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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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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고등학교
東萊高等學校
DONGNAE HIGH SCHOOL
파일:동래고 로고.png
<colbgcolor=#30394A> 교훈 힘 기르고 뭉쳐서 내일의 일꾼 되자
개교 1898년 9월 1일 공립동래부학교
유형 일반계 고등학교
성별 남자고등학교
형태 공립
교목 소나무
교화 국화
교조 까치
교장 신창훈
학생 수 733명
(2024년)
교직원 수 63명
(2024년)
관할 교육청 부산광역시교육청
주소 부산광역시 동래구 충렬대로285번길 22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nopad>

1. 개요2. 역사
2.1. 연혁
3. 학교 상징
3.1. 교표3.2. 교목, 교화, 교조3.3. 교가3.4. 동고야
4. 특징
4.1. 교복4.2. 위치4.3. 장학금
5. 운동부
5.1. 축구부5.2. 테니스부5.3. 야구부
6. 학교 시설7. 학교 생활8. 출신 인물9.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9.1. 버스9.2. 지하철
10. 여담11.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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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동래고 전경.jpg
동래고등학교 과거 전경

부산광역시 동래구 칠산동에 있는 공립 일반계 고등학교이다.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 시행 전에는 경남고등학교, 부산고등학교와 더불어 3대 명문 공립 남고였다.

2. 역사

1898년 9월 공립 동래부학교로 설립되었으며, 1916년 10월 5일 사립 동래고등보통학교로 개칭되었다. 1922년 4월 24일 관립 동래고등보통학교로 개칭되었으며, 1923년 4월 2일 현 교지로 이전하였다. 1925년 4월 1일 동래공립고등보통학교로 개칭되었으며, 1938년 4월 1일 동래공립중학교로 개칭되었다. 1951년 9월 1일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분리되었으며, 동래고등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다. 현재 설립일 기준 [age(1898-09-01)]년이나 되는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age(1898-09-01)]년의 역사를 자랑한다고 하지만, 2022학년도 신입생은 101회인데, 이는 일제강점기 시절 사립에서 관립으로 바뀐 입학생부터 동래고의 동문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2.1. 연혁

파일:sub3_1.gif

2021년 3월 2일 제100회(!) 신입생 208명이 입학했다.

2024년 1월 9일 제100회 졸업식(졸업생 208명, 누계 37,498명), 같은 해 3월 4일 제103회 입학식(입학생 228명)이 진행됐다. 부산고, 경남고, 부경고, 부산동고, 부산동성고 등 원도심 소재 학교에 비해 입학생이 100여명 이상 많다.

3. 학교 상징

3.1. 교표

파일:QxABapf.jpg 교표는 벌로 부지런하게 일하자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교표가 생각보다 많은곳에 쓰이는데 교기에도 벌이 들어가며 교복에도 벌 표식이 달려있다.

3.2. 교목, 교화, 교조

1. 교목: 소나무로 강인한 의지와 씩씩한 기상을 상징하며, 국가의 유능한 인재인 동량 양성을 의미한다.
2. 교화: 국화이다. 격정과 고통을 견디어 낸 성숙한 인간의 인고와, 고고한 기품과 절개를 지키는 군자를 상징한다.
3. 교조: 까치이다. 반가운 소식을 알려 주는 길조로, 은혜를 아는 의로운 삶의 자세와 좋은 인연을 맺어 주는 다리를 상징한다.

3.3. 교가

1절
푸른 하늘 은하수 파도 소리에
씩씩하게 자라는 남쪽의 아들
열어라 눈부신 지혜의 등창
맹세하여 빛내리 동중의 전통
2절
아침 안개 저녁비 모진 바람에
참을 찾아 달구는 영원의 젊음
불러라 벅차는 영광의 노래
날 기르는 요람터 망월의 언덕
-1948년 이주홍 작사 박용식 작곡
1절
태백산의 정기를 받아 우리기상 이루어지고
동해바다 거친 파도에 사나이의 뜻이 자란다
받으리라 화랑의 정신 비취리라 이겨레의 앞길을
우리들은 조국의 아들 배달 혼의 계승자일세

망월대 아래 모인 우리 학우 시련에 이겨서
나아가자 배움의 길 한걸음 또 한걸음
동고 동고 우뚝하다 그 전통
동고 동고 빛내어라 그 이름
2절
우렁차게 노래 부르자 젊은 피의 뛰노는 가슴
양양하다 우리의 앞길 샘솟는 우리의 희망
잊을쏘냐 청춘의 큰 뜻 저 하늘에 아로새긴 맹세를
우리들은 세기의 아들 새 역사의 창조자로세

망월대 아래 모인 우리 학우 시련에 이겨서
나아가자 배움의 길 한걸음 또 한걸음
동고 동고 우뚝하다 그 전통
동고 동고 빛내어라 그 이름
-1952년 김소운 작사 김동진 작곡
1절
우람히 굽이쳐온 아세아의 거창한 얼이
여기 장산 기름진 벌끝 그 염원을 이루었나니,
갸륵할 손 어진 겨레의 슬기받아 일어선자 동고는
정의와 인도의 횃불 우렁차게 솟쳐올렸네.

망월대 위에 걸린 하늘 휘영청 푸르고,
사나이의 벅찬 뜻은 멀고도 높거니
동고, 동고, 거룩하다 그 이름,
동고, 동고, 빛내리라 영원히
2절
창망히 굴러넘는 태평양의 짙푸른 꿈이,
여기 동해 드맑은 변죽 그 보람을 거두었나니,
갸륵할 손 젊은 세기를 주름잡아 가꿔낼 자 동고는
자유와 평화의 깃발 눈부시게 치켜올렸네.

망월대 위에 걸린 하늘 휘영청 푸르고,
사나이의 벅찬 뜻은 멀고도 높거니
동고, 동고, 거룩하다 그 이름,
동고, 동고, 빛내리라 영원히
-1960년 유치환 작사 김동진 작곡

해방되고 3년 후인 1948년, 한국어로 된 교가가 처음 탄생하게 되었는데, 동래고등학교 교사로 재직중이던[1] 이주홍선생[2]이 작사하였고, 경남상고의 음악교사로 재직중이던 박용식선생이 작곡하였으며, 성악가 정복갑이 강당에서 발표회를 가진 후 3년간 불리게 되었다.

이후, 좌익단체에 연루된 박용식 작곡가로 인해 1952년, 수필가인 김소운이 작사하고 김동진이 작곡한 새 교가로 바뀌게 되었다.

현재의 교가는 작사가 김소운필화사건에 연루되면서[3] 새로운 교가 제정을 요구 받았으며, 청마 유치환 선생이 1960년 작사를 요청받고 이에 가사를 바꾸게 되면서 현재까지 이르게 되었다.[4](동래고등학교 재경총동창회)

학교 행사를 포함하여, 대부분 1절만 부르고 2절을 부르는 경우는 드물다. 후렴 부분이 다소 높다.

신입생 OT에서 다음에 후술할 응원가와 함께 필수로 외워야 한다.[5]

하지만 주요 행사를 제외하고는 교가를 부를 일이 거의 없다. 동고야를 더 자주 부른다.

3.4. 동고야

(전체 차렷 동고야 준비) 어이
(동고야 준비됐나?) 됐다 (됐나?) 됐다 (됐나?) 됐다 (동고야) 동고야 (동고야) 동고야 (동고야) 동고야 (동고야 시작!)
"태백산과 동해수의 젊은 정기 망월대에 모인 세기의 왕자" (동고야) 동고야 (동고야) 동고야 (동고야) 동고야
"붉은 피는 이 가슴에 불타 오고 의기 충천 우리 용사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동고 넋에 당할자 그 누구냐 랄라" (랄라) 랄라 (랄라) 랄라 (아싸랄라) 랄라
"힘쓰자 우리 동고 백전백승 야!"

(~)는 선창, 나머지는 후창이다. "~"는 가사, 나머지는 후렴구라 보면 된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학교 운동선수들이 한국말로 된 응원가가 필요하다고 요청하여 부산진 청년회의 노래 가사를 바꾸고 미국 딕시랜드의 곡을 편곡하여 만든것이 학교 운동가 NO1. "동고야"이다. 최초의 동고야를 들어보면 현재의 동고야와 살짝 다른것을 느낄 수 있다.

교가보다 더 자주 부른다. 동래고등학교의 응원가이다. 교내 행사가 있거나 수련회, 수학 여행, 수능 응원 등에서 부르는 노래이다. 사실 노래라고 하긴 뭐하지만 아무튼 많이 부른다. 입학전 OT에서 교가와 함께 반드시 외워야하는 요소였다. 2019년 기준 교가는 OT에서 군봉관(체육관)에 불러모아 연습시킨다.[6] 선창자는 절대로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생목으로 선창을 해야하기 때문에 보통 한번 하고 나면 목이 나가곤 한다. 반장은 2주 동안 매일 점심, 저녁시간에 학생회실이나 군봉관 뒤에서 후창과 선창 연습을 한다. 가끔 학교 행사에 선배가 오면 같이 따라해주곤 한다. 1학년 수련회는 지리산으로 가는데 산 정상에서 반장들끼리 동고야를 부르는 것도 전통이라 카더라.

매 기수마다 템포가 다르다. 점점 빨라지는 기수들이 있는 반면 느려질 때도 있다. 동고의날에 강당에서 동고야를 하면 재학생들의 동고야 템포와 졸업생 선배님들의 템포가 다른것을 볼 수 있다.

템포가 극단적으로 빨라지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수능응원날이다. 수험생을 길게 붙잡아둘수도 없고 춥고 힘들기 때문에 빨리 하고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작용해서 그렇다.

4. 특징

4.1. 교복

2019년 기준 동복은 스쿨룩스에서 하복은 런던베이직에서 공동구매를 진행했다.

동복은 푸른색 와이셔츠에 낵타이와 조끼가 있으며 재킷은 짙은 그레이색 컬러의 4버튼 스타일이다.

하복은 흰색 와이셔츠[7]에 검은색 바지를 입는데, 반바지와 긴바지중 선택이다.[8]

2021년 새로운 생활복을 제작할 예정이며 하복대신 입어도 된다고 한다. 디자인은 진한 남색카라반팔티이다.

동복의 푸른 와이셔츠 때문인지 다른학교 학생들이 버스 운전기사, 경찰복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4.2. 위치

대부분 산 중턱에 위치한 타 부산 시내 학교들과 달리 평지 대로변 사이 골목에 학교가 위치해 접근성이 상당히 좋다. 학교 앞 30초 거리에 부산 도시철도 4호선 낙민역과 버스 정류장이 존재한다.[9] 더 밑으로 걸어내려가면 동해선 광역전철 동래역이 위치해 있다. 단 충렬대로의 특성 상 교문이 충렬대로 바로 앞쪽으로 나 있지 않고 옆 골목길인 충렬대로285번길에 있기에 조금 둘러와야 한다.[10] 따라서 충렬대로 연선 낙민역 3번 출구 부근에 사람만 통행할 수 있는 작은 쪽문을 설치해달라고 요구하는 학생들이 많은 듯 하다.

4.3. 장학금

학교알리미 기준 374,517,080원인데 이는 타 일반고에 비해 월등히 많은 금액이다. 그 이유로는 역사와 전통이 있는 학교이기에 동창회의 지원이 많기 때문이다.

5. 운동부

5.1. 축구부

김호, 김호곤, 정용환, 최용수, 윤성효등을 배출한 축구부는 1912년 만들어져, 지금껏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부산지역 명문 축구부이기도 하며 개성고등학교, 부경고등학교, 부산정보고등학교, 기장고등학교와 함께 부산 5대 고교 축구부로 잘 알려져 있다.

근래 동래고 축구부 출신에는 올림픽 대표팀 골키퍼 이창근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도 뛰었던 부산 아이파크의 공격수 이정협 등이 있다.

다만 이 둘은 부산 아이파크와 유스 계약을 맺던 시절 배출한 선수이며, 유스 계약을 해지한 뒤, 다시 학원 축구 체제로 전환된 요 근래에 들어서는 다소 전국대회 성적이 저조한편.

2015년, 당시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래준이 자유신인선발을 통해 포항 스틸러스와 프로 계약을 맺으며 다시금 K리그 프로선수를 배출하는데 성공했다.

5.2. 테니스부

1981년 대만국제주니어선수권대회(18세부) 남고부 3위 (구자열)
1995년 홍콩국제주니어선수권대회(18세부) 남고부 우승 (김동현)
2009년 호주오픈국제주니어대회 남고부 8강 (정석영)
2010년 태국국제써키트대회 남고부 준우승 (정석영)

1958년에 부산에서 최초로 창단된 고교 테니스부인 동래고등학교 테니스부는 부산의 전통적인 남자 테니스의 명문으로 전국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으며 부산에서 가장 높은 국제대회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에는 동래고등학교의 아성에 도전하는 사립학교 남자 테니스부가 여러개 존재했으나 사립학교 테니스부들이 재정난으로 해체 크리를 당하는 와중에서도, 동래고등학교의 테니스부는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꾸준히 롱런하면서 2015년 현재도 남산고등학교 여자 테니스부와 더불어 부산 고교 테니스의 양대산맥으로 군림하고 있다.

그 외에 뿌리가 같은 중학교인 동래중학교 역시도 남자 테니스부를 운영하고 있는 부산 대표 테니스 명문으로[11], 부산의 남자 테니스에서 동래중→동래고 테크트리는 정석으로 자리잡고 있다.

5.3. 야구부

롯데 자이언츠의 심장과도 같은 박정태, 롯데 자이언츠한화 이글스 등을 거친 문동환 그리고 롯데 암흑기 시절을 지탱했던 박지철 등 쟁쟁한 선수들을 배출하기도 한 야구부가 존재했지만 1998년 IMF가 터진후 해체가 선언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동래고등학교 야구부 항목으로.

6. 학교 시설

1964년 8월 24일, 학교 건물[12][13]에 큰 화재가 나 1966년(1차), 1968년(2차)에 학교 건물을 재건축했는데 그 이후로 쭉 쓰고 있다. 중간에 본 학교 건물과 이어지는 신관을 짓기는 하였으나 학교 시설은 타 학교에 비해 많이 노후하다. 그러나 학교에 건물이 5개[14]나 되며, FIFA 규격 축구장과 4개의 테니스 코트로 인해 학교 부지는 어마어마하게 넓다.

자세한 내용은 동래고등학교/시설 문서 참고.

7. 학교 생활

동래고등학교/생활 문서 참고.

8. 출신 인물

9.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9.1. 버스

충렬대로 바로 옆에 학교가 있는지라 경유하는 시내버스 노선들이 상당히 많다.
낙민역.동래고등학교(06158·06161·06709·06710)[15]
급행 [중앙]
일반 [17] [중앙] [중앙] [중앙] [가변] [가변] [가변] [가변] [가변]
[가변] [가변] [중앙] [가변] [가변] [중앙] [가변] [중앙] [중앙]

9.2. 지하철

10. 여담

11. 관련 문서


[1] 당시 이름은 동래중학교[2] 현재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에 문학관이 있다.[3] 1952년 베네치아국제작가회의 참석 이후, 일본에서 이승만 정권을 비판한것이 문제가 되었다.[4] 여담으로 김소운은 이승만 정권을 비판하였다는 이유로 5.16군사쿠데타 이후인 1965년도가 되어서야 한국으로 귀국을 하게 되었다. 이 때, 유치환 선생은 문단 선배인 김소운이 작사한 교가의 가사를 바꾼것이 미안하여 학교당국에 본래의 가사로 되돌리는것을 부탁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뒤에 김소운이 이 소식을 전해듣고 유치환 선생에게 감사를 표했다고 한다.[5] 타 학교에 비해 교가가 긴편이다.[6] 이후 동고의날 전 2주정도 점심시간동안 추가 연습이 있다.[7] 무늬 없이 올 화이트이다.[8] 물론 두가지 다 구매 가능하다.[9] 따라서 지각이 임박한 등교 시간대에는 낙민역과 버스 정류장에서 학생들이 학교 교문 앞까지 전력질주를 한다 카더라.[10] 충렬대로는 향시 교통 체증으로 헬게이트가 열리는 지역이다.[11] 이쪽은 동래고등학교 보다는 늦은 1965년 부터 운영하고 있다.[12] 이때까지만 해도 일제강점기1923년에 만들어진 목조 건물을 사용했다. 놀랍게도 이 당시 목조건물의 설계도는 현재도 남아있으며, 인터넷에서 설계도 일부를 찾을 수 있다.# 그 외에도 일제강점기 시절에 촬영된 구교사 사진이 있는데, 흑백사진이기는 하지만 일제강점기 사진이라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화질이 좋다.#[13] 화재 원인에는 다양한 말들이 있었지만, 가장 신빙성 있는 원인은 '담배로 인한 화재'로 전해진다. 당시 한 선배의 증언#에 따르면 한 학생이 방학중에 공부를 하러 왔다가 흡연을 했으며, 담배꽁초를 목조건물의 교실바닥 구멍에 숨기다가 나무바닥 밑 먼지에 불이 붙으며 화재가 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당시 그 학생범인은 3학년 학생이었는데, 2학년 교실에 와서 흡연을 했다고 하며, 화재사건 이후엔 해당 학생이 퇴학당한것은 물론이고 해당 2학년 교실의 담임도 교체되었으며 당시 교장이었던 7대 교장 강삼영 역시 책임을 지고 물러나게 되었다. 여튼 이러한 일로 졸업할때까지 이웃 학교로 옮겨다니며 공부를 해야했던 기수들도 있었으며, 후배들은 불편한 가교사에서 널부러진 공사자재와 신축교사 건축소음을 들으며 공부를 해야했다. 제발... 흡연은 좀 하지말자[14] 본관, 동고관, 망월학사, 우정학사, 군봉관[15] 06158, 06161 정류장은 가변차로 정류장, 06709, 06710 정류장은 중앙차로 정류장이다.[중앙] 06709, 06710 정류장 정차[17] 06158, 06709 정류장 정차[중앙] [중앙] [중앙] [가변] 06158, 06161 정류장 정차[가변] [가변] [가변] [가변] [가변] [가변] [중앙] [가변] [가변] [중앙] [가변] [중앙] [중앙] [35] 따라서 지각이 임박한 등교 시간대에는 낙민역과 버스 정류장에서 학생들이 학교 교문 앞까지 전력질주를 한다 카더라..[36] 충렬대로는 향시 교통 체증으로 헬게이트가 열리는 지역이다.[37] 여기가 바로 선천적 얼간이들에 나오는 쌍봉탕수로 유명한 곳이다.[38] 수안역 부근에 위치하여 있다.[39] 근데 2021년 기준 1학년들은 자신들이 재학중일 때에 공사하는데도 결론적으론 이용하지 못 한다고. 공사중에는 기존 교사동이 철거돼 컨테이너 박스와 비슷한 모듈러 교실에서 생활해야한다. 지못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