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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다 마사히코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000019> 파일:오릭스 버팔로즈 엠블럼.svg오릭스 버팔로즈
역대 개막전 선발 투수
(한큐 시절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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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www.suruga-ya.jp/g8828086.jpg
이름 카네다 마사히코 (金田政彦)
생년월일 1969년 4월 30일 ([age(1969-04-30)]세)
출신지 오이타현 분고타카다시
국적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신체 177cm / 62kg
프로입단 1992년 드래프트 2위
소속팀 오릭스 블루웨이브 (1993~2004)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05~2006)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

1. 개요

오릭스 블루웨이브,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소속의 야구선수.

재일교포 3세로 한국 이름은 김정언(金政彦)[1]이다.

2. 선수 경력

프로 1년차부터 1군에 정착했고 첫 등판은 1993년 4월 11일 치바 롯데 마린즈전이였다. 두번째로 구원등판을 해서 2⅔이닝 무실점 투구를 기록한다. 이는 가네다의 첫 등판/세이브였다. 5일 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전에서는 1⅓이닝 2실점하면서 승리한다.

하지만 가네다 마사히코의 1993 시즌은 그리 좋은 활약이 아니였다. 28시합에 등판해 53이닝을 소화하고 33실점을 내줘 방어율은 5.26이였다. 선발 등판은 딱 한번 있었고, 매 이닝 안타를 맞는 꼴이였다. 가네다는 거의 릴리프로 나온 경우가 많았다. 1994 시즌은 더욱 부진해. 26이닝만을 소화하고 방어율은 8점 대에 이르렀다. 그 원인은 제구 난조였다. 1993년 53이닝동안 33볼넷, 1994년 26이닝 17볼넷을 내줄 정도. 결국 가네다는 1995년 3이닝만을 1군에서 던지고 2군에서 시간을 보낸다.

1995년 가네다는 웨스턴리그[2]에서 최다승 타이틀을 획득해 다시 1996년에 1군으로 승격되었고 문제가 되던 제구도 어느 정도 잡아간다다. 1996년에는 29시합 중 19시합을 선발로 등판하였고, 완투도 두번이나 기록하였다. 첫 완투는 1996년 5월 7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전에서 9이닝 1실점을 하면서 패전. 같은해 8월 25일 킨테츠 버팔로즈전에서 9이닝 1실점 완투승을 기록하여 생애 첫 완투승을 거둔다. 그리고 그 해 일본시리즈 4차전에 구원등판했으나 6회초 오오모리 타케시[3]에게 솔로 홈런을 맞으면서 강판된 뒤 일본시리즈에서의 등판은 없었다.

1999년은 가네다 마사히코의 커리어 하이 시즌이였다. 29시합을 선발로 등판하여 188이닝을 투구하였고 완봉승도 기록한다. 1999년 5월 30일 닛폰햄 파이터즈전에서 9이닝 무실점 투구를 하면서 팀을 1:0승리로 이끈다. 이때 오릭스가 낸 점수는 다구치 소의 솔로 홈런으로 낸 1점이 유일했다. 그리고 이 해에는 올스타전에도 출전했고, 2001년에는 생애 첫 개막전 선발을 맡았다.

2002년에도 좋은 활약을 보였다. 생애 두번째 올스타전 출장에 2.5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면서 첫 타이틀인 최우수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획득한다.[4] 하지만 가네다 마사히코는 평균자책점왕 타이틀을 따고도 23번 선발 등판해서 4승 7패의 성적밖에는 거두지 못했다. 당시 오릭스의 막장이던 팀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일화. 2002 시즌 오릭스는 이시게 히로미치가 감독 취임 후 첫번째 시즌이었으며 퍼시픽리그 6개 구단 중 최하위(50승 87패 3무)를 기록했고 1위 세이부와는 39.0게임, 5위 닛폰햄과는 28.0게임차였다.

2004년, 치바 롯데 마린즈에서 뛰던 이승엽에게 퍼시픽리그 전구단 상대 홈런을 허용하였다.[5] 같은 해 긴테쓰의 경영난으로 인해 오릭스 블루웨이브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가 합병된다. 이때 가네다는 선수 분배 드래프트를 통해 2005년 신생구단인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로 이적한다.

2005년 시즌, 가네다는 6월 9일 풀캐스트 스타디움 미야기에서 주니치 드래곤즈타츠나미 카즈요시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면서 통산 1000이닝 투구를 달성한다. 이는 일본 프로야구 역대 301번째 기록이다. 100패에 근접할 정도로 암울한 팀 사정 속에서 가네다 역시 3승 6패에 6점대 방어율에 그치면서 다시 2군으로 강등된다.

2006년, 가네다의 시즌은 2군에서 시작한다. 가네다는 이스턴리그 방어율 리그 2위 로 다시 부활의 조짐이 보이는 듯 했으나 9월 25일. 구단에서 전력외 통보를 받고 현역에서 은퇴한다. 가네다는 방어율 타이틀을 받은 이후로 부상에 시달려 그리 큰 활약은 하지 못하고 쓸쓸하게 은퇴한다. 어찌 보면 불운한 팀 사정 속에서 고군분투했지만, 당시 구대성 선수의 소식에 관심이 있던 몇몇 사람들이나 기억하고 있을까.

2007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1년 간 배팅볼 투수를 맡았다.

3. 플레이 스타일

가네다 마사히코는 177cm, 62kg로 투수로서는 다소 작은 체격이였다. 하지만 140km/h 후반에 달하는 패스트볼과 좋은 슬라이더를 던졌다.


[1] 구대성이 2001-2004년, 오릭스에서 뛸 때 가네다 마사히코는 구대성에게 자신이 재일동포라는 것을 숨기지 않고 구대성과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고 한다.[2] 일본프로야구/2군 리그는 동/서로 나누어 웨스턴, 이스턴 리그로 구성된다. 당시 웨스턴 리그에는 한신 타이거스, 오릭스 블루웨이브, 킨테츠 버팔로즈,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히로시마 도요 카프, 주니치 드래곤즈가 속해있었다.[3] AKB48오오모리 미유의 아버지. 일본판 2군 본즈로 유명했다.[4] 2위는 구대성. 2.52의 방어율을 기록. 이쪽도 물빠따에 고통받은건 마찬가지라 5승밖에 거두지 못했다.[5] 하지만 그 경기에서 롯데는 15-3으로 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