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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02-09 11:20:39

사사오카 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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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도요 카프 No.88
사사오카 신지 (佐々岡真司)
생년월일 1967년 8월 26일
국적 일본
출신지 시마네현 나카군 카나기초[1]
학력 시마네현립 하마다상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9년 드래프트 1순위
소속팀 NTT 주고쿠(1986~1989)
히로시마 도요 카프 (1990~2007)
지도자 히로시마 도요 카프 2군 투수코치 (2014~2018)
히로시마 도요 카프 1군 투수코치 (2019)
히로시마 도요 카프 감독 (2020~)
1991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MVP
사이토 마사키
(요미우리 자이언츠)
사사오카 신지
(히로시마 도요 카프)
잭 하웰
(야쿠르트 스왈로즈)
1991년 일본프로야구 사와무라상
노모 히데오
(킨테츠 버팔로즈)
사사오카 신지
(히로시마 도요 카프)
이시이 다케히로
(세이부 라이온즈)
[[히로시마 도요 카프|히로시마 도요 카프]] 역대 감독
오가타 고이치
(2015~2019)
사사오카 신지
(2020~)
현임


1. 개요2. 데뷔 이전3. 현역 시절4. 은퇴 후5. 지도자 시절

1. 개요

일본의 전 프로야구 선수, 현 히로시마 도요 카프 감독.

선수 시절에는 소속팀의 투수진이 빈약해서 선발, 마무리를 가리지 않는 전천후 투수였지만, 선발과 마무리 모두에서 수준급 성적을 올렸던, 히로시마의 에이스였던 선수.

2. 데뷔 이전

처음에 야구를 시작할 때에는 내야수로 시작하였으나, 고등학교 2학년 때 투수로 전향한다.

투수 전향 후 현 내 최고의 투수로 이름을 날렸지만, 드래프트를 신청하지 않고 사회인야구 NTT 주고쿠에 입단한다. 아마도 1988년 서울 올림픽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승선을 노렸던 것 같지만, 아쉽게도 국가대표에 선발되지는 못하였다.[2]

3. 현역 시절

1989년 드래프트에서 히로시마에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한다. 89년 드래프트는 노모 히데오의 8구단 지명으로 유명한 드래프트인데, 히로시마는 노모를 지명하지 않고 사사오카를 1순위로 지명한다. 그가 나름의 기대를 받고 있었다는 증거.

히로시마의 기대에 부응하듯, 사사오카는 첫해부터 13승 11패 17세이브를 기록하며 팀의 핵심 투수로 성장한다. 17경기 연속 세이브포인트 기록(당시 일본 신기록)은 덤. 다만 13승 17세이브에서 알 수 있듯이 이 해 사사오카는 44경기(13선발) 등판을 한 선발 불펜 가리지 않은 전천후 투수였고, 이후 그의 야구인생 자체가 이와 비슷하게 흘러간다.

2년차부터는 완전한 선발 투수로 활동하면서, 더욱 좋은 성적을 기록한다. 91년 240이닝 17승(센트럴리그 1위) 9패 방어율 2.44(센트럴리그 1위) 13완투의 성적을 거두며 그 해 사와무라상과 센트럴리그 MVP를 동시에 석권한다. 92년에도 그는 197이닝 12승 8패 방어율 3.38의 성적을 거두어 그 당시 은퇴수순을 밟고 있던 키타벳푸 마나부의 뒤를 잇는 히로시마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93년, 입단하자마자 너무 달렸던 탓인지 183이닝 5승 17패[3](1위) 방어율 4.33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한다.

1993 시즌을 선발로 뛰면서 성적을 너무 망치기도 했고, 1년차에 (선발 중간 가리지 않긴 했지만) 이미 마무리 투수로 뛰어본 경험도 있었고, 츠다 츠네미오노 유타카[4] 이후로 마땅한 마무리가 없었던 팀 사정까지 겹치면서, 사사오카는 94년부터 다시 마무리 투수로 전향하기 시작한다. 94년(41경기 14선발 7승 9패 6세이브)과 95년(44경기 12선발 7승 7패 17세이브)에는 첫 해와 비슷한 전천후 투수로 활약하였고, 95년 후반기부터 오노 유타카가 선발로 전향하면서 사사오카가 전업 마무리투수로 등판한다. 전업 마무리투수로 활약한 96년 5승 7패 23세이브[5] 방어율 1.70, 97년 5승 5패 21세이브 방어율 2.65를 기록하며 이제는 히로시마의 믿음직한 마무리 투수로 활약한다. 그리하여 선동열사사키 카즈히로와 본격적으로 경쟁할 세리그 대표 마무리로 자리잡...는가 싶었는데,

1998시즌, 그가 다시 부진에 빠지고 만다. 그러자 사사오카는 마무리투수를 신인 고바야시 칸에이[6] 에게 넘기고, 후반기부터 다시 선발로 전향한다. 그리고 99년에 사사오카는 제2의 전성기를 맞는다. 190이닝 15승 8패 방어율 3.27 13완투[7]의, 91년과 거의 비슷한 성적을 거둔다. 이 시즌 종료 후 사사오카는 FA 자격을 획득하였고, 이제나저제나 돈이 없는 히로시마는 거의 당연히 사사오카를 놓칠 것이라 보았지만, 사사오카가 FA자격을 행사하지 않고 히로시마에 남기로 한다. 2000년에도 선발로 활약하면서 10승[8] 6패 방어율 3.97을 기록하지만, 시즌 중 부상을 당하고 만다. 이 여파로 01년에는 다시 마당쇠 역할을 하고, 02년에야 선발로 완전히 복귀한다. 02년 성적은 153.2이닝 8승 9패 방어율 3.46. 승운이 따르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03년에도 선발로 시즌을 시작했지만, 그 해 신인으로 들어와서 바로 마무리투수 역할을 맡고 있던 나가카와 카츠히로가 후반기에 힘이 빠지고 말아서(…) 다시 마무리를 맡게 되고[9], 04년에는 또 전천후 투수가 되었다가[10] 8월에 팀 사정상 다시 선발로 전향한다. 선발로 전향한 이후 8경기 등판하여 48.1이닝 동안 방어율 1.48을 기록. 이 기억을 가지고 05년에도 선발로 시즌을 시작하지만, 탈탈 털리고 신인때 이후로 한 번도 간 적 없는 2군을 다녀온 다음 다시 불펜으로 전향한다(…). 05년 성적은 30경기(8선발) 1승 6패 4홀드 방어율 6.33. 확실히 망했다.

06년, 그는 팀 내 최고령 선수가 되었고, 나이도 있고 하여 다시 선발로 전향, 4선발로 시즌을 시작한다. 이제 나이가 39세인데다 전년도에 거하게 털려서 아무도 그의 기대하지 않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웬걸, 27경기(모두 선발) 149.2이닝을 소화하며 팀의 에이스 구로다 히로키와 함께 팀 내 단 둘뿐인 규정이닝 충족 투수가 되었다. 방어율은 4.02로 좋지만은 않았으나 39세 투수의 성적임을 감안하면 나쁜 성적은 아니었다. 여담으로 요미우리전에서 4번타자로 나왔던 이승엽에게 고의사구를 내줬다가 고쿠보 히로키에게 털린적이 있다.

그러나 06년의 성적은 일종의 회광반조였고, 이듬해 07년에는 다시 6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며 부진한다. 그리고 9월 19일 은퇴 의사를 밝혔고, 10월 6일 은퇴경기[11]를 가지며 그라운드를 떠난다.[12]

4. 은퇴 후

은퇴 후에는 주로 야구 해설가로 활동했는데 2008년부터 7년간 주고쿠 방송에서 활동했으며, 2012년부터는 TBS 등에서도 야구 평론 프로그램 및 히로시마 경기 중계 등을 겸임했다.

5. 지도자 시절

5.1. 히로시마 도요 카프 감독

리그 4위에 그친 전임 오가타 고이치 감독이 사임하자 2019년 10월 7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 제 19대 감독으로 취임했다.# 구단에서 현역으로 활동했던 투수 출신 감독으로는 하세가와 료헤이 전 감독 이후 무려 53년만이라고 한다.
[1] 현재의 하마다시[2] 1년 후배인 노모 히데오는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되어 은메달을 획득한다. 고등학교 졸업반 시절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의 입단 제의를 받았지만 투구폼 변경을 조건으로 내걸었고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노모는 사회인야구팀인 신일본제철 사카이에 입단했다. 1989년 8개 구단이 노모를 지명했고 킨테츠가 당첨제비를 뽑아 결국 킨테츠 유니폼을 입혔다.[3] 사사오카 이후 단일시즌에 17패 이상의 패전을 기록한 투수는 나오지 않고 있다.[4] 이쪽도 사사오카처럼 커리어 내내 선발과 구원을 계속 오간 좌완 에이스로 통산 148승 138세이브 ERA 2.90의 뛰어난 커리어를 남겼다.[5] 5일 연속 세이브(일본프로야구 기록)를 달성[6] 이 해 카와카미 겐신, 다카하시 요시노부라는 두 거물 신인과 수위타자를 넘보던 한신의 신인 외야수 츠보이 토모치카와 함께 치열한 신인왕 레이스를 펼칠 정도의 활약을 펼쳤다. 결국 신인왕은 카와카미가 탔지만 다카하시, 츠보이, 고바야시 모두 신인 특별 표창을 받았다. 하지만 이 해 혹사의 영향으로 이후 별다른 활약은 보이지 못했다.[7] 노히트노런 1회(5월 8일 주니치전, 상대 선발 이상훈(좌완투수)) 포함[8] 4월에만 5승을 기록했다.[9] 이 해 통산 100승 100세이브를 달성한다.[10] 후반기에 선발로 전향하기 전에도 3게임을 선발로 등판했다.[11] 이 때 상대팀 요코하마의 주포 무라타 슈이치가 팬서비스용 원포인트 등판을 한 사사오카를 상대로 본인의 단독 홈런왕 타이틀을 확정짓는 홈런을 때려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홈런왕과 함께 은퇴경기 브레이커의 타이틀을 획득한다 자세한 사항은 무라타 항목 참조.[12] 은퇴 세레모니 다음날 야쿠르트 원정 경기에서 드래프트 동기이자 같은 해 은퇴한 야쿠르트의 명포수 후루타 아츠야를 상대하러 깜짝 등판했다. 이 타석에서 후루타를 유격수 땅볼로 잡아낸 것이 사사오카의 진짜 마지막 등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