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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8 10:34:33

극우/각국의 사례/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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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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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대한민국의 자유주의(liberalism)는 주로 미국, 캐나다, 90년대 이후의 일본과 마찬가지로 '중도'보다는 '범좌파'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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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개별 문서가 존재하는 이유3. 전반적 성향
3.1. 정치 분야
4. 역사
4.1. 1960년대 이전4.2. 2000년대~ 2010년대 후반4.3. 2020년대 이후
5. 분류
5.1. 종교 극단주의5.2. 문화적·민족적 순수성 중시5.3. 뉴라이트
6. 논란
6.1. 종북주의 세력의 포함 여부
7. 조직 및 정당
7.1. 민주화 이전7.2. 민주화 이후
7.2.1. 정당7.2.2. 조직
8. 극우 성향 웹사이트9. 극우 테러리즘10. 같이 보기11. 둘러보기

1. 개요

이 문서는 한국극우, 초보수주의 세력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2. 개별 문서가 존재하는 이유

주로 평등주의를 주장하기 때문에 나라를 초월해 '공통적인 요소'가 많이 존재하는 극좌 정치와 달리, 극우 정치는 몇몇 요소를 제외하면 나라별 개별적 특성을 강조하는 내셔널리즘, 지역에 따라 다른 전통을 따르는 보수주의 특성상 국가마다 가치의 차이가 매우 크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논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극우 정치는 나라별로 나누는 경향이 흔하나 극좌 정치는 그렇지 않는 경향이 있다.

가령 영어 위키백과에서는 독일, 러시아,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영국,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프랑스, 호주 등등 이외에도 수많은 나라별 극우 정치 문서가 개별적으로 수십개 정도 존재하고 있다. 반면에 극좌 정치는 영국 딱 하나만 제외하면 국가별 개별 문서가 아예 없다.

게다가 한국의 경우 한반도 분단 이후 냉전 시기 對공산진영의 최전방이었기에 글로벌한 의미의 극좌 세력은 거의 힘을 못 쓴 반면[1], 매카시즘부터 극단적 민족주의까지 글로벌한 의미에서 극우에 가까운 정치 세력은 일정 비율 존재하기 때문에[2] 개별 문서로 다룬다.

3. 전반적 성향

한국 극우들도 타국 극우와 마찬가지로 사회문화 이슈에서 일정 부분 내셔널리즘적(nationalist)이지만 소위 민족주의(ethno-nationalist)적 극단성[3]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4] 특히 한국 사회에서 쉽게 '극우'로 불리는 어버이연합이나 태극기 집회 등의 수구 보수 세력은, 민족이나 인종적 극단성을 극우의 척도로 보는 전통적 좌우 스펙트럼의 개념 하에서 '극우'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하다. 이는 이들이 박정희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리더십을 숭배하고, 폭력성이나 배타주의를 보인다는 유사성을 취할지언정, 극단적 민족주의에 기반한 인종주의적 배타성이라는 좁은 의미의 극우 정의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당장 이웃 국가 여당인 중국의 공산당이나 일본의 자민당 같은 경우, 많은 서구 미디어에서 ethno-nationalism[5]을 조장한다고 비판받거나 심지어 ultra-nationalism 성향을 보인다고까지 묘사되기도 하지만, 자민당처럼 주류 보수당인 국민의힘은 국민보수주의로만 묘사되지 ultra-nationalist로 묘사되는 경우는 아예 없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심지어 국내 극우 정당들도 외신에서 ultra-nationalism으로 묘사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극우 기준을 좀 더 폭넓게 잡을 경우, 이들은 특정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 요소[6], 소수집단에 대한 차별 옹호, 대한민국의 핵무장 지지 등 내셔널리즘적 성격이 한국 극우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 극우는 노골적으로 국내의 외국인에 대한 인종 청소나 혼혈 한국인에 대한 추방 혹은 이들의 2등 국민화를 지지하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특히 레벤스라움과 같이 만주간도가 과거 우리 민족의 강역이었으니 한반도 통일을 넘어서 저 지역들을 무력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식의 극단적인 민족주의나 순혈주의 양태는 사실상 없고 약화된 민족주의가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

이는 한국의 민족의식이 너무 공고하기 때문이다. 단일 민족국가로서의 역사가 너무 오래되었다 보니 유럽이나 미국만큼 인종 문제를 겪을 일이 적고, 무엇보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일제강점기 등 역사적 조건으로 인해 민족 개념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보편적인 정서로 작용한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식민지 경험이 있는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특징으로, 주로 자본주의 체제를 표방하는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 식민 통치를 당하면서 이들에게 대항하는 이념으로 피식민 국가 지식인들 사이에서 좌우를 막론하고 저항적 민족주의가 주목을 받았다.[7] 또한 이후의 역사 속에서, 우익은 민족주의를 국가의 정통성 부여 및 국민의 결속력을 위한 도구로 사용한 한편, 좌익은 독재를 묵인한 미국에 대한 반대 논리 및 친북 유화적인 정치관의 입장에서 민족과 자주를 강조하였고, 이러한 이유로 오늘날 미국식 세계화신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아 민족주의에서 멀어진 우파와는 달리 좌파 계열의 민족주의가 오히려 훨씬 강고해졌다. 좌파가 통일에 대해 적극적인 이유 중 하나가 단일 민족국가에 대한 집착이다.

민족주의(ethno-nationalism)를 대신해 한국의 극우를 떠받치는 기둥은 극단적 반공주의와 극단적 기독교 근본주의, 그리고 권위주의적 보수주의이다. 한반도가 냉전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면서, 극우의 결집은 민족주의적 담론 대신 반공주의적 담론으로 이루어졌으며, 이것이 통치의 정당성을 위해 국가에 의해 조장되기도 하면서 현재까지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과거 기독교세가 강했던 평안도 지역의 기독교 세력이 전쟁으로 인해 남하하였고, 북한의 종교 탄압이 문제가 되면서 보수 기독교 또한 자연스럽게 반공주의에 힘을 실었으며, 이것이 극단적으로 변모하면서 극우로 발전했다. 사실 한국뿐 아니라 제1세계 선진국에서 반드시 민족주의적이지 않더라도 권위주의적 보수주의는 종종 극우로 간주된다.

이러한 측면 때문에 현재까지도 한 쪽에서는 반공주의에 기반한 극단성과 혐오에 기반한 배타성, 군대식 전체주의 문화와 민주적 질서에 대한 불신/불복 등을 이유로 이들을 '극우'로 부르는 데 거리낌이 없는 반면, 다른 한 쪽에서는 민족주의와 파시즘에 입각한 엄밀한 의미를 들며 극우가 아니라고 하는 상황이다. 이는 '극우'의 뜻을 명확히 정의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것을 방증하는 셈.

3.1. 정치 분야

해방 후 한반도의 남북 분단으로 체제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대한민국은 생존과 결집을 위해 반공주의를 기치로 내걸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반공주의는 민족의 순수성과 연결되고, 권위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독재정치를 정당화하는 등[8]의 역할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극단적 우파의 결집 또한 반공주의에 입각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유럽 극우가 과거의 파시즘 전통에 입각해 이민자와 외국인을 위기이자 위협로 상정해 이들을 몰아내기 위한 극단적 행동을 벌인다면, 한국의 극우는 과거의 권위주의적 반공주의에 입각해 북한의 공산주의와 이에 동조하(는 것으로 지목되)는 세력을 위협 요소로 상정해 극단적 행동을 벌인다는 것이다.

이는 아래의 극우 예시로 올라와 있는 백의사서북청년회 등이 반공을 기치로 그 극단성을 드러냈다는 것에서부터, 오늘날 극우로 분류되는 집단이 심심치 않게 상대 진영을 '빨갱이'나 '종북 좌파', '공산주의자' 등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까지의 맥락에 통한다. 이들이 흔히 '북침'이나 '북폭'을 주장하는 것 역시 공산주의를 타도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9]에 기반해 한민족의 순수성을 회복하는 일로서 인종적 순수성을 대체하였기 때문으로 볼 수 있으며, 이들이 이승만이나 박정희[10]에 대한 강한 향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도 이들이 정치적/경제적 권능을 바탕으로 한민족의 민족정기를 공산주의의 마수로부터 지켜낸 인물로 여겨지기 때문으로 해석 가능하다.

이러한 이유로 배타주의 역시 다른 국가의 극우와 비슷하게 나타나지만 선택적으로 작동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이슬람이나 중국, 러시아 등 이념 지형의 바깥에 위치해 위협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국가에 대해서는 강한 배타성을 보이나, 한국과 동일한 이념 진영에 위치하고 외교적으로도 큰 연관이 있는 미국일본, 유럽에 대해서는 이러한 배타성이 작동하지 않고, 오히려 우호적인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미국과 관련 없는 사항으로 여는 극우 단체의 시위에 성조기가 단골로 등장하는 것 또한 기존 극우 개념에서의 민족주의적 배타성을 반공주의가 대체했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성향의 경우 특히 박정희식의 국가 경영에 대한 강한 향수와 연결되는데, 정치적으로는 군사독재를 토대로 한 강한 반공주의 성향 및 통치에 대한 선호, 경제적으로는 국가주도형 경제개발독재를 선호하는 경향에서 엿볼 수 있다. 특히 유신정권 시절인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이 보인 코포라티즘은 극우의 요소 중 하나이다.

물론 단순히 공산주의에 반대한다고 해서 무조건 극우라고 볼 수는 없다. 앞서 말하였듯 한국이 반공주의를 기치로 삼아온 것은, 유럽 극우가 지향하는 민족 개념의 모호함과는 달리 북한이 실질적 위협으로 작용해온 이상 실존적인 이유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다만 극우에 속하는 이들은 단순히 북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넘어, 반공주의에 기반해 국내에서도 극단적 배타성을 드러내고, 비뚤어진 국수주의를 바탕으로 민주적 질서에 대한 불신과 반동을 일으켰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위의 설명 또한 단순히 유럽의 극우가 가지고 있는 민족주의에 기반한 배타적 극단성이 대한민국에서는 권위주의적 반공주의에 기반한 극단성으로 바뀌었을 뿐이라는 설명에 불과하다.

4. 역사

4.1. 1960년대 이전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극우'로 지목할 수 있는 세력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1945년의 해방정국이다. 이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진영 간의 대립이 본격화되면서 이루어졌고, 반공주의를 기치로 무자비한 폭력을 동원해 반대 진영 정치인 및 정치세력에 대해 백색테러를 가하는 것이 활동의 주였으며, 일부는 파시즘과의 연계성도 보였다.[11] 이 시기 극우로 지목되는 단체로는 백의사서북청년단 등이 있다. 이들은 주로 월남한 청년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 있어서, 후술할 기독교 우파와도 접점이 존재한다.

6.25 이후로는 주로 이승만 정부나 자유당을 옹호하면서 진보계열 정치인을 백색테러한 정치깡패 또한 극우로 지목된다. 다만 이들의 극우성에 대해서는 이념적인 측면보다는 독재적 권력의 옹호를 위해 폭력을 동원함으로서 반동적인 행태를 보여왔다는 것이 주목된다. 이들은 4.19 혁명으로 지지기반을 잃고 5.16 군사혁명으로 숙청되면서 세력을 잃었다. 이 이후 뚜렷하게 극우로 지목되는 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이후에도 공권력이나 사조직 등을 동원해 물리력을 행사함으로서 독재적 권력을 옹호한 사람들이 존재했으나, 이 시기의 극우가 뚜렷하지 않은 것은 이미 극우의 조건으로서 기능하는 민족주의나 반공주의가 일부의 생존논리나 대항논리를 넘어선 국가적 헤게모니로 대한민국 안에서 자리잡았기 때문에, 극우가 발호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이념 노선에서 이전과 거의 동일하였던 신군부 시기를 넘어, 민주화의 결실을 이룬 문민정부는 물론, 어느 정도 기존 보수 세력에 유화적이었던[12] 김대중 정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유지되었다.

4.2. 2000년대~ 2010년대 후반

그러나 2000년대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남북 화해 무드가 조성되면서 반공주의를 기반으로 권력을 유지해온 이들에 충격이 가해짐은 물론, 민주당계 정당이 과거 보수 세력의 도움 없이 자발적으로 대통령을 배출하면서 보수 세력 사이에 '여론전에 밀렸다'는 위기의식이 공유되기 시작했고, 이는 이전까지 투표로 이야기하던 보수 성향의 인물들이 사회 전반으로 나서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극단적 우파의 결집 또한 시작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두 가지로 나타났는데, 첫째 부류는 이른바 '아스팔트 우파'로 불리는 이들로서, 반공주의와 군사정권 시기 이념에 대한 강한 향수를 지닌 이들을 중심으로, 햇볕정책 등의 대북 유화 정책이나 민주당계 정당의 정치 행위에 대해 '빨갱이'나 '종북'이라 지칭하고 강한 반감을 드러내며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서 민주당계 정당의 정치 활동에 대한 극렬한 반대 시위를 벌이는 것으로 유명했던 이들이다. 2000년대 이전부터도 독립신문이나 국민행동본부처럼 여론전과 직접행동을 동원한 활동은 어느 정도 존재해 왔으나, 이러한 극우 활동이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6년에 이른바 '가스통 할배'로 지칭되는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 창설되고, 이들에 의한 폭력적 시위가 부각되면서부터로 볼 수 있다. 이들의 성향은 철저하게 반북 반공주의이나,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 삼성과 전경련이 이들을 지원하는 등, 사실상 정권을 비호하기 위한 단체로 이용된 것 아니냐는 의혹 또한 존재한다.

둘째 부류는 좌파 운동권 중 90년대 이후 동구권의 멸망을 바라보며 보수로 전향하였거나, 민주당계 반공주의자 중 주류 정치에 편입되지 못한 불만을 가지고 전향하면서, 전향자로서의 입장을 반전시키기 위해 극단적인 논리를 동원하면서 생겨난, 이른바 뉴라이트가 극단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의 경우 과거부터 가지고 있었던 전체주의적 성향과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을 이념의 토대로 하면서도, 자신이 떠나온 좌파 세력의 핵심 논리 중 하나인 민족주의를 거부하는 것이 엿보이는데, 이는 친대기업적 관치경제를 옹호하는 경제 분야에서의 극단적 자유주의, 경제적 성과를 바탕으로 권위주의 군사정권 뿐 아니라 일제 강점기까지도 찬양하는 극단성,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옹호, 이승만을 국부로 추앙하고 이를 박정희와 연결지으면서도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조롱하는 것 등에서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지점들이 모든 뉴라이트 인사들에게서 나오는 것은 아니나, 이러한 사상이 극단화되면서 이승만-박정희가 내세웠던 반공주의와도 연결되었다.

이들 모두 2000년대 중반 이후 다양한 이유로 그 힘을 얻은 것은 확실하다. 노무현 정부 전후로 민주당계 정당을 지지하던 사람 중 우파 또는 반공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많이 떨어져 나갔음은 물론, 이명박 정부 초기 광우병 시위의 영향은 그 반대급부로 극우의 목소리 또한 커지는 효과를 낳았고, 이명박 정권 또한 여론전을 위해 이들을 활용하게 되며 조직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 시기의 뉴라이트 운동은 이들을 하나로 합치는 데 어느 정도 역할을 했지만, 실질적으로 이들이 사상적 측면에서 완전히 합쳐지는 계기가 된 것은 박근혜 정부의 출범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올드 라이트야 박정희에 대한 강한 향수가 있었으므로 자연스럽게 박근혜에 대한 맹렬한 지지를 쏟을 수 있었겠지만, 이명박 정부 시기 형성된 뉴라이트를 적극적으로 끌어안은 것 또한 박근혜였다. 이는 같은 보수라는 점을 떠나서, 뉴라이트가 박정희 시기의 경제적 성과에 대해 매우 긍정적이었기 때문에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올드라이트의 반공주의적 성향과 뉴라이트의 유물론적 사고에 기반한 경제적 성과지상주의, 좌파적 민족주의에 대한 반감이 결합되면서, 대한민국의 극우는 다른 선진국들의 극우들과는 정 반대로 사대주의적인 성격을 갖게 된다. 경제 성과 지상주의는 잘 사는 나라가 내 나라라는 인식으로, 북한에 대한 오랜 적개심은 한민족이라는 타이틀에 대한 자괴감과 염증으로 이어진 것이다. 자국가-자민족 중심주의를 기반으로 한 극단적 민족주의 성향을 이들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오히려 민족주의적 성향을 조롱하고, 미국의 주장이라면 한국에 손해가 된다해도 절대 거역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며, 우방으로 여기는 일본에 대해서도 긍정을 넘어서 아예 일본 극우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부분도 있다. 이는 단순한 시장경제 지향성과 외교적 정치지향성을 넘어, 이들이 자신들의 순수성을 '자유주의 진영'과 '시장경제 체제'에서 극단적으로 추구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공교롭게도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극우는 미국식 극우, 특히 미국 대안우파의 마이너 카피가 되었다고 봐도 틀린 말이 아니게 되었다. 미국 대안우파의 관점을 한국식으로 바꾼 것도 아니고 그냥 미국 대안우파 그 자체의 일부분인데 인종만 한국인이라고 보면 딱 들어맞는다. 이렇게 보면 한국 극우의 자국 혐오 및 백인우월주의, 일본인 및 한국 극우 자신들에 대한 명예 백인 취급이 어떤 심리에서 나타나는지 알 수 있다. 더 간단히 말하면 겉은 한국인인데 속은 미국 대안우파인 것이다.

더욱이 한국 보수가 박근혜의 탄핵이라는 사건으로 크게 휘청이면서 이들의 위기의식은 더욱더 강해졌다고 볼 수 있다. 탄핵이 진행되는 시점부터 친박 세력을 중심으로 '태극기 집회'가 형성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극우는 '탄핵무효'를 기치로 극도로 결집될 수밖에 없었다. 이들에게 탄핵을 주장하는 정치세력은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빨갱이' 세력의 준동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또한 기존 언론에서 연이어 터져나오는 뉴스들이나 사법부의 법적 판단, 선거 결과 등에 대한 인지부조화로 극단적 음모론 주장들을 늘어놓는가 하면, 쿠데타 등의 극단적 방법을 호소하거나 아예 직접적으로 폭력적인 행동을 표출하기도 하였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선포된 2017년 3월에 일어난 이들의 폭력성은 이들이 인지부조화적 상황 앞에서 그 극단성을 유감없이 표출한 사건이라 볼 수 있다. 이후 타격을 입어 쪼개진 보수 세력 중, 친박계 세력이 이들을 인수하여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 발전하는가 했지만, 이미 탄핵이란 사건으로 인해 친박 세력은 극우로서의 구심점마저 잃어가고 있으며, 21대 총선에서 단 한개의 의석조차 얻지 못하면서 정치 세력으로서는 와해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시민사회 차원에서는 기독교 극우세력과 더불어 반공주의 성향과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만을 바탕으로 일정 정도의 세력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으며, 일부 시민단체와 태극기 집회가 이어지다가 차기 대선이서 극우세력들을 업고 출마한 전 검찰총장 윤석열을 당선시켰고 정권이 바뀐 윤석열 정부 이후에도 정치유튜버를 중심으로 여전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시기의 극우로 지목되는 일베저장소의 경우는 정치 성향으로서의 극우로 설명하기 가장 어려운 지점에 속한다. 이들이 비록 기존 극우 세력의 주장에 동조하기는 하지만 그 동력은 어떠한 정치적 지향성에 있다기보다 심리적 불안감에서 기인한다. 이들의 주장 또한 혐오라기보다는 냉소에 가까우며[13] 이들이 추구하는 것 또한 외부의 적에 대항하는 사상적 순수성보다는 사회적 약자, 소수자에 대한 비하와 조롱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외 논문에서도 극우, 대안 우파 인터넷 커뮤니티[14]라고 언급된 바 있기에 일반적으로 한국 극우의 일부분이라고 볼 여지는 충분하다.[15]

4.3. 2020년대 이후

2020년대 이후 한국의 극우진영은 최소 50대 이상 중노년층으로 구성된 기존의 태극기 부대 극우층과 20대 남성을 중심으로 한 한국형 대안 우파로 분화되었다. 일제강점기를 미화하고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을 비롯한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과 향수가 남아있는 전자와 달리 후자는 다문화주의페미니즘, 정치적 올바름, 사회보수주의, 반서방, 친중, 반일에 대한 반발심과 자국 혐오, 반중, 반북이 결집의 동력원이다. 새로이 등장한 한국형 대안 우파는 오프라인 시위보다는 인터넷으로 혐오 자료를 배포하는 방식으로 활동한다는 점에서[16] 유럽, 북미보단 일본의 넷 우익 모델을 따라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5. 분류

5.1. 종교 극단주의

5.1.1. 극단적 기독교 우파(개신교 우파)

대한민국의 기독교 극우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 개신교가 보수성향을 추구하게 된 이유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보수 우파와 개신교의 연결은 근현대 대한민국 역사를 볼 때 상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구한말 미국인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한국 개신교인 대부분은 신학적 보수주의자 혹은 근본주의자가 되었다. 또한 기독교가 개화사상에도 상호 영향을 끼쳤으며, 이로 인해 형성된 개화파가 대한민국 보수주의의 원류로 지목되고 있으니, 기독교, 사실상 개신교가 대한민국의 보수주의에도 뿌리부터 상호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도 있다. 거기에, 평안도 지역을 중심으로 융성하던 기독교가 남북 분단으로 인해 직접적인 탄압을 받고 월남하면서 자연스럽게 공산주의에 대한 원한과 이로인한 반공주의 성향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한미동맹을 종교적으로까지 확장, 대한민국을 개신교 국가를 건설한다는 이른바 기독교입국론까지 주장한 독실한 개신교인이었음은 물론, 박정희 정부에서도 개신교와 정부가 반공이라는 접점 하에 상호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다. 이 잔재로 인해 개신교 주류는 강한 보수성을 지녔으나,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1980년대 이전까지 개신교는 성속이원론적 입장에서 정교분리를 받아들였고, 급성장 속에서 이렇다 할 정치적 메시지를 내비치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미국의 방식에 더 가까웠다. 오히려, 1980년대까지는 진보적인 성향의 개신교인들의 민주화 활동으로 인해 개신교는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진보적인 입장이었다.

이러한 구분이 사라지고, 보수 개신교가 개신교의 주류로서 메시지를 내게 된 것은 1989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등장으로 보수 개신교가 결집한 시점부터이고, 이것이 행동주의로 옮겨간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특히 2003년 3월의 구국기도회는, 본인들은 철저하게 '기도회' 형식이었다고 주장하지만 그 면면을 볼 때 철저하게 보수적인 입장이었다.[17] 이 이후 보수 세력 내에서 힘을 얻은 개신교는 근본주의 신학에 입각해 반공주의와 반이슬람주의, 동성애 혐오(성소수자 탄압 및 탈동성애 운동 지지) 등을 주장하는 시민 세력으로 발전하였고, 이는 장로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으로 더욱 강화된다. 에스더기도운동본부십알단 등의, 교회를 기반으로 한 극우적 개신교 활동단체들이 2010년대를 전후해 다수 등장했으며, 이를 계기로 개신교 우파는 훨씬 더 공격적인 양상으로 발전했다.[18]

이들의 근본주의적 공격성은 종교의 가치를 넘어서 정교분리를 부정하고 개신교의 가치를 재해석하여 사회 전반에 강요하는 식의 정치 활동으로 작용했으며, 이는 건전한 우파의 가치를 넘어서고 공화주의, 자유주의를 부정하는 반동주의적인 보수, 즉 극우적 형태를 띄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전후로 이들은 구국기도회 등을 통해 태극기 집회와 함께 지속적으로 활동했으며, 2019년 이후부터는 탄핵 이후 활동성이 크게 약화된 기존 아스팔트 극우를 대신하여 태극기 집회로 대표되는 극우 정치집회의 주축으로 작용했다. 특히 정치목사 전광훈이 주도하는 사랑제일교회는 극심한 정치극단주의 + 제정일치(신권정치) + 매우 극단적인 미국 사대주의 성향을 띄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다만 보수진영 내에서 개신교가 어느 정도의 세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을지언정, 극우 개신교 세력 자체가 헤게모니를 이끌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는 대한민국이 어떠한 종교가 지배적 종교의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고,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으며, 상호간 견제에 의해 정교분리의 원칙이 어느 정도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개신교 극우가 개신교와 연계된 반동성애·탈동성애 지지, 반이슬람, 차별금지법 등의 사안에 강한 목소리를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상적 배경으로만 일부 남아있을 뿐 독자적 정치세력화에는 오랫동안 실패했다는 것은 이를 방증한다. 더욱이 개신교 우파 세력이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 집단 감염 사건을 일으키면서 이들이 非개신교인과 온건한 개신교인들의 마음을 얻기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5.2. 문화적·민족적 순수성 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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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 극단적 내셔널리즘(민족 우월주의, 환빠)

원래 전세계적으로 극우의 대표적인 정체성중 하나가 민족주의(ethno-nationalism)이기 때문에 환빠성 극우정당도 당연히 있다. 실제로 여러 정당이 등록되어 있으나 아직까지 별다른 성과는 없다. 왜냐하면 환빠들은 우익 진영에서 별로 기를 못 쓰기 때문이다. 진영을 떠나서 일반인들은 억지스러운 환빠 사상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다. 이들은 제노포비아성 주장을 하지는 않지만 만주(간도), 연해주 등 고토 회복을 주장하고 역사 왜곡 문제를 일으킨다. 만약 이들이 극우의 실세로 등극한다면 파시스트 양상을 띌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가장 민족주의적 사회분위기가 강력했던 1980년대에도 이들은 주류가 아니었으며, 세대가 내려갈수록 탈민족주의화가 이루어지는 현 한국 사회에서 이들이 실세가 되기는 어렵다.

21세기 들어서 한국 극우파는 내셔널리즘을 부정하지는 않으면서도 북한에 대한 동정을 유발할 수 있는 에스닉 내셔널리즘, 즉 한민족주의와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지만 여전히 군사독재 시기 극우민족주의를 계승한 정치 세력들도 존재한다. 한빠 일부 등은 한민족 우월주의와 반공주의를 결합하는 극우민족주의적 성격을 보이기도 한다. 핵나라당이나 가나반공정당코리아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5.2.2. 인종국민주의, 반이민, 다문화 반대운동

인종국민주의의 경우 다문화 반대운동과 달리 인종이 같은 동북아시아인과의 혼혈에는 관용적이고, 그 외의 혼혈을 적대하는 부류의 사람들도 있다. 무슬림 난민, 아프리카 난민에 적대시한다는 점은 다문화 반대운동과 인종국민주의가 동일하다.

스탠포드 대학 교수이자 한국학자인 신기욱은 한국의 민족주의(Korean ethnic nationalism)을 인종국민주의(racial nationalism)로 표현하기도 했는데 이는 한국의 민족주의의 '민족'개념이 혈통 등으로 정의되는 측면에서 서구의 race와 유사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브라이언 마이어스도 한국의 '민족주의'를 race-based nationalism이라고 지칭한 바 있다.

경제 위기와 각박해진 사회 민심을 틈타 오프라인에서도 점점 목소리를 드높이기 시작한 다문화 반대 움직임도 과격할 경우 극우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2013년엔 제노포비아 성향의 다문화 반대 운동단체에서 '국제녹색당'이라는 이름의 군소 정당을 인수하여 민족주의에 기반한 다문화 반대 정당으로 재편하려는 소동도 벌어졌다.[19]

그리고 이것이 2018년 제주 난민 사태 당시 예멘인들의 집단적인 난민 신청으로 그 이전까지 먼 유럽의 일로 여겨졌던 난민 이슈가 한국 사회의 논란으로 대두되었으며, 전 세계 20대 극우화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인 난민공포증을 이용하여 집권하려는 집단도 늘어나고 있다.

5.3. 뉴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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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진영은 한국의 독특한 극우 정치세력으로 여겨진다. 소위 탈민족주의를 긍정하면서도 일제 강점기친일파를 포함한 식민주의 유산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며, 탈민족주의 아젠다와 모순될 정도로 민족주의적이였던[20] 반공 군사정권에 대해서는 옹호하며, 이승만 전 대통령은 국부라며 무조건적인 찬양을 하는 경향이 있다. 좌익 계열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 위안부 등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해서 역사수정주의적 견해를 보이고 매카시즘적 성격이 짙다.

뉴라이트 등 일부 한국의 극우가 가진 성향은 제1세계의 국수주의/민족주의적 극우보다는 제3세계의 극우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 그 비슷한 점이란, 사회문화적으로 국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일정 부분 내셔널리즘과 권위주의적 보수주의 성향을 보이긴 하면서도, 선진국 내지는 열강에 대한 추앙을 하고 있으며, 자국의 이득보단 좋게 말해선 자국의 혁파[21], 나쁘게 말하자면 국가의 파괴[22]를 추구하는 성향을 뜻한다. 중장년층 중에서 극우사상을 만들어내는 이들이 아직 한국이 제3세계와 비슷한 수준의 경제, 문화 및 체제였던 시기에 자란 사람들이었단 점도 주목할만하다. 이게 제3세계에선 열강에 기댄 쿠데타로 실현되지만, 한국의 경우엔 이미 국가가 굳건한 상황이기에 쿠데타로 이어지지 않을 뿐이다. 현 대한민국의 극우 사상 중 한 축인 뉴라이트가 극좌인 NL에서 시작됐단 점을 감안하면 서로 비슷한 모습이 보이는건 이상하지 않다.

다만 뉴라이트 진영의 임시정부 법통론 부정, 국가 내셔널리즘이나 건국절 옹호 자체만으로는 극우적 요소라고 보기는 어렵다. 국가 내셔널리즘은 광의의 시민 내셔널리즘으로 분류되는데다가 건국절은 브라이언 마이어스 등 일부 좌익 학자들도 옹호하기도 했다. 게다가 국제적으로 대한민국은 1919년이 아니라 1948년에 건국된 나라로 인식된다. 그럼에도 이들이 극우로 간주되는 이유는 단순히 건국절을 옹호해서가 아니라 이승만에 대한 맹목적이고 광신적인 찬양과 당시 반공을 명분으로 내세운 독재, 학살에 대한 은폐 혹은 정당화를 목적으로 건국절을 밀기 때문이다.[23]

6. 논란

6.1. 종북주의 세력의 포함 여부

종북주의자들이나 반공을 전제하지 않은 급진적 민족주의 세력의 경우, 한국 특유의 정치 스펙트럼 분류상 극좌로 분류하는 경우가 주류적 견해다. 그러나, 서구적인 스펙트럼 기준에서는 이들도 극우라고 볼 만한 요소가 적지 않다.#### 애초에 북한 자체가 공산당이나 사회주의 체제 등 극좌적인 모습도 있는 반면 초보수주의, 민족주의~울트라내셔널리즘에 기반한 극우 국가에 가깝다는 주장도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24] 실제로 종북이나 강성 좌익 민족주의 인사들 중에 혼혈, 다문화 등에 대해 경멸을 보이고 단일민족을 고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참고로 종북주의자들이나 탱키들은 북한보고 극우나 파쇼 운운이 반북 우파, 제국주의자 혹은 서구 네오콘오리엔탈리즘적 관점에서 북한을 악마화하기 위해 왜곡한 것이라는 식으로 반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25] 그러나 정작 북한을 극우라고 보는 대표적인 학자들인 브라이언 마이어스는 미국 녹색당을 지지하는 좌익 성향이고 Hillel Ticktin도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좌익 학자이다. 물론 종북주의자들이나 탱키들은 브라이언 마이어스가 그저 네오콘과 다를 바 없는 자유주의적 매파일 뿐이라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브라이언 마이어스가 남한 정치 분석에 있어서는 상당히 편파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의 극우성에 대한 분석이 마냥 과장되었다고만 볼 수는 없다. 괜히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북한학자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다.

7. 조직 및 정당

7.1. 민주화 이전

7.2. 민주화 이후

7.2.1.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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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2. 조직

완전한 극우라고 볼 수 있는지 애매하거나 논쟁의 여지가 있는 강경 우익 조직은 적지 않는다.

8. 극우 성향 웹사이트

9. 극우 테러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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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산주의사회주의 같은 좌파 이념들은 적화통일을 위한 국가체제 전복 시도로 간주되었기에, 군사정권 시기에는 배척의 대상이었다.[2] 국내 종북주의자들의 경우,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엄밀한 극좌 철학을 따르기 보다는 울트라내셔널리즘에 가까운 급진적인 에스닉 내셔널리즘(소위 "민족주의")을 지향하기 때문에, 서구적 사상기준에서는 극좌보다 극우에 더 가깝다. 특히 한국에서 한민족은 주류 에스니시티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그 때문에 서구에서는 북한을 극좌가 아닌 극우의 나라로 분석하는 학자들도 많다. 애초에 북한부터가 극우 인종주의 정권에 가깝고, 일반적인 극좌 전체주의 이념인 스탈린주의에서 탄생한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북한의 이념인 주체사상상당히 다르다.# 물론 스탈린주의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3] 제노포비아를 동원한 극단적 인종주의순혈주의 등. 주류 에스니시티(민족, 종족)에 기반한 ethno-nationalism은 종종 ultra-nationalism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4] 오히려 한국 기준 좌익계열로 분류되는 NL(정파) 등에서 민족주의가 강하게 나타난다. 주체사상파 등 극단적인 케이스는 다문화가 민족정기를 훼손하며 민족말살 정책이라고 주장하는데 북한의 견해와 유사하다.[5] 특히 중국의 경우 한족 민족주의.[6] 소위 동남아인, 중국인(특히 조선족), 흑인에 대한 차별 성향을 드러내거나 증오발언을 내뱉는 등[7] 단적으로 한국의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이나 중국, 베트남의 독립운동가들이 민족주의자이면서도 동시에 좌파였다. 좌파 내셔널리즘 항목 참조. 물론 저항적 민족주의가 열린 민족주의인지 배타적 민족주의인지는 각자 판단할 문제이다.[8] "권위주의 정권과 결합한 반공국가는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종족적 민족주의를 동원하였다. 공산주의를 추종하거나 동조하는 세력들을 혈연, 문화, 역사, 전통의 오랜 공유에 기초한 민족 공동체의 신성성과 순수성을 훼손하는 위협이자 타도의 대상으로 간주되었으며, 반공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분열된 민족 공동체를 재건하기 위한 명분이자 수단이 되었다." <반공국가의 위기와 민족주의의 부상 — 민주화 이후 한국의 대북정책과 대만의 대중정책에 관한 비교>, 김재영. 2017, 「복잡성과 복합성의 세계정치⸥, 서울대학교국제문제연구소 편, 사회평론아카데미[9] 여기서의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으로서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아닌, 이데올로기 개념으로서 공산주의의 대립항이 되는 반공주의를 뜻한다.[10] 이승만은 옹호하지만 박정희는 남로당 경력이 있는데다 쿠데타까지 일으켰으니 이승만과 비교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분파도 있다.[11] 이승만이 한 때 국시로 삼았던 일민주의도 파시즘 논란이 존재한다. #1 #2 #3참조.[12] 이는 청산의 대상이라고 볼 수도 있었던 舊민정계 세력을 '용서와 화해'라는 명목으로 일부 끌어안고 5.16 쿠데타 세력인 이른바 '유신 본당' 김종필 자민련과 손을 잡아 DJP연합을 만들어서 집권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13] 논문 참조[14] 애초에 대안 우파 자체가 전통적인 보수주의 달리 엄밀한 철학적 정치 기반이나 정치적 지향성으로 이루어진 집단이 아닌 냉소주의적 집단이지만 극우 세력의 일부분이라는 데에는 미국 내에서 이견이 별로 없는 편이다.[15] Hojeong Lee (2019). "Digital War of South Korean Netizens in New York City:From Tweets to a Billboard Advertisement, and an Alt-Right Online Community" (PDF). Temple University.[16] 주로 디시 실베글에서 많이 보인다. 알바 풀어놓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댓글들이 상식과 동떨어져 있고 더럽다.[17] 심지어 오늘날 태극기 집회에서 볼 수 있는 성조기태극기, 이스라엘 국기의 조합은 이미 이 당시부터 엿볼 수 있었다.[18] <한국 개신교와 보수적 시민운동: 개신교 우파의 극우·혐오정치를 중심으로>. 人文學硏究 제33집(2020.06), 인천대학교 인문학연구소.[19] '국제녹색당'이라는 이름만 보면 진보적인 생태주의 정당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 친환경 정책을 겉으로 내세운 보수주의 군소 정당이었다. 이들은 애초부터 친 원자력 발전의 모토를 걸고 등장했다. 참고로 한국의 진짜 진보 생태주의 정당으론 재야운동가 장기표가 주도한 녹색사회민주당이 있었고, 현재는 녹색당이 존재한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두 당은 국제녹색당과 아무 관련이 없다.[20] 좌파 진영에서는 관제민족주의라며 가짜 민족주의 취급하지만, 어쨌거나 해외에서는 박정희 정권이 ethnonationalist 정권이였다고 본다.[21] 강대국을 추앙하면서 이들의 장점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자국의 형태를 무너트릴 필요가 있단 지론이다. 결국 어떤 체제를 세우기 위해선 기존의 체제를 무너트릴 필요가 있기에 어떤 형태로든 기존 체제의 붕괴는 이들에겐 개혁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22] 국가의 역사나 정체성에 대한 존중이 없으며 자국민을 혐오하는 행태를 말한다. 분열을 통한 국가의 정체성이나 국민의 연결고리를 무너트리면 국가의 붕괴만 남을 뿐이다.[23] 극우, 극좌에서 나타나는 가장 크고 뚜렷한 특징이 바로 자기 사상이나 인물에 대한 맹목적이고, 무조건적이면서도 광신적으로 추종하며, 성향이 조금이라도 다르거나 자신들을 비판하는 목소리에는 매우 배타적이면서도 노골적인 증오심을 보인다는 것이다.[24] 출처:
• The Paradox of North Korea's Ideological Radicalism: Shaky Social Basis of Strengthening Ideological Campaigns (2009) - Aie-Rie Lee, Hyun-chool Lee, Ji-Yong Lee and Il-Gi Kim
• The Cleanest Race (2010) - B.R. Myers
Critique Notes 81: An Intermediate Period in Transitional World (2018) - Hillel Ticktin
[25] 실제로 서구권에서 2차대전의 경험과 나치즘의 창궐로 인한 국민보수주의 및 에스닉 내셔널리즘의 폐해 때문에 극좌는 답없는 절대악이라기 보단 이상주의적 똘추들로 보는 경향이 있는 반면, 극우는 비서구권국가들의 관점과 달리 척결해야 할 절대악 그자체로 보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영어 위키백과에서도 극좌의 대명사인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은 위키백과 정책만 존중한다면야 스스로 자신의 이념 성향을 밝히고도 멀쩡히 활동하는 경우도 꽤 있는 반면, 극우의 대명사인 파시스트를 자처하면 칼차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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