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영등포구 갑) | ||||
제15-16대 김명섭 | → | 제17대 고진화 | → | 제18대 전여옥 |
역임한 직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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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7대 국회의원 고진화 高鎭和 | Ko Jin-hwa[1] | |
<colbgcolor=#808080><colcolor=#fff> 출생 | 1963년 2월 27일 |
강원도 영월군 (현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 |
사망 | 2024년 10월 22일 (향년 61세) |
인천광역시 | |
본관 | 제주 고씨[2] |
학력 | 서울개봉초등학교 (졸업) 오류중학교 (졸업) 우신고등학교 (졸업) 성균관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사회학 82 / 학사) 존스 홉킨스 대학교 국제정치대학원 (국제정치학 / 석사) 연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 박사[3]) |
종교 | 개신교 |
병역 | 병역면제(수형) |
의원 선수 | 1 |
의원 대수 | 17 |
경력 | 성균관대 총학생회장 민주연합 청년회 회장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발기인 민주당 기획조정실 전문위원 독일 나우만재단포럼 한국청년 대표 민주개혁정치모임 정년위 초대위원장 민주당 중앙위원 민주개혁정치모임 이사 민주개혁정치모임 운영위원 이부영 민주당 최고위원 보좌역 정치개혁시민연합 정치발전특별위원회 위원 민주당 서울강서을지구당 위원장 한나라당 서울 영등포갑지구당 위원장 한나라당 원내부대표 제17대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 국회의원 연구단체 한민족평화네트워크 공동대표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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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직 정치인. 제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한나라당 소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 소속 의원들과 거의 동일한 행보를 보인 것,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가 당선된 이후 소리소문없이 잠적하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2. 생애
1963년 2월 27일 강원도 영월군에서 어머니 권금희 씨 슬하 3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이후 서울특별시로 이주하여 성장하였다. 서울개봉초등학교, 서울 오류중학교, 서울 우신고등학교(6회),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82학번)를 졸업하고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교 국제정치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2009년 8월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재학 중 총학생회장을 지냈으며, 이 기간 운동권으로 활동하여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1985년 9월부터 1988년 2월까지 투옥을 당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강서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4], 신한국당 이신범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통합민주당이 신한국당에 흡수되어 한나라당이 창당되자 한나라당에 속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새천년민주당 김명섭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열린우리당 김명섭 후보, 새천년민주당 김민석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탄핵 후폭풍으로 인해 열린우리당이 유리했던 상황에서 이뤄낸 기적적인 승리. 애초에 본인이 원외여서 탄핵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기도 했고, 친 여권 표가 열린우리당 김명섭, 새천년민주당의 김민석으로 갈린 덕을 제대로 봤다.
이후 한나라당에서 원내부대표를 지냈다. 그러나 한나라당 당론과 엇나간 모습을 지나치게 많이 보였다. 당 내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고, 이라크 전쟁에 한국군 파병 반대 주장을 벌인 것은 물론, 반대 진영의 영수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칭송하고, 한나라당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반대에 대해 비판하는 등 당과 맞지 않는 진보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당 내에서 보수 성향이 짙었던 김용갑 의원에게 이념적 좌파도 못 되어 열린우리당에도 못 들어가는 시류 영합형 정치적 좌파라며 당에서 빨리 사라지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서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때는 이명박의 한반도 대운하 공약에 반대하여 창조한국당 문국현을 지지하였다. 사실 그 전에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도 참여했으나 박근혜, 이명박 두 사람만을 위한 불공정 경선이라며 중도 사퇴하기도... 경선 출마를 위해 당에 낸 선거 기탁금 2억 5000만원을 반환 받지 못한 건 덤. 아무튼 이 때문에 민주당 지지층들 사이에서는 한나라당에서의 유일한 정상인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이러한 당과 맞지 않는 진보적 활동 탓에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때 한나라당 공천에서 전여옥에 밀려 탈락하였는데, 선거 운동 기간 동안 문국현, 심상정 등 4대강에 반대하는 진보 성향의 야당 후보들을 지원하여 결국 선거를 8일 남기고 당 윤리위에서 제명 처분을 받았다.
2009년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자 강원도에서 장의위원을 지냈다.
이후 박근혜의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에 영등포 갑 선거구 공천을 신청했으나 떨어졌다. #
그리고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맞이해서 오마이뉴스의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에 출연해 진중권과 대담을 진행했다. #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갑자기 잠적하며 사실상 정계 은퇴 수순을 밟게 되었다.
2018년 1월에 모친상을 당했다.
2024년 10월 22일, 향년 6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사망 이후 그의 보좌관이었던 조계원 의원에 따르면 2년전부터 와병생활을 했다고 한다.
3. 여담
- 부고 기사에 아내와 자녀들이 없고 형제자매가 유족인 것으로 나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 고진화 전 의원이 한나라당 소속이었음에도 독자 행보를 보인 것은 본래 태생부터가 운동권 출신 정치인이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5] 고진화 의원이 정치를 시작한 시점은 1995년으로 이 시기에는 보수 정당과 민주당계 정당의 성향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았다. 민주당계 정당은 대권을 위해 보수 세력 끌어안기를 시도했고, 보수 정당은 민주계 김영삼 대통령 아래에서 진보, 중도 세력 끌어안기를 했기 때문이다. 고진화는 그 가운데에 있던 통합민주당에 입당했다가 그대로 합당 과정에서 한나라당에 잔류했고, 보수화가 이뤄진 한나라당 내에서 자기 소신을 버리지 않다가 내몰린 것이었다.[6] 실제로 통합민주당과 신한국당이 합당하고 몇년간 통합민주당 출신 인사들과 불협화음이 당내에서 잦았고 이수인, 이미경 의원은 아예 전국구 임기 도중 제명을 당했고 김홍신, 김부겸 의원도 한나라당 의원으로 당선된 이후 당내 보수 인사들과 잦은 충돌을 겪다 열린우리당으로 옮겼다. 다만 전술한 통합민주당 출신 인사들처럼 민주당으로 이적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한 선택지였을테고, 당을 옮기는것에 철새 딱지를 붙히거나 할 사람이 있지도 않았을 텐데[7], 그러지 않았던 것은 의아한 부분이다.
-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전남 여수시 을 선거구에 당선된 조계원이 그가 국회의원이었던 시절 보좌관으로 활동하였다. 고진화가 잠적한 이후에는 서로 소식이 끊겼는지 조계원도 고진화의 근황을 모르고 지냈다고 한다.
4. 소속 정당
소속 | 기간 | 비고 |
| 1996 - 1997 | 정계 입문 |
| 1997 - 2008 | 합당[8]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08 - 2012 | 제명 |
[[새누리당|]] | 2012 | 복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012 - 2024 | 탈당[9] 정계 은퇴 사망 |
5.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96 |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 서울 강서 을 | | 18,180 (14.31%) | 낙선 (3위) | |
2000 |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 서울 영등포 갑 | | 29,425 (40.82%) | 낙선 (2위) | |
2004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 | 37,230 (36.96%) | 당선 (1위) | 초선[10] |
역대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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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 | 이재오 | 우상호 | 정두언 | 노웅래 | |
마포 을 | 양천 갑 | 양천 을 | 강서 갑 | 강서 을 | |
정청래 | 원희룡 | 김낙순 | 신기남 | 노현송 | |
구로 갑 | |||||
고진화 | 권영세 | 이인영 | 김한길 | 이목희 | |
동작 갑 | 동작 을 | 관악 갑 | 관악 을 | 서초 갑 | |
전병헌 | 이계안 | 유기홍 | 이해찬 | 이혜훈 | |
서초 을 | 강남 갑 | 강남 을 | 송파 갑 | 송파 을 | |
김덕룡 | 이종구 | 공성진 | 맹형규 | 박계동 | |
송파 병 | 강동 갑 | 강동 을 | |||
이근식 | 김충환 | 이상경 | |||
* 성북 을 신계륜 의원직 상실 (2006.2.10.) * 송파 갑 맹형규 사퇴 (2006.1.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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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일보에는 Go Jin Hwa로 표기되어 있다.[2] #[3] 박사 학위 논문 : 지역통합모델의 창조적 재구성: 유럽의 경험과 동아시아의 미래(2009. 8).[4] 사실 민주당에서 내정한 후보는 노회찬이었다. 민중당 실패 이후 재야를 떠돌던 진보 인사들이 신당 창당을 시도했다가 실패하면서 그나마 성향이 비슷한 민주당에 대거 입당하여 당 내에서 활동하게 된다. 노회찬도 그 과정에서 영입된 인사였고, 고진화를 상대로 경선에서 승리해서 출마가 확정된 상황이었다. 정작 피선거권이 없었던 탓에 출마가 엎어지고 그대로 고진화가 출마하게 된 것.[5] 다만 보수정당에도 운동권 출신은 생각보다 많고(김문수,심재철,원희룡,신지호 등), 이들은 모두 보수성향의 정치인이 되었음을 감안하면 고진화는 그냥 보수정당과는 태생적으로 성향이 맞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6] 사실 좋게 말해서 자기 소신이지 당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노무현)과의 관계를 감안하면 당 내에서 당론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내부총질이나 하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7] 통합민주당 출신 인사들이 당을 옮겼음에도 철새라고 그다지 비난받지는 않았던 것처럼, 정치성향 자체가 판이하게 달라 당을 이적하는 경우엔 철새라는 비판은 별로 받지 않는다. 이 사람들처럼 의도치 않게 보수정당의 당적을 갖게 된 것일 수도 있기 때문.[8] 신한국당과 신설 합당[9] 총선 공천 탈락 불복으로 인한 탈당[10] 2008.4.1: 한나라당 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