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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03-05 16:32:53

랜디 메신저

파일:메신저.jpg
랜달 제롬 "랜디" 메신저 (Randall Jerome "Randy" Messenger)
생년월일 1981년 8월 13일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미국
출신지 네바다 주 레노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9년 드래프트 11라운드 (FLA)
소속팀 플로리다 말린스(2005~2007)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2007)
시애틀 매리너스(2008~2009)
한신 타이거스(2010~2019)
1. 소개2. 커리어
2.1. 메이저리그 시절2.2. 한신 타이거스
3. 연도별 성적4. 플레이 스타일5. 기타6. 관련 문서

1. 소개

메이저리그, 일본 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에서 활동한 선발 투수. 10년간 한신의 1선발을 맡으며 한신의 2010년대를 대표하는 에이스.

2. 커리어

2.1. 메이저리그 시절

위에 드래프트에 적혀 있듯이 네바다 출신이지만 플로리다 말린스의 지명을 받아 그 곳에서 프로 생활을 하게 되었다. 마이너부터 착실하게 단계를 밟아 나가다 2005년에 드디어 감격의 첫 메이저 콜업을 받게 되었다. 이 해에는 주로 중계로 나와서 29경기 37이닝 22자책 5.3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여담으로, 이 해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 구원 등판한 적도 있었는데, 이 때 추후 한신 동료가 되는 맷 머튼과 타석에서 상대하기도 했다.

2007년 5월 31일 안토니오 베니테스의 트레이드 상대가 되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이 때 까지 2007시즌 기록은 23경기 구원 등판하여 1승 1패 ERA 2.66. 그러나 1년 후인 2008년 5월 마이너로 옵션되었고, 1개월 후 그는 시애틀 매리너스로 이적하게 된다. 그 해 시애틀에서의 성적은 13경기 구원 12.2이닝 ERA 3.55.

2009년에는 등판한 경기 수가 1경기 줄었고 이닝도 더 먹지 못했다. 그러면서 결국 시즌 종료 후 40인 로스터에서 제외되었다.

그리고 한신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2.2. 한신 타이거스

2010년, 한신과 계약한 랜디 메신저는 처음에는 선발 로테이션에 끼지 못했다. 중간계투로만 나왔지만 정작 불을 지르는 경우가 많아 4월 말에 2군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한신 2군에서 선발 훈련을 받은 그는 당초 한신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던 케이시 포섬이 부진에 빠진 7월 초 1군으로 올라와 선발을 서게 되었다.

그 해 최종 성적은 26경기 14선발 80.1이닝 5승 6패 ERA 4.93.

2011년부터는 풀타임 선발로 정착하게 되었고, 이 때부터 실력이 완전히 만개하게 되었다. 25경기 전부를 선발로 나와 12승 7패 150이닝 ERA 2.88을 기록했다. 이 해 커리어 첫 타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2012년에도 한신의 선발을 든든히 지켜줬으나, 정작 이 해에는 팀 타선이 최악의 부진에 시달리며 29선발 196.2이닝 3완투 2완봉 ERA 2.52를 기록하고 10승 11패라는 안습한 기록을 작성하고 말았다. 똑같이 10승 찍은 노우미 아츠시보다 1패가 더 많았다!

2013년에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출전 여파로 휴식을 해야 하던 노우미 아츠시를 대신해 한신 개막전 투수로 나서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결과는 6이닝 3실점 승. 이 해에도 29경기 196.1이닝을 투구하면서 ERA 2.89를 마크했고, 완투 6회와 완봉승 3회를 기록했다. 이 해에는 186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며 리그 탈삼진왕 타이틀을 따내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승수에는 여전히 운이 없어서 12승 8패. 여담으로 이 해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상대로는 단 한 번도 선발로 나오지 않았다. 2년만에 중계로 잠깐 요미우리 자이언츠 전에 얼굴 내밀기도 했는데, 1이닝을 다 채우지 못하고 5실점을 하며 무너진 적이 있었다. 또한 블라디미르 발렌틴에게 시즌 60호를 허용하기도 했다.

이렇듯 한신에서 에이스급으로 던져주니 2013시즌 종료 후엔 결국 연장계약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자 2018년까지 버티면 이제 외국인 제한 풀린다[1] 2014년에도 명불허전 한신의 선발 자리를 지켜주고 있으며 3월 29일 교진과의 대결에선 전날 떡실신한 노우미 아츠시[2]의 복수에 성공오승환이 다소 불안했단 점은 넘어가자. 4/29, 5/11, 5/17 이 세 번의 선발 등판에선 3연속 완봉승을 거두기도 하는 등 명실상부한 한신의 1선발이 되었다.

다만, 오승환이 기록한 블론세이브 5번 중 4번이 랜디 메신저 선발승 조건이었다는 것이 다소 억울할 수도 있는 상황. 배영수 : 바다 건너에도 나랑 비슷한 사람이 있었구나 그래도 7월 지나고부터는 오승환이 안정되면서 어느 정도 승수를 쌓는 상황. 여담이지만, 8월 5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전에서는 3타수 2안타 4타점을 기록, 웬만한 타자 뺨치는 스탯을 찍기도 했다. 그 날 5이닝 8실점 7자책으로 승리투수 타이틀을 달았다. 여담으로 경기 자체는 초반부터 한신이 멀리 달아나고 야쿠르트가 추격제비 모드로 뒤따라오다 보니 난타전이 벌어졌고, 결국 경기 자체는 20-11핸드볼 스코어를 찍은 경기였다. 류현진 : 5이닝 7자책하고도 승리투수 될 수 있는데 10이닝 먹고도 승리 못한 난 뭐지? 배영수 : 난 10이닝 노히트노런 하고도 승리 못했다 유희관:난 5이닝 8실점하고 승리투수인데??

2015시즌은 상당한 부진으로 시작. 스프링 캠프 때부터 과체중에 대한 우려가 있었으나 오픈전에서는 무난한 투구를 보였는데 하필 시즌 시작 전인 3월 20일 오릭스전에서 심판 판정에 대한 불만이 겹치며 5이닝 5실점으로 부진. 시즌 시작 이후에도 극도의 부진을 겪으며 말소 전까지 8경기 방어율이 5.88에 이르렀다.[3] 결국 1군에서 말소 처리되었고 그 빈 자리는 마리오 산티아고가 메웠다. 그러나 교류전이 시작된 후 5월 29일 세이부전에 복귀 7이닝 11삼진 무자책으로 호투했고 이후 페이스를 완전히 회복하며 복귀 이후 11경기 중 10경기에서 QS를 기록하며 8월 초 현재 ERA는 3.00, 우리가 알던 그 메신저로 돌아왔다. 그러나 초반 부진때문에 9승 12패 방어율 2.97로 시즌을 마감, 6년연속 두자리수 승리는 달성하지 못했다. 2016년에도 꾸준히 185 1/3이닝을 던지며 12승 11패 방어율 3.01을 기록했다.

2017년에는 시즌초부터 호성적을 기록하며 8월 4일까지 11승을 기록, 일본에서의 커리어하이 승리(13승)도 가능해보였으나..8월 10일 등판에서 요미우리의 아베 신노스케의 라이너타구에 오른쪽 복사뼈를 직격당하며 긴급강판당했다. 그후 골절이 판명되어 사실상 시즌아웃. 구단은 부랴부랴 닛폰햄에서 방출된 루이스 멘도사를 급히 영입했다. 메신저 본인은 클라이맥스 시리즈 출장을 목표로 재활에 들어갔고, 예상보다 훨씬 빠른 회복속도를 보이며 주니치와의 시즌 최종전에 복귀가 결정되었다. 원래는 10월 6일에 최종전이 치뤄질 예정이었으나 우천으로 연기되어 10일에 선발로 등판, 4이닝 1피안타 8탈삼진으로 건재를 과시했다. 13일에는 2일만 쉬고 DeNA와의 CS 1차전에 등판, 6이닝 무실점의 완벽투로 팀 승리를 이끌었으나.. 결국 1승 2패로 팀이 패배하며 빛이 바랬다.

2018년 연봉은 3억 5천만 엔이라고 한다.[4] 2018년에도 출발은 아주 좋은데, 심판에게 폭언을 뱉어 1.2이닝만에 퇴장당한 히로시마전[5]을 빼고 (이 경기는 패전투수) 5번 등판에서 모두 승리투수가 되는 기염을 토했다. 6월에 9승에 도달했으나 7월들어 귀신같이 부진에 빠지며.. 7,8월에는 단 2승을 추가하는데 그쳤다. 어쨌든 시즌 10승에 도달, 통산 7시즌째 두자리수 승리로 궈타이위엔을 제치고 nbp 외국인 단독 최다 기록을 세웠다. 최종 173이닝 11승 7패 149탈삼진 방어율 3.63. 그럭저럭 괜찮은 성적이긴 한데 부상으로 이탈한 17년을 빼면 풀타임 선발이 된 11년 이후 커리어로우 시즌. 이게 커리어로우라는 점에서 그간 메신저가 얼마나 든든한 활약을 했는지 실감이 올 것이다.

2019년에도 한신과 함께 가기로 결정하면서 9시즌째 일본에서 뛰게 되었다. 덕분에 FA 자격을 획득하며 이제 일본인 선수 취급을 받게 되었다.
다시 말해 한신은 외국인 쿼터를 1장 더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19년은 작년보다 더 부진하고 있다. 개막전 선발로 시작했으나 썩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서 시즌 절반쯤 지난 시점에서 방어율 4점대를 마크하는 중. 아무래도 나이가 나이이다 보니...

2019년 9월 13일 결국 2019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발표한다. NPB 통산 98승으로 100승에 2승만 남겨놓은 상태였고 본인도 100승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었으나.. 2군 조정 중 좀처럼 몸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 스스로 은퇴 결단을 내렸다고 한다. 9월 29일 주니치를 상대로 은퇴 경기를 가졌고, 본인도 첫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면서 화려한 은퇴식을 만들었다. 팀 역시 6-3으로 승리했다.

3.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10 한신 타이거스 26 80.1 5 6 0 4.93 88 32 48
2011 25 150 12 7 0 2.88 129 48 122
2012 30 196.2 10 11 0 2.52 165 69 166
2013 30 196.1 12 8 0 2.89 174 60 183
(1위)
2014 31 208.1 13 10 0 3.20 188 77 226
(1위)
2015 29 193.2 9 12 0 2.97 163 64 194
2016 28 185.1 12 11 0 3.01 178 61 177
2017 22 143 11 5 0 2.39 134 45 155
2018 28 173.2 11 7 0 3.63 160 62 149
통산 9시즌 249 1527.1 95 77 0 3.05 1379 518 1420

4. 플레이 스타일

신체조건이 출중하다. 198cm에 120kg로 이대호에게도 뒤지지 않는 당당한 체격을 가졌고 거구에 걸맞게 속구 구속이 155km/h에 이른다. 변화구는 각이 큰 커브, 슬라이더, 포크를 던진다. 우완에 95마일 강속구, 커브, 포크라는 단순한 구종은 언뜻 직구-커브-체인지업의 단 3구종만을 사용했던 놀란 라이언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굉장히 고전적인 스타일의 선발투수다.

미국에서는 주로 중간계투로 나오며 최대 158KM까지 나오는 엄청나게 빠른 직구에 슬라이더를 약간 곁들이는 1.5피치~투피치였고 일본 초기에도 그랬으나, 선발로 전향하며 직구 구속을 조금 줄인 대신 제구력을 잡았고, 커브와 일본식 포크볼을 익히며 완전체 선발투수로 거듭나게 되었다. 구속을 줄였다지만 평속 150은 충분히 나오며, 위기상황시 최대 155km정도까지 기어를 끌어올릴 수 있어서 이 정도면 일본이 아니라 메이저리그에서도 충분히 빠른 축에 들어간다. 예나 지금이나 성공을 보장하는 조합인 빠르고 강력한 직구와 뚝 떨어지는 포크볼의 조합으로 일본리그에서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었다.

또한 이닝이팅 능력도 대단해서 보통 6선발제로 6일쉬고 일주일에 한번 등판하는 선발투수가 많은 일본임에도 주로 5일휴식 로테이션을 돌았고, 때로는 메이저리그식으로 4일 휴식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경기당 이닝은 웬만한 6일휴식 선발들보다 많이 먹어서 2011년부터 8년연속 규정이닝을 채웠으며, 2012년부터 15년까지 3년연속 완봉 1위를 기록하기도 했던 무지막지한 워크호스였다.

구종은 다양하지 않고 단순하며 야구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변화구들인 커브, 포크를 던지지만 빠른 강속구와 낙차 큰 변화구로 윽박지르는 피칭을 하며 이닝도 많이 먹었던 올드스쿨 선발 파워피처. MLB에서도 90년대 박찬호 세대 이래로 보기 굉장히 힘들어진 유형의 투수로 클래식 이즈 베스트란 말이 이보다 잘 어울리는 투수도 드물 것이다.

단점은 타격 실력으로 10년 통산 0.111타율에 10년동안 홈런 1개 친 엄청난 타격실력을 가졌다. 투수가 못치긴 하지만 평균적으로 1할 4~5푼은 친다는 점을 생각하면 확실히 마이너스. 심지어 저 덩치 때문에 투수타격의 제일 큰 덕목인 번트도 잘 못 댔다. 투수 타격이라 별거 아닌 거 같아도 지명타자 없는 센트럴리그, 더군다나 이닝 잘 먹는 선발투수라서 타 팀에 비해 투수찬스가 1번씩 더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기에 이것도 은근 와닿는 편. 또한 덩치답게 민첩한 편이 아니라 투구 후 수비도 크게 뛰어나지는 않았다.

5. 기타

6. 관련 문서



[1] 외국인이 등록연수 9년을 채우면 외국인으로 취급되지 않게 된다. 일본프로야구 1군에는 외국인 4명이 등록 가능한데 이 제한에 걸리지 않는다는 소리. 다만 저 때 되면 메신저의 나이도 거의 선수생명 막바지인 30대 후반이 된다는 것이 변수이다.[2] 5회도 못 채우고 10자책점으로 망하고 말았다.[3] 다만 당시에도 K/BB는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 FIP도 3점대 중반 정도에 머무르던 상황이라 다소 운이 따르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었고 실제로 1군 복귀 후 빠르게 ERA-FIP 격차를 줄여가며 큰 문제가 아니었음을 증명했다.[4] 약 307만 달러.[5] 주심이 1회부터 존을 계속 짜게 주자 화를 참지 못하고 주심에게 항의하다가 퇴장 처분을 받았다. https://youtu.be/77BBkCgvt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