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한자어 '존재'(存在)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들이 있다.2. 한국어에서의 의미
현대 한국어에서 동사 "존재한다"는 "있다"와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예컨대 "증거가 존재한다"는 문장은 "증거가 있다"라는 말과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게 일반적이다.한자풀이를 해보자면, 있을 존(存)과 있을 재(在) 둘다 '있다'는 동사의 뜻을 가지고 있지만, 무언가가 '있음'을 인지하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어떤 개념이 '있음'을 알기 위해서는, 특정 개념을 떠올렸을때 다양한 인간이 공통된 생각 혹은 공통된 행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당 방식의 '있음'을 뜻하는 한자가 있을 존(存)으로, 보이지도 않는 신이 존재함을 믿는 행위나, 증명할 수 없는 사랑 등 무형의 가치를 추구하고 계승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사상이나 추상적인 개념의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있을 존(存)은 시대가 변함에도 변하지 않는 가치 또는 그것의 가치를 보존하는 것을 의미하는 쪽에 가깝다.
반대로 존재를 감각적으로 인지하는 방법이 있다. 인간의 오감으로 특정 대상의 '있음'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가까운 거리에 같은 시간에 감각적으로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한데, 이때 사용되는 한자가 있을 재(在)이다. 사람이 어떤 물체가 '있음'을 감지하기 위해서는, 빛을 반사시켜서 해당 물질 주변의 시야가 차단되거나 왜곡되는 현상이 필요하며, 빛이 100% 투과하는 투명한 물체라면 촉각이나 청각을 포함하여 에너지 측정 등 간접적인 방식으로 존재를 감지하여야 한다. 하지만 해당 한자는 그렇게 복잡한 한자가 아니고 그냥 해당 시공간의 범위 안에 있으면 있을 재(在)를 사용하여 서술한다.
따라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정신적으로 해당 개념이 있다고 믿거나, 아니면 물리적으로 해당 물체를 감지할 필요가 있는데, 이것이 존재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때문에 '신이 존재한다'는 말은 믿는 이에게는 참이 되고 믿지 않는 이에게는 거짓이 될 수 있는 문장이며, '존'에 해당한다. '(특정 시공간에) 물체가 존재한다'는 말은 감각을 이용하여 감지가 되는지 되지 않는지에 따라서 참과 거짓이 판별되며 '재'에 해당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어떤 존재는 특정 시공간의 범위 안에 구속(在)되지만, 시간의 변화에 따라 연속적(存)인 존재이다. 그것이 추상적인 개념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 역시 해당 단어로 표현이 가능하다. 때문에 어떻게 보면 같은 뜻을 가진 단어일지라도, 두가지 시각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에 존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더불어 명사 "존재"는 "(있는) 대상"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말 "없다", 한자어 "무(無)" 등과는 반의어 관계에 놓인다.
2.1. 번역 문제
비슷한 뜻인 한자어 "有"가 매우 오래 전부터 쓰였고, 또 비슷한 뜻인 "存"과 "在" 한자 각각이 모두 오래 전부터 쓰인 것에 반하여, 두 글자가 합쳐진 "존재(存在)"는 근대에 서양 철학 용어를 한자 문화권에서 번역하면서 생겨난 말로 추정된다.한자어 "존재(存在)"는 인도유럽어족에서 존재 동사 및 계사로 쓰이는 표현들, 예를 들어 영어의 그 유명한 be-동사로부터 비롯된 어휘들, 대표 격인 "being"이나 "existence"에 대응한다. 즉 "being"과 "existence"[1] 모두 각각 쓰임새에 따라 "존재"로 번역되고는 한다.
다만 철학에선 다양한 전통 및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한국어 번역어가 쓰이기도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실존주의 철학에서 "existence"를 ''실존"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독특한 의미를 부여하는 게 대표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현존" 같은 표현도 종종 쓰인다. 따라서 철학에서 "존재"라는 말이 등장할 땐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선 맥락을 세심히 살펴야 한다.
3. 철학적 논의
이제 저희가 곤경에 처한 만큼, 당신께서 "존재(ὄν)"라고 말씀하실 때 뜻하시는 바가 대체 무엇인지, 저희에게 분명히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당신들이 그게 무엇인지에 관해 줄곧 알고 계셨던 것에 반하여, 저희들은 과거엔 그게 뭔지 알았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지금은 곤경에 처해 있다는 게 분명하니까요.
플라톤, 『소피스트』[2]
플라톤, 『소피스트』[2]
어떤 의미건 "존재"는 고대부터 매우 수수께끼 같은 주제이다. "존재"라는 말부터가 정신적인 '존'함과 물질적인 '재'함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이를 탐구하는 분야가 형이상학 가운데 존재론이다. 유사 이래 수없이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그 대표적 예는 다음과 같다.
3.1. 파르메니데스
서양 철학사에서 "존재(ὄν)"에 최초로 관심을 기울인 철학자 중 하나인 파르메니데스의 단편들은 "존재가 비존재할 수 없다"는 발상을 근거로 세계는 하나이며, 운동, 변화 따위는 없다는 견해를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는 게 통설이다. 하지만 "ὄν"에 대한 대안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반론을 근거로 이러한 해석을 둔 많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파르메니데스 항목 참조.3.2. 알렉시우스 마이농
알렉시우스 마이농은 대상(objekt)의 "있음(sein)"을 존(存, bestand)과 재(在, existenz)로 구분한 것으로 유명하다. 물리적 사물, 예를 들어 눈 앞의 책상은 '존'하며 '재'하는 대상이다. 반면 추상적 대상인 수는 '재(existenz)'하지는 않고 그저 '존(bestand)'할 따름이다. 그리고 그에 반해 '빨감과 동시에 파란 책상' 같은 모순(contradictary)적인 대상은 '존'하지도, '재'하지도 않은 대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존재(sein)하거나 비존재(Nichtsein)적인 모든 대상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 Außersein[3]이다.3.3. 윌러드 밴 오먼 콰인의 존재론적 개입
버트런드 러셀 등 선배 철학자들의 입장을 계승하여 콰인은 1차 술어 논리에서의 양화사 '[math(\exists)]'가 "존재" 개념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했다. 콰인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이론 [math(T)]가 세계를 가장 잘 설명하는 이론(예. 최첨단 물리학)이라고 가정하고, [math(T)]의 모든 명제들을 1차 술어 논리 언어로 번역하자. 이때 [math(T)]의 모든 명제들이 참이 되기 위해서는 일련의 변항의 값들이 논의역(domain)의 원소여야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변항의 값이 되는 것이 바로 존재하는 것이다.- 예. 최선의 이론을 번역한 명제들 가운데 '[math(\exists x (Fx \wedge Gx))]'라는 명제가 포함된다고 하자. 변항 [math(x)]에 할당된 것이 없으면 해당 명제는 참이 될 수 없으므로, 곧 [math(x)]의 값은 존재한다.
이런 콰인의 입장은 다음과 같은 사뭇 시적 경구로 표현되기도 한다:
존재한다는 것이란 곧 변항의 값이 되는 것이다(To be is to be the value of a variable)[4]
3.4. 불교
불교의 제법무아(諸法無我)에 따르면 마음에서 비롯된 나(아상(我相))라는 관점은 그릇되고 본성이라는 것은 결국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3.5.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헤겔의 말에 따르면 순수한 '존재'는 무와 동일하다고 한다.3.6. 마르틴 하이데거
하이데거는 철학사에서 플라톤 이후 존재에 대한 담론의 패러다임을 바꿨다고 평가된다. 존재라는 개념의 의미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면서 20세기 철학자중 비트겐슈타인과 더불어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철학자로 분류되기도 한다. 자세한 내용은 하이데거 문서의 존재와 시간 항목 참조.3.7. 기타
대부분의 철학에서 깊게 파고들지 않고 대충 건드리다 넘어간 논의지만, 건들기 시작하는 순간 밑도 끝도 안 보이는 아득한 주제인지라 이걸 설명하는 데 진척이 있었다고 인정되는 이론들은 하나같이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철학사상이 되어버리기 일쑤다.이런 생각을 하다가, 특히 자기 자신의 존재를 생각하다가 자살까지 한 사례가 종종 보고된다.
4. 카카오웹툰
자세한 내용은 존재(웹툰) 문서 참고하십시오.[1] "exist"부터가 라틴어에서 전치사 "ex"에 (영어의 be에 해당하는) esse 동사의 3인칭 단수 변화형인 "ist"가 결합하여 생겨난 어휘다.[2] 사실 이부터가 꽤 논란이 있는 번역어다. 왜냐면 플라톤 해석에서 "ὄν"이라는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현대의 철학사가들에게도 여전히 문제거리기 때문이다[3] 영어로 직역하면 outside-being라고 하지만, indifference(무관계) to being이라는 뜻이다. 대충 수학으로 치면 실수와 허수를 합친 복소수 체계 같은 느낌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4] 다만 콰인은 이 경구가 사뭇 오도하는 어감으로 쓰일 수 있음을 경계한다.