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니엘고등학교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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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니엘고등학교 브니엘高等學校 | Peniel High School | |
<colbgcolor=#398C39><colcolor=white,#191919> 개교 | 1963년 9월 15일 |
유형 | 일반계 고등학교 (과학중점고등학교) |
성별 | 남학교 |
형태 | 사립 학교법인 정선학원[1] |
교장 | 제20대 이종진 |
교훈 | 나는 하나님과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련다. 나는 마음껏 자라며, 마음껏 생각하며, 마음껏 일하는 사람이 되련다. 나는 웃는 자와 같이 웃고 우는 자와 같이 우는 사람이 되련다. 나는 조국과 인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잊지 않는다. |
교화 | 영산홍 |
교목 | 히말라야시다 |
학생 수 | 378명 (2023.03) |
교직원 수 | 55명 (2023.03) |
관할 교육청 | 부산광역시교육청 |
주소 | 부산광역시 금정구 체육공원로 154 (구서동) |
전화번호 | 051-582-6611 (행정실) 051-582-6608 (교무실) |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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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니엘고등학교 |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동에 위치한 일반계 고등학교.
개신교 장로회 초교파[2] 계열의 학교이다. 주소상으로는 구서동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구서동보다는 선동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2020년에 과학중점학교로 선정되었다.
교명인 브니엘(Peniel)은 타나크에 등장하는 지명 고유명사로, 창세기 32장에서 야곱이 하나님과 밤새도록 씨름을 한 뒤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뵈었구나" 하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얼굴'이란 뜻으로 그곳에 붙였다고 전하는 지명이다. 교명에서도 알 수 있듯 개신교 계열 고등학교인데, 1980년대 이후 경남노회 기독교 교육학원이 해체된 이래 부산지역 고등학교 중에서도 종교색이 가장 강한 학교라고 볼 수 있다.[3]
2023년 2월 제59회 졸업생(131명)을 배출했으며 누계 졸업생은 24,283명이다.
1964년에 연산교차로 근처 (현 반도보라아파트)에서 개교하였다. 이때는 부산에서 몇 안 되는 남녀공학 고등학교인 브니엘 실업고등학교로 개교하였으며 관광과와 상업선전과로 구성된 상업계열 특성화고등학교였다. 그러다가 1968학년도부터 학과 개편으로 인문과가 신설되고, 관광과의 폐지 및 화공과가 신설되면서 브니엘 종합고등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으며[4], 1974년 부산지역 고교 평준화 당시 문교부에 의하여 일반계 남자고등학교로 지정되면서 특성화계열 학과들이 폐지되어 남녀공학 특성화고등학교에서 남자 일반계 고등학교로 강제로 전환하였다.[5] 다만 1975학년도 부터는 야간제 여자반인 2부 야간제 브니엘여자고등학교를 운영하였다. 1989년에 재단에서 현재의 위치로 학교 이전이 확정되면서, 1996년에 연산동에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고 이와 동시에 야간제 여자반을 브니엘 여자고등학교로 분리개교 하였다.[6]
개교 당초의 브니엘실업고등학교 연산동 교사 모습.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동래중학교 구 교사와 비슷한 모습이다. 당초에는 1960년대 초반에 만든 2층짜리 가건물 수준의 교사를 썼는데 중아선교회라는 선교 단체에서 지원한 자금으로 만들어진 교사였다. 이 교사는 1970년대 초반 까지 쓰다가 고교 평준화를 앞두고 일반계 고등학교로 전환하기 위해 기존의 시설 기준에 미달하는 2층짜리 교사를 헐어버리고 1972년 12월에 일반계 고등학교 시설 기준에 부합하는 5층 짜리 복식구조의 교사로 신축 하였다. 사진의 색감이 약간 이상해 보이는데, 원래 흑백 사진으로 촬영해서 물감으로 덧칠하여 칼라 사진처럼 보이게 한 것이며 칼라사진이 비쌌던 당시에는 이런식으로 칼라 사진을 흉내내는 게 일반적이었다.
1990년대 초중반 동래구 연산동 끝물 시절의 모습. 사진의 연산동 시절 2代 건물은 브니엘고등학교의 마지막 리즈시절을 상징하였다. 사진에서 왼편 건물이 브니엘고등학교이고, 오른편 건물이 지금은 폐교된 舊 브니엘중학교와 야간제 브니엘여자고등학교가 같이 쓰던 건물이다. 죠스바 교복 차림의 브니엘고등학교 학생들 말고도 말고도 뭔가 낮선(?) 교복 차림(상하의가 모두 감색 교복)의 남녀 학생들이 보이는데, 이 학생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舊 브니엘중학교의 학생들이다. 이 때의 브니엘고등학교 건물이 2대째 건물로 1972년 12월 완공, 브니엘중학교/야간제 브니엘여자고등학교 건물이 1960년대 후반에 완공되었다. 연산동 교사의 경우는 완공된지 몇년 지나지 않아서 학교 이전이 추진되는 바람에 어차피 부술 건물이라고 생각해서 철거 직전 까지 건물 관리를 제대로 안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래도 철거 직전 까지만 해도 건물의 경년 자체는 부산시내 학교 치고는 매우 적었던 편에(연산동 브니엘고 건물은 고작 23년 남짓 쓰고 철거했다고 한다.) 속했기 때문에 사실상 철거되기 직전인데도 의외로 상태가 멀쩡해 보인다 (...)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아까운 구 교사인데, 연산동 시절에는 특유의 스파르타식 교육과 좋은 대학을 잘보낸다는 학교로 소문이 나면서 일대 학부모들이 가장 선호하던 고등학교였고, 접근성이 워낙 좋고 등하교가 매우 편리하여 이러한 점에서는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지금도 학교 건물을 대수선 하는 식으로 남아 있었더라면 아마도 연산동 일대에서 분양되는 아파트 광고에서 명문학교로 강조되는 필수요소로 현재도 개근하고 있었을 것이다. 과거에 동래구에서 분양되었던 고급 아파트인 동래 럭키아파트나 우성베스토피아 아파트 홍보 자료에도 브니엘고가 있었다고 한다.[7] 학교 면적이나 시설 수준은 현존하는 학교 중에서는 2002년 이전의 부산중앙여자고등학교(브니엘중을 폐교하고 남고 건물로 귀속할경우)나 부산동중학교, 부산동고등학교(동중, 동고는 시공업자가 같은건지 건물이 거의 똑같다)와 가장 비슷한 수준이라고 하며 내부는 2010년 이전의 금양중학교와 내장재가 거의 똑같았다. 게다가 지금까지 계속 이 자리에 남아있다가 지금의 시점에서 시설의 노후화를 사유로 학교 이전을 추진한다면 요즘 들어 부산지역에서 계속 이어지는 아파트 청약 광풍 때문에 땅값을 더 쳐줬을지도 모르는 일. 게다가 2010년대를 이후로 연산동, 거제동 주변이 대규모 재건축, 재개발이 많이 되면서 자이, 래미안, 롯데캐슬, 더샾같은 좋은 아파트 들이 많이 들어서거나 들어서게 될 예정이다보니, 2016년 이후로 대규모 재건축, 재개발 물량이 끊긴 구서동 학군 보다 오히려 연산동 학군이 더 발전 가능성이 높아져 버렸다. 특히 브니엘학원이 있는 금정구 윤산측 방면은 최근들어서는 부산가톨릭대학교나 대동대학교 같은 대학교 상권 주변을 제외하면 빈집이나 빈건물도 생겨나는 등 거의 동네가 죽어가는 상황... 브니엘중, 고등학교가 있었던 연산4동도 2010년대 이후로는 재개발떡밥이 슬슬 나오고 있는 상황인걸 생각하면 지금은 그냥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연산동 시절 브니엘고 교사는 1973년 완공으로 2020년 기준으로 40년은 족히 넘겨서 그린스마트스쿨 사업을 신청할 수 있는 조건을 만족한 만큼, 만일 학교 이전을 안했다면 2020년 이후에 추진되는 그린스마트스쿨 사업 선정 대상이 되어서 신설학교 수준으로 시설을 대수선하거나 아니면 건물을 아예 내진설계가 적용된 새 건물로 개축해서 재단에서 돈을 거의 부담하지 않고도 정부 지원으로 시설을 크게 개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1988년에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대통령 공약사항으로 대학교 신설이 있었는데, 그 무렵 몇몇 중, 고등학교를 운영하던 사립학교 재단에도 전문대학 혹은 4년제 대학교 TO가 배정 되면서(이당시에는 대학설립준칙주의 이전이라 정부에서 대학교 정원을 엄격하게 통제했었다.) 브니엘 재단 또한 대학교 TO을 배정받아 가칭 브니엘신학대학교를 신설하는것이 유력해지자[8] 대학 설립이 불가능한 면적(1만2천 제곱미터)의 연산동 부지를 팔고 대학 설립이 가능한 면적(10만 제곱미터)[9]에다가 정치적으로도 유리한[10] 지금의 구서동 부지로 급하게 이전을 추진 하면서 브니엘고 이전이 완료되면 바로 대학교 건물을 착공하려 했었다는 뒷이야기가 있고, 이것이 사실상 브니엘고가 이전한 이유이자 정설로 여겨지고 있다. 중, 고등학교 부지로 쓰기에는 입지조건이 막장이지만, 대학교로 쓰기에는 이정도만 되어도 지방 사립 대학교 치고는 입지 조건이 꽤나 준수한 편에 속한 점도 있고, 더군다나 비슷한 시기에 브니엘 고등학교 재단의 먼 친척뻘이자 이웃 동래여자중, 고등학교의 오래전에 이산가족이 된 동생인 마산 창신 중, 고등학교 재단은 학교 이전사업을 통해 그 차익으로 1991년에 전문대학인 창신전문대학(현 4년제 창신대학교)을 신설 했었다. 하지만 정작 브니엘 신학 대학교는 재단 부도 사태로 설립이 이루어지지 못했고 결국 학교가 이전한 의미가 없게 되어버렸지만, 브니엘 신학 대학교가 계획대로 설립되었다면 그래도 나름대로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라인의 4년제 대학교가 되는 만큼 학생 충원률은 어느정도 되었을 테니, 브니엘 신학대학교가 종합대학으로 성장하면서 가장 노릇을 하며 재단 전체를 먹여살리면서 학교 재단의 운명이 크게 달라졌을것이다. 그리고 2018년 브니엘 신학대학교가 정식 인가를 받으려고 하는 정황이 포착되었는데, 이 기사의 내용에 따르면 브니엘 중,고등학교가 이전을 한 이유는 브니엘 신학대학교 설립 때문(대학설립 준칙주의 이전에는 대학 교지 면적을 많이 확보해야 했었다)이었다는것을 알 수 있다. # 결국 브니엘 중, 고등학교는 브니엘 신학대학교 설립을 위한 준비과정이자 밑천이었다는것이 사실로 드러났고, 지금의 말도 안되는 위치로 이전을 강행한 이유도 실은 중, 고등학교를 위하기 보다는 신학대학 설립이 주 목적이었다는 사실이다.[11] 실제로 연산동 시절 브니엘중학교는 평타 이상이었으며, 브니엘고등학교는 동래 럭키아파트 같은 고급 아파트의 학부모들에게 큰 인기를 끌 정도로 정말로 잘 나갔지만 정작 설립자나 브니엘 교단에게 떨어지는 것은 거의 없었으며, 연산동 시절 브니엘학원의 부지 면적 문제로 인하여 브니엘신학교 자체가 정식 인가를 받지 못하고 무인가 신학교 였었기 때문에 브니엘 교단의 교세 확장에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결국 현 위치로 이전하여 브니엘신학교를 모체로 한 정규 신학대학을 설립해서 브니엘학원을 브니엘고등학교 중심의 중등교육기관(연산동)에서 브니엘신학대학원대학교(가칭은 브니엘신학대학교) 중심의 고등교육기관(구서동)으로 승격하여 브니엘 교단의 교세 확장을 꾀하려 했으며, 실제로 현 위치로 이전하자 마자 브니엘신학대학원대학교가 인가받은 직후부터 브니엘신학대학원대학교가 재단 문제로 인가 취소되는 2004년 까지 브니엘학원은 고등교육기관 학교법인(대학교법인)으로써 학교법인 자체는 부산광역시교육청이 아닌 대한민국 교육부 관할 이었다고 한다.
1.1. 야간제 브니엘여고
1975년부터 브니엘고등학교에 2부 형태로 설치된 야간제 브니엘여고는 브니엘 종합고등학교 시절인 1968년부터 내려오던 여자 테니스부를 계속 존치하기를 원하던 학교 재단측과 근로청소년들을 위한 학교가 필요했던 당국과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브니엘중학교 교실을 빌려서 개설되었다.[12] 전형은 브니엘고등학교가 평준화 배정이었던 것과 달리, 2부 야간제 브니엘여고는 특성화고등학교나 특수지 고등학교처럼 학교장 전형이어서 전형에서도 큰 차이를 보였으며, 1975년 당시 부산시는 대한민국의 신발산업과 원단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고, 이 학교의 주변 지역은 조선견직 공장, 미원 공장, 금성전자 공장, 롯데공업(농심그룹) 공장, 송월타올 공장 같은 어지간한 한국인들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끝발좀 날리던 공장 이라던가, 거리가 좀 있기는 해도 당시 기준으로 같은 동래구 소재의 태광산업 공장, 태창기업 공장, 경남합섬 공장, 현대모직 공장 같은 크고 작은 공장이 많은 산업단지에다가 노동집약적 산업이 중심이었기에 이 일대는 근로 청소년들이 꽤나 많았고, 브니엘고등학교 주변에도 소규모 야간제 비정규 학교(고등공민학교, 새마을학교)들이 여러개 존재하기도 했으며, 당초에는 계성여상 야간, 동래여상(현 삼정고등학교) 야간, 부산여상 야간(1976년 현위치로 이전)과 경쟁하는 관계였다. 특히 당시에는 남존여비 사상이 워낙 강해서 집안에서 아들의 교육에는 아낌없이 투자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딸은 그냥 중학교 까지만 보내고 공장이나 버스안내양으로 보내서 집안 살림이나 남동생이나 오빠의 학비에 보태게 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야간제 여고는 그러한 남존여비 사상 때문에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할 처지에 놓인 여자 근로청소년들에게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였다.하지만 1970년대 후반 이후로 대거 등장한 야간제 산업체 부설학교들은 일반 고등학교와 동일한 학력이 인정되는데다가 공격적인 마케팅(모기업의 적극적 홍보, 등록금 무료, 교복 무료, 무료 기숙사 제공, 상급학교 진학 수월)과 전국단위 모집이라는 특혜로 근로 청소년 학생들을 싹쓸이 수준으로 유치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1978~1979년에 인근 지역에 조견여자상업고등학교와 태창여자상업고등학교 같은 야간제 산업체 부설학교가 연달아 개교한 게 꽤나 타격을 주었고, 1988년에 강남 명문 재단이기도 한 태광산업 재단이 만든 3천 명 규모의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가 강남 유명 명문학교와 동일한 퀄리티의 최고급 시설을 갖추고 공세를 벌인 것은 하나의 쓰나미와도 같았다. 더군다나 태광산업의 경우는 당시 근로청소년들이 갈 만한 회사 중에서는 근로조건이나 복리후생이 그나마 좋았던 편에 속했다. 물론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완편시 54학급 3000명)의 개교는 야간제 브니엘여고 뿐만 아니라 부산지역의 다른 여자고등학교 2부 야간 학급이나 산업체 특별학급,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었다. 게다가 1980년대 이후로 일반계 여자고등학교(금정, 학산, 대명, 사직)들이 인근 지역에 연달아 개교하면서 일반계 여자고등학교(주간반) 총 정원도 꾸준히 늘어나게 되면서 주간반 진학률도 높아지다보니, 2부 야간반은 상대적으로 천덕꾸러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말년에는 연합고사에 낙방한 성적 부진학생들로 정원을 겨우 메꾸는 신세로 추락하였고, 근로청소년들이 거의 안오다보니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요청으로 인하여 이후에는 편법으로 남는 교실에서 주간 수업을 하여 남녀공학 고등학교와 다름없이 운영되면서 아직도 브니엘고등학교가 남녀공학이라는 오해를 사게 되는 원인이 되어버린 데다가, 야간제이면서도 정작 야간 수업을 안하다보니 정작 근로청소년들은 아예 산업체 부설학교 등지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1990년대 이후로는 생활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동래구-금정구 일대의 공장들도 택지 개발로 하나둘 떠나가면서 근로청소년들도 눈에 띄게 줄어들다보니 학교 입장에서도 얼마 안 되는 근로청소년을 모집하는 것보다 성적 부진학생이나 문제아들을 모집하는 게 더 쉽다보니 성적 부진학생들이나 문제아들 위주로 학생을 모집하였고 그 때문에 학교 이미지는 갈수록 추락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2부 야간제 브니엘여고는 연산동 일대에서 공포의 대상 같은 좋지 않은 쪽으로 유명하기도 했는데 당시에는 바이킹여상(해운대 여상 現 해운대관광고등학교)과 자웅을 겨룰 정도로 유명했고, 학생들도 대부분 가정형편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서 상실감에 빠진 애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건물과 교실을 같이 쓰는 브니엘중학교 학부모들의 주된 불만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재단 측에서는 야간제 학교로서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향보다는 1978년 부터 학교 이전을 통해 새 건물을 만들어서 아예 정식 일반계 여고로 독립시키려는 방향으로 정하였는데, 이것 역시도 10년 넘게 계속 미뤄졌는데 1989년이 되어서야 겨우 확정을 지어서 18년이 지난 1996년에서야 겨우 실현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주간 승격이나 평준화 되었다고 해도 그동안의 야간학교 시절의 어둡고 칙칙한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다보니 그런 이미지는 현재도 남아있는 데다가, 현재 자녀가 고등학교 진학하거나 진학예정인 학부모 세대(1960년대 후반~1970년대 초반) 사이에서는 아직도 그 세대 사람들의 학창시절에 악명을 떨치던 어두운 이미지가 그대로 각인되어 있다. 게다가 교명과 교표 뿐만 아니라 교복도 그 시절 시금치 교복(30년 정도 쓰고 있다고 한다) 그대로인 것도 학교 이미지에 발목을 잡는다. 하다못해 비슷한 년대에 비슷한 방법으로 설립된(주간승격 시기는 크게 차이나지만) 서울 대일관광고등학교와 비교하면 학교 이미지 관리 의지가 얼마나 없는지 잘 보여주는 상황. 그로부터 이십몇년이 훨씬 지난 2018년 현재도 그 시절의 잔재(남존여비 사상 등등...)가 브니엘여고나 브니엘예고에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하였다.
그래도 야간제 브니엘여고는 부산지역 여자 테니스에서는 남녀공학 종합고 시절인 1973년에 국제대회 우승(!!) 기룩을 필두로 1980년대까지 테니스에서 정점을 찍으면서 전국구 테니스 명문이라는 족적을 남겼지만, 1982년 중아선교회 재단의 재정 지원 중단 및 1987년에 이 학교 테니스부의 창단을 주도하고 물적 인적 지원을 하였던 사실상 이 학교 테니스부의 메인 프로듀서와도 같았던 로널드 F 뒤바 이사의 작고로 인하여 1988년[13]부터 추락하기 시작하더니 1992년 이후로 라이벌 동래여자고등학교 테니스부에게 부산지역 정상을 넘겨주고 말았고, 1996년에 브니엘여자고등학교가 18년 만에서야 분리 독립하는 식으로 정식 일반계 고등학교로 개교 하면서 테니스부도 그쪽으로 넘겨주기는 했지만 1999년 브니엘학원 사태라는 쓰나미에 휩쓸리면서 야간제반으로 학교 이미지를 갉아먹으면서 까지 20년 넘게 지켜냈던 여자 테니스부를 하루아침에 그냥 날려먹었다.[14] 그래도 동래여자중고등학교 테니스부의 해체보다는 덜 억울한 게, 동래여자중고등학교 테니스부는 정점을 찍은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고 운영상 큰 문제도 없어서 계속 운영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테니스코트를 밀어버리고 부산예술중학교와 동래여고 별관을 만들겠다는 이사장의 독단적인 행태로 인하여 어처구니 없게 해체되었지만, 브니엘여고/브니엘중 테니스부의 경우는 말년에 재정난으로 몰락을 거듭하였으나 이런 와중에서도 재단 측에서는 끝까지 안고 가려고 했으나 결국 브니엘중학교 폐교 및 재단 부도 사태로 인하여 해체되었기에 막판에는 사실상 살려낼 수 없을 지경이었고 이는 어찌보면 어느정도 변명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일반계 브니엘여자고등학교는 그래도 지역내에서 평균 이상의 꽤나 준수한 학업성적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 전신이 되는 2부 야간제 브니엘여자고등학교가 워낙 좋지 않은 쪽으로 유명하기도 했고 테니스부도 결국은 건지지 못하고 흔적도 없이 날려먹는 바람에 야간제 브니엘여고는 언급해서는 안되는 흑역사로 취급하고 있고 브니엘여고 개교 기념일조차도 1975년이 아닌 1996년으로 정하면서 학교 연혁에서도 완전히 삭제함과 동시에 야간제 브니엘여고를 전신으로 인정하지 않게 되었으며, 지금도 브니엘 계열 3개 고등학교 중에서 2부 야간제 브니엘여고를 연혁에 포함시킨 곳은 한곳도 없다. 게다가 재단이 여러차례 바뀌면서 지금의 브니엘 시리즈 3개 고교와 전혀 관련이 없게된 야간제 브니엘여고를 학교 연혁으로 포함시킬 명분 조차도 없게 되었다.
2. 학교 상징
2.1. 로고
2.2. 교훈
강당 우측 출입구나 교표에 있는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라는 성경 구절이 교훈으로 가끔 오인되기도 하지만 사실 진짜 교훈은 따로 있다.1. 나는 하나님과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련다.
2. 나는 마음껏 자라며, 마음껏 생각하며, 마음껏 일하는 사람이 되련다.
3. 나는 웃는 자와 같이 웃고, 우는 자와 같이 우는 사람이 되련다.
4. 나는 조국과 인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잊지 않는다.
고등학교 교훈 치고는 굉장히 긴 편인데 아마 한국의 고등학교 통틀어서 가장 긴 교훈을 자랑할 것이다. 교훈의 경우는 같은 재단 산하의 다른 학교들도 공통이며, 교문 바로 앞에 있는 교훈석에도 적혀있다.
2.3. 교가
작사/작곡 박환철산보다 더 드높은 소망을 안고서
모였다 우리들은 사랑의 샘터로
브니엘 브니엘 온 누리에 뻗어 갈
그 이름도 믿쁘다 우리 브니엘 학원
빛나는 역사의 창조자 역사의 창조자
길이길이 빛나라 우리 브니엘 학원.
사실 엄밀히 말해서 교가 보다는 학원(學園)가라고 해야 맞는 표현이다. 브니엘 계열 학교들은 브니엘고등학교나 폐교된 브니엘중학교를 비롯하여, 이후에 신설된 3개교 까지도 학원가를 사용한다. 부산뿐 아니라 전국에서도 매우 드문 사례.
3. 특징
개교 초기에는 부산시내 특성화고등학교로 당시 박정희 정권의 산업교육진흥법(1963년 9월 19일)에 따른 특성화고등학교 육성시책에 의해 인가를 받았었던걸로 보인다. 당시 미국 중아선교회 재단에서 재정지원을 해주어서 부산시내 고등학교 중에서는 등록금이 매우 저렴하였고 장학금으로 우수 학생들을 유치하였기에 당시 최고의 인기 상고였던 부산상고, 경남상고, 진여상이나 근처의 부산전자공고(당시 부산실고) 에가기에는 집안 사정이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찾아온 학생들도 종종 있었다.[16] 하지만 이런 벌꿀로 학생들을 회유했어도 극초기에는 고등학교가 상당히 서열화 되었던 비평준화 시절이었던 만큼 지원하는 학생들이 별로 없어서 정원도 상당히 적었고 미달이 나다보니 입결은 원서만 쓰면 합격할 정도였다고 한다.[17] 그리고 초기 특성화고등학교 시절에는 기술을 그다지 잘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었다고 김성호 전 법무부 장관이 회고한 바가 있기도 하며, 1970년대 초반 까지만 해도 특성화고등학교라서 현장실습이 존재했었다고 한다. (아마도 주로 금성사(현 LG전자), 금성알프스전자(현 LG이노텍), 럭키화학(현 LG생활건강) 같은 럭키금성그룹 계열이나 조선견직, 국제상사, 태광산업, 제일제당 등지로 많이 갔던걸로 추정된다)건물도 2층짜리의 엉성한 가건물을 사용하였으며 베이비붐 세대의 진학으로 인하여 고등학교 수요가 폭증하던 당시 학교 치고는 상당히 작은 규모였던 전학년 총 18학급(1964년 개교 당초에는 12학급)에 불과하였다. 그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전교 수석에게는 중아선교회 재단의 지원으로 졸업후에 당시로써는 생소한 미국 유학을 보내주겠다는 신의 한 수를 두면서 그것을 보고 우수 학생들도 찾아오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그 시절 동문들 중에는 김성호 전 법무부장관(1974년 사법고시 합격) 같은 크게 성공한 인물도 나오는 등 개천에서 용나는 이미지도 가지고 있기는 하였다. 이런 전략은 지금의 브니엘 시리즈 학교들과 비교하면 묘하게 위화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 부산지역의 대다수 영세 사립 학교들이 산중턱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국유지를 학교부지 목적으로 헐값에 불하 받아서 학교를 만든걸 생각하면, 브니엘학원은 중아선교회의 지원으로 다른 부산지역의 영세 사학들 보다는 재정상황이 나았던 편에 속했기 때문에 아무 쓸모없는 산중턱 국유지를 헐값에 불하받는것 보다 추후 개발 가능성이 높았던 연산동 평지 사유지를 개인들로 부터 매입해서 학교를 시작할 수 있었던 점도 있었다. 사유지를 일반 개인들로 부터 매입하는건 당연히 국유지를 학교부지 목적으로 불하받는것 보다는 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 브니엘학원의 이러한 결정은 1995년 까지만 해도 희대의 신의 한 수가 되었지만...
하지만 1970년대에 들어서 암흑기가 끝나고 큰 변화가 오게 되었는데 고교평준화 정책을 앞두고 일반계 고등학교로 전환을 위하여 1972년 쯔음에 2층짜리 가건물을 헐어버리고 이듬해인 1973년부터 5층짜리 번듯한 콘크리트 건물로 신축하면서 전학년 총 30학급(인문과 15학급, 상과 15학급)으로 증편하여 완편이 되더니, 1974년에 평준화 일반계 남자고등학교로 전환 되었고 부산시내에서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의 수혜를 가장 크게 입었던 학교로 유명하였다. 특히 평준화 전환 이후~구서동 이전 이전 까지 연산동 시절의 특유의 스파르타식 교육은 부산시내에서 유명했었으며, 동래 럭키아파트[18]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타면서 큰 인기를 끌었을 정도로 사실상 부산시내의 원조 스파르타식 교육 고등학교라고 할만했다.
최고 전성기인 1980년대 초반에는 남자 주간반만 해도 총 36학급(야간제 브니엘여고 까지 합하면 54학급)으로 늘어나면서 당시 일대에서 가장 많은 정원을 자랑하는 매머드급 학교로 불리기도 했고, 주 야간 모두 합쳐서 3000명을 넘었던 리즈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폐교된 브니엘중 까지 합치면 재단내에 4500명 가까이 되었었는데 당시 기준으로 어지간한 중형 대학교 수준의 정원이었다. 심지어 당시 조중동 같은 메이져 언론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급속 성장한 브니엘학원을 사학의 신화라고 설명했고, 놀라울 정도로 학교를 빠른 속도로 성장시키는것도 모자라 수많은 학생들을 SKY와 의치한으로 성공적으로 진학시킨 구재단 설립자 박모씨를 사학계의 마이다스의 손으로 비유했을 정도로 잘 나갔었으며 일대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마이다스의 손으로 통했을 정도.
이는 1995년까지 이어졌으나, 1996년에 접근성이 좋지 못한 현재의 위치로의 이전 및 1999년 브니엘학원 사태로 인하여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감축 크리를 당하는등 과거의 명성은 거의 잊혀져가고 있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1970년대 중후반~1980년대 당시에 고등학교를 다녔던 세대에게 있어서는 의외로 이미지가 좋은 학교이기도 하다. 믿기 힘들겠지만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 중아선교회 재단에서 지원을 해줘서 그당시에는 오히려 부산지역 사립고등학교 중에서는 대기업 사학이나 대학 재단 계통 사학 제외하면 재정이 넉넉한 편에 속했던 시절도 있었다. 1980년대 최고 전성기때는 4학군 사립 남자고등학교 중에서 재단이 가장 부유한 나름 알부자 재단이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쫄딱 다 날려먹고 재정난이 심각한 부실사학의 대명사로 추락해버렸지만...
그 이후로도 제대로된 재단을 만나지 못하고 이리저리 표류되는 상태가 되고 말았는데, 이후 재단에서 받는 취급도 참으로 암울해서 재단에서 브니엘고등학교는 예전 연산동 시절처럼 적극적으로 밀어주지 않고 사실상 팔짱만 낀 상태로 방조하거나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보니 이제는 같은 재단의 브니엘 예술고등학교가 기함으로 자리잡아서 더 유명해질 지경이 되어버렸고, 브니엘예술고등학교=브니엘고등학교로 오인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일부 연산동 시절의 동문들이나 나이 많으신 어른들 중에서는 아직도 브니엘고등학교가 예술고등학교로 전환했다고 오인하는 경우도 많은듯[19]... 문제가 많은 재단에다가 영 좋지 못한 입지조건 때문에 금정구 고등학교 중에서는 학생들 사이에서 선호도가 낮아 금정구에서 학생수 감축대상 1순위에 처해있는 열악한 현실이다. 연산동 시절 브니엘고등학교 총 정원은 믿기지 않겠지만 주간반만 쳐도 36학급에 무려 2000명 이상이었고, 현재의 건물은 그보다 더 많은 정원(최소 36학급)을 받아들이기 위해 만들었으니 2000명 이상의 사용을 상정하고 만들었고 건물 규모 자체는 연산동 시절보다 훨씬 커졌다. 하지만 2016년 현재는 27학급으로 감축이 추진되는데다가 총 정원이 653명에 불과하다보니 건물 설계 인원의 3분의 1도 못채워서 시설이 펑펑 남아돌 지경이다. 그래도 콩나물 시루 학교보다는 훨씬 낫지만, 학교 입장에서는 곤란한 일이다. 연산동 시절에 쓰던 건물도 1973년에 완공된 건물[20]이라 학교가 이전되던 1996년 당시로써는 그리 오래되었다고 보기도 힘들 정도였는데도[21] 불구하고 무리하게 이전을 추진하다가 얻은 결과는 너무나도 비참하며, 그야말로 비운의 고등학교라고 할 수 있다. 예전 브니엘 재단 시절에 무리하게 학교를 이전하거나 미네랄 멀티를 증설하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건실하게 운영하는 길을 택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2007년에는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입시 성적을 거둔 덕분에 학교의 앞날이 크게 개선될 거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하면서 구성원들을 들뜨게 만들었으나# #, 정작 학교를 운영하던 신재단 측에서는 이러한 여세를 계속 몰고가서 적극적으로 주민들에게 홍보하여 이 학교를 다시 일으킬 생각이 전혀 없었다. 결국 이 당시 입시 돌풍의 주역이 되었던 3학년 교사들을 모조리 차출해서 브니엘국제예술중학교를 신설하는 데 써먹는 바람에[22] 결국 이것 때문에 신재단과 총동창회의 관계가 상당히 험악해지고 말았고, 당시에는 브니엘국제예술중이 브니엘고 오른편의 도서관 건물(이것도 사실 브니엘고의 별관으로 만든 건물이었다)에 있다보니 브니엘고 학생들이 브니엘국제예술중 학생들에게 물풍선이나 우유, 분필을 던지는 식으로 브니엘국제예술중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듬해인 2008년 입시 결과는 언재 그랬랴는 듯이 원점회귀 (...) 이 시절에 신재단이 독단적으로 국제예술중학교 신설을 강행하는 것보다는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말처럼 여세를 몰고가면서 브니엘고등학교를 적극 밀어줬다면 지금처럼 금정구에서 계속 비호감 이미지로 남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과거의 명성을 어느 정도 되찾았을 것이다. 그리고 부산광역시 교육청에서도 브니엘재단 측에 중학교 운영에서는 되도록이면 철수(브니엘예술중 폐교)하는 것을 권했다고 한다.[23] 한마디로 다시 4학군의 명문으로 복귀할 기회가 주어졌으나 갑자기 재단이 바뀌고 신재단의 횡포로 인하여 애꿎은 브니엘고등학교만 간이고 쓸개고 다 빼먹히고 날벼락 맞아버린꼴.
게다가 정선재단의 이사장은 학교가 망하는 와중에도 정치판을 기웃거리면서 빈축을 샀다.
결국 신재단인 정선재단도 이제는 설립자의 승소로 인하여 쫓겨나는 신세가 될 것 같았고, 그 정선재단 이사장마저도 법원 결정을 따르겠다고 하면서 사실상 백기를 들어버린 상황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브니엘국제예술중학교조차도 최근에 법원의 정의구현(...)을 2연속 콤보로 당하고 빡친 부산광역시교육청이 부여한 수많은 핸디캡과 조리돌림을 당하면서 사실상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처지에 놓이는 바람에 신재단의 막장 행각은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종식되고 말았다. 그리고 문제의 신재단은 믿기지 않겠지만 2017년에
인터넷상에서는 무시무시한 얼차려 짤방[24]으로 외부인들에게 잘 알려졌던 학교 였으나, 그런 무시무시한 이미지와는 대조되게 사실 1990년대 ~ 2000년대 기준으로는 사립 고등학교 였음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복장규정이나 두발규정 같은 교칙이 생각보다는 널널한 데다가 같은 4학군 내의 다른 고등학교에 비하면 교사들이 학생들을 빡세게 잡는다거나 그런 점은 별로 없었고 그당시 사립 고등학교 치고는 체벌이 매우 적은 편에 속했으며 어지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징계를 내리는 경우도 거의 없었을 정도로 좋게 말하면 학생들에게 관대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두발 규정에 걸렸다고 해도 다른 고등학교에서는 비일비재했던 속칭 바리깡으로 고속도로 개통 이라던가 매타작 같은 건 별로 없었고 선생님이 장난스럽게 머리 좀 깎고 오라 수준으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보니 교칙 문제로 인한 불만은 적었고 이러한 점에서는 의외로 재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었다. 그리고 같은 4학군 내의 다른 고등학교들과는 달리 선후배간의 똥군기[25] 같은것도 거의 없고 선후배간의 관계는 비교적 화기애애했던 수준이다 보니, 학교 분위기가 재단 문제 때문에 어수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리 빡세지는 않아서 학교생활이 나름대로 편한 구석이 많았던 학교이기도 했다. OT 때 다른 학교들처럼 선후배간의 그러한 것으로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일은 없었고, 선생님들에 의하여 편안한 분위기로 진행되어서 의외로 놀란 학생들도 많았을 정도. 일반적인 선후배 관계 또한 다른 4학군 남자고등학교에 비하면 많이 유화된 편에 속했다.[라고]
이렇게 탈도 많고 문제도 많던 브니엘고등학교가 2020년 부산시 교육청에 의해 과학중점학교로 선정되면서 많은 기대를 모아 과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주목하였으나, 실질적으로 2021년 개설된 과학중점반(2021년 기준 2학년 3반) 학생 수는 13명으로, 사실상 제대로된 운영이 불가능에 가까운 상태이다. 그로 인해 브니엘고 측은 2021년 한 해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과학중점반 학생을 모집하지 않겠다는 비공식적인 발표를 하며 학생들에게 '1년짜리 과중'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고 만다.
글로컬사회 교과중점학교는 2021학년도 신입생부터 적용이며(2학년은 프로그램의 혜택은 받되 의무는 없음.), 개방형 교육과정이라 특정 학급을 개설하는 것은 아니다. 이뿐만 아니라 브니엘고는 AI(교과) 중점 학교로 선정되어(2021년 기준 2학년 4,5반 일부 학생)(...) 컴퓨터공학과와 같은 AI 관련 학과 지망생과 일부 공대 지망생들이 해당 학급에 배정받도록 하였다. 그러나 과중이 1년만에 해체되는 와중에 과연 AI(교과) 중점이 존치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약간의 우려가 든다.(참고로 AI 교과 중점 학급의 인원 수는 14명이다....)
마지막으로 브니엘고에서 문과 학생들을 위한 중점으로(...)글로컬 중점 학교로 선정되어 국제 정치와 같은 국제 계열 전문 과목들이 개설되었다. 차후 입시결과에 따라 브니엘 계열 학교가 위태로울 수도 있는 상황에서 학생들은 본인들을 실험쥐로 여기고 있다고 여길 정도로 중점 학급 취득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 있는 한편, 브니엘고 학생들 대부분이 중점 학급에 배정받은 것에 따라, 특색있는 학교가 될 수도 있다는 일부 긍정적인 입장도 있다.3.1. 학교 생활 및 하루 일과
우선 2018학년도를 기준으로 작성한다.등교는 2024년도 기준으로 '오전 8시' 40분까지가 원칙이다.
1교시 | 9:00~9:50 |
2교시 | 10:00~10:50 |
3교시 | 11:00~11:50 |
4교시 | 12:00~12:50 |
점심시간 | 12:50~13:50 |
5교시 | 13:50~14:40 |
6교시 | 14:50~15:40 |
7교시 | 15:50~16:40 |
7교시까지가 본 수업이고 8교시는 보충수업 및 자습이다.
청소시간 및 종례 16:40~17:00
여기서부터 학생들의 선택에 따라 엇갈리는데 브니엘고등학교의 야간자율학습은 원칙적으로 자율이다. 그러니까 학원이나 개인 사정 등으로 나가는 학생들은 미리 담임선생님에게 말하고 나가도록 하자. 물론 이것은 반마다 다르다. 8교시가 끝나면 교문 앞에 스쿨버스와 시내버스, 마을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야간자율학습 [28]
19:00~20:50(3학년은 21:50분까지, 희망하는 1,2학년도 포함)
3.2. 시험
무난한 편이라고 한다. 타 학교와 비슷하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까지만 해도, 그래도 한때(연산동 시절)는 부산 1위 일반계 고등학교라는 자존심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었는지 금정구 내에서는 시험을 어렵게 내는 것으로 유명했다. 특히 연산동 시절에는 시험 문제가 정말로 어렵기로 4학군 내에서 악명이 자자했었으며, 4학군 일대 학원강사들의 주된 연구대상이 되었을 정도였었다.2020년 과학중점학교로 전환되며 이과과목 난이도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었고, 실제로 수학 과목은 난이도가 비약적 상승하였다. 또한 과학 과목의 경우, 과학중점학교 지정 이전의 시험 기출문제와 과학중점학교 지정 이후의 문제의 질적 수준 차이가 체감가능할 정도이다. 시험 스타일은 초고난도와 저난도 문제가 없고, 중난이도-고난도의 계산을 요하는 문제의 다량 분포를 통해 문제의 정오도 정오이나 무엇보다 시간이 부족하게끔 유도하는 시험.
다만, 이러한 경향이 지속되지는 않았다.
3.3. 학교 프로그램
학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의 대부분이 인성함양에 중점을 두고 있다.학교와 컴패션이 결연을 맺거나[29], 매주 토요일 시청 광장에서 열리는 밥퍼 나눔 봉사활동을 가거나, 지역 교회인 이삭교회와 금정구 자원봉사센터와 연계하여 매주 금요일마다 사랑의 도시락[30]을 배달하는 등의 프로그램 과 탈북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장대현 학교와의 자매 결연등의 프로그램(통일포럼)을 실시하고 있다.
3.4. 교통
- 교통이 매우 불편하다.
주변의 정규 대중 교통수단이 배차간격 1시간에 단 1대(그것도 카운티 딸랑 1대)로 운영되는 금정3-1번 마을버스가 전부. 태평양아파트, 동래여자고등학교 및 금정구청 방향으로 2km 정도 걸어 나와야 시내버스 구경을 할 수 있을 정도다. 그 외에 금정3번이 지원운행해 주는 시간대가 있긴 하지만..... 그 덕분인지 지금도 히치하이킹 때문에 말이 많다. 과거에 36번 버스나 148-1번 버스를 브니엘고교 근처까지 연장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번번히 무산되었다. 그러던 2016년 3월 12일 301번 노선이 양산(웅상) 구간을 전면 철수하고,[31] 부산 구간으로만 노선을 조정하여 노포동공영차고지~부산대학교~브니엘고교 간으로 변경하여 운행한다. 배차간격은 30분으로 고질적인 교통 불편 문제가 어느정도 해소될 전망. 브니엘고교 측은 178번이 폐지된 2008년 이후 약 8년 만에 시내버스가 다시 들어가는 셈이다. 하지만 178번이 배차 간격 90분의 있으나 마나 한 노선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학교가 이전한지 20년이 지나고 나서야 시내버스라고 할만한 노선이 들어오는 셈. 사실 이 학교 재단을 인수했다가 지금은 사실상 쫓겨난 신재단(정선재단)의 경우는 위치가 좋은 신도시 같은 곳으로 이전해서 교통문제를 한큐에 해결 가능한 재정능력이 충분히 있었으며 이사장 처가 윤씨 집안이 중소업체기는 해도 건설업도 하다보니 재단 자체능력으로 학교건물을 신축하는 것도 가능했었지만, 이놈들은 학교에 돈 10원 쓰는 조차도 아까워 하는 수전노 재단이다 보니 그런 건 당연히 없었다.
결론적으로, 301번 버스가 약 30분마다 한 번씩 / 마을버스 3-1이 약 1시간 간격으로 온다. 그래도 등하교 시간 때는 마을버스 3번도 지원 운행하여서, 바로 앞에서 버스가 기다리기도 한다. 여담이지만 301번 버스 노선의 투입으로 현재 아이러니 하게도 한때 모기업이었던 정선재단(온종합병원) 보다 삼신교통이 사실상 학교에 넘사벽 수준으로 더 많은 기여를 한 기업이 되어 버렸다. 2023년 9월 1일 부터 십수년간 운행해왔던 금정3번의 브니엘고 통학지원노선이 폐지되었다. 부산외국어대학교의 셔틀버스 운행으로 전환되어 완전히 부산외대 위주로만 운행하게 되었기 때문.
구서IC사거리(금정문화회관)에서 약 1km떨어져 있으며 동래여자고등학교, 브니엘예술고등학교방면으로 걸어서 약 10~20분 정도 걸린다. 도시철도 1호선 구서역에서 약 1.5km 거리이며 걸어서 약 20~25분 정도 걸리며 마을버스 3-1번이 구서역까지 간다.( 차로는 5~10분 정도 소요)
3.5. 교복 및 기타 특징
- 4학군 사립 남자고등학교 아니랄까봐 교복이 매우 특이하기로 유명한데 잊을 만하면 각종 유머사이트에 올라오기도 한다. 베이지색 바지와 남색 블레이저 상의, 붉은색 가디건이라는 배색으로 인하여 일명 죠스바 교복으로 불리는데 부산시내 고등학교 중에서는 학교장 재량으로 교복 재착용이 허용되었을 당시 첫타자로 1986년 2학기에 도입되어(교복 디자인은 당시 재직하던 미술교사가 하였다. 이는 형제학교인 브니엘여고 또한 공통.) 2021년인 올해 기준으로 35년간 쓰이고 있는 4학군에서 가장 유서깊은 교복으로 4학군 4총사 교복(브니엘고등학교, 지산고등학교, 용인고등학교, 동인고등학교) 중에서 제일 먼저 나온 원조 격이다. 학생들이 바지를 입고 다니지 않는 것으로 오해한 어느 주민이 경찰에 신고한 해프닝도 있었다고 한다.
사실상 입으나 벗으나 똑같다하복의 경우는 춘추복/동복 와이셔츠에서 소매만 반팔로 만든 정도. 1986년 도입 당시에는 상당히 미래지향적인 교복이라는 평을 들었고 4학군내 남고에서 유일하게 교복을 입는 학교라서 특히 학부모들이 좋아했으나, 35년이 지난 2021년 현재의 시점에서는... 여담이지만 형제학교인 브니엘예고가 신형 교복을 짧은 주기로 교체해서 쓰는데 브니엘 일반계고는 남고, 여고 둘 다 구형 교복을 30년 넘게 써서 재단에서 차별한다고 생각하는 애들이 예나 지금이나 간간이 보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학교 내부 사정을 비교해 보면 그런 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실상은 그냥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일 뿐이며 그쪽은 사실 사건 사고가 잦다보니 그걸 덮어버리기 위한 목적으로 교복을 자주 바꾼 것이기 때문. 결론적으로 죠스바교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담으로 형제 학교인 브니엘여자고등학교의 교복은 초록색 가디건에 초록색 치마, 그리고 초록색 마이로 일명 시금치학교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론 둘 다 1986년 도입으로 2018년 기준으로는 30년(...)을 족히 넘었다. 반면 형제학교인 브니엘예술중학교나 브니엘예술고등학교의 교복은 학교 재단 내부인사가 관여하기 보다는 개교이래로 쭈욱 외부 전문가에게 디자인 외주를 줬기 때문에 디자인도 준수하고 색깔이 무난한 편이라고... 그쪽의 경우는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1990년대 중후반에는 일본 디자이너에게 외주 줬다는 말도 있다.
참고로 죠스바 교복과 시금치 교복을 처음 받은 세대들(1969~1971년생)은 대부분이 자기 자녀들을 진작에 대학교 까지도 진학시킨 세대들이라고....
개교 당초부터 현재 교복이 쓰이기 이전인 1982학년도 까지는 검은색의 가쿠란 교복을 썼었다고 하며 이당시에는 당연하게도 학생모도 썼었다. 당시 가쿠란 교복에 달고 다니던 방패모양의 교표 뱃지도 있었는데, 2000년대 중반 까지도 교내에 재고가 남아있었던건지 교내에 종종 굴러다니는걸 볼 수 있었다. 1982학년도 까지 썼던 하복은 지금의 브니엘예술고등학교 하복과 흡사하다.
3.6. 학교 면학 분위기
타 학교와 비슷한 분위기이다. 반의 담임선생의 재량에 따라 야간자율학습일수 있고, 강제학습이 될 수 있다3.7. 시설
브니엘고등학교가 소속된 브니엘학원 현 단지는 1996년 완공된 건물로, 사용허가 20년차를 넘긴 구축 교사로서 현재 기준 건물 자체는 다소 낙후되어 있다. 허나 건물의 구조적 한계를 차치한 선에서 시설 보수 수준은 준수하며, 2020학년도를 기점으로 매년 시설이 큰 폭으로 일신되고 있다.동시기 설계된 교사들에 비해 전위적인 구조로 설계되었는데, 정남향 판상형 구조를 채택하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교실을 층당 4학급으로 구성된 괴상 3괴를 정남향으로 평행 배치하고, 복도가 그 중앙을 가로지르는 王자형 구조를 채택하였다. 따라 건물의 정면(교표와 시계가 달린 부분) 기준 서향으로 지어진 건물이 된다. 실용공간과 복도공간이 접하는 면적이 좁아 리모델링에 있어 공간활용이 상대적 자유로우나, 반대급부로 건물의 북동부 저층은 4면이 차단되어 채광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3.7.1. 1층
- 오름마루
- 라온마루
* 학생회실
* 영어실
* 수학실
* 화학실
* 교장/교감실
* 행정실
* 컴퓨터실
* 부현관
- 장애인 화장실
- 자판기
3.7.2. 2층
- 교무실
- 솔빛마루
1인용 파티션, 독서실 책상, 통유리 파티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파티션 내부에는 쿠션의자가 있어 점심시간에 누워서 쉬거나 담소를 나눌 수 있다.
- 베리타스홀
공간을 구성했다.
- 쉴만한 물가
- 방송실
- 물리실
- 생명과학실
3.7.3. 3층
- 이음샘터
- 미술실
3.7.4. 4층
- 과학탐구실(지구과학실)
3.7.5. 5층
- WeeClass
- 옥상
3.7.6. 리모델링 연혁
-2017년, 화장실 시설 보수작업이 실시되었다. 인테리어 현대화, 화변기 철거, 장애인 화장실 설치가 시행되었다. 5층 화장실은 리모델링 대상에서 제외되었다.-2020년 상반기, 폐교실 공간을 활용한 특수목적공간이 조성되고 현관 오름마루가 시공되었다.
-2020년 하반기, 모든 교실 내의 TV와 청색칠판이 빔프로젝터와 화이트보드로 교체되었다.
-2020학년도 동계방학기간, 1, 2층 복도공간 일부에 대한 리모델링 및 교내 도로 전체 재포장을 진행하는 대공사가 실시되었다.
-2021년 상반기, 운동장 스탠드 리모델링 공사가 실시되고, 지하에 탁구장 및 헬스장, 당구장 시설이 구비되었다. 모든 교실 내의 책상과 의자가 신형으로 교체되었다.
-2021학년도 겨울방학기간, 석면철거공사 및 교무실 통합 공사가 실시되었다.
-2022년 상반기, 본관—식생활교육관/도서관 건물간 우천 가이드가 설치되었다.
-2022년 하반기, 1,2층 전담실들에 대한 전체 리모델링이 실시되었다.
-2023년 상반기, AI실 리모델링 및 3층 학생용 테라스 축조가 완료되었다. 운동장 LED 투과등이 설치되었다.
4. 주요 행사
- 중생회 : 개신교 미션스쿨 답게 당연히 개신교 관련 행사이며, 해마다 5월 중에 한 주 정도를 잡아서 오전 수업시간에 전교생이 강당으로 집합하여 중생회를 진행한다. 개교 초기부터 이어져 내려온 아주 유서깊은 행사로 학교의 주인이 계속 바뀌면서 그 여파로 학교의 분위기가 연산동 시절과 비교했을시 이름만 같을뿐 전혀 다른 학교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크게 바뀌었어도 이 행사 만큼은 계속 지켜지고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주로 하나멜의 CCM 공연이 메인으로 취급되고 있으며
크그 외에 인성교육이나 설교 등이 있다. 종교 행사라고 해서 종교강요 문제 같은 걸로 분위기가 험악해지거나 그런 것은 없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가볍게 즐기는 행사쉬어가는 시간라는 인식이 강하다.기독교인데 왜 이름이 중생회인지 모르겠다
- 학교 축제 : 브니엘고등학교의 학교 축제는 그 형태가 일정하지 않다. 어떤 해는 연말에 일반적인 학교 축제 형태로 하는 적도 있었는데 2006년에는 학교에 연예인들을 초청했지만 축제 내내 CCM만 줄창 부르게 했다.
그래서 까였다.어떤 해에는 일본의 학원제(!)와 비슷한 형식을 빌려서 3개교 연합 형태로 봄에 한 적도 있었다. 최근에는 학교 축제를 계속 하지 않다가, 2016년에 학생회 학생들의 노력으로 '브니엘 음악회'라는 음악회의 탈을 쓴 축제가 개최되었다.하지만 분위기가 썩 좋지않아 앞으로도 축제가 없을 거 같다고 한다2017년에는 남고가 브니엘여고, 브니엘 예고, 사대부고를 초청해 축제를 했다!현장은 통제 불가능한 개판
- 기아체험 : 당시 남고 교목에 의해 월드비전 기아체험과 연계해 약 8시간동안 제 3세계 사람들이 취식하는 진흙쿠키 만들기. 취식하기, 라이프 스트로우 체험, 우물물 나르기 체험 등 기아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등교이후 점심과 저녁 식사를 먹지 않고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며, 하루 최대 봉사시간인 8시간을 받을 수 있다.
- 그 외에도 기독교미션스쿨의 특성상 부활절예배, 추수감사예배, 성탄절예배 등을 한다고 한다. 2018학년도 말부터 정선체육관의 장비가 부실하다는 이유로 도보 약10분 거리에 위치한 "함께하는교회"에서 대부분의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학교 교육 특성상 인성함양을 강조하기 때문에 자기소개서 등에 쓸 거리가 매우 풍부하다
5. 출신 인물
기수순, 가나다순으로 정리하였다.- 2기 최갑종 : 신학 교수, 목사, 백석대학교 제6대 총장
- 4기 김성호 : 전 검사, 제16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6기 수료, 제58대 법무부장관, 제29대 국가정보원장 [33]
- 4기 정주헌 : 전 주탄자니아 대사, 전 주슬로바키아 대사 겸 체코 공사
- 4기 최용명 : 구니카 대표, 전 브니엘학원 이사장 [34]
- 9기 이채익 : 제7대·제8대 울산광역시 남구청장(민선 2기·3기), 제19대·제20대·제21대 국회의원(울산 남구 갑) (3선)
- 10기 최경미 : 전 국가대표 테니스 선수 [35]
- 12기 송길원 : 목사, 하이패밀리 대표. 가정사역을 하고 있으며 비종교인들에게도 상당히 유명한 목사.
- 12기 이규현 : 부산 수영로교회 제2대 담임목사(2011~)
- 13기 이봉철 : 전 롯데지주 최고재무책임자(CFO) 사장, 전 롯데그룹 호텔&서비스BU장
- 13기 이순용 : 전 경찰 경무관, 전 부산지방경찰청 1부장·2부장, 전 울산지방경찰청 1부장
- 13기 장근수 : 전 MBC 드라마본부 본부장, 전 MBC강원영동 사장
- 13기 최문석 : 전 교원그룹 사장
- 14기 권순석 : 가톨릭대학교 부천성모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전 가톨릭대학교 부천성모병원 병원장
- 14기 김연수 : 전 LS엠트론 대표이사 사장
- 14기 박진관 : 전 LG전자 상무, 전 경남 FC 대표이사
- 14기 박찬현 : 전 경찰 치안정감, 전 중부지방해양경찰청장
- 14기 오충근 : 현 부산심포니오케스트라·유라시아오션필하모닉오케스트라 예술감독, 전 KBS교향악단 제1바이올린 주자, 부산시립교향악단 국내 최연소 악장(당시 만 25세), 전 고신대학교 교회음악과 교수
- 14기 최하진 : 전 롯데알미늄 대표이사, 전 롯데 자이언츠 대표이사
- 15기 김해진 : 전 특임장관실 특임차관, 전 경향신문 기자(정치부장)
- 15기 박관현 : 전 삼성서울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현 서울삼성비뇨기과산부인과의원 원장
- 15기 왕태욱 : 신한서브 사장, 전 신한은행 부행장
- 15기 정원태 : 동아대학교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
- 15기 최성 : 고신대학교 복음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 16기 김학진 : 부산대학교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 16기 백종헌 : 제4대·제5대·제6대·제7대 부산광역시의회 의원, 제7대 부산광역시의회 후반기 의장, 제21대 국회의원(부산 금정구) (초선)
- 16기 변태섭 : 신경외과 의사, 전 울산시의사회장
- 16기 양만석 : 내과 의사, 전 부산시의사회장
- 16기 최진수 : 전 판사, 제26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제16기 수료,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 전 사법연수원 교수, 전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전 서울지방국세청 송무국장
- 16기 최창룡 : 제1해병사단장
- 17기 박세업 : 외과 의사, 선교사, 제9회 이태석 봉사상 수상(2020), 제36회 보령의료봉사상 수상(2020), 제34회 아산상 수상(2022), 제20회 자랑스러운 부산대인 상 수상(2023)
- 17기 안영환 : 현 슈마커 대표이사, 전 ABC마트코리아 대표이사
- 18기 김대성 :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제6대 병원장
- 18기 김진석 : 제2대 울산광역시 남구의회 의원
- 18기 안승찬 : 제5대·제6대 울산광역시 북구의회 의원
- 18기 이상돈 : 양산부산대학교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제8대 병원장
- 18기 차태준 : 고신대학교 복음병원 심장내과 교수, 부정맥 명의(부산 지역 부정맥 전문의 1호), 생물학정보센터(Biological Research Information Center, BRIC) 지정 '한국을 빛낸 사람들(한빛사)' 3회 선정, 대한부정맥학회 이사장
- 19기 강무길 : 전 부산광역시 해운대구의회 의원, 제6대·제8대 부산광역시의회 의원
- 19기 김대업 : 약사,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중퇴, 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 졸업, 제39대 대한약사회 회장, 한국약학교육평가원 제3대 이사장
- 19기 김종천 : 교수, 영파의료재단 규림요양병원·마음향기병원 병원장 겸 이사장 [36]
- 19기 우상현 : 국민은행 CIB고객그룹 부행장
- 19기 이지호 : 울산대학교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 19기 장제국 : 동서대학교 제7대·제8대·제9대·제10대 총장 [37]
- 19기 최재영 : 서울국제금융센터 제9대 원장, 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실 기획비서관
- 20기 김진휘 : 서민금융진흥원 금융본부장, 전 하나은행 전략기획부 팀장, 소호사업부 부장, 글로벌심사부 부장
- 20기 김병군 : 부산일보 선임기자
- 20기 김성우 : 제4회 부산광역시의회 의원
- 20기 김형준 : 현 주오사카 대한민국 총영사, 전 청와대 춘추관장, 전 청와대 대통령실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
- 20기 노재갑 : 제6대 부산광역시의회의원
- 20기 방성빈 : 부산은행 제14대 은행장, 전 부산은행 경영기획본부장, 부행장보, BNK금융지주 전무
- 20기 양진석 : 건축가, 가수 [38]
- 20기 염상섭 : NH투자증권 리스크관리본부장(CRO)
- 20기 이명규 : 국세청 학자금 상환과장
- 21기 김경덕 : 전 델(Dell) 코리아 사장, 현 델EMC 한국 커머셜 비즈니스 총괄 사장
- 21기 김성수 : 제19대 부산광역시 해운대구청장
- 21기 이기호 : 현 ABC마트코리아 대표이사
- 21기 이수봉 :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신장내과 교수
- 21기 이정웅 : 전 육군 중장, 육군사관학교 45기, 전 육군미사일전략사령관
- 22기 김문범 : 부산대학교병원 피부과 교수
- 22기 김영배 : 제40대·제41대 서울특별시 성북구청장(민선 5·6기), 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 민정비서관, 제21대 국회의원(서울 성북구 갑) (초선)
- 22기 김용우 :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 22기 김정기 : 제2대 민생당 공동대표
- 22기 김혜준 : 전 청와대 대통령실 정무수석실 행정관, 사단법인 '함께하는아버지들' 대표
- 22기 손석만 : 전 부산대학교병원, 양산부산대학교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 22기 하태경 : 제19대·제20대·제21대 국회의원(부산 해운대구 갑) (3선), 전 새로운보수당 초대 책임대표
- 23기 신인균 :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 23기 이기준 : 제6대 경상남도 양산시의회 의원
- 23기 이원재 : 충북소주 대표, 전 롯데주류 동서울지점장, 롯데주류 강원지역 지사장
- 23기 이헌욱 : 전 변호사, 제40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30기 수료, 제11대 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 이재명 대표의 측근 인사.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 인사인 23기 정진상과 동기동창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23기 정진상 :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비서실 정무조정실장,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 인사이자 복심(腹心)으로 꼽히는 인물. 마찬가지로 이재명 대표의 측근 인사인 23기 이헌욱 변호사와 동기동창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25기 박세익 : 체슬리투자자문 대표이사
- 25기 박정훈 : 세계일보 비서실장 겸 기획국장
- 25기 윤광현 : 경찰 총경, 경기도 양평경찰서 경찰서장
- 25기 이춘기 : 정형외과 의사, 부산힘찬병원 병원장
- 26기 정통령 : 가정의학과 의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90학번) 졸업, 전 청와대 보건복지비서관실 행정관,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
- 28기 김진 : 배우
- 29기 김상식 : 전 성균관대학교 마산삼성병원 안과 교수
- 31기 박성욱 : 부산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 32기 송승환 : 부산대학교병원 흉부외과 교수
- 32기 오세준 : 부산대학교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 32기 윤석준 :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공동대표이사 및 CEO, HYBE AMERICA 및 하이브 유니버설 대표이사 겸직
- 32기 이도원 : 부산대학교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 32기 조상규 : 변호사, 제47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37기 수료
- 33기 장우진 : 이대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 35기 김병우 : 영화 감독
- 35기 한경철(사보텐) : 사보텐 스토어의 운영자
- 35기 허창식 : 전 인제대학교 해운대백병원 외과 교수
- 36기 김성권 : 전 창원경상대학교병원 신경외과 교수
- 36기 이병철 : 부산대학교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
- 37기 서형준 : 부산대학교병원 성형외과 교수
- 42기 이주환 : 제8대 부산광역시의회 의원(해운대 1)
- 44기 이준호 : 제9대 부산광역시의회 의원(금정 2)
- 45기 조성호(디노) : 그룹 헤일로의 메인보컬
- 49기 박세훈 : 고려대학교 제48대 총학생회장
- 박승환(1967)
부산 4학군 평준화 원년멤버다 보니 부산 4학군 사립 고등학교 중에서는 꽤나 화려한 동문진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1980년대 부산 4학군의 황금기를 제대로 누렸던 사립학교였었다. 사실 동문 라인업에서는 동래고등학교나 동래여자고등학교 같은 100년 넘은 학교들을 제외하면 구도심 학교들에 비하면 대체적으로 역사가 짧은 학교들 위주인 4학군 내에서는 매우 탄탄한 편에 속하며 한때는 부산의 떠오르는 신흥 정치명문이라고 언론에서 평가 하기도 하였다. # #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려 4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기염을 보였다. 부산 내 고등학교 중에서는 경남고와 더불어 가장 많은 수(4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한 것이다. 언론에서도 브니엘고를 신흥 정치 명문으로 평가하고 있다. 부산일보 매일경제 KNN
부산시내 사립 남자고등학교 중에서는 1951년에 구도심 서대신동에서 개교했던 동아고등학교 바로 다음갈 정도로 동문 라인업이 빵빵한 학교로, 일각에서는 브니엘학원 최대 자산이 브니엘고등학교 동문진이라고 한다. #
그 외에 부산 4학군의 최전성기 주력 학교였던 만큼 양산 산업단지에도 선배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으며, 특히 연혁이 오래된 양산지역 산단 기업들의 경우는 동래구, 금정구, 연제구에서 창업하여 이후 양산으로 이전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기업 오너 2세(회장님 아들) 중에 동래고 출신, 동인고 출신과 더불어 연산동 시절 브니엘고 출신들이 은근히 많은 편이지만 위에도 서술된 구니카 재단을 내쫒았던 사건 같은 그러한 이유로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3세 까지는 무리인데 그 시절에는 해운대 학군이 대두되거나 특목고가 유행하기 시작하기 때문. 하지만 브니엘예중이나 예고에는 양산지역 기업 오너 3세들이 은근히 있다고... 그 외에도 금정구민들이 잘 인지하지는 못하는 사실이지만, 부산지역 고교 평준화 원년 멤버이자 연산동 시절이 있었고 당시의 남존여비 사상 까지도 가세한 덕분에 금정구 소재 고등학교 중에는 기업의 고위 임원급 인사를 압도적으로 가장 많이 배출한 고등학교이다. 당장 몇몇 기업만 해도 브니엘고 출신 사장은 물론이고 중견기업(특히 양산지역 소재 중견기업) 중에서는 회장 까지도 있고, 전무이사나 상무이사급은 말할것도 없다. 그 외에 롯데그룹, CJ그룹 같은 유명 대기업의 임원들을 배출 하기도 하였다.
6.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6.1. 버스 노선
정류소 명칭 | 노선 번호 |
브니엘고등학교 | 301[39], 금정3-1 |
지하철은 그런거 없다. 구서역, 장전역으로 가야 한다.
또는 1002번 같은거 타려면 40분이 소요된다.
2020년 7월 기준으로 301번은 35분 배차간격이 유지되고 있다.
2023년 9월 기준으로 등하교시 지원운행 나왔던 금정3번 노선은 부산외대 셔틀노선으로 조정되며 브니엘고~구서역 구간을 운행하지않는다.
7. 사건사고
- 개교 초기인 1970년 10월 17에 빈곤한 가정 사정으로 2달치 수업료를 밀린 학생이 수업중에 담임 교사에게 심한 체벌을 당하자 이를 비관하여 음독자살을 기도한 적이 있었다.# 당시 이 학교는 특성화계열과 일반계열이 혼재되어 있었고, 시대적 배경상 해당 학생은 학교서 기술을 열심히 배우고 자격증도 따고 해서 좋은데 취업해서 부모님께 빨리 첫 월급봉투를 안겨주고 싶은 마음이었을텐데, 이런 일을 당하게 되니 학생 입장에서 엄청나게 마음이 찢어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 브니엘학원 사태: 해당 문서 참고. 사태가 터진 지 20년 가까이 지난 현재도 이 사건의 여파가 있는 듯 하지만, 2017년 들면서 정권 변경과 사학분쟁조정위원회 심의원칙 개정#, 사립학교법 개정 추진 등으로 현재는 상황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하지만 학교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구재단이 복귀하기 보다는 새롭고 건실한 재단으로 바뀌는 게 나을 것이다. 당장 재단의 상황이 비슷한 울산 홍명고등학교 사례만 봐도..... 그리고 이 사태 이후로 부산지역에서 일반계 고등학교가 이전한 사례는 비슷한 시기의 동아고등학교 외에는 20년 이상 전무하며, 당시 부산지역 일반계 고등학교 중에서도 최선봉이었던 브니엘고등학교가 잘못된 학교 이전사업으로 제대로 몰락한 만큼 트라우마가 어마어마하였기에 부산지역의 여러 고등학교 총동문회들을 집결시키는 계기가 되어 다른 고등학교들의 이전 추진도 무산 시킬 정도로 부산에서 대놓고 고등학교 이전 언급을 못할 정도가 되었다. 2020년대에 들어서야 학생수 감소 및 신도시 학교 부족 여파로 이전 논의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영도구의 부산남고등학교가 명지신도시로 이전하게 된다.
8. 기타
- 모종의 이유로 인하여 2004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서류상으로는 부산시내 고등학교 중에서 부지 면적이 가장 넓게 되어있다. 부산시 교육청에 있는 학교 시설현황 자료에 등록된 바에 의하면 총 교지 면적이 11만 제곱미터 정도 인데, 이는 8만 8천 제곱미터인 개성고등학교 보다도 넓은 수치로 서류상 면적으로 따지면 2004년 이후부터 부산 시내 고등학교 교지면적 1위 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학교 부지로 쓰이는 면적은 4만 5천 제곱미터 정도이고, 이마저도 나머지 3개의 형제학교들이 점유하여 부지와 일부 시설을 공유하는 바람에 실질적으로 학생들에게 체감되는 면적은 2만 제곱미터 미만 수준으로 결국은 11만 제곱미터는 서류상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4만 5천 제곱미터를 제외한 나머지 5만 5천 미터는 어디에 있는가 하면 브니엘고등학교 북측의 통학버스 차고지를 포함한 나대지 및 브니엘고등학교 뒤쪽의 산지로 원래 브니엘신학대학교를 설립하려고 했던 부지였지만 모종의 사유로 2004년에 브니엘신학대학교 설립이 완전히 무산되면서 브니엘신학대학교를 설립하려던 부지를 다시 브니엘고등학교 소유로 돌려놨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서류상으로 11만 제곱미터가 되어버린 것. 그러나 재단이 돈이 없어서 공사비용 충당이 불가능하고 관선이사 체제에 학생수도 심각할 정도로 줄어들다보니 나머지 5만 5천 제곱미터 부지를 큰 돈을 들여서 활용할 가능성도 현재로써는 없을 것이다. 현재로써는 활용을 아예 포기하고 잉여 부지 매각을 추진중이고 잉여 부지들이 매각 된다면 서류상 부지 면적이 4만 5천 제곱미터 정도로 크게 떨어지겠지만, 잉여 부지가 매각될 가능성은 한없이 낮아 보인다.
- 개교 초기에는 정규 고등학교가 아니고 고등기술학교[40]로 개교해서 2년간 운영했다가 정규 특성화고등학교로 인가를 받아서 승격했다는 썰이 있다. 그 근거로 정규학교로 인가받은 년도는 전산상으로 1964학년도 부터 인데도 기수로 계산하면 1기수가 예장합동 계열 시절이었던 1962년부터 시작했다는것을 알 수 있으며, 총동창회에서 개교 50주년 행사를 한 것이 2014년이 아닌 2012년이기 때문. 즉 1962~1963년 2년간 고등기술학교로 운영했다는 것인데, 이게 사실이라면 아마 부산광역시에 존재하는 고등학교 중에서는 가장 다이나믹한 역사(고등기술학교→특성화고등학교→종합고등학교→평준화 일반고)를 가진 학교라고 볼 수 있다. 만약에 신재단의 당초 계획 대로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로 전환 까지 이루어졌다면 아마 대한민국에서 가장 다이나믹한 역사를 가진 고등학교가 되었을 것이다.(자사고는 아니지만 과학중점학교가 되면서 다른 방식으로 다이나믹한 역사를 가진 고등학교가 되었다.)[41] 참고로 브니엘실업고등학교 1964년 입학생이 27명, 1965년 입학생이 40명에 불과했다고 하니 당시 고등학교들은 한학급에 70명을 훌쩍 넘기던 학교가 많다는걸 생각하면 정말로 소규모 고등학교 였다고 한다. 어찌보면 브니엘실업고등학교 초기 기수들이 사회 생활을 하면서 출신학교 때문에 설움을 샀다는 게 괜히 나온 말이 아니라는 것. 이런 학교가 불과 15년 후인 1980년에는 주간 36학급 야간 18학급으로 총 54학급에 전교생이 3천명은 그냥 넘겼다는걸 생각하면 한때는 부산 시내에서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42] 1990년대 이전 까지만 해도 조중동이 브니엘 구재단 설립자 박씨를 괜히 사립학교계의 마이더스의 손이라고 평가한 게 아니었다. 한마디로 설립자 박씨는 막무가내로 브니엘고 이전만 안했어도 부산 바닥에서 사립학교계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로 남았거나, 박씨 일가가 사상구의 장성만 일가 처럼 연제구의 맹주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전성기 시절의 위용을 생각한다면 브니엘학원을 말아먹지만 않았어도 사학 설립 및 육성이라는 공을 인정받아 국민훈장 모란장 정도는 충분히 따고도 남았을 것이다. [43]
사실 고등기술학교 시절 기수들이나 브니엘실업고등학교 초기 기수들이나 구재단 설립자에게는 대단히 우호적이었는데 당시에는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전향하기 훨씬 이전이었고 학생수 또한 정말로 적었기 때문에 서로 가족같이 지내는 분위기였고, 설립자 박씨도 교장으로써 얼마 되지 않는 학생들을 가족처럼 정말로 잘 챙겨줬었다. 게다가 중아선교회의 자금 지원으로 장학혜택이 있다보니 부산시내의 다른 중학교, 고등학교 혹은 그에 준하는 학교(고등기술학교, 전수학교) 보다 등록금이 저렴하거나 거의 무상이어서 중학교, 고등학교나 그에 준하는 학교에 진학할 여유가 없던 이들에게는 구재단 설립자가 정말로 고마울 수 밖에 없었다.[44]
이래나 저래나 지금은 폐교된 연산동 시절 브니엘중학교나 아직 야간제 여고였던 연산동 시절 브니엘여자고등학교의 연혁이 아예 흑역사가 된걸 생각해본다면 한마디로 감탄고토라고 할 수 있다.
- 브니엘 돌림 학교들이 으레 그렇듯이 학교 연혁 관리에 정말로 관심이 없다. 4학군에서 나름 역사가 있는 학교인데도 불구하고, 출신성분이 고등공민학교, 고등기술학교 같은 비정규 학교가 뿌리라는 감추고픈 과거 탓인지 그 흔한 연혁실도 만들지 않았고, 다른 학교들은 으레 학교 현관에다가 학교 역사를 설명하는 게시판을 만들고 주변에 트로피나 상패들을 전시해 두는데 브니엘 돌림 학교들은 그런 것이 없었다. 오래 전에 폐교된 브니엘중도 그렇고, 브니엘여고도 그렇고 학교 내부적으로도 몇년도에 개교했는지도 정확히 아는 교직원들도 별로 없고, 재단 내 학교들의 기수 산출 방식도 일정한 기준없이 제각각이고, 그래서인지 개교 xx 주년 기념행사 같은것도 안한다. 한마디로 정확히 몇년도에 개교했는지도 제대로 안알려진 학교다 (...) 근처에 있는 동래여자중, 고등학교가 1895년 개교라고 연혁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고, 개교 xx 주년 기념행사를 해마다 하거나 일신관에다가 학교 역사관을 따로 만들고, 동래학원 x0주년사, 100주년사를 같은 것을 주기적으로 발행 까지 했던것을 생각하면 대조된다.
- 부산 4학군 사립 남자고등학교로써 훌륭한 학생수급처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재단 자체가 학교 이미지 관리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형제학교들인 브니엘예중,고가 일으킨 사건 때문에 풍평 피해를 당하거나, 온갖 괴소문이 나돌아도 재단 측에서는 신경도 안쓰고 있으며, 외지인들에게는 브니엘예고와 계속 혼동을 당할 정도인데도 재단 측에서는 홍보하려는 의지도 없어 보인다. 지금이야 언론과 상급기관(부산교육청, 부산시청, 금정구청)에게 심심하면 극딜을 당하기는 학교이기는 해도 브니엘예고 개교 이전 까지만 해도 오랫동안 브니엘 재단의 기함이자, 한때는 부산의 1군 일반고 였고 한때는 대구 수성구 사학들을 능가하던 시절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미지 관리도 안 하고 재단에서 당하는 대우도 나쁜 것을 보면 올드비들 입장에서는 그저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하다못해 브니엘고, 브니엘여고 전용 노선에만 투입되는 통학버스에도 브니엘예중, 예고만 적어놓고 브니엘고, 브니엘여고는 적어놓지 않는것만 봐도 재단에서 이 학교에 대한 취급이 어떤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푸대접 경향은 정선재단 시절(2006~2014)때 가장 극에 달했는데, 정선재단은 아예 이 학교를 인근지역의 B급 특성화고 만도 못한 들러리 취급을 하는 막장 행각을 보여줬다. 일각에서는 정통성이 없었던 정선재단 이사장이 총동문회가 없는 브니엘예술중학교와 브니엘예술고등학교를 장악하는데는 쉽게 성공했지만, 총동문회와 마찰로 브니엘고등학교를 완전 장악하는데는 실패하자 어차피 자기 지역구도 아니겠다 브니엘고등학교를 고의로 트롤링 했다는 의혹도 있다. 사실 정근 이사장은 이전부터 정계진출을 모색하고 있었으며 2000년대 중반 당시 출마할 지역구로 금정구와 부산진구 갑을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진재 사후 금정구 지역구는 김세연이 물러받게 되는 세습 지역구가 되면서 이에 좌절한(?) 정근 이사장 본인으로써는 금정구 지역구 국회의원은 애초부터 될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부산진구 갑에 출마하겠다고 결심한 나머지 어차피 금정구는 자기 지역구도 아니겠다 이런 짓을 해버렸던 것이다. 더군다나 정근 이사장 본인은 이런 연유로 금정구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던 김세연을 싫어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정근 이사장의 이런 행각은 훗날 자기에게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오는 인과응보가 되어버렸다.
- 그래도 동래구 연산동 시절에는 동래 럭키아파트나, 거제동 현대아파트, 거제동 경남아파트, 우성 베스토피아 아파트 학군빨로 꿀을 빨다보니 동래 럭키아파트 아줌마들이 제일 좋아하는 고등학교였고 동래 럭키아파트 학군빨로 엄청난 SKY대 진학실적과 의치한 진학실적을 자랑해서 브니엘 하면 명문대나 의치한 잘보내는 학교 이미지가 있었고 부산지역에 연산동 시절 브니엘고 출신 의사들이 꽤나 있다. 덕분에 지금도 부산지역의 40~50대 의사들 사이에서는 인지도가 상당히 높다. 그래서 다른 형제 학교들도 이에 기대면서 브니엘 돌림자를 쓰게 되었고, 정선재단(온병원그룹)도 부산지역 의사 사회를 평정할 목적으로 의치한 전문 진학 학교를 만들고 추후 의대 유치까지도 염두에 두기 위해서 같은 시기에 인수할 수 있었던 건국중고등학교(브니엘고보다 평준화가 많이 늦어서 의사를 많이 배출하지 못했다)나 재개교를 추진하려다 재정난이라는 암초에 걸린 북부산고등학교(고교평준화 이전에 폐교되었다)를 거르고, 한때 의사를 많이 배출한데다가 자사고 전환 떡밥이 있었던 브니엘고가 있는 브니엘학원을 인수한것이었다. 온종합병원의 경우는 개원 초기에는 브니엘의료재단 온종합병원이라는 명칭을 쓰던 적도 있었는데, 브니엘고가 부산지역 의치한 진학의 정점을 찍었던 시절을 기억하는 부산지역의 40~50대 의사들 사이에서 의치한의 브니엘 이라고 인식되던 이미지에 기대려 했었다. 그래서 의치한 진학을 내세우던 브니엘 국제 시리즈 학교들은 브니엘예술중고등학교의 이미지를 버리고 연산동 시절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유명하던 브니엘고의 향수에 기대면서 그당시 브니엘고의 위상을 기억하는 의사 같은 고소득 전문직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스파르타식 교육의 명맥을 이어간다고 홍보 했으나 이 학교들은 교육청에 제대로 응징을 당해버렸다. 하지만 아직도 동래구 연산동 시절 동래 럭키아파트 학군빨로 꿀빨던 시절의 향수에서는 못벗어나는것 같다.
- 연산동에 있었을적의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명성이 자자하던 시절에 재미난 일화가 있는데, 연산동 시절 끝물인 1995년 당시의 학교 주변 환경은 교통의 요지로 부산 도시철도 1호선과 온갖 버스 노선들이 경유하면서 소위 말하는 땡땡이를 치기에 매우 최적인 환경이었고, 주변에는 1970년대 후반 부터 성행해오던 전자오락실들을 비롯하여 1992년에 부산시청이 연산동으로 이전이 확정되면서 그 수요를 선점하기 위해 슬슬 들어오기 시작한 연산로터리 일대의 유흥업소들 같은 학생들에게 유혹이 될만한 요소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1995년 당시 부산지역 고등학교별 모의고사 순위에서 최상위권에 들었고 연산동 시절 마지막 졸업생인 1996년 2월 졸업생들의 경우는 부산지역 일반계 고등학교 중에서 서울대 진학률 1위를 찍으면서 유종의 미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하였다. 그런 주변환경에서도 그정도의 실적을 낸걸 보면 당시 학교 차원에서 학생들을 단속하고 빡세게 굴리는 수준이 정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는 뜻이었다. 그당시 부산지역 스파르타식 교육의 명가 라는 수식어가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는거.
- 학교 현관이 일본의 고등학교처럼 매우 넓다. 일본의 고등학교 처럼 현관에 신발장이나 사물함을 설치하려는 목적으로 그렇게 설계한 것인지는 불명이지만, 현관 구조가 거의 같다. (동일한 건물 설계를 사용한 형제학교인 브니엘예술고등학교도 마찬가지) 그에 걸맞게 학교 내부 인테리어 또한 특이한데 동시대에 만들어진 한국의 공/사립 학교와 비교하면 교실과 복도의 인테리어가 다소 이질적이고, 오히려 동시대에 만들어진 일본의 공/사립 학교들에 더 가깝다. 연한 파스텔톤 녹색(예고는 보라색)의 매우 커다란 미닫이 형태의 교실문과, 교실과 복도 사이의 창문이 흰색 창틀에다가 한국의 다른 학교들과 비교했을시 극단적으로 작은것을 보면 마치 일본 고등학교의 내부를 보는듯한 느낌이고, 당시의 일반적인 한국 고등학교의 一자형 혹은 ㄱ자형 평면구조가 아닌 3개 동의 본관 건물을 구름다리로 이어서 王자 형태로 되어있는 평면구조 또한 동시대 일본의 신축 고등학교와 유사하다. 1990년대 니켄세케이 혹은 쿠로카와 키쇼 건축 도시 설계사무소 같은 일본 건축설계 업체의 건축 디자인 언어와 비슷한 구석이 많아서 니켄세케이 같은 일본업체가 건물을 디자인한것 같아 보이지만 의외로 학교 건물 설계는 일본 업체가 아닌 국내 업체가 했다고 한다. 아마도 설계한 사람이 일본 유학파거나 일본 건축업계에서 몸담다가 한국으로 귀국한 경우로 추정하거나 아니면 당시 일본의 여러 학교들을 둘러본 설립자가 감명을 받아서 비슷하게 설계해달라고 주문했을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현관 구조는 신발장이나 사물함을 현관에 배치하는 일본의 학교 실정에만 맞았지, 한국의 학교 실정에는 전혀 맞지 않아서 제대로 활용도 되지 못하고 결국은 2020년대 이후로는 일부 현관문을 쇄정해서 쓰고 있는 현실이며, 평면구조 또한 1980년대 이후 야간자율학습이 사장되는 추세였던 일본의 일반계 고등학교 실정에 적합한 구조다보니, 적은 인력으로 야간자율학습을 감독[45]해야 하는 한국의 일반계 고등학교 실정에는 잘 맞지 않아서 야간자율학습 감독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 원래는 연산9동 토곡의 부산학생과학관 및 예전 부산과학고등학교가 있던 자리로 1978년 즈음에 이전하려고 했으나# # 재단 재정 문제로 인하여 1980년에 최종 무산되고 결국 그 부지는 부산시 교육청이 대신 매입하여 부산학생과학관과 부산과학고등학교가 들어오게 되었다. 재단 재정 문제 외에도 당시 시대 배경을 보면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10.26 사건)과 전두환의 쿠데타 (12.12 군사반란, 5.17 내란) 같은 어수선하고 혼란한 국내 정세도 토곡 이전 무산에 외부 요인으로써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높다. 그러한 절호의 찬스를 부산시 교육청에게 내주고 난 뒤 1989년에서야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는것을 확정했으나 그당시에도 교통수단의 부재 및 학교가 너무 외진곳에 있다는 문제로 부산시 도시계획위원회와 교육청에서 1992년 3월 까지 수년간 계속 반려 하다가 1992년에 샤바샤바한건지는 몰라도 어찌어찌하여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는 것을 승인 받았고 1996년에 학교 이전이 이루어졌으나 결과는 다들 아시는대로 (...) 토곡 지역은 연제구의 대표적인 주거지역(베드타운)이자 주변환경과 학군이 준수한 동네로써 동래구(안락동), 수영구(망미동) 생활권과 직결되는 지역인데, 차라리 원래 계획대로 토곡으로 이전이 성사되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운 점이 있다. 해운대 신시가지 개발 계획이 1986년에 처음 나왔으나 해운대 신시가지는 53사단이 위치하고 있는 만큼 중, 고등학교 이전은 문제 없었으나 브니엘 구재단의 최종목표인 브니엘 신학 대학 설립에는 차질이 갈 수 밖에 없었을테고, 차라리 하다못해 화명동으로 이전해도 지금쯤 전혀 다른 평가를 받게 되었을테고 추후에 브니엘신학대학 설립이 성공하여 화명동 일대에도 대학교가 생겼을지도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정말 애석한 사실이 화명 신시가지 개발 최초 계획이 1988년 화명2 택지 개발사업으로 언급 되었는데 브니엘고가 지금의 답없는 부지로 이전이 추진된게 이듬해인 1989년 부터 였다(...) 하지만 설립자 박씨는 당시 북구 국회의원(1985년 4월 11일 ~ 1988년 5월 29일)이던 장성만과도 사적으로 매우 친한 사이였고, 1995년 사상구로 분구되기 이전의 북구에는 장성만이 설립한 전문대인 경남전문대학도 있었고 장성만 역시도 브니엘신학대학과 같은 시기에 동서대학교를 설립하려 하였던 만큼 이후 브니엘신학대학과 지역구에서 경쟁 대상이 될 가능성도 있었기에 이들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화명동으로 이전을 하지 않았을수도 있다.
- 2000년대 초중반에 동일고무벨트가 이 학교를 포함한 브니엘학원을 통째로 인수하려 했었으나 무산되었다는 설이 있다. 표면상으로는 동일고무벨트 김진재 회장이 개신교 장로교 성향의 학교와 종교적 이념이 맞지 않다는 이유였다고 하지만, 사실은 동일고무벨트가 인수해서 브니엘 계열 학교들을 너무 잘 운영하면 구재단의 복귀가 힘들어 질 수 있기 때문에, 학교를 절대 포기 하지 않으려는 구재단 쪽에서 부산지역 개신교 장로교 인사들을 동원하거나 정원식[46] 전 문교부장관/국무총리 같은 보수 정치계 거물 원로를 온갖 논란(이단 논란 등)에도 불구하고 설립자가 직접 데려와서 브니엘학원 사태에 개입시키는 식으로 동일고무벨트가 인수하는것을 계속 막아왔던 것. 설립자가 큰 비리를 저질러서 학교에서 쫓겨났다고 해도 여전히 학교의 주인은 설립자다. 그러다가 2005년 10월에 김진재 회장이 작고하면서 동일고무벨트의 브니엘학원 인수 시도는 완전히 흐지부지 되었고, 그 대신에 들어온게 그 악명높은 정선재단이라고 한다 (...) 동일고무벨트가 브니엘학원을 인수하려는 목적이 기업이윤의 사회환원 및 당시 금정구 국회의원이었던 김진재가 자신의 지역구인 금정구의 최대 현안 처리 및 교육환경 개선이 목적이었기에, 동일고무벨트로 인수 되었어도 여러가지 장학혜택과 교육환경 개선으로 금정구에서 브니엘여자고등학교와 함께 기피 1순위 고등학교 라는 불명예를 쉽게 떨쳐 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게다가 김진재의 경우는 부산내에서 여기저기에 알짜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 보니 운 좋으면 부산정보고등학교 처럼 재이전을 추진 했을지도... 하여튼 공식적으로는 언론에 발표된 적은 없지만 금정구민들 사이에서는 현재도 공공연하게 정설로 여겨지고 있는 설이다. 브니엘 학원 자체가 전국적으로 따지면 그냥 지방의 별 볼일없는 마이너 사학 재단인데, 그런 별 볼일없는 마이너 사학재단에 정원식 같은 여러 보수 정치계 거물을 개입시킨 것만 봐도 시기상, 정황상 위의 동일고무벨트 김진재 인수설과 대입하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기 때문. 더군다나 그 시절에 교육의 평준화를 주장하던 서울교육감은 서울시내에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인가를 절대로 안내주겠다고 못박은것과 달리, 수월성 교육을 강조하던 부산교육감은 국제중학교, 국제고등학교, 과학영재학교에 이어서 자립형 사립고등학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려 했고, 브니엘고등학교가 당시로써는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유명했던 연산4동 시절의 명성도 조금 남아있었던 만큼 정상화가 된다면 해운대고등학교와 함께 자립형 사립고등학교로 전환이 유력시 되던 분위기라 몇몇 유명 대기업들도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전환을 노리고 브니엘학원 인수를 노리던 상황이라, 김진재라던가 몇몇 유명 대기업(삼성그룹, CJ그룹, 파라다이스 그룹 설이 짙었다. 실제로 파라다이스 그룹의 경우는 실사단이 다녀가기도 했었다는 내부자의 팩트가 있다)들이 관선이사를 통해서 브니엘학원을 인수하는것을 저지하려고 학교를 되찾으려는 설립자가 정원식을 개입시켰다는것이 정설이다.
- 2000년대 중반 동일고무벨트 인수설이 돌던 것과 동시에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예장통합) 측에서 부산장신대학교를 앞세워서 브니엘학원을 인수하려 했고, 실제로 인수 직전 까지 갔다고 한다. # 하지만 브니엘 구재단인 예장 브니엘과 예장 통합은 같은 장로교를 뿌리로 두기는 했어도 애초부터 사이가 상당히 안좋았고[47], 이쪽 역시도 브니엘 구재단 입장에서는 여러개의 사학을 가지고 있어서 사학 운영경험#이 많아 정상화를 추진 할 수 있고 자금력이 되어서 학교에 투자여력이 있는 예장통합이 브니엘학원을 인수하면 학교 재단을 순식간에 완전히 접수하는데 성공하여, 구재단 입장에서는 영영 학교를 찾을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설립자 측에서 격렬하게 반발하면서 예장통합으로의 인수가 4일만에 무산되고, 누가 봐도 학교 운영 경험과 경영 철학도 없고 학교법인 정상화를 추진할 능력이나 자금도 없는 개인에게 일부러 인수되게 해서 정상화가 파토나게 하여 구재단이 추후에 학교를 되찾으려 한것. 최소한 예장통합에 인수되었어도 지금보다 학교 상황이 비교가 안되게 많이 좋아졌을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는 했으나.... 물론 그 인수자 개인도 처음에는 구두계약으로 브니엘 구재단에게 학교를 돌려주겠다니, 브니엘 구재단 측을 옹호하는 척 해서 구재단에게 인수 동의 및 지지를 받았다가, 인수가 성사되자 마자 인수를 지지하고 동의해줬던 브니엘 구재단을 통수치고 사유화를 시도 했으며, 이마저도 안되자 고작 1년만에 자신과 일면식이 있는 정선재단에 학교를 넘겨서 학교재단 사태는 안드로메다로 가버리고 말았다. 그 외에도 예장합동 계열 수영로 교회도 브니엘학원 인수를 검토 했다고 한다...
- 2006년~2007년 즈음에 학교 수영장을 만드는것을 추진하기도 했고 실제로 가정통신문 까지 돌리면서 학생들을 설레게 했지만, 얼마 안가서 예산 문제로 나가리 되었다. 사실 1992년경에 그려진 이 학교의 초기 설계도에도 학교 수영장으로 추정되는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 2007년~2008년 즈음에도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당시에는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전환 떡밥이 나돌았던 적이 있었다. 이때는 자사고로 전환하면 동시에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려 했던 것인지 진학지도실에 새 디자인의 남학생 교복과 여학생 교복 샘플을 같이 전시했던 적이 있었다. 사실 자사고 전환은 근처의 동래여자고등학교 보다 브니엘고등학교가 훨씬 먼저 전환을 꾸준히 준비해왔었다. 물론 교육부에서는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사립학교는 자사고 전환 신청을 불허하겠다고 못을 박은데다가, 그 무렵에 이사장 아들 학적부 사건이나 브니엘예술고 입시부정 의혹 사건 같은 여러가지 사건사고가 줄줄이 터진데다가 저조한 법정전입금 납부율 및 재단이 부실재단으로 워낙 유명하다보니 당연히 전환 신청 조차도 못한듯... 다만 브니엘고등학교와 비슷하게 재단 비리로 관선이사가 파견되는 처지에 놓였었던 서울특별시의 중동고등학교나 선덕고등학교의 경우는 이후 재정기여자에 인수되어 정상화 이후에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전환에 성공한 사례로 봐서 브니엘고등학교 또한 정선재단(온병원그룹)이 학교를 정상화 하고 똑바로 운영했다면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전환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2012년에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로 전환 떡밥이 다시 나돌면서 한바탕 언플을 했던 것으로 봐서 자사고로 전환할 의지는 확실히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기사에서는 자율학교 라고 하지만, 사립 고등학교 중에서 자율학교는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와 개방형 자율학교가 있으나 광역시의 동단위 지역인 부산광역시 금정구의 구서동에서 가능한 사립 자율학교는 개방형 자율학교는 절대로 불가능하고, 오직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문제의 이사장이 퇴출 되면서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의 전환은 삼성그룹 같은 유명 대기업 재단에 인수되지 않는 이상 영원히 불가능할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자사고로 전환해서 같은 재단의 국제중 처럼 운영되던(...) 브니엘 국제예술중학교와 연계하려 했던것으로 추정되며 이것이 실현되었다면 전국에서 몇 안되는 특성화고->일반고->자사고 테크트리를 탄 고등학교가 되었을지도... 그리고 이당시에 계획했었던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전환 계획은 2014년에 브니엘 국제예술고등학교 국제반 형태로 꼼수를 부려서 실현하려고 했으나, 국제반과 예술계열 학생들의 내신을 합산하려고 했다가 어마어마한 역풍만 맞고 정선재단이 쫓겨나면서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2017년 들어 문재인 정부가 자사고 폐지를 하겠다고 하는 입장이라 브니엘고가 자사고로 전환하는것은 대기업 재단에 인수되어도 영원히 불가능하게 되었다.
- 2000년대 중반 당시에는 금정구 일대의 통학 봉고차(주로 15인승 차량) 아저씨들이 가장 기피하는 학교였다. 브니엘고등학교가 접근성도 영 좋지 못한데다가 학교법인 브니엘학원에서 수익사업(?)으로 운영하던 통학버스[48]도 당시로써는 꽤나 비싼 이용 요금에다가 에어컨도 안나올 정도로 정말로 낡은 차량이었고, 그 시절은 서전학원 같은 부산지역 대형 종합학원의 전성기였기에 대형 종합학원을 다니는 학생들도 상당히 많아서 하교시에는 통학버스가 아닌 학원에서 무료로 운행하는 냉난방 까지도 되는 학원버스나 학원 봉고차를 타고 가는 경우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학교법인 브니엘학원 차량사업부(뉴월드)는 무조건 왕복 요금을 받으려고 했다. 통학버스 편도 요금제 신설 문제는 브니엘고등학교 학생회장, 부회장 선거에서도 단골로 나왔지만 브니엘고등학교에 비협조적인 학교 법인 브니엘학원에서 이런것을 들어줄리는 만무했고, 결국 몇몇 학생들 끼리 모여서 저렴하게 편도 요금을 받는 통학 봉고차를 이용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학교법인 브니엘학원은 자신들의 수익 사업인 통학버스의 일거리를 통학 봉고차들이 빼앗는 다는 이유로, 금정구 일대의 통학 봉고차 아저씨들과 한동안 마찰을 빚었고 학교법인 브니엘학원 직원들과 통학 봉고차 아저씨들이 싸우기 까지 했다.[49] 물론 다른 사립학교들은 그런거 없는데, 유독 학교법인 브니엘학원만 그러했다고 한다. 심지어 하교시에 대형 학원에서 무료로 운영해주던 봉고차들 까지도 학교법인 브니엘학원과 마찰을 빚었는데, 브니엘학원 측에서는 저것들 때문에 통학버스 편도요금제 신설을 학생들이 요구한다고 학원 봉고차들 조차도 학교 근처로 못오게 하는등 여러모로 소인배적인 행각을 보여줬고, 금정구 일대 봉고차 아저씨들은 다른것도 아닌 학교법인이 그렇게 돈독이 올랐다고 힐난하였다고 한다. 나중에는 통학버스가 금정 3-1번 마을버스 회사에게 고발을 당하여 지역신문에도 올라가서 제대로 망신을 당했다. 그로부터 10년 지난 현재는 통학버스 편도 요금제가 뒤늦게서야 개설되었다.
아직도 꽤 자주 아저씨들이 등교시간에 학생들 버리고 간다.[50]
- 2006년에 금정구 소재 일반계 고등학교로써는 거의 최초로 일본(규슈 지방 일원)으로 수학여행을 가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일대 고등학생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해 연말에 일대 중학교에 뿌린 학교 홍보 전단지에는 2007년 부터는 일본 나라현/오사카/교토 일원으로 수학여행을 간다고 홍보 했지만 2007년에도 2006년과 동일하게 일본 규슈 지방으로 간것은 함정. 그러다가 2008년 이후 부터는 환율 급등으로 제주특별자치도 일대로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 2015년 이후로 계속 제주도 코스를 선택했다. 2018년 2학년 수학여행은 일본 규슈 지방으로 다녀왔다. 2020년 2학년 수학여행은 대만으로 확정이 났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마자 학교 측에서 예약을 취소해 수학여행을 가지 못할 것 같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 금정구 소재의 다른 고등학교들이 대부분 주로 일본의 고등학교 같은 해외 고등학교들과 자매결연을 맺었으나, 브니엘고등학교나 그의 형제고등학교들은 현재도 해외의 고등학교들과는 자매결연을 맺지 않고 있는듯 하다. 연산4동 시절 브니엘고등학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부산지역 고등학교 중에서는 상당히 앞서서 일본에 진출한 선봉장 중의 하나였다는것 생각하면 아이러니 하지만, 브니엘학원 재단 부도 사태 이후로 운영주체가 여러번 변경되다보니 (...) 다만 연산동 시절에는 지금은 사라진 브니엘중학교와 함께, 일본 도쿄도의 일부 사립학교와 자매결연을 했던 것인지, 구재단 측의 사진 자료에 해외 자매결연 같은 식으로 그 흔적이 남아있었다. 학교 건물의 다른 한국 학교들과는 이질적인 건축양식 이라던가, 구재단 시절의 특이한 교복들도 아마 당시 이런 연유로 도쿄도의 여러 사립학교들을 둘러볼 수 있게 되면서 이를 참고했던것으로 추측. 이후 브니엘학원 사태로 인하여 자매결연이 깨진 것으로 보인다. 자매결연이 깨지지 않았다면 21세기 이후에 일본 도쿄도 등지로 수학여행을 갔을지도 모르는 일.
- 2014년 가을 즈음에 부산권에서 유명한 모 건설업체가 이 학교를 포함한 학교법인을 인수한다는 카더라성 떡밥이 아주 잠깐 돌기는 했는데, 얼마 안가 흐지부지된것 같다. 해당 건설업체는 부산시내 건설업체 중에서는 부산시민들의 신뢰도가 가장 높은 건설업체로 유명한데다가, 과거에는 부산시내의 많은 학교 건물들을 신축 시공하거나 이전한 적이 있었고(이 회사도 학교 이전사업을 여러번 했지만 브니엘 학원과 한신공영과 달리 이 회사가 담당한 이전사업들은 뒤탈이 거의 없었다.), 경남권에서 중학교, 고등학교, 전문대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사학 재단이기도 하며 폐교위기의 사학들을 인수하여 이전사업을 통하여 성공적으로 정상화를 실현한 사학계의 마이더스의 손으로도 유명하다보니, 인수만 성사되었어도 이 학교의 운명은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해당 재단이 기존에 운영하고 있는 학교들의 경우는 시설에는 많이 투자했으나 동문 라인업, 연혁, 스토리텔링, 커리큘럼이 약간 부족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동문 라인업이 4학군 사립고 중에서는 제일 빵빵하고 투자 대비 아웃풋이 좋은 브니엘 학교법인 인수를 노린 것이 아니었나 싶다. 게다가 학교총량제로 인하여 사립 중, 고등학교의 신설은 사실상 막힌 상황이라 인수 하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부산시 교육청에 따르면 공립, 사립 불문하고 더 이상의 고등학교 신설은 없다고 한다. 아마도 브니엘 중, 고등학교를 인수해서 해당 업체가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일광신도시나 명지신도시 같은 신도시 신축교사로 이전하는 식으로 정상화를 하려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설사 인수가 성사되었다고 해도 그 건설업체 재단은 인수했던 학교들의 교명을 모두 동X 돌림으로 바꾼 전적이 있다보니 동문회 측에서는 브니엘이라는 교명이 없어지게 되는것에 대해 당연히 큰 반발이 있었을 것이고, 결정적으로 그 재단이 개신교와는 전혀 무관한 재단이라서 종교적 성향 문제 가지고도 설립자가 소송을 걸 수 밖에 없게 되다보니 결국 그러한 문제 때문에 해당 건설업체가 인수를 포기한듯 하다. 아무리 설립자가 큰 잘못을 저질러서 쫓겨났다고 해도 국내 사립학교법상 설립자가 여전히 가장 큰 권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설립자와 협상이 되지 않으면 인수가 어렵다. 2000년대 중반 잠시나마 리즈시절이었던 구니카 재단이 물러난 이유도 설립자와 협상에 실패한 것이 가장 컸으며 그 이전의 동일고무벨트가 인수 하려다가 무산된것도 이러한 이유. 물론 정권이 바뀐 지금은 안양 신성고등학교나 서울예술고등학교 정상화 판례도 있고 하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이 재단이 종교성향 문제만 제외하면 현재로써는 브니엘 계열 학교를 운영하기 가장 적합한 재단이었는데, 브니엘 계열 학교들이 학교 수에 비하면 운동장이나 부대 시설이 부족해서 트러블도 있고, 특히 여고의 경우는 학생수 급감으로 이제는 이전이 불가피할 지경인데, 이 재단이 인수한다면 건설업체 재단 특성상 재단 산하 일부 학교들의 이전 재배치도 가능했기 때문에 이쪽으로 인수되는것이 가장 최선이었을것이다. 하지만 정권 교체 이후 구재단이 퇴출되는 분위기로 가고 있고, 2017년 12월 이후 오래간만에 다시 인수 떡밥이 나돌고 있으며 문제의 건설사 재단과 브니엘 구재단 측 관계자가 접촉한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인수에 성공한다면 신도시의 신축교사로 이전 재배치해서 히치하이킹에서 해방될 가능성도 약간은 있어 보인다. 2018년 8월 1일에는 학교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인수 추진중이다는 기사가 나왔다. 공교롭게도 이시기에 구재단이 판례를 참고했던 상지대학교 사태가 역풍을 맞은 후 사학분쟁조정위원회에서 사실상 상지대 구재단 배제로 가닥을 잡았던 만큼 결국은 브니엘 구재단에도 여파가 미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51] 그리고 500억 정도 들여 기숙사 까지 포함해서 새 학교건물을 제대로 짓겠다는 뜻을 밝힌걸로 봐서 인수가 성사 되면 아마도 신축교사 이전으로 가닥이 잡힐듯 하다. 지금의 학교 위치로는 이미 학교 위치도 영 좋지 못한데다가 설상가상격으로 금정구의 학령인구 감소도 워낙 심각한 상황이다보니 계속 학생수가 줄어들수 밖에 없고 학교를 살리려면 신축 이전 외에는 선택지가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 건설사 재단으로 인수 떡밥은 2019년 6월에 완전히 무산되었고, 그 대신 해당 건설사는 울산고등학교를 인수하게 되었다.
- 2000년대 초반 까지만 해도 브니엘고등학교 + 이사벨여자고등학교 통합 동문회가 존재하였다고 한다.(부산대 EBEL, 부경대 NISA, 동아대 PIES, 해양대 브니엘이사벨 동문회 등등...)[52] 브니엘고등학교가 연제구 일대의 남자고등학교를 담당했고, 이사벨고등학교가 당시에는 이사벨여자고등학교로 연제구 일대의 여자고등학교를 담당한데다가 두 학교 모두 도심지의 개신교 사립학교라는 특색도 상당히 비슷하기도 했기 때문에 두 학교의 남녀 동문들이 만나서 통합 동문회가 운영될 수 있었던것. 재단은 달랐지만 거의 형제학교 비스무리하게 취급될 정도로 유대감도 긴밀했고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브니엘고와 이사벨여고 출신을 서로 동문으로 인정하는건 당연했고, 서로 상대 학교의 선후배도 직속 선후배로서 인정해 줄 정도로 유대감이 강했었다. 게다가 연산동 시절 야간제 브니엘여자고등학교는 브니엘고등학교와 묶기에는 수준 차이나 대학교 진학률 차이가 상당히 컸었다.(당시의 야간제 브니엘여고는 앞서말한대로 삼화/조견여상이나 계성여상 야간과 엮이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후에 브니엘고등학교가 금정구로 이전하면서 브니엘여자고등학교도 1999년 부터 주간 평준화 일반계고등학교로 전환되어 브니엘고등학교와 동등한 위치로 수준 차이는 사실상 없게 되면서 브니엘고등학교 + 브니엘여자고등학교로 엮이게 되고, 이사벨여자고등학교 또한 연제구 시절 브니엘고등학교가 빵꾸내고 도망간 자리를 메꾸기 위해 2001년 부터 남녀공학으로 전환이 이루어지게 되어 두 학교는 영원히 접점이 없어지게 되면서 그 이후로 브니엘고등학교 + 이사벨여자고등학교 통합 동문회들은 사실상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고 브니엘학원과 복음학원 계열 학교들의 유대관계도 사실상 끊기면서 남남이 되었다.
여담이지만 정선재단 시절 이사장 아내(정선에서 선이 이사장 아내 이름 가운데 글자에서 따왔었다)가 이사벨여고 출신(1981년 졸업)이었고 부산대 의대 출신(1987년 졸업)이었는데 당시 부산대 의대에 브니엘고 출신들이 많았었고 부산대 의대 내에도 이러한 통합동문회가 존재했던만큼 한편으로는 이러한 영향으로도 정선재단이 이 학교를 포함한 재단 일체를 인수했었다고... 하지만 그녀는 브니엘고의 후배(?)들에게 썩 잘해주지 못했었고 이후에 정선재단이 쫓겨나는것을 보면 그저 후배(?) 들에게 상처만 안겼던것 같다.
- 장난감 회사(구니카) 재단[53]이던 2004년에 학교 도서관겸 헬스장 용도의 별관 건물이 완공되고 2005년에 도서관에 정보검색실이 만들어지면서 정보검색용 PC가 들어왔는데 당시로써는 꽤나 준수한 사양인 펜티엄4 프레스캇 3.0급의 PC였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일명 PC방으로 통하면서 점심식사 끝나면 PC 쟁탈전이 벌어질 정도로 굉장히 호응이 좋았다. 장난감 회사(구니카) 재단 시절에는 학생들 복지 하나는 역대 최고 수준이었으며, 구니카 재단이 운영하면서 금정구 이전 이후 아웃풋도 지산고등학교를 상회할 정도로 가장 잘 나오는등 금정구 이전 이후로 한정한다면 리즈시절이었다. 상수도 개통, 급식 조리실 개선, 운동장 우레탄 또한 구니카 재단 시절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헬스장의 경우는 학교 홍보 전단지에는 몸짱드립을 치면서 편의시설로 소개되어 있었으나 무슨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항상 잠겨있었고 2~3년 내내 추후에 개방예정 이라는 소리만으로 학생들의 기대감만 증폭시키고 있었다. 당시 몸짱 열풍이 불던 시기다보니 헬스장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했을터.[54] 하지만 구니카 재단이 마녀사냥 수준의 온갖 음해를 당한 끝에 2005년 초에 억울하게 밀려나고, 2006년 5월에 만악의 근원 정선재단이 들어오면서 명백한 브니엘고등학교 소속 시설 이던 별관 건물은 2007년부터 브니엘국제예술중학교 개교를 위한 임시 교사로 강탈해 가면서 개방 예정인 헬스장은 브니엘국제예술중학교 임시 교실로 학생들의 허락도 없이 마개조하면서 날아가버렸고, 도서관과 학생들의 엄청난 호응을 얻던 정보검색실 역시도 브니엘국제예술중학교 임시 교무실로 마개조 당해버렸고 그와 동시에 정보검색용 PC들 대다수도 브니엘국제예술중학교가 가져가버리면서 브니엘고등학교 학생들의 불만을 제대로 자극시켜 버렸다(...)
- 2016년 3월 25일에 법원 판결로 구재단의 복귀가 사실상 기정사실화 될 뻔 했 했다. 그러나 구재단도 법원에서 정선재단을 상대로 승소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킨 전적을 일으킨 재단에게 학교를 돌려주는것이 사회 정의에 배치된다는 이유 때문인지, 20대 4.13 총선에서 국회의 과반수를 민주당계 정당이 차지한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분위에서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수백억대의 막대한 부채 해결[55])을 요구하면서 번번히 돌려보냈으며[56], 결국 2017년 19대 대선 이후로 해당 문제가 미뤄지면서 차기 정부로 문제를 떠넘겼지만, 차기정부의 경우는 대선에 출마한 상당수의 후보들이 모두 과거의 문제 사학들의 복귀를 차단한다는 입장이다보니.... 그리고 2017년 5월 10일에 19대 대통령으로 문재인[57]이 당선되면서 구재단의 복귀는 어려워질 상황이고[58], 현 대통령과 부산교육청의 방침이라면 앞으로 새로운 재정 기여자를 선정하게 될 가능성도 높아진 상황이다.
그리고 2017년 5월 29일 현 정부 들어서 처음으로 열린 사학분쟁조정위원회 전체 회의에서는 구재단의 정상화 계획[59]을 일단은 미루고 임시이사의 임기를 6개월 연장 시키면서 브니엘 학원 문제를 차기 교육부로 넘겨버린 상황이기는 하지만... 지난 정부가 남긴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마지막 발악 차원의 전체 의견인지 위원 개인의 일탈인지는 알수 없으나 사학분쟁 조정위원회 쪽에서는 구재단에 다시 넘겨 주겠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는 상황이고 구재단 측에서는 이 말을 듣고 행복회로를 돌렸으나... 물론 구재단의 복귀를 차단하겠다는 부산 교육청의 입장, 문재인 대통령의 사학비리 관련 공약, 김상곤 교육부 장관의 사학비리 척결에 대한 단호한 의지, 금정구 내에서의 구재단에 대한 상당히 좋지 못한 여론을 생각하면 구재단의 복귀가 쉽사리 이뤄질지는 의문이고, 설사 구재단을 복귀 시킨다고 해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되는 그런 상황이다. 구재단을 복귀시킨다고 하면 해당 판례가 기초가 되어 다른 사학 비리 문제로도 불똥이 튀어서 후폭풍이 커지는건 당연지사. 하지만 2017년 7월 3일부로 사학분쟁 조정위원회에서 사학 정상화 원칙이 변경되어 과거에 비리 등으로 학교 운영에 중대한 장애를 끼친 종전이사는 이사 추천권을 일부 또는 전부 제한할 수 있다는 규정이 추가 되면서, 구재단의 복귀는 사실상 차단된 상황이고 새로운 재정 기여자 선정으로 갈듯 한데, 이제는 유명 대기업이나 유명 사학 재단에서 인수한다는 카더라성 소문도 나오고 있다.[60]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것이 현 정부에서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사학분쟁조정위원회 정상화 심의원칙에 이어서 12월까지 사립학교법 시행령까지 개정하겠다고 한 상황인데, 사립학교법 시행령 개정 내용이 변경된 사학분쟁조정위원회 정상화 심의원칙 처럼 과거 비리에 연루된 종전이사들의 정의사 추천 제한이 주요 골자이기 때문에, 사립학교법 시행령 개정에 성공한다면 이제는 법적으로도 구재단이 아웃될 것으로 보이며, 부산에서는 사학분쟁조정위원회 심의원칙 변경과 사립학교법 시행령 개정으로 구재단을 퇴출 시키는 첫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 2016년 7월 18일에 부산에서 포켓몬 GO가 된다고 SNS상에서 소문이 퍼지고 언론에 보도되어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정말 오래간만에 경사(??)가 터진 것이다. 학교 이름은 안나왔지만 금정구에서 저런 화장실 타일을 쓰는 고등학교는 브니엘 계열 고등학교 뿐이니 확인사살. 그리고 다른 기사에서는 학교 이름까지 대놓고 언급해 주었다.
- 이 문서와 더불어 브니엘예술고등학교항목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같은 형제학교이기 때문에 이 문서에 서술하디 않은 내용도 서술되어 있다.
- 왠지 모르게 학교 역사가 남구의 배정고등학교와 많이 비슷하다. 고교 평준화 이전에는 삼류학교였다가 고교평준화를 기점으로 명문으로 급상승한 점, 1990년대 중반 까지만 해도 부산시내에서 서울대 진학률에 있어서 순위권에 들었던다는 점, 1990년대 이후 튼실한 재단과 좋은 시설을 갖춘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으로 하락하다가 재단의 부패가 결정타가 되어서 몰락했다는 점, 과거에 형제 학교로 일반계 중학교가 있었으나 재단 비리로 인하여 폐교당했다는 점 등등 두 학교의 역사는 놀랍도록 비슷하다. 그 외에도 먼 친척뻘 되는 학교인 사하구 건국고등학교와도 연혁이 비슷한 구석이 많은데, 두 학교 모두 개신교 장로교 선교재단이 설립한 학교에다가, 초기에는 상고로 개교했다는 점도 비슷하고, 학교 이전 사업 과정에서 재단 문제로 인하여 결국 재단이 바뀌었다는 점도 비슷해서 서로 비교되는 경우도 많았고 1999년 브니엘 재단 사태때에도 과거의 건국중, 고등학교 사태가 영향을 많이 끼치면서 부산지역 개신교 집단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건국고등학교 또한 구재단이 물러나고 들어온 신재단도 문제 해결은 커녕 말썽을 계속 부려댔다는 점도 비슷하다. (물론 건국고등학교는 2016년에 재단이 한번 더 바뀐 이후에는 문제가 많이 해소되었지만.) 차이점이라면 건국고등학교는 재단이 바뀌면서 개신교 종교 색채가 완전히 지워진것과, 구재단이 학교를 되찾는것을 완전히 포기했다는것.
- 2017년 6월에 학교에서 교육청이 준 지원금으로 시설 보수 공사(화장실 등)를 20년 만에 했다. 그러나 학교 외벽 페인트질을 하는 시간에 학생들이 수업을 하고 있어 학생들과 교사들이 불편을 느껴 학교에 항의하자, 학교 측은 야간자율학습 면제 등과 더불어 임시휴교(!)까지 하였다고 한다. 외벽 공사의 경우는 지은지 10년 가량 된 2006년에도 비가 새는 문제로 인하여 한번 실시한 적이 있었고 이때도 수업 도중에 보수공사를 해서 말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아예 벽돌에다가 페인트 도색까지 해서 이전과 크게 달라진 느낌이 되어버렸다. 학교 건물이 지어질적에 설립자가 건물 디자인과 색상을 직접 골랐기에, 아마도 설립자가 본다면 피꺼솟 할 정도... 하지만 그 후에도 비가 오면 빗물이 새서 2019년에도 외벽 방수공사 일정이 잡혀있다. 아직도 계속''' 샌다. 사실 비가 새는 문제는 완공 초기부터 계속 있었던 문제인데 아무리 보수공사를 해도 비가 새는 문제를 고치지 못한다고 한다.[61]
- 2019년 후반기 들어서 관선이사가 일을 드디어 하기 시작하는건지, 금정구에 이전한 이후 무려 23년 만에 교육청 징계가 아닌 과학중점고등학교로 지정이 되었으며, 통학버스에 진짜 처음으로 브니엘예술중학교나 브니엘예술고등학교가 아닌 브니엘고등학교라고 홍보 차원에서 적어두고 과학중점학교 지정이라고 적어두고 운행하고 있다. 2019년 초반 들어서 학교법인 파산설도 있었던 만큼 관선이사가 드디어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것으로 보이고, 아이러니하게도 구재단이나 정선재단 시절에도 안하던 일을 하면서 오히려 브니엘고등학교 자체가 그 당시 보다 법인에서 대접이 더 좋아진것으로 보인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관선이사 파견 이전 정선재단 시절에는 고의로 학교를 트롤링 했다고 밖에 안보일 정도이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과학중점고등학교로 운영중이고 학생 수급풀 이 상당수 겹치는 남자고등학교인 용인고등학교[62]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중점고등학교로 추가로 지정해준것으로 봐서 관선이사 파견이 20년 이상 장기화 되면서 학교의 정상화가 지지부진하고, 그로 인하여 교육청으로 부터 학교가 받은 수많은 패널티(학급감축 등등..)로 인하여 본의 아니게 재학생들이 피해를 많이 입게 되어 불만이 많아진 만큼 재학생들에게 이로 인한 보상 차원에서 과학중점고등학교로 지정한것으로 보인다.[63]
- 현재 1층 1학년 3반과 4반 교실을 학생 쉼터 등 새로운 용도로 개조하려는듯 하다. 공사 진행중(이였지만 지금은 완공되었다.)
- 1974년 고교 평준화 이후로도 1~2년간은 단성학교인 남자고등학교로 바로 전환하지 않고 잠깐동안 남녀공학 평준화 일반계 고등학교로 운영했었다는 증언이 있다. # 이 증언을 한 사람은 1959년생으로 빠른생일일 경우 1974년, 아니면 1975년에 입학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같은 여타 인문계(일반계고)와 완전히 동일한 입학 전형(평준화 배정)을 했었다는 점이고, 인문계(일반계) 고등학교 였다는 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야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당시 평준화 주간반에도 남녀공학으로 여학생이 배정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브니엘고는 한시적이기는 해도 부산에서 두번째 남녀공학 일반계 고등학교이자, 부산 최초의 사립 일반계 남녀공학고등학교 였었다고 할 수 있갰다. 아마도 브니엘고가 단성학교로 전환된 시기는 1975년(부산광역시 연표에 의하면 1975년에 주간 브니엘고, 야간 브니엘여고로 분리되었다고 한다.) 내지 1976년 경으로 추정된다.
[1] 현재 소유권 분쟁 중이며 재단 교체 가능성이 있다. 항목 참조. 현재는 부산광역시교육청에서 관선이사를 파견하고 있다고 한다.[2] 1999년 이후로는 어떠한 장로회 교단에도 속해있지 않으며, 그나마 학교 역사상 한때나마 소속되었던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이나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과 가깝지만 그렇다고 예장 고신이나 합동 어디에도 속한 학교는 아니다. 다만 비공식적으로 정규 학교로 인가를 받기 직전인 1962~1963년에는 잠시나마 예장합동 계열이었고, 1963년에 예장합동과 예장고신이 다시 분리된 이후부터 1986년 까지는 23년간 예장고신 계열로 당시에는 공식적으로 예장고신 계열 유일의 고등학교 였었다. 이러한 배경인지는 몰라도 학교내에 총신대학교나 고신대학교 출신 교원들이 많으며, 교목들도 총신대학교 아니면 고신대학교 출신들로 예장통합 산하의 장로회신학대학교 출신은 찾아보기 어렵다.[3] 교사 수급에서도 정통 개신교 세례자만 뽑기로 유명한데, 이 때문에 교육청에게 경고를 먹어서 교육청과 대립한 일도 있다. 2017년 현재에도 기독교 교사만 이 학교에 온다고 한다. 실제로 모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옛날에는 브니엘 재단의 교회인 브니엘교회를 나와야 했지만 영 좋지 않은 사건 때문에 1999년 이후로는 장로회 계열 초교파 학교가 되어 현재는 교회만 나가면 된다고 한다.[4] 대학교 진학에 뜻을 두었던 어느 학생이 주도한 데모로 인하여 상업계열 특성화고등학교에서 종합고등학교 → 일반계 고등학교가 되었다는 말이 있다. 당시에는 특성화고등학교였기에 그 학생은 학교에서 제2외국어를 배우지 못하여서 서울대학교를 포기하고 제2외국어를 보지 않는 고려대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는데 그 학생은 다름 아닌 김성호 전 법무부장관/전 국정원장이다(…) 학교가 마음에 안 들면 열심히 공부해서 전교 최상위권에 들자[5] 고교 평준화 당시 문교부에 의하여 평준화 대상으로 지정된 남녀공학 고등학교들은 국립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를 제외하고는 예외없이 남고나 여고로 일괄적으로 전환되었다. # 브니엘고가 남고로 강제로 전환된 이유는 고교평준화 당시 지금의 연제구 지역에 남고가 없는 데다가 이웃으로 이사벨여고와 부산동여고(1980년 남천동으로 이전)가 있었다는 게 주된 사유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사벨여고는 브니엘고가 연제구를 떠난 이후에 부분적으로 브니엘고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남녀공학으로 전환되었다(...) 참고로 이때 국립사대부고는 단성학교 강제전환을 당하지 않는 특혜를 누렸는데, 그 덕에 부산시 최초의 남녀공학 일반고등학교였던 부산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는 부산시 소재의 고교평준화 이전에 설립된 학교들 중 유일하게 단성학교로 전환된 적이 없는 학교로 남아있다.[6] 본래 하나의 남녀공학 학교였던 만큼 잊혀질만하면 두 학교를 합쳐서 다시 남녀공학으로 환원하는 떡밥이 수십년째 꾸준히 흘러나오기도 한다. 노무현 정부 당시 2007학년도 부터 자사고 추가 지정을 검토한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한참 자사고 전환 떡밥이 나오던 2000년대 중후반에도 자사고로 전환에 성공할 경우 일반계 남고에서 남녀공학 자사고로 전환하려 했던 것인지 진학지도실에 새 디자인의 남학생 교복과, 거기에 색깔을 같이 맞춘 여학생 교복 샘플 여러 종류가 실제로 전시되어 있던 적도 있었으나 자사고 전환에 실패하면서 이때는 남녀공학 전환도 덩달아 무산 되었다. 특히 2020년대 이후로 두 학교 모두 학생수가 200~300명대에 불과해서 폐교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심각할 정도로 학생수가 급감하고(고등학교 폐교 기준이 300명이기 때문이다), 재단 자체도 재정난이 심해서 남녀공학으로 다시 합쳐야 하지 않겠나는 이야기가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물론 합쳐봤자 겨우 전교생 600명 채우는 수준이다.), 관선이사 체제 하에서는 원칙적으로 학교 통폐합 자체가 불가능하기에 현재로써는 가능성은 희박하다.[7] 지금은 믿기지 않겠지만, 1990년대 중반만 해도 브니엘고에 가려고 이사오거나 위장전입 하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근거로 금정구 이전 초기에 기존 연산동 시절에 입학한 재학생들을 위한 통학버스를 운행했었는데 전혀 다른 학군인 북구 학군에 해당하는 만덕(당시 만덕은 정상적으로 학교를 배정하면 낙동고등학교나 성도고등학교로 임의 배정되었으며 동래 학군으로는 배정되지 않았다.)으로 가는 노선도 있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만덕 쪽에서 위장전입이 많았다는 뜻이었다. 지금도 여전하겠지만 그때에도 학부모들이 좋은 대학만 잘 보내면 장땡이라고 여겼다고... 그리고 2000년대 초반 까지만 해도 각 학교들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할만한 학교알리미 같은 수단도 없다보니 학교의 우열을 따지는 절대적인 기준은 대학 합격자 발표 시즌이 되면 부산일보나 국제신문 같은 지역 신문에서 내는 각 학교별 명문대 진학 실적 정도 외에는 기준으로 삼을만한 자료를 일반인들이 열람하기란 많이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명문대 많이 보내는 학교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최고의 학교였다. 아마도 이런 사고방식 때문에 브니엘 구재단이 잘못된 길로 빠져든게 아닌가 싶다.[8] 예장 브니엘 교단의 목회자 양성을 위한 4년제+대학원 과정의 신학대학 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개교했으면 신학대를 기반으로 한 종합대학으로 성장하면서 총신대학교나 고신대학교와 비슷한 학풍이 되었을지도... 브니엘 교단 자체가 고신 교단과 한때는 한 가족이었고 많은 영향을 받았었던 만큼 실제로 브니엘신학대학 준비 당시에 고신대학교 출신의 교수진들을 많이 기용하여 하였다. 한마디로 고신대학교의 이복동생이 될뻔했던 학교였다. 물론 이 시기에 브니엘 학원 보다도 재정능력이 못한 영세 사립 중등학교 법인들도 대학교 TO를 배정 받았고 결국 서남대학교 라는 대한민국 역사에 남을 희대의 결과물이 나오기도 했었다.[9] 브니엘 계열 중,고등학교가 4만 5천 제곱미터 가량을 점유하고 남은 면적인 5만 제곱미터 내외의 면적만 따져도 인서울 대학교 중에서 광운대학교, 서경대학교, 한성대학교와 비슷한 수준의 면적이 나온다.[10] 실제로 설립자 박모씨는 김진재, 장성만 같은 국회의원과도 꽤나 친한 사이였었다고 한다. 실제로 장성만 아들 장제국이 브니엘고 출신이기도 하고... 김진재와의 친분을 이용하면서도 장성만과의 우애를 깨지 않을 위치라면 선택지가 여기밖에 없었을 것이다. 반면 지금의 이웃인 가톨릭 계열 성모학원과는 원수지간이고, 동래재단의 오씨 일가와는 사이가 썩 좋지 않았었다고...[11] 이 신학대학이 좀 재미난 학교인게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수 근본주의 성향이 강한 기독교 대학을 만드려고 했었으며 학교 자체도 초기에는 120명 규모의 소수정예제로 운영할 계획이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고신대, 총신대, 한동대를 능가하는 정말로 하드코어하게 보수적인 학교를 추구하려 했다는데, 당장 이들 학교만 해도 일반인들이나 일반적인 기독교 신자들 사이에서는 극보수 학교 라는 인식이 강한데, 그 이상의 보수주의를 추구하려 했다는것은 (...) 여튼 설립되었으면 부산대 운동권 학생들과 끝없이 충돌했을듯 하다.[12] 비슷한 경우로 1970년대에 서울 장충고등학교에 2부형태로 설립된 야간제 장충여고, 서울 장훈고등학교에 2부형태로 설립된 야간제 장훈여고(장훈여상)이 있었다. 장충여고는 얼마 못가서 폐지되었고, 장훈여고(장훈여상)은 1983년에 지금의 브니엘여고처럼 정식 고등학교로 분리개교하기는 했지만, 이쪽 역시도 2010년에 장훈고등학교로 다시 흡수되어 사라졌다(…)[13] 공교롭게도 야간제 브니엘여고의 최대 천적이었던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가 개교한 시기였다. 결국 이 시기에 야간제 브니엘여고는 야간제 학교 그 자체로써도, 테니스부로써도 심각한 이중고를 겪게 되었던 상황이었고 1989년 부터 6학급에서 5학급으로 감축 당하였다.[14] 다만 브니엘 여자고등학교 테니스부가 재단 부도 사태 때문에 해체 되기는 했으나 30년 짬밥이 결코 헛된 것은 아니었고 한때는 그 분야에서 정점을 찍었던 적도 있었기에 그것을 30년간 운영하면서 쌓인 노하우는 브니엘예술고등학교 무용과의 운영에 상당부분 적용되었고, 그 덕택에 브니엘예술고등학교는 초반부터 무용 분야에서는 꽤나 잘 자리잡게 되어 무용과 만큼은 부산예술고등학교 보다 실적이 좋았다고 한다.[15] 그나마 네이버 디지털 뉴스아카이브, 부산교육 연표에 아주 약간은 남아있으니 잘 찾아보면 된다.[16] 다만 후술할 1970년 수업료 미납 및 체벌로 인한 음독자살 기도 사건을 생각하면 이게 과연 사실인지는 의문이다. 아마도 구재단이나 구재단 옹호측의 일방적인 주장일수도 있다.[17] 그 덕분에 인문고로 전환하여 평준화된 당초인 1974년에는 경남고나 부산고에 갈 수 있었던 성적이었던 최상위권 학생들은 고교평준화 정책 때문에 브니엘고 걸렸다고 절망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얼마나 안가서 평준화 초기 세대들이 이룩한 걸출한 진학 성적표를 받아든 이후로는 그야말로 전세가 순식간에 역전...[18] 그래서인지 총동창회 사무실이 금정구가 아닌 동래구 명륜동의 동래 럭키아파트 건너편 중앙여고 옆에 있으며 멀지 않은 곳에는 우성베스토피아도 있다. 당시 학교 내에서 상위권을 하던 동문들의 상당수가 동래 럭키아파트혹은 그 일대에 거주했기 때문에 총동문회도 그 지역을 위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 더군다나 동래 럭키아파트와 우성베스토피아가 위치한 명륜동, 복천동 일대는 거주만족도가 높은 동네라서 학창시절이 30년은 훌쩍 넘게 지나고도 그 일대를 떠나지 않고 계속 살거나 부모로 부터 아파트를 상속받아서 계속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동래 럭키아파트 세대 동문들은 현재 5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다.[19] 그도 그럴것이 부산 4학군의 일반계 고교 중에서 브니엘고 만이 유일하게 특성화고등학로 개교해서 일반계 고등학교로 전환된 학교다. 그래서인지 일반계고교 에서 또 예술고로 전환했다고 오인되어도 의심없이 사실인것 처럼 믿을 만 했다. 심지어 브니엘예술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을 브니엘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인 것인 양 보도된 사례도 종종있다.[20] 같은 4학군의 이사벨고등학교 건물이 1969~73년경 완공, 동래고등학교 건물이 1966년(1차),1968년(2차) 완공, 중앙여고 건물이 1973년 완공이고, 계성여상 건물은 1970년 완공인데 세 학교 모두 리모델링을 거치면서 2016년 현재도 모두 잘 쓰고 있다.[21] 다만 강당이 있는 건물 상층부나, 舊 브니엘중학교/브니엘여자고등학교가 있었던 축대(월드컵대로 방면)가 안전성 문제가 있었다는 카더라가 있지만 공식적인 자료는 없다. 근데 지은지 30년도 안 된 학교 건물이 안정성 문제가 있다는 것은 부실공사를 했다는 뜻이다. 역시나 이사장이 문제[22] 실제로 07년 브니엘국제예술중 광고에서도 브니엘고등학교 07학년도 대입 돌풍의 주역(주로 당시 남고 고3 담임들)을 차출해서 만들었다고 대놓고 홍보했다(...)[23] 그러나 예술중학교 폐교 문제는 몇몇 교사들에게 상당히 민감한 문제 였었는데, 정선재단이 오기전인 2005~2006년 쯔음에 재단에서 파행운영으로 유령화된 상태인 예술중학교에다가 실력이 없거나 이사장 말을 안듣는 교사들을 몰아놓는 식으로 전보한 뒤 부산교육청의 권고 대로 폐교하는식으로 학교에서 쫓아내려고 했었다고 한다. 이런 점 때문에 오히려 정선재단은 예술중을 국제예술중으로 바꾼 다음에 해직에 반대하는 교사들을 선동하여 학교 법인을 점거하는 도구로 활용했었다...[24] 사실 그 짤방에 나온 얼차려 주는 선생님도 절대로 무시무시한 분은 아니었고 나름 재미있게 수업을 진행하는 분이었으나, 인터넷에 퍼진 사진 한 장 때문에...[25] 하지만 정말 아이러니 하게도 같은 재단인 브니엘예술고등학교는 선후배 관계가 빡세기로 유명하다.[라고] 적혀있긴 하지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각목으로 허벅지가 시꺼멓게 변할 정도로 때리거나 뺨을 때리는 등의 체벌은 흔했고 동아리에서 선배가 후배를 모아놓고 때리는 경우도 종종 있기는 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체벌 교사와 학생들 사이의 관계는 비교적 좋은 편이었으니 지금의 기준으로는 의아할 수 있는 부분. 이는 당시 혼란한 학교 내부의 상황에서 교사들이 '교내 정치' 또는 '학생들' 로 관심사가 갈라지며 체벌교사가 학생들에게 관심을 두는 쪽에 많이 위치한 탓이기도 했다. 아예 학생들에게 관심을 끊는 부류 아니면 패다가도 감자와 고구마를 직접 삶아 나누어 줄 정도로 챙기는 부류로.. 물론 연산동 시절에는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학부모들 사이에서 유명했던 고등학교 답게 부산시내에서 체벌로 악명(??)이 자자했었다. 연산동 시절인 1995년 까지만 해도 당시 부산에서 체벌이 가장 심한 고등학교라는 수식어가 붙었을 정도. 오히려 학부모들이 자식이 공부 안하고 말 안들으면 더 때려달라고 교사들에게 부탁 했었다고....[27] 쌍용자동차의 경우 한때 불안한 회사 상황으로 많이 까였고, 로디우스, 카이런, 액티언 삼총사는 회사 상황이 불안정한 쌍용자동차라는 점에다가 디자인 가지고 인터넷 상에서는 엄청나게 까이던 차종이다. 하지만 정작 이 3개 차종에 대한 오너들의 만족도는 쌍용자동차라는 점과 디자인 빼면 의외로 높은 편이며, 성능이나 승차감 같은 차량 자체에 대한 불만은 적었다고...[28] 야간자율학습시간에는 인강을 들어도 좋다.[29] 매달 학생들이 돈을 모아 컴패션에 후원함으로써 제3세계 아이들의 생계를 직,간접적으로 돕는다.[30] 금요일마다 1학년과 2학년이 매주 번갈아 가며 배달한다.[31] 금정세무서~노포역~덕계~웅상도서관~웅상대동이미지~웅상공영차고지 구간은 양산 버스 58번 담당하여 현재 운행중이다.[32] 당연하지만 의대 건물 짓는 비용이 고등학교 건물 짓는 비용보다 넘사벽으로 비싼 건 상식 중의 상식이다. 아니, 대학교 건물만 해도 고등학교 건물보다 짓는 비용이 많이 비싸다.[33] 이 시절에는 브니엘실업고등학교였으며, 김성호 전 법무부장관은 관광과였다고 한다. 브니엘실업고등학교 개교 초기에는 공식적으로는 2기 였으나 이후 고등기술학교 기수까지 합산해서 4기가 되었다.[34] 소위 말하는 흙수저 출신으로 태어나서 자수성가로 구니카 라는 완구 업체를 자력으로 일군 인물이었다. 역대 브니엘학원 이사장 중에서는 유일무이한 흙수저 출신이었고 브니엘학원 동문 출신 이었다. 어린시절 서민들의 애환을 직접 겪어본 인물이다 보니 역대 브니엘학원 이사장 중에서는 가장 상식인에 가깝다는 평이었으나 사립학교를 사유재산으로 여긴 잘못된 법원의 판결로 이사장직에서 물러나야 하는 비운을 맞이하였다.[35] 남녀공학 마지막 시절이자 테니스부 최전성기인 1973년에 전일본 주니어 테니스 대회에서 단식, 복식 우승(!)으로 당시 신생학교였던 브니엘고의 이름을 크게 알리면서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36] 제7대·제8대 금정구청장(민선 2기·3기)을 역임한 김문곤의 아들[37] 제11대·제12대 국회의원, 제12대 후반기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고 동서대학교를 설립한 장성만의 아들. 제18대·제20대·제21대 국회의원 장제원의 형.[38] 러브하우스로 유명한 그 사람 맞다. 1982년 하나멜 초창기(2기) 멤버중에 하나[39] 1996년 이후 무려 20년(!) 만에 처음으로 들어온 배차간격 1시간 이내의 정규 노선(약 40분)이다.[40] 지금의 특성화고등학교와 비슷하지만 정식으로 인가받지 못한 학교. 지금의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이라고 보면 된다.[41] 헌데 1965년에 브니엘실업고등학교에 입학한 김성호 전 법무부장관, 국정원장이 2기 라고 밝힌 적이 있어서 공식적으로는 1964년 부터 1기 였으나, 어쩌다가 1962~1963년 고등기술학교 시절의 1~2기 까지도 합산해서 통합 기수로 매기는듯 하다. 즉 지금 나오는 졸업앨범에 적혀있는 기수는 통합기수인 셈.[42] 물론 이정도로 빠른 성장은 1970~80년대에 걸쳐 동래구 일대가 택지 개발이 되면서 사직동 일대의 사직 주공아파트, 사직 시영아파트 같은 대단지 아파트라던가, 구서 주공아파트, 한양아파트 시리즈, 삼익아파트 시리즈, 동래 럭키아파트, 구서 선경아파트, 우성 베스토피아 등등 아파트 물량이 하루가 멀다하고 계속 쏟아져 나오는데다가 당시만 해도 부산지역에 일자리가 많아서 많은 인구가 유입되었고 베이비붐 세대가 고등학교 취학연령이 되면서 일반계 고등학교 수요는 넘치는데 공급이 딸려서 지어도 지어도 부족할 정도가 되다보니 평준화 전환에 성공한 브니엘고등학교가 자연스럽게 급성장 한것이었지만, 그래도 초창기 브니엘고등기술학교-브니엘실업고등학교와 거의 동일한 선상에서 출발했던 과거의 동상실업학교나 신성여자실업학교, 한국고등기술학교는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고 국제고등기술학교는 아예 폐교되어 사라졌으며, 1958년에도 제대로된 콘크리트 건물을 이미 갖추었고 1974년 이전 까지만 해도 브니엘실업고등학교 보다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었던 계성여자상업고등학교 조차도 1974년 이후로는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하면(물론 계성여상은 남성재단의 남성여고 팀킬방지 차원으로 일부로 성장을 억제했지만...) 구재단 설립자 박씨도 당시 기준으로는 사학 경영능력이 뛰어났다고 볼 수 있다.[43] 전성기 시절 브니엘고등학교의 위용과 규모, 진학실적, 동문 라인업을 생각하면 오히려 설립자에게 국민훈장을 아예 수여하지 않은것이 정말 이례적인 사례다. 오히려 브니엘고 보다 규모나 실적면에서 작은 사학을 설립한 인물에게도 사학 운영을 관선이사가 파견되는 중대한 실격사유 없이 기본 이상 만큼은 했다면 어지간해서는 국민훈장 모란장이나 동백장을 수여하는 경우가 많았었다. 그정도로 교육부에서도 구재단 설립자를 상당한 비리사학인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결국 설립자는 신학대학을 설립하겠다는 허항된 욕심으로 브니엘학원을 말아먹은것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명예 마저도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44] 그들 입장에서는 구재단 설립자가 아니었으면 경제적 문제로 국졸이나 중졸로 남을뻔 했으나 구재단 설립자 덕분에 완전한 정식 중졸, 고졸 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중졸이나 고졸에 준하는 학력을 가질 수 있었고, 당시에는 중학교 조차도 대중화 되기 이전이라 초졸도 정말로 많았던 시기였기에 동문들의 후광이 어느정도 필요한 전문직 같은 것만 안하면 동문 라인이 없다시피한 고등공민학교, 고등기술학교나 마이너 특성화고등학교 정도만 나와도 어느정도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초기 기수들이 1940년대 중반~195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로 지금 시점에서는 70세 이상의 소위 말하는 노인 세대인데 6.25 전쟁을 유년기에 겪었거나 직접 겪지 않아도 6.25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던 시기를 거쳐갔던 만큼 북한이나 공산당, 좌익, 빨치산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으며, 특히 고등기술학교 시절 기수들의 경우는 전쟁 고아 출신들도 많았다고 하는 만큼 그들 중에는 유년기에 자신의 부모나 친척들이 조선인민군이나 중국 인민지원군 혹은 빨치산 같은 공산 게릴라에게 죽임을 당하는것을 두 눈으로 지켜봤던 이들도 제법 많이 있었다. 그정도면 그들의 트라우마가 어느정도인지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 후로도 박정희 시절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직접 겪으면서 친박 같은 우파들에 대한 신뢰도가 어마어마한 세대인데 이들 입장에서는 소위 말하는 전교조 같은 진보나 좌익들에 대한 반감이 어마어마하고, 브니엘 고등공민학교의 초기 설립 목적이 전후 대한민국의 복구를 지원하는 차원이었고 반공 우파를 기치로 삼던 구재단 설립자를 끝까지 지지하거나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감싸 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45] 일반적인 한국의 고등학교는 한번에 둘러보는 식으로 동선을 아끼면서 효율적으로 야간자율학습을 감독할 수 있는 一자형 혹은 ㄱ자형 평면 구조를 예나 지금이나 많이 쓰는데, 王자형 평면구조의 경우는 한 동을 둘러본 뒤 다시 가운데의 구름다리를 거쳐서 다음 동으로 가서 동마다 일일이 둘러봐야 하는 등 야간자율학습을 감독해야 하는 교사의 동선이 상당히 길어지고 피로도가 높아지는 문제점이 있었다.[46] 금정구청 쪽에서는 학교 정상화 능력이 없다고 평가 하기도 했다(...)# 실제로 학교를 정상화 하려는 목적으로 데려온 이사장이 아니고 당초에는 구재단 복귀 가교 역할이었다보니... 학교 정상화를 하려면 차라리 이기택을 데려오는 게 더 현실적이었겠지만 그렇게 되면 구재단이 된통 당할테니...[47] 이 구도는 2013년 부산 WCC 총회에서도 재연 되었는데, 예장통합 측에서는 부산 WCC를 주관하기도 했으나 예장 브니엘은 부산 WCC 총회를 격렬하게 반발했다고...[48] 브니엘학원의 자회사였던 뉴월드라는 업체가 운영하였으나, 재단이 바뀔무렵인 2007년에 별개의 업체로 독립하여 지금까지도 운행하고 있다.20년째 장기집권 다만 별개의 업체로 독립한 이후에도 역시나 그 후신 아니랄까봐 차량 관리상태가 열악한데다가 기사들의 불친절 문제도 여전한듯(...) 업체가 독립하게된 이유가 이사장이 바뀐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으나, 보다못한 금정구청이 고물차(...)들을 압류한것도 원인이었다는 카더라가 있다. 그나마 301번 투입 이후로는 위기감을 느낀것인지 똥차가 아닌 유니시티 유로6 같은 쓸만한 차들이 많이 들어가고 있는듯.[49] 하지만 정작 브니엘학원 차량사업부는 영업용 전세버스 면허도 없이 불법 대절 영업을 하면서 길ㄸ라, 부ㅅ고속관광같은 금정구 소재 전세버스 업체(특히 불쌍한 부ㅅ고속관광과 브니엘/정선학원의 악연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들의 어그로를 제대로 끌었던 적도 있었고, 이로 인하여 안그래도 불편한 관계였던 금정구청이 제대로 빡친 나머지 2006년 말에 차량을 압류해 버렸다고 한다(...) 내로남불[50] 만약 기사 아저씨가 당신과 친구들을 태우지 않고 갔다면 택시를 타고 학교를 가자. 차량과에 영수증이나 미터기를 찍어 증거를 만들어 가면 보상해준다. 하지만 과거에는 차량과에 아무리 따져도 보상 같은건 없었는데, 아마도 301번 버스가 들어오면서 위기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51] 동원개발 재단 측에서 구재단과 접촉한 적도 있었고, 2018년 8월 중순에는 정선재단과도 접촉한걸로 봐서 인수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사실 동원개발 재단 인수 관련해서는 2014~2015년 쯤에 부산시 의회의 보수성향인 모 시의원이 지지했으나 정작 김석준 교육감은 브니엘고가 새 재단을 만나서 명문학교로 재탄생하면 고교 서열화 조장이 우려되고 사학을 사유재산인양 사고 파는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면서 다소 비협조적으로 나왔었다. 김석준 교육감은 브니엘고를 2000년대 중반 상지대 처럼 공익이사를 파견해서 공영형 사립학교로 운영하고 싶어했었다고...[52] 서울의 상문고등학교, 은광여자고등학교 통합 동문회인 상은회와 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되었다.[53] 이 재단의 경우는 이사장이 당연히 기업 대표 였기에, 기업 대표 이사장 특성상 재단 산하의 가망없는 학교(미개교 상태의 브니엘신학대학과 예중)들은 순차적으로 정리하고, 가망 있는 학교만 법을 준수하는 선에서 밀어줄 계획이었다고 한다. 미개교 브니엘신학대학도 정부의 미개교 부실대학 퇴출 정책이 발표되자 이 이사장이 자진해서 말소 신청을 했다.[54] 헬스장은 남고 지하 주차장으로 옮겨졌고, 선생님들이 쓰다가 2019년 1학기 부터 허가받은 학생들에 한해 개방되었다.[55] 이 부채가 현재로써는 학교 재단의 가치보다도 높다고 한다(...)[56] 실제로 해당 판결의 기초가 된 상지대학교의 경우도 법원 판결로 구재단 복귀가 확정되어 온갖 논란에 휩싸였으나, 2013년 헌법재판소 판결로 인하여 2016년 말에 분위기가 급반전 되어 판결이 엎어지면서 다시 구재단 복귀가 차단당해 버렸다.[57] 하필이면 1999년 브니엘학원 부도 사태 당시에 문재인은 금정구 장전동에 거주하였다고 전해지며 2008년까지 자택이 금정구 소재였다. 게다가 문재인의 자녀들도 브니엘 계열 고등학교를 피하려 했던 정황이 살짝 보인다. 아마도 문재인은 브니엘학원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구재단 입장에서는 날벼락인 셈. 더군다나 문재인과 가까운 사이이자 국정감사에서 브니엘 재단 비리를 정말 정확하게 저격하던 배재정이 국무총리비서실장으로 임명되었고, 이정도면 문재인도 잘 알고 있을듯 하고 사실상 구재단에 내려진 '사형선고 수준. 그리고 한때 브니엘고와 한식구였던 고신대학교 신급제한 위헌소송을 제기한 담당 변호사가 문재인이었고 결국 신급제한 위헌소송은 패소하여 문재인이 패배하여 변호사 커리어에 흠집(??)을 남긴 만큼 이런 면에서도 오래전부터 악연관계라고 볼 수 있다.[58] 문재인의 경우는 적폐청산 관련 공약으로 사학비리 당사자들의 복귀를 금지 시키고, 정상화 과정에서도 사학비리 당사자들을 배제시키겠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제의 구재단은 금정구청과 부산교육청을 비롯하여, 성모학원, 동래학원 같은 여러 사학 재단 등등 적을 워낙 많이 만들어놓은데다가, 부산 시민사회에서의 인식도 홍복재단 수준이라 가히 최악이라 할 수 있으며, 금정구 뿐만 아니라 연제구 원로들 사이에서도 현재는 그 인식이 심히 좋지 못해서 쉽사리 복귀를 허락할 가능성은 낮다. 설상가상으로 구재단은 20여년 전에 학교 이전과정에서 김진재 계열 인사들을 제대로 자극한 적도 있는데, 하필이면 금정구는 정치 지역구 세습이 되는 지역이라서 현재는 김진재의 아들인 김세연이 금정구 국회의원이다보니, 과거 김진재 계열 인사들도 여전히 금정구 요직에 있는 상황이라 그들이 과연 구재단의 복귀를 가만히 놔둘지..[59] 구재단 측에서는 학교 재단에서 안쓰는 학교 주변의 땅을 팔면 빛을 다 갚을 수 있다는 주장을 하였으나 사분위에서는 당연히 받아주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이 정상화 계획안은 재산을 추가로 출연하지 않고 학교재단 자산을 팔아서 메꾼다는 발상이라 서남대학교 구재단이 제출했던 서남대 정상화 계획안과 거의 유사한데, 서남대의 경우는 당연히 퇴짜를 맞았고 폐교 처리 해버렸기 때문에 사학 정상화에 형평성 문제도 비중을 크게 잡은 현 교육부는 이쪽도 당연히 퇴짜를 놓을 것이다. 하다못해 과거 보수 정권에서도 예외적으로 선덕고 같은 전례도 있고...[60] 새 정부 들면서 비리 사학 재단 퇴출 및 정상화, 수도권 집중화 해소 및 지방 균형 발전(부산은 대기업계열 사학재단이 아직도 없는 상황), 학력차별 철폐, 자사고와 외고의 폐지 및 일반고 위주의 교육의 평준화가 주요 논제로 떠오르고 있고, 게다가 프로듀스 101 시즌2 우승자의 강다니엘이 형제학교인 브니엘예술고등학교를 거쳐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국적으로 지명도가 많이 오른 상황이라서 불과 몇달만에 상황이 급반전 되었기에 유명 대기업이 브니엘 학원을 인수하는 가정도 충분히 나올 법한 상황이다. 게다가 600억 넘는 어마어마한 부채를 다 갚아서 정상화에 성공하려면 대기업 재단으로 인수되는것이 불가피한 상황이라, 정상화를 한다면 어떻게든 교육청이나 교육부에서는 되도록이면 대기업 재단으로 넘기려 할것이다... 만약 대기업이 부채해소 조건으로 인수한다면 인플레이션을 감안했을시 1994년 삼성그룹이 중동중,고등학교를 인수했던 것과 비슷한 상당한 인수 규모가 될듯(...)[61] 정작 같은 시공사인 한신공영이 서울 구도심에 지은 몇몇 학교 건물은 1960년대에 지어서 브니엘고 건물보다도 30년 정도 더 오래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비가 새지 않는다고 하니, 결국은 시공과정에서 건물의 원가절감이 워낙 심해서 생긴 문제이다. 사실 같은 금정구의 금양중학교 건물만 해도 브니엘고 건물보다 30년 정도 오래되었지만 비가 새는 문제는 거의 없었다.[62] 용인고등학교는 동래구 명장동 소재이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4학군 소속이고, 학교의 위치는 금정구와 동래구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덕분에 금정구 서동 뿐만 아니라 장전동과 부곡동 일대에서도 많은 학생들이 용인고로도 배정이 되고 심지어 구서동에서도 용인고로 배정이 되는 경우가 제법 있는 편이다.[63] 더군다나 관선이사 파견 상태의 고등학교는 과학중점고등학교로 지정된 전례가 없었던 만큼 브니엘고등학교의 과학중점학교 지정은 정말로 이례적인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