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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8 20:40:43

징크스/대한민국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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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통령 관련
1.1. 대통령 선거1.2. 정권교체, 정권 재창출 관련1.3. 미국 정치와의 관계1.4. 탄핵 관련1.5. 퇴임 이후
2. 국회
2.1. 국회의원 선거 공통2.2. 지역구 관련
3. 지방자치단체
3.1. 광역자치단체장3.2. 기초자치단체장3.3. 교육감3.4. 지방선거 공통
4. 기타
4.1. 일본 대지진 발생 년도에 보수정당계 참패4.2. "통합" 징크스4.3. 30년 주기로 국가장을 치르고 그 후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한다4.4. 이 외 다른 징크스

1. 대통령 관련

1.1. 대통령 선거

1.2. 정권교체, 정권 재창출 관련

민주화 이후 거대 양당은 10년 넘게 정권을 유지한 적이 없다. 소위 정권교체 10년 주기설로 알려진 징크스로, 이는 고사성어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에 비유된다. 한술 더 떠서 20대 대선에서는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5년만에 정권이 교체되기도 하였다. 또 민주화 이후 모든 정당들은 같은 당명으로 2회 이상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19]

1.3. 미국 정치와의 관계

1993년 이후로 대체로 대한민국 대통령보수정권일땐 미국 대통령민주당 소속이고 대통령이 민주당계 정권일땐 미국 대통령이 공화당 소속인 징크스가 있다.
아래의 표는 1990년대 이후 현재까지의 한미 집권 여당을 나태낸 표이다.
공화당/보수정당[]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 국민의힘 등.(굵은 글씨는 여당으로 존재했던 당.) 거의 대부분이 굵은 글씨인데, 사실상 이 결과가 나온 이유는 보수정당이 김영삼 정부 말기에 한나라당으로 바꾸고 나서 김대중-노무현 때의 야당이였던 시절에 이름을 단 한번도 바꾼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유한국당은 형식상 여당으로서의 의미가 전혀 없었다. 또한 국민신당, 바른정당 등의 분당된 당도 이곳에 포함된다.] 민주당/민주당계 정당[22]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민주당(2005년), 중도통합민주당, 대통합민주신당, 통합민주당(2008년), 민주당(2008년), 민주통합당, 민주당(2013년), 새정치민주연합, 더불어민주당 등.(굵은 글씨는 여당으로 존재했던 당.) 또한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분당된 국민의당(정확히는 중도)과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정의당 등의 진보정당도 이곳에 포함된다.]
미국대한민국
1993년 빌 클린턴 김영삼
1994년 빌 클린턴 김영삼
1995년 빌 클린턴 김영삼
1996년 빌 클린턴 김영삼
1997년 빌 클린턴(재선) 김영삼
1998년 빌 클린턴 김대중
1999년 빌 클린턴 김대중
2000년 빌 클린턴 김대중
2001년 조지 W. 부시 김대중
2002년 조지 W. 부시 김대중
2003년 조지 W. 부시 노무현
2004년 조지 W. 부시 노무현
2005년 조지 W. 부시(재선) 노무현
2006년 조지 W. 부시 노무현
2007년 조지 W. 부시 노무현
2008년 조지 W. 부시 이명박
2009년 버락 오바마 이명박
2010년 버락 오바마 이명박
2011년 버락 오바마 이명박
2012년 버락 오바마 이명박
2013년 버락 오바마(재선) 박근혜
2014년 버락 오바마 박근혜
2015년 버락 오바마 박근혜
2016년 버락 오바마 박근혜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문재인[23]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문재인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문재인
2020년 도널드 트럼프 문재인
2021년 조 바이든 문재인
2022년 조 바이든 윤석열
2023년 조 바이든 윤석열
2024년 조 바이든 윤석열
2025년 도널드 트럼프(재선) 윤석열[24]
위 표에 나온 바와 같이, 같은 계열의 정권이 집권하고 있었던 적은 1998년 2월 25일부터 2001년 1월 20일과, 2008년 2월 25일부터 2009년 1월 20일까지 당시 딱 모두 합쳐 4년 정도 뿐이었으나 2021년 1월 20일 조 바이든의 취임으로 1998년 2월 25일부터 2001년 1월 20일까지의 김대중 - 클린턴 이후 20년 만에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나란히 민주당계 정권이 수립되었다. 그리고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여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된 뒤 딱 1년뒤 대한민국 에서 치러진 제20대 대통령 선거 또한 국민의힘의 윤석열이 당선되어 승리함으로 역시 또 바로 전 미국 대선과는 반대의 결과가 다시 나옴에 따라 미국이 민주당 정권일때 대한민국은 반대로 보수 여당이 되었던 징크스가 반복되어 계속해서 이어지게 되었다. 그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고, 한국의 민주당도 5년 만에 정권을 내줌으로써 한 쪽에서 정권이 바뀌어 성향이 겹치면 다른 쪽에서 반대 성향으로 정권이 바뀌는 사례도 반복되었다.

다만 같은 계열이라도 외교적 결례가 줄거나 성향이 같은 건 아니다. 빌 클린턴-김대중 시절이 대표적 예시.

1.4. 탄핵 관련

1.5. 퇴임 이후

2. 국회

2.1. 국회의원 선거 공통

2.2. 지역구 관련

3. 지방자치단체

3.1. 광역자치단체장

3.2. 기초자치단체장

3.3. 교육감

직선제 이후 선출된 서울특별시교육감은 모두 구속되었다.

3.4. 지방선거 공통

4. 기타

4.1. 일본 대지진 발생 년도에 보수정당계 참패

일본에서 대지진[62]이 일어난 해에는 민정당계 정당이 역사적인 패배를 당한다.
그냥 패배도 아니고, 역사적인 패배를 6번이나 맞은 민정당계 정당인데, 우연의 일치로 역사적인 패배를 당한 그 해에 일본은 대지진을 맞았다. 물론 한국 경제에 일본 시장이 차지하는 부분은 상당한 수준이고, 따라서 일본이 흔들리면 우리 경제도 유동성이 강해지면서 경제적으로 큰 영향을 주는 것도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권당과 상관 없이 민정당계만 패배하기에는 확률이 매우 낮다.
한편 선거 이후로도 보수계파 내 지형이 급변했는데, 95년 패배 이후 3김정치가 다시 부활했고, 04년 패배로 이회창 및 기존 계파들이 완전히 붕괴되고 체질 변화를 해야했으며, 11년 패배는 MB계를 몰락시키고 박근혜가 라이징 했다. 그 박근혜도 16년 패배 이후 탄핵 및 파면을 당했고, 남은 잔당 및 주변 당직자들도 18년 패배로 쓸려 내려갔다. 그리고 국민의 힘으로 리브렌딩하여 정권교체를 했지만 명태균 게이트와 24년 총선 패배로 그 리브렌딩의 실체를 모두 드러내버렸다.
추가로 일본에서 짝수번째 진도 7의 대지진이 일어난 당시 대통령은 탄핵소추 및 직무정지를 당한다는 징크스도 있다. 앞서 2건의 사례에서는 대지진 전 탄핵소추가 된 경우 기각, 대지진 이후 탄핵소추가 된 경우 파면으로 갈렸다.
* 2번째 대지진 니가타 지진 7개월 전 노무현 대통령 탄핵
* 4번째 대지진 구마모토 대지진 이후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탄핵 소추파면
* 6번째 대지진 이시카와 대지진 이후 12.3 내란사태이로 인한 탄핵

4.2. "통합" 징크스

이름에 통합이 들어가는 정당은 패배한다.
이는 개연성이 존재하는데, 당명에 굳이 '통합'이라는 키워드를 왜 붙이는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이름에 통합이 들어가는 정당은 대부분 이전까지 여러 갈래로 나눠서 다툼을 벌였던 당 내의 여러 계파를 억지로 하나로 합친 형태이다. 따라서 선거 과정에서 흔히 내부총질이라 칭하기도 하는 당 내의 크고 작은 계파 갈등이 벌어지기 쉬우며, 이 과정에서 지지자들은 피로감이 심화되어 결국 지지율 하락이란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침몰하는 배를 버리고 각자도생을 시도하다 선거 날짜는 코 앞에 닥치니 다른 대안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뭉친 선거 캠프가 제대로 돌아가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일이다.

4.3. 30년 주기로 국가장을 치르고 그 후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한다

이른바 30년 주기 국가장설, 다만 일본식 장례식, 국장, 국민장 다 다르게 장례식을 치렀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자면 30년 주기로 나라의 지도자나 그에 준하는 인물을 잃고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한다가 정확할 것이다.
정치외교 측면에서 보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지도자라 불릴 만큼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군주, 대통령, 정치인이 사망할 경우 그가 가졌던 힘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에 추종세력과 반대세력이 충돌하게 되면서 대규모 유혈사태를 겪게 된다는 분석이 있다. 이는 무아마르 카다피사담 후세인이 사망한 후 평화로워질 것 같던 리비아이라크내전의 구렁텅이에 빠져들어 날이면 날마다 사상자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 더해 마거릿 대처가 사망한 후 장례기간 중 드러난 영국 국민들의 분열된 모습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상황이 하필 30년이라는 특정한 간격을 두고 나타났기 때문에... 만약 2039년에도 이러한 일이 생긴다면 괴담으로 굳혀져 갈 우려가 있다. 비슷한 예시로는 미국의 테쿰세의 저주가 있다. 이쪽은 "20년마다 0년해에 당선되는 미국 대통령은 모두 저주를 받아 임기 중 목숨을 잃을 것이다."라는 내용의 저주이다. 그런데 이쪽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저주가 약해져 가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4.4. 이 외 다른 징크스



[1] 14대 대선은 금요일에, 15대 대선과 16대 대선은 목요일에 치러졌고, 해당 대선에서 당선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은 퇴임 후 감옥에 가지 않았다. 화요일에 치러진 19대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수요일에 치러진 20대 대선에서 당선된 윤석열은 어떻게 될지 아직까지는 불명.[2] 단 현재 탄핵심판 중인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이 만약 인용되어 파면될시 이 징크스는 정부수립 이래 처음으로 깨지게 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48.6% 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3] 제12대 대통령 선거 역시 과반 이상의 득표로 다시 당선되었는데, 해당 임기는 7년 임기(당시 개헌안은 7년 단임제였으며, 1987년 6.29 선언 이후 현재의 5년 단임제로 개헌되었다.)를 모두 채우고 퇴임하였다.[4] 심지어 금산군은 충청남도지사 선거도 적중률 100%이다. 반면 옥천군은 충청북도지사 선거에서 처음부터 빗나갔다.[5] 제주특별자치도는 20대 대선에서 이재명이 승리했다.[6] 20대 대선에서 이재명이 승리했다면 최초로 같은 성씨 대통령이 3명이 되는 사례, 또한 가족관계 외의 본관이 중복되는 사례(이명박이재명 둘다 경주 이씨이다.)가 발생할 뻔했으나 윤석열이 당선되면서 다음 대선까지 기다리게 되었다. 다만 언젠가는 이 징크스가 깨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7] 이중 13대, 14대, 18대는 둘다 보수정당이 승리하였다.[8] 국회의원 선거가 4년마다 열려 대통령 선거 기간인 5년보다 1년 빨라 대통령 임기가 빨리 끝나지 않는 하에 현재 같은 숫자면 국회의원 선거를 먼저 한다.[9] 22대 총선도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했으니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22대 대선까지 연이어 승리해야 이 징크스가 깨지지 않는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이 징크스는 21대 대선에서 깨질 가능성이 높아졌다.[10] 엄밀히는 14대~17대,19대 대선 당시에는 공식적으로 집권여당은 존재하지 않았으나 편의상 대통령이 소속되었던 정당을 여당으로 간주하고 기재함.[11] 당시 민주자유당[12] 당시 한나라당[13] 당시 새천년민주당[14] 당시 대통합민주신당[15] 당시 새누리당[16] 당시 자유한국당[17] 당시 더불어민주당[18] 사실 둘은 같은 하나회 출신이지만 하나회 내부에서도 전두환계와 노태우계로 어느정도 분리되어 있었다.[19]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었다면 이 법칙이 깨졌을 것이나 이재명 후보가 낙선하여 이 법칙을 깨지 못하였다. 또한 현 여당인 국민의힘이 2027년 대선까지 당명을 바꾸지 않고 승리한다면 이 법칙이 깨지게 된다.[20]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22] 민주당(1991년),[23] 박근혜 탄핵소추 및 파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 대통령 쪽의 취임이 빠른데, 도널드 트럼프1월 20일에 취임을 했고 문재인5월 10일에 취임했다.[24] 탄핵으로 집무정지. 현재 헌법재판소 재판중이며 파면이 확정될 시 변경 가능성이 있다.[25] 참고로 이는 미국도 똑같은데, 미국은 아직 탄핵당한 대통령이 단 한명도 없으나, 이들 또한 탄핵 위기에 몰린 대통령이 있으면 그 다음 선거에서는 야당 후보가 승리하였으며 설명하자면 이렇다. 17대 앤드루 존슨(민주당) - 1868년 탄핵 위기 - 1868년 대선 공화당 율리시스 S. 그랜트 당선, 42대 빌 클린턴(민주당) - 1998년 탄핵 위기 - 2000년 대선 공화당 조지 W. 부시 당선, 45대 도널드 트럼프(공화당) - 2019년 탄핵 위기 - 2020년 대선 민주당 조 바이든 당선. 참고로 트럼프는 대선 직후인 2021년 1기 종료 직전에도 탄핵 위기에 몰렸으며 1998년 클린턴 탄핵 위기 직후 치러진 2000년 대선에서는 당시 여당인 민주당 소속 앨 고어가 득표는 이겼어도 선거인단 때문에 정권이 교체되었다.(참고로 미국은 유권자는 선거인단을 뽑고, 선거인단 538명이 대통령을 뽑는 간접선거 제도이다.) 탄핵소추안은 통과되지 않았지만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하야한 37대 리처드 닉슨(공화당) 역시 다음 대선인 1976년 대선에서 민주당 지미 카터가 당선되면서 정권이 교체되었다.[26] 노무현은 탄핵소추안이 통과되었으나 이후 기각되어 대통령직에 복직하였고, 박근혜는 직무정지 후 탄핵심판에서 재판관 전원의 만장일치 하에 탄핵되었으며, 윤석열 또한 2024년 갑작스런 계엄령으로 탄핵소추안이 가결[90]되어 직무정지 되었다.[27] 2024년 현재 생존중인 전직 대통령은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셋 뿐인데, 만약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2027년 5월 9일까지 세 사람 모두 생존한다면 21세기에 당선된 대통령의 임기마다 적어도 한번은 전직 대통령이 사망하는 징크스가 깨지겠지만 윤석열 대통령 임기 말인 2027년 1월 1일부터 5월 9일 사이에 전직 대통령 중 한명이 사망한다면 징크스가 유지된다. 그리고 2024년 12월 31일까지 전직 대통령 3명 모두 생존해있다면 2자리 연도가 12의 배수인 해에는 전직 대통령이 사망하지 않는 징크스가 생길 것이다.[28] 상반기 재보선에서 대전 서구 을 패배의 임팩트가 커서 한나라당의 패배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거기 제외하고 전체적으로는 한나라가 싹쓸이했다.[29] 대통령을 제외한 모든 선출직은 임기 중 금고 이상의 실형이나 그에 대한 집행유예형이 확정되면 당선무효이다.[30] 공성진 전 의원이 의윈직을 잃은 시점(2011년 6월 9일)이 잔여 임기가 1년 미만이었던 관계로 재보궐선거는 치러지지 않았고 19대 총선까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을의 지역구 국회의원은 공석으로 남았다.[31] 출구조사에서만 앞섰을 뿐, 개표 결과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후보에 역전당했다.[32] JTBC의 출구조사와 개표 초반에만 앞섰을 뿐, 개표 진행 과정에서 미래통합당 박진 후보에 역전당했다.[33] 다만 조은희의 경우 2022년 3월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했으며 2021년 재보궐선거 경선 3위로 자신의 인지도를 높였다.[34] 18대:갑 박영아(女)/을 유일호(男)/병 김성순(男), 19대:갑 박인숙(女)/을 유일호(男)/병 김을동(女), 20대:갑 박인숙(女)/을 최명길(男)→최재성(男)/병 남인순(女), 21대:갑 김웅(男)/을 배현진(女)/병 남인순(女), 22대:갑 박정훈(男)/을 배현진(女)/병 남인순(女). 만일 2018년 재보궐선거에서 최재성이 아닌 배현진이 당선됐다면 3개 선거구 모두 여성 의원으로 채워지면서 이 징크스가 깨졌을 것이다.[35] 예외로 13, 14, 16대 국회는 2개 선거구였다.[36] 19대 총선에서는 세곳 모두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됐으며, 세 사람 모두 19대 국회 임기 만료 때까지 당적 변경이 없었다.[37] 다만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이 4개 선거구를 독식했으나 3년 후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에게 분당을을 빼앗긴다.[38] 정영훈 전 의원은 15대 임기 도중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한 후 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3선에 도전했으나 한나라당 유성근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고(유성근은 이후 2002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한다.), 문학진 전 의원은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3선에 도전했으나 새누리당 이현재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으며, 19~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소속으로 문학진 후보를 두 번이나 누르고 당선된 이현재 전 의원은 21대 총선 미래통합당 공천 과정에서 컷오프되어 무소속으로 3선에 도전했으나 더불어민주당 최종윤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39] 분구 이전의 하남시의 현역 국회의원인 최종윤 의원은 22대 총선에 불출마 선언을 하였으며 하남시 갑에 당선된 추미애 前 법무부장관은 당내 최다선(6선) 의원인지라 국회의장에 선출될 시 기존 관례에 따라 정계에서 은퇴하여 23대 총선에는 불출마할 가능성이 높다.[40] 제종길, 박순자, 부좌현, 김남국[41] 만약 18대 총선19대 총선에서 자유선진당 최현호 후보가 출마하지 않았거나 후보 사퇴했다면 통합민주당/민주통합당 오제세 후보가 낙선하고 한나라당/새누리당 윤경식 후보가 당선되었을 수도 있었다.[42] 우제창, 이우현, 정찬민, 이화영, 최강욱, 남경필[43] 특히,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를 관할하는 지역구의 경우, 제20대 국회의원이었던 이우현과 제21대 국회의원이었던 정찬민이 연속으로 임기를 다 채우지도 못하고 의원직을 잃었다.[44] 다만 기초자치단체장의 경우에는 뽑힌 사례가 많다. 대표적으로 은수미조은희.[45] 이 4명 중 나경원을 제외한 3명은 민주당계 정당 후보였고, 이 3명 모두 오세훈에게 털렸다. 게다가 강금실박영선은 25개 모든 구에서 털렸다.[46] 김은혜를 제외하고 조배숙,임미애 후보도 2022년 지방선거에서 출마하였으나 이들은 각자 자기 당의 열세지역에 출마하였기에 애초에 당선 가능성이 매우 낮았다.[47] 인천광역시장 안상수, 대구광역시장 조해녕, 부산광역시장 오거돈[48] 다만 유정복의 경우는 7회 지방선거에서 낙마했다가 8회 지방선거에서 다시 탈환했다.[49] 3기 임기를 마치고 4회 지방선거에서 무난히 연임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막판에 이 말 한마디 때문에 판세가 뒤집히는 바람에 아깝게 연임에 실패했다.[50] 심대평 전 지사는 임기 종료 3개월 전 사퇴, 이완구 전 지사는 세종시 수정안 문제로 임기 종료 7개월전 사퇴, 안희정 전 지사는 성추행 문제로 임기 종료 3개월 전 사퇴하였다.[51] 다만 김경수를 빼면 모두 총선 및 대선 출마로 사퇴한 것이다.[52] 우근민, 신구범, 김태환, 원희룡, 오영훈[53] 국회의원 지역구도 마찬가지로, 공천 경쟁이 가장 치열하여 표가 분산되는 경향이 있다.[54] 민선 1, 2기 이원식 전 시장의 경우 3회 지방선거 때 공천결과에 불복하여 한나라당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한나라당 백상승 후보에게 낙선, 백상승 전 시장 역시 민선 3, 4기 재선 후 5회 지방선거 때 공천결과 불복 후 한나라당 탈당 후 무소속 출마했으나 한나라당 최양식 후보에게 낙선. 최양식 전 시장 역시 민선 5, 6기 재선 후 2017년 9월경 7회 지방선거 불출마 선언을 하였지만 다시 출마하겠다고 입장을 번복했는데 역시 자유한국당 공천결과에 불복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자유한국당 주낙영 후보에게 낙선했다.[55] 징크스를 깨기 위해서는 아예 9회 지방선거에 불출마하거나 9회 지방선거에서 공천을 받든 무소속으로 당선되든 3선에 성공해야한다.[56] 특히 이대엽은수미는 성남시장 재임 중 정치 극단적인 발언과 막말을 일삼았고, 일을 매우 형편없이 해서 자당 지지자들로부터도 평이 매우 나쁜 것은 물론이고, 나는 나라 팔아먹어도 한나라당을 찍어주겠다고 하는 자들만 이대엽을 지지하고, 나는 나라 팔아먹어도 더불어민주당을 찍어주겠다고 하는 자들만 은수미를 지지할 정도이다.[57] 사실 5회 6회의 경우 모두 민주당계 정당의 근소한 승리처럼 보이지만, 5회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무소속 당선자 2명 모두 민주당계 정당 출신이라는 점, 기초자치단체장과 광역의회의원에서는 패했다는 점에서 민주당의 승리로 보는 경우가 많고, 6회 지방선거에서는 반대로 광역자치단체장 전국 득표율과 기초자치단체장과 광역의회의원 당선자 수에서 새누리당이 새정치민주연합을 앞섰다는 점에서 새누리당의 근소한 승리, 무승부로 보는 경우가 많다.[58] 1회 지방선거에선 민자당, 민주당, 자민련이 비슷하게 가져갔고, 2회 지방선거에선 국민의 정부 허니문 효과로 당시 연립여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자민련이 승리했으며 3회 지방선거에선 민자당계 정당이자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대승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이 징크스대로 가려면 1회, 3회에선 민주당계 정당, 2회에선 민자당계 정당이 승리했어야 했다.[59] 미국 대통령과는 정반대로, 이쪽은 41대 조지 H. W. 부시 이후로 홀수대가 보수계(공화당), 짝수대가 진보계(민주당)에서 나오고 있다.[60] 2024년 윤석열 정부의 황당한 계엄령 선포로 9회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불리해져 이 징크스는 유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61] 덤으로 이들 중 4의 배수 지방선거(4회, 8회)에는 민자당계 정당이 70% 이상의 압승을 했다. 징크스가 계속 유지되면 2038년 12회 지선에서 민자당계 정당이 70% 이상을 가져가는 압승을 하게 된다. 혹은 현재로서는 아주 먼 미래지만 4, 8 모두 제곱수이기 때문에 2054년 16회 지선에서 민자당계 정당이 70% 이상의 압승을 할 수 있다.[62] 진도 7[63] 고종 황제의 장례식은 일제의 강요로 전통식이 아닌 일본식 장례식으로 치러졌다.[64] 장례 자체는 국민장으로 치러졌으나 당시 이승만 정부에서는 국장을 제안했었다.[65]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장이었다. 이후 국장과 국민장이 통합되어 국가장이 되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국민장을 치른 고인이 되었다.[66] 김대중 대통령은 국장이었다. 이후 국장과 국민장이 통합되어 국가장이 되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국장을 치른 고인이 되었다.[67]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전국동시지방선거. 이들 중 대선과 총선은 모두 13대부터 시작했으니 총선 횟수에서 12를 빼면 민주화 이후 몇번째 선거인지 알 수 있다. 지방선거만 보면 1991년에 시행하기 시작했지만 두번에 걸쳐 따로 치렀고 단체장도 선출을 안했기 때문에 1995년이 시작이다. 1991년 지방선거까지 넓힌다면 횟수에서 하나를 더해야 한다.[68] 18대 대선과 총선, 6회 지선[69] 20대 대선과 총선, 8회 지선[70] 대선에서는 모두 보수 후보들이 접전승을 거두었으며(게다가 당선자 두명 모두 탄핵의 길까지 섰다는 공통점도 있다.), 총선은 6번째(18대 총선), 지선은 8번째에서 허니문 효과로 압승을 거두었으며, 반대로 20대 총선과 6회 지방선거는 민주당계가 앞섰지만 둘다 새누리당과 고작 1석(각각 122석-123석, 8석-9석) 차이였다. 민주화 이후 8번째 총선인 20대 총선의 경우에는 무소속 복당을 다 감안하면 새누리당이 1당이지만(결국 다 복당하면서 제1당이 되었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비박계가 대다수 탈당하며 다시 1당을 뺏겼다.), 이때는 민주당 텃밭 호남을 기반으로 한 제3지대 정당이자 민주당계 정당에서 분당된 정당인 국민의당이 있었기에 이를 감안할 시 범민주당계 163석(더불어민주당 125석+국민의당 38석)+진보정당계 8석(정의당 6석+민중정당 2석)으로 범진보 총 171석으로 보수계가 과반이 안되는 129석을 얻으면서 보수의 참패, 진보의 승리로 보는 경향이 많다. 6회 지방선거의 경우 광역만 민주당계가 1석 앞섰을 뿐, 기초자치단체장과 광역의회의원 등은 보수계가 앞섰다.[71] 현재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이 터지면서 9회 지선과 21대 대선에서 민주당계 정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각 9번째 선거는 민주당계 정당이 승리하는 징크스도 생길 가능성이 생겼다. 민주화 이후 9번째 총선인 21대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180석을 가져가는 압승을 거두었다.[72] 후보 확정 이전에 사퇴하는 경우와 기존에 역임하던 선출직을 의무적으로 사퇴해야 할 필요가 없는 경우는 제외[73] 후보 사퇴하거나 등록 무효되는 경우는 제외[74] 기존에 역임하던 선출직을 사퇴하는 일자 기준이다.[75] 나경원(서울특별시 동작구 을), 정용기(대전광역시 대덕구), 박맹우(울산광역시 남구 을), 배덕광(부산광역시 해운대구·기장군 갑), 정미경(경기도 수원시 을), 김용남(경기도 수원시 병), 임태희(경기도 수원시 정), 홍철호(경기도 김포시), 유의동(경기도 평택시 을), 이종배(충청북도 충주시), 김제식(충청남도 서산시·태안군), 양민숙(경기도 수원시의회 사선거구)[76] 이후 김병욱 의원은 21대 총선에서 인물론으로 당선되어 재선에 성공했고, 22대 총선에서는 종부세 영향으로 인해 국민의힘 김은혜 후보에 밀려 낙선하면서 8년만에 국민의힘이 지역구를 되찾았다.[77] 공천 탈락 이후 이용섭 전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해 6회 지선 광주광역시장 선거에서 무소속 출마를 강행했지만 당시 현역 광주광역시장이었던 무소속 강운태 후보와 단일화로 후보 사퇴를 했다. 그런데 정작 강운태 후보마저 본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윤장현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78] 이후 당선된 국민의당 권은희 후보가 바른미래당신 국민의당을 거쳐 신 국민의당이 국민의힘에 흡수합당되면서 권은희 전 의원이 국민의힘을 탈당하기 직전까지는 이용섭 전 광주광역시장과 권은희 전 의원이 상대 정당 소속이 되었다. 여담으로 권은희 전 의원은 국민의힘을 탈당한 이후 22대 총선에서 무소속 당적으로 새로운미래개혁신당과 연대했다.[79] 광역자치단체장을 역임하다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면 기존에 역임하던 광역자치단체장직을 사퇴해야 하지만 국회의원은 의원직을 유지한 상태에서 대통령 선거 출마가 가능하다.[80] 그나마 득표율이 15% 이상이어서 선거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었다.[81] 8회 지선 결과 세종특별자치시장 선거는 국민의힘 최민호 후보가 당시 현역 세종특별자치시장이었던 이춘희를 꺾고 당선되었고, 경기도지사 선거는 당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갑 국회의원이었던 김은혜가 국민의힘 후보로 확정되어 의원직을 사퇴 후 출마했지만 한나라당 출신 극우 성향 유튜버 강용석의 트롤링으로 인해 출구조사에서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 김동연 후보에 밀려 낙선하면서 의원직만 날리고 말았다.[82] 이 선거 기록으로 인해 이낙연은 7번의 선거 중 첫 낙선 기록을 남겼고, 선거비용도 반액만 보전받을 수 있었다.[83] 사실 이낙연문재인 정부의 첫 국무총리로 임명되면서 2017년 5월 12일에 전라남도지사직을 사퇴했지만 사퇴 직후 치른 차기 선거였던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출마해 미래통합당 황교안 후보를 상대로 대승하면서 이 징크스를 깨는 듯 했지만 이낙연도 이 징크스를 2번은 못 피했는지 22대 총선에서는 낙선했다.[84] 역임 중인 선출직을 의무적으로 사퇴해야 하는 경우만 해당[85] 박성효는 이후 그 다음 선거에서도 뛰어 들었으나 더불어민주당 허태정 후보에게 밀려 3연패를 기록했고(6회 지방선거 당시에는 2패), 또 그다음 선거에서는 동일 지역 3번 이상 낙선자 배제로 출마하지 못하였다. 대신 같은 당 소속의 이장우가 공천받고 이후 대전시장에 당선되었다.[86] 기존의 수원시 정 선거구는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박광온 의원이 당선되었기에 지역구를 옮겨야했다.[87] 후보 확정일은 2021년 10월 10일, 도지사직 사퇴일은 2021년 10월 25일, 광역자치단체장은 대선 출마를 하려면 대선 이전에 광역자치단체장직을 의무적으로 사퇴해야 한다.[88] 기존의 성남시 분당구 갑 선거구는 2022년 재보궐선거에서 안철수 의원이 당선되었기에 지역구를 옮겨야했다.[89] 그 외에도 김은혜는 낙선 이후 2개월 반만에 윤석열 정부의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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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두 차례에 걸친 탄핵 소추안이 발의되었으며, 1차 발의는 정족수 미달로 불성립 되었고, 2차 발의에서 204인의 찬성으로 가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