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제22대 국회의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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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1대 | }}} }}}}}} |
대한민국의 국회선거구 {{{#!wiki style="margin: -5px -10px; display: inline-table"' | <tablebordercolor=#580009><tablebgcolor=#580009> | 영등포구 갑 신길3동, 당산동, 양평동 등 永登浦區 甲 Yeongdeungpo A | }}} | |||
<colbgcolor=#580009><colcolor=#fff> 선거인 수 | 193,458명 (2024) | |||||
상위 행정구역 | 서울특별시 | |||||
관할 구역 |
| |||||
신설년도 | 1988년 | |||||
이전 선거구 | 영등포구 | |||||
국회의원 | | 채현일 |
[clearfix]
1. 개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원도심에 속하는 선거구이며 한강변 서부 생활권이다. 현재 이곳의 국회의원은 제41대 영등포구청장을 역임했었던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채현일 의원이다.옆 선거구만큼의 주목도는 덜하지만[1] 한강 벨트에 속하는 지역인만큼 여기도 나름 보수정당과 민주당이 번갈아 승패를 주고받곤 한 스윙 스테이트로, 오히려 2000년대 중후반에는 한나라당이 여기서 2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2]
다만 그 두 번의 승리의 주인공들이(고진화, 전여옥) 당내 계파 싸움에서 밀려 재선 도전도 제대로 못해보고 컷오프를 당해버려 지역구의 안정적 관리에 실패한 반면, 민주당이 그 틈을 파고들어 현재까지 4연승을 기록하고 있다.
2020년 기준 전반적으로는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편이나, 당산역 역세권 지역인 당산2동은 여의도에 인접한데다 중대형 평수 위주 아파트단지 영향으로 다소 경합양상을 보이는 편.
2. 역대 국회의원 목록과 역대 선거 결과
<rowcolor=#fff> 총선 | 당선인 | 당적 | 임기 | 비고 |
영등포구 | ||||
제헌 | 윤재욱 | [[대동청년단| 대동청년단 ]] | 1948년 5월 31일 ~ 1950년 5월 30일 | |
영등포구 갑 | ||||
제2대 | 조광섭 | [[대한노동총연맹| 대한노동총연맹 ]] | 1950년 5월 31일 ~ 1954년 5월 30일 | |
제3대 | 윤재욱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954년 5월 31일 ~ 1958년 5월 30일 | |
제4대 | 윤명운 | | 1958년 5월 31일 ~ 1960년 7월 28일 | |
제5대 | 1960년 7월 29일 ~ 1961년 5월 16일 | |||
영등포구 을[3] | ||||
제6대 | 박한상 | [[민정당|]] | 1963년 12월 27일 ~ 1967년 6월 30일 | |
제7대 | [[신민당(1967년)|]] | 1967년 7월 1일 ~ 1971년 6월 30일 | ||
영등포구 병[4] | ||||
제8대 | 박한상 | [[신민당(1967년)|]] | 1971년 7월 1일 ~ 1972년 10월 17일 | |
영등포구 갑/을[5] | ||||
제9대 | 김수한 | [[신민당(1967년)|]] | 1973년 3월 12일 ~ 1979년 3월 11일 | 영등포구 갑 |
정희섭 | [[민주공화당|]] | |||
박한상 | [[신민당(1967년)|]] | 영등포구 을 | ||
강병규 | [[민주공화당|]] | |||
영등포구 | ||||
제10대 | 박한상 | [[신민당(1967년)|]] | 1979년 3월 12일 ~ 1980년 10월 27일 | |
강병규 | [[민주공화당|]] | |||
제11대 | 이찬혁 | | 1981년 4월 11일 ~ 1985년 4월 10일 | |
이원범 | [[민주한국당|]] | |||
제12대 | 박한상 | | 1985년 4월 11일 ~ 1988년 5월 29일 | |
이찬혁 | | |||
영등포구 갑 | ||||
제13대 | 장석화 | [[통일민주당|]] | 1988년 5월 30일 ~ 1992년 5월 29일 | |
제14대 | | 1992년 5월 30일 ~ 1996년 5월 29일 | ||
제15대 | 김명섭 | [[신한국당|]] | 1996년 5월 30일 ~ 2000년 5월 29일 | |
제16대 | [[새천년민주당|]] | 2000년 5월 30일 ~ 2004년 5월 29일 | ||
제17대 | 고진화 | | 2004년 5월 30일 ~ 2008년 5월 29일 | |
제18대 | 전여옥 | 2008년 5월 30일 ~ 2012년 5월 29일 | ||
제19대 | 김영주 | [[민주통합당|]] | 2012년 5월 30일 ~ 2016년 5월 29일 | |
제20대 | [6] | 2016년 5월 30일 ~ 2020년 5월 29일 | ||
제21대 | 2020년 5월 30일 ~ 2024년 5월 29일 | |||
제22대 | 채현일 | | 2024년 5월 30일 ~ |
2.1.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영등포구 갑 영등포1동, 영등포2동, 영등포3동, 당산1동, 당산2동, 도림1동, 도림2동, 문래1동, 문래2동, 양평1동, 양평2동, 신길2동, 신길3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이득헌(李得憲) | 24,669 | 3위 |
| 25.34% | 낙선 | |
2 | 장석화(張石和) | 29,825 | 1위 |
[[통일민주당|]] | 30.64% | 당선 | |
3 | 김수일(金秀一) | 26,961 | 2위 |
[include(틀:평화민주당)] | 27.69% | 낙선 | |
4 | 류관석(柳寬石) | 8,417 | 4위 |
[include(틀:신민주공화당)] | 8.64% | 낙선 | |
5 | 권혁충(權赫忠) | 1,536 | 7위 |
[[한겨레민주당|]] | 1.57% | 낙선 | |
6 | 백철(白喆) | 2,599 | 6위 |
| 2.67% | 낙선 | |
7 | 박한상(朴漢相) | 3,333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3.42%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39,785 | 투표율 70.22% |
투표 수 | 98,164 | ||
무효표 수 | 824 |
2.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영등포구 갑 영등포1동, 영등포2동, 영등포3동, 당산1동, 당산2동, 도림1동, 도림2동, 문래1동, 문래2동, 양평1동, 양평2동, 신길2동, 신길3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김명섭(金明燮) | 32,082 | 2위 |
[[민주자유당|]] | 33.98% | 낙선 | |
2 | 장석화(張石和) | 39,408 | 1위 |
[include(틀:민주당(1991년))] | 41.74% | 당선 | |
3 | 김수일(金秀一) | 18,975 | 3위 |
[include(틀:통일국민당)] | 20.10% | 낙선 | |
4 | 백철(白喆) | 3,932 | 4위 |
[include(틀:신정치개혁당)] | 4.16%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37,245 | 투표율 69.66% |
투표 수 | 95,607 | ||
무효표 수 | 1,210 |
2.3.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영등포구 갑 영등포1동, 영등포2동, 영등포3동, 당산1동, 당산2동, 도림1동, 도림2동, 문래1동, 문래2동, 양평1동, 양평2동, 신길2동, 신길3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김명섭(金明燮) | 35,141 | 1위 |
[[신한국당|]] | 43.89% | 당선 | |
2 | 장석화(張石和) | 27,774 | 2위 |
[[새정치국민회의|]] | 34.69% | 낙선 | |
3 | 한경남(韓慶南) | 6,825 | 4위 |
| 8.52% | 낙선 | |
4 | 구창림(具昌林) | 10,310 | 3위 |
[[자유민주연합|]] | 12.87%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30,781 | 투표율 62.14% |
투표 수 | 81,271 | ||
무효표 수 | 1,221 |
2.4.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영등포구 갑 영등포1동, 영등포2동, 영등포3동, 당산1동, 당산2동, 도림1동, 도림2동, 문래1동, 문래2동, 양평1동, 양평2동, 신길2동, 신길3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고진화(高鎭和) | 29,425 | 2위 |
[include(틀:한나라당(1997~2004))] | 40.83% | 낙선 | |
2 | 김명섭(金明燮) | 33,050 | 1위 |
[include(틀:새천년민주당)] | 45.86% | 당선 | |
3 | 김현호(金賢鎬) | 3,962 | 3위 |
[include(틀:자유민주연합)] | 5.50% | 낙선 | |
4 | 권기균(權奇鈞) | 3,121 | 4위 |
[include(틀:민주국민당(2000년))] | 4.33% | 낙선 | |
5 | 박승환(朴勝煥) | 2,511 | 5위 |
[include(틀:청년진보당(1998년))] | 3.48%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36,121 | 투표율 53.46% |
투표 수 | 72,771 | ||
무효표 수 | 702 |
한나라당은 당의 386 대표주자 중 한 명인 고진화 지구당 위원장이 도전했고, 자민련은 37세의 병원장 김현호 후보, 민주국민당에서는 젊은 신진 권기균 후보가 도전장을 냈다.
대한약사회장을 지낸 현역 김명섭 민주당 후보는 오랜 지역할동과 약사회의 지원에 자신감에 차 있었다. 고진화 후보는 성균관대 총학생회장을 맡았던 80년대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한나라당을 택하면서 정치권 물갈이를 통해 새바람을 불러오겠다고 벼르고 있는 상황.
원래는 김명섭 후보와 고진화 후보가 같은 당에 있었지만 김명섭 후보가 지구당 조직을 이끌고 민주당으로 가는 바람에 고진화 후보는 조직 없이 선거를 치러야 했다.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도 고진화 후보는 한나라당 고정표에 20~30대 젊은 층을 결합시켜 돌풍을 일으켜 당선되고자 했다. 그러나 관록이 있는 김명섭 후보를 꺾기엔 역부족. 김명섭 후보는 5% 차이로 당선되어, 3선에 성공했다.
2.5.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영등포구 갑 영등포1동, 영등포2동, 영등포3동, 당산1동, 당산2동, 도림1동, 도림2동, 문래1동, 문래2동, 양평1동, 양평2동, 신길2동, 신길3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고진화(高鎭和) | 37,230 | 1위 |
| 36.96% | 당선 | |
2 | 김민석(金民錫) | 21,033 | 3위 |
[[새천년민주당|]] | 20.88% | 낙선 | |
3 | 김명섭(金明燮) | 35,584 | 2위 |
[[열린우리당|]] | 35.33% | 낙선 | |
4 | 손석모(孫錫模) | 915 | 5위 |
[[자유민주연합|]] | 0.91% | 낙선 | |
5 | 홍승하(洪丞河) | 5,963 | 4위 |
[[민주노동당|]] | 5.92%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55,056 | 투표율 65.47% |
투표 수 | 101,514 | ||
무효표 수 | 789 |
탄핵 정국이지만 김명섭 의원은 이 혜택을 크게 누리지 못했는데, 후단협 활동 전력이 있었고, 잦은 당적이동으로 인해 시민단체들이 낙천·낙선 대상에 이름을 올리는 등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새천년민주당은 김민석 전 의원이 출마했다. 김민석 후보는 오랜 학생운동 경력 끝에 영등포구 을 지역구에서 정계에 입문해 386 세대의 대표주자로 2001년 당내 대선후보 여론조사 2위를 할만큼 인기가 좋았다.
이 기세를 몰아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가 되어 이명박 후보와 맞붙었지만 크게 패했다. 그런데 16대 대선에서 정몽준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국민통합21로 옮기는 바람에 이때부터 철새 이미지가 생겨났다.
하지만 노무현 - 정몽준 후보 단일화로 인해 김민석 의원은 다시 새천년민주당에 복귀했고, 이번엔 영등포 을이 아닌 영등포 갑에 출마한 것이다. 예전 같은 인기는 떨어졌지만 아직 이름값이 있어 기대를 해 볼 수도 있는 상황.
한나라당에서는 16대 총선에서 패했던 고진화 후보가 재도전했다. 고진화 후보는 두 의원을 한꺼번에 공격하는 '철새냐 소신이냐'를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선거에 임했고, 마침 시민단체인 물갈이연대에서 고진화 후보를 당선대상으로 선정해 큰 힘을 실어주었다.
김민석과 김명섭의 표가 갈렸고, 결국 고진화 후보가 김명섭 후보를 접전 끝에 1.63% 차이로 제치고 당선에 성공한다.
2.6.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영등포구 갑 영등포1동, 영등포2동, 영등포3동, 당산1동, 당산2동, 도림1동, 도림2동, 문래1동, 문래2동, 양평1동, 양평2동, 신길2동, 신길3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김영주(金榮珠) | 34,163 | 2위 |
[[통합민주당(2008년)|]] | 42.53% | 낙선 | |
2 | 전여옥(田麗玉) | 35,151 | 1위 |
| 43.75% | 당선 | |
4 | 이정미(李貞味) | 3,352 | 4위 |
[[민주노동당|]] | 4.17% | 낙선 | |
6 | 한경남(韓慶南) | 7,072 | 3위 |
[[미래희망연대|]] | 8.80% | 낙선 | |
7 | 김문식(金文植) | 598 | 5위 |
[[평화통일가정당|]] | 0.74%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68,087 | 투표율 48.16% |
투표 수 | 80,950 | ||
무효표 수 | 614 |
이 둘은 의정활동 중에도 충돌이 잦았는데, 전여옥 의원이 고진화 의원에게 "당에서 공천도 주고 의료보험료도 내주는데 민주노동당,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놀러다니려면 차라리 나가라"라고 할만큼 서로의 성향이 크게 달랐다.
전여옥이 이 지역에 출마를 선언하자 고진화 의원은 크게 반발했지만, 결국 공천은 전여옥 의원이 받았다. 고진화 의원이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할 때 박근혜의 측근이던 전여옥 의원은 대선 막판 이명박 후보 지지를 전격 선언한 점, 그리고 당내 보수파로써 보수진영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은것으로 보인다.
고진화 의원은 탄핵 반대, 친일진상규명법 찬성, 이라크 파병반대, 개헌논의 지지 등 한나라당 당론에 어긋나는 '독자행보'를 한 점 등으로 인해 당에 미운털이 박힌 것으로 보인다.
전여옥 후보는 '네거티브 없는 선거운동'의 의지를 밝히고, '한나라당이 영등포처럼 낙후되고 어려운 분들이 적잖이 계신 곳에서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등포에 살다보니 이 열악한 여건을 제가 개선해 보고 싶은 강렬한 의지가 생겼다. 또 6년 살다보니 정 많은 곳이라 진짜 뿌리를 내려야겠다 싶었다'고 밝히며 지지를 호소했다.
영등포구 곳곳에는 "똑똑하고 능력있고 힘있는 전여옥 후보"의 플래카드가 걸렸으며, 공약으로 '관통의 철로 테크화', '자사고, 국제고, 개방형 자립고 등의 유치', '준공업 규제 완화를 통한 해제' 등을 내세웠다. 다만, 표절 의혹 등이 제기되며 타격을 입었다.
통합민주당에서는 당시 비례대표였던 김영주 의원이 도전장을 냈다.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왔던 이정미 후보까지 출마해 여성 주자들의 싸움으로 주목을 받았다.[7]
김영주 의원은 농구선수 출신으로 은행원으로 일하다가 노동에 눈을 떠, 전국금융노동조합연맹 상임부위원장으로 활동하다 정치에 입문해 여성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 문제를 제기하며 남녀고용평등법 제정에 힘썼던 인물.
김 후보의 경우 21년간 이 지역에서 살았고, 준공업지역 해제 및 개편과 최첨단 대학병원 유치, 제2구민체육센터 신축, 신안산선 지하철역 유치, 학교 시설 개선 및 외국어고 자사고 신설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주민에게서 공로패만 11개 받았던 만큼 일 잘하는 후보임을 강조했다.
이정미 후보 역시 한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조직국장을 거쳐 민노당 최고위원과 당 대변인, 당 대회 부의장을 역임했던 인물. '반값 등록금', '등록금 상한제', '대형마트 규제', '카드 수수료 인하', '여성과 아이들이 행복한 영등포'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 영등포 시장 중심 서민들을 집중 공략했다.
한편, 친박연대의 한경남 후보가 출마를 선언하면서 여당 표가 갈리게 되었다. 박사모 정광용 회장도 박사모 총동원령을 내려 반드시 한경남 후보를 뽑아 전여옥을 타도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이들은 전여옥 후보를 향해 '배신자', '표절녀', '부정한 여인' 등 극단적인 표현를 써가며 강력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여옥 타도 노력에도 불구하고 선거 결과 김영주 후보와 접전 끝에 불과 1.22%p 차이로 전여옥 후보가 힘겹게 당선되었다.
2.7.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영등포구 갑 영등포본동, 영등포동, 당산1동, 당산2동, 양평1동, 양평2동, 도림동, 문래동, 신길3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박선규(朴先圭) | 45,161 | 2위 |
[[새누리당|]] | 45.71% | 낙선 | |
2 | 김영주(金榮珠) | 52,232 | 1위 |
[[민주통합당|]] | 52.87% | 당선 | |
6 | 여세현(呂世鉉) | 1,407 | 3위 |
| 1.42%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72,505 | 투표율 57.61% |
투표 수 | 99,388 | ||
무효표 수 | 588 |
영등포구 갑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박선규 | 김영주 | 격차 |
전체 | 43.3% | 55.1% | 11.8%p |
박선규 후보는 KBS 기자 출신으로 북한 탈북자에 관해 최초로 기사를 써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종군기자 생활과 공개수배 사건 25시 등 시사 프로그램 진행도 하며 이름을 알린 후보.
또한 박 후보는 이명박 대통령에 발탁되어 청와대 대통령실 대변인실 언론2비서관과 홍보수석관실 제1대변인 등을 지내다가 제37대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되었다. 차관 활동을 하며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지원 실무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며 평창의 유치를 성공시켰다.
이렇게 경력은 좋지만 문제는 원래 박선규 후보가 양천구 갑에 공천신청을 했으나 당에서 이 지역으로 공천을 해서 갑작스럽게 출마할 곳을 변경한 것이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을 만날 기회가 적다는 것.
이에 비해 18대 총선에서 아쉽게 패했던 김영주 후보는 이후 영등포구교육환경개선 학부모포럼 고문과 한국기아대책 영등포 이사회 상임고문 등을 역임하며 지역 기반을 다졌고,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후보를 도와 영등포 선거대책공동본부장을 하며 선거를 이끈 점 등으로 지역에 뿌리를 내린 상태였다.
선거 결과 민주통합당 김영주 후보가 7% 차이로 박선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2.8.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영등포구 갑 영등포본동, 영등포동, 당산1동, 당산2동, 양평1동, 양평2동, 도림동, 문래동, 신길3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박선규(朴先圭) | 43,839 | 2위 |
[include(틀:새누리당(2012년))] | 39.75% | 낙선 | |
2 | 김영주(金榮珠) | 49,935 | 1위 |
[include(틀:더불어민주당(2015~2024))] | 45.28% | 당선 | |
3 | 강신복(姜信福) | 12,224 | 3위 |
[include(틀:국민의당(2016년))] | 11.08% | 낙선 | |
4 | 정재민(鄭宰旻) | 4,281 | 4위 |
[include(틀:정의당(2013~2021))] | 3.88%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76,855 | 투표율 62.95% |
투표 수 | 111,327 | ||
무효표 수 | 1,048 |
영등포구 갑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박선규 | 김영주 | 격차 |
전체 | 39.4% | 44.4% | 5.0%p경합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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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영등포구 갑 영등포본동, 영등포동, 당산1동, 당산2동, 양평1동, 양평2동, 도림동, 문래동, 신길3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김영주(金榮珠) | 72,445 | 1위 |
| 56.26% | 당선 | |
2 | 문병호(文炳浩) | 49,292 | 2위 |
[[미래통합당|]] | 38.28% | 낙선 | |
6 | 정재민(鄭宰旻) | 6,267 | 3위 |
[[정의당|]] | 4.86% | 낙선 | |
7 | 안성우(安省禹) | 760 | 4위 |
[[국가혁명배당금당|]] | 0.59%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87,997 | 투표율 69.20% |
투표 수 | 130,099 | ||
무효표 수 | 1,335 |
||<-5><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4ea2><bgcolor=#004ea2><tablebgcolor=#fff,#191919> 21대 총선 서울 영등포구 갑 개표 결과 ||
<colbgcolor=#eee,#353535> 정당 | 더불어민주당 | 미래통합당 | 격차 (1위/2위) | 투표율 (선거인/표수) |
후보 | 김영주 | 문병호 | ||
득표수 (득표율) | 72,445 (56.26%) | 49,292 (38.28%) | +23,153 (△17.98) | 130,099 (69.20%) |
영등포본동 | 54.65% | 40.61% | △14.04 | 67.04 |
영등포동 | 54.10% | 40.06% | △14.04 | 57.33 |
당산1동[A] | 55.21% | 38.77% | △16.44 | 68.67 |
당산2동 | 52.24% | 42.30% | △9.96 | 69.31 |
양평1동 | 58.58% | 35.30% | △23.28 | 67.76 |
양평2동 | 58.91% | 35.54% | △23.37 | 70.01 |
도림동 | 57.98% | 36.85% | △21.13 | 62.87 |
문래동 | 54.75% | 39.99% | △14.76 | 72.56 |
신길3동[B] | 53.60% | 41.93% | △11.67 | 64.21 |
후보 | 김영주 | 문병호 | 격차 | |
거소·선상투표 | 59.17% | 29.82% | △29.35 | |
관외사전투표 | 64.34% | 29.98% | △34.36 | |
국외부재자투표 | 71.33% | 24.48% | △46.85 |
영등포구 갑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김영주 | 문병호 | 격차 |
전체 | 57.0% | 38.2% | 18.0%p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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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통합당에서는 경선 끝에 인천 부평구 갑에서 넘어온 문병호 전 의원이 공천을 받고 출마했다.
정의당에서는 정재민 영등포구위원회 위원장이 또 한번 도전장을 내밀었고, 무소속으로는 김영민 연구원이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선거결과 김영주 현역의원이 넉넉히 18%p차로 당선되며 무난히 4선에 성공하였다.
김영주 후보는 거의 모든 동에서 승리하였는데, 당산2동에서만 유일하게 득표율 격차가 한 자릿수를 기록했고,[10] 나머지 모든 동에서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2.10.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영등포구 갑 영등포본동, 영등포동, 당산1동, 당산2동, 양평1동, 양평2동, 도림동, 문래동, 신길3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채현일(蔡鉉一) | 73,163 | 1위 |
| 54.53% | 당선 | |
2 | 김영주(金榮珠) | 55,913 | 2위 |
| 41.67% | 낙선 | |
7 | 허은아(許垠娥) | 5,084 | 3위 |
| 3.78%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93,458 | 투표율 70.20% |
투표 수 | 135,823 | ||
무효표 수 | 1,663 |
||<-6><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152484><tablebgcolor=#fff,#191919><bgcolor=#152484> 22대 총선 서울 영등포구 갑 개표 결과 ||
<colbgcolor=#eee,#353535> 정당 | 더불어민주당 | 국민의힘 | 격차 (1위/2위) | 투표율 (선거인/표수) |
후보 | 채현일 | 김영주 | ||
득표수 (득표율) | 73,163 (54.53%) | 55,913 (41.67%) | +17,250 (△12.86) | 135.823 (70.21%) |
영등포본동 | 53.59% | 42.51% | △11.08 | 68.78 |
영등포동 | 54.04% | 41.99% | △12.05 | 55.32 |
당산1동[A] | 53.58% | 41.21% | △12.37 | 70.87 |
당산2동 | 48.46% | 46.08% | △2.38 | 68.86 |
양평1동 | 55.94% | 38.35% | △17.59 | 68.30 |
양평2동 | 54.82% | 40.81% | △14.01 | 68.67 |
도림동 | 54.90% | 40.86% | △14.04 | 64.23 |
문래동 | 53.44% | 42.16% | △11.28 | 73.42 |
신길3동[B] | 50.34% | 45.70% | △4.64 | 65.91 |
후보 | 채현일 | 김영주 | 격차 | |
거소·선상투표 | 49.43% | 38.64% | △10.79 | |
관외사전투표 | 60.86% | 33.56% | △27.30 | |
재외투표 | 68.97% | 27.15% | △41.82 |
영등포구 갑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채현일 | 김영주 | 격차 |
전체 | 57.6% | 39.7% | 17.9%p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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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은 해당 지역구를 전략 선거구로 지정하고 예비 후보로 이미 등록한 채현일 前 영등포구청장을 2024년 2월 26일 전략 공천했다.
국민의힘에서는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 이 지역구에 출마했던 문병호 前 의원이 개혁신당으로 간 과정에서 지역구도 부평구 갑을 선택하여 무주공산이 되었으나, 김기남 前 책임당원협의회 수석부의장, 하종대 前 한국정책방송원(KTV 국민방송) 원장이 예비 후보로 등록했다.
그러다 더불어민주당의 김영주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에서 탈당하고 2024년 3월 4일에 국민의힘에 입당했으며, 2024년 3월 5일 전략공천이 확정되면서 당적을 옮겨 5선에 도전하게 되었다. 이로써 前 영등포구청장 채현일 후보 vs 현역 영등포구 갑 3선 의원 김영주 후보의 맞대결이 성사되었다.
개혁신당에서는 2024년 3월 7일 허은아 前 의원이 당에서 처음으로 전략공천을 받았다. 20년 동안 영등포구에서 살았기에 연고가 없는 건 아니지만, 원래는 동대문구 을 출마를 준비하고 있었다. 국민의힘 김영주 후보가 민주당계 정당에서만 4선을 하다 이적한 후보라는 점을 고려해 제3지대에 호의적인 개혁적 성향의 보수표를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공화당 변성근 조직부총장이 예비 후보 등록을 마쳤지만, 실제로 출마하지는 않았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시기와 조사기관 추출 표본 신뢰도 등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더불어민주당 채현일 후보가 국민의힘 김영주 후보에 비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힘이 유리한 시기의 조사 결과에서는 오차 범위 내에서 채현일 후보의 우세가, 윤석열 정부에 대한 반감과 비판이 강해지는 기간에는 오차 범위 밖 채현일 후보의 우세라는 결과가 나타났다.
개표 결과 여론조사대로 더불어민주당 채현일 후보가 12.86%p 차로 무난히 국민의힘 김영주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동별로 살펴보면 고가 아파트가 많아서 보수세가 강한 당산2동을 제외한 전 행정동에서 과반을 찍으며 국민의힘 김영주 후보에 크게 앞서 승리할 수 있었다. 또한 거소·선상투표, 관외사전투표, 재외투표 모두 완승한 것이 승리한 결과로 나왔다.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가 5%p 차로 승리했던 한강 벨트 지역임에도 굉장히 큰 격차로 승부가 갈린 원인으로는 더불어민주당 채현일 후보 본인이 과거 구청장을 역임한 후 더불어민주당이 완패한 8회 지선에서도 비록 낙선했지만 선전하는 등 구민들에게 친숙하고 평판도 좋은 인물이고, 무엇보다 국민의힘 김영주 후보가 20년을 넘게 민주당계 정당 정치인으로 활동했으면서 철새처럼 바로 당적을 옮겨 이전에 쓰던 선거 자료와 포스터를 색깔만 바꿔서 나온 것에 거부감을 가진 유권자들이 많았다는 평이 있다. #[13]
한편 허은아 후보는 비록 낙선했으나 개혁신당 내에서는 비교적 네임드이다 보니 이 선거구에서 개혁신당 비례표가 다른 지역구보다 더 많이 나오도록 유도하고 입지도 나름대로 다져놓는 효과를 내는 데에는 성공했고, 이는 아슬아슬한 차로 개혁신당 비례 2번 천하람까지 입성하는 데에도 톡톡히 도움을 주었다.
[1] 중국 출신 국적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대림동과 국회의사당&금융업무지구가 있는 여의도의 상징성도 크고, 각 당에서 지명도 높은 인물들을 지속적으로 내보내고 있다.[2] 사실 서울 서남부권(한강 이남 서부 7개 자치구)은 전통적으로 표심의 변화가 컸던 지역이어서 이곳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쪽이 서울 전체 선거구도에서 우위를 점하는 현상이 지속되어 오고 있다. 보통 민주당 텃밭이라고 인식되는 구로구, 금천구, 관악구도 보수정당 소속 당선자들을 꽤 배출해오고 있으며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오세훈 후보가 관악구를 제외한 6개구에서 5%차 안팎의 접전을 형성하고 그 중에 양천구, 영등포구에서는 승리하면서 서울시장 자리를 수성하는데 버팀목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한 2011년 재보궐 선거부터 2020년 21대 총선까지 보수정당은 서울에서 전패를 당하게 된 셈.[3] 지금의 영등포구 갑 지역은 당시 영등포구 을 선거구에 속해 있었다.[4] 지금의 영등포구 갑 지역은 당시 영등포구 병 선거구에 속해 있었다.[5] 9대 총선에서는 영등포구가 갑/을로 나뉘어 한 선거구 당 2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했고, 지금의 영등포구 갑 지역은 두 지역에 분산되어 있었다.[6] 22대 총선을 앞두고 소속 정당과의 마찰을 빚고 2024년 3월 1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3월 4일 국민의힘에 입당했기에 명목상 2024년 3월 4일부터 5월 29일까지는 국민의힘 지역구가 되었다. 다만 임기 막판에 선거를 앞두고 당적을 옮긴 것이므로 큰 주목을 받지는 못한 편.[7] 훗날 민주노동당의 후신인 정의당 대표를 지낸 그 이정미 맞다.[A] 영등포구청과 서울영등포경찰서, 코레일유통 본사 등 주요 기관들이 밀집해있는 동네.[B] 래미안 프레비뉴, 신길 센트럴 아이파크와 같은 신길뉴타운과 다세대주택들이 밀집해있는 동네.[10] 상술한대로 5투표소에서 문병호에게 약 62%를 몰아준 영향이 있었다.[A] [B] [13] 사실 비슷한 예시로 조경태 의원도 민주당에서 당시 새누리당으로 넘어갈 때 19대와 20대 선거 포스터를 색깔만 바꿔 비슷하게 하고 출마하긴 했다. 그렇지만 그는 지역구 관리가 워낙 철저하기로 유명해 부산광역시 사하구 을을 거의 자신의 왕국 비슷하게 잘 다듬어 놓은 덕에 당적을 옮겼음에도 불구하고 보수당에서 치열한 경선을 이기고 6선의 고지에 오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