하며, 이렇게 전기모터나 터빈엔진을 갖춘 글라이더를 모터 글라이더(Motor Glider)라고 부른다. 이 영상 중간에도 동체에 수납된 엔진이 활용되는 걸 볼 수 있다.
글라이더는 동력이 없어도 온난 상승 기류나 맞바람 등을 이용해서 고도를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힘이 딸리는 관계로 상업적이나 군사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개 스포츠 용도로 사용된다. 요즘은 각종 규제 때문에, 그리고 다른 항공 스포츠 때문에 글라이딩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는 추세다.
비록 동력은 없지만, 글라이더 성능이 발달함에 따라 하루동안 흔히 몇백 킬로미터를, 해외 비행기록 공유사이트에선 심지어는 1천 킬로미터 가까이씩이나 되는 비행기록이 관찰되기도 한다. 글라이더의 성능은 활공비(Glide ratio)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직선 비행중의 비행 거리와 하강하는 고도의 비율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활공비가 10:1 이라면 1 미터 하강할 때 10 미터를 전진한다는 뜻이다. 현대적인 글라이더는 날개가 매우 긴 대형기의 경우 활공비가 최대 70:1까지도 나온다. 보잉 747이 17:1, 우주왕복선은 4.5:1 정도. 알바트로스는 20:1정도이다. 18m 날개길이를 가진 1인용 글라이더는 40:1 내외이며, 시합용 규격의 글라이더는 보통 날개길이 13.5m 등급에서 동체의 성능과 파일럿의 기량으로 승부를 겨룬다.
동력을 사용하지 않다 보니 공기 역학적인 효율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글라이더는 공기역학적으로 매우 세심하게 설계된다. 심지어는 벌레 닦는 와이퍼까지 장착하는 경우도 있다. 이 와이퍼는 비행 중에 작동되어 날개에 달라붙은 벌레를 닦아내는데, 이를 그냥 두면 날개 쪽의 매끄러운 공기 흐름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2. 역사
글라이더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유인 항공기로, 열기구에 이어 아득히 먼 고대 시대부터 꾸준하게 시도되어 왔다. 기록된 최초의 성공적인 글라이딩은 안달루시아의 아바스 이븐 피르나르가 만든 것으로 886년에 활공하는 데 성공했으나 그의 글라이더에는 꼬리날개가 없어서 착륙이 불안정했고, 살아남긴 했지만 허리에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이후 르네상스 시기를 거쳐 시도한 사람이 있었으나 대부분 실패해 버리고[2][3] 1849년부터 아주 짧은 비행에 성공하기 시작했다. 영국의 조지 케일리#2 경이 주인공으로, 경은 자신의 글라이더에 마부를 조종사로 태웠다. 안타깝게도 이 시험비행을 성공시킨 마부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조지 케일리의 글라이더는 비록 초보적이긴 했으나 주익, 수직미익, 수평미익, 보트 모양의 유선형 동체, 랜딩기어, 방향타 등 현대 항공기의 기본 골격을 고루 갖추고 있어 케일리 경은 항공학의 창시자이자 아버지로 평가받는다.오토 릴리엔탈의 글라이더 비행
이후로 여러 사람이 글라이더에 도전하였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글라이더의 왕이라 불리던 독일의 '오토 릴리엔탈'이다. 그는 비행에 있어서 1회성이 아닌 반복적인 성공을 이룬 최초의 사람이었으며, 최초로 상승기류를 이용해서 비행시간을 늘리기도 했다.[4] 최초의 동력 비행기를 만들었던 라이트 형제도 비행기를 만들기 전에 먼저 유인 글라이더를 만들었다.
비행의 역사의 초창기를 장식했던 글라이더는 점차 동력 비행기에 그 자리를 넘겨줬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는 미국과 독일에서 스포츠 용으로 사용되었다. 당시는 독일의 글라이더 제작 기술이 강세였는데, 1차 대전에 패전하면서 동력 비행기의 제작에 제한을 받아왔기 때문에 그 제약 하에서 항공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글라이더를 집중해 판 것이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도 독일은 뛰어난 글라이더 제작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유럽 쪽에서 글라이더가 많이 제작된다.
대부분의 초기 글라이더는 조종석이 따로 없고 조종사는 날개 앞쪽에 마련된 작은 의자에 앉았다. 이런 원시적인 글라이더는 공기 저항이 커서 활공성이 좋지 않았으며 보통 언덕 꼭대기에서 이륙했다. 현대의 글라이더는 전체적인 모양이 초기 글라이더보다 훨씬 더 유선형을 이루고 있다. 컴퓨터의 도움을 얻어 공기역학적으로 가장 효율적이 되도록 디자인 하기 때문이다. 초기 글라이더는 재질도 현대의 것보다 비효율적이었다. 주로 나무로 된 재질에 쇠로 만든 부품을 조합했다. 좀더 후에는 이보다 조금 더 발전해서 동체는 천을 씌운 철골로 만들고 날개는 나무에 천을 씌워 만드는 수준. 반면 현대의 글라이더는 탄소섬유, 유리섬유, 케블라 같은 복합재료를 써서 만들어지며, 덕택에 무게는 가벼워지면서도 강도는 높아졌고, 게다가 공기 저항을 줄어들도록 매끈한 마감처리를 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이러한 발전으로 인해 현대 글라이더의 성능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1930년대의 글라이더는 활공비가 17:1 정도였지만, 현대의 글라이더는 30:1을 넘는 경우도 있다
3. 이륙과 착륙
3.1. 이륙
엔진이 없다 보니, 이륙 방법이 비행기와 좀 다르다. 글라이더를 이륙시키는 가장 흔한 방법은 윈치로 끌어 당기거나 다른 비행기로 끌어 가는 방법이다.비행기로 끄는 방식은, 동력 비행기 뒤에 글라이더를 로프로 연결하여 끄는 방식이다. 끌려가는 글라이더가 지정 고도에 도달하면 연결을 풀고 활공을 시작한다.
윈치로 당기는 방식은, 글라이더가 연결된 줄을 윈치로 감아서 끌어 당기는 방식이다. 강력한 엔진이 달린 윈치를 땅 위에 고정시킨 후 800~1200 미터 정도의 줄로 글라이더와 윈치를 연결한다. 그리고 윈치를 빠르게 감아서 글라이더를 끌어 당긴다. 끌려온 글라이더는 양력으로 상승하게 되고 충분한 속력과 높이를 얻으면 글라이더 측에서 줄을 푼다. 간혹 윈치 대신 자동차로 끌어 당기기도 한다.
전기모터나 내연 엔진이 달린 모터 글라이더는 이것 저것 필요 없이 그냥 스스로 이륙하기도 한다.
일단 이륙하면 글라이더는 열에 의한 상승기류나 비탈에 부딪쳐 올라오는 기류를 타고 상승하게 된다. 그리고 본격 비행 시작. 숙련된 조종사는 기상 상황이 별로 좋지 않은 곳에서도 한번 이륙하면 500 킬로미터 이상을 비행할 수 있다. 1000 km간 평균 속도의 최고 기록은 203.1 km/h. 모든 기록은 기상 상황에 큰 영향을 받는다.
글라이더 파일럿들은 상승기류를 찾기 위해 갈매기 등의 물새들이 모여 나는 곳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쓰레기 매립지 위를 비행하게 된다고 한다.
매우 가벼운 몇몇 글라이더는 조종사가 들고 뛰어서 이륙할 수도 있다.
3.2. 착륙
초창기의 글라이더들은 스키드를 이용해서 착륙했다. 초창기 글라이더들 중 일부는 이륙시에 바퀴를 달고 있다가 이륙이 끝나면 바퀴를 버려서 무게를 줄이는 방식도 썼다. 이 경우 착륙시에는 스키드를 이용. 하지만 현대의 글라이더들은 대부분 바퀴를 이용해 착륙하며, 훈련용 글라이더에서나 스키드가 쓰인다. 바퀴에는 휠 브레이크가 있어서 착지시 제동이 가능하다. 날개 끝에도 작은 스키드나 바퀴를 달아 착륙시 날개 끝이 지면에 끌리는 경우에 대비한다. 고성능 글라이더에 달린 랜딩 기어는 일반 비행기처럼 이륙 후에 올리고 착륙시에 내리도록 되어 있다. 이는 공기 저항을 줄여서 비행 성능을 높이기 위함이다. 비행기와는 달리 앞 뒤로 바퀴가 한 줄로만 있지만, 착륙시 동체가 좌우로 기울어지지는 않는다. 글라이더의 활공 성능이 뛰어나기 때문에 완전히 정지하지 않는 한 날개의 양력이 균형을 잡아주기 때문이다. 글라이더의 활공 성능이 좋다 보니 실속 속도도 느리고, 따라서 활주로 길이가 겨우 250미터 정도만 되어도 착륙이 가능하다.
4. 군사적 활용
영국 공군이 사용했던 에어스피드 호르사(Airspeed Horsa) 글라이더.
1944년에 촬영된 미 육군 공수부대의 훈련 영상
제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에는 공수부대에서 글라이더를 이용하기도 했다. 낙하산에 비해 한번에 많은 수의 장비와 인원을 수송할 수 있고, 병력이 분산될 위험성도 상대적으로 적으며 결정적으로 일회용으로 쓰고 버릴수 있을 정도로 저렴하기 때문이다. 수송기를 이렇게 썼다간 감당이 안 될 것이다.
낙하산으론 투하가 힘든 지프같은 차량을 투하할수 있었으며 심지어 테트라크같은 경전차를 공수부대와 함께 투입하여 공수전차가 탄생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하기도 했다.
글라이더가 착륙한 뒤 글라이더 조종사들은 보병으로 투입된다. 어차피 적진에 뛰어든 이상 조종사들만 따로 구출할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중 작전지역 동쪽 전선을 담당했던 영국군은 그렇게 했지만, 코탕탱 반도에서 유타해변을 지원했던 미 육군 글라이더 보병을 태운 글라이더 조종사들은 임시 지휘소로 이동해 대기했다.[5]
미 육군항공대와 영국군이 사용했던 Waco CG-4A 글라이더[6] |
전투용 글라이더를 타는 미치광이가 누구냐는 거였죠. ...난 아니야. 너냐? (꾸루룩!) 정신나간 소리같지만 우린 제2차 대전동안 실제로 허접한 글라이더에 병사들을 태웠습니다. 하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죠. (중략) 이 회사는 혹시 글라이더를 날으는 관이라고 부르지 않았까요? 글리이더 조종사들은 G자가 새겨진 휘장을 달고 다녔습니다. 공식적으로는 글라이더의 머릿글자였지만 많은 조종자들은 배짱(Guts)이라고 불렀죠.
-로널드 리 어메이 밀리터리 Q&A
군사용 글라이더 중 가장 유명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중 사용되었던 영국의 Airspeed Horsa, 그리고 미국의 Waco CG-4A 글라이더를 들 수 있다. 와코 CG-4A 글라이더는 금속 골조에다 나무, 천을 덧대어 만드는 물건이라 제작도 쉽고 제작비도 저렴했다. 무려 16개 회사에서 이 글라이더를 생산했는데, 생산 회사 목록에는 세스나 같은 항공기 회사와 포드 자동차 회사도 있었으며, 깁슨(Gipson) 냉장고 회사도 기꺼이 글라이더 생산에 참여했다. 기본적으로 13명의 무장 병력을 수송하거나, 기존 수송기로 투하하기 어려웠던 지프, 야포 등도 수송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성비가 높았다. 이 때문에 와코 글라이더는 당시 공수사단에 편제되어서 많은 활약을 했다. 노르망디 침공작전 당시 밴드 오브 브라더스로 상징되는 공수사단의 낙하산 강하가 널리 알려졌지만, 그에 못지 않은 많은 병력들이 C-47 수송기에 매달린 와코 CG-4A 글라이더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침공했다. -로널드 리 어메이 밀리터리 Q&A
이를 방어하기 위해서 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에르빈 롬멜 원수는 대서양 방벽의 일환으로 프랑스 내에 글라이더가 착륙할만한 곳에다가 4~5m 높이의 나무 말뚝을 일정 간격으로 박아놓았는데, 이것이 롬멜의 아스파라거스라고 불리게 되었다. 글라이더가 착륙 시 이 말뚝에 날개나 동체가 걸려 전복되거나 파괴됨으로써 내부 인명이나 장비들의 부상 혹은 사망, 파손을 노렸던 것. 가볍고 장갑이 없다시피한 글라이더 특성 상, 나무에만 걸려도 작살이 나기 때문에, 일단 걸리기만 한다면 말뚝 박는데 드는 적은 비용과 노력으로도 상당한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사실 일부러 말뚝을 박지 않아도, 당시 프랑스 노르망디 일대 평원은 수많은 관목숲 울타리가 가득했기 때문에[7] 노르망디에서 글라이더의 착륙은 그 자체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극히 위험한 임무였다. 그것도 모자라 말뚝 사이사이를 와이어로 연결해두거나 심지어 말뚝에 폭탄을 매달아놔서 효과를 극대화시키려 했을 정도니 글라이더의 군사적 가치를 나름 엿볼수 있는 셈. 그만큼이나 글라이더의 위험성도 커서, 단 한번의 착륙에 실패했을 경우에는 안에 타고 있던 병력 전원이 사망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도 정비사가 장군과 그가 타는 지프를 보호하기 위해 철판을 추가로 용접하고 조종사에게 말하지 않아 무게중심을 잃고 추락해 준장 1명이 사망하고 병력이 분산된 장면이 나온다. 이는 실제 사건을 각색한 것으로, 당시 101공수사단의 부사단장인 돈 프랫 육군 준장은 탑승한 글라이더가 추락할 때 마침 수송하던 지프에 치여서 목이 부러져서 사망했다. 오버로드 작전 당시 사망한 연합군 최고위 인사였다. 이렇게 위험한 일이었지만 미군 글라이더 공수부대는 낙하산 공수부대가 받는 위험수당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에야 낙하산 공수부대 위험수당의 반 정도를 받게 되었다고.
노르망디에 착륙한 에어스피드 호르사 글라이더들. 착륙 후 빠른 전개를 위해서 동체를 분리시킬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
Me 323 기간트는 영국 침공을 위해 독일군이 만들어낸 수송용 글라이더 Me 321이 원형이다.
Me 163 로켓 전투기는 글라이더를 기반으로 디자인되었다. 이륙시에는 로켓을 사용하고 활강 및 착륙은 글라이더식으로 한다.
심지어 나치 독일에선 글라이더로 요격기를 만들려는 계획도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엔 제트 엔진과 항공 기술의 혁신적인 발전으로 글라이더의 설 자리가 줄어들긴 했지만, 동체를 글라이더 형상으로 만들어 엔진이 망가지더라도 장시간 무동력 비행이 가능한 A-10과 같이 퇴출되기 보단 항공기에 글라이더의 장점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5. 모형 글라이더
동력장치 없이 나는 모형비행기를 말한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과학의 날 행사의 종목 중 하나로 글라이더 날리기 대회를 개최한다. 보통 얼레의 실을 달아서 날아가는 토우잉 방식을 이용한다. 자매품으로 고무줄과 프로펠러를 추가한 고무동력기가 있다. 최근에는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진 글라이더가 인기가 좋다.6. 관련 문서
[1] 기구나 비행선이 아닌 항공기.[2] 가장 유명한 사례 중 하나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오니숍터가 있다. 그러나 시험비행에서 다빈치가 가장 아끼던 제자가 죽은 이후로 다빈치는 글라이더에 다시는 손대지 않았다고 한다.[3] 오스만 제국의 과학자였던 헤자르펜 아흐메트 첼레비(Hezarfen Ahmet Çelebi 1609-1640)가 1632년에 바람이 세게 부는 날 갈라타 탑 꼭대기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설계한 글라이더를 개량시킨것을 타고 직접 뛰어내려서 3358m 떨어진 보스포루스 해협넘어 위스퀴다르까지 날았다는 기록도 유명하다. 다만 그는 이 실험으로 당시 파디샤였던 무라트 4세의 총애를 받았지만 "감히 알라의 질서를 어지럽히려한다!"라는 이슬람 율법학자들의 반발로 인해 결국 알제리로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풍토병으로 요절했다. 그의 글라이더의 모형과 비행장면을 묘사한 그림은 갈라타탑에 전시되어있다.[4] 안타깝게도 릴리엔탈은 신형 글라이더 시험 비행 도중 추락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5] 이는 미국과 영국이 글라이더 조종사들을 서로 다르게 분류했기 때문이다. 영국군은 글라이더 조종사들을 공수병력의 일부분으로 보았기 때문에 공수지점에서 전투하게 했고, 미군은 이들은 조종사로 보았기 때문에 본대와 조우한 조종사들을 후방으로 보냈다.[6]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에 등장하는 영국군 코만도 유닛들이 이 글라이더를 통해서 공수된다.[7] 이러한 관목 울타리는 프랑스 전역, 더 정확히는 옛 갈리아 지역의 평야 농업지대 전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본래 각 부족이나 마을, 가족 단위로 자신들이 소유한 토지의 경계를 구획짓는 울타리로써 조성된 것이다. 따라서 짧아도 수백년, 길면 2~3천년에 걸쳐 관리하면서 유지된 것이라 관목 울타리의 빽빽함과 깊게 내린 뿌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고, 불도저로 밀어버리려고 해도 쉽게 밀어버리지는 못한다고 할 정도. 하물며 활공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대한 경량화해야 하는 글라이더로 이걸 들이받으면 글라이더의 몸체건 날개건 도무지 버틸 수 있을리가 없는 것이다. 현대에도 이 울타리를 뽑고 필지를 새로 구획하기보다는 갈리아 부족 시대부터 나뉜 각 필지 단위를 그대로 유지한 채 토지거래가 이뤄질 정도인 것.(이는 정말 기술적으로 뽑을 능력이 없다기보다는 울타리 자체가 가지는 문화재적 가치와 필지 구획의 전통을 존중하는 것이긴 하지만...)[8] 원작 코믹스에서는 초창기 한정으로 빗자루처럼 생긴 로켓을 타고 다니다가 '고블린 글라이더'라는 전용 글라이더를 타고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