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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라슨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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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 | 1958 |
1956년 월드 시리즈 MVP | ||||
자니 포드레스 (브루클린 다저스) | → | 돈 라슨 (뉴욕 양키스) | → | 루 버데트 (밀워키 브루어스) |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 볼티모어 오리올스 등번호 27번 | ||||
짐 딕 (1952) | → | 돈 라슨 (1953~1954) | → | 사울 로고빈 (1955) |
뉴욕 양키스 등번호 18번 | ||||
짐 맥도널드 (1952~1954) | → | 돈 라슨 (1955~1959) | → | 프레드 킵 (1960) |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 등번호 18번 | ||||
켄트 해들리 (1958~1959) | → | 돈 라슨 (1960~1961) | → | 빌리 브라이언 (1961~1963) |
시카고 화이트삭스 등번호 26번 | ||||
웨스 코빙턴 (1961) | → | 돈 라슨 (1961) | → | 진 스티븐스 (1963~1964)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번호 18번 | ||||
밥 팔리 (1961) | → | 돈 라슨 (1962~1964) | → | 존 프레겐저 (1964) |
휴스턴 콜트 포티파이브즈 / 애스트로스 등번호 31번 | ||||
돈 맥마혼 (1962~1963) | → | 돈 라슨 (1964~1965) | → | 프랭크 토마스 (1965) |
볼티모어 오리올스 등번호 18번 | ||||
프랭크 버타이나 (1964) | → | 돈 라슨 (1965) | → | 마이크 엡스타인 (1966) |
시카고 컵스 등번호 40번 | ||||
빌리 호이프트 (1965~1966) | → | 돈 라슨 (1967) | → | 피트 미켈슨 (1967~19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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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라슨 Don Larsen | |
본명 | 돈 제임스 라슨 Don James Larsen |
출생 | 1929년 8월 7일 |
인디애나 주 미시간시티 | |
사망 | 2020년 1월 1일 (향년 90세) |
아이다호 주 코어 달렌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포인트 로마 고등학교 |
신체 | 193cm / 97kg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47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SLB) |
소속팀 |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볼티모어 오리올스 (1953~1954) 뉴욕 양키스 (1955~1959)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 (1960~1961) 시카고 화이트삭스 (1961)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1962~1964) 휴스턴 콜트 포티파이브즈-애스트로스 (1964~1965) 볼티모어 오리올스 (1965) 시카고 컵스 (1967) |
기록 | 퍼펙트 게임 (1956.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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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The Imperfect person pitched the Perfect Game.(완벽하지 않은 사람이 완벽한 경기를 해냈다.)
- 돈 라슨의 퍼펙트 게임 다음 날 뉴욕 데일리 뉴스의 칼럼 제목.
- 돈 라슨의 퍼펙트 게임 다음 날 뉴욕 데일리 뉴스의 칼럼 제목.
1953년부터 1967년까지 MLB에서 활약한 투수. 선수 경력 전체 기록으로는 대단하다고 하기 어렵지만, 1956년 월드 시리즈에서 퍼펙트 게임을 기록한 투수로 유명하며, 현재까지 월드 시리즈 & 포스트시즌 퍼펙트 게임 기록을 보유한 유일한 선수이다.[1]
2. 선수 경력
인디애나 주 미시간 시티에서 태어난 라슨은 고등학교 때 농구와 야구를 병행했는데, 농구로 대학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전도유망한 유망주였다. 야구도 하던 1947년의 어느 날,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스카우트가 지켜보는 가운데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고, 스카우터의 눈에 띄어 브라운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다. 후에 왜 계약을 대학 재학 중에 맺었냐는 질문에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고 대답했다.마이너리그에서도 방어율 3점대로 평범한 성적을 기록하던 중, 1951년 6.25 전쟁 당시 미군에 지원해 참전했다. 특별한 보직 없이 이리저리 활동하다가 1953년 제대해 다시 팀에 복귀했다.
그리고 이 해에 라슨은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게 되었다. 메이저리그에 승격한지 한달 만에 5월 12일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전에서 2:2로 맞선 2회말 1사 2루 위기에 보보 홀로먼의 뒤를 이어 등판해 남은 7⅔이닝을 1실점으로 잘 틀어막아 메이저 첫 승의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2] 그렇게 메이저 데뷔 시즌에 192⅔이닝을 던지며 좋은 활약을[3] 보여줬지만, 당시 소속팀인 브라운스의 팀 상태는 말할 것도 없었고, 이런 활약에도 고작 7승을 기록했다. 팀이 볼티모어로 연고 이전을 한 뒤 개막전 선발 투수로 등판해 볼티모어 오리올스 소속으로 등판한 첫 투수라는 영광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지만 타선이 스티브 그로멕에게 완봉승을 내주며 8이닝 3실점 5K 완투패를 당하는 등 팀의 상태는 여전해서, 나름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커리어 유일한 200이닝 시즌을 던지기도 했으나 승패는 3승 21패로 다패왕에 올랐다.
1954 시즌 후 라슨은 추후지명선수[4], 빌리 헌터, 밥 털리와 함께 추후지명선수[5], 해리 버드, 짐 맥도널드, 윌리 미란다, 할 스미스, 거스 트리안도스, 진 우들링을 상대로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되었다. 트레이드 후부터 괜찮은 활약을 하더니, 1956년에 명성을 날릴 기회를 얻었다.
2.1. 월드 시리즈에서 퍼펙트를 달성하다
1956년 정규 시즌에서 좋은 활약으로 당연히 월드 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었고, 5차전 선발로 예정되었다. 상대는 브루클린 다저스. 마침 시리즈 스코어도 2-2로 팽팽한 상황이었기에 양 팀 모두 양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퍼펙트 게임 당시의 전광판 |
이 날 경기 후 인터뷰에서 라슨은 "제구가 정말 잘 됐다. 이보다 더 제구가 잘 된 적은 없었다."라며 짤막한 소감을 밝혔다. 거기다 양키스가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우승하며 월드 시리즈 MVP를 타는 영광도 얻게 되었다. 흥미롭게도 과거 라슨의 차 번호가 DL000이었는데, DL은 자신 이름의 머릿글자, 000은 노히트-노볼넷-노에러를 따서 지은 것이다. 현재도 이 번호인지는 불명.
상술했듯이 이 경기는 포스트시즌 최초의 퍼펙트 게임임과 동시에 최초의 노히트 노런이기도 하다. 포스트시즌에서의 2번째 퍼펙트 기록은 아직 없고 노히트는 로이 할러데이가 2010 NLDS 1차전에서 한 번 기록한 바 있다.
2.2. 퍼펙트 이후
1957 시즌은 첫 경기인 4월 20일 보스턴 레드삭스전에서 1⅓이닝 4실점에 그치며 시작했다.[7] 영 좋지 않다가 천천히 컨디션을 회복해 월드 시리즈 엔트리에도 들었지만, 7차전 선발로 등판해 2⅓이닝만을 소화하고 강판당했다.이후로도 영 좋지 않은 성적 때문에 1959 시즌 후 행크 바우어, 놈 시번, 마브 손베리와 함께 조 데마에스트리, 켄트 해들리, 로저 매리스를 상대로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로 트레이드되었다. 1961 시즌 중반엔 앤디 카리, 레이 허버트, 알 필라식과 함께 웨스 코빙턴, 스탠 존슨, 밥 쇼, 게리 스테일리를 상대로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 시즌 후엔 빌리 피어스와 함께 추후지명선수[8], 밥 팔리, 에디 피셔, 돔 잔니를 상대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되었고, 여기선 불펜으로 보직을 바꿔서 괜찮은 성적을 냈다. 1964년 휴스턴으로 현금 트레이드된 후 선발로 다시 보직을 옮겼으나 영 신통치 못했고, 1965 시즌 도중 밥 사버린과 현금을 상대로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트레이드되며 친정팀으로 돌아왔지만 결국 1968년 시카고 컵스의 마이너리그 팀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3. 사망
은퇴 이후 메이저리그 프런트, 술 공장을 전전하다가 캘리포니아에 있는 제지 회사에 취직했다고 한다. 2012년엔 손자의 대학비를 위해 자신이 퍼펙트 게임 당시 입었던 유니폼을 옥션에 올린 것이 확인되었다.이후 식도암 투병을 했고 2020년 1월 1일 아이다호 주 헤이든에 위치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향년 90세
결국 그가 세상을 뜰 때까지, 그리고 세상을 뜬 후 2024년 지금까지 그 누구도 포스트시즌에서 퍼펙트 게임 달성에 성공하지 못했다.
4. 여담
타격에 뛰어난 투수였다. 통산 타율이 .242에 14홈런. 심지어 선수 시절을 통틀어 대타로 66번(...) 들어섰다. 1956년 4월 22일엔 보스턴 레드삭스를 상대로 선발 등판해 4회말 프랭크 설리반을 상대로 만루 홈런을 쳐버려서 단숨에 4점을 뽑아낸 적이 있다. 다만 본인도 4실점으로 흔들리며 결국 5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강판된지라, 승리투수는 뒤이어 등판한 밥 그림에게로 돌아갔다.뉴욕 시절 잘 놀았던 선수였다. 밤만 되면 팀 동료들과 바에 가서 술을 즐겼다고. 덕분에 붙은 별명이 "Gooney Bird". 알바트로스라는 뜻도 있지만 속어로는 날라리 정도 된다.
훗날 1999년 요기 베라 데이를 맞아 라슨이 시구, 베라가 시포를 맡았는데 이 날 양키스 선발 투수 데이비드 콘이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다. 그야말로 퍼펙트 게임의 사나이.
5. 관련 문서
[1] 노히트 노런까지 합치면 로이 할러데이가 본인의 포스트 시즌 데뷔전이었던 2010 NLDS 1차전에서 기록한 적이 있다.[2] 3:2로 앞선 4회초 2사 1루에는 본인이 직접 바비 샨츠를 상대로 적시 3루타를 쳐내기도 했다.[3] 1953 시즌 라슨의 fWAR는 3.9, bWAR는 2.6으로, 커리어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4] 마이크 블리즈카, 대럴 존슨, 짐 프리들리, 딕 크리호스키[5] 빌 밀러, 칼 세그리스트, 돈 레퍼트, 시어도어 델 구에시오[6] 메이저리그에서 무려 34년만의 퍼펙트 게임, 그것도 월드 시리즈에서 해냈으니 그 가치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7] 다행히 6:7로 뒤진 9회초 2사 1, 2루에 길 맥도걸드가 아이크 델록을 상대로 동점 적시타를 터트리며 패전이 지워졌고, 이후 팀은 연장 12회초 행크 바우어의 투런과 미키 맨틀의 적시타로 3점을 뽑아내고 승리했다.[8] 벌 티펜탈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