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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문자적인 뜻은 인민의 군대. 그러나 실제로 국가와는 별도로 시민들이 조직한 군대는 주로 민병대라고 하고, 인민군이라는 말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자신들의 군대 이름에 붙이는 용도로 쓰였다. 예를 들어 조선인민군, 중국 인민해방군, 동독의 국가 인민군 등이 있다. 흔히 인민군과 혼동되는 개념인 인민무력과는 용법에서 차이가 있으며, 인민군이 하위개념이고 인민무력이 상위개념이다.2. 역사
2.1. 기원
마르크스주의에서는 군대(국군)를 부르주아지들과 정부 관료들의 충견(忠犬) 정도로 보고 있다. 쉽게 말해 군대는 민중을 위협하고 탄압하는 존재로 생각했던 것.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부르주아지와 관료들의 국군에 맞설 수단으로 '무장한 프롤레타리아의 자경단' 개념을 제시했다. 본래 이 주장은 두 사람이 활동하던 당시, 즉 기존의 국가 체제와 그에 대항하는 혁명가들의 대립이 한창이던 19세기 유럽의 상황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이 시기 유럽 국가들에서는 실제로 군대가 (혁명가나 급진주의자들을 억압하는) 보수 우파의 중요한 권력 기반 중 하나였고, 공산주의는 둘째치고 공화주의나 민족주의조차 '좌빨' 취급에서 슬슬 벗어날까 했다. 평화시위든 폭력시위든 경찰과 군대로 때려잡을 생각부터 하던 시대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주의자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들은 기존 체제 자체를 무너뜨리는 혁명이 아니라 "체제 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여 기존의 국가 체제를 사회주의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점진적인 개량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해 "자본주의적 사회구조를 전제로 성립된 정부를 그대로 접수해서 사회주의 정부로 개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 연장선상에서 "군대 내의 지식인 출신 장교나 서민 출신 병사들에게 사회주의를 알려 지지자로 끌어모으면, 기존 국가의 군대가 사회주의를 탄압하는 조직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주의 국가를 세우는 원동력이 되지 않겠느냐?" 는 질문에 대해 "자본주의적 사회구조를 토대로 만들어진 군대를 혁명의 수단으로 삼을 수 없다"고 대답한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정부와 체제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군대 역시 해체되어야 하며, 혁명이 진행되는 과도기 동안 무장한 프롤레타리아의 자경조직이 그 군대의 역할을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 초기 마르크스주의는 칸트적 이상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기에 공산주의가 주도 이념이 된 사회에서는 갈등의 해결수단으로써 전쟁이 지양(止揚)될 것이고, 더 나아가 국가간의 경쟁과 알력 자체가 해소될 것임을 기대하는 경향이 강했기에 "사회주의 세상에서는 국가간의 전쟁이라는 것이 없지 않을까? 그러면 군대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기대하였다.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자 공산주의자들은 이제 혁명과 체제를 수호할 무장집단을 고민해야 했다. 이전에도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정치변혁운동은 많았지만 제대로 성공해본 적은 하나도 없었는데 러시아 혁명이 성공해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소비에트 러시아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러시아 내부에서도 러시아 외부에서도 공산주의 혁명을 달갑지 않게 보는 눈은 많았고, 이 때 블라디미르 레닌은 자신의 저서인 '우리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2]에서 "경찰의 회복을 막을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것은 인민의 민병대를 만들어 군대와 융화해 상비군을 모든 인민의 군대로 바꾸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러시아의 전황이 불리해지고 각지에서 혁명에 반발하는 세력이 백군이라는 이름으로 혁명을 진압하려 하자 혁명을 수호할 군대의 필요성은 현실화하였다. 이에 인민위원회의[3]는 1918년에 혁명을 호위할 목적으로 마르크스의 주장에서 착안해 노동자와 농민의 붉은 군대[4]를 창설하고 계급의식적이며 가장 우수한 노동자 계층으로 구성된 군대를 지향했다. 이렇게 첫 공산주의 국가의 군대인 노동자와 농민의 붉은 군대(소련군)은 인민군을 지향하게 되었다. 그렇게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 소련의 소련군도 한 때 인민군을 지향했다. 붉은 군대 시절이었던 1946년까지는 말 그대로 인민을 위한 부대였지만, 1946년에 이름을 소비에트 연방군으로 바꾸면서 국군이 되었다.
소련의 성공으로 인해 사회주의 국가들은 모두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기초해 국가를 경영했고 이에 따라 자신들의 군대도 인민군을 지향하였다.[5]
2.2. 현실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의 인민군은 그 정치체제의 한계로 인해 진정한 '인민의 군대'가 되지 못했다. 공산주의 국가는 레닌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독재, 민주집중제 논리에 따라 공산당 일당 독재 국가가 되었고, 이로 인해 인민군도 말이 '인민을 위한 부대'일 뿐, 실질적으로는 국가 유일 정당인 공산당의 군대로 편성되었다. 결국 권력자가 자본가에서 공산귀족으로 바뀌었을 뿐, 그들이 타도하고자 했던 권력자들의 충견(忠犬)인 국군의 역할을 그대로 계승했다. 또한 이들은 공산당이 믿고 부릴 수 있는 수족으로서 국내 숙청, 타국 침공, 선전선동, 감시의 선봉으로 활동했다. 공안이나 경찰, 행정, 사법기관들도 있었지만 굳이 여기 쓸 필요가 없을 정도다.이는 20세기 공산주의가 지향했던 정치체제인 민주집중제의 한계 때문이다. 민주집중제는 '국민 다수의 의견에 따라 군림하는 권력'을 견제하는 세력이 결여되어 있다. 소련에서 민주집중제의 성립 초기에는 멘셰비키와 같은 야권세력도 있고 사회혁명당과 같은 연립여당 등이 정부에 참여해 다당제로 굴러갔지만, 볼셰비키가 여러 야권세력들을 말살하고 레닌의 분파금지명령으로 공산당 당내민주주의마저 파멸하자 당내 견제세력도 없어지고 당 외부의 견제세력도 없어졌다. 그리고는 '계급대립이 없는, 단일한 이해관계를 지닌 노동자'가 '독재'(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하여 공산주의를 완성해야 한다는 이념을 이용해 대놓고 일당제를 지향하게 됨으로써 자본주의같은 반공적 사상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내 분파, 예를 들면 조합주의(생디칼리즘), 아나키즘, 트로츠키즘 등등의 반대파마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없애버렸다. 군대를 당이 가지고, 그 당이 '인민이 우리를 지지한다'는 논리와 함께 야당을 무력으로 쓸어버리니 반대파가 뿌리내릴 방법이 없었다.[6]
그리고 본래 반정부단체였던 공산당과 사회주의 정당의 무력으로 만들어진 인민군들은 그들의 목적인 체제전복과 그들이 원하는 체제를 구축한 후에도 인민군의 통수권을 넘겨주지 않고 그들이 가진다. 어차피 일당제 국가라 공산당과 정부가 한 몸이니까.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일반적인 국가처럼 국방부의 수장이 군의 최고서열이거나 최고서열이었던 적이 없다. 권력서열도 권력투쟁 때도 국방부의 역할을 하는 조직들(인민무력성 등)은 개인 단위가 역량이 돼서 나선 것 외에는 조직단위로는 역량이 안돼서 제대로 나서지도 못했다. 예를 들면 중국 인민해방군은 중국의 국군(國軍)이 아니라 중국공산당의 당군(黨軍)이다. 따라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모든 통수권을 가진다. 심지어 중국이 보유한 핵무기의 사용 결정권도 이 중군위 주석에게 있다.
그리하여 공산주의 국가들의 인민군의 현실은 그냥 공산당 수뇌부가 자신들의 의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군대에 프로파간다 효과를 위해 '인민군'이라는 타이틀을 붙여둔 것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일단 편제부터 인민들의 집합체인 국가 소속이 아니라 자기네 당[7]의 수족인 '당군'으로 편제되어 있으며 활동도 그들이 그렇게 타도하고자 하였던 권력자들이 했던 행동을 반복했다.
또한 인민은 공통의 관심사나 정체성 등을 전제한 '결속된 연합'으로 쓰이는 용어라 일단 그 나라 정부의 마음에 안들더라도 같은 나라 사람이라면 보호해줘야 하는 의무를 가진 국군과 달리 인민군은 공산당의 마음에 안들면 같은 나라 사람이든 뭐든 그 날로 보호는 둘째치고 인민군의 공적이 되어버려 생존투쟁을 벌여야 할 처지에 내몰렸다. 공산당 일당독재고 정부가 사실상 공산당의 도구 내지 장식품이라서 공산당이 곧 국가를 통치하는 유일한 집단이므로 이들에게 거역하는 순간 온 세상이 적이 되어버린다. 예를 들면 국군이 있는 국가는 권력투쟁적 속성을 가지는 것 등 비상상황에서도 안좋은 유형의 상황이 걸리지 않는 이상 무능한 경우를 제외하곤 국가에게 생존을 위협당하지는 않지만 인민군이 있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당이나 국가에 거역하는 순간 당장 생존에 지장이 걸려 버린다.
3. 특징
- 병과를 상당히 중요시했다.
소련군이 대표적인 예시다. 얘네들은 당장 계급 체계부터가 포병상장, 기갑상장, 항공상장 등등 과거 제국군을 연상케하며, 심지어 상장 이상 계급에도 포병상원수, 기갑상원수, 통신상원수, 항공상원수, 공병상원수라는 계급이 존재했을 정도 병과를 중시했다. 체코슬로바키아 장성 계급을 보면 분명 장성인데도 병과마크가 같이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른 인민군들은 겉으로는 병과 위주로 돌아가는 관례는 없앴지만 실질적으로는 병과 위주로 돌아갔다. 원래 장성으로 진급하면 기본적으로 본인 병과는 없어진다. - 당에 충성하는 조직이다.
대부분의 인민군들은 국가 소속이 아닌 공산당 소속이었으며, 충성 대상도 국가가 아닌 당이었다. 일당제 국가에서는 당군이 곧 국군인거나 다름없었지만 다당제 국가는 이론상 공산당 외의 당이 여당이 되도 그 군대는 여당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공산당이 여당이든 야당이든 계속 당의 명령만을 따른다. 이 때문에 정치장교 제도가 존재한다. 물론 완전한 당군이 아닌 소련군이나 베트남군처럼 당군 겸 국군 사례도 있고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처럼 완전한 국가 소속인 경우도 존재했다. - 문민통제의 방식이 다르다.
대개 문민통제의 척도를 볼 땐 역대 국방장관들 중 군 경력자의 비율로 따진다. 인민군들은 대부분 국방장관이 군인이라 문민통제가 안 지켜진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애초에 민주주의 국가의 문민통제와 마르크스-레닌주의 국가의 문민통제는 방식이 다르다. 흔히 아는 민간인 국방장관은 민주주의 국가의 문민통제이며, 인민군은 대개 국가 소속이 아닌 당 소속이라 기본적으로 군 고위간부들은 공산당의 당원으로써 취급되고, 형식상 장교 계급만 달고 있는 공산당 당원인 정치장교를 통해 군을 통제하는 것이 마르크스-레닌주의 방식의 문민통제이다. 중국 공산당대회 영상을 보면 장성들도 참석해있는 걸 볼 수 있다. - 육군의 비중이 높다.
이는 통합군 체계를 채택하고 있는 모든 군의 특징이다. 기본적으로 인민군은 통합군 체계로 돌아가며, 특히 기동전 교리가 발달해 고도로 기계화가 되어 있었다. 국방장관 및 합참의장이 참모총장에게는 군정권, 작전사령관 및 전투사령관에게는 군령권을 나눠서 행사하는 합동군과는 달리, 얘네들은 최고사령부에서 총참모부를 거쳐 각 군에게 일괄적으로 이 두 명령권을 모두 행사한다. 통합군은 대개 육군이 커질 수 밖에 없는 대륙국가에서 주로 나타나는 특징으로 총참모부에서 직접 육군을 지휘하는 구조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베트남 인민군과 조선인민군이 이런 구조이다. 물론 육군사령관이 별도로 존재하는 경우도 있었고 통합군이 아니더라도 안보 상황과 지정학적 요소에 따라서 육군이 상대적으로 비대한 경우도 존재한다.
4. 의외의 면모
사회주의 국가의 군대는 공산당의 수족이 되었지만 여전히 '인민을 위한 군대'라는 이념은 남아있었다. 예를 들면 1989년 동유럽 혁명 당시 동독의 국가유일정당인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은 국가인민군 투입을 통한 진압을 고려했으나 결국 포기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초급 장교들 사이에서 '인민을 위한 군대가 인민을 공격한다는 게 말이 되나'라는 생각이 만연한 것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중국 인민해방군의 천안문 6.4 항쟁 유혈 진압이 큰 충격을 가져다준 이유 중 하나도 인민군이 인민을 억압했다는 것인데, 이 당시에도 쉬친셴의 사례처럼 많은 고급지휘관들이 유혈진압에 항의했고 일부는 진압 작전을 거부하여 명령불복종으로 감방에 가기도 했다.또한 초기 인민군들은 계급이 없던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는 '평등한 인민의 군대'를 표방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직급을 기준으로하는 직위분류제적 계급제가 적용되었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은 중대장과 대대장 직위를 맡을 수 있는 사람, 어떤 사람은 일반 병사만 맡을 수 있는 사람 식으로 등급을 매겨서 사용하였다. 이런 분류체계는 매우 비효율적이란 것이 증명되어서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폐지하고 계급제로 돌아갔다.
5. 기타 국가의 인민군
나치도 "인민"(Volk)라는 말을 매우 애용했다. 이들은 프로이센 왕국 시기부터 내려오는 군부를 "귀족 출신이 지배하는 낡은 유산"이라고 매우 경멸했으며, 에른스트 룀같은 나치당 좌파들은 이들을 청산하고 "인민의 군대"를 만들려고 했다. 이것이 바로 SA였고, 룀은 이를 위해 SA와 독일 국방군의 합병을 추진하다가 국방군의 반발을 사서 히틀러에게 숙청된다. 그러나 히틀러도 나중에 전황이 급박해지자 인민돌격대(Volkssturm)를 창설한다. 인민돌격대는 아이러니하게도 법제상 히틀러가 귀족 출신이 장악했다고 불편한 국방군 소속이었다. 물론 당시 전황이 막장이었으므로 법제상 어떻게 되든 상관도 없었지만...6. 언어별 명칭
언어별 명칭 | |
<colbgcolor=#DCDCDC>한국어 | 인민군(人民軍) |
영어 | People's Army |
프랑스어 | Armée populaire |
루마니아어 | Armata Poporului |
독일어 | Volksarmee |
폴란드어 | Ludowe Wojsko |
체코어 | Lidová armáda |
헝가리어 | Néphadsereg |
러시아어 | Народная армия (Narodnaya Armiya) |
불가리아어 | Народна армия (Narodna Armiya) |
몽골어 | Ардын Арми |
알바니아어 | Ushtria Popullore |
한국어에서는 아무래도 지리적으로 대한민국과 가장 인접한 조선인민군을 지칭할 때가 많다.[8] 다른 인민군은 '인민'을 넣을 것 없이 그냥 '헝가리군', '유고슬라비아군'으로 지칭했던 영향도 있다. 북한에 대해서는 남한이 북한의 '조선'이라는 국명을 인정하지 않아 '조선군'이라고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 산하 정규군의 공식 명칭인 '중국인민해방군'(中国人民解放军)에도 '인민'이 들어가지만 중국에서는 대체로 '해방군'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기관지 이름도 해방군보(解放军报)이다.
7. 목록
7.1. 오늘날
7.2. 과거
8. 같이보기
[1] 마르크스는 주로 자본주의가 어떤 모순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지 공산주의 사회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취할지는 거의 언급한 바가 없다.[2] 영제 Tasks of the Proletariat in our Revolution[3] Совет народных коммиссаров[4] Рабоче-крестьянская Красная армия[5] 개념상 공산-사회주의 국가들에서 혁명의 중심인 당이 먼저 만들어지고, 압제된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하여서 무력조직들이 구성 되어야 하며, 이후에 성공하고 나서야 국가/정부가 조직된다. 상식적으로 먼저 조직된 무력단체가 후대에 나오는 조직인 국가와 정부에 예속될 일은 거의 없다.[6] 사실 레닌 생존시기까지만 하더라도 소련 공산당 내에는 여러 계파들이 뒤섞여있었다. 특히나 혁명 이후 레닌의 급진적 공산주의 경제정책은 후진적 농업국가였던 러시아에서 큰 부작용이 나타나서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기도 했다. 이에 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하는 신경제정책을 시행하면서 비교적 다양한 색체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백군과 외국군이 1차 세계대전 종전후에 공산당을 제거하고자 움직였기에 이를 막겠다고 비밀경찰 '체카'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레닌 사후 계파들간에 권력다툼 속에서 레닌의 비서역할이고, 각 세력들의 조정자 위치였던 서기장 스탈린이 처음에는 트로츠키을 다른 세력들과 연합으로 제거하는 방식을 통하여서 다른 세력들을 제거하고, 1인 독재권력을 구축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는 중국과 북한에서도 비슷하게 진행되었다. 중국은 대장정을 겪으면서 마오쩌둥이 당과 군의 1인자 위치를 확립하였다는 점이고, 김일성은 비교적 오랜기간을 거쳐서 자신의 직계세력만 남기고 독재권력을 구축하였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7] 명목상 노동자, 농민의 결사체[8] 이와 유사하게 '국군', '국방군' 역시 "국가의 군대"라는 일반명사지만 북한에서는 '국군'이라고 하면 대개 대한민국 국군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