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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7 06:47:22

목욕탕

공중목욕탕에서 넘어옴
1. 개요2. 역사
2.1. 유럽2.2. 한국2.3. 튀르키예2.4. 일본2.5. 영미권
3. 특징
3.1. 규모와 구조3.2. 탈의실
4. 입욕권5. 성별에 따른 구분6. 남탕과 여탕의 문화적 차이7. 문제점
7.1. 손님 입장7.2. 목욕탕 입장
7.2.1. 목욕 물품 도난7.2.2. 목욕탕에서의 비매너
8. 매체9. 언어별 명칭10. 문서가 있는 목욕탕11. 관련 문서

1. 개요

/ public bathing

목욕을 위한 장소를 제공하는 시설이다.

2. 역사

2.1. 유럽

문명이 세워지고 다수의 사람들이 밀집해서 살게 되면서 청결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인더스 문명의 중심지인 모헨조다로 유적에서는 대규모의 공중 목욕탕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문명의 초창기부터 목욕탕이 인류의 역사와 함께했음을 알려 주는 증거이다. 기사

고대 그리스 때는 온천에서 목욕 문화가 생겼다. 기사. 목욕을 자주 하면 건강에 좋다고 생각했는데, 당시 목욕은 일반 석재나 대리석을 사용해 만든 탕에 따듯한 을 담고, 그 안에 들어가 시녀가 몸을 닦아주고, 목욕이 끝났다면 젖은 몸의 물기를 마른 수건으로 닦아주고, 뽀송해진 몸에 기름을 발라줬다. 손님이 목욕을 한다면 시녀 또는 주인집의 딸이 입욕보조원 역할을 했다. 기사. 스파르타의 열기욕도 유행했는데 증기탕에서 땀구멍을 열어 노폐물을 깨끗이 씻어내고 찬물에 몸을 담그는 것이었다고 한다. 현대의 사우나+냉수마찰과 같다. 목욕을 하면서 몸과 함께 마음도 닦는다는 인식이 있어 전 그리스에 유행하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 최초의 공영 공중목욕탕은 기원전 4세기경에 생겼는데, 원래 강이나 바다에서 목욕하던 고대 로마인들은 이를 보고 그리스식 목욕에 매료되어 그리스식 목욕탕을 전국으로 확산시켰다. 기사. 또한 신체를 단련할 수 있으며 젊은 청년들의 교육을 담당한 시설인 체육관이 생기게 되자, 자연스레 땀을 씻을 수 있는 목욕탕도 같이 필요로 하게 되었다. 링크

고대 로마인들은 그리스식의 목욕탕을 만들기 전에는 신체를 나약하게 만든다면서 노예들의 목욕을 금지시킬 정도였다. 하지만 목욕 문화가 확산되면서 부유층들은 안 보이고 으슥한 곳이긴 하지만 집에 목욕 시설을 갖추기 시작했고, 수로가 생겨 사람들이 많은 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공공목욕시설이 부흥하게 되었다. 목욕탕은 테르메 또는 테르마이(thermae)라고 하며 커뮤니티 장소로도 애용되었고, 목욕하면서 연극 등을 볼 수 있는 공연 시설이나 도서관도 함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점 때문인지 고대 로마의 목욕탕은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고, 또한 사치스럽기로 유명하다. 기사. 전성기 로마 제국의 목욕탕에는 마사지나 털 제모 서비스 같은 것은 물론이고 식당, 운동 시설, 도서관, 상점 등 각종 시설이 있었다. 링크. 이때의 목욕 방법은 먼저 뜨거운 열기욕으로 을 뺀 뒤, 온탕에서 몸을 뻗고 긴장을 풀어주고, 냉탕에 들어갔다 나와 몸을 문질러준다. 질병 예방 효과를 위해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드나드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심장 발작을 염려해 병약자들은 피할 것을 권했다. 목욕 뒤에는 피부 관리를 위해 올리브유 마사지가 좋다고 봤다. 이런 목욕을 하루에 2~3번 권했는데 서민 이하는 목욕을 하루에 한 번 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에 귀족이나 왕족만 가능했다. 귀는 식초로 닦았고, 이를 표백하기 위해 소변으로 닦았다. 다만 면도는 이발소를 따로 찾았다. 기사

이 당시 고대 로마에는 황제들이 건설 및 감독한 목욕탕이 많았는데, 아그리파아그리파 목욕탕, 네로 황제의 네로 목욕탕, 티투스 황제의 티투스 목욕탕, 트라야누스 황제의 트라야누스 목욕탕, 카라칼라 황제의 카라칼라 대형목욕탕,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디오클레티아누스 목욕탕, 콘스탄티누스 1세 황제의 콘스탄티누스 목욕탕 등이 존재하였다. 참고로 사용한 물은 클로아카 막시마로 흘러나갔다. 즉 현대의 찜질방, 리조트와 같다고 보면 된다. 한때 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영국에 로마인들이 만든 목욕탕인 Roman Bath가 남아 있는데, 규모가 꽤 크다. 다만 현대에는 수질이 나빠져서 이 목욕탕에서 목욕을 할 수는 없다고 한다.[1]

고대 로마 시대의 목욕탕은 현대와는 달리 기술상 등의 문제로 을 수시로 갈지 못했고 여기에 물의 따뜻함이 더해지면서 온갖 세균편충·선충기생충의 안식처로 변하였다. 청결을 목적으로 하던 목욕이 전염병의 전파 경로로 변질되어 버린 것이다. 깨끗한 상수도 시설로 콜레라 같은 수인성 전염병의 대규모 확산을 차단한 로마인들이었지만 불행히도 목욕은 기생충에 대해서 아무런 예방책이 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목욕을 자주 한다고 해도 목욕을 안 하기로 유명했던 바이킹이나 중세 유럽인과 비교해 보면 로마인의 몸에 기생충이 더 적지는 않았다고 한다[2].기사, 기사 2, 기사 3

로마 제국기독교가 널리 퍼지면서 나신을 드러내는 걸 안 좋게 여기는 인식이 퍼진 데다가,[3] 당시 목욕탕이 매춘장소로 쓰이는 등[4] 여러 이유로 인해 위와 같은 사치스러운 형태의 목욕탕은 사라졌다.

사람들의 통념과 달리 중세 시대에 들어서도 유럽에는 대중목욕탕이 존재했고 씻는 것을 그다지 기피하지도 않았다. 극히 일부의 고행자들이 목욕을 적극적으로 기피했는데, 반대로 말하면 목욕 안 하는 게 고행으로 여겨질 정도로 보통은 목욕을 좋아했다는 뜻도 된다. 그러나 목욕탕이 일종의 공창의 역할을 겸하면서 "목욕하러 간다는 것은 매춘하러 간다" 정도의 인식이 생기게 되었고,[5] 심지어는 목욕탕이라면서 욕조는 없고 침대만 즐비한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본래 목적인 위생과 청결에 있어서도 점차 멀어졌을 뿐더러 목욕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 키우게 되었다.[6] 그리고 중세 후기에 들어 물로 씻는 일반적인 목욕 대신 사우나가 보급되고 증기 목욕이 인기를 끌게 되면서 목욕은 청결을 위한 필수적인 행위라기보다는 일종의 사치로 여겨지게 되었다. 결국 중세 말에 들어서 목욕탕은 비위생적인 관리로 전염병의 온상이 되기도 하고, 게다가 몸을 씻지 않는 기괴한 풍습이 생겨나며[7] 몰락한다. 이건 전염병의 원인이 비위생적인 관리가 아니라 목욕탕이나 목욕이라고 잘못 짚어버린 탓도 있다. 다만 중세 시기의 목욕탕은 현대와는 달리 위생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어중간한 공중 목욕탕에 들어가느니 차라리 안 씻고 사는게 전염병에는 보다 안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8] 이외에 대량의 물을 사용하는 전통적인 목욕탕 말고도 빵집에서 빵 굽는 증기를 이용한 한증막 형식의 목욕탕도 널리 퍼졌다고 전해진다.

근대에 들어서는 인구는 폭증했는데 사회 기반 시설은 점차 열악해졌기 때문에 오히려 고대나 중세보다도 사람들이 더 잘 못 씻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수많은 사람들의 청결을 보장할 수 있을 만큼의 목욕 시설을 유지하려면 대량의 깨끗한 과 그 물을 운반할 수 있는 상수도 시설, 그리고 물을 데울 수 있는 연료가 필요한데 과거에는 사람 수가 적었기에 일단 문제는 되지 않았지만 근대에 들어서면서 발전한 기술력으로도 그러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던 것이다. 향수가 널리 쓰이고 발전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9]

2.2. 한국

한국의 경우 박혁거세 신화나 김알지 신화에서 알 수 있듯이 알에서 태어난 이들을 냇가에서 씻기자 비로소 광채가 났다고 하여 오래 전부터 종교적인 의미를 포함해 씻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으며, 불교가 전래한 이후 불교식 목욕재계(沐浴齋戒) 개념과 더불어 몸을 청결히 했다는 기록은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경주 안압지에서는 신라시대의 목욕탕으로 추정되는 터가 발견되어 주목을 끌기도 했으며, 삼국유사에는 683년에 신라의 재상이 동래온천에 입욕했던 기록이 남아 있다. 고려시대에는 역시 불교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몸을 자주 씻었다는 기록이 있고,[10] 조선 시대에 들어서는 정방이라 하여 실내에 목욕소를 두었다. 현대에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대체로 목욕 시설이 구비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자신이 자주 다니는 절에서 씻었다. 숭유억불로 인해 목욕 문화가 쇠퇴했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그 때 당시의 위생 요소들을 볼 때 한국의 목욕 문화가 전세계에서 가장 최선진국 문화에 속한다.[11]

왕실이나 민간에서 한국 내의 온천지[12]로 온천욕을 다녀오는 일은 자주 있었으며 온양에는 행궁을 설치했을 정도이다. 당시 온천욕은 휴식의 의미도 있었지만 대개 의료적인 측면이 컸다. 1617년 정구(鄭逑)가 남긴 봉산욕행록(蓬山浴行錄)을 보면 당시 동래 온양 온천의 온정원(溫井院)을 찾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 당시에도 이미 온양 온천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 잡지 못해 수차례 개축하였으며 이는 1766년 부산 온양 온천에 세운 온정개건비를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참고로 이 온정개건비 앞에 있는 석조(石槽)는 현존하는 조선 당시의 욕조 유물이다. 봉산욕행록 등 당시 기록을 보면 나무 욕조도 같이 쓴 듯 하다.

고려시대까지는 을 벗고 씻었지만 조선 시대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알몸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서 목욕용 옷을 따로 입고 씻었다는 기록이 있기도 하다.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피부에 좋다며 남아를 복숭아 꽃물에 씻긴 기록이나 쌀겨, 조두 등을 비누 처럼 거품을 내어 사용한 기록이나[13] 수세미로 만든 일종의 목욕용 기구들과 전하는 이름들을 볼 때 어느 정도 목욕을 즐긴 것으로 보인다.[14] 또한 현대의 찜질방과 비슷한 유형인 한증막이 존재했으며[15] 글과 그림으로 많이 묘사된 탁족[16]이나 신윤복의 단오풍정 등을 볼 때 정형화된 욕탕보다는 개울이나 강가 등 노천에서 씻는 행위를 즐긴 경우도 많은 듯하다.

1905년 서울 서린동에서 한국 최초의 대중목욕탕이 문을 열었는데, 모르는 사람끼리 발가벗고 목욕을 한다는 것에 익숙지 않은 문화라서 곧 문을 닫고 말았다고 한다. 우리 선조의 목욕문화 - 문화재청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식 목욕탕 문화가 유입되기도 해서 지리적으로 일본과 가까워 일본인이 많이 정착한 부산의 경우 1909년에 부산 시가지[17]에서 온천이 있는 동래까지 부산전차를 만들어 온천 셔틀로 돌리기도 했다. 1924년 평양에, 1925년 서울에 대중목욕탕이 들어섰지만 당시 사람들은 공중 목욕탕을 두고 "어찌 남에게 맨몸을 보여주나"하고 거부 반응을 보여 정착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고 한다.[18][19]

이렇게 목욕 풍습은 계속 이어졌고 대중목욕탕 또한 이태리 타올목욕관리사도 생겨나면서 지금 우리가 알고있는 한국식 목욕탕이 만들어 졌으며 1990년대 중후반에 찜질방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대다수가 찜질방과 겸업하고 있다. 기사 찜질방이 없어도 어지간히 작은 사이즈가 아닌 이상 이발소가 같이 붙어있는 경우가 많다. 찜질방을 겸하는 업소라도 대개 목욕탕 시설 안에 찜질을 위한 작은 장소를 제공하는 곳이 대다수다. 수영장이나 워터파크도 샤워실과 연결된 찜질방과 목욕탕 시설을 갖추고 있으니 대중목욕탕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외국인들에게는 이국적 풍경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어느 동남아 남성은 한국의 목욕탕에서 모든 남성들이 나체로 있는 모습을 보고 컬쳐 쇼크를 받았다고 한다. 자국의 목욕탕에서는 같은 남탕이라도 팬티는 입고 목욕했다고 한다. 사실 이건 제법 많은 나라들이 그런다. 유럽아랍, 북아프리카를 다니며 신혼여행을 1년에 걸쳐 다닌 이우일, 선현경 내외도 유럽이나 아랍 목욕탕에서 팬티를 입고 다니는 탓에 이우일은 현지 목욕탕에서 훌러덩 벗고 들어갔다가 다들 어이없게 쳐다봤다는 일화가 나온다. 1999년 2000 시드니 올림픽 축구 예선전 한국 원정 경기를 하러 온 바레인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도 팬티를 입고 목욕했던 일화가 있다. 그리고 한국 내 거주 미국인 한 명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목욕탕에 들어갔다 남자들이 다 벗은 걸 보고 게이 사우나로 착각해[20] 남중생을 성추행하다 불구속 입건을 당한 적이 있다. 참고로 목욕탕에서 일본수건을 두르는 편이고[21] 중국은 두르지 않는 추세고 튀르키예 같은 이슬람 국가에서는 팬티나 바지를 입고 들어간다. 일본 위키피디아의 한국 '찜질방' 항목에서는 한국의 목욕 문화를 같이 설명하며 수건으로 가리지 않기 때문에 당황스러울 수 있으니 주의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유독 새해 1월 1일이 되면 붐비는 곳이기도 한데 지난 해의 낡은 때를 벗겨내고 새해에는 깨끗한 마음으로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때문에 1월은 목욕탕의 최고 성수기이기도 하다.[22]

2020년에는 코로나 19로 피해를 가장 크게 본 업소 중 하나다. 기사. 아무래도 비말차단 장비 없이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같은 공간에서 같은 알몸 상태로 목욕을 한다는 질병 감염 최적의 조건이다 보니 자연스레 기피하게 되었다. 방역을 강화한다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불안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확산을 막으려면 아예 공중 목욕탕에 보조금을 주고 전부 휴업을 시켜야 할 듯 하지만, 쪽방촌 주민 등 일부 사회 계층은 공중 목욕탕이 문을 닫으면 씻을 곳이 없어지기 때문에 그럴 순 없었다. 이 틈을 타 2021년 말부터 혼목을 하는 1인 세신샵이 열리기 시작했다. 2022년에는 방역 규제가 풀려 업체의 회복을 기대했지만, 금리상승과 난방비 폭등으로 인해 코로나보다 심각한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그러다 2023년에는 목욕탕, 찜질방에 오는 외국인들이 증가하고 있다.

2.3. 튀르키예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고대 로마의 유산과 함께 청결을 중시하는 이슬람교의 영향 덕분에 목욕탕이 비교적 온전하게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이슬람에선 목욕을 매우 당연시했고 목욕탕도 알라를 뵙기 전 몸을 씻는 곳으로 여겼기 때문에 아랍, 오스만 제국 등 이슬람 나라들에선 제아무리 폭군이라고 해도 적어도 몸을 씻는 목욕탕에서는 야한 짓은 금기시했다. 현대에도 이슬람 성원 앞에 몸을 다 씻진 못해도 손이나 발이라도 씻기 위한 수도 시설이 정비된 곳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이다.

그 중에서도 튀르키예 목욕탕이 가장 잘 알려져 있는데 튀르키예식 목욕은 로마 제국 목욕 문화를 이어받았기 때문이다.[23] 튀르키예에 있는 진짜 터키탕[24](튀르키예어로 하맘, Hamam)은 고대 로마 시대의 목욕탕과 유사한 형태를 갖고 있다. 중앙에 '괴벡타쉬'(Göbektaşı)라고 불리는 따뜻한 둥근 돌이 있고, 그 주변에는 물이 나오는 세면대와 세면 도구들이 널려 있다. 이슬람에서는 과거 유목 민족 특성상 고여 있는 을 부정하게 여기기 때문에 욕조가 없다. 세면대도 수도꼭지에서 물이 계속 흘러나와 물이 흘러넘침으로써 물이 고여있지 않게 유지한다. (별도로 샤워기가 있다.) 보통 동성간에도 맨몸은 드러내지 않는 게 당연한 문화이기 때문에 페슈테말(Peştamal)이라는 큰 타월을 둘러 들어간다. 한국에서처럼 물에 몸을 담그는 대신 증기로 때를 불린 뒤 비누칠을 한 다음에 괴벡타쉬에 철푸덕 누워있으면 때밀이 아저씨(혹은 아줌마)가 와서 때를 밀어준다. 물론 개인은 이러한 증기식 목욕탕을 소지하기 힘들다. 외출이 자유롭지 않았던 여성들이 여기서 한 데 모여 수다를 떨 수 있었고, 결혼을 앞둔 신부는 겔린 하맘(신부의 목욕)이라며 마을 여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목욕을 하면서 결혼 생활의 비법을 듣는 행사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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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원조 터키탕이다. 현대에는 시설이 많이 현대화가 되고 각종 위생도구들이 많아짐에 따라 전통방식으로 목욕하는 튀르키예인들은 드문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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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고급스러운 것도 있다. 튀르키예의 일부 특급 호텔에서는 스파와 결합된 최고급 하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튀르키예식 목욕탕에서 목욕하는 방법은 아래와 같다. 관광지 목욕탕들도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으니 참고하자. 이스탄불처럼 관광객이 넘치는 곳 말고 소도시로 가면 부담없는 비용으로 밀이까지 해주기도 한다.

2.4. 일본

'센토'(銭湯)[25]라 부른다. 전신은 고대 나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제대로 된 공중 목욕탕 개념은 에도 시대부터 발전하여 대중화됐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60년대까지는 전성기를 누렸으나 1970년대부터 개인 목욕탕을 갖춘 단독주택고층 아파트가 늘면서 서서히 사양세로 접어들었다.

그래도 1980년대~1990년대까지는 현상유지했으나, 2000년대부터 인구 감소 문제가 완전히 가시화되며 문을 닫는 센토들이 속출하고 있다. 일본에서 목욕탕을 주로 다니는 이가 쓴 책 《450엔의 행복, 도쿄 목욕탕 탐방기[26]에서 거론되었는데, 일본도 갈수록 대중목욕탕들이 폐업하고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책 저자도 일본 목욕탕에 가서 실감했다고 한다. '손님이 정말 없어서 이거 제대로 운영할까?' 하던 곳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심지어 외국인이라는 걸 알자 반가워하며 음료를 서비스로 주던 곳도 있는데, 거기 주인은 "갈수록 목욕탕들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씁쓸하게 말하며 '이젠 나도 가게를 오래가지 않아 정리할 예정'이라고 했다고 한다. 일부는 슈퍼센토의 형태로 발전해 살아남았다.

임진왜란일제강점기를 기점으로 조선 시대 때부터 내려오던 때밀이 문화가 일본으로 전래되었는데 광복 이후로 일본인들에게 대중화된 것으로 한국·일본 사학계에서 일부 사람들이 규정하고 있다.

상기한 것처럼 일제강점기 시기엔 한국 대중목욕탕 문화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었다. 그러나 현대 일본의 센토는 한국의 대중목욕탕과 몇 가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일본 공중목욕탕에서는 '케로린'(ケロリン)이란 문구가 쓰여진 노란색 바가지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미지. 한국의 게보린이 연상되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27] 해열진통제를 만드는 회사[28]에서 광고를 위해 일본 전국의 목욕탕에 바가지를 나눠준 것이다.

목욕탕 안에서 걸친 것 없이 돌아다니는 한국과 다르게 일본은 목욕탕 안에서도 씻을 때 빼고는 수건으로 몸을 가린 채로 돌아다녀야 한다.

2.5. 영미권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 Bath House나 Public Bath라고 쓰여진 큰 건물이 있었다. 미국의 경우, 정말로 목욕 시설이 부족했던 서부 시대가 아닌 이상,[29] 대부분 수영장이나 기타 시설을 겸하고 있었다. 현대의 스파의 모태가 된 시설인 셈이다.

영국은 생각보다 대중목욕탕이 발달했는데, 그 이유는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가정은 대부분 한 건물에 여러 가구가 북적북적 모여 사는 시스템이었고,[30] 각 가정에는 욕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중 특히 1875년 이전에 지어진, Two-up two-down 형태의 집에 사는 각 가정은 욕실이 없어 부엌 싱크대에서 씻거나, 일주일에 한 번 부엌이나 벽난로 앞에 양철 욕조[31]를 가져다놓은 후 거기에 물을 따로 데운 걸 부은 뒤 안에 들어가 비누목욕하고 남은 목욕물은 양동이에 따로 퍼서 버리고 욕조도 방에서 치워야 했다. 링크. 이렇게 산업 혁명 시대의 노동자들은 제대로 씻지 못해서 꼬질꼬질한 몰골을 한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당시 영국의 가장 열악한 노동 계급 가정의 상황을 묘사한 글에는 다음과 같이 써 있었다.
"이 노동 계급 부부는 한 방에 십수 명의 자녀들과 함께 사는데, 집안은 언제나 난로의 연기로 매캐했다. 방 한가운데에는 욕조가 놓여져 있었고 이 욕조에서 가장이 퇴근 후에 목욕을 했다. 아이들은 방 구석의 침구 위에서 얼기설기 누워 잠에 들었고, 식탁도 없었기 때문에 밥은 서서 먹는 일이 많았다."
이러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19세기 초엽부터 바닷물로 씻을 수 있는 대중탕이 리버풀의 부둣가에서 문을 열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부둣가의 선원을 위한 시설에 불과했고, 현대적인 의미의 대중목욕탕은 키티 윌킨슨(Kitty Wilkinson)이라는 아일랜드계 이민자 여성에 의해 세워졌다. 당시 리버풀에는 콜레라가 창궐했는데, 키티 윌킨슨은 대인배스럽게 자신의 집과 마당을 빨래 공간으로 제공한 것이다. 또한 키티 윌킨슨은 이웃들에게 표백제를 사용하는 현대적인 세탁법도 가르쳤고[32] 게다가 자신의 보일러로 빨래를 소독해 주기까지 했다. 이러한 상황에 리버풀 시 당국은 청결함이 질병 창궐을 예방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여러 사람들의 지원을 얻고 키티 윌킨슨의 건의에 따라 영국 최초의 대중목욕탕을 개관하기에 이른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질병의 위험에서 해방되었고, 가난한 자들이나 노동 계급도 얼마든지 더운 물로 씻을 수 있게 되었다. 단, 무료 목욕은 사람들을 모욕하는 것으로 여겨져 목욕탕에서는 몇 펜스라도 돈을 받았다. 기사

이러한 대중목욕탕은 영국 여기저기로 퍼져나가게 된다. 하지만 일본이나 고대 로마, 튀르키예의 목욕탕과는 조금 달랐다. 무엇보다도 개인 목욕 공간이 칸막이분리되어 있었다는 점이 다르다. 경우에 따라서 가슴 높이나 머리까지 올라오는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고, 그 안에 욕조가 놓여있는 구조였다. 샤워 기구는 19세기 중반에 등장했고, 샤워장 같은 시설은 19세기 말에 프랑스군에서 경제적 효율을 이유로 개발되어 사용되었다. 그 이후 감옥이나 집단 시설 역시 경제적인 이유로[33] 퍼져나갔고, 이것이 전세계로 퍼져나간 것이다. 일본식 목욕탕처럼 커다란 탕에 여러 명이 함께 있는 구조는 아니었던 것이다. 다만 터키탕이 19세기 후반 조금 유행하기는 했다고 한다. 아무튼 당시에 대중목욕탕을 가리키면 이런 식의 개인 목욕탕을 뜻한다.

재미있는 것은 앞서 이야기한 키티 윌킨슨의 노력에서 기인한 문화여서 그런지, 목욕탕 뿐만 아니라 뜨거운 이 펑펑 나오고 스팀으로 살균소독까지 할 수 있는 빨래터(Wash House)도 많이 생겨났다고 한다. 목욕탕과 빨래방이 한데 붙어있는 경우도 꽤 있었다고 한다.

현대에는 이런 식의 대중목욕탕은 현대적 샤워 시설의 확산과 스파의 확산으로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20세기 중후반까지는 꽤 남아 있었다고 한다. 개인 위생이 향상된 후로는 많이 사라졌고, 현대에는 사우나나 스파가 영국식 대중목욕탕 전형이 되었다.

현대 영국에서 사우나에 갈 때는 잘 확인하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영국, 특히 런던동성애에 매우 개방적이기 때문에 게이 사우나가 성업 중이다. 물론 그렇다고 게이 사우나에 들어가는 순간 비누 좀 주워줘 같은 상황이 펑펑 터지는 것은 아니니, 본인이 굳이 게이가 아니라고 해도 흥미가 통한다면 상관없다. 애초에 거긴 다들 몸 씻으려고 오는 곳이지 성적인 짓을 하려고 오는 유흥업소가 아니다. 당연히 그곳에서도 상대 동의 없이 누군가를 덮치면 성범죄로 잡혀 들어간다.

3. 특징

1980년대 정도까지는 목욕탕 경영자는 지역의 알부자로 유명했다. 21세기와는 달리 서민 주택은 욕조가 없거나, 있어도 집에서 간단히 씻거나 샤워하는 것보다는 탕에 들어가야 제대로 씻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것도 있어서 어지간한 사람은 목욕을 하려면 목욕탕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유 중 하나이다.[34] 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당시에는 물 절약 등을 이유로 목욕탕에 거리 제한 규정이 있어서, 목욕탕이 일종의 지역 독점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이 당시 거리 제한 규정에 걸려 있던 사업은 죄다 알부자 취급이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목욕탕과 주유소였다.[35] 하지만 목욕탕은 1983년에, 주유소는 1995년에 거리 제한이 폐지된다. 그 후에도 거리 제한이 남아있는 것은 담배소매인 정도이다.[36]

예전 목욕탕을 보면 목욕탕 건물에 공장이나 중앙난방을 사용하는 아파트에서 볼법한 굴뚝이 있었는데, 이는 목욕탕에서 물을 데우거나 난방할 때 쓰는 벙커C유 보일러에서 발생하는 매연을 배출하기 위해 설치된 것이다. 현대에는 대부분 전기, 가스보일러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들 목욕탕은 굴뚝을 철거하거나 사용하지 않고 있다. 사실, 이 굴뚝 철거비만 해도 적어도 5천만원 이상이 들기에 놔두는 게 많다. 때문에 목욕탕 건물만 팔아서 다른 용도로 쓰여도 굴뚝만 그대로 남는 경우가 2020년대에도 여전히 많다. 또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후 목욕탕을 이용하는 손님들은 현저히 줄었지만 선술했듯이 목욕탕 건물을 철거하는 데 5천만원 이상이 소요되어, 주인들은 눈물을 머금고 적자 뿐인 목욕탕을 운영하고 있다. '붉은벽돌 굴뚝' 철거에 5000만원…멀고도 먼 '목욕탕 폐업'

목욕탕은 카지노, 경마장, 골프장처럼 장소에 따라 매기는 개별소비세(과거 특별소비세) 부과되는 곳이었다. 즉 사치 향락적 장소로 분류되었다는 것이다.[37]

자리 맡기 이외에도 여탕에서는 커피나 각종 차를 큰 물통에 얼음 가득 넣은 뒤 탕 안에 가지고 들어가서 마시는 풍습도 있다. 여탕보고서에서 이 사실이 공개되었을 때 댓글에서는 독자들의 컬쳐 쇼크가 교차했다. 남성의 반응은 '여탕에는 커피도 파냐? 충격!'이었고, 여성의 반응은 '헐, 남탕에는 커피 안 파나? 충격!'이었다. 남탕에서도 캔음료 정도는 파는 경우가 많지만 이것도 탈의실에서나 마시지 여탕처럼 탕 안에 가지고 들어가서 마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무좀의 대표적인 온상 중 한 곳이다. 따뜻하며 공기가 매우 습한 곳인데다 여러 사람이 맨발로 함께 다니는 곳이어서 무좀균도 득실거리므로, 발 관련 질환을 예방/치료하려면 가장 유념해야 할 곳이다. 바닥을 밟은 사람들 중 일부가 무좀균 보유자의 탈락한 발의 각질을 통해 옮을 수 있고 특히 여러 사람이 올라갔다 내려오는 체중계나 욕탕 입구에 놓여진 발 깔개, 화장실의 슬리퍼 등이 가장 위험한 장소이다. 그러다 보니 일부 목욕탕에서는 아예 발 깔개 없이 나무 등의 상대적으로 건조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는 재질로 바닥을 해 놓고 각자 수건으로 발을 닦도록 해 놓은 곳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무좀에 걸리는 건 절대 아니다. 사람마다 몸 상태에 따라 당연히 차이가 있다. 이런 경우 목욕 후 발을 완벽히 건조시키는 것이 대표적인 예방 방법이다.

눈병이 유행하는 시기에는 온탕이나 냉탕 등 공용으로 사용하는 곳에 들어갔다가 옮는 경우도 가끔 있다. 가급적 깨끗한 물로 씻기 전 까지는 탕에서 잠수하거나 손 등으로 눈을 만지는 행위는 하지 않는 게 좋다.

경상도를 포함한[38] 일부 지역에는 자동 등밀이 기계가 있는데 2004년 11월 20일 방영된 스펀지 55회 방송분에서 소개되었다. 원래는 등을 미는 용도지만 스킬이 늘수록 모든 신체 부위에 적용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게 기계가 몸에 맞춰서 강약 조절을 하는 게 아니라 몸을 기계에 맞춰 강약 조절을 해야 해서 숙달되지 않으면 며칠 동안 따갑다. 자세한 건 문서 참고.

외국에도 대중목욕탕이 존재한다. 칸막이로 나뉘어서 욕조가 하나씩 배당되는 시스템인 곳도 있고, 한국처럼 커다란 탕이 있는 곳도 있다. 하지만 정문에 무지개 깃발이 걸려 있으면 게이 사우나다. 선술한 튀르키예의 대중목욕탕인 '하맘'이 한국의 목욕탕과 형태 및 분위기가 비슷하다.

일본 제국 시절에는 높으신 분들집무실이기도 했다.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문신이 있으면 입장을 거부당할 수도 있다. 한국은 비교적 관대한 편이므로 크기가 큰 이레즈미 등 위압감을 주는 문신이 아닌 이상 입장을 거부당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일본은 문신이 야쿠자조직폭력배의 모습을 연상시켜 주변 손님들에게 위압감을 준다고 생각하기에 거의 대부분의 목욕탕에서는 문신을 하면 못 들어간다.[39]

과거 투명인간이 유행했을 당시 만약 자신이 투명인간이 된다면 꼭 하고싶은 것을 적거나 말할때 여탕에 들어가보고 싶다는 남자들이나 반대로 남탕에 들어가보고 싶다는 여자들이 꼭 있었다. 탈의실까지라면 모를까 탕이 있는 장소는 습기가 넘쳐나니 투명해도 습기때문에 다 티가 난다.

습하고 밀폐된 환경이기 때문에 코로나 19의 위험으로부터 피할 수 없었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문을 제대로 열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아무래도 사람들도 기피하다보니 팬데믹 기간 중 많은 수의 목욕탕들이 폐업했다. 목욕탕을 좋아하던 사람들은 특히나 아쉬워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집 근처의 소규모 목욕탕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 게다가 많은 수가 폐업한 뒤, 수가 줄어 들은 목욕탕들은 물가상승 및 손님이 없다는 이유 등 여러 이유로 입장료도 많이 올랐다.

서울 청량리에 있던 모 목욕탕은 목욕탕실내포차라는 이름으로, 술집(실내포차)으로 리모델링되었다. 목욕탕의 모습을 아주 잘 간직한다.

3.1. 규모와 구조

보통의 동네 목욕탕부터 대형 스파(온천)시설까지 크기는 천차만별이다. 가격은 작은 동네 목욕탕의 경우 5~6천 원 수준부터, 유명 대형 스파의 경우 1~2만 원 수준 정도까지 다양하다. 그 탓에 작은 규모의 동네 목욕탕은 점차 사라져 가는 추세이다. 대부분의 목욕탕이 부지를 확보하여 겸업을 하기 때문에, 목욕탕과 찜질방의 구분이 점점 모호해져 가는 상태이다. 더군다나 1980년대 이후로는 생활 수준의 향상으로[40] 웬만한 집은 제대로 된 목욕 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그냥 목욕 시설만 있는 '대중탕'은 이미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것 때문에 동네 목욕탕을 더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크고 사람도 너무 많아서 정신없는 대형 찜질방보다는 오히려 조용하고 호젓한 동네 탕이 느긋하게 목욕을 즐기기에는 좋기 때문. 특히 막 목욕을 끝내고 나와서 조용한 탈의실에 앉아 삶은 계란에 차가운 사이다나 얼린 요구르트를 먹는 기분은 대형 스파와는 다른 매력이 있다.

나체로 들어가야 되는 것 때문에 당연히 남녀의 구분이 존재하며, 남탕여탕으로 구분이 되어 있다. 규정에는 만 5세 이하, 신장 100cm 이하라고 명시가 되어 있으나, 그냥 아주 어려 보이는 어린이의 경우 성별에 상관 없이 남탕이나 여탕에 모두 입장할 수 있다. 물론 혼자는 불가능하고, 부모를 동반해야 한다.

자리는 샤워기의 배치 형태에 따라 나뉘는데, 입식, 좌식 두 종류가 있다. 입식은 정면의 어른 키 정도의 높이에 거울과 샤워기[41]가 배치되어 있어 말 그대로 서서 씻을 때 이용하는 자리이고, 좌식은 앉은뱅이 책상 정도의 높이에 수도꼭지와 손에 잡고 다룰 수 있는 샤워기[42]가 배치된 형태로, 앉아서 주로 때를 미는 용도로 이용한다. 오래된 목욕탕의 경우 좌식 자리에 샤워기 대신 소형 수조가 있는 경우도 있다. 계속 흘러나오는 수조의 물을 바가지로 퍼내서 씻는 형태. 당연히 수조에는 들어가면 안 된다.

스스로 때 밀기가 귀찮거나 좀 더 완벽한 때 밀기를 위해 목욕탕마다 배치되어 있는 목욕관리사에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가격 역시 만만치 않으니 정말 귀찮지 않은 이상 때는 스스로 밀자.[43] 이따금 서로 모르는 사람이 서로의 등을 밀어주는 훈훈한 광경을 볼 수 있다.

현대의 목욕탕에 몸을 담그는 장소(탕)로는 대개 온탕(대개 39~42℃) 과 냉탕(18~22℃), 열탕(43~45℃), 이벤트탕(36~39℃)[44]이 있으며, 뭔가 알 수 없는 성분[45]을 풀어놓는 특수 목적 탕이 있고 이벤트탕이라고 부르며, 요일이나 날짜별로 날마다 다른 성분을 풀어놓는 곳도 종종 있다. 온탕의 레벨 업 판이라고 할 수 있는 열탕은 사실 온탕보다 끽해봐야 2~4℃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남에도 불구하고 온탕과의 괴리가 상당하며 매우 뜨겁다. 열탕에 들어가서 조금 있다가 곧바로 온탕에 입수하면 온탕물이 상대적으로 미지근한 걸 넘어 시원하게까지 느껴질 정도이다. 젊은 층들의 경우 열탕을 선호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열탕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부록으로 냉탕의 최종 진화판인 얼음탕도 있다. 어떤 곳은 얼음탕이 아니라 급냉탕이나 북극탕, 남극탕 등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어느 곳은 이 쪽에 의외로 어르신들이 많이 들어가신다. 여기 들어가는 어르신들 80%가 잠수를 한다. 이 쪽은 얼음탕에 들어갔다가 냉탕에 입수했을 시 미지근하게 느껴진다. 다만 일반 냉탕은 미지근한 물과 찬물만 적절히 섞으면 준비가 가능하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얼음탕은 따로 얼음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인지 흔하게 찾아보기 어려운 편이다. 그 외에도 족욕탕이나 히노키(檜/桧)탕, 안마[46], 폭포[47] 등이 있기도 하다. 상암 월드컵 경기장 내 목욕탕인 스파랜드에서[48]이 모든 탕[49]을 찾아 볼 수 있다.

냉탕은 대체로 모든 탕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급냉탕은 수심이 깊은 편이다. 나이가 들수록 신체 감각이 둔해져서 더위와 추위를 덜 느끼게 되므로 급냉탕 역시 열탕처럼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애용한다. 또한 냉탕 한정으로 주변의 벽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천장에서 30초 정도의 시간동안 강하게 쏟아지는 폭포수가 설치된 곳들도 많이 있는데, 규모가 큰 곳은 냉탕에 폭포를 설치하는 대신에 폭포탕을 따로 구비해놓고 폭포탕에 폭포수가 설치되어 있는 곳들도 있다. 폭포탕의 온도는 대개 30~35℃ 사이(미온탕 수준)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냉탕 사이즈를 줄이는 곳도 잦다. 이유는 냉탕에서 수영을 하면서 물을 튀기고 소음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 그나마 옛날엔 통제가 되었는데 이후 일부 부모들이 냉탕에서 수영장처럼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방치하여 민원이 많았는지 수영을 하기 어렵도록 냉탕 크기를 줄이거나 미온탕과 차이가 없을 정도로 온도를 높이거나 급냉탕과 차이가 없을 정도로 차게 하는 곳도 있다. 단 과거에는 온탕이 메인이고 냉탕은 부수적인 느낌으로 냉탕이 비교적 작은 경우가 많았다. 예전에 지어진 목욕탕에 가보면 한 두 명만 들어가도 만원이 될 냉탕을 볼 수 있다.

아주 오래된 목욕탕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목욕탕이 내부에 한증막[50]을 갖추고 있다. 심지어 찜질방에 딸린 목욕탕이나, 수영장 샤워실까지 전부 한증막을 두고 있다. 습기가 많은 목욕탕 특성상 대부분 습식이며, 온도는 50~70도 정도다. 자수정, 돌 등 컨셉별로 1~2개가 있으며 규모가 큰 곳은 한 시설에 3개가 있는 곳도 있다. 보통 빼고 때를 불리는 용도로 사용한다. 목욕 짬이 있는 아주머니들은 한증막에 들어갔다가 바로 냉탕에서 냉수마찰을 하기도 한다.

이 밖에도 시설에 따라 탕 내부에 수면실(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돌바닥이다), 썬베드 등을 갖춘 곳도 있다. 만약 피곤하다면 잠시 눈을 붙일 수는 있겠지만 딱딱해서 등이 배길 것이다. 그래도 썬베드가 있다면 조금은 편할지도.

3.2. 탈의실

목욕을 하기 전에 옷을 벗는 곳. 락커룸이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입구에 목욕용품을 파는 카운터가 있으며, 내부에는 락커가 벽면을 따라 수백 내지 수천 개가 놓여져 있다. 락커 키는 좀 오래된 목욕탕의 경우 탕 바깥 요금 내는 곳에서 받아오거나, 아예 락커에 꽂아둔 키를 사용하기도 한다.[51] 규모가 큰 목욕탕의 경우 신발장 키를 사용한다. 신발장이 없는 곳은 락커 맨 밑에 있는 별도의 선반에 신발을 보관한다.

락커는 보통 위, 아래 두 층으로 쌓여있는데, 일반적으로 윗쪽 락커가 홀수 번호이다. 윗쪽이 아랫쪽보다 키높이에 가까워서 사용하기 편하기 때문에 보통 카운터에서 홀수 번호를 먼저 준다. 락커 내부에는 플라스틱 옷걸이가 있어서 옷을 걸 수 있다. 한편 락커 한 칸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배낭이나 롱패딩 등 부피가 큰 물건은 락커에 우겨넣기 쉽지 않다.

락커키는 대부분 말랑말랑한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진 팔찌 형태이며, 사물함 숫자 표찰이 달려 있다. 일반적으로 목욕할 때는 손목이나 발목에 찬다. 일부 여성들은 머리끈 용도로 사용하기도 한다. 원래는 금속 재질 열쇠가 대부분이었지만 이후에는 갖다대기만 하면 인식하는 디지털키 방식으로 많이들 바뀌었다. 규모가 큰 찜질방에서는 지갑을 들고다니는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락커키가 일종의 후불 카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밖에도 탈의실에는 각종 음료와 계란, 목욕용품을 파는 카운터와[52] 텔레비전, 평상[53], 체중계, 운동기구,[54] 거울여탕 기준 화장대가 존재한다. 남탕 기준 탕 입구에는 수건회수용 통이 있다.

목욕탕 카운터에서 파는 물건도 특징적이다. 각종 식물 추출물이 들어간 비누와 일회용 팩, 마스크팩, 바디워시, 샴푸린스, 베이비오일, 부석, 때수건, 칫솔, 면도기 등을 판매한다. 대부분 도매로 떼오는 업소용 물건이기에 시중에서 찾아보기 어려우며, 품질은 그리 좋지 않다. 차라리 개인이 쓰는 것을 들고 오는 게 더 좋다. 여탕의 경우 각종 기초화장품이나 건강식품을 팔기도 한다.[55] 식품으로는 구운계란, 맥반석오징어, 요플레, 식혜, 이온음료, 우유, 미에로 화이바, 냉커피, 감식초나 각종 과자 등 간식류를 판매한다. 보통 구운 계란은 완제품이고 커피, 식혜, 감식초는 카운터 아주머니가 직접 제조하신다.

화장대는 주로 머리를 말리는 용도로 사용된다. 목욕탕에 따라 면봉과 화장솜이 제공되는 곳도 있으나, 여탕의 경우 없을 때도 많다. 화장대에는 머리를 말리기 위한 선풍기헤어드라이기가 비치되어있다. 헤어드라이기는 무료로 사용 가능한 곳도 있다고 하지만 일반적으로 200원을 내고 3분 정도 사용하도록 동전 타이머가 설치되어 있다. 그밖에도 롤빗, 스킨, 로션, 헤어스프레이 등 기초화장품이 비치되어있으나, 여탕의 경우 각자 가져온 물건을 사용하기 때문에 거의 쓰지 않는다.[56]

남탕의 경우 제공되는 물품은 동일하다. 하지만 대부분 드라이기가 무료이고 사람들은 스킨을 바르고있다.[57]

목욕탕 규모에 따라 탈의실에 좌훈, 실면도, 아로마마사지, 네일아트 등 부가시설이 함께 있기도 하다. 보통 이런 시설은 여탕에 많고, 남탕의 경우 구두닦이, 이발소, 흡연실이 있다고 한다. 찜질방이 딸리지 않은 곳의 경우 소규모 수면실이 존재하기도.

4. 입욕권

목욕탕을 이용하려면 로비 안내데스크에서 요금을 내야 한다. 요금을 내고 나면 종이를 주는데 이를 입욕권이라고 한다. 입욕권을 받고 남탕 또는 여탕 안내데스크에 제출하면 된다. 찜질방을 운영하는 목욕탕에서는 1~2천원 정도 더 내면 가운이 지급되며 찜질방 이용이 가능하다.

5. 성별에 따른 구분

누구든지 목욕을 하려면 몸을 씻기 위해 벗어야 하며 자신의 알몸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은 매우 큰 실례다. 물론 개인별로 나누기에는 목욕탕을 세우기에는 비용이 많이 들기에 모든 목욕탕은 성별을 기준으로 구역을 나눈다.[58]

이성의 목욕탕[59]에 들어가면 성폭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성적 목적을 위한 다중이용장소 침입죄로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60] 동성의 목욕탕 안이라도 안에서 사진을 촬영한 경우에도 동법에 따라 처벌받는다.

여탕의 경우 일부 어머니들이 나이가 어느 정도 든 아들도 막무가내로 데려오는 바람에 싸움이 벌어지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7~11살 먹은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들을 목욕탕에 데리고 갔더니, 거기서 아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여자아이가 있다면 아들과 그 여자아이는 어마어마한 수치심을 느낄 게 분명하고, 심하면 그 수치심으로 인해 영구적인 트라우마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웹툰(정책브리핑). 사실 반대로 남자아이도 여탕에 가고 싶어하는 경우도 당연히 없다.[61] 대부분 더 깨끗하게 씻는다는 이유로 모친이 데려온다. 실제로 자신의 엄마를 따라 목욕탕에 온 여자애가 갑자기 주저앉아 눈물을 터뜨렸는데, 알고 보니 목욕탕 안에서 마주친 남자애가 같은 반에 다니는 남자애였다고 한다. 이에 대해 여자아이 모친 측에서는 당연히 강하게 항의를 했는데, 정작 그 남자아이의 모친이란 사람은, "애가 아직 순수해서 성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괜찮다." 였다. 실제로 목욕탕에 모친을 따라 다녀온 몇몇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남자애들은 반에서 자신들의 목욕탕 경험담을 같은 반 남자애들을 대상으로 들려주고는 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긴 하다. (여자아이가 아빠를 따라오는 경우) 이 경우도 임계연령을 넘을 경우 자제하도록 하자. 그런데 요즘에는 이러한 불상사를 방지하거나 경찰을 부르는 일을 꺼리는 경우가 많아져서 이유를 불문하고 출입금지시키는 것도 많아진 모양이다.

그리고 더 심한 경우 남자아이가 여성을 만지는 사건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으며 인터넷에 찾아보면 수두룩하게 나오는 사례다. 아이가 알고 그랬든 모르고 그랬든 일단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당연히 그 남자아이를 데려오고 맘대로 돌아다니도록 놔둔 엄마에게 책임이 있는데도, 위에서처럼 애가 뭘 알겠느냐는 식으로 발뺌하거나, 심지어 대상 여성이 나이가 어린 경우 "나이도 어린 게 어디 우리 애한테 훈계질이냐" 라며 적반하장으로 나오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정말 답이 없다. 혹시라도 이런 일을 당하거나 목격한다면 당사자는 물론 그 아이를 들여보낸 목욕탕 주인과 직원들에게도 반드시 항의를 해서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 그런 아이들의 출입을 막을 책임은 1차적으로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여탕 출입 가능 남아의 나이 규정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1999년 입법되었을 때 만 7세였던 기준이 2003년 경 만 5세로 낮아졌지만[62] 아이들의 성장이 점점 빨라지면서 이를 만 4세로 더 낮춰야 한다는 건의가 계속 나오고 있다. 얼핏 보면 대부분의 여성들이 찬성할 의견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가정 환경(한부모 가정이나 조손 가정 등)이나 연령대에 따라 의견이 제각각이며 반대의 소리도 만만치 않다. 문제가 되는 연령대가 여탕에 데려가긴 너무 크지만 혼자 집에 두거나 목욕을 보내기엔 너무 어린 나이인 것도 있다. 1980년 이후로는 자택에 샤워 시설이 설치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아이가 "애매한 나이"라면 자신이 집에서 아이와 함께 목욕을 하면 그만이다. 그래도 웬만한 목욕탕에는 4세 이상이지만 아직 혼자 못 씻는 어린이를 위해 같은 성별의 보호자가 없는 경우를 대상으로 한 도우미 서비스가 있으니 이용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2019년 9월 여탕 출입 가능 남아의 나이 규정을 만 4세로 하향조정하는 공중위생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안이 입법예고되었고 2022년 6월 시행된다. 기사

한쪽 성별의 목욕탕에 무단 침입을 하는 경우가 있다 보니 외모가 남성적인 여성이나 외모가 여성적인 남성의 경우 주민등록증 등의 신분증을 통해 성별을 인증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63] 그래서 성별 정정을 못한 트랜스젠더의 경우에 성별을 인증할 신분증이 없어 어려움을 먹는 경우도 있다. 또 한편으로는 성별 정정을 했더라도 외부 성기 수술을 하지 않았거나 각종 수술의 흉터가 크게 남아 있는 경우 굉장한 컴플렉스가 된다. 이 때문에 트랜스젠더들은 아예 목욕탕 이용을 포기하거나 정 씻어야겠다면 모텔을 대실(목욕탕 요금보다 몇 배는 비싸다)하여 씻는 경우가 많다. 흔히 성기 수술을 못한 트랜스여성들이 가장 크게 고생한다고(비 트랜스젠더들에게는 같이 씻기 불쾌하다고) 여겨지지만, 트랜스남성들도 성기만은 어떻게 가린다 쳐도 넓은 골반의 흔적, 가슴에 남은 큰 흉터 등의 수많은 요인이 있으므로 그다지 목욕탕을 좋아하진 않는다. 트랜스젠더 당사자들 사이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유유히 씻고 왔다는 무용담도 나오기는 하지만 굉장히 드물고 쉽지 않은 일이기에 괜히 '무용담' 이라 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트랜스젠더들은 당연히 자기 집에서 씻는다. 자신의 집에서 눈치 안 보고 편하게 씻을 수 있는데 굳이 목욕탕에 가서 문제를 일으킬 일이 없다.

5.1. 남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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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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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혼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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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남탕과 여탕의 문화적 차이

한국의 목욕탕은 남탕과 여탕의 문화가 크게 다르다.

7. 문제점

후술할 문제점들 이전에 일단 위생문제가 있다. 동시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는만큼 필연적으로 생기는 문제로 전염병 걸리기 좋은 장소이기도 하다. 물론 이건 실내 수영장, 워터파크도 비위생적이긴 마찬가지긴 하지만 물놀이를 하는 곳인 수영장과 비교해봐도 목욕하고 때까지 미는곳인 목욕탕의 위생상태가 실내 수영장보다 당연히 결코 나을리가 없다. 아무리 목욕탕 측에서 물갈이를 해도 실시간으로 땟국물이 되어 버리는건 막을수가 없다.

7.1. 손님 입장

7.2. 목욕탕 입장

7.2.1. 목욕 물품 도난

남자들이 그냥 돈 내고 목욕만 하고 나오는 반면에 여자, 특히 아줌마들은 들어가서 수건이랑 면봉, 비누와 비누 담는 플라스틱 케이스까지 슬쩍하는 경우가 있어 목욕탕 주인의 손해가 심각하다. 절도죄로 신고하면 은팔찌 차고 경찰서에서 정모할 수 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2000년대까지 남탕엔 있을 거 다 있으면서 여성들만 자기 목욕할 거 다 챙겨오라는 처사가 불공평하다고 느낀 여성 단체가 목욕탕연합회에게 이의를 제기해서 결국 시범적으로 지정된 지역의 목욕탕에서 기간 한정으로 여탕에 수건과 비누를 비치하고 통계를 낸 적이 있었는데, 여탕의 수건 회수율은 겨우 30%라는 결과가 나왔다.

한편 남탕수건 회수율은 여탕보다 오히려 높다는 말이 있다. 그 이유는 오히려 개인적으로 가져온 것[69]을 놔두고 가는 경우까지 생겨서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탕 수건 회수율에 140%(혹은 120%) 같이 구체적인 수치가 있는 얘기는 여탕보다 수건 회수율이 많은 건 맞으나 과장을 섞은 우스갯소리이니 진짜 통계 자료라고 우기고 다니지 말자. 어디에도 신뢰할 만한 증거가 없다.

2006년 불만제로에서 조사한 바로는 남탕은 95%, 여탕 80%의 회수율을 보여준다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탕엔 비누수건이 없거나, 혹은 입구에서 2개 정도의 수건을 나눠주고 나올 때 칼같이 돌려받는 곳도 있었다. 찜질방과 겸업하는 경우는 어차피 남탕 손님과 여탕 손님이 섞여서인지 구분이 없는 경우가 많다.

2011년, KBS 소비자 고발에서 실험한 결과 여탕 수건 무한 제공 시 분실율이 무려 80%로 나왔다. 회수율은 20%이다. 해당 뉴스

남탕에는 웬만한 게 다 있다는 말을 들으면 여자들이 오히려 놀랄 정도이다. 반대로 남자들은 여탕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리고 그 이유가 여탕의 수건이나 비누가 자꾸 없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아니, 도대체 그걸 왜 가져가?" 라며 이해 자체를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물론 잘 하는 짓은 아니지만 유독 여탕에서만 자주 사라지는 것은 아줌마들이 가져가기 때문이다. 살림을 생각하건 어쨌건, 목욕탕 물건을 가져가는 건 절도죄이므로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

심지어 이 대여용 수건에 도난 방지 장치를 해 놓아서 그냥 가지고 나갈 때 경고음이 나오도록 시설을 설치해 놓은 곳도 있는데, 그런 곳에서는 꼭 하루에도 몇 번씩 경고음을 듣게 된다고 한다. 일부 목욕탕에선 수건에 목욕탕 이름 대신에 목욕탕에서 훔친 수건이라고 프린트해 놓은 곳도 있다. 동네 주민인지 누가 두시탈출 컬투쇼에 이걸 사연으로 보냈는데, 컬투쇼는 지상파에서 대놓고 "이런 치사한 목욕탕은 망해 없어져야 한다. 수건 몇 장 훔쳐가면 어때서." 라고 말하며 절도범을 편들었다가 빈축을 사게 된 적도 있었다. 물론 사정을 모르고 한 말이겠지만 저런 표시를 해 놓은 목욕탕에서 사라지는 수건이 연 6,000장에서 1,000장으로 줄었다고 한다. 아무리 소액이라도 절도는 절도고, 목욕탕에서 수건을 단순히 몇 장 잃어버리는 게 아니라는 건 알만한 사람은 알 것이다.

참고로 위의 뉴스 기사에 "왜 수건을 2장만 주나."라는 말이 있는 건 목욕탕 수건 도난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찜질방에서 남성들에게는 수건을 무한대로 제공하면서 여성들에게는 2장으로 한정하는 것에 대해 여성들의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여성들에게 수건을 무한으로 제공할 경우 1인당 평균 10장 이상을 사용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한을 두었다고 한다. 들어갈 때 몸 가린다고 1장 쓰고, 머리 감을 때 머리 묶는다고 또 1장 쓰고, 사우나 들어갈 때 2장 쓰고, 씻을 때 허벅지에 걸쳐두려고 1장 쓰고, 몸 닦을 때 1장 쓰고, 머리 말린다고 1장을 쓰는 등 개인 차가 있겠지만 평균 이 정도다. 반면 남자는 모든 게 한 장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고,[70] 좀 깔끔을 떠는 사람이나 몸집이 큰 사람이라도 많이 써 봤자 2~3장 정도다.[71] 머리와 얼굴 한 장, 몸 한 장 아니면 목욕하고 1~2장 찜질방 후 다시 1장이다.

한편 찜질방에 있어야 함에도 가정에서 발견된 찜질방 수건 때문에 예비 부부가 파혼을 맞은 사례가 있다. 남자가 여자의 집에 갔더니, 화장실에 '00 찜질방'이라 써있는 수건을 발견했고, 해명을 요구하자 찜질방에서 가져왔다는 대답을 들었고, 절도를 지적했더니 뻔뻔한 태도를 보여 헤어진 것이다.

한편 대학교 앞 목욕탕이나 찜질방에서 남자에게도 수건 두 장 주는 경우가 있다. 자취하는 남자들이 일부 중년 여성들처럼 수건을 가져가는 모양이다.


심지어 강남 고급 아파트의 공용 사우나에서도 여탕에서 50만원대의 다이슨 헤어드라이어가 연속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위에 서술된 도난 행위들은 모두 절도죄에 저촉되므로 목욕탕 주인이 고소라도 하게 된다면 빼도박도 못하는 경찰서 정모를 하게 되니 절도죄로 끌려가기 싫다면 쓴 물품들은 반드시 반납할 것.

7.2.2. 목욕탕에서의 비매너

어른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도 이용할수 있는 시설이다 보니까 목욕탕 내에서 무례한 짓을 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

8. 매체

9. 언어별 명칭

<colbgcolor=#f5f5f5,#2d2f34> 언어별 명칭
한국어 목욕탕(, mo̞ɡjo̞k̚tʰa̠ŋ, mogyoktang)
한자 (목욕탕)
러시아어 ба́ня(bánja)
스페인어 casa de baños
아랍어 حَمَّام(ḥammām)
영어 bathhouse, public bathing
bæþhūs(ˈbæθˌxuːs, ˈbæθˌhuːs)(고대 영어)
일본어 [ruby(浴場, ruby=よくじょう)](yokujō), [ruby(銭湯, ruby=せんとう)](sentō)
중국어 澡堂(zǎotáng), 浴堂(yùtáng), 浴池(yùchí)
프랑스어 ba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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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5f5f5,#2d2f34> 게르만조어 *baþahūsą
*baþahūs(서게르만조어)
그리스어 λουτρώνας(loutrónas), βαλανείο(valaneío)
λουτρών(loutrṓn), βαλανεῖον(balaneîon)(고전 그리스어)
네덜란드어 badhuis
노가이어 амам(amam)
덴마크어 badehus
독일어 Badehaus, Bad, Badeanstalt
라디노어 חאמאם(hamam)
라오어 ຫໍສົງນ້ຳ(hǭ song nam), ຫໍສົງ(hǭ song)
라트비아어 pirts
라틴어 balneae
리투아니아어 pirtis
바시키르어 мунса(munsa)
벨라루스어 ла́зня(láznja), ба́ня(bánja)
사하어 суунурҕан(suunurğan)
스웨덴어 badhus
아르메니아어 բաղնիք(bałnikʿ)
아제르바이잔어 hamam, hamamxana
압하스어 аҳамам(aḥamam), абана(abana)
에스토니아어 avalik saun
에스페란토 banejo
오세트어 абана(abana)
우즈베크어 hammom, moʻrcha
우크라이나어 ла́зня(láznja), ба́ня(bánja)
위구르어 سەراپ(serap), ھاممام(hammam)
조지아어 აბანო(abano)
체코어 lázně
추바시어 мунча(munč̬a)
카자흐어 монша(monşa)
키르기스어 мончо(monço)
타타르어 мунча(munça)
태국어 ห้องอาบน้ำ(H̄̂xng xāb n̂ả)
투르크멘어 hammam
튀르키예어 banyo, hamam
페르시아어 گرمابه(garmâbe), حمام(hammâm)
ҳаммом(hammom)(타지크어)
포르투갈어 casa de banho, terma
폴란드어 łaźnia
핀란드어 kylpylä
헝가리어 fürdő
히브리어 מֶרְחָץ(merẖátz)
힌디어 ग़ुस्लख़ाना(ġuslaxānā) }}}}}}}}}

10. 문서가 있는 목욕탕

11. 관련 문서



[1] 이 로마식 목욕탕이 있는 도시 이름부터 목욕탕의 이름을 따 바스다. 기사. 대한민국의 온수와 유사한 작명 방식이다. 이 도시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 유산이다.[2] 다만, 바이킹이나 중세 시대 유럽인이 목욕을 잘 하지 않았다는 건 편견이다. 바이킹들은 인근의 핀란드인이나 사미족의 영향으로 인해 사우나가 있었던데다, 바이킹들의 거주지 유적에서 갖가지 목욕용품과 미용도구, 비누 등이 출토된 바 있다. 그리고 중세 시대의 유럽에서도 북유럽은 선술한 바이킹 덕분에, 남유럽로마 시대의 유산이 그대로 남은데다 목욕을 중시했던 이슬람권의 영향도 있어서 목욕하는 문화가 그대로 살아남았다. 천연 온천이 솟아나오는 곳이 관광지로 인기를 끌기도 했고, 스페인의 여왕인 이사벨라 1세는 하루에만 4번이나 목욕을 하기도 했다.[3] 창세기에서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고 제일 먼저 을 얻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무슬림들도 목욕탕에서 옷을 다 벗고 돌아다니지 않는다.[4] 현대에도 심심찮게 목욕탕이나 찜질방을 무대로 한 성추행 사건 기사를 볼 수 있다. 거기다가 고대 로마 시절 공중 목욕탕은 오랫동안 혼탕이었다. 로마 제국의 성 관념은 매춘부가 당당한 직업으로, 그것도 해당 여성이 자유 의지로 선택한 "만인의 여친" 같은 이미지로서 존재하고, 남성이든 여성이든 나신을 드러내는 게 아무런 도덕적인 문제가 되지 않았던 문화권이었다. 나중에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에야 남탕과 여탕을 시간제로 구분했다고 한다. 중세 유럽도 다르지 않은게, 로마 가톨릭은 매춘이 간통보다는 덜 악하게 여겨 매춘부를 대죄를 범하는 것을 예방하고 사회를 결속시키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필요악으로 보았다. 그 덕에 교황령 인구 중 거의 10%를 차지하였으며, 여러 도시들은 매춘부를 관리하기 위해 특별세와 규제, 보호같은 법률을 마련하기도 하였다.[5] 오늘날 '안마방에 간다'는 말과 비슷한 의미다.[6]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지방의 소도시나 마을에 있던 공중 목욕탕은 남탕과 여탕으로 구별되어 있었다.[7] 목욕이 청결보다는 쾌락과 결부되면서 씻지 않는 것이 일종의 금욕 행위로 여겨지면서 영광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덕분에 어느 고결한 수도자는 머릿니가 눈송이처럼 떨어졌다는 풍문도 있었다.[8] 하술되어 있지만, 위생 관리가 철저하게 이루어지는 21세기인 지금도 대중목욕탕은 전염병 유행에 취약하기는 마찬가지다.[9]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에서 이 시대의 유럽이 얼마나 냄새나고 더러운지 잘 묘사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 그르누이는 향수에 대한 집착이 더 커진다.[10] 특히 송나라 사람이 쓴 <고려도경>이란 책에서는 고려 사람들이 씻는 걸 좋아하여 "남녀가 어우러져 자주 함께 씻었다"라고 기록하기도 했다.[11] 이는 때를 미는 문화가 큰 영향을 미치는데 온천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도 때를 민다는 개념은 임진왜란이나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에서 유입된 것으로 추정하는 학계와 학자들이 있다.[12] 탕정면, 온양, 온천동 등의 지명이 그 흔적이다.[13] 애초에 비누의 어원이 이것이다.[14] 송나라 사신이 고려에 대해 쓴 고려도경에서는 고려인들은 수시로 씻으며 중국인이 때가 많음을 비웃는다고 쓰여 있다.[15] 한증막이라는 단어는 현대까지도 사우나를 일컫는 말로서 남아 있다.[16] 이 경우 개울이나 계곡에 발을 담그고 씻는 김에 풍취를 즐기며 노니는 일종의 피서나 소풍과 비슷한 취급을 받기는 했다.[17] 현대의 부산광역시 중구, 서구, 동구 일대이다.[18] 19세기 말기까진 사람 사이에서 맨몸을 보이는 것에 거부감이 없던 것을 생각하면 20세기, 성리학적 사회변동의 양상을 보여주는 사례라 볼 수 있다.[19] 사실 1970년대까지도 대중목욕탕에서 목욕하는 것이 사치인 가정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다.[20] 그냥 게이바와는 엄연히 다른 곳이다. 또한 게이 사우나 문서에서 보듯 게이 사우나라도 저렇게 아무나 막 덮쳐도 되는 곳이 아니다.[21] 꼭 안 보이게 두른다기 보다는 "가리고 있습니다."라고 상징적으로 표시하는 정도로, 일종의 상대를 향한 배려 혹은 타인에게 성기를 보이고 싶지 않은 행위이다. 일본 목욕탕에서도 안 가리고 다니는 사람도 꽤 많다.[22] 설날도(음력 1월1일 하루전) 성수기이긴 하다. 기사[23] 애초에 튀르키예 서부가 로마 제국 동쪽 변방이자 동로마 제국 중심지였다.[24] 문제는 이것이 일본으로 넘어가면서 안 좋은 의미로 변질되었다. 결국 이를 본 한 튀르키예인이 문제를 제기한 끝에 다른 이름으로 변경. 인접한 한국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자세한 건 소프랜드 문서 참고.[25] 직역하면 돈(錢)을 내고 들어가서 목욕할 수 있는 탕(湯)이다.[26] 450엔은 일본 목욕탕 보통 평균 요금이다. 환율을 따지자면 약 6000원 정도.[27] 외래어 표기법을 따를 경우 '게로린'이 되므로 더욱 어감이 유사해진다. 다만 성분은 카페인이 들어간다는 점을 빼면 전혀 다르다. 게보린은 아세트아미노펜 기반, 케로린은 아세틸살리실산 기반이다.[28] 과거에는 '나이가이 약품'(内外薬品)이란 회사에서 '케로린'이란 이름의 진통제를 제조·판매했으나 이후에는 해당 사업을 '토야마메구미제약'이란 회사에 양도했다.[29] 서부 시대에는 대부분 독립적인 건물에 유료 목욕 시설이 있었다. 여행자들이나 행인들을 위한 사설 업장이었다.[30] 대부분 안뜰을 겸한 정사각형의 건물이나 아니면 길거리에 다닥다닥 붙은 2~3층짜리 테라스 하우스(Terraced houses) 형태였다.[31] 욕조는 쓰지 않으면 밖에 놔두기도 하는데 바깥에 방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목욕을 하기 전 거미와 거미줄 등을 치워야 한다.[32] 전근대 영국의 전통적인 세탁법은 한국처럼 방망이로 두들기는 식이었다.[33] 을 많이 사용하지 않고 시간도 절약되기 때문이다.[34] 비리 사학 경영자로 악명높은 이홍하도 교사생활을 하면서 목욕탕을 부업으로 운영했고, 이를 통해 큰 돈을 벌어 재단을 설립했다.[35] 이러한 목욕탕업의 특성을 잘 활용해서 부를 축적한 대표적인 인물이 사학비리로 악명높은 이홍하가 있다.[36] 2017년 말 기준으로도, 담배소매인으로 지정될 권리는 속칭 담배권이라고 불릴 만큼 큰 이권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권리금 형태로 암암리에 거래가 이루어질 정도이다.관련 기사[37] 옛날 유머에서 목욕탕과 카지노의 공통점에서 창문, 시계가 없다는 얘기가 있었다.[38] 당시에는 부울경 지역에만 있다고 소개되었는데, 그 외 지역에도 존재했다는 증언이 있으며 서울에도 많이 있다.[39] 만약 문신을 했다면 기껏해봐야 1인용 욕탕 뿐이고 대중목욕탕은 절대 못간다[40] 1970년대에는 씻을 만한 시설이 진짜로 공중 목욕탕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41] 이 샤워기는 버튼을 누르면 물이 쏟아지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꺼진다.[42] 가정용 샤워기랑 비슷하지만 차이점은 샤워기에 버튼이 달려있어 누르는 동안에만 물이 나온다.[43] 남탕 기본세신 기준 평균적으로 18,000~20,000원 안팎이며, 소수지만 15,000원을 받는 목욕관리사들도 있다. 초등학생 이하는 대부분 10,000~12,000원 안팎이다.[44] 온도를 보면 알겠지만 이벤트탕도 온탕의 일종이다. 알고보면 온탕에 입욕제를 풀어 온탕과 차별화시킨 것이다.[45] 일반 색소로 보일 수 있겠지만 색소가 아니라 입욕제이다. 주로 을 채우거나 교체하는 시간에 투입한다. 한약재를 풀은 한약탕도 있다. 좋은 곳은 천연 입욕제인 인진, 껍질, 목초액 등을 풀은 목욕탕도 존재한다. 기사[46] 목욕탕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지만 대체로 34~36℃ 정도의 미온탕에 수압 마사지기가 설치되어 있는 구조이다. 구형 목욕탕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고 신형 목욕탕에서 때때로 목격 할 수 있다.[47] 폭포탕이 별도로 설치되지 않은 목욕탕에서는 주로 냉탕에 폭포시설이 설치된다. 폭포탕이 별도로 설치되었다는 것은 냉탕과는 차별화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물의 온도가 냉탕과는 다르게 설정되며 대체로 미온탕에 가까운 온도이다.[48] 수영장은 스포랜드, 목욕탕은 스파랜드이다.[49] 남탕 기준 온탕, 열탕, 온탕과 열탕 사이의 온도인 이벤트탕, 마찬가지인 황금탕, 히노키탕, 냉탕, 급랭탕이 구비되어 있다.[50] 영어권에서는 건식만 사우나고 습식은 증기방(Steam room)이라고 부른다.[51] 이 경우 열쇠가 꽂힌 아무 락커나 쓰면 된다. 목욕을 마친 뒤에는 꽂아둔 채로 나오면 끝. (어차피 빼지도 못한다.)[52] 이들이 목욕탕의 전반적인 위생 관리를 책임진다. 여탕 단골 손님의 경우 카운터 아주머니와 깊은 친목질을 나누기도.[53] 열탕, 한증막과 함께 여탕 기준 3대 친목장소이다.[54] 덜덜이 라고 하는 진동 벨트가 달린 기구. 체중감량 효과를 위해 많이들 사용하나, 마사지 용도일 뿐 칼로리 소모는 거의 없다고 한다.[55] 진주가루팩, 노니주스 등등. 보통 화장실이나 화장대 등지에 광고지가 붙어있다.[56] 위생 문제도 있을 뿐더러, 목욕탕에서 사용하는 제품은 거의 업소용 저가품이라서 피부에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이 탓에 여탕에서는 가져온 화장품이 없더라도 목욕탕 화장품은 안 바르는 경우도 많다.[57] 물론 비치된 물품.[58] 이렇게 성별 구분이 명확해야 하는 곳이다 보니, 성차별에 대한 카운터로 써먹기도 한다. 일례로, 다비트 힐베르트가 여성 조교수(훗날 뇌터 정리를 만들었다)를 들일 때 대학이 목욕탕인 줄 아냐며 반대하는 남자 교수들을 데꿀멍시켰다.[59] 남성여탕에 들어가거나 여성남탕에 들어감[60] 이는 탈의실이나 화장실도 해당.[61] 자신의 그곳을 여학우가 보기라도 하면 굉장히 수치스럽기 때문.[62] 공중위생관리법 시행규칙 별표 4.[63] 긴 머리로 유명한 락커 김경호남탕에 갔다가 경찰까지 부를 뻔 했다고 한다.[64] 대부분 무궁화에서 벌크로 파는 '샤워랑' 등 매우 저렴한 업소용 비누인데, 타 기업도 이 시장을 노리는 중이다.[65] 이것들을(칫솔, 면도기, 때수건 모두 합쳐서) 적게는 1,500원에서 많게는 3,000원 정도만 주면 살 수 있다. 샴푸, 린스, 바디워시는 일회용으로 개당 500~1,000원에 판다. 예전에는 일회용 칫솔 정도는 무료로 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환경 문제 때문에 일회용품 무료 제공이 금지되면서 없어졌다.[66] 대부분의 목욕탕 음료수는 탈의실 카운터 아주머니의 작품이다. 인스턴트 냉커피 이외에도 매실, 감식초, 식혜 등 다양하게 판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67] 다만 파는 경우라면 남탕 카운터 아저씨가 주문을 받고난 후 여탕 카운터 아주머니한테 연락하여 밖에서 냉커피를 받아오는 방식이다.[68] 이는 대부분의 실내 수영장 또한 마찬가지다.[69] 이라기보다는 다 구비되어 있어서 굳이 안 챙겨도 된다는데, 아내나 어머니 등이 굳이 가져가라고 쥐어준 것이다. 물론 여자들 입장에서는 자기들이 갈 땐 없으니까 당연한 것이다.[70] 이건 흘리고 목욕할 때 또 쓴다는 게 아니라, 그냥 목욕 한 번으로 끝낸다는 뜻이다.[71] 정말 많아봤자 4장이고 그 이상은 사실상 없다.[72] 부산 동래의 온천인 허심청 내의 화장실이 이 구조로 되어있다. 소변 전용 화장실이라 변기커버가 제거된 양변기가 설치되어 있다.[73] 방수 기능이 있는 휴대폰이라도 사용 중에 떨어뜨리는 등 충격 때문에 틈이 생기면 방수 성능이 떨어진다.[74] 심지어 팬티 색깔이 살색이라 원거리에서 보면 알몸으로 착각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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