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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12 17:55:21

사토 요시노리


1. 1954년생의 전 야구선수, 전 투수코치(佐藤 義則)2. 1989년생의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투수(佐藤 由規)


두 사람은 동명이인 이지만, 한자가 다르다.

1. 1954년생의 전 야구선수, 전 투수코치(佐藤 義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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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89년생의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투수(佐藤 由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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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사토 요시노리 (佐藤由規/Yoshinori Satoh)
생년월일 1989년 12월 5일
국적 일본
출신지 미야기센다이시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좌타
소속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2008~2018)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2019~2020)
라쿠텐 몽키스(2023)
SNS 인스타그램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소속의 투수.

센다이 육영(이쿠에이)고교 3학년이던 2007년 드래프트 당시 오사카 토인고교의 나카타 쇼(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치바 나리타고교의 카라카와 유키(치바 롯데 마린즈)와 함께 빅3로 불리며 그중에서도 최대어로 주목을 받았다. 최고구속 157km/h에 이르는 빠른 볼이 주무기. 고등학생이던 2007년 155km/h를 찍은 전력이 있다.[1] 연고지 구단인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입단하고 싶어했으나,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지명되었다.

사토라는 성이 대단히 흔하고 같은 팀 투수 중에 사토가 있기 때문에 등록명은 요시노리(由規)이다.

특이한 사항은 일반적인 우투 좌타인 선수와는 달리 원래 왼손잡이인데 형들이 오른손잡이라서 오른손 글러브로 야구를 시작했기 때문에 오른손 투수가 되었다는것. 일반적으로 야구는 왼손이 유리하기에 이것은 극단적으로 희귀한 케이스. 류현진과는 완전히 반대의 케이스이다. 그러게 애초에 왼손 글러브 좀 사주지 그게 얼마나 한다고 참.

젊은 유망주인만큼 팀에서 밀어주고 있지만 프로 2년차인 2009년 현재 한 수 아래로 평가받던 카라카와보다는 떨어지는 편. 시즌 후반 부진하여 결국 22경기(21선발) 5승 10패 120이닝 91삼진/57볼넷 ERA 3.50으로 팀내 다패왕이 되었다(...) 제구력이 좋지 않아 통산 K/BB 비율이 2.00도 안 넘어간다...

2010년 8월 26일 요코하마 전에서 일본인 최고 구속인 161km/h를 찍었다. 2012년 기준 전체 2위. 3위는 같은 팀의 임창용이다. 스피드 건의 오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제법 되는 것 같지만, 157~159km/h 사이를 올해 아홉 번이나 찍은 터라 믿어줘도 될 것 같다.

2010 시즌 25경기 등판(25 선발) 12승 9패 167.2이닝 149삼진/74볼넷(시즌 최다 볼넷) ERA 3.60(리그 9위)로 팀내 4선발 정도의 성적을 보여주었다. 초반 삽질하다가 후반기에 에이스 모드가 되어 만회.

2011 시즌 옆구리를 다쳐서 전반기를 마감한 뒤 후반기에 복귀할 예정이었으나 어깨 부상으로 결국 시즌을 마감. 안 그래도 좋지 않던 팀 투수진에 타격을 주었다. 최종 성적은 15경기(15 선발) 7승 6패 100.2이닝 83삼진/41볼넷 ERA 2.86. 풀시즌을 뛰었다면 야쿠르트 투수진에 큰 보탬이 되었을 것이라 더욱 안타까운 상황.[2]

2012 시즌 2군에 내려가 있다가 5월말 왼쪽 무릎 연골 골절로 인해 전치 8주의 부상을 얻었다. 2012년 9월까지도 1군 등판은 한 번도 없는 상황. 결국 1경기도 출장하지 않은채 2012 시즌을 마쳤다. 부상으로 인해 2015년까지 1군 출장 기록이 없으며, 2016년 육성선수로 신분이 전환되면서 배번호도 11번에서 121번으로 변경되었다.

2016년 7월 9일 5년만에 1군 마운드에 올라 주니치 드래곤즈를 상대로 복귀전을 치뤘다. 직구 구속이 140대 후반을 기록하였고 전체적으로 무난한 모습을 보였으나 6실점을 하며 부진하였고 팀도 졌다.

2016년 7월 24일 주니치 드래곤스 원정경기(나고야 돔)에서 1786일만에 승리를 거두었다. 2016년 8월 4일 홈경기(메이지진구 구장)에서 1797일만에 홈경기 승리를 거두었다. 마지막 홈경기 승리는 2011년 9월 3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이었다. 인터뷰에서 부상으로 신음했으나 오랫동안 재활을 기다려준 팬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전했다.

현재 예전의 배번호인 11번을 달고 뛰고 있다.

2018 시즌 현재에도 뛰고 있으나, 2017년 10경기 3승 5패, 2018년 7경기 1승 2패로 간간히 땜빵 선발로나 1군에 모습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2018년 6월 10일 1군에서 말소된 이후 2군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2018년 10월 1일, 2018시즌을 끝으로 야쿠르트 구단과 결별하는 것이 알려졌다. 입단 11년차인 2018년 시즌 7경기에 등판해 1승 2패, 방어율 4·46을 기록했다. 2018년 6월 2일 라쿠텐과의 원정경기를 끝으로 어깨 통증을 호소하며 등판하지 않았다. 야쿠르트 구단에서는 은퇴(은퇴식 개최 및 구단 역사에 공로자로 게시 등)를 권유했으나 본인의 현역 속행 의지가 강해 다른 구단으로 이적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나이로 2018년에 30세라 아직 젊고 팬들의 인기도 있어, 고향팀인 라쿠텐에서 관심을 표할수도 있다.

2018년 11월 15일 고향팀 라쿠텐과 육성선수 계약을 합의했다. 등번호는 123번. 이시이 가즈히사 본부장(GM)과 히라이시 요스케 감독은 초조해하지 말고 단단히 재활 단계를 밟아 어깨의 완치를 우선해주었우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2019년에는 시즌 중 지배등록되었고, 막판에 1군에 복귀해서 1경기에 등판했으나 2020년에는 1군 콜업 없이 시즌 후에 방출당했다.

형인 사토 후미노리는 센다이 이쿠에이 고교의 역내 라이벌 고교인 센다이 도호쿠 고교 재학시절 에이스 다르빗슈 유와 배터리로 호흡을 맞췄으며, 동생 사토 다카노리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소속이었으나 방출되어 독립리그에서 뛰고 있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일본 독립리그 팀 사이타마 무사시 히트 베어스에서 뛰다 2023년 시즌 중인 7월 1일 라쿠텐 몽키스와 계약하며 3년만에 정식 프로리그에 재진출했다. 그러나 대만에서는 2군에서 오래 있다가 1군에서는 딱 1경기 0.1이닝 ERA 27.00을 기록하고 8월 30일에 방출당했다. 결국 9월 다시 일본 독립리그로 돌아가 투수코치를 맡게 되었다.

여담으로 일본과 대만 라쿠텐에서 모두 1군 경기 출장기록이 있는 최초이자 유일한 선수이다. 소속까지 합치면 레다메스 리즈가 최초지만 리즈는 대만 라쿠텐에서는 등판 없이 퇴단했다.[3] 이후 2024년 매니 바누엘로스가 일본 라쿠텐에서 퇴출당하고 대만 라쿠텐으로 이적하면서 바누엘로스사 1군에서 등판하게 된다면 2번째 선수가 된다. 공교롭게도 대만 라쿠텐 1군에서 딱 1경기 등판한 요시노리와는 반대로 바누엘로스는 일본 라쿠텐 1군에서 딱 1경기 등판했다. 0.2이닝 6실점 ERA 81.00으로 유일한 1군 경기에서 신나게 맞은 것도 동일.
[1] 당시 일본 고교야구 최고 기록이었으며, 2012년 7월 19일 오타니 쇼헤이가 160km/h를 찍으면서 깨졌다.[2] 시즌 중반 아웃되었음에도 팀내 공동 다승 3위다.[3] 리즈의 대만 1년차 시절에는 팀이 라미고였고, 2년차에 라쿠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