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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래드 페니의 수상 경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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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 |
2006 | 2007 |
2006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다승왕 | ||||
돈트렐 윌리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 | 브래드 페니 데릭 로우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애런 하랑 (신시내티 레즈) 존 스몰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브랜든 웹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카를로스 잠브라노 (시카고 컵스) | → | 제이크 피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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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 페니 Brad Penny | |
본명 | 브래드 웨인 페니 Brad Wayne Penny |
출생 | 1978년 5월 24일 ([age(1978-05-24)]세) |
오클라호마 주 블랙웰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브로큰 애로우 고등학교 |
신체 | 193cm / 122kg |
포지션 | 선발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96년 드래프트 5라운드 (ARI) |
소속 팀 | 플로리다 말린스 (2000~2004)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04~2008) 보스턴 레드삭스 (2009)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2009)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2010)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2011)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2)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2012) 마이애미 말린스 (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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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이저리그와 일본프로야구에서 활약했던 투수. 한국에서는 빵페니라는 애칭으로 불렸다.2. 커리어
2.1. 마이너리그 시절
고졸 투수로 5라운드 가장 마지막 순위로 애리조나에 뽑혀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매 시즌 로우 레벨을 폭격하면서 탑 유망주의 반열에 오른다. 1999시즌 시작 전 베이스볼 아메리카 기준 유망주 랭킹 전체 5위였을 정도. 그러나 페니는 1999시즌 AA 레벨에서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고, 애리조나는 신생 팀으로 빠른 우승을 노리던 팀이었기 때문에 페니를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결국 맷 맨타이[1]를 상대로 한 3:1 트레이드의 대상으로 블라디미르 누녜즈,[2] 에이브러햄 누녜즈와 함께 플로리다 말린스로 이적하게 된다.베이스볼 아메리카 유망주 순위 5위였다. 비슷한 수준의 (역대) 톱급 유망주들의 성적은 메이저 리그 유망주 순위를 참조.
2.2. 플로리다 말린스
플로리다는 1997년 파이어 세일 이후 리빌딩 작업이 착실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파이어세일과 탱킹으로 얻은 A.J. 버넷과 조시 베켓은 유망주 랭킹 상위에 위치하는 좋은 팜을 가진 팀이었다. 2000년 A+리그로 강등되었다가 AAA까지 폭격한 페니는 메이저리그에 콜업되어 반 시즌을 보내며 성장세를 보였다.2001년 풀타임 첫 시즌을 맞이하면서 라이언 뎀스터, 버넷과 함께 팀의 기둥이 되면서 활약한다. 그러나 풀타임 2년차인 2002년에는 부상을 겪으며 소포모어 징크스에 시달린다.
2003년에는 플로리다에서 영입한 투수인 칼 파바노, 버넷의 부상당한 자리를 메운 팀의 넘버원 유망주 조시 베켓, 갑자기 두각을 나타낸 유망주 돈트렐 윌리스가 대박을 터뜨린 데다가 저니맨 마크 레드먼이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며 폭발, 갑툭튀 영건 로테이션이 구축되며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우승을 기록한다.
2004년 시즌 중 선발진이 많았던 플로리다가 다저스로 빌 머피, 최희섭과 함께 후안 엔카나시온,[3] 폴 로두카, 기예르모 모타과 팀을 맞바꾸는 트레이드를 하면서 페니는 LA 다저스로 이적하게 된다.
2.3. LA 다저스
2004년 짧은 기간이나마 준수한 활약을 보였던 페니는 2005년에 3년간 25m을 받는 연장 계약을 체결한다. 전성기에 접어드는 페니는 2006년 처음으로 올스타에 선발되었으며, 그의 평균 시속 150대 중반의 패스트볼은 가장 위력적인 패스트볼 3위에 오르기도 했다. 페니의 최절정기는 2007년. 16승 4패, 평균자책점 3.03을 기록하며 내셔널리그 사이 영 상 3위에 올랐다. 그러나 2008년 부상으로 자주 부상자 명단에 오르며 심각하게 구위가 저하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FA를 앞두고 심각하게 부진을 보인다. 다저스는 1년의 팀 옵션이 있었지만 사용을 포기함에 따라 페니는 FA 자격을 얻었다.2.4. 이후의 커리어
보스턴과 5m에 단년 계약을 맺으며 FA 재수를 다짐했다. 그러나 초반에는 그럭저럭한 모습을 보였으나 떨어진 구위로는 한계를 보였으며, 결국 계약 전체를 채우지 못 하고 방출되었다. 그리고 이후 샌프란시스코와 계약하여 좋은 활약을 보이게 된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는 페니와 연장계약을 맺지 않았기 때문에 FA로 다시 풀려나게 되었고, 세인트루이스와 1년 계약하게 된다. 좋은 활약을 펼치던 페니는 갑작스러운 경사근 부상으로 다시 한 번 시즌아웃하게 된다. 그는 이후 2011년 디트로이트와 계약을 하여 거의 풀시즌을 소화하지만 심각한 구위저하로 이미 메이저리그에서의 경쟁력을 잃었다는 평가였다.그래서 2012년에는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1년 약 180만 달러에 계약하며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하게 된다. 쓰리펀치이던 스기우치 토시야(국내 FA, 요미우리행), 와다 츠요시(해외 FA, 볼티모어행), 데니스 홀튼(자유계약, 요미우리행)이 모두 빠져나간 선발진의 대들보 역할을 기대받았지만, 개막 5차전인 4월 4일 경기에서 3.1이닝 64구 6실점 4자책점의 부진한 피칭을 보였다. 그리고 그 한 경기만에 어깨가 다쳤다는 핑계를 대며 검진을 요구하였으나, 검진 결과는 모두 음성이었고 페니는 한 달 만에 계약을 철회하며 일본을 떠나게 된다. 소프트뱅크는 일본의 타 팀에서 뛰지 못 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철회해주었다. 소프트뱅크 입장에서는 희대의 먹튀. 일본프로야구 통산 성적은 그래서 1경기 등판, 3.1이닝 투구, 평균자책점 10.80. 참고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버치 스미스와 비슷하게 귀국하면서 SNS에서 “미국에 돌아와서 너무 좋다. 미국 최고!” 라고 하는 바람에 일본 팬들에게 욕을 먹고 페니스라는 멸칭으로 불렸다.
샌프란시스코와 계약하였지만 이 당시에는 더 이상 선발로서는 활약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러 결국 불펜으로 시즌을 소화하여 22경기에 등판한다. 결과는 방어율 6점대로 다시 한 번 실패. 1년간 쉬었던 페니는[4] 2014년 캔자스시티와 계약을 하지만 스프링캠프의 부진으로 스스로 방출을 요구하게 된다. 그리고 6월 다시 한 번 말린스로 복귀하며 메이저리그 복귀를 타진했다. 그러나 결과는 빈약했다.[5] 결국 그는 다시 한 번 방출당한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거치며 마이너에서 기대를 엿봤으나 결국 성공하지는 못 했고[6], 결국 2016년 은퇴하고 만다.[7]
통산 성적은 121승 101패, 평균 자책점 4.29, 탈삼진 1273개를 기록했다.
3. 투구 스타일
한 때 이슈였던 말린스 출신 영건 파이어볼러들 중 한 명. 강력한 패스트볼을 바탕으로 컨트롤도 뛰어난 편이었다. 구속이 좋아 라이징 패스트볼이라는 평도 있을 정도였다. 받쳐주는 구질인 스플리터나 싱커도 수준급이었으며 커브와 커터도 던졌다. 커리어 초창기 때는 패스트볼 위주의 투구로 공의 위력에 비해 이닝 소화가 힘들다는 평이 있었지만, 다저스 시절의 페니는 이미 플로리다 시절부터 인정받던 컨트롤 능력을 살려 좋은 로케이션에 투구하는데 집중하여 좋은 성과를 냈다. 아쉬운 점은 파이어볼러의 숙명과도 같은 부상. 결국 커리어 전성기를 부상으로 마감하고 추락하고 만다. 같은 팀의 동료였던 버넷과는 거의 반대의 길을 걸었는데 버넷은 커리어 초창기에 잦은 부상을 겪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투구 스타일을 변경하여 38세 시즌까지 준수한 활약을 보이며 은퇴한 반면, 페니는 패스트볼 위주의 투구를 고수하여 좋은 성과를 이루어냈으나 결국 커리어 후반에는 잦은 부상을 겪으며 몰락하고 말았다.4. 관련 문서
- 버치 스미스 - KBO 리그 역대 최악의 외국인 선수이자 브레드 페니와 판박이다. 둘 다 제대로 못 던진 주제에 퇴출 이후 뒤끝을 날려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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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 랜디 존슨 | 커트 실링 | 존 스몰츠 | |||
2003년 | 에리크 가녜 | 제이슨 슈미트 | 마크 프라이어 | |||
2004년 | 로저 클레멘스 | 랜디 존슨 | 로이 오스왈트 | |||
2005년 | 크리스 카펜터 | 돈트렐 윌리스 | 로저 클레멘스 | |||
2006년 | 브랜든 웹 | 트레버 호프먼 | 크리스 카펜터 | |||
2007년 | 제이크 피비 | 브랜든 웹 | 브래드 페니 | |||
2008년 | 팀 린스컴 | 브랜든 웹 | 요한 산타나 | |||
2009년 | 팀 린스컴 | 크리스 카펜터 | 애덤 웨인라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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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병현 이전의 애리조나 마무리로 활약한다. 맨타이의 부상으로 김병현이 마무리 자리에 들어갔으며, 그의 복귀 후 김병현은 자신이 원하던 선발투수가 된다.[2] 플로리다에서 불펜으로 활약했으나 2년간 90이닝을 던지는 혹사를 당한 끝에 부상을 당했고, 성장하지 못하고 은퇴하고 만다.[3] 에드윈 엔카나시온의 형이다.[4] 무소속으로 있던 2013년에 결혼했다. 35세 결혼으로 운동선수는 물론 일반인 기준으로 잡아도 늦게 결혼한 편.(군대+휴학에 관대한 분위기 때문에 사회에 늦게 진출한다는 한국 남성들도 만 33-34세가 결혼 평균 연령이다.)[5] 8경기(4선발)에 나와 6점대로 최악이었다.[6] 2015년 시카고에서는 트리플A 선발 풀시즌을 보냈으나 성적이 좋지 않아 콜업이 없었고, 2016년 토론토와는 마이너 계약만 맺고 뛰지 않았다.[7] 다만 1978년생으로 은퇴 당시 38세의 고령이었다. 애초에 30대 초중반에 폼이 떨어져 은퇴하는 선수고 수두룩한 것을 감안하면 36세까지 메이저 등판을 해냈다는 것도 나름 장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