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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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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한국관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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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시몬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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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환 바우로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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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범 마태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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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환 바우로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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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정철범 마태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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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
이대용 요셉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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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대
신현삼 안드레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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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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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
윤종모 솔로몬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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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상 바우로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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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신 오네시모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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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성공회 문양.svg 대한민국의 성공회 교구장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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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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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장 부산교구장
김장환 엘리야 김호욱 디도 박동신 오네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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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조선–한국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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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찰스 존 코프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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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1905)
2대
아서 베레스포드 터너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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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1910)
3대
마크 네이피어 트롤로프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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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1930)
교구장 서리
헨리 존 드레이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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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1931)
4대
알프레드 세실 쿠퍼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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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1941)
교구장 서리
구도 요시오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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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1942)
교구장 서리
구도 요시오 요한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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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1945)
교구장 서리
윤달용 모이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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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1946)
4대
알프레드 세실 쿠퍼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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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1950)
교구장 서리
아서 어니스트 차드웰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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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1953)
4대
알프레드 세실 쿠퍼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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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1954)
교구장 서리
아서 어니스트 차드웰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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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1956)
5대
존 찰스 시드니 데일리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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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1965)
성공회 서울교구장 · 성공회 대전교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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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서울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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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454a51,#ddd> 초대
이천환 바우로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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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1983)
<colcolor=#454a51,#ddd> 서리
박종기 스테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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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1984)
<colcolor=#454a51,#ddd> 2대
김성수 시몬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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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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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범 마태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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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2005)
<colcolor=#454a51,#ddd> 4대
박경조 프란시스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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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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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상 바우로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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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017)
6대
이경호 베드로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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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2024)
7대
김장환 엘리야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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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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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서울교구문장.png
성공회 서울교구주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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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장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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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환 엘리야
주교
파일:서울교구문장.png 성공회 서울교구 교구장
파일:서울교구문장.png 성공회 북한선교교구 교구장
은퇴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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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시몬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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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범 마태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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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조 프란시스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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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서울교구문장.png 성공회 서울교구 원로사목
파일:서울교구문장.png 성공회 서울교구 원로사목 파일:서울교구문장.png 성공회 서울교구 원로사목
파일:김근상 바우로 주교.png
김근상 바우로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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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호 베드로
주교
파일:서울교구문장.png 성공회 서울교구 원로사목 파일:서울교구문장.png 성공회 서울교구 원로사목
파일:성공회대학교 UI.svg 학교법인 성공회대학교 이사장
※ 위 목록은 각 주교들의 직책들 중 일부를 적어 놓은 것입니다. 이 틀에 포함되어야 할 정보가 누락되거나, 직책이 잘못 기재된 것을 발견하면 편집 또는 토론 생성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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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대전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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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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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color=#454a51,#ddd> 초대
존 C. S. 데일리 주교
파일:영국 국기.svg
(1965~1968)
<colcolor=#454a51,#ddd> 2대
세실 리차드 럿트 주교
파일:영국 국기.svg
(1968~1974)
<colcolor=#454a51,#ddd> 서리
김경득 신덕 신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74)
<colcolor=#454a51,#ddd> 3대
배두환 마가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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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1986)
<colcolor=#454a51,#ddd> 서리
김사풍 가브리엘 신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6~1987)
4대
윤환 바우로 주교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7~2003)
5대
신현삼 안드레 주교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3~2007)
6대
권희연 미카엘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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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2013)
서리
김근상 바우로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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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2014)
7대
유낙준 모세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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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2023)
서리
이경호 베드로 주교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3)
8대
김호욱 디도 주교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3~)
}}}}}}}}} ||

파일:대전교구문장.png
성공회 대전교구주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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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장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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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욱 디도
주교
파일:대전교구문장.png 성공회 대전교구 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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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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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연 미카엘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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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목록은 각 주교들의 직책들 중 일부를 적어 놓은 것입니다. 이 틀에 포함되어야 할 정보가 누락되거나, 직책이 잘못 기재된 것을 발견하면 편집 또는 토론 생성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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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부산교구장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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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color=#454a51,#ddd> 초대
최철희 윌리암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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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1987)
<colcolor=#454a51,#ddd> 서리
김병훈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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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1988)
<colcolor=#454a51,#ddd> 2대
김재헌 분도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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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1998)
<colcolor=#454a51,#ddd> 3대
이대용 요셉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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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2005)
<colcolor=#454a51,#ddd> 4대
윤종모 솔로몬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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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011)
서리
권희연 미카엘 주교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1~2012)
5대
박동신 오네시모 주교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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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부산교구주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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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장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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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신 오네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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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성공회 문양.svg 대한성공회 전국의회 주교원 의장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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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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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용 요셉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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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모 솔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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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부산교구문장.png 성공회 부산교구 원로사목 파일:부산교구문장.png 성공회 부산교구 원로사목
※ 위 목록은 각 주교들의 직책들 중 일부를 적어 놓은 것입니다. 이 틀에 포함되어야 할 정보가 누락되거나, 직책이 잘못 기재된 것을 발견하면 편집 또는 토론 생성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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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북한선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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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김근상 바우로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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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이경호 베드로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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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김장환 엘리야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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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 ※ 북한선교교구는 정식교구가 아닌 선교교구이다. }}}}}}}}}

☧ 대한민국의 성공회 주교좌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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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서울교구문장.png 서울교구 파일:대전교구문장.png 대전교구 파일:부산교구문장.png부산교구
서울대성당
성모 마리아와 성 니콜라
대전대성당
성 베네딕트
부산대성당
성 구주
※ 밑줄 친 교구와 성당은 관구장 주교의 교구와 주교좌성당을 뜻한다. }}}}}}}}}

☧ 대한민국의 성공회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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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성공회 문양.svg 한국관구
파일:서울교구문장.png
서울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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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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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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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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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주십시오.
(요한 17,11)
약칭 성공회
국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설립 1880년(선교 [age(1880-01-01)]주년)[4]
1890년 9월 29일(선교 [age(1890-09-29)]주년)[5]
1992년 9월 29일(관구[6]설립 [age(1992-09-29)]주년)[7]
주보 성인 성 니콜라
관구장
주교원의장
전국의회의장
19대 박동신 오네시모 주교[8]
교무원장 최준기 베드로 신부
성직자원의장 오동균 키프리안 신부[9]
평신도원의장 오순영 보나파스
역사 {{{#!wiki style="margin: -0px -11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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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한국교구 1890년 9월 29일 ~ 1965년 5월 27일
서울교구 · 대전교구 1965년 5월 27일 ~ 1974년 6월 1일
서울교구 · 대전교구 · 부산교구 1974년 6월 1일 ~ 1992년 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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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구 · 대전교구 · 부산교구 1992년 9월 29일[10] ~ }}}}}}}}}
관할 구역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 만주[11]
관할 관구 한국관구
신자 수[12] 13,222명(한국관구, 2019년)
위치

대한성공회 교무원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19길 16 (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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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선교 125주년 감사성찬례 기념
1. 개요2. 특성3. 역사
3.1. 외국인 선교사 시대(1890–1965)3.2. 한국인 주교 서품 이후(1965–현재)
4. 대한성공회 현황5. 교세6. 전례7. 타 교파와의 교류
7.1. 타 교파와의 성찬례 교류 문제
8. 논란 및 사건 사고9. 여성 성직자10. 기타11. 인물
11.1. 성직자11.2. 일반 신자
12. 관련 링크13. 관련 문서14. 합의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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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언어별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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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Anglican Church of Korea
표준 중국어 [ruby(大韩, ruby=Dàhán)][ruby(圣公会, ruby=Shènggōnghuì)][22]
일본어 [ruby(大韓, ruby=だいかん)][ruby(聖公会, ruby=せいこうかい)] }}}}}}}}}
대한성공회는 세계 개신교의 교단 중 하나인 세계성공회공동체의 일원이다. 대한성공회도 1개 관구[23]와 3개 교구로 구성된 회원교회로서 다른 국가별성공회와 동등하다. 이는 각 국가별 성공회가 자율성을 가지며 서로 명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성공회는 약 1억 2,000만 교인의 개신교 주류 교파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오랜 선교 역사에도 불구하고 교인 수는 상당히 적다.[24] 공식 발표상 교인 5만여 명(2011년 2월 기준)[25]과 1개 관구 예하 3개 교구[26]와 136개 성당, 사회복지 및 선교기관 161개가 있다. 서울특별시 시청역 3번 출구 덕수궁 옆에는 서울주교좌성당성가수도회 본원이 있으며,[27] 구로구 항동에는 성공회대학교가 있다. 이 외에도 성공회대학교 구내에는 특수학교성 베드로 학교가 있다.

2. 특성

대한성공회 신자 다수는 대대로 성공회 신앙을 이어온 사람들이지만, 근 20여 년간 가톨릭이나 다른 개신교 교단에서 전입해온 사람의 비중이 증가했다. 다른 기독교 신앙 경험 없이 대한성공회에서 처음 기독교 신앙을 시작하는 새 신자는 드물다. 이런 경향은 대한성공회가 타 개신교 교단보다 눈에 잘 들지 않기에 더 심하다. 대한성공회 자체가 사회선교[28]·문화예술·건축[29] 등의 방법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단순히 유인물이나 휴지 등을 나눠주는 노상 전도도 거의 보기 힘들다. 전국에서 성공회 신자가 그나마 많이 있는 지역은 인천광역시 강화군이고 인천 본토와 부천시·광명시·구로구 등지를 비롯한 경기도 서부권과 평택시·충청도 일부[30]도 다른 지역보다는 성공회 성당이 밀집한 편이다.

전례양식은 선교 초기에는 앵글로-가톨릭이[31] 주류라 굉장히 강한 앵글로-가톨릭 전례를 유지하다가 1970년 이후 20세기 전례 운동의 영향을 받으면서 리마 전례와 많이 비슷해졌다. 천주교의 노부스 오르도 미사와도 비슷한 면모를 보인다.[32]

하지만 장로회·감리회 등 주류 개신교 출신의 성직자·평신도가 늘어나고, 20세기 전례·신학 쇄신이 일어나면서 고교회파 영향은 거의 소멸했다. 즉, 현재 대한성공회는 전례의 경우 점점 간소화되어 고교회파의 흔적은 일부만 남아있지만, 신학상 광교회파[33]의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 (특히 서울시 지역). 과거 대한성공회는 고교회파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여서, 1939년과 1965년판 성공회 공도문에 따른 감사성찬례천주교트리엔트 미사와 닮았지만,[34] 1939년 혹은 1965년판 대한성공회 공도문에 따른 감사성찬례를 정기적으로 봉헌하는 성당은 현재 없다. 2016년 5월·10월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전례 연구 차원에서 1965년판 공도문에 의한 감사성찬례를 봉헌한 바 있지만, 대한성공회의 모든 성당은 일상적 감사성찬례에서 2018년판 공도문을 사용한다.[35] 근 20여년 동안에는 광교회화의 영향으로 전례가 간소화 되거나 일부 전통이 실전 되기도 했지만 복음주의 개신교의 영향으로 기타를 치고 CCM을 부르며 자유로운 찬양예배를 드리는 성당도 전에 비해 다소 증가하는 등 예배양식은 오히려 다양해졌다. 다만 이런 성당도 매주 성찬례를 거행한다.

한국의 개신교 주요 교단은 흔히 대한성공회를 신학·정치·고등교육적으로 소위 진보적인 교단이라 간주한다. 하지만 대한성공회 신자 일부는 이런 시각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대한성공회는 특정 성향에 치우진 교단이 아니라 진보와 보수 성향 모두를 감싸는 포용성이나 유연성을 보이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런 포용성이 대한성공회를 고교회주의·복음주의·자유주의를 모두 아우르며 교회일치운동에도 앞장설 수 있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이경호 베드로 서울교구장 주교도 대한성공회가 정치 중립을 지켜야 함을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의 신학적 스펙트럼 내에서, 대한성공회 내의 진보적인 목소리가 더 부각되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 기독교에서 복음주의 계열에서는 근본주의가, 비복음주의 계열에서는 가톨릭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러한 경직된 획일화 속에서 성공회가 다양성을 포용한다는 사실 자체가 '비주류'적이라거나 '진보적'으로 비추어질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대한성공회 내의 일부 신학적 진보경향 가운데에는 성서무오설·창조과학과 같은 근본주의에 대한 거부를 넘어, '고(古) 그리스도론'[36] 이라 하여 그리스도의 육신 부활을 역사적 사실로 보지 않는 무신론 기독교인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3. 역사

3.1. 외국인 선교사 시대(1890–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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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한국인 주교 서품 이후(1965–현재)

대한성공회는 한국 성공회의 자립과 관구 설립을 원칙으로 삼은 존 데일리(김요한) 주교의 사목적 방침 하에서 영국성공회(잉글랜드 성공회 또는 잉글랜드 교회), 미국성공회, 캐나다 성공회 등의 지원을 받아 다시 교세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선교 발전의 결실로 1965년 이천환 바우로[37] 신부가 최초의 한국인 성공회 주교로 서품을 받았다. 또한 이때까지 대한성공회는 전국을 통틀어 단일교구 체제였지만[38] 서울교구대전교구가 분리됨으로서 2개 교구 체제가 되었고, 성공회 한국교구의 마지막 교구장인 존 데일리 주교가 신생 교구인 대전교구의 초대 교구장을 역임했다.

대한성공회는 영국성공회 USPG의 앵글로-가톨릭 성향 선교사들의 선교로 인해 1970년대까지 매우 강한 앵글로-가톨릭 성향을 유지하고 있었다.[39] 그런데 존 데일리 주교는 교회선교협회(CMS: Church Mission Society) 등 복음주의적 선교단체 뿐만 아니라 미국성공회 및 캐나다성공회 등으로부터 선교사들을 초빙하고, 여러 한국인 신학생들을 미국이나 호주 등 다양한 국가로 유학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대한성공회의 저변을 넓혔다. 대한성공회의 유명한 사제인 루번 아처 토리 3세(Reuben Archer Torrey III, 대천덕) 신부도 이 시기에 한국에 들어와 성 미가엘 신학원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이천환 주교는 재임 시 한국의 에큐메니즘 운동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1965년 천주교 신자와의 기도모임, 개신교 교단들과의 부활절 연합예배 참여, 루터회 신자와의 축구모임 등 기독교 세계 분열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실제로 대한성공회가 한국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에큐메니즘 운동에 참여하게 된 것은 이천환 주교의 관심과 노력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천환 주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 대한성서공회 이사장, 대한기독교서회 이사장, 성공회·천주교 재(再)일치추진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40] 대한성공회는 이천환 주교 재임기에 에큐메니즘의 일환으로 앵글로-가톨릭 일색이었던 법규와 전례를 개정하고, 타 교파 교인들에게 영성체를 베풀기 시작했다.

1974년 대전교구에서 부산교구가 분리되어 3개 교구가 성립되었다. 이로서 대한성공회는 '한국관구'가 성립되는 조건을 갖춘다.[41] 그러나 대한성공회의 관구 성립은 이로부터 19년이 지난 1993년에 이루어졌다. 또한 부산교구는 교구 설정 당시 교회 6개에 성직자 8명만을 보유했을 정도로 매우 열악한 상황이었고, 2023년 현재도 여러 성당을 한 신부가 관할하는 등 교세 및 재정에서 열악한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편 1974년에 제2대 대전교구장 리처드 럿트(노대영) 주교, 1977년에 부산교구 동래교회의 앨런 조지 메섬(Alan George Messom, 맹범식) 신부, 1984년에 영국성공회 어머니연합회(Mother's Union) 파송 선교사였던 애그니스 조지핀 로버츠(Agnes Josephine Roberts, 노정빈)[42] 선교사가 각각 영국으로 귀국하면서 대한성공회의 선교사 시대는 1890년 이래로 94년 만에 막을 내렸다.

대한성공회는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빈민선교 및 산업선교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존 데일리 주교는 강원도 황지 탄광촌에서 광부들과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구제사업과 선교사업을 하며 한국에서 산업선교의 시초를 닦았고, 한국 도시산업선교의 출발점인 영등포도시산업선교회도 미국성공회의 지원으로 설립되었다. 사회복지기관인 성공회 나눔의 집과 나눔의 집 교회(나눔교회)는 1980년대 중반부터 빈민선교의 일환으로 설립되기 시작했다. 또한 1970년대부터 부산에서 선원선교사업을 벌였고, 2023년 현재도 부산교구에 선원선교센터를 운영한다.[43]

성 미가엘 신학원은 1982년 4년제 천신(天神)신학교로 개편되었다가 성공회신학교로 개명하고, 1992년 정식 고등교육기관인 성공회신학대학으로 승격되었다가 종합대학으로 개편되어 오늘날의 성공회대학교에 이른다. 1974년 지적장애 아동 및 청소년들을 위한 성 베드로 학교를 세웠는데, 이는 종교재단 소속으로는 처음 세워진 장애인 특수학교였다. 성 베드로 학교는 현재 성공회대학교 바로 옆에 있다.

1970년대 후반 대한성공회에서는 빈민선교 및 산업선교의 영향으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는 사제 및 신자들이 증가하기 시작했고, 교회 내에도 교회 갱신을 외치는 목소리나 청년신자운동 등 진보적인 목소리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연혁 덕분인지 1987년 6월 10일 서울주교좌성당에서 박종철 군 고문치사 조작, 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가 개최되었다. 그날 오후 6시 삼종 기도 시간을 알리는 서울주교좌성당의 종소리로 6.10 민주 항쟁이 시작되었다. 서울대성당은 공식적으로 6월 민주항쟁의 진원지이다.[44]

1993년 정식으로 한국관구가 성립되었다. 한국관구로 독립하기 전에는 캔터베리 관구 소속이었기에, 대한성공회는 교회법 개정에 캔터베리 대주교의 최후 승인을 필요로 했다. 물론 지금은 대한성공회가 독립적인 관구로서 기능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법 개정에 캔터베리 대주교의 승인 절차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원래 서울주교좌성당은 건설 당시 재정난으로 설계도안과 달리 좌우측 익랑(翼廊)이 짧은, 신랑(身廊)만으로 이루어진 일자형으로 축소 완공된 상태였다. 이후 1992년 원래 설계도안이 영국에서 발견되어 이를 바탕으로 원안대로 성당을 완공시키는 사업이 진행되었으며 1996년에 확장·완공되었다.

2004년 현행 성공회 기도서가 마련되었다. 대한성공회는 1965년 공도문 출간 후 여러 시험 및 의안 공도문을 제외하면 정식 후속 공도문을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2004년 그동안의 신학적 연구와 고찰을 종합하여 완성된 기도서를 내놓은 것이다. 2004년 성공회 기도서는 현재까지 미미한 개정[45]을 거쳐 대한성공회 각 교회의 감사성찬례에서 사용되고 있다.

2012년 천주교·재림교회에 이어 성직자 납세를 하는 3번째 교단이 되었다.[46]

2024년 현재 한국관구장은 박동신 오네시모 주교이다.

4. 대한성공회 현황

4.1. 한국관구

<rowcolor=#ffffff>
성공회 한국관구
聖公會 韓國管區
Province of Korea
파일:대한성공회 문양.svg
[47]
<colbgcolor=#cd313a><colcolor=#ffffff> 설립 1992년 9월 29일(설립 [age(1992-09-29)]주년)[48]
소속국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주보 성인 성 니콜라
관구장 19대 박동신 오네시모 주교[49]
교무원장 최준기 베드로 신부
성직자원의장 오동균 키프리안 신부[50]
평신도원의장 오순영 보나파스
표어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주십시오. (요한 17:11)
관할구역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 만주[51]
관할교구 서울교구·대전교구·부산교구·북한선교교구
관구민[52] 13,222명(각 교구의회 보고 합산, 2019년)
파일:대한성공회 문양.svg[53]/ 파일:오디오클립 아이콘.svg[54]/ 파일:네이버 스마트스토어.webp[55]/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56]/ 파일:다음 카페 아이콘.svg[57]/ 파일:디시인사이드 아이콘.svg[58]
한국관구 주교 현황
관구장 19대 박동신 오네시모
<colcolor=#fff><colbgcolor=#871b4d> 서울교구장 겸 북한선교교구장 6대 김장환 엘리야
대전교구장 8대 김호욱 디도
부산교구장 5대 박동신 오네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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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구·대전교구·부산교구 등 총 3개 교구가 있고, 이 교구들이 한국관구를 이룬다. 즉 성공회 한국관구(Province of Korea)가 대한성공회(Anglican Church of Korea)인 것이다.[59] 2024년 현재 박동신 오네시모 부산교구장 주교가 현임 한국관구장이다.

단일교구 체제가 막을 내리고 2개교구 체제로 돌입함에 따라 전국의회가 생겼다. 의회의 의장은 서울교구장이 당연직으로 역임하기로 하고 서울교구장이 모든 우선권을 갖기로 교구분할 당시 합의하여, 3개교구 체제 이후를 포함해 관구출범 이전까지 서울교구가 서열 1위였으나, 지금은 관구가 출범했으므로 상황이 다르다.
[clearfix]

4.1.1. 관구 조직

4.1.1.1. 교무원
<rowcolor=#ffffff> 교무원
敎務院 | Office of Province Affairs
<colcolor=#ffffff> 직책 <rowcolor=#ffffff> 성명 직위
<colbgcolor=#cd313a> 원    장 최준기(베드로) 사제
국    장 나성권(시몬)
과    장 조주홍 평신도
사회선교국장 최돈순(바우로) 사제
4.1.1.2. 신문사·출판사
<rowcolor=#ffffff> 신문사·출판사
新聞社·出版社 | Company of News & Press
<colcolor=#ffffff> 직책 <rowcolor=#ffffff> 성명 직위
<colbgcolor=#cd313a> 대  표 김경문(이사악) 사제
부  장 양지우(루가)
편  집 황윤하(라파엘) 부제
4.1.1.3. 여성선교센터
<rowcolor=#ffffff> 여성선교센터
女性宣敎센터 | Centre of Mission for Woman
<colcolor=#ffffff> 직책 <rowcolor=#ffffff> 성명 직위
<colbgcolor=#cd313a> 센 터 장 최경자(사라) 평신도
사무국장 한주희(한나) 사제
4.1.1.4. 법인사무국
<rowcolor=#ffffff> 법인사무국
法人事務局 | Office of Foundation Affairs
<colcolor=#ffffff> 직책 <rowcolor=#ffffff> 성명 직위
<colbgcolor=#cd313a> 상임이사 최준기(베드로) 사제
국  장 나성권(시몬)
사무국장 이효재 평신도
과  장 조주홍

4.1.2. 서울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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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1. 북한선교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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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1.1. 서울교구장 겸 북한선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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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대전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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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1. 대전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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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 부산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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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1. 부산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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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국외 사목

영국, 미국, 호주, 일본 등지에 성공회 한인교회가 있다. 이들 교회는 모두 해당국의 관구가 치리한다.[60] 대한성공회에서 한인교회에 사제를 파송하는 경우가 다수이지만, 현지 관구(특히 미국, 영국, 호주 같은 영미권)에서 사제품을 받은 현지 관구 소속 한국인 신부가 한인교회를 사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영국에는 성공회 한인교회가 런던에 하나 있으며, 영국성공회 런던교구의 성 조지 성당(St George's Parish Church) 산하에 공동체가 있다.[61] 또한 몇몇 한국인 성공회 성직자들이 영국성공회에서 사목 중이다.

미국에는 동부부터 서부까지 통틀어 한인 성공회 교회들이 여럿 있으며, 전체적인 규모는 작아도 교회 수가 꽤 되기 때문에 미국성공회 내에 따로 협의회(The Korean Convocation of the Episcopal Church)를 구성하고 있다. 미국성공회의 첫 한인 사제는 박상준(요한) 신부로 1916년에 사제품을 받았다.[62] 첫 한국인 사제 김희준(마가) 신부를 배출한 조선교구와 비교해 1년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대한성공회 출신 사제가 한인교회를 사목하는 추세이나, 이제는 한인공동체의 1.5세나 2세 출신 신부들이 한인교회를 사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미국 현지 천주교 교구에 소속된 천주교 한인성당처럼 성공회 한인교회는 거의 모두 미국성공회에 속해 있으며, 디사이플즈 교회와 같은 몇몇 교회는 미국성공회에서 성소수자 문제로 인해 분리된 ANCA(Anglican Church in North America, 북미성공회)에 속해 있다.

호주에는 성공회 한인교회가 3곳 있는데, 특이하게도 전부 복음주의 성향이 강하다. 실제로 이들 교회의 사이트를 보면 성직자가 자신을 목사로 소개하며, 교회를 복음주의 공동체로 정의하고 있고, 예배 양식이 한국의 일반적인 개신교 교회와 완전히 똑같다.[63] 대한성공회와 다르게 장로회와 같은 개신교로서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성향이 강하다는 것.[64] 이들 한인 교회가 속한 시드니교구가 삼성직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으며, 제의 착용금지를 성공회 공동체 내에서 유일하게 명문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도서(공도문)대로 미사를 하지 않는 교구이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한인 교회(한국어 예배 공동체)가 도쿄에 하나 있으며, 도쿄교구 츠키시마성당과 같은 공간을 공유 중이다.[65] 또한 일본은 일본인 사제가 매우 부족하여 한국 파송 신부들이 현지 교구사제로 각 교구의 현지 성당에서 사목하고 있다. 일본 성공회의 주요 미션스쿨인 릿쿄대학 교목으로 유시경(스테반) 전 교무원장 신부가 재임했던 일도 있었다.[66] 월간 《현대종교》 전 발행인 탁명환 소장의 삼남 탁지웅(스데파노) 신부도 도쿄교구에서 사목하고 있다.[67]

5. 교세

2011년 공식 발표 상 대한성공회 신자 수는 5만여 명이다. 하지만, 실제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 수는 공식 통계보다 훨씬 적은 실정이며, 공식 발표 상 신자 수와 실제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 수의 간극이 꽤 큰 편이다. 천주교와 마찬가지로 냉담자가 많다. 그리고 다른 개신교 교단·천주교를 떠나 성공회로 입교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성공회를 떠나 다른 개신교 교단·천주교로 입교하거나 가나안 성도가 되거나, 아예 그리스도교를 떠나든지 무종교인이 되는 사람도 상당하다. 다른 교단으로 옮기는 사람 사이에서는 저교회파 성향이 있는 사람은 개신교로 옮기고 고교회파 성향이 있는 사람은 천주교로 옮기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2018년 서울교구, 대전교구, 부산교구 각 교구의회에서 보고된 교적수 및 주일 감사성찬례 평균 출석자 수는 다음과 같다.

서울교구: 10,718명 / 4,722명
대전교구: 2,673명 / 1,374명
부산교구: 850명 / 387명
총 14,241명 / 6,483명

세 교구 모두 2010년 전까지 규모가 확장되는 추세였다가 2010년을 기점으로 감소나 정체 추세에 있다. 2019년에는 3개 교구 합쳐 교적수 13,222명, 주일 감사성찬례 평균 출석자 수 6,028명을 기록했다.

몇 년 전까지는 다른 한국의 개신교 교단처럼 신자 수는 감소하는데 성직자 수는 증가하는 문제를 겪고 있었다. 2020년 4월 기준 성직자 수는 전국을 통틀어 225명에 달했는데, 실제 신자 수는 조금씩 감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한성공회 교회 다수가 연평균 감사성찬례 출석자 수가 채 50명이 되지 않는 열악한 현실에 처해있는 데다가 교단이 전반적으로 사회 선교 사업에 치중해 있다 보니, 성공회대학교 신학대학원의 신학생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68]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성직자 수는 과잉 상태였다. 신자 감소와 더불어 재정적으로 열악한 일부 교회에는 사제가 파송되지 못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적지 않은 사제가 미국·일본 등 외국 사목을 희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대한성공회는 신자 수 감소와 더불어 성직자 수 감소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대한성공회에서 2022년에 새로이 서품받은 사제는 세 교구 합쳐서 3명에 불과하고, 2023년에는 단 1명에 그쳤으며, 2022년 서울교구에서는 수십 년 만에 성직청원자가 나오지 않았다. 한편 관구를 통틀어 은퇴사제 및 의원면직하는 성직자의 수는 점차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69]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면 전국적으로 성직자가 부족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미 대전교구와 부산교구에서는 한 명의 사제가 여러 교회를 관할하고 있는 상황이며, 서울교구의 경우 10년 후에는 최악의 경우에 성직자 수가 2023년 현재 성직자 수의 절반 이하로 감소할 것으로 추산한다.

6. 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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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는 1908년에 첫 한국어 공도문을 발간한 이래로, 1912년·1939년(임시통용판)·1965년·2004년·2018년에 개정 작업을 추진해 왔다. 2004년판 부터는 공동기도문(공도문)이 아니라 성공회 기도서가 공식 명칭이 되었다. 참고로 이전의 공도문들은 폐지되거나 금지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전 공도문으로도 감사성찬례를 드릴 수 있다. 이는 성공회 성가도 마찬가지다.

아울러 대한성공회는 공동번역성서를 교단 차원에서 표준 성서로 채택해서 전례 때 사용하고 있다. 다만 신자 개개인의 성경 통독에서 무조건 공동번역성서만 사용하도록 강제하진 않으며, 개인 통독에 공동번역성서 말고도 개신교 새번역·개역개정이나 천주교 2005년 성경을 쓰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한성공회 외에 정교회 한국대교구와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소속 민통선평화교회 등에서 공동번역성서를 쓰고 있다. 또한 개신교 중 교회 일치 운동에 참여하는 개교회들이 공동번역성서를 예배용 성서로 사용하기도 한다.[70]

일반적으로 대한성공회 신자들은 감사성찬례를 드릴 때, 성서·성가·기도서 그리고 주보를 앞에 두고 드린다. 또는 성공회 기도서 중에서 감사성찬례 부분만 발췌한 책자를 갖추기도 한다.[71] 감사성찬례의 양식이 교회력에 맞추어 바뀌며, 감사성찬례의 성경 본문은 그날의 성서정과(전례독서) 구절이다. 전례독서는 주일 감사성찬례 전례독서(주일에 사용하며 가해, 나해, 다해 3년 주기로 구성)와 주간 감사성찬례 전례독서(짝수 해와 홀수 해 2년 주기로 구성)로 구분된다.

현재 대한성공회에서는 일반적으로 한국 천주교처럼 서서 손으로 영성체를 한다. 서울주교좌성당에서 감사성찬례를 드리는 경우 성 세례자 요한 성당(지하성당)에서는 장궤를 하고 손으로 영성체를 한다. 장궤를 하고 영성체를 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의 천주교와는 다르게 입으로 영성체하지 않는다. 과거 서울주교좌성당의 경우 주일마다 장궤를 하고 성체를 영했으나 현재는 장궤틀만 남아있다. 한편 대전교구의 경우 일부 성당에서는 미사보를 착용하거나 입영성체를 실시하는 사제와 신자가 아직 소수나마 남아있다.

일부 교회에서는 CCM 등을 사용한 예배를 드리기도 한다. 오산세마대성당과 같이 비교적 복음주의 성향의 일부 교회들이 그렇다.

2016년 5월·10월, 서울주교좌성당에서 1965년 공도문에 따른 감사성찬례가 봉헌된 적이 있다. 전례 연구 차원의 일이었다.

7. 타 교파와의 교류

한국에서는 한국기독교장로회와 함께 교회일치운동에 가장 적극적인 교단으로, 다양성을 중시하다 보니 다른 기독교 교단들과 적극 교류하며, 외부에 대해서 정말 웬만해서는 이단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위에서 이야기 했듯이, 천주교든 정교회든 다른 개신교든 타 교파에서 성공회로 옮길 때, 해당 기존 그리스도교 종파에서 세례 받은 것을 다 인정해준다.[72] 문제는 이것 때문에 일부 신자들은 전입자들이 기본적인 교리 교육과 이해도 없이 전입과 영성체를 너무 쉽게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나타내기도 하며 특히 이단에 대해서 취약하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다만 새로 생긴 이단에 대한 대처가 늦을 수 있는 문제가 있을 수는 있지만 요즘 이단들은 너무 잘 알려져 있어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2020년 관구장 신년 사목교서에는 최근 일부 교회가 이단에게 피해를 입고 있다며 이단을 경계하라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또한 언젠가 강남교회에는 '강남교회 담임목사 귀하' 운운하는 편지가 온 일이 있었는데 발신명의가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였으며 한기총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대한성공회는 한국기독교총연합에 가입하지 않았으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만 가맹되어 있다. NCCK 유관 기관인 CBS와 한기총을 엮어서 비난하는 것부터 어불성설에 가깝기도 하거니와, 신천지의 한국 기독교 지형에 대한 무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대한성공회는 한국기독교장로회·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기독교대한감리회 교단과 활발히 교류한다. 한국기독교장로회의 경동교회[73],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의 새문안교회[74], 기독교대한감리회 정동교회[75] 등과 교환예배를 하기도 한다.[76] 또한 매년 연초에 있는 교회일치 기도회[77]도 주로 서울주교좌성당에서 개최된다. 단 2010년대 들어서 매년 여러 교회를 돌아가면서 개최된다.

천주교·정교회와도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다. 성공회는 천주교·정교회도 같은 믿음의 형제로 보기 때문에 이들과의 교류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특히, 정교회와의 교류는 꾸준했다. 6.25 전쟁 중에 서울 성당이 파손당한 정교회 신자들이 새 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 임시로 서울대성당 성 세례자 요한 성당[78]을 빌려 성찬예배를 드리기도 했었고, 인천의 정교회 교인들이 인천 성당이 완공되기 전에는 내동성당에서 성찬예배를 드리기도 했었다. 사실 그 당시가 지금보다 더 사이가 좋았는데 성공회 여성 사제 서품이 이뤄지기 전이라서 세계적으로도 성공회와 정교회 간 사이가 상당히 좋았다. 또한 대한성공회도 지금과는 달리 고교회파 성향을 강하게 띄고 있었다.

물론 교회일치운동에 앞장서는 건 대한성공회만의 특징이 아니라, 세계성공회의 특징이기도 하다. 세계성공회는 '본질적인 것에 일치됨, 비본질적인 것에 다양함'이라는 입장으로, 다른 종파와의 우애·관용·공존을 추구하고 있다.[79] 19세기 이래 천주교과 일치를 위한 대화가 끊긴 적이 없으며, 정교회와의 교류도 꾸준했다. 위트레흐트 연합(Union of Utretch)에 속한 복고 가톨릭교회, 필리핀 독립교회(Philippine Independent Church), 말랑카라 마르 토마 시리아 정교회(Malankara Mar Thoma Syrian Church)와는 완전한 상통·성사 교류[80]를 이루어냈다. 관련 글.

영국성공회의 중심지인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행해지는 강론에서도 성녀 테레사 수녀원장,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 마틴 루터 킹 목사와 같은 천주교 성인과 개신교 목회자들이 나란히 신앙의 모범으로 언급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이들의 이름을 신명으로 쓰는 것 또한 가능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마틴 루터 킹, 존 웨슬리, 오스카 로메로 등의 신명을 쓴다. 또한 영국성공회가 현재 관리하고 있는 (헨리 8세가 해산시키기 이전의) 옛 수도원 건물들에서 정기적인 천주교 미사를 드리는 것을 허락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전에 비해 보편교회 교단들과의 교류가 점차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여성 사제 허용 문제와 성소수자에 대한 입장 차이가 제일 큰 갈등 원인이 되고 있다. 성공회가 여성의 사제 서품을 허용함으로 인해서, 성공회의 성직을 인정하려 고려했던 정교회가 그 결정을 보류했다. 한때 정교회에서 성공회를 자신과 같은 사도 계승 교회로 인정하려는 움직임이 일었으나, 성공회가 여성에게도 사제 서품을 주기로 결정하면서 결국 보류되었다. 정교회는 천주교에서도 인정하는 보편교회로, 만약 계획대로 정교회에서 성공회를 보편교회로 인정했다면 성공회는 보편교회로서 입지가 매우 단단해지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당시 성공회의 장자 관구인 영국성공회는 정교회가 여성 사제서품에 절대 반대하고, 여성에게 사제 서품을 준다면 보편교회로 인정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강행했고, 수많은 사제들과 신자들이 이탈하여 천주교로 개종하는 사태가 벌어졌다.[81] 여성 사제 서품은 보편교회에서 매우 강경하게 반대하는 문제로 이 당시 정교회 주교들이 성공회의 이런 결정에 매우 격노했다고 한다.

천주교도 성공회의 여성 사제 서품에 대해 정교회와 비슷한 입장이다.[82] 여성 사제서품의 문제는 여성인권과 양성평등의 가치 문제임과 동시에 교회의 전통과 사도전승 문제 등 신학적인 문제와도 얽혀져 있다. 사도계승은 12사도들과 그 후계자인 주교들로부터 물리적 안수를 통하여 전승되는데, 12사도들과 그 후계자들 중 여성은 없다고 전통적으로 간주해 왔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 그리고 역대 주교들이 여성을 사제로 임명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면 사도계승에 오류가 생기거나 심하면 단절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보편교회들이 변화에 매우 조심스럽게 된 것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입장 차이는 여성 성직자 서품에 대한 논쟁만큼이나 복잡한 문제이다. 성소수자를 옹호하는 광교회파 행보로 인해 보편교회들과 보수적 개신교 교단들에게 경계의 대상이 된 것은 물론이고, 성공회 내부에서도 분란이 크게 일어났다. 세계성공회공동체에서는 아프리카와 남미 등 보수적인 관구들이 주도해서 동성결혼을 교회법적으로 인정한 미국과 캐나다 관구에게 3년간 관구 자격을 정지시키기도 했다.[83]

한국이나 외국이나 천주교 신부가 성공회로 회심해 사목하는 사례가 있다. 한국에도 구균하 요나로렌스(천주교 부산교구), 황인찬 베네딕트(천주교 원주교구), 최석진 요셉(천주교 의정부교구), 정지원 데오필로(의정부교구) 신부 등 천주교 신부였다가 교리나 결혼을 이유로 회심하여 성공회 신부가 된 사람이 있다. 반대로 한국에도 성공회에서 천주교로 옮기는 경우가 있다. 한국 전쟁 직전 윤달용 모이서 신부가 천주교로 교단을 옮길 뜻을 밝히고 이를 준비 중이었으나, 한국전쟁으로 희생되어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2대 대전교구장을 역임한 리처드 럿트 주교는 은퇴하고 영국으로 귀국한 후 캔터베리 관구에서 여성 서품을 허용한 것에 반발하여 천주교로 개종하고 천주교 사제로 재서품을 받았다. 또한 몇 년 전에는 성공회대학교 신학대학원 재학 중인 신학생 전도사 한 명이 천주교로 개종하고 전통 가톨릭 단체인 성 비오 10세회의 신학교에 입학했다.

외국에는 성공회 사제가 개별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천주교로 개종하는 사례가 있다. 이런 경우 천주교에서는 천주교로 개종한 성공회 성직자는 재서품을 받는다. 천주교에서는 성공회 사도전승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 성공회에서 주교였더라도 기혼자인 사람은 주교로 재서품받지는 못하고 사제로 재서품받지만, 과거 성공회 시절의 신분을 어느 정도 존중하여 성공회 전례를 유지하면서도 교황의 수위권을 따르는 단체인 성직 자치단의 장상 역할을 맡기고 주교관, 주교 지팡이 등 주교 표지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주교에 준하여 예우하고 있다. 천주교에서는 베네딕토 16세 교황 당시 성공회 출신 천주교 성직자를 위한 성직자치단 설립을 인가한 바 있다.

7.1. 타 교파와의 성찬례 교류 문제

천주교·정교회에서는 소속 신자가 성공회 감사성찬례에 참석해서 성체를 영(領)하는 것을 올바른 성체성사를 행했다고 보지 않아서 이를 교회법상 적법하지 않다고 본다. 가톨릭이나 정교회에서는 신자가 주일이나 자기들이 정한 대축일에 성체를 영하지 않는 걸 일종의 죄로 규정하고 있는데, 성공회의 성체성사는 성체의 올바른 교리에 충족치 못하므로 만약 주일미사나 성찬예배를 대신해 성공회에서 성체를 모신 경우 아예 주일 의무를 충족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반대로 성공회의 입장에서는 천주교·정교회 신자가 성공회 감사성찬례에서 성체를 받아 모셔도(먹어도)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세례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라도 성공회 성찬례에 참례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특히 부활대축일/성탄절 감사성찬례에서, 집전자 육성 안내나 주보에서 타 교파 세례교인도 성공회 영성체가 가능하다는 공지를 따로 할 정도다. 성찬례 교리로는 천주교정교회 보다 훨씬 진보적이고 개방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84]

천주교정교회에서는 성찬례를 행할 때, 포도주가 진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다(화체설)고 믿는데 반해, 성공회는 이에 대한 견해가 자유롭다. 성공회 나름의 공식적인 견해[85]가 있긴 있지만, 천주교와 정교회처럼 성변화를 믿는다고 해도 문제를 삼지 않는다. 천주교와 정교회가 성공희의 감사성찬례를 인정하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이것으로, 성변화를 믿지 않기 때문에 성체를 구성하는 올바른 교리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들 신도들이 감사성찬례에서 영성체하는 걸 권장하지 않을 뿐더러, 성공회 신자가 미사나 성찬예배에서 영성체하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86]

만약 성공회 감사성찬례에 참석해 보고 싶은 천주교 신자나 정교회 신자가 있다면, 그냥 체험을 위해 참례만 하고 천주교 미사나 정교회 성찬예배에서의 영성체(성체성사)를 대신한다는 생각으로 영성체를 하면 안 된다. 비록 성공회가 공식적으로는 성찬에 문제를 삼지 않지만 일부 성공회 신자들은 두 교단 신자들이 성체를 영하는 것에 불편해하는 경우도 있으며 (왜냐하면 천주교나 정교회는 성공회의 성체를 성체로 보지 않아 성공회 교리가 무시당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천주교나 정교회의 교리상으로도 적법하지 않기 때문이다. 추가적으로 성공회 측에서 천주교성찬례를 서로 교류하자는 요구를 몇 차례 했었으나, 천주교는 번번이 거절했다. 때문에 성공회와 천주교가 함께 모여 기도회를 할 땐 성찬의 전례는 빼고 한다.[87]

다른 개신교 교파 신자라면, 아무런 문제 없이 성공회 성찬례에 참여할 수 있다. 성공회는 개신교 타 교파는 물론 정교회와 가톨릭의 세례를 모두 인정하고, 세례를 받은 사람은 성공회 교적 등록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라도 성찬례에 참여할 수 있기에 성찬례 참여 자격이라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성공회는 한국의 개신교 교단 중 거의 유일하게 매주 성찬례를 집전하기 때문에 혹시라도 자신의 교회에서 성찬례를 너무 소홀히 하는 느낌이 든다면, 언제라도 가까운 성공회 교회에서 참례할 수 있다.

다만 천주교나 정교회와는 다르게 성공회 신자들 관점에서 개신교 신자들이 성체를 가볍게 여긴다고 여길 수도 있기 때문에 영성체를 하는 동안에는 엄격한 예절과 성체에 대한 공경은 갖추어야 한다. 성체예절은 천주교와 거의 비슷하게, 왼손을 오른손에 올리고 손을 내밀면 신부가 성체를 손바닥 위에 올려준다. 이 때 신부가 "그리스도의 성체"[88] 라고 하면 신자는 "아멘" 이라고 대답하면 된다. 성공회 예배인 감사성찬례는 천주교의 미사와 상당히 유사한 형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현대적이고 자유로운 찬양예배에 익숙한 개신교인이라면 다소 신기하고 어색할 수 있으나 기독교 예배의 다양한 형식 중 하나라 생각하고 기도서와 주보를 따라가면 된다. 실제로 성공회의 예전적 예배에 대한 호기심으로 참석해보는 개신교인이 의외로 많다.[89]

8. 논란 및 사건 사고

8.1. 김규돈 신부 대통령 전용기 추락 기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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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여성 성직자


2001년에는 대한성공회 최초로 여성이 사제서품을 받았다.[91] 주인공은 부산교구의 민병옥 카타리나. 1978년 성공회 신학대학원을 졸업했으나, 당시에는 여성 사제서품을 실시하지 않아, 줄곧 전도사로만 머무르고 있다가 졸업하고 23년이나 지난 후에야 사제서품을 받을 수 있었다.[92] 대한성공회 내부에서 부산교구가 다른 교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교회파적이고 개방적이었기에 여성 사제서품이 가능했다는 평이 있다. 민병옥 카타리나 신부는 이후 10년간 사목한 후 2011년에 은퇴했다.

사실 대한성공회에서 최초로 여성이 부제고시에 합격한 것은 1994년이다. 주인공은 박미현 도미니카이다. 그러나 그는 합격했는데도 곧바로 부제서품을 받을 수 없었고, 오랜 시간 기다려야 했다. 그나마 이것도 예전보다 발전한 것이었는데, 더 이전에 부제고시를 보았던 유명희 테레사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합격 판정 보류' 통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관련 글. 그러다 1998년 대전교구에서 이정운 페트라[93]가 대한성공회 최초의 여성 부제가 되었고, 기약 없이 기다리던 여성들도 부제품과 사제품을 받고, 사목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서울교구에서도 2004년 김기리 미리암이 사제 서품을 받았다. 서울교구에서는 최초, 대한성공회에서는 5번째 여성 사제이다. 그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미학과 김문환 명예교수[94]의 1남 1녀 중 둘째로, 본래 한국기독교장로회 경동교회에 다니다가 성공회로 옮겼다. 1998년 성공회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입학했지만 여성으로서 사제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았고, 여성의 서품을 가로막는 제도와 싸운 끝에 사제가 될 수 있었다. 관련 기사.

2007년에는 성가수녀회 오인숙 카타리나 수녀가 사제서품을 받아, 대한성공회 최초의 여성 수도사제가 탄생했다.[95] 한국 전쟁 중 인민군에 의해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여동생과 함께 성공회 고아원에서 자란 오 수녀는 자신을 헌신적으로 돌보아 준 수녀들에게 감동을 받아, 서강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후 성가수녀회에 입회했다. 그리고 수녀원장과 성공회대학교 영문과 교수 등을 지내며 활약하다가 2007년 사제서품을 받았다. 2009년에는 성가수녀회 이양란 엘리사벳 수녀가 사제서품을 받아, 2번째 여성 수도사제가 탄생하였다. 2020년에는 부산교구에서 성 프란시스 수녀회 유용숙 안나프란시스 수녀가 사제서품을 받고 사제수녀가 되었다.

또한 2019년에는 대전교구 이정운 페트라 사제가 여성사제 최초로 교무구 총사제로 임명되었다.

위에 기술된 여성 성직자들을 필두로, 대한성공회는 지속적으로 여성들을 성직에 서품하였다. 관련 기사. 최근에는 거의 모든 서품식에서 여성 부제·사제가 나오고, 2021년 현재 대한성공회에는 여성 성직자 20여 명이 있다. 현재 대한성공회에서 일부 신자들이 여자 신부에 대해서 반발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자 신부들은 성실히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있다.

여담으로 성공회 성직자는 결혼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 민병옥 사제는 독신인 반면, 박미현 사제와 김기리 사제는 기혼에 자녀도 있으며 남편도 성공회 사제이다. 단 성공회에서도 수도자는 결혼할 수 없으므로, 수도사제의 경우 독신이다.

10. 기타

11. 인물

11.1. 성직자


11.2. 일반 신자

12. 관련 링크

13. 관련 문서

14. 합의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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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식 문장이라고 규정되어 있지는 않으나, 여러 주교들의 치미어의 영대에 이 색상의 문장이 새겨져 있고, 서울주교좌대전주교좌의 위의 벽에 이 색상의 문장이 걸려 있다는 점 등 역사적으로 사용되어 왔음을 미루어 볼 때, 관습적으로 이 문장이 공식인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다만, 관구에서 내리는 공문이나 기타 등등에서는 흑백을 애용한다.[2] 선교 125주년 기념 감사성찬례에서 첫 선을 보였다.[3] 실질적인 공식문장. 사용빈도가 가장 높으며, 관구에서 내리는 공문이나 기타 등등에서 이 문장을 애용한다.[4]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초대 조선교구장으로 서품받은 찰스 존 코프 주교가 제물포 항에 발을 내딛기 전, 1880년에 캐나다성공회 소속으로서 일본성공회로 파송된 선교사였던 알렉산더 크로프트 쇼(Alexander Croft Shaw, 1846–1902) 신부가 부산에 교회를 세워 사목했다. 이후 조선교구가 설정되고 교구장이 파견됨에 따라 자연히 조선교구장의 통치 하에 들어가게 된다.[5] 초대 조선교구장 찰스 존 코프 주교 및 일행 조선 도착일. 공식적으로는 9월 29일을 대한성공회의 창립일로 기념하고 있다. 간혹 초대 조선교구장찰스 존 코프 주교가 주교품을 받은 1889년 11월 1일을 대한성공회의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6] 한국관구[7] 당시 캔터베리관구 직할이었던 한국의 세 교구가 관구 승격을 위해 관구 헌장을 제정 및 관구 설정 승인을 캔터베리관구에 청원하였고, 이에 당시 캔터베리 대주교였던 조지 캐리 대주교가 이를 승인, 당시 전국의회의장이었던 김성수 시몬 주교가 공포한 날.[8] 한국관구장 주교, 부산교구장 주교[9] 대전교구 교구장 대리. 청주산남성당 관할사제 겸직.[10] 관구 설정 조건 자체는 1974년에 부산교구가 설정됨으로서 이미 갖추었으나, 실제 설정은 1992년 당시 서울교구장 겸 전국의회 의장이었던 김성수 주교가 조지 레너드 캐리 당시 캔터베리 대주교에게 관구 헌장을 승인 받고 이를 공포함으로서 성공회 한국관구의 역사가 시작되게 된다.[11] 1892년 1월 1일 ~ 1901년 조선교구가 관할. 이후 중화성공회 북중국교구로 관할권이 넘어간다.[12] 교적상의 한국관구민[13] 관구 홈페이지[14] 성공회신문[15] 성공회출판사[16] 성공회라디오[17] 교무원[18] 커뮤니티[19] 커뮤니티[20] 또는 성공회 한국관구(聖公會 韓國管區, Province of Korea).[21] 1997년 즈음 기도서 개정 과정에서 여러 용어를 개정할 때 개신교로서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관구 차원에서 교단 명칭을 '기독교대한성공회' 로 수정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전국의회에서 부결되었다.[22] 한자는 간체자 표기. 홍콩·대만에서 사용하는 정체자로는 위의 한국어 한자표기와 동일하다.[23] '관구(管區, province)'는 성공회·정교회·가톨릭 등 주교제가 확립된 기독교 종파에서 교회를 지역에 따라 나눌 때 사용하는 가장 큰 단위이다. 관구는 최소 3개 이상의 교구로 구성된다. 대한성공회는 1개의 관구를 두고 있으며(한국관구), 그 아래 서울교구·대전교구·부산교구의 3개 교구로 구성되어 있다. 세계성공회는 전세계에 40개 국가별성공회가 있으며, 캔터베리 대주교가 '평등한 가운데 첫째(Primus inter pares)'가 되어 세계성공회를 대표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 관구(Province)는 처음에 교회 행정 구역만을 의미하는 단어였지만 나중에는 광역 행정구역을 의미하는 단어로도 사용되게 된다.[24] 이단으로 알려진 몰몬교·여호와의 증인·신천지보다도 더 교세가 적다.[25] 공식 발표상으로는 5만 명이지만(누적 교적자 수는 10만명 정도라는 얘기도 있음), 실제 신앙 생활을 하는 신자 수는 1만 명 미만이라고 성공회 안팎에 알려졌다. 통계와 실제 교세와의 차이가 상당히 크다. 다른 기독교 교단도 대부분이 통계와 실제 교세 차이가 4–5배 있다지만, 대한성공회는 다른 교단에 비해서도 특별히 통계와 실제 교세 간의 차이가 큰 편이다. 대한성공회 교인 통계에 나온 숫자는 실제 교세의 8-10배 이상이라고 보면 된다.[26] 서울교구, 대전교구, 부산교구[27] 주한영국대사관과 가까운 위치에 있다. 사실 이 주교좌성당과 영국대사관 모두 예전 덕수궁의 원래 권역 안에 위치한다. 덕수궁 건물 중 하나인 양이재 건물은 현재는 대성당 경내 안에서 서울교구장의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다.[28] 대표적으로 전국 나눔의집 협의회, 서울교구 우리마을 등.[29] 대표적으로 서울주교좌성당[30] 천안시·아산시·청주시·진천군·음성군[31] 고교회파, 고교회주의. 18세기에 존 웨슬리 등을 필두로 경직된 영국성공회에 복음주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그 당시 가톨릭적 전통을 고수하던 부류는 "우리는 고교회(High Church)며, 복음주의에 영향을 받은 너희들은 저교회(Low Church)이다."라며 만든 용어가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성공회 잔류 청교도 계통과 웨슬리의 복음주의나 청교도(조지 휫필드 등) 복음주의에 영향을 받은 성공회 신자 중에서 성공회에 남은 부류는 성공회 내 저교회파가 되었으며 성공회를 이탈한 부류는 감리회를 세운다. 감리회의 기원은 존 웨슬리가 '감리사(superintendent)'로서 안수한 성공회 사제 및 평신도 설교자들이다. 이들은 영국성공회에서 완전한 개혁에 동의하던 주교들이, 성공회에서 서품을 받지 않은 목사들(청교도)을 강사로 임명하던 것과 잇닿아 있다.[32] 현행(2004년판) 감사성찬례 기도문 편찬 과정에서 20세기 전례 운동의 산물인 리마 예식서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고, 천주교 노부스 오르도 미사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과정에서 성공회 전례와 리마 예식서의 영향을 받았다.[33] 성공회 내 현대신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부류로서 진보적 사회 참여를 강조한다. 성공회는 진리 추구의 세 가지 기준으로 제시하는 전통·성서·이성 셋 중에서 고교회파는 전통을, 저교회파는 성서를, 광교회파는 이성을 조금 더 중요시하는 부류라고 생각하면 된다.[34] 물론 트리엔트 미사와 달리 자국어로 봉헌되었으며 미사 전문(canon) 등 기도문 내용 일부에 차이가 있었고 트리엔트 미사 후에 있는 레오 13세 교황 기도문이 없었다.[35] 강화성당에서 하는 전례적 동쪽(ad orientem) 방향의 감사성찬례 또한 2018년판 공도문으로 봉헌된다.[36] 극초기 기독교예수를 그저 도덕적 스승으로 여길 뿐이었고 부활 신앙 같은 것은 없었다는 주장으로, 한국에서는 철학자 도올 김용옥이 소위 '도마복음 강해'를 강의하면서 이 고(古) 그리스도론을 설파한 적이 있다. 다른 설명 없이 고그리스도론이라고 말하는 경우 일반적으로 고(高) 그리스도론을 의미하며, 이는 기독교에서 전통적으로 믿어온 그리스도를 육화된 하느님으로 보는 그리스도론을 가리킨다. 이와 반대되는 저(低) 그리스도론이 본문의 고(古) 그리스도론과 통하는 용어.[37] 성공회 신명은 대체로 공동번역성서상에서의 표기를 따르지만 '바우로'와 같이 성서상에서 쓰인 바울로라는 표기를 따르지 않고 예외적인 관용을 존중하는 경우도 존재한다.[38] 성공회 캔터베리관구 한국교구[39] 1939년 공도문만 보더라도 특히 용어(천주, 성교회, 성신 등)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의 천주교와 대동소이했다.[40] 관련 기사[41] 성공회에서는 역사적·문화적 정체성을 공유하는 교구가 3개 이상이어야 한 관구를 설립할 수 있다.[42] 노정빈 선교사는 1959년에 입국해 1976년에 귀국했으나 제3대 대전교구장이었던 배두환 마가 주교의 요청으로 1978년에 다시 내한해 1984년에 은퇴했다.[43] 성공회는 선원선교 영역을 처음으로 개척한 교단으로, 1856년에 영국성공회에서 세운 선원선교회(The Mission to Seafarers, 별칭 Flying Angel)가 그 기원이다.[44] 이는, 당시 신자 대다수가 보수적 성향이었음에도, 진보적인 사제들과 청년들의 뜻을 이해하고 협력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45] 2018년판 기도서[46] 관련 기사.[47] 관구문장은 다음과 같은 색조도 사용된다. 파일:대한성공회 문양.svg, 파일:대한성공회.webp, 파일:대한성공회 문양(흑백).svg[48] 당시 캔터베리관구 직할이었던 한국의 세 교구가 관구 승격을 위해 관구 헌장을 제정 및 관구 설정 승인을 캔터베리관구에 청원하였고, 이에 당시 캔터베리 대주교였던 조지 캐리 대주교가 이를 승인, 당시 전국의회의장이었던 김성수 시몬 주교가 공포한 날.[49] 대한성공회 주교원·전국의회의장, 부산교구장.[50] 대전교구 교구장 대리. 청주산남성당 관할사제 겸직.[51] 1892년 1월 1일 ~ 1901년 한국교구가 관할. 이후 중화성공회 북중국교구로 관할권이 넘어간다.[52] 교적상의 관구민[53] 교무원[54] 성공회라디오[55] 성공회 출판사[56] 교무원[57] 커뮤니티[58] 커뮤니티[59] 원래는 (국가이름)성공회 아래 관구가 여럿 있는 것이 일반적이나, 한국 성공화는 교세가 약하므로 단일관구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참고로 관구는 3개 이상의 교구로 설정된다.[60] 가톨릭, 성공회, 정교회 같은 주교제 교회는 속지주의가 기본이다. 해당 한인교회/성당의 견진성사는 현지 주교의 몫이다.[61] 참고: http://kaclondon.org/[62] 조선교구 출신인 조광원(노아) 신부가 첫 한인 사제라고 잘못 알려진 경우가 흔하다. 조광원(노아) 신부는 해외에서 처음으로 수품받은(부제품) 성직자이다.[63] 참고: https://www.andys.org.au/[64] 해당 교회 소개글 실제 사례: "성공회 (Anglican Church)는 16세기에 일어난 종교개혁을 통해 세워진 정통 개신교입니다. ~ (중략) ~ 한국에 진출한 성공회는 이러한 ‘고교회’적 성향을 띤 성공회의 일부분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시드니의 성공회 교단은 호주에서 가장 복음주의적인 신앙을 지키고 있는 호주내의 대표적인 개신교 교단입니다."[65] 참고: http://www.nskk.org/tokyo/wp-content/uploads/2018/04/korean.html[66] 일본 성공회는 일본 기독교계에서 천주교와 일본기독교단 다음가는 교세를 가지고 있다.[67] 관련 자료. 그 역시 종종 월간 《현대종교》에 글을 기고하곤 한다.[68] 2023년 현재 성직후보자(M.Div) 과정 재적 재학생 수가 5명이다.[69] 서울교구를 예로 들면 2021~2023년 3년 동안 15명의 사제가 정년은퇴했고, 1명의 사제가 명예퇴직했으며, 6명의 성직자가 의원면직했다.[70] 주로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일부 교회에서 쓰인다. 하지만 향린교회는 2018년부터 새번역성경(표준새번역의 2001년 개정판)으로 바꿔 사용한다.[71] 성공회 기도서에 감사성찬례의 순서와 형식이 친절하게 적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72] 장로회, 감리회 등 신명(세례명)이 없는 개신교 교단 출신 신자는 성공회에서 타 교파 영접식이나 견진성사를 받을 때 신명을 받을 수 있다.[73] 한국 교회일치운동의 산실이자 기장교단의 대표적인 교회이다.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첫 여성 사제인 김기리 미리암 사제가 성공회로 옮기기 전 다니던 교회라는 인연도 있다. 2021년 현재까지도 매년 1번씩 교환예배가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성공회 신자 중에는 경동교회 출신들도 있고 반대로 경동교회 신자들 중에도 서울주교좌성당 출신들이 꽤 있다.[74] 영락교회와 더불어 예장통합 교단의 대표적인 교회 중 하나이고, 또한 한국 장로회 역사에서 매우 비중이 큰 교회이기도 하다. 현재는 교환예배가 중단된 상황.[75] 인천내리교회와 함께 한국 감리회에서 역사상 비중이 큰 교회로 꼽힌다.[76]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경동교회 교환예배[77] 천주교, 정교회, 성공회, 기타 개신교 연합[78] 지하성당, 소성전.[79] 성공회 안에 존재하는 여러 갈래의 신앙 태도(churchmanship)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으로 공존하고 있다.[80] '서로의 주교가 상대 교단의 서품식에서 서로 안수하며 서로의 성직자를 교환하여 파송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해당 교단 신자들은 상대방 교단의 영성체에 참여하는 것도 가능해진다.[81] 교류의 중단이지 사도계승 인정 철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 예루살렘, 키프로스, 루마니아 정교회는 이미 1920년대에 성공회의 사도계승을 인정하였고, 이는 지금도 유효하게 인정되고 있다.[82] 복고 가톨릭교회도 여성 서품으로 더이상 천주교가 아니라는 비판을 들었다. 천주교와 정교회의 여성 성직자 반대는 21세기 여성인권과 양성평등의 가치에 위배된다는 지적을 안팎으로부터 꾸준히 받는다. 해당 교단 내 진보파에서 여성의 사제서품 허용을 지속적으로 주장해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83] 동성결혼 인정 문제가 가장 주된 이유였다. 동성결혼의 교회법적 인정에 반대하는 영국성공회도, 정결 서약을 한 동성애자에 한정하여 제한적으로 성소수자 신부 서품을 인정한다.[84] 일부 성공회 교회의 경우 아예 열린성찬이라고 해서, 세례 유무와 상관없이 참석자들 전원이 성체를 받을 수 있도록 열어놓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 불교 스님 같은 타 종교인이 성체를 받는 경우도 종종 보이는 편. 단 이건 모든 성공회 교회가 채택한 방식은 아니다.[85] 공식적으로는 성사적 임재설을 채택한다[86] 성공회로 옮긴 천주교 교적 보유자도 마찬가지다. 천주교 교회법상 이교죄 내지 이단죄를 저지른 이라고 보기 때문이다.[87] 여담으로 천주교는 자신이 유일하게 참된 교회라고 보기에 타 교단과의 공동 성찬은 무차별주의라 하여 경계시하고 있어서 정교회와도 연합 미사는 하지 않고 있다.[88] 천주교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한다.[89] 특히 한국기독교장로회, 기독교대한감리회교회 일치 운동에 적극적인 교단의 신자들이 성공회 감사성찬례에 참석하는 경우가 많다. 더불어 이 두 교단은 천주교, 성공회만큼은 아니지만 전례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도 있다.[90] 전 모 신부 본인 또한 몇 년 전 같은 교구에서 발생한 강 모 신부 성폭행 의혹 사건 때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한 신자 고 모 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전적이 있다.[91] 영국 성공회에서는 1862년 여성이 첫 부제서품을 받았다.(참고로 '부제'이다. 영국성공회의 사제서품은 1994년이다.) 영국성공회와 대한성공회에서의 첫 여성 성직자의 서품 연도가 이렇게 차이 나는 이유는, 성공회에서는 교회 치리에 대한 많은 부분을 세계성공회공동체에 속한 각 지역 성공회 관구의 전통에 맡기기 때문이다.[92] 전도사라는 직책이 성공회에서 흔한 건 아니다. 성직자가 아닌, 즉 부제고시를 준비하는 전업 교역자에게 직책을 줘야 할 때 주고 있다. 타 개신교 교파에서의 전도사의 의미도 목사가 아닌 전업 교역자 정도의 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신학대학원이나 그에 해당하는 과정을 마친 후 말이다.[93] 전 대전교구 충북-강원교무구 총사제, 최초의 여성 총사제이다.[94] 1988 서울올림픽 주제가인 손에 손 잡고의 작사가.[95] 수도자수녀가 사제를 겸하게 되는 것이다. 천주교정교회는 여성이 성품성사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여성 수도사제도 있을 수 없고, 남성 수도사제만 있다(수사신부, 성직수사).[96] 연세대학교 이사회를 구성하는 이사 12명 가운데 4명이 이렇게 개신교 교단들에게서 각각 파송을 받아 임명되었다.[97] 조선일보 일가로 알려진 그 방우영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실상 주인 없는 연세대 이사회를 사유화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카인 방상훈 조선일보 대표이사와 그 가족은 성공회 신자이다. 서울주교좌성당 1996년 증축 완료 당시에는 조선일보 사주 일가에서 성당에 증축 기념비까지 세워줬다. 우연의 일치인지 조선일보 사옥이 서울주교좌성당에서 꽤 가까운 거리에 있다.[98] 현재 연세대 이사회에 참여하는 개신교계 인사는 (연세대 이사회 내에서 자체 추천한) "기독교계 추천이사 2명"이고, 현재 교계이사 2명은 각각 예장통합, 기감 소속이다. 한국의 주요 교단 측에서는 연세대 내에서 소수 교단의 세력이 줄어드는 모양새를 내심 반기는 면도 있어 크게 문제 삼지 않고 있지만, 현재 연세대 이사회는 평신도만을 이사로 뽑는 방향으로 정관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데, "기존 참여 교단을 포함한 한국 개신교계가 학교 발전에 해준 게 별로 없다."는 의견이 이사회와 총동문회 내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99] 그래서 개신교인의 장례식을 찾아가는 문상객은 고인의 영정에 절을 하지 않고 상주와만 맞절하며 묵념만 하는 것이 관례적이다.[100] 이미 유럽과 북미의 성공회 신자의 적지 않은 수가 천주교로 개종했다.[101] 영국 교회사를 살펴보면, 성공회 사제였던 웨슬리의 뒤를 이은 웨슬리주의자들이 독립한 감리회와 성공회 저교회파 중 아르미니우스파에 해당하는 일부는 탄생부터 쌍둥이 같은 관계였다. 함께 태어나 다른 환경에서 자라게 된 것. 감리회 문서 참조.[102] 진보적인 신학을 중요시하는 신자들의 경우에는 감리회보다 기장에 더 동질감을 느낀다.[103] 대한성공회가 고교회파 일색에서 광교회의 요소를 차츰차츰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1970–80년대에, 꽤 많은 모태 성공회 신자와 고교회파 성향 성공회 신자가 성공회를 떠나 천주교에 입교하기도 했다.[104] 타교파 출신 중에 개신교(특히 장로회) 출신이 압도적이긴 하다. 개신교 출신:천주교 출신이 7:3 ~ 8:2 정도 느낌.[105] 본명은 '루번 아처 토리 3세(Reuben Archer Torrey Ⅲ)'.[106] 강원도 태백시 외나무골길 97(하사미동), 대전교구 강원교무구 특수 선교 교회[107] 성공회에는 사회인 경험이 있는 성직자들이 은근 있다.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는 소싯적에 정유회사 임원이었으며, 김돈회 디모데 신부는 IT업체 근무 이력이 있다.[108] 원래는 서울대교구 사제로 서품되어 서울과 경기북부에서 사목하다가 의정부교구 신설과 동시에 의정부교구로 이적.[109] 다시 가톨릭 사제로 돌아가고 싶어하기도 했으나 결혼 문제가 있었다 한다.[110] 여담으로 이건용 선생은 3대 부산교구장을 지낸 이대용 요셉 주교의 동생이다.[111] https://joongboodaily.com/news/178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