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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22 14:36:23

징크스/대한민국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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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민국 대통령 관련

공화당/보수정당[]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 국민의힘 등.(굵은 글씨는 여당으로 존재했던 당.) 거의 대부분이 굵은 글씨인데, 사실상 이 결과가 나온 이유는 보수정당이 김영삼 정부 말기에 한나라당으로 바꾸고 나서 김대중-노무현 때의 야당이였던 시절에 이름을 단 한번도 바꾼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유한국당은 형식상 여당으로서의 의미가 전혀 없었다. 또한 국민신당, 바른정당 등의 분당된 당도 이곳에 포함된다.] 민주당/민주당계 정당[9]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민주당(2005년), 중도통합민주당, 대통합민주신당, 통합민주당(2008년), 민주당(2008년), 민주통합당, 민주당(2013년), 새정치민주연합, 더불어민주당 등.(굵은 글씨는 여당으로 존재했던 당.) 또한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분당된 국민의당(정확히는 중도)과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정의당 등의 진보정당도 이곳에 포함된다.]
미국대한민국
1993년 빌 클린턴 김영삼
1994년 빌 클린턴 김영삼
1995년 빌 클린턴 김영삼
1996년 빌 클린턴 김영삼
1997년 빌 클린턴(재선) 김영삼
1998년 빌 클린턴 김대중
1999년 빌 클린턴 김대중
2000년 빌 클린턴 김대중
2001년 조지 W. 부시 김대중
2002년 조지 W. 부시 김대중
2003년 조지 W. 부시 노무현
2004년 조지 W. 부시 노무현
2005년 조지 W. 부시(재선) 노무현
2006년 조지 W. 부시 노무현
2007년 조지 W. 부시 노무현
2008년 조지 W. 부시 이명박
2009년 버락 오바마 이명박
2010년 버락 오바마 이명박
2011년 버락 오바마 이명박
2012년 버락 오바마 이명박
2013년 버락 오바마(재선) 박근혜
2014년 버락 오바마 박근혜
2015년 버락 오바마 박근혜
2016년 버락 오바마 박근혜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문재인[10]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문재인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문재인
2020년 도널드 트럼프 문재인
2021년 조 바이든 문재인
2022년 조 바이든 윤석열
2023년 조 바이든 윤석열
위 표에 나온 바와 같이, 같은 계열의 정권이 집권하고 있었던 적은 1998년 2월 25일부터 2001년 1월 20일과, 2008년 2월 25일부터 2009년 1월 20일까지 당시 딱 모두 합쳐 4년 정도 뿐이었으나 2021년 1월 20일 조 바이든의 취임으로 1998년 2월 25일부터 2001년 1월 20일까지의 김대중 - 클린턴 이후 20년 만에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나란히 민주당계 정권이 수립되었다. 그리고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여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된 뒤 딱 1년뒤 대한민국 에서 치뤄진 제20대 대통령 선거 또한 국민의힘의 윤석열이 당선되어 승리함으로 역시 또 바로 전 미국 대선과는 반대의 결과가 다시 나옴에 따라 미국이 민주당 정권일때 대한민국은 반대로 보수 여당이 되었던 징크스가 반복되어 계속해서 이어지게 되었다. 도널드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고 문재인도 5년만에 정권연장에 실패하면서 한 쪽에서 정권이 바뀌어 성향이 겹치면 다른 쪽에서 반대 성향으로 정권이 바뀌는 징크스가 여전히 이어진 것이다.
* 탄핵 관련
* 탄핵소추를 당하면 그 다음 대선에서는 야당으로 정권이 교체된다.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다는 것 자체가 여러모로 그 대통령의 자질이 심하게 의심받았다는 증거인 만큼 레임덕을 피하기 어려워지기에 정권교체는 당연한 수순일수도.
* 열린우리당 소속이던 노무현탄핵 소추를 당한 후[11]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 후보 이명박이 당선됨.
* 새누리당 소속이던 박근혜탄핵 소추를 당한 후 탄핵이 되었고,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 후보 문재인이 당선됨.
* 대한민국 대통령의 비극: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불미스러운 일로 임기를 마치지 못하거나, 퇴임 후에 본인 또는 친인척의 범죄 혐의 등으로 인하여 곤욕을 치렀다. 이는 대통령이라는 막중한 자리와 책임에 있기 때문에 엄격하게 다른 사람보다도 조사받고, 친인척 범죄나 비리 의혹을 더 수사받기 때문이다. 또한 대통령이라는 직위가 대통령의 성향을 막론하고 고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자리이기에 건강이나 예후가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 이승만: 3.15 부정선거가 원인이 되어 4.19 혁명이 발발, 스스로 하야한 후 망명을 떠나 미국 하와이에서 객사.
* 윤보선: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불명예 사임.
* 박정희: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총살.
* 최규하: 신군부의 12.12 군사반란으로 인해 불명예 사임.
* 전두환: 12.12 군사반란5.18 무력진압으로 인해 실형.
* 노태우: 12.12 군사반란 참여로 인해 실형.
* 김영삼: 퇴임 후 아들의 실형 선고.
* 김대중: 퇴임 후 아들들의 실형 선고. 세 아들 모두 실형을 선고받았다.
* 노무현: 퇴임 후 친인척들과 함께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되어 검찰의 조사를 받던 중 자살.
* 이명박: 재임 중의 일로 퇴임 후 실형 선고.
* 박근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탄핵 당한 후 구속 및 실형 선고.
* 문재인: 인척인 사위에 대한 특혜채용 의혹이 제기되었고, 검찰이 이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 21세기에 사망한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은 2자리 연도가 3의 배수인 해에 사망했다. 그리고 한 해에 사망한 대통령은 1명과 2명이 번갈아 나왔다. 또한 2009년 이후로는 6년마다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이 사망했다. 그리고 21세기에 당선된 대통령의 임기마다 적어도 한번은 전직 대통령이 사망했다.
* 최규하: 2006년
* 노무현: 2009년
* 김대중: 2009년
* 김영삼: 2015년
* 노태우: 2021년
* 전두환: 2021년
* 민주화 이후 13대 대통령 선거와 13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같은 숫자마다 적어도 한번은 보수정당이 승리했다.[12] 이 징크스대로 라면 21대 총선더불어민주당이 승리했으므로, 21대 대선보수정당이 승리하게 된다.[13][14]
* 제13대 대통령 노태우 - 제13대 국회 민주정의당 승리
* 제14대 대통령 김영삼 - 제14대 국회 민주자유당 승리
*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 제15대 국회 신한국당 승리
*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 제16대 국회 한나라당 승리
* 제17대 대통령 이명박 - 제17대 국회 열린우리당 승리[15]
* 제18대 대통령 박근혜 - 제18대 국회 한나라당 승리
* 제19대 대통령 문재인 - 제19대 국회 새누리당 승리
* 제20대 대통령 윤석열 - 제20대 국회 더불어민주당 승리[16][17]
* 보수정당 후보는 대선에서 한번 낙선하면 이후에도 대통령이 되지 못한다.
* 김종필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 이후 대선에 불출마.
* 이회창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에게,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에게,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에게 패배.
* 이인제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에게,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에게 지고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홍준표에게 밀려 후보로 나오지 못했다.
* 홍준표유승민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에게 패배 후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경선에서 윤석열에 밀려 대선에 나오지 못했다.
* 반면 민주당계 정당에서는 대선에서 한번 낙선해도 이후 선거에서 당선되는 경우가 있다. 김대중문재인이 예시.

2. 대한민국 국회

3. 지방자치단체

4. 기타



[1] 14대 대선은 금요일에, 15대 대선과 16대 대선은 목요일에 치러졌고, 해당 대선에서 당선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은 퇴임 후 감옥에 가지 않았다. 화요일에 치러진 19대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은 어떻게 될지 아직까지는 불명.[2] 당시 개헌안은 7년 단임제였으며, 1987년 6.29 선언 이후 현재의 5년 단임제로 개헌되었다.[3] 심지어 금산군은 충청남도지사 선거도 적중률 100%이다. 반면 옥천군은 충청북도지사 선거에서 처음부터 빗나갔다.[4] 제주도는 20대 대선에서 이재명이 승리했다.[5] 20대 대선에서 이재명이 승리했다면 최초로 같은 성씨 대통령이 3명이 되는 사례, 또한 가족관계 외의 본관이 중복되는 사례(이명박이재명 둘다 경주 이씨이다.)가 발생할 뻔했으나 윤석열이 당선되면서 다음 대선까지 기다리게 되었다. 다만 언젠가는 이 징크스가 깨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6]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었다면 이 법칙이 깨졌을 것이나 이재명 후보가 낙선하여 이 법칙을 깨지 못하였다. 또한 현 여당인 국민의힘이 2027년 대선까지 당명을 바꾸지 않고 승리한다면 이 법칙이 깨지게 된다.[7] 미국 대통령 쪽의 취임이 빠른데, 미국 대통령은 1월 20일에 취임을 하고 한국 대통령은 2월 25일에 취임을 하다가 문재인부터 5월 10일에 취임한다.[] [9] 민주당(1991년),[10] 5월 10일(정확히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당선자로 선포한 시각)부터[11] 참고로 박근혜와는 달리 노무현은 탄핵당하지 않았다.[12] 이중 13대, 14대, 18대는 둘다 보수정당이 승리하였다.[13] 국회의원 선거가 4년마다 열려 대통령 선거 기간인 5년보다 1년 빨라 대통령 임기가 빨리 끝나지 않는 하에 현재 같은 숫자면 국회의원 선거를 먼저 한다.[14] 22대 총선도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했으니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22대 대선까지 연이어 승리해야 이 징크스가 깨지지 않는다.[15] 중간에 한나라당이 제1당을 잠시 차지했다.[16] 중간에 새누리당이 제1당을 잠시 차지했다.[17] 다만 의석 수를 보면 새누리당 122석, 더불어민주당 123석으로 거의 무승부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선거 전 새정치민주연합 분당으로 국민의당이 창당하였고, 총선에서 호남에서 선전하면서 사실상 민주당계 정당의 승리가 되었다.[18] 즉, 22대 대통령이 취임하기도 전에[19] 상반기 재보선에서 대전 서구 을 패배의 임팩트가 커서 한나라당의 패배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거기 제외하고 전체적으로는 한나라가 싹쓸이했다.[20] 다만 2023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의 경우 국민의힘이 텃밭인 울산 남구 기초의원 선거에서 패배하여 엄밀히 말하면 국민의힘의 부진 및 패배라고도 볼 수 있다.[21] 대통령을 제외한 대한민국의 모든 선출직은 임기 중 금고 이상의 실형이나 그에 대한 집행유예형이 확정되면 당선무효이다.[22] 공성진 전 의원이 의윈직을 잃은 시점(2011년 6월 9일)이 잔여 임기가 1년 미만이었던 관계로 재보궐선거는 치러지지 않았고 19대 총선까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을의 지역구 국회의원은 공석으로 남았다.[23] 다만 18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이 4개 선거구를 독식했으나 3년 후 재보궐선거에서는 민주당에게 분당을을 빼앗긴다.[24] 정영훈 전 의원은 15대 임기 도중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한 후 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3선에 도전했으나 한나라당 유성근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고(유성근은 이후 2002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한다), 문학진 전 의원은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3선에 도전했으나 새누리당 이현재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으며, 19~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소속으로 문학진 후보를 두 번이나 누르고 당선된 이현재 전 의원은 21대 총선 미래통합당 공천 과정에서 컷오프되어 무소속으로 3선에 도전했으나 더불어민주당 최종윤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25] 분구 이전의 하남시의 현역 국회의원인 최종윤 의원은 22대 총선에 불출마 선언을 하였으며 하남시 갑에 당선된 추미애 前 법무부장관은 당내 최다선(6선) 의원인지라 국회의장에 선출될 시 기존 관례에 따라 정계은퇴를 하여 23대 총선에는 불출마할 가능성이 높다.[26] 다만 기초자치단체장의 경우에는 뽑힌 사례가 많다. 대표적으로 은수미조은희.[27] 이 4명 중 나경원을 제외한 3명은 민주당계 정당 후보였고, 이 3명 모두 오세훈에게 털렸다. 게다가 강금실박영선은 25개 모든 구에서 털렸다.[28] 김은혜를 제외하고 조배숙,임미애 후보도 2022년 지방선거에서 출마하였으나 이들은 각자 자기 당의 열세지역에 출마하였기에 애초에 당선 가능성이 매우 낮았다.[29] 다만 유정복의 경우는 7회 지방선거에서 낙마했다가 8회 지방선거에서 다시 탈환했다.[30] 3기 임기를 마치고 4회 지방선거에서 무난히 연임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막판에 이 말 한마디 때문에 판세가 뒤집히는 바람에 아깝게 연임에 실패했다.[31] 다만 주69시간 노동과 노동조합 탄압으로 윤석열의 사랑(?)을 받으면서 윤핵관으로 다시 정치생명이 살아나고 있다.[32] 심대평 전 지사는 임기 종료 3개월 전 사퇴, 이완구 전 지사는 세종시 수정안 문제로 임기 종료 7개월전 사퇴, 안희정 전 지사는 성추행 문제로 임기 종료 3개월 전 사퇴하였다.[33] 다만 김경수를 빼면 모두 총선 및 대선 출마로 사퇴한 것이다.[34] 우근민, 신구범, 김태환, 원희룡, 오영훈[35] 국회의원 지역구도 마찬가지로, 공천 경쟁이 가장 치열하여 표가 분산되는 경향이 있다.[36] 민선 1, 2기 이원식 전 시장의 경우 3회 지방선거 때 공천결과에 불복하여 한나라당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한나라당 백상승 후보에게 낙선, 백상승 전 시장 역시 민선 3, 4기 재선 후 5회 지방선거 때 공천결과 불복 후 한나라당 탈당 후 무소속 출마했으나 한나라당 최양식 후보에게 낙선. 최양식 전 시장 역시 민선 5, 6기 재선 후 2017년 9월경 7회 지방선거 불출마 선언을 하였지만 다시 출마하겠다고 입장을 번복했는데 역시 자유한국당 공천결과에 불복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자유한국당 주낙영 후보에게 낙선했다.[37] 징크스를 깨기 위해서는 아예 9회 지방선거에 불출마하거나 9회 지방선거에서 공천을 받든 무소속으로 당선되든 3선에 성공해야한다.[38] 특히 이대엽은수미는 성남시장 재임 중 정치 극단적인 발언과 막말을 일삼았고, 일을 매우 형편없이 해서 자당 지지자들로부터도 평이 매우 나쁜 것은 물론이고, 나는 나라 팔아먹어도 한나라당을 찍어주겠다고 하는 자들만 이대엽을 지지하고, 나는 나라 팔아먹어도 더불어민주당을 찍어주겠다고 하는 자들만 은수미를 지지할 정도이다.[39] 사실 5회6회는 거의 무승부지만, 5회 지방선거 당시 한나라당은 민주당보다 1석이 적었고, 거기에 무소속 당선자들 2명 역시 민주당 출신이였던 데다가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모두 민주당이 앞섰기 때문에 민주당의 승리라고 보는 경우가 많고, 6회 지방선거는 광역단체장에서 새누리당이 새정치민주연합보다 1석 적었지만, 광역단체장 전체 득표율을 보면 새누리당이 근소하게 이겼고,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도 새누리당이 승리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새누리당의 근소한 승리이다.[40] 1회 지방선거에선 민자당, 민주당, 자민련이 비슷하게 가져갔고, 2회 지방선거에선 국민의 정부 허니문 효과로 당시 연립여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자민련이 승리했으며 3회 지방선거에선 보수정당이자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대승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이 징크스대로 가려면 1회, 3회에선 민주당계 정당, 2회에선 보수정당이 승리했어야 했다.[41] 대외적으로는 민주당이라는 명칭을 많이 썼다.[42] 반면 '통합을 떼고 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꾼 뒤 2009년 재보궐선거와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압승을 거뒀다.[43] 의석 수 자체는 적지 않은 편이었지만, 새누리당에 과반을 허용하여 사실상 참패였다.[44] 2020년 총선에서 원외정당으로 추락한 민생당 역시 민주통합당이라는 가명을 사용했으나 사용 불가 판정을 받았다.[45] 반면 미래통합당이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바꾸고 통합을 뗀 이후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는 압승을 거뒀으며, 이 여세를 몰아 2022년 3월의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당선과 함께 정권교체에 성공하였으며, 같은해 6월의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국민의힘이 압승을 거뒀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각종 실정 등으로 인해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또다시 참패하게 된다.[46] 다만 미래한국당은 비래대표 선거인데, 정작 비례대표는 미래한국당이 2석 차이로 근소하게 이겼다.[47] 다만 고종 황제의 장례식은 일제의 강요로 전통식이 아닌 일본식 장례식으로 치러졌다.[48] 장례 자체는 국민장으로 치러졌으나 당시 이승만 정부에서는 국장을 제안했었다.[49]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장이었다. 이후 국장과 국민장이 통합되어 국가장이 되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국민장을 치룬 고인이 되었다.[50] 김대중 대통령은 국장이었다. 이후 국장과 국민장이 통합되어 국가장이 되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국장을 치룬 고인이 되었다.[51] 우제창, 이우현, 정찬민, 이화영, 최강욱, 남경필[52] 특히,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를 관할하는 지역구의 경우, 제20대 국회의원이었던 이우현과 제21대 국회의원이었던 정찬민이 연속으로 임기를 다 채우지도 못하고 의원직을 잃었다.[53] 후보 확정 이전에 사퇴하는 경우는 제외[54] 나경원(서울특별시 동작구 을), 정용기(대전광역시 대덕구), 박맹우(울산광역시 남구 을), 배덕광(부산광역시 해운대구·기장군 갑), 정미경(경기도 수원시 을), 김용남(경기도 수원시 병), 임태희(경기도 수원시 정), 홍철호(경기도 김포시), 유의동(경기도 평택시 을), 이종배(충청북도 충주시), 김제식(충청남도 서산시·태안군), 양민숙(경기도 수원시의회 사선거구)[55] 이 선거 기록으로 인해 이낙연은 7번의 선거 중 첫 낙선 기록을 남겼고, 선거비용도 반액만 보전받을 수 있었다.[56] 사실 이낙연문재인 정부의 첫 국무총리로 임명되면서 2017년 5월 12일에 전라남도지사직을 사퇴했지만 사퇴 직후 치른 차기 선거였던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출마해 미래통합당 황교안 후보를 상대로 대승하면서 이 징크스를 깨는 듯 했지만 이낙연도 이 징크스를 2번은 못 피했는지 22대 총선에서는 낙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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