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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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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보유 기록 |
일본인 최초 3년 연속 200이닝 이상 소화 |
일본인 최초 내셔널 리그 전구단 상대 승리 |
일본인 최다 MLB 구단 상대 승리 (29구단, 노모 히데오와 타이 기록)[A][B] |
쿠로다 히로키의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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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타세 요토시 (1988~1996) | → | 쿠로다 히로키 (1997~2007, 2015~2016) | → | 영구 결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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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몬 마르티네스 (2007) | → | 쿠로다 히로키 (2008~2011) | → | 맷 트레너 (20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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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0000><colcolor=#ffffff> 히로시마 도요 카프 어드바이저 | |
히로시마 도요 카프 No.15 | |
쿠로다 히로키 黒田博樹 | Hiroki Kuroda | |
출생 | 1975년 2월 10일 ([age(1975-02-10)]세) |
오사카부 오사카시 스미노에구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우에노미야고 - 센슈대학 |
신체 | 185cm, 92kg |
포지션 | 선발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96년 드래프트 2라운드 (広島) |
등장곡 | B'z - RED[5] (2015~2016) |
소속팀 | 히로시마 도요 카프 (1997~2007)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08~2011) 뉴욕 양키스 (2012~2014) 히로시마 도요 카프 (2015~2016) |
프런트 | 히로시마 도요 카프 구단 어드바이저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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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리는 함께 싸웠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미래에 빛나는 그날까지
그대가 눈물을 흘린다면 그대의 눈물이 되어 주리
카프의 에이스 쿠로다 히로키
我々は共に闘って来た 今までもこれからも…
未来へ輝くその日まで
君が涙を流すなら 君の涙になってやる
Carpのエース 黒田博樹
2006년 시즌 카프의 마지막 경기, FA를 앞두고 쿠로다에게 보낸 팬들의 현수막. 쿠로다는 이 글귀를 보고 평생 히로시마 맨이 될 것을 다짐한다.
미래에 빛나는 그날까지
그대가 눈물을 흘린다면 그대의 눈물이 되어 주리
카프의 에이스 쿠로다 히로키
我々は共に闘って来た 今までもこれからも…
未来へ輝くその日まで
君が涙を流すなら 君の涙になってやる
Carpのエース 黒田博樹
2006년 시즌 카프의 마지막 경기, FA를 앞두고 쿠로다에게 보낸 팬들의 현수막. 쿠로다는 이 글귀를 보고 평생 히로시마 맨이 될 것을 다짐한다.
"더 이상 내년을 위해서 야구하는 나이는 아니다. 내가 왜 지금 야구를 하는지 생각하면서 늘 완전하게 불사르고 싶다. 다년계약을 하면 아무래도 2년째의 일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여력을 남기며 시즌을 치르고 싶지는 않다. 팀에 리스크를 떠안기지 않고, 매년 결과로 내 가치를 어필해야 한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의 공포, 로테이션을 지키지 못했을 때의 두려움은 언제나 짊어야 할 몫이다."
메이저리그에서 단년계약만을 고집하는 까닭을 묻자.
메이저리그에서 단년계약만을 고집하는 까닭을 묻자.
일본의 前 야구 선수.
NPB에서 11시즌 활약 후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7시즌 동안 훌륭한 성적[6]을 거두고 친정팀에 복귀한 의리로도 유명하다. 2016년 9월 10일, 카프의 25년 만의 리그 우승이 결정된 경기의 승리 투수이자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심장으로 여겨지는 선수이다. 히로시마 카프의 15번 영구 결번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에는 빠른 공의 구위로 찍어누르던 투수였으나, 30대 이후 제구력에 중점을 두고 싱커와 슬라이더, 스플리터로 맞춰잡는 스타일로 변신했다.
통산기록은 NPB 321경기 124승 105패 ERA 3.55, 2021⅔이닝, MLB 212경기 79승 79패 ERA 3.45, 1319이닝, 2005년 최다승리 1회, 2006년 최우수 방어율 1위 1회, 2005년 베스트 나인 1회, 2005년 골든 글러브 1회이며 그야말로 일본 야구사에 남을 에이스라고 할 수 있다.
2. 선수 경력
쿠로다 히로키의 선수 경력 | |||
통합 선수 경력 : 쿠로다 히로키/선수 경력 | |||
카프 1기 | |||
2015년 | 2016년 | ||
2008년 | 2009년 | 2010년 | 2011년 |
2012년 | 2013년 | 2014년 | |
2004 아테네 올림픽 |
3. 은퇴 이후
2017년에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귀국한 이후, 닛테레, 히로테레, TBS 테레비, J스포츠 등에서 해설가로 활동했다.2022년 시즌 종료 후, 사사오카 신지 감독의 사임으로 감독 후보군에도 올랐지만 최종적으로 아라이 타카히로가 감독으로 취임했다. 대신에,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서 구단 어드바이저를 제의하면서 6년만에 구단에 복귀했다.
4. 피칭 스타일
포심, 스플리터, 싱커, 슬라이더, 커브 등 다양한 구질을 이용하며 스트라이크 존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땅볼을 양산해 내는 땅볼형 투수다. 탈삼진 비율이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볼넷도 그만큼 적게 내준다.여러 구질을 던지지만 역시 가장 크게 의존하는 주구종은 그렉 매덕스에게 배운 싱커. 쿠로다의 싱커는 싱커의 전형적인 움직임, 좌타자 바깥쪽으로 휘어지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구속은 평속이 91~2마일에서 잡히는 패스트볼 구속을 보였다. 이런 위력적인 싱커를 바탕으로 땅볼을 유도하는 게 쿠로다의 주무기. 싱커를 좌타자의 몸쪽으로 붙이면 타자의 몸에 맞을듯하다가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꺾이며 스트라이크존으로 떨어진다. 일명 '프론트도어 싱커'로 좌타자 입장에서는 눈 뜨고 코 베이는 격. 또한, 일본프로야구 최후의 완투형 투수로 불릴 정도로 이닝 소화력이 뛰어났다.[7]
히로시마에서 에이스 노릇을 할 때는 포심의 구위만으로 타자들을 압도할 수 있어서 굳이 공끝이 더러운 구질을 던질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에도 준수한 성적을 남겼지만 더욱 잘하기 위하여 빠르게 스타일을 바꾸며 꾸준히 준수한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 연습 투구 때는 던진적이 없는데 실전에서 계속 던져보니까 점점 더 공의 움직임이 좋아졌다고 한다. 또한 좌타자 몸쪽을 파고드는 싱커의 사용법은 2008년 다저스에서 선수생활 마지막해를 보내던 그렉 매덕스에게 배웠다고 한다. 비디오를 같이 보면서 싱커를 던지기 전에 어떤 구질을 던지고 어떤 카운트에서 던져야 하는지를 설명해 줬다고.쿠로다 히로키 스페셜 보이스 "인상에 남지 않는 구종은 의미가 없다'
결정구라고 할 수 있는 슬라이더는 스카우팅 리포트에 'Great movement'라고 표현할만큼 위력적이어서 타자는 더더욱 헷갈릴 수 밖에 없다. 거기다 일본투수들의 상징인 스플리터 역시 날카로운 각으로 떨어지며 포심,커브도 간간히 던지기때문에 타자 입장에서 쿠로다의 공을 상대할 때에는 다섯가지 구종을 생각해야 하기때문에 난감하기 그지 없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커브의 구사 비율이 낮다는 점 정도.
아쉬운 점은 역시 나이. 너무 늦은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서 해가 갈 수록 전체적인 구속이, 특히 포심의 구속이 줄고 있다.
나이로 인한 체력 문제 때문에 해마다 시즌 중반 이후 활약이 점점 줄어드는 것 역시 문제다. 시즌을 거듭하면 거듭할 수록 부진이 시작되는 시기가 앞당겨지고 그 깊이 또한 깊어져 가는 게 불안한 부분. 구속도 점점 줄어들고 있어 아무래도 그와 계약을 할 때에는 그가 꾸준히 잘 해온 선수여도 '올해도 잘 해 줄까?' 하는 불안감이 다른 선수들에 비해 큰 게 사실이다. 본인도 팀에 누를 끼치기 싫어 단년 계약을 하는 멘탈은 확실히 대단하다. 특히 뉴욕 양키스에선 다른 선수들이 부상으로 줄줄이 낙마하는 와중에도 힘이 부치긴 하더라도 끝까지 시즌을 끌고 나가는 모습을 보면 나이가 있어도 자기관리는 확실한 선수다.
게다가 항상 노트를 만들어 가지고 다니며 스스로 분석한 리그 내 타자의 핫존, 타격 패턴등을 기록해서 연구하는 학구파이다. 다년 계약을 고집하지 않고 매년 1년 계약연장만 요구하는 이유도 스스로 긴장감을 유지하여 최선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양키스 시절 브라이언 캐쉬먼 단장과 조 지라디 감독이 쿠로다를 절대적으로 신뢰했던 이유가 있다. 관련글
뛰어난 자기관리와 혹사와 거리가 있던 고교시절 덕분인지 선발진에 자리잡은 뒤로는 타구에 얼굴을 강타당하는 등의 사고들을 뺀다면 팔꿈치나 어깨 등 중요 부위의 큰 부상으로 인한 장기이탈이 거의 없이 꾸준히 이닝을 소화하였다. 일본 시절에도 6차례 리그 완투 1위(2000~02, 04~05, 07)를 하는 등 완투를 밥 먹듯이 했고 메이저리그에서도 상술한 그 사고가 있던 시즌을 빼면 매 시즌 31~32경기를 등판하며 로테이션을 꼬박꼬박 소화했다. 그가 미일 통산으로 소화한 3340.2이닝은 1990년대 데뷔한 일본인 투수로는 역대 최다 이닝 소화이다.[8][9]
5. 기타
- 쿠로다는 2015년까지 카프의 유니폼을 입고 가을야구를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2016년 팀이 잘 나가면서 가을야구를 할 가능성이 높아졌고, 결국 리그 우승이 결정되면서 가을야구를 드디어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일본시리즈 진출까지 결정되면서 첫 일본시리즈에도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신은 그에게 우승까지는 허락하지 않았다.
- 히로시마 출신의 1살 연상 일반인 여성과 2001년 결혼하여 2명의 딸을 두고 있다. 메이저리그 진출할 당시 시합에 집중하기 위해서 혼자 미국으로 건너갔으나 약 2년 뒤 가족들 모두 LA로 이주하였다. 쿠로다가 뉴욕 양키스로 이적하고, 일본 히로시마로 복귀할때도 가족들은 LA에 남아있고 시즌 종료 후 쿠로다가 LA로 돌아가서 가족들과의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 마쓰이 히데키 커리어 300호 홈런의 제물이었다. 그리고 마쓰이는 쿠로다의 프로 첫 탈삼진의 제물이었다. 같은 학년인 두 선수는 서로 꽤 친한 편이다.(쿠로다가 빠른 생일이기 때문)
- 히로시마 카프 복귀 후 입장곡을 일본의 국민밴드 B'z가 직접 만들어 헌정했다. 원래부터 친분있던 마츠모토 타카히로와 2015년 2월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가 나왔고, 한 달 만에 곡을 만들어서 3월 29일 복귀 등판부터 사용하였다. 원래는 싱글발매 계획이 없었으나 반응이 좋아 6월 10일 싱글 발매되었다. 노래제목은 카프의 상징인 「RED」로 싱글사양에 적반(赤盤)이 존재하며 100매 랜덤으로 쿠로다와 비즈 멤버 2명의 친필 사인이 들어 있다고 한다.[10]
- 본 문서량이 방대하고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한국 언론에서 쿠로다 히로키를 다루는 기사들을 쓸 때 이 문서를 많이 인용한다. 대부분의 기사들이 이 항목의 내용과 겹치거나 서술 흐름이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다.
- 아라이 타카히로가 카프에 복귀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카프팬들에게 단단히 찍힌 아라이가 카프 복귀에 비난을 받을까 망설였지만, 마침 복귀하게 된 쿠로다와 상담하여 용기를 얻고 복귀를 결정했다.
[A] NPB는 카프 원맨팀이라 당연히 카프전 승리는 없다. MLB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상대로만 승리 투수를 기록하지 못했다.[B] 2014년 8월 28일 디트로이트전에서 승리 요건을 갖췄지만 불펜이 쿠로다의 승리 요건을 지워버렸다.[A] NPB는 카프 원맨팀이라 당연히 카프전 승리는 없다. MLB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상대로만 승리 투수를 기록하지 못했다.[B] 2014년 8월 28일 디트로이트전에서 승리 요건을 갖췄지만 불펜이 쿠로다의 승리 요건을 지워버렸다.[5] B'z가 만든 쿠로다 히로키의 전용 응원가. B'z가 장르를 불문하고 한 개인을 위해 노래를 제공한 것은 최초였다.[6] 7년간 bWAR 21.6, fWAR 22.4를 기록했다.[7] 현장에 여전히 보수적인 야구관을 가진 지도자들이 있는 것은 미국이나 한국과 별다를 바 없지만, 일본 역시 트랙맨 시스템 등 현대적인 야구 설비와 데이터 야구가 도입되고 투수 역할의 분업화가 진행되면서 선발의 완투는 과거에 비해 줄어들고 있다.[8] 일본프로야구로만 한정하면 미우라 다이스케가 3276이닝으로 90년대 데뷔 투수 중 최다 이닝을 소화했지만 쿠로다의 미일통산 기록보다는 뒤쳐진다. 거기다가 주 1회 등판이 보편적인 일본과는 다르게 162경기를 치르는 메이저리그는 정말 빡빡하면 일주일에 두 번도 등판할 수 있는 지라..[9] 어느정도인지 감이 안 잡힌다면 선수생활을 굉장히 오래해서 각각 50살(31년간 현역), 47살(28년간 현역)에 은퇴한 야마모토 마사나 쿠도 키미야스와 비교해도 야마모토가 쿠로다보다 고작 8이닝 더 던졌고, 쿠도와의 비교에선 오히려 쿠로다가 4이닝을 앞선다. 심지어 쿠로다는 은퇴하던 2016년에도 10승과 3점대 초반 평균자책점에 규정이닝을 넘긴 선발이었다. 덧없는 가정이지만 쿠로다가 1년만 더 현역으로 활동하고 은퇴했다면 야마모토 마사도 제쳤을지 모른다.[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