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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04:53:09

나이키

스우시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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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나이키
Nike

파일:나이키 로고.svg파일:나이키 로고 화이트.svg

<colbgcolor=#000><colcolor=#fff> 회사명 영어: Nike, Inc.
한글: 나이키 주식회사
전신 블루 리본 스포츠 (1964~1971년)
국가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섹터 소비순환재
설립일 1964년 1월 25일 ([age(1964-01-25)]주년)
설립자 필 나이트
빌 바우만 (Bill Bowerman)
이사회
총괄의장
마크 파커 (Mark Parker)
명예의장
필 나이트
주요 인사
CEO
엘리엇 힐 (Elliott Hill)
CIO
존 호크 3세 (John Hoke III)
편입지수 S&P 500, DJIA
거래소 뉴욕증권거래소 (1980년 12월 2일~ / NKE)
시가총액 1,233억 달러 (2024년 10월)
부채 236억 8,000만 달러 (2024년 5월)
자본 144억 3,000만 달러 (2024년 5월)
매출 513억 6,200만 달러 (2024년)
신발
334억 달러
의류
138억 달러
장비
21억 달러
컨버스
21억 달러
순이익 57억 달러 (2024년)
고용인원 79,400명 (2024년 5월)
매장
나이키
910곳
컨버스
135곳
법인 오리건 (1967년~ )
소재지 오리건 비버튼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본사 |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공식스토어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틱톡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카카오톡 아이콘.svg 파일:Threads 아이콘.svg
1. 개요2. 로고3. 슬로건4. 역사
4.1. 필 나이트 체제4.2. 마크 파커 체제4.3. 존 도나호 체제4.4. 엘리엇 힐 체제
5. 한국 시장6. 지배구조7. 광고8. 마케팅9. 제품10. 스폰서 목록11. 논란12. 여담13.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미국스포츠 용품 제조사다. 전 세계 스포츠 용품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 기업이며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이기도 하다.[1]

2. 로고

파일:나이키 로고(1971-1978).svg 파일:나이키 로고(1978-1995).svg
<rowcolor=#ffffff> 1971~1978년[2] 1978~1995년[3][4]
흔히 나이키하면 떠올리는 스우시(Swoosh) 로고는 1971년 포틀랜드 주립대의 그래픽 디자인 전공 대학원생 캐롤린 데이비슨(Carolyn Davidson)[5] 필 나이트의 제의를 받고 단돈 35달러에 제작했다. 이 35달러도 처음부터 단가가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당 2달러여서 17시간 30분을 만들고 만든 시간에 따라 35달러를 받았다고 한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약 211달러 정도라고.

나이트는 데이비슨에게 로고를 의뢰할 때 로고가 단순하고 부드러우며 동적인 느낌을 전달해야 한다고 주문했고 또한 아디다스의 로고와는 전혀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데이비슨이 로고를 완성하고 나이트와 경영진들에게 보여주자 나이트는 "별로지만 보면 볼수록 좋아질 것 같다. (I don't love it, but I think it will grow on me.)"라고 밝혔다고 한다. 로고가 발탁되고나서 데이비슨은 뭔가 아쉬운지 로고를 개선하고 싶다고 했지만 나이트는 마감 기한을 맞춰야해서 거절했다고 한다.

코르테즈 슈독 팩 출시로 알려진 이야기로는 본래 나이키라는 회사명은 블루 리본 스포츠라는 예전 회사명에서 바꾼 이름으로 또 다른 회사명 후보로는 팔콘과 디멘션 식스도 있었다고 한다. 셋 다 로고가 달랐으며 필 나이트는 그 중에서 나이키라는 회사명과 스우시를 택했다.

스우시는 1971년 상호를 나이키로 바꾸면서 공개되었다. 로고가 공개되고 난 후 나이키의 설명에 따르면 이 로고는 니케의 영혼과 날개를 상징한다고 한다. 사모트라케의 니케를 왼쪽으로 눕히면 나이키의 로고가 된다. 이 동상은 나이키의 로고를 만드는 데 큰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1971년부터 자잘한 변화가 있어왔지만 현재는 NIKE 글자가 달린 버전과 안 달린 버전만 있다.
파일:external/i.dailymail.co.uk/article-2004273-006A36D800000258-638_634x424.jpg
<rowcolor=#ffffff> 스우시 로고를 만든 캐롤린 데이비슨

데이비슨의 말에 따르면 1983년 9월, 나중에 나이키가 로고의 디자이너인 데이비슨에게 감사를 표하며 깜짝파티로 나이키 로고 모양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금반지와 나이키 주식 500주를 선물했다고 한다. 보통 회사가 대성공을 이루고 나서 페이를 적게 받은 디자이너들이 땅을 치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생각하면 도의적으로 후하게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 덕에 캐롤린 데이비슨은 백만장자는 아니어도 편하게 살고 있다고 스스로 말하기도 했다. 한동안 나이키에서 일했으며[6] 2000년 은퇴했다.

특히 현재에 와선 이 로고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로고가 되었으며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마이클 조던부터 타이거 우즈, 로저 페더러,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세레나 윌리엄스 등 수많은 선수들이 나이키의 협찬을 받아 장비를 입고 홍보를 하면서 이 로고가 자연스레 노출이 많이 됐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운동선수와 브랜드를 연결짓는다는 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1988년부터 밀어온 슬로건인 Just Do It과 함께 나이키의 대명사가 되었다.
파일:스우쉬.초기.디자인.jpg
<rowcolor=#ffffff> 나이키 코르테즈 슈독
2019년에는 코르테즈 레트로 제품이 출시되었는데, 스우쉬의 디자인이 살짝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디자인은 초창기 다음의 스우쉬였고, 이를 복각시킨 것이라고 한다. 안정감이 덜 들지만 자수로 박을 정도로 얇쌍한 디자인이다. 하지만 지금은 변화를 거쳐서, 조금 더 안정적인 형태가 되었다.

3. 슬로건

Just Do It.[7]
YOU CAN'T STOP [ruby(US, ruby=SPORT)].[8]
[ruby(우리, ruby=스포츠)]의 힘을 믿어.
Play New.[9]
모두의 운동장, 끝없이 서로의 가능성을 믿다[10]
WINNING ISN'T FOR EVERYONE[11]

4. 역사

4.1. 필 나이트 체제

파일:external/faceslaces.com/SWWWW.jpg
파일:external/s3.amazonaws.com/Bowerman_with_Oregon_track_athlete_circa_1969__original.jpg
<rowcolor=#ffffff> 창립자인 필 나이트(Phil Knight)와 빌 바우어만(Bill Bowerman)
파일:external/i2.cdn.turner.com/150715115654-02-nike-super-169.jpg
<rowcolor=#ffffff> 나이키의 전신인 블루 리본 스포츠
파일:external/s3.amazonaws.com/White_red_Cortez3_original.jpg
<rowcolor=#ffffff> 당시 코르테즈 신발
1957년 미국 오리건 대학교에서 만난 육상선수 필 나이트(Phil Knight)와 코치 빌 바우어만(Bill Bowerman)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에게는 운동화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고 대학을 졸업한 필 나이트는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 진학하고 빌 바우어만은 여전히 코치로 남아 있었지만 미국의 운동화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독일의 견제와 기록 향상을 위해 고성능 신발의 영향력을 각각 생각하고 있던 그들은 의기투합하여 1964년 블루 리본 스포츠 (Blue Ribbon Sports, BRS)를 설립하였다.

아식스로부터 자신들을 무역회사로 소개하여 아식스의 신발 메이커 중 하나인 오니츠카 타이거 신발 200켤레를 들이면서 사업은 시작되었다. 변변한 상점 하나 없이 창고에 제품을 쌓아두고 트럭으로 대학 운동장을 돌아다니며 제품을 판매하면서 첫 해 8천 달러의 판매로 250달러의 수익밖에 올리지 못했지만 필드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 우수한 운동화의 지속적인 연구는 선수들의 성적에 영향을 주었고 1969년도에 30만달러로 매출이 증가하였다.

1971년 블루 리본 스포츠는 더 이상 오니츠카 타이거를 유통하지 않고 자사의 신발 생산 라인을 구축하면서 나이키[12]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이 때 나이키의 스우시 (Swoosh) 로고가 탄생하게 된다.[13] 초창기에 자국 은행에 대출상담을 받으러 갔으나 거절당하고 한 담당자가 윗층에 일본 상사가 있으니 그곳에 가서 상담해 보라고 하였다. 그곳이 닛쇼이와이(현 소지츠)이다. 닛쇼이와이는 나이키에게 전폭적인 투자와 지원을 해 주었다.[14] 또한 나이키가 당시에 생산거점을 일본에 두고 있었는데 그 위탁생산을 했던 곳이 바로 아사히 슈즈다.

이후 나이키는 업계의 선두주자 아디다스를 추월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 필 나이트의 의지를 보여주는 일화로서, 아무 생각 없이 회의에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고 등장한 직원은 양말을 신고 회의에 참석할 수 밖에 없었다든가, 백설공주(아디다스)의 옷을 벗기는 난쟁이가 되겠다는 필 나이트의 발언이 있었다.

미국에 조깅 붐이 불었을 때, 조깅은 스포츠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신속하게 나서지 않던 아디다스와 달리 조깅화를 출시하여 미국 내 고객들의 호응을 얻었으며, 마이클 조던을 내세운 캠페인은 마침 노쇠한 아디다스의 경영자 호르스트 다슬러의 병크[15]와 겹쳐 아디다스리즈 시절에 마침표를 찍고 만다.

미국 내에 피트니스 열풍이 불었던 당시, 나이키는 조깅 열풍 당시의 아디다스처럼 아줌마들이 음악 틀어놓고 춤추는게 피트니스지 스포츠가 아님하면서 늑장대응하여 가벼운 피트니스화[16]를 출시한 리복의 도전을 받는 듯 했으나 아디다스처럼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는 않았다.

이후 1976년 브랜드 광고를 하게 되고 순식간에 성장하여 1980년에는 기업공개를 단행하여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함과 동시에 미국 운동화 시장 1위를 기록하게 된다. 다만 이때부터 나이키의 독주가 시작된 것은 아니다. [17][18] 이때 쯤부터 아디다스는 전세계 시장 지분에서 나이키에게 완전히 밀렸다고 볼 수 있다. 나이키의 매출은 마이클 조던과 협업으로 제작한 에어 조던 시리즈의 성공으로 급상승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이키 최초의 1987년 에어 맥스 광고 '레볼루션 인 모션(Revolution in Motion)'에 비틀즈의 노래 Revolution을 쓰면서# 이 광고로 나이키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2년 만에 나이키의 매출은 2배로 뛰었고, 자유초월이라는 광고 주제가 나이키의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가 됐다.# 참고로 에어 조던 시리즈는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스토리텔링으로 더해져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게 되었는데, 실제 나이키는 조던 브랜드를 독자적으로 런칭하여 운영 중이다. 그리고 에어 조던의 성공으로 큰 매출을 올린 나이키는 이후에도 타이거 우즈, 로저 페더러, 호나우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등 각 분야의 스타들과 계약을 맺어 하나의 라인을 런칭하고 스토리텔링을 불어넣는 마케팅 방법을 고수하게 된다.[19]

한편 1980년대 기업공개 이후 미국 시장에서 승기를 굳혀갈 시점부터 여러 업체들을 인수하기 시작했다. 1988년 콜한을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1994년 바우어 하키(나이키 바우어)를 인수하고 2002년에는 헐리를 인수했다. 2004년에는 스타터를 인수했다.

이 블루 리본 스포츠, BRS는 나이키에서 다시 디자인의 소재로 사용하려는 기미가 보인다.

4.2. 마크 파커 체제

2004년 창업자 필 나이트의 퇴임 이후 윌리엄 페리즈가 잠시 1년 남짓 자리를 지키다 2006년 12월 마크 파커가 CEO로 임명되었다. 나이키 사장이었던 파커는 1979년 사측의 첫 번째 신발 디자이너로 합류하여 30년 가까이 몸을 담고 있는 임원이다.

2007년 엄브로를 2억 8,500만 달러에 인수했으나, 동년도 스타터 재매각을 시작으로 브랜드 재편에 착수했다.

2008년 바우어 하키를 매각했다.

2009년 시작된 칸예 웨스트와의 합작 시리즈인 AIR YEEZY스니커즈 문화의 열풍의 도화선이 되었다.

2012년 엄브로를, 2013년에는 콜한을 매각하며 브랜드가 나이키 외 컨버스와 에어조던으로 재편되었다.

2017년 버질 아블로Off-White와 더 텐 컬렉션 협업을 진행하며 협업 열풍에 불을 지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카니예를 이를 다음 주자인 피어 오브 갓제리 로렌조와 함께 에어 피어 오브 갓을 발매했다.

2019년 10월 헐리를 블루스타 얼라이언스에 매각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4.3. 존 도나호 체제

2020년 1월 존 도나호가 마크 파커의 바톤을 이어받으며 신임 CEO로 취임했다. 서비스나우이베이 CEO 출신 기업인이다. 취임 하자마자 팬데믹으로 인해 위기를 맞았고, 2009년 대침체 이후 처음으로 연간 매출 감소를 겪었다.

2020년 12월 드레이크NOCTA 라인을 발표했다.

2021년에는 팬데믹 보복소비와 뉴트로 유행으로 인해 에어 조던 1, 나이키 덩크 등이 대유행하며 매출이 전년 대비 20% 넘게 증가했다. 이는 1997년 이후 24년만에 가장 높은 성장률이다. 인수합병의 경우에도 NFT, 디지털 판매 등의 분야에 집중했다. 팬데믹이라는 위기를 온라인 전환과 D2C 전환을 통해 해결했다고 볼 수 있다.

2022년 2월 스탁엑스의 볼트 NFT를 고소한 데 이어 5월 11일에는 가품 판매 혐의로 다시 한 번 스탁엑스를 고소했다. 지난 2개월간 네 켤레의 자사 가품 제품을 구매했다고 주장했다. 에어 조던 1 하이 OG 페이펀트 브래드 모델명이 직접 언급되었다.

2023년 1월 디자인 권리 침해로 베이프를 고소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4월에는 베이프 창업자이자 현재는 베이프를 퇴사한 NIGO와의 협업을 예고했다는 점이 아이러니다. 정작 베이프가 나이키 부틀렉 제품인 베이프스타 등으로 한창 잘나가던 2000년대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2023년 들어서는 2020년 코로나19 사태 당시 시작했던 D2C 전략의 실패로 인해 위기를 겪고 있는데, 코로나 사태 이후 전세계 시장의 백화점이나 도·소매 업체들과의 계약을 중단하고 온라인 판매에 집중했다. 그러면서 한정 판매 전략을 내세우면서 상당한 재미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코로나가 완화되는 과정에서 아디다스, 뉴발란스, 호카, 온 러닝 등의 경쟁자들이 오프라인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코로나 시절 재미를 봤던 인기 모델 재발매 및 컬러웨이 흥행이 다시 시들어가는 등 스니커즈 시장 전체가 예전만 못한 모습을 보이면서 매우 낮은 성장률로 돌아롸서 절대적인 강자인 두 브랜드 외에 뉴발란스, 호카 오네오네, 아식스 등 제 3 브랜드들의 인기가 오히려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나이키는 2020년도에 예전 신발들을 발굴해서 유행시키는 전략을 내세우고 있었고 이로 인해 나이키 덩크 중 검정-흰색 컬러웨이의 이른바 범고래를 필두로 나이키의 조던과 덩크는 매니아들이 리셀로 찾는 가장 유명한 신발로 꼽혔으나, 오프라인 매장에서 찾기 힘들다는 문제에 더해 한정판 판매 정책과 그에 이은 과도한 물량 공급 사이클은 스니커즈 시장이 가라앉자 오히려 대중들의 피로감으로 다가왔던 것. 월스트리트 저널도 "오랫동안 고객들의 관심을 독점했던 나이키는 소매점에서 찾기 어려워졌고, 고객층이 매우 제한된 한정판 운동화 등으로 사업중심이 옮겨가는 사이 경쟁자들이 몰려들면서 타격을 입었다"고 지적했다.

그로 인해 웃돈을 주고 구입해야 했던 범고래 덩크는 인기가 줄고 뒤늦게 편집숍이나 신발 전문점에서 정가나 할인가에 판매되면서 브랜드 가치에 조금씩 손상을 입히고 있다. 심지어 그간 삼바 가젤 등을 내세우며 올라온 아디다스가 2024년 들어 나이키의 대체제로 부각되면서 나이키는 뒤늦게 떨어진 브랜드 가치 조정을 위해 덩크와 조던1의 생산량을 줄이기로 결정했다. #

또한, 과거 발매된 패션 스니커즈 발굴과 한정질에 집중하던 전략으로 인해 스포츠 씬에 집중하지 못한 결과 한때 육상에서 카본 플레이트 러닝화를 선보여 일대 혁명을 일으켰던 시절과 비교해 혁신이 사라지면서 대러닝 시대[20]가 도래한 지금, 경쟁자들에게 쫓기고 있는 상황이다. 2019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선 나이키 브랜드를 신은 입상권 선수가 17명으로 압도적인 1위였지만 2023년 대회에선 10명으로 줄어서 8명인 뉴발란스에게 추격 중이며, 여러 마라톤 대회에서 나이키 일변도였던 선수들의 신발 선택은 다른 브랜드가 치고 올라오고 나이키의 러닝화는 외면받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또한 24년 7월 들어 주가가 70달러대로 급락해버리며 시가총액 증발과 같은 악재로 인해 2025 회계연도 1분기(2024년 6~8월) 매출이 전년 대비 10%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로 인한 대규모 인력 감축도 진행하면서 비록 여전히 스포츠 브랜드 중에서는 1위를 고수하고 있지만 위기설이 지속적으로 거론되는 상황이다. "나이키 대신 호카"…직판 전략 실패로 싹 바뀐 트렌드 사라진 혁신의 '저스트 두 잇'… 나이키의 추락

4.4. 엘리엇 힐 체제

2024년 9월 19일 나이키는 존 도나호 CEO의 사임과 은퇴를 발표했다. 자진 사임의 형식이지만 실제로는 실적과 주가 부진의 책임을 물어 경질 되었다는 관점이 지배적이다. 월가는 CEO 교체 소식에 환호하며 뉴스가 나오자마자 장외 거래 주가가 7% 급등했다. 10월부터 기업을 이끌 후임 CEO로는 1988년 인턴으로 입사한 뒤 무려 32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보낸 전 임원 엘리엇 힐을 임명했다.[21]

5. 한국 시장

파일:나이키서울.webp
서울 중구 명동에 위치한 플래그십 스토어
나이키 서울

한국에서 나이키는 1981년 (주)화승그룹 계열사인 (주)풍영과의 기술제휴로 국내에 첫선을 보였다. 기사 1986년 화승과 결별하고 (주) 삼양통상과 50대 50의 자본제휴로 한국나이키를 설립한다.기사 1989년 삼나스포츠로 사명을 변경한다. 1994년 전체 지분을 나이키가 인수하고 나이키스포츠 코리아로 재출범한다.

2021년 나이키 매장 최고 등급 상점인 라이즈 메가숍이 중국에 이어 전세계 두 번째로 한국 명동에 개장했다.

서울시 평생교육진흥원,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의 협력하여 어린이 스포츠 지원을 위하여 금천구에 '모두의 운동장'을 건설하였다.#

한국 스포츠 용품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 기업이지만 젊은층들의 이탈이 점점 늘고 있다. 실제로 2023년에는 매출은 20.1% 증가에 그쳤다. 여기에 DTC 강화 등에 따른 판매비와 관리비 증가로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267억 원 감소했다. 이에 따라 재고자산이 급격히 불어났고, 현금 유동성도 안 좋아졌다. 나이키코리아의 재고자산은 5,242억 원으로 전년보다 72%나 증가했다. 반면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전년 1,097억 원에서 300억 원으로 72.7%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2024년 나이키 코리아는 구조조정으로 직원들을 정리해고 했다. 전세계적으로 판매량이 떨어지는 것처럼 한국도 비슷해지고 있으며 일본이나 중국도 이 추세를 따라가고 있다.

6. 지배구조

주주 지분율 비고
스우시 LLC 16.1% [22]
뱅가드그룹 9.0%
블랙록 7.3%
트래비스 나이트 2009 취소불능 신탁 2.8% [23]
필 나이트 2.6%
2024년 6월 기준#

7. 광고

<rowcolor=#ffffff> 2004년 월드 시리즈 이후 나온 광고.[24] 1인칭 시점인 광고[25]
<rowcolor=#ffffff> Just Do It: 너를 외쳐봐 Just Do It: 승리의 룰은 단 하나, 즐기면 된다.[26]

광고와 마케팅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광고 업계 전체의 귀감이 되는 수준이다.

나이키의 필 나이트는 광고의 중요성을 굉장히 강조했는데 이렇게 말하기도 하였다.
Nike is a marketing-oriented company, and the product is our most important marketing tool.
나이키는 마케팅에 기반한 회사이다. 그리고 상품이 바로 우리의 가장 중요한 마케팅 도구다.

이는 상품을 광고에 직접 보이거나 선수들에게 협찬을 해주면서 광고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들의 마케팅에는 광고대행사 와이든+케네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창업 초기부터 현재까지 나이키의 마케팅을 전담해 왔고 나이키와의 작업을 바탕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독립 광고대행사로 성장했다. 창립자 댄 와이든은 나이키의 유명한 슬로건 "Just Do It"을 고안해 내기도 했다.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f86bc5973071a9e835101c0ea0fd5f28.jpg
<rowcolor=#ffffff> 최초의 에어 조던 광고[27]

수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나이키 CF를 거쳐갔다. 마이클 조던[28]부터 시작해서 타이거 우즈까지.
<rowcolor=#ffffff> Из чего же сделаны наши девчонки?[29]
2017년, 나이키 러시아에서 만든 나이키우먼 광고 역시 호평을 받았다. 2022년 기준 조회수 1,000만 뷰를 돌파했다.

2018년 9월 나이키는 "Just Do It" 30주년 광고 캠페인에 전 미식축구 선수 콜린 캐퍼닉(Colin Kaepernick)의 얼굴과 함께 의미심장한 문구를 써서 화제에 올랐다. 광고 영상. 몇몇 구매자들이 이에 나이키에 항의하는 의미로 자신들이 산 나이키 신발을 불태우는 영상을 올렸으나#, 애초에 Kaepernick을 지지할 만한 사람들(진보, 다인종, 도시)이 나이키나 다른 소위 힙한 브랜드들이 노리는 주요 고객층[30]이고, 기대했던 대로 소셜 미디어에서 화제가 되었고[31] 기존 타겟층의 브랜드 충성도가 높아진 게 확연하기 때문에 나이키 측에서는 콧방귀도 안 뀌고 있는 상황이다. 주식은 광고 공개 이후 폭락했다가 다시 회복하고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오히려 나이키 주식을 살 것을 권장하기도 했다. 실제로 광고 후 나이키 온라인 매출이 31% 상승했다.

다만 나이키가 자신들의 신발을 만들고 있는 주로 동남아 지역의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인권침해엔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반응을 보이면서 미국에서만 이런 광고를 하는 것이 위선적이라는 비판도 있긴 하다. 이에 대해 나이키는 초기만 해도 "우리 회사가 공장을 소유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 공장에서 일하는 하청업체 노동자들까지 우리가 신경쓸 여력은 없다", "우리 회사는 제3세계 노동자들에게 빈곤을 탈출할 '기회의 사다리'를 제공한다"고 주장했으나, 1996년 한 잡지의 표지에 12살짜리 파키스탄 소년이 나이키의 로고가 새겨진 축구공을 바느질하는 사진이 실리면서[32]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하청업체 관리와 노동통제의 관행을 바꾸는 프로그램도 마련하게 된다.
<rowcolor=#ffffff> 너라는 위대함을 믿어.
2019년, Just Do It. 슬로건을 기반으로 제작된 마지막 광고영상. 보아의 나레이션으로 제작되었으며 엠버 리우, 박나래, 청하 등이 출연한다.[33] 2022년 기준 조회수 1천만뷰를 넘기며 나이키 코리아 유튜브에 게시된 영상 중 조회수 1위를 기록했다.
2020년 7월 30일에 업데이트 된 새로운 광고. 여기서 지난 40년간 나이키의 상징과도 같았던 "Just Do It"에서 탈피하며 "You can't stop us"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처음 공개했다. 이 광고는 세계 여러 나라의 스포츠 영상들을 한데 어울려 훌륭한 퀄리티로 엮어내어 엄청난 충격을 주었으며, 그에 담는 메세지도 비록 세계가 코로나로 침체되었지만 우리의 열정은 식지 않을 것이라는 시대 저항의 이미지를 담고 있어 많은 호평을 받아내었다. 영상을 세심하게 보면 나이키 이외의 브랜드는 일절 노출하지 않았는데, 이것이 엄청난 강도의 CG 작업을 진행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 때문에 다수의 광고 관계자들은 해당 광고의 제작팀이 상당히 고생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후로도 나이키는 다른 집단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광고나 행보를 하며 "You can't stop us"라는 슬로건을 사용해 기존의 "Just Do It" 보다도 더욱 강렬하게 사람들에게 슬로건을 각인시키고 있다.
<rowcolor=#ffffff> 새로운 미래 A New Day | Play New Play New
2021년에는 "You can't stop us"에 이어 "Play New"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공개했다. 작년의 호평을 이어나가 승리와 성공에만 집착하는 스포츠의 관습을 깨부수고 즐길수 있는 스포츠를 만들자는 메세지를 전달해 호평을 받았으며, 특히 국내에서는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팀 집단 가혹행위 사건이나 2021년 학교폭력 폭로 사건과 스포츠에서의 가혹행위와 같은 사건이 터지면서 이러한 행위에 대한 경각심이 늘어났는데 이를 깨부수어야 한다는 메세지를 강렬하게 보여줘 엄청난 화제와 호평을 받았다.
<rowcolor=#ffffff> 모두의 운동장
2022년 새롭게 발표한 슬로건에 맞춰서 김민경의 나레이션으로 영상을 제작했다.
<rowcolor=#ffffff> Seen It All
2022년 나이키의 50주년을 맞이해 공개한 광고이며 이제껏 놀라운 퍼포먼스를 보이며 활약한 운동 선수들에 대한 헌정 영상이다. 제작은 과거 조던 농구화의 제작을 한 스파이크 리이며 '인디고 허바드 살크'와 함께 공동 주연으로 출연하였다. 스파이크 리는 과거의 선수를 허바드 살크는 미래의 선수를 소개하며 선수들에 대한 존중을 보여준다. 물론 코비 브라이언트에 대한 추모도 빼먹지 않았다.
<rowcolor=#ffffff> 아무나 오를 수 없는 승자의 자리

2024년 파리 올림픽을 위해 공개된 광고로 “승리는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주제를 가지며 윌렘 대포가 나레이션을 맡았다.[34]

8. 마케팅

1위 스포츠 브랜드답게 마케팅 능력도 매우 좋다.[35] 사실상 마케팅의 힘이야말로 나이키가 1위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게 해준 원동력이라 할 만한데, 나이키를 떡상시킨 에어 조던에 대한 마케팅 역시 그 대표적인 예시이다. 당시 NBA의 규정상 색깔을 맞춰야 했고, 조던은 벌금을 내면서까지 에어 조던 1 농구화를 신었다는 설이 전설처럼 떠돌고 있으며, 나이키는 광고를 통해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이것이 조던1이 기성세대와 권력에 저항한 젊음과 자유의 상징이 되어 전설적인 스니커즈로 남게 된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이는 나이키 측에서 마케팅을 위해 사실을 교묘하게 섞은 거짓말을 지어내서 써먹은 것이다. 조던이 유니폼 규정을 위반했을 때에는 마이클 조던에게 에어 조던이 지급되지 않았었다.[36]

그리고 에어 조던 1 시카고 컬러의 앞코를 만들 때 실수로 색깔을 잘못 조립했는데 그게 예뻐서 일명 블랙 토 모델이 되었다는 것도 역시 거짓말이며, 블랙 토가 시카고보다 먼저 만들어져있었다. 그러므로 이도 나이키의 마케팅일 가능성이 높다.

21세기에 들어서도 특유의 마케팅은 가히 경이로울 정도인데, 셀럽이나 럭셔리 브랜드, 유명 스트릿 브랜드들과의 콜라보도 스포츠 브랜드 중 가장 공격적인 방향으로 진행하며, 신발 리셀 시장과 스니커헤드들의 니즈를 잘 파악하고 조용한 제품을 갑자기 각광받게 하는 전략을 매우 잘 활용한다. 가령 2020년도에 갑자기 떡상한 나이키 덩크의 경우, 원래도 인기가 있는 신발이었지만 불과 2010년대만 해도 색 조합이 시원찮을경우 아울렛에 갈 정도로 평범했다, 하지만 오프화이트와의 협업, 스케이트 보드의 올림픽 채택, 덩크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등. 대중들에게 덩크를 신어야 할 갖가지 이유를 들먹이면서 물량을 한정으로 풀어버렸고, 그 결과는 당연하게도 20년도를 덩크의 해로 만들어버렸다.

이처럼 나이키는 특정 실루엣이나 색깔의 제품에 담긴 사연을 구구절절하게 끼워맞추고, 제품을 구입해야 할 이유를 강제로 만들어서 콜라보나 한정적인 발매를 통해 대중들의 에너지를 집중시킨 뒤, 시장이 포화될 때 쯤, 갑자기 물량을 풀어버리고 곧바로 다른 실루엣의 제품으로 눈을 돌려서 다시 앞선 사이클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아디다스나 뉴발란스 같은 경쟁사들이 이런 마케팅 능력에 있어서 나이키에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신발 리셀 시장의 경우 나이키가 매우 높은 비중을 지니고 있다.

나이키 캠페인 광고의 특징은 하나 같이 열정과 끈기를 강조하고, 이를 통해 브랜드의 상징성을 나타낸다. 또한 인스타그램 게시물 같은 사소한 마케팅 게시물도 보정을 엄청 하고 선수 혹은 상황에 어울리는 슬로건을 제작한다. 또한 나이키는 자사 광고 게시물에서 다른 브랜드 노출에 굉장히 민감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나이키가 후원하는 유니폼을 입은 축구 팀이 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다른 브랜드 노출을 방지하기 위해 선수들의 상반신만 노출시킨다.

9.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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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스폰서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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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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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여담

1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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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순히 스포츠 용품 브랜드 중 1위가 아니라 전세계 어페럴 브랜드 1위의 가치를 지녔다. 2019년 브랜드 파이낸스가 조사한 어패럴 브랜드 가치 조사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 2019년 포브스가 선정한 기업 가치 순위에도 패션 브랜드 중 루이 비통과 함께 20위 안에 들었다.#[2] 드물긴 하나, 이 로고와 특유의 필기체 글꼴도 아주 가끔씩 빈티지 나이키 슈즈에 각인되어 나오는 경우가 있다.[3] 현재는 주로 NIKE 로고가 안 달린 버전으로 쓰지만 이 버전도 사용 빈도가 적지 않다. 스포츠, 전문 기능성 제품은 스우시 로고만 있고, 캐주얼 제품들은 사진처럼 나이키와 스우시 로고가 같이 들어가 있다. 축구 유니폼을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4] 물론 요즘은 파리 생제르망 FC와 같이 에어 조던과 콜라보해 스우시 대신 조던 로고를 넣는다거나, 레트로한 느낌을 내기 위해 'NIKE' 문구가 들어간 스우시를 넣는 경우도 있다.[5] 심지어 처음부터 그래픽 디자인을 지망한 게 아니라 저널리즘 공부 도중 학점 채우기용으로 디자인 수업을 듣다가 전과했다고 한다.[6] 회사가 작았을땐 전담이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70년대 중반부터 나이키가 외주를 주면서 데이비슨 역시 나이키 일 말고 다른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7] 2019년까지 나이키에서 쓰이던 슬로건. 한국어로는 '그냥 해.'[8] 2020년의 나이키의 슬로건으로 전 세계가 스포츠로 다른 사람들간의 벽을 뛰어넘어 하나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9] 2021년의 나이키의 슬로건으로 기존의 승리와 성공에만 집착하는 강압적이고 부조리한 스포츠의 관습을 부수고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스포츠를 만들어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10] 2022년의 나이키의 슬로건으로 어느 누구 스포츠에서 뒤떨어지는 일 없이 자신이 원하는 스포츠를 찾아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11] 2024년 2024 파리 올림픽을 기념하여 나온 슬로건.[12] '나이키' 라는 이름은 그리스 로마 신화 에 등장하는 승리의 여신에서 따온 것이다.[13] 오니츠카 타이거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신발이 바로 코르테즈다. 자동차 업계로 본다면 아식스는 미쓰비시, 나이키는 현대자동차 정도 된다.[14] 이후 나이키 재팬도 닛쇼이와이와의 합작으로 설립했다.[15] 아디다스의 미국 내 총판을 맡고 있던 미국인들로부터 판매권을 인수하는데 자금을 무리하게 동원하였다.[16] 아시아의 모 국가에서 실수로 장갑용의 가죽으로 신발을 생산하여 납품한 것이었다. 참고로 그 모 국가는 한국일 가능성이 높다. 1970~1980년대 화승산업에서 나이키에 스포츠화를 공급했기 때문이다. 국내 나이키 총판을 맡기도 했지만, 1986년 나이키와의 계약 종료로 르까프 브랜드를 런칭했다. 여기에는 나이키 뿐만 아니라 리복을 위시한 타 브랜드에도 신발을 납품하려는 화승의 계획과 자사에만 독점 납품하기를 원했던 나이키와의 의견 대립이 원인이였다는 설이 있다. 참고로 그 시절 세계 최대의 스포츠화 생산기지는 한국이였다. 산업화 시대 한국 제 가발과 신발이 전세계 공급의 60% 정도를 차지했다고 한다. 전세계인들이 쓴 신발이나 가발의 절반은 한국에서 제작된 제품이었던 것. 물론 그 뒤에는 단가와 납기를 맞추기 위한 어마어마한 노동 착취가 있었다.[17] 나이키는 아디다스를 역전했지만 80년대 중후반부에 리복에게 역전당했으며, 1989년 당시 리복의 매출은 18.2억 달러, 나이키는 17.1억 달러로 앞서고 있었다고 한다. https://www.retaildive.com/news/reebok-was-meant-to-be-a-nike-killer-how-the-brand-lost-its-no-1-spot-adidas-sale-of-reebok/603733/ 또한 1980년대만 해도 나이키와 리복, 아디다스와 컨버스가 경쟁을 하던 구도였으며, 컨버스는 당시 NBA에서 연봉을 많이 받는 최고 인기선수였던 매직 존슨과 래리 버드를 동시에 계약하기도 했다.(1984년에 두 선수가 같이 함께 컨버스 광고를 찍다 친해졌다는 건 유명한 얘기다. 유튜브에도 영상이 남아있다) 1980년 당시 나이키가 한때 업계 1위를 차지하긴 했으나, 운동화 시장의 절반을 집어삼켰다는 건 과장이다. 1990년대 초중반까지 나이키와 리복은 팽팽했으나, 1990년대가 꺾이고 나이키가 독주, 아디다스가 열심히 따라가는 사이 리복은 지지부진하며 완전히 둘에 비해 뒤쳐지게 된다.[18] 나이키는 1979년에 미국 런닝화 시장 지분의 절반을 차지했다. 1970, 1980년대 당시 나이키는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성장하며 아디다스, 컨버스처럼 기존의 강자들을 앞서나가던 시기였지, 1990년대 중반 이후처럼 절대강자가 아니었다.[19] 조던의 성공 이후 파트너쉽의 중요성을 깨닫고 상당한 공을 들였기 때문에 우즈, 페더러, 호날두, 르브론 등 각 분야의 간판 선수들은 그들이 본업에서 수령하는 금액에 상응할 정도의 계약금을 안겨주었다.[20]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 및 둔화 현상으로 인해 금전적으로 가성비 좋은 운동인 런닝이 대두되었다.[21] 사장으로서 상거래와 마케팅 분야를 이끌다가 2020년 은퇴 후 복귀한 것이다. 외부 경영인을 영입하는 대신 일찍이 은퇴했던 사내 인사를 다시 복귀시켰다는 점에서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옅볼 수 있다.[22] 창업자 필 나이트의 가족재단.[23] 창업자 필 나이트의 아들이 설립한 신탁.[24] 별다른 문구 없이 흘러가는 시간만을 표시했음에도 강한 메시지를 전달했던 광고로,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광고계에서 엄청난 주목도를 받았다.[25]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웨인 루니, 카를로스 테베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호나우지뉴, 세스크 파브레가스, 로빈 반 페르시, 보얀 키르키치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아르센 벵거등 당대 최정상 축구스타와 감독들이 참여하였다.[26] BIGBANG태양, 2NE1산다라 박, 축구선수 박지성, 테니스 선수 정현이 카메오 출연.[27] 후에 에어 조던 29에 프린트되어 나왔다.[28] 마이클 조던이 아디다스의 팬이었고, 계약을 맺을 당시 나이키보다 아디다스와 계약하기를 고대했던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1984년 당시 나이키의 주식은 폭락을 거듭했었지만 조던과의 계약 후 최초의 시그니쳐 개념을 가진 Air Jordan이란 메이커가 대박을 친 후 아디다스와 나이키의 상황이 역전됐으며 또 1990년대 초반, 즉 마이클 조던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당시에는 몇몇 사람들이 Air Jordan을 나이키에서 독립시켜 독자적 브랜드로 만들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고 한다. 만약 그랬다면, Air Jordan은 세계 3위의 신발 제조 회사가 되었을 것이다.[29] 번역하면 '우리 딸들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30] 즉, 나이키는 보수주의자나 시골 공화당원, 트럼프 지지자는 필요없다는 것. 또한 사회적 이슈로 광고를 시도했지만 실패한 펩시스타벅스와 달리 예전부터 나이키는 '반항아'적인 광고를 해왔으며, 이러한 광고가 나이키의 브랜드 정체성을 강화시켜 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31] 실제로 4천 3백만 달러 가치의 SNS 버즈량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32] #[33] 잠깐 지나가지만 전 프로배구 선수인 김진희장영은도 등장한다.[34] 다만 이 광고는 기존에 나이키가 광고로 내세웠던 것과 많이 대비되면서 비판을 받고 있다.[35] 유명한 Think different 광고로 Apple을 다시 전성기로 회귀시킨 스티브 잡스도 칭찬했었다.[36] 조던이 당시 신었던 모델은 에어 쉽 모델이었다.[37] 그러나 피니시라인은 서로 치수가 안 맞는 신발을 보내는 경우가 있어 "막장 라인"으로 불린다. 실제로는 물건을 직구로 구매하고 받아놓고선 못 받았다고 카드 결제를 취소해버리고 물건도 보내지 않는 블랙컨슈머가 많아서 안 받는다는 말이 있다. 다른 풋 계열은 잘 받는 중이고 변팔만 잘되면 미국 공홈에서 충분히 한국카드 사용 가능하다.[38] 나이키의 베스트셀러 제품을 여러 컬러웨이나 소재를 바꿔 재창조[39] 실제로 칸예 웨스트는 패션계 입문 전부터 펜디의 인턴사원으로 일하며 디자인을 배웠다.[40] 피스마이너스원 브랜드로 4번의 협업을 진행했다.[41] 나이키와 콜라보로 제작된 <The Fearless Ones>에도 참여했다.[42] 나이키 디자인의 드라이빙 슈즈와 티셔츠가 들어있는 알루미늄 케이스의 패키지며 국내에는 수입되지 않았다.[43] 나이키 산하의 에어 조던 역시 수록 예정 브랜드로 등록되어 있다.[44] 폴 조지 시그니처[45] 상술한 애플 워치 나이키 에디션에 나이키 페이스와 기본적으로 설치된다.[46] 거의 유일하게 파리 생제르맹 FC만큼은 디자인에서 좋은 평가를 듣는다.[47] 사실 이건 부정적인 반응이 나올수밖에 없는게 디자인도 이전 것을 재탕한 날로 먹은 수준인데다 재질도 2018월드컵 까지는 최상위 등급에서 한단계 아래등급으로 유니폼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다만 조중연이 8년 호구 계약을 맺은게 크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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