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의 고등학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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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 | 성실, 봉사 |
개교 | 1908년 9월 10일 |
형태 | 사립 |
학교법인 | 창신기독학원 |
유형 | 개방형 자율학교 |
성별 | 남자고등학교 |
교장 | 이상진 |
교감 | 김진환 |
학생 수 | 507명 (2023학년도 기준) |
교직원 수 | 45명 (2023학년도 기준) |
관할 교육청 | 경상남도교육청 |
주소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덕2길 106 (봉암동) |
홈페이지 | |
총동창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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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동에 위치한 고등학교이다.학교법인 창신기독학원 소속이며, 같은 재단에서 탄생한 창신대학교와는 1990년부터 2019년 까지 같은 계열의 학교였으나 창신대학교를 부영그룹에 매각하여 현재는 계열분리 되었다. 창신대학교는 2003년 현재의 구암동 캠퍼스로 확장 이전하기 전까지 창신고등학교가 위치한 봉암동 캠퍼스 내부에 함께 입주한 형태로 운영되었다.[1]
2. 학교 연혁
1908년 9월 10일 개교하여 [age(1908-09-1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경상남도 창원시 중등교육기관 중 가장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학교이다. 또한 1895년에 개교한 부산의 동래여자고등학교(일신여학교)와 설립 주체(호주 선교회)가 같은 학교로 1940년까지는 같은 재단의 형제 학교였다.일제강점기 말기에는 부산의 형제학교였던 일신여학교(동래여중고), 마산노동야학(마산공고), 의신학교(의신여중), 호신학교와 함께 폐교의 아픔을 겪은 학교이기도 하다. 그나마 일신여학교, 노동야학과 의신학교, 창신학교는 살아나기라도 했는데 호신학교는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해방 후에는 실업계로 전환했다가, 연합고사가 시행되며 다시 인문계로 돌아온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2] 이 때문에 노인들은 '창신공고'라고 기억하는 경우도 많다.
1908년 09월 15일 | 마산시 상남동 창신학교 개교, 초대교장으로 손안로(ADAMSON) 호주 선교사 취임 |
1909년 08월 19일 | 대한제국 융희 3년 학부대신의 사립 창신학교 인가 |
1911년 03월 22일 | 제1회 졸업식 거행(졸업생수21명) |
1911년 08월 09일 | 창신학교 고등과 병설인가 제2대 교장에 라대궐(D.BREINER) 호주 선교사 취임 |
1919년 03월 09일 | 기미년3.1운동의 선구로 창신학교 교직원 일동이 궐기하여 총사퇴함 |
1920년 05월 17일 | 제3대 교장에 맹호은(F.J.L.MACRAE) 호주 선교사 취임 |
1924년 05월 20일 | 마산시 회원동에 호주선교회에서 신축 교사 준공 |
1925년 11월 01일 | 창신학교 고등과를 호신학교로 개편 |
1939년 07월 20일 | 신사참배 거부로 인한 일제의 탄압으로 폐교[3] |
1948년 05월 01일 | 재단법인 경남노회기독교교육학원 설립인가 창신초급중학교 설립(재건)인가 초대교장에 이순필장로 취임 |
1948년 09월 01일 | 제5대 심문태 교장 취임 |
1950년 03월 01일 | 제6대 전성도 교장 취임 |
1951년 06월 12일 | 제7대 김우현 교장 취임 |
1951년 12월 23일 | 창신농업고등학교 인가 |
1954년 02월 27일 | 고등학교 제1회 졸업식 거행 |
1954년 04월 03일 | 제9대 박대인 교장 취임 |
1957년 02월 20일 | 제10대 차경삼 교장 취임 |
1958년 10월 11일 | 제11대 김석곤 교장 취임 |
1960년 02월 11일 | 창신고등학교로 학칙 변경 |
1961년 09월 11일 | 제12대 도영태 교장 취임 |
1967년 10월 03일 | 창신공업고등학교로 학칙 변경 |
1968년 05월 17일 | 개교60주년 기념식 및 창신 60년사 발간 |
1971년 06월 07일 | 이사장에 윤인구 박사 취임 |
1972년 12월 02일 | 제13대 정원문 교장 취임 |
1975년 06월 02일 | 제14대 김창수 교장 취임 |
1978년 03월 01일 | 제15대 김석곤 교장 취임 |
1980년 01월 10일 | 경남 노회 기독교교육학원에서 학교법인 기독교창신학원으로 분리인가 |
1980년 08월 27일 | 재단 이사장에 김용대 장로 취임 |
1982년 09월 02일 | 제17대 조선출 교장 취임 |
1983년 09월 08일 | 창신고등학교로 학칙 변경(10학급 인가) |
1985년 05월 01일 | 제18대 박영근 교장 취임 |
1985년 08월 08일 | 재단이사장 강병도 장로 취임 |
1987년 03월 01일 | 제19대 김시근 교장 취임 |
1988년 11월 17일 | 제20대 박영근 교장 취임 |
1990년 09월 01일 | 봉암동 신축교사 이전식 |
1993년 03월 02일 | 제21대 김재호 교장 취임 |
1995년 07월 13일 | 일본 벳푸고등학교와 자매결연 |
1995년 08월 30일 | YOUNG CHAPEL[4] 준공 |
1998년 10월 01일 | 제22대 이인식 교장 취임 |
1998년 12월 15일 | 창신90년사 발간 |
2004년 08월 01일 | 학교법인 기독교 창신학원에서 학교법인 창신기독학원으로 분리인가 |
2005년 03월 02일 | 제23대 배영헌 교장 취임 |
2007년 11월 08일 | 교육인적자원부 선정 개방형 자율학교 인가 |
2008년 09월 19일 | 창신개교 100주년 기념식 |
2010년 05월 01일 | 제24대 석도식 교장 취임 |
2010년 08월 01일 | 재단이사장 강정묵 박사 취임 |
2012년 03월 01일 | 제25대 장대성 교장 취임 |
2015년 02월 12일 | 제62회(연93회) 졸업식 거행(누계 27,530명) |
2016년 09월 01일 | 제26대 곽경조 교장 취임 |
2022년 03월 01일 | 제27대 이상진 교장 취임 |
3. 교훈 및 상징
3.1. 교가
[5]
참고로 도전 골든벨 창신고 편(재도전때)에도 문제로 나온 유명한 시 가고파를 지은 이은상이 작사했다.
4. 출신 인물
가나다순으로 정렬해주시기 바랍니다. |
나무위키에 등재될 정도의 저명성 있는 인물만 기록 가능합니다. |
- 강용범
- 강임기
- 권민호
- 김병진
- 김봉조
- 김오영
- 김주호
- 김판곤
- 남승민
- 노재현
- 리극로
- 박성택
- 박성원
- 박종근
- 박판도
- 박해영
- 손호현
- 이대엽
- 이은상
- 이예찬
- 이종섭
- 장종하
- 정광식
- 정한식
- 조우성
- 주성운 - 육군 중장. 現 제1군단장.
- 진동규
- 천영기
- 최대식
- 최성윤 - 골든차일드[6]
- 하귀남
- 하범만 - 육군 준장. 現 국군의무사령관
- 허점도
5. 운동부
경상남도에서 야구가 시작된 곳이지만 현재는 교내 야구가 허락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정작 동문인 김판곤 전 홍콩 대표팀 감독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되어 한국축구 개혁을 진행중인 건 아이러니(...).
현재는 야구부가 없지만, 한국야구사에서 큰 족적을 남겼으니 바로 경남지역 최초의 야구부를 보유했던 학교로, 1914년 창신학교 시절 야구부를 처음 도입했다. 이는 기록으로 발견되는 경상남도 최초의 야구팀이다. 다만 현재는 야구부가 존재하지 않는데 언제 해체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창신고 이후에 창단된 마산고보(용마고), 마산중학(마산고)이 현재도 경남지역 야구의 주요 팜임을 생각해보면 특이한 대목. 1985년 개교한 청강고(現 마산제일고등학교)는 1986년에 야구부를 창단했으나 1988년에 해체했다.
야구부 외에도 축구부도 있었으나 폐부되었다.
6. 기타
- 학교 역사는 굉장히 오래되었지만, 오늘날 인문계 고등학교로서의 이어온 전력은 창원시 관내, 그중에서도 경상남도 중등교육기관 중에서 그리 오래된 편은 아니다. 1983년도에 창신공고에서 인문계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 마창 학군분리 이전 옛 마산시 시절에는 (구) 창원시 양곡동, 웅남동 (성산구) 지역 학생들도 창신고등학교로 많이 진학했었다. 오히려 같은 관내의 마산회원구 내서읍이나 마산합포구 월영동보다 양곡이 훨씬 가깝다.[7] 그만큼 양곡, 웅남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인문계 고등학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현재는 마창 학군분리가 이루어지는 바람에 옛말이 되어버렸다.[8]
-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진해시 (현재 진해구)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드물게 서너 명씩 진학해온다. 예전에는 진해시 학생들도 많이 진학했었지만, 현재는 가뭄의 콩 나듯 교내에서 진해에 사는 학생들을 보긴 힘든 편. 그렇지만 본교가 위치한 곳은 마산 지역 고등학교 전체에서 성산구, 진해구와 가장 가까운 고등학교이다.[9] 그렇기 때문에 진해시 서부 지역에 거주하는
여좌천 로망스다리랑 경화동학생들이 차라리 버스 좀 탄다 생각하고 장복터널 넘어 창신고등학교 오는 것도 나쁘지 않기 때문.[10] - 학교는 봉암동 주거 밀집지역의 비탈진 꼭대기에 있다. 즉, 팔용산 남단 산기슭 밑에 있다. 덕분에 창문 밖에서 바라보는 마산항과 마산자유무역지역 풍경이 꽤나 아름답다. 마산 지역 고등학교는 죄다 산복도로 밑에 형성되어 있는 관계로 주로 마창대교나 돝섬을 바라보게끔 학교가 위치해 있다고 하면, 창신고등학교는
특별하게도적현부두, 마산항 4부두를 조망할 수 있다. 그래서 외국 선박들이나 현대글로비스 선박들이 계류되는 모습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11]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해무가 짙게 낀 날에는 뱃고동 소리도 들을 수 있다.야자 1교시 마치고 쉬는시간 불빛 가득한 적현부두랑 글로비스 선박을 보면 가슴이 웅장해진다 카더라 이건 경험담 - 1980년대까지만 해도 부산에 같은 재단의 형제학교로 금성고등학교, 금성중학교, 건국고등학교, 건국중학교가 있었으나 1980년대 이후로 이들 학교들은 모두 계열분리 되어서 창신고등학교나 창신중학교와는 달리 기독교 종교색이 아예 사라졌다.
- 봉암동 캠퍼스쪽 정문으로 고등학생이 등교를 할 경우 경비원이 진입을 막는다. 캠퍼스 정문 기준 좌측의 길을 따라 가면 있는 고등학교용 정문을 통해 등교해야 한다.
중학교의 등교와 겹치기 때문으로 보인다. - 2016학년도부터 교복이 바뀌었다. 회색~베이지색 마이에 줄무늬 달린 넥타이며 기존의 검은색에 칙칙한 색의 점선이 들어간 교복과는 완전 딴판이다. 그러나 신입생인 1학년에게만 적용되고 2, 3학년은 졸업할 때까지 기존의 교복을 착용해야한다. 추가:하복은 상의 검정 하의 회색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동복 블레이저가 말이 많은데 교복이다보니 질이 안좋아서 보푸라기가 일어난다는 말도 있다.
- 2015년 10월 20일에 손양원 목사의 명예졸업장이 산돌손양원기념관(함안군 칠원읍)에 전달되었다.
[1] 학교법인 창신기독학원은 현재 창신중학교, 창신고등학교만 운영하고 있으며, 창신중학교는 창신고등학교 학사 바로 밑에 위치해 있다.[2] 아마도 재단에서 부산 금성고등학교가 계열분리된 것이 원인으로 추정된다.[3] 이에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는데, 교사들이 학생들을 참배에 보내지 않자 순사들이 학교로 찾아가 교사들을 폭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목격한 학생들이 분노하여 그 자리에서 순사들을 폭행하였다. 머나 먼 선배님들의 참교육[4] 중학교와 체육관 사이에 있는 교회. 체육관보단 여기서 설명회를 하는일이 잦다.[5] 창신중학교도 같은 교가를 사용한다.[6] 1학년을 마치고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로 전학.[7] 거리도 가깝고, 봉암동 바로 옆동네가 바로 성산구 양곡동 일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내버스 타고 통학하기에 매우 수월하고 통학하는데 소요되는 시간도 마산 남부지역 대비 훨씬 적다.[8] 그래서 오히려 양곡, 웅남지역 남학생들은 학군분리가 되지 않은 진해구로 많이 진학하는 편이다. 창원시 시내로 통학하는 것 보다 장복산 하나 시내버스 타고 넘어버리면 훨씬 통학하기 수월하기 때문이다.[9] 본교가 위치한 봉암동은 진해 가는 시내버스가 아주 많이 서는 곳이다. 마산에서 진해를 거치려면, 더 나아가 서울에서 육로로 진해를 가려고 해도 본교가 위치한 봉암동은 무조건적으로 지날 수 밖에 없다. 아직까지 타 지역에서 진해로 들어가려면 마산에 들어와서 장복터널을 넘어야 하기 때문. 해군 훈련소 갈때도[10] 과거 창신고등학교의 면학 분위기를 보고 일부러 공부하려고 창신고등학교로 오는 진해시 학생들도 많이 있었다 카더라.[11] 여담으로 이 야경을 비추는 공업단지와 항만은 죄다 성산구에 있는 시설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