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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0년 10월 6일 NLDS 1차전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로이 할러데이가 월드 시리즈 제외 포스트시즌 최초로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순간. 월드 시리즈까지 범위를 넓힌다면 퍼펙트 게임을 달성한 돈 라슨이 있다. |
미국과 한국/일본이 용어와 규정이 조금 다르다.
미국/WBSC - 노히터[2](No-hitter / No hit game)
- 투수(들)이 최소 9이닝을 던지고, 안타를 1개도 허용하지 않고 경기를 끝내는 것.
- no-hitter의 정의. 점수는 내줘도 상관없다. 또한, 승패 여부도 무관하며 경기에 졌는데도 기록하는 경우도 있다.[3]
- 이러한 이유로 피안타가 없더라도 9이닝을 소화하지 못했다면 공식 노히터로 인정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원정팀 선발 투수가 8회 말까지 노히터를 기록했지만 다른 이유로 실점을 했는데, 9회 초 원정팀이 득점하지 못해 그대로 경기가 끝났다면 원정팀 선발 투수는 9이닝을 소화하지 못해서 노히터를 기록했다고 공인되지 않는다.
- 2020년부터 더블헤더 경기를 7이닝으로 단축 실시하면서 이런 상황이 몇 차례 발생했다. 2021년 4월 25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매디슨 범가너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7이닝 무사사구 1실책 노히터를 기록했지만 정식 기록으로는 인정받지 못했고, 탬파베이 레이스는 7월 7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5명의 투수들이 7이닝 2사사구 1실책으로 합작 노히터를 달성했지만 마찬가지로 정식 기록으로는 공인되지 않았다.
한국/일본 - 노히트 노런[4] (No-run, no-hitter / no-no[5])
- 단 한 명의 투수가 해당 경기의 모든 아웃카운트를 잡고(9이닝 이상) 경기를 승리로 마치면서, 상대팀이 그 경기에서 안타나 득점을 기록하지 못한 것.
간단히 표현하면 경기 끝날 때 전광판에 상대팀의 득점과 안타수가 모두 0이면 된다. '노히터', '완투', '완봉승'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이다. 즉, 노히트노런이 노히터 보다 더 강화된 조건이다. 만약 선발투수가 1회 선두타자에게 4사구로 출루를 허용한 후 강판되고, 바뀐 투수가 무안타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치면 해당 투수는 공식 노히트 노런을 인정받으나, 아직 이런 케이스는 없다. 그러나 완봉에는 1998년 유사 사례가 있는데, 선발투수 김상진이 1회 선두타자에게 안타를 맞고 강판된 후, 두번째로 올라온 진필중이 실점 없이 혼자 경기를 마무리 지어 완봉승을 달성한 사례가 있다.
미국의 노히터와 한국/일본의 노히트 노런의 다른 점
- 한국/일본에서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면, 미국 기준으로도 노히터가 된다. 하지만, 그 역은 아닌 경우가 존재한다.(예: 켄 존슨의 노히터 패전)
- 미국에서는 노히터를 기록하고도 패전이 가능하지만[6], 한국/일본에서는 노히트노런 패전은 불가능하다.
- 미국에서는 여러 투수가 노히터를 합작하더라도 기록으로 인정하지만, 한국/일본에서는 1회 노아웃 때 한 교체가 아닌 이상 노히트 노런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 한국/일본에서도 무안타로 막았지만 점수를 준 경우 '노히터'라고 부르는 경우도 간혹 있다. 정식으로 표현하면 '무 피안타 완투'가 되지만 정통 노히터 정의보다는 더 좁다.
퍼펙트 게임과 다른 점은, 퍼펙트 게임의 경우 어떤 형태로든 타자가 출루해서는 안되지만, 노히트 노런/노히터의 경우 볼넷, 실책, 몸에 맞는 공,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 등 안타 종류가 아닌 이유로 인한 타자의 출루는 인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퍼펙트 게임은 조건 상 자동적으로 노히트 노런에 포함된다.
구분 | 동아시아식 퍼펙트 게임 | 국제식 퍼펙트 게임 | 노히트 노런 | 노히터 |
출루 | 없어야 함 | 안타 외에는 허용 | ||
실점 | 없어야 함 | 있어도 무방 | ||
투수 교체 | 없어야 함 | 있어도 무방 | 없어야 함[7] | 있어도 무방 |
집합식으로 표현하면 노히터(안타만 안 맞으면 됨)⊃노히트 노런(안타 없음+실점 없음)⊃퍼펙트 게임(어떠한 출루도 없음)이 된다.
참고로 경기 자체를 무안타 무실점으로 막았으나 강우콜드 등의 이유로 9회 이전에 경기가 끝나면 인정되지 않는다. 실제로 박동희 선수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적이 있으나 6회 강우콜드게임으로 끝났기 때문에 공식 기록으로는 인정받지 못했고, 번외 기록으로 언급된다.
9회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어도 0:0으로 연장으로 이어져서 10회에 안타를 맞는다거나 10회에 새로운 투수가 올라왔으면 기록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또, 경기가 끝날 때까지 노히트 노런으로 막았으나, 0:0 무승부로 끝나면 인정되지 않는다.[8]
2004년 한국시리즈 4차전 경기 종료 후. |
물론 언론에서는 노히트 노런을 했다고 언급하고, 준-공인급 기록으로 인정해주는 사례도 있지만 그래도 아쉽다. 심지어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배영수는 연장 10회까지 노히트 노런으로 막은 적이 있으나 결국 승리투수가 되지 못해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MLB식으로 관대하게 팀 기록을 계산한대도 본인이 완투한 것이 아니므로 개인의 노히터로는 인정받지 못한다. 어차피 후속 투수가 안타를 얻어맞기도 했으니.
국제 대회에서는 미국식 노히터를 기록한다. 즉, 노히트 노런 개념 자체가 없으니 국가대표 기록에는 노히트 노런이 있을 수 없고, 대신 노히터로서 인정된다. 승부치기도 노런 조건은 없으므로 영향이 없다.
2. KBO 리그에서
덱 맥과이어의 KBO 리그 가장 최근 노히트 노런 달성 순간.(2019. 04. 21.)[9] |
2023년 8월 6일 경기 종료 후 기준으로 정규 시즌 노히트 노런이 14개, 노히터[10]가 17개 나왔다.
2.1. 공인된 노히트 노런
순서 | 이름 | 소속팀 | 일자 | 상대팀 | 구장 | 결과 | 포수 | 기록 | 비고 |
1 | 방수원[11] | 해태 | 1984년 5월 5일 | 삼미 | 무등 | 5:0 | 유승안 | 6탈삼진, 3사사구 | KBO 최초 |
2 | 김정행 | 롯데 | 1986년 6월 5일 더블헤더 1차전 | 빙그레 | 사직 | 8:0 | 한문연 김용운 | 5탈삼진, 4사사구 | 해외파 최초[12] 더블헤더[13] |
3 | 장호연[14] | OB | 1988년 4월 2일 | 롯데 | 4:0 | 김경문 | 3사사구[15] | KBO 유일한 개막전 기록 KBO 유일한 무탈삼진 기록 최소 투구수(99개) | |
4 | 이동석 | 빙그레 | 1988년 4월 17일 | 해태 | 무등 | 1:0 | 유승안 | 5탈삼진, 2실책[16] | 무사사구 |
5 | 선동열 | 해태 | 1989년 7월 6일 | 삼성 | 10:0 | 장채근 | 9탈삼진, 3사사구 | ||
6 | 이태일 | 삼성 | 1990년 8월 8일 | 롯데 | 사직 | 8:0 | 이만수 | 4탈삼진, 3사사구 | 신인 최초 |
7 | 김원형 | 쌍방울 | 1993년 4월 30일 | OB | 전주 | 3:0 | 김충민 | 6탈삼진, 1사사구 | 최연소(20세 9개월 25일) |
8 | 김태원 | LG | 1993년 9월 9일 | 쌍방울 | 잠실 | 9:0 | 김동수 | 4탈삼진, 3사사구 | |
9 | 정민철 | 한화 | 1997년 5월 23일 | OB | 대전 | 8:0 | 강인권 | 8탈삼진 | 낫아웃 출루로 퍼펙트 무산 |
10 | 송진우 | 2000년 5월 18일 | 해태 | 무등 | 6:0 | 6탈삼진, 3사사구 | 좌완투수 유일무이[17] 최고령(34세 3개월 2일) | ||
11 | 찰리 쉬렉 | NC | 2014년 6월 24일 | LG | 잠실 | 6:0 | 김태군 | 7탈삼진, 3사사구 | 외국인 선수 최초 |
12 | 유네스키 마야 | 두산 | 2015년 4월 9일 | 넥센 | 1:0 | 양의지 | 8탈삼진, 3사사구 | [18] | |
13 | 마이클 보우덴 | 2016년 6월 30일 | NC | 4:0 | 9탈삼진, 4사사구 | 최다 투구수(139개) | |||
14 | 덱 맥과이어 | 삼성 | 2019년 4월 21일 | 한화 | 대전 | 16:0 | 강민호 | 13탈삼진, 2사사구 | 최다 탈삼진 최다 득점지원 |
유승안은 처음으로 2회의 노히트 노런 때 배터리를 맞췄으며, 2개 팀 이상에서 기록한 것 역시 최초다. 강인권은 역대 2번째로 2회의 노히트 노런 때 배터리를 맞춘 포수가 되었는데 한 팀에서 2번을 기록한 최초의 선수다. 양의지는 역대 3번째로 2회의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으며, 한 팀에서 이것을 세운 기록은 2번째다.
구장별로는 무등, 잠실이 4회, 사직 3회, 대전 2회, 전주 1회 순으로 나오고 있다.
구단별로는 두산(OB 포함)과 한화(빙그레 포함)가 3회씩, 해태와 삼성이 2회씩, 롯데, 쌍방울, LG, NC가 1회씩 기록했고, 한화(빙그레 포함), 해태, 롯데, OB가 2회씩, 삼미, 삼성, 쌍방울, LG, 넥센, NC가 1회씩 허용했다.
2.2. 비공인 노히트 노런
- 포스트시즌 노히트 노런
포스트시즌 노히트 노런은 정규시즌 기록과 따로 취급한다.순서 이름 소속팀 일자 상대팀 구장 결과 포수 기록 비고 1 정명원 현대 유니콘스 1996년 10월 20일
한국시리즈 4차전해태 타이거즈 숭의 4:0 김형남
장광호[19]9탈삼진, 3사사구
- 강우콜드 노히트 노런
레코드북에서 따로 기록은 되어 있지만, 강우콜드이므로 공식 기록에서는 제외된다. 이닝 수가 모자라 노히터로도 인정되지 않는다.순서 이름 소속팀 일자 상대팀 구장 결과 포수 기록 비고 1 박동희 롯데 자이언츠 1993년 5월 13일 쌍방울 레이더스 사직 4:0 강성우 6탈삼진, 1사사구 6회 강우콜드[20]
- 합작 노히트 노런 (팀 노히트 노런, 노히터)
단 1명이 기록하는 경우에만 인정하는 한/일식 노히트 노런 정의에는 부합하지 않지만, 투수 교체 여부를 따지지 않는 미국식 노히터에는 해당되는 경우. 2023년까지 3번 나왔다.[21]
순서 | 이름 | 이닝 | 소속팀 | 일자 | 상대팀 | 구장 | 결과 | 포수 | 기록 | 비고 |
1 | 신정락[22] | 7⅓ | LG 트윈스 | 2014년 10월 6일 | NC 다이노스 | 잠실 | 1:0 | 최경철 현재윤[23] | 9탈삼진, 2사사구 | |
유원상 | 1⅓ | 2탈삼진 | ||||||||
신재웅 | 0⅓ | 구원승 | ||||||||
2 | 윌머 폰트[24] | 9 | SSG 랜더스 | 2022년 4월 2일[25] | 창원 | 4:0 | 이재원 이흥련[26] | 9탈삼진, 0사사구 | 9이닝 퍼펙트[27] 선발승 | |
김택형 | 1 | 2탈삼진, 1사사구[28] | ||||||||
3 | 애런 윌커슨 | 7 | 롯데 자이언츠 | 2023년 8월 6일 | SSG 랜더스 | 사직 | 1:0 | 손성빈 정보근[29] | 6탈삼진, 1사사구 | 6이닝 퍼펙트 |
구승민 | 1 | 구원승 | ||||||||
김원중 | 1 | 1탈삼진, 1사사구 |
2.3. 정규이닝 동안 노히트 노런을 했지만 인정받지 못한 경우
2004년 배영수는 한국시리즈에서 4차전에서 참으로 불운한 기록을 세웠다. 정규 이닝인 9이닝동안 상대팀을 노히트 노런으로 막았는데, 자기 팀 역시 점수를 못내는 바람에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지 못했다. 더욱이 배영수는 8회 2사까지 퍼펙트를 기록했다는 것이다.배영수는 연장 10회까지 노히트 노런으로 막고, 11회에 결국 교체 되었는데 0:0에서 내려 왔기에, 노히트 노런은커녕, 완봉승, 승리투수 그 어느것도 달성하지 못하고 ND를 기록했다. 단, 한 경기 연속이닝 노히트 노런 기록으로는 유효하다.[30] 해당 경기 노히트 노런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참고로, 이 경기에서 7회 2사 1, 2루의 득점 찬스 상황에서 김한수가 안타성 타구를 때려 냈는데, 상대팀 유격수 박진만의 호수비에 막히면서 찬스를 놓쳤다. 게다가 배영수의 퍼펙트를 깨뜨린 것도, 다름 아닌 박진만이 볼넷을 골라냈던 것이다.
경기는 결국 12회까지 득점 없이 0:0으로 끝났다.
2022년 4월 2일[31] SSG 랜더스의 투수 윌머 폰트는 NC 다이노스를 상대로 무려 9이닝 퍼펙트를 찍었으나... 팀도 점수를 내지 못하여 연장에 갔다. 연장에서 교체되어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도 이후 투수가 안타를 맞지 않아 팀 노히터는 달성하였다.
2.4. 9회에 무산된 노히트 노런
1989년 8월 31일 빙그레 이글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대구 경기에서 빙그레의 한희민이 8회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9회 첫 타자 홍승규가 우전 안타를 치면서 무산되었다.1993년 4월 11일 LG 트윈스와 해태 타이거즈의 광주 경기에서 해태의 조계현이 9회 2사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송구홍이 중전 안타를 치면서 무산되었다.[32][33]
1998년 5월 6일 한화 이글스와 현대 유니콘스의 인천 경기에서 현대의 위재영이 8회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9회 첫 타자 강석천을 볼넷으로 내보내고 이어 백재호에게 좌전 안타를 맞으며 무산되었다.
1999년 4월 17일 해태 타이거즈와 현대 유니콘스와의 광주 경기에서 해태의 박진철이 9회 1사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9회에만 몸에 맞는 볼 2개에 패스트볼로 1, 3루 상황을 만들었고, 결국 박경완의 스퀴즈 번트로 실점하면서 무산되었다. KBO 리그 정규시즌에서 안타 없이 실점으로 노히트 노런이 무산된 유일한 사례이다.
2000년 7월 16일 해태 타이거즈와 현대 유니콘스의 수원 경기에서 현대의 김수경이 9회 1사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헤수스 타바레스가 기습번트로 내야안타를 기록하면서 무산되었다.
2001년 8월 11일 삼성 라이온즈와 SK 와이번스의 대구 경기에서 삼성의 임창용이 9회 1사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호세 에레라가 우전 안타를 쳐서 무산되었다.
2005년 7월 26일 KIA 타이거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광주 경기에서 롯데의 장원준이 9회 1사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이종범[34]의 1루수 앞 내야안타로 무산되었다. 당시 장원준 나이는 19세 11개월 26일로, 김원형의 최연소 노히트 노런을 경신할 수 있었다.
2006년 8월 11일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의 잠실 경기에서 데뷔 첫 선발 등판한 LG의 신재웅이 8회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9회 첫 타자인 신경현이 좌전 안타를 치면서 무산되었다.
2008년 7월 4일 KIA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대구 경기에서 KIA의 이범석이 9회 2사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박석민이 3루수 앞 내야안타를 치면서 무산되었다.[35][36]
2010년 6월 10일 삼성 라이온즈와 SK 와이번스의 문학 경기에서 SK의 김광현이 9회 2사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최형우의 우전안타로 무산되었다.
2012년 9월 26일 KIA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대구 경기에서 KIA의 윤석민이 9회말까지 노히트 기록을 이어가고 있었으나 박한이의 안타로 노히트 노런은 무산되었다.[37]
2015년 4월 4일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잠실 경기에서 임지섭이 7회까지 노히트를 기록하였고, 8회에 이동현이 올라와 노히트로 역대 2번째 팀 노히트 노런이 유력하였으나 9회에 마무리로 올라온 봉중근이 9회 1사 1루 상황에서[38] 최형우에게 2점홈런을 맞으며 기록이 무산되었다.
2020년 6월 27일 LG 트윈스와 SK 와이번스의 인천 경기에서 LG의 정찬헌이 9회 1사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김경호에 안타를 허용하면서 기록이 무산되었다.
2021년 9월 1일 KIA 타이거즈와 두산 베어스의 잠실 경기에서 두산의 아리엘 미란다가 9회 2사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김선빈의 2루타로 노히트 노런이 무산되었다.[39][40][41][42]
2023년 9월 23일 kt wiz와 KIA 타이거즈의 광주 경기에서 kt의 윌리엄 쿠에바스가 9회 1사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김도영에게 3루타를 허용하며 무산되었다.
퍼펙트 게임을 이어오다가 9회에 안타로 무산된 사례는 1982년의 황규봉, 2007년의 다니엘 리오스, 2024년의 케이시 켈리가 있었다.
2.5. 이야깃거리
- 수학적으로 노히트 노런을 할 최대의 확률을 계산해보면, 투수가 타자를 상대하여 안타를 맞지 않고 아웃시킬 확률을 평균 75%라고 가정하고(볼넷이나 실책으로 인한 주루 제외) 27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아야 하므로 27C0 × (0.75)27가 된다. 이는 약 0.0423%이다. 한편 0.0423%는 대략 2364경기 중 한번이고 시즌 720경기 및 포스트시즌 포함 기준으로 약 3년에 한번 꼴이다.
- 대한민국 야구역사에서 기록으로 남은 가장 오래된 노히트 노런은 1935년 6월 22일 연전구장에서 휘문고보의 투수 송재경이 배재고를 상대로 거둔 노히트 노런이다. 7이닝(13:0으로 승리하면서 콜드게임 선언)5사사구 1실책을 기록.
- KBO리그에서 최초의 노히트 노런 기록을 세운 투수는 1984년 대 삼미전에서 해태 타이거즈의 방수원. 그가 그 시즌 기록한 유일한 1승이 바로 이 노히트 노런이었다. 한국프로야구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이 경기 하나로 남기게 되었다.
- 1986년 김정행은 빙그레 이글스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였다. 당시 상대팀 감독이었던 배성서 감독 말로는 사사구를 8개나 허용했다고 하는데, 당시 동아일보 기사나 KBO 레코드북에 따르면 사사구 4개만 허용했다고 나온다.
- 1988년 OB 베어스의 장호연은 첫 '개막전 노히트 노런'이자, '무탈삼진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다. 이날 경기에서 장호연은 볼넷 1개와 몸에 맞는 공 2개를 허용하고 28명의 타자를 모두 삼진 없이 범타로 잡았다. 투구수 99개로 역대 최소투구 노히트 노런도 이 경기에서 나왔다. 장호연은 평소 "공 세 개로 삼진잡는 것보다 공 하나로 맞춰 잡는 게 효과적인 투구다"라고 말하는 등 독특한 관념을 지녔다. 다른 투수가 이게 좋은 줄 몰라서 안하는 게 아니라 그런 식으로 던져서 좋은 성적을 못내니까 안하는 건데 이걸 실전에서 해낸 것이다.
- 1988년 이동석은 선동열을 상대로 무사사구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지만, 두 개의 실책으로 주자가 출루하며 퍼펙트 게임은 달성하지 못했다. 실책을 범한 선수는 장종훈과 강정길이었다. 7회와 8회에 유격수 장종훈이 1루수 강정길에게 던진 공이 뒤로 빠졌는데 7회는 장종훈, 8회는 강정길의 실책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퍼펙트를 깬 장종훈을 탓할 수도 없는 게 당시 유일한 득점이 장종훈이 3루타 치고 나가서 견제구 미스로 득점한 것이다. 한편 이동석은 현역에서 은퇴한 후에 이 날 노히트 노런을 떠올리면서 "해태 선발은 선동열이고 상대 선발은 나라고 그러니까 해태 타자들이 전날 맘놓고 술을 엄청나게 마셔서 그런 거다."라고 둘러대기도 했다. 진실은 저 너머에.[43]
- 1993년 김원형은 OB전에서 만 20세 9개월 25일로 최연소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였다. 이 기록은 아직도 안 깨지고 있는 그야말로 불멸의 기록이다. 유일한 출루가 김민호의 볼넷이었다.
- 1997년 5월 23일 OB 베어스 對 한화 이글스의 대전 경기에서 정민철은 수비 실책도 아닌 낫아웃 출루로 한 명의 주자를 내보낸 무사사구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8회초 1사 볼카운트 1B 2S에서 타자 심정수가 헛스윙한 공을 포수 강인권이 놓쳐서 심정수가 낫아웃으로 출루한 것이 OB의 유일한 출루였다. 심정수는 1루 베이스를 밟을 때의 소감을 '똥밟는 느낌이었다'고 술회했다. 당연히 강인권은 상당히 많이 까였다. 이 경기는 2021년까지 무려 25년 간 KBO 역사상 가장 퍼펙트 게임에 가까운 경기로 남아 있었다.
- 2000년 송진우는 김정행이 갖고 있던 최고령 노히트 노런을 2개월 차로 새로 경신했다. 송진우의 기록 희생양이 된 해태 타이거즈는 창단 이후 최초로 5월 18일에 광주 홈경기를 치렀는데 하필이면 이날 경기에서 노히트 노런을 당했다. 그러나 한화는 이 날 경기에서 운을 다 썼는지, 다음 날 현대전에서 박경완에게 사상 첫 4연타석 홈런이라는 대기록을 내주고 만다.[47] 또 해태는 7월 16일 현대 유니콘스의 선발 투수 김수경을 상대로 무안타로 꽁꽁 막혀있다가 9회말 1아웃에서 용병 타자 헤수스 타바레스가 번트로 내야안타를 만들어 기록이 깨지는 일이 발생하였다.[48]
- 2008년 7월 4일 삼성 라이온즈 vs 기아 타이거즈의 대구 구장에서 이범석이 9회말 2아웃 까지 노히터를 이어가고 있었으나 9회말 2아웃에 김주형의 안일한 수비로 내야안타를 허용[49]하며 기록이 깨져 완봉승으로 만족해야 했다. 당연히 김주형은 모든 KIA 팬 커뮤니티에서 맹비난을 받았다.
- 2014년 6월 24일 NC 다이노스와 LG 트윈스와의 잠실 경기에서 찰리 쉬렉이 드디어 송진우 이후 14년만에 달성하였다. 외국인 투수 1호기록도 가져가되었다. 2014년은 타고투저가 심한 시즌이라서 노히트 노런의 의미가 커 보였다.
- 2014년 10월 6일 NC 다이노스와 잠실에서 맞붙은 LG 트윈스는 선발 투수 신정락이 7⅓이닝 동안 무안타 2볼넷 9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하다 오른손 중지 손톱이 들리는 바람에 통증을 호소하여 자진해서 마운드를 내려왔고, 뒤이어 나온 유원상과 신재웅이 나머지 1⅔이닝을 무안타 무사사구 1실책 무실점으로 틀어막은 후 9회말 이진영의 끝내기 안타로 스코어 1:0 승리를 거두면서 KBO 최초로 팀 합작 노히트노런을 작성했다. 약 석달 전에 찰리 쉬렉에게 당했던 복수를 톡톡히 한 셈이다.
- 참고로, 이미 이보다 11년 전인 2003년 3월 23일, 수원구장에서 열린 현대 유니콘스와 한화 이글스와의 시범경기에서 이상목-김정수-안영명-레닌 피코타가 팀 합작 노히트 노런을 달성한 적이 있지만, 시범경기이기 때문에 공식 기록에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LG 트윈스가 거둔 팀 합작 노히트 노런이 KBO 최초의 팀 합작 노히트 노런 기록이다.
- 한화 이글스는 이로부터 1년 뒤인 2004년 3월 19일, 한밭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시범경기에서 또 팀 합작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으나 역시 시범경기이기 때문에 기록에 포함되지 않았다. 당시 투수는 조규수-정민철-김창훈-오봉옥. 다만 이로 인해 2년 연속 시범경기 합작 노히트 노런 달성이라는 꽤 흔치 않은 타이틀(?)은 갖게 되었다.
- 포수로서 노히트 노런을 두 번 경험한 KBO 출신 선수는 2021년 현재 세 명이다. 유승안(1984년 방수원, 1988년 이동석), 강인권(1997년 정민철, 2000년 송진우), 그리고 양의지(2015년 마야, 2016년 보우덴)가 그 주인공이다.[50]
- 외국인 투수 최초의 KBO 리그 노히트 노런 기록은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된 후로 16년동안 한 번도 나오지 않다가 2014년에 가서야 찰리 쉬렉에 의해 처음 작성되었다. 흥미롭게도 찰리 쉬렉 이후 나온 3번의 노히트 노런 기록도 모두 외국인 선수가 기록했다는 것. 반면 한국인 투수의 KBO 리그 기록은 2000년 송진우 이후 명맥이 끊겨있다.
- 외국인이 노히트 노런 기록을 세우면 롱런을 못한다는 징크스가 있다.
- 외국인 1호 기록은 2014년의 찰리 쉬렉인데, 다음해 부진한 모습을 보이다 2015년 6월 웨이버 공시되었다. 욕설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 외국인 2호 기록은 2015년의 유네스키 마야인데, 기록을 세운 뒤 부진하더니 2015년 6월에 웨이버 공시되었다. 욕설 논란도 있었다.
- 외국인 3호 기록은 2016년의 마이클 보우덴인데, 남은 정규시즌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으며, 그 해 탈삼진왕 타이틀까지 획득한다. 뿐만 아니라 포스트시즌에서도 한국시리즈 3차전 MVP에 선정되는 등 큰 활약을 하며 팀 우승에 일조하고 우승 반지까지 얻었다. 그렇지만, 2017년 어깨충돌증후군으로 아파하면서 잦은 결장을 하더니 애매한 기록만 남기고 시즌 종료. 결국 국내리그와 결별했다.
- 외국인 4호 기록은 2019년의 덱 맥과이어인데, 카리대와 비교될 정도로 초반 부진을 겪다가 첫 승을 노히트노런으로 챙겼다. 초반 부진을 생각해보면 앞의 선수들과 마찬가지의 불명예가 예상되었고, 노히트 노런 기점으로 잠깐 반등하나 했으나 결국 부진과 부상으로 방출되었다.
3.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의 노히터
가장 최근 노히트 노런을 달성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블레이크 스넬.
메이저리그의 No hitter, 한 팀의 투수들이 안타를 맞지 않고 경기를 종료하는 것.
안타 이외의 요인으로 인한 실점은 논외로 한다. 따라서 No-hitter를 작성하고도 질 수가 있다. 하단의 '노히터 패전' 항목 참조. 이런 차이로 인해서 켄 존슨의 노히터 패전은 대한민국에서는 노히트 노런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대한민국과 일본에서는 여러 투수가 합작하여 노히트 노런를 기록하더라도 이를 공식 기록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MLB에서는 합작 노히터도 인정된다. 2003년 6월 11일 휴스턴 애스트로스-뉴욕 양키즈 경기에서의 로이 오스왈트, 피트 먼로, 커크 살루스, 브래드 릿지, 옥타비오 도텔, 빌리 와그너의 6명 합작 노히터를 기록한 바 있다. 그리고, 2012년 6월 8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시애틀 매리너스의 경기에서 다시 6인 합작 노히터가 나왔고[51] 2019년 7월 12일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가 시애틀 매리너스를 상대로 2인 합작 노히터를 달성했다.[52] 퍼펙트 게임 NPB 항목을 보면, 2007 일본시리즈 5차전(시리즈 최종전)에서 주니치 드래곤즈의 야마이 다이스케와 이와세 히토키가 계투 퍼펙트를 기록했지만 공식기록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고로 계투 퍼펙트게임은 일본에서는 비공식기록에 지나지 않는다.
스페인어를 쓰는 국가를 포함해 한국이나 일본을 제외한 다른 비영어권에서도 가끔 No Run, No Hit이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도 노히터≠노히트노런이었던 사례가 흔치 않은 만큼 해설자들도 마지막 아웃카운트 때엔 그냥 No-No라고 부르기도 한다. 야구 정통론자들은 No-Hitter를 여러 투수가 합작할 수 있음을 명시한 MLB의 정의를 신봉한다. 즉 합작 노히트 노런이나 합작 퍼펙트 게임은 물론, 포스트시즌 것도 기록하자는 말. 당연히 점수 먹은 것도 포함이다. 이러면 정명원, 신정락-유원상-신재웅 기록도 공인으로 승격된다.
사족으로, 우리나라에서도 2014년 10월 6일에 KBO 최초의 합작 노히터가 달성되었다. 아래 참조.
일단 노히터 하나 찍은 것만 해도 두고두고 명장면으로 회자되기에 충분하다. 단, 그 뒤에 해당 선수가 뜨고 안뜨냐는 별개의 문제. 미국 야구에서는 데뷔 첫 해에 노히터(상대는 빅유닛 랜디 존슨이다.)를 기록했지만 그 뒤로는 오히려 내리막길을 걸은 前 콜로라도 로키스의 마무리투수였던 호세 히메네즈[53] 같은 사례도 있다. 아예 주니치 드래곤즈의 곤도 신이치 같이 데뷔전에서 노히트노런을 하고 나서 얼마 못 가 막장 테크를 탄 선수도 있다. 멀리 갈 거 없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방수원도 별 커리어를 남기지 못했고, 외국인 1-2호인 찰리 쉬렉과 유네스키 마야도 2015시즌 도중 짐을 싸야만 했다.
현재 MLB에서도 데뷔전 노히트 노런은 없다. 1953년 보보 홀로먼이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를 상대로, 2021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타일러 길버트가 선발 첫 경기 노히트 노런을 성공했지만, 그것이 데뷔전 경기는 아니었다. 커리어 2번째 경기 노히트 노런을 한 선수가 두 명 있는데 한명은 1991년 당시 화이트삭스의 왼손투수 윌슨 알바레즈이고[54], 다른 한 명은 현역인 보스턴 레드삭스의 클레이 벅홀츠이다. 공교롭게도 두 선수 모두 노히터 상대팀은 볼티모어 오리올스.
사실 A급 투수들 중에도 이걸 못 해 본 투수가 수두룩하다. 그 때문에 노히터 횟수가 곧 투수의 실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즉 운빨이 따라주지 않으면 못 한다는 것이 통념이다.
그러나, 노히터를 던지려면 구위가 장난 아니게 강하거나(ex-저스틴 벌랜더, 랜디 존슨, 놀란 라이언) 타자들에게 분석이 덜 되어 비교적 생소한 신인급 투수, 혹은 리그를 갓 옮긴 투수여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메이저리그에서 최근에 노히터를 던지는 투수들을 최근에 보면 대체로 강력한 구위로 상대를 압도하는 선수들이 많다.(댈러스 브레이든과 마크 벌리의 6K 퍼펙트 게임은 논외로 한다. 김형준 기자의 칼럼에 따르면 퍼펙트게임은 강력한 수비진을 등에 업고 제구력과 노련함도 갖춰야 한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위에 예로 든 벅홀츠처럼 루키로서 타자들에게는 아직 낯설었던 투수들이 기록하는 경우도 많다. 로이 할러데이도 AL 동부에서 뛸 적엔 커리어 두번째 선발경기에서 9회 2사까지 노히트 행진을 가다 솔로홈런 맞고 1안타 완투승을 거두기도 했지만 이후엔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지 못하다가 AL 동부를 탈출하여 NL 동부로 가자 MLB 역사상 20번째 퍼펙트게임을 달성했고 볼넷 하나 내준 포스트시즌 노히터도 달성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아시아 선수로는 노모 히데오, 이와쿠마 히사시가 노히트노런을 달성한바 있다.[55] 특히 노모 히데오는 메이저리그 역사에도 몇 없는 양대리그 노히트노런 기록 보유자이다.[56]
만약 선발투수가 4, 5회 이상 노히트/퍼펙션을 하고 있는 경우, 아무도 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다[57]는 야구의 암묵적인 룰이 있다. 게다가 투수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있으면서 정신에 혼란을 주지 않으려 노력한다.[58] 아마 노히트 노런을 언급했다 하면 바로 그 타이밍에 투수가 안타를 맞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59][60] 그러니 아무래도 투수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목적일 것이다.
합작 노히트 노런으로 남은 경기중엔 이런 경기도 있다. 1917년 6월 23일 보스턴 레드삭스와 워싱턴 세너터스와의 경기에서 베이브 루스가 선발투수로 나왔는데, 잘 알려진 대로 성격이 불같았던 베이브 루스가 등판하자마자 첫 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냈는데 볼판정에 화가 나 심판에게 항의하다가 퇴장을 당해버렸다. 그래서 루스는 타자 한명만 내보내고 어니 쇼라는 구원 투수가 나왔다. 어니 쇼가 마운드에 올라온 뒤, 루스가 내보낸 주자가 2루 도루실패로 잡히고 나서 어니 쇼는 나머지 26명의 타자를 한 명도 내보내지 않고 9회를 마쳤다. 심정적으로 볼땐 어니 쇼가 퍼펙트 게임을 했다고 볼 수 있지만, 규정상 이 경기는 루스, 어니 쇼의 합작 노히터로 처리되었다.
2011년 7월 27일 LA 에인절스-클리블랜드 인디언스 게임에서 MLB 사상 272번째 노히터가 나왔는데, 주인공은
2018년 4월 21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션 머나야가 당시 17승 2패로 펄펄 날던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홈경기에서 노히트를 달성하며 야구팬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이 경기로 역대 노히트 당한 팀 중 최고 승률 팀이라는 굴욕적인 기록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2019년 5월 7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마이크 파이어스가 신시내티 레즈와의 인터리그 홈경기에서 노히트를 달성하며 메이저리그 역대 300번째 노히트의 주인공이 되었다.또한 저스틴 벌랜더,맥스 슈어저, 제이크 아리에타,호머 베일리에 이어 현역 투수 중 노히트 두번을 기록한 투수가 됐다.
2019년 9월 1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저스틴 벌랜더가 토론토 블루제이스전 원정경기에서 개인 통산 세번째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벌랜더는 8년전인 2011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시절에도 토론토 원정에서 노히트 노런을 달성한 적이 있었기에 이 경기로 메이저리그 최초로 단일구장 원정에서 노히트 노런을 두번 달성한 투수라는 기록을 세웠다.
코로나 19로 인한 비정상적인 2020 시즌에도 노히트 노런이 2개가 발생했다. 2개는 각각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루카스 지올리토가 피츠버그 파이러츠를 상대로 달생한 것과 시카고 컵스의 알렉 밀스가 밀워키 브루어스를 상대로 달성한 노히트노런이다. 2021 시즌은 그야말로 노히터 잔치가 벌어지고 있다. 5월이 채 지나지 않은 채 무려 6번의 노히터가 달성되었다.
2021년 4월 9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선발투수 조 머스그로브가 텍사스 레인저스 원정 경기에서 파드리스 구단 역사상 첫 노히터를 달성하며 메이저리그 전 구단이 노히터를 달성하게 되었다. 이 경기에서 샌디에고의 김하성은 선발출전하였으며,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유격수 땅볼로 잡아 줬다.
2021년 4월 14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선발투수 카를로스 로돈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전 홈 경기에서 노히터를 달성하면서 화이트삭스는 아메리칸 리그 최다 노히터 기록을 달성하게 되었다.
2021년 5월 5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선발투수 존 민스가 시애틀 매리너스 원정 경기에서 9이닝 12탈삼진 무사사구 노히터를 달성했다. 3회말에 허용한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 출루로 인해 아쉽게도 퍼펙트 게임은 성립되지 못했다.
그리고 이틀 후 2021년 5월 7일 신시내티 레즈의 선발투수 웨이드 마일리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원정에서 9이닝 8탈삼진 1볼넷 노히터를 달성했다. 2021년 시즌이 시작된지 한달이 약간 지났는데 벌써 4번째 노히터 게임이 완성되었다.
2021년 5월 18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선발투수 스펜서 턴불이 시애틀 매리너스 원정에서 9이닝 9탈삼진 2볼넷을 기록하며 2021 시즌 5번째 노히터를 달성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2021년 5월 19일, 뉴욕 양키스의 선발투수 코리 클루버가 텍사스 레인저스 원정에서 9이닝 9탈삼진 1볼넷으로 2021 시즌 6번째 노히터를 달성했다. 6번의 노히터 게임에서 시애틀, 클리블랜드, 텍사스가 2번씩 피해자가 되었다. 공교롭게도 모두 추신수가 뛰었던 팀이다.
2021년 6월 24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원정 경기에서 시카고 컵스는 잭 데이비스가 6이닝 무실점으로 내려간 후 앤드류 셰이핀, 라이언 테페라, 그리고 크레이그 킴브럴이 각각 7, 8, 9회를 안타 없이 막아내며 합작 노히터를 달성하였다. [61]
2021년 8월 15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타일러 길버트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홈 경기에서 9이닝 5K 3사사구 무실점으로 2021시즌 7번째 노히터를 달성했다. 참고로 길버트는 올 시즌 처음으로 빅 리그에 콜업된 신인으로, 이날 등판이 빅 리그 커리어 네 번째 등판이자 데뷔 첫 선발 등판이었는데 무려 체이스 필드에서의 첫 노히터라는 기록도 남겼다.
2021년 9월 11일 밀워키 브루어스의 에이스 코빈 번스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원정 경기에서 8이닝을 노히터로 버틴 후 조시 헤이더가 간단하게 피안타 없이 세이브를 수확하며 시즌 9번째 노히터, 2번째 합작 노히터를 달성했다. 그리고 이 날의 선발 투수 잭 플리잭은 2021년 인디언스가 3번의 노히터를 당한 경기 모두 선발 투수로 출전한 이색적인 기록을 가지게 되었다.
2022년 4월 29일 뉴욕 메츠의 타일러 메길이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홈경기에서 5이닝을 무실점으로 버텼고 2번째 투수 드류 스미스는 4타자 연속 삼진을 잡았고 볼넷 1개를 기록하며 마운드를 내려갔고 3번째 투수 조엘리 로드리게스가 7회초 2사 1루 상황에서 등판하여 알렉 봄을 병살타로 잡으며 이닝을 마무리했다. 8회 1사 상황에 4번째 투수 세스 루고가 등판해서 필라델피아의 2타자를 모두 뜬공으로 처리했다. 9회초에 마무리 투수 에드윈 디아스가 등판해서 3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잡으며 합작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였다. 이 노히트 노런은 2022시즌 첫번째 노히트 노런이자 첫번째 합작 노히트 노런이다.
2022년 5월 10일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의 리드 데트머스가 탬파베이 레이스와의 홈경기에서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였다.
2022년 6월 25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크리스티안 하비에르는 뉴욕 양키스 원정경기에서 7이닝 무피안타 13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마운드를 내려갔고 8회말에 2번째 투수로 등판한 헥터 네리스는 실점할뻔한 위기를 맞이했으나 노히트로 위기상황을 이겨냈다. 3번째 투수이자 마무리 투수인 라이언 프레슬리가 9회말에 등판해서 1이닝 2탈삼진 무실점으로 이닝을 끝내버리면서 합작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였다.
2022년 11월 2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크리스티안 하비에르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월드시리즈 4차전 원정경기에서 6이닝 무피안타 1사사구 9탈삼진 무실점으로 필리스 타선을 틀어막으며 마운드를 내려왔다. 7회말에 2번째 투수로 등판한 브라이언 아브레우는 3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잡으며 이닝을 끝내버렸다. 8회말에 등판한 라파엘 몬테로는 1이닝 1탈삼진 무피안타를 기록했다. 9회말에 마무리 투수 라이언 프레슬리가 등판해서 1이닝 1사사구 1탈삼진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무리하면서 합작 노히터를 달성하였다. 이 노히트 노런은 2022시즌 4번째 노히트 노런이자 3번째 합작 노히트 노런이다.
2023년 6월 28일 뉴욕 양키스의 도밍고 헤르만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원정경기에서 9이닝 9탈삼진 무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하며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고 볼넷을 내주지 않으면서 퍼펙트 게임이 성립되었다.
2024년 7월 25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딜런 시즈가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원정경기에서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3.1. 노히터 패전
MLB 에서는 노히터 기준에 이닝만 존재하지 실점과 승패에 대한 조건이 없다. 그래서, 노히터 패전이 가능하며 실제로도 존재한다. 상대팀은 안타1개도 없이 승리한 것이므로 무안타 승리가 된다. 대표적으로 1964년 휴스턴의 켄 존슨은 신시내티를 상대로 1실점 노히터를 기록하고도 팀의 무득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자세한 건 무안타 승리 항목 참고.한국에서는 해당 상황을 노히트 노런에서 조금 비튼 노히트 예스런이라고 부른다.
3.2. 노히터 무승부
2015년 3월 9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시범경기에서 2-2 팀 노히터 무승부를 기록했다. 애틀랜타는 총 9명의 투수가 합작하여 팀 노히터를 만들어 냈다. MLB 는 원칙적으로 무승부를 인정하지 않지만, 이 경기는 시범경기였기에 10회 무승부로 경기가 종료되었다. 관련기사4. 일본프로야구의 노히트 노런
일본프로야구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무안타 무득점 경기라는 용어를 노히트 노런 표기와 함께 병용하면서 쓰고 있다. 2023년 시즌 종료 시점에서 16회의 퍼펙트 게임을 포함하여 88명의 투수에 의해 총 100회의 노히트 노런이 기록되었다.일본프로야구 공식사이트에 기재된 노히트노런 달성 기록
공인 노히트 노런뿐만 아니라 합작 노히트 노런, 포스트시즌 노히트 노런, 노히트 노런 도중 콜드게임으로 중단된 사례 등도 적어 놓고 있다.
4.1. 공인된 노히트 노런
4.1.1. 정규 시즌
정규시즌 공인 노히트 노런 | ||||||||||||
순서 | 선수 | 소속팀 | 달성일 | 상대팀 | 구장 | 스코어 | 투구수 | 타자 | 사사구 | 탈삼진 | 비고 | |
1 | 사와무라 에이지(1) | 토쿄 쿄진군 | 1936년 9월 25일 | 오사카 타이거스 | 한신 코시엔 구장 | 1:0 | 불명 | 31 | 4 | 7 | 역대 최초 노히트 노런 | |
2 | 사와무라 에이지(2) | 1937년 5월 1일 | 스사키 구장 | 4:0 | 불명 | 30 | 3 | 11 | 역대 최초 2번째 달성 2시즌 연속 노히트 노런 | |||
3 | 빅토르 스타루힌 | 1937년 7월 3일 | 코라쿠엔 이글스[A] | 4:0 | 불명 | 31 | 3 | 6 | 역대 최초 외국인 선수 노히트 노런 | |||
4 | 이시다 미츠히코(1) | 한큐군 | 1937년 7월 16일 | 토쿄 세네터스[63] | 6:0 | 불명 | 30 | 1 | 6 | |||
5 | 나카오 테루조(1) | 토쿄 쿄진군 | 1939년 11월 3일 | 토쿄 세네터스 | 코라쿠엔 구장 | 1:0 | 불명 | 35 | 10 | 6 | ||
6 | 카메다 타다시(1) | 코라쿠엔 이글스 | 1940년 3월 18일 | 라이온군 |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 5:0 | 불명 | 34 | 9 | 6 | [64] | |
7 | 아사노 카츠사부로 | 한큐군 | 1940년 4월 14일 | 오사카 타이거스 | 한신 코시엔 구장 | 9:0 | 불명 | 28 | 1 | 4 | 1볼넷 | |
8 | 사와무라 에이지(3) | 토쿄 쿄진군 | 1940년 7월 6일 | 나고야군 |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 4:0 | 불명 | 32 | 5 | 3 | 역대 최초 3번째 달성 | |
9 | 미와 하치로 | 오사카 타이거스 | 1940년 8월 3일 | 토쿄 쿄진군 | 다롄 만주철도 클럽 야구장 | 1:0 | 불명 | 33 | 4 | 4 | 둘밖에 없는 해외 구장에서의 달성 | |
10 | 이시다 미츠히코(2) | 한큐군 | 1940년 8월 22일 | 라이온군 | 9:0 | 불명 | 32 | 4 | 6 | |||
11 | 카메다 타다시(2) | 쿠로와시군[A] | 1941년 4월 14일 | 한신군 | 코라쿠엔 구장 | 1:0 | 117 | 33 | 6 | 2 | 역대 2번째 2시즌 연속 노히트 노런 | |
12 | 나카오 테루조(2) | 토쿄 쿄진군 | 1941년 7월 16일 | 나고야군 | 코라쿠엔 구장 | 3:0 | 144 | 33 | 8 | 5 | ||
13 | 모리 코타로 | 한큐군 | 1941년 10월 27일 | 나고야군 |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 2:0 | 불명 | 32 | 5 | 3 | ||
14 | 니시자와 미치오 | 나고야군 | 1942년 7월 18일 | 한큐군 | 코라쿠엔 구장 | 2:0 | 112 | 28 | 3 | 2 | ||
15 | 텐포 요시오 | 한큐군 | 1943년 5월 2일 | 난카이군 | 코라쿠엔 구장 | 3:0 | 103 | 32 | 6 | 5 | ||
16 | 후지모토 히데오(1) | 토쿄 쿄진군 | 1943년 5월 22일 | 나고야군 | 코라쿠엔 구장 | 3:0 | 114 | 30 | 4 | 4 | ||
17 | 벳쇼 아키라 | 난카이군 | 1943년 5월 26일 | 야마토군[A] | 코베 시민운동공원 야구장 | 2:0 | 104 | 28 | 2 | 7 | ||
18 | 이시마루 신이치 | 나고야군 | 1943년 10월 12일 | 야마토군[A] | 코라쿠엔 구장 | 5:0 | 95 | 29 | 1 | 5 | ||
19 | 고 쇼세이 | 오사카 타이거스 | 1946년 6월 16일 | 세네터스 |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 11:0 | 122 | 30 | 5 | 5 | ||
20 | 카지오카 타다요시 | 오사카 타이거스 | 1948년 8월 24일 | 난카이 호크스 | 메이지진구 야구장 | 3:0 | 95 | 29 | 2 | 2 | ||
21 | 사나다 쥬조(1) | 다이요 로빈스 | 1948년 9월 6일 | 오사카 타이거스 | 한신 코시엔 구장 | 3:0 | 98 | 28 | 0 | 5 | 무사사구 1실책 단일리그 마지막 노히트 노런 | |
22☆ | 1 | 후지모토 히데오(2) | 요미우리 자이언츠 | 1950년 6월 28일 | 니시닛폰 파이레츠 | 아오모리 시영 야구장 | 4:0 | 92 | 27 | 0 | 7 | 역대 최초 퍼펙트 게임 양대리그 및 센트럴리그 역대 최초 노히트 노런 |
23 | 2 | 카네다 마사이치(1) | 코쿠테츠 스왈로즈 | 1951년 9월 5일 | 오사카 타이거스 | 오사카 구장 | 1:0 | 121 | 32 | 5 | 4 | 역대 최연소 노히트 노런(18세 1개월) 역대 최초 끝내기 승리로 달성한 노히트 노런 |
24 | 1 | 하야시 기이치 | 다이에이 스타즈 | 1952년 4월 27일 | 한큐 브레이브스 | 타카사키시 죠난 야구장 | 4:0 | 87 | 28 | 1 | 2 | 퍼시픽리그 역대 최초 노히트 노런 1볼넷 |
25 | 3 | 사나다 시게오(2)[68] | 오사카 타이거스 | 1952년 5월 7일 | 히로시마 카프 | 한신 코시엔 구장 | 12:0 | 94 | 28 | 1 | 4 | 1볼넷 |
26 | 4 | 오토모 타쿠미 | 요미우리 자이언츠 | 1952년 7월 26일 | 쇼치쿠 로빈스 | 오사카 구장 | 17:0 | 100 | 28 | 1 | 13 | 역대 최다 점수차(17점) 1볼넷 |
27 | 2 | 야마시타 노보루 | 킨테츠 펄스 | 1954년 8월 7일 | 타카하시 유니온즈 | 주니치 구장 | 4:0 | 119 | 30 | 1 | 8 | |
28 | 5 | 스기시타 시게루 | 주니치 드래곤즈 | 1955년 5월 10일 | 코쿠테츠 스왈로즈 | 카와사키 구장 | 1:0 | 98 | 28 | 1 | 13 | 1볼넷 |
29 | 3 | 오츠 시게루 | 니시테츠 라이온즈 | 1955년 6월 4일 | 킨테츠 펄스 | 헤이와다이 야구장 | 8:0 | 111 | 30 | 4 | 8 | |
30☆ | 4 | 타케치 후미오 | 킨테츠 펄스 | 1955년 6월 19일 | 다이에이 스타즈 | 오사카 구장 | 1:0 | 89 | 27 | 0 | 6 | 역대 2번째 퍼펙트 게임 |
31 | 6 | 오와키 테루오 | 코쿠테츠 스왈로즈 | 1956년 5월 3일 | 주니치 드래곤즈 | 주니치 구장 | 5:0 | 80 | 30 | 2 | 0 | 현재까지 유일한 무탈삼진 노히트 노런 |
32☆ | 7 | 미야지 요시토모 | 코쿠테츠 스왈로즈 | 1956년 9월 19일 | 히로시마 카프 | 이시카와현영 켄로쿠엔 야구장 | 5:0 | 79 | 27 | 0 | 3 | 역대 3번째 퍼펙트 게임 역대 최소 투구수(79구) 노히트 노런 |
33☆ | 8 | 카네다 마사이치(2) | 코쿠테츠 스왈로즈 | 1957년 8월 21일 | 주니치 드래곤즈 | 주니치 구장 | 1:0 | 88 | 27 | 0 | 10 | 역대 4번째 및 유일한 좌완투수 퍼펙트 게임 |
34 | 9 | 오야네 히로오미 | 주니치 드래곤즈 | 1957년 10월 12일 | 오사카 타이거스 | 한신 코시엔 구장 | 3:0 | 97 | 29 | 3 | 2 | |
35☆ | 5 | 니시무라 사다아키 | 니시테츠 라이온즈 | 1958년 7월 19일 | 토에이 플라이어즈 | 코마자와 야구장 | 1:0 | 101 | 27 | 0 | 6 | 역대 5번째 퍼펙트 게임 |
36☆ | 10 | 시마다 겐타로 | 타이요 훼일즈 | 1960년 8월 11일 | 오사카 타이거스 | 카와사키 구장 | 1:0 | 108 | 27 | 0 | 3 | 역대 6번째 퍼펙트 게임 |
37☆ | 11 | 모리타키 요시미 | 코쿠테츠 스왈로즈 | 1961년 6월 20일 | 주니치 드래곤즈 | 코라쿠엔 구장 | 1:0 | 113 | 27 | 0 | 4 | 역대 7번째 퍼펙트 게임 |
38 | 6 | 이노우에 요시오 | 니시테츠 라이온즈 | 1964년 5월 16일 | 한큐 브레이브스 | 헤이와다이 야구장 | 2:0 | 101 | 28 | 1 | 1 | |
39 | 12 | 나카야마 요시로 | 주니치 드래곤즈 | 1964년 8월 18일 | 요미우리 자이언츠 | 주니치 구장 | 3:0 | 120 | 29 | 2 | 4 | |
40 | 13 | 진 바키 | 한신 타이거스 | 1965년 6월 28일 | 요미우리 자이언츠 | 한신 코시엔 구장 | 3:0 | 118 | 29 | 2 | 3 | |
41 | 14 | 소토코바 요시로(1)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1965년 10월 2일 | 한신 타이거스 | 한신 코시엔 구장 | 2:0 | 96 | 28 | 1 | 3 | 역대 최초 노히트 노런으로 달성한 프로 첫 승리투수 기록 1볼넷 |
42☆ | 15 | 사사키 키치로 | 타이요 훼일즈 | 1966년 5월 1일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히로시마 시민 구장 | 1:0 | 102 | 27 | 0 | 7 | 역대 8번째 퍼펙트 게임[69] |
43☆ | 7 | 타나카 츠토무[70] | 니시테츠 라이온즈 | 1966년 5월 12일 | 난카이 호크스 | 오사카 구장 | 2:0 | 117 | 27 | 0 | 7 | 역대 9번째 퍼펙트 게임 |
44 | 8 | 세이 토시히코 | 니시테츠 라이온즈 | 1966년 6월 12일 | 킨테츠 버팔로즈 | 코쿠라 구장 | 8:0 | 123 | 28 | 3 | 6 | |
45 | 9 | 와코 타다오 | 니시테츠 라이온즈 | 1967년 9월 17일 | 한큐 브레이브스 |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 4:0 | 117 | 31 | 4 | 4 | |
46 | 16 | 호리우치 츠네오 | 요미우리 자이언츠 | 1967년 10월 10일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코라쿠엔 구장 | 11:0 | 117 | 31 | 4 | 3 | 호리우치의 3타석 연속 홈런[71] |
47 | 17 | 죠노우치 쿠니오 | 요미우리 자이언츠 | 1968년 5월 16일 | 타이요 훼일즈 | 코라쿠엔 구장 | 16:0 | 116 | 28 | 2 | 5 | |
48 | 10 | 스즈키 케이시(1) | 킨테츠 버팔로즈 | 1968년 8월 8일 | 토에이 플라이어즈 | 일본생명 구장 | 4:0 | 111 | 29 | 2 | 11 | |
49☆ | 18 | 소토코바 요시로(2)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1968년 9월 14일 | 타이요 훼일즈 | 히로시마 시민 구장 | 2:0 | 114 | 27 | 0 | 16 | 역대 10번째 퍼펙트 게임 센트럴리그 1경기 역대 최다 탈삼진(16개) |
50 | 11 | 나리타 후미오 | 롯데 오리온즈 | 1969년 8월 16일 | 한큐 브레이브스 |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 | 1:0 | 129 | 30 | 3 | 10 | |
51 | 19 | 와타나베 히데타케 | 요미우리 자이언츠 | 1970년 5월 18일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코라쿠엔 구장 | 2:0 | 125 | 28 | 2 | 6 | |
52 | 20 | 키토 히로시 | 타이요 훼일즈 | 1970년 6월 9일 | 야쿠르트 아톰즈 | 카와사키 구장 | 1:0 | 113 | 30 | 3 | 8 | |
53☆ | 12 | 사사키 코이치로 | 킨테츠 버팔로즈 | 1970년 10월 6일 | 난카이 호크스 | 오사카 구장 | 3:0 | 99 | 27 | 0 | 4 | 역대 11번째 퍼펙트 게임 |
54 | 21 | 후지모토 카즈히로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1971년 8월 19일 | 주니치 드래곤즈 | 히로시마 시민 구장 | 6:0 | 106 | 27 | 2 | 9 | 27타자 무잔루 |
55☆ | 13 | 타카하시 요시마사 | 토에이 플라이어즈 | 1971년 8월 21일 | 니시테츠 라이온즈 | 코라쿠엔 구장 | 4:0 | 86 | 27 | 0 | 1 | 역대 12번째 퍼펙트 게임 |
56 | 14 | 스즈키 케이시(2) | 킨테츠 버팔로즈 | 1971년 9월 9일 | 니시테츠 라이온즈 | 일본생명 구장 | 4:0 | 118 | 29 | 4 | 12 | |
57 | 22 | 소토코바 요시로(3)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1972년 4월 29일 | 요미우리 자이언츠 | 히로시마 시민 구장 | 3:0 | 93 | 28 | 1 | 2 | 둘밖에 없는 노히트 노런 3회 달성 |
58 | 15 | 타카하시 나오키 | 닛타쿠홈 플라이어즈 | 1973년 6월 16일 | 킨테츠 버팔로즈 | 코라쿠엔 구장 | 1:0 | 100 | 27 | 1 | 5 | 27타자 무잔루 1볼넷 |
59 | 23 | 에나츠 유타카 | 한신 타이거스 | 1973년 8월 30일 | 주니치 드래곤즈 | 한신 코시엔 구장 | 1:0 | 142 | 34 | 2 | 7 | 에나츠 자신의 끝내기 홈런으로 노히트 노런 달성 역대 유일한 연장전에서의 노히트 노런 달성 |
60☆ | 16 | 야기사와 소로쿠 | 롯데 오리온즈 | 1973년 10월 10일 | 타이헤이요 클럽 라이온즈 | 미야기 구장 | 1:0 | 94 | 27 | 0 | 6 | 역대 13번째 퍼펙트 게임 |
61 | 17 | 칸베 토시오 | 킨테츠 버팔로즈 | 1975년 4월 20일 | 난카이 호크스 | 후지이데라 구장 | 1:0 | 104 | 30 | 4 | 1 | 지명타자제 도입 후 역대 최초 노히트 노런 |
62 | 24 | 카토 하지메 | 요미우리 자이언츠 | 1976년 4월 18일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히로시마 시민 구장 | 5:0 | 117 | 29 | 2 | 8 | |
63 | 18 | 토다 요시노리 | 한큐 브레이브스 | 1976년 5월 11일 | 난카이 호크스 | 오사카 구장 | 1:0 | 114 | 31 | 3 | 5 | |
64☆ | 19 | 이마이 유타로 | 한큐 브레이브스 | 1978년 8월 31일 | 롯데 오리온즈 | 미야기 구장 | 5:0 | 100 | 27 | 0 | 3 | 역대 14번째 및 쇼와 시대 최후의 퍼펙트 게임 |
65 | 20 | 궈타이위안 | 세이부 라이온즈 | 1985년 6월 4일 | 닛폰햄 파이터즈 | 헤이와다이 야구장 | 7:0 | 103 | 30 | 2 | 4 | 역대 최초 인조잔디 구장[72]에서 달성한 노히트 노런 |
66 | 21 | 타나카 유키오[73] | 닛폰햄 파이터즈 | 1985년 6월 9일 | 킨테츠 버팔로즈 | 헤이와다이 야구장 | 12:0 | 134 | 32 | 6 | 11 | |
67 | 25 | 콘도 신이치 | 주니치 드래곤즈 | 1987년 8월 9일 | 요미우리 자이언츠 | 나고야 구장 | 6:0 | 116 | 30 | 2 | 13 | 역사상 유일한 프로 데뷔전 노히트 노런 노히트 노런으로 달성한 프로 첫 승리투수 쇼와 시대 최후의 노히트 노런 |
68 | 22 | 시바타 야스미츠 | 닛폰햄 파이터즈 | 1990년 4월 25일 | 킨테츠 버팔로즈 | 도쿄 돔 | 3:0 | 94 | 27 | 1 | 8 | 헤이세이 시대 및 돔구장 최초의 노히트 노런 27타자 무잔루 |
69 | 26 | 유후네 토시로 | 한신 타이거스 | 1992년 6월 14일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한신 코시엔 구장 | 6:0 | 123 | 39 | 2 | 11 | |
70☆ | 27 | 마키하라 히로미 | 요미우리 자이언츠 | 1994년 5월 18일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후쿠오카 돔 | 6:0 | 102 | 27 | 0 | 7 | 역대 15번째 및 헤이세이 시대 유일+20세기 최후의 퍼펙트 게임 |
71 | 23 | 니시자키 유키히로 | 닛폰햄 파이터즈 | 1995년 7월 5일 | 세이부 라이온즈 | 도쿄 돔 | 1:0 | 119 | 28 | 1 | 12 | |
72 | 24 | 사토 요시노리 | 오릭스 블루웨이브 | 1995년 8월 26일 | 킨테츠 버팔로즈 | 후지이데라 구장 | 7:0 | 132 | 31 | 5 | 7 | 역대 최초 40대 투수의 노히트 노런 |
73 | 28 | 테리 브로스 | 야쿠르트 스왈로즈 | 1995년 9월 9일 | 요미우리 자이언츠 | 도쿄 돔 | 1:0 | 119 | 28 | 1 | 12 | 1데드볼 |
74 | 25 | 와타나베 히사노부 | 세이부 라이온즈 | 1996년 6월 11일 | 오릭스 블루웨이브 | 세이부 라이온즈 구장 | 9:0 | 114 | 29 | 5 | 3 | |
75 | 29 | 노구치 시게키 | 주니치 드래곤즈 | 1996년 8월 11일 | 요미우리 자이언츠 | 도쿄 돔 | 5:0 | 133 | 33 | 6 | 7 | |
76 | 30 | 이시이 카즈히사 | 야쿠르트 스왈로즈 | 1997년 9월 2일 |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 요코하마 스타디움 | 3:0 | 121 | 29 | 4 | 9 | |
77 | 31 | 카와지리 테츠로 | 한신 타이거스 | 1998년 5월 26일 | 주니치 드래곤즈 | 머스캣 스타디움 | 2:0 | 110 | 29 | 2 | 1 | 현재까지 지방구장에서 달성된 마지막 노히트 노런 |
78 | 32 | 사사오카 신지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1999년 5월 8일 | 주니치 드래곤즈 | 히로시마 시민 구장 | 4:0 | 103 | 28 | 1 | 6 | |
79 | 33 | 멜빈 번치 | 주니치 드래곤즈 | 2000년 4월 7일 |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 요코하마 스타디움 | 8:0 | 109 | 30 | 5 | 7 | |
80 | 26 | 나르시소 엘비라 |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 | 2000년 6월 20일 | 세이부 라이온즈 | 교세라 돔 오사카 | 4:0 | 130 | 29 | 3 | 9 | 20세기 최후의 노히트 노런 |
81 | 34 | 카와카미 켄신 | 주니치 드래곤즈 | 2002년 8월 1일 | 요미우리 자이언츠 | 도쿄 돔 | 6:0 | 102 | 28 | 1 | 5 | 21세기 최초의 노히트 노런 1볼넷 준 퍼펙트 게임 |
82 | 35 | 이가와 케이 | 한신 타이거스 | 2004년 10월 4일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히로시마 시민 구장 | 1:0 | 118 | 30 | 2 | 8 | |
83 | 36 | 릭 구톰슨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 2006년 5월 25일 | 토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 메이지진구 야구장 | 6:0 | 139 | 29 | 1 | 9 | 역대 최초 교류전 노히트 노런 |
84 | 37 | 야마모토 마사 | 주니치 드래곤즈 | 2006년 9월 16일 | 한신 타이거스 | 나고야 돔 | 6:0 | 97 | 28 | 0 | 5 | 역대 최고령(41세 1개월) 노히트 노런 무사사구 1실책 |
85 | 38 | 마에다 켄타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2012년 4월 6일 |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 요코하마 스타디움 | 2:0 | 122 | 29 | 2 | 6 | |
86 | 39 | 스기우치 토시야 | 요미우리 자이언츠 | 2012년 5월 30일 | 토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 도쿄 돔 | 2:0 | 108 | 28 | 1 | 14 | 1볼넷 9회 2아웃까지 퍼펙트 기록 |
87 | 27 | 니시 유키 | 오릭스 버팔로즈 | 2012년 10월 8일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후쿠오카 야후오쿠! 돔 | 3:0 | 109 | 28 | 1 | 9 | 헤이세이 출생 투수 최초의 노히트 노런 1볼넷 코쿠보 히로키의 은퇴시합 |
88 | 40 | 야마이 다이스케 | 주니치 드래곤즈 | 2013년 6월 28일 |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 요코하마 스타디움 | 9:0 | 115 | 29 | 4 | 3 | |
89 | 28 | 키시 타카유키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 2014년 5월 2일 | 치바 롯데 마린즈 | QVC 마린 필드 | 2:0 | 117 | 28 | 1 | 8 | 볼넷 |
90 | 41 | 야마구치 슌 | 요미우리 자이언츠 | 2018년 7월 27일 | 주니치 드래곤즈 | 도쿄 돔 | 5:0 | 103 | 28 | 1 | 5 | 헤이세이 시대 최후의 노히트 노런 1볼넷 |
91 | 29 | 센가 코다이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2019년 9월 6일 | 치바 롯데 마린즈 | 후쿠오카 야후오쿠! 돔 | 2:0 | 133 | 31 | 4 | 12 | 레이와 시대 최초의 노히트 노런 역대 최초 육성선수 출신 선수의 노히트 노런 전 이닝 탈삼진 기록 |
92 | 42 | 오노 유다이 | 주니치 드래곤즈 | 2019년 9월 14일 | 한신 타이거스 | 나고야 돔 | 3:0 | 126 | 29 | 1 | 9 | |
93 | 43 | 오가와 야스히로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 2020년 8월 15일 |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 요코하마 스타디움 | 9:0 | 135 | 32 | 3 | 10 | |
94☆ | 30 | 사사키 로키 | 치바 롯데 마린즈 | 2022년 4월 10일 | 오릭스 버팔로즈 | ZOZO 마린 스타디움 | 6:0 | 105 | 27 | 0 | 19 | 역대 16번째 및 레이와 시대 최초의 퍼펙트 게임 역대 최연소 퍼펙트게임(20세 5개월) 퍼시픽리그 및 일본프로야구 1경기 역대 최다 탈삼진(19개) 전 이닝 탈삼진 기록 |
95 | 31 | 히가시하마 나오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2022년 5월 11일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 후쿠오카 PayPay 돔 | 2:0 | 97 | 27 | 2 | 6 | |
96 | 44 | 이마나가 쇼타 |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 2022년 6월 7일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 삿포로 돔 | 2:0 | 117 | 28 | 1 | 9 | 1볼넷 삿포로 돔 최초의 노히트 노런 |
97 | 32 | 야마모토 요시노부(1) | 오릭스 버팔로즈 | 2022년 6월 18일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74] | 베루나 돔 | 2:0 | 102 | 28 | 1 | 9 | 1볼넷 |
98 | 33 | 코디 폰스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 2022년 8월 27일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삿포로 돔 | 2:0 | 113 | 28 | 2 | 6 | 삿포로 돔 마지막 노히트 노런 |
99 | 34 | 이시카와 슈타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2023년 8월 18일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 후쿠오카 PayPay 돔 | 8:0 | 127 | 31 | 4 | 8 | 육성선수 출신으로는 두 번째 |
100 | 35 | 야마모토 요시노부(2) | 오릭스 버팔로즈 | 2023년 9월 9일 | 치바 롯데 마린즈 | ZOZO 마린 스타디움 | 4:0 | 102 | 29 | 2 | 8 | 1볼넷 1사구 역대 3번째 2시즌 연속 노히트 노런[75] 양대리그 및 퍼시픽리그 역대 최초 2시즌 연속 노히트 노런 |
101 | 45 | 토고 쇼세이 | 요미우리 자이언츠 | 2024년 5월 24일 | 한신 타이거스 | 한신 고시엔 구장 | 1:0 | 123 | 29 | 1 | 5 | 1볼넷 |
102 | 46 | 오세라 다이치 | 히로시마 도요 카프 | 2024년 6월 7일 | 치바 롯데 마린즈 | 마쓰다 줌줌 스타디움 히로시마 | 4:0 | 129 | 31 | 5 | 2 |
4.1.2. 포스트 시즌
현재까지 포스트시즌에서 노히트 노런이 나온 사례는 2018년의 스가노 토모유키가 유일하다.포스트시즌 공인 노히트 노런 | ||||||||||||
순서 | 선수 | 소속팀 | 달성일 | 상대팀 | 구장 | 스코어 | 투구수 | 상대 타자수 | 사사구 | 탈삼진 | 비고 | |
1 | 1 | 스가노 토모유키 | 요미우리 자이언츠 | 2018년 10월 14일 (CS 퍼스트 2차전)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 메이지진구 야구장 | 4:0 | 113 | 28 | 1 | 7 | 포스트시즌 역대 최초 노히트노런 |
4.2. 비공인 노히트 노런
- 합작 노히트 노런 (노히터)
이름 | 소속팀 | 일자 | 상대팀 | 결과 | 기록 | 비고 |
나카가와 미요시(5.1이닝) 이시하라 시게조(3.2이닝) | 구로와시군 | 1941년 6월 22일 | 나고야군 | 2:0 | 8탈삼진, 5사사구 | |
에다 다카시(7.2이닝) 모리 고타로(1.1이닝) | 한큐군 | 1941년 8월 2일 | 2:0 | 4탈삼진, 5사사구 | ||
야기 도모야(10이닝) 다케다 히사시(1이닝) 마이클 나카무라(1이닝)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 2006년 4월 15일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1:0 | 8탈삼진, 6사사구 | 연장 12회 |
야마이 다이스케(8이닝) 이와세 히토키(1이닝) | 주니치 드래곤즈 | 2007년 11월 1일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 1:0 | 7탈삼진, 0사사구 | 2007년 일본시리즈 5차전 미국식 퍼펙트 게임 |
야마구치 슌(6이닝) 스콧 매티슨(2이닝) 아르키메데스 카미네로(1이닝) | 요미우리 자이언츠 | 2017년 6월 14일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3:0 | 12탈삼진, 6사사구 |
- 올스타전 노히터
이름 | 소속팀 | 일자 | 상대팀 | 결과 | 기록 | 비고 |
에나쓰 유타카(3이닝) 와타나베 히데타케(2이닝) 다카하시 가즈미(1이닝) 미즈타니 히사노부(0.1이닝) 고타니 다다카쓰(2.2이닝) | 센트럴 리그 | 1971년 7월 17일 올스타전 1차전 | 퍼시픽 리그 | 5:0 | 16탈삼진, 1사사구 | 에나쓰 9타자 연속 탈삼진 에나쓰 3점 홈런 |
- 포스트시즌 노히터 완투완봉
위에 하나도 해당 안 되지만 포스트시즌이라 비공인 처리된 기록이다.
이름 | 소속팀 | 일자 | 상대팀 | 결과 | 기록 | 비고 |
스가노 도모유키 | 요미우리 자이언츠 | 2018년 10월 14일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2차전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 4:0 | 7탈삼진, 1사사구 |
- 선발투수가 9이닝까지 노히트 노런을 했으나 연장에서 무산된 경우
특히 니시구치 후미야의 퍼펙트 게임 실패는 당시 일본 전역에서 엄청난 화제가 되었고, 당연히 다음날 스포츠 신문 헤드라인은 온통 니시구치 소식으로 장식되었다. 게다가 니시구치는 이 이전에도 9회 2사까지 1사사구 노히트 노런을 이어가다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못 잡고 아깝게 안타를 맞아 노히트 노런이 깨진 기억이 무려 두 번(2002년 8월 26일, 2005년 5월 13일)이나 있었다. 본인에게도 한으로 남았는지 은퇴 인터뷰에서도 끝내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직접 언급했다. 장장 10년이 넘게 지난 2017년에 LA 다저스의 리치 힐이 아깝게 퍼펙트 게임을 놓친 소식이 일본에 전해졌을 때도 당시를 기억하는 수많은 세이부빠들이 눈시울을 적셨다 카더라.
이름 | 소속팀 | 일자 | 상대팀 | 결과 | 기록 | 비고 |
와타나베 히사노부(11이닝) 가토리 요시타카(1이닝) | 세이부 라이온즈 | 1990년 5월 9일 | 닛폰햄 파이터스 | 2:0 | 8탈삼진, 7사사구 3피안타 | 10이닝 노히트 노런 11회 1사 상황(투구수 160구)에서 무산. |
니시구치 후미야(10이닝) | 2005년 8월 27일 |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 1:0 | 10탈삼진, 1사사구 1피안타 | 9이닝 퍼펙트 10회 무사 상황에서 무산. | |
가네코 치히로(9이닝) 히라노 요시히사(1이닝) 사토 다쓰야(1이닝) 마하라 다카히로(1이닝) | 오릭스 버팔로즈 | 2014년 5월 31일 | 요미우리 자이언츠 | 0:1 | 15탈삼진, 5사사구 3피안타(1피홈런) | 10이닝 합작 노히트 노런 11회 1사 상황에서 무산. |
- 점수를 허용한 노히터 경기
5. 대만프로야구의 노히트 노런
2023년까지를 기준으로 통산 12번의 노히트 노런이 있었다. 그 중 1번은 2015년 대만시리즈 7차전에서 라미고 몽키스의 팻 미쉬가 기록한 것인데 정규시즌 내에 기록한 것이 아니라서 정식으로 인정되는 것은 11번이다. 2023년 5월 현재를 기준으로 가장 최근의 노히트노런은 2023년 5월 19일중신 브라더스 대 퉁이 라이온즈 전에서 중신 브라더스 투수 4명이 기록한 합작 노히트이다.이 12번의 노히트 노런에는 퉁이 라이온즈의 라이언 버두고가 중신 브라더스를 상대로 기록한 퍼펙트 게임도 포함된다. 여담으로 롯데 자이언츠에서 뛰었던 닉 애디튼도 2018시즌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바 있다.6. 아마추어 야구
2003년 4월 9일 한국 대학야구 춘계리그 성균관대 VS 연세대 경기에서 성균관대 선발 강관식이 9이닝 0피안타 3사사구 9K로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강관식은 대학진학 전 롯데 자이언츠에 지명되어 성균관대 졸업 후 입단 예정이었으나 3학년때 어깨 관절와순 수술[77]로 롯데가 지명을 포기했고, 본인도 프로행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였다. 즉 마지막 불꽃이었던 셈. 결국 성균관대 졸업 후 두산 베어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하여 프로무대를 밟았으며, 2005년 4월 잠실시리즈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1군 경기에 등판, 이성열에게 2루타를 허용하고 이재우와 교체 강판된 후 은퇴했다.리틀야구(13세 이하) 한국대표팀의 '유윤재' 선수가 2017년 7월 7일 아시아-퍼시픽 중동 지역예선 결승에서 일본을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다. 리틀야구이기에 7이닝 노히트노런. 6회에 1개의 볼넷이 없었다면 퍼펙트 게임이 되었을 만큼 완벽에 가까운 투구였다. 관련기사
7. 노히터, 노히트 노런 관련 기록
7.1. MLB
- 최다 노히터 - 놀란 라이언 (7회)
- 최다 투구수 노히터 - 에드윈 잭슨 (149구)
- 최소 투구수 노히터 - 애디 조스(퍼펙트 게임) (74구)
- 최고령 노히터 - 놀란 라이언 (44세 90일)
- 최연소 노히터 - 아모스 루시 (20세 62일)
- 최다 탈삼진 노히터 - 놀란 라이언, 맥스 슈어저 (17개)
- 무탈삼진 노히터 - 얼 해밀턴, 새드 샘 존스, 켄 홀츠먼
- 최다 이닝 노히터 - 조지 윌스, 프레드 토니, 짐 말로니 (10이닝)
- 개막전 노히터 - 밥 펠러
- 포스트 시즌 노히터 - 돈 라슨(퍼펙트 게임), 로이 할러데이
- 2경기 연속 노히터 - 조니 밴더미어
8. 관련 이야깃거리
- 스티브 달코스키[78]라는 마이너리그 투수가 있었는데, 18개의 볼넷을 주고 노히터를 기록했다. 어떤 의미로는 퍼펙트 게임보다 진기한 기록일지도 모른다. 볼넷을 18개 허용해서 눈덩이처럼 불어난 투구수로 무피안타 완투했다는 얘기다. 이 경기에서 달코스키는 18개의 삼진을 기록했으니 투구수는 최소 129개 이상이라는 이야기. 이 129라는 숫자는 모든 삼진이 삼구삼진(54개), 모든 볼넷이 스트레이트 볼넷(72개), 남는 9개의 아웃카운트는 초구 삼중살 3번으로 처리했을 경우에나 가능한 투구수니까 실제로는 200구를 넘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이때 그 노히트 게임은 고교야구 경기였기 때문에 투수가 없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혼자 던지다보니 나온 것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이 선수는 마이너리그 선수생활을 하면서는 7이닝 20K-18BB가 평균이었다고 한다.
- 2013년 9월 29일 말린스 파크에서 열린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 마이애미 말린스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선 마이애미의 투수 엔더슨 알바레스(Henderson Alvarez)가 조금 특별한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9회초까지 알바레스가 1볼넷 1사사구에 5회 유격수 실책으로 출루시킬 뿐 노히터를 이어나가고 있었는데, 팀 타선도 8회말까지 점수를 내지 못해서 스코어 0-0. 잘못하다간 1995년 페드로 마르티네즈[79]처럼 연장에서 기록이 깨지는 일이 벌어질 수 있었지만, 9회말 2사 만루에서 상대 투수 루크 풋코넨의 폭투로 3루 주자가 홈에 들어오면서 끝내기 승리를 거뒀다. 당시 알바레스는 다음 타순을 준비하려고 대기 타석에 있었는데[80] 경기가 끝나고 그자리에서 팀 동료들의 축하를 받았다.
- 1999년에 발간된 한국야구사에 따르면 한국야구사 최초의 노히트 노런은 1935년 6월 22일 연전구장에서 휘문고보의 투수 송재경이 배재고를 상대로 기록한 것이 최초라고 기록되어 있다. 13:0이라는 스코어가 말해주듯 7회 콜드게임이 선언되었지만, 7이닝 5사사구 1실책으로 6명의 주자를 내보냈고 그중 5개의 도루를 허용했으나 단 한 개의 안타도 내주지 않고 경기를 끝냈다고 한다.
- 일본프로야구의 2군 첫 노히트노런 기록은 퍼펙트 게임이다. 그러나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투수 야마자키 마사유키는 이후 타자로 전향하여 그리 특출나지 않은 성적을 거두다 트레이드되어 프로 입단 6년만에 조기 은퇴했다.
- 애니메이션 메이저의 3기 21화에서는 '노히트 노런'관련 오류가 하나 나오는데, 시게노 고로가 안타를 맞고 "노히트 노런이 깨졌잖아!" 라며 좌절한다. 그런데 그 상황은 1회말에 볼넷과 실책으로 이미 실점을 준 상황이었다. 메이저 제작진은 이 외에 보크 상황을 그려놓는[81] 등의 오류를 저질렀다.
- 예능 프로그램 대탈출 시즌 2 마지막 에피소드 살인감옥 편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가 노히트 노런인데, 응원하는 팀이 노히트 노런으로 깨진 날을 기념했다는 오류가 있다. 또 ENA PLAY에서 2023년 8월 6일 해당 에피소드를 재방송 했는데, 우연히 그 날 KBO에서 비공인 기록인 팀 노히트 노런이 나왔다.[82]
- 이렇게 힘들고 운도 따라줘야 하는 노히트 노런이지만, 세계 야구사에 딱 한 명 노히트 노런을 2경기 연속으로 해낸 투수가 있다. 신시내티 레즈의 데뷔 2년차 투수였던 조니 밴더미어는 1938년 6월 11일 보스턴 비즈와의 경기에서 노히터를 거둔 후 바로 다음 경기인 6월 15일 브루클린 다저스와의 경기에서 또 한번 노히터를 기록했다. 당연히 그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기록이며, 후에 유월 블랙웰이 노히트 노런을 거둔 다음 경기에서 9회 1사까지 노히트를 이어가다 안타를 맞은 것이 가장 가까운 기록이다. 그 외 연속 노히트 도전을 보면 놀란 라이언이 노히트 노런을 거두고 바로 다음 경기에서 8회까지 노히트를 이어간 적이 있지만 실패했으며 일본프로야구에서는 사사키 로키가 퍼펙트 게임을 거두고 다음 경기에서 8회까지 퍼펙트를 이어갔지만 팀타선도 점수를 내지못해 리드를 잡지못했고, 투구수도 많아 관리차원에서 교체되었다.
- 한국시각 2018년 7월 30일 월요일 LA 다저스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경기에서 선발투수 션 뉴컴이 8.2이닝동안 134구를 던지며 야시엘 푸이그에게 볼넷 1개만 내주며 노히터에 근접했으나 후속타자 크리스 테일러에게 3루쪽 안타를 맞고 노히터가 깨지고 강판당했다. 이 노히트에 성공했다면 선트러스트 파크 개장 이후 최초의 노히터가 될 수 있었는데, 아웃카운트 1개만 남겨놓고 기록이 깨진 것이 무척 아쉬운 부분. 심지어 후속투수가 분식회계를 하는 바람에 1실점까지 뒤집어썼다. 그래도 승리 투수가 되는 데에는 성공.[83]
- 2022년 5월 10일 KIA 타이거즈와 kt wiz의 경기에서는 매우 특이한 기록이 달성되었는데, KIA의 선발 투수 임기영이 1회초 연속 안타를 맞았으나 이후부터 7이닝 동안 단 한 명의 주자도 내보내지 않고, 이어 마운드에 올라온 장현식과 정해영도 각각 삼자범퇴로 이닝을 끝내 KBO 최초로 정규 이닝 경기에서 27타자 연속 아웃 기록을 만들어냈다. 1회 초의 2개의 안타가 없었다면 최초의 팀 합작 퍼펙트 게임 기록을 쓸 수도 있었다. 참고로 연장까지 포함한다면 KBO 최고 기록은 2022년 4월 2일 SSG 랜더스의 10이닝 29타자로, 이 경기는 볼넷 1개만을 허용해 팀 합작 노히트 노런으로 기록되었다.
- 어쩌면 다시는 나오지 않을 노히터 관련 기록으로는 1970년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덕 엘리스가 LSD를 투약하고 노히터를 기록, 그리고 본인의 노히터 달성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당대 가장 논란을 불어일으키던 문제아기도 했지만, 어느 팀 소속인지 생각해보면 묘하다.
- 완투가 리그를 막론하고 점점 사라져감에 따라 2020년대에 들어서는 노히터 중인 투수일지라도 투구수가 많으면 강판당하는 일이 드물지 않게 벌어지며 이에 따라 합작 노히터가 늘고 있다. MLB의 경우 2000년대만 해도 노히터 중 합작 노히터는 총 20회 중 1회 뿐이었으나, 2020년에서 2022년까지 노히터 중 합작 노히터는 총 14회 중 4회나 된다. 2022년에는 최초의 합작 포스트시즌 노히터도 나왔다. KBO의 경우 2022년 이전까지 1회 뿐이었고, 그마저도 선발투수 신정락의 부상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었지만, 2022년 이후에만 2회나 생겼다.
9. 관련 문서
[1] 콩글리시 또는 재플리시에 해당하며, 미국에서는 No-Run, No-Hitter 또는 No-No Game 이라고 부른다.[2] 무안타 경기[3] 누적된 볼넷이나 몸에 맞는 공, 실책, 도루 등으로 인해 실점한 경우.[4] 무안타 무득점 경기[5] no-no는 미국 현지에서도 사용하곤 한다.[6] 원정 팀은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 노히터는 9이닝을 진행해야 인정되므로 선공인 원정팀이 노히터로 패배하려면 9회 말을 끝까지 진행해야 하는데, 즉, 반드시 연장전까지 가야 한다.[7] 1회 노아웃 교체는 예외.[8] 메이저리그와 같이 무승부를 인정하지 않고 무한 연장전을 진행한다면 '노히터 무승부'는 나올 수 없다. 연장전에서 비 오면? 그래도 안 끝낸다. 참고로, 메이저리그 시범경기에서는 '3인 합작 노히트노런 무승부'라는 기록이 나온 적은 있다.[9] 맥과이어는 KBO 첫 승이 이 노히트 노런이었다. 그 전까지는 등판하는 경기마다 계속 형편없는 피칭을 보인 탓에 맥리대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붙으며 퇴출 1순위로 지목받던 상황에서 세운 기록이라 본인에게는 의미가 아주 클 것이다. 그러나 이 경기 이후에도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못했고 결국 8월 8일 팀에서 웨이버 공시 되었다.[10] 경기가 끝났을 때 투수진 총합이 9이닝 이상이어야 하고 피안타가 0이어야 한다. 실점과 경기 결과는 상관 없다.[11] 그의 인터뷰에 따르면 원래는 선발이 아니었는데 그날 선발이 펑크나서 갑자기 올라간 것이라고 한다. 2021년 전설의 타이거즈에 출연하여 당시 노히트 노런 상황을 자세히 술회하였다.[12] 재일교포 출신으로 일본에서 활약하다 왔다.[13] 이 기록도 KBO에서 유일하다. 마침 더블헤더라 불펜 투수들을 아껴야 하는 상황인데 노히트 노런 달성으로 불펜의 체력 소진을 아꼈다.[14] 이 경기의 선발은 원래 김진욱이였지만, 훈련 중 김광림의 타구에 급소를 맞고 선발 투수가 교체되었다. 출처[15] 2개는 볼넷, 1개는 몸에 맞혔다. 2개의 병살타로 28타석만에 노히트 노런.[16] 7회와 8회에 유격수 장종훈이 1루수 강정길에게 던진 공이 뒤로 빠졌는데 7회는 장종훈, 8회는 강정길의 실책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퍼펙트를 깬 장종훈을 탓할 수도 없는 게 당시 유일한 득점이 장종훈이 3루타 치고 나가서 견제구 미스로 득점한 것이다. 이때 상대팀 투수는 선동열이었고 그 한 점만을 내주며 11탈삼진 완투를 하였다.[17] 비공인 기록까지 확대해도 좌투수는 첫번째 합작 노히트 당시 ⅓이닝을 던진 신재웅과 두번째에서 1이닝을 던진 김택형 이외에는 없다.[18] 그날 타구장에서 에릭 테임즈가 히트 포 더 사이클을 기록 했는데 하루에 노히트 노런과 히트 포 더 사이클이 같이 나온 것은 최초이며 둘다 외국인 2호다.[19] 김형남 8이닝, 장광호 1이닝.[20] 기사를 보면 16타자를 상대한 것으로 나와 있는데 병살이나 견제사 등이 나왔을 경우 5⅓이닝까지, 아니면 5이닝을 소화했을 것이다.[21] 아래 사례 외에도 LG는 2015년 4월 4일 잠실 삼성전에서도 노히터를 기록할 뻔했으나 9회초 1사에서 최형우에게 투런 홈런을 맞고 말았다. 최형우는 이미 2010년 6월 10일 인천 SK전에서 김광현의 노히트 노런을 9회초 2사에서 깬 적이 있었다. 2021년 6월 9일 키움 히어로즈가 한화 이글스 상대로 도전했으나 9회말 2사에서 노시환의 안타로 저지되었다. 2022년 7월 22일 두산 베어스가 SSG 랜더스 상대로 11회까지 합작 노히트에 성공했으나, 12회초 바뀐 투수 김명신이 선두타자 최정에 안타를 맞고, 이후 실점하여 팀까지 패배했다.[22] 8회 초에 중지 손톱이 들리는 부상을 당해 자진 강판했다.[23] 최경철 8이닝, 현재윤 1이닝.[24] 9회까지 퍼펙트를 기록했으나 팀이 무득점에 그쳐 연장전에 돌입했고, 10회말에는 등판하지 않았다.[25] 2022시즌 개막전[26] 이재원이 9회까지 퍼펙트를 합작하고 10회초 볼넷으로 출루하면서 대주자 안상현으로 교체되었고, 10회말에 대수비로 이흥련이 투입되었다.[27] KBO 최초[28] 손아섭에게 볼넷을 내주며 팀 퍼펙트 게임은 무산되었으나 노히트로 게임을 마무리했다.[29] 손성빈 8이닝, 정보근 1이닝.[30] 연속이닝 노히트 기록은 2016년 마이클 보우덴의 14이닝이며, 종전이자 배영수가 10이닝 노히트를 기록할 당시의 최고기록은 1987년 김진욱의 13이닝이었다.[31] 무려 2022 시즌 개막전이었다!!![32] 그리고 조계현은 15년 후에 삼성 투수코치로서 친정팀 이범석의 노히트 노런이 9회 2사에서 깨지는 순간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직관하였다.[33] 이후 송구홍은 1997년 9월 10일 잠실경기에서도 연장 14회말 2사 만루 상황에서 역전 끝내기안타를 때려냈다. 그리고 조계현과 송구홍은 2012 시즌에 LG 트윈스에서 각각 1군 수석코치와 주루코치로서 조우하게 되었다.[34] 공교롭게도 이종범은 이범석의 노히트 노런이 깨지는 순간에 1루수였다.[35] 사실 정상적인 판정이었다면 9회말 박석민 타석 전에 양준혁의 땅볼 타구 처리 과정에서 이미 노히트 노런은 깨졌는데, 오심이 나왔다. 1루에서 약간의 차이로 세이프가 되어야 하는데 아웃선언이 나온 것. 승패는 KIA쪽으로 확실히 넘어간 상황이고, 비디오 판독 제도도 없던 시절이라 양팀 모두 그것에 대해선 아무말 없이 넘어갔다. 팬들도 그땐 발이 더 빨랐던 것을 몰랐다. 박석민은 3루 쪽 깊은 타구를 날리고 우사인 볼트도 발라버릴 기세, 100m 세계기록을 깰 태세로 1루까지 열심히 뛰어갔다. 3루수 김주형이 잡아서 스텝을 한발 밟고 던졌는데 약간의 차이로 세이프가 되었다. 딱히 김주형의 포구와 송구에 문제가 있던 것은 아닌데(2루타성 타구를 단타로 막았기 때문에) 막상 세이프가 되자 수년간 가끔씩 이 일을 이유로 욕을 먹었고, 2017년 한국시리즈 5차전 9회말 위기 상황에서의 악송구로 더 까였다. 차라리 송구가 빠졌다면 실책으로 기록되어서 노히트 노런 기회를 살릴 수 있지 않았냐는 말도 나왔다.[36] 공교롭게도 당시 삼성 벤치에는 이미 9회 2사 후에 노히트 노런이 깨지는 경험을 15년 전에 이미 해 본 조계현이 삼성 투수코치로서 앉아 있었다. 더군다나 삼성이 3루쪽 덕아웃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 장면이 조계현의 두 눈에 너무나 생생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37] 박한이는 바로 전날 김진우의 완봉승을 희생플라이로 저지한 바 있다.[38] 선두타자 박한이를 볼넷으로 출루시킨 뒤, 박석민을 삼진으로 잡은 상황이었다.[39] 만약 김선빈의 이 안타 하나가 없었다면 KIA는 KBO 최초로 정규시즌 노히트 노런을 통산 3회 당한 팀으로 남을 뻔했다.[40] 김선빈의 타구는 공교롭게도 이범석의 노히트 노런이 깨졌던 당시와 마찬가지로 3루쪽 파울 라인을 타고 흐르는 타구였다. 두산 3루수 허경민이 이 타구를 잡아내지 못하면서 이범석의 노히트 도전 당시 3루수였던 김주형이 어느 정도 재평가받을 여지가 생겼다. 당시 김주형은 박석민의 2루타성 타구를 단타로 막아냈던 것인데, 하필 이 타구가 동료의 노히트가 걸린 타구였기 때문에 어설픈 수비로 동료의 대기록을 날려먹었다고 까인 불운의 케이스였다.[41] 조계현은 KIA 타이거즈 단장으로서 13년 만에 또 상대팀 소속으로 대기록이 무산되는 것을 지켜보게 되었다. 며칠 뒤 이 경기와 관련하여 28년 전 자신의 경험을 언급하며 상대 투수 미란다를 동정하는 듯한 인터뷰를 하여 KIA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노히트는 깨졌지만 완봉패를 당했고, 당시 KIA는 9위로 최하위권이었는데 상대 투수 걱정이나 하는 게 단장이 할 일이냐며 말이다.[42] 공교롭게도 9회 2사 후 안타 허용으로 노히트 노런이 깨졌을 때 관련 선수들은 대부분 타이거즈와 관련이 있다. 조계현과 이범석은 9회 2사 후 노히트가 깨진 당사자였고, 조계현의 노히트를 깬 송구홍은 1997 시즌 후 조계현이 삼성으로 이적한 직후에 LG에서 해태로 트레이드되었다. 김광현의 노히트를 깬 최형우는 2017 시즌부터 KIA에서 활약중이고, 김선빈은 본인이 미란다의 노히트를 깼다. 또 미란다의 노히트가 깨졌을 때 상대팀 KIA의 단장은 공교롭게도 조계현이었다. 즉, 조계현은 9회 2사 후에 노히트가 안타로 깨진 4회 중 3회와 관련이 있는 셈이다.[43] 당시 기준으로 이동석은 전해 데뷔 시즌에 1승에 6.3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을 뿐인 2년차 투수였고, 뿐만 아니라 군산상고 출신임에도 고향팀인 해태의 지명을 받지 못해 빙그레로 입단했기 때문에 해태 선수들에게 얕보였을 가능성은 있다.[44] NC 다이노스에 있는 그 이태일과는 동명이인이다.[45] 다만, 완봉승은 챙겼다.[46] 기타 기록으로는 2004년 한국시리즈 4차전 배영수가 10이닝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었으나 이후 강판되었고 결국 후속 투수가 안타를 맞으며, 당일 날의 경기는 물빠따 경기로 무승부로 끝났다. 공식인정도 되지 않는다.[47] 결국, 한화는 17년 뒤 수원 구장에 어떤 팀을 상대로 팀 내 최고 타자가 똑같이 재현을 했다. 물론 홈런 쳤던 그 팀과 맞은 팀은 같은 팀이 아니었을 뿐이다.[48] 해태가 만약 당했다면 한 시즌에 노히트 노런을 2번 당하는 진기록을 세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타바레스의 번트 내야안타는 야구의 불문율을 깨는 것이었기에 논란이 되었다.[49] 하지만 2021년 아리엘 미란다의 노히트 도전 당시 9회 2아웃 상황에서 김선빈의 타구를 포구조차 하지 못한 허경민을 생각하면 마냥 김주형을 깔 수만은 없다. 김주형은 2루타가 될 수도 있었던 타구를 그나마 단타로 막은 것이다.[50] 재밌는 점은 세 명 다 각각 인연이 있다. 유승안과 양의지는 양의지가 경찰청에서 군복무하던 시절 만나 양의지의 포텐을 터뜨리는데 유 감독이 큰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고, 강인권과 양의지는 강인권이 두산 배터리코치를 맡던 시절 코치-선수 관계를 유지했다. 유승안과 강인권 역시 한화 시절 유승안이 코치, 강인권이 선수였다. 유승안은 해태와 빙그레에서, 강인권은 한화에서만 노히터를 경험했고, 양의지는 두산에서만 경험해 노히터를 기록한 시점에서의 소속팀은 각기 다르다.[51] 선발 케빈 밀우드가 6회 동안, 이어 등판한 찰리 퍼부시가 2/3이닝 동안, 뒤를 이어 스티븐 프라이어가 1/3이닝, 그 뒤를 이어 루카스 릿키가 1/3이닝, 다음에는 브랜든 리그가 2/3이닝, 마지막으로 톰 윌헴슨이 1이닝을 노히터로 마무리.[52] 오프너 테일러 콜이 2이닝 퍼펙트, 펠릭스 페냐가 7이닝 1볼넷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게다가 하필 이 날이 7월 1일 세상을 떠난 타일러 스캑스 메모리얼 데이다 보니 모두 스캑스의 유니폼을 입고 뛰어 더욱 감동이 컸다.[53] 실질적인 데뷔 시즌인 1999년 당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소속 선발투수로 달성했다.[54] 1991년 8월 11일 볼티모어 원정에서 9이닝 5볼넷 무피안타를 기록하며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는데 에러 1개 때문에 퍼펙트 게임은 실패했다.[55] 그외에 마에다 겐타, 다르빗슈 유의 경우 9회에서 깨졌다.[56] 또한 투수들의 지옥인 쿠어스 필드 유일 노히트노런 기록도 가지고 있다.[57] 해설자들도 웬만큼 분위기가 무르익는 7, 8회가 넘어가지 않는 이상은 되도록이면 언급을 피하려 하며, 설령 언급을 하더라도 살짝 지나가는 말로나 하지, 대놓고 분석을 하지는 않는다. 지나가는 말 한 번 했다가 안타를 쳐맞는 경우도 셀 수 없이 많다.[58]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야구 영화 <for love of the game>에서 이것이 잘 보인다.[59] 2011년 5월 18일 삼성 카도쿠라 켄은 대구 넥센전에서 5회까지 노히트를 이어갔지만 이기호 캐스터가 노히트노런을 들먹이자마자 첫 안타를 얻어맞았다. 2011년 7월 10일 기아와 LG의 경기에서는 로페즈가 6회까지 노히트노런으로 경기를 틀어막고 있었는데 양준혁 해설위원이 노히트노런을 언급하자마자 이병규에게 안타를 허용하였다.[60] 이외에 천조국의 야구게임인 MLB 2K11이 발매 초기에 퍼펙트 게임 달성 이벤트를 실시한 적이 있는데, 이 게임에서도 해설자가 5회~6회 쯤에 노히터에 대한 언급을 한다. 'I would never say anything about the no-hitter.'라고. 이 말이 나오자마자 안타를 얻어맞았다고 치를 떠는 게임 유저들의 후기가 눈길을 끌기도 했다.[61] 그러나 이 경기를 이긴 후 컵스는 남은 3경기를 모두 패배하는 등 극심한 부진을 겪었고 결국 7월 트레이드 시장에서 카일 헨드릭스와 윌슨 콘트레라스 등을 제외하고 주축 선수들을 거의 트레이드시키는 셀러가 되어 미래를 기약하게 되었다.[A] 토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는 무관한, 단일리그 시기인 1937~1943년에 존재했던 프로야구단이다. 이후 이글스 → 쿠로와시군(黒鷲軍) → 야마토군(大和軍)으로 구단명을 바꿨다.[63] 단일리그 시기인 1936~1940년에 존재했던 프로야구단으로, 1940년 시즌 말 츠바사군(翼軍)으로 개명했다가 나고야킨코군(名古屋金鯱軍)과의 합병으로 사라졌다. 이후 1946년 이 팀의 몇몇 선수들이 세네터스의 부흥을 위해 동명의 구단을 재창단한 팀이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다.[64] 1939년 8월 6일 나고야킨코군과의 홈경기에서 무안타 완투승을 기록했으나, 이 경기는 1회 초에 볼넷을 남발하여 2사 만루에서 1점을 내주는 바람에 노히트 노런에 실패했다.[A] [A] [A] [68] 위의 사나다 쥬조와 동일인물로 1948년 시즌 도중 등록명을 바꿨다. 이후 1954년 시즌 도중 본명인 사나다 쥬조로 등록명을 복구.[69] 본래는 정찰 멤버로 출장하여 1회에만 던진 후에 강판될 예정이었는데, 당시 타이요의 투수코치를 역임하던 벳쇼 타케히코가 "안타를 1개도 안 맞았으니 맞을 때까지만 던져라"라고 하여 계속 던지다 결국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게 되었다는 흠좀무한 일화가 있다.[70] 1969년 검은 안개 사건에 연루되어 당시 소속팀이었던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방출된 직후 승부조작 혐의로 체포되면서 사실상 영구제명되었다.[71] 호리우치 자신도 이날 경기에서 3타석 연속으로 홈런을 친 것에 신경 쓰느라 동료 선수들이 말해줄 때까지 노히트 노런 중이라는 걸 눈치 못챘고, 결국 놓쳐버린 4연타석 홈런(이것도 4번째 타석에서 중전안타를 치는 바람에 놓친 거였다.) 대신 노히트 노런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던진 끝에 3타석 연속 홈런과 노히트 노런을 동시에 달성했다는 믿지 못할 일화가 존재한다. 참고로 호리우치는 현역 시절 통산 21홈런을 기록하고 자신의 은퇴시합에서도 홈런을 쳤을 정도로 타격에 일가견이 있던 투수로 유명했다.[72] 헤이와다이 야구장은 본래 천연잔디를 사용했으나 1979년 그라운드 공사로 인조잔디를 깔았다.[73] 같은 팀에서 뛰었던 9살 아래의 내야수 타나카 유키오와는 공교롭게도 이름까지 똑같은 동명이인의 투수로, 후배 유키오보다 키가 더 크다는 이유로 큰 유키(오오유키)로 구분되어 불렸다. 통산 2000안타를 달성하고 파이터즈의 레전드로 남은 후배 유키오와는 달리 이 선수는 노히트 노런 외엔 통산 25승 36패 16세이브로 특별한 족적을 남기지 못한 채 1991년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은퇴했다.[74] 51년만의 단일시즌 두 번의 노히트노런 허용 구단 #[75] 1941년 카메다 타다시 이후 82년만의 기록[76] 사실 11건 쓰여 있으나 1949년 10월 1일 경기는 선발투수가 8이닝까지 막은 경우라 제외함.[77] 류현진이 받은 그 수술이다. 당시 MLB에서 최고의 의료진에게 수술을 받고 팀에서도 나름 대우를 받던 류현진도 수술 이후 복귀를 장담할 수 없다는 의견이 강하게 나올 정도로 치명적인 부상이다.[78] 마이너에서 빅리그로 올라오지 못했지만, 평균구속 160km/h, 최고구속 170km/h의 도시전설을 남긴 좌완투수다. 민훈기가 관련 기사를 쓴 적이 있는데 공이 너무 빨라서 공을 받는 포수의 미트가 찢어졌다고 한다.[79] 단, 이쪽은 연장 전까지 퍼펙트 게임이었다.[80] 어차피 9회말에 타석에 들어설 일은 없긴 했다. 2사 만루였으니 득점이면 끝내기 승리, 아웃이면 연장이었기 때문이다.[81] 고의사구시에 포수는 미리 캐처박스를 나가 있으면 보크가 되나, 고의사구장면에서 포수가 캐처박스를 나가 있는 것처럼 그렸다. 그리고 심판은 보크 판정을 안 한다.[82] 정확히는 8월 5일 23시 30분부터 8월 6일 1시 20분까지.[83] 2016년 맷 무어도 이런 식으로 8.2이닝에 노히트가 깨진 적이 있었는데, 이 당시에도 상대는 공교롭게도 다저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