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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5 23:02:54

유네스키 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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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순 장호연 김진욱 장호연 김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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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연 이진 김상진 장호연 진필중
1997~1998 <rowcolor=#FFD700> 1999 2000~2001 2002~200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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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키 마야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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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등번호 19번
김창훈
(2012~2014.7.23.)
마야
(2014.7.25.~2015.6.12.)
스와잭
(2015.6.1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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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일:아길라스마야.jpg
<colbgcolor=#272626><colcolor=#fff> 피라타스 데 캄페체 No.
유네스키 마야
Yunesky Maya
본명 유네스키 마야 멘디술라
Yunesky Maya Mendizula
출생 1981년 8월 28일 ([age(1981-08-28)]세)
피나르델리오주 피나르델리오
국적
[[쿠바|]][[틀:국기|]][[틀:국기|]] →
[[도미니카 공화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83cm, 97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2010년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 (WSH)
소속팀 워싱턴 내셔널스 (2010~2011)
에스트레야스 오리엔탈레스 (2010/11)
워싱턴 내셔널스 (2013)
두산 베어스 (2014~2015)
리엘레로스 데 아과스칼리엔테스 (2018)
사라페로스 데 살티요 (2019)
게레로스 데 오아하카 (2023)
디아블로스 로호스 델 멕시코 (2023)
피라타스 데 캄페체 (2024~)
레오네스 델 에스코히도 (2010/11)
크리오요스 데 카과스 (2011/12)
티그레스 델 리세이 (2013/14)
아길라스 시바에냐스 (2017/18~)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
2.1. 쿠바 리그2.2. MLB 시절2.3. 두산 베어스
2.3.1. 2014 시즌
2.3.1.1. 벤치 욕설 파문
2.3.1.1.1. 관련 문서
2.3.2. 2015 시즌
2.4. 방출 이후
3. 여담4. 연도별 성적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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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쿠바 출생의 도미니카 공화국 국적의 투수.

2. 선수 경력

2.1. 쿠바 리그

쿠바의 피나르 델 리오(Pinar del Río)[1] 팀 소속으로 2004-2005 시즌에 마무리 투수로 1.61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면서 리그 1위에 올랐다. 2005-2006 시즌에는 선발 투수로 전향했지만 7승 9패 3.79의 평균자책점으로 평범한 성적을 기록했다. 이후로는 중간계투로 활약하다가 2008-2009 시즌에는 다시 선발투수로서 13승 4패 2.22의 평균자책점으로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리그 최다승에 평균자책점 2위, 탈삼진도 119개로 2위를 했다. 참고로 이때 탈삼진 1위는 130개를 기록한 아롤디스 채프먼이었다.

6시즌 동안 쿠바에서 48승 29패 2.51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그밖에도 2006년과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에 투수로 참가한 적이 있다.

2.2. MLB 시절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 끝난 후 그 해 여름 마야는 멕시코로 망명하려 하지만 실패했고, 결국 국가대표팀에서도 추방됐다. 같은 해 9월 쿠바를 탈출하는데 성공해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망명했다.

망명한지 1년 후인 2010년 7월 말 워싱턴 내셔널스와 4년 간 총액 800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나이가 다소 많기는 했지만[2] 즉전감으로 평가받았기에 워싱턴에서는 금새 미국에서 적응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선발 로테이션을 맡아주기를 원했다. 실제로 워싱턴과 계약한지 1달만에 메이저리그에 올라오기는 했지만, 메이저리그 3시즌 동안 선발과 계투를 오가며 1승 5패 ERA 5.80을 기록했다. 결국 부진한 성적으로 인해 2013 시즌 종료 후 워싱턴 내셔널스에서 방출되었다가, 2014년 1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다. 2014년 트리플A에서 3승 3패 ERA 2.63을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3]

2.3. 두산 베어스

파일:10513702_1429327010710947_213501121_n.jpg

2.3.1. 2014 시즌

2014년 7월 25일, 두산 베어스와 연봉 17만 5천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되었다. 시즌 도중 웨이버 공시되어 방출된 김창훈이 쓰던 19번을 사용하게 됐다. 크리스 볼스테드보다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지가 관건일 듯하다.

8월 1일, 한화를 상대로 데뷔했다. 5이닝 동안 투구수 99개로 7피안타 2볼넷 5탈삼진 4실점 2자책으로 무난한 피칭을 했다. 2회 1사 만루에서 허경민의 다이빙 캐치로 실점을 막았지만, 3회엔 번트 수비 실책으로 만들어진 무사 만루에서 최진행, 김태균의 적시타와 김태완의 희생플라이로 4점을 내줬다. 남은 이닝은 무실점으로 막았다. 최고 149km/h에 이르는 패스트볼과 커터성 움직임을 띄는 슬라이더로 타자들을 잘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8월 14일 넥센전에 등판했지만 넥센의 타선을 감당하지 못하고 4이닝 3피홈런 7실점으로 부진했다. 팀은 만루찬스를 두번이나 말아먹은 끝에 2:8로 패배. 시즌 3경기에 출전하였는데 강정호에게 홈런 2개를 허용하였다.

8월 19일 문학 SK전에 선발투수로 등판해 4.1이닝 9피안타 2BB 2K 4실점(4자책)으로 승리투수 요건을 채우지 못한 채 강판되었다. 하지만 팀은 트래비스 밴와트에게 한국 첫 패를 안기며 승리하였다.

8월 24일 잠실 NC전에 선발로 등판, 7⅔이닝 8피안타 2사사구 4삼진 1실점(1자책)으로 호투했다. 그런데 팀 타선이 에릭 해커에게 1점만 뽑고 꽁꽁 묶이며 노 디시전으로 강판되어 첫 승에는 실패했다. 이 날 가족이 경기장을 찾았다.

8월 30일 마산 NC전에 선발 등판, 6회까지 1피안타 무실점 6탈삼진의 위력투를 펼쳤으나 7회말에 이호준에게 투런포를 허용했다. 7회초 두산이 대거 5득점했는데 곧바로 실점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나 다행히 경기의 흐름을 내주는 일은 없었다. 이날 성적은 7이닝 2실점 7탈삼진 3피안타[4]로 지난 24일 잠실 NC전의 호투를 재현했다. 6번째 등판만에 드디어 한국 첫 승을 거두었다. 마운드 위에서는 침착하고 웃음기를 싹 뺀 모습이었는데 경기를 승리로 끝내자마자 함박웃음을 지어 두산팬들마저 후련하게 해 주었다. 갈수록 발전을 거듭해[5]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9월 13일 사직 롯데전에서 선발 등판해 7이닝 8K 1실점의 호투를 하며 시즌 2승째를 따냈다. 다만 9회말 이용찬이 1이닝 2실점의 불을 질러 하마터면 승리가 날아갈 뻔했다.

10월 4일 NC전에서는 완투패를 기록했다. 기록은 8이닝 5피안타 2볼넷 9탈삼진 5실점. 투구수도 113개로 나쁘지 않았다. 4회에 집중타를 맞으며 4실점했고, 8회에 이종욱에게 결승 솔로포를 맞아 팀이 5-4로 패배하며 완투패를 기록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삼진 9개를 잡을 정도로 위력적인 투구 내용을 보여줬고, 8월 말부터 눈에 띄게 성적이 좋아지고 무엇보다 이닝 소화력이 늘어난 것은 긍정적인 요소이다.

10월 11일 잠실 LG와의 경기에서 선발 등판하여 3.2이닝 동안 4실점 4자책점을 기록하고 강판되었다. 3회까지는 잘 막았으나, 4회에 4실점하며 무너졌다. 경기는 결국 두산이 8회초 10점을 내주는 등 미친듯이 털리며 2-15로 패배, 시즌 4패(2승)째를 적립했고, 4강 트래직넘버가 하필 LG에 의해 0이 됐다. 문제는 4실점을 할 때 LG측 덕아웃을 향해 욕설로 추정되는 손가락질과 언질을 주며 논란을 일으켰다. 아래의 욕설 파문 단락 참고.

시즌 후 60만 달러에 재계약하기로 하면서, 2015년에도 두산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2.3.1.1. 벤치 욕설 파문
파일:external/file.osen.co.kr/201410111847775981_5438fccdec544.jpg
파일:/image/450/2014/10/11/204007309_%25B8%25B6%25BE%25DF%253F%25C0%25AF550.jpg
10월 11일 LG와의 경기 도중 LG가 4회에 스퀴즈 번트 2번을 대고 4득점째를 하자, LG측 덕아웃에 손가락질을 하며 무언가 언질을 주는 듯한 장면이 잡혀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졌다. 두산 측에서는 이에 대해 다음 타자에게 빨리 나오라고 취한 제스처라 했으나, 사진에는 정확하게 가운데 손가락을 펴는 장면이 잡혀 설득력이 없다. 한 술 더 떠 두산에서는 스페인어 욕이 아니라 '빨리 나오라'는 제스쳐라는 말도 안 되는 실드를 치고 있다.

한편 LG측에서는 욕설을 들었다고 했는데 마야는 스페인어를 사용하기에 단정할 수는 없으나[6], 상황과 제스처를 봤을 때 욕설이란 것이 중론. 단 양상문은 중지를 치켜드는 욕은 보지 못했다고 하며 차후 알았다고 한다.

이 때 LG의 플레이가 1이닝동안 스퀴즈 번트를 2번이나 대는 평범한 플레이는 아니었으나 두번째 스퀴즈를 댈 당시만 해도 3대2로 경기가 팽팽했고 타자가 타격보다는 작전수행 능력이 좋은 박경수였기 때문에 한 점을 짜내는 플레이를 한건 어디까지나 작전상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행동을 보인 것은 지나친 반응이며, 상대팀 덕아웃을 향해 욕설을 날렸다는 것은 실드의 여지가 없다. 결국 야구팬들에게 온갖 비판과 비아냥을 들어먹고 있으며, 김병현이나 찰리 쉬렉에 비교되는 처지에 이르렀다.

일부 두산 팬들이 마야의 행동을 빅 볼 성향이 강한 메이저, 마이너에서 뛰었기 때문에 양상문의 작전이 나쁘게 보였을 수도 있다고 실드를 치고 있지만, 실제로 메이저리그나 마이너리그라고 작전 없이 풀스윙을 돌리는 것은 절대로 아니고, 때로는 KBO보다 훨씬 세밀한 작전이 즐비하게 나오는 곳이기 때문에 실드가 될 수 없다. 거기다가 2연속 스퀴즈가 경기가 완전히 기운 후반부에서 큰 점수차에서 일어난 작전이 아니고, 3:2의 팽팽한 경기에서 우위를 잡기 위한 스퀴즈였기 때문에 소위 '메이저리그'의 시점에서도 욕설을 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설령 메이저리그나 마이너리그가 빅 볼 성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KBO에 이적한 이상 마야는 KBO 소속의 선수가 되고, 당연하지만 그 선수를 위해 작전을 포기할 이유는 없다. 또, 백번 양보해서 그 플레이가 화가 날 만한 플레이라고 하더라도 덕아웃을 향해 직접적으로 욕설을 하는 선수는 없다. 만일 마야가 마이너리그나 메이저리그에 있을 때 같은 작전을 당했다면 과연 욕설을 했을까?

이 날 두산의 불펜이 8회 무너지며 1이닝동안 10실점을 하며 팀의 입장에서도 마야의 행동은 경솔하고 과격한 반응에 불과했다. 결국 게임은 15-2로 패하고, 두산은 이 날 패배로 4강 트래직 넘버가 소멸했으며, 마야 개인적으로도 시즌 4패와 엄청난 비판에 직면하며 팀과 개인 모두에게 씁쓸한 하루가 되었다.

당일 베이스볼 투나잇에서도 허구연 위원이 이 문제를 언급하면서 141011 마야의 행동에 KBO 차원에서 봐도 심각한 문제라고 언급하는 등 비판적인 총평을 내렸다.

그래도 경기 다음 날 마야 쪽에서 양상문 감독에게 찾아가 직접 사과를 했고, 양 감독이 사과를 받아들였으니 일단 사건은 일단락된 셈.

불암콩콩코믹스에서는 정상아닌 회담으로 패러디했다.

이후 두산 팬들 사이에서 자조적인 별명으로 "마법규"라는 별명이 생겼다.
2.3.1.1.1. 관련 문서

2.3.2. 2015 시즌

파일:27519F4B54EFE53717.png

3월 28일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개막전에 선발 등판하여 6이닝 4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경기 초반 고전하면서 4실점했지만 강판되지 않고 경기를 6회까지 끌고가며 탈삼진을 8개나 잡아낸 것은 긍정적인 부분.

4월 3일 롯데와의 경기 때 선발등판했다. 7이닝 동안 108구를 던지며 5피안타 2볼넷 7탈삼진 2실점으로 퀼리티스타트를 기록했지만 타선이 침묵해서 패전투수가 되었다.

4월 9일 넥센과의 경기에서 136구를 던지며 KBO 통산 12번째, 외국인 선수로서는 두번째로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7]. 본인 인생 최초의 노히트 노런이라고 경기 후 인터뷰에서 밝혔다. 참고로 외국인 선수로써 첫번째 노히트 노런을 달성한 사람은 찰리 쉬렉이다. 이 등판 이후에 다음 로테이션을 한번 거를 예정이다. 무려 136개나 던졌기 때문에 보호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날 경기 시작에 앞서 같은 쿠바출신이자 친구인 당대 V-리그 최고의 용병 시몬시구를 했다. 시몬은 경기를 끝까지 관전했으며 본인 시구날 친구의 노히트 노런을 직관한 것이다.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고도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던 찰리 쉬렉과는 다르게 마야는 아래의 장면처럼 엄청난 환호를 하며 같은 노히트 노런인데 극과 극이라는 표현이 많았다.

파일:WyoxnTt.gif
파일:uvwDwl1.gif

로테이션을 거른 이후인 4월 21일 공교롭게도 마야는 넥센과, 그것도 앤디 밴 헤켄과 또다시 맞붙게 되었는데, 노히트에 모든 힘을 쏟아부었던 마야는 리매치에서 1회와 2회에만 유한준[8]에게 3점 홈런과 만루홈런을 두들겨 맞으며 거짓말같이 제대로 복수를 당하고 만다. 이 날의 기록은 3이닝 11실점으로 패전투수.

5월 8일 한화전에서는 5⅔이닝 동안 92구를 던지며 9피안타 5사사구 5탈삼진 7실점했다. 평균자책점은 5.84로 치솟았다.

5월 14일 SK전에서 7:1로 앞서가는 경기를 6회에만 5실점 하면서 승리를 놓쳐버렸다. 물론 뒤에서 불펜이 말아먹었지만 타선이 7점이나 뽑아줬는데 주자가 나가면 난타당하며 6실점한 마야가 승리투수의 자격이 있다고 볼 수 없다.

5월 20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3회에만 9실점을 하며 강판당했고, 두산 타선은 경기가 끝날때까지 이 9점조차 올리지 못했다. 팀은 6-25로 대패하고 말았다.

몇 번 대량실점을 하면서 5월 20일 경기 끝난 후 기준으로 평균자책점이 7.47 에 달한다. 노히트 노런 포함 잘 던져준 경기가 몇 경기 있기 때문에 기회는 좀 더 줄 것으로 보이지만 이 정도 평균자책점으로는 낙제점. 이 상태가 계속 지속된다면, 작년에도 몇 경기 정도 잘 던지다가 퇴출된 크리스 볼스테드의 전철을 밟을수도 있다.

다음 등판인 5월 26일에는 평소 강했던 NC전임에도 불구하고 아예 동정의 여지가 없이[9] 1.2이닝 7실점으로 탈탈 털렸다. 이쯤되면 이미 선발로써의 역할은 아예 상실한 듯.

결국 김태형 감독이 한계에 다다랐는지 그 다음경기에서도 못하면 2군이나 퇴출을 할 수도 있다고 경고를 했지만, 그 다음 등판인 5월 31일 심지어 타선이 LG와 더불어 최하위권인 KT전에서도 5이닝도 못 채우고 4이닝 5실점하며 또 털렸다.

두산 팬들 사이에서는 퇴출 여론이 높고 코치와 프런트도 문제를 인지하고 있지만 퇴출을 하지 않는 이유는 의외로 세이버스탯은 썩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BABIP이 0.366으로 비정상적으로 높다. 규정이닝 투수중에 압도적인 1위. FIP는 4.46으로 리그 11위이다. 좋지는 않지만 유희관의 FIP가 4.28인 것을 감안하면 나쁜것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운이 나쁘고, 불운땜에 정줄이 나가서 더 안좋은 피칭을 하는 악순환으로 볼 여지도 충분히 있다. 그러나 경기중 보여지는 모습이나 .350을 넘는 비정상적인 피안타율, 1.6을 넘는 whip를 볼 때, 구위가 너무 안좋아서 안타도 많이 맞고, 그로 인해 babip fip 등이 다 올라가는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운의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는 구위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6월 6일 넥센전에서는 투구수 114개 동안 4⅔이닝 동안 8피안타 4볼넷 3탈삼진 4실점 (4자책)을 기록했다.

6월 12일 NC전에서는 5이닝 7피안타 3볼넷 4탈삼진 2실점을 기록하면서 그래도 꽤 잘했다. 하지만 이 경기는 이현승, 오현택, 윤명준의 삽질로 승리를 날려먹었고 이 경기가 마야의 한국에서의 마지막 경기가 되고 말았다.

결국 다음날인 6월 13일 NC전을 앞두고 퇴출되었다. 새로운 투수 용병은 앤서니 스와잭이며 이날 허준혁도 호투를 하면서 두산은 마야를 방출했지만 선발 걱정은 안하게 됐다.

공교롭게도 찰리 쉬렉2015년 6월에 퇴출되면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두 외국인 투수가 공교롭게도 같은 달에 모두 퇴출되고 말았다.

방출 이후에는 도미니카 윈터리그에 참여하며 재기를 노리고 있었다.

여담으로 시즌 막바지에 두산 베어스넥센과 0.5경기 차로 3위를 차지해 와일드카드전을 피하고 준플레이오프에 직행하자 두산 팬들로부터 노히트 노런이 없었다면 와일드카드전을 치러야 했을 거라며 추앙받고 있다. 물론 농담.

2.4. 방출 이후

2016시즌을 앞두고 LA 에인절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다.

스프링 캠프에서 10이닝 동안 단 1자책점만 기록하는 무난한 활약을 보였으나 개막전 25인 로스터에는 포함되지 못했고 개막을 앞두고 트리플 A로 내려갔다. 결국 콜업되지 못하고 방출.

2017년 현재 FA 상황인데도 새 팀을 못 구하는 중이였으나 그냥 야구를 한 시즌 쉬었다.

현재 도미니카 공화국 국적을 취득하여 도미니카에서 취미생활을 즐기면서 여유롭게 살고 있다고 한다. 아들도 야구선수로 키울 거라고 한다.

그러다가 2017-2018 윈터리그 시즌에 야구에 복귀했다. 소속팀은 도미니카 공화국 프로야구 리그의 아길라스 시베냐스. 강정호랑 한솥밥을 먹게 됐다. 인터뷰에 의하면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는 듯. 도미니카 윈터리그 성적은 통산 28경기 28선발 9승 8패 ERA 2.31로 극강이다.

개막전 로스터에는 들어있지 않다. 로스터를 보면 선발투수로 쓰려는 듯.

첫 경기에서 3.2경기 3실점 기록했다. 전체 결과는 11경기 11선발 2승 2패 ERA 3.38.

2018년에는 멕시칸 리그 리엘레로스 데 아과스칼리엔테스에서 뛰었다. 그러나 4경기 4선발 1승 1패 ERA 7.13으로 부진했고 겨울에는 다시 아길라스 시베냐스에서 뛰었다. 2019년에도 어떻게 멕시칸리그의 사라페로스 데 살티요에 입단했다. 그러나 2경기 2선발 ERA 15.63으로 좋지 못했고, 겨울에는 또 다시 아길라스 시베냐스에서 뛰었다.

겨울에 도미니칸 윈터리그 아길라스 시베냐스에서 뛰면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이 성적을 바탕으로 멕시칸리그에서 소속팀을 구하지만 겨울에 달린 후유증으로 정작 서머리그에서는 부진한 성적을 3년째 거두고 있다. 뭐 이미 평생 벌 돈은 다 벌었으니 상관없다.

도미니카로 귀화한 이후로는 도미니카 국대로도 꾸준히 선발되고 있으며 팀에서도 매년 캐리비안 시리즈에 출전하고 있다.그러나 2020 도쿄 올림픽에는 불참했다.

2023년 오랜만에 멕시코 프로야구 리그에서 선발로 뛰었다. 2023-24 윈터시즌에는 다시 도미니카 공화국 프로야구 리그에서 경기를 치렀으나 정규시즌 2경기 등판에 그쳤고 팀은 포스트시즌에 탈락했다.

이후 보강선수 드래프트에서 뽑히지 않자 베네수엘라 프로야구 리그 팀인 카르데날레스 데 라라에 입단하였다. 베네수엘라 리그 역시 마야가 계약할 때는 정규시즌 막바지였기 때문에 포스트시즌 풀리그에서만 뛰었다. 포스트시즌 풀리그 성적은 3경기(3선발) 10이닝 승패없이 ERA 4.50. 이후 팀이 파이널에 진출하면서 파이널에서도 나올 수도 있다.

2024 시즌에도 멕시코에서 계속 뛰게 되었으며, 멕시칸 리그피라타스 데 캄페체로 이적하였다.

3. 여담


파일:attachment/유네스키 마야/Example.jpg

4.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2010 WSH 5 26 0 3 0 0 5.88 30 3 11 2 12 1.58
2011 10 32⅔ 1 1 0 0 5.23 40 3 10 2 15 1.53
2012 MLB 기록 없음
2013 1 0⅓ 0 1 0 0 54.00 2 1 0 0 0 6.00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2014 두산 11 63 2 4 0 0 4.86 67 6 24 4 54 1.44
2015 13 68⅓ 2 5 0 0 8.17 83 6 31 5 62 1.67
<colbgcolor=#ffff88> MLB 통산
(3시즌)
16 59 1 5 0 0 5.80 72 7 21 4 27 1.58
KBO 통산
(2시즌)
24 131⅓ 4 9 0 0 6.58 150 12 55 9 116 1.56

5. 관련 문서


[1] 호세 콘트레라스, 알렉세이 라미레즈, 메이저 경력은 없지만 오랜기간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페드로 루이스 라조도 이 팀 출신이다. 마야는 라미레즈와는 한솥밥을 먹었다.[2] 한때 같은 팀 동료이자 동갑내기인 알렉세이 라미레즈는 마야보다 2년 더 일찍 메이저리그로 왔다. 비슷한 시기에 메이저리그로 온 아롤디스 채프먼보다 7살 더 많아, 마야가 계약할 당시에도 채프먼보다는 덜 주목받았다.[3] 냉정하게 말해 유네스키 마야는 망명 이후 실패한 케이스였다. 그러나 최악의 케이스는 아닌 게, 야데루 마르티와 야디르 드레이크의 경우는 쿠바 리그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망명하여 메이저리그에 도전하였으나, 단 1경기도 메이저에 콜업되지 못하고 결국 멕시칸리그/일본프로야구로 옮겼다.[4] 이날 두산 투수진은 경기 내내 마야의 3피안타밖에 내주지 않아 NC에게 시즌 최소안타 경기를 안겨줬다.[5] 중계진은 예전과 같은 공이지만 타자들에게 스트라이크 카운트를 잡을 수 있는 공을 던졌다고 평했다[6] 대응했던 양상문 감독은 호세, 페레즈, 가르시아 등의 히스패닉계 선수들과 롯데에서 몇 년동안 같이 있었다. 호전적인 선수들이 장난스럽게 한 욕을 듣고 마야가 한 스페인어 욕 정도야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개연성은 있다. 그리고 사실 해당 언어 모르는 사람도 욕설은 분위기나 욕설을 할 때 흥분해서 올라가는 목소리 톤, 뉘앙스로 무슨 욕인지는 모르더라도 욕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이해하는 경우도 많다.[7] 아울러 두산 출신 선수로서는 OB시절 장호연에 이어 두 번째이다.[8] 마야의 노히트 경기 당시 마지막 타자였다.[9] 이전처럼 아쉬운 수비가 있었던것도 아니고 그냥 볼넷이나 깨끗한 안타로 장작을 차곡차곡 쌓고 2루타와 홈런으로 멸망했다.[10] 주 단위에서 실질적인 공식 언어로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곳은 뉴멕시코 정도이지만, 미국은 연방 공용어 규정은 없어도 구사자가 많은 언어에 대해서는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어서 스페인어로 투표지나 행정 양식이 제공되는 지역이 많다. 실제로 멕시코 국경과 가까운 남부 지역에 가보면 관공서나 안내 문구 등에도 영어와 스페인어가 같이 표기되며, 학교에서도 정식 교육과정에 스페인어가 있다.[11] 라몬 라미레즈나 외국인 대행으로 운영되던 LIG손해보험, 흥국생명 배구단의 사례와 비슷하다. 그나마 LIG의 손정식 코치 겸 통역은 옛날 남미 쪽에서 살았다 보니 스페인어를 구사할 수 있어 다행.[12] 우연이겠지만 OK저축은행 배구단두산 야구단의 응원단장은 동일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